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in a Korean-style house is a little annoying. In a Korean-style house the bathroom and the kitchen are separated from the main house. Therefore if you want to cook something or go to the bathroom, you should go outside. Moreover there is usually no parking area, so you have to park your car on the street or in your house. In addition, the resident may have to go far away from home to buy something because the stores are quite a long way from the house. Although Korean-style houses are not convenient, they are very economical. Korean-style houses are not expensive. They have `On-dol`, which is the Korean underfloor heating system. It is good for heating small spaces economically. When you get a fire going in the fireplace in the kitchen the rooms are soon warmed up.
어색한 번역 문장 고치기- 『보트 위의 세 남자』, 제롬 K. 제롬 지음, 김이선 옮김, 문예출판사 -1. 그 때문에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를 지경이 된다고 했다. → 그 때문에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겠다고 했다.※‘~하게 되다’라는 말은 영어의 진행형을 그대로 번역한 것이라 어색하다.2. “너에게 내 문제가 뭔지 말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겠어.” → “거두절미하고 내 문제에 대해서 바로 말할게.”※ 관용구를 그대로 번역해서 어색하다.3. 제안과 관련해서 깊은 감명을 받지 못한 것은 몽모렌시뿐이었다. →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몽모렌시뿐이었다.※ ‘관련해서’는 영어를 여과 없이 번역한 어색한 문장이다. 그리고 제안을 받아드린다는 것을 ‘감명을 받다’라고 쓰는 것 또한 어색하다.4. 나는 우리를 괴롭히는 모든 어리석고 짜증나는 바보 같은 짓들 중에서 으뜸인 것이 바로 이 ‘일기예보’라고 생각한다. → 일기예보는 우리를 괴롭히고 어리석고 짜증나게 한다.※ ‘~중에서 으뜸인 것’은 원문을 보지 않아도 ‘The most of ...’의 문장을 생각나게 하고 어색해 보인다. 또한 영어에서는 주어‘I’가 필수불가결한 요소이지만 한국어에서 ‘나는’이라는 말을 많이 되풀이하면 어색한 문장이 된다. 이 문장에서는 ‘나’를 문장의 주어로 삼는 것보다 ‘일기예보’를 주어로 삼는 것이 더욱 간결하고 이해하기 쉽기 때문에 바람직하다.5. (그 불쌍한 친구도 자기가 원해서 그런 색깔 머리를 갖게 된 것은 아닐 거라고 했다.) 해리스는 그 문제에 관해 아주 친절하고 분별력 있게 굴었다. → 해리스는 친구에게 친절하고 분별력 있게 대했다.※ 앞 문장에 나온 말을 다시 한 번 되풀이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오히려 ‘그 문제에 관해’라고 적어서 영어의 어색한 번역 문장이 나오게 되었다. ‘그 문제에 관해’라는 말이 없더라도 우리가 이해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6. 우리는 더 듣고 있지 않았다. 당장에 광주리와 가방 두 개와 무릎덮개와 코트와 작은 짐 꾸러미들을 챙겨 달려 나갔다. → 우리는 더 듣고 싶지 않아서 광주리와 가방 두 개와 무릎덮개와 코트와 작은 짐 꾸러미들을 서둘러 챙겨 가지고 나갔다.※ 보통 2인칭이나 3인칭에서는 ‘너 내 말 안 듣고 있지?’처럼 ‘듣고 있지 않다’라는 말을 쓰지만 보통 1인칭이나 ‘우리’라는 주어가 나올 때 ‘듣고 있지 않다’라는 말은 잘 쓰지 않고 ‘듣고 싶지 않다’라는 표현을 더 많이 쓴다.7. 강물을 먹어보려는 시도를 해본 적이 있는데 성공하지는 못했다. → 강물을 먹어보려고 했으나 성공하지는 못했다.※ ‘시도를 해본 적이 있다’는 'try+-ing'을 직역한 것으로 어색하다.8. 물론 입구는 말뚝과 사슬들이 둘러싸고 있고, 감히 이곳에서 노를 젓는 사람은 온갖 고문과 투옥과 죽음을 각오해야 할 거라고 위협하는 공고판이 가득하다. → 입구는 말뚝과 사슬들이 둘러싸여 있었고, 이곳에서 노를 젓는 사람은 고문과 투옥과 죽음을 각오해야 할 거라고 위협하는 팻말이 가득했다.
