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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근대사] 중국5.4운동에 대해서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동양문화를 선도해온 중국은 아편전쟁의 충격 이후 근대화 운동이 번번이 실패를 거듭했다. 그러나 20세기 초 중국은 신해혁명 결과 최초로 공화정이라는 아시아에서는 생소한 정치체제를 수립하였다. 그러나 정치경제적으로 철저한 반제, 반봉건을 청산하지 못한 불완전한 혁명의 산물인 '민국'은 군벌의 지방할거와 세계열강들의 중국에서의 이권독점 등으로 인한 반식민주의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였다.이같은 상황은 신해혁명을 새로운 중국의 탄생으로 환영하였던 사람들에게 절망감을 안겨주었다. 그리하여 중국인들은 새로운 중국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정치적인 변혁만이 아니라 의식적인 혁명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어 정신혁명을 제창한 신문화운동이 일어났다. 이 신문화운동 기간 중, 일본의 대중국 21개조 요구에 대한 철회운동으로 부터 반일운동이 전개되고, 1919년 5월 4일 북경에서 북경소재 각급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5.4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을 일반적으로 5 4운동이라 부른다.오늘날 5.4운동은 중국에서 청년절, 대만에서는 문예절로 각각 기념행사를 할만큼 중요한 사건으로 간주되고 있으며 이는 중국 현대사에서 하나의 전환을 의미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5 4운동은 1919년 5월 4일 북경대학에서 일본의 21개조철회, 파리강화조약거부, 일화배척, 친일요인의 제거, 반제국주의, 반군벌 등을 요구하며 시위에 들어가자 곧 전국으로 확산된 운동이다.5. 4운동이 일어난 시기인 1919~1921년의 중국은 군벌의 할거 시대였고, 남북 대립의 시기로 매우 혼란했다. 중국의 경제체제였던 자급자족적 농업경제는전세기 서양에 의한 중국의 개국 이후 변화되기 시작했고, 외국 상업경쟁의 압력은 서양열강이 군수품 생산에 몰입하게 된 제1차세계대전으로 인하여 비로소 완화되었다. 그때부터 중국의 민족상공업은 수입초과의 감소로 인하여 성장 발전하였다. 고도의 생산기술이나 대량의 자본을 필요로 하지 않는 방직 제분공장등 경공업의 중국내 생산은 1914~1920년까지 현저히 발전했고, 이. 그러므로 20세기 초 중국은 잇달은 파괴와 폐허의 정리,재건과 개혁을 포함하는 사회 경제적 변화가 기대 되었으나, 제1차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에 일본 자본의 영향 증대와 다른 열강의 중국시장 복귀는 중국의 민족자본과 정면에서 대결하게 되었다. 민족자본가는 자기의 실력향상을 위해 외래자본을 중국에서 구축할 필요성을 느꼈고, 그들 상품의 판로를 위해 군벌의 할거에의한 국지적 시장권을 강력히 통일 시장권으로 재편하기를 희망하고 있었다.이런 경제 변동에 수반하여 중요한 사회변동이 일어났다. 사회세력들간의 전통적 평형상태는 균형을 잃게 되었고, 과거제도가 폐지되었으나, 어떤 새롭고 효과적인 임용제도로 대체되지 않았기에 유능한 젊은 남녀는 정규경로를 통해 관직에 들어갈 수 없었다. 긴박한 시기에 사회구제 수단이었던 자급자족적 협동적인가족과 촌락구조는 이 중대한 위기를 감당하지 못했다.또한 1907년 이후 10년간, 새로운 서양식 교육제도가 눈에 띌 정도로 구체적인기능을 발휘하기 시작하여, 근대 서양지식을 지닌 신지식인이 대두했다. 그들은근대 서양문명과 다각적 접촉을 함으로써, 생활이 불안정한 민중을 지도할 수 있게 되었다.당시 중국의 내부에서는 이들에 의하여 『신문화 운동』이 전개되어 민중의 사회적 각성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 운동은 신해혁명의 성장과 원세계를 필두로하는 봉건 군벌에 모두 빼앗겨, 정치, 경제, 사회적 측면에 아무런 변화나 광명을 가져오지 않자, 이 혁명에 기대를 걸고있다가 좌절감에 빠졌던 지식인들에 의하여 일어난 운동이었다. 구문학에 반대하여 신문학을, 구도덕에 반대하여 신도덕을 제창한 이 운동은 노동대중에게 까지 확산되지는 않았지만 중국지식인들이2천년이나 쌓아 올린 유교적 세계관에 대한 철저한 파괴를 수반한 운동이었다.1915년 이후, 중국의 국내외 정국은 반란의 온상지였고, 제1차세계대전 붕괴직후에 민족주의, 민주주의적 분위기로 휩싸여 있었으며, 많은 나라에서 폭발하고 있는 혁명들은 대중봉기에 의한 변혁의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그러던 중 일본의 직후 일부관료가 제의하고, 원세계가 승인한 구국의 계획을 바로 잊어버렸다. 그러나 민중에 대해서 살펴보면, 첫째, 새로운 민족주의가 점차 형성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생존을 위하여 외국침략에 저항할 필요가 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둘째, 침략으로 규정될 수 밖에 없는 외세압력때문에 적어도 당분간 거국일치의 정신이 중국에 유력해져 많은 정파들이 원세계를 지지하러 모였다. 이에 원은 군주제 부활을 기도하게 되었고 이는 중국인 특히 신지식층에게 구국을 위해서는 군벌과 매국노들이 제거되어야 한다는 경각심을 갖게 했다.1918년 11월 11일 제1차세계대전이 연합국의 승리로 끝나자, 중국인은 어느전승국 못지않게 정열적으로 승리를 축하하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파리강화 회의가 1919년 1월 18일 개최 되었다. 