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에 대한 인간의 인식과 사회와의 관계200420600 의학부 정세화들어가는 글설탕은 현재 인간이 먹는 단맛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식품이다. 이제 더 이상 설탕이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조차 없을 정도이다. 이 책은 인간이 사탕수수라는 작물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때부터 지금처럼 어디서나 설탕이 흔해진 세상이 되기까지의 역사를 흥미롭게 서술하고 있다. 그 안에는 이슬람 경전인 ‘코란‘과 함께 단맛을 퍼뜨렸던 아랍인들, 땅을 빼앗긴 신대륙의 사람들, 고향인 아프리카를 떠난 노예들, 딱딱하게 굳은 빵을 설탕물에 적셔 먹어야 했던 노동자들의 아픈 삶 등이 잘 그려져 있다. 저자인 시드니 민츠가 인류학적인 관점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사회적 차원에서도 가치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이 분야에 대해서 알고 있던 사실들이 너무 적었기 때문에 저자의 시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기 보다는 일방적으로 수용할 수 밖에 없었던 점은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저자는 푸에르토리코에서 장기간 현장조사를 실시하며 사탕수수농장을 체험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한 설탕연구를 통해 문화 사회 분야의 광범위한 읽을거리를 제공하고 있다.‘설탕과 권력’은 지난 수세기동안 설탕의 역사를 고찰함으로써, 인간의 역사에 대해서 우리가 가져야 할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설탕 산업의 배후에 자리한 자본주의 논리와 효율성의 추구로 인해 행해진 약자에 대한 억압과 착취는 현 시대에 분명 논의할 필요가 있는 일이나, 우리가 쉽게 간과하게 되는 부분이다. 특히 유럽인들의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착취는 사람이 사람을 하나의 도구로 전락시킨 전형적인 사례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도 어떠한 사회나 조직에서 효율성의 추구가 항상 능사인 것은 아니다. 결국 어떤 조직을 이루고 있는 구성원들은 모두 각자의 존엄성을 지닌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 책에서 논의된 설탕에 관련된 문제는 인간의 식생활, 소비 성향, 국가적 차원의 산업화 등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매우 다각적인 접근을 필요로 한다.설탕에 관련된 연구의 필요성식품과 그 섭취를 연구한 인류학의 대가 오드리 리처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나의 생물학적 과정으로서의 영양 섭취는 섹스보다 더 근본적인 것이다. 개인 유기체의 삶에 있어서 영양 섭취는 보다 기본적이고 반복적인 욕구이며 또한 보다 광범위한 인간 사회의 영역으로 볼 때 이것은 다른 어떤 육체적인 기능보다도 더 사회적 집단의 성격을 결정하고 그 집단들의 행동 형태를 결정하는 요인이 된다.” 이와 같이 식생활은 인간의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이 때문에 이러한 식생활의 상당 부분을 선천적인 인간의 본성과 관련지으려는 노력을 접하게 되더라도 특별한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단맛의 경우도 이러한 설명이 어느 정도는 가능하다. 특히 인간이 단맛에 대해서 호감을 가지는 이유를 "수백만 년 동안 단맛이 그들의 미각기관에 먹을 수 있는 식품이라는 표시로 길들여져 왔기 때문이다"라던가, "인간의 젖이 달기 때문이다."와 같이 설명하는 것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설명이 인간의 보편적인 단맛에 대한 선호도를 나타낼 수는 있다고는 하더라도 단맛의 선호도에 대한 사회간, 문화간, 시간간의 차이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더군다나 현대 세계의 일부 사람들이 정제된 설탕을 상당히 많이 소비하고 있는 현상에 대해서 설명해 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기원후 천 년 까지만 해도 유럽인들 가운데 사탕수수 설탕이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그 이후로 1650에 잉글랜드에서는 귀족들과 부자들이 우선 설탕 소비자가 되었으며 설탕은 의약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문학적인 표현에 등장하기도 하는 반면, 신분을 나타내는 표시가 되기도 하였다. 1800년에 이르면 설탕은 아직 비싸고 희귀한 것이기는 했으나 영국인들의 식탁에서 빠질 수 없는 필수품이 되었다. 1900년이 되어서는 설탕이 영국인의 식사에서 총칼로리의 거의 5분의 1을 공급해 줄 만큼 일상 식생활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렇게 된 이유에 대해 설탕은 단것이고, 사람은 누구나 단맛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면 그 이면에 있는 너무나 중요한 사실을 놓치게 된다. 