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On-line) 게임에 대해서 처음 접하게 된 것은 고등학교 1학년(1997년)때였다. 그 당시 선풍적으로 유행했던 게임이 있었는데 ‘Star craft' 라는 게임이었다. 이 게임은 아직까지도 많은 인기를 누리며, 이제는 TV 채널도 생겨서 유명한 게이머(gamer)의 경기를 중계 해주고 있다. 과거 내가 느꼈던 ’Star craft' 에 대한 친구들의 열광, 혹은 중독은 나에게 쇼크로 다가 왔었다. 공부를 잘하던 아이가 게임을 하느라 밤을 세우고 학교를 나오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 했으며, 학교를 나오는 아이들의 절반 이상은 1교시부터 엎어져 잠을 자곤 했다. 친구들과의 대화에선 저그(게임의 한 종족)니 프로토스니 ‘Star craft'에 대한 이야기가 끊이질 않았으며, 대화에 끼기 위해서는 게임을 배웠어야 했다. 이후 ‘Star craft'에 대한 열기가 식을 무렵, 'Lineage'라는 온-라인 게임이 등장해서 아이들이 하루 종일 PC방에서 살았던 기억들이 난다. 언급한 게임 이외에도 Diablo, World of warcraft, Special force, Counter strike, Portress 등등의 온-라인 게임은 아이들을 중독 시켰다. 온-라인 게임의 매력은 무엇일까? 과거 오프-라인(off-line) 시절의 게임과는 무엇이 다르기에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밤을 새면서까지 오락을 하는 것일까? 온-라인 게임을 하지 않는 삼자의 입장으로서 문제를 객관적으로 볼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 ‘게임’을 주제로 선택하여 세계화에 대하여 알아 보았다. 물론, 아직 온-라인 게임의 세계화를 논하기는 시기 상조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긴 했지만 우리 나라에서 유행하고 있는 게임은 일본, 중국, 미국을 출처로 하는 게임이 많이 있고, 우리 나라 역시 대만, 중국, 태국, 베트남, 미국 등으로 게임을 수출하여 엄청난 이윤을 남기고 있는 것으로 볼때, 게임의 세계화는 충분히 이루어져 있다고 이야기 할수 있었다. 더불어, 세계화라는 것이 거창한 것이 아님을 원이 되거나 한명의 상대자가 되어 함께 진행해 나가는 방식인 것이다. 이때, 이용자는 특정한 게임 룰에 따라서 행동에 제약을 받으며, 대화를 통해 게임을 이끌어 나가게 된다.온-라인 게임은 현대 문명의 상징이라 할수 있는 컴퓨터와 전용망 등을 기반으로 하기에 역사가 길지 않다. 1980년 영국에서 만들어진 머드(MUD)가 온-라인 게임의 효시로 알려지고 있으며, 1988년 영국의 알랜 콕스가 ‘Aber MUD'라는 게임을 개발하여 일반인에게 서비스하면서 널리 퍼지게 되었다. (과거 수업 시간에 잠깐 이야기 했듯이 영국인들은 ’fantasy'적인 상상력이 정말 뛰어난거 같다. 'Aber MUD'라는 오락도 'fantasy'적인 요소가 접목된 오락이다.) 초창기에는 통신 인프라가 열악하여 단순한 텍스트를 이용하여 게임이 진행 되었지만, 초고속 통신망의 보급에 따라 많은 발전을 구가하게 되었다. 이후, 국내에는 ‘쥬라기 공원’이 1993년에 최초로 온-라인 게임으로 만들어졌고, 이후 1995년 Nexon에서 만든 ‘바람의 나라’가 출시 되면서 온-라인 게임의 발전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이후 일본의 Sony사에서 세계 최초로 만든 실시간 3D 게임인 ‘에버퀘스트’가 우리 나라에 들어 왔고, 1996년에는 그 유명한 ‘Star craft'가 들어왔으며, 뒤이어 디아블로, 리니지 같은 게임들이 유행하면서 본격적인 온-라인 게임의 시대가 시작되었다.이상 온-라인 게임의 기본적인 사항에 대해서 살펴 보았다. 그러면 과연 온-라인 게임은 세계화가 된 것일까? 그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다.세계 온-라인 게임 이용자 수는 2001년 1300만명에서 2005년에는 1억명 이상의 이용자를 갖게 되었다. 또한 온-라인 게임 시장은 매년 평균 30% 이상의 꾸준한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으며, 2005년에는 전년대비 33% 증가한 48억 달러 규모를 형성 하였다. 세계 지역별 온라인 게임 시장의 점유율은 2003년을 기준으로 미국이 전체 시장의 과반수 이상(58%)을 차지하였고, 그 다타 크래프트’는 우리나라 게임 시장의 절반을 넘게 차지하고 있다. 반대로 우리의 ‘바람의 나라’, ‘라그나로크’는 미국 시장에서 판매고를 올리고 있다. 온-라인 게임은 한 국가 내에서 제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버가 해외로까지 퍼져 있어 자유롭게 의사소통을 주고 받을수도 있다. 이러한 상호성은 문화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하고, 세계적인 범죄를 야기 시키기도 한다. WCG, IEG, ABIT를 비롯한 세계 게임 대회는 20여 개국이 넘는 국가가 참여하여 의사소통하는 문화의 새로운 장을 만들기도 하였고, 대회의 우승자는 각 나라 신문에 실려 국가를 홍보하기도 하였다. 반대로, 리니지 게임의 ‘명의 도용’ 문제는 온-라인 게임의 위험성에 대해 경각심을 일깨워 주기도 했었다. 2005년 9월에 일어났었던 ‘명의 도용’ 사건은 중국인 해커가 우리 나라의 5만명에 달하는 사람의 개인 정보를 유출하여 게임에 사용한 예인데, ‘리니지’는 우리 나라에서 만들어진 게임임에도 중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리며, 암시장까지 형성되어 그러한 범죄를 만들었던 것이다.이만하면 온-라인 게임의 세계화에 대한 현황은 충분히 설명 되었으리라 여겨진다. 그러면 원론적으로 들어가서 온-라인 게임이 세계화 될수 있었던 이유, 그것이 국적을 넘어 광범위하게 퍼진 요인은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첫째는 ‘사이버 공간’이 가지는 특징을 들수 있을 것이다. 1989년 동구권 몰락이후 세계는 사실상 무한 경쟁 시대에 돌입 했다고 이야기 할수 있다. 일원화된 구조 아래 모든 사람이 경쟁자로 등극하게 된 것이다. 