中????育用品??行 最具?威?育用品?展중국 국제 체육 용품회 개최 최고 권위를 갖춘 체육용품 전람회2006年12月07日18:10 新?社 我???句新?社??12月7日?育??(?者徐?)第20?中????育用品博??系列推介?7日在山?省??市?行。?是?北京之后,第20?中????育用品博??六城市系列推介活?的第二站。신화사청도는 12월 7일에 체육특별전보에서(徐?기자) 제 20회 중국국제체육용품박람회시리즈를 널리 알리는 행사가 7일 산동성 청도시에서 개최되었다고 전했다. 이 행사는 북경 이 후 이어진 것이며, 제20회 중국국제체육용품박람회 6개 도시 널리 알리기 활동 시리즈의 두 번째 장소이다.中????育用品博??始于1993年,是?家?育?局?期扶持培育起?的民族品牌展?。目前,中????育用品博??已?展??太地??模最大、最具?威性的?育用品??展。作?全球?家采??太地??育用品的中心,中????育用品博??受到了世界?育用品?合?以及美?、??、?洲等?家和地??育用品??的高度?注,不?成?越?越多的民族?育用品企?拓展市?、走向世界的?梁,而且也是??外??商、代理商在中?集中采?、?求合作的最佳平台。据了解,第20?中????育用品博???于2007年5月17日至20日在四川省成都市?行。本次??推介?的主?是“走近??、?帆?博”。중국국제체육용품박람회는 1993년에 시작된 이래로 국가체육총국이 장기간 보살펴 길러온 민족 상표 전람회이다. 현재 중국국제체육용품박람회는 이미 아시아와 태평양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가장 권위 있는 체육 용품 전문전으로 발전했다. 전 세계 바이어가 아시아와 태평양지역의 체육용품을 구입하는 중심으로서의 성과를 내었고, 중국국제체육용품박람회는 세계체육용품연합회 및 미국, 한국, 유럽 등의 국가와 지역체육용품협회의 높은 관심을 받았다. 또한 더 많은 민족체육용품기업시장을 개척하여 세계로 향하는 다리역할을 할 뿐만아니라 국내외 중개판매상과 대리판매상이 중국에서 집중적으로 구매하고 탐구 합작한 최적의 평균대도 선보였다.
『대지 The Good Earth』줄거리가난한 농사꾼인 왕룽은 성 안에 살고 있는 대지주인 황 대인의 종인 오란을 아내로 맞았다. 그녀는 말수가 적었으며 전족을 하지 않아 발이 컸지만 왕룽은 자신이 아내가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한다. 왕룽은 오란의 내조를 받으며 농사일에 전력을 다한다. 오란은 음식 솜씨도 아주 좋고, 시아버지도 잘 모시며, 아들도 혼자서 셋 이나 낳았다. 아무리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고, 묵묵하게 자기 할 일을 하는 전형적인 희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여자라고 할 수 있다. 왕룽 부부는 성실하게 일하고 알뜰하게 모아서 황 대인의 땅도 사고, 풍년도 거듭되면서 나름대로 예전보다는 많이 풍요로운 생활을 할 수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해 마을에 큰 기근이 닥쳐 그곳에서는 더 이상 살 수 없게 되자 그들 가족은 살길을 찾아 남쪽으로 내려왔다. 왕룽은 인력거를 끌고, 오란과 그의 자식들은 거지 동냥을 하면서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고 살았다. 움막에 사는 다른 남자들은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쓸데없는데 생각을 낭비하는데 반해서 왕룽은 자기의 땅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다른 사람에게 동요되지 않고 열심히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도시에 폭동이 일어나서 화적떼들이 부잣집을 쳐들어갔다. 군중들은 부자의 집을 약탈했는데 그 틈을 타서 왕룽과 오란도 같이 들어가 돈과 보석을 빼앗아오고 왕룽 식구들은 몇 년 만에 소와 종자들을 사들고 자신의 땅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왕룽은 거의 망하다시피 한 황 대인의 땅을 다 사고, 땅이 너무 넓어서 혼자 농사 지을 수 없게 되자 머슴도 두고, 소작인도 두게 되었다. 이제 그는 이름 난 부자가 되었으나 계속 열심히 농사일에 매진했다. 