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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기소개서 샘플(공기업 다수 포함)
    포*코지원동기/입사포부/희망근무분야'소리없이 세상을 움직입니다'이 광고문구는 포*코에 대해 '제철소'라는 딱딱한 이미지만을 가지고 있던 저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세계최고경쟁력을 갖춘 초일류 철강기업으로서 묵묵히 한국경제의 버팀목이 되어준 귀사의 이미지와 딱 어울리는 문구였기때문입니다.그때부터 저는 귀사의 기업이미지창출에 이바지하고싶다는 소망을 갖게되었습니다.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던 대한민국이 한강의 기적을 이루기까지, 無로부터 有를 창출해낸 포*코가 없었다면 그것은 결코 불가능이었을 것입니다.그러한 저력을 바탕으로 현재 중국 및 인도 등 해외진출을 모색하고 있는 귀사의 우수성을 세계 곳곳에 알리는데 기여하고 싶습니다.학보사 기자활동을 통해 배운 책임감과 그동안 쌓아온 영어 및 일본어등의 어학실력은 제가 귀사에서 글로벌 인재로 성장해나가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 확신합니다.포*코가 제 미래를 향한 발판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생활신조 성격장단점'오랫동안 꿈을 그려온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는 앙드레 말로의 명언이 있습니다.그 말처럼 저는 머리가 비상하지 않아도,부유하지 않아도,목표를 향해 노력하면 언젠가는 이루어지리라는 신념으로 살아왔습니다.900점이 넘는 토익점수를 얻기위해 일년동안 포기하지 않고 공부에 전념했던것이 그 일례라고 할수 있습니다.즉,포기를 모르는 배짱과 끈기가 그 원동력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또 다른 장점은 폭넓은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입니다.인생에서 친구들 및 가족등 사람들을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과 만나고 어울리는 것을 좋아합니다.단점이라면, 친구들의 부탁을 거절하거나 어느것 하나를 강단지게 뿌리치지 못해 때때로 우유부단한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는 것입니다.그를 개선하기 위해 최대한 신속히 결정을 내리고 기회비용을 파악해 무엇이 최선일지 숙고해보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사회봉사활동/서클경험저는 3년동안 학생기자로 활동했던 탓에 남들과는 조금다른 대학생활을 보냈습니다.매주 12면의 신문을 만들기 위해 학내를 돌아다댄스를 배우고 있습니다.몸치인 제가 댄스를 배우기란 쉽지않지만 못하는분야에 대한 도전을 통해 한발짝씩 발전해나가는 제가 자랑스럽습니다.환경관리*단성격의 장단점 및 생활신조'절대 한곳에 고여있는물이 되지 말자'25년을 살아오면서 위 좌우명을 가지고 항상 자기계발을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제 인생의 목표는 돈을 많이 벌거나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평생 공부하며 저 스스로를 끊임없이 발전시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저의 가장 큰 장점은 한곳에 정체돼있지 않고 항상 발전하려는 진취적인 자세입니다. 그 일환으로 영어와 일본어를 꾸준히 공부해왔으며 중국과 일본 해외배낭여행 및 캐나다 어학연수를 통해 세상을 보는 시각을 키웠습니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신체적 유연성을 기르고 정신적 스트레스를 해소하고자 재즈댄스를 배우고 있습니다.제가 자랑스럽게 내세울수 있는 또하나의 장점은 6년간의 자취생활을 통해 얻은 꼼꼼함과 자립심입니다. 처음엔 부모님과 떨어져 지낸다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시간이 스스로 집안살림을 해나가면서 더욱 꼼꼼해진 것 같습니다. 이젠 제게 어떤 업무가 주어져도 실수없이 정확히 해낼거라는 자신이 듭니다. 반면 마음이 약해 친구들의 부탁을 거절하거나 어느것 하나를 강단지게 뿌리치지 못하는 우유부단함을 개선하기 위해, 최대한 신속히 결정을 내리고 무엇이 최선일지 숙고해보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학교생활/사회봉사활동/연수여행경험살아오면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학보사 대학부장 퇴임식이었습니다. 대학입학후부터 3년간을 줄곧 학보사 학생기자로 활동하면서, 매주 12면의 신문을 만들기 위해 학내를 돌아다니며 교수님 또는 학생들을 취재했고 며칠밤 철야를 거듭해 기사를 썼습니다. 동료들과 의견충돌을 겪는 등 힘들었던 순간도 많았지만 그를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해결해나가면서 공동체내 의사소통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었습니다. 또한 매주 월요일 학교신문을 기다리는 독자들과의 약속을 어기지 않기 위해 제게 주어진 일을 다하며 책임감을 배웠습니다.캐나다에서 홀로 생활했.비전이 있는 회사, 인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회사 환경관리공단이 ‘환경기술 종합지원기관’으로 우뚝설수 있도록, 나아가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깨끗한 환경에서 살수 있도록 일역을 담당하고 싶습니다.한*전력성격의 장단점 및 생활신조25년을 살아오면서 '절대 고여있는물이 되지 말자'는 좌우명을 가지고 항상 자기계발을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제 인생의 목표는 돈을 많이 벌거나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평생 공부하며 저 스스로를 끊임없이 발전시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이처럼 저의 가장 큰 장점은 한곳에 정체돼있지 않고 항상 발전하려는 진취적인 자세입니다. 그 일환으로 영어와 일본어를 꾸준히 공부해왔으며 중국과 일본 해외배낭여행 및 캐나다 어학연수를 통해 세상을 보는 시각을 키웠습니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신체적 유연성을 기르고 정신적 스트레스를 해소하고자 재즈댄스를 배우고 있습니다. 제가 자랑스럽게 내세울수 있는 또하나의 장점은 6년간의 자취생활을 통해 얻은 꼼꼼함과 자립심입니다. 처음엔 부모님과 떨어져 지낸다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시간이 스스로 집안살림을 해나가면서 더욱 꼼꼼해진 것 같습니다. 이젠 제게 어떤 업무가 주어져도 실수없이 정확히 해낼거라는 자신이 듭니다.반면 마음이 약해 친구들의 부탁을 거절하거나 어느것 하나를 강단지게 뿌리치지 못하는 우유부단함을 개선하기 위해, 최대한 신속히 결정을 내리고 무엇이 최선일지 숙고해보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학교생활/사회봉사활동/연수여행경험살아오면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학보사 대학부장 퇴임식이었습니다. 대학입학후부터 3년간을 줄곧 학보사 학생기자로 활동하면서, 매주 12면의 신문을 만들기 위해 학내를 돌아다니며 교수님 또는 학생들을 취재했고 며칠밤 철야를 거듭해 기사를 썼습니다. 