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보고서- 기독교와 현대사회 -이름 :학번 :소속 :담당교수 :1) 에코페미니즘은 무엇이며 왜 필요한가를 알아본다 (래디컬 에콜로지 8장 및 에코페미니즘과 신학 1장을 읽고 이에 기초해 작성) (1 면)현재 지구의 생태계 위기는 매우 심각하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지금과 같은 상태로는 그 위기가 개진될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러한 의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마땅한 대안을 찾지 못한 채로 바로 앞에 닥친 자신들의 일에만 치여 그 위험성을 간과한다. 우연치 않게 이번 전현식 교수님의 기현사 수업을 듣기 전 까지는 나도 그런 사람들 중에 하나였다. 거의 한학기 수업을 마감하는 이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주제는 역시나 에코페미니즘이다. 에코페미니즘은 류터에 따르면 생태학과 여성학, 특히 깊은 생태학과 여러 형태의 여성학이 통합된 이론 및 실천)을 말한다. 이 세계의 지배논리인 남성의 여성억압과 인간들의 자연착취 사이의 상호연결을 문화와 사회 속에서 찾아내 힘과 경쟁에 따른 지배관계를 지양하고, 조화와 협동을 통한 상호공존에 기초한 관계를 지속시키는 의식을 가지는 것이다. 또한 유사한 개념의 생태여성론은 프랑수아도본이 만든 용어로 지구를 구하기 위한 생태혁명을 여성들이 이끌 것을 주장한 학설이다.지금 이 세계가 봉착하고 있는 가장 큰 종말의 위기의 원인은 이분법적인 사고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자연의 지배자라고 여기고 자연을 지속 불가능하도록 사용하는 상황이나 남성이 여성보다 뛰어나다고 여기고 여성에 대한 지배를 당연시하고 성차별을 세속해온 인류의 발전과정이 모두 그런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비롯되었다. 전 세계에 만연해온 이런 기존의 사고방식으로는 지금 인류가 처한 갈수록 악화되는 위기상황을 막아 낼 수 없다.여기에 가장 주목받고 실현가능한 방법이 바로 에코페미니즘의 내면화일 것이다. 남성과 여성, 인간과 자연과의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는 여성학으로는 자유주의 여성학, 사회주의 여성학, 급진주의 여성학이 있다. 이중에서도 나는 사회주의 생태여성학이 가장저 나오는 “에누마 엘리시”로부터 유래된 바빌로니아 창조 이야기에서는 우주가 발생한 후에 최초의 모체인 하늘과 땅이 나타나며 그 다음 물, 공기, 식물 그리고 신들이 나타난다. 여신인 티아맷과의 대결에서 이긴 남신인 마르둑은 티아맷의 죽은 몸으로 하늘의 별들과 행성의 자리를 만들고 인간을 만들어 강제로 노예화시켜 신들을 자유롭게 쉬게 한다. 여기서 최초의 모권 사회는 남성 지배적 권력세계로 대체되고 또한 싸움의 전유물을 자신의 소유와 통제의 대상으로 삼는 후세의 전쟁과 같은 행동이 드러난다. 신과 인간의 계층 구조는 귀족계급과 노예의 분리와 동일시된다.헤브루 창조 이야기에서는 창조자와 최초의 어머니 사이의 갈등이 없고 대신에 어머니는 유순한 ‘물질’이 되었다. 창조자는 6일 간의 작업을 통해서 장엄하게 우주를 이루어낸다. 여섯 번째 날 마지막으로 만들어진 인간은 지구에 대한 지배권이 주어진다. 여기서는 여성은 남성의 갈빗대에서 나중에 창조된 것으로 묘사하여 가부장적 관계를 의도적으로 요구한다.그리스 창조 이야기는 플라톤의 창조 이야기인 “티마이오스”에서 비롯된다. 그는 실제를 근본적 영역과 유형의 영역으로 구분한다. 그 사이에 있는 창조자, 즉 우주의 장인은 죽은 물질로부터 사물을 형성한다. 창조자는 공간으로 근원적 요소인 불, 공기, 물, 흙을 형성하고 지구중심적인 우주의 몸을 만든다. 그 후 세계 영혼을 만들어서 우주의 몸에 주입, 배치하고 약간 희석된 형태의 인간 영혼도 만든다. 인간의 영혼들은 하늘의 진리를 받아야 남성의 몸으로 구체화되고 그 모습이 될 때까지 윤회한다. 여기서는 실재의 근원적 구분으로 남성 지배, 계급 위계 구조, 동물의 열등화가 드러남으로써 현대의 이분법적 사고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됨을 알 수 있다.이 세 가지 고전적 창조 이야기들을 종합하여 받아들인 기독교 창조 이야기는 하느님의 절대적 주권을 강조한다. 하느님이 최초의 물질로 우주를 형성하고 이 최초의 물질을 창조하는 분으로 이해했다. 또한 하느님에 대한 유대교적인 이해를 ‘세 인 이해(묵시종말사상)와 생태학적 이해(현 생태계 위기)를 알아보고 종교적 묵시종말 사상이 현재 지구적 위기를 극복하는데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 살펴본다. (가이아와 하느님, 제2부) (1 면)세계파괴현상은 고대로부터 많은 이야기들이 전해져 내려온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홍수이야기로 수메르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헤브루 홍수 이야기의 원형이 된다. 이밖에도 고대 근동 사회는 많은 재난을 겪는다. 여름의 주기적인 더위와 가뭄, 약탈을 일삼는 유목민들에 의한 습격과 전쟁, 기근 등 자연적 사회적 세계파괴현상이 수도 없이 일어났다. 이런 현상 속에서 인간들은 매년 반복되는 자연이 죽음에 참여하는 동시에 또한 매년 회복되는 생명의 힘을 기뻐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노아의 방주 이야기 역시 세계파괴현상의 한 사례이다. 이런 이야기를 접할 때에 우리는 노아와 함께 탄 동물들과 그 배의 재밌는 상황에 대한 생각보다는 그런 일이 일어난 원인과 그 적나라한 결과들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아야한다.묵시 사상적 이야기에서 이런 종말의 특징으로 보이는 세계 파괴는 하느님의 징벌의 이미지로 이해된다. 