낯선 물건이 새로운 사용자들에게 선택될 경우에 그 물건들은 기존의 사회적 심리적 상황 안으로 들어가서, 그 사용자들에 의해서 새로운 상황적 의미들을 부여받게 된다. 우리는 설탕을 연구함으로서 그 새로운 의미와 그 의미를 부여했던 사회의 변화상을 관찰할 수 있는 것이다.설탕과 자본주의- 설탕산업의 시작과 자본주의의 태동저자는 설탕의 생산방식과 향유계층 변화가 근대화·산업화는 물론 자본주의에까지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한다. 아랍에서 고안된 설탕 채취술은 십자군 전쟁으로 전 유럽에 전파됐다. 16세기 말에 사탕수수의 주 재배지는 아프리카 노예들이 많은 신대륙이었으며, 유럽과 신대륙 간의 무역 교류는 제국주의에 기반을 둔 거대한 시장을 형성시켰다. 산업화 시대의 노동자들은 대량 생산된 설탕으로 값싸게 칼로리를 보충해가며 노동에 매진했으며, 카리브해 지역의 설탕 농장은 자본을 투자하고 노동력과 시간을 효율적으로 분배해 최대 수익을 올리려는 자본주의 원리에 입각하고 있었다.생산의 측면에서 살펴보면 설탕은 고수익의 사업이었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설탕 농장을 세우기 시작할 무렵, 설탕 산업은 높은 위험과 그에 따르는 고수익을 보장해 주는 산업이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위험은 점차 사라졌지만 수익성은 그대로 남아 여전히 농장주들, 또는 농장주들에게 자금을 대주는 은행가들의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한 산업으로 자래매김 한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설탕 산업이 성장하는 시기이다. 이 시기는 아직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드러난 것은 아니지만, 자본주의를 향한 매우 중요한 단계였다고 할 수 있다. 설탕 농장을 처음 시작한 것은 스페인이었고, 설탕 산업을 발전시킨 것은 포르투갈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 어느 나라보다도 영국이 설탕 산업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가지게 되었다. 영국의 초기 설탕 농장주들은 농장이 그들에게 가져다주는 이익의 관점에서 농장의 가치를 계산하고 있었으며 그들의 채권자들 역시 동일한 방식으로 그들의 농장을 평가하고 있었다. 농장의 소유자들은 통상 사업가들로서 종종 부재의 지주들이었으며, 그들이 투자하는 자본은 대게 본토의 은행들에서 대부를 받은 돈이었다. 생산 면에서 설탕은 유럽 국가들이 해외에서 복합적인 종류의 농경실험을 펼치게 된 주도적인 동기를 제공했으며, 소비 면에선 설탕이야말로 호사품에서 필수품으로, 생활고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이 맥주 대용품으로 즐겨먹던 대량 생산품으로 변모한 최초의 품목이었으며 그러한 변화가 바로 자본주의의 시작 과정이었다.-설탕 산업에 담겨있는 자본의 논리설탕 산업에 있어서 기술적인 발전은 매우 미약한 수준에 머물렀다. 생산의 증가는 기술의 발전에 힘 입었다기 보다는 생산지의 확산지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생산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은 노동력의 확보였고, 따라서 국제적으로 값싸게 대규모로 노동력이 필요로 하게 되었는데, 아프리카의 노예들이 이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아프리카 노예들에 대한 억압과 착취, 비인간적인 대우 등이 공공연하게 일어나게 된 것에 대해서 설탕 시장 자체에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실제로 다른 산업들에 비해서 설탕 산업이 가장 노동 집약적인 산업이면서, 한 곳에 대규모의 노동력의 투입으로 효과를 극대화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노예들에 대한 비인간적인 대우가 강력하게 지속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값싼 노예 노동력에 대한 실수요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노예 제도는 세상에 설탕 농장이 만들어지기 이전부터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노예 제도가 없어진 이후에도 이름만 바뀌었을 뿐이지, 설탕 농장에 묶여질 수 밖에 없는 노동자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다시 말해서 설탕 산업 자체가 자본주의 또는 자본주의로 인한 부작용을 설명해 주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설탕 산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국가, 자본가, 노동자들 사이의 관계를 올바로 보는 것이다. 