동료들과 의견충돌을 겪는 등 힘들었던 순간도 많았지만 그를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해결해나가면서 공동체내 의사소통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었습니다.또한 매주 월요일 학교신문을 기다리는 독자들과의 약속을 어기지 않기 위해 제게 주어진 일을 사에서 세계 곳곳에 환하게 불을 밝히는 주역이 되고싶습니다.국민*행지원동기국가 경쟁력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 중 하나가 바로 금융시장입니다. 즉, 금융산업은 국가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기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입니다. 이처럼 오래 전부터 금융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해오던 저는 대한민국 금융권을 앞장서 이끌어가는 전문 금융인이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그 꿈을 이루기 위해, 현재 1만 4천여명의 회원을 보유한 '은행취업하자' (cafe.daum.net/forbank) 라는 다음카페에서 3여년 동안 운영자로 활동하면서 은행에 관한 자료를 수집했고 저와 같이 입행하고자 하는 사람들과 정보를 교환해왔습니다. 그 카페를 통해 알게된 여러 은행에 근무하고 계신 선배님들로부터의 조언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국민은행은 저희 아버지의 주거래 은행이기 때문에 더욱 친근하게 다가온 것 같습니다. 따라서 서민들이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은행, 그를 통해 고객만족을 실현해나가는 은행이 바로 국민은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국민은행은 국내 최대 규모일 뿐 아니라 아시아 10대 은행 중 하나로 선정될 만큼 세계시장에서 그 파워를 자랑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더욱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입행지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글로벌 시대에 대비한 영어실력과 학보사 활동 및 인턴쉽을 통해 쌓아온 인적 네트워크, 포기할 줄 모르는 끈기 등을 바탕으로 국민*행 기업금융를 잘 해나가리라 확신합니다.입사 후 계획캐나다 어학연수 시절, 제가 머물렀던 밴쿠버의 다운타운에 CIBC 나 HSBC와 같은 외국계 은행의 지점이 여러개 자리잡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 문득 '왜 우리나라 은행은 없을까?'라는 궁금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얼마전 신문을 통해 대부분의 국내은행들이 해외진출을 모색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특히 국민은행은 외환은행의 인수를 통해 해외시장 진출을 목적으로 태스크 포스팀을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해외진출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할줄 모르는 대학생들이 고추 줄대기, 김매기, 모내기 등을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런 탓에 실수도 많이 했지만 농번기의 힘듦을 조금이라도 함께 하려는 마음으로 농민들의 힘이 되고자 노력했고, 농활을 끝낼 무렵 농민들과 느낀 교감은 그 어떤 것보다도 값진 노력의 댓가였습니다.그렇게 농촌의 포근함을 느끼기도 했던 반면, 마을어른들의 얼굴에 간간히 보이던 한숨과 근심은 저로 하여금 농촌의 현실을 직시하게 하였습니다. 불안한 농촌의 미래와 농민들의 어려운 재정상황등을 몸소 절감했기에, 농활에서 돌아온후에도 농촌문제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고, 농촌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없는지 한번 더 생각해보는 마음가짐을 갖게 되었습니다.귀하가 지원한 동기와 농협발전을 위해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기술해 주십시오.아무리 산업이 발전했어도 농업은 한 국가의 근간이 되는 산업입니다. 식량의 안정적 생산과 공급은 그 국가의 경제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전라도는 농업의 비중이 큰 지역으로서 저는 20년이 넘는 기간동안 전라도에서 살아왔기때문에 우리지역 농민들이 얼마나 열악한 상황에 있는지 직접 느낄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농활을 통해 불안한 지역농촌의 미래를 직접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최근의 농산물 개방 압박은 우리 농업에 있어 위기임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위기가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근본적인 농업경쟁력을 갖춰 더 넓은 세계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농업이 경쟁력을 확보해 세계시장으로 나아가도록 지원해줄수 있는 유일한 기관은 바로 농협입니다. 농협에 입사하게 된다면 단순히 보조금을 지급하기보다 농업의 경쟁력을 높일수 있는 근본적인 방안을 강구해 농촌을 살리는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일례로 차별화된 농산물을 특화시켜 판매하는 벤처농업과 같은 농업비즈니스의 강화가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농업은 충분한 발전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라도의 농업이다.
    취업| 2009.07.17| 9페이지| 3,000원| 조회(1,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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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학]제도학파
    제도학파1. 제도학파제도학파는 19세기 후반 베블렌에 의해 시작되어 콤먼즈, 미첼등이 계승, 발전시킨 주류경제학에 대한 비판적 사상에서 구성된 경제학파이다. 특히 베블렌은 괴팍스러운 인물로서 그에 대한 평가는 아직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2. 시대적 배경미국은 이민의 나라로서 이곳으로 이민 오는 것은 본국에서 살기가 어렵고 압박을 받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의 사회풍토는 자유와 평등을 기초로 하고 있다. 그리고 구대륙으로부터의 탈출은 곧 자유로운 생활과 생업에 종사할 수 있는 권리를 추구하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자유방임주의가 기본권으로 정착되었다. 그러므로 본질적으로 미국의 경제풍토는 유럽과는 다른 데도 불구하고 유럽의 경제학을 그대로 답습해서 미국의 현실을 설명하려고 했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다. 미국의 현실을 설명할 수 있는 합리적 인식의 틀을 필요로 하였기 때문에 베블렌은 폭넓은 지지와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 그 당시 미국은 남북전쟁이 끝난 뒤 대륙횡단철도를 건설하고 신속한 산업혁명이 추진되던 때였다. 