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체는 불만족 그러나 인생은 대만족인 오토>나는 오체불만족이란 책을 많이 접해볼 수 있었다. 이 책의 지은이인오토다케 히로타다도 TV에서 많이 보았고, 이 책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들어서언젠가는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과제를 통하여 좋은 기회가 되었다.이 책을 처음 봤을 때 장애인 얘기라는 것을 알았을 때엔 불쌍하다,나에게 장애가 있었다면 절망적인 삶을 살았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오로지 나의 부모가 이렇게 나은 것을 원망스럽게 생각할 것이다.그러나 이 책을 읽은 후의 나의 생각은 바뀌었다.내가 그렇게 생각했던 것은 자신감과 용기와 끈기가 없어서 였던 것 같다.그러나 이 책은 장애를 가진 한 사람의 지금까지의 생애를 보여줌으로써일반인에게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각과 희망을 주는 것 같다.책을 읽고 나는 일본사람들은 장애인을 대하는 태도부터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의 부모님도 선생님도 장애아라고 무조건 보호하려고만 하지 않았고 보통아이들보다도 적극적으로 활동을 했다고 생각한다. 나부터도 해야겠지만우리나라사람들도 일본인들처럼 장애인을 대하는 눈길이나 태도가 따뜻했으면 하는 바램이있다오토다케 히로타.. 이 책의 주인공이자 지은이이다.오토는 태어날 때부터 양팔과 다리가 없이 태어났다. 그런 아기를 선뜻 받아드리기 힘들 텐데 오토의 부모님들은 아기를 처음 볼때부터 귀엽다며 부모의 사랑을 보여주었다.오토는 보통아이들과 함께 요가유치원에 다녔으며 요가초등학교를 나왔으며 장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명문 와세다 대학까지 다니게 되었다. 이것은 노력할 수 있도록 뒷받침 해준 부모님과 학교 생활을 편하게 도와준 친구들의 도움이 컸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계속 느낀 것이지만, 오토는 참 대단하다. 자신의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남들보다 몇 배나 노력하는 자세에다가,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자신이 장애아라고 비관하지 않고, 오히려 문화실행위원장에 출마하는 용기까지 보여주었으니 말이다.오토의 부모님도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낳았을 때,오토의 모습을 보고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던 어머니,보통교육을 받게 하려고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데려가고 데려오는 생활을 견뎌 냈으며, 다카기 선생님의 강경 방침에도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어머니,그리고 오토가 친구들과 여행 간다고 할 때에도 걱정하기는커녕 자신들도여가를 즐기러 가는 여유 이런 부모님이 있었기에 지금의 오토가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오토는 운도 매우 좋은 듯 하다. 요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또 그 학교에서 다카기 , 오카 선생님을 만난 것, 농구부 코치선생님,또 중학교 때 자칫 왕따를 당할 수도 있었던 오토를 지켜준 야짱,이렇게 오토에게 많은 운을 준 것은 오토가 장애인으로 태어나서도희망을 버리지 않고 꿋꿋이 살아가니까 하느님이 주신 작은 배려가 아닐까?다카기 선생님이 오토의 인생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오토를 특별대우하지 않고, 반 아이들의 협동 분위기를 조성하면서오토에게 자기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줬기 때문이다.이 선생님의 의견은 다른 선생님과 학생들의 생각과 달랐다. 