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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학] 종교다원화 사회에서의 교회론 정립
    Ⅰ.서론‘교회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은 기독교 역사가 시작된 이래 계속된 질문이다. 한스 큉은 그의 저서 ?교회란 무엇인가?에서 "시대마다 특정한 역사상황에서 나온 교회상이 있고 변하는 역사적 양상 속에서 교회의 본질을 볼 때, 비로소 우리는 교회를 파악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한스 큉의 말대로 교회의 본질은 항상 변화 가능한 역사적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과 이 세상의 역사 속에 살고 잇는 현실 교회에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더욱이, 지금 우리는 지금 종교다원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 전통적으로 기독교만이 참 종교요 절대 종교라고 믿는 기독교 절대주의의 입장이 이 시대에 들어와서는 종교는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며 절대 종교란 있을 수 없고 모든 종교는 상대적이라고 주장하는 종교다원주의의 물결이 거세게 풍미하고 있다. 성경의 권위와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부정하면서 기독교의 정체성을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는 이 흐름은 이미 교회를 향해서도 회오리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과연 교회 안에서만 구원이 있느냐의 문제가 제기되면서, 교회 밖에서의 구원의 가능성에 관한 논의들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이미 카톨릭 교회에서는 1965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고 공식 선언함으로써 트렌트 공의회에서 못 박아두었던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Extra ecclesiam nulla salus)”라는 명제는 그 뿌리채 흔들리고 만다. 또한 에큐메니칼 운동을 벌이고 있는 WCC 역시 정태적, 고정적 성격이 농후하던 전통적인 교회론의 입장에서 탈피하여 불가시적 역동적 교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교회는 종교다원주의라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모든 종교는 상대적이라는 주장 앞에서 교회지상주의의 고수는 무의미해진 사회이다. 과연 더 이상 과거 제도적 교회의 지향은 어려운 것인가? 본 소고에서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서 제도적 교회에 대한 반성과 아울러 앞으로의 교회가 지향해야 할 교회론의 방향에 대해 재정립하고자 한다.Ⅱ. 위기에 직면하여 있다.종교다원화 현상은 구원이 교회 안에서만 가능한 지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하며, 전통적인 교회론을 위협해 들어오고 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No other name?)?의 저자 폴 니터는 교회 중심의 신학이 그리스도 중심으로 변하고 또 다시 하나님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교회를 초월하신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말한다. 또한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라는 용어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이 이미 타종교인에도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칼 라너는 타종교에 대한 포용주의적 입장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보편성을 이야기한다.) 그의 주장에는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말하는 교회를 통한 구원의 필연성과 하나님의 구원의 보편성이라는 모순되는 듯한 두 원리를 연결시켜 구원에 대한 논쟁의 해결을 구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의 주장 역시 제도로서의 교회를 넘어서 있는 하나님의 구원을 말하고 있다. 한편 카톨릭 신학자 한스 큉은 모든 종교는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존재 상황으로부터의 구원을 도모한다고 말하면서 교회 밖에도 구원은 있다는 대담한 주장을 시도한다. 문제는 구원의 방법이 평범한가 또는 비범한가의 차이인데, 물론 기독교의 구원을 비범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이렇게 전통적 제도적 교회에 대한 반감은 WCC 총회에서 나타난 일련의 에큐메니칼 운동의 교회론에서 더욱 분명히 알 수 있다. 에큐메니칼 교회론의 특징은 다음의 몇 가지 강조점을 갖는다.