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객관적 귀속론1.객관적 귀속론의 의의와 문제점:객관적 귀속론은 독일에서 발전된 이론으로, 인과관계를 판단하는 기준을 조건설로 삼는 독일 판례가 인과관계의 책임귀속이 무한정 늘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그 귀속의 범위를 좁히기 위한 기준으로서 발전해 온 것이다. 다시 말해 객관적 귀속론은 인과관계의 문제와 귀책의 문제를 구별하여 전자는 조건설의 기준에 맞춘 인과관계 개념에 의해 해결하고 다만 인과관계가 인정되는 모든 결과를 행위에 귀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 귀속이론에 입각한 귀속책임 있는 결과만을 따로이 판단하여 해당하는 행위만을 비난하는 것이다.객관적 귀속론은 이와 같이 인과관계 연결의 문제와 책임귀속의 문제를 구별하여 취급한다는 점에서 인과관계를 귀책관련의 문제로서 파악하려는 대한민국의 통설인 상당인과관계설과는 차이가 있다.문제는 결과의 귀책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을 상당인과관계설이 취하는 입장에서 바라볼 것인가, 상당인과관계설의 난점인 ‘상당성’의 모호성을 비판하며, 객관적 귀속론의 입장을 취할 것인가에 대해 국내에서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2.객관적 귀속의 세부 이론:객관적 귀속론에 의하면,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결과가 발생했을 때, 그 결과를 행위에 귀속시킬 것인가에 대한 기준으로서 제시되는 이론들이 존재한다. 이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Ⅰ.지배가능성 이론:지배가능성 이론이란 행위자가 그 결과발생 여부를 지배할 수 있었던 경우에만 객관적 귀속을 인정할 수 있고, 그 결과발생 여부를 지배할 수 없었던 경우에는 결과에 대한 행위의 귀속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이론이다. 회피가능성이론이라고도 불리운다.Ⅱ.위험증대 이론:위험증대이론은 일정한 행위에 의해 일정한 결과가 발생된 경우 그 행위가 법이 보호하는 보호객체에 대한 위험을 발생시켰거나 위험을 증대시키는 행위인 경우에만 발생된 결과책임을 그 행위에 귀속시킬 수 있고, 그 행위가 위험을 감소시킨 행위나 허용된 위험의 범위 내에서의 행위인 경우에는 발생된 결과를 행위에 귀속시킬 수 없다는 이론을 말한다.Ⅲ.규범의 보호목적 이론:규범을 위반하여 위험을 증대시켰거나 허용되지 않는 위험을 야기시킨 경우라도 발생된 결과가 규범의 보호목적범위에 속하지 않는 경우에는 그 결과를 규범위반행위에 귀속시킬 수 없다는 이론으로 위험증대이론의 보완책으로서 발전해왔다.3.객관적 귀속론에 대한 비판Ⅰ.우리 형법은 인과관계에 대한 명문규정을 갖고 있지 않은 독일의 그것과는 달리 형법 제 17조에 인과관계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다. 이는 우리 형법이 고유의 인과관계 규정을 가진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 객관적 귀속론자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이를 자연과학적 인과관계를 규정한 것으로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어떤 행위’ ‘죄’ ‘위험발생’ ‘결과’ 등은 형법 이전의 개념이 아니라, 형법상의 개념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Ⅱ.형법 제 17조가 인과관계와 객관적 귀속을 모두 규정하고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형법 제정 당시 객관적 귀속론이 알려져 있지 않았던 국내 사정을 비추어 생각해 볼 때 어불성설이며, 국내 형법의 연혁을 부정하는 옳지 못한 주장이다.Ⅲ.우리의 판례는 꾸준히 상당인과관계설을 취하고 있으며, 만약 인과관계 판단에 있어 문제점이 있다고 보여진다면 상당인과 관계설의 단점을 먼저 수정, 보완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지, 상당인과관계설의 장점들을 버린 채 객관적 귀속론의 적용을 주장하는 것은전후가 뒤바뀐, 주체적인 형법사상이라 볼 수 없다.Ⅳ.객관적 귀속론은 아직 완성단계가 아닌, 발전중인 이론이며, 아직 많은 미비점과 보완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상당인과관계설과 그에 따른 판례를 부정하면서 까지 수용해야할 가치가 없다고 보여진다.4.