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빈토플러의 ‘제3의 물결’을 읽고앨빈 토플러는 제 3의 물결에서 인류의 역사상 지금까지 3번의 큰 변혁의 시기가 있었는데 그 첫 번째가 농경사회의 시작, 두 번째는 산업사회의 시작, 세 번째는 이른바 제3의 물결이라 일컫는 정보화사회다. 그는 이러한 시대의 변혁의 근간에는 인류가 이용하는 에너지원이 변화가 있다고 한다. 농경사회에서는 가축이나 인력이 사회를 움직이는 주요 동력이었고, 산업사회에서는 석유와 석탄, 천연가스와 같은 지하자원이 세상을 움직이는 주요 동력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제3의 물결의 사회에서는 산업사회에서와 같이 유한자원에 의존하는시대는 가고 태양에너지, 핵에너지와 같은 다양한 대체에너지가 새로운 에너지원으로서 중요하게 부각된다고 한다. 이런 에너지원의 변화는 사회전체적인 면에서의 총체적 변화를 함께 가져왔다.예를 들면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오는 과정에서 기존의 대가족 제도가 핵가족 제도로 바뀌었고 사회의 구조 전반에 걸쳐서 철저한 분업과 통제의 시스템이 자리잡게 되었다. 경제구조도 똑같은 상품의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통해 산업사회 경제체제로 전환되면서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단순하고 규칙적인 노동력을 제공할 인력이 필요했고, 사회는 이러한 필요에 부응하기 위해 학교와 병원, 매스미디어 등을 통해 산업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상을 양산하기 시작했다. 산업사회에서 요구되는 복종과, 인내와 같은 덕목을 노동자들에게 주입시키고 강화시키는 수단으로 학교와, 매스미디어등이 활용되었다. 특히 매스미디어는 대량생산된 상품의 소비를 촉진시키는 역할까지 수행함으로써 산업사회의 없어서는 안될 첨병이었다. 산업사회에서의 인간은 권력에 의한 통제와 감시 복종을 강요받았고 기계의부품으로 전락했다. 철저하게 분업화된 공장시스템이 모든 사회조직의 구성원리로 작동하게되면서 인간은 점점 파편화되고 인간성은 상실되게 된 것이다.앨빈 토플러의 관점은 결국 이러한 변화가 에너지원의 변화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의 사회는 산업사회의 주요에너지원이 변화하면서 또 다른 변혁과는 더 두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제 3의 물결이 우리에게 가져온 구체적 변화는 어떤 것이며 21세기를 살고 있는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1. 변화의 물결토플러가 말하는 시대의 변화급격한 변혁의 시대는 현 시대를 한마디로 지칭하는 표현이다. 이는 정보화 사회, 전자공학의 시대, 탈공업화 사회, 지구촌 시대 등 여러 가지로 쓰고 있다. 그러나 앨빈 토플러는 변화의 동적인 면과 광범위성, 강력한 영향력 등을 강조하기 위해 [물결]이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그는 현 시대를 "제 3 물결"의 시대로 표현하고 있다. 또, 부를 창출하는 체제의 변화가 새로운 물결을 일으킨다고 보고 우리 시대를 3개의 물결로 구분하였다.그 첫 번째를 1만 년 전 인류의 역사를 변모시킨 농업혁명을 변화의 제 1물결이라 하고, 두 번째, 산업혁명을 제2물결, 1950년대 중반에 시작된 거대한 기술, 사회적 변화들을 인류 변화의 거대한 제 3물결 - 새로운 공장 굴뚝 이후의 문명의 시작- 이라고 규정하였다.그리고 하나의 새로운 물결이 시작되면 그것은 과거의 물결과 충돌하면서 과거 물결 시대의 모든 것들을 송두리째 바꾸어 나간다고 하였다. 특히 이 시기에는 기존의 권력과 새로운 물결을 기반으로 한 권력과의 충돌- 때로는 가장 극단적인 충돌인 전쟁을 불사하는- 이 일어난다고 하였다.미국의 경우, 첫 번째 충돌은 농업혁명에 따른 제1물결 문명을 확립하려는 유럽인들이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백인에 의한 농업 문명의 조류가 서쪽으로 밀어닥쳐 인디언을 차례 차례로 몰아내고 멀리 태평양 기슭까지 농장과 농촌을 이룩해 나갔다. 그 후 제2물결의 첨병이라 할 수 있는 초기 산업인들은 동북부를 중심으로 공업지대를 건설하였다. 그리고 제1물결 세력인 남부 농업세력과의 경제적 사회적 긴장과 마찰로 드디어 극단적 충돌,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 남북전쟁은 미래의 미국 사회가 농업형 사회가 되느냐, 산업형 사회가 되느냐의 갈림길이었는데 북군이 승리함으로써, 그 길이 열리게 된다.국민은 국가의 역할을 약화시키고 오늘날보다 보다 간소하고 효과적이고 민주적인 정부를 요구한다. 그리고, 산업혁명에 의해 분리되었던 생산자와 소비자를 다시 한번 융합시켜 라고 부를만한 내일의 경제를 창출해 낼 것이다.