따라서 자본축적의 진행에 따른 신흥부호들의 과시소비가 극심하였고 이에 대한 대중의 혐오감이 가중되기 시작하였다. 또한 자본축적이 진행됨에 따라서 대기업의 시장지배도가 높아졌고 횡포가 심화되었다. 특히 자본주의의 특성인 경기변동에 따라서 불경기가 될 때마다 중소기업이 도산하고 대기업이 이를 흡수, 합병함으로써 대기업들은 생산비의 증가를 소비자에게 전가시킴으로써 소비대중과의 관계가 악화되기 시작하였다. 그러한 시대적 상황은 베블렌으로 하여금 기업론을 쓰게 하는 바탕이 되었다.3. 제도학파의 경제이론제도학파의 기본적인 사상의 특징은 전체론과 진화론이었으면 이에 따른 경제이론의 기본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은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첫째, 사회의 변화에 대한 이론으로서 제도가 경제실적 및 제도의 변화과정에 미치는 영향을 중점적으로 연구하며, 제도를 주어진 것으로 보지 않고 인간이 만들어낸 것으로서의 변화될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둘째, 사회통제와 집단선택에 관한 이론으로서 권력구조와 개인과 소집단의 사회적 행위의 원인가 결과를 분석하고, 경제가 조직되고 통제되는 형태를 분석하며, 제도의 형성과 운용문제를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따라서 주어진 기회들로부터의 선택문제에 중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기회를 형성하는 문제에 초점을 맞추며, 구속을 받지 않는 시장의 자유를 주로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와 통제가 복합된 형태를 주로 연구하였다. 바꾸어 말하면 실제적인 기회와 자유가 형성되는 통제체제가 형성과 운용의 문제를 주로 분석하고 있는 것이다.셋째, 정부가 경제적 역할에 대한 이론으로서 그들은 이를 하나의 기본적인 사회과정으로 보고 있는데, 정부와 다른 중요한 경제제도는 이 사회적 과정을 통해서 형성되고 개정된다고 한다. 따라서 정부와 법률과 권리체계를 주어진 외생변수로 보는 것이 아니라 독립적이면서도 종속적인 중요한 경제적 변수로 취급하였다.넷째, 기술에 관한 이론으로서의 기술이 모든 자원의 상대적 희소성을 결정한다고 한다. 기술은 또한 경제구조와 경제운용을 전개하는데 기본적인 요인이 될 뿐만 아니라 산업화의 논리적인 기초가 된다.다섯째, 자원을 실질적으로 배분하는 것은 시장이 아니라 조직적인 사회구조, 즉 제도와 권력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제도학파의 경제이론의 기본원칙이다.마지막으로, 가치의 개념을 강조하여 가격을 능가하는 여러 측면에서의 가치의 개념을 도입하고 있다. 즉 사회생활의 습관에 의해서 주어지는 결과로서의 가치와, 인간과 사회의 생활과정상의 초자연적인 개념으로서의 실용적이고 주관적인 가치 및 사회의 권력구조의 기초가 되고 권력구조를 만들어내는 법률의 시행규범에 결과로서 잠재되어 있는 건설적인 가치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제도학파의 경제학자들은 정통학파의 경제학자들과는 달리 가치를 주어져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변화되는 것으로서 그 변화과정을 분석하고 있다. 즉 가치란 어디서부터 발생하고, 어떻게 검증되며, 어떻게 변화되는가 하는 문제가 그것이다. 따라서 제도학파의 경제학자들은 개인주의적 방법론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제도적인 체계 없이 균형과 최적 및 순수경쟁시장에 의해서 구성되는 모델에서의 수수께끼 같은 연구를 부정하려고 하였다. 그 대신 그들은 기업과 정부와의 관계 및 경제발전의 조건들과 같은 현실세계의 경제문제를 이론적이고 경험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정부나 권리와 같은 경제적 변수가 개념적인 수준에서 취급되는 한 확실한 방법으로 경제를 분석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다.4. 제도학파 경제학자1) 베블렌(1857-1929)그는 위스콘신 카토라는 조그마한 마을에서 노르웨이 이민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어릴 때 미네소타로 이주하였다. 특히 그는 인류학에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그의 저서에 보면 인류학 측면에서 경제현상을 보았다. 그는 여러 대학교수로 전전하다가 별루 인기가 없어서 캘리포니아에 은거하여 여생을 보냈다.베블렌의 사상을 요약해서 보면 세 가지의 흐름으로 볼 수 있다.첫째, 진화론적 인식의 틀을 가지고 인간사회를 생태학적으로 계속 변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것이 발전이냐 후퇴냐 하는 주관적인 판단을 하기에 앞서서 계속적으로 사회가 변천해 나간다는 것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둘째, 경제의 발전에 있어서 역사성을 중요시하였다. 특히 역사발전에 있어서 소유권과 경제체제의 변화가 절대적 역할을 하였다는 사실을 중요하게 보았다.셋째, 그는 유토피아적 무정부주의를 신봉하고 있었다. 이것은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의 개념과 통하는 것으로서 그의 성장과정에서부터 비롯되었을 것이다.2) 콤먼즈(1862-1945)콤먼즈는 경제이론가로서보다는 경제개혁의 실행자였다. 그는 반독저멉 및 공공사업법규를 제정하였고, 노동자들의 후원자였다. 그는 순수한 재도주의 학자라기보다는 제도의 운영에 관심을 갖고, 그 제도들이 사유재산, 법률 등에 의해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에 대해 연구하였다. 그는 법률을 경제체제의 제약요소로 보고 정부가 경제행위를 규제해서 경제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는 정부규제의 경제이론을 제시하였다. 즉, 시장의 형태와 효과는 효율성과 사회정의를 기준으로 판정할 수 있다. 그런데 그 기준은 법률과 판례에 따라 영향을 받게 된다고 보았다.
    경영/경제| 2006.05.19| 3페이지| 1,500원| 조회(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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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니메이션]미야자키 하야오