앞에서도 계속 언급했듯이 사실 이 사실들은 자본주의가 수면 위로 들어나기 이전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국제적인 산업에서 들어나는 극단적인 효율성의 추구는 분명 자본주의의 속성과 일치하고, 자본으로 모든 산업을 설명할 수 있는 오늘날에도 가장 큰 문제임에는 분명하다.저자는 설탕 산업 자체에 대한 이야기 보다는, 그 속에 담겨있는 자본의 논리를 꼬집어 비판하고 있다. 아프리카는 값싼 노동력을 제공했고, 아메리카는 사탕수수를 대규모로 재배할 수 있는 토지를 공급했으니, 설탕 산업은 자본주의라는 이름 아래 다른 인종에 대한 차별의 온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설탕에 담긴 의미 변화와 그 해석소비의 측면에서 볼 때 설탕은 크게 세 가지 인식의 변화를 겪게 된다. 이 변화를 시기별로 나누면 다음과 같이 100년 단위로 변화하게 된다. "1650년대 희귀품, 1750년대 호사품, 1850년 필수품." 설탕의 인식의 이와 같은 변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은 우선 생산량의 증가이다. 하지만 공급이 증가한다고 수요가 무조건 뒤따르는 것은 아니다. 설탕이 필수품이 되기 이전에는 설탕은 권력의 상징이었다. 따라서 이후에 설탕의 가격이 내리고 대중화 되었을 때, 설탕을 소비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설탕이 예전에 가지고 있던 권력의 상징성을 어느 정도 기대했던 것이 사실이다. 설탕은 생활고에 시달리던 영국 노동자들에게 식사 준비시간을 절약시켜주는 수프의 대용품이었다. 설탕은 술과는 달리 노동생산성을 해치지 않고 칼로리를 공급하는 상품이었기에 처음에는 희귀품이었다가 점차 호사품, 필수품으로 사람들에게 재인식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작은 변화를 위한 아름다운 선택’을 읽고이 책의 주인공인 폴 파머 박사는 하버드 의과대학을 졸업한 전염병 전문의이자 인류학자이며, '보건을 위한 파트너들(PHI)'이라는 단체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그는 그가 근무하는 보스턴 병원에서 복도를 지나가는 간호사, 청소부와 일일이 포옹하고 웃으며 안부를 묻고, 전화교환원의 가족 중 한사람의 병 상태가 호전되었는지도 세심히 물어보며, 회진을 한번 돌기까지 주변 의사들의 애를 바싹 태우는 조금은 괴짜 같은 인물이다. 하지만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무한한 애정과 관심을 쏟아 붓는 그는 정말 사람 냄새가 나는 의사이다. 그는 보스턴병원에서 전염병 전문의로 근무하며 하버드 의과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강의도 하고, 또 각종 모임과 강연회에 초청받아 연설을 하기도 하는 등 매우 바쁜 일정 속에 살아가는 저명한 의사이다. 그러나 그가 그러한 명성에 맞추어 태도가 거만하거나, 부를 축적해 호화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전혀 아니다. 그는 오히려 환자들에게 ‘천사’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항상 겸손하고 언제나 연구하는 자세를 잃지 않으며, 다른 이유를 들어 휴식을 취하려거나 일을 게을리 하는 등의 보통사람이라면 충분히 가질 법한 성향도 전혀 없는 일벌레 의사이자, 인류를 위한 봉사를 실천하는 참다운 의사이다.폴 파머는 1959년 미국의 노스 애덤스 시에서 빈곤한 가정의 3남3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이동이 잦고 위험천만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어릴 적부터 명석한 두뇌와 열정이 남달라 학업 성적도 우수하였고,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인기도 많은 학생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듀크 대학에 진학해 인류학을 공부하면서 중남미 지역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미국의 외국인 노동자였던 아이티인들을 만나게 된 그는 직접 아이티의 현실을 경험하면서 자신의 삶을 그들을 위해 바치기로 결심한다.그의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작품은 바로 아이티에서의 공중 보건 사업이다. 