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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東沃沮)재대산지동, 빈대해이거. 기지형동북협, 서남장, 가천리, 북여·, 남여접. 호오천, 무대군왕, 세세읍락, 각유장수. 기언어여대동, 시시소이. 초, 망인왕, 시개속언. 이년, 벌, 살손, 분기지위사군, 이위. 후위이맥소침, 사군서북, 금소위고부시야. 환속.'동옥저'는 '고구려'의 '개마대산'의 동쪽에 있다. 큰 바다에 임하여 거한다. 그 땅의 형태는 동쪽과 북쪽은 좁고 서쪽과 남쪽은 길다. 가히 천리이다. 북쪽으로 '읍루'와 '부여'에 접하고, 남쪽으로 '예맥'에 접한다. 호수는 오천이다. 큰 군장은 없고, 세세토록 읍락 각각에 '장사'가 있다. 그 언어는 '구려'와 크게 같으나, 조금은 다르다. '한나라'초에 '연'의 망명인 '위만'이 '조선'에서 왕노릇할 때 '옥저'가 속하게 되었다. '한 무제 원봉'이년 '조선'을 치고, '위만'의 손자 '우거'을 죽인 후 그 땅을 나누어 사군을 두었는데, '옥저성'은 '현토군'이 되었다. 후에 '이'와 '맥'이 침입하여, 마을을 '구려' 서북으로 옮겼는데, 지금 '현토'에 있는 옛 마을이 이것이다. '옥저'는 다시 '낙랑'에 속하게 되었다.이토지광원, 재지동, 분치동부도위, 치, 별주령동칠현, 시역개위현. (광)육년, 성변군, 도위유차파. 기후개이기현중거수위현후, ··제현개위후국. 이적갱상공벌, 유지금유치공조·주부제조, 개예민작지. 제읍락거수, 개자칭삼로, 칙고현국지제야. 국소, 박우대국지간, 수신속. 부치기중대인위사자, 사상주령, 우사대가통책기조세, 맥포·어·염·해중식물, 천리담부치지, 우송기미녀이위비첩, 우지여노복.'한'의 땅이 넓고 멀어, '단단대령'의 동쪽을 나누어, '동부도위'를 두고, '불내성'에서 다스렸다. 주령 동쪽을 나누어 칠현을 두었는데, 이때 '옥저'역시 모두 현이 되었다. '한 건무' 육년 변방의 군을 살피고 '도위'를 없엤다. 그 후로 현에 있는 거사들을 모두 현후로 삼았는데, '불내', '화려', '옥저'의 여러 현들은 모두 후국이 되었다. 오랑캐들이 서로 공격하고 쳤는데, 오히려, '불살이 썩으면 이내 뼈를 취하여 곽 안에 둔다. 집안 모두가 하나의 곽에 공동으로 들어가는데, 나무를 살아있는 형상처럼 깍는다. 죽은자의 수와 같다. 또한 기와 모양의 솥이 있는데, 그 가운데에 쌀을 넣고, 곽의 출입구 한쪽에 메어둔다.< 구검>토, 분, 수진사격지. 읍락개파지, 참획수로삼천여급, 분. 일명, 거팔백여리, 기속남북개동, 여접. 희승선구 , 외지, 하월 재산암심혈중위수비, 동월 동, 선도부통, 내하거촌락. 별견추토궁, 진기동계. 문기기로[해동부유인부], 기로언국인상승선포어, 조풍견취수십일, 동득일도, 상유인, 언어부상효, 기속상이칠월취동녀침해. 우언유일국역재해중, 순녀무남. 우설득일포의, 종해중부출, 기신여중(국)인의, 기양수장삼장. 우득일파선, 수파출재해안변, 유일인항중부유면, 생득지, 여어부상통, 부식이사. 기역개재동대해중.'관구검'이 '구려'를 칠 때, '구려왕 궁'이 '옥저'로 달아났는데, 진격하여 이에 이르러 부딧쳤다. '옥저'의 읍락이 모두 깨지고, 포로와 삼천여급의 머리를 베었다. '궁'이 '북옥저'로 달아났는데, '북옥저'는 일명 '치구루'이다. '남옥저'에서 팔백여리를 간다. 그 풍속은 남북이 모두 같다. '읍루'에 접해 있다. '읍루'는 배들 타고 노략질 함을 즐기는데 '북옥저'는 이를 두려워 하여 여름에는 산속 바위 깊은 동굴속에서 있으면서 수비하고 겨울에 춥게 되어 뱃길이 통하지 않으면 이에 내려와 촌락에 거한다. '왕기'에게 부대를 나누어 궁을 토벌하려고 파견하였는데, 그 나라 동쪽의 경계에 이르러 늙은 노인에게 물었다. '바다 동쪽에도 사람이 있는가?' 늙은 노인이 말하길 나라사람이 일찍이 배를 타고 고기를 잡는데, 풍랑을 만나 수십일에 이르러 동쪽에서 하나의 섬을 얻었다. 올라가 보니 사람이 있는데, 언어가 서로 통하지 않았다. 그 풍속에 항시 칠월에 어린 여자를 바다에 받치는 것이 있다. 또 말하길 한 나라가 있는데, 역시 바다가운데에 있다. 모두 여자이고 남자가 없다. 또 말하길 바다에서 떠 다니는 옷 하나를 얻었는외기궁시, 졸부능복야. 기국편승선구도, 국환지. 동이음식류개용조두, 유부, 법속최무강기야.사람들이 깨끗하질 못하여 중앙에 화장실을 만들고 사람들은 그 둘레에서 거한다. 활의 길이는 사척이고 힘이 쇠뇌만큼 든다. 화살은 싸리나무를 사용하고, 길이가 한척팔촌이다. 푸른돌로 화살촉을 만들니, 옛날부터 '숙신씨'의 나라라 한다. 궁술에 능하여 사람을 쏘면 모두 눈을 맞치고, 화살에 독을 발라 사람에 맞으면 모두 죽는다. 적옥과 좋은 담비가죽이 나오니, 이제 읍루초가 바로 이것이다. 스스로 '한'의 말기에 '부여'의 신하였다가, '부여'가 조세와 조역을 중하게 하니, '황초'중에 모반 하엿다. '부여'가 수차례 정벌하였으나, 사람들의 무리가 비록 적으나, 산이 험하고, 이웃나라 사람들이 그 활과 화살을 두려워 하여 병사로써 능히 복속시키지 못하였다. 그 나라는 배를 타고 노략질을 잘 하는데, 이웃나라들의 근심거리였다. 