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드 존스(D. M Lloyd-Jones)의 설교 전달 방법 연구Ⅰ. 들어가는 말참된 설교를 하려는 것은 모든 설교자의 끊임없는 소망이다. 로이드 존스는 이런 사람들에게 큰 스승이 되는 설교자이다. 그리고 그의 수많은 설교를 통해 모범을 보여 주었다. 로이드 존스는 회중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집중시키기 위해 의도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분명히 모든 설교자가 이 일을 하고자 한다. 이 점에서 로이든 존스는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성공적이었다. 때문에 지적인 능력과 달변이라는 타고난 은사 외에, 사람들의 관심을 자극하고 지속시키는 다른 특성을 그의 설교 전달 방법에서 발견할 수 있다. 대부분의 설교자들이 로이드 존스에게서 배울 만한 몇 가지 전달 방식들이 있다. 이것들은 그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능숙하게 사용하고 성령 안에서 받은 자연적인 은사들 때문에 전달하는데 효과적이었다.Ⅱ. 로이드 존스의 설교 전달 방법1. 부정(否定)의 사용부정은 특정한 진술에서 어떤 점을 확실히 하기를 원하는 설교자들에게 유익한 도구이다. 로이드 존스는 이 방식을 일관되게 적용하고 있다. 그것은 그의 설교에서 가장 놀라운 성격 중의 하나이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그의 공식은 다음과 같은 것으로 보인다. 본문이 복잡할수록, 본문이 포함하고 있지 않은 것을 확실하게 하기 위하여 더 많은 노력이 요구된다.그의 메시지 전체에 실례가 널려있다. 이 방식은 매우 효과적이다. 그는 설득력 있는 방식을 회중에게 지시한다. 그는 일이 어떻게 되어야 하며, 남아 있어서는 안 될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 준다. 그 모든 것은 너무나 명확하게 들린다. 회중은 자기가 왜 전에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는지를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이다.본문이 말하지 않는 것을 정리하여 제거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예비 작업이다. 그 작업은 그 본문이 주장하는 것과 그 본문 위에 합법적으로 건축할 수 있는 토대를 확립하는 길을 마련해 준다. 불확실한 것들을 제외시킴에 따라서 설교자는 확실한 것에 열중한다. 그리고 자신이 확신하는 진리를 선포적인 자질이 아니다. 거기에는 ‘주어진 것’의 요소가 있다. 그것은 발전 되었다기 보다는 주어진 것이다. 그래서 이런 진술이 뒤따른다. “아닙니다. 그것은 자연적인 성향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성령이 산출하시는 어떤 것입니다.”회중으로 하여금 그것의 실제 의미에 도달하게 하기 위하여, 그는 좀 더 철저하게 기초를 정리한다. 온유함은 나태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게으른 사람은 온유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또한 무기력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사냥함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이 시점에서 회중은 깊이 빨려든다. 그들은 여러 가능성들을 함께 생각해 가도록 자극되는 것이다. 대중적인 생각으로는 상냥함이 온유함과 가깝다. 그러나 그렇게 상냥하지 않거나 상냥한 개들, 상냥한 고양이들. 상냥한 동물들이 있다. 이런 동물들을 가르켜서 온유하다는 말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그의 회중은 그런 생각이 불합리함을 주목한다. 그래서 상냥함은 동의어 중에서 제외된다. 냉혹하고도 논리적으로 그는 그 점을 추적해 간다. 연약함도 제거된다. 타협의 정신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피상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또 다른 틀린 이름이다. 어떤 값을 지불하더라고 평화라는 주장은 관련 구절이 복을 선언하는 태도는 아니다.기초 작업을 마쳤으므로 이제 그는 그 문제를 긍정적으로 다룰 수 있다. 이렇지 않고 그냥 그 문제를 방치한다면 그것은 매우 불만족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설교자가 길을 닦는 것은 건설하기 위함이다. 그의 회중은 어떤 명확한 결론 없이 방치되어서는 안 된다. 로이든 존스는 확고한 기초를 향해서 나아간다. 이 경우에 그는 온유함의 참된 성격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그는 회중에게 그것을 추구할 것을 장려한다.로이든 존스만 유일하게 이 도구를 사용한 것은 아니다. 조나단 에드워드의 방식이었으며 로이드 존스는 그에게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 사랑(affection)의 본질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에드워드는 사랑의 본질이 아닌 것을 보여 주는데 상당한 부분을 할애하였으며, 그견된다. 예수는 부정을 앞세운 몇몇 경우들이 있다. 그것은 산상수훈에서 많은 실례를 찾을 수 있다. 예수는 어떤 때는 그 순서를 뒤집어서 먼저 긍정으로 시작해서 부정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로이든 존스는 예수가 기도를 가르칠 때에는 이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음을 지적한다.2. 질문의 사용로이드 존스의 설교방법에서 두드러지며 그가 지속적으로 사용한 또 다른 특징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그것은 설교자가 사용할 수 있는 일시적인 도구이다. 질문들을 설교자와 회중을 설교의 한 주제에서 다른 주제로 옮겨 줄 수 있다. 질문들은 또한 회중으로 하여금 대답을 자세히 생각해 보게 한다.질문은 주의를 끌며 지금까지 생각해 오던 진리를 적용하는데 유익하다. 로이드 존스는 의도적으로 그 방법을 개발하였다. 후기 사역에서 그는 연속적인 질문을 무려 열여섯 번이나 토해 내기도 하였다. 여덟 번에서 네 번의 질문은 흔한 일이었다.설교에 대한 강의에서 그는 이 방법의 가치를 강조하였다. 그는 설교자가 되기를 준비하는 사람이 그 방법을 향상시켜서, 질문형을 풍부히 사용함으로써, 회중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끌 수 있도록 돕고자 하였다. 그렇게 되면 설교자는 설교의 주안점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그 메시지를 적용하고 발견시킬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접근법은 설교자가 추상적이고 학문적이며 혹은 단순히 이론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인상을 주지 않게 했다. 그는 생생한 진리를 다루고 있었다. 회중은 관망자가 아니었고 이상적으로 연루되었다. 질문의 사용은 목표에 도달하는 일을 돕는다. 질문은 다루고 있는 내용을 강화시키는 효과를 낼 수 있으며, 다음 부분으로 넘어가는 다리가 될 수 있다.이 방법은 또한 설교의 끝 부분에서 매우 효과적이다, 설교학에 대한 어떤 책들은 적용이 결론에 와야 함을 강조한다. 