제 3의 물결과 정보화 사회앨빈 토플러는 제3물결의 정보화 사회는 지식과 정보가 권력의 핵심이 되는 사회라고 하였다. 그리고, 새로운 부를 창출하는 체제는 바로 이 초기호적인 데이터와 정보, 지식의 교환에 의존하게 되고 지식의 교환 없이는 새로운 부가 창출되지 못한다고 보았다.그렇다면 앨빈 토플러는 정보와 지식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을까? 그는 데이터(자료)를 개별적인 사실로 보고, 정보는 범주와 분류 체계 또는 그 밖의 양식들에 맞는 자료이며, 지식은 보다 일반적으로 엄밀하고 다듬어 놓은 정보라고 하였다. 또 지식은 참이건 거짓이건 개략적이건 포괄적이건 상관없이 태도나 가치관 등 사회적 상징물은 물론 정보와 데이터, 상징과 표상을 포함하는 의미이다.그리고 살균되어 있지도 권력 중립적이지도 않은 모든 지식과 통신 체제는 직장생활과 정치생활, 모든 인간 관계에서 사용되고 있는 사실상의 사실(fact)은 모두가 의도적이건 의도적이지 아니하건 간에 기존의 권력구조가 형성해 놓은 다른 사실들과 가설 등에서 유래한 것이며 모든 사실은 권력 역사(Power-History)와 권력 미래(power-future)-크건 작건 간에 미래의 권력 배분에 대한 영향-을 가지고 있다.그렇다면 지식인이란, 미래 사회의 핵심이 되는 신계급은 어떻게 규정지을 수 있을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여러 미래학자들이 다양한 의견들을 제시하고 있는데, 앨빈 토플러는 제 2물결과 제 3물결 시대의 권력자 - 핵심 계급-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제 2물결의 시대에는 무슨 조직이건 권력의 핵심은 통합자들에게 돌아갔다. 하층권력을 행사하는 각 분야의 전문적 능력을 가진 전문 엘리트들과, 그 위에 존재하는 전문 경영인인 경영 엘리트들이나 각 조직의 관리자인 제너럴리스트대가 도래하면서 새롭게 맥박치는 조직체가 늘어나고 있다. 이는 규모와 조직방법이 수시로 변하는 조직체로써 규칙적인 리듬으로 확장, 수축하는 조직체이다.대표적 예로 미국 국세 조사국을 들 수 있다. 이 기관은 10년마다 큰 규모로 팽창했다가 수축된 후 10년 주기의 다음 번 조사를 계획하기 시작하면서 다시 팽창한다. 통상적으로는 약 7000명 정도의 정규 직원을 두고 있으나 매 10년마다 조사를 위해 미국 전역의 12개 지역센터에 40만 명 정도의 직원을 고용하여 1년, 1년 반 정도의 기간을 존속시키다 해당 지역센터들을 해체해 버린다.그 외에도 단일 맥박 조직체로써 기동 대책반 또는 프로젝트팀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규모는 변함 없고 위계적 통솔체제와 비위계적 통솔 체제가 변화하며 공존하는 두 얼굴의 조직체로서 영국 공군 특수 부대가 있다. 훈련 중에는 엄격한 위계적 통솔 체제가, 실전에서는 각 개인의 직관, 판단력을 완전히 행사할 수 있는 비위계적 통솔 체제로 전환된다.또 국제화시대에 발 맞추어 다른 국가로 진출해 있는 현지 법인들에서 나타나는 장기판 조직도 있다. 이는 현지인과 파견된 본국인을 각 지위마다 서로 교차시켜 본국인의 여러 단계에서 보내는 정보의 흐름을 검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인민위원 조직체는 채널이 2개가 존재하는 조직체이다. 예를 들면 소련의 군부대에서 군사 지휘관외에도 정치 장교가 배속되어 있어 군사 지휘관은 군사지휘계통을 통해 상부에 보고하고 정치장교는 공산당에 보고를 하는 것처럼 기존의 관료체제의 통상 채널을 통해 올라오는 정보 외에 통제력 유지를 위해 새로운 채널을 두는 기업이다.마지막 조직으로 자발적인 팀을 들 수 있다. 이 팀은 위에서 임무를 부여받는 것이 아니라 전자 네트워크에 의해 자율적으로 모이는 정보집단으로 반 위계적 성격이 강하다. 이 팀은 어떤 공통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컴퓨터를 통해 서로 알게 되어 소재지나 직위에 상관없이 부서별 계통을 무시하고 정보를 교환하기 시작함으로써 생겨나며, 경쟁동만으로 생산을 늦추거나 정지시킬 수 있으며 개별 근로자는 쉽게 교환 대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3물결의 시대에서는 노동자들의 상호교환성이 낮아지고 중요 기능을 보유한 개별 근로자의 협상 지위가 향상되면서 연대와 단결을 기조로 한 노조의 힘이 크게 위축되고 있다.정치체제의 변화제 3의 물결 시대, 지식 중심의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국내 정치 문제는 부의 배분(또는 재배분)이 아니라 부를 생성시키는 정보 및 미디어의 배분이다. 따라서 기존의 부의 분배를 둘러싼 대립구도는 명분을 잃고 새롭게 재편성하게 된다.사회정의와 자유의 문제는 교육과 정보기술, 미디어와 표현의 문제를 어떻게 다루는가에 달려 있고 새로운 경제의 핵심이 지식에 있는 만큼 표현의 자유라는 민주적 이상은 주변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최우선 과제가 된다. 