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미국 대통령으로 버락 오바마가 당선되면서 한·미 FTA의 비준여부를 놓고 집권당과 피집권당 사이에 극적인 대립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가 먼저 국회의 동의를 얻어서 미국의 의회에 압력의 수단으로 이용해야 한다는 견해와 자동차산업과 관련하여 미국의 정책 방향을 고려한 후 신중하게 비준동의안을 처리하자는 견해가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한·미 FTA는 체결 이후에도 많은 논란을 야기하지만, 진보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는 참여정부 시절에 FTA가 추진되고 체결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 논란의 폭은 증폭된다. 민주주의의 민주화의 저자 최장집 교수에 의하면, 노무현 정부는 제도권 밖의 운동 세력에 기반하여 형성된 정부이기 때문에 대의제 민주기제의 성공적인 요소인 대표성과 책임성이 제대로 발현될 수 없고 기존의 보수적 헤게모니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었다고 한다. 공간상의 제약, 전문직업의 분화 원리 등을 이유로 대의민주주의가 시행되고 있지만, 선거에 의해 뽑힌 국민의 대표를 통제할 수 없다면 민주주의는 공고화되기 힘들 것이다. 흔히 참여정부의 이념적 성향에 대해서 ‘좌측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한다’ 는 웃지 못할 말이 있었는데 이에 대한 논거로서 충분하다고 생각된다.민주주의의 민주화에 대한 예고편이라고 할 수 있는 민주주의 이후의 민주화에서 저자는 대의민주주의의 핵심 기제로서 정당을 들고 있는데 이 책에서도 그 견해는 일관되게 이어진다. 1987년 이후 절차적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공고화되었지만,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기본권이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등 민주주의에 대한 기대와 열망이 반복되는 이유 역시 정당정치의 불안정성이 초래한다고 본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남북분단에 의해 이념적 스펙트럼의 범위가 매우 협애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정당에 의해 사회적 균열(cleavage)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였다. 사회적 균열이 반영되어 정당이 형성된 측면보다는 소수의 정치인에 의해 선택된 균열들만이 정당의 정책으로 전환되어 왔다. 특히 97년 외환위기 이후 엄청난 갈등과 균열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경제적 정책의 차이가 정당간 경쟁의 축을 만들기보다, 사회경제적 차원의 정책적 차이가 더욱 무의미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곧 경제성장 및 외환위기의 극복만을 목적으로 다른 균열이 정치과정에 반영되는 것을 알게 모르게 방해하였고, 정당의 본래적 기능을 사실상 마비시켰다.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 하에 노동의 유연성을 강조한 결과 노동자 및 소수의 계층의 이해관계는 제도권에 적극 반영되지 못하였다. 저자는 이에 대한 극복방안으로 사회경제적 발전의 대안모델인 코포라티즘을 제시한다. 중소기업의 산업과 대학교육의 연계, 원활한 노사관계 정립을 통한 사회복지와 생산성의 연계를 바탕으로 하는 중간급 코포라티즘을 시작으로 점차 그 범위를 확대하여 선거에 참여하는 정당에게 정치적 압력을 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한다.
Ⅰ. 세계화의 덫-서평최근 미국으로부터의 경제위기, 중국으로부터의 멜라민 파동은 세계화가 무엇인지, 그 파급의 정도가 어떠한지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작년 미국의 서브프라임(sub-prime) 모기지 사태로부터 발생한 달러의 유동성약화 현상은 얼마 전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신청 및 각종 투자은행의 어려움으로 나타났고, 이는 제 2의 대공황과 같은 세계경제의 침체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갖게 하였다. 우리나라 역시 실제로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9월 위기설’ 로 요약되는 경제위기의 가능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었고, 1500선 유지도 힘든 주식시장, 원/달러 환율의 급상승,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의 위협, 국제수지 적자의 악화 등에서 보듯이 어려운 상황에 처한 것만은 분명하다. 또한 최근에는 중국에서 생산된 각종 과자나 유제품에서 멜라민이라는 물질이 발견되어 이에 대한 실태 파악 및 대책 마련이 시급히 논의되고 있는 시점이다. 이와 같은 어려움이 우리나라 국민의 잘못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 국민국가의 약화 및 상호의존성 증대로 요약되는 세계화의 흐름에 따라 나타나는 상황이기 때문에 지금부터 소개하고자 하는 책인 ‘세계화의 덫’ 이 주는 의미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세계화의 덫의 저자 한스 페터 마르틴(Hans-Peter Martin)과 하랄트 슈만(Harald Schumann)은 각각 법학과 공학을 공부한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피겔(Der Spiegel)의 기자 및 편집위원이다. 비록 독일인의 시각에 국한되어 세계화를 바라보는 측면이 있지만 그들은 기자답게 수많은 사례들을 언급하며 오늘날 세계화의 양상 및 그 위험성을 적나라하게 지적하고 있다. 