하지만 로이든 존스는 설교 내내 적용을 이끌어 내었다. 그는 적용을 주제와 함께 엮었다. 그는 가끔 목구멍을 최대한으로 열어서, 회중의 의지로부터 응답을 얻어내기 위하여, 확신을 지성 속에 침투시키기 위압니까? 여러분 자신과 여러분의 모든 처지를 그 분의 복되시고 사랑스럽고 능력이 충만한 손에 행복하고 확신 있게 맡기셨습니까?3. 예화의 사용로이든 존스 사역의 또 다른 특징은 그가 사용한 예화이다. 그의 책을 급히 읽으면 이것이 고정적인 특징이 아닌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의 예화는 흔하게 등장하지 않고 개인적인 일화는 더욱 등장하지 않는다. 한 번은 로이든 존스가 어떤 사람에게서 들은 불평에 대해서 자세히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 사람의 불평은 그가 이전에 들은 설교에는 예화가 여러 개 있었는데 방금 들은 설교에는 예화가 하나밖에 없었다는 것이었다.로이드 존스는 비록 예화를 사용하는 것을 조심하였고 또 조심할 것을 충고하였지만 실제로 예화를 사용하였다. 그는 설교자들에게 쉬워야 된다는 것과 어리석게 된다는 것을 혼돈하지 말 것을 경고하였다. 회중에게 일일이 숟가락으로 떠서 먹이는 것은 자멸에 가깝다. 반면에 설교자가 불필요하게 학문적이 되고자 하거나, 지난 세기의 몇몇 설교자들과 같은 의미에서 설교꾼이 되고자 하는 야심을 품은 것은 역겨운 일이다. 자신의 주장을 명확하게 하면서, 로이드 존스는 그런 설교자의 설교를 듣고 나서 설교를 잘 들었느냐는 질문을 받은 한 여인의 이야기를 소개하였다. 그녀의 대답은 이것이었다. “그런 위대한 설교자의 마음를 이해하고 따를 수 있는 체한다는 것은 나에게는 과분한 일입니다.”로이든 존스는 설교에 관한 그의 책에서 예화의 사용을 정당화하고 조건을 설정하였다.예화는 진리 자체를 보여 주거나 진리에 주의를 집중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진리를 예증하기 위한 것입니다. 예화는 사람들을 인도하고 도와서 당신이 발표하고 선포하는 것을 더욱 명확하게 깨닫게 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그러므로 진리가 우선이요, 그것이 크게 드러나야 되고 예화는 그 목적을 위해 아주 조심스럽게 약간만 사용해야 한다는 것은 하나의 철학입니다. 우리의 임무란 사람들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로이드 존스가 사용한 예화가 별로 우수해 보이지 않는 이유들 중에 하다.로이드 존스는 예화 사용에 있어서도 사도 바울의 방식에 호소한다. 그는 로마서 6장에서 바울이 비유를 사용한 사실을 이야기한다. 그는 바울이 그의 회중으로 하여금 자신의 요점을 이해하게 하려고 그 예화를 사용한다고 주장했다고 논증한다. 로이든 존스는 이렇게 첨가한다. “그리고 이것이 예화 혹은 비유들을 사용하는 유일한 이유입니다.”로이드 존스는 교리적인 요점을 예증하기 위해서도 예화를 사용하였다. 한 실례는 ‘미국 노예 해방 이야기’인데 그는 이 이야기를 여러 번 사용하였다. 그 예화의 목적은 만약 신자가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에 대하여 살았다면 왜 그들이 여전히 죄를 짓느냐는 골치 아픈 문제를 다루기 위한 것이었다. 바울이 무죄한 완전성을 가르치지 않았다는 것이 그의 대답이다. 바울이 단언한 것은 그리스도의 죄의 영역, 죄의 영토, 죄의 지배와 통치 밖으로 옮겨졌다는 것이다. 로이든 존스는 그 자신 예화를 사용하고 예화의 유용성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만 조그만 노트를 가지고 다니면서 좋은 이야기를 들으면 수집하는 행위를 가장 악한 직업주의하고 혹평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람의 비위를 맞추는데 너무 관심을 쏟고 그거에 나친 주의를 기울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아무튼 그의 예화는 회중의 마음에 영상을 심어주고 모호하고 난해한 구절을 평이하게 하고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 주는 것들이었으며 성경 예화를 주로 많이 하였지만 상상력에서 나온 것도 많았다.4. 상상력의 사용조지 휫필드가 영국 귀족들이 많이 모인 방에서 설교할 때였다. 그는 지팡이와 개를 잃어버리고 절벽을 향하여 서서히 움직여 가고 있는 한 장님의 이야기를 하였다. 그런데 그 설명이 너무나 설득력이 있고,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에, 회중의 한 사람인 체스필더 경이 일어서서는 “맹세코 그 거지는 떨어졌다!”고 소리쳤다고 한다.거룩하게 된 상상력은 설교자에게 큰 혜택을 주며, 회중으로 하여금 집중하고 정신을 차리게 하는 유익을 가져다준다. 이 주제에 대하여 로이드 존스는 오늘날은 과거 보다는 훨씬 위험이 적다니다.”
제1장 도덕과 윤리1.도덕과 윤리의 일상성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건들에 대해 판단한다는 것은 우리가 매일 도덕과 윤리를 다루고 있음을 보여준다. 도덕과 윤리를 통해 우리는 의도되었거나 의도되지 아니한 인간의 행동에 초점을 맞추고 그 행동에 대한 찬성 여부에 따라 ‘선’과 ‘악’의 판단을 내린다.2.용어의 정의‘윤리’라는 용어는 ‘관습’, ‘습관’을 의미하는 헬라어 ethos와 ethos에서 나왔는데, 이 단어가 ‘거주지’를 지칭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인간은 관습 안에 거주하며 관습은 인간이 존재하는 환경을 구성한다고 하겠다.‘도덕’을 의미하는 mos라는 라틴어는 헬라어 ethos와 ethos와 동일한 의미를 가지며, ‘측량하다’라는 의미 또한 내포한다.이 헬라어와 라틴어 단어의 의미를 보면 ‘윤리’와 ‘도덕’의 차이점은 없으나, ‘도덕’은 전통적이고 지배적인 관습으로 이루어져 있고, ‘윤리’는 그러한 관습들에 대한 반성이다. 즉 윤리는 도덕에 대한 반성이다. 개인의 윤리가 존재 가능할 수도 있지만 도덕은 항상 집단의 도덕으로 존재한다.3.현실적응성(relevance)도덕에 대한 반성으로서의 윤리는 성경에도 존재했다. 히브리어로 교육을 뜻하는 단어는 윤리라는 의미로도 사용되며, 헬라어로 paideia, 영어로 discipline, 즉 규율로 번역된다. 선한 양육은 모두 윤리로 구현되는 것이다.오늘날 윤리에 대한 관심이 지대해진 이유는 사회의 급격한 변화와 개방화로 전통적인 도덕이나 사회적 동기보다는 개인적 동기가 인간의 행동에 더 결정적이 되었기 때문이다.4.윤리학의 분류윤리학은 과거와 현재의 다양한 문화들에서 나타나는 관습과 도덕들을 서술하는 ‘서술 윤리학(descriptive ethics)’,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지시하는 기준 혹은 척도가 되는 규범을 다루는 ‘규범 윤리학(normative ethics)’, 규범 윤리학 안에서 좀 더 세분화된 ‘특수 윤리학(special ethics)’ 과 ‘메타 윤리학(meta-ethics)’ 등으로 분류할 수 때문이다.초기 개혁주의 윤리학자들은 윤리와 도덕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의 행위를 이웃과의 관계에서 바라보고 도덕적 혹은 윤리적 문제는 사람들 간의 관계에서 수행되는 행위들에만 적용한다.종교(신앙)와 도덕은 구분된다. 그렇다고 해서 도덕과 신앙이 다른 두 세계에 속했다는 말은 아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도덕과 윤리가 모든 것과 연관되어 있으며 이는 성경이 제공하는 관점에서 윤리학을 다루는 기독교 윤리학의 관심사인 것이다.2.