    ♠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 목 차 -1. 시작하는 말2. 미야자키 하야오의 발자취3. 작품세계1) 1980년대2) 1990년대3) 2000년대4. 작품들의 특징5. 작품의 사상6. 끝내는 말1. 시작하는 말“미래의 시작은 언제나 ‘즐거운 상상’에 있다.”일본 애니메이션계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가 남긴 명언중 하나이다.사람들을 신비한 애니메이션의 세계로 이끌고 그곳에서 그들로 하여금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하는 미야자키다운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 일본어 선생님이 미야자키 하야오의 ‘천공의 성 라퓨타’를 틀어주신 적이 있다. 아마도 그때부터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의 매력에 빠진 듯 하다. 그의 작품은 되도록이면 모두 보려고 노력했고, 2년 전 일본 배낭여행을 갔을 때도 그가 만든 지브리 스튜디오를 방문함으로써 그의 작품의 발자취를 더듬어보고자 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미야자키 하야오는 어떤 인물이고 그의 작품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자.2. 미야자키 하야오의 발자취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만화가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다. 그는 제2차대전이 끝나기 얼마전인 1941년 1월5일 도쿄에서 태어났다. 큰아버지가 경영하는 비행기 회사에서 공장장으로 근무하는 아버지 덕분에 부유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고등학교 때 이미 애니메이션을 만들기로 결심한 그는 학습원대학 정치경제학부에서 일본 산업론을 전공했다. 미야자키는 대학 재학시절 만화연재를 시작했는데, 그것을 실은 매체는 일본 공산당의 기관지인 “아카하타(赤旗)”였고, “사막의 백성”이라는 제목의 SF와 마르크스주의를 결합시킨 만화였다.1963년 대학 졸업 후에는 도에이 동화에 입사해 애미메이터가 되는데, 입사이유는 미국의 디즈니에 대항하는 애니메이션을 일본에서 만들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는 연수를 마친 후부터 “멍멍이 충신장”, “걸리버의 우주여행” 등의 작품에서 동화를 담당했다.이 즈음 소련의 장편 애니메이션 “눈의 여왕”을 보게 되고, 자신의 길에 확신을 얻는다. 그곳에서 미야라는 장편 만화영화의 제작에 주요멤버로 참여하여 당시 상업 만화영화로서는 획기적인 여러 실험들을 한다. 그러나 너무 왕성했던 열정과 회사와의 마찰로 인해 제작이 지연되었고, 결국 흥행에서도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그러나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대모험”은 기존의 만화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인간 내면심리의 묘사, 군중 드라마, 일반 민중의 생활상의 자세한 묘사 등이 훌륭했으며, 나중의 ‘지브리’ 작품들의 원형이 되었다. 이 작품에서부터 미야자키만화 영화들을 관통하는 이상주의적 주제, 사실적 표현기법을 찾아 볼 수 있으며, 권력과 폭력에 대항한 이상적 사회건설의 희망을 읽을 수 있다.1971년에 다카하타와 함께 다른 프로덕션으로 이적한 후인 1978년 TV 애니메이션 “미래 소년코난”을 통해 연출가로 데뷔를 하였으며,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연출 데뷔는 그로부터 1년 후인 79년에 “루팡 3세”,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일본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정받고 흥행에서도 크게 성공하였다. 같은 해 도쿠마서점의 도움으로 스튜디오 지브리를 설립한다. 스튜디오 지브리를 통해 다카하타 등과 함께 작업한 여러 편의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고 작품성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음으로써 지브리 애니메이션들은 자신들만의 독특한 주제와 형식을 통해 저패니메이션(Japanimation)의 한 축이 되었고, 이 때부터 만들어진 미야자키의 장편 만화영화들은 높은 완성도와 깊은 주제의식으로 일본뿐만 아니라 전세계 애니메이션 매니아들을 사로잡게 된다. 86년 “천공성 라퓨타”, 88년 “이웃의 토토로”, 89년 “마녀 우편배달부”, 92년 “빨간 돼지” 등 스튜디오 지브리 설립 이래 그의 작품들에도 사실적 표현기법을 통해 이상주의적 주제를 현실화시켜내는 그의 작업은 완숙함의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그리고 97년 여름에 발표된 미야자키 하야오의 “모노노케히메”(원령공주) 는 제작비 20억엔, 제작기간 3년, 작화 장수 14만4천장 등 일본 애니메이션 역사상 여러 부문에서 신기록을 수립하였다. 특히 제작의 기술적인 001)' 은 일본에서 2400만명의 관객을 동원, 일본 열도에 미야자키 하야오 신드롬을 불러 일으켰으며 베를린 국제 영화제 최우수 작품상과 아카데미 영화제 최우수 장편 애니메이션 대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3.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세계1) 1980년대① 1984년작 “바람의 계곡 나우시카(風の谷のナウシカ)”-폐허가 되어 버린 지구, 도시문명사회에서의 자연의 분노를 통한 거대 도시사회에 대한 경고를 주제로 하고 있다. 자연 을 사랑하는 소녀 나우시카의 활약과 헌신적인 희생이 소왕 국 '바람 계곡'을 전설의 재앙에서 구해낸다는 내용으로 인간 의 이기주의나 환경문제 등 현대사회의 문제점에 접근한 작 품이다. 사실상의 지브리 스튜디오의 시작이 된 작품으로 볼 수 있다② 1986년작 “천공의 성 라퓨타(天空の城ラピュタ)”- 제3장에 나오는 '공중섬 라퓨타 제 국'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미야자키가 자신의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연출력을 결합시켜 만든 모험활극의 초호 화대작 관객이 잠시도 화면에서 눈을 땔 수 없을 정도 의 강렬하고 스펙타클한 액션이 주를 이룬 전반부와는 달리, 후반부에는 기계문명, 독제체재 비판이라는 무거 운 테마성을 더하여 모험활극 으로는 이례적으로 매우 심도 있는 작품성을 보여준다.③ 1988년작 “이웃집 토토로(となりのトトロ)”-멋진 전원 풍경속에서 시골로 이사온 사 츠키와 메이 자매가 숲의 정령인 토토로 와 만나면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중심으 로 동심을 표현했다. 다분히 일상 생활적 인 소재지만 어디에서도 보지 못할 작은 아름다움이 숨어 있는 애니메이션으로 1960년대 일본의 농촌을 배경으로 어린 자매와 숲의 정령들의 교류를 그린 미야 자키 감독의 대표작이다.④ 1989년작 “마녀배달부 키키(魔女の宅急便)”-카도노 에이코 (EIKO KADONO)원작의 아동문학을 애니메이션화한 작품. 자유스럽 고 고급스런 미야자키의 공중 비행묘사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작품으로 20세기 초 의 마녀의 생활을 그렸다. 어린 마녀라고 보기보다 작은 소녀가 도시생활에 파일럿의 낭만 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비행대활극 이다. 하늘에 대한 미야자키의 동경이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표현된 애니메이 션으로 볼 수 있다. 1920년대를 배경으 로 인간에 대한 무관심으로 돼지의 얼굴 을 한 남자 주인공이 자존심과 여인과 돈을 걸고 결투를 벌인다. 결투는 승리 로 끝나는데 과연 그의 마법도 풀리게 될 것인가.② 1997년작 “원령공주(もののけ姬)”원령공주, もののけ姬-제작비 20억엔, 구상기간 16년, 제작기간 3년, 작화 장수 14만 4천장 등 일본 애니메이션 역사상 전무후무 한 최대의 작품이다. 야마토 조정으로 상징되는 중세권력 의 성립 후 몰락해 가는 고대 신화의 세계를 배경으로 귀 신의 저주를 받게 된 주인공이 자신이 저주받은 이유를 확인하려는 여행을 떠나고 그 여정에서 들개에 의해 키워 진 소녀를 만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のけ姬3) 2000년대 작품① 2001년 여름 개봉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치히로는 유복한 가정에서 따뜻한 보살핌을 받으며 자란 10세의 소녀이다. 