첫째로, 에큐메니즘의 교회관은 전통적인 카톨릭 신학의 교회관이나 종교개혁자들의 교회관에서 볼 수 있는 바, 가시적 제도성이 지니는 배타적 제한성에 대한 반성적 입장에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기점으로 카톨릭 교회는 교회가 카톨릭 교회의 제도적 질서에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삼위일체적인 삶 속으로 끌려 들어감으로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부터 하나가 된 백성을 궁극적 교회의 본질로 바라보게 됨을 의미한다.둘째로, 교회는 그 자체로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로 이해될 수 없는 것이며, 이 세상,과연 이 시대에 필요한 지의 여부에 대한 당위성에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신학적으로 그리스도가 존재하는 곳에 교회가 존재한다고 말한다면, 그리스도의 현존의 범위는 분명히 가시적, 제도적 교회의 범위를 넘어선다. 그리스도는 교회 안에만 임재하는 것이 아니고, 가난한 형제들 가운데 소리없이 현존하며(마 25:31-46), 단지 교회만의 머리가 아니라, 온 우주의 머리이기도 하다(엡, 골).)그렇다고 본다면 교회의 지평은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그 동안 제도적 교회가 보여주었던 페쇄성과 세상과의 단절성 등은 분명히 반성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유형적 제도적 교회의 중요성은 여전하다. 이것은 역사적 상황의 변화와 무관하게 존속해야 할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논자는 종교다원화시대의 제도적 교회의 필요성을 코이노니아 개념과 연결하여 논하고자 한다.Ⅲ. 종교다원화 사회에서 코이노니아로의 교회 회복이제부터는 종교다원화 사회에서 코이노니아로의 교회 회복의 당위성을 설명하고자 한다. 그것의 필요성과 아울러, 신학적 근거를 제시하고, 코이노니아의 본질인 삼위일체 하나님에 근거하여 삼위일체 하나님의 코이노니아 교회론을 재정립하고자 한다.1. 필요성종교다원화 사회에서 코이노니아는 교회론의 중심적 과제로 등장해야 한다. 사실, 오늘날의 세계 교회의 신학과 운동에서 코이노니아로서의 교회라는 새로운 교회의 표상이 부상되어오고 있다. 박근원은 이러한 조짐을, 역대 기독교 교회 전통의 교회 이해를 통전적으로 접근 가능하게 하며, 그 종말론적인 시각에서도 합의가 이뤄지고 있음이 매우 고무적이라고 말한다.) 사실, 코이노니아로서의 교회는 과거의 제도적 교회가 보여주었던 교회중심주의와, 배타성에 대한 반성을 근거로 시작해야 한다. 이것은 제도적 교회의 가치 하락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적 교회의 잘못을 인식하고 반성을 통하여 더 나은 교회에로의 전환을 모색한다는 의미이다.진정한 코이노니아는 만남에서 비롯되며 그 만남이 이루어지는 장은 제도적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불가피하다. 종교다원주의제도적 교회 속에서 코이노니아라는 인격적 사귐에로의 지향이 나타나야 한다.2. 신학적 근거전통적인 교회론 중에 가장 오래되고 지속적인 교회의 개념은 인간의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교제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 인간 상호간의 교제라는 교회이다. 이 교제는 근본적으로 공동의 신앙고백, 동일한 성례전에의 참여, 그리고 한 교회의 질서에의 참여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하나님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사역은 죄로 인해 분리된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회복, 화해 곧 코이노니아였다. 그가 나와 더불어 먹고 내가 그와 더불어 먹는 교제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소 보여주신 사역이었다.코이노니아 교회론의 성서적이고 신학적인 배경에 관한 연구는 이미 많이 진행되고 잇다. 코이노니아라는 용어는 신약 성서의 지배적인 표현으로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의 하나님과 인간의 하나됨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같은 표현에서 나온 사귐(communio)이라는 개념은 그리스도인과 다른 종교의 신앙인 또는 신앙을 지니지 않은 사람들과의 관계, 나아가서 다른 피조물과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말이다. 신약시대의 상투 용어였던 코이노스 (koinos)라는 말은 공유를 뜻하는 것이었고, 종교적인 소속의 공속성을 의미하는 말로만 사용되어졌던 것은 아니었다. 신약성서에 코이노니아라는 말로 표현된 개념들이 많은 데, 모두가 획일적인 이미지의 표현이 아니라, 참여, 가담, 나눔, 친교, 공동체의 표현으로 사용되어지고 있다. 이런 낱말들의 의미가 한 데 모아져서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친교공동체로서의 교회를 가리키게 된 것이다.사실, 이 코이노니아 개념은 교회의 외적, 유형적 측면보다도, 내적 인격적 관계를 중요시한다. 도널드 밀러는, 건물이나 조직으로서의 교회를 ‘보이는 교회’라고 일컫는 데 반해, 겉으로 나타나지 않은 코이노니아 즉 하나님과 인간과의 코이노니아와 인간 상호간에 사귐을 나누는 것으로서의 본래 목적인 코이노니아를 나누기 위한 것을 가리켜 ‘보이지 않는 교회’라고 일컫는다. 엄격하게 보면 교회는 믿음의 코구체적 삶의 원리중의 하나로 제시한 ‘서로 서로 같이 있음’의 개념은 교회의 제도적 필요성을 잘 말해주고 있다. 