기독교 윤리는 환경을 포함하는가?윤리학을 사람들 간의 관계만을 다루는 것으로 정의내릴 수 없는 이유는 우리의 행위가 이웃 뿐 아니라 다른 피조물과도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자연 환경에 대해서도 도덕적 책임을 가져야 한다.3.기독교 윤리학은 ‘행동하는 주체’도 포함하는가?우리는 이웃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향해서도 도덕적 책임을 가져야 한다. 개인 윤리와 사회 윤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그 구분이 달라지지만, 사회 윤리를 다룰 때에도 개인 윤리에서처럼 행동하는 주체(I)가 고려된다.4.교의학과 윤리학초창기에 윤리학은 교의학과 같이 신학 분과에 속하였지만 윤리적 문제의 범위가 늘어나면서 분리되었다. 교의학이 교회의 교의(dogma, 敎義)를 다룬다면, 윤리학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다룬다. 모든 교리에는 윤리적 측면이 있고 모든 윤리적 물음은 교의라는 토양에 뿌리내리고 있다.오늘날 우리는 교의학과 윤리학 사이에 있는 통일성을 알아야 한다. 고대의 교리들을 실용성에 따라 평가하는, 다시 말하면 결과로부터 진리를 도출하는 실용주의적 태도로 윤리학 안에 교의학을 가두는 것은 인간의 기준으로 하나님을 측정하려는 것과 같다.5.기독교 윤리학과 철학적 윤리학철학적 윤리학은 사실 그 자체에서 시작하지만, 기독교 윤리학은 성경과 성경에서 발견되는 하나님의 명령에서 시작된다. 철학적 윤리학은 자율적이라고 가정되지만, 기독교 윤리학은 타율적이다. 그러나 철학자와 신학자는, 믿음이 없이 철학자들이 일하는 세계와 믿음으로부터 신되었다.윤리학에서 구속사를 고려할 때 구약 성경에서 주어졌고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이 법들이 여전히 더욱 심오한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5.성경에 대한 책임있는 호소우리는 윤리학에서 잘못된 성경 사용, 특별히 성경문자주의를 거부하고 성경을 안내자(guide)로, 보호자(guard)로, 나침반(compass)으로, 모범(example)을 가르치는 역할 등으로 올바르고 적절하게 사용해야 한다.6.이성의 사용성경이 기독교 윤리에 필수적이지만, 우리 지식의 유일한 근원은 아니다. 인간에게는 하나님이 이성이라는 은사를 주셨는데, 그 은사는 그리스도인들뿐만 아니라 비그리스도인들에게도 주어졌다.모든 사람이 태어나면서 받았던 이성(ratio ingenita)은 성경의 지식이 없어도 다양한 일에 대해 인간을 선한 통찰력과 행동으로 이끌지만, 죄로 인해 오류가 있는 이성(ration vitiosa)은 그리스도인을 포함해 사람들로 하여금 잘못을 저지르게 하는 원인이 된다. 다행히 제3의 이성(tertia ratio)의 존재는 우리를 성경의 빛으로 인도하여 올바른 방식으로 행동하게 하는 보호자와 나침반의 역할을 한다.칼빈과 같은 종교개혁자들은 특수한 결정을 위한 증거를 세우기 위해서 성경뿐 아니라 본성과 이성에도 호소했다.성경에서 명백하게 주어진 하나님의 영원한 계명을 우리가 처한 환경과 시대 속에서 순종하기 위해서는 성경뿐만 아니라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이성도 필요하다.7.주지(主旨, motif)를 주의할 것윤리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간성, 정의, 행복, 사랑과 같은 주지들은 그것들이 가지는 성경적이고 기독교적인 내용을 받아들일 때에만 성경적이고 기독교적이다.한 주지만을 일방적으로 적용하는 것을 경계하고 갖가지 성경문자주의에 의해 성경 말씀과 동떨어진 주지도 피해야 한다.8.성숙함과 분별성경을 사용하는 기독교 윤리학이 사람들이 현실에서 직면하는 수많은 질문들에 대해 준비된 대답을 해줄 수 없다는 것은 부끄럽기 보다는 영광스런 일이다. 성경의 조명하심을 인 사이에 있는 서로 다른 행위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전적으로 무의미하다고 믿는다.전통적 도덕이 파괴되고 다수의 그리스도인이 이미 표면화된 새로운 도덕에 동의하는 현실은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 모두를 위한 단 하나의 도덕이 존재할 수 있느냐 하는 도덕의 유일성에 관한 질문에 직면하게 한다.2.우리는 많은 부분에서 똑같이 행동한다.성경은 그리스도인의 행동의 대부분을 비그리스도인들도 인정할 수 있다는 가정을 명백히 하고 있으며 실제로 일상생활에서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의 도덕은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다.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이 그런 일상성을 포함하고 있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일일이 성경구절을 찾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3.다른 내면한편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것과 그리스도의 재림을 대망하는 것 사이에서 진행되므로 행위의 전체 그림에서 비그리스도인과는 그 맥락이 다르다.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라는 다른 내면을 받았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라는 말의 의미는 우리에게 부여하신 소명을 완수함으로, 자신의 유익이 아닌 하나님과 이웃의 유익을 위해서, 고난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삶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4.다른 외향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의 자세 때문에 비그리스도인과 외적으로 다른 형태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정상으로 보아야 할 것들을 비정상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진정으로 정상적인 삶을 사는 기독교적 도덕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존경할만하게 행동한다는 사실을 이방인이 마음 중심으로 고백하도록 해야 하며, 그리스도인의 행위가 주변의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이유는 주변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상관없이 자기 삶을 살려고 고집하기 때문이라는 사실 등을 중요시해야 한다.5.기독교적 삶의 양식기독교적 삶의 양식은 우리가 처한 환경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삶의 양식은 관습의 형식으로 존재하고 있는양심과 상황, 시대와 발전이 서로 밀접하게 엮여 있음을 알 수 있다.신약에서의 양심은 변하지 않는 어떤 것이 아니라 아주 다양하게 기능하고 있는데, 이는 양심은 상대적인 것이고 항상 하나님의 평가에 복종하는 것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신약이 연약한 양심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은 인간의 양심이 변할 수 있고 오류를 범할 수도 있음을 확언해준다.3.