동이들은 음식류에 모두 조두를 사용하는데 오직 '읍루'는 아니었다. 법과 풍속이 가장 기강이 없다.한(마한)재지남, 동서이해위한, 남여접, 방가사천리. 유삼종, 일왈, 이왈, 삼왈. 자, 고지야. 재서. 기민토저, 종식, 지잠상, 작면포. 각유장수, 대자자명위신지, 기차위읍차, 산재산해간, 무성곽.'한'은 '대방'의 남쪽에 있다. 동쪽과 서쪽으로 바다를 한계로 한다. 남쪽은 '왜'와 접해 있으며, 사방 사천리이다. 세가지 종류가 있으니, 하나는 '마한'이고, 둘은 '진한'이고, 셋은 '번한'이다. '진한'은 옛날 '진국'이다. '마한'은 서쪽에 있는데, 백성들은 토착을 하며 씨를 뿌리며 양잠을 알고, 갈포를 짓는다. 각각 장사가 있는데 큰 자는 스스로를 '신지'라 하고, 그 다음은 '읍차'라 한다. 산과 바다사이에 흩어져 있는데, 성곽은 없다.유···························< 로국>···························, 범오십여국. 대국만여가, 소국수천가, 총십여만호. 치. 신지혹가우호신운견지 보안사 지 신리아부예구사 진지칭하고, 병사와 함께 '연'을 공격하여 '주'의 왕실을 높이고자 하였다. 대부 '예'가 이를 간하여, 멈추게 되고, '예'를 서쪽으로 보내어 '연'에게 말하니 '연'도 이를 그치고, 공격하지 않았다. 후에 자손들이 점점 교만해지자, '연'이 장수 '진개'를 파견하여 그 땅의 서방을 공격하여, 땅 이천여리를 취하였다. '만번한'에 이르러 경계를 삼자, '조선'이 약해지게 되었다.'진'이 천하를 아우르자 '몽염'을 시켜 '장성'을 쌓아, '요동'에 이르게 하였다. 이때에 '조선왕 비'가 섰다. '진'이 엄습할까를 두려워 하여 복속하여 '진'에 속하였지만, 알현하지는 않았다. '비'가 죽고 그 아들 '준'이 섰다. 이십여년후에 '진', '항'이 일어나 천하가 어지럽자, '연', '제', '조'나라 백성들이 시름하였다. 점점 '준'에게 가서 망명을 하니, '준'이 이들을 서쪽에 두었다. '한'이 '노관'을 '연왕'으로 삼자, '조선'이 '연'과의 경계를 '패수'로 삼았다. '관'이 모반하여, '흉노'로 들어가고, '연'나라 사람 '위만'이 망명하여, '호'의 옷을 입고, 동쪽으로 '패수'를 건너, 이에 이르러, '준'에게 항복하였다. '준'에게 서쪽 경계에 살기를 구하고, 중국망명인으로 '조선'을 지키는 병풍이 되고자 하니, '준'이 믿고 은혜를 베풀어, '박사'의 벼슬을 주고, 규를 하사하고, 백리의 땅을 봉하여 서쪽 변방을 지키는 우두머리로 하였다. '만'이 망한 무리들을 꾀여, 무리가 점점 많아지니, 이에 '준'에게 사람을 파견하여 거짓으로 고하길, '한'의 병사가 열길로 쳐들어 온다. 방비하기 위해 들어가니, 돌아서서 '준'을 공격하였다. '준'이 '만'과 전쟁을 하는데, 대적하질 못하였다.] 그 좌우궁인들과 도망하여 바다로 들어가, '한'의 땅에 거하였다. 스스로 '한왕'이라 하였다.[위략에 말하길 그 아들이 나라에 있어, 성을 '한씨'라 하였다. '준'이 바다가운데 있은 후로 '조선'과 서로 왕래하지 않았다.] 그 후로 끊어져 멸망하니, 지금 '한'인이 오에서 군을 말하니, 군에서 '착'을 통역으로 삼고, '금중'으로 나아가 큰 배를 타고 '진한'에 들어갔다. 역시 '호래'와 함께이다. 항복받은 무리 천명을 얻었으나, 그 오백명은 이미 죽었다. '착'이 이때 '진한'에게 이르기를 '너희들은 오백명을 돌려 보내라. 만일 그렇지 않으면, '낙랑'이 마땅히 병사 만으로 배를 타고 와서 너희를 공격할 것이다.' 하니 '진한'이 말하길 '오백인은 이미 죽었다. 나는 마땅히 재물로써 값겠다.'하고, '진한'에서 만오천명과 '변한'에서 포 만오천필이 나오니, '착'이 거두어 곧바로 돌아갔다. 군에서 '착'에게 공로를 표시하고, 관책과 밭과 집을 하사하였다. 자손이 수대에 내려오다가, '안제 연광' 사년때에 옛날 복재를 받았다.·지말, 강성, 군현부능제, 민다유입. 중, 분이남황지위, 견·등수집유민, 흥병벌, 구민초출, 시후수속. 중, 밀견태수·태수월해정이군, 제신지가사읍군인수, 기차여읍장. 기속호의 , 하호예군조알, 개가의 , 자복인수의 천유여인. 부종사이본통, 분할팔국이여, 리역전유이동, 신지분, 공. 시태수·태수흥병벌지, 전사, 이군수멸.'환제', 와 '영제'말에 '한예'가 강성해지자, 군현들이 능히 제도 하질 못하고, 백성들이 많이 '한국'으로 들어갔다. '건안'중에 '공손강'이 '둔유현'의 남쪽 거친땅을 나누어 '대방군'으로 삼고, '공손모', '장창'등을 보내어 유민을 모아, 병사를 일으켜 '한예'를 쳤다. 옛 백성들이 점점 나오니, 이후로 '왜'와 '한'이 '대방'에 속하게 되었다. '경초'중에 '명제'가 비밀히 '대방태수 유흔'과 '낙랑태수 선우사'를 파견하여, 두군의 바다를 건너서, 여러 '한국'의 신지에게 읍군의 인수를 하사하고, 다음으로 읍장에게 하사하였다. 그 풍속에 옷과 두건을 좋아하는데, 하호들이 군에 조알할때에 모두 옷과 두건을 한다. 이제 하사한 옷과 두건을 한자가 천여명이나 된다. '부종사 오림'이 '낙랑'이 '한국'을 통일했다고 해서 '진한'의 팔개국을 나무어 '낙랑'에게 주었다. 통역하는데 이다.
