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관찰 식물 : 사루비아2. 관찰 기간 : 2005년 4월 4일부터 5월 23일까지3. 관찰 장소 : 인문관 뒤 화단4. 식물에 대한 정보1 다른 이름- 샐비어, 약불꽃, 서미초(鼠尾草)2 분류 - 꿀 풀과의 한해살이풀3 특징 - 원산지에서는 여러해살이풀이며, 겉모양이 깨와 비슷하게 생겨 깨 꽃이라 하였다.4 크기- 높이 60 90cm5 개화기 - 5 10월6 분포 - 원산지는 브라질이며 세계 각국에서 널리 재배7 용도 - 관상용8 어원 - 라틴어로 '구하다'나 '건강한' '안전한' 이라고 하는 의미의 사루스 (Salvus)에서 '구하다, 치료하다' 라는 뜻의 사루비아(Salvia)라고 이름 붙여졌다. 또, Officinalis라고 하는 학명은 '약국, 약용의' 라는 뜻이다.9 재배 및 관리* 번식 - 조생종을 일찍 수확 할 경우 2월경 시설 내에 파종한다. 만생종은 단일 에서 개화 하므로 4월 하순-5월 상순에 파종 한다. 발아적온은20-2 5 , 발아율이 좋지 않은 편이다. 파종 후 5㎜정도 복토하고 신문지로 덮어두면 10-14일 후 발아 한다. 꺾꽂이로도 번식이 된다.* 옮겨심기 - 본 잎 2-3장 때 1차 ,5-7장 때 비닐 포트에 심거나, 본 잎 3-4장 때 비닐 포트에 심어 가꾼 후 화단에 심거나 모종을 출하 한다.순지르기를 하면 곁가지가 많이 나와 꽃이 많이 피지만 개화시기가 늦어진다.* 일장반응 - 만생종은 상대적 단일식물로 단일에서 개화가 촉진 되고, 조생종과 중생종은 일장의 영향을 받지 않고 개화 하나 중생종은 단일에서 약 간 개화가 촉진된다.수분관리는 건조하지 않게 관리하고, 토양은 유기질이 많은 화산회 토가 가장 좋다.씨앗이 여물면 자연적으로 땅에 떨어지므로 여물기 직전 회색일 때 수확하여 이듬해 사용한다.꽃대가 짧아 꽂꽂이용 으로 사용하지는 않고 화단이나 플라워박스 에 즐겨 심는다.관찰 날짜 : 20005년 4월 4일 월요일날씨 : 맑음관찰시간 : 오전 9시 30분관찰 내용1 사루비아의 길이 - 45cm2 사루비아의 상태 - 둥근 모가지들마다 깻잎 모양의 잎이 있고 잎의 모양은 끝이 뾰족하고 밑 부분이 넓으며 뭉 툭하고 톱니가 있으며 잎 뒷면에는 하얀 솜털이 나있다. 그리고 가장 큰 잎을 골라서 길 이를 재어 보니 잎의 길이는 5.3cm 였다. 또 잎 중에서 손톱 크기만 한 작은 잎을 제외 하고 큰 잎만 세어 보니 잎의 개수는 52개 였다.3 사루비아가 화단에 많이 심어져 있어서 앞으로 내가 관찰하게 될 사루비아에 리본을 묶 어 표시를 해 두었다.어릴 적에 빨갛게 피는 사루비아 꽃을 친구들하고 꿀물이라며 먹었던 생각이 났다.언제쯤 꽃이 필까?관찰 일기처음 쓰는 일기이다. 어느 나무를 고를까 망설이다 시기가 너무 늦춰지고 말았다. 늦춰진만큼 자주 써야 할 듯 하다. ㅠ.ㅠ사루비아라는 꽃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 길가에 나있던 그 꽃을 따서 끝을 빨아 먹으면 달콤한 꿀같은 액체가 나왔다. 그 꽃을 먹었던 추억이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아 이 사루비아로 일기를 쓰기로 정했다.초등학교의 아름다운 추억처럼 이 일기를 쓰며 좋은 추억을 만들고 싶다. 그런데 한가지 걱정이 있는데.. 이 식물이 사루비아가 맞나? ;; 아닌거같기두 하구..관찰날짜 : 2005년 4월 7일 목요일날씨 : 맑음관찰시간 : 오후 2시 25분관찰 내용1 사루비아의 길이 - 53cm2 사루비아의 상태 - 4일 날 처음으로 관찰을 할 때 보다 잎과 줄기의 색깔이 더 파랗게 변한 것 같다. 잎의 개수는 손톱만 했던 잎들이 자라서 61개가 되었다.관찰 일기날씨가 너무 따뜻하다. 덥기까지하다. 이날씨가 과연 4월초의 날씨인가 ㅡㅡ;; 따뜻한? 날씨 덕분인지 우리 사루비아의 못본사이 많이 컸다. 나도 좀 크지;; 부럽다 사루비아. 아무튼 사루비아의 입과 키가 자라서 기분이 좋다. 아구 잘큰다 내새끼 ㅋ날씨도 맑아서 그늘에서 사루비아를 보고 있다. 그런데 왠지 우리사루비아보다 옆에있는 사루비아가 더 빨리크는 거 같기두 하구.. 그래서 조금 괴롭혀 줬다. ㅎㅎ우리 사루비아보다 크면 안돼~관찰날짜 : 2005년 4월 12일 화요일날씨 : 맑음관찰시비아의 상태 - 잎 끝부분과 잎 전체의 색깔이 누렇게 변한 잎들이 보인다. 잎의 수 를 세어 보니 누렇게 변한 잎을 빼고 66개이다. 뿌리 쪽에 가까운 줄기 부분 역시 저번 보다 색이 연하게 변한 것 같다.관찰 일기아니 지난번까지만 해도 초여름같았던 날씨가 갑자기 싸늘해졌다. 우리 사루비아도 왠지 힘이 없는 듯 보이기두하구..(나만의 느낌인가?) 관찰 내용에 나와있듯이 잎도 누런 것이 날씨때문인거 같다. 아침저녁으로는 매우매우 추운 느낌이 든다. 빨리 빨리 따뜻해져야 할텐데..사부리아 줄기 밑으로 개미들이 지나가고 있다. ㅎㅎ 열심히 일하는 개미들을 위해서 나는 입으로 강한 바람을 불어주었다. 개미들은 놀랐는지 입에 물고있던 음식?들을 놓치고 도망가기 바뻤다. 역시 나는 나쁜사람? ㅡㅇㅡ 왜 죄없는 개미들을 괴롭힐까... 쩝..개미야~ 미안해 ㅋ관찰날짜 : 2005년 4월 18일 월요일날씨 : 맑음관찰시간: 오전 10시관찰 내용1 사루비아의 길이 - 64cm2 사루비아의 상태 - 처음 관찰하던 날보다 사루비아의 길이가 19cm나 자랐다. 큰 잎을 하나 따서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길이를 세어 보니 7.4cm 였다. 잎의 길이 역시 처음 관찰하던 날보다 2.5cm 가량 자라 있었다.