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위험한 독서(1) 작가의 독서카드 - 현명한 독자가 되는 방법독서치료사라는 인물 설정은 흥미롭다. 전에 보지 못한 독서치료사라는 직업을 가진 주인공은 자연스럽게 책과 독서에 대한 작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주인공은 일곱 건의 차량방화에 대한 죗값을 받고 있는 한 소년의 심리를 치료하는데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라는 작품을 사용했다. 소설에서는 책의 본문을 인용한 부분에 각주를 달아 놓았는데, 독서를 병적으로 거부한 사람이 아니라면 으레 인용한 책의 서지사항이나 책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기대할 것이다. 하지만 작가의 태도는 의외이면서도 매우 귀엽다.미시마 유키오, 『금각사』. 쪽수는 일부러 적지 않는다. 의도적인 불친절이 못마땅하거든 앞으로의 각주를 무시하면 될 일이다. 목마른 자 우물을 팔 것이니, 만에 하나 정확한 출처가 궁금하다면 해당 책을 찾아 첫 문장부터 읽어볼 일이다. 인용된 문장을 발견할 때까지. 정말로 그런 문장이 있기나 한 것인지 확인할 때까지. 무슨무슨 영화의, 이러저러한 드라마의 배경이 되었던 특정한 벤치나 삼나무 길을, 지도에도 표시되어 있지 않은 섬이나 계곡을 실제로 찾아나서는 수고에 비하면 땅 짚고 헤엄치는 격일테니, 부디 당신의 독서가 당신을 자유롭게 하기를.애인에게 심술이 나서 투정(왜 투정이라고 하는지는 뒤에 밝히겠다)을 부리는 듯한 작가의 목소리에서 우리는 웃거나 인상을 쓸 수밖에 없다. 이 부분에는 분명 약간의 도박성이 있다. 이성을 만날 때, 상대방에게 호감이 있으면 투정도 좋게 보이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역효과를 일으킨다. 이건 어쩌면 작가의 자신감일지 모르겠다.작가는 독서치료사라는 인물을 통해서 마치 친구에게 그러하듯, 자신이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콜레라 시대의 사랑』, J. D. 샐린저의『호밀밭의 파수꾼』, 밀란 쿤데라,『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알베르 카뮈의『이방인』과 같은 작품들과 다자이 오사무의『인간실격』,『사양』은 주인공이 그녀에게 직접 권하는 책으로 등장한다. 자신이니까.독서를 통해 교훈 따위를 찾아낼 생각은 일찌감치 접어라. 독자로서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계몽이 아니라 공감이니.초보적인 독자들이 갖고 있는 선입견 중 하나는 책의 주인공과 저자를 동일시하는 것이다. 이런 독서법의 폐해는 정답을 찾기 위해 교사의 눈치를 보는 학생처럼 저자의 권위에 짓눌린 나머지 책 속에 자신을 내던지지 못한다는 것이다.위의 밑줄처럼 주인공은 초보적인 독자들이 책의 주인공과 저자를 동일시하는 것에 대해 우려한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을수록 주인공과 저자가 오버랩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책이 잘 읽히지 않는 이 시대에 칼럼도 아닌 소설을 통해 책에 대한 이야기나 독서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의도는 무엇일까?(2) 노출증과 관음증나를 읽어봐. 주저하지 말고 나를 읽어봐. 순진한 당시의 속삭임은 외설스러울 지경이다.우리는 이제 각종 블로그 및 미니홈피 등을 통해 자신을 드러낼 수 있게 되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스타를 부러워하는 젊은이들은 자신의 블로그 및 미니홈피를 통해 스타가 되고 싶은 욕망을 대신한다. 개인 홈페이지 안에서는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자신의 일상과 생각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한다.당신을 상담할 때보다 나는 당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된 기분이다. 전화하지 않아도 만나지 않아도 당신이 무슨 빵을 구웠고 기분은 어땠는지 어떤 사람들을 만났고 어디에 갔었는지 모두 알 수 있다.......(중략)그리하여 당신의 근황이 늘 궁금한 나에게는 두려운 문장이 하나 생겼다. 최근 2주간 새 게시물이 없습니다.그렇다. 우리는 전화를 하거나 편지를 쓰지 않아도, 만나지 않아도 상대방의 근황을 알 수 있다. 심지어 개인 홈페이지 배경음악의 변화와 한 두 문장을 통해 상대방의 감정이나 심리상태까지 파악하려 한다. 클릭 몇 번으로 초등학교 동창생의 변화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고 헤어진 애인의 새 애인도 볼 수 있고 심지어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일상 모습과 내면까지 알 수 있다. 도무지 책을 읽을 시간이 없는 바쁜 시대이다.얼마 전, 새로 생긴 주인공인, 책과 독서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소설을 썼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작가는 이러한 시대에 대한 현실 인식을 이 소설을 통해 드러낸다.그렇다고 독서치료사가 한 여성의 심리를 치료하고 사랑에 빠지고, 그러니 책은 좋은 것이다, 책 좀 읽읍시다, 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나랑 사귀자’ 보다는 ‘내가 요즘에 너무 힘들어,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라고 하는 편이 성공할 확률이 더욱 높은 것과 같다. 앞서, 작가가 투정을 부리는 것 같다고 표현한 것처럼 작가는 독자를 유혹하고 있다.2. 맥도날드 사수 대작전(1)적(敵)이 모호하다낯설게만 느껴지던 아버지의 분노가 겨누고 있는 대상은 모호했다....... 할 수만 있다면 술 취한 아버지는 그 ‘구조’라는 것의 면상을 한 방 갈기고 싶었겠지만 내가 알고 지내는 사람들 중 그 ‘구조’의 얼굴을 봤다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주인공의 아버지는 실직을 당하고 어려워진 가정 형편으로 인해 어머니는 정수기를 팔러 다니고 남동생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입대하고 자신은 휴학을 한 채 맥도날드에서 풀타임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하지만 주인공의 가정이 이처럼 곤경에 빠지게 된 원인은, 이 가족이 극복해야 할 대상은 불분명하고 모호하다. 