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사회학과 영재교육※ 머리말흔히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부른다. 인간은 생물학적·자연적 존재로 태어나서 점차 사회적·문화적 존재로 변모해 나간다. 이러한 과정은 교육을 통해서 진행되며 과거에서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계속 되어질 중요한 사회화 과정 중에 한 부분이다.과거에는 교육학과 사회학이 양분되어 연구되어 왔으나 근대사회로 접어들면서 공교육제도의 확립과 학교교육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교육학과 사회학을 종합적으로 바라보는 교육의 사회적 접근이 강조되었으며 이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 시작하였다.오늘날의 사회는 급변하며 그에 따른 교육의 역할도 계속적으로 변하고 있다. 하지만 교육의 중요성은 항상 강조되어왔다. 사회 환경의 변화에 따라 교육의 역할은 변하고 있으며 또한 수요자 중심으로 능동적인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여러 가지 교육의 방식 중에 우리는 영재교육에 대해 알아보려 하며, 우리나라와 외국의 영재교육에 대한 비교를 통해서 앞으로 우리나라의 영재교육이 나가야할 방향을 모색해 본다. 이것은 미래의 자기 계발 방법 중에 하나가 될 수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 경쟁력의 발판이 될 수 있다. 교육의 사회학적 관점과 영재교육에 대해 알아보며 미래지향적인 교육의 길로 나아가길 바란다.목 차━━━━━━주 제 : 교육사회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한국의 영재교육 실태와 지도방안1. 서 론(1) 교육사회학과 영재교육의 의미(2) 교육사회학과 영재교육의 연관성(3) 영재교육의 필요성2. 본 론(1) 영재의 특성(2) 우리나라의 영재교육 실태(3) 외국의 영재교육의 사례 미국의 영재교육 영국의 영재교육 이스라엘의 영재교육 중국의 영재교육(4) 우리나라의 영재교육의 문제점(5) 외국의 영재교육의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3. 결 론(1) 우리나라의 영재교육에 대한 지도방안교육사회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한국의 영재교육 실태와 지도방안━━━━━━━━━━━━━━━━━━━━━━━━━━1. 서 론(1) 교육사회학과 영재교육의 의미 사회교육학의 의미사회학의 한 부문에 속하며, 동시에 의 특성이 학습능력, 사고능력과 기민성, 호기심 및 욕구로 구성된다고 하였다. Renzulli도 일반능력, 창의성 그리고 과제집착력을 중심으로 영재의 특성을 제안하고 영재는 이중에 어느 한 영역만이 특출하게 높은 사람이 아니라, 이 세 요인에서 모두 평균 이상의 특 성을 소유한 사람이라고 정의하였다. Renzulli의 정의의 특징은 세 요인 중 어느 한 요인만으 로는 영재를 정의할 수 없다는 점이고, 세 요인은 영재를 구성하는데 동일한 비중으로 고려되 어야 한다는 것이다.Weintraub는 지능검사에 의해 선별되지 않으나 사회발전에 필요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 아동 들이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고 하였다.이상의 내용들을 종합해 볼 때, 영재란 높은 지적 능력과 창의적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과제 집착력이 높다고 판단된 자로서 지적 영역, 정신운동 영역들 중의 어느 한 영역, 또는 탁월한 과업수행을 하거나 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사람을 의미한다.(2) 교육사회학과 영재교육의 연관성과거에는 교육사회학이라는 용어 자체가 없었으나 근대사회로 접어들면서 공교육제도의 확립 과 학교교육의 활성화로 인해 교육학과 사회학을 종합적으로 바라보는 교육의 사회적 접근이 강조되었다.초기의 학교 교육은 체계적인 학습체계로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산업화 과정과 비슷한 양상 이었으나, 오늘날 급변하는 시대의 환경 속에서는 과거의 고정화된 교육과정의 적용과 활용이 비효율적이며, 다양화되고 수요자 중심의 교육이 바람직하다. 이러한 점에서 사회적 관점에 대 한 이해가 필요하며 영재교육 또한 시대의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능동적인 교육의 방안 중에 하나라 하겠다.(3) 영재교육의 필요성우리나라는 2000년 1월 영재교육진흥법, 2002년 4월 영재교육진흥법 시행령이 고시됨에 따 라 올 신학기부터 각급 학교에서 영재교육이 법적, 제도적 뒷받침을 받아 실시되고 있다. 이미 세계 여러 나라들은 오래 전부터 영재교육을 실시해오고 있다. 영재교육의 필요성은 교육적 차원, 개인적 차원, 국가적 차원의 세 측면영재교육을 실시하는 여러 나라들과 영재교육을 연구하는 여러 학자들은 나름대로 영재교육 의 목적을 설정하고 있으나, 이것들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첫째, 영재 교육은 창의력을 신장한다. 창의력은 지식, 탐구력, 비판력, 확산적 사고력, 상상력, 문제 해결 력, 호기심, 자신감, 끈기 등과 같은 여러 요인들이 복합되어 최종적으로 나타나는 고차원적 사고력이다. 영재교육은 이런 다양한 요인들을 함양하여 최종적으로 창의력을 육성하고자 한 다. 둘째, 영재교육은 자기 주도적인 학습 능력을 신장한다. 정보의 양이 급증하는 현대 사회 에서 특정 분야에서 계속적으로 탐구를 하고,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여 해결하고, 뛰어난 창의 적인 성취를 이루기 위해서는 자기 주도적인 학습 능력이 필수적이다. 셋째, 영재교육은 건전 한 윤리의식과 사회성, 사회적 책임감을 함양한다. 즉 정서적, 사회적으로 성숙한 인간을 육성 해야 한다.