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설21년. 나의 그리 길지 않은 생 중에 바로 청소년기.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나에게 지워지지 않는 시간들로 밝게 자리하고 있다.청소년기란 아동기와 성인기의 중간단계로 부모에게 의존했던 시기에서 독립된 성인으로 성장하기 위한 과도기적 단계이다. 농경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시기이나 산업화가 되면서 이 시기의 중요성이나 기간이 확대되고 있다. 이 시기는 신체적 발달을 포함하여, 심리적 사회적 발달이 급속도로 이루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프로이드(Freud)는 청년기란 잠복했던 리비도{) 이 말은 보통 말하는 성욕, 다시 말해서 성기(性器)와 성기의 접합을 바라는 욕망과는 다른, 넓은 개념이다. S.프로이트는 리비도가 사춘기에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면서부 터 서서히 발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가 다시 영향을 주는 시기로 그리고 에릭슨(Erikson){) 독일 출생의 미국 정신분석학자로 빈대학교에서 안나 S.프로이트 등으로부터 정신분석학을 배 웠고, 31세에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정체성 개념에 의해 프로이트 이후의 정신분석학적 자아 심리학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으며, 인문·사회 등 여러 과학과 사회사상에 미친 영향도 지대 하다.에 의하면 자아정체감 형성을 위한 중요한 시기로 설명하고 있다.이런 청소년기에는 역할의 변화와 그에 따른 적응문제, 교우관계, 이성문제, 진로문제, 가치관 문제 등 지금까지 없었던 여러 가지 문제들이 발생한다. 정체감을 획득하기 위하여 과거에 자신과 가족 혹은 타인과의 관계에 형성된 유대관계를 해체하고 청소년들은 다양한 역할을 실험하게 된다.나는 이러한 청소년기의 전반적인 것을 크게 가정과 학교로 나누고 각 분야에 대해 나의 부정적인 부분을 중심으로 해서 간략히 밝히고 그것을 통해 과연 XXX라는 현재 XX대학교 의류학과 1학년에 재학 중인 아(我)를 스스로 생각해보려고 한다.Ⅱ. 가정에서의 아1. 남아선호사상으로 인한 갈등나는 1983년 00월 00일 1남 2녀 중 맏이로 태어났다. 막내가 남자이고 나와 나이 차이가 7살이 당시 여느 가정과 마찬가지로 늦둥이{) 흔히 늦동이 라는 단어도 표현하지만 그것은 늦둥이 의 잘못된 표현이다.이고 아들이라는 이유로 어렸을 때부터 갈등을 겪어왔으나 청소년기에는 더더욱 그 정도가 심해졌다.그로 인해 특히 남아선호사상이 뇌리 속에 뿌리깊게 박혀 있는 아버지와의 갈등이 많았는데 정신적으로 여러 혼란을 겪는 나로서 반항이라는 이름으로 아버지에게 못할 말, 못할 행동을 많이 하였다. 서로 간에 대화도 전혀 없었을 뿐더러 쉽게 말해서 아버지를 돈 벌어주는 기계로 생각한 나였다. 당시 아버지라는 개념은 나에게는 가족으로 전혀 다가오지 않았다. 아버지가 아버지가 아닌 것이다{) 전자는 나의 아버지를 의미하고 후자는 보통 가정의 아버지를 의미한다..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강한 집착과 사랑으로 불평등한 자식 대우에 의해 나는 남동생을 더욱더 미워하게 되고 남동생을 괴롭힐수록 아버지는 나에게 더욱 야단을 치시고 그로 인해 나는 아버지를 미워하고 아버지는 더욱 아들에게만 집착하는 그런 악순환이 계속되었다.대학생이 된 현재, 아버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시 아버지가 남아선호사상만으로 아들을 바라봐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낀다. 아들이 어렸기에 더욱더 아들에게 마음이 간 것이다. 하지만 남아선호사상이 아버지에게 없었다고, 지금도 없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아직도 아버지는 남아선호사상을 가지고 있고 우리 사회도 물론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남존여비의 남아선호사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남아선호사상은 우리 사회에 뿌리박혀 있는 것이라서 아버지를 원망하지는 않는 실정이다.2. 자유를 추구하는 나와 어머니 사이의 갈등나뿐만이 아니라 중·고등학교 시절의 아이들은 다 자유를 추구하고, 거기에 대한 통제를 하는 어머니와의 갈등이 있을 것이다. 자신이 이제 다 컸다고 생각하고 쉽게 말해서 철이 다 들었다고 생각하여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런 당시의 자유는 부정적인 것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 부정적 이성교제, 가출, 흡연, 음주, 가무 등. 그리 따라 어머니와의 갈등을 겪게되고 그것에 대한 반항으로 또 다시 부정적인 것으로 표현된다.나 또한 그랬다. 나는 이성을 만났고 어머니는 거기에 대한 제재가 있었다{) 물론 걱정의 마음으로의 그것이었지만 당시 나에게는 달갑지 않게 받아들여졌다.. 그로인해 어머니와 싸우고 가출도 해 보았고 음주도 해 보았었다.자유. 어처구니 없게도 나는 많은 자유 중에 이성에 대한 자유 추구로 인해 어머니와 갈등을 겪고 잘못된 행동을 하였다. 21살이 된 지금은 어느누구도 제재를 하지 않는 현실에서 너무나 후회스럽고 황당할 뿐이다. 오히려 모레{) 레포트 제출일 기준외사촌 오빠가 결혼을 하는데 그 다음엔 내가 할 차례라서 신랑감 데리고 오라는 친척분들의 성화가 있는 실정이다.Ⅲ. 학교에서의 아1. 노는 것을 좋아했던 나와 상반된 두 그룹의 친구들제목에서 보듯이 노는 것을 엄청 좋아했던 나이고 거기에 대한 상반된 두 분류의 친구들이 존재했다.하나는 나와 같이 노는 것을 좋아하는 친구들로 보통 사람들에게 나쁜 친구들로 평가되는 아이들이었다. 나는 그런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지나가는 사람 돈도 빼앗아 보았고 괜히 시비도 많이 걸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칠곡에서 중학교를 다닌 나는 길거리에서 그렇게 고등학생에게 시비를 걸어 실제로 싸움을 한 적이 있었는데 너무나 생생하게 생각난다. 동아백화점이 있는 2지구에서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 한복판에서 7:3{) 7은 우리쪽이고 3은 상대쪽이었다.의 싸움이었는데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우리를 말리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없었다는 점에서 너무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사실 칠곡을 떠나 지금의 화원으로 이사온 것은 중3때 2년 선배에게 찍혀서 친구들과 함께 기합을 받은 것이 부모님에게 걸려서 그런 것이다. 물론 한달여간 시골에 가서 피해있었고 사실 졸업식도 가지못해 있다가 고등학교 입학 후 바로 이사을 하고 전학을 온 것이다. 전학 후 고등학교 시절에 그런 행동{) 싸움, 갈취 같은 행동은 안하고 다니고 조용히 졸업을 하했지만 여전히 놀러 다니는 것은 좋아한 나였고 나이트도 많이 다니는 등{) 화장을 해서 다녔고 알면서도 들여보내 주는 술집, 나이트가 많아서 그런 유흥을 즐기는데는 크게 어렵지 않았다. 