그는 아메리카 최빈국 중의 하나인 아이티에 건너가 헌신적인 의료봉사활동을 펼치고 그곳 사람들의 로, 그가 설립한 보스턴에 본부를 둔 자선단체 PIH의 기금으로 운영되었다. 장미 라장테는 의료적인 측면 이외에도 아이티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컸다. 학교와 집, 상하수도 건설을 추진했고, 어린이 예방접종을 시행했으며 여성 글자 교육과 에이즈 예방교육 등도 진행해 나갔다. 폴 파머는 그 곳에서 결핵 퇴치를 위해 힘썼는데, 입원치료가 아닌 내방 치료를 실시하여 치료비용을 절감할 수 있어 매우 큰 효과를 거두었다. 그는 아이티의 결핵발병률을 낮추는데 큰 기여를 했으며, 그 과정에서 오필리아와 짐 킴을 만나 평생의 파트너가 되어 함께 공중보건사업을 이끌어가게 된다.아이티는 프랑스의 식민지였다가 가장 먼저 독립한 세계 최초의 흑인공화국이다. 그러나 내정은 매우 불안해 장기간의 군사독재와 미국의 내정간섭이 계속되었고 국민들은 가난과 질병에 찌들었으며, 사회 기반 시설과 공중보건시설등도 미약하기 짝이 없는 실정이다. 뇌척수액 검사를 받는 아이의 입에서 아프다는 고함에 뒤섞여 배고프다는 고함이 나오는 곳이 바로 아이티이니, 그들의 가난을 가히 짐작할 만 하다. 또한 아이티인들은 대부분 부두교로 마법과 주술에 의하여 질병이 발생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 병에 걸리면 다른 사람의 저주에 의해서 생긴 것이라 믿고, 병이 치유되는 과정도 의사가 마법을 써서 고치는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폴 파머는 아이티인들이 마법을 믿는 이유가 그들의 문화에 이제껏 효과적인 의학이 부재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의료혜택을 거의 받지 못한 그들은 마법의 힘을 빌려 질병과 그에 따른 죽음을 이해하는 것이다. 누군가 마법을 써서 질병을 보냈다는 비난과 의심은 상대적인 물질의 부족함에서 비롯된 질투심에서 생겨난다. 한 노파는 자신의 두 아들이 병으로 죽자, 더 좋은 집에 살고 있던 막내아들이 저주를 내렸다고 생각하고 그를 증오했다. 경제적인 불평등에서 싹트는 이러한 의심과 비난은 아이티에서 너무도 흔하다. 이로 인해 가정이 파괴되고 친구들이 서로를 미워했다. 이러한 아이티의 안타까운 사정롱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폴 파머는 아이티가 세계에서 가장 잘못 알려진 나라 중의 하나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그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지만, 폴 파머는 달랐다. 장미 라장테의 의료진들이 모여 아이티 환자들의 결핵 치료를 방해하는 요인이 무엇인지 의견을 모았을 때, 지역보건요원들은 치료를 방해하는 가장 큰 장애요소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꼽았다. 그들은 가장 가난한 환자들의 경과가 가장 나쁘다는 사실을 근거로 들었는데, 이는 대부분 영양 불량 상태에서 기인하는 것이라 생각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전문 의료 인력들(현지 의사, 간호사, 기술자들)은 환자의 의지부족을 문제점으로 지적하였다. 그들은 환자들이 몸 상태가 좀 좋아졌다 싶으면 완전히 치유되지 않았는데도 약 복용을 멈춘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것은 마법에 대한 미신과 결핵의 원인에 대한 몰상식에서 기인한다고 보았다. 양측 모두 일면 일리가 있는 상황에서 파머는 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구상했다. 두 표본 집단의 환자들을 치료약만 공급받는 그룹과 치료약과 함께 생활보조금도 공급받는 그룹으로 나누어 그 치료 결과를 관측하였다. 파머는 이 두 그룹을 똑같이 설문조사했는데, 대부분의 환자가 결핵이 마법 때문에 생긴다고 믿는다고 답했다. 그러나 치료약만을 공급받은 환자보다 치료약과 함께 식량과 육아 교통비등을 포함한 보조금을 지급받은 집단의 완치율이 훨씬 높았다. 환자가 결핵의 원인이 병원균이라고 생각하는지 주술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는지는 병의 완쾌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이다.이는 사실 내게 조금 놀라운, 예상을 빗나간 결과였다. 부두교의 전통과 마법에 대한 그들의 미신이 강하게 어필해온 상태에서, 나 자신도 그들의 몰상식과 미개함이 질병 치료에 장애가 될 것이라고 은연중에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가만히 보면 미국인도 서로 모순되는 두개의 믿음을 가지고 산다. 의학과 기도의 힘을 다 믿는 것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아이티에 대해서 그러한 편견을 갖는 것 의료서비스와 더불어 의료외적인 서비스까지 종합적으로 받을 수 있게끔 시스템을 수정했다. 