따라서 지식인, 과학자, 예술가, 민권 운동가, 선진적 경영인, 주주, 자본가의 독특한 제휴가 등장하며 이런 제휴가 지적, 경제적 발전을 보장하는 길이 된다.2. 새로운 사고 방식의 등장이상의 변화에 분명히 새로운 사고 방식이 숨어 있다. 토플러에 의하면 그것들은 다음과 같다.첫째, 공존과 조화물로서 자연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둘째, ‘인간은 진화의 최고의 산물이며, 최고는 모든 것을 지배할 권리가 있다’는 기계적 진화론이 퇴보했다. 유전 공학의 발달로 ‘제3의 물결의 사상가들은 우리들 자신이(마음만 먹으면 발전이든 퇴보든) 진화를 스스로 설계할 수 있다’는 사실에 직면해 왔다.셋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가 시간의 절대성을 깨 버렸고, 소립자 이론에서부터 블랙홀 가설에 이르기까지 직선적 개념과 외적 객관성은 부정된다. 말하자면 제3의 물결의 사고는 ‘생성과 소멸의 반복’, ‘자기 스스로의 운동과 외부와의 상호 영향’ 등 원형적 개념으로 바뀌고 있다.넷째, 모든 사물을 잘게 나누어 조립하는 분석적 사고에서 종합적 사고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부분보다는 전체의 시스템을 강조한 ‘전체론’이라는 조류가 주류를 이룬다.다섯째, 새로운 인과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를 읽고-한국의 아름다움(美)과 한국인으로서의 나-나는 어렸을 때 시골에서 살았다. 원래 태어난 곳은 대구이지만 집안 사정상 6살 무렵 아버지의 고향인 충북 영동군으로 이사오게 되었다. 그 무렵 나는 시골생활이 마냥 좋기만 했다. 처음엔 도시에서 사귀던 친구들과 헤어지기도 싫었고 내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모두 버리고 온 것에 심통이 났지만 그 보다도 시골에서의 다양하고 풍부한 놀 거리가 나를 반기고 있었기 때문에 금새 마음이 풀렸다. 한번은 동네 어른이 나에게 이렇게 물어본 것을 기억한다. “효진아 시골이랑 도시랑 어디가 더 좋니?” 나는 당연히 시골이 좋다고 했다. 그 어른은 그렇다면 왜 시골이 좋냐고 다시 물으셨다. 그 때가 여름이었는데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도시에서는 수박을 돈 주고 사 먹어야 하지만 여기서는 공짜로 먹을 수 있잖아요” 지금 생각하면 내가 그 당시만 해도 참 순수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그렇다. 6살 때 내가 생각했던 그 말이 지금 생각해도 정말 맞는 말인 것 같다. 흔히들 도시의 이미지를 떠올릴 때면 바삐 움직이는 자동차와 희뿌연 대기, 무표정한 행인의 얼굴 등 너무 각박하고 무미건조한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런데 지금 내 기억에 남아 있는 시골은그렇지 않다. 여름이면 발가벗고 같이 물장구치던 친구들과, 어른아이 할 것 없이낮이건 밤이건 옹기종기 모여 함께 일하고 함께 쉬던 시골의 삶이 지금은 너무도 정겹고 따뜻하게 느껴진다.동네 어귀를 들어서면 처음으로 나를 맞이하던 무시무시하던 큰 나무, 동네 집집마다의 흙, 돌담에서 배어나오던 아릿한 흙과 지푸라기 냄새, 겨울철 토끼 잡으러 간다고 형들과 앞산에 올라서 내려다보던 눈 덮인 동네 전경, 그 아래 옹기종기 모여서 처마를 맞대고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워내던 구수하고 정겨운 우리 동네의 소박한 집들의 모습, 학교 가는 길목에서 나를 무섭게 줄달음치게 만들었던 상여집, 가끔 소풍으로 갔던 반야사에 은은하게 퍼져있던 향내음, 왠지 모를 경외심과 아른한 현기증을 느끼게 만들던 불상, 더운 여름날 오후 고모네 집 대청마루에서 낮잠을 자다가 갑자기 내린 소나기에 놀라 깨었을 때 훈훈하게 올라오던 땅내음과 대청마루의 나무냄새, 마당에 후두둑 떨어지는 비를 바라보면서 느꼈던 안온함과 안락함..........이러한 소중한 감정들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는 절대 생각조차 하지 못할것들이다. 아직도 나는 내 삶의 한 가운데에서 그러한 경험을 하게 해 줄수 있었던 그 시절의 시골에서의 삶에 감사하고 있다.‘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를 보면서 나는 마치 어린시절 나와 온 동네를누비며 뛰어놀던 동네 친구들과 형을 만난 것 같았다. 저자인 최순우 선생님이 우리 문화재에 대해 느꼈던 그 애틋하고 정갈하며 소박한 감정들이 나와 함께 뒹굴며 놀던 동무들의 마음인 것 같았다. 도시에서 편리하고 자동화된 문명의 이기를 활용하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잃어가고 있는가? 요즘 아이들은 내가 그랬던 것처럼 같이 손잡고 뛰어놀 동네도 읽어버렸고 발가벗고 헤엄칠 냇가도 잃어버렸다. 그 대신 딱딱한 콘크리트 벽에 갇혀서 컴퓨터 게임을 즐기고 골치 아픈 영어단어를 외우면서 새하얗게 시들어가고 있다.