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 프로그램 ‘한국사 探’ “전통악기에서 과학을 보다”편을 보고이 프로그램은 국악과 관련한 방송을 찾아보다가, 제목을 보고 흥미가 생겨 시청하였다. ‘한국사 探’이라는 프로그램은 음악뿐 아니라 다양한 우리나라 유산 중에서 과학적 원리나 가치를 담고 있는 것들을 재조명하여 안내한다. 따라서 음악뿐 아니라 음식이나 미술작품, 농산물, 과학 발명품 등을 다루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발휘된 우리 조상들의 지혜를 현대과학으로 증명한다. 음악과 관련된 것은 ‘판소리에 숨은 우리 소리의 비밀’, ‘민요 속에 담긴 민중의 이야기’, ‘북의 소리, 예술로 피어나다’와 같은 주제들이 있었다. 특별히 나는 이번 학기에 국악사 수업을 들었기 때문에 우리나라 국악사 전체를 다룰 수 있는 주제인 ‘전통악기에서 과학을 보다’편을 선택하였다.‘전통악기에서 과학을 보다’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악기 중 ‘거문고, 대금, 해금, 가야금’ 등을 다루는데, 각 악기의 도입배경과 역사, 악기의 구조 그리고 제작과정, 음색의 특징 등에 대해 안내한다. 또한 단순히 이러한 사실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각 부문별로 전문가를 섭외해 악기들이 어떠한 과학적 원리와 가치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 인터뷰하는 식으로 진행하였다.프로그램은 고산 윤선도의 거문고라고 알려진 ‘고산유금’의 복원부터 시작한다. 이 악기는 350년 전 악기로써 주로 정악을 연주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는 과거의 악기와 음악을 그대로 복원하고 보존하려는 노력이 현대에 많이 시도되고 있다.고산유금에 이어서 이와 가장 유사한 악기인 거문고에 대한 내용이 나왔는데, 익히 알려진 ‘백악지장’이라는 뜻과 역사, 제작배경 등에 대해 다뤘다. 흥미로웠던 점은 거문고에 제작재료인 오동나무와 관련된 것이었는데, 왜 많은 나무들 중 오동나무여야 했을까에 대한 물음에 과학적 근거를 들어 답을 제시하였다. 제작진은 오동나무와 여러 가지 나무들의 밀도 실험을 통하여 오동나무가 다른 나무들에 비해 가벼우면서 수분을 흡수 하지 않고, 목재세포내 공간이 많아, 공명이 이루어지기에 적합하다는 사실을 알아내었다. 뿐만 아니라, 악기로 사용할 오동나무는 처음부터 자갈돌에 심어 자라게 하는데, 그 이유는 오동나무의 토양이 나빠야 단단한 오동나무가 만들어 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 프로그램은 거문고에 대해 쉽게 접할 수 없는 정보를 얻을 수 있어 매우 재미있게 시청할 수 있었다. 한가지 아쉬웠던 점은 거문고 현에 대한 자료에서 잘못된 정보가 나왔는데, 괘상청과 괘하청이 패상청과 패하청으로 나온 것이었다. 혹시나하는 마음에 논문을 찾아봤는데, 패상청, 패하청으로 나온 논문은 굉장히 오래된 논문 한 편 뿐이었다. 수업시간에도 현이 괘 위에 놓여있는가를 기준으로 명칭이 달라진 것이라고 배웠기 때문에, 패상청과 패하청은 표기에 따른 오류이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다음으로는 대금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대금의 제작과정을 순서대로 보여주는 부분이었다. 실제 대나무를 채취하여 불에 굽고, 굽은 모양을 바르게 펴고, 속을 파내어 지공을 일정하게 뚫는 등의 제작과정을 보면서, 과거에 어떻게 저러한 과정이 가능했을까하고 생각하였다. 한편으로는, 대나무에서 일련의 과정을 거쳐 완성된 대금의 모습에 이르기까지의 모습이 신기하였고 실제 교육현장에서 대금이나 소금을 수업할 때 이 장면을 학생들에게 보여줘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가야금은 특별히 악기구조에 대한 내용이 좋았는데, 가야금은 앞판이 둥글고 뒷판이 직선으로 되어 있는데 이러한 구조는 공명이 잘 일어날 수 있도록 의도된 모양이라는 것이다. 특히 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뤘던 가야금의 부품은 ‘양이두’였는데, 이는 수 천년 전에 만들어진 최초의 형태가 지금까지 유지되어 왔다는 것이다.해금 또한 바이올린이라는 서양의 찰현악기와 비교하면서 설명을 하였는데, 4줄로 이루어진 바이올린보다 2줄로 이루어진 해금이 3옥타브 반으로 보다 더 음역이 넓다는 것이다. 이렇게 서양악기와 같은 차원에서 비교하니, 우리나라 악기에 대한 가치인식과 자부심이 새로 생겨났다.