환자마다 지역보건요원을 배정해 제 때에 약을 먹는지 확인하고 생활보조비도 받게 하였다. 이 프로그램은 매우 성공적이어서 12 년 동안 한 명의 결핵환자도 치료 중 도중하차하지 않았다. 이를 통해 파머는 인근 지역의 결핵발병률을 매우 낮은 수치로 떨어뜨리는데 큰 기여를 할 수 있었다.폴 파머와 아이티의 이야기를 통해 의학은 단지 과학이 아니라 그 사회의 특성과 여건을 파악하여 그에 걸맞는 치료 방법을 찾아내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이티의 경우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진료를 넘어서 환자 개개인의 특성에 기초하여 더 많은 관심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였고, 또한 가난에 찌든 환자들에게 식비 등의 생활 보조비가 마련되었을 때 치료의 효과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폴 파머는 인간적이고 봉사적인 훌륭한 의사임과 동시에, 철저하고 정확한 지역 파악을 통해 성공적인 의료사업을 완수한 문화적 의료인의 성공적인 케이스라 할 수 있을 것이다.폴 파머는 또한 다제내성 결핵(MDR)에 대한 잘못된 통념을 꼬집어 내고, 페루에서 짐과 함께 다제내성 결핵 환자들의 치료를 위해 힘썼다. 다제내성 결핵(MDR)이란, 한 가지 항생제만 복용하거나 여러 종류의 항생제라도 충분한 양을 복용하지 못하거나 불규칙적으로, 혹은 단기간동안만 약을 복용한 환자의 경우 나타나는데, 약에 반응하는 결핵균은 퇴치되나 약에 내성이 생긴 변종 결핵균은 계속 번식하여 최악의 경우에는 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두 종류의 결핵치료제가 모두 소용 없게 될 수도 있다. 파머의 절친한 친구 잭 신부님도 페루에서 이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페루의 카라바이요에서 짐이 추진하는 ‘소시오스(스페인어로 ’보건을 위한 파트너들‘)’에서는 페루 공중 보건 사업의 일환으로 다제내성결핵 환자의 현황을 조사하기 시작하였는데, 그 결과 다제내성 결핵이 카라바이요에서는 오히려 일반적인 결핵의 형태로 조사되었다. 결핵 표준 치료 똑같은 약물을 복용할 것을 권했다. 의사가 환자에게 이토록 해로운 지시를 내리게 된 것은 의사 개인의 무지나 부주의 때문이 아니라, 국가 공식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의사가 임의로 거역할 수 없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일차적으로는 페루의 결핵퇴치프로그램을 총괄하는 관리들이 정책을 수립했고, 이는 세계보건기구(WHO)에서 권고한 치료절차(DOTS)를 무조건 수용한 것이었다. 이렇게 정부의 무책임한 정책으로 결핵이 다제내성 결핵으로 변종된 환자들은 2차 치료약은 너무나 비싸서 치료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죽음만을 기다리는 형편이었다. WHO는 사실상 이런 환자들에게 죽음을 처방한 셈이었다.폴 파머는 이후에 국제 결핵 및 폐질환 퇴치 연맹의 북미 연례 회의에서 연설을 통해 MDR과 DOTS치료법에 대한 잘못된 통념을 꼬집어 내었다. 다제내성 결핵은 후진국에서 치료하기에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드는 질병이라 이를 투자하는 것은 자원과 시간의 낭비라는 WHO의 주장에 대해, 다제내성 결핵을 치료하는데 실패함으로써 발생하는 비용이 훨씬 더 많다고 반박했다. 또 DOTS 프로그램만으로 다제내성 결핵을 진압할 수 있다는 믿음을 어불성설로 일축하고, 그 치료법은 이미 약물에 저항력을 가진 결핵균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들을 더 중폭시키는 기폭제가 될 뿐이라고 말했다. 또한 다제내성 결핵이 일반결핵보다 전염성이 약하고 상대적으로 덜 치명적이라는 믿음에 대해 그것은 의사들의 소망일 뿐이라고 못박았다. 이는 대다수가 결핵치료에 저명 있는 의사였던 청중들에게 매우 충격적인 연설이었다. 또한 짐과 폴은 이들을 치료하기 위해 하버드에서 두 제자를 불러오고 현지 의료팀을 구성했으나 페루 당국은 정부가 추진하는 결핵 프로그램에 결함이 있다는 얘기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몇몇 의사들은 이들을 ‘모험을 즐기는 의사들’이라며 비꼬기도 했고, 한때 정부 관리들의 압박으로 페루 국외로 추방당할 위기도 있었다. 소시오스가 카라바이요에서 MDR 치료의 새 표준을 확립하면 전국적으로 결핵치료법이 새로이