이것은 영재들이 일반학생들과 분리되어 교육을 받으며, 인지·정서상의 불균형이라는 특성 을 지니고 있고, 장차 특정 분야에서 지도자적인 위치에서 일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2. 본 론(1) 영재의 특성영재의 특성을 밝히는 연구들은 연재들이 동일 연령집단의 아동들에 비하여 신체적·지적 발 달이 빨리 이루어지며, 학습특성, 동기특성, 창의성, 지도력, 의사전달, 공간적 사고, 추상적 사 고 그리고 사회적응의 모든 영역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D'zawko와 Hedges는 여러 연구결과들을 종합하여 영재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1 동년배들보다 빨리 학습한다.2 다른 아동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것을 안다.3 추상적·상징적 사고력이 높다.4 호기심이 많아 질문을 많이 한다.5 어휘가 풍부하고 표현력이 우수하다.6 쓰는 속도보다 빠르게 사고하며, 기억력이 높다.7 지식이 익숙지 않는 상황에 적응하는 능력이 높다.8 문제해결 능력이 높다.9 주의집중력이 높다.⑩ 얽매여 있는 시간표를 싫어한다.⑪ 세세한 사항을 귀찮아한다.⑫ 한 분리나라의 영재 학급이나 영재 교육원 모두 교과 과정을 앞질러 가르치거나 교과 심화 내용 을 가르치지는 않고 순수한 영재 교육 프로그램을 다루게 된다.학교 밖에서의 영재교육으로는 경시 대회를 들 수 있다. 예를 들면 국제 수학·과학 올림피 아드 경시대회가 대표적이다. 국내에서는 이 국제 올림피아드에 출전할 학생들을 선발하기 위 하여 교내 경시 대회와 시·도·전국 경시 대회를 분야별로 실시하고 있다. 이런 경시 대회는 그 분야에 재능이 있는 학생들을 발굴하는 장치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3) 외국의 영재교육 사례- 미국의 영재교육미국은 세계에서 영재교육을 가장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성공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나라이 다. 1988년 미국연방정부 The Jacob K. Javits Gifted and Talent Student Act(P.L. 100-297)라는 영재교육법을 제정·공포하였고, 이 법의 제정으로 연방정부는 영재교육을 위 한 예산을 확보하여 각 주에 지원을 할 수 있게 되었으며, 국립영재연구소를 설립할 수 있게 되었다.이 법에 따라 여러 주에서도 영재교육법을 제정하였으며, 영재교육 예산을 확보하여 지원하 였다. 1988년 미국이 영재교육법을 제정하게 된 취지를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 1 영재는 미국의 국가발전, 안보 및 복지 향상에 기여하게 될 절대적으로 필요한 인적자원이다. 2 영 재들의 특수재능을 초·중등학교 시기에 계발시켜 주지 못하면 국가발전에 기여할 영재들의 특수한 잠재능력은 사장될 가능성이 크다. 3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에서 태어난 영재들이 영재로서 발굴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고, 결국 그들은 영재교육의 기회를 제공받지 못하여 자 신들의 잠재능력을 계발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4 영재교육 프로그램의 개발과 적용에서 얻 은 교육적 경험과 지혜는 일반학생들에게도 도전감을 갖도록 하는 보다 다양한 교육과정을 개발하고, 적극적인 학습습관 형성에도 기여할 것이므로 모든 학생들에게 확대·적용해야 한 다. 영재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 및 연방법, 연방988년의 국가 교육과정에서는 일부 기본교과에서 16세 이전에 가장 높은 성취에 도달한 학생에게는 다른 수준의 내용을 학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속진이나 월반 등 을 융통성 있게 할 수 있다. 고 제시함으로서 영재를 위한 교육적 접근을 시사하였다. 그러나 국가 교육과정에서는 극소수의 영재를 위한 교육에 대해 포괄적인 방향만 제시하고 구체적인 언급은 제시되어 있지 않다. 1999년 도시지역 교육의 수월성 (1999-2002) 교육 정책을 발표 하였는데, 이 중의 일부는 특성화 학교 운영과 영재 교육(여름학교, 방과 후)과 관련된 것이 다. 특성화 학교 운영은 평등교육 일변도에서 수월성과 특성화를 통해 중등교육의 질을 높이 고자 특목고를 늘리도록 한 것이다(과학, 수학, IT,스포츠, 음악, 미술, 언어 등). 우리나라의 특목고와는 달리 기존 중등학교 중에서 이런 특수학교가 되기를 원하는 학교는 정부로부터 돈을 더 지원 받고, 신입생의 10%까지 특기 적성자를 선발할 수 있게 하였다.영재교육과 관련해서는 런던 및 근교 11개 지역 교육청에서 처음으로 영재교육을 적용토록 하였으며, 이 정책이 적용되는 모든 학교는 반드시 영재 교육안을 학교 교육과정에 반영하도 록 하였다. 중등학교에서는 3-8개학교가 하나의 영재 학교군을 이루고, 각 학교별 조정자는 수석 조정자를 두어 공동 연구하고 서로 조력하도록 하였다. 2/3는 지적 학업 영역, 1/3은 예 체능, 창작 활동 영역의 재능아를 선발하였다. 초등학교에서는 해당 학교의 교사가 영재교육 을 수행하도록 하였다. 2001년 약 400 여 개의 시범학교 중 100개교가 영재교육을 학교의 핵심목표로 설정하여 운영하고 있다. 방과 후에 여러 교과의 교사들이 서로 협동하여 심화 교육을 하기도 한다.2001년의 학교교육백서(Schools Achieving Success)에서는 영국의 영재교육정책을 요약 하여 제시하였는데, 여기서는 특히 낙후된 지역의 영재를 위한 교육, 연령보다는 능력에 따른 교육의 제공, 학교 교육와 학교