종말의 특징에도 불구하고 예언자들이 그리는 하느님의 파괴의 이러한 행위들은 궁극적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을 회계하도록 하는 경고이다. 그들이 다시 회개하고 옳은 길로 돌아서면 땅은 비옥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이스라엘이 자신들이 지은 죄로 인해 쇠약해지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때가 되었을 때 하느님은 사악한 나라들을 간섭하여 심판하고 파괴하며, 평화와 선한 시대가 도래할 새 땅에서 정의로운 나라들의 편에 설 것이라고 예언한다. 초기 묵시록 안에서 부활은 응보를 당하지 않는 불의와 보상 없는 의에 대해 설명하는 한 방법으로 사용된다. 죽음은 극복될 문제가 아니라 자연적인 것으로 보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축복이란 일년 내내 건강하고 번영하는 삶이라고 이해했다. 그러나 후기 묵시록에서는 정의의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면서, 동시에 영원한 생명에 대해 새롭게 초점를 맞춘다.) 죄와 악에 대한 전통적 기독교적 이해가 생태계 위기를 줄이는데 공헌하는지 아니면 더욱 파괴를 조장시키는지 알아보면서, 실낙원을 모권사회에서 가부장사회로의 타락으로 보는 생태여성학적 견해를 이해하고, 이런 지배체제가 근동문화로부터 현대산업문명사회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발전되어왔는지 추적해 본다. (가이아와 하느님, 제3부) (1 면)고전적 기독교의 죄의 개념은 죄를 불복종과 유한성으로 본다. 서구 세계에 혼합된 유산을 남긴 이것은 깊은 문제점을 가진 유산으로 악을 정당화하는 데도 공헌해 온 유산이다. 우리가 책임을 져야만 하는 악의 한 종류인 죄는 관계의 왜곡, 즉 상호의존적인 다른 부분들에 대해 어떤 한 부분의 삶과 힘의 권리를 절대화 시키는 것 안에 존재한다. 거룩한 것과 속된 것,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 불멸의 삶과 유한한 삶의 구별은 죽은 몸들을 부패시키는 생명주기의 죽음의 측면과 성과 생식의 생명의 흐름을 두려워하는 관계를 만들었다. 또 죄와 죽음, 불순함과 유한성의 근원의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시키는 복잡한 기독교적 책임 전가에 공헌했다. 이런 차별패턴은 성과 인종의 사회적 차별 정책을 만드는 데 사용되었으며 오염과 반대되는 청결의 영역 안에서 자신을 구별하고자 하는 이런 노력은 오히려 오염을 야기시킨다.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우리는 폭력에 대한 단호한 거부, 약한 자들과의 소통, 지배적이고 착취적인 통제 체제를 고쳐가려는 노력해 나가야 한다.에덴 동산의 성서 이야기 황금 시대의 그리스 이야기 남자들이 힘든 노동과 육체적 질병의 모든 고통의 책임을 여자, 특히 자기 아내의 탓으로 돌리기 위해여 이 두 이야기들을 만들어 냈다. 실낙원에 대한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하는 것은 정신적 가족적인 데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이 뿌리를 인간의 원시적 사회 패턴 속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실낙원에 대한 현대의 생태여성학적 개념들은 다음과 같다. 먼저 폭스는 최초의 축복을 근원적 진리로 보고, 토착민에게까지 강요된 기독교 신학에 의해 인간 소외가 심해졌다여성학적 자원들이 기독교 전통(1면) 안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아본다. (가이아와 하느님, 제4부)기독교 전통 안에서 헤브루적 근원들의 계약 전통에서는 역사를 자연보다 우월한 인간의 참된 영역으로 본다. 따라서 자연을 인간다움과 자유에 이르기 위해서 부정해야만 하는 인간 이하의 필연의 영역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생태학적 관심에서 시작된 성서에 대한 최근의 탐구는 역사와 자연의 이런 현대 유럽의 이원론이 성서적 관점을 왜곡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저자는 특히 자연과 직접 관계하는 하느님에 대한 증언에 초점을 맞춘다. 우리는 하느님을 자신의 창조사역 안에서 커다란 즐거움을 누리는 분으로 이해하며 동시에 창조물은 하느님에게 찬양으로 응답한다. 하느님은 자기가 창조한 세계 안에서 이런 즐거움에 응답한다. 하느님과 자연의 관계는 종종 물활론적으로 상호 인격적이다.또한 우리는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계약 관계 안에서 나타나는 정의와 자연과의 올바른 관계 사이의 밀접한 일치의 중요성을 예수 자신의 이해 안에서 볼 수 있다. 무엇보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힘의 한계는 인간의 무상이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일정한 수명을 주셨다. 또 자연에 대한 인간의 권위역시 위임된 권위이다. 인간이 다른 생명의 형태와 맺는 관계에 관한 계약적 비전은 인간을 관리인으로 보는 관계 안에서 인간의 특별한 위치를 인정한다. 이런 계약적 비전은 인간과 다른 생명의 형태가 한 가족의 일원, 즉 상호의존의 공동체 안에 있는 자매와 형제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또한 각 생명의 형태는 자기 자신의 목적, 자신의 존재 권리, 하느님과 다른 존재들과의 독립적 관계를 갖는다. 결국 우리는 어떤 물질적 사물을 이용할 때마다 창조의 계약 안에 있는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와의 올바른 관계를 생각하며 감사해야한다.오늘날의 생태학적 영적 위기는 더욱 개방적인 종합적 창조성을 요구한다. 여기에 현대 생태 신학에는 세 가지 견해들이 다른 생태학적 영성을 추구한다. 먼저 폭스로 대표되는 창조 중심의 영성이 있다. 그는 그리