이렇게 하여 많은 재산을 모아 갔는데 7년째 되는 해에 북쪽의 큰 강이 범람해서 경작할 농토가 없어지자 난생 처음 한가한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러다가 한 찻집에서 롄화라는 여자를 알게 되었고, 난생 처음 보는 작은 발과 교태로운 그녀의 모습을 보고 홀딱 반했다. 그는 결국 . 문학은 작가의 자기 표현이기 때문에 그의 체험이나 사상, 감정 등은 작품에 고스란히 담겨있기 마련이다. 또한 작품은 현실 세계의 반영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재현의 대상이 된 현실과 작중 현실을 비교 검토해야 하며, 사회적 요인이 작품의 형성에 관여한 내용을 파악하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작품은 독자를 반영하기도 하는데, 그래서 우리는 독자의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의 성질은 무엇이며, 그것은 작품의 어떤 요인에서 유발되었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다음에서는 『대지』라는 작품을 이와 같은 관점에서 분석해보고자 한다.1. 표현론적 관점 (작가)중국인과 동화 된 서양인 작가펄의 부모님은 중국에서 10년 가량 선교사 생활을 하다가 2년 동안 휴가를 받아 웨스트버지니아의 힐스브로에서 그녀를 낳았다. 그녀는 생후 3개월 만에 중국으로 건너가 양쯔강 연안의 전장이라는 소도시에서 자라났다. 펄의 가족은 중국인 주민 한가운데서 살았고, 어린 펄은 주로 중국인 유모 손에서 자랐기 때문에 영어보다도 중국어를 먼저 배웠으며, 실생활 속에서 중국의 풍습을 익혔다. 그녀는 다른 중국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남빛의 중국 여자 옷을 입고 중국인 소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자신이 중국 아이인 줄 알았다고 한다. 1900년에 산둥성과 산시성에서 의화단 사건이 일어나 폭도들이 백인들을 닥치는 대로 학살할 때에야 자신이 중국인과 다른 외국인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하니 그녀가 얼마나 중국인과 동화된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다. 또한 그녀는 유년 시절에서 소녀 시절 동안 청일 전쟁, 의화단 봉기, 서태후의 죽음, 신해 혁명과 같은 역사적 사건들을 잇달아 겪었다. 그리고 그녀의 나이 25살 되던 해 난징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농업 전문가 존 로싱 벅과 결혼하여 그와 함께 화베이 지방에서 5년간 살았다. 이렇듯 자신의 생활 배경과 남편의 일 때문에 펄은 중국인들의 농민 생활에 익숙했으며 그녀는 그 자료를 『대지』에서 작품화 했다.중국을 서양에 소개하는 작업을 하고자 한 작에 대해 호의적이지 못해 좀처럼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상황을 직접 목격한 그녀는 아마도 중국을 서양에 소개하고자 하는 작업을 하고자 했던 것 같다. 그녀만큼 중국의 내면을 깊이 알고 있었던 서양인이 달리 없었으니 이런 작업은 그녀가 아니라면 어느 누구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중국 땅을 밟은 많은 외국인들이 없지는 않았겠지만, 그녀만큼 중국과 중국인의 영혼 자체를 아는 이는 드물 것이기 때문이다.또한 그녀는 자신의 수필 이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인간의 행복에 대한 강조는 동양이 서양에게 줄 수 있는 최대의 선물이라고 나는 믿는다. 서양인은 인간적인 행복을 도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동양인은 자신들의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서양인들로부터 병든 몸을 고치고 힘든 노고를 덜며 식량을 더 많이 생산할 수 있는 과학기술을 배워야 한다.’ 그녀는 동서양이 서로 상부상조하면 보다 더 살기 좋은 세계를 이룩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펄은 중국을 서양에 소개하고자 하는 작업을 했고, 후에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했다.가정의 행복보다 다른 일에 정성을 쏟기 시작한 펄S.벅대학 졸업 후 모교에서 조교로 머물러 있던 펄은 병상에 누운 어머니를 간호하기 위해서 중국으로 돌아왔다. 