    인문/어학| 2007.09.26| 7페이지| 1,000원| 조회(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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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역사이야기 7~9장 요약 평가A+최고예요
    1. 역사 이야기 7,8,9장 요약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본질적 특성이 ‘사실’에 기초한다는데 있다는 것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가 사실만을 이야기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즉 사실이 아닌 것을 가지고 역사라고 하는 경우인데 이는 가까운 일본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역사서인 「니혼쇼기」에 보면 옛 가야 땅에 일본인 관인을 두어서 지배하고 백제가 일본에 조공을 받쳤다고 하는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고 있다. 이는 말도 되지 않는 역사의 왜곡이다. 그 근거로 그들은 그 지역을 200여년 가까이 지배를 해 왔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 그 지역에는 일본과 관련된 유적이나 유물이 하나도 나오지 않고 있다. 이것을 그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즉, 이 설을 일제식민지 치하 때 그들의 식민지화를 정당화하기 위한 하나의 조작일 뿐이다.여기서 우리는 기록된 역사라 하여도 사실이 아닌 역사가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이를 잘 구별해야 함을 알 수 있다.그렇다면 ‘역사적 사실로써의 역사’의 의미에 딱 맞는 역사는 어떠한 것인가?여기서 아담 샤프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본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먼저 제1측면에서 살펴보면 ‘역사적 사실’ 이라는 말은 언뜻 보기에는 단순하고 명쾌하나 그 범주가 애매모호 하다. 역사적 사실이 될 수 있는 몇 가지 유형을 알아보면 첫째, 시저가 루비콘 강을 건넌 것과 같은 사건은 역사적 사실이다. 둘째, 특정한 법칙성을 나타내 주는 어떤 과정은 역사적 사실이 될 수 있다. 컴퓨터의 보급으로 타자기가 없어진다거나 트랙터의 보급으로 쟁기가 사라지는 것과 같은 것을 들 수가 있다. 셋째, 어떤 제도를 그것들이 인간생활에서 수행하는 역할도 역사적 사실이 될 수 있다. 넷째, 어떤 사건이나 사건의 진행과정에서 파생된 구체적인 산물들, 가령 헌법이나 법률 등도 하나의 역사적 사실이다. 다섯째, 유형문화재이다. 여섯째로는 과거에 일어난 일들 속의 여러 가지 다양한 요소들, 가령 하나이 사건이나 과정과 그 과정의 반복으로 생긴 산물들도 역와 전체성, 또는 그 어떤 기준과의 관련여부 이다. 여기서 기준은 역사가에 의해서 많이 수립이 된다. 역사가가 어떠한 기준이냐에 따라서 과거의 사실을 역사가 되고 되지 않는 것이다.제3측면 에서보면 역사는 단순하고 복잡하며 그것의 사실이 부분적이기도 하고 전체적이기도 한다는데 있다. 제4측면으로는 역사적 사실은 과거에 일어났던 객관적인 사건 그 자체를 의미하기도 하고, 동시에 사실에 대한 서술을 의미하기도 한다. 즉, 역사적 사실은 역사가들의 서술에 의해서 역사적 사실로서의 자격을 부여 받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역사는 ‘사실로 인정받은 판단이나 의견’으로 될 수 있다. 제5측면에서는 역사가의 주관적 요소에 의해 역사적 사실이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에드워드 카아는 역사가는 바다 속의 물고기(사실)를 낚는 어부(역사가)라고 표현 했다. 즉, 역사가와 사실을 그 어느 하나가 없으면 존재의미를 상실한다는 것을 이야기 한다.역사를 바라보는 사상에는 많은 것이 있다. 그중에서도 ‘실증주의 역사관’과 ‘현재주의 역사관’이 있다. 먼저 ‘실증주의 역사관’에 대해서 알아보자. 이는 독일의 학자인 랑케에 의해 주장된 것으로 그는 역사란 과거의 사건을 ‘본래 있는 그대로’로 한 것이 역사라고 하였다. 그의 말에 의한 ‘실증주의 역사관’의 전제는 첫째, 인식 주체인 역사가는 인식 객체, 곧 사건 그 자체라는 의미에 있어서의 역사와 완전히 분리되어 상호 독립적이다. 둘째, 사실에 대한 인시관계는 기계론적 모델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셋째, 인식 주체로서의 역사가는 어떤 집단의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는 비 당파성을 견지할 수 있다는 전제이다. 그러나 랑케의 ‘실증주의 역사관’은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그 이유는 랑케 자신이 주장한 실증주의와는 달리 그가 보인 행동은 완전히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그는 게르만 민족의 우수성을 드러내 주는 객관적 사실들에만 관심을 가지고 자신이 정치적 ? 계급적 ? 당파적 입장이 녹여져 있는 객관적 역사를 저술함으로써 스스재의 역사’라고 중장하고 역사는 현재의 필요에 의해 야기된 우리 자아의 톡특한 투영이다. 그의 주장은 듀이에게 영향을 주고 듀이는 ‘역사는 동시대인들이 현재에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에 대한 기술’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사람의 현재주의 학파로 미국의 찰스 베어드가 있다. 그는 랑케가 저술한 잡지에서 그의 서술들은 요목조목 비판하였으며, 그는 ‘지나가 버린 현실로서의 역사’와 ‘과거에 대한 현재’로서의 역사로 구분한다. 그의 연구대상은 후자이며 그는 역사는 역사가에 종속되어, 창조주인 역사가가 변화하면 역사 자체도 변화한다고 주장하였다. 칼 베커는 그의 주장에서 역사란 역사가가 존재하고 있는 특정한 현재에 의하여 어떤 식으로든 제약을 받는 하나의 주관적 산물이라는 것이다. 그는 대담하게도 역사를 끊임없는 재해석이라고도 주장하였다. 