또, 주인공이 일하는 맥도날드 매장을 긴장하게 만드는 괴전단의 정체도 수많은 추론을 만들어냈다. 정체불명의 괴전단 때문에 맥도날드의 직원들은 긴장을 했지만 그 대상이 불분명하기 때문에 그들은 항상 긴장을 해야 했다.햄버거빵을 데우다가 쇠고기패티를 굽다가 감자를 튀기다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로부터 예측 할 수 없는 순간에 계산할 수 없는 방법으로 공격당한다는 상상은 즐겁지 않았다. 확정되지 않은 위협은 확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더욱 위협적이었다.괴전단의 정체와 공격의 방식도 예측불가능 했지만 맥도날드 직원들의 정체는 너무도 분명했다.우리는 그들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그들은 우리가 맥도날드에 소속되었음을 단박에 알 수 있다. 유니폼의 모양과 색깔로 직위와 담당업무까지 식별할 얼굴을 기억해 미니홈피 검색을 통해 그 직원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또, 그 홈피의 방명록에 글을 남긴 사람들의 홈피까지 들어가면 더욱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처럼 우리는 발가벗은 채로 거리에 서있는 것이다.(2)맥도날드화이 패스트푸드점의 영업 준비는 인종과 언어를 종교와 이데올로기를 초월해서 단일한 과정으로 ‘표준화’되었기 때문이다. 표준화된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성별과 나이와 계급과 신분에 상관없이 고객들은 세계 어디에서나 균일한 맛의 햄버거를 먹고, 역시 성별과 나이와 계급과 신분에 상관없이 뒤처리를 위해 자신의 노동력을 자발적으로 제공했다. 햄버거를 먹고 나면 빌 게이츠도 실업자인 아버지도 스스로 쓰레기를 처리해야만 한다.주인공의 눈에는 이러한 거시적 맥락뿐만이 아니라, 이를테면 집의 의사소통과 가사노동, 연애가, 심지어 남자친구의 성욕마저도 맥도날드화 되었다. 심지어 매장에 가해지던 위험 또한 예측 가능해지고 계산 가능해지면서 경계가 효율적이고 자동화되었다.(3)‘나’의 가치맥도날드화된 시대에 주인공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지켜내서 나라는 존재가 아주 쓸모없지 않다는 것을 세상에 증명해야 했으니까. 그러니 그해 봄 내가 새끼 밴 고양이처럼 독기를 품은 채 지켜내려 했던 것은 거추장스럽기도 했던 순결과 있으면 성가시고 없으면 아쉬운 가정과 하나쯤 사라진다 해도 표도 나지 않을 다국적 패스트푸드점이 아니라 안락한 미래와 교환될 수 있는 나의 ‘가치’였다. 누군가는 그것을 ‘몸값’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모양이다.이러한 주인공의 인식과 자기애는 이혼에 대한 생각을 말하는 데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경제적 능력은 상실했지만 가장으로서 아버지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마땅했다. 적어도 내가 결혼식장에 입장할 때까지는 말이다.이혼만은 막아야 했다. 미모가 출중하지도 않고 재산도 없는데다 학벌도 신통치 않은데 부모의 이혼이라는 결격사유까지 프로필에 추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주인공은 이혼만은 막아야만 한다면서도 그 이유는 부모을 진지하게 다루었다면 낯간지러운 실패한 소설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즉, 이 소설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신선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적절한 위트와 유머러스한 문장, 독특한 설정 등에 의해서 생명력을 얻게 되었다.(4)단점앞서 말한 것처럼, 이 소설이 매력적임에는 분명하지만 석연치 않은 부분이 눈에 밟힌다. 작품 후반부에, 한 외국인을 테러리스트로 착각을 해서 가스총까지 쏘는 상황이 벌어진다.그때였다. 매장 전체가 뭔가에 떠밀리듯 진저리쳤다. 의자가 부르르 떨며 자리를 맴돌았고 탁자 위에 있던 종이컵이 넘어져 음료수가 쏟아졌다. 탁자 밑으로 기어들어가는 사람도 있었고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매장 밖으로 뛰쳐나가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특별수당을 받은 우리는 매장을 버릴 수 없었다. 크루들은 손에 잡히는 대로 뭔가를 집어 들고 외국인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의 손에는 야구방망이, 소화기, 빗자루 심지어 햄버거도 들려 있었다.나중에 밝혀진 사실로, 매장이 흔들린 것은 지진 때문이었고 외국인은 테러리스트가 아닌 외국계 컴퓨터 회사에 근무하는 프로그래머였다. 기가 막힌 타이밍과 반응이 아닐 수 없다. 외국인이 뭔가를 꺼내려 하는 긴박한 상황에, 하필 그 때 매장이 흔들릴 정도의 지진이 나고 그 짧은 순간에 탁자 밑으로 기어들어가는 사람도 있고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가는 사람도 있다니. 물론, 시작부터가 다소 유머러스한 설정이었지만 이러한 결론은 다소 무리가 있다.(5)그래서특별수당 인상 대상에서 유일하게 제외된 나는 쇠고기패티를 굽다 문득 이런 의문에 사로잡혔다. 버거킹도 아니고 피자헛도 아니고 왜 하필 맥도날드일까? 마닐라도 아니고 방글라데시도 아니고 왜 하필 서울일까? 신촌도 아니고 압구정동도 아니고 왜 하필 이곳일까? 그 점에 대해 여태 한 번도 의문을 품어본 적 없다는 사실이 나로서는 더욱 놀라웠다.모든 것이 너무도 당연한 것처럼 주어진 상황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왜 일까?’라는 말을 점점 잊어가는 것 같다. 복잡한 매커니즘에 의해 작동되는 자동판매