더불어 살아가고 작은 것에 만족할 줄 아는 소박함의 미,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담백하며 실용적인 우리 삶의 모습들, 정을 통해 하나가 되었던 사람사이의 끈끈한 동질감을 느낄 수 없는 것이 요즘 세태이다. 더불어 마구잡이식 난개발로 인해 우리의 그러한 삶의 터전이었던 옛 모습들이 하나 둘 씩 사라져가고 있다.내가 살던 동네만 해도 예전 우리 집 뒤쪽으로 도로가 났다고 한다. 한 여름 매미소리를 들으며 흙담에 기대면 알싸한 흙내음과 함께 포근하게 쉴 공간을 마련해 주던 우리만의 공간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최순우 선생님이 말하는 한국의 미도 바로 이런 것이다. “마치 묵은 솔밭에서 송이버섯들이 예사로 돋아나듯이 이 땅 위에 예사로 돋아난 조촐한 버섯들, 한국의 미술은 이처럼 한국의 마음씨와 몸짓을 너무나 잘 닮고 있다” “한국의 미술은 언제나 담담하다. 그리고 욕심이 없어서 좋다. 업으면 없는 대로의 재료, 있으면 있는 대로의 솜씨가 별로 꾸밈없이 드러난 것, 다채롭지도 수다스럽지도 않은 그다지 슬플 것도 즐거울 것도 없는 덤덤한 매무새가 한국 미술의 마음씨다” “하늘로 향해 두 귀를 사뿐히 들었지만 뽐냄이 없는 의젓한 추녀의 곡선, 아낙네의 저고리 도련과 붕어밸 지은 긴소매의 맵시 있는 선, 외씨버선 볼의 동탁한 매무새, 초가지붕과 기와지붕들이 서로 이마를 마주 비비고 모여선 곳, 여기엔 시새움도 허세도 가식도 그리고 존대도 발을 붙이지 않는다.” 라고 책의 서두에 밝힌 우리 미술에 대한 생각에서도 선생의 이런 마음을 충분히 읽을 수 있다.책의 내용은 한국미 산책 한국미 한국의 마음, 건축 불상 석탑 금속공예, 회화 민화 등 한국 미술의 모든 분야를 통해 우리의 조상들에 의해 그동안 쌓이고 쌓여왔던 한국의 미를 흠뻑 느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마치 바짝 마른 스펀지가 물기를 순식간에 빨아들이듯이 고갈된 우리의 미의식에 촉촉한 단비를 내려주는 책이바로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라는 책이다.조국의 강토에서 자라나는 풀 한포기의 삶, 나무 한 그루의 삶에도 우리 민족만의얼이 서려 있다. 우리 주변의 아무리 하찮고 흔한 것들도 그 이면에는 우리 조상들의 지혜와 슬기,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그들의 삶이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매일 패스트푸드를 먹다가 어머니가 끓여주신 구수한 된장국의 맛을 볼 때의 미각적 희열, 긴긴 겨울밤에 따뜻한 아랫목에서 살얼음 떠있는 동치미와 함께 먹던 군고구마의 맛...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순박하고 맑고 청초한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우리의
통신언어의 문제점과 개선방향김 효 진)Ⅰ. 서론작년에 군대를 갓 제대하고 사회인이 되었을 때 나는 세상이 많이 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 나름대로는 군대에서 신문도 읽고 TV 뉴스도 챙겨 보면서 시대의 흐름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고 생각했었는데 제대하고 직접 접한 세상은 생각보다 많이 변해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변화는 인터넷의 발전이었다. 군대에서 인터넷과는 담을 쌓고 살았기 때문에 제대 후에 내가 접한 인터넷의 변화는 많이 생소했다.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싸이’, ‘블로그’ 와 같은 개인 홈페이지, 메신저 등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인터넷 문화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이렇듯 컴퓨터가 보편화되고 인터넷과 관련된 기술이 발전하면서 우리 사회에도 적잖은 변화가 있었다. 그 중에서도 통신언어의 등장은 대표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기술의 발전과 사회의 변화도는 정비례한다. 개인 pc의 수준에서 머물던 인터넷 기술이 라틴어로 물이나 공기처럼 시공을 초월해 ‘언제 어디에나 존재한다’ 라는 뜻의 ‘유비쿼터스’ 의 단계에 까지 이르고 있는 요즘은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속도로 우리의 삶의 모든 부분이 바뀌고 있다. 언어라고 예외가 아니다. 