그는오토가 스스로 모든 일을 하도록 권유하자고 하셨다.또, 다카게 선생님은 전동휠체어까지 타지 못하게 했다. 등·하교시에는작은 다리로 콩콩 뛰어서, 힘들면 엉덩이를 끌면서 겨우 다닌다.그리고 집에 와서는 힘들어 울기도 한다. 하지만 이 일로 인하여오토는 새삼스레 다카게 선생님의 뜻을 알게 되었다.장애를 딛고 즐거운 생활을 하는 사람, 도전하는 정신이 아름다운 사람, 사회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란 칭호를 오토에게 쓰고 싶다.그리고 책에서는 '야짱'에게 받은 도움에 대해서 그다지 많이 써있지 않은 듯 한데,나는 야짱도 오토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학교수업에 충실하지는못하게 되었지만, 사춘기 시절의 중학생들의 눈에는 장애를 가지고 있으면서도농구부도 하고 학교 간부도 맡고 있으며, 활발한 성격의 오토가 매우 거슬렸을 것이다.그러므로 야짱이 없었더라면 오토는 심한 구타와 함께 자신이 장애인이라는사실을 인식하면서 크나큰 충격을 받고서, 평생을 남들을 의식하며,조용하게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어느 책에서 본 것 같다.‘장애인들의 가장 큰 장애는 사람들의 따가운 눈초리이다’라고 말이다.그래서 나도 장애인들을 일반인처럼 대하고 지나치려 하지만, 장애라는 것 때문에지나치면 한번 더 다시 돌아보게 되고 더 도움을 주고 싶다.이 세상에서 못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오토 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주기 위하여국민학교의 모든 선생님들은 헌신적으로 연구하고 생각했다.워드프로세서의 포로가되도록 노력하였고 정상인보다 더욱더 노력하는 오토를 보면서너무 무의미 하게 살아온내 자신 이 너무 후회 스러운 삶이 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다.또한 나의 아이들 열심히 살지 않은것도 걱정이 된다.마음의 장벽이 없는학교를 만들어 열링 대학을 추구하는 와세다.대학의상징인 오쿠마 강당은 휠체어를 탄 채로 들어갈수 없었고 엘리베이터와 휠체어 운반기를 설치한 건물도 손꼽을 정도로 적었다 장애학생 쾌적한 캠퍼스생활을 보낼 수잇는 환경과는 거리가 멀었다.생명의 거리 만들기 실행우원회가 탄생되어 환경과 공생하는 거리를추구하며 활동을 전개하는 등 이일을 계기로 초등학교 중학교를 중심으로
단청 이야기개요단청(丹靑)이란 청색(靑色), 적색(赤色), 황색(黃色), 백색(白色), 흑색(黑色) 을 기본으로 색(色)을 배색(配色)하여 간색(間色)을 만들어 여러 가지 색을 표현하여 건물의 천장, 기둥, 벽과 같은 건축의 가구부재(架構部材)에 여러 색깔로 문양과 그림을 그려 넣는 것과 조형품,공예품, 석조건축, 고분(古墳), 불화, 동굴 등에 彩畵(채화)하는 경우등 회(繪), 화(畵)의 개념을 통틀어서 말한다. 인류가 삶을 영위해온 이래 미(美)의 추구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미(美)의 추구는 여러 가지 형태로 표현되어 왔으며 또한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되고 있다. 인류가 어떤 신앙적, 장식적 목적으로 생활주변의 사물에 어떤 형상을 표현하였을 때 그것이 자연 그대로의 형태이든 변형시킨 형태이든 그 형상은 예술의 근간이 되었을 것이다. 색채(色彩)와 문양(紋樣)의 형상은 인간의 역사이래 가장 유구(悠久)한 것이며 각 민족마다 고유한 미술유산의 기틀로서 창조되고 표현되어 왔는데 이러한 문양의 형상으로서의 丹靑은 시대의 변천에 따라 표현방식과 채색 법이 점점 발전하게 되었고 예술적, 창조적으로 발전된 것이다.체계단청의 시원을 삼국시대 이전 선사시대에 속하는 유물에서 볼 수 있고, 또 삼국시대에는 고분벽화와 더불어 고분 내의 벽면·천장 등의 도채된 유구 유례가 있다. 고분벽화는 회화적인 것이 주라 하겠지만 화면의 주변공간에 도채장식한 문양은 오늘의 단청문양에 일맥 통하는 점이 있다. 오행설이나 신앙적 색채표현은 후대에도 계승되어 고구려에서 백제 또는 신라에 이어지면서 일관성 있는 형태와 기법의 흐름이 지금에도 엿보인다. 즉 고대에서 삼국에, 또 고려·조선조를 거치는 동안 세부적 변천은 있었으나 근본의도와 의장수법은 맥을 이어온 것이다. 