발전하지 않으면 낙오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고, 이에 덧붙여 정보 기술의 발달은 개인을 원자화, 분자화, 몰 개성화 시켰다. 경쟁에서 낙오한 사람들은 설 자리가 없게 된 것이다. 이처럼 현실에서 소외된 사람들은 자신들의 욕구를 분출할 가상 세계를 필요로 한 것이다. 컴퓨터를 매개로 구성되는 ‘사이버 공간’은 실제 공간의 대면 상황과는 달리, 물리적인 접촉 없이 컴퓨터에 나타나는 있게 되었다. 오프-라인 게임의 경우는 혼자 보고 즐길수 밖에 없었지만, 온-라인 게임의 경우 상대방에게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확인 시키고 구분 지을수 있게 된다. ‘아바타’에 이름을 붙이고, 옷을 입히고, 성격을 투영하여 새로운 인격을 창조 시키는데, 자신의 모습처럼 혹은 자신이 바라는 모습을 만들어 냄으로써 정체성을 획득해 나가는 것이다. 데카르트가 이야기 한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알아내기 위해 살아간다”라는 말처럼 그러한 아바타를 통해 자신을 규정 지음으로써, 정체성을 대리 획득한 것이라 여겨진다.셋째는 ‘상호성’을 들수 있을 것이다. 오프-라인 시절의 게임과는 다르게 온-라인 게임은 계속해서 상대와 ‘communication'을 함으로써 소속감이 부여하고, 동질감을 느끼게 한다. 예를 들자면, 인기를 끌었던 리니지 게임의 경우 마법사, 기사, 요정, 왕자 캐릭터 등이 등장하는데 마법사는 마법능력, 기사는 검술과 창술, 요정은 궁술, 왕자는 통솔력 등의 특성치를 가지고 있다. 이때 각 플레이어는 자신이 선택한 캐릭터와 같이 게임을 즐기는 상대방의 캐릭터의 특성치를 잘 살펴서 상황에 맞춰 게임 진행에 유리한 행동을 해 나가야 한다. 만일 적 괴물이 화살에 약하다면 내가 가진 검을 포기하고 다른 이용자에게 부탁하여 활 공격을 한고, 적이 멀리 있을때는 궁수가 공격을 하고, 근거리에 있을 경우는 장창병이 싸우는 등의 다채로운전략을 이용하게 된다. 이때 각 이용자의 의사소통을 위해 온라인 채팅이 기본적으로 제공되며 이용자들은 채팅을 통해 각종 전략을 수립하고 협력을 도모하는 것이다.(4) 이러한 게임의 상호적인 진행 방식은 서로를 고무시켜 게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만들게 되는 것이다. ‘상호성’은 앞서 설명한 ‘정체성’에 관한 문제와도 연관이 될수 있다. 원자화된 현대 사회에서 자신을 어느 그룹에 위치 시킴으로써 소속감과 안정감을 획득하려는 것이다. 인간은 귀속 본능을 가진 ‘사회적 동물’ 임을 상기할 때, 현실에서 찾지 못하는 소속감을 어떤 방식으로속에 있는 즐거움, 쾌락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매력으로 다가왔으리라 여겨진다.여섯째는 ‘몰입성’을 들수 있을 것이다. 이 부분에서는 Csikszentmihalyi(1977)가 처음 제시 하였던 몰입(flow)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그의 정의에 따르면 몰입은 “사람이 총체적으로 관여되어 행동할 때 느끼는 푹 빠져 있는 감정(holistic sensation)"으로 정의된다. 이 상태에 있을때 인간은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처럼 느끼고, 주의 집중이 잘되며, 행위에 푹 빠져 자신을 잊어버리지만, 스스로 자신의 활동을 조절하고 있다고 믿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문화적 배경이나 직업, 나이, 성, 지역에 관계없이 공통적으로 일어난다.(5) Webster와 Trevino(1992)는 이러한 경험이 컴퓨터를 매개로 한 의사 소통 중에도 일어날 수 있음을 밝혔는데, 게임의 몰입 경험은 대개 미션의 난이도와 개인의 수행 능력이 적절한 균형을 이룰때에 일어나게 된다. 게임 난이도는 재미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누구나 하기 쉬운 게임은 내적 성취 동기를 자극하지 못해 실증을 유발하게 된다. 과거 오프-라인 게임의 경우, ‘에디터(editor)’를 이용해 게임을 유리하게 수정하거나 바꾸어서 원활한 방식으로 진행할수 있었다. 이에 반해 온라인 게임은 상호적으로 이루어지는 메카니즘이고, 실시간으로 업데이트(Up-date) 되기 때문에 실증 보다는 자극을 유발하는 것이다. 특히 기존의 매스 미디어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관여 매체이므로 이용자에게 최적의 몰입 경험을 제공해 주게 되는 것이다. 이는 온-라인 게임의 큰 특징인 불확실성과 긴장감으로 기인하는 것인데, 성공한 온-라인 게임의 대다수가 그러한 경향성을 띠는 것을 알수 있다. ‘심즈(Sims)’ 나 ‘디아블로’, ‘리니지’ 같은 게임이 좋은 예이다.이상 온-라인 게임이 세계화 될수 있었던 요인들에 대해서 살펴 보았다. 다음으로 세계화된 온-라인 게임의 문제점들에 대해 살펴 보기로 하겠다.심리학에서는 인간 심리에 가장 강점이다.
『독립 선언문』과『I Have a dream』비교, 분석『The Declaration of Independence of the Thirteen Colines』와『I Have ADream』에 대해서 비교해 보았다. 독립선언문의 경우, 일반 사람들을 청자로 상정하여 적었기에 문체가 다소 복잡하고 만연체의 느낌이 많고, 역사적인 인식, 법적인 근거, 혹은 정당성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있었다. 반면, 루터킹의 연설문은 흑인들을 청자로 상정하여 적었기에 간결한 문체로 쓰여 해석에 어려움이 없었으며, 비유를 적절히 들어 표현하였기에 쉽게 이해 될수 있었다. 두 글의 가장 큰 차이점을 이야기 하자면 독립선언서가 청자들의 ‘이성’에 호소하고 있다면, 루터킹의 연설문은 ‘감성’에 호소하고 할수 있다고 할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두 문서의 본문을 통해 차이점에 대해 자세하게 살펴보도록 하겠다.