그리고 원줄기를 제외하고 원줄에 뻗어 있는 두 번째 줄기들을 세어 보니깐 11개였다.3 12일 날 관찰 할 때 잎과 줄기의 색이 누렇게 변해 있어서 무슨 이유일까 고개를 갸우 뚱 했었는데 오늘은 줄기와 잎의 색깔이 푸르게 변하고 길이도 자라 있어서 다행이다.관찰 일기덥다;; 이게 여름인지 4월달날씨인지.. 더운걸 무지 못참는 동민이는.. 이런날이 너무 싫다. 더군다나 오늘 옷을 두껍게 입고와서 ㅠ 땀이 이마에 맺히고 있다. 오늘은 친구와 밥을 먹기위해 기다리고 있다. 기다리는 시간을 이용하여 관찰두 하구 일기도 쓰고 있다. 그런데 친구가 수업시간이 끝났는데 안나오고 있다. 나쁜X 주겄어~ 사며 투덜투덜 밥사라구해야지 투덜투덜 거리며 배고픈 배를 죄없는 우리 사루비아가 아닌 옆에 있는 사 나에게 괴롭힘?을 당하여서인지 요즘 시들시들한거 같기두하구.. 그렇다구 옆에있는 사루비아까지 관찰내용을 쓰기에는.. 내가 너무 게으르다. ^^관찰날짜 : 2005년 4월 20일 수요일날씨 : 흐림관찰시간 : 오전 11시관찰 내용1 사루비아의 길이 : 66.5cm2 사루비아의 상태 - 사루비아의 길이는 3cm가 조금 못되게 자라 있었고 가지와 줄기 끝 에 솜털이 있는 작은 잎이 자라고 있다. 잎이 너무 작아서 아직 길이를 재는 것은 무리 일 것 같다. 또 오늘은 잎을 떼어서 그 모양을 자세히 관찰해 보았다.잎의 모양은 정말 깻잎과 비슷하다. 사루비아를 일명 깨꽃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 것 같다. 7cm 정도의 잎자루를 따라서 달걀처럼 길쭉한 모양으로 생긴 잎 몸은 하나의 밀선 이 있고 밀선을 따라서 마주하는 많은 잎맥들이 있다. 잎맥의 수를 세어 보려고 했는데 그 수가 너무 많아서 밀선과 연결된 첫 번째 잎맥의 수만 세어 보니 왼쪽으로 4개 오른 쪽에 4개로 그 수가 같았다.3 사루비아의 상태를 관찰하면서 관찰한 내용을 설명하는데 내가 알고 있는 꽃을 구성하는 요소는 줄기, 잎, 꽃받침, 암술, 수술 정도가 전부여서 어떤 말로 나타내야 하는지 잘 몰 라서 오늘 관찰한 잎의 모양을 설명하기 위해서 식물도감을 찾아보게 되었고 처음으로 잎을 잎자루, 잎 몸, 밀선, 잎맥이라고 말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관찰 일기비닷~ 난 비가 오느날이 좋다. 비가 오면~ 세상이 깨끗해지는 것 같고, 비를 맞으면 어릴적 친구들과 비를 맞으며 놀았던 기억이라던지, 영화속의 주인공이 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왕..자병인가? ㅋ아무튼 비가 오니 오늘따라 사루비아도 예뻐보이고, 세상도 예뻐보이고 나두 예뻐보이고;; 그래서 집에와서 사루비아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기로 하였다. 오랜만에 식물공부를 했다. 어려웠다, 초등학교때 배운것들인데 물관 체관도 생각이 가물가물할정도로 내 머리는 돌인 것 같다.아무튼 그건 그렇구 흠.. 이것이 다컸나? 우리 사루비아 옆으로?는 조금 늘어나느데 위로 안큰다 : 맑음관찰시간: 오후 3시 40분관찰 내용1 사루비아의 길이- 69cm2 사루비아의 상태 - 20일 날 처음으로 줄기 속에서 하얀 솜털 속에 있는 잎을 관찰 했었는데 오늘은 그 조그맣던 잎이 제법 자란 것 같다. 잎의 개수를 세어 보니 75개였고 원줄기를 제외한 두 번째 줄기의 수는 16개였다.관찰 일기인내심의 한계, 언제 나는 우리 사루비아의 꽃을 보고 그 꽃의 꿀(열매)을 먹을수 있을까?솜털속을 갈라서 그 안을 먹으면 맛있지 않을까? 생각할 정도로 빨리 꽃이 폈으면 좋겠다.으~ 그리고 관찰하는데 꽤 오랜시간이 걸린다.전형적인 봄의 날씨이다. 하늘엔 구름도 별로 없고 날씨도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나들이하기엔 너무나 좋은 봄이다.우리 사루비아도 이런 날씨에 행복해 하고 있는 듯 잎도 자라고, 봉오리도 생기구 기특하다 사루비아야 ^ㅇ^관찰날짜 : 2005년 4월 27일 수요일날씨 : 맑음관찰시간 : 오전 11시 10분관찰 내용1 사루비아의 길이 - 74cm2 사루비아의 상태 - 4일 만에 관찰 하러 온 사루비아는 무쩍 자란 것 같다. 잎의 길이를 재어보니 8cm 였고, 또 솜털 속에 있던 잎은 그 길이를 재어 보니 2.2cm이다.3 사루비아 꽃의 꽃말은 나의 마음은 불타고 있다. 는 의미로 열정, 지식의 발달, 세 력, 정조, 지혜 등을 나타낸다고 한다. 또 내가 그동안 봤었던 사루비아는 모두 꽃의 색 이 다홍색을 띠는 붉은 색이였는데 사루비아 중에는 보라색, 연한 노란색을 띠는 사루비 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관찰 일기마음이 불타는것, 마음이 타들어갈만큼 절실한 마음이라는 것. 그것이 사루비아의 아름다움을 가져다 준것일까? 열정이라는 것 나에게는 너무나 부족한 단어이다. 나는 모든일에 의욕과 열정이 부족한 것 같다. 사부리아의 열정처럼 나의 인생에 열정이 있을수 있다면..오늘 사부리아의 열정이 너무나 지나쳤는지, 날씨가 너무 덥다ㅎㅎ 그게 무슨상관이냐고 한다면 뭐 할말없지만... 그런데 우리 사루비아 너무 많이 큰다. 이게 나무야 풀이야? 분명히 풀과~