정치·경제·사회·종교의 시대변천에 따라 화와 단청의 내용이나 구도가 조금씩 달라지기는 하였지만 그림과 색채로 우리의 사상을 표현하려는 구상이나 기법은 전대를 이어받아 연면히 지속된 것이다. 단청은 삼국시대에 확립되고, 고려조에이다. 각종 문양의 구성은 고려대 이후에도 변천되었고 휘는 고려대 단청에는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며 17세기초의 유구에서 간단한 휘의 형식이 보이며 18∼19세기에 이르러 매우 다양한 형태로 발전되어 단청에서 머리초 다음으로 중요시하게 되었다. 머리초문양들은 장식의 순위와 변화, 그리고 위치와 시각을 고려하여 화사하고 조밀한 것을 쓰기도 하고 멀리 보이는 곳에는 오히려 성기고 단순한 것을 쓰는 것이 원칙이었다.비단무늬 비단무늬는 진귀하고 미련한 물체를 도안화하거나, 기하학적인 도양(圖樣)을 그리고 다채롭게 채색한 것이다. 이것은 부재의 각 부분에 쓰이고, 특히 불사의 단청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단독문양 화초 또는 동물을 단독문양으로 도안화하거나 기하문 기타 문양을 한 구획 안에 단독으로 넣는 것이다. 우물반자의 격간(格間), 궁창(문의 밑에 댄 널), 구리대(착고) 또는 개판의 일부에 주로 쓰이며 건축부재의 부리(마구리)에 쓰이기도 한다. 사찰의 우물반자에는 주로 연꽃무늬·보상화무늬 등이 쓰이고 궁전건물에는 용·봉·학 등과 길상을 뜻하는 쌍희(囍)자·수복(壽福)·강령(康寧) 등의 글자를 도안화하여 썼다. 별화(別畵)는 단청문양이라기보다는 회화적인 수법으로 그린 그림 또는 장식화를 말하며, 좌우 머리초의 중간부, 도채되지 아니하는 공백부분 또는 연속되는 금문의 일부에 그려 넣는다. 별화는 건물의 성격에 따라 달리하지만 조선조 궁전건축에서는 쓰지 아니하였고, 주로 사찰건물에 쓰여졌다. 그 대상은 사령수(四靈獸-용·거북·봉·기린)를 위시하여 맹수(천마·사자·범) 또는 길조(吉鳥-학·오리)등과 사군자(四君子-매란국죽),화초(花草)등이 주가 되었다. 또 불가에서는 경전·불타에 관계되는 내용을 담기도 하였으며 신선(神仙)·양속(良俗)을 그리기도 하였다.기본빛깔우리민족은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을 생활기반으로 하였으며 생활감정이나 기호를 높이기 위해 이용되는 색채에도 그 색상의 표현이나 배열순서에 있어 오행설이라는 일정한 규칙과 법칙을 따랐고, 단청의 색채이론에서도 음양오행설은 뇌록색과 석간주색이 가장 많이 쓰이며, 백분가칠(연골, 연개판), 육색가칠(토육색,주홍육색,장단육색)과 옥색(분록) 또는 분삼청가칠도 간혼 쓰일 때가 있다. 긋기.모로.금단청에는 뇌록이 쓰이며, 기둥 기타 강력한 구조부재는 석간주를 사용한다. 가칠은 1~3회 칠하지만 문양도색하는 곳에는 2회 칠하는 것이 보통이다.긋기단청 긋기란 획(劃)의 옛말로 단청에서는 좁은 줄을 그어 단청하는 것을 긋기단청이라하고, 먹긋기와 색긋기가 있다. 먹긋기는 먹선을 문양도색(紋樣塗色)한 갓둘레 또는 가칠면에 일정한 굵기로 그린 직선 또는 곡선을 말하며, 분긋기는 백분선을 말하며, 색긋기는 각 색선으로 그리는 것을 말한다. 먹분선 긋기는 먹선과 분선을 나란하게 붙여서 그린 것이다.모로단청 모로단청 또는 모루단청, 머리단청이라고도하며 평방, 창방, 도리, 대들보의 머리초만 그리고 중간에는 긋기만 하여 가칠한 상태로 두는 것을 말한다. 건축부재 길이의 약 1/3정도의 길이로 출초하여 문양을 넣는 것이 대계체적인 수법이다. 도리 및 대량 등에는 양쪽에 각각 1/3씩 문양을 넣고 1/3정도의 남는 부분(계풍)을 뇌록바탕에 상하로 긋기를 하고 문양은 금단청보다 간략하게 하며 휘의 종류는 인휘(인휘) 또는 늘휘를 주로 넣고 직휘는 장단직휘,하엽직휘,먹직휘등을 주로 넣는다.얼금단청얼 금단청과 모로단청의 중간 형식의 단청이며 계풍에는 금초대신 무늬(뇌록바탕 이외의 색상을 도채하고 그 위에다 도안 없이 화원의 의도대로 문양을 넣는 것)를 넣는 단청. 금단청문양을 얼기설기 넣는 단청.금단청 금단청(金丹靑)은 직휘.머리초.휘를 쓰고 남은 재면에는 온통 금문이나 그림(별화)등으로 메워서 다채롭고 화려하게 꾸민 것이다. 금단청은 직휘.머리초.금문등의 정도에 따라 갖은금단청, 보통금단청 및 얼금단청으로 구분하기도 하지만 정확한 한계는 지을 수 없다. 