첫째로, 루터킹의 연설문의 경우 비유를 통해 청자들에게 에둘러 표현한 반면, 독립선언서의 경우 보다 정확한 표현을 통해 핵심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루터킹의 연설문에서는 "the Negro lives on a lonely island of poverty in the midst of a vast ocean of material prosperity.", “In a sense we have come to our nation's capital to cash a check." 와 같이 비유를 들어 표현하고 있고, 이 외에도 red hills, tranquilizing drug, valley of segregation, autumn of freedom, quicksands 와 같은 표현을 통해 비유를 적절히 드러냈다. 반면에 독립선언서에서는 이와 같은 비유는 거의 드러나지 않고, 직설적인 표현을 주로 하고있다. 둘째로, 루터킹의 연설문의 경우 표현이 감각적이고, 수식이 적어 해석이 쉽게 되는 반면 독립 선언서의 경우 감각적인 표현보다는 어떤 사실을 기술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고, 문장이 만연체라서 해석에 어려움이 많이 있었다. 예를 들면 루터킹의 연설문에서는 joyous, sadly, fierce, bright, beautiful, warm, bitterness, hatred, sweltering, mighty 와 같은 감각적인 형용사, 수식어가 두드러진다. 또한 문장 구조에 있어서도 주어와 동사의 순서가 그대로 ‘S+V' 꼴로 유지되어 문장이 아주 이해하기 쉽게 쓰여져 있다. 마치 고등학교때 5형식의 문장을 배우면서 예로 들었던 문항들과 같이 간결하게 쓰여져 있다. 거의 모든 문장이 그러한 꼴로 쓰여져 있기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예가 필요 없으리라 여겨진다. 이에 반해서 독립 선언문에서는 감각적인 수식어는 잘 드러나지 않으나 여러 수식어구를 통해 문장을 복잡하게 쓰고 있다. 가령, 2번 단락의 “~~a design to reduce them under absolute Despotism it is their right, it is their duty, to throw off such government, and to provide new Guards for their future security. Such(①)has been the patient sufferance of these Colonies; and such(②)is now~~"에서 ①번 such의 경우 그 전 문장의 ‘absolute Despotism’을 의미하는데 파악해내기가 힘들다. 또한 ②번의 such의 경우 앞 문장의 ‘to throw off such government'를 의미하는데 이 역시 파악해내기 힘들다. 또한 문장에서 ‘;(세미콜론)’을 자주 사용하여 문장을 길게 늘여 기술하고 있다. 문장에서 대명사의 쓰임 또한 많아 루터킹 연설문에 비해 해석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 셋째로, 독립선언서는 공포하고 알리는 것이 그 목적이기에 정당성과 이해를 중점으로 하지만, 루터킹의 연설문은 정당성을 알리고 흑인들의 힘을 집결하는 것이 목적이기에 어투에 있어 많은 차이점이 드러난다. 예를 들자면 루터킹의 연설문의 경우 본론으로 들어가면 "We must~~", "Go back to ~~", "Let freedom ring~~" 와 같이 강한 청유형, 명령형의 형태를 보이는데 이것은 흑인들의 힘을 집결하여 행동하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하다. 이에 반해 독립 선언서는 청유형의 어조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그것은 독립에 대한 운동은 실제적으로 이루어졌었고, 선언서의 목적이 어떤 운동이나 행동을 전개시키기보다는 정당성 확보에 중점을 두고 있기에 그러한 차이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 즉 두 문서의 목적이 다르기에 그러한 것이다. 넷째로, 정당성을 구하는데 있어서 독립선언서는 법률적인 지식과 함께 많은 관점을 도입하는 반면 루터킹의 연설문은 법률적 정당성에 관한 논의 보다는 현재사회의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 함으로 정당성을 확보하려 하고 있다. 그것은 미국이 독립하려 할때는 여러 나라들이 사실상 식민 지배를 많이 받고 있었고, 영국의 지배를 당연시 생각했던 사람들이 많이 있었기에 그것에 대한 정당성을 찾는것이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흑인 차별에 관한 경우, 법적으로 13, 14, 15th 수정 헌법조항을 통해 평등은 법적으로 확보 된것이었고, 미국 독립선언에서도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이야길 하고 있으니 그 정당성 확보에는 많이 주력할 필요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독립 선언서의 첫 부분을 보면, “The unanimous Declaration of the Thirteen united States of American. When in th human Course of human events~" 라고 하면서 역사적 관점에서 정당성을 확보하려 하고 있고, “all man created equal, that they endowed by their Creator with certain unalienable Rights, that among these are Life, Liberty and the pursuit of Happiness." 와 같이 ‘하나님’을 통해 정당성을 확보하려 하고 있다. 이 외에도 저항권의 관점을 가져와서 “~it is the Right of the People to alter or to abolish it, and to institute new Government." 정당성을 확보하기도 한다. 