선한 양심니체(Friedrich Nietzsche)는 양심을, 사회가 사람을 길들이고 그의 원초적인 생명의 본능을 억압함으로 사람에게 부과한 병적인 증후군으로 묘사하였고, 프로이드(Sigmund Freud)는 사람의 본질을 ‘이드’라는 비인격적인 것으로 그리면서, 양심을 이드와 초자아 사이의 긴장 아래 살아가는 ‘자아’에 의해 만들어진 죄책감으로 본다.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인간학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만물의 시작이 인간 욕망의 혼돈이라고 믿어야 한다. 그럼에도 이들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바는 인간 양심의 내용이 상당히 차이가 있다는 것이며, 유일한 양심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깨끗한 양심이란 하나님을 향해서 깨끗한 양심이며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순종과 함께 간다.4.양심에 대한 호소우리의 양심은 오류를 범할 수 있으므로 올바른 행위를 위해 양심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이것은 양심의 역할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 역시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양심에 호소하는 일에 있어서 공정하게 양심적인 결과가 일관적이 되도록 기대해야 한다.제9장 아디아포라1.주요 이슈‘아디아포라’(adiaphora)는 ‘중립적인 것’의 뜻하는 헬라어로, 사람들이 선하다고 할 수도, 악하다고도 할 수 없는 사물이나 행동을 말한다.아디아포라가 존재한다는 입장은, 기독교 윤리는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보호하고 옹호해야 하며 다양한 선택들을 보호해 주어야 하기 때문에 아디아포라는 존재한다고 주장한다.한편 아디아포라의 존재를 부인하는 입장은, 일단 아디아포라의 존재를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점점 더 많은 결정들을
제1장 개혁주의 교회론을 위한 시도교회의 일치와 순결Ⅰ. 들어가는 말한국 교회는 기독교 선교 역사상 가장 놀라운 부흥을 이룩하였으며, 21세기를 맞이하는 지금에 와서는‘받는 교회’에서 ‘주는 교회’로 세계 교회 앞에 거듭나야 할 시기가 되었다. 그러나 신학 사상의 혼란과 그릇된 신학의 유입은 한국 교회의 앞날을 예측하기 어렵게 만든다.특별히 현대 자유주의 신학에 근거한 교회론은 한국의 전통적인 역사적 개혁주의, 정통 칼빈주의 신학에 대한 도전일 뿐 아니라, 특히 청교도적 보수신학을 지향해 온 한국 장로교회에 대한 도전으로 나타나고 있다.(1) 현대 교회에 대한 몰트만의 도전1965년에 몰트만은「희망의 신학」이란 책을 통해 기독교의 종말론적 사고를 부활신앙에서 재해석하고 기독교 신앙이 현대 사회에서 가지는‘약속과 희망의 사고’를 강조하였다. 그의「희망의 신학」은 기독교와 마르크스주의자들과의 대화를 유발하였고, 이는 1970-80년대 남미의 「해방신학」과 한국의「민중신학」의 신학적 토대가 되었다.그는 또 1975년「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교회」를 통해‘메시아적 교회론’을 1)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2)선교적 교회, 3)연합적 교회, 4)정치적 교회 등으로 정의하면서 그리스도 교회의 가견적 일치를 추구했다.몰트만에게 있어서‘해방’은 정치적ㆍ혁명적 개념보다 더 넓은‘억압자의 자유로운, 그리고 인간적인 미래까지도’포함하는 것이고, 민중과 함께 고난 받고 투쟁하는 교회가 민중의 교회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는「에른스트 블로흐」의 유물론적이고 마르크스적인 희망의 철학에 대해 비판하면서도 그의 주장을 자신의 신학에 끌어들여 그것을 기독교 종말론 속에서 이해하고자 시도하였던 것이다.(2) 현대 교회의 모습20세기 후반의 세계 교회의 주된 관심은 교회 성장과 에큐메니컬 운동을 통한 교회의 일치였고, 이는 교회론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나, 교회의 본질에 대한 진지한 논의 없이 세속적이고 실제적인 방향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기능적 차원의 교회론만 양산하게 되었다. 자유주하였으며, 지상 교회를 유형 교회와 무형 교회, 또는 선택받은 자들로 구성된 영적 교회와 선택받지 못한 자가 섞여 있는 제도적 교회로 구별하여 교회의 이중 구조를 주장했다. 그에게 있어 역사적 교회는 하나님의 도성의 형상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도성으로 되어 가고 있는 하나님의 도성 자체라고 할 수 있다.둘째, 어거스틴은 배교자나 이단자가 베푼 세례도 삼의일체 하나님의 이름과 말씀대로 베푼 것은 유효한 것으로 인정했다. 도나투스파는 성례전과 목회적 타당성과 효과는 성례 시행자의 신앙과 행위에 의존한다고 주장했으나, 어거스틴은 세례의 기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며 그것이 복음의 필수적인 한 부분이므로 복음과 세례는 서로 병행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성례의 유효성에 관해서는 분파들 사이에서 시행된 성례는 구원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죄를 위해 역사할 뿐이라고 하였으며, 배교자나 이단자가 베푼 세례의 타당성은 인정하지만 그 세례의 사죄와 구원의 효과는 정통 가톨릭교회에 복귀하여 연합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성례의 타당성과 유효성을 구분해서 이해했다.셋째, 어거스틴은 사도의 권위를 성경과 결부시켜 이해했으며 성경의 권위를 그 사도성과 결부시켜 이해하여 교회에서 발생하는 제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권위의 소재를 성경에 두었다. 또한 사도들의 전통에서 기인한 교회의 관례와 관습의 권위를 인정하는 반면 교회 회의도 오류를 범할 수 있다고 보고 그 결정에 최종적인 권위를 두지 않았다.어거스틴은 참 교회는 완성된 것이 아니고 역사 속에서 생성되어 가는 것으로 이해하였으며, 사도직의 권위는 인정하였다. 그러나 중세 가톨릭교회가 사도를 빙자하여 교황무오설을 내세우는 것은 그의 사상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3) 칼빈의 교회관칼빈은「기독교강요」제 4권에서 교회론을 다루고 있는데, 첫째 칼빈은 교회를 인간의 약함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기관이라고 말하면서, 교회가 신자들의 어머니로서 가지는 역할을 강조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 안에 하나님을 대신하여 말하는 사역자너무나도 자주 오류와 죄 속에 빠졌으며, 또한 상당 부분 배교했다”고 하였다.둘째, 메이천은 교회의 일치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만큼 교회의 순결과 하나님의 말씀의 중요성도 강조하였고, 시대의 흐름인 자유주의에 대항하여 목사와 장로들이 장로교 표준문서에 대해 정직하게 서약할 것을 주장했다.셋째, 그는 독일 유학 중 리츨 학파의 헤르만 교수를 통해 자유주의를 접한 후 자신의 옛 신앙에 대한 자신감을 갖고 자유주의 비평에 대항하여 역사적 기독교를 변호할 수 있었다.