금단청에서는 계풍별화에 불상.화조.산수화 등이 쓰이며, 벽화.천장화도 쓰이므로 단청기술뿐만아니라 동양화,진채화(眞彩畵)에서도 능숙해야 금단청을 도색할 수 있은 점과 선을 구사하여 각종 문양을 형성하지만 단청에서는 각종 색선을 쓸 때가 많다. 선은 여러 가지 형태로 표현되지만 선이 구획하는 문양의 기본요소는 삼각형.사각형.원형이 주축을 이룬다. 원의응용문원얼금 : 사슬모양으로 전후좌우로 원이 겨루어진 상태의 문양 원의 중심은 정사각형.정삼각형.정육각형으로 배치하여 원은 서로 엇겨루게함.(금문에 주로 사용) 세모 . 육모무늬 : 정삼각형 6개가 한점에 모이면 정육각형이 되고 2개가 상하로 붙으면 마름모꼴이 된다네모 . 팔모무늬 : 직사각형이나 정사각형이 모이면 격자문(格子紋) 또는 바둑판무늬가 되며 우물정자(井字)로 떨러져 있게 되면 정자문(井字紋) 또는 방틀무늬라 한다.완자문 : 완자는 일만만자의 고자이며 중국음은 일만을 완이라 한다. 완자는 고래로 불가의 상징이다. 아자문 : 사각형내에 아자(亞字)형으로 된것. 나선문 : 단청에서는 나선형의 문양을 곱팽이라하며 좌우로 배치하여 녹색도채하는 문양을 녹화라 한다.당초문당초무늬는 초엽문늬라고도 하여 인동당초.싸리당초.보상화당초.포도당초.국화당초등 명칭이 있으나 그 넝쿨의 모양새나 잎은 같으면서 부분적으로 꽃무늬가 들어간 것을 뜻한다. 당초문의 형상은 곡선으로 뻗은 줄기에 잎새가 좌우로 휘어 돋아나고 그 사이에 싹이 돋거나 꽃.열매등이 맻힐 때가 있다. 보상화는 불교에서 숭앙하는 이상화로서 만다라화라고도 한다. 이것은 당초문과 같이 넝쿨에 돋을 때와 한 자리에 족생할 때가 있는데 보상화 잎은 줄기의 안팎에 교대로 붙으며 줄기를 감아 도는 형태로도 한다. 보상화당초포도당초 싸리당초초엽당초 국화당초자연문천문 : 일.월.성진 등을 문양화하여 천문과 오행설 또는 신앙이나 인간의 바램에 합치되는 문양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음양의 태극문, 십이지신상은 동물의 용모로 신격화 착의로 표현되며 방위신은 형상과 빛깔로 구분 표현된다. 지리문 : 자연의 여러 현상을 사실적으로 또는 동안화하여 나타낸다. 그 중에서도 구름 .물결.번개.화염 등은 지상의 저승 즉 현실과 내세의 가교로서 도안화된다.구름무늬(雲紋) : 운문은 구름의 현상을 단적으로 표현하여 점운(點雲).비운(飛雲).유운(流雲).용운(聳雲).십자운(十字雲)등 여러 상태로 도안화하고 있으며 특히 고대의 유운의 화법이 율동적이며 미려한 것에 비하면 후세의 운문은 공간장식 또는 번잡성으로 쇠퇴한 감이 드는 것도 있다. 물결무늬(波紋) : 물결무늬는 파도무늬와 함께 사실적 묘사 또는 약식 도안화하여 표현되며 고대 애급의 것과 동양의 것은 좋은 대조를 보이고 있다. 암석.산 : 산은 수렵지역으로 고대분묘의 벽화에도 나오고 동식물의 환경공간표시로 알 맞는 대상이다. 암석은 기암괴석과 단애절벽의 기관과 자연을 즐기는 숭상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동물문 : 중국 은.주시대의 고동기(古銅器)의 문양에는 파충류가 나타난다. 당시 또는 그 이전에 번성한 동물의 기억 또는 가상하여 나타낸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 형태나 힘에 압도되어 숭상 신성시하여 나타낸 것이라면 후세의 용으로 귀착하고 천계의 주신 또는 사신으로 등장된 것으로 보인다. 십이지신상이나 용봉.천마 등은 동양문화 또는 한국기마민족과 관계가 있으며, 십장생(十長生) 중에는 숭앙되고 장수하는 동물이 상징적으로 나타난다.식물문 : 식물은 형태나 색채가 다양하고 아름다우므로 단청문양의 태반이 식물 특히 화초에서 딴 것이다. 당초무늬를 비롯하여 보상화문,태평화,녹화 등은 사실적이라기 보다는 이들을 신격화하거나 이상화아여 그 개념을 존귀하게 또는 숭상하는 뜻이 담겨지기도 한다. 이중에서도 연꽃(蓮花)은 불가에서 뿐아니라 동양 정신문화상으로 가장 존중 애완하는 것이다. 화초는 꽃.잎.줄기.열매.뿌리까지 묘사하거나 도안화하며, 꽃과 잎은 평면 .입면 또는 투시식으로 도안화하되 때때로 사실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길상문 : 인간의 길복(吉福)을 기원 상징하는 문양은 자연 동식물을 위시하여 생활용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또 그 도안도 각양각색이다. 축복되는 글자는 장식화하여 굵은 단획 또는 쌍긋법으로 그린다. 쌍긋법금초고리금 고리줏대소슬금박쥐 금소슬줏대금십자질림