독립선언문이 공포될 당시, 시대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정당성 확보에 여러 어려움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섯째로, 루터킹의 연설문에서는 동어 반복이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그것은 앞서 이야기 했듯이 루터킹의 연설문이 사실의 전달이나 공포보다는 흑인들에게 알리고 설득하여 힘을 집결하기 위해 썼기 때문에 그러한 것으로 보인다. "One hundred years later~~", “I have a dream", "We can never be satisfied~", “Let freedom ring from~~" 등이 그 예들인데 이와 같은 반복을 통해 주위를 환기하고, 마치 노래처럼 들리게 하여 쉽게 대중에게 어필하기를 바랬던 것으로 보인다.이상 차이점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다음으로 공통점에 대해서 살펴보자. 첫째로, 두 문서 모두 구체적인 예들을 통해 청중에게 어필하고 있다는 점을 들수 있다. 독립선언서의 경우, 영국이 미국에게 잘못한 일들을 하나하나씩 열거하여 상기 시키고 있는데, "He has refused his Assent to Laws, the most wholesome and necessary for the public good. He has forbidden, his Governors to pass Laws of immediate and pressing importance, unless~~ Indian Savages, whose known rule of warfare, is an undistinguished destruction of all ages, sexes and conditions" 이 부분에서 국왕의 잘못들, 민의원을 해산한 것이라든가, 인구 억제책을 펼친것, 사법 행정에 반대한것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루터킹의 연설문도 마찬가지로 구체적인 예들이 나온다. “~cannot gain lodging in the motels of the highways and the hotels of the cities~~ We can never be satisfied as long as a Negro in Mississippi cannot vote and a Negro in New Work believes he has nothing for which to vote" 등과 같은 구체적 예를 통해 청자들의 주의를 환기 시키고 있다. 또한 Mississippi, Alabama, Georgia, Louisiana 등과 같은 구체적 지역명을 표기 하였다. 두 번째 공통점은 두 문서 모두 도입 부분에선 정당성을 찾으려 애쓰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차이점에서 깊게 다루었지만, 많은 관점에서 정당성을 확보하던 현재의 관점에서 정당성을 확보하던 두 문서 모두 도입 부분에선 정당성 확보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미시사의 선구자로 손꼽히는 카를로 진즈부르그의『치즈와 구더기』는 16세기 종교 재판에 선 방앗간 주인의 개인적 심리와 사회상(像)을 좇아가는 탐정 소설형식의 작품이다. 이 작품은 미시적 관점으로 역사에 접근하고 있는데, 과연 미시사란 무엇이며 미노키오의 사상이 만들어진 배경은 무엇인지,『치즈와 구더기』의 작품이 가지는 의의 등에 대해 살펴 보았다. 그럼 먼저 미시사란 무엇인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진즈부르그는 미시사를 ‘실마리 찾기의 방식’이라고 하였다. 사소하고 때로는 부차적이라고 여기는 세부 사항들이 종종 우리를 보다 높은 차원에 도달하도록 하는 실마리를 제공 해주는데, 이처럼 작은 사례를 창으로 삼아 바깥 세상을 파악하는 것이 미시사인 것이다. 과거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이나 독일의 사회 구조사, 프랑스의 아날학파 등은 역사를 거시적 관점에서 인식하였고 인간의 물질적·제도적 측면에 주목하여 계량화를 중시해왔다. 이에 반해 미시사는 역사 속에서 주목 받지 못했던 과거의 본질적인 면에 주목하여 이를 가시화하는 작업을 한다. 미시적 관점에서는 거대한 해석 틀 속의 리얼리티가 존재하며, 이러한 역사적 리얼리티는 잘 경계 지워진 어떤 집단이나 인물을 통해 주위의 문화적 관계망 속에서 '촘촘하게' 채워나감으로써 제대로 잡아나갈수 있다. 거시사가 역사를 읽는 하나의 수단이나 부분으로 개인을 파악한다면 미시사는 개인을 그 자체로 목적으로써 주목한다.『치즈와 구더기』에서는 ‘메노키오’라는 방앗간 주인을 중심으로 하여 그 주변의 문화, 나아가 민중의 문화와 시대상을 파악하고 있다.『치즈와 구더기』는 1532년 몬테레알레에서 출생한 한 방앗간 주인인 메노키오(본명:도메니코 스칸델라)를 통해 역사를 조명한다. 당시 카톨릭 교회의 부정과 부패가 심했던 때에 메노키오는 비슷한 신분의 사람들과 동향 사람들과는 달리 읽고 쓰며, 암산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로 인해서 행정 업무를 맡아 볼수 있었고, 여러 글들을 경험할수 있었다. 그는 1583년 51세에 그리스도에 대해 이단적이고 불경한 발언을 했다는 혐의로 종교 재판소에 고발 된다. 이야기의 본격적인 시작은 여기서 부터이다. 일반 사람들과는 달리 글을 읽고 쓸줄 알았던 메노키오는 종교에 관한 여러 책들을 읽었는데 그것들을 통해 자신만의 세계관을 세운다. 그는 삼위일체의 우주관을 믿지 않으며, 세계는 혼돈 그 자체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마치 치즈에서 구더기가 나오듯이 모든 것들이 이루어졌다고 주장한다. 또한 종교에 관한 사상뿐만 아니라 민중의 입장에서 권력자들에게 일침을 놓는 말을 계속해서 이야기 한다. 라틴어를 통해서 법정의 일을 진행시키는 것은 권력자들의 억압을 위한 수단이며, 성직자들은 직책을 이용해 농민을 착취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심지어 “로마 카톨릭의 온갖 의식은 대중으로부터 재물을 뜯어내기 위한 사기극에 지나지 않는다” 라고까지 이야기 한다. 이러한 그의 사상으로 인해 그는 고발되고 재판을 받게 된다. 종교 재판소에서 그는 이단적인 사상을 말한적이 없다라고 하며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결국 이단 심문관들은 계속하여 추궁하여 그의 죄를 밝히려 하고, 대화를 통해 그의 이단적인 사상이 드러나게 된다. 메노키오는 확신에 찬 논리를 통해 때로는 종교 재판관들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의 논리에 빠져 버리기도 한다. 