이러한 현재주의 역사관도 비판을 받고 있다. 그 이유인 즉, 현재주의에서 사유를 중시하다보니 역사인식의 객관성이라는 문제는 관심 밖이고, 오로지 주관적 요인에만 관심을 기우렸다는 것이다. 현재주의가 주관적인 한, 상대주의라는 비판도 들을 수밖에 없다. 실증주의와 현재주의는 둘 다 각자 나름의 장단점이 있다. 실증주의에서는 객관성을 현재주의에서는 능동성을 받아들이는 것이 좋은 것이다.이러한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역사의 과학성과 객관성에 관한 문제로 역사주의와 상대주의에 대해서 알아보아야 한다. 역사주의는 그것을 자기 나름대로 정의를 내린 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이것을 통일적 의미로 정의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주의는 반 계몽주의에서 나온 것으로 인간과 자연과 사회의 끊임없는 운동과 변화의 과정 속에서 역사를 파악하는 것이고 계몽주의 이것에 반하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역사주의 특징을 살펴보면, 첫째, 모든 현실을 역사적으로 해석 둘째, 반 유심론적 존재론에 근거하였다. 만일 역사가 이와 같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면 역사는 상대주의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상대주의는 과학의 존립 자체를 굉장히 위협한다. 또한 역사를 상의와 관념주의의 대립으로 볼 수 있다. 사실주의는 일어난 사실을 가장 정확하게 재현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으며 기본적으로는 역사의 과학성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 주장은 새로운 실증주의의 대두와 관계가 있다. 그 단적인 예가 논리 분석적 이론을 역사 설명에 적용시키려는 시도이다. 또 하나의 역사이론의 흐름을 크게 갈라놓은 또 하나의 주류는 관념주의이다. 그것은 역사현실의 객관적 실재란 오직 인식주체에 의해 확인될 수 있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과거세계 속의 현실은 우리가 이해하고 파악하기에 달려 있다. 우리가 어떻게 인신하는 가에 따라서 비로소 진정한 역사적 현실로서의 의미를 갖게 된다. 어떤 사실을 단순히 ‘지나간 사실’이 아니라 진정코 ‘역사적인’ 것이 되기 위해서는 누가 재구성 하는 가에 따라 다를 수 있다.먼저 랑케의 실증주의 역사관에 대해서 알아보자. 랑케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근대 사학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첫째, 랑케는 비록 철학적으로 실증주의자는 아니였으나 사실의 중요성에 대한 그의 강조는 전문 역사가들에게는 절대적 명령으로 남게 되었다. 둘째 랑케는 18세기 계몽사상가들 이래로 당연시되어온 철학적 역사를 극복하였다. 셋째, 랑케는 역사주의의 방법론적 근거를 수립하였다. 그는 ‘본래 일어난 대로’(wie es eigen gewessen) 라는 표어 아래 역사에서의 개체와 그 발전을 시간적 과정에서 사실대로 탐구하였다. 그리하여 모든 역사의 사실들을 철저하게 실제 상황대로 관찰하려는 역사적 방법은 비자연과학적 분야에서 확고한 방법론으로 정착하게 된다. 그의 역사는 ‘본래 일어난 대로’를 표방하면서 역사가의 사명이 ‘과학적’인 사실 그 자체의 추구에 있다고 강조하였다. 그러나 랑케의 실증주의는 크리거에 의해서 비판된다. 크리거는 4가지 점에 그 중심이 있다고 보는 전통적 입장을 전제로 하여 비판을 전개 하였는데 랑케의 사학은 역사적 진실의 객관성, 개념에 대한 우선성, 역사적 사건의 독특성, 정치중심주의 등에 입각한고 있다고 지적하고 하나하나사적 방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는 현대 역사학의 기초를 세워 놓았다.역사주의는 간단히 말해서 사고의 역사성을 강조하는 경향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성이라 함은 시간적 변화의 관념 또는 그 가치관을 의미한다. 역사주의는 로만티시즘의 영향으로 대두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로만티시즘에 영향을 준 것은 독일의 유기체론이다.역사주의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현실은 전적으로 역사적으로 결정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역사주의의 관점에 의하면 사물이 진상, 의미 및 가치는 그것이 역사에서 분명히 드러나 있다는 것이다 역사주의는 현실 자체가 곧 하나의 방대한 역사 과정이며 모든 존재하는 것들이 본질은 역사발전 과정에 있다고 전제하고 있다. 역사주의의 핵심이 발전성 개념에 있다고 본 맨들봄에 의하면 “역사주의란 어떤 현상의 본질을 적절히 이해하는 것 및 그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그 현상이 차지하는 위치 및 발전과정에서 한 역할에 비추어 그것을 고려함으로서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믿음이다.”라고 이야기 했다. 역사주의 사관은 자연의 세계와 역사의 세계간의 근본적 차이를 인정하고 후자에 대해서는 자연과학의 경우와 다른 독특한 인문, 사회과학의 인식방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즉, 자연과 역사 사이에는 근본적으로 2원론적인 독자성이 존재하며 역사 세계는 자유의 세계이며 인간의 독창성이 우월하게 작용할 수 있는 세계라는 것이다.역사적 방법에는 여러 가지 접근이 있다. 첫째로 흔히 기원이나 유래를 소급하는 방법이다. 이 접근은 구체적인 사실이나 사건들은 가능한 한 많이 수집하여 발전과정을 연대적으로 고찰하는 것이다. 둘째로 이해를 들 수 있다 이것은 인간이 내적 세계에 대한 직관적 파악이다.결론적으로 지적되어야 할 것은 역사주의의 진정한 기원이 이른바 ‘역사학의 세기’라는 19에 있다는 것이다. 역사주의는 반혁명과 반자연법을 표방하고 로만티시즘을 배경으로 삼아 19세기의 전화기에 대두하였다. 역사주의는 모든 사물의 본질과 가치를 제1차적으로 그것의 시간적 변화과정을 통해 파악할되었다.