만해 한용운만해 한용운(1979~1944)은 격동의 구한말과 시련의 일제하를 가장 치열하고 지조 있게 살다간 근대사 최대의 인물 중 한 사람이다. 진보적인 개혁승이자 뛰어난 종교사상가로서, 또한 3?1운동을 주도한 혁혁한 독립운동가이자 실천적인 민족사상가로서, 아울러 시집 《님의 침묵》의 시인으로서, 만해는 입체적인 성격을 지닌다.먼저 만해의 생애는 크게 세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제1기는 출생, 성장, 출가, 불문입신佛問立身에 이르는 30대 말기까지로, 이때는 주로 한학 수학, 불교 수업 및 그 연장선상에서의 불교 활동에 중점이 놓여진다. 제2기는 1918년 《유심唯心》지를 간행하면서 3?1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옥고를 치르면서 사회활동을 본격화하고, 《님의 침묵》을 탈고하는 등 성숙한 정신을 보여주는 40대에서 50대 중반까지의 절정기를 말한다. 제3기는 재혼을 하고 심우장에 은거하면서 《흑풍黑風》등의 소설을 발표하는 한편, 만당卍黨 등 항일 지하운동을 이끈 50대 후반부터 별세하기까지의 만년기를 일컫는다.발표문에서는 만해의 생애와 사상, 그리고 문학을 전반적으로 개괄함으로써 만해의 문학과 사상이 지닌 포괄성과 총체성을 이해하고자 한다.Ⅰ. 만해 문학의 체계와 특성만해의 저작은 경전의 편술로부터 사적史蹟?사화史話?강술講述?번역?주해?논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문학작품도 한시漢詩?시조?현대시?소설?수필을 망라하고 있다. 저술 기간도 〈조선불교유신론〉(1910년 탈고, 1913년 불교서관 발행)에서 시작되어 수필 〈명사십리明沙十里〉(1940. 5)에 이르기까지 30여년에 걸쳐 있다.1910년대의 만해는 불교논설, 독립논설을 통하여 그의 투쟁적인 사상의 핵심을 드러내 보여주었다.〈조선불교유신론〉과〈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의 대요大要〉(1918. 7)가 그것이다.1910년은 바로 경술국치의 해다. 근대 한민족사에서 가장 치욕으로 얼룩진 경술년에 만해는 통분을 삭이며, 그 참담함을 불교 개혁의 논설을 쓰는 데 바쳤다. 200자 원고지 1만 매가 넘는 방대한 분량인 이 논설은 조선왕조 5백년간 침체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불교의 중흥과 유신을 이루기 위해서는 되풀이되는 불교계의 폐습을 과감히 파괴해야 하며, 민중불교의 실천적 이념을 새로이 정립해야 할 것임을 강조했다. 한편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의 대요大要〉는 세칭〈조선독립의 서書〉로서 만해의 독립사상이 직접적으로 드러나 있는 논설이다.만해에게 1910년대가 논설의 시대였다면 1920년대는 시의 시대이다. 3?1운동으로 투옥되었다가 출옥한 1922년에는 시〈무궁화 심고자〉(《개벽》27호, 1922. 9)를 발표한 이래 1926년 시집 《님의 침묵》을 간행한다. 실상 만해는 그전부터 틈틈이 한시를 지어왔으며 시의 형식을 취한 〈심心〉등의 글을 《유심》에 발표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시작詩作은 1920년대, 즉 출옥 이후부터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만해에 있어 시는 한시와 시조, 그리고 현대시가 세 가지 장르로 나타난다. 한시는 현재 165수 정도가 전해지는데, 한일합방 전후인 1908년경부터 회갑에 이르는 1939년경까지 약 30년에 걸쳐서 씌어졌다. 이들 한시는 내용에 따라 ‘사향시思鄕詩’, ‘상자연賞自然의 시詩’, ‘선감각禪感覺의 시詩’, ‘선열시’, ‘옥중시’ 등으로 분류해 볼 수 있는데 대체로 생애사적 편력을 드러내는 생활시적 성격을 지닌다. 즉 ‘사향시’는 범부로서의 인간적 변모가, ‘상자연의 시’는 전통적 선비 또는 고전 시인으로서의 모습이, ‘선감각의 시’에는 보리를 구하는 구도자의 자세가, ‘선열시’에는 민족주의자로서의 만해가 부각된다. 그리고 ‘옥중시’에는 독립투사로서의 서릿발 같은 면모가 여실히 드러남으로써 만해의 생활 역정과 인간성을 총체적으로 담고 있다.1. 한시 < 雪 夜 >四山圍獄雪如海 감옥 둘레 사방으로 산뿐인데 해일처럼 눈은 오고衾寒如鐵夢如灰 무쇠처럼 찬 이불 속에서 재가 되는 꿈을 꾸네鐵窓猶有鎖不得 철창의 쇠사슬 풀릴 기미 보이지 않는데夜聞鐵聲何處來 심야에 어디서 쇳소리는 자꾸 들려오는지.눈 내리는 밤의 감회를 읊조린 시이다. “무쇠처럼 찬 이불 속”이니 그 겨울 옥중의 추위가 어느 정도였을 지를 짐작케 한다. “재가 되는 꿈”은 자신, 혹은 민족의 암담한 현실이 재가 되는 꿈을 꾸게 했으리라. 하지만 철창의 쇠창살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고 눈은 해일처럼 엄청나게 내리고 있다. 심야에 들려오는 쇳소리가 다른 방 옥문을 여는 소리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눈에 보이는 것과 귀에 들리는 것 모두가 만해를 비감한 심사에 휩싸이게 한다.2. 시조十年報國劒全空 십년 세월 보국하다 칼집 완전히 비고只許一身在獄中 한 몸 다만 옥중에 있는 것이 허용되었네捷使不來?語急 이겼다는 기별 오지 않는데 벌레는 울어대고數莖白髮又秋風 또다시 부는 가을바람에 늘어나는 백발이여.이 시 3구에서 첩사불래(捷使不來)라는 대목이 있다. 첩보(捷報)는 싸움에 이겼다는 보고나 소식이다. 만해는 고통스런 옥의 나날을 살면서도 첩사(捷使)가 오지 않음을 못내 애통해하고 있다.흰머리가 되도록 기다려도 조국 광복의 소식은 없고 속절없는 풀벌레만 세월을 재촉하고 있다. 나라 위한 10여년이 지금은 한 낱 옥중 신세가 되었음을 한탄하며 그래도 밝은 소식을 기다리는 안타까움을 표현하고 있다. 1,2구에서는 일제에 저항하는 자신의 무기력을 표출하고, 3,4구에서는 독립의 욕망이 간절히 담겨진 애국의 심사를 간접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계절이 주는 쓸쓸한 느낌과 함께 광복을 기다리는 안타까운 심정이 잘 나타나있다.3. 시-호칭-당신(39편), 님(36편), 너(2편), 그대(2편), 애인(1편), 무호칭(6편)등이다. 이를 보아 당신과 ‘님’이 중점적으로 사용되었음을 볼 수 있다. 당신ㆍ님ㆍ너ㆍ그대ㆍ애인 등 호칭은 달라도 만해에게 님은 민족ㆍ조국ㆍ민중ㆍ불타ㆍ중생, 바로 그 모든 것이었다.만해가 그토록 목메이게 찾던 님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님이었다. 식민지 백성, 망국노에게 님은 이미 떠나가고 없었다. 너무 먼 곳에 가 있었다. (그러나) “님은 떠나가고, 시인은 그 침묵의 공간 속에서 님이 다시 되돌아 올 것을 호소하는 기다림에 가득 차 있는 것이다.”-《님의 침묵》의 성격과 특징-시집 《님의 침묵》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부정적인 세계관’인데, 이는 당대 사회를 모순의 사회로 보고 그 모순에 대한 부정과 저항의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거의 모든 시들에 ‘없다, 말라, 앓는다’ 등의 부정종지법이 나타나고 있는 데서 확인된다. 그것은 시적 사유의 기본 구조가 부정적 인식에 바탕을 둔 것으로, 부정을 통해 참된 긍정에 도달하고자 하는 만해의 근대적 비판정신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또 다른 특징은 ‘세속’과 ‘신성’의 갈등이다. 희노애락 등 세속적인 정감을 적나라하게 펼치면서도 세속에서 벗어나려는 신성지향의 갈등과 조망이 엿보인다. 이러한 세속과 신성지향의 갈등과 화해를 통해 참된 인간성이 드러나며, 그것을 통해 관념이나 이념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롭고 생생한 정감과 설득력이 유발되는 것이다.끝으로 은 ‘님과 사랑의 시’로서의 특성을 지닌다. 님은 상상력의 구심점으로, 존재의 근거인 동시에 지향해야 할 이데아를 표상하는 것으로, 현실적으로는 부재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그러나 은 이별이나 이별의 슬픔, 그 자체를 노래한 것은 아니다. 이별에서 절망과 갈등의 변증법적 모순을 겪고 난 다음, 참다운 ‘님’과 사랑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함으로써 크고 빛나는 만남을 성취하는 생성과 극복의 시라고 볼 수 있다.