언론과 권력에 대하여바야흐로 언론의 시대가 왔다. 김대중 정권부터 정부를 노골적으로 비판하고 반대해오던 보수언론들은 이제 조선일보를 필두로 현 노무현 정권에 대해 정말 대통령에게 이래도 되는건가 할 정도로 폭언과 비난을 서슴없이 하고 있다. 그러고보니 나는 내가 진보라고 생각하지만 나도 어느정도 보수적인 사고를 하는 것 같다. 아니다. 만약에 YS나 그전의 대통령들에게 이런 일들이 일어났다면 나도 동조했을 것이다. 이건 보수적인 경향도 약간 연관되어있지만 실제로는 가치관이나 사회를 보는 시각, 노무현대통령의 인기어였던 이른바 “코드”에 더 큰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문제는 보수언론이 대통령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비판하거나 개인의 사적인 또는 피상적인 부분들에 대해 비난하는, 정말 비난받아야 할 행동을 전문적인 용어를 써가며 교묘하게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고 이런 보도를 자꾸 접하는 중에 우리 국민들은 그 부분부터 특정인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되는 경향이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기사를 좋아하는 기득권층의 사람들이 있기에 조?중?동이 여전히 건재하고 있는 부분도 있다. 이 얘기는 말미에 다시 꺼내기로 하고, 어쨌거나 이런 언론의 자주적인 권력과 영향력은 독재시절이나 80년대 군사정권시절에는 꿈도 못 꿀 일이었을 것이다. 그때는 정부가 언론을 정부정책을 지지하고, 국민들에게 정부를 옹호하는 인식을 심어주기위한 홍보수단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때만 해도 언론의 자율성은 우리 국민 모두가 애타게 갈망하던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의 성장과 더불어 언론은 점점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이제는 대통령과 맞먹을 정도로 말이다.이러한 그간의 과정은 권력구조의 변동을 통한 언론정책의 변화를 이해함으로써 더 깊이있고 이론적인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수업시간에서 듣고 배웠듯이 언론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를 재구성하여 보여주고, 그렇게 재구성된 사회의 모습이 수용자들의 사고에 녹아들어가게 되므로 이데올로기로부터 비로소 정당성을 인정받고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정치권력은 얼마나 민주적이고 발전했느냐를 떠나서 항상 언론을 통제하려는 경향이 있다.시대 순으로 그 경향을 살펴보면, 먼저 5공은 언론통제 유형 중에 국가흡수적 언론통제방식을 사용하였다. 정권초기부터 강압과 회유의 수단을 사용하여 언론을 국가기구에 통합되어있는 일종의 공보기구로 사용한 것이다. 따라서 언론은 정권옹호적이며 반공주의와 안보제일주의를 재생산하는 이념적 기구의 성격을 띠었다. 외형상으로는 자유주의를 표방했지만 일시적일지라도 강압적 힘을 써서 언론인을 위협, 확고한 언론통제를 하였다.노태우는 취임 전, 언론의 자율성을 보장한다는 정책을 약속하였고, 그동안 언론통제의 실상을 자인하고 권위주의적 언론통제를 탈피해야 정권유지가 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정권 재창출 후 집권세력의 미약으로 언론통제와 여론조작의 필요성을 강하게 인식하게 되면서, 은밀하고 차별적인 포섭적 언론통제를 한다. 즉, 겉으로는 언론의 자유화정책을, 속으로는 언론에 대한 권력행사를 한 것이다. 여기에 야당과 재야세력의 언론포섭의 노력도 제한적으로 시도되기 시작하지만, 언론통제완화는 정부가 허용하는 일정한 한도 내에서만 진행되었다. 분명 약해진 직접적인 통제력의 공백은 자본과 시장이 점유하게 된다. 이때, 언론자본의 통제력을 회복하기 위하여 언론종사자들이 자본과 권력의 이중적 통제에 대해 저항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러나 정부와 편집인들은 편집권의 궁극적인 귀속주체는 경영주임을 인정하고,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지 않은 채 소유주의 가치관이 그대로 반영될 수밖에 없는 언론사의 내적통제구조가 공고해진다. 지금의 조중동의 세습구조가 이때 깨질 수도 있지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하지만, 사실 그러한 구조는 이미 일제시대부터 친일을 통한 부의 세습과 권력의 확보로 시작하여, 독재와 군사정권시절 반공 이데올로기를 통한 기득권세력의 동조와 보수세력들의 지지로 수십 년간 이어왔던 것이다. 그 정도로 권력을 순순히 내어줄 보수언론이 아니었다.YS 정권에 이르러 언론통제는 보다 세련되고 효율적인 형태로 이루어진다. 시민사회의 자율성 증가로 인해 시민사회로부터의 동의를 통해서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해야하는 상황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YS는 적극적인 홍보활동으로 언론의 이해를 먼저 구하는 전략을 사용하여 강압적 통제는 거의 없고, 포섭적 통제도 이전보다 약화된다. 따라서 고급정보를 이용한 언론플레이를 통해, 언론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규범적 당위성에서 비롯한 언론통제를 합법화하려는 노력을 통해, 언론사간 시장경쟁의 과열의 수위조절을 통해 언론통제가 이루어졌다.DJ 정권은 사상최초의 여야교체를 이루지만 집권세력의 정치적 지지기반이 취약했기 때문에 야권의 견제력을 무시하지 못하는 정치적 상황에 놓인다. 