처음으로 가는 고적답사, 교양으로 듣게된 고적답사의 이해에서 가게된 백제의 유적과 유물들을 보기위한 답사이다.토요일 9시 우석대 정문앞은 평소와는 다르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날씨는 구름이 끼었지만 초등학생이 소풍가는것처럼 나는 마냥 신나기만했다.공주와 부여, 익산 이 세군대를 간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우선 공주로 향하는 버스, 상당히 오랜시간동안 버스는 계속 달리었다. 주변의 경치를 보며 가장 처음 도착하는 곳은 어딜지 생각해 보았다.처음 도착한 곳은 공주국립박물관이었다. 수업시간에 비디오로 보았던 무령왕릉의 여러 유물을 볼수 있었다. 일본에서만 자란다는 금송, 왕과 왕비의 관들과 여러 유물들을 보고 처음에 사진을 찍었다가 관리자분들께 혼이 나기도 하였다. 카메라의 플래쉬가 유물에 손상을 줄수도 있기 때문에 박물관내에서 촬영하면 안된다는 기본상식조차 워낙 박물관에 와 본적이 없는 나는 잘 모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무령왕릉의 여러 금 세공품들과 세밀학 유물들을 보며 백제시대에 어떻게 저런 물건들을 만들 수 있었을지 신기하기만 하였다.박물관 안에서 할수 있는 지점토를 이용한 기와모양을 만드는 공예실습장소가 있었다. 그곳에서 지점토를 사서 만들어 보기도 하였다.박물관에서 나와 두 번째로 향한 곳은 우금치전적지였다.우금치는 1894년 동학농민군이 관군과 일본군의 연합군을 상대로 최후의 격전을 벌인 곳이라고 하였다. 동학농민군이 압도적인 화력의 일본군을 맞아 처절하게 전투를 벌였지만 결국은 패하고 말았던 장소, 이곳에서 농민군의 시체가 산을 쌓았다고 하니 그 처절함이 상상이 가지 않는다. 요사이 우익화와 망언등으로 일본과의 관계가 불편해지고 있는 지금 이곳 우금치 전적지에 와보니 좀더 숙연해 지는 느낌이 들었다.다음으로 향한곳은 부여 부소산성이었다. 마강 남쪽 부소산을 감싸고 쌓은 산성으로 사비시대의 도성이다.『삼국사기』「백제본기」에는 사비성 소부리성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성이 위치한 산의 이름을 따서 부소산성이라 부른다고 한다.웅진(지금의 공주)에서 사비(지금의 부여)로 수도를 옮기던 시기인 백제 성왕 16년(538)에왕궁을 수호하기 위하여 쌓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동성왕 22년(500)경에 이미 산 정상을 둘러쌓은 테뫼식 산성이 있던 것을 무왕 6년(605)경에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한 것으로 짐작되어 백제 성곽 발달사를 보여주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고 한다.또다시 버스를 타고 얼마를 가다 내린 곳은 낙화암 고란사였다.고란사 절 후면의 암벽에서 자라고 있는 고란초에서 이름이 유래되는 이 절은 고려시대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낙화암과 인접해 있고 고란초와 약수로 유명한데 특히 이 약수는 백제 마지막 왕인 의자왕이 즐겨 마셔 어용수라고 불리웠다.현재 고란사 건물은 은상 숭각사를 옮겨온 것으로 1959년 고쳐 지을 때 대량 밑에서 고란사 상량문이 나왔는데 이에 의하면 정조 21년(1797)에고 고쳐 지은 사실이 있는 건물이다. 또 그 이전으로 올라가는 상량문도 있었다고 하나 종이가 삭아서 판독할 수 없었다고 한다. 현재는 이 대웅전 좌측에 요사채가 있고 우측으로 범종각이 위치하고 있다.대웅전은 정면 7칸, 측면 4칸의 규모가 비교적 큰 불전건물인데 좌측 2칸을 요사로, 나머지 5칸에는 모두 우물마루를 깔고 후면 중앙부분에 긴 불단을 조성하였다.다음 방문한 유적지는 정림사지 5층석탑, 버스를 타고 내린곳에는 넓은 잔디밭이 펼쳐져 있었다. 가운데에는 정림사지 5층석탑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주위로 호수가 있어 더욱 운치가 있어 보였다. 뒤로 보이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보니 커다란 돌부처가 있었다. 돌부처의 머리는 맷돌로 쓰던것이라 뒤에 구멍이 있다고 교수님께서 설명해 주셨다. 섬세하지는 않았지만 돌부처는 인자함의 부처를 잘 표현하고 있었다.백제가 부여로 도읍을 옮긴 후 6세기 말에 세워진 석탑이라고 설명에 써있었다. 그리고 가장 눈에 뛴 것은 국보 제9호, 익산 미륵사지 석탑과 함께 백제 시대 석탑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써있었다. 하지만 이 국보 9호의 관리는 무릎도 오지 않는 낮은 철제구조물로로만 이루어져있었다. 사람들에게 조금도 유물의 중요성을 알리고 관리를 할 필요성이 보였다.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하지만 답사는 아직 끝을 알수 없었다. 힘을 내어 다음 향한 곳은 부여 박물관이었다.1929년 부여고적보존회가 발족되어 옛 객사 건물에 백제관을 개관하면서 박물관으로 발전하였다고한다. 1939년 4월 일제 총독부박물관 부여분관이 되고, 1945년 8 15광복과 함께 한국의 국립박물관 부여분관이 되었다. 1975년 국립부여박물관으로 승격하고, 1993년 8월 현재의 건물로 이전하였다. 2002년 1월 현재 1만 3000여 점의 유물을 소장하였으며, 그중 1,000여 점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건물 설계 당시 한국의 전통양식을 도입하여 8각형의 중정을 중심에 두고 상설전시실인 선사실 역사실 불교미술실과 야외전시실을 배치하였다. 선사실에는 부여지방을 중심으로 충남지역에서 출토된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 유물들을, 역사실에는 사비시대의 백제 유물과 삼국시대 유물들을 전시하였다. 