당시는 좋았지만 성인이 된 지금은 그런 어른들에 대해서 달갑게 생각하 지 않는다. 그리고 당장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시내의 모 호프집도 알면서도 장사가 안되니까 미성년자를 받는데 그런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닌 것을 아는 나는 거기에 따른 우리 사회의 제도, 법률의 개선과 업주들의 반성이 시급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그렇게 유흥을 즐겼다. 여하튼 나는 그런 친구들과 학교에서 거의 함께 생활을 했고 당시에는 너무 그것이 자랑스럽고 좋았다.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런 것들을 말리고 인간적으로 대하는 친구들이었다. 그들은 내가 옳은 길로 나가길 바랬고 당시에는 그렇게 진진하게 나를 설득하는 친구들이 그렇게 반갑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현재, 전자의 친구들과는 모두 인연을 끊었고 후자의 친구들은 여전히 연락을 하고 자주 만남을 가지는데서도 그것을 관찰할 수 있다.결국 놀기만을 위한, 놀기만 하는 친구들은 오래 가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느끼는 것이다.2. 공부만 잘하면 되겠냐, 인간이 되어야지 라는 선생님들아까 언급했듯이 노는 것을 좋아한 나였지만 공부는 열심히 한 나였다. 쉽게 말해서 놀때는 놀고 공부할 때는 공부하는 그런 아이였다.그런데 워낙 노는 것을 좋아해서 학교도 땡땡이 많이 치고 수업도 자주 빼먹는 것을 걸리고 해서 교무실에 많이 불려간 나였다. 그렇게 교무실에 불려갈 때마다 선생님들에게 듣던 말이 공부만 잘하면 되겠냐, 인간이 되어야지 하는 소리였다. 당시 그런 선생님들을 비판했었다. 입시위주의 현 교육체제에 맞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라는 것은 그렇게 공부 잘하고 대학 잘가는 것이 목표일 것인데 놀든 말든 인성교육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솔직히 잘못된 교육체제로 인해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금 중·고 학생들 중에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물론 학교 선생님들도 말이다. 잘못된 사회체제가 제2의 사회화 기관으로 평가받고 있는 학교를 인성교육을 배제시킨 공부만 잘하면 된다는 그런 관념을 학생들, 선생님들에게 가지게 되도록하는 기관으로 만드는 것이다.그런 상황에서 공부만 잘하면 되겠냐, 인간이 되어야지 라고 말해주셨던 선생님들이 너무 감사하게 생각된다. 실제로 같이 수업을 도망가다가 걸려도 나는 공부를 잘 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냥 넘어가주시는 선생님도 많았는데{) 솔직히 대다수의 선생님들이 그랬다. 그 중에서 제일 공부 못하는 애를 무조건 주도자로 보 고 더 혼을 냈으며 같은 것으로 혼나는 다른 무리보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끼여있는 우리 무리는 제재가 훨씬 약했다.그 중에서 그런 말을 해 주시고 인성교육을 생각하신 선생님이 더 기억이 나고 찾아 뵙고 싶다.3. 20살, XX대학 다닐 시절의 또 한 번의 방황그렇게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20살 또 한번 방황을 했었다. 특히 나이트 클럽을 많이 다녔는데 나이트 클럽을 워낙 좋아했던 나였기에 완전히 나이트에서 살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일단은 20살이 되어서 사회에서 아무런 제재가 없기 때문이었고 더 큰 이유는 학교 때문이었다.고등학교 시절 sky반이라 그래서 전교 30등까지 문과와 이과를 나누어 끊어서 야자를 남들보다 많이 시켰는데 모의고사 점수로 했기 때문에 모의고사 칠 때마다 사람들이 바뀌고 했다. 나는 거기서 한 번도 나온 적이 없을 정도로 공부는 열심히 하고 그랬는데 겨우 XX대학교 XX교육과라는 곳에 진학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XX대학은 솔직히 안정지원을 한 것인데 동국대학교 관광대학에 붙은 나였지만 어머니가 자식은 부모와 떨어져서 있으면 안된다고 해서 돈까지 냈다가 다시 등록을 취소한 실정이었다. 세 개의 지망 중에서 하나는 불합격하고 하나는 안 된다고하니 안정지원한 그 곳에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얼마나 울었던지 한 번은 너무 울어서 병원에 실려간 적도
06 SS TREND 분석과 목: 현대인과 패션학 과: 식품영양학과학 번: 20420462이 름: 박 나 현교수명: 김경아 교수님제출일: 2005. 11. 27 *컬렉션 옆에 언급된 자료는 사이트 내에서 발췌*1st. 이영희 씨의 작품컨셉: 전통, 현대의 조화컬렉션 테마 영감: 한국전통 자수, 염색된 Silk등을 이용하여 옛것의 단아함과 모던함을 표현실크 소재로 그 특유의 고급스럽고 우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하늘하늘 거리는 한 벌의 실크 드레스는 중세 시대의 퍼진 원피스와는 어떤 다른 특유의 멋을 내는 듯하다. 몸을 휘감는 부드러운 촉감이 느껴질 것처럼 원단이 부드러워 보인다. 또 걸음을 옮길 때마다 실크 소재 중에서도 얇은 소재를 써서인지 여성의 아름다운 라인이 드러나는 것이 보인다. 즉, 속이 비쳐지는 종류의 소재라는 것이다. 혹자는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속이 비치는 것이라면 창녀의 그것과 같은 속된 것을 말이다. 하지만 실크 소재 특유의 부드러움과 우아함, 그리고 고급스러움은 이러한 속된 생각을 금세 덮어버릴 정도로 그 특유의 특성이 강하게 묻어난다. 삼각형의 A라인으로서 어깨가 좁게 연출되고 하의의 단 부분이 넓게 표현되었다. 특히 마지막 단 부분은 flounces라고 하는 것과도 비슷해 보인다. 이 단을 보고 있자면 고대 그리스의 의복과 위 의복과의 공통점이 보이는 듯하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고대 그리스 의복은 풍성한 천으로 몸을 휘 감싸서 천으로 동여맨다는 것이고 이것은 천을 몸에 밀착시켜서 여성의 바디 라인을 적나라하면서도, 고급스럽게 보여주는 것이다. 마치 별 평범할 것도 없는 빵을 고급 포장지로 싸서 사람들의 눈을 만족시켜 주는 것처럼 말이다. 무선인데다가 단일색이라 단조로운 느낌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단조로움을 드레스 특유의 디자인으로 커버하는 듯하다. 디테일과 트리밍조차 없어 별 흥미를 가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드레스를 보면 눈을 못 떼는 것은 아마도 디자인과 착용했을 때의 모습을 상상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여기서는 목 부분과 어깨 부분을 완전히 파버리고 홀터 넥 스타일로 디자인을 진행시킨 것이 보인다. 