중국 대표는 파리강화 회의에서 열강의 중국에 대한 특수권익에 대하여 (1)중국에 설정된 세력범위의 포기 (2)중국에 주둔하고 있는 각국 군대의 철수 (3)가국이 중국에서 경영하고 있는 우편, 전보사업의 이양 (4)영사재판권의 폐기 (5)조차지의 바환 (6)조계의 반환 (7)관세자주권의 승인등 7개 항목의 희망조건을 제출하고 1차대전중에 얻은 일본의 가종 특수 권익의 반환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이 요구는 각국의 승인을 얻지 못하였고 전후 독일이 중국에서 얻은 권익을 일본이 인계할 것을 결정하였다. 이러한 결정을 하게된 서방제국은 아시아 지역내에서의 공산주의 침투 저지에는 동맹국이 필요하다는 생각하에서 일본의 요구를 만족시켜 주었고, 동시에 아편전쟁 이후 열강이 차지했던 이권 중 극히 일부분이라도 중국에게 반환되는 것을 혀용함으로써 불평등 조약 체제가 파괴되는 모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이런 파리강화회의의 결과를 전해들은 중국국민들은 분호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이에 북경대학 핵생들을 중심으로 하는 학생 5천명이 봉기하게 된 것이다. 이들은 밖으로는 국권을 회복하고 안으로는 국적을 응징하며 청도를 탈환하고 ‘21개조’ 요구를 폐지하며 일화배척하고 평화조약 에 강한 반발을 사게 되었으며 이후 학생들은 조국의 위기를 부르짖으면서 일본상품배척 국산품 장려 운동을 전개하였다. 6월이후의 5.4운동은 학생운동에서 대중운동으로 전환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는데 상해의 상인들은 철시를 단행하였으며 공업부문.교통부문의 스트라이크로 확대되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천진. 호남. 한구 등 주요도시뿐만 아니라 중국 각 지역에서 일어나게 되었다. 대표적으로 두 곳 지역에서의 활동을 보면 호남성에서의 5.4 운동은 군벌 장경요의 추방운동으로 발전해 나갔으며 5월4일의 소식이 전해지자 장사의 거리는 구국운동으로 소용돌이쳤고 이러한 과정에서 중요한 지도자인 모택동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모택동은 신문화운동의 정신 즉 학생운동을 전개하였으며 7월에는 을 발간하였으며 호남지방을 지배하고 있던 장경요를 몰아내기위한 학생운동에 앞장섰으나 장경요가 학생단체를 탄압하자 모택동은 도망치는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호남성에서의 운동은 계속해서 이어졌고 마침내 다음해에 일단 성공을 보게 되었다. 이는 지방군벌에 대한 호남성민의 승리였다. 천진에서의 5.4운동은 7월이후에도 집요하게 추진되었다.강렬한 배일의식이 존재하였던 이 지방에서의 5.4운동은 1919년10월10일 천진학생연합회를 중심으로 데모를 벌였으며 12월에는 남해광장에서 일본상품을 산적한채 방화하기도하였다. 이에 위협을 느낀 정부는 6월10일 조여림, 장종상, 육종여등 친일요인들을 면책하고 중국 대표에게 파리평화조약의 조인을 거부하도록 지시하였다. 5 4운동을 통해서 얻은 것은 무엇이었던가 하면 그것은 새로운 인간으로서의전생의 의식이었다. 참된 학생이기 위해서는 우선 민중의 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특권이 따르는 특수신분을 가진 자기를 부정하고, 또 민중에게 공헌하기 위해 지적능력을 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과거의 독서인들처럼 고등 유량민이 되어 기생적 존재가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민중과 함께 투쟁하는과정에서 배웠다.민중의 힘을 인식하게 된 신지식인들과 학생들은 민중과의 총합고, 이러한 실패를 계기로 학생들은 사회를 개조하려면 근본적인 개조가이루어져야 하고, 그것을 위해서는 생산기관에 투신해야만 한다고 인식하게 되었다. 비록 실질적인 결과를 얻지 못하고 실패로 끝났지만 손문은 이 운동에 힘입어 국민당의 노선과 조직에 재검토를 가하여 국민당 조직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그리고 중국공산동도 이 민족주의운동의 분위기 속에서 탄생하였다고 볼 수있다. 또한 국외에도 영향을 미쳤다. 19세기 이래의 서구열강에 의한 세계제패, 세계분할이라고 한 구조에서 중요한 전환기를 맡게 되었는데 이전환기란 제국주의에 대한 민족주의의식의 싹틈 이었다. 이는 종전에는 서구 열강과 제국주의국가들이 체험해보지 못한 것으로 이들에 의해 조종되는 중국의 허수아비 정부에 대해 저항함으로써 자기신뢰 또는 정신적 자립성을 강화시킨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하여 식민열강세력들로부터 민족적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운동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움직임의 하나로 우리나라도 일본제국주의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고자 하는 3.1운동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이 운동의 특징은 신문화운동의 실천이며, 그 발전이라 할 수 있거니와 운동의 그러한 발전을 가능케 한 사회적 기초로서는 제1차대전의 시기에 급격히 발전한 자본주의적인 제요소의 일정한 성장과 러시아 혁명이 지식인과 노동자 계급에 미친 정신적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이러한 대내외정세를 배경으로 한 5 4운동은 그 이전의 혁명운동이 오로지 무장에 힘쓰고 대중의 힘을 경시한 것과는 달리 대규모적인 계몽운동과 조직을 토대로 하여 시위와 파업이라는 대중행동으로써 투쟁하였다는 점에서 특징을 찾을 수 있다.첫째로 이 운동은 중국의 민중이 처음으로 정부의 정책을 변혁시키는 데 성공한 운동이며 세론의 승리였다. 다시 말하면 국가의 힘이 현실의 정치를 움직이는 커다란 요인으로서 처음으로 근대사의 무대에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그 선두에 섰던 것은 신문화운동 속에서 배양된 청년학생층이며 거기에 호응하여봉기한 것은 조국의 위기를 실