객관적 귀속론에 대한 개인적 견해: 독일은 조건설을 지금껏 판례의 기본입장으로 취해 왔고, 그 조건설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객관적 귀속론과 같은 이론을 성립, 발전시켜 왔다. 상당인과관계설을 기본적 태도로 삼는 대한민국의 형법학 역시 독일의 예를 따를 필요가 있다. 여기서 독일의 예를 따른다는 것은 객관적 귀속론을 수용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제 우리나라 법학계도 독일처럼 자신들이 판단기준으로 삼고 있는 법적 이론에 대한 주체적인 연구와 노력을 통해, 그 이론을 수정, 보완하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비교적 늦은 근대화를 이루었고, 그로인해 근대적 의미에서의 법질서가 늦게 확립되었다. 법질서의 미비와, 근대화가 늦어진 후발국가라는 열등감은 외국법의 무조건적인 계수를 낳았다. 현재 우리 고유의 법질서가 남아있는 것은 가족법 정도라고 적혀있던 어느 교과서의 구절은 이제 서글픔으로 다가온다. 이제 외국법의 계수를 통해, 어느정도의 형식을 잡은 이상, 우리는 우리 나름의 법질서와
'The Blind Man' 작품 분석작가 소개D.H.R. 로렌스(David Hervert Richards Lawrence, 1885~1930) : 영국의 소설가, 노팅엄셔의 이스트우드에서 출생. 노팅엄 대학 시절 소설 을 출판했다. 은사의 부인인 독일인 프리다와 사랑하여 함께 독일로 도피했다가 귀국하여 정식으로 결혼했다. 빈곤과 병마와 싸우면서 창작을 계속 하였으며 전후에는 이탈리아, 멕시코 등을 유랑하였으며 니스 근처의 방스에서 요양 중 사망했다. 소설의 수법은 전통적이나 그 사상 내용은 현대문학에 큰 영향을 미친다. 현대 문명사회에서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인간의 성적 욕망이라고 주장하고, 정신분석학, 역사학, 고고학을 이용하여 독특한 사상체계를 이룩했다. 대표작으로 자전적인 소설인 , , 등이 있다.줄거리만삭의 몸인 이사벨 퍼빈은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이마에 흉한 흉터가 있는 그의 남편 모리스는 플랜더스에서 눈이 먼 사람이다. 남편이 비록 눈이 멀었지만 그들 부부는 행복했다. 농장과 집이 모리스의 소유였으며 모리스는 워넘 일가의 농삿일을 봐주며 살았고, 이사벨은 스코틀랜드의 어느 일간신문에 신간비평을 쓰면서 소일하였다. 그렇게 세상과 떨어져 지내오던 중 이사벨은 권태를 느끼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이사벨의 친척이자 친구인 버티에게서 편지가 오고 모리스는 별로 내켜하지 않았으나 이 부부는 그를 초대하게 되었다. 마침내 마차를 타고 버티가 왔다. 그는 눈이 먼 모리스에게 위로의 말을 던지며 이들 부부와 함께 저녁식사를 한다. 그러나 그 자리가 불편했던 모리스는 농장으로 나간다. 시간이 많이 흘러도 돌아오지 않자 버티가 모리스를 찾아나선다. 헛간 같은 곳에서 버티는 모리스를 찾아낸다. 그들은 몇 마디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마침내 앞을 볼 수 없는 모리스는 버티의 몸과 얼굴을 만짐으로써 그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게 된다. 그들은 그 순간 우정의 정열을 느낀다. 그들은 함께 이사벨에게 가서 그들이 친구가 되었다고 말하자 이사벨 역시 기뻐한다. 버하려 하지도, 마음속에서 그려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의 내부에서 의식의 새로운 방식이 그것을 대체했다.Pervin moved about almost unconsciously in his familiar surroundings, dark though everything was. He seemed to know the prescience of objects before he touched them. It was a pleasure to him to rick thus through a world of things, carried on the flood in a sort of blood-prescience. He did not think much or trouble much. So long as he kept this sheer immediacy of blood-contact with the substantial world he was happy, he wanted no intervention of visual consciousness. In this state there was a certain rich positivity, bordering sometimes on rapture. Life seemed to move in him like a tide lapping, lapping, and advancing, enveloping all things darkly. It was a pleasure to stretch forth the hand and meet the unseen object, clasp it, and possess it in pure contact. He did not try to remember, to visualise. He did not want to. The new way of consciousness substituted itself in him.