    사회과학| 2006.10.18| 6페이지| 1,000원| 조회(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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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역사이야기 1~3장 요약
    ◇교재 1장~3장 요약역사를 배우기 이전에 우리는 역사의 개념을 먼저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역사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우리는 어떻게 답 할 수 있을까?그럼 대게 ‘역사란 과거를 알아서 현재를 알고 미래를 내다보는 것.’으로 많이 답한다. 그러나 이는 역사의 정의에 대한 답이 아니라 역사의 목적에 대한 답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역사는 크게 원초적 역사와 서술로서의 역사로 나눌 수 가 있다. 먼저, 원초적 역사란 ‘과거에 일어난 모든 일들’을 말한다. 그리고 이를 1차적 역사라고 이야기 한다. 그렇다면 역사의 주체는 누구인가? 바로 인간이다. 그것은 인간이 동물과 달리 인성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으며 중요한 것은 도덕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연은 역사가 될 수 가 없는가?기원전 2000년 경 에게해를 중심으로 한 크레타 문명이 있었다. 이들 문명이 전설로만 알려지다가 1960년 발굴이 되면서 이들이 화산 폭발로 인한 화재와 해일이 원인인 것이 밝혀졌다. 또한 18세기에 전 세계적으로 곡물 생산이 증가되면서 인구 또한 증가한다.인간이 역사의 주체라고 하더라도 인간의 역사와 관련된 자연계에서 일어난 일들도 역사의 범주에 들어 올수 있다는 것이다.다음으로 서술로서의 역사가 있다. 이는 문자로 서술된 역사를 말하며 2차적 역사라고도 한다. 이 역사는 앞의 역사와는 어떻게 다른가?박물관에는 수장고라고 하여 그곳에 전시하지 않은 유물을 보관하고 있다. 전시되는 것은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할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수장고에 보관된 유물이 ‘과거에 일어난 모든 일’이라면 전시된 유물은 서술로서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서술로서의 역사는 과거에 일어난 일들 중에서 가치 있는 것을 가려서 그것을 문자로 기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과거에 일어난 일을 정리한 기록은 매우 중요하다. 이는 다음에 새로 기획하고 준비하는 데 드는 막대한 시간과 노력, 그 후 일어날 시행착오를 줄여주는 것이 과거에 일어난 일들이나 이에 대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예를쳐들어가지 못했다. 불과 1㎞에 불과한 거리인데 말이다. 이들은 태어나서 바다를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역사적으로 바다에서 싸워본 경험이 있었다면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또한 역사를 알면 인간의 자기 발견과 세상 이해를 할 수 있다. 우리가 역사를 알아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그럼 이러한 역사는 어떻게 하여 발생하게 되었는가?원초적 역사의 입장에서 살펴보면 인간의 출현을 창조설과 진화론으로 할 수 있다.먼저, 창조설적 입장에서 살펴보면 ‘생식 창조설’과 ‘자기 해체적 창조설’이 있다. ‘생식 창조설’에는 인도의 아트만 신화가 그 대표적이며 ‘자기 해체적 창조설’ 에는 중국의 ‘반고’ 설화가 그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진화론적으로 살펴보면 150억 년 전 ‘빅뱅(Big Bang)’으로 우주가 탄생하였다. 여기서 지구는 45억 년 전에 탄생 하였고 보고 있으며 인간이 최초로 출현한 시기는 390만 년 전 오스트랄로 피테쿠스라고 한다. 그리고 후에 인류는 ‘호모 하빌리스-호모 에렉토스-호모 사피엔스-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로 진화하게 된다. 우리 현생 인류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빙하기가 끝 날 무렵인 4만 년 전에 출현하였다.우리는 여기서 역사에 있어서 양적 확대와 질적 전환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양적 확대란 기본 패턴 자체에 변화가 없는 것, 말 한 마리로 달리는 마차가 4마리로 달리는 것과 같은 것이고 질적 전환은 마차로 이동하는 것을 자동차로 이동하게 된 것을 말한다. 여기서 질적 전환의 대표적인 예로 신석기 혁명을 들 수 있다. 이는 수렵 생활을 하던 인류가 농경을 시작함으로써 한곳에 정착하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는 것에서 질적 전환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신석기 다음의 청동기과 철기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청동기 시대에서부터는 잉여 재산이 생김으로 하여 계급이 발생하였다. 철기 시대에는 사유의 본격화가 나타나기 시작한다.서술로서의 역사의 발생을 살펴보면, 중국에서 전설로만 알려진 은나라의 ‘은허현이 이루어진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문자는 국가를 운영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었으며, 국가 통치의 필요성은 문자를 만든 중요한 배경의 하나이다.그러면 문자가 만들어 졌다고 하여서 역사서술이 출현하였다고 할 수 있을까?그것은 일치 한다고 말 할 수없다. 역사서술의 또 하나의 조건은 역사의식이다. 이 역사의식은 문자가 없었던 시기에 없었다고 말 할 수 있는가?역사의식은 표현의 수단을 얻지 못했을 뿐 문자가 출현하기 이전에도 존재하였다.인간이 자기의 정체성을 찾으려 하면 과거를 되돌아볼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노력이 자신에게서 하나의 집단 국가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사색이 바로 역사의식이다.기록차체를 역사라 한다면 그 이유는 3가지가 있다. 