이후 그의 죄에 따라 결국엔 징역을 선고 받게 된다. 2년간의 복역 동안 자신의 잘못에 대한 용서를 구하고 다시는 이단적인 생각을 유포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고 풀려나게 된다. 마을에 돌아간 그는 어느 정도 지위를 회복하며 생활을 잘 해나가지만, 다시 이단적인 생각을 전파하고, 1598년 다시 고발을 당하게 된다. 그후 1599년 68세의 나이로 화형에 처해지게 된다.진즈부르그는‘치즈와 구더기’로 대변되는 메노키오의 독특한 우주관이 어떻게가능 했었는지에 대해 추적하고 있다. 그는 사회적 분위기와 개인적 요인을 들어 파악하고 있는데, 사회적 관점에서는 크게 두가지의 관점에서 해답을 구하고 있다.첫 번째는 인쇄술로 파악한다. 인쇄술은 메노키오의 문화적 배경인 구전 문화와 서적들을 비교할 수 있는 가능성과 메노키오 자신에게서 생겨난 여러 사상과 환상들이 뒤섞인 것을 해소할수 있는 방안을 제공하였다. 또한 인쇄술을 통해 다양한 책들이 많이 생산될 수 있었기 때문에 굳이 사서 보지 않아도 빌려서 충분히 책을 읽을 수 읽게 되었다. 이것은 메노키오가 인용한 서적들의 절반 이상이 빌렸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이렇게 가진자(상류층)들이 접하는 문화를 메노키오도 접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은 메노키오가 그들과 대등한 위치에서 자신의 주장을 펼칠 수 있게 된것을 의미한다. 기록 문화에 대한 가진자들의 독점과 종교 문제에 대한 성직자들의 독점이 종식되면서 메노키오는 자신만의 사상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메노키오는 독학으로 공부를 한 방앗간 주인에 불과하였고, 그리스어도 라틴어도 거의 몰랐기 때문에 여러 번 책을 읽어 모든 단어의 의미를 파악하려고 했을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그러한 과정을 통해 그는 내용들을 수년간 되새김질 하였을 것이며, 단어와 구절들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그의 기억 속에서 새롭게 숙성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두 번째로 종교 개혁을 이야기 한다. 메노키오는 자신이 바라는대로 교황, 추기경 그리고 영주들에게 생각하는 바를 직접 피력할 수는 없었지만, 종교개혁을 통해 환기된 사회적 분위기(작가는 메노키오가 루터파가 침례파로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하기도 한다)로 마을의 신부와 주민들 그리고 이단 심문관들에게는 이를 드러낼 수 있는 용기를 얻은 것이다. 이미 지나친 종교권력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반기를 들고 있었기 때문에 메노키오가 종교의 모순을 꼬집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진즈부르그가 비록 이 두 가지를 큰 사회적 배경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책의 본문에서 계속 언급하듯이 메노키오의 독특한 우주관에 있어 정말 중요한 것은 그는의 많은 독서량과 그에 따른 자의적 해석으로 인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해석을 하는데 있어 단어나 구절을 떼어내거나 때로는 왜곡시키고 다른 문장을 끌어들여 유사한 비유들을 만들었다. 그는 거의 모든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독서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고 다듬어 나간 것이다. 메노키오가 주장하는 생각들은 책 그 자체를 모방한 것이 아니라 그 속에 기록된 내용들과 구전 문화가 만난 결과였다. 즉 상류층만의 전용 문화인 것처럼 여겨졌던 독서와 민중이 내적으로 갖고있는 구전문화가 결합된 결과라고 할수 있는 것이다. 만약 그가 단순히 글을 읽을 줄만 아는 사람이었다면 진즈부르그의 주목을 받지 못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메노키오는 자유의지와 창의력을 기반으로 독특한 해석을 만들어냈고, 새로운 우주관을 만들어 낸 것이다.“메노키오는 당시의 전형적인 농부로서의 간주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진즈부르그는 부정적이다. 이는 촌락에서 비교적 고립된 그의 처지를 통해 알 수 있는데, 작품의 후반에 나오는 방앗간 주인이라는 직업에 대한 설명으로 알 수 있다. 산업 혁명 이전의 유럽은 아무리 작은 마을이라도 방앗간이 적어도 하나는 있었다. 방앗간을 운영하는 직업은 당시에 가장 보편화된 직업 중의 하나였다. 그러므로 중세에 방앗간 주인들이 이단 집단에 상당히 포함되어 있던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방앗간은 여인숙처럼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교환되는 장소이다. 이처럼 많은 이들을 접촉하는 노동 조건 때문에 확산되는 새로운 이념들에 비교적 개방적인 직업이었다. 또한 일반적으로 주거지와 멀리 위치했던 방앗간의 특성으로 인해 비밀 집회의 장소로도 적합하였던 것이다.이 같은‘방앗간 주인’으로서의 특성은, 작품의 후반에 등장하는 또 다른 방앗간 주인인‘펠레그리노 바로니’를 통해서도 파악할수 있다. 메노키오와 피기노는 100여 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살았다. 두 사람 다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문화권의 인물이었지만, 한번도 만나지 않은채 죽음을 맞이했다. 그러나 피기노는 메노키오와 유사한 신앙관으로 이단의 혐의를 받았고, 종교재판을 받기에 이르렀다. 서로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두 명의 방앗간 주인이 유사한 신앙과 사상을 가졌다는 것은 앞서 말한 ‘방앗간 주인’이라는 특성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방앗간 주인’이 가지게 되는 사상적 개방성은 메노키오의 사상이 구전 문화의 토대 위에서 형성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할수 있다. 이러한 문화는 유럽의 농촌들을 배경으로 넓게 확산되어 있었으며, 교리들과 예식들에 분노를 느끼는 사람들이 분명히 많았으며, 그것은 기본적으로 기독교 시대 이전부터 존재하던 농민들의 생각을 반영한다 할수 있다. 그러므로 메노키오의 사상은 한 방앗간 주인의 고립된 주장이라 할수도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당시 일반 농민들의 삶과 신앙 그리고 열망과 무관하다고는 이야기 할수 없다는 것이다.