‘슐로모 민츠 & 윤동환 : 세계적 거장과의 만남’ 감상문올해 참석했던 연주회를 돌아보니, 많은 횟수는 아니었지만, 다양한 레퍼토리의 연주회를 다녔다. 2월 피아노 독주회와 4월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교향악축제, 5월 국립합창단 정기 연주회, 6월 바이올린 연주회. 이렇게 4개의 연주회를 다녀왔는데 이중에서 가장 내게 인상적이었고 기억에 남았던 연주회는 6월 30일, 인천문화예술회관에서 있었던 윤동환과 슐로모 민츠의 바이올린 연주회였다. 프로그램은 3개의 작품은 비슷한 시기의 작품으로, C,P,E Bach의 ‘현을 위한 교향곡’과 J.S Bach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그리고 Vivaldi 의 ‘사계’로 이루어졌다. 감상문은 연주회에 대한 전반적인 감상과 각각의 곡을 감상하면서 생각했던 내용, 그리고 바로크 시대의 주요특징과 작곡가들의 개별적인 음악에 대한 내용을 관련지어 정리하고자 한다.가장 첫 곡은 C.P.E Bach의 교향곡이었다. 슐로모 민츠가 지휘하고 바로크 시대의 곡을 전문적으로 해석하는 ‘바흐 콜레기움 서울’이 연주하였다. C.P.E Bach는 세 명의 작곡가 중에서는 가장 늦게 활동한 작곡가이며, 음악사로는 정확히 바로크시대보다는 전고전주의, 그 중에서도 질풍노도 양식으로 구분되는 작곡가이다. 그의 대표적인 장르는 교향곡으로서 이후 만하임 악파와 비엔나 악파, 고전주의 시대 하이든, 모차르트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 날 연주했던 B minor 교향곡은 ‘함부르크 교향곡’이라고 불리는 6개의 교향곡 중 한 곡이었는데, 6곡 중 유일한 단조의 곡이다. 흔히 질풍노도 양식의 특징 중 하나로 단조와 롬바르드 리듬, 급격한 화성의 변화와 반음계 등을 꼽는데, 이 곡이 함부르크 교향곡 중 유일한 단조곡이라는 점이 의아했다. 그러나 감상자의 입장에서는 이 곡이 단조곡이기 때문에 질풍노도 양식의 음악적 특징에 더욱 집중해서 들을 수 있었다. 개인의 주관적인 감정과 강렬한 감성을 강조하는 질풍노도 양식은 최초의 낭만주의 경향으로도 본다. 그만큼 이 양식에 의한 음악은 급격한 대립과 대조를 통해 얻어지는 음악적 효과로 청중의 감정을 고조시킨다. 그러나 동시에 고전주의 시대 작품처럼 프레이즈가 규칙적으로 등장하며 모티브가 확실하게 강조되는 느낌을 줌으로써 낭만시대 음악과는 확실히 구분된다. 뿐만 아니라 곡 중간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대위법적 진행과 악기편성을 보더라도 바로크와 고전주의 중간 즈음으로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음악적 특징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연주에 있어서는 슐로모 민츠의 지휘와 바흐 콜레기움 서울의 연주가 맞지 않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슐로모 민츠는 다소 빠른 템포로 가고자 하였으나, 첼로와 더블베이스가 다소 둔한 움직임으로 음악을 쫓아가는 느낌을 받아서 답답하게 느껴지는 아쉬움이 있었다.이어서 들었던 곡은 J.S Bach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이었다. 이 곡은 Bach가 가장 Bach답게 작곡할 수 있었던 시기인 1717~1723년 쾨텐 궁정 악장으로 지냈을 때 작곡했던 작품이다. 이 때 Bach는 풍부한 지원으로 자신의 가장 최고의 음악들을 만들어 냈다. 특히 이 곡은 스즈키 교본에 나와서 바이올린을 배웠던 사람들이라면 많이 연주하고 듣는 작품 중 하나이다. 나 역시 스즈키 교본으로 접했던 곡을 협주곡의 형태로 들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이 곡은 2악장이 가장 유명한데, 라르고의 아름다운 선율이 등장하는 부분이지만, 지나치지 않게 감정을 드러내어 표현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한다. 이 부분은 슐로모 민츠가 1st 바이올린 주자로서 노련하게 음악적으로 잘 표현했다. 나는 3개의 악장이 모두 좋았는데, 특별히 1악장이 멋있는 곡이라고 생각한다. 전체적으로 대위법적으로 진행하지만, 수평적 진행의 대위법적 선율과 수직적 선율의 화성의 조화를 이룸으로써, Bach Style을 더욱 확실하게 드러내주는 아름다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마지막 곡은 Vivaldi의 사계협주곡이었다. 