철도의 유혹, 경성의 첫 경험1. 열차에 탑승한 근대1899년 9월 18일에 개통된 한국 최초의 철도 경인선의 평균속도는 20-22Km였다. 1905년 5월 1일에 개통된 경부선(서대문-초량)의 평균속도는 26.5Km였고, 소요시간은 17시간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사람들이 체감하는 속도는 상상 이상의 것이었다.조선인들에게 철도의 등장은 어떤 의미인가? 철도는 자연적인 지형에 종속되기를 거부하고 직진한다. 그 과정에서 굴을 파고 다리를 놓음으로써 새로운 공간성을 창출하고 풍경을 재구조화한다. 기차는 질적인 지형을 균질적인 공간으로 변형할 뿐만 아니라, 엄청난 속도를 바탕으로 시공간을 압축하고, 국제적인 표준시를 도입하도록 강제한다.) 이로 인해 조선인들은 더 멀리 있는 일까지 경험하고 -혹은, 간접적으로- 더 넓은 규모로 생각하면서, 더 고상하고 폭 넓은 동기에 의해 살아갈 자격을 갖게 되었다. 철도로 인해 그들을 옥죄던 지평의 한계는 극복되었고, 그들에게 새로운 시간의 개념이 생겨나게 되었다.하지만 기차는 양날의 칼이었다. 기차는 탑승객의 자의적인 하차를 허용하지 않는다. 기차에 실린 사람은 속도를 통해서 외부세계와 공간적으로 분리된다. 그리하여 기차를 타는 주체는 우리지만, 기차에 타는 순간 우리는 배송되는 객체가 된다. 우리는 기차의 폭발적인 힘에 실려 어딘가로 보내지는 셈이다. 또한, 열차는 먼 곳에 떨어져 따로 존재하는 개성들을 통합시켜 획일화한다. 이로 인해, 군중 속에 존재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독특한 심리적 상호의존성이 필연적으로 생겨난다. 군중의 정신은 ‘집단정신’이고, 이 정신 속에서 개인은 대중적인 감정에 압도되고 관념은 일종의 ‘사회적 감염’에 의해 퍼져나간다.)이런 모든 것으로 인해 기차는 근대를 상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근대성의 질주이며, 동시에 지극히 위험하면서도 매력적인 질주라는 것을 의미한다.)2. 새로운 공간성의 발견한국인으로서 최초로 철도를 경험한 사람은 1876년 수신사의 자격으로 일본에 다녀온 김기수이다. 『일동기유』에 의하면, 김기수는 요코하마에서 시바시로 가는 과정에서 ‘화륜거’를 탔다. 기차를 앞에 두고도 긴 행랑이 놓여져 있는 것으로 알았다는 고백을 보면, 철도에 대한 사전 정보나 지식이 전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양쪽 가에는 모두 입구로서 막았는데 장식이 찬란하여 눈이 부시었다. 차마다 모두 바퀴가 있어 앞차에 화륜이 한번 구르면 여러 차의 바퀴가 따라서 구르게 되니 우레와 번개처럼 달리고 바람처럼 비처럼 날뛰었다. 한 시간에 삼, 사백리를 달린다고 하는데 차체는 안온하여 조금도 요동하지 않으며 다만 좌석에 산천, 초목, 가옥, 인물이 보이기는 하나 앞에 번쩍 뒤에 번쩍하므로 도저히 걷잡을 수가 없었다. 담배 한 대 피울 동안에 벌써 신주에 도착하였으니 즉 구천리나 왔던 것이다.)기차의 속도는 바람과 같지만 차체의 내부는 안온했고 조금도 요동하지 않았다는 것은, 김기수가 기차의 속도에 빠르게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달리는 열차의 유리창을 통해서 산천, 초목, 가옥, 사람 등을 보았다는 것은, 그가 철도가 제공하는 파노라마적인 풍경이라는 낯선 경험에 노출되어 있었음을 의미한다. 서구에서 영화가 최초로 상영되었을 때, 기차가 관객을 향해 다가오는 장면에서 많은 관객들이 이를 실제로 착각하고 기겁을 해서 도망갔다는 일화가 있다. 이처럼, 기차의 전에 없던 속도감은 조선인들을 새로운 시각의 세계로 안내했다.철도가 제공하는 파노라마적인 풍경에 당혹스러워하고 시공간의 압축에 놀라워하는 과정에서도, 김기수는 철도와 관련된 중요한 사실을 발견한다. 철도가 비록 커브를 그리면서 달리는 경우는 있지만 높고 낮음이 없는 평탄한 길을 달리고 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이러한 점은 유길준의『서유견문』(1895)에도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철도는 심한 곡선은 달릴 수 없고 높낮이 변화가 심해서는 안 되며 물을 건널 수 없기 때문에, 철도의 건설은 반드시 곧아야 하고 언덕은 깎아서 평평하게 하고 높은 산은 터널을 뚫어야 하며, 물이 있을 때는 제방을 쌓거나 다리를 놓아야 함을 지적하고 있다.) 철도가 파노라마적인 풍경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평평한 공간’으로 대변되는 새로운 공간성을 창출해 낸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는 셈이다. 철도는 산과 계곡과 같은 지형의 저항을 극복하고, 뉴턴적인 공간, 달리 말하면 ‘완전히 매끄럽고 평평하고 단단하며 직선에 가까운 이상적인 길을 만든다.’)이러한 기차의 속성으로 인해, 기차가 다니는 곳 또는, 그와 연계된 지역은 가로가 정비되거나 평지화 작업이 이루어졌다. 또한, 교통과 물류의 무게중심이 한강 수운에서 철도로 옮겨가며, 경강상인들의 기반이었던 용산 일대는 경부선 건설을 위한 철도공장이 들어서면서 신용산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철도부지를 헐값에 매입한 일본이 남대문 역 부근의 땅을 자국인들에게 불하하면서 충무로와 명동 일대에 일본인들을 위한 새로운 시가지가 개발되었으며, 종로와 청계천 이북은 조선인, 명동 일대는 일본인, 그리고 소공동 일대는 중국인들의 상권이 형성되었다.) 철도가 가져온 공간적인 변화는 놀라운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전적으로 조선인들을 위한 것이 아닌, 일제에 의한 것이었다는 것이 아쉬운 점이다.3. 열차에서의 만남철도 체험이 등장하는 최초의 작품은 이인직의 『혈의누』(1907)이다. 여기에는 철도와 관련된 두 장면이 나온다. 