부모와 함께 이사 갈 새로 운 집으로 향하던 치히로는 길을 헤매다가 '불가사의 한 마을(不思議の町)'에 도착하게 된다. 치히로의 부모 는 이 이상한 마을의 규율을 어겼기 때문에 돼지로 변 해 버리고, 치히로는 부모를 구하기 위해 그곳을 지배 하는 마녀에게 복종하며 온갖 시련과 싸워 나간다. 일 하지 않으면 돼지가 된다는 마을의 규율 때문에 마을 중앙에 있는 목욕탕에서 열심히 일하는 치히로의 마 음속에서는 잠자고 있던 생명력이 조금씩 눈을 뜨기 시작한다. 올해 개최된 52회 베를린국제 영화제에 서 애니메이션으로는 최초의 최우수 작품상인 황금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② 2002년 개봉 “고양이의 보은” (猫の恩返し: The Cat Returns)-일상 속에서 지루함을 느끼던 17살의 여학생 하루는 한 마리의 고양이를 차도에서 구해준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고양이는 고양이 세계의 왕자였던 것. 그리하여 하루는 고양이 세계에 가게 되고 고양이 왕에 의해 왕자와 결버지의 모자상점에서 쉴틈없이 일 하는 18살 소녀이다. 어느 날 오랫만에 마을로 나간 소피는 우연히 하울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하울을 짝 사랑하는 황무지 마녀는 두 사람의 사이를 오해, 주문 을 걸어 소피를 90살의 늙은 할머니로 만들어 버린다. 그 후 가족을 걱정한 소피는 집을 나오게 되고 황무지 를 헤매다가 하울이 사는 성에서 가정부로 낯선 생활 을 시작하는데 그 거대한 성은 사람들이 그토록 무서 워하는 ‘움직이는 성’이었다. 4개의 다리로 걷는 기괴 한 생물 ‘움직이는 성’ 안에서 하울과 소피의 기묘한 사랑과 모험이 시작된다.4.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의 특징① 히로인미야자키의 작품에는 유난히 여성 캐릭터가 많이 등장한다. 가장 최근작들만 살펴본다 하더라도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소피,’ 고양이의 보은에서의 ‘하루,’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의 ‘센’ 모두가 여성이 주인공으로 나타난다. 언제나 그들은 문제를 풀 열쇠를 쥐고 있고 남자 이상의 능력을 발휘한다. 그들의 특징은 외적으로 청순가련하지만 내적으론 강인함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마음속에 무언가를 숨기고 있거나 왠지 불행한 상황 하에 놓여있다. 그리고 오직 남자주인공만을 사랑한다. 이러한 특징은 일반적인 남성들이 바라는 여성상이라는 점이다.②비행그가 특히 하늘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실제로 그의 모든 작품에 하늘이 관련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도 소피가 타는 배(성)는 바다가 아닌 하늘을 날아서 이동을 한다. 붉은 돼지의 경우를 보더라도 대부분의 이야기가 하늘에서 전개가 되곤 한다. 그가 하늘을 좋아 한다는 사실들이 작품 속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과거 최대한 컴퓨터 그래픽을 사용을 자제하였던 미야자키는, 뛰어난 색채감과 공간감으로 그만의 독특한 비행장면을 연출한다.③메카닉미래소년 코난의 로보노이드나 명탐정 홈즈의 스팀카, 천공의 성 라퓨다의 플랩터 등 그의 작품에는 수많은 기계들이 등장한다. 그가 그려내는 기계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도구"있다.
    예체능| 2006.05.19| 8페이지| 1,000원| 조회(1,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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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사] 영화 분노의 포도에 나타난 미국 대공황기 농업 평가B괜찮아요
    보 고 서제 목: 영화 ‘분노의 포도’에 나타난 미국 대공황기 농업과 목 명:영화로 보는 세계경제사학 과:경영학부학 번:200110443이 름:허자현제 출 일:2003년 6월 2일담당교수:홍덕기 교수님♤목 차♤1. 서론-영화 ‘분노의 포도’에 나타난 대공황기 상황2. 본론(1)대공황이란(2)대공황의 원인(3)대공황기 농업의 상황(4)뉴딜 정책3. 결론-대공황이 주는 시사점♤요 약♤제 1차 세계대전은 미국경제의 엄청난 팽창을 초래했다. 세계대전의 발발로 말미암아 세계최대의 금 보유국이 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경기팽창이 뒤따랐다. 그에따라 생산성은 본격적으로 상승하고 고용수준도 높았으며 각종 가격은 안정적이었다. 뿐만 아니라 식민지 종속국에서도 농산물과 원료생산이 크게 늘어났다. 자본가들은 눈부시게 발전한 기술 덕분에 노동력을 절약하는 새로운 기계를 들여왔다. 그래서 상품 생산은 빠르게 늘어났다.하지만 소비자의 구매력은 그것을 다 소비할만큼 빨리 성장하지 못했다. 이렇게 되자 팔리지 않은 농산물과 원료가 창고에 쌓였고, 1920년대 중반 동유럽,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중남미, 아시아 등 전세계에서 농산물의 생산과잉으로 가격이 폭락하는 농업공황이 시작되고 있었다. 농산물 가격은 절반 이상 하락해 많은 자작농이 토지를 저당잡히거나 또는 소작농으로 몰락했으며 국내의 구매력은 격감했다.농산물의 가격은 점차 떨어져 소맥의 가격이 1부대당 1925년 144센트, 26년 122센트, 27년 119센트, 28년 100센트로 지속적으로 하락했고 면화 역시 1파운드당 22.9센트에서 29년에는 18센트까지 하락했다. 하지만 과소소비경향은 전세계적인 농업불황과 농가소득의 감소에 의해 더욱 확대되는 등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1922년부터 1929년까지 자본가의 이윤은 30%증가했지만 노동자들의 임금은 평균 10% 증가했다는 ‘빈익빈 부익부’의 자본주의 원리도 과소소비에 한몫했다. 농업공황이 비단 농업부문에만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다. 농산물과 원료가격이 떨어지자 자본가들은 임금을 더다. 이윽고 농산물 가격은 올랐으며 농민들의 경제적 안정은 가능한 것으로 보이기 시작했다.1. 서론-영화 ‘분노의 포도’에 나타난 대공황기 상황영화 ‘분노의 포도’는 존 스타인벡의 소설을 존 포드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영상으로 옮긴 리얼리즘 계열의 영화다. 존 포드 감독은 대체로 미국 정통 서부극의 거장으로 일컬어지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을 드러낸 ‘분노의 포도’와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는 영화의 완성도나 그 주제 의식에 있어 관객들과 전문가들의 높은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영화의 배경은 1930년대로, 1935년부터 1938년까지의 기간 중에 강한 바람과 황진폭풍 등이 미국을 휩쓸었다. 특히 황진지대로 알려진 남부지방의 기계들은 파괴되고, 사람들과 동물들은 상처를 입었다. 1930년대와 1940년대에, 흔히 ‘오우키즈’(1930년대의 오클라호마 주출신의 뜨내기 농부들)라고 불리우는 약 80만명의 농업노동자들이 오클라호마 주는 물론 아칸소 주, 텍사스 주, 미주리 주 등을 떠나 캘리포니아로 이주했지만 그 곳은 그들이 상상한 꿈의 땅은 아니었다. 영화 ‘분노의 포도’의 주인공인 조드 일가 역시 그 시대 이주농민 가운데 하나다.