위의 인용문에서 모리스는 완전한 어둠 속에서 유유히 움직이며 자신만의 세계를 부분을 가진 인물인 것이다.남편에 대한 소유욕이 큰 이사벨에게 '남편을 완전히 소유하는 것'은 그야말로 '엄청난 기쁨'(inordinate joy)이다. 모리스가 가장 모리스다울 때, 즉 시각과 함께 정신 의식이 거의 배제된 채 피의 접촉에 머물때의 그를 그녀는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소유함으로써 최고의 행복을 느낀다. 그녀 편에서 보자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친밀감'(Unspeakable intimacy)의 상당부분이 이러한 소유욕과 겹쳐있다. 모리스가 '아내와 더불어' '풍요롭고 진실된, 그리고 보이지 않는 하나의 온전한 세계'를 '소유'한 것이라면, 이사벨은 그러한 남편을 소유하는 것이 기쁨이었다.그것은 기쁨이자 또한 이사벨의 불안정한 영혼을 붙들어 주는 버팀목이기도 하다. 버티가 '깊은 중추'에서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니라고 느끼면서도 그 두려움을 견고한 사회적 자아에 의지해 나름대로 안정시키고 있다면 이자벨의 저 깊은 곳에 자리한 불안과 우유부단함을 잠재우는 것은 폐쇄적인 결혼 생활에서 얻는 견고한 안정감이고 그 중심에 남편에 대한 완전한 소유의식이 자리잡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모리스가 시력을 잃은 것은 이사벨에게 그를 더욱 확실하게 소유하는 기쁨을 주었을 법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남편을 완전히 소유했다고 느끼는 사이 어느덧, 더구나 실제로 자신의 몸 안에 아기를 '가진' 이사벨로서는 남편을 밀어내고 대신 뱃속의 아기를 소유하며 그것과 하나 된 친밀감에 나른하게 빠지기를 원한다. 모리스는 이제 이사벨에게 '엄청난 기쁨'(a terrible joy)이면서 동시에 '끔찍한 짐'(a terrifying burden)이기도 하다.Bertie이사벨과의 친척이며 변호사(Barrister)인 버티는 '정신 의식'(mental consicousness)으로 대변되는 중심 인물이며, 이사벨에게 '거의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며 서로를 '본능적으로 이해하는'(understood one another instictively)사이이다. '놀라울 정도리스 부부를 통해서 사랑의 문제, 우정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듯 하지만 좀 더 깊이 들여다 보았을 때 남녀간의 사랑뿐만이 아닌 ‘자연’과 ‘현대문명’의 갈등을 그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로렌스가 모든 예술 장르 중에서도 특히 소설이라는 형식이 요청한다고 강조한 바 있는 그 ‘떨리고 흔들리는 가운데 유지되는 균형’(the trembling and oscillating of the balance, “Morality and the Novel”)이 작품 전체를 통해 부부간의 갈등, 대립되는 인물간의 갈등으로 드러나고 있으며 작품의 근간을 이룬다.모리스와 이사벨 부부는 아주 행복하게 살아가는 부부였다. 세상과 격리되어서 자신들만의 부부생활을 즐기면서 살아갔다. 그러나 그러한 평온과 행복은 오래 가지 않았다. 그녀는 그러한 삶에 권태를 느끼기 시작했고 외부생활에 대한 매혹을 느꼈던 것이다. 하지만 사실 곰곰히 읽어보면 이들의 불안과 초조함 등은 반드시 새로 생겨난 갈등 만은 아니다.그 렇게 해서 오늘 저녁 11월의 비와 어둠 속에서 버티가 오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오랜 불안과 우유부단함으로 초조하고 심란했다. 그녀는 이러한 의혹이 주는 고통, 확신할 수 없는 데서 오는 번민으로 늘 괴로워했다. 그러던 것이 모성이라는 무기력 속에 차츰 사라지는가 했다. 그런데 이제 그것이 다시 찾아왔고 그녀는 화가 났다. 