하나는 청일전쟁에서 다리에 총을 맞은 옥련이 정상 소좌의 치료를 받고 인천을 거쳐 일본 오사카에 도달하는 장면이고, 다른 하나는 정상 소좌가 전사한 후 양어머니의 구박에 견디다 못해 자살을 결심하고 동경행 기차에 탔다가 우연히 구완서와 만나는 장면이다. 오사카에 도달한 장면에서 ‘지네같이 기억가는 기차는 입으로 연기를 확확 뿜’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고, 구완서와 만나는 장면은 차중기연이라고 할 만큼 우연적인 상황이다. 다만 옥련과 구완서의 관계형성에 기차의 관성이 작용하고 있는 장면이 특이하다고 할 수 있다.빠르던 기차가 천천히 가다가 딱 멈추어서면서 반동되어 뒤로 물러나니 섰던 옥련이가 넘어지며 손으로 서생의 다리를 잡으니, 공교히 서생 다리의 신경맥을 짚은지라 그 때 서생은 창밖만 보고 앉았다가 입을 딱 벌리면서 깜짝 놀라 돌아보니 옥련이가 무심중에 일본말로 실례라 하나 그 서생은 일본말을 모르는 고로 알아듣지는 못하나 외양으로 가엾어하는 줄로 알고 그 대답은 없이 좋은 얼굴빛으로 말을 한다.기차의 객실이라는 특유한 공간이 아니었더라면, 옥련과 구완서 사이의 대화는 애초에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고, 신체의 일부분과 접촉했다고 하더라도 그냥 스쳐 지나가는 사람에 불과했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의 사소함과 우연성은 기차 객실이라는 공간이 갖는 독특한 성격에 의해서 상당 부분 완화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기차의 어떤 측면이 만남의 새로운 형식을 구성하는 것일까.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개인용 교통수단은 말과 가마였다. 가마는 양반관료나 그 가족만이 탈 수 있었다. 그것도 품계에 따라 가마의 종류에 규제가 가해졌고 형태와 치장 가마꾼의 수, 수행인원 등에 차등이 두어졌다. 양반이라고 해도 무관들은 가마를 탈 수 없었던 것이다. 일반백성들의 경우 가마는 탈 수 없었고 말은 도성 밖에서만 탈 수 있었다.) 하지만 기차는 신분, 성별, 연령, 빈부에 따라 좌석이 서열적으로 배정되는 방식이 아니라, 요금을 지불하면 해당 등급의 그 어떤 자리에도 배정이 될 수 있었다.) 이처럼 기차는 개방적인 동시에 평등한 사교의 가능성을 열어둔 공간이었다. 그렇다면 현진건의 「고향」(『조선의 얼굴』, 1926. 3.)에 등장하는 다음의 장면에 등장하는 ‘기묘한 모임’ 역시 철도에 내재된 사교가능성의 증폭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Ⅰ. 들어가며우리가 떠올리는 일제강점기의 모습은 어떠한가? 우리는 ‘일제강점기’라고 지어진 시대의 이름에서 드러나듯이 친일여부의 문제와 일제에 의해 고통 받고 또, 저항하던 민중 등, 정치적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서는 생각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그러한 정치적 담론들이 역사를 이해하고 탐구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쟁점이 될 것이 분명하지만 기존의 거시적 역사 연구 방법은 이제 더 이상 우리에게 새로운 정서를 불러일으키기 힘들다. 다행히도 최근의 영화계는 일제강점기의 다양한 모습들을 경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청연』,『원스 어폰 어 타임』,『라듸오 데이즈』, 최근의『모던 보이』까지, 그늘에 가려져 있던 경성의 생생한 모습들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이처럼 우리가 미처 들여다보지 못한 과거의 모습을 연구하는 것은 당시를 이해함에 있어 또,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사 하는바가 자못 크리라 예상한다. 1920~30년대의 한국인이 사는 모습은 어땠을까? 라는 물음에서 시작된 나의 호기심은 당시 연애의 모습과 연애가 과격한 모습을 띠게 되는 원인, 그 결과로서 정사(情死)의 양상과 그와 관련된 예술작품에 까지 이어지게 되었다.Ⅱ. 1920년대 한국의 모습1. 3.1운동1919년의 3.1운동은 단순히 일시적인 식민지 치하의 시위가 아니었다. 3월에 불붙은 조국해방운동은 무려 두 달간이나 지속되었고 함경북도 북단에서 한반도 최남단인 제주도까지 전 지역에 걸쳐 1백만 명이라는 경이로운 인원이 항쟁 대열에 합류했고, 1200회 이상의 항쟁이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3.1운동이 위대했던 이유는 장기적으로 이어갈 조직적인 지도부 없이 일어난 국민 자발적 운동 이었다는 점이다. 절망의 끝에서 급기야 터져 나온 ‘한’의 목소리는 무시무시한 전염성을 수반한 채 전국으로 퍼지며 신분, 지역, 신앙을 초월한 전 민족의 일치된 독립의지를 행동으로 표현하였다. 식민시대 대표적인 친일파인 이완용마저 3.1 독립 운동 참여의 제의를 받았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3.1 운동은 사상의 여하를 초월으로 놓음으로써 개인과 사회, 남자와 여자, 부모와 자녀 사이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편할 필요를 주장하는 것이었다.)일제 당시의 연애에 우리가 주목하는 이유는, 남녀의 결합 문제가 애정 당사자들의 사적인 문제이면서도, 그것의 갈등 구조와 성취 여부가 객관적인 사회적 조건과의 관계 속에서 결정된다는 점 때문이다. 즉, 근대적 애정관인 ‘자유연애’가 유입ㆍ정착되는 과정에서 개인이 애정 욕망을 가족, 사회, 민족의 성원으로서 요구되는 가치와 어떻게 결합시킬 것인가에 대한 다양한 이념들이 갈등하고 고민하는 장이었다는 것이다.)개인의 애정 욕망은 물론『춘향전』처럼 근대 이전의 작품에서도 나타나지만, 애정 욕망이 근대적 자아 각성이라는 시대적 의미를 가지고 작품화되는 시기는 봉건적 신분제나 가족주의가 붕괴된 근대에 들어와서이다.) 이렇듯 연애는 기성세대가 연애를 죄악시하고 경시하는 풍조, 혼인 제도의 악습, 경제적 정신적으로 자립하지 못한 청춘 남녀 등 봉건 이념과 근대적 이념이 혼재한 과도기 현실에서 자유연애의 본래 의미인 근대적 자아 각성의 의미는 이기적 개인주의로 변질되어 많은 폐단을 낳기도 하고, 세대 간의 갈등을 낳기도 한다.) 이처럼 이시기 연애의 성행은 단순한 유행이 아닌, 한 개인이 겪게 되는 봉건이념과 집단의 가치와의 결별을 의미한다.3. 정사(情死)사건의 발생정사(情死)란, 사랑과 죽음을 직결시킨 사건이다. 사랑은 죽음과 맺어질 때 가장 강렬한 순도로 타오른다는 발상, 정사(情死)사건은 아직까지 호소력을 갖고 있는 이 발상을 가장 극적으로 체현한 사건인 셈이다. 정사(情死)라는 단어가 생겨난 것은 일본에서도 메이지(明治)이후의 일이지만, 신쥬(心中)라 하여 사랑하는 남녀가 함께 자살하는 일은 17세기부터 유행했다고 한다. 