사실 이 곡을 듣고 난 이후 반성을 많이 했는데, 그동안 내가 사계가 너무 대중적이라는 이유로 이 작품을 평가 절하했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음대생으로서, 사계 각 악장의 12개의 모티브를 달달 외우기도 했었지만, 정작 이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앉아 들었던 적은 이번 연주회가 처음이었다. 연주는 봄과 여름악장을 윤동환 씨가, 가을과 겨울은 슐로모 민츠가 연주하였는데, 곡 해석과 선정 모두 탁월했다고 생각한다. Vivaldi는 독주협주곡의 표본을 만든 작곡가로서, 그의 협주곡에서 협주곡의 3악장구조가 기본이 되었다. 협주곡은 바로크 시대의 음악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독주와 합주의 대조적인 성격을 뚜렷하게 드러낸다. 특히 독주협주곡은 합주협주곡에 비해 독주악기의 독주능력이 더욱 중요하게 다뤄지는데, 사계가 이렇게 기교적으로 화려하고 긴장감을 주는 곡인지 처음 경험했다. 조금은 엉뚱한 상상이지만, 만약 Vivaldi가 Liszt나 Paganini와 같은 시대에 활동했더라면 그들만큼이나 화려한 테크닉을 자랑하는 작품들을 만들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연주는 기교를 표현하는 부분에 있어서 윤동환씨는 날렵하고 힘이 느껴지는 보잉이 돋보였고, 슐로모 민츠의 연주는 보잉이 여유가 있고 느렸지만, 그렇다고 음악의 템포가 느린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고수가 최소한의 힘을 들여 최대의 효과를 내는 연주를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음악교육 철학보고서Ⅰ. 서론음악교육은 그 역사를 고대 그리스시대부터 살펴볼 수 있을 정도로 역사가 오래된 과목이다. 이후 중세시대와 르네상스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음악교육은 인간교육에 도움을 주는 과목으로 인정받아 왔다. 물론 지역과 시대의 특성에 따라 음악교육의 방향성과 강조점에 차이는 있었으나 음악교과는 지금도 공교육에서 다뤄지고 있다.그러나 우리나라의 음악교육은 그 위치가 위태롭다. 입시 중심 교육환경에서 비주지교과로서의 음악교과는 학생들에게 인성교육을 위한 교과로서 전락해 버리거나 국영수 위주의 시간표에서 학생들의 긴장과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한 시간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음악교과를 그런 식으로라도 필요성을 인정해 주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으나, 과연 그러한 인정이 음악 교과 고유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차원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음악 교과가 공교육에서 교과로서의 고유한 가치를 인정받고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음악교사들이 음악교육의 당위성에 대해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주장해야한다. 또한 음악교사 각자가 음악교육에 대한 철학을 가지고 현장에서 수업을 연구하고 진행할 수 있다면 학생들에게 음악교육의 중요성과 가치, 그리고 역할을 더욱 잘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음악교육의 가치와 철학에 대하여 연구한 리머와 엘리엇의 연구내용에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내용들을 본론에서 다루고자 한다.Ⅱ. 본론1. 음악교육의 당위성많은 사람들이 음악교과가 왜 공교육에서 필요한가에 대한 물음에 학생들의 인성교육이나 자아실현을 위해서라고 대답한다. 이러한 대답은 타당하고 근거가 있는 내용이지만 오히려 공교육에서 음악교과의 존립을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과연 인성교육과 자아실현이 음악을 통해서만 가능한가?라고 했을 때 오히려 다른 과목들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는 대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인성교육과 자아실현을 위해 음악교과가 존재한다면 굳이 정규수업시간을 통해서 음악교육이 이루어져야하는가라는 반문이 있을 수 있다. 