이로 인해 언론에 대한 통제력은 일정한 한계 내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언론은 상당한 정도의 자율성과 힘을 보유하게 되고, 보수적인 신문사들의 정부에 대한 비판활동이 국가권력과 경쟁할 정도로 막강해진다. 실제로 조선일보는 노무현도 그랬지만, DJ를 빨갱이로 몰기도하였다. 권력을 가진 보수언론은 자신들이 그동안 쌓아올린 돈과 권력을 위협하는 진보세력과 대통령을 좌파로 몰아버리는 데에 기득권층이 뒤에서 막강한 힘을 실어주기까지하니 무서울 게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언론권력의 횡포에 DJ 정권은 언론에 대한 명예훼손 소송 등의 합법적인 방법을 통해 언론을 통제한다. 또 언론사들 간의 상호비판과 경쟁을 이용하였다. MBC와 KBS등의 매체들과 조선일보 등의 보수언론의 갈등이 대표적인 사례로 기억된다. 그리고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와 신문고시제정을 통한 언론개혁정책을 시도하지만 역시 보수언론의 반발과 한나라당의 정치공세로 실패한다. 시사프로를 통해 본 것에 의하면 DJ까지만 해도 박지원등의 실세가 직접 언론을 챙기고 다독이는 형태의 모종의 언론통제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지금의 노무현 정부는 언론들의 기사내용이나 시각을 보면 언론통제가 가장 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다.
< 재무분석 보고서 >과목 :담당교수 :학번 :소속 :이름 :1. 기업선정우리 사회는 그동안의 고도의 발전을 통해 경제적으로는 어느 정도 풍족한 삶을 살게 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물질적 가치나 명예를 얻기 위해서 앞만 보고 달려가는 삶보다, 건강한 신체와 정신을 유지하는 균형있는 삶을 행복의 척도로 삼는 웰빙(well-being)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더 이상 양의 음식 문화가 아닌 질의 음식 문화를 선호한다. 이런 소비자들의 욕구를 파악하고 ‘내 가족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안전한 먹거리’ 에 초점을 맞추어 성공한 기업으로 (주)풀무원이 있다. 날이 갈수록 환경오염, 유전자 조작 식품 등의 위협으로 인하여 좀 더 안전한, 질 높은 식품에 대한 소비들의 관심은 점점 커질 것이므로 앞으로 식?음료품 제조업과 더불어 풀무원의 발전 가능성은 상당하다고 본다.(주)풀무원)ㄱ. 기업 개요대표자 : 남승우, 배종찬, 이규석본사주소 : 충북 음성군 대소면 삼호리 80-1대표전화 : 043-877-6767홈페이지 : http://www.pulmuone.co.kr회사설립일 : 1984.05.31기업형태 : 거래소, 외부감사법인상시종업원수 : 1,293 (명)주업종 : 지주회사부업종 : 두부 및 유사식품 제조업ㄴ. 주요사업내용2003년 3월 1일을 기준으로 10개의 회사를 물적분할, 신설하고 지주회사로 전환풀무원 자체에서 포장두부 제조 및 판매, 계란 판매2. 재무분석1) 재무제표요약 대차대조표)2*************012000유동자산48,52448,10554,22157,57059,780- 당좌자산46,29045,38049,89051,53446,554- 재고자산2,2342,7254,3316,03610,226고정자산184,325173,021157,948135,641142,034- 투자자산157,069146,35349,46435,94147,099- 유형자산26,59725,984107,43699,10694,808- 무형자산6596841,048594127자산총계23147자본금25,79825,79825,79824,92124,920자본잉여금31,24931,22630,87528,43824,764이익잉여금84,93077,14556,85440,53532,822자본조정(-)5,458(-)1,839576(-)667161자본총계136,519132,330114,10393,22785,667요약 손익계산서)2*************012000매출액350,909323,317291,433208,833163,591매출원가214,656202,144171,536138,184107,988매출총이익136,253121,17399,89770,64955,603판매비와 관리비120,788102,84369,03455,46046,271영업이익15,46518,32930,86215,1899,332경상이익15,68922,32629,49814,8618,534당기순이익11,61519,08920,52911,0545,118요약 현금흐름표(단위:억원))구분2004/122003/12영업활동으로 인한 현금흐름272.16100.41투자활동으로 인한 현금흐름-180.07-108.69재무활동으로 인한 현금흐름-93.50-3.61현금의 증가-감소-1.41-11.892) 재무비율 분석(주)풀무원에 대한 재무분석을 위하여 재무비율을 비교 평가할 기준으로 한국은행에서 지난 5월 16일 발간한 자료의 음식료품제조업 지표를 설정하였다.가. 유동성 비율구분산 식(주)풀무원음식료품산업평균당기전기당기전기유동비율유동자산---------×100유동부채53.07%89.44%104.42%92.34%당좌비율(유동자산-재고자산)-----------×100유동부채50.63%84.37%75.35%64.11%먼저 유동비율의 경우 03년 89.44%, 04년은 53.07%로 03년에 비해 상당히 낮아졌다. 