정사란 ‘죠오시’라고 읽어야 할 새로운 단어였지만 ‘신쥬’라 훈독(訓讀)하기도 했다.)커플의 자살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곳은 일본이다. 일본에서는 한때, 중년의 정사(情死)가 마치 유행처럼 사회에 만연하던 때가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사건이 급속도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라는 신문기사가 나오기도 하고, 동아일보의 예를 보면, 1921년에는 연애 자살이나 정사(情死)를 보도하는 기사가 거의 보이지 않다가 1922년부터 늘어나기 시작, 점차 폭발적인 증가세를 기록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루에 서너 건씩 관련 기사가 실리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1910년에는 391명에 그쳤던 자살자 수가 1915년까지 7백~8백을 헤아리다가 1916년 처음으로 1천 명을 돌파한 후 1925년에는 1천 5백여 명에 이르렀던 것이다. 자살 원인을 통계화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연애 관련 자살이 제일 많다든가, 생활 곤란에 이어 남녀 관계가 중요한 원인이라는 지적을 참고하면 자살율의 일반적 증가가 연애 자살의 증가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고 말해도 좋을 듯하다.)당시의 정사(情死)사건을 좀 더 다층적 이해하려면 정사(情死)와 일반적인 자살과의 차이점은 무엇이며 혹, 그 사이에 유사성은 없는지를 알아보는 것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Ⅲ. 자살과 정사(情死)의 심리1. 일반적인 자살의 심리“자살이란 희생자가 스스로 행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인 어떤 행위에서 비롯되고, 그러한 행동의 결과가 죽음이라는 것을 스스로 아는 경우를 말한다.”)사람들이 삶을 끝내려는 이유는 가지각색이다. 두려움과 외로움, 삶에 대한 염증, 우울증과 절망, 삶에 대한 불만과 불안, 실업이나 경제적 빈곤, 직장에서의 불만과 스트레스, 질병과 나이, 정치적 동기나 삶을 계속 영위하고 싶은 욕구의 결여 등이 자살을 하는 이유가 된다. 하지만 자살을 연구하는 사회학자들은 사람들이 어느 특정한 사회 상황에서 유독 자주 자살을 기도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정치?경제의 위기나 도시화, 또는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지는 것 등이 기후와 종교처럼 사회 지위에 따른 자살률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시의 익명성, 높은 실업률, 그리고 삶의 위기에 봉착한 개인에게 시련을 극복할 도움을 줄 수 있는 사회적 연결망이 없다는 것도 도시의 자살률증거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자신에게 그런 믿음에 대한 요구가 있기 때문이다. 간절한 요구는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환각을 낳는다. 존재론적, 허무함, 무상함에 대한 갈증이 조선인을 격렬한 연애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한 것은 아니었을까?비극성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인간의 열정은 강조되고, 그만큼 인간의 존재감도 부각된다. 3.1 운동의 열기 이후, 그 허탈감과 일본의 문화정치가 적절히 섞인 결과, 정치를 향한 열망이 사랑과 같은 내밀한 공간으로 후퇴한 것일 수도 있다. 혹은 조국이 사라진 상황, 정체성의 근거가 없어진 1920년대의 상황 속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를 타인을 통해 입증하고자 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제대로 된 정체성을 소유할 능력을 상실한다. 사랑 안에서 자아가 지속적으로 확인되기 때문이다.)Ⅳ. 예술 작품 속 정사(情死)1. 한국 문학조선에서는 『금색야차』의 번안 소설인 『장한몽』에서 정사(情死)사건이 묘사되면서 “서로 일시에 죽을지언정 헤어지지는 아니하겠다.”라는 발상은 조금씩 호소력을 높여갔다. 그 후,『개척자』에서 주인공 성순은 사랑하는 남자를 두고 다른 남자와 결혼하라는 집안의 강요에 죽음으로써 항거하면서 “자기의 골육이 온통 다 타버리고 만다 하더라도 무엇이나 타지지 않고 남을 것……사랑”을 지키고자 했다. “저는 사랑으로 타서 죽습니다. 저는 제 몸이 불길이 되어 올라가기를 바랍니다.”라는 것이 성순의 마지막 독백이었고, “입에서 걸쭉한 핏덩이를” 토하면서 스러져간 것이 성순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강렬한 사랑의 이미지, 즉 불과 피가 죽음 속에서 결합되었던 것이다. 환희에서 기생 설화가 애인의 전도(前途)를 막고 있다는 자책 때문에 목매 죽을 때도, 사랑을 배신한 후 신산한 삶을 견뎌야 했던 여학생 혜숙이 낙화암에서 몸을 던졌을 때도, 그 근저에는 이런 강렬한 사랑의 이미지가 작동하고 있다. 또, 『개척자』, 『환희』, 『무한애의 금상』에서 정사를 묘사하고 있다.)2. 일본 문학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콜세지 감독이 극찬한 김기영 감독의 (1960), 근래에 홍상수 감독의 등에서 정사(情死)를 묘사하고 있다. 와 가 앞서 말한 사랑, 분노, 질투에 의한 정사(情死)였다면 에서의 정사(情死)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젊은이들의 정체성의 상실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한편, 일본에서는 시노다 마사히로의 (1969), 와다 벤 감독의 (1999), 소설이 원작인 모리타 요시미츠 감독의 (1997)등이 있다. 에서는 정서적, 육체적 갈증을 느끼고 있던 린코와 무덤덤해지는 결혼생활에 권태를 느끼던 구키가 만나서 비극적인 사랑을 하는 이야기이다.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뒤늦게나마 찾아온 사랑이 소중하기 만한 두 사람은 위험한 사랑에 정신없이 빠져든다. 현대인에게 결혼과 현실, 사랑과 이혼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수작이라고 할 수 있다.4. 시화구(畵具)를 메고 산을 첩첩(疊疊) 들어간 후 이내 종적이 묘연하다.