주홍글씨 에 나타난 17C 미국인들의 종교관을 설명하고이를 바탕으로 작중인물을 분석하시오.우선 주홍글씨의 저자인 호손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1804년 7월뉴잉글랜드 지방의 메사츄세츠 주 살렘에서 태어난 호손은 조상의 엄격한 청교도 가문 혈통을 이어 받았으며, 혈연적으로나 지역적으로 철저한 청교도 배경 속에서 청교도주의의 영향을 받으면서 성숙했다.호손은 조상이 물려준 유산인 청교도주의에 대한 깊은 인식에도 불구하고 청교도 사회의 비인간적이며 비기독교적인 계율에 대한 강한 비판정신을 소유하고 있었다.특히, 그는 자신의 선조인 존 호손이 저질렀던 마녀재판에 대해 심한 죄책감을 느끼며 청교도주의 사회의 편협성과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죄의식의 본질을 탐구하였다.그런 호손의 작품 중 걸작이라 할수 있는 에 대해 살펴보자의 배경이 되고 있는 17세기 뉴잉글랜드 지방은 '칼비니즘'을 신봉하는 엄격한 청교도의 집단이 거주하고 있었으며, 식민지의 신 개척지로서 낯설고 척박한 토질과 어려운 여건 하에 신정일치의 엄한 체제를 이룩하고 있었다.건국 초창기라는 불안정한 상황은 신정일치의 엄격성을 더욱 필요로 하였고 이들은 자신들의 실험이 실패한다면 약속받은 지상낙원을 상실함은 물론 세상의 조롱 대상이 될것임을 인식하고 있었다또, 기존 세계의 부패와 죄악으로부터 자유로운 도덕적으로 완벽한 성인이라는 자아상은 그들에게 엄청난 도덕적 부담을 부과하였는데 그에 따라 그들은 인간을 죄로 이끌수 있는 자연 본성과 사적 욕망을 타락한 것으로 규정하고 도덕 규범과 법을 강조하였다.또 이들은 신세계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가며 그 세계에서 존경받았지만 때때로 그들만이 신의 선택을 받았다는 선민 의식은 그들 스스로를 협소하고 완고한 사람으로 만들었으며 개인의 삶에 엄격하게 적용된 그들의 믿음은 종종 극단적으로 편협한 사람들을 만들기도 했다.그렇게 편협해진 사람들, 즉 법과 신앙만을 강조하는 비인간적이며 배타적인 성격의 사람들을 꼬집는 책이 인 것이다.의 시간적 구성은 1642년에서 1649까지 7년으로 써 간통(Adutely)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바탕으로 헤스터의 참회와 영혼의 구원, 딤즈데일의 위선, 칠링워스의 복수에 대한 집착 등 인물들의 성격묘사를 바탕으로 글은 진행된다.그럼 작중 인물들에 대해 한사람씩 살펴보기로 하자--작품속의 각 이름은 작중 인물의 성격을 보다 선명하게 해주고 그 성격에 사명감을 불어넣어 주며 개성을 부여해 주기 때문에 이름을 어떻게 짓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한다.(1)--1. HesterHester라는 이름은 천부적으로 아름다움과 강함을 지닌 위엄있는 여인인 구약성서의 'Esther'에서 따왔다.'Ester'의 여성상을 모델로 하여 약한 자들에 대한 인정과 강인한 의지를 강조함으로써 엄격한 청교도 사회를 비판하는 역할을 하는 여인이다.형벌을 감수하는 인내 속에서 그녀의 본성적 도덕성은 점점 발전하여 자기의 죄를 인정하려는 태도로 나타나고, 자기를 괴롭히는 사람들에 대한 미움도 식어가고 인간적 동정과 사랑을 행하게 되는데 이러한 그녀의 생활변화는 점점사람들의 이해와 동정 그리고 사랑과 존경까지 받게 된다,그녀의 선행은 마침내 주홍글씨 'A'자를 자비의 표시로 변하게 하여, 사람들은 그 문자의 본래 의미인 간음(Adultery)으로 해석하지 않고, 천사(Angel), 유능(Able) 으로 해석하게 된다.7년간의 치욕적인 생활은 그녀로 하여금 마음의 폭을 넓게 만들어 주고 친절과 겸손으로 봉사함으로써 마침내 사람들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 자비의 여신으로 묘사된다.그녀는 헤스터는 자유의지(free-will)을 가지고 있으나 신세계의 청교도적 도덕률에 의해 잠재된 본능을 억제해야 되는 상황속에 있는데 그런 헤스터에 대해 호손은 헤스터를 간음죄를 범한 죄인보다는 희생자로 보는 동정론을 제기 하고 있다.그것은 첫째, 헤스터는 사랑없이 강요에 의해 결혼하여 젊음을 희생당했으며,두 번째는 칠링워스가 진정으로 사랑을 회복할수 없고 또한 젊은 정열의 여인과는 적합하지도 않으면서 이기적으로 결혼을 주재하여 희생당한 것이다.세 번째로 자신은 Amsterdam에 남아 있으면서 헤스터 홀로 메사추세츠 식민지로 보내지는 남편의 어리석음에 의해 희생당하였으며, 넷째로는 남편이 인디언에게 억류되어 생존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락한번 받지 못하는 운명의 희생자요, 다섯째는 사랑이 진전되었을때 결혼할 준비가 되어있지도 않고 그녀가 임신하였을때 자식에 대해 책임질수도 없는 유약한 딤즈데일의 희생자로 보는 것이다.그러함에도 그녀는 딤즈데일을 깊이 사랑했으며 그녀의 잘못이라면 신세계의 청교도적 도덕률에 대한 존중보다 욕정과 사랑이 더 강했다는 것 뿐이라는 것이다.헤스터의 죄에 대한 관점 중 카핀터교수의 논문(2)이 흥미로운데 그는 3가지 관점으로 구분지어 헤스터를 바라본다.그 첫째로 전통적인 도덕주의자의 관점에서 보는것인데 헤스터의 간음죄는 신의 계명을 어긴 것으로 천국에 들어갈수 없는 맹백한 죄인 것이다그렇게 보면 그녀의 정욕은 그 사회에 반하는 비극을 초래하는 결정적 결점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둘째로, 낭만적인 이상주의자들은 헤스터가 죄를 범했다기 보다 죄를 덕으로 승화시킨 점을 강조하는데 그녀는 세속의 도덕적 법칙, 즉 낡은 인습을 탈피하고 싶었고 인간의 본능적인 인성인 따라 행하는자연적인 법을 존중한 것일뿐이라는 것이다.