The Comparison of France and Germany200420600 Jung, Se HwaThe general comparison of the two countrycornflowerlilyNational Flower23,560$22,730$GNPrepublican systemrepublican systemGovernment SystemBerlinParisCapital82,604,00059,773,000PopulationEastern EuropeWestern EuropeLocationGermanyFrance1. 자연과 기후프랑스 국토의 모양은 6각형. 3면은 바다로 3면은 산지로 둘러싸여 있다. 해양성, 대륙성, 지중해성 기후가 모두 나타난다. 독일 북독일평야, 중앙고지, 남독일, 독일알프스로 분류된다. 서유럽의 해양성 기후와 동유럽의 대륙성 기후의 중간형이다.2. 민족프랑스 유럽에서도 인간이 일찍 정착한 곳으로 네안데르탈인보다도 10만년 앞선다. 인종혼합을 거듭하여 현재 프랑스인이 탄생하였다. 독일 게르만족이 독일 땅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많은 민족을 몰아내거나 흡수하였다. 현재의 독일인은 게르만족(91.5%), 터키인(2.4%), 이탈리아인, 그리스인, 폴란드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3. 언어프랑스 프랑스어는 국제회의 등에서도 영어와 나란히 공용어로서 사용되고 있다. 이미 독립한 식민지에서도 여전히 프랑스어가 사용되고 있다. 독일 독일어는 1억 3000만 명이 사용하는 세계 제6위의 언어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동,서 영토분할로 인하여 이질화를 겪었으나 90년 통일 후 언어 평균화가 다시 시작되었다.4. 사회 보장 제도프랑스 가족수당 : 인구정체의 해결 측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출산수당과 자녀수에 대응하는 주거수당 등) 1년 동안 5주의 휴가를 가질 법적 권리가 있다. 독일 독일의 사회시장경제는 경제활동에 기여할 수 없는 집단을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보호한다. (지불 능력에 따른 차별화된 조세제도 등) 의료보험이나 사회연금제도도 일찍 정착되었다.5. 교육프랑스 대혁명 때 교육이 일반에게 보급되기 시작하여 문맹률이 점차 낮아지게 되었다. 현재 의무교육은 6~16세이고 중등교육에서 진학, 취직의 코스로 나뉘어진다. 독일 의무교육에 대해서는 각 주가 전적으로 책임을 진다. 중등교육은 직업교육, 보통교육, 대학진학을 위한 교육의 세가지로 분류되며, 별도의 대학 입학 자격 획득을 위한 코스가 있다.{nameOfApplication=Show}
콜레라 시대의 사랑- 사랑의 열병과 전염병 콜레라 -의학부 200420600 정세화- 여는 말“콜레라 시대의 사랑”. 일단 책을 읽기 전에는 제목에 ‘콜레라’가 들어가서 약간의 거부감도 일었고, 도대체 ‘콜레라’와 ‘사랑’이 무슨 관계일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하지만 책의 제목에서 말하는 콜레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말 같았다. 콜레라 시대란, 콜롬비아의 어지럽고도 과도기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던 변혁의 시대를 의미하는 것 같았고, 더불어 책의 주인공들이 나누는 죽음까지 함께 하겠다는 사랑을 형상화한 단어로도 생각되었다. 콜레라는 마치 인생이라는 강물 위에 띄운 배의 깃발에 쓴 경고와도 같다. 배가 뜬 강물의 주위는 온통 콜레라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나, 주인공들의 항해는 멈출 줄을 모른다.이 책은 사랑하는 여인 페르미나 다사와 함께 있기 위해 51년 9개월 4일을 기다리는 플로렌티노 아리사의 사랑이 세월의 흐름과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고 행복한 결말을 맺는다는 낭만적인 이야기이다. 또한 제목이 보여주는 사랑과 늙음, 질병이라는 주제와 더불어, 그 시대 사회상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문제들도 탐구한다.-본론1. 줄거리이 소설은 콜롬비아 카리브 해의 어느 이름 없는 마을을 배경으로 식민시대에서 근대사회로 넘어가는 19세기말부터 1930년대까지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사랑했던 여자 페르미나 다사를 다시 만나기 위해 51년 9개월 4일을 기다린 남자 플로렌티노 아리사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의사인 우르비노 박사는 앵무새를 잡으려다 나무에서 떨어져 죽는다. 그는 마지막으로 아내 페르미나에게 사랑한다는 고백을 남긴다. 그 후 플로렌티노는 장례식장에 찾아가 우르비노 박사의 미망인 페르미나에게 다시 한 번 영원한 사랑을 고백한다. 그러면서 소설 속 시간은 51 년 전으로 돌아간다.가난한 청년 플로렌티노는 부유한 상인의 딸인 페르미나를 보고 첫 눈에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나누지만 페르미나의 아버지가 두 사람 사이를 떼어놓기 위해 딸에게 여행을 강권한다. 긴 여행에서 돌아온 페르미나는 18살때 왕진을 왔던 의사 우르비노와 결혼하고, 절망에 빠진 플로렌티노는 증기선을 타고 여행을 떠난다. 