아라리오 갤러리는 개관이래 지금까지 상당히 수준 있는 전시를 기획하고 있는 곳이다. 서울에 편중되어 있는 문화의 중심을 어느 정도 이동시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요즘은 시그마 폴케의 전시회를 하고 있는데 현재 거래되는 작품 중 거의 최고가를 형성한다는 현대 미술의 거장이다. 작품들이 낯설어서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신선하고 재미있고 또 감상에 있어서도 어떤 권위자나 식자들의 견해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이 바로 현대 미술에 있는 것 같다.1층에는 미국의 총기문화에 대한 폴케의 생각이 담겨져 있는 작품들이 있다.‘이 발견은 인류에게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라는 다소 냉소적인 제목을 달은 작품이 있었다. 이 작품은 총탄회사 레밍턴의 광고 이미지를 차용한 작품인데 레밍턴사의 프리미어 엽총 탄양통만을 보여주는 전경에는 부서져서 터져버린 탄탄의 작은 총알들이 흩뿌려져 있다. 그 옆의 작품 서부에서 가장 빠른 총잡이’에서 폴케는 사격장에 있는 중년 남성을 묘사하고 있는데 그림 속 남자는 강도의 형상을 한 두 개의 표적 인형을 겨누고 있다. 사격장의 사람표적에 총질을 하는 사람의 신문사진을 화폭에 옮긴 것이다. 이 두 작품을 통해서 폴케는 미국의 총기문화와 총기문화와 잔혹한 살인게임 따위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1층의 마지막 작품 Meue Schlieife 은 물감을 엎질러 진 듯하게 표현되었다. 이 화면 위에는 노랑과 빨강이 엎질러 진 듯 하게 표현되었다. 이런 화면 위에는 노랑과 빨강이 대조적이게 나누어 졌는데 빨강부분에서는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고 반면 노랑 색에서는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렇듯 대조되는 색상이 반으로 나누어져 있기 때문에 두 색상의 느낌이 더욱 다르게 느껴졌다.2층에는 추상적인 붓질의 작품이 여러 개 있었다. 물감을 칠한 후 흘러내림을 표현하고, 물감을 던져 퍼짐을 표현한 작품도 있었다. 한가지 재료를 가지고 여러 방법을 시도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갤러리에 걸린 작품 수는 작았지만 이 작품을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수 십개, 수백 개의 걸리지 않은 작품이 있을 것이다. 이렇듯 폴케는 회화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에 몰두해 왔다. 지난 40년 동안 어느 하나의 흐름이나 운동, 또는 이념의 변화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천착해온 작가라는 것을 작품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폴케 작품의 특이성은 망점들로 구성된 잡지나 만화, 신문의 인쇄된 이미지를 차용하면서도 원본과 달리 망점들을 수공으로 제작한다는 점이다. 점으로 구성된 작품이 여러 가지가 있었다. 하지만 한가지의 느낌이 아니라 각각의 작품마다 다른 느낌을 받았다. 내가 봐왔던 그림과는 사뭇 달랐다. 그런 그림들을 보면서 점으로 그림을 그린다면 주제가 좁고 생각의 폭이 좁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폴케의 작품은 달랐다. 점으로 국한된 디자인을 그려냈던 작품과는 달리 한 화면에서 보여주는 것이 많았다. 점으로 그린 그림이라 하면 표현의 한계가 있을 법도 한데 결코 그렇지 않았다.