불교미술실에는 사비시대 백제의 불교미술품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야외전시실에는 불상과 석탑 등의 조각품들이 전시되어 있다.또다시 버스에 타서 익산으로 향하는줄 알았지만 한곳 더 남은 곳이 있었다. 백제왕릉원, 능산리 고분이라 불린다.왕릉으로 추정되는 무덤 7기는 3기씩 앞뒤 2열을 이루고 그 뒤로 1기가 떨어져 있으며, 1915~1937년 일본학자가 여러 차례 조사하였다고한다.이들 고분 중에는 산구릉의 남쪽 경사진 면에 남북으로 길게 직사각형의 석곽을 쌓고 남쪽 벽 방향에 널길을 만든 뒤, 원형의 봉토 아랫부분에는 호석을 두른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1호분은 잘 물갈이한 편마암 벽에다 사신을 그렸는데, 이는 고구려 강서삼묘리고분군과 퉁거우 사신총의 경우와 유사하다. 대부분 도굴되어 유물은 별로 남아 있지 않고, 두개골 파편, 칠을 한 목관조각, 금동제 장신구 등이 소량 전해지고 있을 뿐이라고 한다.매장방법은 1 2 3호는 어울무덤 형태이고, 5호분은 홑무덤으로 추정된다고한다. 시신의 머리 방향은 북쪽을 향하고, 관이 놓인 바닥은 돌을 벽돌모양으로 잘라 깔아 놓았다.
포레스트검프를 보고1) 줄거리포레스트 검프는 주인공의 이름이다. 검프, 그는 지능이 낮은 아이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지능이 낮음을 원망하지 않는다.어릴 적부터 검프는 엄마의 사랑을 받고 자란다. 검프의 엄마는 검프의 허리가 똑바로 자랄 수 있도록 교정도 해주고, 검프를 특수학교에 보내지 않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검프에게 항상 힘이 되는 말을 해준다. 검프는 그런 엄마의 사랑을 받으며 일반학교에 진학하게 되고, 처음으로 자신에게 말을 걸어준 제니를 만나게 되어 첫눈에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그런 검프를 일부 아이들은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괴롭히며 쫓아다닌다. 검프는 그들을 피해 뛰어 도망 다닌다.고등학생이 된 검프, 아직도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들을 피해 뛰어 도망 다닌다. 어릴 적부터 너무나 많이 뛰어서인지 검프는 달리기에 소질을 나타내기 시작하구, 미식축구 감독의 눈에 뛰어 미식축구선수로서 대학에 가게 된다. 그런 검프를 엄마는 너무나 대견하게 생각한다. 대학생활 중에도 검프는 다른 학교에 다니고 있는 제니를 그리워하며 찾아가지만 제니는 그런 검프가 못마땅하기만 하다. 제니는 검프가 자신을 좋아하고 있는 것을 알지만, 그런 검프를 받아들이지는 못한다.대학교를 졸업한 뒤 군대에 가게 된다. 군이란 곳은 자신의 생각을 실현 하는 곳이 아닌 단지 명령만을 실행하는 곳이기에 검프는 빠르게 적응해 간다. 집안 대대로 새우 잡이를 하는 흑인친구 버바를 군대에서 만나게 된다. 그리고 제니를 그리워 하던중 그 근처 술집에서 또 다시 제니를 만나게 되지만, 가수를 꿈꾸는 제니는 또다시 검프를 외면하고 떠나고 만다. 검프는 전쟁이 한창중인 베트남으로 향한다.베트남의 전장, 전쟁터답지 않게 군인들은 바비큐와 맥주를 마시고 있다. 그 가운데 검프의 상관 댄중위를 검프는 만난다. 댄중위는 집안대대로 미국의 전쟁에서 전사한 전쟁영웅의 가문출신으로 검프는 그런 댄중위를 만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검프는 제니를 못 잊고 매일매일 편지를 쓰며 생각한다.그러던 어느 날, 검프의 소대는 베트콩들에 의해 공격을 받게 되고 소대원 대부분이 부상, 실종 당한다. 검프는 자신의 친구 버바를 찾기 위해 다시 위험한 전장을 향해 뛰어가지만 버바는 찾지 못하고 다른 소대원들과 댄중위만 구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찾으러 가 자신도 부상을 입으며 버바를 구하지만 이미 늦은 버바는 검프의 품에서 죽고 만다.검프는 후방 군병원에 입원 하게 된다. 그의 옆 침상에는 검프가 구한 댄중위가 두 다리를 잃은 채 누워있다. 댄중위는 검프에게 자신을 전쟁의 영웅으로 죽을 수 있는 영광을 왜 빼앗았느냐며 울부짖는다.군 병원에서 검프는 탁구를 배우게 된다. 그는 탁구에 대해 천부적인 소질을 보인다. 그러던 중 소대원을 구한 공로로 수도로 이송되어 명예훈장을 타게되고 또다시 우연히 제니를 만나게 된다. 검프와 제니는 밤새 이야기를 나누지만, 제니는 다른 남자를 따라 다른 곳으로 또다시 떠나고 검프는 다시 군으로 돌아가게 된다. 검프는 군에서 자신의 특기인 탁구로 활약하게 되다 전역한다.전역 후 탁구채 광고료로 받은 돈으로 버바의 꿈이었던 새우잡이 배를 사서, 새우잡이 어선의 선장이 된다. 처음에는 어려움이 많았지만, 댄중위와 같이 폭풍우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난 이후부터는 모든 것이 순조롭게 풀려가기만 한다.새우잡이 어선의 선장에서, 가공공장 사장으로, 또한 그 돈을 다른 회사에 투자하여 검프는 백만장자가 된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허전함이 남아있으며 그 허전함에는 제니의 빈공간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러는 사이 제니는 몸과 마음을 버리며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다.