산업평균과 비교해서도 유동비율이 많이 낮은 것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해석하면, 풀무원이 보유하고 있는 유동자산이 단기채무인 유동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으며 보유하고 있는 현금성 자산이 단기채무에 대하여 지급능0.63%로 유동비율과 마찬가지로 상당히 많이 낮아져 있으며 이는 산업평균비율보다도 낮은 수치를 나타낸다. 03년에는 산업평균보다 높은 수치를 기록했으나 04년에 대폭 낮아진 것은 재고자산을 제외한 현금성 자산이 단기채무를 상환할 능력이 떨어지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하지만 매출채권 회전율은 상당히 높은 것을 보아 풀무원의 유동자산이나 당좌자산의 양이 너무 적다는 평가나 매출채권이나 미수금의 회수가 안 되고 있다는 평가를 내리기 어렵게 해준다. 따라서 전반적인 경제적 상황의 침체와 같은 종합적인 이유로 유동비율과 당좌비율이 낮다고 본다.나. 레버리지 비율구분산 식(주)풀무원음식료품산업평균당기전기당기전기부채비율타인자본--------×100자기자본70.56%67.10%146.30%145.95%고정비율고정자산-----------×100자기자본135.02%130.75%149.23%154.16%이자보상비율이자+법인세전이익---------------×100이자비용671.38%639.74%375.90%291.00%부채비율은 조달된 부채가 자기자본에 대하여 얼마나 많은 것인가를 나타내는 것으로써 03년 67.10%, 04년 70.56%로 약간 증가를 보이고 있으나 산업평균비율과 비교한 결과 양호하다고 할 수 있다.고정비율은 04년 135.02%, 03년 130.75%로 그냥 보기엔 높다. 일반적으로 높은 고정비율은 차입한 지금이 많아 금융비용의 지출이 많을 것으로 판단되고 동시에 경기가 좋지 않아 매출이 줄어들 경우 수익의 하락률이 높아 경영위험에 직면할 수도 있으나, 기계설비가 많이 필요한 산업에서는 고정비율이 높게 나타나는 것이 당연하고, 산업평균보다는 낮은 수치를 보이고 있으므로 위험성이 크지 않다고 볼 수 있다.이자보상비율은 회사가 일상적인 영업활동으로 벌어들인 이익이 그 회사가 빌리고 있는 돈의 이자, 즉 금융비용에 비하여 얼마나 많은가를 나타내는 지표이다. 풀무원은 산업평균보다 2배가량 높은 수치를 보인다. 이를 부채비율과 관련지어 볼 때, 부채비율이 낮은 데에 기당기전기재고자산회전율매출액--------재고자산52.36회25.68회10.11회9.43회매출채권회전율매출액---------매출채권11.80회9.28회9.06회8.95회총자산회전율매출액--------총자산1.55회1.49회1.14회1.07회재고자산회전율은 연간 매출액을 평균재고자산으로 나눈 것으로써 재고자산의 회전속도 즉 재고자산이 당좌자산으로 변화하는 속도를 나타낸다. 풀무원의 경우 산업평균보다 무려 3~5배가량 높다. 일반적으로 이 비율이 높을수록 자본수익률이 높아지고, 매입채무가 감소되며, 상품의 재고손실을 막을 수 있고, 보험료, 보관료를 절약할 수 있어 기업 측에 유리하다. 이 수치는 풀무원의 주 제품인 두부와 같은 식품의 유통기한자체가 짧은 점과 연관성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매출채권회전율은 매출액에서 채권이 차지하는 비율로써 풀무원은 이 수치도 역시 03, 04년 모두 산업평균을 웃돌고 있다. 이는 매출액에 비하여 매출채권이 상대적으로 작은 것을 의미하며 매출채권이 효율적으로 관리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총자산회전율을 보면 풀무원의 경우 전기보다 당기에 약간 증가하였고 전기나 당기 모두 산업평균이상의 값을 가진다. 이 비율을 통해 총자산의 투자로 인해 상대적으로 높은 매출을 실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고 기업운영에 투여된 총자산이 효율적으로 사용되었다고 평가 할 수 있으며 매출액의 증대로도 생각할 수 있겠다.라. 수익성 비율구분산 식(주)풀무원음식료품산업평균당기전기당기전기매출액순이익률당기순이익---------×100매출액3.31%5.90%1.54%1.42%총자산경상이익률경상이익--------- ×100 자산총계6.74%10.10%3.79%3.32%자기자본경상이익률경상이익 ---------×100 자기자본11.49%16.87%9.27%8.05%* 총자산순이익률과 자기자본순이익률의 산업평균자료를 찾을 수 없어, 한국은행 자료에 나와있는 경상이익률로 계산했습니다.매출액순이익률은 전체적인 경영활동의 성과를 나타내는 것으로써 영업활동 및 재무활동의 결과가자산을 잘 활용하여 많은 이익을 남기고 있다고 예측할 수 있다.자기자본경상이익률은 주주들이 투자한 자본에 대하여 얼마만큼의 수익을 올렸는가를 나타내는 지표이므로 04년은 전년보다는 그 수치가 떨어졌다. 그러나 산업평균치보다는 높기 때문에 주주들은 여전히 선호할 것으로 본다. 또한 기계 설비등의 폐기처분으로 인해 자산 및 자기자본의 감소 등이 발생할 경우도 있으므로 확실한 판단을 할 수는 없다.마. 성장성 비율구분산식(주)풀무원음식료품산업평균당기전기당기전기총자산증가율)당기말총자산-----------×100 -100전기말총자산5.30%4.22%3.42%0.13%유형자산증가율)당기말유형자산------------×100 -100전기말유형자산2.36%-75.81%-0.47%0.85%매출액증가율)당기매출액----------×100 -100전기매출액8.53%19.11%6.75%2.09%총자산 증가율의 경우 03년에 산업평균이 0에 근접한 것으로 보아 경제 상황이 엄청난 불황을 의미한다. 그러나 04년 들어서 경기 상황이 전기에 비해 좋아졌으며 풀무원의 경우 매출액 증가율을 참고하면 매출액의 증가로 인한 총자산의 증가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유형자산증가율 역시 우리 경제의 엄청난 불황으로 03년 산업평균이 0에 근접하고 04년엔 -수치지만, 풀무원의 경우 03년의 어마어마한 -수치는 2003년 3월 1일 풀무원이 물적분할, 공장, 물류 등 10개 자회사를 신설하며 기업을 분할을 했기 때문으로 보이고, 04년엔 2.36%를 기록하며 다른 동종기업들보다 공장 등 설비에 많이 투자한 것으로 보인다.매출액증가율의 경우 03년의 높은 수치는 침체된 시장상황에서도 웰빙열풍 등으로 상당히 선전한 것으로 보이고, 전년에 비해 많이 떨어지긴했으나, 04년에도 내수경기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품목이 고르게 성장하여 8.5% 신장하였다.바. 재무비율분석의 보완 기법 (The Du Pont Identity)당 사업종평균ROE8.64%8.20%지금까지 위에서의 재무비율분석은 여러 가지 한계점.