인터넷이 보편화되기 시작한지 불과 몇 년 사이에 통신상에서 사용되는 언어의 변화를 살펴보면 그 변화속도가 엄청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각종 외국어와 부호를 조합한 ‘외계어’ 가 등장했는가 하면 언뜻 봐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암호와 같은 언어의 사용이 인터넷상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그래서 혹자는 “삼백 년 후의 우리 자손들이 과연 지금 우리가 쓴 책들을 읽을 수 있을까?” 라고 극단적인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쯤에서 이러한 걱정과 우려의 근본 원인인 통신 언어의 문제점과 개선방향에 대해서 논의할 필요가 있다.Ⅱ. 본론1. 통신언어의 정의통신언어에 대해서는 연구하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정의를 내리고 있지만 대체적으로 통신언어)란 “의사소통을 위해 통신상에서 사용되는 문자언어로동기에 의해 나타났지만 그 가운데서 가장 강력하고 기본적인 동기의 하나가 경제적 동기이다. 통신 언어의 사용이 글자를 통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에 대화방에서 대화를 나눌 때는 직접 마주보고 대화를 나눌 때와 비교하여 대화의 진행 속도가 느리고 절차가 번잡스럽다. 머리에서 생각하고 화면에 입력하여 전송하는 단계를 거쳐야만 상대방의 컴퓨터 화면에 화자의 말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더딘 대화 진행을 개선하기 위해 화자들은 긴 단어를 가능한 짧게 줄여 쓰거나 맞춤법을 무시하고 소리 나는 대로 글자를 입력함으로써 빠르고 쉽게 하려 한다.2) 심리적인 원인)두 번째로 중요한 원인은 인터넷을 통한 심리적 해방 동기이다. 심리적 해방 동기란 통신 이용자들이 일상생활에서 억압적 상황으로 받아들여지는 규범의 틀에서 벗어남으로써 자유로운 마음 상태를 느끼기 위해 의도적이고 적극적으로 규범에 어긋나는 언어 형식을 사용하려는 것을 말한다. 컴퓨터 통신과 인터넷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벗어나 마음껏 표현할 수 있고,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는 일종의 ‘해방구’로 받아들여졌다. 또한 어려운 현실 문제를 잊게 해 주는 일종의 탈출구라는 생각도 많았다. 통신 공간이 국가, 가족, 종교, 학교라는 집단적이고 권위적인 영역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유 지대로 인식되어 기존의 권위나 소속감, 책임감에서 자유로움을 느끼고자 한 것이다. 이러한 동기로 인해 통신 언어의 사용에 있어서도 은어나 비속어와 같은 순화되지 않은 언어의 사용이 쉽게 용인되어 온 것이다.3) 오락적인 원인)오락적 원인은 대표적으로 글자의 모습이나 그 배열을 바꾸어 수수께끼나 암호와 같이 만들고 그것을 다시 해독하는 데서 재미를 느끼려 하는 것을 말한다. 이로 인해 나온 통신 언어 형식들은 대체로 본래의 형식보다 글자가 복잡해지고, 키보드에서 입력해야 할 글자 수도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외계어의 경우는 한자나 특수 문자를 사용하기 때문에 입력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며, 읽는 사람도 이해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익명성과 비대면성의 특성아래 이루어지는데, 이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갖추어야 할 예의를 제대로 지키지 않는 일이 많다. 따라서 언어적인 면에서 비속어나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자극할 수 있는 말을 쉽게 쓰는 경향이 있다.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는 물론이고 대화방에서 처음 만난 사람, 글을 통해서 통신 이름 정도만 아는 사람에게도 비속어를 거리낌 없이 쓴다. 함부로 말해도 자신에게 돌아오는, 걱정할 만한 현실적 벌칙이나 제재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예) ㈎ 넘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 니만 골 때린다.㈏ 눈 빠질거 같아서 더 못 쓰겠다.(나) 외래어와 외국어의 사용인터넷 이용에서 외래어가 많이 쓰이는 것은 인터넷 통신 자체가 영어를 바탕으로 구축되었고 컴퓨터 부품 이름이나 사용법, 프로그램 이름이 대부분 영어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글을 재미있게 쓰려는 의도에서 통신 언어에 외래어나 외국어 낱말들이 사용되는 일도 특히 많다.예) ㈎ 울트라맨 옷입고 come back 할테니까..㈏ 고마워! ~~~~~~~~~땡큐~~~~~(다) 의성어와 의태어의 사용일상 대화의 의사소통에서는 굳이 언어로 표현하지 않아도 표정이나 웃음소리, 탄성 등의 형태롤 나타날 것들로 컴퓨터 통신에서 공간적인 제약을 극복하는 하나의 대안으로 나타난 것이 의성어와 의태어의 사용이다. 