달리 옵션을 두자면 묶는 부분은 X자형으로 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여성의 쇄골 뼈와 목의 라인, 그리고 어깨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나서 섹시미를 한층 강조한다. 디자인의 원리를 적용하자면 안정감과 휴식의 분위기를 제공하여 질서를 요구하는 균형의 원리 중 비대칭이 가장 잘 어울리는 듯하다. 즉, 성숙과 세련의 미인 것이다. 아마도 균형의 원리가 적용된 데에는 단일색이면서 A라는 디자인 라인도 한 몫 한 듯하다. 어쨌든 이러한 성숙과 세련, 덧붙여서 섹시 미는 이브닝드레스와 칵테일 드레스에 많이 적용되는데 위의 경우도 그러한 분위기의 지배를 받고 있다. 그리고 yellow-Green이라는 색상은 마치 봄의 여신을 표현하는 듯하다. 길고 긴 겨울잠을 깨서 희망찬 봄을 맞으며 약동하는 새싹의 힘이 Green에서 느껴지고 만개한 다양한 색채의 꽃들이 Yellow로써 대변되는 듯하다. 액세서리 면에서는 흰색 바탕에 코사쥬라고도 할 수 있는 연두색 장식이 단조로움 속에서의 조화미를 느끼게 한다. 마지막으로 화려한 파티의 조명 아래에서 가장 화려하게 빛나고 있을 이것을 한번 꿈에서라도 그려본다.2nd. 변지유 씨의 작품테마 : 생명실루엣: Fit&flare로 자연스러움과 여성의 아름다움 표현/펑키한 히피 스타일로 복고적인 분위기 믹스컬렉션테마 영감: 생명나무 잎사귀를 통해 새 생명 탄생소재는 실크와 면이라고 할 수 있다. 고급스런 면의 실크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면의 혼방이라고 볼 수 있다. 고급스러움과 평범한 것의 만남은 의외로 궁합을 잘 이루는 것 같다. 실크 소재가 밑에서 받쳐주고 그 위를 화려한 꽃이 프린트 된 천이 덮고 있으니 평범함 속의 고급스러움, 이를테면 조개가 자신의 몸속에 진주를 품고 있는 것에 견줄만하다. 아름답고 여성적이고 섬세한 느낌을 주는 꽃무늬 프린트 천은 CUTE한 멋을 살려주는 좋은 아이템이라고 볼 수 있다. 연두색의 실크가 여성스러움을 대변하는 것에 비해서 말이다. 특히나 파란색과 보라색 그리고 흰색의 꽃이 섞여 있지만 그 바탕엔 연두색이 차지하는 것으로 밑의 연두색 실크와 유사조화를 이룬다. 즉, 잘 융화된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푸른 봄의 싱그러운 연두색 풀을 바탕으로 그 위에서 자라나고 있는 꽃들을 연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덧붙이자면 연두색은 차가운 겨울을 이겨내고 단단히 얼어 버린 땅을 뚫고 나오는 생명을 그런 점으로 보자면, 이것은 약동하는 젊음과, 생명의 속삭임을 그대로 표현한 것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상의를 보자면 란제리와 비슷한 상의 위에 꽃무늬 프린트 천과 실크가 혼합되어 있는 칼라가 붙어있는 조끼를 살짝 걸치고 있는데, 컬렉션을 보았을 때 가장 눈에 띄는 부분으로 강조원리 중 집중의 효과라고 볼 수 있다. 상의와 하의를 가르는 하얀 속살을 경계로 여성스러운 섹시함을 강조하는 역할이 바로 이 란제리 패션이라고도 할 수 있는 상의에 있다. 디자인을 보자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장면이 있다. 하얀 백사장과 푸른 바다를 앞에 두고 자유분방하게 뛰어노는 귀여운 소녀의 모습을 말이다.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실크 소재의 고급스러움과 우아함을 벗어나게 해주는 것이 프린트 천인데 이것은 천진난만한 소녀를 연상시키는 것이다. 물론, 내 상상 속의 그 소녀는 활기차게 뛰어다닌다. 풀밭을, 바닷가를 말이다. 액세서리를 보면 앙증맞은 리본구두를 볼 수 있다. 이것 또한 위의 실크 천과 비슷한 면모를 보인다. 마치 벽을 타고 올라가는 담쟁이 넝쿨처럼 발목을 감다가 앙증맞게 매듭지어지는 리본은 좀 더 성장하기 위해서,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라도 하듯이 올라가는 넝쿨을 연상시킨다. 좀 더 말하자면 동화책 속의 잭의 콩 나무를 연상시킨다. 동화라서 비정상적인 이야기를 구도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그곳의 나무 또한 쉴 새 없이 도약하는 생명의 이미지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또 스커트 상단에 붙어 있는 가느다란 천 가닥은 깊은 저 아마존 밀림 속에서 우거진 수풀 한 가닥의 움직임을 연상시켜 준다. 마지막으로 사랑스럽고 귀여운 소녀의 모습을 생각해본다.3rd. 이영선 씨의 작품테마: 가장 아름다운 최고의 순간을 위한 Romantic Love Story실루엣: Fit & FlareVolume감 있는 실루엣소재는 울과 고급스런 느낌의 실크라고 할 수 있다. 실크는 이브닝드레스, 칵테일 드레스 혹은 정장에 많이 쓰인다. 섹시함과 고급스러움을 나타내는 주 재료였던 실크가 프린트 된 무늬에 따라 강렬한 느낌을 전해주는 소재로도 써질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이 정장은 사각형의 라인 중 H라인으로서, 어찌 보면 단조로운 느낌을 전해줄 수도 있는 라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느낌을 강렬하게 받지 않는 것은 아마도 수직으로 된 스트라이프 무늬 때문일 것이다. 수직의 선은 위엄과 힘, 그리고 지적인 이미지를 표현한다고 한다. 마치 거대한 폭포를 흘러내리고 있는 물처럼 혹은 천군만마의 힘을 거느린 임금이 내리는 명령과 같은 거부할 수 없는 힘의 압력 같이 말이다. 다시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아프리카 초원 위를 활개 치며 다니는 얼룩말과 같은 느낌이라고 할 수 있다. 자유스러움, 그리고 활기, 넘치는 힘 같은 것 말이다. 물론 이러한 느낌에는 Black&White라는 색상의 특성이 크게 작용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원래, Black&White라는 색 자체가 모던한 현대사회를 표현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특히나 Black&White의 스트라이프 무늬는 여러 가지가 혼합되어 어찌 보면 뒤죽박죽이 되어가는 사회를 표현한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검은 색의 스트라이프 위로는 경제가 다니고, 흰색 스트라이프 위로는 정치가 다니고, 두 번째 스트라이프 무늬는 어떻고 저러하다는 나만의 상상을 해보았다. 반복되는 black&white의 스트라이프는 규칙적인 강도와 간격으로 안정감과 통일성을 제공한다. 하지만 변화가 없어서 흥미를 반감시키는 단점 또한 있다. 그리고 이것은 움직이는 리듬적인 요소가 부각되는데 그것은 곧 운동성과 율동성을 가진다는 말로써 대변가능하다. 정장 바지 위를 살짝 덮는 재킷의 사이에는 허리끈이나 혹은 재킷의 선명한 선이 상체와 하체를 가르는 역할을 한다. 이것은 곧 그리스 분할, 혹은 황금 분할 이라고 하는 비례를 떠올리게 한다. 뭔가 좀 정형화된 느낌을 주곤 하지만 그만큼 깔끔하고, 도시적이고, 세련된 여성미를 표현하게 하는 데 적당한 비례라는 느낌이 든다. 물론, 제일보기 좋은 비례라는 것도 그 이유이겠지만 무채색 계열에 특히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컬렉션 그림 중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검은색 파마머리와, 그 위로 검은색 바탕에 흰색 점이 아로 새겨진 중절모는 무채색 계열의 옷과 매치가 잘 된다. 