《민주주의와 시장을 읽고》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민주주의와 시장이 세계를 대변할 수 있을 정도로 보편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최근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APEC 순방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경제협력 증대를 재확인하는 기사를 통해 이러한 사실을 분명히 확인하였다. 특히, 민주화 이후의 동구, 남미, 동아시아에서는 예외없이 시장지향적인 신자유주의적 경제개혁이 시도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민주주의, 시장, 국제화를 통한 근대화는 민주화 이후 시대를 이끌어 가는 나라들의 구호로 등장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서 이러한 원인과 과정을 살펴보고, 민주주의와 시장의 관계에 대해 실질적인 이해의 시간이 되었다.쉐보르스키의 민주주의와 시장은 동구와 남미가 민주주의로의 체제변환을 위해 노력하던 시점에 쓰여진 책이다. 그 당시의 시대상황은 동구에서의 공산주의의 몰락과 남미의 권위주의 정권이 퇴장하는 시점에서 서구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지구상의 유일한 가치로 되어버린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이데올로기 대립과 냉전 상황은 미국의 압도적 우위로 인해 사실상 종지부를 찍은 상황에서 미국 중심의 단-다극체제는 남미와 동구 공산권 국가들의 나아가야 할 방향을 규정짓고 있었다. 모든 것이 미국 중심에서 세계화라는 물결에 동참하지 않고서는 국가체제의 유지와 발전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1989년 ‘인민의 가을’을 즈음하여 동구의 공산권 국가는 차례로 무너진다. 그러나 학자들이 예측했던 것과는 달리 그들 국가의 민주화는 격렬한 움직임도, 피의 희생도 없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동유럽에서 일어난 자연스러운 민주화의 가능성과 민주화 이후의 세계에서 동유럽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안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다.민주주의에 대한 학자들의 정의는 다양하며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린츠는 민주주의를 시한부적 정부로서 함축적으로 정의한다. 갈등은 확립된 규정하에 최종적으로 해결되기보다는 주기적으로 종라고 민주주의를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개념 정의에서 공통으로 추출되는 요소는 참여와 경쟁, 그리고 시한부성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개념특징들을 잘 포착하여 쉐보르스키는 민주주의를 불확실성의 제도화라는 함축적인 의미로 정의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흔히 전제주의, 권위주의에 대비되는 용어로서 사용된다. 그리고 민주주의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 전제주의, 권위주의와의 비교분석이 필요하다. 구성원들의 의사를 수렴하여 제도와 의사결정의 틀에 대한 기본적인 원리를 정한 것이 법치주의라고 보면 반대로 전제주의는 권력자의 의사에 의하여 국가의 방향과 정책이 정해진다. 물론 전제주의에서도 법에 의한 지배를 표방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법의 형식에만 치중하여 실질적인 내용을 결여하고 있다고 하여 형식적인 법치주의로 표현되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전제주의는 권력자의 의사에 의해 국가가 운영되고, 권력이 행사되기 때문에 법적 안정성, 예측가능성이 없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민주주의 또한 예측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그러나 민주주의에서 예측이 어렵다는 의미와 전제주의에서의 예측곤란성은 전혀 의미가 다르다. 전제주의에서의 예측 곤란성은 권력의 행사 방법, 결과, 의도, 내용이 모두 권력자의 의사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에 기인하다. 바꾸어 말하면 권력자의 의사를 정확하게 판단,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는 오히려 전제주의에서의 예측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관건은 권력자의 의사 파악에 있다고 할 수 있다.그는 민주화 이행과정에서 거시 역사적 조건보다는 정치행위자들의 전략적 선택이 갖는 중요성을 강조함으로써 민주주의가 조건이 성숙되기를 기다려야 하는 먼 미래의 과제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해결을 필요로 하는 당면과제라는 점을 강조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어떻게 자유를 가져오는 민주주의와 풍요로움을 보장하는 경제를 동시에 이룰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우리나라에서도 역시 이러한 불확실성의 제도화를 구축하기 위하여 지난 수십년간 노력해오고 있다. 그러나겪어 왔고, 전환 비용 또한 만만치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민주화를 위한 격렬한 투쟁과 시위, 정치적 통합을 저해하였던 질곡과 균열이 항상 존재해 왔던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힘들게 얻어낸 민주주의는 이행기를 거쳐 공고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요즘 한국정치에서도 주요 문제가 되고 있는 명제, 정치영역에서의 민주주의와 경제영역에서의 시장이 어떻게 하면 서로 잘 조화를 이루면서 병행 발전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핵심 중에 하나는 민주주의는 시장경제와는 다른 원리에 입각한 정치제도로서 경제의 기본원리라 할 효율성의 잣대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민주주의에서의 불확실성은 개방된 경쟁체제에서 기인하는 불확실성이다. 