사람들이 노동하는 이유를 생존의 측면에서 본다면 보다 나은 삶을 위한 것이지만, 세계화의 흐름 하에 실제 나타나고 있는 상황은 인간답게 살 권리와 같은 기본적인 욕구마저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이 비일비재하게 나타나는 데 저자들은 이를 ‘수단과 목적의 전도(overconfirmity)' 로서 소개하고 있다. 또경영혁신과 생산합리화의 객체로 바뀐다는 '주체와 객체의 전도’, 값싼 원료와 값싼 생산입지라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자본의 기본적인 속성에 근거한 자연 및 인간의 파괴는 ‘생산적 경쟁이 아닌 파괴적 경쟁’으로 나타난다고 지적한다.구체적으로 제 1장 ‘20대 80의 사회-세계의 지배자들이 새 시대를 열기 위해 정신없이 돌아다닌다.’ 에서는 샌프란시스코 페어몬트 호텔에서 벌어지는 국제회의를 예로 들며 전 세계 20%의 엘리트들이 80%의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한다. ‘세계화의 덫’ 이후 오늘날 세계화의 양상을 분석하는 견해 중에는 20대 80의 사회를 넘어 10대 90의 사회를 전망하는 의견도 상당 수 존재한다. 마르틴과 슈만은 세계화의 흐름에서 낙오된 대다수의 사람들이 가난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민주주의마저 파괴할 수 있는 위험성을 내제하게 된다고 지적하며, 국가의 위상을 똑바로 세우고 신자유주의의 경향 하에 지나치게 팽창된 시장의 논리에 대응할 수 있는 정치논리가 요구된다고 한다.제 2장 ‘온 세상이 모두 하향 평준화되고 있다-세계화라는 무거운 짐과 범지구적 분열’ 에서는 월트 디즈니사의 미키마우스로 대표되는 미국 문화가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양상을 예로 들면서 매스미디어와 같은 정보화 수단을 통해 문화가 동질화되는 상황을 제시 한다. 티티테인먼트(tittytainment)-즐기는 것을 뜻하는 엔터테인먼트와 엄마 젖을 뜻하는 미국 속어 티쯔를 합친 말로서 기막힌 오락물과 적당한 먹거리의 절묘한 결합을 통해서 이세 상의 좌절한 사람들을 기분나쁘지 않게 만들 수 있다는 것- 와 스크리치(skrietsch) 문화-재미없고 요란하기만 한 문화-로 요약되는 문화의 동질화를 넘어 지구온난화와 같은 기후문제, 식량문제 역시도 소수의 그룹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불안정한 상황을 제시하면 세계화로 인한 문제를 지적한다. 보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상황을 인지하면서도 이를 통제할 만한 효과적인 수단이 없다는 것에 있다.제 3장 ‘세계금융ds System)의 종말로 인한 자유로운 국제 자본과 멕시코의 페소화위기를 예로 들면서 금융의 세계화의 덫을 지적한다. 우리나라 역시 1997년 외환위기와 그로 인해 나타난 IMF에 의한 전면적인 경제 개편을 겪었기 때문에 다른 부분에 비해서 특히 적실성(relevant)있는 논의로 느껴졌다. 이윤추구의 무기로 달러가 사용되면서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 토빈세(Tobin tax-모든 외환거래에 1%의 세금을 거두어 들여야 한다.) 및 유로화의 도입을 제시하고 있지만 파생상품거래의 폭발적 증가로 인하여 금융업에 엄청난 위험 및 불확실성(uncertainity)을 증대시켰을 뿐 뚜렷한 효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이와 같은 금융의 세계화는 여러 민족국가들 및 국제기관들의 합리적인 행위 능력을 파괴시키고 세계대공황과 같은 커다란 경제 위기가 왔을 때 아무런 대책을 강구 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 우려가 된다고 저자들은 지적하고 있다.제 4장 ‘늑대의 법칙-끊임없는 고용불안과 새로운 다국적기업’ 에서는 개발, 구매, 판매 등 전체 라인을 세계 기준으로 개선하고 변두리 공장에 이르는 모든 지점에서 중복작업을 제거하여 효율적인 자동차를 생산할 수 있게 된 포드사를 예로 제시하면서 다국적기업에 의한 킬러자본주의-임금과 일자리를 지속적으로 줄이면서 유지되는 자본주의-의 양상을 소개하고 있다. 세계화의 흐름 하에 각 국가들은 거대한 다국적기업을 자국에 유치하기 위해 탈규제, 자유화, 민영화를 추구하고 이는 노동의 유연성으로 나타나 소수 자본가와 다수 노동자의 부의 격차를 심화시킨다. 또한 오로지 주주에 유리한 이윤 극대화를 위해 기업이 운영되기 때문에 소외된 노동자들에 대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의식은 찾아보기 어렵다.세계화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흔히 얘기하는 ‘세계화로 인해 많은 개발도상국들이 경제적으로 선진산업국가로 가는 기회를 개선시켰다는 주장’ 은 실제 나타나고 있는 상황과 전혀 맞지 않음을 저자는 지적한다.제 5장 ‘속편한 거짓말-생산입지 유지 및 정의로운 세계화라는 신화10년 이상 지난 현재까지도 멕시코의 상황이 그다지 개선되지 못한 상황을 제시하면서, 세계화에 의한 경제정책이 하나의 허구에 불과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또한 아시아의 호랑이로 불리는 한국, 타이완, 싱가포르 그리고 홍콩의 경제발전 사례를 들면서 이들 나라 역시 환율조작, 교육투자, 기술이전의 용이성 증대와 같은 보편적인 세계화의 법칙을 따른 반면에, 재벌과 같은 자국 자본을 위한 보호장치의 마련이라는 특수한 방법을 사용했다고 지적한다. 물론 이와 같은 국가들 역시 부정부패, 정치적 억압, 환경오염 등의 문제점을 드러내면서 세계화의 폐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한다. 한편 세계화로 인한 고용위기가 오늘날 복지국가 유지에 대한 어려움을 야기 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보수적인 학자들이나 정치가들은 노동자의 게으름이나 국민들의 주제넘은 복지제도 남용의 결과라며 사회보장제도를 축소하라고 지속적으로 주장한다. 이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환경세의 도입과 같은 경제를 통제할 수 있는 정치적 수단을 저자들은 제시한다.제 6장 ‘능력 있는 사람은 자신을 구하라! 그런데 도대체 누가 능력 있는가?