이는 자신의 표정이나 감정 등을 있는 그대로 상대에게 전달하려는 욕구가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통신상에서 사용되는 의성어는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의성어, 의태어와는 다른 형태-푸컬, 푸헤헤, 켈켈, 삐질삐질-를 씀으로써 상대에게 재미를 줄려는 목적도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2)음운론적 측면)(가) 탈락과 축약통신언어는 문자로써 대화한다는 컴퓨터 통신의 특수성으로 인하여 새로운 어휘뿐만 아니라 맞춤법에 맞지 않는 표현들을 자주 쓰는데, 탈락, 음가 첨가, 소리나는 대로 표기하는 경우가 있다. '축약'현상은 보통 음소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서울'을 '설', '다음 담'이라고 하는 것이다. 반면 줄임말은 음절의 상대방과의 친근감 표현의 일환으로 음가를 첨가하기도 한다예) 사귀야지 → 사귀야징 빨리 → 빨랑(다) 소리 나는 대로 적기소리 나는 대로 표기하는 것은 일상어에서 탈피하려는 노력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채팅이라는 특수성은 발화될 언어가 문자화되는 과정상 키보드(keyboard)라는 입력기를 거치면서 오자나 누르기 어려운 글자판을 누르는 데에 따르는 불편함을 유발하고, 그것은 어법의 파괴로도 이어지게 된다.예) 좋은 → 조은 좋아해요 → 조아해요4. 통신언어에 대한 평가1) 통신언어의 장점첫째, 경제적인 언어사용이 가능하다. 위에서도 살펴보았듯이 통신언어를 사용하게 되는 주요 원인은 경제적인 이유가 크다. 언어사용에 있어서의 편리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언어를 축약하기도 하고 소리 나는 대로 적기도 하는 것이다. 이것은 문어와 구어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인터넷이라는 통신상의 공간이 점점 우리의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짐에 따라 자연스럽게 그 속에서 사용하는 언어도 불편한 문어의 형태에서 편리한 구어의 형태로 바뀌는 것이다. 인터넷의 속성상 즉각적인 쌍방향 의사소통이 가능하므로 길고 복잡한 표현 형태보다는 짧고 간단한 형태의 언어를 선호하게 된다.둘째, 의사전달의 정확성과 효율성이 높아진다. 통신언어를 통한 의사전달은 일반적인 문자 언어에 비해 표현의 범위가 넓고 정확한 의사전달이 가능하다. 인간의 의사소통은 언어적인 요소와 더불어 비언어적인 요소가 함께 작용하는 과정이다. 언어가 전달하는 본래의 의미에 관계없이 말하는 상황이나 뉘앙스에 따라 다른 의미가 전달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말하는 사람의 표정이나 몸동작과 같은 다양한 채널을 통해 의사소통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통신언어는 상호간의 의사소통 과정에서 보다 정확한 의미나 의도의 전달을 가능하게 한다는 장점이 있다. ‘이모티콘(emoticon))’이 단적인 예에 해당한다.셋째, 문화적인 다양성을 풍부하게 한다. 통신언어도 통신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용함으로써 존재하는 것이다. 언어를 바라보는 관되어가는 경향이 있다. 특히 사람들이 인터넷상에서 주로 활동하는 공간인 ‘카페’나 동호회와 같은 곳에 접속해 보면 메뉴나 게시물을 읽을 때 그 의미가 쉽게 떠오르지 않는 기괴한 표현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런 현상은 나이가 어린 10대나 20대 초반들이 주로 이용하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특히 두드러지는데 그들과 조금만 나이가 차이 나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표현들이 많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들은 사람들을 그런 표현들을 아느냐 모르느냐에 따라 ‘말이 통하는 세대’와 ‘말이 통하지 않는 세대’로 나누고, 후자와는 세대차이가 난다는 이유로 암묵적으로 의사소통 과정에서 배제시키려 한다는 데에 있다. 이와 같이 통신언어는 10대나 20대 초반의 일부계층의 전유물로써 세대간, 계층간 의사소통에 심각한 장애를 발생시키는 단점이 있다.둘째, 청소년의 정신적, 정서적 발달에 지장을 초래한다. 통신언어를 주로 사용하는 층이청소년인 만큼 통신언어의 해악도 청소년에 대한 것이 가장 크다. 청소년들은 아직 판단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자율적으로 올바른 언어습관을 형성하기 힘들다. 