넷째, 메이천은 자유주의 신학의 열정과 윤리적인 강조에 대해 개혁주의적 신앙고백으로 자유주의가 초자연주의 위에 세워진 기독교와 근본을 달리하는 별개의 종교임을 밝혔다.Ⅲ. 나가는 말새로운 21세기를 맞이하여 새롭게 개혁파 교회관을 정립해야 하는 시점에서 니케아 - 콘스탄티노플 신조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이룬 하나의 교회, 거룩한 교회, 보편적 교회, 사도적 교회 등 중요한 내용을 고백하고 있다. 오직 성경만이 교회를 지도하고 현대 교회의 표준이라고 고백하는 것이 개혁파 교회, 정통 칼빈주의 교회의 바른 고백이 될 것이다.장로교 표준 문서에 대한 서약Ⅰ. 들어가는 말역사적으로 교회는 삼위일체 논쟁과 기독론 논쟁을 거치면서 이단을 정죄하고 정통 교리를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초대 교회 이후로 교회들은 계속적으로 자신들의 신앙을 고백하여 왔다. 그러한 신앙 고백의 전통은 하이델베르크 요리 문답, 돌트 신경, 웨스트민스터 신도게요서 등을 통하여서 계속적으로 이어져 왔다.여기서는 미합중국 장로교회 초창기 역사에 있었던 웨스트민스터 신도게요서와 대소요리문답에 대한 서약논쟁을 중심으로 장로교 표준문서에 대한 우리의 올바른 입장을 정립하고자 한다.Ⅱ. 본론미합중국 장로교회의 거의 초창기로부터 웨스트민스터 신도게요서와 대소요리분답의 지위는 논란의 초첨이 되어왔다. 1706년 “독노회(the General Presbytery)"가 조직되고 1716년 첫 장로회 대회가 조직되었지만 교회의 표준문서는 1729년에 이르기까지 공식적물결을 포용하기로 하고 메이천을 비롯한 개혁주의 전통의 신학자들은 물러나게 된다. 하지만 이들은 이러한 위기의 시기에 역사적 기독교를 변호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내에 성경적 일치와 순결을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했다.?프린스턴 신학교의 재편성과 종교다원주의의 수용1929년을 계기로 하여서 프린스턴 신학교는 재편성을 하게 된다. 이것은 교단 내의 현대적 흐름을 수용하는 포용 정책의 일환으로 실시된다.미국의 장로교 목사들을 양성해 내는 기관으로 1800년대에 출발한 프린스턴은 정통 장로교 교리와 개혁주의에 입각한 학교였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서 프린스턴은 현대적 신학을 수용하기 시작하면서 그 신학의 정통성을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1929년에 이사회 재편성으로 인한 구 프린스턴과 현대 프린스턴의 구분점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1929년 이전의 프린스턴 신학교의 전통 즉, 정통 장로교와 개혁주의 칼빈주의에 입각한 신학을 구 프린스턴의 전통이라고 부른다.이 종교 다원주의 수용과정에서 주목할 만한 사건은 해리 애머슨 파즈딕 논쟁과 오번 선언서 사건이다. 애머슨 파즈딕은 침례교 목사의 설교로 인하여 발생된 것으로 현대적 신학이 근본주의를 넘어서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오번 선언서 사건은 근본 교리 5개조에 서약하지 않고도 목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프린스턴은 변하고 또한 미국 장로교회도 현대주의를 수용하는 쪽으로 흐른다.? 때로 보수의 목소리가 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소수에 불과했다.?「성경전서 표준 새 번역」에 대한 신학적 검토?성경을 자국어로 번역하는 것은 훌륭한 일이며 꼭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그것을 시대에 맞게 현대적인 언어로 변환하는 작업은 어쩌면 필수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한 작업들은 임의대로 되거나 어떠한 특정한 신학적 조류에 따라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올바르게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일점일획도 고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한국 교회에서는 1991년에 표준 새 번역을 내 놓았다. 현대서의 인간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게 되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다. 그렇게 됨으로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가지고 있던 문화적 특질들을 잊어버리게 되고 인간적인 문화에 휩싸이게 된다. 특히 가인의 문화생활은 일반적 사회 문화가 가인의 자손 중에서 현저하게 발달한다. ?반면 셋을 통해서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제사적 문화가 발달하게 되었다. 이 두 문화는 처음에는 서로 대립적인 것으로 여겨졌지만 곧 세속의 문화에 제사적 문화가 휩싸이게 된다. 에덴에서 쫓겨난 이후 죄의 속성이 인간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구별하시고, 그를 통하여서 약속의 자녀가 탄생할 수 있는 계보를 마련하신다. 다윗의 후손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성령의 간섭하심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다시 이 땅에 선포하신다. 하나님의 문화를 이 땅에서 다시 회복하시는 것이다.? 그리스도인과 문화의 관계에 있어서 메이천은 그의 논문 「기독교와 문화」에서 기독교가 문화를 주도하는 세 번째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 기독교는 세상 속에 있기에 세상의 문화를 전적으로 무시해서도 안 되고, 그것에 따라가서는 더더욱 안 된다. 우리는 세상의 문화로 하여금 우리 하나님에게 봉사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그리스도인의 문화적 사명에 있어서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이 세상에 속한 무리가 아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된 사람들로서 우리 주위의 문화를 변혁시킬 책임이 있으며, 기독교 문화 건설의 책임을 동시에 지고 있는 것이다. 인간 활동의 전 영역에 걸쳐 그리스도의 통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드려지게 하는 것이 칼빈주의를 신봉하는 우리들의 문화적 사명이다.우리는 선택 받은 자를 향하신 하나님의 불가항력적인 은혜를 고백하며, 개인과 교회의 모든 결정에 있어서 성경의 최종 권위를 인정하는 사람들이다. 문화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문화를 성경적으로 창조하여야 하는 사람들이다. 문화의 이다.