흰색 블라우스 위의 앙증맞은 넥타이 또한 말이다. 이 넥타이는 마치 하얀 도화지 위에 물감을 뿌려 놓은 것처럼 우리의 시각을 자극한다. 그리고 밑에 신은 검은 구두는 단순하고 단조롭지만 현대 여성을 가장 잘 표현하는 수단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가장 상용화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나의 이유라면 이유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black&white 그것은 바로 모던한 현대인의 이미지를 가장 잘 표현하는 수단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 분’ 들이 계셨기에지금의 제가 있는 것일 겁니다20420462식품 영양학과박나현Ⅰ 서론-나는 이래서 펜을 들었다..나에게 있어서 최초의 교육자는 부모님이시다. 지금 나의 행동거지 하나하나도 부모님에게서 배운 것이고, 우리 집의 생활양식이 그대로 몸에 배었다. 그리고 이제껏 살면서 친구들도 많이 사겼다. 친한 친구도 있고, 별로 안 친한 친구도 있고 또 평생을 함께 하고 싶은 소중한 친구들도 있다. 그 친구들 또한 나의 성격 형성이라든지, 좋든 나쁘든 인간성과 생활양식에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이제껏 많은 선생님들을 만나왔고, 지금도 만나고 있다. 친구와 부모님도 있겠지만 아마도 나에게 영향을 미친 퍼센트 지로 따지자면 적어도 20%는 차지하는 것이 선생님이 아닐까 한다.요즘의 교권 실추, 교실붕괴 등의 이야기가 많은데 자신을 한번 돌아보라. 자신의 인생을 한번 돌아보라. 우리의 교육이 그렇게 망가졌는지 말이다. 혹은 그렇게 망가진 모든 교육에서 내가 어떻게 지금까지 성장했는지를 한번 보라. 일부만을 보고 모든 것을 판단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쓴다.Ⅱ 본론-선생님들에 관한 memories..첫 번째. 엄마~선생님!!흔히들 하는 말이 있다. 학교는 제 2의 가정이고 선생님은 부모님과 같은 존재라고 말이다. 난 나이가 들면서 그 말의 의미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아주 약간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바로 초등학교 2학년 때 우리 반 담임을 맡으셨던 분이다.초등학교에 들어가서 1년이 지나고, 반을 배정받았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야 아무것도 모르는 나이이기도 하고, 별 관심도 없었기에 그저 멍하니 앉아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있을 때 담임선생님이 들어오셨다. 한눈에 보기에도 꽤 자상해 보이는 중년의 여자 선생님 이셨다. 굉장히 오래전이지만 내가 기억하는 있는 이유는 내가 초등학교 6년을 다니면서 제일 자상했던 선생님으로 기억되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기독교 신자셨다. 그것도 독실한 기독교 신자 말이다. 선생님은 적어도 우리 반 아이들에게 먹끌고 나가셨다. 물론 선생님의 의도는 아이들에게 기독교를 믿으라는 그 말을 하고 싶으셨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에 대한 배려와 관심이 없었다면 황금 같은 토요일 오후를 전도하는 데에, 쓰는 것은 그 선생님만의 우리를 생각하고, 또한 함께 보내려는 의도가 있었던 듯하다. 그 밑에는 항상 자상함이 깔려 있었음은 물론이다. 정말로 그 당시 선생님은 우리를 자식처럼 아껴주시고,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공부보다는 당신의 자상함을 전해주려고 하셨다. 아마도 내 초등학교 6년 동안 중에 가장 잊을 수 없는 시기일 것이다.그리고 그 1년의 생활을 통해서 선생님이란 건 지식만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란 것을 그 1년의 생활을 통해서 알게 된 거 같다. 그랬다. 그 시절의 선생님은 항상 일에 치이던 우리 엄마 다음으로 나에게 어머니 역할을 해주셨던 말 그대로 제 2의 부모님이셨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 정말로 우연찮게 승용차 유리를 통해 선생님의 모습을 뵈었다. 선생님은 나를 알아보셨는지 먼저 환한 웃음과 함께 손을 흔들어 주셨다. 아직도 그 선생님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정말로 한 번 더 꼭 보고 싶으신 분이다.두 번째. 예의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들은 여러 가지가 있다. 돈, 명예, 사랑, 가족 등등 말이다. 그런데 사람을 처음 만남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 있을까?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바로 예의이다. 사람은 첫인상이 중요하다고들 말한다. 그것은 외관을 보기도 하지만 외관 다음으로는 그 사람의 태도를 본다. 처음부터 반말을 한다든가 자신의 기분대로 기분이 좋지 않으면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는 등 말이다. 그것은 사람에게 아주 기분 좋지 않은 인상을 심어준다. 나도 그러한 사람을 싫어하고 말이다. 난 평소에 인사를 잘 하는 편이다. 아니, 잘 한다기 보다는 잘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것은 내가 살아오면서 터득한 일종의 삶의 지혜라고도 할 수 있지만 일면으로는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만났던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출발했다고도 볼 수 있다.초등학교하셨고, 코는 매부리코 약간 비슷하셨고, 또 키는 그 당시 여자치고는 꽤 큰 키를 가지신 20대 후반 혹은 30대 정도의 선생님이셨다. 그전까진 3학년이었다가 이젠 초등학교의 반을 지나갔던 당시, 선생님은 그제까지 천방지축으로 노는 아이들을 이제 어느 정도 잡아야겠다고 생각하셨는지 혹은 원래 그러한 생각을 가지신 분인지 우리에게 당시로는 기묘한 말투를 가르치셨다. ‘까?’라는 말이 그것이다. 우리는 항상 선생님께 어떤 말을 할 때 뒤에 ‘까?’ 라는 존칭을 써야 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지각해서 청소를 다 하고 나서 ‘선생님, 청소했는데 무엇을 했는데 집에 가도 됩니까?’라는 말을 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지각을 많이 했기 때문에 거의 매일 청소를 해야 했다. 처음에는 굉장히 어색해서 쓰지 않았는데 그 말을 하지 않으면 집에 보내 주지 않으셨기 때문에 차츰 쓰다 보니 어느 새인가 익숙해져 버렸다. 당시에야 ‘좀 독특한 선생님이구나.’ 라고 생각하고 넘어가버렸는데, 지금은 그 말이 사회에서 처음 뵙는 어른들께 당연히 써야 되는 말이라는 것을 느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이었지만 선생님은 우리를 존중했고 수많은 아이들의 무리가 아닌 한 사람으로 우리를 대했기 때문에 그러한 기초적인 예의를 우리에게 가르치셨던 게 아닌가 한다. 