그녀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침착하고 태연하고 다정한 태도를 온몸에 두른 일종의 가면처럼 계속 지니고자 애썼다.So Bertie was coming, coming this evening, in the November rain and darkness. Isabel was agitated, racked with her old restlessness and indecision. She had always suffered from this pain of doubt, just an agonising sense of uncertainty. It had begun to pass at times the flow would seem to be checked and thrown back. Then it would beat inside him like a tangled sea, and he was tortured in the shattered chaos of his own blood. He grew to dread this arrest, this throw-back, this chaos inside himself, when he seemed merely at the mercy of his own powerful and conflicting elements. How to get some measure of control or surety, this was the question. And when the question rose maddening in him, he would clench his fists as if he would compel the whole universe to submit to him. But it was in vain. He could not even compel himself.위의 인용문에서 버티 또한 '피의 예지 속의 흐름에 실려'(rock thus through a world of things, carried on the flood in a sort of blood-prescience) 자신만의 세계를 향유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본인 조차도 감당할 수 없는 '역류', '혼돈'에 직면해 있으며 '전 존재를 소진시키는' '우울증의 황페한 발작'(devastating fits of depression), 아니 그보다 더한 '암울한 비참한'(a black misery)에 시달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들 부부에게는 좌절에 매몰되지 않는 용기와 새로운 출구의 발견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이사벨은 버티를 초대하고 모리스 또한 그의 방문을 허용하고 있다고 해석된다.결국 ‘자연’과 ‘현대문명’으로 비유될 수 있는 중심인물 T 1
을 읽고우동의 뜨끈한 국물과 그 속에 담긴 면 가락을 후르르 건져 먹는 기분은 생각만으로도 따뜻하다.그래서인지 우동을 시켜 놓고 기다릴 때는 훈훈한 기분이 들고, 드디어 넉넉한 그릇에 김이 피어나는 우동 한 그릇이 내 앞에 놓여지면 그냥 흐뭇해지곤 한다. 그래서 우동 한 그릇을 먹고 나면 그 따뜻한 포만감으로 양껏 배가 부르다.이 글은 가장(家長)을 잃은 슬픔과 경제적 상실감을 딛고 일어선 한 가족의 이야기이다. 매년 섣달 그믐날 늦은 밤 ‘북해정’이라는 우동집을 찾은 어머니와 두 아들, 이렇게 세 식구가 돈이 없어 우동 한 그릇 만 시켜 나눠 먹으면서도 서로를 아껴주고 위해주면서 마침내 성공해 우동 ‘세 그릇’ 을 주문하는 ‘인생 최고의 사치’를 누린다는 것이 대강의 줄거리이다. 또한, 매년 섣달 그믐날 저녁이면 이들을 위해 테이블 하나를 비워 두고 기다리던, 사려 깊은 우동집 주인도 보이지 않는 주인공이다. 원고지로 50매를 채 넘지 않는, 어떻게 보면 지극히 사소하고 범상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힘들 때마다 이 글을 꺼내 읽으면서 그때마다 가슴 뭉클한 감동을 받게 되고 새로운 용기를 얻곤 한다.‘우동 한 그릇’을 읽는 양은 거의 우동 한 그릇 먹는 정도의 시간이 걸리고,‘ 우동 한 그릇’을 다 읽고 난 뒤의 느낌은 막 우동 한 그릇을 먹은 것처럼 따뜻하고 훈훈하다. 이 짧은 동화 같은 이야기를 처음에는 우연히 읽었고, 다음은 아주 감동적이라며 인터넷으로 보낸 준 친구 때문에 다시 읽었고, 지금은 필요에 의해 다시 책을 읽었다.멸치 다시도 여러 번 우러내면 맨송한 맛이 되듯,‘ 우동 한 그릇’을 다시 읽을 때마다 내용에서는 감동이 줄어들었다. 반면 이야기는 간단하지만, 그 주제와 소제가 서로 잘 짜여진 이야기 구조였다는 것과 한편으로는 많은 아이들이 밥을 굶고 있는 요즘 우리의 현실을 생각해 보게 했다. 