안토니오 가우디Antonio Gaudi 1852~1926안토니오 가우디 코르네라는 인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의 작품이 단지 건축 분야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는 점과 일반적으로 역사가들이 이해하고 있는 건축이라는 분야와 그의 건축 작품이 동일하지 않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그의 작품은 어느 특정한 분야나 양식의 테두리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전통적인 체계로서는 분류하기가 힘들며, 어느 특정한 스승으로부터 사사 받은 제자라고 할 수 없다는 특징이 있다.가우디의 자품은 시대와 양식 그리고 작품이 이루어진 시대 그 모든 것을 초월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의 놀랄 만한 관찰력고 자연에 대한 대단한 관심 때문인지는 몰라도 하늘, 구름, 물, 바위, 나무, 동물이나 산과 같은 자연의 여러 가지 모습에 대해서 관찰을 통해서 여러가지를 직접 배우곤 하였다.그의 가족 중에는 건축가라곤 없었으며 단지 구리를 다루는 공원 정도가 있을 뿐이었다. 다시 말해서 건축가 집안이라고 할 수 있는 전문적인 교육 환경에서 자란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가우디는 매우 소박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렇다고 대단히 명석한 인물이었다는 사실은 배제하지 못한다.그는 보통 사람들이 범하는 오류와는 거리가 멀 정도로 사물을 아무 편견 없이 관찰할 수 있는 능력을가지고 있었다. 수년간 가우디와 같이 일한 화가인 후안 무네르네에 의하면 가우디는 '확실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의 일생 동안 실용적이고 매우 간단하며 기능적인 해결책을 추구하였으며 놀랄 만한 결과를 이룩하였다.가우디 건축 형태를 관찰해 볼 때,그의 정신 상태가 복잡하거나 좀 뒤틀려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의 건물의 들쭉날쭉한 정면은 바로크식의 건축 개념으로 보일 수도 있으며 한편 불합리한 면도 다소 있다.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사실과는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데 그의 자연에 대한 영감에 의한 건축 구성은 다른 사람들과는 달라서 평면에서 나타나는 선으로서 추상적인 형태에 기초를 둔 간단한 기하학을 처음부터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자연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리우돔 마을의 조그마한 시골집에서 여름이면 관찰할 수 있었던 자연 형태의 아름다움과 타라고나의 시골 풍경의 광명스러운 점에 감명을 받아서 자연이라는 것이 광물, 동물이나 식물 세계에 아름다운 형태를 탄생시킨다는 사실을 터득하였으며 또한 자연의 의도는 원래 예술 작품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유용하고 기능적인 것들을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였다.가우디의 결론은 매우 간단하였다. 만약 건축가가 그의 작품에서 기능성을 추구한다면 그는 미를 찾게 될 것이다. 반면에 직접 아름다움만 찾는다면 예술 이론이나 미학 혹은 척학만을 깨닫게 될거것이며 이러한 추상적인 생각들은 가우디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분야이다.가우디의 모든 건축은 독창적이고 기본적인 방식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자연에 우리 인간에게 베풀어준 그것과 매우 유사한 균형된 형태로 만들어졌다.가우디는 건축가는 균형에 대한 타고난 감각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건축가는 건물 구조를 고안해서 그 형태를 구조 전문가에게 넘겨서 그 형태에 관한 수학적인 측정을 하게끔 한다. 구조 전문가는 그 형태가 안정스러운 면이 있다고 판단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 건축가는 그의 설계도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의 직업을 바꾸어야만 한다. 