대의제를 개념필수적 요소로 할 수밖에 없는 현대 민주주의에서는 대표를 선출하는 투표의 역할과 대표의 기능이 본질적이다. 이러한 투표제도하에서 시한부적으로 정권을 맡게 될 세력은 불확실하다. 그러나 이러한 불확실성도 제도권 내의 세력들이 차별적인 자원과 정보를 가지고 있을 때는 구조적으로 불평등을 야기할 수도 있다. 불확실성이 담보되지 않았을 때, 제도권 내의 세력으로서 진입하는 데 있어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으로 인해 진입장벽이 형성되었을 때 투표와 대표를 통한 대의민주주의는 사회 구성원들의 순응을 유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민주주의의 정착과 공고화에 필수적인 또 하나의 조건이 등장한다. 세력의 교체가능성이다. 구조적으로 세력의 교체가능성이 없는 민주주의, 다시 말해서 참여와 경쟁을 전제로 하지 않는 민주주의는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그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정당들이 선거에서 패배할 수 있는 불확실성을 제도화하는 것이다. 어떤 특정한 세력이 항구적으로 집권하고 다른 세력은 항구적으로 야당으로 남게되는 체제는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최소주의적 의미에서의 민주주의는 경쟁적 선거가 새로운 권력을 창출하는 유일한 대안이 되었을 때 공고해진다고 말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서로를 죽이지 않으면서 갈등을 처리할 수 있그렇다면 쉐보르스키는 승자와 패자가 명확하게 구분되는 민주주의가 안정적이고 공고화된 체제로 자리잡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하고 어떠한 조건하에서 선거에서 패배한 정당이 민주주의를 전복시키려 하기보다는 다음 선거에서의 승리를 위해 현재의 결과에 승복하고 다음 선거를 기다리게 되는 것에 대하여 모든 중요한 정치세력들에게 공정한 기회를 제공해야 하고, 민주적 제도들이 민주주의하에서의 패배마저도 비민주적 대안하에서의 미래보다 더 매력적이 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요한 정치세력들이 이후에도 전혀 승리할 가능성이 없고, 민주적 제도하에서 계속된 박탈로 고통받을 것으로 기대되는 경우에는 민주주의를 지지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민주주의는 경제발전의 결과로 자동적으로 출현하는 체제가 아니라는 사실도 중요하다. 민주주의는 거시 역사적 연구나 사회학적 연구들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일정한 계급구조나 물질적 조건이 성숙되면 저절로 출현하는 체제가 아니라 직접적으로 정치행위자들간의 갈등의 산물로 출현한다. 따라서 권위주의 체제가 정당성을 상실했다고 하더라도 대안세력이 조직되지 않는 한 민주화의 계기는 마련될 수 없다.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첫 단계인 자유화는 권위주의 체제의 분열과 시민사회의 자율적인 조직들 사이의 상호작용의 결과로 발생한다.권위주의 체제는 그 지지기반을 확대하기 위해 억압을 감소시키지만 이같은 상황은 시민사회 내에서의 자율적 조직들의 폭발을 초래한다. 이렇게 해서 자유화 조치는 민주화로 나아가는 주요한 계기를 마련해준다. 민주화 이행이 이루어지는 방식은 권위주의 체제의 퇴장과 민주주의 체제의 헌법제정이라는 두 가지 다른 측면으로 이루어진다.이와 관련해서 쉐보르스키는 이행과정에서 민주적 제도들은 권위주의 블록 내에서의 개혁파와 민주주의 블록 내에서의 온건파간의 협약을 통해 등장한다고 주장한다. 민주주의는 협상된 협약인 것이다.동구권 국가들의 민주화는 체제의 이데올로기 전환, 즉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의 전환과 국가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의 전환이라는 이중적 부담을 성을 확인해 볼 필요성이 있다. 흔히 민주주의 국가는 시장경제를 채택하고 있다. 적용 방식과 정착된 형태에 있어서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지만 기본적으로 개방된 경쟁 체계 안에서 가격기구를 메커니즘으로 하는 시장에서 경제활동이 이루어지는 것은 공통적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만을 근거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하여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다고 단정짓는 학자도 있지만 이 문제는 그리 간단히 결론지을 수 없다. 왜냐하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근본적으로 합치될 수 없는 갈등적 요소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민주주의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두 가치를 축으로 발전해 나간다. 여기서 자유는 시장경제와 자연스럽게 조화할 수 있는 가치이다. 하지만 평등이라는 가치는 개인의 자율성을 기초로 이윤을 추구하는 시장경제와는 첨예한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요소를 지닌다. 평등은 개인이 아닌 사회의 연대를 기초로 한 가치이기 때문에 평등을 이루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밖에 없다. 