    인문/어학| 2004.12.18| 6페이지| 1,000원| 조회(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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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문화] 기노모에 대해서
    ※기모노(着物 )의 어원과 역사기모노きもの(着物)란 '입다'를 의미하는 '기루(着る)'와 '모노(物)'가 합성되어 생긴 말이다. 즉 인간이 몸에 걸쳐 입는 것은 모두 기모노인 셈이다. 그러나 일본 사람들은 과거 조상들이 예로부터 입어온 의복에 한해서만 기모노라 부르며 서양인 양복(洋服)과 구별을 한다. 서양화가 강력히 진행되면서 당시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의복인 기모노를 '양(洋)'과 반대되는 '화(和)'란 말을 붙여 와후쿠わふく(和服)라 부르고 양복과 구별을하였다.첫 의복은 고작 천에다 목 부분에 구멍을 뚫어 입던 것이 原始시대에 와서 비로소 옷다운 형태를 갖추게 된다. 이 시대의 옷은 여자는「きぬも」 , 남자는「きぬばかま」라고 해서 윗도리를 앞에서 여미고 끈으로 허리 부분을 묶어 양장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러다 아스카(飛鳥)시대에 와서는 당나라의 옷과 염직 기술이 들어와 여자는 소매가 긴 短衣에 허리 아래에 입는「も」를 한두 장 겹쳐 입고 그 위에 조끼와 같은 역할을 하는 背子(せし )를 둘렀으며, 남자는 머리에 관을 쓰고 목 부분에서 여미는 긴 상의에 허리띠를 두르는 의복을 입게 되었다. 귀족중심의 사회였던 平安(へいあん)시대에는 일본 풍토에 적합한 기모노가 만들어진 시기로, 의복도 귀족중심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여자는 十二單(じゅにひ とえ)라는 아주 화려한 옷을 입고 머리 모양을 앞머리를 좌우로 부풀려 정수리에 묶고 나머지는 길게 늘어뜨리는 모양을 주로 했으며, 남자는 사모관대를 연상시키는 束帶(そくた い)를 주로 입었다. 그러다가 귀족문화의 화려함이 사라지고 의복의 간소화를 추구하던 카마쿠라시대를 거쳐 히로마치 시대에 와서는 현재의 기모노의 기초가 잡히기 시작했으며, 옷에 그 집안의 문장인 家紋을 새기는 관습도 생겨났다. 모모야마시대에는 조선으로부터 끈으로 묶는 기술이 전해지면서 帶(おび)가 생겨나 현재의 기모노가 확립되었고, 에도 시대에 들어와서는 帶(おび)가 점점 넓어지고 그 묶는 방법도 다양 시작했다. 메이지 시대가 되면서 서양 옷이 들어오긴 했지만, 여성들은 여전히 기모노를 입었고, 大正(たいしょう)시대에 들어와서야 여성들도 양장을 입기 시작했다. 요즘은 평상시에는 잘 입지 않고 결혼식이나 성인식, 기타 예의를 갖추어야 할 모임에 나갈 때나 명절에 주로 입는다.※기모노의 종류앞에서 말했듯 기모노는 요즘 행사시에 입는데 행사의 성격별로 입는 기모노도 다르다. 뿐만 아니라 여자들의 기혼과 미혼이 입는 것 또한 다르다. 그림을 통해서 알아 보겠다.후리소데는 기모노 가운데 가장 화려한 것으로 미혼 여성의 제1예복으로 정해져있다 성인식, 사은회, 결혼식등에 입는다 자기만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이다 소매의 길이에 따라서 大후리소데(約115㎝),中후리소데(約105㎝),小후리소데(約85㎝)로다양하다. 무늬는 繪羽(에바하오리-큼직한 그림 무늬가 있는 여자용 덧옷)모양이며 무늬가 바느질 자리를 따라 연결되어 기모노 전체가 한장의 그림처럼 되어 있다 예전에는 후리소데에 다섯가지 문양만을 달게 했지만 지금의 후리소데는 다채로운 색상으로 무늬도 특별하게 정하고 있지는 않다 여담이지만 거절의 말로 "소매없는 것은 흔들리지 않는다" 라는 말이 있는데 "소매를 흔든다"라는 것은 호의적인 대답을 나타낸다고 하여 남성의 요구에 OK한다는 싸인이 되기도 한다고 한다. 긴 소매는 독신 여성의 상징이기도 하다.기혼 여성의 제1예복이며 격조가 높은 기모노이다.토메소데는 ‘쿠로토메소데(黑留袖)’와 ‘이로토메소데(色留袖)’가 있는데 먼저 ‘쿠로토메소데’는 무늬는 상반신에는 달지 않고 옷단에서 옷깃까지는 ‘에바하오리’모양(무늬가 연결되어 한폭의 그림처럼 되어 있는 것)으로 이루어져있다. 상반신은 반드시, ‘소메누끼’(무늬만 바탕 빛깔로 남기고 다른 부분을 염색하는 것) 다섯문장을 넣는다. 예전에는 ‘토메소데’는 흰 속기모노를 겹쳐서 착용했지만 현재에는 옷이 두 겹으로 된 것같이 보이기 위하여 깃, 소매, 옷단 따위만을 이중으로 하는 것으로 해서 간소화하고 있다. 결혼식이나 피로연에서 친구들이 입고 신랑신부의 양친, 친족중 기혼부인들이 착용한다. 옛날 무가(武家)에서는 ‘쿠로토메소데’를 입고 시집을 가 유부녀가 되고 나서는 소매를 짧게 잘랐다고 해서 이름을 ‘토메’라고 붙였다고 하는 설도 있다. 같은 바느질로 바탕이 칼라인 것을 ‘이로토메소데’라고 하는데 ‘쿠로토메소데’쪽이 격이 높다. ‘이로토메소데’는 문 양수에 따라 착용범위가 넓어진다. 다섯문양이라면 ‘쿠로토메소데’와 같은 격으로 입을 수 있다. 기혼, 미혼에 관계없이 여성 예복으로 격조높은 것이다. ‘쿠로토메’와 같이 모양은 상반신에 넣지 않고 옷단에서 옷깃까지 ‘에바하오리’모양을 하고 있다. 