여러 여자와 관계를 맺으며 페르미나를 잊고자 했던 플로렌티노는 페르미나를 자신의 곁으로 돌아오도록 하기 위해 돈과 명예를 얻겠다고 결심한다. 플로렌티노는 복수하듯 돈을 벌고 밥 먹듯이 여자를 갈아 치우지만, 임신한 페르미나를 우연히 본 뒤 자신이 실제로는 단 하루도 페르미나를 잊지 못하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한편 페르미나는 우유부단한 남편과 까다로운 시어머니 사이에서 불행한 결혼생활을 한다. 더군다나 우르비노 박사가 바람까지 피우자 페르미나는 사촌언니 집으로 떠나며 별거 생활을 시작한다. 카리브 하천 회사의 총수 자리에 오른 플로렌티노는 우르비노 박사의 사망 소식을 들은 뒤 수많은 주변 여자들을 정리하고 페르미나 곁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그는 인생과 사랑, 늙음과 죽음에 대한 명상을 담은 장문의 편지를 페르미나에게 보낸 뒤,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새로운 관계를 맺으려고 노력한다. 처음에 페르미나는 당황하고 불쾌하기까지 했으나 플로렌티노의 끈질긴 노력으로 다시 만나게 되었고, 둘은 천천히 서로의 거리를 좁히게 된다.오랜 세월이 지난 만큼 젊은 날의 정열에 비견될 만큼 풍부한 감성과 여유, 그리고 삶과 상대를 바로 볼 수 있는 혜안을 지니고 있었기에 이제 70~80대의 노인이 된 둘은 세상의 편견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둘만의 세상을 향해 항해를 시작한다. 여행을 하면서 두 사람은 오랜 세월을 함께 한 부부처럼 편안한 행복을 느낀다. 두 사람은 배에서 내리지 않고 목숨이 다할 때까지 함께 여행하기로 한다.선장이 물었다."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입니까?"그러자 플로렌티노 아리사가 대답했다."태어난 이래, 나는 진심으로 하지 않은 말이 단 한 마디도 없소."선장은 페르미나 다사를 쳐다보았고,그녀의 속눈썹에서 겨울의 서리가 처음으로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그런 다음 플로렌티노 아리사와 그의 꺾을 수 없는 힘,그리고 용감무쌍한 사랑을 보면서 한계가 없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삶일지도 모른다는 때늦은 의구심에 압도되었다.선장이 다시 물었다."언제까지 이 빌어먹을 왕복 여행을 계속할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플로렌티노 아리사에게는 53년 7개월 11일의 낮과 밤 동안 준비해 온 대답이 있었다.그는 말했다."우리의 목숨이 다할 때까지."- 2권 p.331 -2. 사회에 대한 풍자이 소설에는 현대 사회속의 인간의 소외, 타성에 젖은 현대인들의 생활양상이 잘 나타나 있다."참 믿을 수가 없어요, 그 오랜 세월 동안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 그렇게 거짓말 과 우스개 짓으로 고민하면서 사실 그게 사랑인지 아닌지 알지도 못하고 말이죠."페르미나는 오십 년 가까이 되는 세월 동안 그녀가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며 사랑하는 남편과 함께 살고 있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플로렌티노의 고백과 함께 자신이 그 오랜 세월동안 한번도 진정한 행복을 찾지 못했음을 깨닫는다. 타성의 길, 이 무섭도록 단조로운 반복이 그녀를 소름끼치게 한다. 그리하여 뒤늦게 다가온 행복이 그녀에게는 더욱 더 값진 보석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설사 그것이 또한 진정한 사랑, 진정한 행복이 아니었더라도, 그녀는 이제까지 누리지 못했던 인생의 참 맛을 알게 되었다는 기쁨에 가득 차 활활 타올랐을 것이다.또한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를 배경으로 삼고 있는 이 소설은 21세기에 들어가려는 문명화된 사회에 대한 풍자를 겨냥하고 있다. 19세기의 진보가 남긴 폐허 속에서 아직도 시대착오적인 삶을 사는 사람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책의 주 골격을 이루고 있는 페르미나를 기다리며 반세기를 덧없이 보낸 플로렌티노의 사랑이, 실은 플로렌티노 자신이 이상화한 이미지에 빠진 것에 불과했다고 생각이 된다. 그렇기에 마지막에 떠난 그들의 여행은 결국 또 행복한 결말을 맺지 못할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또한 각 계층을 대표하는 세 명의 주요 인물은 식민지 시대 이후에도 무력증에서 헤어 나올 줄 모르는 도시의 모습을 대변한다. 소설 속에서 사교클럽으로 대변되는 상류층과 상업클럽으로 대변되는 중류층의 대비가 극명하게 이루어지고 있다.3. 사랑에 대한 풍자17살의 플로렌티노는 14살의 페르미나에게 첫눈에 반하고, 그들은 사랑을 하게 된다. 