인터넷상에서의 무분별한 통신언어 사용은 자칫하면 청소년들의 올바른 언어관 형성을 가로막고 정신적, 정서적 발달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특히 각종 비속어의 사용과, 욕설 등의 사용은 청소년들 정신건강에 매우 해롭고, 즉각적인 감정의 토로와 여과되지 않은 언어 사용은 청소년들의 인내력 부족과 사고력의 부족으로 이어질 수 있다.셋째, 폭력적인 언어 사용에 의한 인권침해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통신언어는 인터넷의 특성상 익명적인 상태에서 이루어진다. 상대방의 얼굴이 보이지 않고 자신의 신분이 노출되지 않는 특성상 상호간에 저질적인 비속어나 욕설이 오가기 쉽고 그 과정에서 인권침해나 명예훼손의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크다. 실례로 요즘 인터넷을 통한 토론기능이 활성화 되어 있는데, 각 신문사나 언론사의 게시판에 접속해 보면 원색적인 비방이나 인신공격성의 글이 난무하는 것을 볼 수 있다.넷째, 언어의 이질화로 민있다.
소외된 민초에서 역사의 주연으로대학교 1학년때 역사의 이해 라는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역사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중.고등학교때 무작정 외웠던 조선왕의 제위순서나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들을 지푸라기 씹듯이 그저 외우고 있는 수준이었던 그 때, 역사의 이해 라는 수업은 역사에 대한 나의 시각에 작지 않은 변화를 가져왔다. 비로소 오리엔탈리즘이 무엇이고 사관이라는 것이 무엇이고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하게 되었고 서양의 역사관의 오만과 편견에 빠진 나르시즘이 나의 가슴속에 분노와 적개심을 심어주었다.랑케의 말처럼 사실로서의 역사 만이 역사라면 얼마나 무미건조할 것인가? 역사는끊임없이 반복되고 그 반복되는 과정에서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 같다. 카가 말했듯이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이며 역사가와 역사적 사실의 상호작용의 부단한 과정인 것이다. 과거는 현재와 동일선상에 있고 과거와 떼어서 생각할 수 있는 현재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과거를 통해 교훈을 얻고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라는 책을 처음 접한 느낌은 일단 재미있고 쉽다 였다. 그러나 그 안의 내용을 들여다 보면 예전에 할머니가 들려주던 옛이야기와 같이 재미있는 내용과 구성 속에서도 간혹 내가 가진 편견과 상식을 꼬집어서그건 아니야 라고 선언하는 부분이 의외로 많았다. 특히 그 동안 너무나 도식화된 틀 속에서 생각하던 평면적인 사고와,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나 제도적 변화만이 역사의 주연으로 생각해 왔던 편향적 사고에서 벗어나 보다 넓은 스펙트럼에서 역사를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가지도록 친절하게 이끌어주는 책이었다. 소외된 하층민의 삶과 제도권 밖의 아웃사이더들의 애환, 비주류와 주류로 나뉜 사회구조 등은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을 다시 확인시켜 주었다. 특히 여성, 농민, 광산노동자, 장돌뱅이 등의 삶을 역사의 중심에 가져옴으로써 그 동안 기존의 역사에서 소외되었던 대다수의 민초들의 넋두리와 삶의 애환을 이 책을 통해 느껴볼 수 있었던 것은 새로운 카타르시스였다.책의 구체적인 내용구성은 두서없이 이쪽 저쪽으로 왔다 갔다 하는 듯이 보이지만 각각의 토픽들을 합쳐서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보면 대충 이 책이 하고자 하는 말을 알 수 있다. 각각의 소주제들을 차근차근 읽어나가다 보면 과거와 현재의 삶이 결국 동일선상에 있으며 전체적인 사회경제 생활사가 어떻게 흘러왔는가를 알게 되는 것이다. 마치 퍼즐을 맞추어 나가듯이 조선시대의 민중의 삶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맞추어 나가다보면 어느덧 조선시대의 민중의 삶의 실체로 다가서게 된다.조선전기에는 제사를 지낼 맏아들을 제외하고는 여러 아들과 딸이 재산을 골고루 나눠 가졌으며 결혼한 딸도 똑같은 자격으로 참여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여자가 혼인 전에 가져온 재산은 결혼 뒤에도 독립적으로 경영하는 등의 여성의 재산권을 인정해 주었지만 유교윤리가 전사회적으로 확산되고 보다 확고해짐에 따라 남존여비 출가외인 사상이 더욱 강고해지고 또 그 만큼 여성들의 지위는 점점 낮아지게 되었다고 한다 칠거지악 , 열녀 등의 정절이데올로기 등을 통한 가부장제적 가족제도의 강화는 결국 여성의 지위의 약화를 수반할 수 밖에 없었다. 