【내용 요약】제1장 이야기체 설교서론이야기체 설교는 그레디 데이비스에 의해 시작된 이래, 프레드 크레독, 에드먼드 스타이믈, 유진 로우리 등에 의해 발전되어 왔으나, 아직까지 어떤 설교를 이야기체 설교로 할 것인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존 맥클루어는 이야기체 설교의 네 가지 유형을, ①설교의 형태가 이야기체 형식의 본문에 의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지는 형태의 설교, ②단편소설이나 영화의 구성 형식을 띠는 설교, ③설교자가 이야기와 상상력을 이용한 설교, ④회중들의 실제 삶의 정황 속에서 일어나는 ‘신앙 이야기’인 설교 등으로 제시하고 있다.토마스 G. 롱 : 이야기체 본문으로 설교하기이야기체 본문의 특정한 문학적 양식에 주의하기 위해 이야기의 수사학적 기능은 무엇이며 어떤 문학적 장치를 사용하고 있는지를 질문해야 하며, 설교자는 문학 비평가의 철저함과 시인의 상상력을 가지고 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유진 로우리 : 설교학의 구성구성(plot)이라는 용어가 설교의 준비와 전달에 있어서 열쇠임을 강조하여 이야기체 설교에 있어서 핵심은 ‘연계성(sequence)'에 있음을 말하였다. 그의 설교의 5단계는 ①평형 뒤집기 ②모순의 분석 ③해결의 실마리를 찾아 냄 ④복음을 체험함 ⑤결과의 예측 등이다.유진 로우리 : 이야기체 설교를 위한 네 가지 방안①스토리를 흐르게 함, ②스토리를 지연시킴, ③스토리를 보류시킴, ④스토리의 교류프레드 크레독 : 귀납적 설교설교를 듣는 사람이 자신의 상상력을 가미해서 들을 수 있는 설교 스타일을 ‘귀납적 설교’라고 명명하고 세 가지 기술의 필요성을 말하는데, ①구체적인 경험의 포착과 재창조 능력, ②회중들의 기대감을 유발할 이야기 개발, ③회중들이 설교를 마무리 하게 함 등이다.에드먼드 스타이믈 : 설교 짜기좋은 설교는 본문 속의 스토리와 설교자의 스토리 그리고 회중의 스토리가 교차되는 설교임에 주목하고 설교자는 “성경적 스토리를 해석해서 빛이 세 가지 스토리에 고루 비치도록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찰스 캠벨 : 스토리로서의 예수이야기체 절차를 따라야만 한다고 주장하여 헤겔의 변증법적 접근 방식을 설교 구조에 도입하였다.마틴 루터 킹 2세 : 연합(통일)이라는 질문초기 흑인 설교자들은 교육의 기회가 없었음에도 ‘도제’를 통해 설교를 배워 훌륭한 설교를 하였고, 이는 1950년대의 설교자들이 설교상의 아이디어와 예화를 돌려가며 사용하는 전통으로 이어졌다.제임스 해리스 : 해방 설교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설교는 종종 불의를 향해 있으며 개인과 사회의 변혁을 요구한다. 설교자의 임무는 사회가 어떻게 하면 변혁될 수 있는지를 설교함으로써 소망의 메시지를 선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에반스 크로포드 : 동역으로서의 설교설교자와 회중들 간의 ‘창의적인 동역’으로서 부름과 응답은 설교자로 하여금 자신의 설교가 회중들에게 밀착되어 전달되는지를 아는 데 도움을 준다.제3장 전도 설교윌리엄 윌리먼 : 침투하는 말씀으로서의 설교전도는 하나님 말씀의 침입에 의한 부산물이므로 전도 설교는 철저히 그리고 대담하게 성경으로 시작하며 하나님의 간섭으로 삶을 변화시켜 주시기를 요청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복음의 순간은 ‘개인 문제들’의 해결이나 해소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와의 간격을 해소해 나가시는 독특한 방법에 있다. 복음적으로 설교한다는 것은 복음의 능력 안에서 진지한 확신을 가지고 설교하는 것이다.토니 깜폴로 : 그리스도와 문화그는 그리스도가 문화의 ‘일시성과 다원주의’에서 사람들을 벗어나도록 인도하시지만, 문화의 변혁자로 제시하지는 않는다. ‘문화’는 발전하는 것이며 우리의 삶을 변혁시키기 위해서는 문화의 영향력을 이해해야 하는데, 텔레비전, 문화적 나르시시즘의 출현, 그리고 문화 전쟁의 도래 등의 세 가지 요소가 교회들을 문화의 희생 제물로 만들었음을 주장한다.크레이그 로스칼조 : 새로운 모델역사적으로 해 온 전도 설교의 내용은 열변에서 기쁜 소식으로 변혁될 필요가 있음을 역설하면서 전도 설교의 성공 여부는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며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일꾼들 ②사변형 방법에 근거한 설교 구조, ③실천적 이성의 추론에 근거한 모델, ④일반적인 연역적 전개, ⑤실습 모드의 구조, ⑥마음과 생각과 뜻에 근거한 모델 등의 6가지 모델이 있다.제5장 네 쪽 짜리 설교 -폴 스캇 윌슨(Paul Scott Wilson)월요일 : 시작본문을 택한 다음에 본문의 신학적 쟁점과 관심사를 알아보기 위해, ①하나님의 행동에 초점을 맞춘 주제 문장 작성, ②주제 문장에서 유추해 낸 교리 선택, ③교리가 충족시킬 회중들의 필요 파악, ④설교의 가장 두드러질 이미지, ⑤회중에게 촉구할 행동이나 실천할 내용을 정하는 등의 항목을 점검한다.화요일 : 1쪽갈등이나 ‘문제’, 즉 한 가지 아이디어를 찾아내 본문을 재구성한 뒤 본문 속에서 하나님이 하고 계신 일에 대한 주제 문장과 교리, 그리고 회중들의 필요와 두드러져 보이게 할 이미지를 소개한다.수요일 : 2쪽본문 내의 갈등에 비추어 개인, 공동체, 세상에서 그것에 공명하는 갈등을 찾아본 후 회중들이 기쁜 소식을 간절히 기다리게 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목요일 : 3쪽본문에서 기쁜 소식을 찾은 다음 다시 한 번 본문을 재구성하여 본문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상기시킨다.금요일 : 4쪽우리가 사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에 대해 말한다. 그것은 세상 속에서 찾아낸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예는 회중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 주는 것이어야 한다.율법, 복음 그리고 4쪽윌슨의 모델은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는 언제나 은혜와 대립적 인장에서 율법을 생각해야 한다는 루터의 주장을 변용한 것이다. 그러나 은혜와 율법을 정확한 비율로 섞는 것이 아니라 둘 사이의 긴장을 만들어 내는 데 있다.제6장 성경의 문학 양식에 따른 설교토마스 G. 롱 : 본문에서 설교로의 이동본문에 대한 여러 질문들을 통해 본문의 문학 양식을 면밀하게 분석한다고 하여 역사적, 문자적 또는 신학적 질문들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문학적 접근법은 설교자로 하여금 본문뿐만 아니라 그것에 대한 우리의 반응에 대해서, 또 우리 회중들을 라 ③시편과 회중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라 ④한 시편의 전체 본문을 항상 다 설교할 필요는 없다.비유 설교법토마스 롱은 비유에 접근하는 방법으로 암호(코드)와 그릇 그리고 예술의 대상으로 소개하고 있다.제7장 목회적 설교케시 블랙 : 치유 설교장애인들에게 설교하는 데 있어서 네 가지 지침은 ①일반화 주의, ②치유와 온전에 대한 정의에 열린 마음, ③하나님은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으심, ④우리는 모두 서로 의지하며 삶 등이다. 그녀는 치유설교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적 같은 변화의 주체자들이 되어야 할 상호 의존적인 공동체를 세워가는 일에 전력하는 것으로 규정한다.레오노라 툽스 티스데일 : 국지적 신학과 민속 예술로서의 설교훌륭한 설교는 회중에 대한 신중하고도 철저한 강해에서 비롯된다고 믿고 어떤 공동체의 국지적 신학을 가장 잘 반영해 주는 설교 구조는 춤꾼이나 민속예술 처럼 회중들의 입장에 서서 그들의 필요를 맞춰 주는 설교라고 말한다.