그 작고 짧았던 1년간의 생활은 나를 예의라는 것의 처음을 알게 한 기간 같다.세 번째.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일을 무엇이든지 정확하게 딱 부러지게 해야 된다. 그것이 바로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결심했던 것이다. 그 날은 입학 원서를 받던 마지막 날이었다. 그래서 그 전날 선생님은 우리에게 신신당부를 하면서 정확하게 기재해 올 것을 다짐 받으셨다. 하지만 성격이 한마디로 느긋하고 낭창했던 나는 별 생각 없이 종이를 던져 놓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그리고 아침 시간에 부산을 떨면서 일어났다.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입학 원서였다. 바로 오늘까지가 마감인 그것 말이다. 너무 급해서 선생님이 일러주신 건 모두 다 잊고 엄마를 깨워서는 급조해서그러시더니 마지막에는 어떻게든 해결해보려고 동분서주하셨다. 화를 내고 그저 나에게 내던져도 되는 것을 말이다. 선생님의 덕분으로 어쨌든 그렇게 무사히 입학원서를 낼 수 있었다.그렇게 무사히 넘어갔지만 꾸중 받은 마음은 쉬이 가실 줄을 몰랐고, 그것은 아직까지 나에게 기억되는 장면이다. 절대로 그것은 나에게 나쁜 추억이 아니다. 위에서 말했듯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 중의 하나를 가르쳐준 것이다. 그래서 아직도 난 어떤 문서 작성엔 서툴러서 실수를 많이 하지만 그 날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조금씩 익숙해져 가고 있다. 물론, 꼼꼼하게 하는 것도 잊지 않고 말이다. 그 선생님이 그날 나에게 주신 것은 호된 야단만이 아니었다. 혹여나 잘못돼서 중학교 원서를 쓰지 못하는 어쩌나 하는 제자에 대한 걱정과 모든 일을 이런 식으로 처리하면 나중에 사회에 가서도 인정을 받지 못할 제자에 대한 질책과 걱정의 마음이었다. 또 앞으로 내가 살아감에 있어서 어떤 조그만 일이든지 간에 자신이 맡은 일은 정확하게 해내어야 하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사무치도록 깨우치게 한 사건이다.네 번째. 냉정과 매력 사이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드디어 중학교에 입학했다. 그저 들뜬 마음뿐이었다. 내가 드디어 중학생이 된다는 마음과 교복이라는 것을 입을 수 있다는 설렘 말이다. 그리고 중학교에 가서 처음 배정받은 반으로 들어가는 순간 말로는 할 수 없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아마도 이제부터는 많이 달라진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그런 마음의 나에게 굉장히 예쁜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한 마디로 늘씬한 다리에 스타일리쉬한 옷을 갖춰 입으신 우리 선생님이셨다. 정말 예뻤다. 하지만 무서웠다. 뭔가 기분이 무서웠다. 그리고 나의 예감은 적중했다. 아이들이 떠들거나 시선이 분산되면 선생님은 굉장히 무서워졌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쨌든 우리 담임선생님은 인기 있는 선생님이 아니셨다. 아니, 인기 없는 선생님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 것이다. 솔직히 그랬으니까 말이다. 아이들을 별로 좋아하셨던 분이다. 난 어쩌면 그런 선생님을 닮고 싶었는지도 모른다.다섯 번째. 선생님은 친구였다?!중학교 1학년의 생활을 마치고 2학년 때는 칠곡에서 화원이라는 아주 먼 곳으로 이사를 왔다. 그래서 당연히 전학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다녔던 학교랑은 많이 환경이 달랐다. 학교 건물도 별로 좋지 않았고 주위에서도 별로 좋게 평가하지 않았던 학교였기 때문이다. 전학 온 탓인지 아이들의 관심은 모두 나에게로 집중되었다. 신발도 달랐고, 교복도 달랐고, 그 날만은 단연 내가 튀는 존재였을 것이다. 난 예전 학교와 별반 다르지 않은 아이들의 모습에 안도했고 내성적인 성격이었던 나는 ‘여기서 친구를 많이 만들어보고, 성격도 좀 고치가’라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지금에서야 밝히지만 그 계획은 내가 고등학교에 올라와서야 실현되었다. 사람의 성격이란 것은 그리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내가 그 학교에 가서 제일 놀란 것은 선생님들의 태도였다. 내가 다녔던 학교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확실히 말이다. 예전 학교에서도 선생님들과 얘기를 나누고 친근한 감정은 있었지만 여기서는 친구라는 생각이 많이 들게 하는 것이었다. 자연스럽게 선생님과 팔짱을 낀다거나 야단을 호되게 맞아도 뒤돌아서면 바로 사이좋게 웃는 모습이라던지 자연스럽게 교무실로 가서 선생님들과 장난을 치는 모습 등 말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중학교 때 내가 느꼈던 어떤 선생님에 대한 위화감을 없애는 데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리고 나 또한 선생님에 대한 정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 선생님이 지금은 내가 수학을 엄청 싫어하고 못하지만 당시에는 좋아하고 잘했던 수학 선생님이라는 사실도 한 몫 했을 것 같다. 그 학년이 진행되면서는 옆 반의 수학 선생님 때문에 수학을 싫어하게 되었지만 말이다.어쨌든 난 그 선생님의 결혼식에도 가봤고, 학년이 끝나는 날 아이들과 선생님과 함께 일명 ‘쫑파티’라는 것도 해보았다. 불행히도 그 날 이후로는 선생님을 보지 못했지만 기억은 남아있다.내가 선생님과 함께한 1년 동안은 사람을 사귀는
{교권실추{{과 목: 교육 사회교수님: 김광섭 교수님학 과: 식품영양학과이 름: 박 나 현학 번: 20420462제출일:2005� 11� 3Ⅰ 서론우리 나라는 예로부터 동방 예의 지국이라 불리어왔고, 또한 버스나 지하철 등의 노인 경로석을 보면 확실히 그러한 것들을 알 수 있다. 이런 사항들 말고도 부모님이나, 스승에게, 자신보다 조금이라도 연배가 높아 보인다면 우리의 옛 선조들은 깍듯한 예를 들어서 대우했고, 그것은 한국인들의 이미지인 양 자리잡게 되었다. 그리고 예의가 바로 선 우리 나라는 외적들과의 그것이 아니라면,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일절의 닮음도 없이 유구한 오랜 세월을 버텨왔다.하지만 요즘은 어떠한가? 누구나 다 알 것이다. 요즘의 한국은 속된 말로 내부로부터 썩어들어간다는 사실을 말이다. 실제로 자각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는 것이 여러 가지 병폐적인 증상들이다. 예를 들면, 요즘 신문지 상에서 볼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자식의 부모 구타 혹은 성폭행으로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나는 보고 말았다. 