이는 곧 공교육에서 음악교과의 존치가 위태로워지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음악교육의 당위성을 주장할 때에는 음악교과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영역과 역할을 강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차원에서 음악교육의 당위성을 설명하고자 한다.첫째, 다양한 지능의 영역을 계발시키기 위해 음악교육이 필요하다. 이는 가드너가 주장한 다중지능이론에 근거를 두고 있다. 가드너는 기존의 논리 수학적 지능에 치중한 지능측정에서 벗어나 음악적 지능을 포함한 9개 영역의 다양한 지능이 있다고 보았다. 그의 이론에 근거를 둔다면 공교육은 학생들의 다양한 지능을 균형있게 계발시켜주기 위하여 음악적 지능 계발을 위한 음악교육이 필요하다.둘째, 여가생활 및 실생활에서 음악을 더 잘 즐기기 위해 음악교육이 필요하다. 바쁘고 스트레스 많은 현대인의 생활에서 여가생활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중 음악활동은 여가생활에서 빠질 수 없는 부분이다. 또한 실생활에서 음악의 활용 역시 비중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음악에 관심이 없거나 음악적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라도 실생활에서 워낙 음악이 많이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음악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따라서 실생활에서 음악의 역할과 사용을 인지하고 이를 더 잘 향유하기 위하여 공교육에서 음악교육의 역할이 중요하다.셋째, 인류문화유산가치로서 음악이 중요하기 때문에 가르쳐야 한다. 음악의 역사는 선사시대부터 시작된다. 음악은 인류문명의 시작과 함께한 만큼 예술적 가치가 높은 음악의 양도 많으며 그 역사는 현재까지 이어진다. 음악유산이 이어지기 위해서는 음악적 능력이 뛰어난 음악가나 음악애호가들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없다. 예술적 가치가 높은 음악에 대해 반응하고 향유할 줄 아는 다수의 일반 사람들이 있어야 후대에 그러한 음악들이 전해질 수 있다. 예술적 가치가 높은 음악에 대한 안목과 반응은 음악적 교육에 의해서 가능하다. 따라서 공교육에서 음악교육이 중요하다.2. 음악교육학자들에 대한 나의 생각- 리머와 엘리엇현재 우리나라 음악교육과정에서 내용영역의 변천사를 살펴보면 리머와 엘리엇의 주장을 반영한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다. 현재 음악교육과정의 영역은 ‘표현(노래하기, 연주하기, 창작하기)’, ‘감상’, ‘생활화’로 나눠진다. 이는 음악활동을 강조한 엘리엇의 musicing을 반영한 ‘표현’영역과 심미적 경험을 강조한 리머의 철학을 반영한 ‘감상’영역, 그리고 현재 실생활에서 나타나는 음악의 역할과 기능을 강조한 ‘생활화’영역으로 나누어 살펴 볼 수 있다.리머의 철학은 1970년 대 심미적 음악교육에서 2000년 대 경험중심 음악교육철학으로 수정되지만 그의 근본적인 철학의 핵심은 심미적 음악교육에서 발견할 수 있다. 예술작품을 통해 객체화된 역동적 느낌의 형식인 ‘표현성’과 ‘예술의 의미’를 강조한 그는, 감상을 통한 지각반응과정에 의해 예술적 경험이 이루어 진다고 보았다. 때문에 그의 철학에서는 질적으로 예술적 가치가 있는 작품이 주어지고, 그러한 작품을 지각반응할 수 있도록 돕는 심미적 음악교육이 이루어져야한다고 보았다. 이는 학교에서 예술가곡과 같은 서양예술음악을 들려주고 형식이나 음악이론을 가르쳐서 학생들이 음악을 듣고 작곡가의 주관적 세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수업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반면 음악하기를 강조한 엘리엇의 철학을 반영한 음악수업에서는 좀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형태로 음악수업이 나타날 수 있다. 또한 다문화적 음악교육론 관점에서 세계민요나 다른 나라의 음악축제 등을 조사하는 등 좀 더 다양한 종류의 음악을 다룰 수 있다.학교현장에서는 음악교사는 두 학자의 철학을 모두 반영한 수업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간혹 서양음악을 전공한 어떤 음악교사는 자신의 전공이 아닌 국악수업이나 다양한 악기, 세계민요 등의 수업은 주요하게 다루지 않는 경우가 있다. 