-중산층의 소멸과 우익 선동가들의 등장’ 에서는 브라질 상파울루의 ‘일파빌라’ 와 바로 옆의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지역을 극명하게 대립시키면서 세계화로 인한 중산층의 소멸과 양극화의 문제점을 드러낸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중산층이 투자한 주식 대금으로 또 다른 이윤을 추구하는 데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근로자에 대한 임금삭감과 정리해고를 주장한다. 이는 중산층의 입장에서는 아이러니 일 수밖에 없으며, 이와 같은 과정에서 중산층은 해체되고 만다. 이와 같은 상황 하에서는 과거의 파시스트와 같은 극우 정당이 출현할 수 있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퇴보를 가져올 우려도 있다.제 7장 ‘범죄자냐 희생자냐?-불쌍한 글로벌 플레이어들과 세계시장 경쟁의 격화’ 에서는 1992년 리우 데 자네이로에서 열린 유엔 환경회의를 예로 들면서 환경문제와 같은 세계화로 인한 부작용을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존재하기는 음을 지적한다. 또한 이는 정치적 목적으로 선거시 득표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오늘날 전 세계가 직면한 각종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동반자관계와 연대의식을 인식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세계화의 흐름을 추동하는 다국적기업과 같은 글로벌 플레이어들은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제 8장 ‘도대체 국가는 누구의 것인가?-정치의 추락과 국민 주권의 미래’ 에서는 독일의 자동차 회사 BMW가 합법적(?)으로 탈세하는 사례를 제시하면서 세계화의 흐름 하에 국가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전가격(transfer pricing)의 개념을 사용하여 세금의 부과 비율에 따라 수익률을 조정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국제 범죄조직들 역시 자유무역을 이용하여 범죄의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고, 이는 앞서 지적한 화폐권과 조세권 이외에도 국민국가의 또 하나의 기둥인 공권력을 약화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국가들은 보다 많은 다국적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더 많은 보조금을 지급하고, 올바른 생태계정책을 포기할 수 밖에 없다.제 9장 ‘방황의 끝-진퇴유곡에서 벗어나기’ 에서는 19세기 경제자유주의자들이 예측한 유토피아가 사회의 안정성을 파괴했기 때문에 좌절된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 하에 세계화의 양상이 시장과 민주주의 사이의 모순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응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저자들은 경제, 군사적 초강국인 미국이 이를 위한 유일무이한 가능성임을 언급하면서도 시장의 거대한 힘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며, 오히려 미국에 의한 세계화를 견제하기 위해 유럽 각국은 공동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Ⅱ. 문제점1. 내용상의 문제점1) 민주주의에 대한 내용의 부족‘세계화의 덫’ 은 부재로 ‘민주주의와 삶의 질에 대한 공격’ 이지만 금융의 세계화로 인 해 삶의 질이 황폐화된 사례만을 주로 언급했을 뿐,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다. 민주주의의 작동방식, 세계화로 인한 비정상적인 정치 양태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다 면 막연히 경제에 대
1. 서론한국의 전자민주주의는 2000년 1월 12일에 총선시민연대 홈페이지(www.ngokorea.org)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이 펼친 제 16대 국회의원선거 낙천운동은 국민들의 많은 호응을 얻었을 뿐 아니라, 실제 선거 결과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신문과 방송 등 기성 언론매체들은 낙천대상자 명단을 발표하기를 꺼려하고 실제로 발표하지도 않았지만 인터넷은 그렇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정보를 보기 위해 사이트에 접속했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접속하여 사이트가 다운되기 까지 하였다. 2003년에 있었던 대통령 선거는 인터넷의 힘을 절실하게 느끼게 해 준 또 하나의 사건이다. 민주당의 노무현 후보가 당선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온라인상에서 결성된 ‘노사모’가 미친 영향력은 결코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전 선거까지는 각 정당의 후보자들이 여러 지방을 돌며 면 대 면으로 선거운동을 했지만, ‘노사모’는 온라인상에서 결속을 다지고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였다. 대통령 선거 이후 많은 정치인들이 개인 홈페이지를 활성화하고, 팬클럽을 결성한 일 등은 더 이상 정치인들이 네티즌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나타낸 것이다. 또 당선된 후 노무현 대통령은 ‘참여정부’를 모토로 하여 모든 국정 운영에 있어 국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였다. 국민참여센터를 통해 온라인상으로 장관후보의 추천을 받는다거나 정책 아이디어를 수집하는 일 등은 이전의 정부 형태에서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이처럼 정보화의 영향으로 모든 국민들이 정치적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 그렇다면 이상적인 정치체제 형태라고 여겨져 왔던 직접 민주주의가 정보화 시대에는 가능할 것인가?2. 