제목‘우동 한 그릇’은 소제이면서 동시에 주제를 아우르는 상징성을 지녔다. 가난하여 우동 한 그릇을 시켜 두 아들이 먹는 것을 지켜보는 어머니와 우동을 몰래 덤으로 더 얹어주며 이들을 지켜보는 북해정의 마음 따뜻한 주인 아줌마와 아저씨. 그리고 추운 섣달 그믐날이라는 묘한 시간적 상황과 사건은 이런 점진적 과정이 되풀이되면서 감동을 더해 준다.‘우동 한 그릇’은 사실과 허구가 교묘하게 짜여있다.책 속의 ‘쥰’이가 학교에서 쓴 작품‘우동 한 그릇’은 서술적 형식을 띤 넌픽션으로 처리되어있고, 또 한 편에서는‘북해정’의 인정 많은 식당 주인이 담담히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마치 큰 그림 속에 또 하나의 작은 그림이 들어있는 이중구조 같다.“지금까지 인생 가운데에서 최고의 사치스러운 것을 계획했습니다. 그것은 섣달 그믐날 어머님과 셋이서 삿뽀로의 북해정을 찾아와 3인분의 우동을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사랑과 희망으로 자식의 버팀목이 되어준 어머니와 이들을 지켜본 이웃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가정이 해체되거나 결손 가정이 늘면서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하거나 아예 결식을 하는 아동이 30만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아이들에게 배고픈 고통보다 더 절실한 것은 부모의 사랑과 사회의 관심일 것이다. 배고픈 아이들을 생각해 보면 우동 한 그릇으로도 허기와 따뜻함을 채울 수 없는 현실이 책보다 더 리얼하게 다가오는 요즘이다.
을 읽고저자 가산(可山) 이효석(李孝石)은 구인회(九人會)중의 한명으로 향토색이 짙은 작품들로 유명한 한국의 대표적인 단편소설 작가이다. 특히 은 이효석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으며, 한국 현대 단편소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만남과 헤어짐, 그리움, 떠돌이의 애수 등이 아름다운 자연과 융화되어 미학적인 세계로 승화된 단편소설의 백미로 평가 받고 있다. 특히 이 작품 은 사회의식을 지양하고 한국적인 자연의 아름다움을 배경으로 인간의 순박한 본성을 그려내는 주제 의식과 달밤의 메밀밭을 묘사한 시적인 문체가 뛰어나 우리 문학의 수준을 한 층 더 높이는 데 기여한 작품이기에 작품에 대한 네 가지 특성을 짚어본다. 제목에서처럼 메밀꽃이 필 무렵의 시간적 배경으로 하여 주인공인 장돌뱅이 허생원이 장터를 이동하는 여정을 짧게 그리고 있다. 여기에서 누구나 가장 주목하게 되는 부분은 바로 작품에 나타난 서정성이다. 원래 시인으로도 활동하였던 이효석은 소설에서도 시의 중요한 특성인 서정성을 수용하여 조선 시골사회를 아름답게 묘사하였다. 특히나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라고 묘사한 구절은 작품의 백미 중의 백미이며 이러한 시간적 배경은 정서를 순화시키고 사랑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시간임을 상징한다. 곧 이처럼 아름다운 묘사는 자칫 불륜이나 외설로 치부될 수 있는 주인공의 정사를 아름답게 보이게 하고 있다. 또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들리는 달밤”이라는 표현 역시 묘한 공감각적 심상을 형성하며 독자로 하여금 인간과 자연을 자연스레 동화시키며 모든 감각기관을 동원하여 메밀꽃의 이미지를 받아들이도록 한다.작가는 주인공에 대한 정보를 서서히 드러내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허생원의 외모가 얼금뱅이에 볼품없는 외모이지만 여자를 좋아하는 성격이라는 점이라든지 소심하고 소극적인 성격이지만 젊은 시절의 한때의 추억을 아름답게 간직하고 있다든지 하는 서술을 작품 전체에 걸쳐 서술함으로써 독자의 주의를 환기시킨다. 무엇보다 내용 전개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인 왼손잡이에 관련한 서술은 작품의 도입부분에서, 그리고 중간부분인 시장에서 아이들이 허생원과 나귀를 놀리는 장면에서 한번, 그리고 마지막에 동이의 채찍이 왼손에 들려있었다는 부분에서 한번 언급해 줌으로써 독자의 줄거리 이해를 돕고 있다.또한 작가는 유사성을 이용하여 인물을 형상화 시킨다. 비유법을 사용한 상투화 된 언술로 인물을 형상화 한 예는 일상언어생활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으며, 소설 속에서도 즐겨 사용되지만 대부분의 소설에서는 어디까지나 일정한 문맥 속에서 부분적으로 나타남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인물간의 유사성, 나아가서는 동물과의 유사성까지 폭 넓게 확장시키고 있다. 