반대로 학생들이 지루해 하는 서양음악은 다루지 않고 학생들의 적극적인 반응이 있는 대중음악이나 상업음악만을 감상하는 수업에 치중하는 교사도 있다. 학생들에게 의미 있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음악 수업은 학생들이 즐거워하는 대중음악뿐 아니라 공교육이 아니라면 절대 학생 스스로 찾아서 공부할 것 같지 않은 서양음악도 가르칠 수 있어야 하고, 엘리엇의 주장을 반영하여 음악의 범위를 더욱 확장시킨 국악이나 세계민요 등도 함께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또한 음악교사는 학생들이 지루해 한다고 해서 음악적 지식이나 형식을 가르치는 것을 소홀히 해서도 안되고 적극적인 감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음악이론 수업을 실행하여야 한다. 그리고 학생들이 더욱 능동적으로 음악수업에 참여하도록 노래부르기나 연주하기, 창작하기 등의 활동 형태 뿐 아니라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음악토론이나 음악보고서 등의 다양한 수업형태를 계발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이스너아이스너의 주장은 언어적 개념에만 국한된 교육보다는 더욱 다양한 감각을 통한 경험을 형성해 주기 위하여 표현형식을 다양하게 할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음악교과에서는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지식보다는 감각적이고 직관적인 표현의 비중이 높은 과목이다. 따라서 음악교과에서 음악을 가르칠 때에는 좀 더 청각적이고 실제적으로 학생들이 음악적 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어려운 리듬을 익힐 때에는 수학적으로 따지기보다는 코다이의 말리듬이나 손뼉치기 등을 통해 청각적이고 직관적으로 학생들이 리듬을 익힐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음악을 음악답게 가르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며 재미있는 수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고대 그리스의 에토스론과 동양의 예악사상의 비교와 음악교육에의 적용고대 그리스의 에토스론과 동양의 예악사상은 지역적, 문화적 배경은 다르지만, 이 두 가지 사상의 내용은 상당히 유사하다. 또한 에토스론과 예악사상은 현대의 음악교육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에토스론과 예악사상의 공통점은, 음악을 이상적인 국가실현에 있어서 매우 가치 있는 수단으로 여긴다는 점이다. 플라톤은 도덕성을 함양한 개인이 모여 국가를 이루 때, 이를 이상적인 국가로 여겼고, 이를 실현시키는 것을 목표로 두었다. 이때, 좋은 음악은 개인의 도덕성을 기르기 위해 가장 적합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예악사상 역시 ‘예’를 이루는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 개인의 수양적 차원에서 ‘악’을 수단으로 사용한다. 그리고 또 다른 공통점으로 음악이 도덕성을 기르기 위한 도구로 사용될 때, 좋은 음악과 나쁜 음악으로 구분된다는 것이다. 플라톤은 인간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 선법이 따로 존재한다고 보았다. 또한 예악사상 역시 ‘덕음’과 ‘익음’을 구분하였고, 개인은 도를 깨달은 군자가 제정한 ‘덕음’을 통해 도덕적인 순화를 이루도록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에토스론과 예악사상 모두 음악이 인간의 감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간주한다는 것을 공통점으로 들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음악이 감정 상태를 모방하므로 어떠한 감정을 모방한 음악을 듣느냐에 따라 인간의 감정에 변화가 생긴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예악사상은 좀 더 적극적인 입장을 갖는데, 음악이 인간의 감정에 영향을 줄 뿐 아니라 인간의 감정 역시 음악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앞서 살펴본 두 가지 사상의 공통점을 현대 음악교육에 다음과 같이 적용해볼 수 있다. 