시장의 불완전성으로 인하여 경제적 불평등이 극심하게 발생하고 그러한 불평등을 조정하지 않았을 때 사회의 통합은 깨지고 민주주의는 붕괴할 수 있는 것이다.한편 민주주의는 사회의 통합을 전제요건이자 궁극적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자율적 조정을 이루어준다는 시장경제의 원리를 그대로 적용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경제학의 기본 가정인 완전경쟁시장의 조건이 모두 충족된다면 시장 메커니즘이 가장 효율적인 갈등의 조정기제가 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밝혀진 바와 같이 완전경쟁이 가능한 시장은 불가능하다. 정보의 불완전성과 외부효과의 발생, 공공재의 존재 때문이다. 이러한 시장기구의 불완전성을 보완하기 위한 차원에서 국가는 공공재의 공급 역할을 맡고, 각종 사회 안전망(사회보험과 공적부조, 사회복지제도 등)을 운영하기도 한다. 또한 독과점을 막기 위한 법률을 제정하여 시장의 경쟁성을 유지시키고자 노력하고, 공해방지나 기술에 대한 보조금 지급 등을 통하여 외부효다.
〈생각을 넓혀주는 독서법〉동·서양에는 각각 나름대로의 책읽기의 전통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수많은 명언들 속에서 책과 독서에 관한 조언과 격려의 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독서에서 성공 여부는 책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저자는 모든 책을 똑같은 속도로 읽어서는 안 된다고 보고 있다. 책의 종류에 따라 다르게 적절한 속도로 읽는 능력을 갖춰야 책을 제대로 읽는 것이다.저자는 독서능력이 일정한 수준에서 멈추어 있는 오늘의 상황을 지적한다. 즉, 상당수의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이 초등학교 6학년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기초적인 읽기가 독서의 제1수준이라면, 독서의 제2수준은 살펴보기이다. 대략적으로 살펴보는 일은 영양가 있는 알곡과 쭉정이를 가려내는 타작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훑어 읽기란 나무만 보는 것이 아니라 숲도 보려는 독서 방법이다. 난해한 책과 맞붙었을 때에는 좌우간 통독하는 것만을 명심한다. 이해할 수 있는 것만을 마음에 새겨두고 난해한 부분은 건너뛰어 계속하여 읽는다. 각주·인용문헌을 참조하지 않는다. 따라서 한정된 시간 안에 한 권의 책에서 될 수 있는 한 많은 것을 끌어내는 기술이다.독서를 할 때, 책의 구조를 알기 위해 목차를 살펴보는 일은 중요하다. 색인으로 그 책의 제목·범위·인용 문헌을 대충 살펴볼 수도 있다. 커버에 쓰여 있는 선전 문구도 다소 도움이 될 수 있다.분석독서는 독서의 제3수준이다. 어떤 책이나 두 장의 표지 사이에는 골격이 숨어 있다. 분석적 독자가 해야 할 일은 그것을 발견해내는 것이다.한 권의 책 내용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는 것은 그 책이 전채로서 어떤 책인지, 될 수 있는 대로 간략하게 말해본다는 것이다. 이것은 저자가 무엇을 말하려 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이것을 알게 되면 그 책의 주제 혹은 목적을 발견한 것이 된다. 독자는 저자가 문제삼고 있는 점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책의 한 질문이 복합적이며 많은 부분으로 나뉘어 있으면, 그 지엽에 해당하는 작은 질문까지 써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핵심 문장을 알면 다음은 명제를 찾아내야 한다. 즉, 핵심 문장이 나타내는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다. 문장을 구성하는 특히 중요한 단어를 해석함으로써 명제를 파악할 수가 있을 것이다. 독서의 제4수준은 통합적인 읽기이다. 이것은 특정한 주제에 대해 두 권 이상의 책을 읽는 것이다.저자가 가장 강조하는 책을 잘 읽는 방법은 능동성이다. 훌륭한 독자는 책을 의욕적으로 읽는다. 능동적으로 읽을수록 더 잘 읽을 수 있다. 능동적인 독서는 생각을 하면서 읽는다는 것이다. 능동적인 독자는 행간의 의미까지 파악하려고 노력한다. 능동적으로 책을 읽는다는 것은 곧 질문하면서 읽는다는 것으로 어떤 책이든 질문해야 할 물음은 다음과 같다고 본다. 전반적으로 무엇에 관한 글인가, 무엇을 어떻게 자세하게 다루고 있는가, 또는 부분적으로 볼 때 그 글은 맞는 이야기인가 그리고 의의는 무엇인가를 물어보는 일이다. 또한 능동적인 독자가 되려면 책을 읽으면서 중요한 부분에 표시를 하거나 밑줄 긋기, 메모해 두기 등의 방법을 사용하라고 권한다.
레비나스 타자윤리학과 탈현대윤리학*김 연 숙(전주교대)[한글 요약]본 논문은 레비나스 타자윤리의 탈현대적 윤리학에의 반성과 함의를 살펴보고자 한다.윤리학에 관한 레비나스의 입장을 정리한다면, 제일철학은 존재론적 형이상학이 아니라윤리적 형이상학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구철학에서 존재론적 형이상학은 존재자와관계맺기 보다는 '존재자를 중화'하고 희석해왔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의 타자의 존재를드러내지 못하는 문제점을 노출시켰다. 레비나스는 이 같은 문제점을 비판하면서 타자와의 관계를 중시하는 윤리학이야말로 존재론을 넘어서 제일철학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같은 주장의 배경에는 무엇보다도 그동안 망각되어왔던 타자의 문제가 있다. 자기밖의 외재성 즉 타자를 자기화하고 통합하는 행위를 전체성이라 비판하면서, 레비나스는여타의 외재성과 구분되는 타인으로서의 타자의 의미, 타자와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무한성의 개념을 통해서 자아중심성을 벗어날 것을 촉구한다. 자기를 중심으로 그려지는 자기내재적 초월의 운동으로부터 절대적 타자성, 절대적 다름의 타자를 향한 움직임과 운동을특징짓는 것은 타자에로의 초월과 열망이다. 