단풍이 이울고 봉(峰)마다 찡그리고 눈이 날고 영(嶺)우에 매점(賣店)은덧문 속문이 닫히고 삼동(三冬)내― 열리지 않었다. 해를 넘어 봄이 짙도록 눈이 처마와 키가 같았다. 대폭(大幅) 캔바스 우에는 목화(木花)송이 같은 한떨기 지난해 흰 구름이 새로 미끄러지고 폭포(瀑布)소리 차츰불고 푸른 하눌 되돌아서 오건만 구두와 안신이 나란히 노힌채 연애(戀愛)가 비린내를 풍기기 시작했다. 그날밤 집집 들창마다 석간(夕刊)에비린내가 끼치였다. 박다(博多) 태생(胎生) 수수한 과부(寡婦) 흰얼골이사 회양(淮陽) 고성(高城)사람들 끼리에도 익었건만 매점(賣店) 바깥 주인(主人)된 화가(畵家)는 이름조차 없고 송화(松花)가루 노랗고 뻑 뻑국고비 고사리 고부라지고 호랑나비 쌍을 지어 훨훨 청산(靑山)을 넘고.- 정지용, 「호랑나비」-정사(情死)사건을 다루고 있는 정지용의 작품이다. 이름 없는 한 화가와 산장 매점의 주인이었던 한 과부가 한겨울 깊은 산 눈 속에서 사랑을 나누다 저 세상으로 떠나고 그리고 그들의 변사체가 봄이 되어서야 세상에 알려진다는 얘기다. 어쩌면 신문에 보도다.
경성을 위로해줘-투기의 사회상과 문학Ⅰ. 서론1920~30년대 경성은 너무도 혼란스러웠던 시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마치 청소년기의 방황과도 같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껴 보고(연애의 유입), 반항도 해보고(3.1운동), 간혹 나쁜 짓(투기)도 하는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연애의 유입’은 당시 조선 사회에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그것은 단순한 문화적 현상이 아닌 조선의 사회 체제 자체를 뒤흔드는 대란(大亂)이었던 것이다. 그러한 대란 속에 이제는 자본주의가 유입된다. 이는 조선인들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것에 대해 무기력함을 느끼게 하고 헛된 희망을 품게 했다. 운만 좋으면 단번에 일확천금을 손에 쥘 수 있다는 희망은 조선의 경제를 뒤흔들었다.한편에서는 ‘연애의 유입’으로 ‘자유연애’를 노래하는 자들이 생겨나고 ‘혼인’의 의미마저 뒤바뀌기 시작한다. 또, 여성의 위치 변화가 이루어지고, 격렬한 사랑의 감정과 현실의 벽에 부딪혀 정사(情死)를 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투기’라는 달콤한 유혹에 빠져서 부자가 되거나 몰락해 자살을 택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Ⅱ. 경성의 첫 경험, 그리고 소설들‘투기(投機, speculation)’는 ‘시장가격이 급변하는 틈을 이용해 이익을 얻으려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투기’와 ‘투자(投資, investment)’는, 양자의 차이를 애써 구분하려는 사람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투기는 실패한 투자이며, 투자는 성공한 투기’ 정도로밖에 구분되지 않는다. 경계의 외연을 좀 더 넓히면, ‘투기’와 ‘투자’의 구분이 모호하듯이, ‘투기’와 ‘도박’의 구분도 흐릿하기는 마찬가지다. 예컨대 ‘나쁜 투자는 투기이며, 나쁜 투기는 도박’이라는 역설적인 정의도 있다.)그러나 ‘투자’와 확연히 구별되는 ‘투기’의 특징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시대와 상황을 넘어서서 ‘투기’에는 ‘대중들의 비정상적인 환상과 집단적인 광가’, 즉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비이성적이고 맹목적인 사회적 심리학적 동인이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럼 말이다. 1920~30년대의 투기 열풍은 곧 ‘미두’와 ‘금광’으로 압축해서 말할 수 있다. ‘미두’는 1920년대부터, 그리고 ‘금광 열풍’은 1930년대 초부터 시작하여 줄곧 우리 사회를 ‘흥분’과 ‘집단적 광기’로 몰아넣었다.1. 미두(米豆)‘미두’란 ‘미두장(米豆場)’의 준말이며, 일제 강점기 인천, 군산, 부산 등 글지의 쌀 이출항에 개설되었던 곡물거래시장을 말하는 동시에, 좁게는 ‘미두취인소’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현물 및 선물 거래소’를 일컫는 것이기도 하다. 오늘날 주식시장이 자본주의체제를 상징하는 공간이듯이, 당시의 ‘미두장’은 식민지 조선의 산업 근간인 농업의 핵심 생산물이라고 할 ‘쌀’의 거래에 있어, 자본주의적 시장 경제를 상징하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미두취인소가 오로지 투기만 횡행하는 장소이거나 수탈을 위한 교두보였던 것만은 아니다. 취인소 설립 당시의 목적인 미곡 품질과 가격의 표준화를 꾀하고, 미곡 품질의 개량화를 촉진하며, 조선 각지에 흩어져 활동하는 미곡 수집상(곧 행상)들에게 미곡 가격의 동향을 정확히 알려주어, 구매과정에서의 손실을 최소화하고, 나아가서는 한국과 일본의 무역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미두의 목적과는 다르게 당시 사람들을 ‘흥분’과 ‘집단적 광기’로 몰아넣었다. 도박적인 면이 있는 투기의 성격상, 미두에 성공을 하는 사람보다는 실패를 하는 사람을 더욱 쉽게 찾아볼 수 있다.『동아일보』 1922년의 어느 날 지면에는 “미두(米豆)실패로 정사(情死)-모루히네를 먹고 부부가 같이 죽어”라는 제목 아래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려 있다.수원군 수원면 북수리 최영순은 삼년 전에 수원 기생 손류색을 첩으로 끼어 들인 후, 자기의 본처와 이혼까지 하고 백 년을 동거코자 하던 바, 지난 십 삼일 오전 십일 시에 자기 첩되는 손류색과 같이 를 마시고 부부가 동시에 죽었다는데 원인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최영순은 인천 미두에 실패한 후 세상을 비관한 연고인가 한다더라.)미두 실패로 패가망신하는 것은 백 돈을 날린 시골 지주가 유서 한 장만을 남긴 채 삶을 마감하기도 한다. 머슴에서부터 중매점 점원, 경찰, 사장, 객주부상, 지주, 지식인, 교육자에 이르기까지, 눈 가지고 귀 뚫린 조선 사람의 대다수는 한번쯤 ‘미두’판에서의 일확천금의 꿈을 꾸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로 ‘미두’는 열풍 그 자체였다.그렇다면 왜 ‘미두’였을까? 그것도 부자뿐만 아니라, 평범한 조선인들까지 미두에 몰두하게 된 것은 왜일까? 