이집트 문명연평균 강우량 0, 기온이 50도를 오르내리는 아프리카 남부 지역은 극한의 기후를 가지고 있는 지역이다. 그러나 3천년 동안 이 곳에 살고 있던 이집트인들은 나일 강으로 대표되는 자연을 적극 이용해 왔기 때문에 풍요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이렇게 이집트인들의 삶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는 나일 강은 이제부터 살펴볼 인류 문명 최고의 결정체인 피라미드, 나아가 그들의 사후 세계에 대한 사유 방식에도 깊은 영향을 주었다.♣피라미드피라미드는 고대 이집트인의 지혜의 결정체를 보여주는 유적으로 1개의 돌 무게가 2.5t 이 넘는 돌 약 300여만 개로 이루어져있다. 높이는 약 147m, 정사각형의 한 밑변의 길이는 약 230m로 되어 있으며, 그 중 놀라운 것은 네 개의 각 모서리가 정확히 90도를 이루며 정동, 서, 남, 북을 가리키고 있다는 점이다. 피라미드는 당대 뿐 아니라 현대까지도 최고의 수학, 천문, 건축학적 건축물이다. 다음으로 피라미드 내부를 살펴보자. 좁다란 하강 통로를 지나면 다시 약 40m정도의 상승 통로를 지나 대 회랑을 만나게 된다. 이는 왕의 방으로서 5개의 방이 적층 구조로 싸여 있으며 54평방미터 정도의 크기이다. 발굴 당시에는 이 곳에 왕의 미라가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곳에는 원래부터 미라가 있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 곳에는 많은 낙서들이 있었다. 대부분 발굴 당시의 인부들이 해 놓은 것이지만 그 중에서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로 되어 있는 것은 다름 아닌 피라미드 건축을 했던 고대 이집트인들의 것이다. 그들이 남긴 것 속에 ‘코푸’라는 4600년 전의 왕의 이름이 발견되었다. 이를 통해 헤로도토스는 피라미드에 대한 자신의 유명한 이론, 노예이론을 전개할 수 있게 되는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다.♣헤로도토스의 노예 이론과 그 반대되는 증거들헤로도토스의 이론은 피라미드 건축에 대한 정설로서 오랫동안 여겨져 온 것이다. 그에 따르면 피라미드는 약 10만 명의 노예를 20년 동안 노역을 시켜 건축한 것이라고 한다. 즉 피라미드는 악랄하고도 잔혹하게 노예들을 부려 얻어낸 산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1990년 미국인 한 여행자에 의해 우연히 발견된 ‘노역자들의 무덤’을 통해 이 이론은 그 뿌리부터 강력하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대 피라미드로부터 남쪽으로 약 1㎞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 무덤(마을)은 미국인 여행자가 길을 가다 말이 유적에 걸려 넘어지는 바람에 말에서 떨어짐으로써 우연히 발견되었다. 이 곳에는 피라미드 건축 당시 쓰였던 것으로 여겨지는 연장들과 노역자들의 유골 등이 묻혀 있었으며 이것은 현재 카이로 국립 과학 수신 연구소에서 연구되고 있다. 여기서 발견된 유골과 유적은 피라미드 건축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뒷받침하는 증거로서 기능하였다. 우선 40세 정도에 사망한 것으로 보이는 한 남자의 두개골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이 두개골이 가지고 있는 두 개의 구멍의 원인을 알아낼 수 있었다. 우선 하나는 머리의 염증으로 인한 것이었으며, 두 번째 작은 구멍은 암세포 척출을 위해 외과 수술을 받은 흔적으로 검증되었다. 즉 치유를 위해 인위적으로 구멍을 낸 것이었다. 여기에서 헤로도토스의 이론은 심각한 위협을 받게 된다. 만약 그가 주장한 대로 이들이 노예들이었다면 이처럼 시간과 공을 들인 치료를 어떻게 받았겠느냐? 하는 것이다. 다음 증거는 더욱더 확실하다. 노역자 마을에서 다름 아닌 여성과 아동의 유골이 나온 것이다. 임신한 여성의 유골도 있었다. 여성의 유골은 천 여구로서 남녀가 거의 같은 비율로 이 마을에 살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즉 만약 여기에 살고 있었던 남성들이 노예라면 오직 남성 유골만이 발견되어야 옳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즉 이들은 독립적 가정을 가진 이집트의 평민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단란한 가정의 모습을 나타내는 많은 조각들은 이를 더욱더 확실하게 증명해준다. 아버지가 두 딸의 어깨를 다정하게 감싸고 있는 조각, 다정한 부부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조각들이 그것이다. 이처럼 피라미드는 고대 이집트의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축조되었던 것이다. 이는 다음의 증거로 확고부동한 위치를 점할 수 있게 된다. 바로 석회석 위에 기록된 피라미드를 만든 사람들의 작업일지이다. 여기에는 이집트 평민 노역자의 이름과 일을 못한 날짜와 그 이유들이 적혀 있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병 때문인 것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병 때문에 7일간이나 나오지 못한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 외의 이유들이 우리의 이목을 더욱 집중시킨다. 