충줏집을 흠모하는 허생원과 동이의 모습은 같은 피를 나눈 부자지간에는 좋아하는 여성이 비슷함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이십 년의 세월을 허생원과 함께한 나귀를 통해 허생원을 형상화 시키고 있으며, “가스러진 머리털은 주인의 머리털과도 같이 바스러지고, 개진개진 젖은 눈은 주인의 눈과 같이 눈곱을 흘렸다.”, “늙은 주제에 암샘을 내는 셈이야 저 놈의 짐승이”와 같은 서술은 읽는 이로 하여금 미소를 머금게 한다.마지막으로 작가의 의도적인 능청을 주시해 볼만 하다. 소설 구조의 본질은 신축과 이완에 있다. 소설의 도입 부분의 독자들의 관심을 끌어들이는 데 일단 성공하게 되면 이내 긴장의 끝을 조금 풀어놓았다가, 독자들이 흥미를 잃어 갈 무렵 돌발적인 사건이나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사건을 이끌어 가서 다시 관심을 집중시키고, 정말로 결정적인 순간에는 능청을 떨고 딴전을 피우는 것이야말로, 창작기법적인 측면에서 작가가 부릴 수 있는 최고의 기교일 것이다. 독자들이 동이가 허생원의 아들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하게 하고 이야기는 흥미로워지며 긴장은 고조되는 시점에서 허생원이 동이에게 어머니에 대한 직접적인 질문을 하려는 찰나 험한 둔덕을 등장시켜 이들의 말문을 끊어 놓는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신축과 이완을 공간전략을 통해 자연스럽게 구사하고 있다.위에서 짚어본 바와 같이 이 소설은 아름다운 문체라든지 인물이나 배경에 대한 서술전략 등 매우 치밀하게 구성된 수작이라고 생각되며 다소 오래된 어휘들이 사용되었지만 현대인들이 읽고 이해하는데 큰 장애가 되지 않으리라 생각하기에 이 작품이 더욱 널리 읽혀지기를 고대한다.
유비쿼터스와 이동통신의 미래1. 유비쿼터스 사회란?유비쿼터스는 ‘언제 어디서나 존재한다’라는 의미의 라틴어인 ‘ubique'에서 유래한 말로 1988년 미국 제록스社 Palo Alto ResearchCenter(PARC)의 마크와이저(Mark Weiser)가 컴퓨터 사용자가 업무보다도 컴퓨터 조작에 몰두해야함을 비판하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되었다.) 초기의 마크와이저가 생각한 유비쿼터스 환경이란 ’사용자가 네트워크나 컴퓨터를 의식하지 않고 장소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는 정보통신 환경‘이었으나 최근에는 단순한 물리공간에 편재된 네트워킹 뿐 아니라 최근에는 디지털 컨버전스가 더해진 모바일 컴퓨팅 개념이 추가되었다. 오늘날 유비쿼터스 컴퓨팅은 마이크로칩 형태로 초소형화된 컴퓨터들이 생활 공간 곳곳에 스며들어 상호 정보 교환 및 필요한 기능 수행을 실시간으로 행하는 컴퓨팅 환경으로 이해되고 있다. 마이크로 컴퓨터들에 의한 실시간 정보 교환 및 필요한 기능의 원활한 수행은 유·무선 네트워크 인프라의 발달을 전제로 한다. 시간이나 공간의 제약 없이 대용량 정보를 고속으로 송·수신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는 유비쿼터스 사회에 대해 ’모든 기기가 지능을 갖추고, 당신을 위해 변할 수 있는 융통성을 가지게 되는 미래의 컴퓨팅 환경‘(’2004. 10)이라고 언급 하다. 급격히 발전하는 유비쿼터스 사회는 엄청난 기술의 도약을 요구하는 동시에 인간의 삶을 더욱 편리하고 풍요롭게 만들고 있으며, 특정영역에서 벗어나 사회생활 전반에 급속히 파급되어 변화를 주도 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일부 지역에서는 서비스가 불가능 하고 관련 기술과 비즈니스 모델이 완전하지 않지만 WiBro, DMB, GPS, 스마트카드 형태의 교통카드의 범용화 등 우리나라 사회는 이미 유비쿼터스 IT 기반 사회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접속 장소에 제약을 없애고 자유로운 고속 무선통신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4세대 이동통신의스(Digital Convergence) 가속화하나의 제품으로 복합적 기능을 편리하게 이용하고자 하는 소비자의 Needs가 증가하면서 디지털 컨버전스 제품이 속속 등장 할 것이다. 디지털 컨버전스는 단순 기능결합에서 서비스 융합으로 진화하며 지속적인 멀티미디어화, 복합화를 통해 고부가가치를 추구한다. 