당시 주식취인소에는 조선 사람이 드문 반면 미두취인소에는 조선 사람이 들끓는 이유를, 조선 사람에게 ‘주식’보다 ‘쌀’이 한결 친숙하고, 예부터 농사를 지어온 조선 사람들이 쌀의 경제학, 즉 쌀값의 변동이나 수급 상황 등을 ‘주식’에 비해서는 훨씬 더 잘 알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이때의 ‘친숙함’은 단지 ‘쌀’이라는 물건에 대한 친숙함일 뿐, 실제 ‘미두장’을 움직이는 거래 방법이라든지, 시세의 변동을 예측하는 방법과 같은 전문적 지식과 정보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런 이유로, 수많은 조선인들은 대부분 재산을 탕진하고 하루아침에 알거지 신세로 전락하는 일이 비일비재 했던 것이다.‘미두장’을 배경으로 한 채만식의 희곡「당랑의 전설」은 당시 미두취인소를 출입하며 한탕의 꿈에 빠진 조선 사람들의 면면을 엿보게 하는 우스꽝스러운 일화를 삽입해 놓았는데, 투기 열풍에 빠진 사람들이 정작 미두 거래의 관행이나 절차에 얼마나 어두웠는가를 희화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전라도 광주 인근에서 인천 미두장에 올라온 한 시골 사람은 이천 원을 졸지에 잃게 되어 미두 중매인들의 동정을 사고 있는데 정작 당사자는 자신이 거래에서 대단한 이득을 취한 줄 알고 미소를 띠고 중매소로 입장한다. 중매인들은 그가 얼굴 가득 웃음을 띠고 들어오자 돈을 잃고 실성한 줄로 착각하는 장면이 있다. ) 이는 당시 조선인들의 어설픈 투기 행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반면에 당시에 인텔리라고 불리던 지식인들마저 투기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좀 더 심각한 시대적 특수성에 기 그들은 직업을 가지지 못하게 되고 따라서 그 생활을 의거할 기점을 잃고 우왕좌왕하게 됨에(.......중략)위의 글과 같은 청년 지식인의 실업 사태는 이미 채만식의 『레디메이드 인생』에서 냉소적인 어조로 그려진 바 있다.위에서 제시한 두 작품처럼 채만식은 어떤 근대작가보다도, 인간의 사회적 삶에서 ‘물질연관’을 중요하게 생각한 작가였다. 조금 과장된 표현이 허용된다면, 그에게 사회적 삶의 ‘물질연관’은 거의 최종(最終)ㆍ최고(最高)의 심급(審級)차원에 해당하는 것이었다.)채만식은 인간의 물질에 대한 욕망과 그러한 인간을 만들어내는 자본주의 사회를 예리한 시각으로 그려내는 문제작들을 많이 발표하였다. 1937년 12월부터 1938년 5월에 걸쳐 조선일보에 연재한『탁류』에서는 모함과 사기·살인 등 부조리로 얽힌 1930년대의 사회상을 풍자와 냉소로 엮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1920, 30년대 한국사회의 한 단면을 포착해 내고 있는데, 그 당시 도시의 밑바닥에서 열악한 삶을 영위하다가 점차 몰락해가거나 이를 극복하기 위해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하층민들의 삶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 내고 있다.2. 황금광(黃金狂)1930년대에 접어들어, ‘미두’ 못지않게 한국인을 집단적인 투기 열풍에 휩싸이게 만든 것은 이른바 ‘황금광시대’로 불리는 ‘금광 개발 열풍’이었다.‘금’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오랜 세월 동안 인류에게 가장 귀한 ‘금속’으로 대우받아 왔다. 손으로 금을 만들고자 했던 중세의 ‘연금술’, ‘황금’을 찾아 떠났던 마르코폴로의 모험이나 콜롬부스의 항해, 그리고 16세기 라틴아메리카에 상륙한 스페인 정복자들이 혈안이 되어 찾아 헤맸다는 전설의 황금도시 엘도라도와 파이치치 이야기는 모두 황금을 향한 인간의 욕망을 보여주는 대표사례들이다.1930년대 식민지 조선사회를 뒤흔들었던 ‘금 투기 열풍’은 일본의 정책 때문이었다. 일본 정부가 각국의 중앙은행인 일본은행, 조선은행, 그리고 만주중앙은행 등을 통해 국민들로부터 사들였던 금 매입가는 국제시세에 비해 상당히 낮았다. 의 시세 차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밀수출이 성행하게 되었던 것이다.채만식의 『금의 열정』에서는 강화아씨, 해주댁, 박윤식, 현씨 일가 등을 등장시켜서 당시 금밀매의 실상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강화아씨나 해주댁은 방물장사들로서,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부녀자들로부터 금붙이들을 사들인다. 시세보다 1원 가량 비싼 값에 구입하는 것이어서, 부녀자들의 구미를 동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곧 ‘강제 공출’이 실시되면 팔고 싶어도 팔 수 없게 되는 때가 온다는 공갈을 곁들이기도 한다. 이들이 집집마다 방문해서 수집한 금붙이나 패물 등은 중간 매집상인 ‘박윤식’에게로 넘어 가고, 박윤식이 수집한 금은 다시 ‘현씨 일가’에게 넘어 간다. 현씨 일가는 여러 중간상들로부터 모은 금을 만주로 건너가 조선 시세보다 훨씬 비싼 값에 되판다.이러한 금 밀매과정에서 생기는 이익은, 다른 일의 대가와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한 번 이 일을 시작한 사람은 다른 일은 할 마음이 없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투기’의 이익을 보든 손실을 입든 그것이 정당한 노동의 대가가 아니라는 점에서, 투기 관련자는 물론이고 사회 전체적으로도 노동 의욕을 상실케 하고, 심각한 ‘상대적 박탈감’을 조장하였다.김유정『금 따는 콩밭』에서도 농촌 사회에 불어 닥친 투기의 열풍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작인 영식은 콩밭에 금이 매장되어 있으니 그것을 파내자는 친구 수재의 헛된 꾐에 넘어가, 콩이 다 여문 콩밭을 파헤치는데, 금은 나오지 않고 콩만 망쳐 버린다. 소작농의 신분상 물질의 유혹 앞에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슬픈 현실을 해학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또, 이태준의 작품 중에는 『청춘무성』(1940.3.12~8.11), 「영월영감」(『文章』, 1939.2~3)에서 금광채굴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들 작품의 주인공들은 목숨을 걸다시피 금광 채굴에 공을 들인다.Ⅲ. 현대근대의 경성을 아프게 만들었던 ‘투기’의 열풍은 현대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세살 버릇 여든 간다’라는 말이 있듯, 청소년기에 아픈 경험을 했음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