물론, 부모의 자식 구타도 문제이긴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각박해지고 혼란해진 사회를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또, 어린 나이에서부터 시작되는 심각한 왕따 문제, 그것은 살인과 자살로 이어지리만큼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자리잡았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오랜 문제이기 때문에 아무도 손을 대려하지도 않고 자신만 당하지 않으면 되지 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넘겨 버리고 만다. 몇 달 전, 정 모 교사의 고발로 어느 정도 밝혀지긴 했지만 그것은 사회적으로 파장을 일으키긴 하였으나 그것뿐이었다. 그 사건으로 인해 진짜 피해자들은 아무 것도 얻지 못하였다. 단지 매스컴에서 떠들어댔을 뿐이었다. 실상,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것은 소위 노는 아이들의 계보를 설명한 것뿐, 그 이외의 것은 없는 듯하다. 그리고, 연일 일어나는 사건 사고들, 자살, 노인 문제 등등의 문제는 방송 시간이 모자라서 방영이 되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 너무나야기가 무엇인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물론, 교육과 관련해서 말이다. 그리고 교권실추라는 대명제에 나의 생각을 멈추게 되었다. 교육과 관련한 여러 가지 병폐적인 현상은 많고 많지만 가장 근본적인 문제라는 생각에서 이것을 선택하게 되었다.교권이라는 말을 풀이하자면 교사로서의 권위와 권리를 말한다. 블과 몇 년전까지만 해도 교사는 제 2의 부모라는 말로 대변될 만치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지금도 일부에서는 그러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적지만은 않을 것이다. 또한, 교사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 또한 상당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하지만 요즘은 어떠한가? 물론 많은 원인들이 있겠지만 그것은 두 번째 단락에서 얘기하면서 나의 생각을 풀어보고자 한다.나는 교사가 아니다. 단지, 학생일 뿐이다. 그러한 내가 겁도 없이 이러한 주제를 들고 나온 것은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교직을 이수하는 만큼 나 또한 교사라는 직업에 관심이 많고, 또 원래 나의 꿈은 교사였기에 조금이라도 그것에 관한 생각을 정리해보고자하는 욕심이 있기에 이야기를 슬슬 풀어보고자 한다.Ⅱ 본론몇 해 전 학교라는 드라마가 나오면서 수많은 청춘 스타들을 배출함과 동시에 크게 히트를 쳐서 그 시리즈가 굉장히 많이 나온 적이 있었다. 그 드라마가 인기가 있었던 까닭은 다름이 아니라 실제와 너무나도 흡사하게 나갔기 때문이다. 현실에 부합하는 소재라는 말이다. 학교의 첫 번째 시리즈 중 한 장면 중에 아직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아이를 때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학부모가 수업 중인 교실에 찾아들어와서 여교사의 머리를 잡고 학생들 앞에서 막무가내로 때리는 장면이었다. 그와 비슷한 것으로 두사부일체 라는 영화에서 똑같은 장면이 있다. 물론,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해피엔딩으로 결말을 맺었지만 과연 현실에서는 어떠할까 라는 우려의 목소리를 던져 본다. 해피엔딩이라는 말 자체가 이상할 정도로 그것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자신의 아이는 물론 소중하다. 자식이 귀중 하지 않은 부있는가에 관한 문제는 어떠할까? 대답은 노이다. 교사가 학생들을 지도하다 보면 매를 들 수도 있고, 학생으로서는 받아야들여야 할 응당의 대답인지도 모른다. 물론, 속된 말로 교사 같지 않은 교사도 있고, 학생 답지 않은 학생도 있겠지만, 적어도 영화나 드라마에서 있는 일이 현실에서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젠 놀라지도 않을 정도로 당연한 현실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 수업을 하는 교실에서 교사에게 와서 따지는 학부모들의 모습이 말이다. 또, 알게 모르게 학교 권력과 손잡고 교사의 생명을 당신네들 멋대로 결정짓는 것도 다반사이다. 이것은 극히 일부적인 문제일 뿐, 실제 교육 현장에서 이뤄지고 있는 일들은 모두가 보고 있는 현실 그대로이다. 하지만 방금 논의되었던 내용은 내가 말하고자 하는 현상의 단적인 예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세세하게 이야기 하지 않아도 교권이 떨어질 만치로 떨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그 누구의 잘못이라고 꼬집어 말할 수 없다. 사회의 변화, 사람들의 인식 변화,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 등등 여러 가지 현상들이 교육계 내부로 깊게 스며들어 어느새 병폐적인 현상을 자리잡았을 뿐이다.여기서 잠시 이론적인 원인 이야기를 할 수가 있겠다. 먼저, 사회가 급변함에 따른 사교육 열풍은 아이들을 똑똑하게 만들어 버린다. 똑똑해진 아이들은 학교에서 무언가를 배우려 들지 않고 교사들에게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그 나이에 알지 않아도 될 것들을 미리 알아버린 아이들은 교사가 가르치는 내용들에 흥미를 잃고, 그것은 곧 교사에 대한 믿음과 존경을 잃어버리는 현재의 상황에 이르게 된다. 두 번째로는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이기도 한데, 가정 교육에 그 현상의 대부분이 있는 것 같다. 모든 것은 가정으로부터 나온다라는 생각을 깊게 하게 된다. 극단적인 예라고도 볼 수 있지만 문제아들의 대부분은 문제 가정으로부터 나온다는 발칙하면서도 사실적인 상상을 나 스스로 해볼수가 있는 것이다. 물론, 통계적으로도 이 수치는 증명된 것이다. 실로 볼 뿐, 제 2의 부모라든지, 자신의 아이의 인생을 결정지을 수도 있는 존재라는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그것은 또 다른 교육계의 문제인 주입식 교육에 원인을 두고 있다고 불 수 있다. SKY대학에 몇 명을 보냈는가에 따른 교사에게 촌지를 박아둘 뿐, 실제 그 교사가 어떤 사람인지는 전혀 모르는 것이다. 그것은 곧 자녀에게도 영향을 끼쳐 교사를 대학에 보내줄 수 있는 도구적 존재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결과를 낳는다. 물론, 이것은 가정 뿐만 아니라 가정을 포함한 사회에 그 전반적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교사를 단순한 직업인 혹은 수동적 존재로만 보기 때문에 교권 실추라는 어마어마한 문제가 일상적인 문제로 하락해 버린다. 