하나는 사료로써 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고 두 번째로는 기록의 내용 자체가 ‘과거에 일어난 일들’의 즉 역사에 대한 것이 많기 때문이며 세 번째는 단순히 과거에 일어난 일들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어떤 체계적 역사서술이 문자의 출현 이후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역사 서술의 발생을 살펴보면 역사서술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하나로 ‘춘추필법’이 있다. 이는 공자에 의해 탄생한 방법으로 표현 방법을 달리하여 평가를 가하는 글쓰기를 말한다. 또한 중요한 사건을 연대기 식으로 정리한 것을 ‘편년체’라고 한다. 사마천에 의해 나타난 서술 방식이 있는데 사마천은 역사를 ‘본기’ ‘세가’ ‘열전’ ‘서’ ‘표’ 5 영역으로 나누었는데 이를 ‘기전체’라고 한다.본기는 역대제왕을 중심으로 하였고 세가는 봉건 제후들의 행위를 기록하였다. 또한 열전은 중요인물들의 행적을 중심으로 하였고 사회생활의 측면을 8개의 주제로 나누어 그 변화과정을 소상히 정리한 것이 서이고 왕조의 제왕과 봉건제후 들의 통치기를 서로 비교한 것이 표이다.우리나라 또한 역사서술로는 삼국시대부터 있었다. 이 시기를 보면 고대 국가의 틀을 잡고 국력이 번성하던 시기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역사서술로 대표적인 ‘조선왕조실록’ 있다. 이는 역대 왕들의 지적에 대한 중요성은 비단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중요시 하고 있다. 또한 삼국사기를 보면 고려 때 김부식에 의해 편찬되었으나 그 내용은 당대의 고려가 아닌 신라를 포함한 전대에 걸친 역사를 정리한 것이다. 이는 한 왕조가 다른 왕조를 타도하고 섰더라도 자신들이 타도한 왕조의 역사를 정리하는 아름다운 전통을 세웠다. 오히려 그것은 후임 왕조가 해야 하는 임무의 하나가 되었다.◇ E .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E .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의 책에서 나타나는 역사를 보는 관점은 먼저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으로부터 시작한다. 이 물음에 답하려 할 때에 우리들의 답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우리 자신이 처해 있는 시대적 이치를 반영하게 된다. 이것은 곧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어떠한 관점에서 보는가 라는, 좀더 광범한 문제에 대한 우리들 대답의 한 부분이 된다.19세기는 사실을 매우 존중하던 시대였다. 이때는 과학으로서 역사를 열심히 주장한 실증주의자들은 이러한 사실숭배에 그들이 강대한 영항력을 행사했다. 이는 영국철학의 지배적 조류인 경험주의적 전통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었다. 경험주의학파의 경향을 띠는 옥스퍼드 중사전은 사실을 ‘추리와는 구별되는 경험적 재료’라고 규정하면서 위의 두 과정을 뚜렷이 분리하고 있다. 역사는 확증되는 사실이 집합으로 이루어진다.그리고 이는 역사적 사실이 되는 것도 아니고, 역사가에 의해서 역사적 사실로 다루어지지 않는다는 어려움에 곧 봉착하게 된다. 역사적인 사실을 과거에 관한 그 밖의 다른 사실과 구별하는 기준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사실이란 역사가들이 말을 거어 올 때에만 이야기한다.. 어떠한 사실에 발언권을 줄 것인가 그리고 어떠한 순서와 맥락으로 이야기하게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역사가이다. 즉 역사가는 반드시 선택적이다. 역사적 사실이라는 단단한 핵이 역사가의 해석으로부터 독립되어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본말전도의 오류이지만 이러한 오류를 뿌리 뽑기는 매우 어렵다.과거에 대한 단순한 사실는 것은 결국 해석의 문제이다. 해석이라는 요소는 역사의 모든 사실 속에 들어가기 마련이다. 역사란 본질적으로 현재의 눈을 통하여 또한 현재의 문제에 비추어서 과거를 봄으로써 성립하고, 역사가의 주 임무는 기록하는 것이 아니란 평가하는 것이라는 뜻이다.또한 역사는 역사가가 자신이 연구하고 있는 역사의 사상이 그의 마음속에 재현된 것이다. 역사가의 마음속에서 행해지는 과거의 재구성은 경험적인 증거에 의거한다. 바로 이것이 사실을 역사적 사실로 만드는 것이다. 오우크쇼트 교수는 ‘역사는 역사가의 경험이다. 역사는 오로지 역사가에 의해서만 만들어 진다. 역사를 쓰는 것만이 역사를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다.’ 라고 말했다.여기서 몇 가지 잊혀졌던 진리를 밝혀 준다.첫째, 역사의 사실은 ‘순수한’ 형태로 존재하지도 않고, 또한 존재할 수도 없기 때문에 결코 순수한 것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 수 없다. 역사의 사실은 기록자의 마음을 통하여 항상 굴절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역사책을 읽을 때 우리는 그 책에 실린 사실들보다 그 책을 쓴 역사가에 대해 일차적인 관심을 두어야 한다.두 번째는 더 잘 알려진 것으로서 역사가는 자기가 연구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그들의 행위 밑에 깔려 있는 사상을 상상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19세기에 자유주의 역사가들은 국가를 위해 수호하기 위하여 살육을 하는 것은 올바르고 칭찬받을만하지만, 종교를 수호하기 위하여 살육을 하는 것은 잘못이고 어리석은 짓이라고 배워온 이들로써는 30년 전쟁에서 싸운 사람들이 마음의 상태를 들여다보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이러한 어려움은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연구 분야에 있어서는 특히 심각하다. 영어 사용 그가에서 나온 소련관계 문헌의 대부분과 소련에서 씌어진 영어 사용국가 관계 문헌의 대부분은 상대방의 마음의 움직임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상상적 이해에도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모두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따라서 상대현의 언행은 언제나 악의에 차고 비상식적이고 위선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역사가가 자 없다.