잔치, 아들의 묘소 참배, 형의 시신을 염하기 위해, 과음으로 인한 숙취 등이 버젓이 일을 나오지 못한 이유로 적혀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하여 볼 때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지은 노역자들은 귀속되지 않으며 개인의 재산을 소유하고 있고, 즐겁고 자유로운 ‘자유민’의 신분이 분명하다. 물론 이들 자유민 내에서 계층은 있었다. 그렇지만 다른 고대 사회와 비교해 보았을 대 분명 그 어떤 사회보다 보다 많은 자유와 평등을 가지고 있었던 사회였던 것은 분명하다.♣피라미드 건축의 목적과 나일 강- 카트 멘덴스 박사의 이론을 중심으로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목적으로 이 피라미드를 지었는가? 단순히 파라오의 무덤으로 지어진 것이라면 한 명의 파라오가 여러 개의 피라미드를 왜 지었겠는가? (쿠푸 왕의 아버지는 무려 피라미드를 5개나 건축했다고 한다.) 이러한 피라미드 건축 원인에 대한 해답의 열쇠는 이 글 서두에 언급했던 나일 강에 있다. 나일 강의 수원은 이디오피아의 고원 지대이다. 이디오피아 계곡에서 6월과 9월 사이의 우기 동안의 엄청난 양의 물은 방대한 양의 진흙을 동반하여 거대한 물줄기로 흐른다. 이 물줄기는 이디오피아, 수단을 거쳐 7월경 마침내 이집트에 당도하게 된다. 이집트의 강 수위는 약 10m 정도로 불어나게 되며 이는 7월에서 10월동안 나일 강 주위를 완전히 물 속에 잠기게 하는 거대한 범람을 일으키게 된다. 이 같은 범람에의 흔적이 이집트 곳곳에 보이고 있다. 나일 강의 수위를 판단하는 나일로미터가 바로 그것이다. 이집트인들은 이 물이 빠지기 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들은 나일 강의 범람을 원치 않았던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를 기대하고 기원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강의 범람은 풍부한 영양소를 포함한 진흙이 자연 비료 역할을 해주기에 얻어지는 풍성한 경작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었다. 무덤 속 벽화를 보면 나일 강에 의해 축복받은 농경지를 그리고 있다. 이 같은 생각은 고대 근동의 다른 지역(특히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강의 범람이 신의 저주라고 생각되었던 것과는 정반대의 것이었다. 그들은 강의 범람, 나일 강의 범람이 자연의 선물, 나아가 신의 은총이라고까지 생각했던 것이다. 이러한 나일 강의 유역을 따라 피라미드가 건축되어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피라미드의 목적’이라는 물음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옥스퍼드 대학의 카트 멘덴스 박사는 1974년에 『The Riddle of the Pyramid』이라는 책을 통해 자신의 피라미드에 대한 연구를 발표한다. 그에 따르면 “unifying common task" 즉, 범람 때의 공통의 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피라미드를 건축했다고 하는 것이다. 농사일이 없다는 것은 사회의 기강이 흔들리고 그들의 삶의 패턴의 해이를 가져오게 하는 중대한 문제이다. 따라서 피라미드는 왕이 직접 일거리가 없는 사람들의 의식주를 해결하고, 그들에게 일감을 주기 위해 계획된 것이었다. 피라미드는 어떤 목적이 있는 건물이라기보다는(아직 확실하게 밝혀진 목적이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일감이 없어 일손을 놓고 놀고 있는 백성들에게 무엇이든지 짓기 위한 일감으로 기능한 것이다. 비자의 대 피라미드 서쪽에서 발견된 카이라는 사제(4600년 전 제4왕조 쿠푸 왕을 모시던 사제)의 무덤에서 이러한 증거들이 발견되었다. 묘비와 기둥 곳곳에 왕이 사람들에게 맥주와 빵 등 먹을 것을 보장한다는 내용의 계약, 백성들이 매우 행복해했다는 기사, 쿠푸 왕을 신의 이름으로 내려주셔서 감사한다는 등의 먹을 것, 옷, 잘 곳을 마련해주었던 왕의 정치에 대해 만족한 당시 이집트인들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백성들에게 왕은 이제 일감까지도 마련해준다. 성직자, 관료, 농민 등 온 국민을 하나로 단결시키기 위한 이 일거리는 나아가 왕을 신으로 만들게 된 범국가적인 프로젝트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이는 상부 이집트와 하부 이집트를 하나로 통일시켰을 뿐 아니라 이집트인의 정신세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이다. 피라미드는 이집트 전역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만든 거대한 빌딩이며 태양, 자연물, 그리고 왕을 신격화한 고대 이집트인의 정신세계가 드러난 위대한 작품인 것이다. 현재 이것의 궁극적 목적이 ‘천문대이다’, ‘곡식저장소이다’라는 가설이 분분하지만 아직 그 정확한 목적은 풀리지 않고 있다. 다만 나일 강의 범람을 신의 축복이라고 믿고 살아온 이집트인들의 자연과의 공생, 지혜의 상징물인 것만은 분명할 것이다.