타자에로의 초월이야말로 윤리적 관계형성의중요한 근거가 된다. 더욱이 레비나스가 타자와의 관계에서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은 인간의 감성적 수용성의 차원이다. 인간의 감성은 타자로부터 오는 윤리적 호소와 요청을 감수하는 작용을 설명해준다. 이는 타자윤리가 기존의 이성중심의 주체윤리학과 확연히 구분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레비나스 타자윤리는 탈현대사회에서 윤리학의 위상 및 한국윤리학의 방향에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첫째, 주체와 추상적 도덕법칙을 중시하던 이론지향적 윤리학으로부터 타자의 얼굴로 향한 실천윤리학에로의 전환, 둘째, 고립되고 분리된 타자중심의 자아관으로부터 타자와의 관계성을 중시하는 인간관의 전환, 이같은 측면에서의동양전통윤리와의 접목가능성, 셋째, 아는 사람뿐만 아니라 제3자 및 이방인에 대한 윤리로의 확충 및 평화의 철학의 정립가능성이다.주제분야 : 윤리학,지 철학의 중심주제가 되었다. 특히 존재론에 대한 관심은 20세기 전반부터 커졌는데 보통 존재자의 일반적인 근본구조와그 마지막 근거를 문제삼는다. 그러므로 서구철학의 역사는 존재론의 역사였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같은 제반 흐름에서 초래된 문제를 손봉호 교수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오늘날에 이르기까지도 인간에게 그렇게 심각하고 절실한 고통의 문제에 대해서는 철학이 비교적 무관심했던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 철학을 위시한 모든 근대학문들은 그 동안 두 가지 기본적인 관심사이에서 고민해 왔다. 하나는철학자가 연구하려는 구체적인 경험의 대상을 가능한 한 '있는 그대로' 밝혀보려는것이요, 다른 하나는 그것을 '논리적으로, 체계적으로' 밝히고 표현해 보려는 것이다.'있는 것' 일반에 대한 논리적 접근은 존재론이다. ······ 여기서 발생하는문제는 논리란 그물에 걸리지 않는 존재의 고기는 잡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이론의 그물에 잡히지 않는 고기가 쓸데없는 것들이라면 문제가 없지만, 삶의현실에서 절박하고 중요한 문제라면 심각한 것이다. 예를 들어 고통받는 이라든지, 기아 난민 등과 같은 현실적 문제들이 논리적으로나 존재론적으로 접근할 수없기에 논의의 영역에서 배제된다면 문제는 심각하다. 이 문제는 바로 레비나스타자윤리학의 이론적 출발점이기도 하다. 레비나스는 존재론의 문제를 다음과같이 지적한다.존재론적으로 탐구되는 존재와의 관계는 그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존재자를 중화하는데 있다. 그것은 타자와 관계 맺는 것이 아니라 타자를 동일자로 환원하는 것이다.인용문에서 말하는 '존재자의 중화'는 존재자를 대상화하는 작업에서 즉 의식의 표상작업에서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것이다. 의식의 개념화 작업에서 대상으로 전환되는 존재자들은 희석되고 중화되면서 그 실질적 내용이 변색된다. 비트겐규타인(L. Wittgenstein)은 "모든 가능한 과학적 문제들이 다 해답을 얻더라도 인생의 문제는 전혀 건드려지지 않는다."라는 말로 현대철학의 문제를 지적한다. 이 같은 일련의 논의들은. 타인은 어떤 이유에서 나에게로 환원시킬 수 없는가? 그 이유는 타자는 유한한 자아의 사유 대상이나 자아의 인식과 능력의 테두리 안으로 가두고통합하여 나에게로 동화시킬 수 없는 외재적 사실이기 때문이다. 유한한 자아의사유작용을 벗어나 있는 것들, 죽음의 예측불가능성, 죽음이후의 자아의 주도성상실, 시간의 지속적 흐름 속에서 늙어 가는 것, 忍苦, 무한한 미래의 예측불가능성, 이 모든 무한의 흔적들이 타인의 얼굴에 있다. 이들은 유한한 자아를 넘어서가는 타자의 무한성의 흔적들이다. 무한의 흔적을 보여주는 타자는 주체의 사유구조를 넘어서는 충만성을 지닌다. 요컨대 타자는 의식의 개념화를 통해 모두 담아낼 수 없다. 자아와 타자의 레비나스적 개념구분은 이제까지 서구철학이 얼마나 자아중심적으로 그리고 일면적으로 수행되어왔는가의 문제를 제기한다. 타자를 끊임없이 자아 안으로 동화시키고 통합시키는 구조에서, 자아와 타자의 윤리적 관계는 형성되기 어렵다. 왜냐하면 타자의 절대적 다름을 이해하고 받아들일때, 상호간의 진정한 관계형성이 가능하기 때문이다.그렇다면 자신의 고유한 내면성을 통해 서로 절대적으로 분리된 자아들 사이에서 동화나 통합, 침투나 폭력의 방법이 아니라면 어떻게 상호소통이 가능한가?어떻게 분리되어진 자아들 사이에서 고립이 아닌 사회적 관계가 형성가능한가?어떻게 자아와 타자 사이에 분리를 유지하는 동시에 연결시키는 윤리적 관계 형성이 가능한가? 이 물음에 대한 레비나스의 답은 타자에로의 초월성과 타자를향한 열망이다. 열망(d sir)의 개념은 욕구(besoin)의 개념과 비교하면 그 뜻이더 분명해진다. 욕구는 자신에게 결핍된 것, 불완전한 것을 얻으려는 인간의 지향을 나타낸다. 레비나스는 이같이 욕구의 만족에 뿌리를 둔 것이 자본주의적 경제학이라고 본다. 이에 반하여 열망은 자아의 바깥을 향해 있는 것으로 외재성,타자의 다름, 낯섦을 향한 것이다. 열망은 열망하는 것에 도달할수록 커진다. 타자에 대한 열망은 타자를 타자로서 열망할 뿐이지 타자를 나에게로 통합성은 가치에 대해서 맹목적이다. 가치인식의 기관은오성이 아니라 감정이다. 근원적인 지향적 느낌이 존재한다. 이것은 감정들과 느낌이 동시에 존재하는 곳에서, 가장 잘 나타날 것이다." 이 세상의 가치내용은우리의 지향적 정서적 삶의 회고단계를 형성하는 사랑과 미움의 작용과 마찬가지로 먼저 취하는 것과 뒤로 미루는 것의 작용이 정립하는 지향적 느낌의 작용에서 우리에게 밝혀진다. 하르트만은 셀러의 이런 입장을 대변한다. "가치의식이란 일차적으로 가치감이며, 가치가 충만한 우선적이며 직접적인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이다. 모든 가치파악은 가치감에 기인한다. 