전자 민주주의의 한계전자 민주주의는 전자 기술의 적극적 사용을 통하여 시민의 정치참여가 일상화된 민주주의이다). 전자 민주주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입장 중에서도 전자 민주주의에 대한 해석은 크게 두 갈래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전자 민주주의가 대의 민주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직접 민주주의이거나 적어도 반(半) 직접 민주주의라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전자 민주주의가 대의 민주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의 민주주의체제를 활성화시키고 그 문제점들을 상당부분 제거할 수 있다는 것이다.대의 민주주의가 지니고 있는 효율성과 전자 민주주의가 지니고 있는 한계를 생각한다면 후자의 입장이 보다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전자 민주주의는 너무 이상적인 시민을 전제로 삼고 있다). 아무리 인터넷 보급률이 세계 1위)라고 해도 모든 사람이 인터넷에 접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 인터넷을 통한 정치참여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의견을 공식적으로 표현하고 정책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인터넷을 사용할 것이라고 가정하지만 정치적으로 무관심하고 소극적인 계층에게는 이러한 가정이 부합하지 않는다. 결국 인터넷에 의한 전자 민주주의는 정치적으로 적극적인 중상류 계층의 목소리를 크게 해 줄 뿐 일반 대중의 정치에 대한 관심과 참여를 제고하는데 기여하기는 힘들 것이다. 둘째, 정보의 신뢰성 문제이다. 정보화가 진전됨에 따라 걸러지지 않은 정보가 범람하고, 대중여론이 여과되지 않은 채 정치과정에 무수히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게다가 인터넷의 익명성을 고려한다면 직접 만나서 토론하고 의사 결정하는 과정보다 훨씬 더 무책임한 대화와 토론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셋째, 전자 민주주의는 시민사회가 권력을 감시할 수 있는 기회를 줌과 동시에 보다 효과적으로 감시를 당하게 할 수도 있다. 인터넷이라는 매체는 소외되고 무력한 시민들보다 권력을 갖고 있는 정부나 정치인들이 더욱 잘 활용할 수 있다. 여론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이끌어 갈 수 있고, 보다 쉽게 권력을 유지할 수도 있다. 예컨대 오웰의 ‘1984’의 모습-빅브라더의 출현-이나, 벤담의 ‘원형감독’의 구상이 기술적으로 충분히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일반 시민들이 복잡한 세계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통신 전자 장치와 그 전문가들에게 의존하면 할수록 기술가 지배적(technocratic) 전제 정치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 사회 구성원 개개인에 대한 정보가 누출됨으로써 개인의 인권이 위협받게 된다. 특히 간접 민주주의에서는 보호되던 비밀투표에 의한 익명성이 전자 민주주의 시대에는 더 이상 보장받지 못할 수 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전자 투표의 실시여부를 결정하지 못한 이유도 바로 이 문제 때문이다.3. 전자 민주주의의 활용방안대의 민주주의가 지니고 있는 한계-소수 대표자의 의사가 다수 국민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를 전자 민주주의를 이용해 참여를 강조함으로써 극복하려는 점은 충분히 타당성이 있다. 단 여기서 말하는 참여의 형태는 대표를 믿지 못하여 자신이 직접 자기 의견과 자기 이익을 표출하기 위한 참여가 아니라, 개별화된 개인들이 자기 의견과 이익을 넘어서서 생각할 수 있도록 공동체의 규범을 세우고 공동체가 집행하는 정책이 그 규범성에 근거함으로써 정당하고 효율적으로 집행될 수 있도록 만드는 방식이어야 한다). 자신의 이익만을 강조하는 참여는 사회통합을 저해하고, 결국 개인적 혹은 당파적 이해관계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기존의 ‘정치꾼의 정치(politics)’와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 오히려 중구난방식의 의견 개진이 이루어져서 사회적 희소가치의 배분이 어려워질 가능성이 더 크다. 그러므로 정보화 사회가 발달함에 따라 정치 영역에 참여하기가 쉬워진 오늘날, 사적인 이해관계를 초월한 정치적 가치와 규범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관용이 절실히 필요하다. 둘째, 전자 민주주의를 활용함에 있어서 국민들의 책임의식이 전제되어 있어야 한다. 언제 어디서나 클릭 한 번으로 전자투표를 할 수 있고, 타인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기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책임의식은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 정치적 의견을 표현하는 방식이 과거에 비해 쉬워졌다고 해서 책임의식 없이 정치활동에 참여한다면 정치적 무관심이 나타나고, 결국에는 전자 민주주의가 기득권을 가진 계급의 또 다른 지배수단으로 사용될 것이다. 따라서 인터넷을 이용하여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기 전에 정치에 대한 끊임없는 자기의 성찰과 다른 사람들과의 충분한 토론이 선행되어야 한다. 