검프의 엄마는 성공한 아들을 자랑스러운 모습으로 바라보며 생을 마치고, 자신만을 바라봐주던 엄마의 죽음은 더더욱 검프를 힘들게만 한다. 그런 검프에게 제니가 찾아온다. 제니는 아무 일 없었던 듯 예전처럼 검프를 대하며, 그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하룻밤을 보내지만 그다음 날 아침 검프를 떠난다.제니가 없어진 검프는 달리기 시작한다. 달리고 또 달리어, 미국을 횡단하지만 멈추지 않고 달린다. 그의 달리는 모습은 뉴스에 방영되어 제니가 그 모습을 보게 된다. 제니의 연락을 받은 검프는 제니를 찾아가고 그곳에서 제니와 자신의 아들 포레스트를 보게 된다.제니와 아들 검프, 셋의 생활을 즐겁기만 하다. 하지만 제니는 불치의 병에 걸려 오래 살수 없는 상황, 하지만 검프는 제니에게 청혼하고 둘은 결혼을 하게 된다.얼마 후 제니는 죽지만, 검프는 자신의 아들을 위해 자신의 엄마가 했던 것처럼 최선을 다하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2) 대상의 특성포레스트검프의 주인공 검프는 지능이 75정도인 경도의 정신지체인이다. 아버지가 없지만 그의 엄마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점을 내색하지 않고 아들을 훌륭하게 키우고자 최선을 다한다.어릴 적부터 다른 사람과 다른 말투와 행동, 다리의 보조기구 때문에 다른 아이로부터 놀림과 괴롭힘을 받는다. 하지만 괴롭힘에 대하여 좌절하지 않고 꿋꿋이 뛰어서 도망을 다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미식축구 선수에 이르게 된다.검프의 표정은 대부분 무표정이며,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솔직히 표현하는 순수함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순수함은 다른 이들에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 도움을 주게 된다. 그는 다른 사람과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에게 말을 거는 사람은 많지 않다. 처음으로 그에게 말을 건넨 제니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며, 군대에서도 처음으로 만난 버바와 우정을 나누게 된다.3) 환경검프의 집은 여행객들의 방을 하숙하기에 항상 사람들로 붐빈다. 그는 하숙하는 사람들과 여러 만남과 이야기를 가지게 된다. 또한 주위에는 숨 막히는 도심이 아닌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이 있으며, 그의 곁에는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는 소꿉친구인 제니가 있다.하지만 그 모든 사람보다 그에게 힘을 준 사람은 검프의 엄마이다. 검프의 엄마는 제나 검프에게 도움을 주며 힘이 되는 말을 해주었다. “너는 남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아”라고 말하며 남들이 검프를 향하여 잘난 척 할수 없는 사람이 되고자 최선을 다하였다. 이러한 검프를 향한 사랑은 검프의 성공에 있어서 매우 큰 영향을 주었다.검프와 제니의 환경은 영화 속에서 대비된다. 검프는 비록 장애를 같고 있지만 자신을 사랑해주는 엄마와 주위사람들, 그리고 아름다운 집과 친구들을 가지고 있지만, 그에 반하여 제니는 어릴 적부터 학대하는 아버지, 낡은 집과 자신들을 때리는 친구들이 나온다. 결국 제니는 방황하며 자신의 인생을 실패하지만 검프는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성공한다. 영화속에서의 환경의 중요성을 볼 수 있는 부분이다.4) 교육(지원)방법검프는 특수학교에 가야하는 지능이었으나, 엄마의 강력한 요구로 인하여 일반학급에 남게 된다. 그 후 제니와의 감정적 교류를 통하여 많은 견문을 넓히게 되며, 비록 공부로서는 아니지만 운동으로서 학사과정까지 이수하게 된다.그의 달리기에 관한 재능에 의해서 였으며, 교육의 지원이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그가 그 재능을 발휘 할 수 있던 뒷 바탕에는 엄마와 제니가 있었다. 제니는 검프를 괴롭히던 아이들이 나타나면 검프에게 뛰어 달아나라 소리쳤고 그 소리를 들으면 검프는 언제든지 뛰어 달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의도하지 않은 훈련이 계속되었고 검프의 재능은 그를 미식축구 선수로 만들게 되었다.물론 무조건 특수아가 일반학급에 남으려 하는 것은 아이에게 더욱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 할 수도 있다. 검프가 학교 초기부터 어른이 되어서까지 아이들의 놀림과 폭력에 도망 다녀야 했던 것에서 그런 점을 찾을 수 있다.5) 교사, 부모, 지역사회의 태도영화안의 검프에게 있어 교사의 중요성은 강조되지 않았다. 오히려 초반 부정적인 인식의 교사상이 잠시 나왔을 뿐이다. 검프에게 있어 교사는 엄마, 제니, 사람들 그리고 세상이었다.엄마는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설명해 주었고, 제니는 정서적 안정과 함께 사랑을 알려주었다. 