그 후 어머니가 병에서 회복되자 그녀는 존 로싱 벅과 결혼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녀의 부모님은 그가 펄의 남편이 될 만큼 지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하지만 펄은 그 당시 너무나 외로웠고, 고독했으며, 혼기가 되었는데도 별다른 남편감이 나타날 것 같지 않다는 이유로 그와 결혼했다. 결혼 생활은 과연 부모님의 예상대로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그들은 대화가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펄은 행복한 가정생활의 꿈을 버리고 다른 일에 정성을 쏟기 시작했다. 집을 손질 한다든가, 이웃의 다른 중국 부인들과 이야기를 나눈다든가, 또 미국인 의사의 간호사로 따라다니면서 가난한 농가의 환자들을 돌보아 주고 군벌 싸움의 부상자들을 간호해 주었다. 그리고 그 후 갖 고초를 다 겪었다고 말할 수 있는 그녀의 고난과 역경은 중국 문학사에서 가장 우수한 장편 서사시의 하나인 「비분시」를 탄생하게 했다. 이와 비슷하게 어려서부터 여러 가지 난을 겪었고, 선교사인 부모님 밑에서 자라면서 사람들이 모르는 고난도 많이 겪었을 것이며, 남편과의 관계도 그다지 좋지 못했던 펄 또한 이런 인생의 우여곡절이 있었기 때문에 후대에 길이 남을 작품을 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2. 반영론적 관점 (현실)작품에서의 현실 반영『대지』의 시대적 배경은 청 말기에서부터 중화민국의 탄생까지이다. 그러나 작가는 시대적 배경은 거의 언급하지 않고, 왕룽을 중심으로 하여 이야기를 진행시켜 나간다. 그리고 왕룽이 살고 있는 장소에 대해서도 중국 어느 북쪽 시골이라는 것 말고는 상세한 설명이 없다. 또한 청 말기에서부터 중화민국 탄생까지는 수많은 일이 일어났고, 작가도 그것을 몸소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에 대한 이야기는 그다지 조명되지 않고 있다. 남방에서 무섭게 생긴 서양인을 인력거에 태우고 두려워서 맹렬히 달렸다는 이야기와 피를 흘리고 있는 사람이 그려져 있는 종이를 주었다는 것으로 보아 그 당시 서양의 선교사들이 중국에 있었다는 것을 유추할 수는 있다. 그리고 청년들이 사회주의 사상을 일반 사람들에게 교화시켜 결국은 폭동을 일으켜 부잣집을 쳐들어갔다는 시대적 배경을 나타내는 이야기가 잠깐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런 상황은 단지 왕룽이 그의 땅으로 돌아가기 위한 수단을 만들어주는 역할만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들은 시대 상황보다는 대지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이것은 흙과 인간의 삶이라는 주제를 보다 강렬하게 표현하기 위한 의도였다고 생각된다.당시 문예사조1917년부터 1926년은 중국 현대문학의 제1기로 구분되는 시기로 신문화운동을 출발로 대혁명까지의 기간이다. 이때는 외국소설의 번역과 소설이론의 소개 및 사회현실에 대한 문제제기와 새로운 모색에 힘입어 새롭게 면모를 갖추어 가는 시기였다. 이 시기에는 최초의 중국 현대 소설이자, 현대을 주요 줄거리로 삼아, 결혼 생활과 가족관계, 그로 인한 인생의 희로애락, 인간의 나약성을 그렸으며, ‘영구한 요소들에 의해 인간의 존재성이 빚어진다’는 강렬한 현실 의식을 강조한다.3. 효용론적 관점 (독자)간결한 문체, 전통적인 가치관, 보편적인 주제펄은 항상 대중의 인기를 끌었던 작가이다. 그것은 간결한 문체, 전통적인 가치관, 보편적인 주제를 다루는 능력이 탁월했기 때문이다. 펄 자신은 소설이라는 형식이 지식층을 위해 존재하는 위대한 문학의 한 분야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9살때부터 13살때까지 중국인 가정교사 공선생으로부터 중국어를 배웠는데, 그 중국인 가정교사는 소설을 학자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대중 오락 형태로 간주하도록 가르쳤고, 펄도 평범한 사람들을 좋아했기 때문에 대중적인 작가가 되기를 원했다. 그래서 그녀는 수식어가 많은 변문 형태의 문체보다 간결한 문체를 택하였고, 주위에서 볼 수 있는 보편적인 주제와 독자들이 부담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전통적인 가치관과 관련된 주제나 소재를 택하여 작품을 쓰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우리가 펄의 작품을 걸작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비단 이것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러한 진부한 주제들을 가지고 멋진 문학 작품을 만들어냈다는데 있다고 할 수 있다.