또한 복합적 기능에 따라 서비스 영역이 확대되고 제품의 경쟁력 향상을 위한 산업간 융합 등 서비스 및 산업간 컨버전스가 확장될 것이며, 이미 일부 산업 영역에서 융합이 상당부분 진행되었고 그 중심에 이동통신기기가 있을 것이다. (DMB와 GPS가 기본 탑재된 승용차, 이동통신사에서의 음악, 게임 포털 서비스 제공 등)· 유비쿼터스 핵심 인프라로 RFID 급부상초기 국방분야에 적용된 RFID)가 의료, 유통 등 생활전반에 급속히 응용되어 사물·공간에까지 지능화가 가속될 것이다. RFID는 정보의 축적, 사물 및 제품 자동식별(Auto-identification), 위치확인 등이 가능하여 기존 바코드 대체 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적용 가능하기에 니콜라스 네그로폰테(Nicholas Negroponte, MIT 미디어연구소 소장)이 지적하였듯이) RFID 관련 기술은 다른 주요 기술들과 함께 핵심 기술이 될 것이다. 이미 미국·유럽 등의 대형 업체를 중심으로 물류·유통 부문에 RFID가 도입됨으로서 유통혁명이 가시화 되고 있다.·'디지털 웰빙(Digital Well-being)'의 대두웰빙 열풍은 생활패턴 자체를 디지털화 하는 디지털 웰빙(Digital Well-beging) 개념으로 진화하고 있다. 웰빙 기능이 장착된 김치냉장고나 당뇨폰, 다이어트폰 등 웰빙 가전이 지속적으로 출시되고 있으며 홈 헬스케어 또는 한우·수입식품 등에 RFID를 부착하여 관리하는 등 적용사례는 점점 많아지고 있다.· 유비쿼터스 주거환경으로의 변화 가속화주거개념이 단순한 거주와 휴식 장소에서 지식창출이나 정보공유 등을 모두 포괄하는 복합 디지털 주거환경으로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 현재 고급택 교육, 원격 건강 진단 등도 활성화됨으로써 관련 서비스 이용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이 대폭 절감될 것이다.기존의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기반으로 가정 내 통신·가전기기를 하나의 통신망으로 연결·제어 가능하고 원격진료 등의 서비스가 제공되는 홈 네트워크가 가능해 지면서 주거환경은 ‘디지털 홈’ 개념으로 확장될 것이다.· 새로운 문화풍속 등장1) 디지털 컨버전스가 가속화됨에 따라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디지털기기를 일상적으로 활용하는 m세대, 펌킨족) 등 신세대가 부상하고 있다. KTF의 경우 엄지족의 확산으로 문자메시지 발신량이 음성통화 발신량을 추월하기도 하였고 벨소리 환청 등 ‘휴대폰중독 증후군’ 현상까지 초래하고 있다.2) 블로그와 사이버 커뮤니티의 급격한 확산으로 향후 1인 미디어에서 유비쿼터스 컴퓨팅 환경에 부합하는 ‘로커티브 미디어)’ 등과 같은 신개념의 차세대 커뮤니티가 형성될 전망이다. 또한 리플(댓글)문화가 활발하게 이루어져 ‘넷심(Net + 心)’이 여론을 더욱 주도하게 할 것이다.3) 디지털 음악, 온라인 게임 등 엔터테인먼트도 디지털 컨버전스와 결합하여 이동 중에도 향유할 수 있는 유비쿼터스 환경으로 진전될 것이다. iTunes는 이미 전통적인 음반시장을 추월하였고, 스타크래프트로 대표되는 e스포츠도 이용자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전통적인 도서도 점찬 eBook 형태로 전환되고 있다.· 디지털 경제의 유비쿼터스화 진전PC에 국한된 인터넷쇼핑몰 개념에서 탈피, 휴대폰·PDA·디지털TV 등 인터넷에 접속 가능한 모든 기기를 활용한 쇼핑이 증가할 것이다. 최근 전자화폐기능이 내장된 휴대폰 출시와 이동통신기기를 이용한 모바일 뱅킹 이용이 증가하면서 개인의 금융거래 유형도 은행창구인 대면거래보다는 인터넷·모바일 등 비대면 거래형태로 급속하게 전환되는 추세이다.· 유비쿼터스 기반의 u-의료서비스휴대폰 등을 통해 상시적으로 환자의 건강 및 의료정보를 측정·점검하는 의료서비스의 모바일화가 진전될 것이며 모든 사물을 통해 지능적으로 의료정보가 인식되는 다양한 방식의 통신이 가능해야 한다. 여러 종류의 인터넷망에 접속이 자유로워야 하며 동시에 인터넷 망을 거치지 않더라도 기기들 간의 통신이 원활해야 한다. 과거 바이킹 왕의 애칭에서 비롯된 블루투스는 기기간의 통신의 대표 격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오늘날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는 정보기기들을 조용히 통합시키고 있다. 블루투스를 활용하면 노트북과 PDA 그리고 휴대폰에 기억되는 모든 전화번호, 주소, 메모 등을 자동으로 일치 시킬 수 있고, 정보기기들 끼리 자발적으로 통신을 주고받으며 정보를 업데이트 한다. 