공식적인 축하 의례자리에서도 착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화려한 바탕색과 격조를 살려서 사교용으로도 입을 수 있다. 결혼식, 피로연, 공적인 파티등 에서 입을 수 있다 요즘에는 주빈이나 초대손님이 ‘이로토메소데’를 입는 것이 유행하고 있다.‘호우몬기’는 말 그대로 ‘방문복’이란 뜻으로, 사교용의 목적을 갖는 기모노이다. 따라서 ‘호우몬기’는 ‘이로토메소데’나 ‘후리소데’ 다음격의 약식 예복으로 기혼 미혼 관계없이 착용할 수 있고, 또 모양도 ‘에바하오리’모양으로 되어 있어서 사교용으로도 많이 입게 되었다. 다이쇼우(大正)시대에 나타난 종류로 ‘후리소데’보다 소매가 짧아 ‘후리소데’의 미를 경쾌하고 가볍게 나타낸 것이다. 특히 밑자락으로부터 왼쪽 앞 어깨와 소매에 걸쳐 에바えば(繪羽)무늬가 들어가는 것이 특징이다. ‘에바’란 기모노 무늬의 종류 중 하나로, 염색하지 않은 백색 옷감을 가봉한 후 재봉선 위에도 연속되도록 무늬를 넣는 방법을 가리킨다. 따라서 기하학적인 무늬와는 달리 기모노 전체에 무늬를 일관된 테마로 나타낼 수 있으므로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한 회화적 요소가 강하다. 입체적인 서양의 옷과는 달리 평면적인 기모노의 특성을 살린 무늬로 기모노를 펼치면 한 장의 그림과도 같이 된다. 하지만 요즘은 무늬를 많이 넣지 않고 모던한 감각으로 fashionable 하게 표현한 ‘호우몬기’도 인기를 얻고 있다.호우몬기’ 다음가는 약식예복으로 쯔케사게는 전후 기모노 제작의 간략화에 따라 만들어졌다고 하는 설과 전시중 화려한 기모노가 금지되었기 때문에 고안된 것이라는 두가지 설이 있지만 근대에 와서 만들어진 기모노이다. 한번 봐서는 ‘호우몬기’와 구별하기는 힘들지만 다른점은 무늬의 배치법이다. ‘호우몬기’나 ‘후리소데’는 위에서 설명했듯이 ‘에바하오리’(繪羽)식인것에 비해 쯔케사게는 어깨,소매,깃에 독립된 문양이 놓이게 된다. 만들때, 상하가 바뀌지 않도록 그림을 그리는 것이 포인트라 할 수 있다. ‘호우몬기’가 기모노를 한번 가봉하고나서 문양을 그리는 것이라면 ‘쯔케사게’는 가봉한 그 상태에서 문양을 넣는것이다. 옷가게에서도 ‘쯔케사게’와 ‘코몬’은 가봉 그 형태로 입을 수 있다.기모노 가운데 가장 캐주얼한 코몬이라 불리는 기모노이다. 염색한 기모노인 경우는 카따소메(型染め)라고 해서 형지(型紙)를 사용해 같은 문양이 전체에 연속해서 놓이는 것이 특징이다.기본적으로는 데이트나 쇼핑, 맞선 등에 입고 나가기에 적절한 옷으로 평상복으로도 많이 입지만, 격식있는 문양이나 에도코몬과 같이 멀리서 보면 이로무지처럼 보이는 섬세한 문늬의 기모노는 격상해서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입을 수 가 있다.오글쪼글한 비단 또는 무늬가 들어간 감에 색을 들인 글자 그대로 전체적으로 문양이 없는 이로우지 기모노이다. 검은 색은 상복이 되지만 화려한 색의 바탕무늬에 광택이 들어가 두드러지는 기모노는 축하석에 어울리며 수수한 색으로 눈에 띄지 않는 것은 상복으로 입을 수 있다. 문양이 들어가면 약식예복이 된다.왼쪽 사진처럼 무난한 색은 맞추는 오비나 소품에 따라 화려하거나 수수하게 꾸밀수 있다. 경조사 어느쪽에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한벌 있으면 요긴하게 입을 수 있는 옷이다.한여름 밤을 더욱 흥겹게 해 주는 유카타ゆかた(浴衣). 유카타는 헤이안 시대의 귀족들이 목욕을 할 때 입었던 한 장으로 된 마직 기모노로 당시에는 '유카타비라'라 불렀다. 그리고 에도 시대에 들어와 서민 생활 내에 공중 목욕탕의 풍습이 보급됨에 따라 목욕 후에 입는 백색의 목면 기모노를 유카타라 부르게 되었다. 그 후 일본의 고온 다습한 여름 기후에 적당한 의복으로 일본인의 특수한 정서와 관련을 가지면서 성장하였다. 그리하여 현대에는 저녁에 목욕이 끝난 후 가정 내에서 착용하는 것으로부터 외출복으로까지 큰 발전을 보게 되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캐주얼 느낌의 기모노이기 때문에 점잖은 장소에는 어울리지 않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캐주얼 느낌이라 하는 것은 우선 소재가 대부분 면으로 되어 있어 손세탁이 가능하고 무늬도 개성적이며 다양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또한 오비를 보아도 유카타에는 보통 오비 폭의 반 정도의 것을 매어주는데, 그것은 오비아게おびあげ(帶揚げ)와 오비시메(帶締め)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조금만 연습을 한다면 혼자서도 손쉽게 묶을 수가 있다. 그 외에도 메리야스와 같이 신축성 있는 천을 그대로 감아 뒤에서 나비 모양으로 묶어 주기만 하는 극히 간단한 방법도 가능하다. 또한 기타 다른 기모노와 같이 버선에 조리를 신는 것이 아니라 나무로 만든 '게타'를 맨발로 신는다는 점이다.※기모노의 각 부분명칭과 입는 순서1.각 부분명칭2.입는 순서1).기모노를 걸쳐,지반(*혹은 쥬반-기모노 안에 입는 속옷)의 소매를 기모노의 소매에 통하게 한다. 등솔기가 등중심에 오도록 맞추어, 지반과 기모노의 깃이 일치하게끔 클립으로 고정시킨다. 2).손으로 깃을 잡고 잡은채로 손을 아래로 떨어뜨린다. 팔을 가볍게 늘여 위치를 고정하고, 일단 기모노를 들어올리고 나서 옷자락을 바닥 가까이까지 내린다.3).허리뼈의 위치에 옷깃이 오도록 하여 기모노를 펼쳐、먼저 겉섶(정면이 되는 부분)의 폭을 정한다. 기모노의 단이 허리뼈의 연장선에 올 정도가 가장 좋다.4).폭을 정한 대로 조심스레 겉섶을 연다。다음에 안자락을 몸에 맞춰서 폭을 정하고 오른손으로 잡고 있는 옷깃의 아래부분을 10㎝ 정도 끌어 올려 소매의 선을 비스듬하게 한다.