첫째로, 음악이 개인의 삶과 사회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다룰 수 있다. 음악은 개인의 삶에서 감정정화나 인격 수양 등의 형태로 영향을 끼친다. 또한 음악은 사회에서 통합이나 안정에 중요하게 사용될 수 있다. 이처럼 학생에게 다양한 음악의 역할을 알려줌으로써 학생이 음악을 친밀하고 효율적으로 다루도록 도울 수 있다. 둘째로, 좋은 음악을 들어야 하는 근거로 사용할 수 있다. 물론 모든 음악은 나름의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좋은 음악’이란 학생에게 의미 있는 가치를 전달해 줄 수 있는 음악을 말한다. 교사는 학생이 좋은 음악을 접함으로써 자신의 발전을 이루도록 도울 수 있다.
*프랑스 인상주의 작곡가 드뷔시와 라벨의 비교설명후기 낭만을 대표하는 음악사조로 프랑스의 인상주의 음악을 꼽을 수 있다. 인상주의 음악은 독일 낭만음악을 거부하고 각 민족 고유의 색채를 담은 음악을 추구한 민족주의 음악의 영향을 받았고, 언어의 뉘앙스와 분위기 묘사 등에 관심을 가졌던 상징주의 문학, 그리고 순간적인 풍경의 모습과 빛에 따른 색채의 변화를 화폭에 담고자 하였던 인상주의 미술의 영향도 받았다. 이러한 인상주의 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로 드뷔시와 라벨을 들 수 있으며, 이들은 인상주의 음악가로서 음악적 특징을 공유하는 동시에, 각자 자신의 음악적 양식을 고수함으로써, 작곡가 개인의 특성을 드러내었다. 이러한 점에서 이 두 명의 작곡가는 다음과 같이 비교될 수 있다.드뷔시와 라벨의 공통점으로 언급할 수 있는 특징은 음악에서 ‘음색’의 효과를 최대한 고려했다는 점이다. 드뷔시와 라벨은 자유로운 형식을 추구하였는데, 이것은 음색의 특성을 충분히 발휘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렇게 음색을 강조함으로써 그들이 얻을 수 있었던 음악적 효과는 몽롱한 분위기의 표현과 다양한 뉘앙스의 변화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이었다. 즉 이들은 자신이 표현하고자 했던 바들을 표현하기 위해 ‘음색’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였고, 결과적으로 형식은 매우 자유로운 형태로 다루어졌던 것이다.드뷔시와 라벨은 같은 사조, 같은 시대, 동일한 문화권 소속의 작곡가이지만 다음과 같은 차이점으로 인해 이 두 명의 작곡가들을 구분 짓는다. 첫째, 형식 사용에 있어서의 차이점이다. 드뷔시는 형식을 이루는 ‘주제’가 작품 안에서 반복되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즉 주제가 발전하여 대규모 작품 또는 형식미를 갖추는 형태로 나가기보다는 반복하고 순환하면서 약간의 변화만을 수반하기를 원했다. 반면 라벨은 주제가 발전하며 변화하고 나아가 확대를 이루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다. 그의 작품에서 주제는 매우 세련되게 다루어졌고, 형식미를 추구하는 전통적 개념과도 일맥상통하였다.드뷔시와 라벨의 두 번째 차이점은 ‘양식상의 변화’를 들 수 있다. 드뷔시는 프랑스 고유의 음악적 사조인 인상주의를 출발시켰고, 인상주의를 완성시키는 데까지 도달하였다. 반면 라벨은 드뷔시의 영향으로 인상주의에 입각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으나, 점차 옛 프랑스의 전통과 스페인 등 이국에 대한 남다른 관심으로, 신고전주의적 경향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이러한 차이는 드뷔시가 몽롱한 화성과 모호한 선율을 사용하는데 반해 라벨은 보다 분명하고 정확한 선율을 작곡하였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이처럼 드뷔시와 라벨은 후기 낭만주의 경향 중 하나인 인상주의 작곡가로 설명할 수 있다. 이들은 프랑스 음악을 독일 낭만주의적 영향으로부터 지켜내고자 하였고, 독특한 음악적 특징으로 인상주의 음악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이들은 각자 고유한 개성을 음악에 담아냄으로써 서로 다른 특징의 음악을 만들어냈음을 여러 작품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