이런의미에서 이 작품의 비극은 헤스터의 비극성 때문이 아니라 사회악의 비극성 때문에 생긴 굴욕으로 인한 것으로 그녀는 죄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셋째로, 초월주의적 이상주의자들은 그녀의 죄는 절대적인 관점에서 단정할수 없는 상대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고 본다.헤스터는 신의 계율을 어긴 것도 아니며 낭만주의자들의 견해처럼 사회의 희생물도 아니고 단지 낭만적인 사랑을 더 앞세운 죄일뿐이라는 것이다.이렇게 세가지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중요한 것은 '죄' 의 적용은 시대적 상황에 따라 다를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그렇기에 당시 팽배했던 청교도의 계명을 어긴 그녀의 정욕은 비극을 초래할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며 사회적 상황을 고려해서 본다면 그녀는 명백한 죄인인것이다.하지만 위처럼 다른 입장에서 보자면 죄가 아닐수도 있다는 것이다.카핀터 교수와는 다르게 월 컷은 (3)을 통해 그들이 처한 사회가 문제라는 점을 이야기 하는데, 그는 제도 자체가 본성을 왜곡하기에 문제가 발생하였고, 즉 제도라는 사회의 틀이 인간 본성에 어긋나는 죄를 지었다고 하는 것이다.죄가 아닐수도 있는 것을 사회가 헤스터와 딤즈데일 목사에게 죄책감을 강요하다 보니 인간본성의 선함이 왜곡되거나 쇠퇴되어 본질을 흐린다는 것이다.하지만 그런 시련을 극복하고 속죄의 모습을 보이며 생활하는 헤스터의 모습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행복해질수 있는가를 보여준다고 할수 있다.2. ChillingworthChillingworth의 이름은 "냉랭한","차가운" 이라는 뜻의 'Chill', "~의 자격이 있는"을 뜻하는 "worth" 의 복합어로 한때 사회에서 의사로서 가치있는 존재였지만 차갑고 냉정한 지성에서 비롯된 복수심으로 인해 동정심이나 애정이 결핍된 실체를 상징적으로 의미한다고 할수 있다.칠링워스의 죄악의 원천은 간부를 찾아내서 원수를 갚겠다는 복수심이라 하겠다.의사로서 한 집안에 살면서 7년간이나 정체를 숨기며 오직 복수라는 일념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칠링워스 인 것이다.연약한 인간의 심정에 남다른 관심을 가진 호손이 칠링워스를 등장시킨 것은 그 당시의 청교도 사회를 나타내려는 의도라고 할수 있다.아내 헤스터에 대한 목적 의식과 자기의 생활에만 몰두하며, 사랑이 결여된 학자적 생활 태도, 그리고 딤즈데일에 대한 복수심으로 그의 영혼을 자기 마음대로 괴롭히고 파멸시킬려는 잔학성, 타인의 처지에 대해 전혀 동정심을 가질줄 모르는 그는 냉혈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 할수 있다황야와 같이 사랑이 메말라 있는 칠링워스의 심성은 당시 New England의 청교도들의 빗나간 지성을 상징한다고 본다.이것은 칠링워스의 외모에서도 드러나는데 수려한 외모를 가진 헤스터나 딤즈데일 목사와는 다르게 조그만 몸집에 한쪽 어께가 비정상적으로 올라간, 장애를 가진 모습으로 묘사함으로써 ‘지성’과 ‘감성’이 균형을 잃고 발달한것을 상징화시켜 보여준다 할수 있다.다음으로 칠링워스의 죄에 대해 살펴보자면 칠링워스의 죄는 복수 자체에 있기보다는 그 수단과 방법의 잔혹성에 있다고 할수 있다.그는 딤즈데일이 헤스터의 정부임을 확인한 후에도 그로 하여금 비밀을 가슴에 않은채고행의 웅덩이로 끌어 넣기 위해 그의 목숨을 끊지 않고 연장시키는 것이다.그는 딤즈데일 목사가 가지고 있는 인간의 나약함을 수용하지 못한 잔인함, 인간의 영혼을 탐색하여 농락했던 지적인 교만성, 사랑과 관용을 베풀지 못한 죄인으로써 비국적인 결말을 맞는다.칠링워스의 종말을 비극적으로 그려냄으로써 사랑과 관용을 베푸는 신을 단지 심판과 징벌의 신으로 여기며 인간에게 무거운 형벌을 내렸던 청교도 사회의 비인간성이 가장 큰 죄임을 보여주고 있다.3. Dimmesdale우선 딤즈 데일의 이름에 대해 Hytt H. Waggoner이 정의한 것을 보자[ 그의 이름은 두부분으로 되는데 첫 번째 부분 'Dim' 은 연약함과 어두움을 나타내고 두 번째 부부인 'Dale' 은 골짜기를 의미한다.호손은 딤즈데일의 이름을 통해 “빈번히 거짓되고 후미진 또는 움푹함” 으로 암시 함으로써 그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여겨진다. ]호손은 딤즈데일을 통해 인간의 이중성 (duality)을 드러내고 있다.즉, 청교도의 기지 아래 위선적인 모습을 유지하는 것과, 죄를 고백해서 인간의 본성을 찾고자 하는 것을 두고 갈등을 하는 것이다.
인권이 인류 보편적 가치인가 하는 문제는 이 선포 된 후 줄 곧 논란이 되어왔다. 특히 신생 독립국과 개발 도상국들은 국제 인권 규범이 서구적인 가치를 강요하는 것이며, 자국의 실정을 반영시키지 못한다는 비판을 제기하여 왔다. 현재 북한이 내세우고 있는 ‘우리식 인권’, 혹은 ‘자주적 인권’이라는 개념도 이러한 맥락을 통해 비판을 하고 있다. 즉 우리만의 방식으로 인권을 보장하고 있으니 간섭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명백히 허구일 것이다. 그것에 대해 논증을 하고 북한 인권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다.북한이 이야기 하는 ‘우리식 인권’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 부분에서 확실한 인권 침해를 하고 있다. 그 첫째는 기본권의 억압이다. 비록 ‘소유권’의 개념이 개인적 인권 항목에 포함되는 것인지에 관해서는 논란이 될수 있겠지만 개인의 주체성과 자유가 인권에 포함되는 것에 관해서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개인의 독립성과 주체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북한에 있어 인권의 주체는 ‘사회적 존재로써 인간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정치적인 갈등이나 대내적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진 허구로 지나지 않는다. ‘사회적 존재로써 인간의 권리’라는 말은 사회를 위해 개인은 희생될수 있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전체주의적인 발상인가? 