    인문/어학| 2004.12.18| 8페이지| 1,000원| 조회(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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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business] 전자정부
    전 자 정 부전자정부의 정의정보통신을 기반으로 하여 국민 편의적 행정서비스를 능률적이고 효과적으로 제공하는 미래형 정부 정보기술을 활용하여 행정활동의 모든 과정을 혁신함으로써 정부의 고객인 국민과 기업에게 제공하는 각종 서비스와 정보를 손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행정 및 정책활동의 생산성을 향상시켜, 지식정보화를 선도할 수 있는 정부로 정의전자정부의 4가지 개념요소온라인 서비스(On-line Service) 정부 민원을 인터넷, PC통신, 무인민원자동처리기(KIOSK) 등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하여 접수, 처리하는 것이 가능 능률(Paperless) 정부 종이 없는(paperless) 행정처리가 가능 지식(Knowledge-based) 정부 업무처리과정서 습득한 지식은 공유가능 형태로 생성ㆍ보관되어, 행정처리에 이를 활용 깨끗한(Clean) 정부 업무처리의 전산ㆍ전자화과정을 통하여 정확하고 투명한 행정처리가 가능전자정부 관련 주요 추진 연혁1987~2001년 까지 사업성과 국가 주요 기본 DB의 구현 전국단위 초고속 통신망 구축 완료 초고속 인터넷 가입인구 625만명(2001.6.30) 인터넷 이용자 2223만명(2001.6.30) 세계 제1의 초고속 통신 인프라 구축(OECD 평가) 국가 기본 DB 구축이용에 대한 평가 문제점/반성 부처간 정보공유, 연계미비 고위직의 정보화 마인드 부족 국민/기업 편익 관련 행정업무 정보화 미비 세계 최고의 인프라에도 불구하고 낮은 정보화 체감도 가치 창출과의 연계 미흡제1단계 전자정부 사업 성과 (전자정부 11대 과제)-국세관련 민원업무를 모두 안방에서 처리 -4월부터 부분서비스, 10월부터 본격 서비스4. 인터넷을 통한 종합국세서비스-4대 보험공단 정보시스템을 연계하여 one-stop 서비스 구현 -공통정보를 한 곳에서 공동관리 -7월부터 서비스 제공 추진3. 4대 사회보험 정보연계서비스-모든 조달관련 절차를 온라인으로 단일창구에서 처리 -BPR, ISP 후 8월까지 전자조달 시스템 구축 완료 -조달절차 25% 감축, 관 간 중복투자 방지8. 표준인사관리 시스템 구축-16개 시도 교육청을 중심으로 10대 교육행정업무 연계 처리 -학부모 등 교육수요자에게 인터넷으로 정보 제공 -전국 어디서나 교육관련 증명서 발급7. 전국단위 교육 행정 정보시스템 구축-2단계 11개 업무 개발착수(2001.11) -2단계 시범서비스 실시: 서울 양천구 등 5개 시,군구(2002.10)6. 시군구 행정 종합정보화-모든 재정업무를 정보시스템에 의해 자동으로 연결 처리 -전자고지(e-mail), 전자납부(인터넷 뱅킹), 전자이체 기반 -복식부기발생주의 회계 도입 및 9개 결산서 통합5. 국가재정정보 시스템 구축-정보통신부, 행정자치부, 기획예산처 3개 기관 공동 주관 -BPR ISP 통합전산센터 구축으로 단계적 추진11. 범 정부 통합 전산 환경 구축-2002년까지 1,000만명의 국민이 전자서명 이용 -무선 전자서명 인증서비스 제공 -모든 시중은행과 증권사에서 공인전자서명 사용토록 유도10. 전자서명전자 관인 시스템 구축제 2단계 전자정부 사업 성과 (전자정부 31대 과제)핵심추진:중점관리:아 젠 다'03-'04 우선 추진과제2. 국가 및 지방재정 종합정보화3. 전자지방정부 구현4. 전자감사체계 구축5. 전자국회 구현6. 통합형사사법체계 구축7. 인사행정종합정보화1. 문서처리 전 과정 전자화10. 행정정보 공유 확대11. 정부기능연계모델(BRM) 개발8. 외교통상정보화9. 국정 과제 실시간 관리일하는 방식 혁신전자적 업무처리의 정착행정정보 공동이용 확대서비스 중심의 업무 재설계아 젠 다대 국민 서비스 혁신대 국민서비스 고도화대 기업서비스 고도화'03-'04 우선 추진과제13. 국가안전관리종합서비스14. 건축·토지·등기 연계 및 고도화15. 종합국세서비스 고도화16. 국가복지종합정보서비스17. 식·의약품종합정보서비스12. 인터넷 민원 서비스 고도화19. 행정심판인터넷서비스18. 고용·취업 종합정보서비스21. 국가물류종합정보서비스22. 전자무역서비스23. 외국인 종합 지원 서비스20. 기업방이 바로 관공서)민원업무(G4C)혁신 시스템 민원인이 행정기관을 직접 방문하지 않고, 온라인 민원신청에서 전자적 발급까지 일괄적으로 처리 민원 처리 간소화로 구비서류를 감축하여 국민 부담과 불편을 최소화 국가 종합전자조달 시스템 공공기관과 기업 간의 조달업무 처리를 위하여 모든 공공기관의 조달업무 전 과정을 온라인 화 통합입찰공고 - 모든 공공기관의 입찰정보를 통합 공고사이트(G2B)에서 획득 전자자금 이체 - 공급업체는 납품과정에서 검수와 대금지급을 동시에 요청하고, 공공기관은 검수 확인 후 One stop으로 대금지불을 처리하여 지불절차를 간소화종합국세 서비스(HTS) 납세자가 가정이나 사무실에서 인터넷, 핸드폰 등을 이용하여 세무신고, 고지, 납부, 민원증명, 세무상담 등 모든 국세업무를 편리하게 처리할 수 있는 행정서비스 전자신고 전자고지, 납부 인터넷 전자민원 접수 및 처리상황 공개 전자안내 4대 사회보험 정보연계 시스템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 등 4대 사회보험 정보시스템을 상호 연계하여 보험 관련 민원서비스의 창구를 일원화 공통업무 공동접수처리 사회보험정보 포털 서비스 공동정보 데이터 베이스 구축/관리 관련기관 간 정보연계 체계 구축특허넷 시스템(KIPOnet) 특허행정의 모든 과정을 정보화를 통하여 누구나 안방이나 사무실에서 특허,실용신안,의장,상표 등 산업재산권 출원관련 모든 민원을 쌍방향 온라인으로 처리 병무행정 정보 시스템 병무업무 전 과정을 정보화하여 각종 병무민원 서식을 간소화하고, 민원출원, 민원상담 및 민원서식 처리절차를 인터넷으로 서비스 부동산 등기 전산화 종이 등기부(약4,500만 필지, 1억6,000만 쪽)를 전자자료로 변환함으로써 등기부 등/초본의 발급 등 각종 등기업무를, 수작업에서 전산작업으로 전환종합법률정보 시스템 일반 국민 혹은 법률관련 종사자들이 법령분야와 관련된 모든 정보를 통합하여 서비스를 사용가능 국가지식정보 통합 시스템 국민들이 국가가 보유한 다양한 분야의 지식정보를 하나의 DB처럼 One-S작고 투명한 정부)국가 재정 정보 시스템 재정관련 정보시스템의 정보공유?