'칼'의 혼을 기리며..이번 과제는 작품성과 인기로 꾸준히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칼의 노래≫를 읽는 것이었다. 이번 학기동안 읽은 책 중에 제일 재미있었다. 그러나 단순한 재미가 아닌 가슴을 울리는 감동이었고, 그 감동은 정말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다. 지금까지 내가 알아온 이순신 장군은 나라에 대한 충성심이 매우 강하고, 자신의 죽음을 숨길정도로 장군으로서 책임감이 강한 인물이었다. 이 책을 읽고 난 지금 그 '이순신' 이 완전히 잘못 설명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진정한 '인간 이순신' 은 틀림없이 그런 교과서적인 설명만으로는 부족한 고독한 위인이었다.책은 이순신이 조정의 명을 받고 의금부로 끌려가서 고문을 받고 나오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그 후 이순신은 다시 임금의 명을 받잡고 군사도 없는 삼도 수군 통제사가 된다. 밑바닥부터 시작하여 다시 군을 정비하여 왜군과 벌이는 전투는 그가 수없이 되뇌이던 비릿함처럼, 푸른 바다를 붉게 염하고자 하는 그의 장렬한 마음처럼, 전상의 참담함이 진하게 와 닿았다. 나는 아들 면, 여진, 어머니, 선조와 조정의 신하들, 왜군, 명나라 군사들, 부하들에 대한 이순신의 생각과 그 들 모두가 등장하여 복잡하게 벌어지는 그의 내면의 끊임없는 고뇌를 숨가쁘게 읽어 내려갔다. 마침내 "나는 내 자연사에 안도했다." 라고 말하며 예정했던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는 눈시울이 뜨거워질 수밖에 없었다.작가 김훈이 직접 이순신이 되어 1인칭 시점으로 쓴 이 소설은 작가의 개성이 묻어나는 특유의 문체로 주목받았다고 알고 있다. 나도 책을 읽으면서 마치 내가 이순신이 된 것처럼 김훈이 된 것처럼 함께 느끼고 슬퍼하고 고뇌했다. 사실 전문적인 것은 잘 모르지만 내가 그렇게 빠져들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화려한, 아름다운, 장중한 문체의 힘이 크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이순신이 되어 함께 해 나갈수록 내가 알고있던 당시의 상황에 대한 생각은 점점 무너지기 시작했다.당시의 조선의 왕인 선조는 임진왜란 당시 무력한 임금인지는 알았으나 새로운 면모를 볼 수 있었다. 난 선조가 그저 자신의 목숨만을 부지하기에 급급하여 도망만 가서는 전쟁이 끝나기만 기다리고 있었는지 알았다. 그러나 여기서 드러나는 그는 무기력하지만 권력에 대한 욕심은 굉장하고, 능력이 있고 민심을 얻는 신하는 가차없이 베어버리는 어리석은 모습의 임금이었다. 이순신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드러나듯이 긴박한 상황에서는 불러 싸우게 하고, 이제 좀 살겠다싶어지자 가당찮은 죄목으로 잡아 가두는 교활하고 탐욕스런 자리를 지키는데 급급한 인물이었다. 거기에다가 이순신을 다시 사지로 내보낸 후 최소한의 지원은 못해줄 망정, 전쟁 중에 계속 보낸 교서는 애절하다기보다는 어거지를 쓰는 것으로 한심하게 보였다. 임금이란 자가 그러니 밑에 신하들도 제대로 된 사람들이 남아날 리가 없었고, 전쟁도 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상황에 혼자 나라의 운명을 등에 업은 이순신이 가엾었다.나는 왜군이 우리 백성들의 코를 베어 자신들의 전과를 올린 것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 군사들이 왜군의 또는 포로인 우리 백성의 목을 잘라 그 수로 전과를 올린 것에 대해서는 이번에 처음 알았다. 이런 비인간적인 행위를 많이 하는 자가 혁혁한 공을 세운 것으로 치부되는 사실도 알고 분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점에 있어서는 물론 왜군이 우리나라에 침략을 해온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 군사들도 왜군의 잔악함을 입에 올릴 입장은 안 된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그건 그렇고, 우리나라의 요청에 따라 파병되어 왜군을 물리치는 데 상당히 큰 일을 해낸 것으로 알고 있던 명군, 이른바 천군은 사실 눈치만 살살보다가 전쟁 막판에 우리 측 군대를 돕는둥마는둥 하고, 끝내는 왜군과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라 내통하여 자신들의 이익만을 챙기는 모습을 보인다. 물론 명군의 출병, 그 자체에 의해 왜군이 철수한 것은 사실이나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같이 임진왜란 때 명군이 우리나라를 지극히 원조하여 우리의 승리를 도운 것은 절대 아니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 때의 명군과 왜군의 내통에서 훗날 근대에 서로 우리나라를 차지하기 위해 다투는 중국과 일본의 모습이 연상되었다. 지금의 북한과의 평화협상을 위한 6자 회담에서 보이는 두 나라의 이해 관계에 따른 진행양상도 연상되었다. 과거나 지금이나 우리나라는 두 나라 사이에서 이리저리 휘둘리는 안쓰러운 상황에 있다는 사실이 부끄럽고 안타까웠다.이순신은 '적의 개별성' 에 대해서 고민했다. 나는 전에는 우리 군사들이 죽인 왜군은 모두 당연히 일본사람일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읽고 잘 생각해보니 당연히 왜군은 8년 간의 침략 중에 많은 포로들을 확보했을 것이고, 위험한 최전방에는 조선인 포로들을 총알받이로 썼을 것이란 판단이 섰다. 이순신이 고뇌했듯 결국 우리 군대가 지키지 못한 우리 백성 포로들을 죽이는 전투를 하고 또 그런 일이 공을 세우는 것으로 되는 것이었다. 이는 힘없는 백성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이었고, 이런 전쟁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게다가 왜군들 역시도 침략은 해왔지만 저마다 다른 사정을 통해 조선에 와서 목숨까지 바쳐가며 그저 싸우는 것이었다. 그는 그런 고민 속에서도 항상 임금으로부터 적에게로부터 시달렸다. 그 시달림 속에서 "어느 전투에서 죽을 것인가"라는 "물음과 답"을 함께 지니고 전투를 치러갔고 그의 사지를 찾아다녔다. 왜란 중의 그의 하루하루는 치열한 내면과의 싸움이었고 보이는 적과 보이지 않는 적에 함께 맞서야하는 힘들고 외로운 싸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