이때 그들은 사랑에 대한 이상만을 꿈꾸며 서로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한 채 편지 교환을 통해서 사랑의 감정에 빠진다. 그런데 몇 년 만에 만난 플로렌티노의 외적인 모습에 실망한 페르미나는 갑자기 일순간에 그를 사랑했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우르비노 박사와 결혼을 하게 된다. 페르미나를 향한 영원한 사랑을 간직한 플로렌티노는 그녀와 사랑을 이루기 직전까지 50년 넘는 세월 동안 방탕한 육체적 사랑을 되풀이한다. 그리고 그녀가 그의 소문을 듣지 않도록 하기 위해 비밀을 철저히 보장하며 살아간다.이렇게 비뚤어진 사랑을 키워오던 두 사람이 나중에 재회했을 때 그 사랑은 과연 진실된 것이었을까. 남편의 사후 페르미나는 단지 플로렌티노를 정신적으로 의지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대상으로 여겼던 것은 아닐까. 플로렌티노 역시 페르미나가 단지 일생의 목표 내지는 추상적인 이상에 지나지 않는 존재이지 않았을까. 이 두 사람은 어리석게도 그런 감정들을 사랑이라고 착각하고 환희에 찼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그 당시에 우르비노의 구혼은 결코 사랑의 이름의 제안된 것이 아니었다. 즉 사회적, 경제적 안정과 질서, 물질적 행복 등, 모두 더하면 사랑처럼 보일 수 있는 것들만 제시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사랑이 아니었고, 이 점은 페르미나의 혼란을 가중시켰다. '모두 더하면 사랑처럼 보일 수 있는 것들‘이 정말 '사랑'까지도 가져올 수 있는 것일까? 이 책에서는 그것이 가짜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실은 그 이면에 더 큰 의미가 숨어 있기도 하다.
실험 목적직물용 섬유로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합성고분자인 나일론을 합성해 보고, 합성 고분자와 축합반응에 대해 공부해 본다.실험 원리*중합반응 : 저분자량의 단량체들이 반복적으로 결합된 분자를 고분자라하는데 이러한 고분자를 형성하는 단위체 분자들의 결합반응을 중합이라고 한다.1) 첨가중합 ; 이중결합을 가진 분자들이 단위체 원자의 손실 없이 고분자를 형성하는 중합2) 축합중합 ; 단위체 분자 내에 2개 이상의 작용기가 있어 이들이 결합을 하면서 물과 같은 간단한 분자가 빠져 나오는 중합반응*나일론의 합성 - 나일론을 합성하는 방법에는 두가지가 있다.1. 나일론6,6은 공업적으로 헥사메틸렌디아민과 아디프산을 215℃에서 여러 시간 그리고 270℃진공하에서 약 한시간 반응시켜 얻는다.그러나 이는 고온과 진공의 조건에서 반응이 일어나므로 반응이 더 수월한 또 다른 방법을 이용하겠다.2. 또 다른 방법은 반응성이 큰 산염화물을 이용하는 것으로, 이산염화물은 실온에서도 아민과 쉽게 반응하여 폴리아마이드를 만들 수 있다(Schotten-Baumann 반응). 즉, 염화세바코일과 헥사메틸렌디아민은 실온에서도 다음과 같이 반응하므로 나일론 6,10은 실험실에서도 쉽게 합성할 수 있다.헥사메틸렌디아민은 물에, 염화세바코일은 물과 섞이지 않는 용매에 녹여 접촉시킴으로써 두 용액의 계면에서 중합반응이 일어나는 계면중합을 이용한다. 계면에서 생긴 중합체(나일론)의 필름을 집게로 집어 올리면 필름이 제거됨과 동시에 그 자리에 새로운 중합체가 계속 생성되게 되는 연속 반응이 일어난다. 이로서 끈이나 실 모양의 고분자 중합체를 만들 수 있다.실험 준비물*실험기구 : 비커(250㎖), 눈금피펫(5㎖), 핀셋, 유리막대, 오븐 또는 진공오븐, 감압거름장치, 진공펌프, 저울, 녹는점 측정기*시 약 : 헥사메틸렌디아민, 염화세바코일, 디클로로메탄 또는 사염화탄소, 메탄올, 테트라클로로에틸렌, 아세톤, 수산화나트륨실험 방법[실험1]①염화세바코일 0.5㎖를 눈금피펫으로 취하여 디클로로메탄(또는 사염화탄소) 10㎖가 들어있는 50㎖ 비커에 용해시킨다.②50㎖ 눈금실린더(비커)에서 헥사메틸렌디아민 0.46g 과 수산화나트륨 0.08g을 10㎖의 증류수에 용해시킨 다음, 이 용액을 염화세바코일 용액이 담긴 비커의 기벽을 따라 서서히 부어 넣는다.③나일론 필름이 접촉되는 계면에서 생성될 것이다. 생성된 나일론 필름을 핀셋으로 조심스럽게 끌어올려 유리막대에 감는다.④유리막대를 돌려 계면에 생성된 필름을 비커로부터 끌어올리면, 계면에서 계속 중합체가 생성되므로 이어지는 나일론 끈을 얻을 수 있다. 중합체가 더 이상 생성되지 않을 때까지 유리막대로 나일론 끈을 감아올린다. (주의 : 이때 감아 올린 나일론 끈은 반응하지 않는 출발물질을 포함하고 있을 수 있으므로 씻기 전까지는 손으로 만지지 않도록 한다.)⑤생성된 나일론의 끈을 메탄올 또는 아세톤의 1:1 수용액으로 씻은 후 다시 물로 충분히 씻는다. 이것을 100℃이하의 오븐 또는 50℃이하의 진공오븐에서 말린다. 얻은 중합체의 무게를 달고, 그 녹는점을 측정한다.[실험2]①헥사메틸렌디아민 2.3g과 수산화나트륨 0.8g을 물 160㎖에 용해시킨 후 조리용 혼합기(blender 또는 mixer)에 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