이러한 점에서 블루투스는 감추어진 컴퓨팅(hidden computing)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 개방성과 시장성, 그리고 종합성으로 인해 홈랜(Home-Lan)의 강력한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는 블루투스의 경우 기기들 간의 페어링(Pearing)이라는 단계가 필요하여 사용자가 이를 초기에 설정해 주어야 한다는 점에서 마크 와이저가 주장하는 비가시성의 성격에서 조금 벗어난다고 볼 수 있기에 이에 대한 해결책이 요구된다.디지털 컨버전스의 가속화와 홈네트워킹의 도래로 Personal Handheld Device의 활용도와 그 가치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따라서 그 대표주자 격인 스마트폰의 경우 이용자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키는 동시에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해야 한다. 사용자의 다양한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사용자 개개인의 Needs에 부합하는 혁신적인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의 개발이 필요한데, 이는 끊임없는 신기술의 발전을 필요로 한다. 예컨대 화면은 더욱 넓고 선명해 지고 있지만 배터리의 크기는 점점 줄어들고 있으므로 고성능의 신소재 개발이 중요하며 IR, Bluetooth, WiFi, DMB, GPS, WiBro 등 다양한 통신방식을 충분히 지원하기 위해서는 SoC)기술과 MEMS기술), 그리고 센서 기술의 발전이 절실하다. 화면의 경우 유기전기발광소자) 기술이 유력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주변 사물에 마이크로칩의 이식이 활발히 이루어지면서 센방식으로 공급받는가 하는 점이다. 옥외에는 콘센트가 없기 때문에 보통 배터리를 사용한다. 배터리는 유비쿼터스 컴퓨팅으로 가기 위해 해결해야할 장벽의 하나이다. 아울러 칩의 소형화와 저 전력기술이 중요하다.유비쿼터스 공간에서는 사람이나 사물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언제나 네트워크를 통해 이를 추적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리정보시스템(GIS)와 위치측정시스템(GPS) 그리고 물리공간에서의 주소 등이 목적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물리 공간에서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IPv6, GIS, GPS, 실제주소 그리고 실명(예를 들어 응급환자 배지의 ID)등을 통합해 실시간으로 전송할 필요가 있는데 여기에 이동통신 기기가 중추적인 역할을 하리라 예상된다.홈네트워킹이 일반화 되면서 개인용 휴대단말이 가정 내에서의 모든 기기를 작동·제어 하는 컨트롤러 역할을 하게 될 것이므로 다양한 통신방식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되며 동시에 여러 방식 중 가장 우수한 기술로의 표준화 또한 매우 중요한 이슈이다.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의 창출을 위해서는 새로운 산업 간의 컨버전스에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 삼성전자의 Anycall과 스포츠 브랜드 Adidas의 산업간 컨버전스로 운동량과 건강을 기록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은 좋은 예시라고 할 수 있다.유비쿼터스 환경에서 언제 어디서나 어느 기기를 이용해서도 컴퓨팅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뒤집어 생각하면 언제 어디서나 정보가 유출될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유비쿼터스 컴퓨팅 시대에는 보다 철저한 보안 기술이 요구된다. 다양한 기기를 통해 각종 데이터들이 무선으로 송수신되는 환경에서는 정보에 대한 해킹이 더 쉬워져 보안문제가 더 심각해지므로 보안시스템과 유비쿼터스 환경구축은 처음부터 같이 시작되어야 한다. 녹색소비자연대는 인터넷실명제, RFID내 개인 정보 수집 허용 등으로 유비쿼터스 감시사회 도래를 우려한다고 성명서를 발표(2005.7)했으며, 리처드 헌터는 유비쿼터스 컴퓨팅으로 인해 “비밀이 없는 세계(W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