아니, 하락이 아니라 당연하단 듯이 인식되고 교권실추의 모습은 급변하는 사회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소인 양 사려되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물론, 이렇다고 해서 이 모든 현상이 학생과 학부모의 잘못이라는 뜻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두고 싶다. 세 번째로는 이것 또한 중요한 원인이라고 생각되는데 교사 그 당신의 문제이다.물론, 앞에서도 밝혀두었듯이 주입식 교육이라는 것은 문제가 있는 현상이지만 지식을 전하는 것은 교사의 당연한 임무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요즘의 교사들은 노력이라는 것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시청각 자료, 비디오 자료, 혹은 자습, 문제집 등을 활용할 뿐, 자신들은 교재 연구를 하지 않는 교사들도 꽤 많다. 이러한 현상은 이미 몇 년을 넘어선 것이다. 그것은 곧 학생과 학부모의 학교에의 불신과 교사에의 불신을 조장한다. 불신만이 쌓인 관계에서 권위 들먹이는 것은 혼자만의 고집이자, 불평 불만일 따름이다. 그리고, 교사 자신들의 생각이란 것에도 문제가 있는 듯하다. 급변하는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지 못하고 여전히 학생들의 위에 군림하려 하고, 촌지를 받아 챙기는 데 급급하고, 단지 교과서를 줄줄 읊어대는 것만으로 자신의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교사에게서 과연 무엇을 바랄 수 있을 것인가, 또 우리는 어떤 존경. 실제로, 교사가 왕따로 인한 지나친 폭행 사실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대처를 해주지 않아서 며칠간의 고통 끝에 숨진 서지혜 양의 이야기는 교사에 대한 불신만을 쌓아올린다. 또 한가지 예로 일본 작가인 무라카미 류의 소설 엑소더스 를 들 수 있다. 천재 중학생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중학생들의 반란 이야이기인데 물론 소설이라서 과장된 면도 없지 않아 많지만 나는 그 원인에 대한 규명을 하고자 한다. 그들 어린 중학생들이 소위 반란을 일으키고 학교를 가지 않는 것은 학교라는 곳과 대화라는 것이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말을 수용해 주지도 않고 들은체도 않는 학교에 대해 학생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반란을 일으키는 것이다. 즉, 그 학교에서의 교사들이 학생들의 말에 귀기울여 주고, 존경 받도록 행동을 했더라면 학생들은 절대로 학교를 등지지는 않았을 거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학생들이 만일 교사를 믿고 따랐다면 끝까지 그 뒤를 따르지, 학교를 거부하는 이들은 없었을 것이다.존경하는 이들은 학생이지만 그런 행동을 조장하는 이들은 교사인 것이다. 물론, 학교, 가정, 학생 그 자신들도 물론 포함된다. 사회적인 요인들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고 말이다. 여러 장단이 그 제각각의 음을 맞추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그 노력의 결과로 교육현실이 바로잡히고, 그에 해당하는 교권이라고 하는 애매모호하지만, 간결한, 또 필수적인 요소는 교권신장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Ⅲ 결론교사는 제 2의 부모라는 말을 흔히들 한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교사의 위치는 확고해야 하고, 또한 그만큼 존중받아야 함이 마땅하다. 물론, 그에 따른 교사의 기본적인 소양이 초석이 되어야 함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을 직시하면 알 수 있듯이 우리 사회에서는 이러한 두 박자의 궁합이 잘 맞춰져 있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학생들은 학생들 대로의 생각에 사로잡혀 있고, 또 교사들은 교사들대로의 생각과 사고에 사로잡혀 서로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 이다.
과 목 : 교육철학교수님 : 채 휘 균 교수님제 목 : 학 번 : 20420462이 름 : 박 나 현제출날짜 : 2005. 6. 7{ 낙타는 십리 밖에 물 냄새를 맡는다 표지1.{ 허만하 시인서론처음 이 과제를 듣고 몇 주일 뒤 학교 도서관을 찾았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지만 역시나 도서관에 남아있는 책은 없었다. 내가 빌리려고 했던 것은 교수님이 제일 쓰기 쉽다고 했던 이었는데 그곳에 남아있는 책은 제일 어렵다고 들은 이란 책뿐이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그 주에 다른 도서관으로 가서 책을 빌린 결과 겨우 라는 책을 발견할 수 있었다.처음 표지를 보는 순간 예감할 수 있었다. 꽤나 지루한 책이 되겠구나 라는 생각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인데 확실히 지루했다. 하지만 그만큼 내가 듣는 과목에 맞게 철학 그 자체가 들어있는 책이었다. 시인의 많은 생각을 볼 수 있었고, 들을 수 있었고, 또 그에 대해 생각 할 수 있었다.앞으로 거기에 대한 나의 짧은 생각을 펴 보고자 한다.2. 본론{ 아름다운 자연2-1. 풍경첫 장을 넘기면서부터 낯익은 하나의 단어를 발견하게 된다. 이책을 처음 보게 되면서 본 글자, 바로 낙타이다. 글의 처음 부분은 바로 책의 제목이었다. 여기서는 앞으로 1부에서 하게 될 시인의 총체적인 생각을 축약해서 모아 놓은 듯 했다. 시에 대한 시인의 생각과 십리 밖 물 냄새 와 시인 의 위치에 대한 성찰을 짧게 적어놓은 것이다.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시인이 우리에게 던져 놓은 질문이다. 과연 시인에게 있어서 십리 밖 물 냄새 의 정체는 무엇일까? 나 또한 시인이 아니기에, 그리고 허만하 시인 본인이 아니기에 알지 못한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면 어느 정도 거기에 대한 생각은 할 수 있다. 바로 이 교육 철학이라는 과목에 맞게 말이다.1부에서 위에서도 말했듯이 시인은 앞으로 풀어갈 이야기에 대한 짧은 화두를 던져놓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여기서 저자가 다녀온 여러 곳의 장소를 통하여, 그곳에서 본 풍경들을 통하여 처음의 질문에 대한 해답을 구하는 듯 하다.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시인에게 십리 밖에 물 냄새라는 건 시를 창조하는 원동력이 아닐까 한다. 낙타에게 있어서 물이라는 것의 의미는 사막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굉장히 유의미하고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즉, 목숨을 좌지우지하는 중요한 물질인 셈이다. 물론, 한두 달 정도야 물 없이도 살아갈 순 있지만 장기간 물이 없다면 낙타는 죽고 만다. 시인에게 있어서도 물은 그러한 존재인 듯하다. 