연계체계를 구축하여 국가재정의 운영 및 관리업무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체계를 구축 전자 인사관리 시스템 공무원의 인사, 급여, 채용, 교육훈련, 통계 및 대 공무원서비스, 시스템관리 등 7개 업무를 단일의 시스템으로 통합시켜 체계적으로 운영되는 정부인사관리체계의 기반을 구축 시,군,구 행정종합 정보화 전국 시,군,구에서 공통적으로 수행하는 개 업무에 대한 정보를 공동 활용할 수 있도록 종합적인 행정정보시스템을 구축전국단위 교육행정 정보시스템 전국 1만여 개의 초,중학교, 16개 시,도 교육청 및 산하기관, 교육인적자원부를 인터넷으로 연결하여, 교육관련 정보를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는 통합전산환경을 구축하는 사업 전자결재 및 전자문서 유통 전자문서 시스템간 문서중계시스템을 구축하여 공문서의 송수신 배달증명 및 경로추적이 가능 전자문서시스템과 타 행정정보시스템과 연계시스템을 구축하여 결재가 필요한 행정정보시스템의 내용을 전자문서시스템으로 자동으로 연계하는 기능을 구현전자서명, 전자관인 인터넷을 통한 전자적 정보유통은 상대방 신원확인이 곤란하고, 해킹을 통해 위조, 변조가 용이하므로 전자서명 인증제도를 도입하여 인터넷을 통한 전자민원 처리 시 민원인의 신원확인, 관련문서의 비밀성 등을 제공하는 민원행정서비스기반을 구축 민원인 공인전자서명 발급 행정전자서명 발급수 익 원 천민원 발급에 따른 수수료 전자정부 노하우(SI)의 해외수출 서울시의 전자정부 시스템 모스크바 수출전자정부의 비전생산성과 투명성이 극대화된 정부 전자정부 구현 목표 국민 지향적 대민 서비스 실현 민원정보 DB의 공동활용 체제 구축을 통해 주민등록 등ㆍ초본ㆍ사업자등록증 등 구비서류를 최소화 기관방문횟수를 최소화하여 행정능률과 국민편의 제고를 도모 정부, 기업 간 업무처리의 효율성과 투명성 극대화 정부와 기업 간 거래에 전자상거래 방식을 적용,확산시켜 정부와 기업 간 업무처리의 효율성과 투명성을 극대화정부행정 업무 처리의 생산성과 투 서비스 여러 가지 매체를 통해 서비스를 제공하여 국민이 더 쉽고 편하게 전자정부 서비스를 활용 할 수 있게 할 예정 업그레이드 전자정부 PDA, 핸드폰 등 모바일기기를 활용한 행정처리 및 민원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생산적이고 투명한 스마트정부를 만들어갈 예정 맞춤형 서비스(e-CRM) 기법을 도입최고수준의 대국민 서비스 제공(G2C)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유통 Infra생산성,투명성이 극대화 된 정부 (G2G)인터넷 기반의 전자정부 단일 창구 (Single Window)최적의 기업활동 환경제공(G2B)최근 언론 상에 비친 전자정부의 모습들전자정부 프로젝트 상당수 내년으로 순연 정부 ''정보인권 보호'' 외면 정보공개기준 부처마다 제각각전자정부의 문제점전략적인 문제점 행정정보화 정책 추진체계의 문제점 부처간의 중복투자, 정보화에 대한 정책우선순위 저하, 정보 공동활용의 제약 등이 문제점을 수반 추진 전략적 측면 국민 서비스 분야의 개선이 상대적으로 미흡하다는 평가가 지배적 정보자원관리 측면 양질의 행정정보가 부족하고, 기관별 단위 업무의 개별적 전산화 추진으로 행정서비스 간에 상호 연계가 안됨 인적ㆍ제도적 측면 공무원들의 의식과 형태 변화가 느리고, 이들이 자발적으로 이러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는 승진 및 경력과 관련된 인센티브 제도가 미흡체계적 문제점 여전한 종이 감사 도면(지도)이나 책자의 경우, 도면이나 책자의 경우 전자 결제 불가능 최고결정자의 시간ㆍ지식의 부족 복합민원에 대처 불가 : 기업허가 등과 같은 복합민원을 시민이 관청을 방문하지 않고 온라인 상으로 해결하기는 곤란 참여행정에 위배 : 관리자가 온라인 상에 개진된 의견을 무시할 가능성 온라인 상으로 민원신청을 하는 것보다 직접 찾아가거나 전화로 신청하는 게 더 빠르다고 생각 할 정도로 그 절차가 복잡 서울 외 지역 경우엔 몇 개시만이 온라인으로 가능한데 나머지 시,군의 개통 시점 불확실성.전자정부구현에 따른 단계별 개선방안기획단계 중장기 계획과 체계가 수립 범 정}
    경영/경제| 2004.12.24| 28페이지| 1,500원| 조회(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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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문화] 일본애니메이션