캘리포니아에 가면 오렌지나 포도를 따는 일자리가 많다는 전단지를 보게 된 톰의 가족 조드 일가는 낡은 트럭을 구입해 캘리포니아로 떠난다. 그들에게 캘리포니아는 오렌지와 포도가 가득한 이상향 같은 곳으로 여겨진 것이다.일자리가 넘치는 곳 캘리포니아를 향해 톰의 가족 열 두 명은 트럭에 몸을 싣는다. 그러나 낡은 트럭에 의지한 채 계속되는 먼 여행에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심신이 지쳐 숨을 거두게 되고 톰의 동생은 어디론가 도망가 버리고 만다. 톰은 늙어 기력이 쇠해진 그의 아버지를 대신해 낡은 트럭을 몰며 미지의 땅으로 가족들을 선도해가는 가장 역할을 수행한다. 조드 일가와 비슷한 처지의 농민들이 낡은 트럭에 가재도구와 식구들을 가득 태우고 먼지 자욱한 도로 위를 끝없이 차량의 행렬을 이뤄 전진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압권의 장하락, 실업증가 등이 확연하게 나타나는 현상을 의미한다. 29년 10월 24일 뉴욕 월가(街)의 ‘뉴욕주식거래소’에서 주가가 대폭락한 데서 발단된 공황은 가장 전형적인 세계 공황으로서 33년말까지 거의 모든 자본주의 국가들이 여기에 말려들었으며, 여파는 39년까지 10년 동안 이어졌다.제1차 세계대전을 겪은 미국 경제는 많은 산업 분야에서 급속도로 독점 자본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 독점 자본들은 물가 수준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지경에 이르렀고 이로써 미국 경제는 심한 가격 경직성(硬直性)을 보여 주었다. 이 때문에 자본 시장에도 동맥 경화증이 생겨 과거처럼 자금이 자유롭게 중소기업들로까지 흘러가지 않고 있었다. 이 때 금융 기관들은 전처럼 신용 확대라는 중요한 기능을 원활히 수행하지 못했다.미국 경기가 후퇴하기 시작했던 것은 1927년이였다. 먼저 주택 건설 시장이 좋지 않아졌다. 그리고는 자동차, 라디오 등 고가품 내구 소비재 시장에 불황이 닥쳤다. 그럼에도 뉴욕 주식 시장에서의 주가는 실물 경기와는 상관없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자금을 대중으로부터 긁어모은 금융 기관들이 이를 주식에 투자하여 자본 이득을 올리고 있었고, 신디케이트, 금융 기관 연합 등이 주식 시장에서 대규모 투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가는 끝없이 올랐다. 이때 주식 시장을 떠받치고 있던 자금은 허황되게도 비정상적으로 팽창한 중개인 융자 -약 60억 달러 수준이었다- 였다.)미 연방 준비 은행은 1928년에 주식 가격의 이상 등귀에 놀라 공정 할인율을 인상하고 은행 대부를 억제하는 등 투기 억제 정책을 취했으나 금융권에만 효과를 미쳤을 뿐 일반 대중들에게는 아무런 효험도 없었다. 1928년 후반 뉴욕 금융 시장에서 주식 가격의 상승, 자본 이득의 증가 등에 자극되어 해외에 투자했던 미국 자금도 빠르게 회수되어 주식 시장에 투입되었다. 거기다가 뉴욕의 이자율이 런던에서의 이자율을 상회하게 되면서 단기 투기성 자금까지 런던에서부터 뉴욕으로 몰리게 된다.그러나 1929년 9월 26일 잉 이백만 명에 달해 인구의 거의 25%가 생존 능력을 상실했다. 인구성장률, 높은 이혼률, 범죄, 육체적 정신적 불건강 그리고 자살률을 살펴보면 대공황기 사회가 얼마나 불안정했는지 알 수 있다.) 사람들 눈앞에 아사(餓死)의 망령(妄靈)이 나타났다.“쓰레기와 다른 폐기물들을 내리고 있는 트럭 주위에 약 35명의 남자와 여자 그리고 어린애들이 몰려들었다. 트럭이 쓰레기를 내리고 떠나자 그들 모두는 막대기 또는 손으로 식품 및 채소 쓰레기를 파헤치기 시작했다”라고 한 보고서에서 1932년 시카고 쓰레기 집하장의 모습을 묘사했다.)(2)대공황의 원인지금까지 대공황의 원인에 대해서는 많은 이론들이 제기돼 왔으나 가장 일반적으로 케인즈의 ‘유효수요 부족설’과 프리드만의 ‘정부의 갑작스런 통화량 감축’ 두 가지 이론을 꼽을 수 있다.유효수요 부족이란 많은 공급량에 비해 국민들의 구매력이 낮아 공급량을 모두 소비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1차 대전 당시 미국은 무기 등 제반 생산품을 과대하게 생산해 다른 나라에 팔았으나 전쟁이 끝나자 재고가 쌓이게 되었고, 유럽에서도 스스로 생산을 해내는 등 미국의 시장은 급속히 줄어갔다. 유럽의 수출시장이 침체됨에 따라 미국은 보호무역주의로 선회하였고 또한 여타 농산품 수출국들의 경쟁력이 강화되어 미국 농업 제품 수출이 급격히 감소하였다. 곡물의 세계시장가격의 하락과 더불어 국내에서 농산품 교역조건이 악화되고 이에 따라 토지가격도 하락하여 농업부문에서 수요확대가 바람직하게 진전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소비성향이 낮은 부유층에 소득과 재산이 집중되면서 사회전반의 소비수준이 떨어지게 되었으며 부동산 및 주식시장의 붕괴가 자산의 실질가치 하락을 가져와 그 역시 소비수준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되었다. 그 외 주택건설과 내구소비재 수요가 포화상태에 이르러 더 이상의 유효수요증가가 어려웠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케인즈의 주장은 수정자본주의가 발생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그에 비해 고전학파인 밀튼 프리드만은 대공황의 원인이 정부당국의 긴축적 통화정책이 아르헨티나, 캐나다에서 밀 생산에 종사하는 사람 중에는 생산증대에 따른 이익을 계산하고 경지와 농업기계를 늘리는 등 막대한 자금을 꾸어들이는 농민도 많았다.대전(大戰) 후에도 농민은 생산량을 줄이지 않았는데 1920년대 초의 미국 및 캐나다의 곡물 생산량은 전쟁 전보다 1/6정도 많을 뿐이었으나 20년대 후반에 이르자 전쟁 전 수준의 1/3이나 초과하고 있었다. 그런데 유럽 자체의 밀 생산은 급속히 회복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설상가상으로 수요는 감소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옛날보다도 유제품이나 고기, 과일을 더 많이 먹는 반면 빵을 줄이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1929년에는 팔고 남은 밀의 잉여 생산량이 1,590만톤에 달해 전 세계의 밀 생산자가 생산과잉으로 큰 위기에 처했다. 다른 작물의 생산자도 같은 위기에 처해있었다. 면화(棉花), 양털, 옥수수, 코코아, 커피의 생산량 역시 계속 상승하고 있었던 것이다.생산량이 급격히 증대된 데에는 공업의 발전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트랙터와 같은 농기구의 개발과 더불어 동인도 제도에는 대규모 고무농원이 생김으로써 고무의 생산이 증대되었으며 자바에 대한 과학적 개발이 이루어져 사탕 산출량이 대폭 늘기도 했다. 근대과학의 놀라운 성과가 과잉생산과 가격의 저하를 초래한 것이다. 이렇듯 과잉생산으로 인해 팔리지 않은 농산물과 원료가 창고에 쌓였고 중서부에서는 가축의 사료를 살 돈이 없어 소의 젖을 낼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또 캘리포니아에서는 오렌지 공급을 줄이기 위해 농장주들이 멀쩡한 오렌지에 석유를 뿌려 썩게 하는 일도 다반사였다.이는 비단 미국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브라질 커피는 1파운드당 23센트에서 8센트까지 떨어졌고, 위에 언급했듯 중앙아메리카에서는 사탕이, 인도네시아에서는 고무가, 이집트에서는 면화가, 일본에서는 비단이,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양모(羊毛)가 각각 대폭으로 내렸다.즉, 1920년대 중반 국제시장에서는 농산물 가격이 절반으로 떨어지는 등 농업공황이 전 세계를 휩쓸었던 것이다. 192렬했다.