시대를 잘 선택해서 나온 작품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책들이 출간되고 폐간되고 한다. 그 수많은 책들 중에서 베스트셀러가 되는 작품은 몇 안 될 것이다. 지금이야 마케팅 전략만 잘 짜면 하루 아침에 베스트셀러가 될 수도 있지만, 펄이 살았던 그 당시에는 마케팅이라는 개념이 있었는지도 의심해볼 만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녀의 작품은 사람들에 의해서 널리 읽혀져 지금으로 말하자면 베스트 셀러가 될 수 있었고, 1931년에 『대지 The Good Earth』가 퓰리처 상을 타고, 1938년에는 노벨 문학상까지 받을 수 있었을까? 그것은 시대를 잘 타고 났기 때문이다. 『대지』가 나올 무렵 세계의 열강은 중국에서 서로의 이권을 다.
1. 동 기찬바람이 제법 매섭게 불던 어느 날이었다. 밖은 너무 추워서 나가기가 싫었고, 집에 우두커니 있자니 좀이 쑤셔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때마침 내 책장에는 중문과 학생답게 여러 권의 중국 소설이 꽂혀 있었다. 나는 어떤 책을 읽을까 고민하다가 어머니께서 사오신 군고구마를 호호 불면서『홍루몽』이라는 책을 집어 들었다. 분량도 많고, 등장인물도 많아서 성격 파악은 커녕 이름도 다 못 외울 것만 같았다. 그러나 내 예상은 빗나갔다. 체계적이고 비교적 빠른 내용 전개와 여러 등장인물의 개성 넘치는 성격, 그리고 그들 사이에 벌어지는 사건들은 정말 너무 재미있어서 쉽게 책에 빠져들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은 연습장에 등장인물의 이름을 적어가며 보았다고 하는데, 나는 머릿속에 영화 필름을 돌리기 시작하였다. 나의 상상력은 등장인물 하나하나의 모습까지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었고, 때로는 웃기도 하고, 때로는 울기도 하며 감정 이입도 제대로 되고 있었다.2. 줄 거 리이 책은 주인공 가보옥의 탄생 신화 - 전생의 이야기 (뭐라고 말해도 상관은 없지만) - 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옥구슬을 갖고 왔다는 가보옥은 전생에서 임대옥과 ‘목석의 인연’으로 첫만남에서 서로 낯익은 듯한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전생의 인연을 알길이 없는 가보옥과 임대옥은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는 데만도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는다. 또한 이들 사이에는 설보채라는 이가 등장한다. 설보채와는 ‘금옥의 인연’으로 사람들은 가보옥과 설보채가 일찍부터 배필이 될 것임을 점치고 있었다. 임대옥과 설보채 이외에도 가보옥은 아름다운 10명의 소녀들과 더불어 부유하고 천진난만한 어린시절을 보낸다.그러나 집안을 이끌어 가야 하는 가부의 남성들이 사치와 낭비 속에서 집안일은 돌보지 않고 향략에 빠지게 되면서 결국 가씨 집안은 쇠망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그 때 가보옥이 정신적인 타격으로 중병에 걸리게 되자 위기를 느낀 집안의 어른들은 보옥의 혼사를 서두르게 되었다. 설보채와 임대옥이 그 대상자로 올랐는데, 병약 들은 임대옥은 피눈물을 쏟으며 그동안 가보옥에게 바치는 수많은 시 원고를 불에 태우면서 마침내 절명하고 만다. 후에 대옥의 죽음을 알게 된 보옥은 많이 힘들어하다가 결국 자신의 비극적인 사랑이 인간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운명임을 깨닫고 출가를 결심하고 과거시험을 보러 떠나면서 왕부인과 아내인 설보채에게 의미심장한 고별사를 남기고 떠난다.3. 인물 분석과 감상① 가보옥여복을 타고난 남자태어나면서부터 입에 옥을 물고 나왔다는 가보옥은 태어나면서부터 부귀와 영화를 한몸에 안고 준수한 용모와 총명함을 모두 갖춘 사람이다. 목석의 인연 때문에 임대옥을 만나 곧 좋아하지만 이생에서의 운명은 금쇄를 갖고 있는 설보채와 금옥의 인연으로 맺어지게 된다. 