결혼뿐만 아니라 이혼 또한 가부장제적 가족제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서민에게 있어서는 사정파의 , 할급휴서 의 방법 등을 통해 일종의 합의이혼이 존재 했다는 사실은 정말 새로웠다. 결국 정치적 경제적 권력의 헤게모니를 가진 양반들이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만든 제도나 이데올로기가 자기 자신을 가장 많이 옭아매고 있었던 게 조선시대가 아니였나 싶다. 타인에게 강요하려면 먼저 자신이 모범을 보여야 했기 때문이다. 결혼에 국한해 생각해보면 삶의 질 적인 측면에서 서민들은 그나마 제도나 사회적 이데올로기에 규제를 덜 받으며 자신의 인생을 결정할 수 있는 융통성이 있었다고 생각한다면 너무 억지일까?우리는 흔히 민주주의를 논할 때 지방자치를 민주주의의 학교 라고 한다. 근대민주주의는 의회를 통한 대의제의 형태를 띄고 있지만 현실상 그 옛날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처럼 아고라에 모여 토론하고 의사결정하는 형태의 직접 민주정치는 현실 여건상 불가능하다. 그러기에 강조되는 것이 가장 민주주의의 이념에 부합하는 정치형태인 지방자치이다. 풀뿌리 민주주의 라는 말이 있듯이 지방의 중요한 대소사는 지방 사람들끼리 모여서 자체적인 규칙과 조례를 통해 결정하는 것이 지방자치의 참다운 역할이다. 그런 면에서 조선시대의 향약은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원형이라 할만하다. 책에서도 소개되었지만 신분제에 의해 운영되었다는 한계가 있음에도 향약은 조선시대 향촌 자치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명분이었으며 일반 백성들에게는 일생생활을 직접적으로 규제하는 원칙으로 작용하였다. 이는 향촌 스스로만든 약속이라는 면에서 오늘날의 지방의회 조례와도 어느 정도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농민항쟁기로 오면서 양반중심의 향회와는 달리 일반백성도 참여하는 대소민(大小民)향회가 개최되기도 하고 아예 독자적인 민회 가 열리기도 하였는데 이는 지방자치의 본질에 한층 더 접근한 것이었다. 결국 서구의 입장에서 바라본 미개한 타자의 세계에서도 그들 역사의 가장 위대한 산물인 민주주의가 자연스러운 역사적인 과정의 결과로써 나타나고 있었다는 것은 역사의 보편성을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조선시대의 민중생활사에서 중요한 것 중에 또 하나는 바로 두레였다. 두레는 기본적으로 지주층의 참여와 간섭을 배제하고 자작 소작농민을 그 성원으로 했으며 기층 촌락민의 입장을 대표하는 조직으로 기능하였다. 농민들이 자체적으로 회의를 열어 농사의 대소사를 결정하고 상부상조의 정신을 실천하였으며 호미씻이나 두레와 같은 문화를 공유함으로써 공동체적인 연대의식을 형성하였다. 책에서는 신분제적 강제를 벗어나려는 의식이 강했던 이들의 특성상 두레조직이 다른 마을의 두레와 연대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면 그들은 어떠한 선택을 했을까? 라고 묻고 있다. 이 질문은 시장경제와 상업발달, 의식의 확산속도 증가 등을 고려하면 보다 광범위한 지역적 연대나 의식의 공유가 가능하게 되고 이들이 새로운 세력화로 까지 나아갔다면 과연 우리의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라는 가슴 설레는 상상을 하게 만들었다. 또한 힘없고 소외된 이들이 서로 돕기 위해 뭉쳐서 상부상조의 정신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인본주의가 우리의 역사에서도 자생적으로 싹을 틔웠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민주노동당이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부상하고 노동자의 목소리가 사회전면으로 드러나고 있는 지금 상황을 보면서 조선시대의 두레가 떠오른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억압되고 고단한 삶의 연속이었던 기층민들의 삶의 한 가닥 희망이자 십시일반으로 서로 도와 상생의 길로 나아가고자 했던 두레와 오랫동안 움츠려왔던 기지개를 펴고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인내하던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지금 상황은 어찌 보면 시대적인 상황만 다를 뿐 본질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배우고자 하는 사람에게만 깨달음을 줄 뿐이다. 과거에 갇혀 현재를 바라보지 못한다면 역사는 계속해서 되풀이 될 뿐 진화하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