크리스틴 스미스 : 설교 짜기목회 설교의 모델로서 직조공의 이미지를 제시하며 설교를 목사와 회중 사이의 친밀하고 뿌리 깊은 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과정의 틀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목회적 설교는 설교자로 하여금 회중이라는 상황 속에서 우리가 사역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그런 사실을 무시하는 것은 공동체 밖에서 설교하는 것과 같다. 우리가 설교를 만들어 가는 데 있어 회중들과 하나가 되라는 것이다.제8장 성경적 설교구약 본문의 설교구약 본문을 설교할 때 주로 하는 걱정의 하나는 단지 구약의 본문에만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지 아니면 신약과 균형을 맞추어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다. 1970년대 이래로 엘리자베스 악테마이어가 제안한 구약을 설교할 때 신약의 본문에서 짝을 찾아 설교하는 방법이 많은 도움을 주었지만, 프레드 크레독은 확신이 서지 않는 경우에는 신약 저자들에게로 눈을 돌려 볼 것을 권장한다.월터 브루그만 : 포로들에게 설교하기설교학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곧바로 구약의 ‘포로’ 본문으로 돌려놓고 오늘날 우리의 삶하라고 제안한다.해돈 로빈슨 : 성경 단락별 강해 설교해돈 로빈슨은 설교의 서론 부분이나 제1대지 부분에서 성경적 원리를 먼저 제기해 두고 나머지 부분에서는 그 원리의 적용에 대해 설명해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예화들이 성경 본문의 사상을 설명해주고 타당성과 적용을 도와주는 잠재적 능력이 있음을 강조한다.제9장 상상력을 살린 설교제임스 로더 : 성령과 설교역사적으로 대부분의 설교학자들은 설교에서 지나치게 성령을 의존하는 것은 성경에 대한 연구나 강해를 대체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여 왔다. 루돌프 보렌은 설교 준비 과정 하나하나에 성령이 임재해 주시기를 간구해야 한다고 제안하면서, 설교 준비 과정을 ①본문 안에서의 갈등, ②막간의 휴식, ③건설적인 상상의 행동, ④에너지의 방출, ⑤검증하는 것 등으로 제시하였다.폴 스캇 윌슨 : 마음의 상상력그는 상상력을 고양하고 개발되어야 할 언어의 기능으로 해석하면서 성경 본문과 우리가 처한 상황, 율법과 복음, 이야기와 교리, 목회자와 선지자 등 네 가지의 열쇠와 보편적인 극성들을 찾아볼 것을 제안한다. 상상력은 참신하면서도 성경적 믿음의 지평을 열어 주는 연결점을 찾는 일인 것이다.프레드 크레독 : 감정 이입된 상상력크레독은 설교자에게 능력을 부어 주는 것과 관련된 상상력의 역할을 설교자가 연구함으로써 회중들이 가지고 있는 상상력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회전 고리로 연결해 주는 것으로 이해하고 이것을 ‘감정 이입적 상상력’이라고 부른다.월터 브루그만 : 재상상으로서의 설교그는 설교를 한다는 것은 상상력의 활동, 다시 말하면 성경에 나오는 복음에 맞춰 현실을 재상상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그것이 신실한 제자화의 이미지를 제시하는 기능도 있다고 주장한다.바바라 브라운 테일러 : 위험을 무릅쓰는 것으로서의 상상력설교를 잘하기 위해서는 삶에서, 강해하는 스타일에서, 설교 구성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상상력을 통해 우리가 익숙하지 않은 곳들로 우리 자신을 몰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상상력을 위험을 무릅쓰라는
제 1 권 (1784 - 1910)서론 : 한국교회사 이해와 연구 방법론한국교회사 해석의 대표격이던 백낙준 박사의 선교사관(宣敎史觀)이 1970년대 이후 민경배 교수의 민족사관(民族史觀)에 도전을 받으면서 한국교회사 연구는 새로운 활력과 저변 확대되어왔는데, 1980년대 후반 이만열 교수의 실증주의적 방법론과 1990년대 김영재 교수의 개혁주의적 관점의 방법론 등이 제시되었고, 본서에서는 복음주의 전통에 충실한 총체적인 한국교회사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백낙준의 “宣敎史觀” : 1929년 출간된 백낙준의「한국개신교사」는 최초로 역사학적 연구 방법론을 통해 총체적 선교사(宣敎史)적 관점으로 한국교회사를 총체적으로 재구성한 기념비적 작품으로, 오랫동안 한국교회사 연구 방법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나, 1960년대에 들어 한국교회사 해석 방법과 사료 선택 모두에 대해 비판을 받았다.민경배의 “民族敎會史觀”과 민중신학의 “民衆史觀” : 민경배의 민족교회사관은 교회와 민족의 공통분모를 추론하여 민족에 대한 교회의 책임의식과 사명감을 고취시키고, 백낙준 박사에 이어 서구의 역사방법론을 한국교회사 방법론으로 접목시켰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그의 민족교회사관은 상반된 두 개의 공동체인 ‘교회’와 ‘민족’의 조화에 있어서의 한계의 문제와 ‘역사관념주의’의 행태인 역사 해석과 사료 선택의 주관성을 드러내고 있으며, 한국 교회사에 있어서 복음과 신앙의 역사 및 교회의 전통과 신학이 충실하게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1970년대 말부터 ‘민중사관’을 주창한 민중신학자들은 종래의 정치ㆍ제도ㆍ목회자 중심의 한국교회사 연구를 거부하고 교회사의 주체를 ‘민중’ 중심으로 재구성하였는데, 이들의 교회사 해석 기준은 교회가 얼마나 복음에 충실했는가가 아니라 교회가 얼마나 민중의 편에 서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이만열,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의 “실증주의사관” : 1980년대 이후 사관을 통해 교회사를 연구하는 경향을 극복하고 공동 작업을 통해 새로운 관점으로 한국교회사를 공부한 뒤 1845년 페레올 주교로부터 신부로 임명받고 최초의 조선인 신부가 된 김대건은 1846년 마이스트리 신부의 입국을 꾀하다가 체포되어 사역 1년 만에 순교하였다. 그는 가장 훌륭한 신앙의 모델을 조선 천주교인들에게 보여주었다.천주교에 관대했던 철종이 죽고 대원군이 등장하면서 1866년의 병인박해로 8,000여 명의 천주교 신자들과 세 명의 외국인 신부들이 순교하였으며,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 토마스가 제너럴셔먼호를 타고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오다 순교하기도 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1866년은 천주교는 물론 개신교에 있어서도 조선기독교사의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었다.조선에 있어서의 천주교 선교는 정치적 패권주의의 도구로 이용된 나머지 선교사들은 조선 정부의 권세를 인정하지 않았고 복음의 전파보다는 지나치게 정치적인 활동에만 관여했으며 제도적인 교회조직만을 강조하였다. 또한 교세 확장을 위해서는 순교도 두려워하지 않는 열정적 신앙은 있었지만 순교를 공로적인 수단으로 여긴 부분은 성경적 신앙을 모토로 했던 개신교 선교와는 처음부터 차이가 있었다.제 2 부 한국개신교 전래의 준비제4장 한국개신교 전래를 위한 노력1. 칼 귀츨라프(Karl Gutzlaff)1803년 독일에서 출생한 칼 귀츨라프는 경건주의의 중심지인 할레(Halle)대학에서 신학수업을 마치고 중국 선교사 로버트 모리슨을 통해 한국 선교의 열정을 불태우던 중 중국어 성경을 가지고 황해도 서해안에 처음으로 상륙하였다. 