세상은 검프에게 복잡하게 느껴졌으나 그 세상에서 여러 친구들을 만났으며, 검프의 다양한 재능(달리기, 탁구실력, 순수성 등)은 검프를 세상에서 당당히 성공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1~3페이지 : 내용요약4페이지 : 나의 견해평범한 마을의 평범한 중개업자인 요제프 기벤라트의 아들 기벤트라 한스. 하지만 한스는그러한 평범한속에서 천성적 재능을 타고난 아이였다.어머니는 오래전 돌아가시고 아버지와 함께 사는 한스는 희망없는 시골 평범한 마을 슈바르츠발트의 신비스런 불꽃 같은 존재였다.사람들은 누구나 한스의 재능을 인정하며,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길을 가게 될것이라 생각했다. 그 유일한 길은 을 통과하는 것이었다.한스는 마을에서 유일한 수험생이었으며, 교장 선생의 그리스 어 과외 수업, 마을 목사의 라틴어와 종교의 복습등, 많은 수업을 들어야 했다.또한 항상 과외수업으로 밀린 숙제등으로 집에 돌아와서도 밤까지 밀린 숙제를 하였다.이러한 한스를 보며 교장선생님과 마을사람들은 합격할거서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한스의 몸과 마음은 지쳐만 갔다.시험전날 구둣방 주인 플라이크는 한스에게 낙제의 가능성을 말해주지만 목사는 그런 일을 부정하며 합격만을 이야기 한다.118명중 36명만 합격되는 소식에 한스는 심적 압박감을 느낀다. 한스는 시험을 잘 치르지만, 그리스어에서 시험을 망쳤다 생각한다.시험을 마치고 마을에 돌아온 한스. 아버지는 시험에 합격한 것처럼 아들을 대한다. 그러한 아버지에게 한스는 시험에 떨어질 경우 김나지움에 가고 싶다하지만 아버지는 단호하게 거절한다.그러한 한스는 학교에서 차석으로 합격한 소식을 듣게 된다. 아버지는 아들을 자랑스럽게 바라보며 아들이 하고 싶어 했던 낚시를 위하여 돈을 준다.한스는 그동안 공부 때문에 하지 못했던 낚시와 수영, 산책들을 한다. 다른 친구들은 수업을 받아야 하지만 자신은 수업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자랑스러워 한다. 오래만에 자유로움을 느끼는 한스, 하지만 교장과 목사는 한스에게 신학교에서 배워야할 공부에 대해 이야기하며 방학동안에 시간을 내어 공부하자 제안한다. 한스는 신학교에서 뒤쳐지지 않기위해 그것을 따르기로 결정한다. 그러한 공부 때문에 한스는 또다시 수영과 낚시, 산책들을 거의 하지 못하게 된다.이 말을 들은 구둣방 아저씨는 목사와 교장을 비난하며 한스에게 휴식을 취할 것을 이야기하지만 한스는 잊고만다.신학교 기숙사에 들어오게 된 한스, 기숙사는 지금까지 지내온 생활과는 너무나 다른 곳이었다. 아버지는 한스에게 가문의 명예가 될 것을 당부한다.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이제 기숙사라는 곳에서 같은 생활을 하게 되었다. 한스는 9명이 생활하는 헬라스의 방에서 기거하게 된다.소년들은 각자의 개성들이 강하였다. 한스는 그곳에서 하일너를 만난다. 하일너는 입학시험의 작문을 음문으로 쓸 정도로 시를 좋아하며, 자유분방한 소년이었다. 하일너는 학생들이 패기가 없으며, 악착같이 공부만 하며, 한스도 이와 같다고 한다. 또한 를 느끼지 않고 형식만을 공부하는 수업형식을 비판한다.그날 하일너는 같은방의 학우와 격투를 하게 된다. 격투가 끝난후 하일너가 울음을 터트리자 학생들은 부끄럽지 않냐 묻지만 하일너는 전혀 부끄럽지 않다고 한다.한스와 하일너의 우정을 깊어져갔다. 한스는 공부시간을 쪼개어 하일너와 말상대를 해주었다. 하일너는 한스가 공부만 하는 것에 이론을 내세워 대하여 공격하였다. 한스는 하일너가 책에 해놓은 낙서를 보고, 지금까지 책을 소중하게만 해왔던 자신과의 다른 이런 하일너의 행동을 나쁜짓과 영웅적인 행동이라는 두가지의 생각을 갖게된다.하일너는 교장의 노여움을 사게 되고, 큰 금고형을 받게 된다. 모든 기숙사의 학생들과 하일너를 피하며 따돌린다. 우정에 대한 의무와 명예심과의 싸움에서 결국 한스는 하일너의 편이 되지 못한다. 그러한 한스에게 하일너는 비겁하다 비난한다. 크리스마스이브 학생들은 모두 집에 가게 되었다. 여러 사람들은 한스의 야위고 창백한 얼굴을 묻지만 한스는 건강하다고 대답한다. 목사또한 젊은시절에는 두통으로 괴로워했다고 말한다.학교로 돌아온 한스, 1월의 어느날 헬라스 실의 학생들중 얌전하고 눈에 뛰지 않았던 힌딩거라는 아이가 물에 빠져 죽게된다. 한스는 히딩거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하일너에게 용서를 빌며 다시 친구가 되어주라 말한다. 손을 꽉 잡으며 하일너와 한스는 우정을 확인한다. 기숙사의 선생님들은 모범학생인 한스가 요주의 인물로 지목되고 있는 하일너의 나쁜영향에 물들어가는 것을 놀란 눈으로 본다. 교장선생은 한스를 불러 하일너와 교재를 금할 것을 조언한다. 그러며 말한다. “..지쳐서 주저앉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 그러다가는 수레바퀴 밑에 깔리고 말 테니까......”하지만 한스는 성적의 하락이 하일너의 우정때문이라는 것을 알지만 한스와의 우정을 배신하는 것은 비겁하다며 거절한다.그사이 한스의 건강은 더욱 나빠졌다. 뱅거와 말다툼긑에 심한 격투를 벌였다. 한스는 엄청나게 얻어맞고, 그 부끄러움과 아픔과 분노로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후 한스는 다른 학우들과 절교하였다.