셋째, 정보의 불평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우선 모든 국민이 쉽게 인터넷을 접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정부나 정치인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정보를 선별해서 공개하기보다는 국민의 알권리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또 전자 민주주의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이는 누구나 정보에 자유로이 접속할 수 있어야 한다는 리오타르식의 테제이다). 물론 국가의 존립이나 사회질서 유지를 위해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것은 논외로 한다. 사회적 약자나 소외된 계층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집단의 온라인상 활동을 보장하여 그들도 정치적 의사 결정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즉 정책 관련 정보 중개 계층의 형성과 발전을 장려하고 그들의 활동과 정책 과정 사이의 연계를 강화해야 한다. 정보 중개 계층은 정보의 양이 급증하는 전자 민주주의 시대에 복잡한 정책 문제를 조명하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여 정보에 쉽게 접근하기 힘든 계층을 정보의 불평등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게 할 것이다. 정보 중개 계층은 오늘날 정치인과 같은 대표자의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살펴 볼 수 있듯이 전자 민주주의는 직접 민주주의로 나타나기 보다는 또 다른 형태의 대의 민주주의로 나타날 가능성이 더 높다.
Ⅰ. 서론Ⅱ. 본론1. 산에 사는 아라페쉬인2. 강가에 사는 먼더거머인3. 호숫가에 사는 챔불리인Ⅲ. 결론Ⅰ. 서론작년에 한 연예인이 동성애자임을 밝힌 일이 있었다. 물론 그 전에도 우리나라에 동성애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가 연예인이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의 용기 있는 행동에 격려를 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는가 하면, 그의 방송 출연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지금은 가끔씩 TV에서 그를 만날 수 있지만 우리는 한동안 그를 볼 수 없었다. 전통적인 유교사상에 익숙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동성애자들을 비정상적인 사람들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연예인 한 명의 커밍아웃으로 사회적 차원의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그들은 우리 사회에서 마이너리티이다.마가렛 미드는 그의 저서 ‘ 세 부족 사회에서의 성과 기질 ’에서 사회적 환경이 사람들의 성에 따른 기질을 어떻게 형성시키는지 보여주고 있다.Ⅱ. 본론 - 민족지에 나타난 세 부족의 모습1. 산에 사는 아라페쉬인한 사회 또는 그 사회의 어느 특정부분의 문화에 관하여 집중적으로 연구한 결과물을 민족지(ethnography)라고 부르며, 이 결과물의 표현매체는 주로 문자와 영상에 의존한다.첫 번째로 소개되는 부족은 아라페쉬인으로 이 부족은 한 마디로 말하자면 남, 여 이성간의 차이 없이 공통적으로 온순하고 모성적인 성격을 가진 부족이다. 아라페쉬인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최대 지상과제가 아이를 잘 기르는 것이라고 믿고 모든 것을 효과적인 자식교육으로 연결해서 생각하곤 한다. 항상 사랑으로 아이들을 감싸주고 따뜻한 사고방식으로 평생을 살아간다. 식량은 그리 풍요롭진 않고 다들 비슷한 수준으로 살아가지만 늘 낙관적인 태도로 일관한다.그리고 한 가지 특징적인 것은 사람들이 순진하고 평범하게 살기를 원하는 본성이 있어서 지도자가 되는 것을 꺼려하고 나서기를 싫어한다는 것이다. 지도자는 어렸을 때부터 미리 소년을 한 명 정해놓고 특수한 교육을 시킨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보편적인 아라페쉬인들의 성향과 반대되는 거칠고 폭력적인 성향을 갖추게 되는 것을 요구받게 되고 그렇게 키워지는 미래의 지도자를 ‘부아닌’이라고 불린다.그리고 사람들이 순진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마술사’에 대한 두려움이다. 아라페쉬인들은 ‘찌꺼기’라는 개념이 있는데 이것은 침과 콧물을 비롯한 사람 몸에서 나오는 모든 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문제는 아라페쉬인들의 인식 속에 찌꺼기를 몸 밖으로 내보내면 누군가가 그것을 가져다가 마술사에게 주면 마술사가 찌꺼기를 함부로 내보내는 그 사람을 저주하는 주문을 건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실수로라도 찌꺼기를 배출하지 않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그리고 자신들이 산지에 둘러싸인 지형에 살기 때문에 바깥세상과 단절되어 예술적으로 무지하고 뒤떨어진다는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다른 곳에서 들어오는 문화들을 받아들이는 것을 굉장히 영광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새로운 문화가 들어오는 해변지역을 상당히 부러워하는 경향이 있다.또 아라페쉬인들의 결혼 양식은 시부모 될 사람들이 맘에 드는 소녀를 골라 어렸을 적부터 시댁에 데려와 키운 다음 자연스레 부부로 만드는 형태이다. 그리고 별다른 특별한 의미는 없이 일부다처제가 되는 경우도 있고 남편이 아내를 두고 죽으면 아내는 남편의 형제들에게 다시 시집을 가게 되는데 그 의미는 여자가 단순히 한 남자와 혼인을 한 것이 아니라 그 집안과 결합을 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해석하고 있다.2. 강가에 사는 먼더거머인두 번째로 마가렛 미드가 연구했던 부족은 강가에 사는 먼더거머인이다. 먼더거머인들은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아라페쉬인들과 반대되는 성향을 지니고 있다. 