교회는 하나의 삶이기 때문에 각각의 성도는 그의 이웃에 대하여 그리스도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이웃의 짐과 고통을 함께 짊어져야 한다. 이러한 삶은 인간의 뜻에 의해서 된 것이 아니고, 다만 성도들의 사귐에서만 주어진다. 그것은 단순히 세상에 사람들의 같이 있음이 아니고, 교회의 사회적 구조에 속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 공동체는 하나님에 의해 세워졌고 따라서 그것은 하나의 삶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성원 누구도 교회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Ⅳ. 코이노니아 교회로의 실천적 과제코이노니아로서의 개념은 하나님의 백성에 속한 그리스도인의 개인적 존재는 어디가지나 공동체적 존재라는 교회의 본질적 성향과 맥을 같이 하며, 이것은 더 나아가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양식이라는 사실 속에서 생겨난 개념이라고 할 수 잇다.이제 본 장에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양식 곧 그 삼위의 코이노니아 개념에 입각해서 교회의 실천과제를 나름대로 정리해 보고자 한다. 코이노니아 교회론은 이미 WCC 에큐메니칼 운동에서 본격적으로 전개하고 있는 개념이다. 1991년 캔버라 총회의 성명서도 하나님의 경륜의 넓은 틀 안에서 코이노니아의 개념을 사용하는데, 이것은 창조세계와 인류를 위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된 것이다.이러한 삼위일체적 교회론은 종래의 기독교 일원론적 교회론이나 성령 일원론적 교회론을 극복할 수 있는 것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깊이와 불의한 자와 칭의에 대한 인식이 없는 성령론적 교회론의 위험과, 성령의 넓이와 은사의 충만에 대한 인식이 없는 그리스도론적 교회론의 위험은 오로지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의 포괄적 영역 안에서 교회를 서술함으로써만 극복될 수 있다.) 왜냐하면, 교회는 세계와 관계맺는 하나님의 삼위일체적 역사의 운동과 그 포괄적인 삶의 연관성 속에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곧 하나님의 백성, 그리스도의 몸, 성령의 피 본다.
    인문/어학| 2004.07.01| 8페이지| 1,500원| 조회(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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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신학] (서평)여성신학의 이해(이우정 저)를 읽고...
    ?????????????????????????????????????????????????????????????????????????????????????(서평);「여성신학의 이해」를 읽고...?????????????????????????????????????????????????????????????????????????????????????이우정 著(NCCK 여성위원회 펴냄)하나님은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실 때 분명하게 평등하게 만드셨을 것이다. 하지만 기독교 역사를 통해서 볼 때 기독교의 역사가 가부장제의 역사요, 남성 중심적이고 여성억압의 역사임을 부인 할 수는 없다. 그만큼 기독교는 역사적으로 여성을 부정한 존재로, 열등한 존재로 보면서 여성의 남성에의 종속성을 이데올로기화 하였다. 기독교는 공교회가 된 이래 창조 설화에서 유추하여 여성의 열등성을 말해왔으며 타락 설화를 근거로 여성의 종속성을 부여하였고 악의 기원으로 만듦으로 여성을 혐오하고 부정하도록 이끌었다.이처럼 오랜 세월동안 남성 위주의 신학 전통으로 철저하게 객체로 배제되고 억압당해 온 신학 풍토에서 여성신학이라는 말이 등장하게 된 지는 불과 얼마 되지 않는다. 서구에서는 1960년대에 여성신학이라는 말이 등장했고 한국에서는 1970년대 후반에 들어와서 지금까지 여성 신학의 흐름이 있어왔다.여성신학이라는 말을 10여년 전에 처음 들어 봤을 때 민중신학, 해방신학과 같은 방향에서 여성의 해방을 전제로 하는 신학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는 신학인지, 그리고 어떠한 자세와 관점으로 하는 신학인지는 알지 못했다. 그리고 한동안 여성신학에 대해 공부할 기회를 갖지 못했었다.하지만 지금은 한 학기 동안의 강의를 통해서 그리고 여러 가지 책을 통해서 여성 신학의 방향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그 중 내가 읽은 「여성신학의 이해」라는 저서는 여성신학에 대해 전혀 무지한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용어와 서술을 펼치고 있어서 여성신학을 파악하는데 더욱 도움이 되었다.모두 5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제1장에서는 가부장적 사회 구조 속에서 형성된 성서에 비췬 여성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제2장에서는 현재 남성적인 이미지로 익숙해져 있는 하나님 상이 원시 사회에서는 여성의 이미지가 강했으며, 역사적 변천 과정을 통해 오늘날의 남성적 이미지로 굳혀지게 되었음을 역사적 자료들을 통해 증명한다. 