    사회과학| 2006.10.03| 5페이지| 1,000원| 조회(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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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범] 가족외의 아동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것
    아동들이 발달해 가면서 부모, 형제에게 많을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누구에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아동의 발달이 비단 부모와 형제들에게서만 영향을 받을까?가까이의 가족 외에 아동은 외부의 환경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가장 가깝게는 또래 친구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일상생활에서 많이 접하는 TV가 있고 컴퓨터 게임 그리고 가족을 떠나 처음으로 사회 생활을 겪게 되는 학교도 있다. 이러한 것들 역시 아동의 발달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TV의 영향먼저 TV가 아동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자.TV라 하면 무조건 나쁘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아동이 보통으로 시청한다면 TV를 통해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아동의 심리적 능력을 손상하지 않고 사회성 발달을 저해하지도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지만, 보통으로 TV를 시청하는 것이 잠재적으로 유익한지 아니면 유해한지는 아동이 어떠한 프로그램을 보고 아동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관건일 것이다.그러나 TV는 아동들에게 미칠 수 있는 또 다른 부정적인 영향은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다.제일 먼저, 아동들이 가장 많이 보는 만화를 들 수 가 있다. 만화들을 보면 주인공들 혹은 아동에게 매력적인 역할 모델로 묘사되는 등장인물들에 의해 시작된다. 그리고 가해자들은 어떤 후회도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떤 벌이나 비난도 받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폭력성에 자주 노출이 되면 아동들은 오히려 현실에서의 폭력성에 대해 둔감해 지게 된다.그 예로 내가 본 만화 중에 심슨 가족 이라는 만화가 있는데, 이 만화 속의 등장 인물들인 바트와 리사 (10살과 8살) 그리고 그 또래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이치와 스크래치 쇼 라는 만화가 나온다. 이 만화는 고양이와 쥐가 서로가 서로를 괴롭히고 어떻게 하면 골탕먹일 지에 대해서만 나온다. 이런 내용이라면 다른 만화들도 그런데 왜 이것이 왜 문제가 되느냐고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나오는 골탕먹이고 괴롭히는 것은 여느 만화에 비해 재운 후에 도끼 또는 칼 망치로 토막을 내고 또는 서로에게 독약을 넣은 케익을 선물하여 둘 다가 죽는 등 이러한 내용이 주인 만화인데, 이것을 본 바트와 리사의 동생인 매기가(1살) 아빠인 호머를 망치로 때린 일이 생기고 이에 엄마인 마지가 학부모들과 이 만화가 얼마나 폭력적이며 아이들에게 유해한지 학부모들을 모아 만화 제작자를 찾아가 항의하는 내용이 나온 적이 있었다. 이 만화 속의 만화인 이치와 스크래치 쇼 를 보는 바트와 리사는 그 만화에서 나오는 잔인한 폭력성에 대해 그저 웃기만 할 뿐이다. 마지가 왜 이렇게 잔인한 것을 보냐? 라고 묻자 이게 뭐가 잔인해요? 재미있잖아요. 라고 답한다. 오히려 그런 내용이 없는 만화는 재미가 없고 유치하다고 까지 말한다.그리고 실제로 폭력적인 프로그램을 많이 본 아동들이 적게 보는 아동들에 비해 더 적대적이고 공격적으로 되는 경향이 있다.두 번째로 TV가 아동들에게 미칠 수 있는 부정적인 영향은 다양한 사회적 고정관념들을 강화한다는 점이다.그 예로 성역할 고정관념이 흔하게 다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여러분들이 잘 아는 월트 디즈니 에서 나온 만화들을 보면 여성이 항상 위험에 처해져 있거나 문제를 일으키는 반면에 남성 캐릭터를 보면 이러한 여성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으로 나오면 여성의 행복이 이러한 남성 즉 왕자와의 결혼이라 것처럼 나타내고 있다.월트 디즈니 사에서 나온 만화 중 이러한 것이 가장 심하게 나타났던 것은 뮬란 이었다.뮬란 의 내용에서 보면 주인공인 뮬란 은 활발해서 중매를 하면 항상 중매쟁이에게 퇴자를 맞는 왈가닥 아가씨이다. 심지어 주인공의 아버지는 주인공이 이번에도 퇴자를 맞지 않기를 바란다면 조상에게 기도까지 올린다. 그러던 어느 날 나라에 전쟁이 일어나 다리가 불편하신 아버지를 대신해서 남장을 하고 전쟁에 나가 공을 세운다. 황제는 주인공인 뮬란 에게벼슬 내리지만 주인공은 거절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전쟁터에서 만난 남자 주인공과 결혼을 하게 된다 것을 암시하며 만화가 끝이 난다.아이들이 보는 만화나가는 길을 스스로 포기했을까? 그리고 이러한 만화를 보면서 아이들이 어떻게 생각을 할까? 여자는 좋은 남자를 만나서 결혼하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는 고정관념을 심어 주게 되는 것은 아닌가.그리고 TV의 폭력성 보다 더 유해하다고 판단되는 것이 있는데 이는 바로 TV의 상업성이다.광고에서는 부모들의 입장에서 구입하기를 원하지 않을 수 있는 장난감의 성능, 패스트푸드, 그리고 설탕 류 제품들을 찬양하는 내용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동들은 자신이 보았던 제품을 부모에게 요구하며, 종종 그것을 거절하는 부모와 갈등을 빗기도 한다. 