    ⊙일본 애니메이션의 성립 배경1951년, 스테판 보서스토우(Stephen Bosustow)의 UPA가 실사에 가까운 동작 이라는 원칙을 부정하고 초당 사용되는 셀의 매수를 가변적으로 조정한 제럴드 맥보잉 보잉 (Gerald McBoing Boing) 을 발표하여 새로운 셀 애니메이션이 탄생하게 되었는데 이 리미 티드(Limited)애니메이션 기법을 일본이 활발히 이용함으로써 발전을 하게되었다. 그 첫 시 도가 1963년, 데즈카 오사무의 무시 프로덕션에서 제작한 최초의 TV 시리즈 철완 아톰 이 다. 이후, 이 리미트 기법으로 제작비 비용을 대폭 경감할 수 있었던 덕택에 다수의 저가 TV 애니메이션이 제작되었으며, 그러한 과정에서 동작의 부자연스러움을 보완하기 위한 다양한 테크닉들이 꾸준히 개발된 결과, 미국의 애니메이션에서는 볼 수 없는 전혀 다른 움직임과 연출로 무장한 아니메 , 포르노물에서부터 예술적 단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 르로 분화된 아니메 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게 되었다.※아니메: 미국식으로 재편집이 안된 일본식 애니메이션을 지칭함.⊙일본 애니메이션 산업의 전개1. 1950년대 초까지의 일본 애니메이션1917년에 만화가 시모카와 오텐이 흑판에 분필로 그려 제작한 이모카와 게이조-현관지기 편 이 일본 최초의 애니메이션으로 기록되고 있으며, 그 후 1921년에 닛카쓰 영화사에서 독 립한 기타야마 영화제작소가 일본 최초의 애니메이션 전문 스튜디오로 문을 열어 오락물과 교육용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기 시작했으나, 이들 초기 애니메이션은 대부분 종이에 그림을 직접 그리는 종이 애니메이션 기법에 의존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932년에는 마사오카 겐 조에 의해 일본 최초의 토키 애니메이션 힘과 여자의 세상 이 셀로 제작되어 나오고, 이즈 음부터 극장 광고로 상영되기 위한 애니메이션 CF가 활발히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1940년 대에 들어서는, 새로 제정된 영화법이 만화영화를 어린이의 교육에 필요한 문화영화 로 규정하여 강제적으로 상영토록 함으로써, 다수의 호전 가운데 세오 미쓰요는 1943년에 일본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 모모타로의 바다독수 리 를 발표하고, 2년 뒤에는 그 후속편 모모타로-바다의 신병 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2 차세계대전에서 패전하면서 1920∼40년대 미국 애니메이션의 황금기에 제작된 애니메이션 들이 일시에 쏟아져 들어오게 되자, 일본의 애니메이션은 그에 압도되어 침체의 늪을 벗어 나지 못했다. 특히 디즈니의 백설공주 는 당시 애니메이션에 종사하던 많은 사람들에게 신 선한 충격을 안겨 주었다.2. 도에이 영화사 동화부의 풀 모션 장편 컬러 애니메이션일본 애니메이션이 다시 활기를 띄기 시작한건 한국전쟁 특수로 인한 고도성장으로 호황국면을 맞이하면서 부터이다. 그 대표주자가 메이저 영화사의 하나인 도에이 영화 사의 동화부로, 막대한 자본이 투입된 대규모 스튜디오를 갖추고 예술성보다 상업성을 중시한 작품을 제작했다. 동양의 디즈니 를 목표로 했던 일본은 중국의 고전설화를 애니메 이션화 하여 극장에서 상영한 백사전 이 최초의 장편 컬러애니메이션이었다. 이에 계속하 여 1959년에 야부시타 다이지가 감독한 소년 사루토비 사스케 를 제작하고, 1960년에는 당 시 만화왕 에 연재 중이던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 나의 손오공 을 원작으로 데즈카와 야부 시타가 공동으로 감독한 서유기 를 제작 상영하였다.3. TV 애니메이션의 시작 철완 아톰 과 리미티드(Limited)기법만화가 데즈카는 서유기 를 계기로 도에이 동화부에 조력하게 되었으나 작가성이라고 하 는 것이 무시되고 있다고 회의를 느껴 1961년 6월에 무시 프로덕션 을 설립하였다. 그는 동작보다도 정지된 소재나 인물을 사용함으로써 스토리나 분위기 같은 것을 연출해 내려고 시도한 최초의 작품 어느 거리의 이야기 를 제작하는 한편, 또 하나의 실험으로 최초의 국 산 주말 TV 애니메이션 철완 아톰 을 계획 하였다. 그것은 사업상, 기업의 재정적 안정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당시의 현실과 맞물려 제작되어야만 하였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 서 생겨난 연출법이화된 리미티드(Limited)기법이다. 이 기법은 한 장면의 반복사용이나 정지화면과 같은 연출 방법이었다. 그 결과 1963년 1월 1일부터 시작한 철완 아톰 은, 평균 시청률30%를 웃도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에 따라 각 방송사들은 저가의 제작을 추진했고, 후발 프로덕션들은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철 완 아톰 이 정해 놓은 제작비를 따라야 했다. 셀의 사용매수를 줄이고 같은 셀을 여러번 반복해서 사용하며 인건비를 줄이는 등, 치열한 제작비 절감책이 강구되었다. 그로 인해 아니메 노동자 라는 말로 대변되는 열악한 작업환경을 보편화 시켰지만, 저가형 TV시리 즈 덕택에 일본의 어린이들이 수많은 애니메이션을 별다른 투자 없이 볼 수 있있다는 점도간과 할 수 없다.4. 일본 아니메의 정착과 아니메 전문작가의 탄생이제껏 많은 아니메가 제작되었지만, 그건 하나의 독립된 장르가 아니 오락방송에 불과했 다. 그러나 1970년에 나고야TV계의 전파를 타고 처음 방영된 기동전사 건담 은 지금껏 7 개의 TV시리즈와 8편의 그장판, 그리고 4개의 OVA시리즈로 제작된 일본의 아니메를 대 표하는 작품이다. 건담의 출현으로 변화가 생겼는데 그 동안 인류애나 지구애와 같은 이데 올로기적인 것을 당연한 전제로 하지 않고,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인생을 그려 내는 이야기 의 가능성이다. 