제3장에서는 그리스도와 여성의 관련성을 다루면서 예수 당신께서는 가난한 자와 눌린자들의 옹호자라는 메시야 사상을 가지고 오셨지만, 기독교가 제도화해 감에 따라 가부장적인 것으로 화석화되어 갔다고 지적한다.그리고 제4장에서는 성서와 교부시대에 나타난 여성차별적인 요인들을 분석하고 여성차별을 극복하는 인간학으로, 종말론적인 방법론, 자유주의적 여성해방론, 낭만주의적 여성해방론을 제시하고, 마지막으로 류터가 주장하는, 자유주의와 낭만주의를 넘어서는 여성해방론과 이의 근본적인 문제점인 이원론을 극복할 수 있는 생태학적 여성신학을 소개한다. 특별히, 지배와 종속이라는 이원론을 문제삼는 생태학적 여성신학은 자연과의 상호의존성 및 관계적 측면을 매우 강조하며, 현대 신학에 신선한 충격을 던지고 있음을 시사한다.그리고 마지막 제5장에서는 예수 공동체 속에서 위안을 받았던 여성, 초대교회 공동체에서 남자와 동일한 지도자의 역할을 담당했던 여성, 전통 교회 안에서 있었던 마리아 숭배에서 나타난 남성적 여성상 그리고 현대에 들어서 성직에서 있어서의 여성의 위치 문제 등을 다루고 있다.비록 작은 분량이기는 하지만 여성 신학을 이해하고 관심을 갖게 하는 유익한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여성신학은 저자의 말대로 성서해석학이 그 중심과제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여성신학이라는 말 속에는 겉에서 느껴지는 어감보다 더욱 심오한 뜻이 있음을 발견한다. 기본의 성서해석에 획기적인 패러다임 쉬프트를 일으키고 생각한다. 우리의 사회가 남성중심의 구도로 발전해 왔음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성경이 기록되던 시기에 이미 남성중심의 구조가 형성되어 있었고, 성경이 정경화되어가는 과정과, 성경에 대한 역사 비평 등의 다양한 연구와 해석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도 남성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다는 것은 이미 명백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서의 해석이 인간적인 측면이라기보다는 남성편향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다. 여성신학은 그러한 차원에서 매우 바람직하고 더욱 발전시켜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사실, 처음에 여성신학이라는 말을 접했을 때에는, 여성들이 중심이 되어, 성서에 나타난 여성차별적 요인들을 발견하고 남성들과 대결적인 구도로 성서를 해석하려는, 이것 역시도 여성적 시각에서만 성서를 다루려는, 편협한 시각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러한 극단적인 시각도 있음을 발견한다.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여성신학이 담고 있는 것은 그동안 굳혀져 있고, 화석화되어 갔던 성경 해석 작업에 대한 새로운 틀 전환의 계기를 마련했다는 측면이다. 그 동안의 신학이 딱딱하게 굳어있는 현실과는 괴리된 신학이었다면 여성신학은 삶의 자리에서 그것을 충분히 반영하는 역동적인 신학임이 느껴진다.피오렌자는 이러한 의미에서 신학을 한다는 것이 어떤 주제를 신학화하는 과정으로만 이해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현재 경험하고 있는 사회 구조, 종교 구조 안에서의 억압에서부터 벗어나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하려는 여성들의 투쟁의 행위로 표현되는 것이라고 한다.하지만 여전히 의구심이 남는 부분이 있다. 특별히 여성신학에서 관심하고 있는 부분 중의 하나는 바로 하나님을 표현하는 언어일 것이다. 이 책에서도 하나님을 표현하는 언어가 여성신학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과제라고 밝히고 있는데, 남성적인 이미지로 굳어져 있는 하나님 상에 대해서 어떻게 인식해야 할 것인가 하는 매우 중요한 문제가 부각된다.언어란 우리의 사고의 표현이요, 그 사고는 잠재의식에까지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그렇게 잠재의식 속에 자리잡은 사고나 언어가 실질적으로 우리의 삶을 지배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언어가 만들어낸 상이 고정화되며 우리의 잠재의식을 지배할 때 그 힘은 크고 극복하기 어렵게 된다. 저자는 이러한 언어의 중요성과 관련하여, 하나님이 남성으로 표현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여성신학 안에서도 커다란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고 설명한다.전능하신 하나님이 남성으로 묘사되는 한 여성들은 하늘의 남성과 지상의 남성들의 권위와 지배에서 해방 받을 길은 없으며, 많은 신학자들이 하나님을 남성으로 묘사하는 것은 인간에게 하나님을 설명하는 매개적, 상징적 언어이지 실제로 하나님의 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하나님 아버지”라고 하나님을 남성으로 묘사했는데 어떻게 그 호칭을 바꿀 수 있느냐고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독후감/창작| 2004.06.16| 3페이지| 1,000원| 조회(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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