이 두 지역의 주민들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꽤 많은 관습을 공유하고 있었고 동일 문화권에 속하며, 불과 100마일 정도 떨어져 살 뿐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리관이나 사회적 인성에 있어 무척 대조적이라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학문적 흥미를 끈다. 사람들의 성품 자체가 적대적이고 개인주의적이며 공격적이라고 책에서는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읽으면서 마음이 참 아팠던 대목은 여자들이 임신을 하면서부터 태아를 미워하고 원망하며 부정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 부족 사람들은 태어나기 전부터 환영받지 못한 채 인생을 시작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환경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폭력적이고 적대적인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이라고 인과관계를 지어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또한 먼더거머인들 사이에서는 인간머리 사냥과 식인 풍습이 존재하고 아이들을 가르칠 때도 스파르타식으로 정말 성의 없이 귀찮다는 듯 키우고 가르친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혼전정사를 절대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밀리에 혼전정사를 한다고 한다. 이러한 면들을 보면 먼더거머인들은 생각 자체가 부정적이기 때문에 정해진 형식이나 관습을 꼭 따라야 한다는 개념조차 없는 것 같다.이 곳에서는 ‘일탈자’라고 불리 우는 먼더거머인 답지 않은 소수의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이 그나마 남아있는 의례와 형식적인 행사를 끌어나가는데, 이러한 행사들이 오히려 먼더거머인들의 분열을 조장한다고 하는 것을 보면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반항적이고 서로간의 적대적인 분위기가 눈에 보이는 듯하였다.먼더거머인들의 특성은 전체적으로 아라페쉬인들과 정반대인 폭력적이고 적대적인 성품이지만 그 와중에 남, 여 간의 반대되는 특징은 없다는 점에서는 아라페쉬인들과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3. 호숫가에 사는 챔불리인세 번째 부족인 챔불리인들은 앞의 두 부족과는 반대로 남, 여 간의 특성이 분명하게 대조적으로 드러나는 부족이다. 챔불리족이 특이하다고 할 수 있는 점을 꼽자면 겉으로 드러나기에는 부계제사회고 가부장적사회인 남성 중심적인 사회이지만 알고 보면 모든 실권과 경제력을 여자들이 잡고 있는 특이한 사회인 것을 들 수 있다. 나는 처음에 그것을 알고는 부족사회가 왜 그렇듯 겉과 속이 다른 생활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았는데 그 배경을 알고 나니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배경이란 다음과 같다.먼저 챔불리족이 생활하기 위해 돈을 벌어들이는 곳은 여자들이 하는 어로일과 역시 여자들의 일인 모기장 짜는 작업이다. 옆 부족인 중부 세픽인들은 늘 모기와 전쟁을 하기 때문에 모기장이 생활필수품이고 챔불리족 여자들이 짠 모기장으로 생활을 해나가기 때문에 챔불리 여인들이 생산해내는 모기장은 정말 수요가 대단하다. 이렇듯 거의 모든 경제력을 여자들이 잡고 있기 때문에 거의 모든 실권을 여자들이 가지고 있지만 챔불리인들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예술’행위를 남자들이 하기 때문에 ‘겉’으로는 대접을 해주지만 알고 보면 여자들의 사회인 것이다. 챔불리인들은 식량도 풍부하고 늘 풍요롭기 때문에 매일 노동할 필요가 없어서 잔치나 무도회를 자주 여는 편이다. 그럴 때마다 여자들은 잔치를 위한 돈을 대고 준비는 남자들이 하며 여자들은 준비가 다 된 무도회에 참석해 재롱을 떠는 남자 한두명을 놓고 다같이 즐거워한다. 이러한 것들을 볼 때 실제적으로 여성의 위치가 얼마나 확고한지 가늠할 수 있다.그리고 또 충격적인 특성을 들자면 남자들은 서로간의 신경전과 눈치 보기, 소심한 마음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것에 반하여 여자들은 그야 말로 모두 친구와 자매 같이 넓은 마음을 지니고 평안하고 화목한 분위기로 평생을 산다. 챔불리인들은 남자 여자의 생활공간이 전혀 다르고 동성끼리 여럿이서 모여 사는 형태이기 때문에 남자들이 모인 곳에는 늘 긴장감과 적대감이, 여자들이 모인 곳은 늘 웃음과 평안이 있어 정말 반대적인 면을 보여준다.같은 부족인데도 그렇듯 정반대의 분위기가 흐를 수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궁금했는데 바로 그 배경설명이 나와 있었다. 챔불리족의 ‘소년시절’을 조명해 보았을 때 그 이유가 풀리게 됐는데, 소년들은 어릴 적부터 분명 아버지가 얼마에 어머니를 사와서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 실상 생활을 하면서 보면 아버지가 늘 어머니의 비위를 맞추려 노력하고 어머니한테 잡혀 사는 현실을 눈으로 보고 커가면서 정신적 혼란을 느끼게 된다. 또한 자신과 같은 성인 남자들이 아주 날카로운 상태로 평생을 살아가는 것을 보며 자신도 미래에 저렇게 될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과 거부감으로 또한 혼란을 느끼게 되고, 결정적으로 문신, 성년식 등 소년들에게만 요구되는 육체적 고통이 따르는 의례, 의식들을 보면서 두려움을 갖게 되어 소년들은 마음이 평안할 날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아주 어리지도 않고 아주 성인도 아닌 자신들이 낄 자리가 실제로 없기도 하여 의식이나 잔치가 있을 때마다 소년들은 그 주위를 방황하고 떠돌며 주변인으로 남게 되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정서 불안이나 우울증, 또는 신경 쇠약 등이 찾아와 결국에는 자신이 보고 자란 성인 남자들과 똑같이 평생 경쟁의식과 적대심을 가지고 상대를 바라보며 살게 되는 것이다. 