이외에도 아름다운 대관원의 자매들과 함께 자란 그는 여복을 타고난 남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가보옥은 다른 남자들처럼 여자들을 사치와 향락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그는 여자숭배자라고 해야 할까, 좀 자세히 말하자면 남자는 찌꺼기에 불과하고 여자가 훨씬 위대하다는 것을 강조한 진보적인 남자였다. 가보옥이 이러한 생각을 갖게 된 것은 사치와 향락에 빠져있는 가씨 집안 남자들의 무능력하고 저질적인 태도 때문에 가씨 집안의 여자들이 집안의 대소사를 처리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작자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주인공『홍루몽』의 작가 조설근도 가보옥과 비슷한 생활환경에서 자랐다. 어렸을 때 그는 승승장구하던 명문 귀족 집안에서 자랐으나 13세가 되던 해 죄인의 집안으로 전락한 궁핍한 집에서 생활해야 했다. 이러한 실제적인 경험 덕분에 『홍루몽』의 배경묘사라든지 인물 묘사가 매우 뛰어난 것 같다. 또한 조설근은 가보옥을 자신과 동일시했던 것 같다. 가보옥에게 자신의 바람, 생각을 투영시켜 일종의 욕구 충족을 한 것이 아닌가 싶다.조설근은 중년 이후 즈음 그의 생계가 매우 어려웠을 때 그림을 팔아 생계를 이어갔다. 그의 재주가 뛰어남을 보고 황궁 안에 있는 화원에서는 화사가 되라고 청한 적이 있었다. 이것은 경 했다. 조설근과 가보옥의 행동에서 내가 느낀 것은, 이들 모두 봉건 관료사회와 과거시험으로부터 자유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며, 이들이 매우 진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개방적이지만 소극적인 로맨티스트가보옥은 당시의 개방적인 로맨티스트였던 것 같다. 사랑하는 임대옥과 시문을 주고 받으며 사랑을 키워간 그는 임대옥의 배경 따위는 보지 않았다. 솔직히 인품이나 배경 등 조건을 하나하나 따져보면 임대옥 보다는 설보채가 훨씬 나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사랑에만 충실했다. 봉건적인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생각은 매우 개방적이었다.또한 여색을 좋아하던 다른 가씨 집안과는 다르게 그는 한 사람만을 사랑했다. 솔직히 어려서부터 많은 미녀들과 함께 살아왔고, 부 · 명예 · 외모 어느 하나 뒤질 것 없던 그가 일편단심 민들레라니 정말 범상치 않은 성품인 것 같다.하지만 내가 안타까운 것은 사랑에 대해서 너무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다는 것이다. 하늘이 맺어 준 인연이 아니라는 것을 작자는 강조하고 있지만 그래도 좀 더 적극적인 구애를 했다면 임대옥과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는데,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지만, 진취적인 모습이 다소 부족한 것 같아 읽는 내내 안타까웠다.내가 가보옥이라면내가 가보옥이라면 임대옥보다는 설보채를 사랑했을 것 같다. 전생의 인연이라서 임대옥에게 끌린 것은 사실이지만 임대옥의 성품이 그다지 좋지 못한 반면, 설보채는 대인관계도 좋고 인품이 매우 어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만약 나도 운명의 끈에 이끌려 소설속의 가보옥처럼 임대옥을 사랑했다면 자신이 삶을 꾸릴 수 있을 만큼의 돈과 폐물을 챙겨서 함께 도망 갈 것 같다. 가보옥은 집안이 망해가고 있었으나 돌볼 생각도 하지 않았고, 출가를 한 사람이다. 어차피 이럴 거라면 사랑이라도 쟁취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좀 더 적극적인 모습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또한 만약 내가 임대옥을채를 사랑할 수 없다면 그녀가 자기 옆에서 불해해지기 전에 보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좀 가혹하기는 하나 자기를 속인 벌이 될 수도 있겠다. 후에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이제 가문을 일으키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것은 어려울 지 모르나, 한 마리 토끼가 자기 손을 떠났으니, 나머지 한 마리 토끼라도 잘 부여잡고 있어야 한다는 판단에서이다.