단기간이야 없어도 되지만, 장기간 시의 향기가 그에게서 사라진다면 그에게 있어 시인이란 이름은 단지 무게 감을 주는 요소일 뿐, 삶의 원동력이 되어주진 못하는 것 같다.저자는 시를 체험이라고 말한다. 풍경과의 만남이라 말한다. 그리고 저자는 시인을 삶의 풍경을 가장 멀리 본 사람이라 칭한다. 거기서 시인에게 본다는 것의 의미라는 질문을 부여한다. 본다는 것의 의미는 다른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 자신에게 달린 것이다. 일반인들이 본다는 것의 의미는 그냥 보는 것이고, 그것을 말로 하면 그 물질을 본 사실을 허공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하지만 시인의 본다는 것의 의미는 오감을 모두 동원하여 그것을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 자신이 얼마나 오감을 사용하여 그리고 그것을 그들의 사고 속에서 재구성하여 다시 밖으로 표현해 내는가 하는 것은 그네들 자신에게 달린 것이다. 시인들에게 있어서는 본다는 것은 물을 얼마나 잘 발견해 내는가와 결부되는 지도 모른다.이 1부에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것은 기와이다. 저자는 기와에서 수 천 년의 역사를 본다. 그 기와 무늬의 아득함 속에서 역사 속에서 그는 말한다. 에페메로스{1) 하루 밖에 살지 못하는 목숨(하루살이를 말함)라고 말이다. 그리고 느낀다. 허무함을 느끼고 또한 그 속에서 생의 완성에 대해 말한다. 죽음이란 단어를 통해서 말이다. 무섭지만 카오스에서 볼 수 있듯, 혼돈과 죽음에서 생은 다시 완성되는 것이다.{ 확 트인 바다로 둘러싸인 섬2-2. 정신의 섬여기서는 쉬르리얼리즘이 힘을 얻는 곳이다. 바로 그림과 시가 하나가 되는 것이다. 1부에서 언급된 모든 풍경들이 여기서 구체적인 모습을 갖추어 나간다. 무엇보다도 여기에서는 하나의 큰 모토 즉, 시는 무형의 화(畵)이고 화(畵)는 유형의 시다라는 말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그것은 저자가 말한 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조각품이지만 언어로 다듬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여기서는 2부에 맞게 사물에 대한 깊은 성찰을 주제로 한다. 즉, 1부에서 그 자체에 대한 즉석 적인 생각을 풀어놓은 것이라면 여기에서는 좀 더 나아가서 본질을 꿰뚫어보고자 하는 것 같다. 그 수단으로서 체험과, 이미지와, 언어의 자율성을 사용한 것이고 말이다. 물론 위에서도 이러한 방법들을 사용하였다. 다만, 그 초점이 다를 뿐이다.여기서 내가 본 것은 시인의 세심한 관찰력이다. 무엇이든지 체험하려고 하는 적극성이다. 그리고 존재를 배려하는 시인의 자비이다. 시인은 이러한 것들을 동원하여 일반인들을 시인으로 둔갑시킨다. 시인이 아닌 그냥 보통 사람을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거북하거나 부자연스럽지 않은 것은 시인의 자연스러움도 한 몫 하지만 시인과 시인 아닌 사람들 간에 차이가 없어서가 아닐까 한다.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시인은 그들의 생각을 하얀 종이 위에 펼치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다는 것뿐이다.이쯤 해서 난 나의 관심을 정신의 섬으로 옮겨보고자 한다. 정신의 섬이란 것은 내가 볼 땐 각자가 가지는 여러 가지 생각의 소산이 아닌가 한다. 특히 시인은 그 영역이 더 큰 듯하다. 본문에서도 나왔다시피 시인은 언어로 말할 수 없는 것을 언어로 말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즉, 시인은 보통 사람보단 좀 더 큰 섬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그 섬은 갖가지 언어와 사고와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섬 주위의 바다는 섬으로 여러 가지를 가져다 준다. 스스로에 대한 성찰이라든지, 섬을 가득 채울 시적 언어 등 다양하다. 과연 나는 얼마나 나의 정신의 섬에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는가에 대해 고민해 본다.2-3. 시인의 뒷모습{ 시인의 모습마지막 3부에서 시인은 그의 주변인물에 대한 따뜻하고도 각별한 애정을 표현한다. 이제까지도 그랬지만, 그의 가장 인간적인 면을 볼 수 있는 글들이었다. 가슴 아픈 것도 있었지만 그에게 있어서 그 모든 것들을 삶을 살아오면서 건진 가장 값진 것들이 아닐까 한다. 내가 생각하는 것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인간관계라는 것은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가에 따라서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관계를 쌓는 것은 쉽지만. 거기서 깊은 정신적 교감을 가지는 인간관계를 가지는 것은 정말로 어렵다고 볼 수 있다. 자신이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선다면 충분히 될 수 있는 것 같다. 진심으로 대하고, 본질로써 접근하려 한다면, 타인을 이해할 수 있고, 거기에 따른 충분히 흡족한 결과를 얻게 될 수 있는 듯 하다.시인은 자신의 뒷모습이란 화(畵)를 통해서 자신의 발자취를 둘러보면서 독자들에겐 그네들의 발자취를 돌아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진정 소중한 것이 뭔지도 일깨워 주면서 말이다. 자신의 소중한 그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는 뜻에서 이 글을 적은 것이 아닌가 한다.시인의 짙은 주름살 뒤에는 전쟁을 겪고 많은 죽음을 경험했을 때 생기는 절망이 아닌 희망과 빛의 그림자가 살아 숨쉰다. 그것은 그의 뒷모습에서도 당당함이란 이름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그의 글에서 느껴지는 것이다. 만일 그의 뒷모습이 당당하지 않았다면 후회스런 삶을 살았다면 그는 이 글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자신의 인생을 타인에게 보여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그의 당당함에 나의 어깨가 자연스레 수그러든다. 난 아직 내 인생에 당당하지 못하다. 그것은 인생을 살아온 횟수가 아니라 얼마나 내가 이뤄놓은 것에 따른 것이 아닐까 한다. 물질적인 것이 아닌 정서적으로 말이다. 난 아직 정신적으로 덜 성숙했고, 아직까지 배워야 할 것도 많다. 성자, 성인까진 아니더라도 나 자신에 대한 성찰을 깊이 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의 뒷모습은 아직 빛을 뿜어내지 못한다. 이제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를수록 나의 앞모습은 후회 없이, 뒷모습을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그러한 인생을 살고자 한다. 적어도 내 미래의 모습은 깊은 주름살 뒤엔 자애와 인덕이, 그리고 뒷모습은 항상 당당함이 있는 저자의 모습을 조금은 닮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