가치를 파악하는 작용은 결코순수한 인식작용이 아니라 감정작용이며, 지성적이 아니라 정서적이다. 가치는느껴질 수밖에 없으며, 느낌의 기초를 구체적으로 직관한 것일 수밖에 없다."가치를 느끼는 것은 가치를 직관하는 것을 의미한다. 요컨대 이들은 서구의철학적 윤리학의 전통에서 윤리가 이성외적 차원과 관련된 것임을 일찍이 주목하였고 그것을 價値直觀의 능력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가치직관의 작용원리를 설명하는데 있어서는 여전히 모호함을 남긴다.타자윤리에서 인간의 감성적 측면은 인간을 선험적 자아, 합리적 자아로만 이해할 때 초래하는 문제상황의 인식에서 분명해진다. 고립된 이성적 사유작용이가져오는 에고의 작용이 함축하는 윤리적 문제는 나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전체성에 있다. 뿐만 아니라 이미 분석적 개념적 추론으로 향한 이성적 사유는 배고픔, 고통, 기쁨으로 나타나는 인간의 존재방식으로부터 멀어져 있다. 감성적 자아위에 정초되는 윤리적 주체는 다른 사람이 나의 소유, 동일성의 대상이 아니라는 인식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나에게 보여주는 얼굴의 顯現에 응답해야할 책임성과 관련된다. 현현은 현상학적 現象과는 정반대의 개념으로 그 스스로 드러나는 타자의 나타남을 의미한다.타인의 얼굴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얼굴로서 현현하는 타인은 더 이상 자아의 인식의 대상으로 떨어지기를 거부한다. 얼굴은 어떤 맥락에 의존함 없이 얼굴 그 자체로 는 방식으로부터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다른사람과의 관계로 접근하는 방식으로의 전환 인간의 개체성을 강조하는 원자론적 고립적 자아관으로부터 자아와 타자를 분리된 동시에 연결되어진 관계적자아로 보는 인간관의 전환이라 할 수 있다. 첫 번째의 문제는 앞에서 길게 논의하였다. 이제 두 번째의 문제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향유적 자아의 측면에서 인간들은 서로 동화 통합될 수 없는 분리된 존재이지만, 분리가 곧 각각의 자아들을 고립시키는 원자화하는 패쇄적 자아관으로 나가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인간존재는 내면적 자아이자 밖으로 향한 자아인 것으로 본질적으로 관계적 자아이기 때문이다. 관계적 자아로서 대면적 인간관계는 남녀관계, 부자관계, 형제관계, 이웃과의 관계, 사제관계, 이방인과의 관계 등으로 정교화될 수 있다. 특히자아와 타자의 소통에서 형성되는 윤리적 관계는 효 부성 자애 우애적 공동체연대성 평화 관계적 자아 모성애 가족애 등이다. 그런데 이들 덕목은 동양의 至善이나 達道와 다르지 않다. 이 같은 점에서도 타자윤리와 유가윤리는 윤리학의접근방법에 있어서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사람들 사이의 윤리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일치한다.레비나스는 자아와 타자가 상대방의 절대적 타자성을 유지 보존하면서 형성하게 되는 대면적 관계를 남 녀간의 에로스의 측면이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형제간의 관계, 이방인과의 관계 등 다양한 측면에서 논하고 있다. 타자윤리에서에로스의 의미는 향유적 자아의 욕망의 에로스, 출산의 에로스, 출산을 통해 형성되는 타자와의 관계로 구체화된다. 향유적 측면에서 연인들은 플라톤의 향연에서 아리스토파네스가 주장하듯이 타자에 대한 강렬한 욕망을 지닌다. 레비나스는 이같은 향유적 에로스를 인정할지라도 에로스의 이원성은 유지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연인관계는 하나로 중화되는 관계가 아니라 상대방의 다름, 완벽하게 상반되는 타자성을 통해 유지되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타자는 동일자에게 대상화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사랑은 타자와 욕망관계를 유지하지만 초월적, 인종
〈사랑의 이론 요약보고서〉1. 사랑, 인간의 실존의 문제에 대한 해답에리히 프롬은 사랑에 대한 이론의 출발점을 인간의 실존으로부터 찾고 있다. 인간은 자신이 무력함을 인식하게 되면 자신의 실존을 견딜 수 없게 한다. 따라서 외부세계와의 결합을 추구하게 된다. 인간의 분리상태 즉 사랑에 의해 결합되지 못한 것은 수치심과 죄책감, 불안의 원천이 된다. 그러므로 인간은 분리를 극복하여 고독을 탈출하려고 노력하는데 그 노력은 종교와 철학으로 나타난다. 합일의 방법으로 도취에 의한 도취적 문화권과 비도취적 문화권으로 분리하여 각 문화권을 논하고 있으며 집단과의 합일에 의한 분리상태의 극복과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평등의 종교적(일체적), 현대적인 평등(동일시) 등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 일치적 방법에 의한 합일, 창조적 방법에 의한 합일들을 사랑이라고 볼 수 없으며, 사랑을 실존문제의 해답과 공서적 합일로 나누어서 사랑을 말하고 있다. 공서적 합일이란 공생하는 것, 공서적 합일의 반대 개념인 사랑은 자신의 통합성, 곧 개성을 유지하는 상태에서의 합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랑은 능동적인 형태로 주는 것을 의미하며, 준다는 것 이외에도 보호, 책임, 존경, 지식 등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인간의 분리 상태의 극복을 생물학적으로 남녀의 양극성으로 보면, 남녀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극 사이의 합일에 대한 요구가 일어난다. 남녀의 양극성은 대인관계의 창조의 기초이며, 정신적 영역에서 남녀의 사랑을 통하여 남녀는 재탄생하는 것으로 본다. 프로이드의 견해는 성욕의 생물학적 측면, 남녀의 양극성, 결합에 의해 이 양극을 연결하려는 욕망을 무시해서 성에 대한 충분한 이해에 실패했다고 비판하고 있다.2. 