연극이나 정치에나 관여하고 건축물에 대해서는 손을 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하였다.그의 대부분의 작품에는 소위 밀폐된 천장을 주로 사용하였는데 석고나 석회 멧돌로 된 조그만 형태로 결합되어 있는 벽돌 2-3개 정도로만 이루어진 가느다란 형태의 천장 양식으로 15세기 이후로 매우 보편화된 양식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쌍곡선의 포물체 천장을 만들었을 뿐만아니라 전혀 새로운 형태의 조각 방식을 창조해내기도 하였다. 난로나 환풍기 Mila 저택의 계단 출구는 조각의 측면에서 대단히 아름다운 형태라고 볼 수 있는데 모두 카탈란 방식의 천정으로 되어 있으며 Bellesguard와 빠티요 집의 지붕과 동일한 양식이다.그는 건축에 대한 천직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고 전 일생동안 건축 이외에는 한 것이 없었다. 결혼도 하지 않았고 글도 많이 쓰지 않았으며 여행도 별로 하지 않는 편이었다. 정치에도 관여하지 않았으며 오로지 건축에만 관심이 있었다.가우디는 소박하고 수줍으면서도 매우 예민한 사람으로서 자연을 관찰하면서 건축 형태를 이해할 수 있었다.그의 고향과 가족과 밀접한 관계를 맺은 관계로 평생동안 레우스 지역의 억양으로 말을 하였고 카탈류나의 그 지역이 예술 창조를 위해서 매우 이상적인 장소라고 생각하였다. 가우디의 연구가인 네델란드 건축가 장 모레마에 의하면 가우디는 레우스에서 보다 가까이 태어난 사람이 보다 총명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였다.사실 가우디는 지중해 연안이 예술 작품을 만드는 데에는 이상적인 곳이라고 생각하였다. 태양의 빛이 45도 각도로 비추게 되며 모든 물체를 어떠한 굴절없이 완벽하게 밝힐 수 있다. 가우디에 의하면 지중해 사람들은 종합적인 면이 있는 반면에 북쪽 사람들은 분석적이라고 한다. 이 세상의 비밀을 이해하기 위해서 분석력은 필요하지만 예술적인 창조는 종합적인 능력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의 지중해의 풍경과 그 지역 국가들의 땅이 지니고 있었던 크나큰 열정은 가우디의 종교적인 정신에 의해서 더욱 커져만 갔다. 그는 자연을 산프란시스코 데 아시시 식으로 사랑하였다. 자연이 신의 작품이라고 간주하고 그곳으로부터 건축 양식을 얻게 된다면 조물주의 작업은 계속진행되고 있다는 의미이다. 가우디는 신은 인간을 통해서 창조 작업을 계속 하고 있다고 믿고, 품위가 있는 예술 창조활동을 계속하였다.그의 신앙심은 대단하였고 신부들의 충고를 따르는데 그치지 않았다. 여러번 그들과 논쟁을 벌인적도 있지만 대체로 빅, 마요르까, 아스토르가의 주교 등 교회의 지도자들과 친분이 있었다. 그는 기도나 예배 의식과 같은 주제에 대해서 토론을 하는 것을 즐겼으나 신학에 관한 논쟁은 원하지 않았다. 그는 추상적인 것보다는 구체적인 것을 선호하였다. 그의 건축양식은 매우 시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는 개인적으로 시는 전혀 좋아하지 않았다.그의 사상은 항상 건축을 통해서 표현되었다. 대만의 건축가인 호테치엔(Hoh Teh-Chien)은 가우디에 관한 그의 박사 학위논문에서 주장하기를 가우디는 형이상학적인 건축을 실현하였으며 그는 건물을 지으면서 자기의 생각을 밝히는 철학가나 다름 없다고 주장하였다.가우디는 그의 작품을 계속적으로 완벽하게 만드는 능력을 지녔고 그는 자기의 작품이 완성되었다고는 전혀 생각한 적이 없다. 또한 시멘트로 완벽하게 건물을 지었으며 아주 미세한 부분 즉 장식이나 보조에 이르기까지 구조에도 치밀하였다. 가구나 유리창, 단철된 일부분 등 모든 종류의 보조 요소까지도 설계하였으며 모델을 반본하는 적은 결코 없었다.가우디 건물 하나하나가 제각기 특징을 가지고 있고 다른 것과 유사한 면을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때문에 하나의 단위를 이루게 되며 모든 요소가 완벽하게 정돈되어 있으며 하나의 건물에서만 오로지 존재하게 된다.Walter Gropius가 설계한 Bauhaus 신건물이 Dessau에 들어설 무렵, 가우디는 1926년 사망하였다. 