한스는 신경성의 일시적 신경쇠약에 빠지게 된다. 매일 혼자 산책을 하라는 교장의 당부를 들은뒤 산책을 한다. 하일너는 혼자 산책하나는 교장의 말을 어기고 같이 산책을 한다. 교장은 그런 하일너를 자신의 방으로 불러 혼내려 하지만, 하일너는 교장의 말에 복종하지 않고, 학교기숙사에 몰래 빠져 나간다. 그 일로 인하여 결국 하일너는 퇴학을 당하고, 하일너또한 신경쇠약으로 인하여 학교를 그만두게 된다.집으로 돌아오게 된 한스,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린것과 하일너와 힌즈가 죽는 악몽에 시달린다. 그러한 한스는 죽음을 생각한다. 죽음으 장소를 정하며 아버지와 헤일너 앞으로 편지를 쓴다. 하지만 지금까지 잊고왔던 마을의 모습을 보며 자살을 포기한다.가을, 한스가 어렸을적 한스는 에마라는 소녀를 사귀고 싶어했던적이 있었다. 하지만 한스의 부끄러워하는 성격으로 인하여 그럴수 없었다.마을에서는 가을 사과를 추수하여 과즙을 짜고있었다. 구둣방 아저씨의 집에서 한스는 다시 에마를 만나게 된다. 아름다운 에마에게 한스는 부끄러워 어쩔지를 몰라한다.에마의 모습들을 볼때마다 한스는 심장의 고동침을 느낀다.한스의 아버지는 한스가 기계공이나 사무원둘중 어느쪽이 될것이냐 묻는다. 한스는 지금까지 해오지 않았던 육체노동을 생각해보고, 마음내키지 않아한다. 그리고 그보다 더 급한 에마를 만나기 위해 골목길을 나선다. 에마를 만나러 밖에서 서성거릴때 에마가 나온다. 에마는 한스에게 다가와 키스한다. 생명을 빨아들이는 것 같은 에마의 키스에 한스는 격렬한 떨림이 전신을 타고 흐른다. 에마는 내일 밤 또 보자 말하고 집으로 들어갔다.한스는 옛 친구인 아우구스트에게 기계공에 대해 물어본다. 기계공은 힘든일이라 말하는 아우구스트, 하지만 한스는 기계공이 되기로 결심한다.에마와 또 다시 만나 키스를 하는 한스, 하지만 한스는 에마의 키스와 장난스러움에 어지러워 하며 일어서 나간다.그리고 에마는 떠났다. 한스에게 아무런 말도없이.. 한스는 그동안 에마와의 일을 회상하며 에마는 자기를 진지하게 상대한 것이 아니라 생각한다.
진화론에 대하여주제 : 여러 가지 진화론의 학설1. 서론1) 진화론의 발생 기원(1) 진화론의 발표2. 본론1) 진화론의 발전과정과 여러학설(1) 라마르크의 학설(2) 파스퇴르(3) 다윈의학설1. 다윈의학설2. 다윈학설의 문제점3. 다윈학설이 사회에 끼친 영향(3) 성장지체설(4) 혈연선택설3. 결론진화론이냐 창조론이냐는 풀수 없는 미스테리창조론과 대조적인 진화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창조론이냐 진화론이냐를 놓고 수많은 의견을 내놓고 있다. 아직 신입생인 내가 정답은 창조론이다 진화론이다를 확정지을수 없지만, 교수님께 들은 강의 내용과 인터넷을 이용 진화론에 대하여 조사해보았다.진화론은 1809년 프랑스의 동물학자이며 철학자인 라마르크에 의해 처음으로 발표되었다. 라마르크가 1809년에 발표한『동물철학』에는 나중에 이르러 라마르크 진화론으로 부르게 되는 라마르크의 사고가 명확하게 기술되어 있다.라마르크는 2개의 원리를 기간으로 하여 진화론을 전개하였다.첫번째 원리는 ‘ 용불용설’로 불리고 있다. 용불용설이란 동물의 기관 중에서도 사용빈도가 높은 유용한 기관은 진화하고 반대로 사용되지 않는 기관은 퇴화한다는 사고이다.두번째 원리가 ‘획득형질의 유전’이다 획득형질의 유전은 이름 그대로 용불용의 원리에 의해 생긴 변화가 자손에게 전달된다는 사고이다. 라마르크의 시대에는 지금으로서는 중학생조차 알고 있는 유전자가 아직 발견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므로 라마르크는 눈으로 볼 수 있는 생물의 모습이나 모양과 같은 형질을 관찰함으로써 이러한 원리를 추리하였던 것이다.라마르크 의 진화에 관한 사상은 4가지료 요약할 수 있는데, 첫째로, 모든 생물은 처음 생겨났을 때부터 이미 어떤 일정한 방향으로 진화해 나갈 요인으 내포하고 있어 진화과정을 통하여 완전 한 생물체로 진화된다고 하였다. 둘째로는, 모든 생물은 그 생물이 주이진 환경에 적응할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보았다. 세쩨는, 모든 생물은 단일 기원이 아니고 항상 자연발생적으로 수시로 생겨나며, 따라서 동일조상들이 아니고 진화의 과정은 점진적으로 진행되어 완전한 형태의 생물로 진화한다고 믿었다. 끝으로, 모든 생물은 생활 과정에서 얻어진 획득형질이 다음 대에 유전되고 이러한 획득형질의 축적이 대를 거듭함에 따라 종이 변한다고 믿었다.그중 자연발생설을 뒤집은 사람은 파스퇴르이다. 자연연발생에 대한 논쟁은 19세기에 이르러 파스퇴르의 실험에 의해서 완전히 끝을 맺었다. 파스퇴르는 끓인 고기즙에 공기는 통하면서도 미생물이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S자형 플라스크를 만들어서 자연발생설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실험을 하였다. 과연 이 플라스크 내의 유기물 용액에서는 미생물이 발생하지 않았다. 파스퇴르의 S자형 플라스크는 1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미생물이 발생하지 않은 상태로 파스퇴르 연구소의 기념관이 전시되어 있다.파스퇴르는 이와 같은 실험으로 미생물의 발생은 반드시 미생물의 포자에 들어가서 번식하는 것이고, 생물은 결코 자연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던 생물로부터 발생한다는 생물 속생설을 확립하였다.