어버이와 자식 사이의 사랑어머니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아버지의 사랑은 조건적인 사랑으로 나누어서 유아기에는 어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보호를 필요로 하고 6세 이후 성장기에는 아버지의 권위와 지도를 필요로 하게 된다. 또한 성숙한 사람이 되려면 자신이 아버지, 어머니가 되어 그들의 양심을 지녀야 한다고 보고, 성장기에서의 아버지나 어머니 한쪽에 의한 과도한 사랑과 한쪽의 무관심은 신경증의 근본원인으로 보고 있다. 먼저 어머니의 사랑이 과도하고 아버지가 냉담한 경우 누구나, 때로 여자나 권위나 권력에 따르는 지위에 있는 남자에게서 어머니를 찾아내려고 하며, 아버지의 사랑이 과도하고 어머니가 냉담한 경우 부친 지향적인 인간으로 발달해서 법률, 질서, 권위의 원칙에 순종할 뿐 무조건적 사랑을 기대하거나 받아들이는 능력을 갖지 못하게 된다고 보고 있다.3. 사랑의 대상사랑은 한 사람과, 사랑의 한 대상과 의 관계가 아니라 세계전체와의 관계를 결정하는 태도 , 성격의 방향 이라고 말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랑을 능력에 의해서가 아닌 대상에 의해 성립된다는 믿고 있다. 오직 사랑을 받는 대상 한 명만을 사랑하는 것이 사랑의 강렬함을 입증하는 것으로 믿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데 이러한 이유는 사람들이 사랑이 활동이며 영혼의 힘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며 오직 올바른 대상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믿고 나머지는 무시하는 것에 의해 오류를 일으킨다고 말하고 있다.1) 형제애(兄弟愛)사랑의 모든 형태와 바탕에 놓여 있는 기본적인 사랑이 형제애이며, 이것은 모든 인간에 대한 사랑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형제애의 특성은 배타성이 없다는 것이며 기본적으로 동등한 자 사이의 사랑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항상 동등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인 이상 항상 도움을 필요로 한다. 형제애의 시작은 도움이 필요한 인간에 대한 사랑, 가난한 자와 이방인에 대한 사랑에서 시작된다.2) 모성애(母性愛)기본적으로 모성애의 특징은 어린애의 생명과 욕구에 대한 무조건적인 긍정이다. 생명에의 긍정에는 첫 번째로 어린애의 생명유지와 성장에 절대로 필요한 보호와 책임이다. 두 번째로 단순한 생명의 유지를 훨씬 능가하는 것이다. 모성애는 연약한 갓난애에 대한 어머니의 전자의 사랑이 아니라 어린애의 성장에 대한 후자의 어머니의 사랑에서 진정한 모성애의 실현을 볼 수 있다. 성애와 차이점은 성애는 분리된 두 사람이 한 몸이 된다는 것이며, 모성애는 한 몸이었던 두 사람이 분리되는 것을 말한다. 어린애가 어머니에게서 분리될 때 모성애는 비이기성, 모든 것을 주면서도 대상의 행복 외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능력을 요구하는 과업으로 변하는데 이 때 많은 어머니들이 실패를 겪는다. 이 단계에서는 참으로 사랑할 줄 알고 주는데서 행복을 느끼는 여자, 자신의 실존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여자가 어린애가 분리의 과정을 밟고 있을 때에 성공하는 어머니일 수 있다.3) 성애(性愛)성애는 완전한 융합, 다른 한 사람과 결합하고자 하는 갈망으로써 본질적으로 배타적이며 보편적인 것이 아니다. 흔히 사람들은 사랑에 빠지는 폭발적인 경험과 성애를 혼동하는 오류를 범한다. 성적욕망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사랑이라는 관념과 짝을 이루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원할 때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기 쉽다. 그러나 성애에 형제애가 결여된 상태라면 분리 후 심한 격리감을 느끼게 된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결코 강렬한 감정만은 아니며, 결단이고 판단이며 약속이다. 성애는 특수한 두 사람 사이의 독특하고 완전히 개인적인 매력이며, 의지의 행위이다.4) 자기애(自己愛)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덕이고,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죄라는 신념이 널리 퍼져 있다. 이런 논리적인 오류는 만약 나의 이웃을 인간으로서 사랑하는 것이 덕이면, 나도 인간이므로 나 지신을 사랑하는 것은 악덕이 아니라 미덕이어야 한다. 한 사람에 대한 사랑에는 인간 전체에 대한 사랑이 내포되어 있다. 나 자신의 자아도 다른 사랑과 마찬가지로 나의 사랑의 대상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기심과 자기애는 분명히 다른 개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종종 동일시 하고 있는 오류를 범한다. 이기적인 사랑은 자기 자신을 엄청나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미워하는 것이다. 한편 비이기주의라는 것도 분석적 연구로 보면 즐기는 능력이 마비되어 있고 삶에 대한 적으로 가득 차 있으며 비이기주의라는 표면 뒤에는 미묘하지만 매우 강렬한 자기본위가 숨겨져 있다. 자기애는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견해를 빌리면 자기 자신을 사랑하면서 다른 모든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사랑하는 위대하고 올바른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