그 당시에는 Le Corbusier, Siegfried Giedion등이 주창하는 합리주의가 절정에 이르렀다.이러한 추상적 개념의 단순 기하학적인 건축 형태는 가우디 작품과는 대치되는 것으로서 그들은 가우디의 작품을 바로크 양식이나 비합리적이라고 간주하였다.그 이후의 건축가 세대들은 가우디의 사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으며 1952년 그의 탄생 100주년 기념 가우디 전시회를 계기로 많은 건축 평론가와 이론가들이 가우디 건축의 가치를 발견하게 되었다.그 이후에 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왔으며 논문 전시회, 연구과정, 강의가 개최되는 등 가우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으나 건축가들은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안았다. 그 이유는 대부분의 건축가들은 저명한 스승의 모델을 그대로 답습, 그들의 해결책을 반복해오는 것이 관습이었기 때문이다.가우디의 작품은 모방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며 수많은 모방이 있었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가우디에게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이 있다면 어떠한 사람의 해결책을 모방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대자연에서 영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자연적인 형태에도 다양한 해결책이 있기때문에 결코 반복될 위험이 없다.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이 설화에서 보여주는 승려의 모습은 자기 자신의 기준과 수행에 엄격한 수도승과그리고 인자한 바라밀승의 모습이다. 산달이 찬 임산부로로 변신한 관세음보살께서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에게 차례로 방문하지만 한명은 수행승의 몸으로야밤에 아녀자를 가까이 할 수 없으니 나가라고 했고 한 명은 중생을 구제하는 마음으로 변신한 관세음보살의 아기를 받아주고 뒤처리까지 해준다. 그리고 산모가목욕한물로 몸을 씻은 스님은 성불하게 되고 그리고 내쫓은 스님도 다음날 와서 자기에게도 가르침을 원하자 씻고 남은 물을 줘서 성불하게 해준다.그러면 내친 스님은 땡중이고 도와준 스님만 진짜 스님이냐? 그렇다면 도와주지 못한 스님은 성불하지 못했을 것이다. 엄격한 구도자세나 대중을 구제하는 바라밀행이나다 수행하는 스님에게는 필요한 자세라는 것이다.노힐부득은 달관이라고 해야하나? 불교경전에 얽매이지 않고 불법을 행하였으니 불경을 초월한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그리고 달달박박은 고지식한 사람이다. 너무 불경에만 얽매여서 진정한 도를 구하지 못한 사람이다."환상의 여행에서 깨어나 이제는 정리를 해보자. 수행자는 구도형과 봉사형의 두 유형으로 나눌수 있다. 여기 달달박박은 서슬이 퍼런 구도형이고 노힐부득은 온유한봉사형이다 적절한 비교가 되는지 알 수 없지만 헤르만 헷세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의 유형이 여기에 해당되지 않을까 싶다.봉사형이 이상적인 수행자로 보이게 마련이지만, 그런 봉사가 있기까지는 투철한 자기질서 안에서 거듭태어남이 전개되어야 한다. 탐구(地)와 사랑(愛) 겉으로 보기에는 다른거 같지만, 지혜가 없는 자비는 맹목이기 쉽고 사랑이 없는 지혜또한 메마른 관념에빠지기 쉽다. 누가복음에서 나사로의 누이 마르타와 마리아의 경우가 바로 여기에 해당될 듯싶다. 예수님이 자기집에 오시면 동생인 마리아는 발치에 앉아 열심히 말씀에 귀를 귀울이고 언니인 마르타는 음식을 장만하기에 바쁘다. 바쁜 일손을 거들어주지 않는 동생을 원망한 마르타를 보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너는 많은 일에 마음을 쓰며 걱정하지만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