다음은 다윈에 대하여 조사하여 보았다. 다윈의 진화론은 라마르크가 주장한 자연발생설에 대하여 비판을 가하고 모든 생물은 동인 조상에서 출발하여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여러종으로 분화하였다고 설명한다. 즉 모든 생물의 조상은 동일기원이란 것이다. 또한 그는 종이 형성되는 과정은 개체변이와 자연선택의 두가지과정을 통하여 이루어진다고 주장하였다. 모든 생물은 많은 개체변이를 나타내며 이들 중에서 환경에 보다 적합한 형질을 가진 개체는 그렇지 않은 개체에 비하여 생존능력이 강하고, 따라서 그런 형질을 다음 세대에 물려 줄 확률이 크고 그렇지 않은 개체에 비하여 생존능력이 강하고, 따라서 그런 형질을 다음 세대에 물려 줄 확률이 크고 그렇지 않은 개체들은 도태가 되어 이런 과정을 여러 세대 되풀이하여 반복하는 과정에서, 즉 선택과정을 통하여 새로운 종이 분화하게 된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이러한 다윈의 진화론은 당시의 사회에 커다란 물의를 일으키고 진화론 자체에 대한 심한 논쟁을 야기했다.이중 그의 설에 대하여 논란이 된 몇가지 문제들을 살펴보았다.첫째로 다윈에게는 개체변이에 대한 뚜렷한 본질적인 개념이 없었고 그시대만 하여도 유전학에 대한 기초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변이의 본질을 설명할 수 없었으며 또한 획득형질과 유전적 변이에 대한 뚜렷한 구별을 짓지 못하였다. 이 문제는 1900년대에 이르러 멘델의 유전법칙이 재발견됨으로써 변이의 본질을 구명하게 되었고 유전적 변이만이 진화에 관여하며 획득형질은 진화에 아무런 뜻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이를 근거로 하여 네오다위니즘이 싹트게 되었다.둘째로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다른 비판은 생물의 진화는 다윈이 주장하는 점진적인 진화에 의한 것이 아니라 돌연한 변이에 기인한다는 De Vries 의 돌연변이설이 그것이다. De Vries 의 돌연변이설은 후에 집단유전학의 업적에 의하여 부정되었는데 집단유전학자들은 집단 내에 내포되어 있는 여러 변이들이 어떻게 진화에 영향을 미치는가를 연구한 결과 진화는 여러 가지 유전변이 개체들과 환경과의 상호작용에서 점진적ㅇ로 진화하는 것이며, 결코 돌연변이설과 같은 과정에 의하여 진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하였다.다윈의 진화론중에서 세 번째로 문제가 된 것은 자연선택이 자연상태에서 그때그때 주어진 환경조건에 의하여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보다 고차원적인 섭리 에 의하여 이미 계획된 방향으로 일어나며 완전 한 생물로 진화하여 간다는 소위 Nageli, Eimer 의 목적론적 정향진화설이 그것이다. 이 문제에 대하여는 Sim=pson을 비롯한 여러 고생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여 화석의 잔화겨오를 조사한 바 생물의 진화 경로는 어떤 일정한 방향을 향하여 계속적인 진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진화의 방향이 때에 따라 바뀌는 예가 많고 심지어는 어떤 진화과정에 역행하여 반대방향으로 진화의 방향이 바뀌는 경우도 있음을 밝혔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진화의 방향은 일정하게 이미 정해져있어 그곳을 향하여 진화하는 것이 아니고 환경의 조건에 따라 진화의 방향이 결정된다고 함으로써 정향 진화설을 부인하고 다윈의 점진적 진화론을 옹호하였다.다음은 다윈의 종의 기원"이 발표됨으로써 사회에 미친 영향에 대하여 조사해 보았다. 당시 종교계를 비롯한 많은 진영에서 다윈의 진화론은 혹평을 받았다. 그때까지 널리 알려져있던 창조론의 개념을 뒤집는 학설로서 많은 논란을 가져왔다.한 신문에서는 '다윈 너는 침팬지의 후손이가'라는 제목으로 다윈을 침팬지로 묘사하여 다윈을 조롱하는 만평을 거재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윈의 진화론중 자연선택설은 당시 점점 발전해 가던 자본주의에 좋은 이론적 배경이 되었다. 즉 인간에게 무한한 경쟁은 자연의 법칙으로 당연한 것이며 경쟁에서 떨어지는 존재는 도퇴되는 것이 당연하며 살아남기 위해서는 경쟁을 해야한다라는 자연선택설은 자본주의적 사고에는 매우 매력적이었다. 많은 자본주의자들이 다윈의 진화론을 이용하여 자본주의적 발전에 대한 합리화를 시도했다. 다윈의 진화론에 영향을 끼친 것은 자본주의 진영에만 해당하지는 않는다. 사회주 의 사상가인 칼 마르크스도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 매우 관심을 가졌고 개인적으로 존경했던 인물이었다. 마르크스는 다윈의 진화론을 통해 인류의 진화를 진보로 이해 했고 결국 이상적인 사회로 진보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라고 여겼다. 실제로 마르크스의 저작인 "자본론"이 출간되었을 때 마르크스는 다윈에게 '자본론'을 직접 선물하기도 했다.또한 신중심주의적 사고관에서 이탈하여 인간중심적 사고관을 더욱 가속화 시키는 이론적 배경으로 등장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