그는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한국인이 선하고 순수한 민족임을 알게 되었다.귀츨라프는 성경을 반포하는 일에 일차적인 관심을 기울이어 포도와 감자 재배법을 가르쳐주면서 주민들의 마음을 열려고 노력하였다. 이후 귀츨라프는 중국에서 다양한 활동을 통해 극동 선교 역사에 소중한 한 페이지를 장식한 후 1851년 숨을 거두었다.2. 로버트 토마스(Robert Thomas)토마스 선교사는 1840년 영국에서 출생하여 런던대학에서 신학과정을 마치고 런던 선교회의 파송을 받아 중국에 입국했다. 그러나 갑작않게 기여했다.3. 동양선교회, 대한(동아)기독교, 구세군 선교사들의 사상동양선교회는 18세기 감리교 신학과 19세기에 형성된 성결운동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는데, 웨슬리안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고, 그들이 갖고 있는 세대주의 재림 신앙은 북미 성결운동과 무디 성경학교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신유는 오순절 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동양선교회는 전통적인 웨슬리안 복음주의 전통과 19세기 말 미국에서 발흥한 복음주의 성결운동, 무디 부흥운동, 세대주의의 전통 모두를 계승한 것이라 할 수 있다.침례교, 즉 대한 기독교 선교사들은 학생자원운동, 나이아가라 사경회, 케직운동, 스코필드 세대주의의 신학적 전통에 영향을 받은 말콤 펜윅의 영향으로 교파를 초월해 현대주의에 대항하며 선교열을 고취시키기 위한 복음주의 연대,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 구령의 열정과 해외 선교열, 거듭남의 체험 등 당시 북미 전역에 일고 있던 복음주의 운동의 정신을 그대로 계승했다.한국선교를 시작한 구세군의 호가드 역시 구세군의 창설자 윌리엄 부스의 부흥운동의 영향을 받아 남다른 구령의 열정을 지니고 있었다. 교리적으로는 웨슬리 복음주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임박한 그리스도의 재림, 전통적인 성경관과 교리를 받아들였다. 그러면서도 한국의 구세군 선교사들은 복음주의운동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복음의 대사회적 책임을 열악한 한국에서도 실천에 옮기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제9장 복음 전래와 수용의 갈등, 그 시대적 배경은둔의 나라 조선은 외국과의 조약을 통해 세계에 개방되기 시작했지만, 서양인의 눈에 비친 조선은 빼어난 자연 경관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의 생활은 참혹하여 이중적으로 보였다.외적 환경보다 더 힘든 것은 조선인들의 심성을 장악하고 있는 불교, 유교, 샤머니즘 등으로 구성된 종교혼합주의 성격의 재래신앙과 싸우는 일이었다. 당시 조선인들은 모든 질병이 악귀로 인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으므로 정령숭배 문제는 선교사들이 해결해야 할 큰 과제 중 하나였다.1. 복음 하게 된다. 청일전쟁 이후 일기 시작한 영적 각성의 움직임이 1903년 의료선교사 하디(Robert Alexa Hardie)를 통한 원산부흥운동으로 촉발되었고, 이것이 1907년의 평양대부흥운동의 발흥으로 이어졌으며, 2년 뒤인 1909년 일종의 전도운동인 백만인구령운동이 전국적으로 전개되었던 것이다.1. 첫 영적 각성의 움직임1901년과 1902년에 접어들면서 평양, 신천, 의주를 중심으로 영적 각성 운동이 서북지역에 확대되면서 평양은 장감을 불문하고 한국교회를 이끄는 중심지로 부상하였다.2. 원산부흥운동의 발단원산부흥운동의 출발은 원산의 두 명의 여선교사가 선교사들 가운데 부흥의 역사가 있도록 기도하던 기도회가 불씨가 되었다. 기도회의 주강사였던 하디(Robert Alexa Hardie)는 성령충만을 체험하고 자신의 3년간의 선교 활동의 실패가 민족적 우월감과 교만과 자만심과 믿음의 부족 같은 죄 때문이었음을 선교사들과 교회 앞에 공개적으로 고백하였다. 그의 영적 체험과 죄의 고백은 모인 사람들의 마음을 열었고, 하디의 인도로 열린 사경회에서 ‘강한 죄의 회개’로 특징지어지는 부흥운동이 새롭게 발흥하게 되어 말씀 공부에 철저히 기초를 두는 ‘부흥회’가 보편화되기 시작했다.3. 원산부흥운동의 저변 확대1904년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하디의 원산부흥운동의 영향으로 평양과 서울과 다른 도시에서도 부흥운동의 움직임이 일기 시작하여 1905년에 접어들면서는 선교사들과 한국인 교회 지도자들과 전도부인을 비롯한 교인들이 동참하는 하나의 각성운동으로 발전하였다.제16장 평양대부흥운동1. 평양대부흥운동의 발흥일련의 정치적 위기로 민족의 소망이 기독교에 있다는 분위기가 팽배해지고 인도와 웨일즈에서 발흥한 부흥운동의 소식은 한국교회에 부흥에 대한 소망을 한층 더해 주었다. 이러한 영적 분위기가 무르익는 가운데 1907년 1월 2일부터 15일까지 열린 평양 장대현교회의 겨울 남자 사경회는 ‘한국의 오순절’이라 불렸던 놀라운 성령의 임재와 함께 전국적인 운동으로 발흥하였던 것이다.주의적 노선을 걷게 되는 데는 일제의 교활한 회유ㆍ분열 공작과 관련되어 있었던 것이다.제4장 변천하는 사회, 갈등하는 교회1.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의 발흥3ㆍ1운동을 전후로 조선의 공산주의 및 사회주의 세력이 당시에 일고 있던 민족주의운동과 반기독교운동을 배경으로 영향력을 확대해나갔다. 공산주의자들은 기독교가 제국주의자들의 영토 확장의 도구이며 자본주의 국가를 옹호하는 무기이므로 기독교를 파괴해야 한다고 선동하였고, 사회주의자들은 사회의 변화와 책임을 다해야 하는 기독교가 종교적인 측면에만 심취하는 것에 불만을 토로하였다.항일운동과 민족주의 고양이라는 측면에서 기독교에 기대했던 수많은 엘리트들이 사회주의 사상에 물들어 신앙을 버리고 기독교를 비판하는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2. 교회 밖으로부터의 기독교 비판한일합방 이후 기독교인들은 정치적인 소망 대신 종교적인 소망으로 선회하면서 사회적인 책임과 정치적인 문제를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신앙을 내향화시키는 교회지상주의 경향이 나타나자, 기독교에 대해 우호적이던 시각이 비판적으로 돌아서게 되었다.대표적인 인물인 춘원 이광수는 당시 대부분의 한국교회가 갖고 있는 교회와 세상의 구분, 이분법적인 세계관,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 결여를 신랄하게 비판하였다.3. 교회 내부로부터의 도전 : 이단의 전성시대1920년대 선교사들과 정통주의 및 기성 교회에 대한 반감과 불만이 팽배해지면서 소위 ‘한국적 기독교 수립운동’을 내걸고 여러 가지의 소종파와 이단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는 김장호의 조선기독교회, 최중진의 자유교, 이만집의 자치교, 성결교에서 파생된 하나님의 교회, 최태용의 복음교회 등이 있으며 이러한 소종파와 이단의 도전은 보수적인 전통의 장로교에 더 큰 피해를 남겼다.4. 서울과 평양 선교부의 갈등서울과 평양에 주재하는 선교사들 사이의 갈등이 1910년대에 연희전문학교 설립을 둘러싸고 표출되어 그동안 장감 연합활동의 구심점 역할을 하던 평양 숭실대학에서의 장감 협력은 종식되고 말았고, 서울에 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