두 번째 문제는 극심한 식량난으로 인한 생존권 문제이다. 어찌 인간이 빵 없이 살아갈수 있겠는가? 그런데 현재 북한 상황은 어떠한가? 소위 엘리트 층은 인민의 피를 빨아 기름칠을 하고 있지만 어린이와 노인들은 기아로 인해 아사하고 있다. 북한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 자연적 재해로 인한 것으로 이야기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기아상태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북한 사회를 보면 쉽게 알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체제의 비효율성(집단 농업체제)과 폐쇄성에서 비롯된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식량난은 단순한 식량 부족 문제가 아니라 ‘체제’에 의해 생겨난 문제로, 인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이상 북한 인권 침해의 문제점을 살펴 보았다.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전체주의적 사상, 기본권 생존마저 보장 못해주는 상황, 이러한 일련의 것들은 명백한 인권 침해 일것이다. 주지하였듯이, 인권의 정의는 불 분명한 것일지 모르나 자유롭게 먹고 살게 해주는 것은 삶의 기본이며 정의일 것이다. 정의가 이루어지지 못한것을 보았을 때, 우리는 마땅히 제재를 가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 해결 방식에 있어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즉, 지금은 시기상조이니 기다려 보자는 것이다. 그것은 당신들이 배가 불렀기에 그런 소리가 나온다고 말할수 있다. 하루만 굶어 보아라. 기분이 어떠한지, 우리가 이렇게 시기를 논하며 망설이고 있을때에도 북한 인민들은 배를 움켜잡고 있을 것이다. 북한 문제에 관한한 시간이 많이 흘렀다. 결과론적으로 인권 침해나 식량난 같은 문제점들은 변한 것이 없다. 그런데 과거와는 다르게 북한의 인권문제에 관한 국제 시각들이 변화였다. 우리와 북한의 문제로만이 아닌, 국제적인 문제로 거듭난 것이다. 이는 우리가 보다 적극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상황이 된것을 의미한다. 한 국가만이 아닌 국제사회의 성질로 북한의 정권을 몰아갈 때, 북한의 정권은 분명 흔들리기 시작할 것이다. 그 사이에 우리는 자유의식을 북한 속으로 넣는데 애써야 할 것이다. 과거 동독이 서독의 TV를 보고 자유를 갈구 하였듯이 자유의 사상을 북한 인민들에게 넣어줄때, 인민들 스스로 ‘자유’라는 기지와 ‘권리’라는 무기를 가지고 자유 혁명을 노래하며 북한 정권을 붕괴 시킬 것이다. 또한 그때 통일은 한발자국 더 다가올 것이다.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자!1. 강성대국- ‘사회주의 강성대국론’이라고 하여 북한식 사회주의 나라 건설방식을 이야기한다. 1998년 김정일은 강성대국이라는 기치를 내걸었는데, 이는 선 사상.군사, 후 경제 건설의 방식을 통해 위기에 처한 북한 경제를 타개하고 국력을 강하게 만들겠다는 논리이다.2. 선군정치- ‘강성대국’의 기치 아래 내세운 정치형태로 군을 통치의 중심에 두는 형태이다. 김정일이 “경제건설보다 중요한 것은 군대를 강하게 만드는 것이며 총대가 강한 나라가 강대한 나라가 될수 있다”는 표현으로 선군정치의 정당성을 강조한 바가 있으며 국방위원회의 권한 강화와 군사 우선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인다.3. 사회 정치적 생명체론- 모든 인간은 유한한 육체적 생명과 무한한 사회 정치적 생명을 가지는데 수령으로부터 부여 받은 사회 정치적 생명이 육체적 생명보다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논리이다. 이는 수령-당-인민대중을 하나의 생명체로 결합시키면서 주체사상의 일환인 인민대중의 절대복종을 꾀하는 것으로 이해된다.한 나라의 체제를 파악하기 위해서 우선시 되어야 할 것은 그 나라의 중심 이데올로기와 통치 이념을 파악하는 것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의 통치 이념이자, 경제.정치.사회.군사 등을 망라하여 지도 이념으로 자리 잡고 있는 ‘주체사상’을 통해 북한의 체제를 파악해 보는 것은 효과적인 방법이라 생각된다.주체 사상은 1955년 12월 28일 선동일군 대회에서 “사상사업에서 교조주의와 형식주의를 퇴치하고 주체를 확립한데 대하여”라는 김일성의 연설을 기점으로 진행되었다고 볼수 있다. 초기 사상으로써 역할을 하였던 주체사상은 이후 ‘경제에서의 자유’,‘정치에서의 자주’,‘국방에서의 자위’ 라는 원칙과 함께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 특히 1967년‘공화국 정부의 10대 정강’을 통해 주체사상이 정책지도 이념으로 선포되면서 그 영향을 보다 확대 된다. 이때를 계기로 주체사상은 김일성 숭배의 전면화와 유일 사상체계의 확립등 통치 이데올로기로 거듭나기 시작하는데 이것은 이후 1980년 6차 노동당 회의에서 개정된 전문에서도 드러난다. 그 전문에서는 “조선 로동당은 오직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주체사상, 혁명사상에 의해 지도된다”고 함으로써 기존 막스-레닌주의를 벗어나 김일성주의로 변하고 있는 것을 보인다. 물론 이러한 김일성주의화는 이후 김정일로 이어지는 세습의 정당화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다. 이상 주체사상의 등장과 변모과정에 대해 살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