어찌 보면 악순환일 수 있다고 할 수 있기에 참 마음이 아팠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에 대한 분석Ⅰ. 탄핵제도에 관하여1) 의의2) 탄핵소추3) 탄핵심판Ⅱ. 탄핵소추의 적법여부1) 국회에서의 충분한 조사 및 심사가 결여되었다는 주장에 관하여2) 적법절차원칙에 위배되었다는 주장에 관하여3) 탄핵소추사유별로 의결하지 않았다는 주장에 관하여Ⅲ. 탄핵결정의 정당성여부1) 피청구인이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에 위반했는지 여부가. 기자회견에서 특정정당을 지지한 행위의 위법성나. 헌법을 준수하고 수호해야 할 의무와 관련하여 문제되는 행위의 위법성다. 대통령 측근의 권력형 부정부패라. 불성실한 직책수행과 경솔한 국정운영으로 인한 정국의 혼란 및 경제 파탄2) 피청구인을 파면할 것인지의 여부Ⅳ. 결론Ⅰ. 탄핵제도1) 의의탄핵제도라 함은 일반사법절차에 따라 소추하거나 징계절차로써 징계하기가 곤란한 고위직행정공무원이나 법관 등 신분이 보장된 공무원이 직무상 중대한 비위를 범한 경우에 이들을 의회가 소추하여 처벌하거나 파면하는 제도)를 말한다.2004년 3월 12일 국회에서 여야간의 충돌 끝에 통과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는 대한민국건국헌법의 제정이후 최초로 국가원수이자 행정권의 수반인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국회에서 의결된 사건으로 헌정사적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의 판단으로 비록 탄핵소추안이 기각되기는 하였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 국민 어느 누구도 법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을 수 없음을 다시 한 번 인식하게 하였다. 또 탄핵제도에 관한 많은 관심과 학문적인 연구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탄핵제도에 대해서 살펴보고, 헌재의 판단에 관해 비판적으로 검토해 보자.2) 탄핵소추가. 탄핵소추의 기관대부분 국가의 탄핵소추권 및 의결권은 국회에서 가지고 있으며 양원제에선 국민의 대표성이 더 큰 하원에서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다. 단원제인 우리나라의 현행헌법도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제65조 1항)고 하여 국회를 탄핵소추기관으로 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국회에게 대통령의 헌법 등 위심판이 있을 때(탄핵심판의 선고일)까지 권한행사가 정지된다.(헌법 제65조 3항, 국회법 제134조 2항) 따라서 그 기간 중에 행한 직무행위는 위헌 · 무효가 된다. 권한정지효과는 타국의 입법례에선 찾아보기 힘들며), 국정공백의 우려가 있으므로 우리도 독일같이 권한행사정지규정을 삭제하고 그 대신 직무집행정지가처분제도를 도입하여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소추의결서가 송달된 이후에는 임명권자는 피소추자의 사직원을 접수하거나 해임할 수 없다.(헌법재판소법 제134조 2항) 그러나 파면은 허용된다. 탄핵소추를 받은 자가 헌법재판소의 결정선고 이전에 파면되면 헌법재판소는 탄핵심판청구를 기각하여야 한다.(헌법재판소법 제53조 2항)3) 탄핵심판가. 탄핵심판기관탄핵심판기관에 관한 입법례로는 상원으로 하는 예(영국, 미국 등 양원제국가), 헌법법원으로 하는 예(독일, 이탈리아), 독립된 탄핵법원으로 하는 예(일본) 등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몇 번의 변화가 있었지만 현행헌법은 헌법재판소로 하여금 탄핵심판을 담당하게 하고 있다.(헌법 제111조 1항)나. 탄핵심판절차소추위원이 소추의결서의 정본을 헌법재판소에 제출하면 탄핵심판청구의 효력이 발생한다. 국회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이 소추위원이 된다.(헌법재판소법 제49조) 심판기간에 대해서 헌법재판소법에서는 180일 이내로 정하고 있지만, 훈시규정으로 이를 초과하더라도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탄핵사건의 심판은 심리공개주의와 구두변론주의를 원칙으로 한다.(헌법재판소법제30조 1항) 재판부가 변론을 열 때에는 기일을 정하고 당사자와 관계인을 소환하여야 한다.(헌법재판소법 제30조 3항) 당사자가 변론기일에 출석하지 아니한 때에는 다시 기일을 정해야 한다. 다시 정한 기일에도 당사자가 출석하지 아니하면 그 출석없이 심리할 수 있다.(헌법재판소법 제52조 1항 및 2항)헌법재판소는 심판사건을 접수한 날로부터 180일 이내에 종국결정의 선고를 하여야 한다. 동일한 사유에 관하여 형사소송이 계속되는 동안에는 심판절차를 정지할 수 있다.(헌 하기에 앞서 국민은 자신의 견해를 진술할 기회를 가짐으로써 절차의 진행과 그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한다는 법원리를 말한다.그런데 이 사건의 경우, 국회의 탄핵소추절차는 국회와 대통령이라는 헌법기관 사이의 문제이고, 국회의 탄핵소추의결에 의하여 사인으로서의 대통령의 기본권이 침해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기관으로서의 대통령의 권한행사가 정지되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기관이 국민과의 관계에서 공권력을 행사함에 있어서 준수해야 할 법원칙으로서 형성된 적법절차의 원칙을 국가기관에 대하여 헌법을 수호하고자 하는 탄핵소추절차에는 직접 적용할 수 없다고 할 것이고, 탄핵소추절차와 관련하여 피소추인에게 의견진술의 기회를 부여할 것을 요청하는 명문의 규정이 없으므로, 국회의 탄핵소추절차가 적법절차원칙에 위배되었다는 주장은 이유가 없다고 판시하였다.나. 검토헌재의 판결대로 탄핵소추절차에 ‘적법절차의 원칙’을 적용시키는 것이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적법절차의 원칙은 국가가 고권적 지위에서 사인인 국민에게 침해행정을 하려고 할 때 적용될 수 있는 것이지, 국회와 대통령이라는 헌법기관 사이에는 적용이 불가할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 개인의 공무담임권의 침해문제로 탄핵소추절차를 살펴본다면 적법절차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만은 할 수도 없다. 