1인 주인공 이야기의 명확한 붕괴, 혹은 이야기의 사실화라 할 수 있다. 그 리고 아니메 감독이나 각본가와 같은 존재가 클로즈업되어 왔다. 예전에는 그저 작가들은 만화가로서 존재 했으나 건담 을 통한 도미노 요시유키의 출현은, 만화가도 소설가도 아닌 진정한 아니메 작가의 탄생, 아니메 작가의 작가로서의 사회적 자립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그 후 선라이즈사는 작품의 총괄과 더불어 그 사상성까지를 작가에게 부여할 수 있는 감독 제도를 상설하고, 이 체제를 기본 축으로 하여 다수의 시리즈 막독 및 아니메 제작사에도 영향을 미쳐 많은 인재들을 배출케 했지만, 그 스타들에 의한 독립 스튜디오의 난립상을 초래하기도 했다.아니메의 일반에의 침투가 한창이던 때, 아니메를 보고 자란 세대 가 직접 아니메를 제작하기에 이르렀다. 다수의 아니메 잡지가 간행되고 OVA의 등장에 의해 미디어의 확산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아니메 팬들에 의한 아니메 팬을 우한 아니메가 제작되는 기운이 무르익어 갔다. 그러한 분위기를 대표하는 작품이 우루세이 야쓰라 와 초시공요새 마크로스 였다. 이들 작품에 이르러서는 건담 까지 있었던 이해심 없고 편견에 찬 인간상은 가볍게 다루어지고, 보통사람의 범주에 들지 못하는 자의 비애는 연애문제로 대체되어, 개개인의 성장이 진지하게 그려지는 일은 거의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맞이한 1984년을 기점으로, 아니메의 화제작은 TV시리즈→영화→OVA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매체적으로도 일본의 아니메가 확산되어 갔던 것이다.6. 오리지널 비디오 애니메이션의 출현1983년 12월, 세계초유의 오리지널 비디오 애니메이션(OVA)이 출시된다.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달로스 다. 이 OVA의 출현은 이때까지 일본 아니메의 흐름은 작가와 제작회사를 조사해 보면 어느 정도 파악이 가능했으나, 거기에 기업이라고 하는 것을 고려하지 않으면 그 흐름을 포착할 수 없는, 새로운 장르가 생겨났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1987년에 저팬 홈비디오(JHV)가 출시한 요수도시 이전까지의 초기 OVA는, 스토리다운 스토리도 없이 애 로틱한 요소만으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988년 들어 마침내 OVA의명작이라 불릴만한 작품이 많이 나왔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도쿠마 서점의 은하영웅전설 이다. 이것은 먼저 영화로 데뷔하여 호평을 얻고있는 작품이었지만, 세계 최초의 주간비디오, 게다 통신으로만 판매한다고 하는 실로 이 캐릭터와 이 세계를 동시 진행적으로 함께 공유하고자 하는 의도가 역력했다. 그 결과 원작 10권 분의 내용을 8년에 걸쳐 모두 애니메이션화 하는 전무후무한 대 쾌거를 이룩했다. 이후, 비디오 테이프 대여점의 증가와 테이프 자체의 저가격화와 맞물려 OVA다. 조금이라도 화제가 되었던 원작은 바로 비이오화 되고, 판매화사도 우후죽숙처럼 생겨났다가이내 사라졌다. 이런 혼란의 시기는 1991년에 정점에 달했다. 그러다 1992년 9월 파이오니 어 LCD가 발표한 천지무용 을 시작으로 OVA에 관한 새로운 발상이 생겨나게 된다. 처음 엔 그저 애로택한 요소를 지닌 작품에 지나지 않았은데 간판상품으로 된 까닭은 내용 때문이다. 예전엔 강하고 귀여운 여자아이 라고 하는 것은 OVA에 있어서 하나의 필수조건이 되어 있었는데, 이 천지무용 에서는 평소엔 신통치 않지만 여차하면 가장 강한 남자아이 로 돌변한다고 하는 핵심적 요소를 통해, 저속한 에로물 노선에서 일거에 심각한 사내아이 의 투쟁 노선으로 용이하게 전환할 수 있는 설정을 획득했던 것이다.7. 아니메 문화의 정점(신세기 에반게리온)이후 아니메 작품은 상품의 선전 매체로밖에 보지 않는 기업과, 한정된 정보만을 선호하 는 시청자의 공범 작업에 중독된 폐색된 상태였는데 이에 저항한 인물이 있었는데 안노히데아키 이다. 안노는 TV나 장난감회사가 개입되지 않은 로봇물을 고집했다. 그것이 에반 게리온 인 것이다. 이 작품은 소외라는 매개를 통해 인물들의 내면의 갈등을 독백 혹은 자의식과의 대화로 자신의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애니메이션이다.에반게리온 에는 여태껏 나왔던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어 오타쿠(자신이 좋아하는 특정 한 분야에 폐쇄적이라고 할 만큼 열광적으로 매달리는 사라들)들은 마치 숨은 그림찾기 하듯 하나하나 찾아내며 즐거워했다. 이것이 에바의 성공 비결이다.⊙ 아니메의 특징과 성공비결1정지된 동작의 아름다움이다. 일반 애니메이션이 끊임없이 움직이는 동작의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면 아니메는 오히려 절정의 순간 과 정지된 동작의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있는 점 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일본의 전통 연극에서 배우가 동작이나 감정에 최고조로 달 했을 때 일시 동작을 정지시켜 관객들로 하여금 그 멋진 모습을 찬찬히 음미할 수 있도록배려하는 연출법인 미에기법과도 흡사한 라 할
    인문/어학| 2004.12.18| 4페이지| 1,000원| 조회(8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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