    경영/경제| 2004.11.24| 10페이지| 1,000원| 조회(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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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무역] 경제통합의 추세 및 한칠레 사례 분석 평가B괜찮아요
    경제통합의 추세 및 한·칠레 사례 분석과 목: 무역정책론이 름: 허자현학 번: 200110443담당교수: 김태기 교수님★ 목 차 ★1. 경제통합의 단계2. 경제통합의 경제적 효과3. 경제통합의 세계적 현황4. 90년대 이후 경제통합 확산의 추세 및 배경5. 한-칠레 자유무역 협정 사례분석{1. 경제 통합의 단계(1)무역특혜 협정협정회원국간의 무역에 대하여 비 회원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무역장벽을 유지하는 초기 단계의 경제 통합 형태 ( 1932년 영국의 영연방 특혜제도 )(2) 자유무역협정협정회원국 사이의 무역에 대해서는 관세 및 비관세장벽을 철폐하는, 무역특혜 협정보다는 강화된 경제 통합 형태이며 비 회원국에 대해서는 각 회원국들이 독 립적으로 관세 및 비 관세정책을 유지 할수 있다. (1960년 유럽자유무역연합 ,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3) 관세 동맹동맹국 사이의 무역에 대해서는 관세 및 기타의 제한 조치를 일체 취하지 않는 동시에 비 동맹국과의 무역에 대해서는 동맹국 전부가 동일한 관세율로 대응하는 경제통합 형태 ( 1957년 유럽경제 공동체EEC )(4) 공동시장관세 동맹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가맹국간의 재화와 용역의 자유무역에 그치지 않고 생산요소까지 자유로이 이동할 수 있는 경제 통합형태이며 공동시장에서 4 가지 자유란 재화, 용역, 노동, 자본의 자유이동을 의미 한다.(5) 경제 동맹경제통합정도가 가장 심화된 단계로서 동맹국들은 금융, 재정 및 조세정책을 조 화시키며 극단적으로 화폐동맹까지도 이루는 형태(1960년대 베네룩스 경제 동맹, 유럽연합 EU )2. 경제 통합의 효과(1)역 내국의 경쟁력 강화에 기여역내국은 통합으로 인한 역내교역의 확대뿐만 아니라, 규모의 경제효과, 투자 증대, 기술 진보, 자원의 효율적 이용 등으로 인해 경쟁력과 대외 교섭력이 강화 되고 수출기회도 확대될 것이다.그러나 역 외국의 경우 역내시장에서의 상대적인 차별조치로 인해 불이익을 받을 것이며, 또한 중장기적으로 역 내국의 경쟁력이 강화될 경우,, 에스파냐(스페인) 포르투갈, 룩셈부르크, 벨기에, 영국, 네덜란드입니다.신규 가입 대상국사이프러스, 체코공화국, 에스토니아, 헝가리,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몰타, 폴란드,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2)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유럽이나 북미지역에 비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지역경제블럭의 형성이 상대적으로 부진하다. 이러한 부진의 원인으로는 이 지역에 아직 남북한 문제 및 중국과 대만 문제 등의 냉전의 잔재가 남아 있고 이 지역 국가들의 경제규모와 발전정도의 격차가 크고 문화적 동질성도 적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또한 이 지역 국가들의 상당수가 수출주도형 경제발전 모델을 채택해서 해외시장 의존도가 크기 때문에 배타적 지역경제블럭의 형성이 블럭 바깥의 타국에서 보호무역주의로 나타날 우려가 있다는 것도 한 원인이 되었다.그러나 북미와 유럽의 경제블럭이 강화되면서 아시아·태평양에서의 다양한 경제협력의 구상이 제기 되어 왔다. 물론 북미나 유럽에서와 같은 배타적이고 제도화된 경제블럭의 형성 가능성은 단기적으로는 희박하지만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경제블럭이 형성되면 경제적 역동성과 확장하는 시장 규모로 볼 때, 국제무역 구조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실제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는 강력한 경제 블록보다는 보다 포괄적이고 개방적인 형태의 지역경제 협력과 통합의 노력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APEC)이 가장 대표적인 경제협력의 구상이다.APEC은 1989년 한국·호주 정상회담에서 호주의 호크총리에 의해 제안되어 1989년 11월 캔버러 각료회의에서 12개국이 참여한 가운데 정식 출범하였다. 현재 오스트레일리아, 브루나이, 캐나다, 칠레, 중국, 홍콩, 인도네시아, 일본, 한국, 말레이지아, 멕시코, 뉴질랜드, 파푸아뉴기니아, 필리핀, 싱가폴, 대만, 태국, 미국, 러시아, 베트남 및 페루의 총 21개 회원국으로 구성되어 있다.(3) 아세안자유무역지대아세안자유무역지대 (ASEAN Fr대가 창설되었으며 대외공동관세는 1995년 1월 1일부터 발효되었다. 회원국 중 칠레는 1976년 정책이견을 이유로 탈퇴하였으며, 페루는 1992년 적극적인 참여를 유보하였다가 1994년 4월 정회원국 자격을 회복하여 현재 회원국은 볼리비아,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 및 베네수엘라 5개국이다.(8) 카리브공동체 및 공동시장 (CARICOM)카리브공동체 및 공동시장 (Caribbean Community and Common Market : CARICOM)은 1965년 발족되었던 카리브자유무역연합 (CARIFTA)의 후신으로 카리브 지역 국가들의 단일경제통합노력의 일환으로 1973년 8월 가이아나, 자메이카, 바베이도스 및 트리니다드 토바고 4개국이 체결한 '차과라마스 조약'에 의해 설립되었다. 