어린 아동들은 매우 저항적일 수 있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종종 공익적인 도움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같이 방송되는 광고의 상업적 의도를 거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9∼11세 무렵이면, 대부분의 아동들은 광고방송이 시청자들을 설득하여 판매하려고 설계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며, 나아가 13∼14세가 되면 이들은 광고 및 제품의 주장들에 대하여 건전한 회의적 태도를 형성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청소년들조차 종종 자신들이 보았던 광고 방송에 설득되기 쉬운데, 특히, 만일 광고모델이 유명인이거나 혹은 구 주장내용이 현혹 적이고 오해적인 측면을 포함하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많은 부모들은 자녀들에 다한 상업광고의 영향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아동들은 위한 광고들은 종종 안전하지 못하거나 그리 도움이 되지 못하는 제품들은 다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약품의 사용이나 알콜을 멋있게 묘사하고 있어 아동들이 음주, 자기 약물처방, 및 약물 사용 등과 같은 위험 행동들의 결과를 과소 평가하도록 만들 수 있다.20대인 나 역시 예쁜 여자 배우가 광고하는 화장품이나 잘생긴 남자 배우가 광고하는 제품은 필요하지 않더라도 그 제품을 사고 싶어하고 같은 제품인데도 그 배우가 광고했지 하면서 그 브랜드의 제품을 사는데, 어린 아동들은 오죽 하겠는가?◇컴퓨터의 영향TV 다음으로 아이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는 것은 당연 컴퓨터라고 할 수 있겠다리의 생활에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 실감케 한다.그만큼 컴퓨터가 우리 생활에서 많은 영향을 주고 있으며, 아동들 또한 컴퓨터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고 할 수 있다.요즘 초등학교 아이들 중에 컴퓨터를 못하는 아이는 없다. 그리고 학교의 각 교실에서는 컴퓨터를 사용하여 수업을 많이 하고 있다. 초등학교에만 가더라도 한 학급에 컴퓨터가 한 대씩은 꼭 있다. 그리고 학생들은 이 컴퓨터를 이용하여 숙제를 하거나 게시판에 건의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컴퓨터에 학습 프로그램으로 선생님들은 수업을 진행하기도 한다. 그리고 학생들은 인터넷을 이용하여 과제를 하기도 하고 공부를 하기도 하고 인터넷 상에서 친구를 만나 같이 게임을 하기도 한다.그러나 컴퓨터가 이렇게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에서 아동들이 컴퓨터를 사용함에 있어서 많은 걱정을 하고 있다.가장 큰 걱정은 컴퓨터 게임으로 인한 인터넷 중독이다.지난 여름 방학 때 “매일 게임생각만 하느라 방학숙제도 안하고 친구와도 멀어져요. 부모(父母)님에게 매일 혼나요. 도와주세요!!”(초등 6학년 어린이)방학을 맞아 인터넷이나 게임을 즐기는 시간이 늘면서 한국정보문화진흥원 인터넷중독예방상담센터에는 이처럼 ‘인터넷 중독’을 호소하는 어린이들의 상담 문의가 잇따랐다고 한다. 여기서 인터넷 중독 이란 (Internet Addiction)은‘정보이용자가 지나치게 컴퓨터에 접속하여 일상생활에 심각한 지장을 받고 있는 상태’. 초등 어린이의 경우 하루 2시간 정도 게임을 즐기고 게임 시간을 조절하는 데 어려움이 있으면 ‘잠재적 위험’ 상태, 하루 3시간 이상 접속하며 항상 인터넷에 접속해 있는 듯한 착각이 들면 ‘고위험’ 사용자로 분류된다.어린이들이 인터넷 중독에 걸리는 주 요인은 인터넷 온라인게임. 정보통신부가 최근 발표한 ‘2004년 인터넷 이용 실태조사’에서도 인터넷 중독현상을 보인 청소년의 73.4%가 온라인게임을 하다 인터넷 중독에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어린이들이 인터넷 중독에 걸리는 주 요인은 인터넷 온라인게임. 73.4%가 온라인게임을 하다 인터넷 중독에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두 번째는 인터넷으로 인한 아동들의 유해 사이트의 대한 노출이다.음란·자살방조·폭력·도박 등 불건전정보는 왜곡된 사회의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 음란정보의 경우 성을 얼마든지 사고 팔 수 있는 상품처럼 여기게 됨으로써 결과적으로 성매수·성폭력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고 자살사이트는 자살을 하는데 필요한 약이나 쉽게 하지 못할 때 단체로 만나서 쉽게 감행할 수 있다고 한다.그리고 음란 사이트는 중 일부는 아동이 많이 사용하는 사이트의 주소와 비슷하게 인터넷 주소를 만들어서 혹여 잘못 입력을 하면 그 사이트의 창이 열리는 경우도 있다. 이렇듯 너무나도 쉽게 아동들은 이러한 것들은 접하게 된다.◇학교아동들이 가정을 벗어나 제일 먼저 사회생활을 하는 곳은 아마 학교가 될 것이다.그리고 여러 가지 기관들 중 가장 많은 영향을 아동에게 미칠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학교에서는 아동들에게 많은 양의 지식과 학업상의 능력들을 획득하게 된다. 그러나 학교 교육 또한 아동들에게 많은 다양한 규칙들, 방략들, 그리고 문제 해결 기술들을 가르쳐 줌으로써 인지적 및 초인지적 성장을 증진시킨다.학교는 아동들에게 인지적 및 학업상의 과제들은 제공해 줄뿐만 아니라, 또한 아동들에게 자신들이 속해 있는 문화에 적용해 가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비공식적인 교육과정에 접하도록 만들어 준다.이러한 학교를 아이들에게 보다 나은 그리고 보다 더 효과적인 학교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우리나라의 학교에 한 학급당 인원수를 보면 다른 외국의 학교에 비해 그 인원이 많다. 물론 교사 일인당의 학생 수도 그러하다. 그리고 능력별 학습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래서 공부를 잘하는 상위권의 학생은 그 수업 내용이 쉽고, 반면에 하위권 학생들은 수업 내용이 어렵다. 이렇게 되면 전체의 학습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또 하나가 있다면 교실의 조직이다. 교실에서의 생활은 항상 똑같은 자리에서 같은 시간에 같은 과목.
    교육학| 2005.03.05| 6페이지| 1,000원| 조회(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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