② 임대옥예민한 성격으로 자기가 화를 부른 사람임대옥은 6세에 어머니를 여의고 12세에 아버지마저 병사하자 그대로 가씨 집안에 살게 된다. 그녀는 가보옥과 전생의 목석의 인연 때문에 만나자마자 친해지지만 예민한 성격으로 서로의 애정을 확인하는데 많은 갈등과 우여곡절을 겪는다. 또한 그녀는 설보채와 가보옥의 사이를 오해하여 눈물로 밤을 지새기도 한다. 이러니 더욱 병약해질 수밖에 없고, 이런 이유로 끝내 후원을 받지 못한 그녀는 설보채와 가보옥이 결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절망하여 시 원고를 태우고 피를 토하며 절명한다. 가보옥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왜 모르며, 사랑하는 사람을 왜 믿지 못했는지 참으로 불쌍하다.나도 남자친구가 있지만 그 친구와 관련된 여자로 인해서 믿음을 져버린 적은 없다. 다시 말하자면, 임대옥처럼 심각하게 속앓이를 해 본 적이 없다. 사랑하는 사람인데 어찌 안 믿어줄 수가 있으며, 만에 하나 다른 여자에게 관심이 있었다는 것이 진짜라고 해도 나에게 돌아올 것이라는 확신도 없이 어떻게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좀 더 인내심을 갖고 기다렸다면 가보옥이 분명 임대옥을 찾아왔을 것이고, 그녀가 자살만 하지 않았다면 그들의 사랑은 계속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임대옥은 예민한 성격으로 자신의 화를 자초한 것이라 생각된다.내가 임대옥이라면내가 임대옥이라면 우선 가보옥이 자신을 아내로 맞아 줄 것을 기다리겠다. 그리고 만약 자신이 확실한 후견인이 없어 밀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예민한 성격을 고쳤을 것이다. 병약한데다 마땅한 후견인도 없는 사람을 어찌 가씨 가문보옥과 결혼할만한 신부감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면 - 틀림없이 가보옥과 인연을 맺을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 한다.그런데 만약 소설에서처럼 설보채와 가보옥이 결혼을 하게 되었다면, 우선 어떻게 된 일인지 가보옥에게 설명을 듣기 위해 기다릴 것이다. 물론 마음은 아프겠지만 그래도 자기 화를 못 이기고 스스로 절명하는 것보다는 훨씬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설보채와 가보옥을 파혼시키려고 분란을 일으키기 보다는 후첩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본처이면 어떻고, 후처이면 어떤가. 또한 설보채도 성품이 온화해서 후첩인 임대옥을 그다지 학대 할 것 같지도 않다.③ 설보채운명 때문에 힘들어진 그녀의 삶황실 상인 집안의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으나 설보채는 성격이 원만하여 대인관계가 좋았다. 어려서 그녀는 승려로부터 금쇄를 받았는데 이로 인해 가보옥과 금옥의 인연으로 일찌감치 배필이 될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결국 왕부인의 계략으로 가보옥과 결혼을 하지만 사랑을 받지 못하고 보옥이 출가한 이후엔 왕부인을 모시고 쓸쓸히 지낸다.설보채는 어느 하나 빠지는 게 없다. 집안, 성품, 외모 하나 같이 좋고 어진데 그녀의 삶은 어찌나 힘이든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남편은 죽은 옛 애인을 잊지 못하고 출가하여 결국은 버림을 받게 된 것이다. 내 생각에 그녀는 금옥의 인연인지 뭔지 때문에 이렇게 힘들어 진 것 같다. 그것만 없었어도 그녀의 삶은 평안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성품이 어질어 누구에게 시집을 갔어도 그의 남편 뿐만 아니라 시댁 식구들에게도 예쁨을 받았을 그녀인데 말이다.내가 설보채라면내가 설보채라면 왕부인이 거짓 결혼을 꾸미고 있다고 가보옥에게 미리 말해 주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은 가씨 가문에서 쫓겨날지도 모르고, 가보옥과 결혼 할 수도 없지만 그래도 그것이 더 현명한 선택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병 들어 누어있으면서도 계속해서 임대옥의 이름을 불러대는 가보옥과 결혼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불행을 자초하는 일이라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