이 후 11개국이 회원국으로 가입하였고 3개국이 옵서버 국가로 참여하게 되어 현재 15개 회원국 및 3개 옵서버 국가로 구성되어 있다. CARICOM은 역내 무역자유화와 공동경제정책 실시를 통한 역내경제통합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고 있으며 이를 위하여 회원국간의 관세 및 수입제한조치의 철폐, 역외공통관세 및 공동무역정책 실시, 산업투자계획의 조정, 특정부문에 대한 공동개발계획의 추진, 외국인투자에 대한 공동정책, 이중과세의 방비, 생산요소의 자유이동, 통화,금융,재정정책의 단계적 조정, 역내후진국에 대한 특별우대조치의 부여 등을 결의한 바 있다.(9) 아랍공동시장1957년 아랍연맹국가들간에 체결된 경제통합협정(Agreement for Economic Unity)은 10년간에 걸친 자유무역지대의 설립을 통한 아랍공동시장(Arab Common Market: ACM)의 창설을 규정하였다. 1965년 발효된 동 협정에 따라 1971년 회원국들간의 관세와 무역에 관한 기타 과세가 폐지되는 등의 성과가 나타났으나, 아랍공동시장의 형성은 아직 달성되지 못하고 있다.(10) 걸프협력이사회걸프협력이사회(Gulf Cooperation Council: GCC)는 1981년 2월 4일 사우디의라 범세계주의를 주창해왔던 미국마저도 경제통합에 의한 국제협력 방식을 선택하기에 이르고 있다.1990년대 이후에 결성된 지역통합의 대표적 예로는 유럽지역의 중부유럽 자유무역협정(CEFTA), 발틱자유무역협정(BFTA), CIS관세동맹(CISCU), 남미의 남미남부공동시장(MERCOSUR), 아프리카의 서아프리카 경제통화동맹(UEMOA), 동남부 아프리카공동체(COMESA), 중동의 아랍자유무역지역 등이 있다. 그 외에도 90년대 이후 세계경제는 지역공동체 창설 붐이 일고 있다. 2005년 남북 아메리카주 34개 나라가 미주자유무역지대(FTAA)가 출범하고 2010년∼15년 사이에 ASEAN-CER자유무역협정이 발효될 예정이며 한국과 일본간 FTA 및 ASEAN-중국 FTA, 싱가폴이 대외 FTA 등은 검토논의가 계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이렇게 90년대 이후 급격히 지역간 경제통합이 늘어나는 것은 1980년대 말과 90년대 초에 걸쳐 진행된 사회주의 국가의 개방과 개혁에 기인한다.소련의 개혁은 헝가리·폴란드를 시발로 동유럽 전체로 확산되고 동·서독은 화폐통합·경제사회 통합에 이어 1990년 10월에는 공식적인 통일의 결실을 거두었다. 공산주의 국가의 조종(祖宗)인 소련은 계획경제체제와 시장경제체제의 혼재속에 경제개혁의 성과부진으로 시민들의 불만이 고조되어 소수민족 공화국들의 독립선언이 이어지고 91년 여름 군사 쿠데타가 시도된 이후 와해되기 시작하여 급기야 소연방 자체의 소멸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미·소 양국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공산주의 세력간의 이념대립은 공산주의의 몰락과 소연방의 해체로 종식되고 동·서간 이념대립 대신 이제는 주요국간의 경제력 경쟁이 20세기를 지배하게 된 것이다.그러한 정세와 맞물려 1990년대 들어서는 국제협력질서가 이념적 대립구조에서 벗어나 경제적 실리추구를 위한 지역주의로 개편되어 왔다. 전통적인 자유주의 무역의 관점에서 경제통합은 지역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역내무역자유화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게 여겨져 왔다. 그것은 FTA 체결 사례(예: 멕시코, EU FTA)가 드물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2) 한·칠레 FTA 협상 경과98년 11월 5일 "대외경제조정위원회"에서 한·칠레 FTA를 추진키로 결정하였으며, 동 위원회에서는 FTA 추진과정에서 농수산업 등 취약산업에 대한 사전 분석을 철저히 하고 협상과정에서 예외인정을 최대한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한·칠레 FTA 추진을 준비하기 위한 실무급 정보교환회의(한-칠레 FTA추진 고위급작업반 준비회의)를 '99년 4월(4.13∼15, 서울)과 6월(6.21∼23, 칠레 산티아고)에 두 차례 개최하여 양국 무역 및 경제제도 전반에 대한 현황을 파악한 바 있다.1>제1차 공식협상제1차 공식협상은 '99년 12월 14∼17간 칠레 산티아고에서 개최되었다. 동 회의에서는 칠레측이 마련한 각 분야별 협정초안(Text)을 중심으로 한-칠레 FTA 체결방향에 대한 양측의 입장을 교환하였고 기준세율은 2000년 1월1일 실행세율을 적용키로 하였다.2>제2차 공식협상제2차 공식협상은 2000년 2월 29∼3.3간 서울에서 개최되었고, 동 회의에서는 양국의 관세양허 안을 상호 교환하고 FTA 협정초안에 대해 논의하였다. 우리측은 공산품의 관세양허 안만을 전달하고 농산물·임산물·수산물에 대해서는 제3차 협상(2000.5.16∼5.19, 칠레 산티아고) 전에 칠레측에 전달키로 하였다. 아울러 FTA 협정문안은 3차 협상시 농산물 관세양허안과 병행하여 검토해 나가기로 하였다.동식물검역분야는 우리측이 재 작성한 초안을 중심으로 협의를 진행하였다. 우리측은 원칙적으로 WTO/SPS규정 범위 내에서 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며, 칠레측은 FTA임을 감안하여 WTO/SPS보다 교역이 더 촉진될 수 있도록 규정(WTO plus)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아울러 FTA에서 원산지 판정기준이 중요함을 고려해 제3국산 농산물의 우회 수입가능성이 최대한 방지되도록 노력하고 있으며 품목별 원산지 판정기준은 차기 협상시 협의키로 하였다.3>제3차 공식협상한·칠레
    경영/경제| 2004.11.24| 20페이지| 1,000원| 조회(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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