헌법재판소는 헌법 제25조의 공무담임권이 “입법부, 집행부, 사법부는 물론 지방자치단체 등 국가, 공공단체의 구성원으로서 그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권리”로서 “공무담임권의 보호영역에는 공직취임의 기회의 자의적인 배제뿐 아니라, 공무원 신분의 부당한 박탈이 공직취임의 기회의 자의적인 배제보다 국민의 법적지위에 미치는 영향이 더욱 크다)고 보고 있다. 이 판례의 취지에 의하면, 탄핵소추의결은 국회와 대통령이라는 국가기관 사이의 문제일 뿐 아니라 대통령 개인으로서는 국회의 의결에 의하여 공직수행이 일정기간 정지되고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파면까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공무담임권의 문제가 됨을 결코 부인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또 권력분립의 인 간담회에서의 발언, 2004년 2월 27일 중앙일보에 보도된 “17대 총선 열린우리당 전략기획” 등 총선과 관련하여 발언한 행위에 대해서 위법성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다.가-2. 검토논쟁이 되는 부분은 공선법 제9조에서 공무원의 중립의무를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서 의미하는 ‘공무원’의 범위에 대통령도 포함되어야 하는 것인가의 문제)이다.하지만 공선법 제9조의 공무원을 사실상 ‘모든 공무원’이라 하고, 다만 국회의원과 지방자치의원만을 선거의 당사자라는 이유를 들어 제외하는 것은 지나친 확대해석이다). 오히려 공무원이라는 표현은 ‘기타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자’라는 뒤따른 표현에 의해 제한적으로 새기는 것이 옳고 정치적 중립의무가 있어 원칙적으로 국가공무원법상 정치활동이 금지되는 공무원을 의미하지 국가공무원법상 정치활동이 허용되는 공무원은 원칙적으로 포함하지 않는 것으로 새겨야 한다. 국가공무원은 국가공무원법 제65조에 의하여 원칙적으로 정치활동이 금지되나 대통령은 동법 제3조 3항과 그에 따른 시행령인 국가공무원법 제3조 3항의 공무원의범위에관한규정제2조에 의하여 정치활동이 허용되는 공무원)이다.물론 집행권은 선거과정에 대한 관리도 주요한 임무로 하므로 대의민주주의의 요체인 선거의 자유와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정치인인 대통령의 직무수행도 절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정치적 공무원의 정치행위에 의해 구체적 정책을 결정하는 것과 신분이 보장되고 정파를 초월한 중립적 직업공무원조직을 통해 그 정책을 공정하게 집행하는 것은 엄연히 별개의 문제)이다. 예컨대 정치적으로 국민에 의해 선택된 대통령이 자신의 정책적 비전에 우호적인 특정정당에 대한 지지를 표현하여 국민의 정치적 판단을 돕는 것과 행정수반으로서의 지위를 남용하여 하급기관으로 하여금 선거관리에 필요한 공무집행과정에서 특정 정파에게 구체적인 특혜를 주도록 획책하는 것과는 본질상의 차이가 있다.또 대통령은 특정의 정책을 걸고 경쟁자들과 경쟁한 끝에 국민의 선택을 받은 특정한 정파에 속한 정치인으로변화된 현실에 상응하는 새로운 법해석의 가능성을 주장한 것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법해석이 타당하지 않다는 이의를 제기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또한 법개정의 필요성을 주장한 것은 대통령의 정치적 입장을 표명한 것에 불과한 것이지 법치국가원리의 구성요소 어디에도 반한다고 보기 어렵다. 더구나 헌법 제52조에 따라 법률안제출권이 인정되는 대통령이 현실을 규율하기 위해 제정된 법규범이 그 규율대상인 현실의 변화에 따른 변화된 법해석이나 법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표명하는 것 자체가 법을 위반하는 행위인 것도 아니며, 또 법을 위반하겠다는 의사표현에 해당하는 것도 아니다는 점에서 법치국가원리에 반한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법해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법치국가의 정신에 반하는 것이며,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법의 개정을 주장하는 것이 헌법준수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은 타당하지 않다고 할 것이다.대통령은 헌법 준수의 의무와 함께 헌법 제10조에 규정되어 있듯이 국민의 기본권보장의무 또한 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위헌적인 요소가 있는 법률을 그대로 집행하기 보다는 위헌의 합리적 의심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나-3. 헌법재판소의 결정요지(2003. 10. 13 재신임국민투표 제안한 행위)국민투표는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사안에 대한 결정 즉, 특정한 국가정책이나 법안을 그 대상으로 한다. 따라서 국민투표의 본질상 대표자에 대한 신임은 국민투표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우리 헌법에서 대표자의 선출과 그에 대한 신임은 단지 선거의 형태로써 이루어져야 한다. 대통령이 자신에 대한 재신임을 국민투표의 형태로 묻고자 하는 것은 헌법 제72조에 의하여 부여받은 국민투표부의권을 위헌적으로 행사하는 경우에 해당하는 것으로, 국민투표제도를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정치적 도구로 남용해서는 안 된다는 헌법적 의무를 위반한 것이다. 물론, 대통령이 위헌적인 재신임 국민투표를 단지 제안만 하였을 뿐 강행하지는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