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론적 사고방식자연과 인간 및 사회현상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그 역동적인 변화의 모습을 규명하고자 하는 노력은 인류의 지성사가 추구해온 지난한 과제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근대 이후 인간들은 자연과학에 기초한 탐구의 논리를 통해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모색했고 '과학적 세계관'이라 할 수 있는 기계론이 등장한다.근대 과학적 사고의 전형은 갈릴레이와 데카르트를 거쳐 뉴턴에 의해 정식화된 기계론적 세계관이다. 이것은 탐구 대상을 그 구성요소들로 쪼개 독립적으로 검토한 후 다시 결합함으로써 전체를 이해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단편적이고 분석적인 방법이다. 이때 탐구의 대상은 평형 상태에 기초한 가역적인 성질의 것이며, 연역적인 논리와 수학적인 방법에 의해서 통제되는 매우 합리적이고 기계적인 세계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어떤 대상을 초기조건으로 환원하는 것이 가능하며, 일단 대상계의 순간적인 상태가 결정되면 이것을 기초로 과거와 미래의 궤도를 논리적으로 얼마든지 연역해낼 수 있는 것이다.기계론은 자연을 역학적 개념으로만 설명하는 것이다. 근대과학은 고대, 중세인의 생물학적 자연관을 정적인 자연관으로 변형시켰다. 이 정적 사물이해에서 사라지는 것은 사물의 내재적 자율성만이 아니라 사물과 사물 사이의 존재론적 위계질서이다. 새로운 자연학에서 자연적 사물은 수학적 언어로 번역되는 양적 성질로 이루어져 있고 외부의 원인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것으로 표상된다. 시계와 같은 물건에서 볼 수 있는 기계적 운동이 그런 타성적 운동의 대표적 사례이다. 기계론적 자연관에서 생명체와 비생명체, 유기체와 무기체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살아 있든 죽어 있든 모든 자연적 사물은 순수한 물질적 단위의 조직체이고, 이 조직체는 기계를 움직이는 것과 동일한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다.기계론에서의 힘 개념이 전적으로 외재적으로 규정된다 함은 한 물체의 움직임의 원인은 늘 그 외부에 있음을 함축한다. 이런 생각을 담고 있는 법칙이 관성의 법칙이다(정확히 말하면 법칙이 아니라 원리라고 해야 할 것이다). 관성의 법칙은 근대 기계론적 사유가 기본적으로 사물을 죽어 있는 존재로, 외부의 힘에 의해서만 운동하는 존재로 규정하고 있음을 잘 드러낸다. 이 부분에서 서구과학은 신학적 유산을 끌어들인다. 그래서 우주의 운동의 궁극원인으로서 神이 상정된다. 이것은 중세의 신학적 질서와 근세의 과학적 질서 사이의 타협이며, 형이상학을 통한 종교와 과학의 봉합이기도 하다. 이렇게 해서 세계는 신, 영혼, 기계라는 세 범주를 통해 이해되기 시작하며, 결국 우주의 다양성은 모두 기계로 환원되는 결과를 가져온다.또 하나 빠뜨릴 수 없는 요소는 운동설명의 방식이다. 기계론적 사유는 모든 운동을 위치이동으로 환원시킨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었던 변화와 운동의 구분, 그리고 운동에 있어서 질적 운동과 양의 증감, 위치이동의 구분은 파기되고, 위치이동만이 합법적인 운동이론으로 받아들여진다. 위치이동은 인식론적인 맥락에서는 기하학적 설명과 연관된다. 위치이동은 공간의 변화이며, 모든 운동이 위치이동이라면 모든 운동은 기하학을 통해서 설명된다. 이러한 설명은 무한소 미분이 발명됨으로써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한다. 무한소 미분은 유클리드 기하학의 본질주의적, 정적, 불연속적 설명방식의 제한을 넘어설 수 있는 역동적, 연속적 설명 도구를 제공함으로써 서구 근대과학의 발전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19세기가 되면 기계론적 세계관은 우주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결정론에까지 이른다.케플러는 지상계의 운동이든 천상계의 운동이든 모든 운동은 자연적 본성이나 운동령이 아니라, 자연의 모든 대상에 내재하면서 보편적으로 작용하는 하나의 물리적 원인인 힘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고, 이 힘을 운동력이라 불렀다. 이 힘을 정신적이거나 지적인 실체가 아니라, 수학적으로 파악될 수 있고 기계적인 방식으로 현상하는 힘으로 본다. 이 변화는 아리스토텔레스처럼 모든 자연현상을 말로 설명하는 정성적 사고에서 수학언어로 설명하는 정량적 사고의 전화이라 할 수 있다.플라톤은 자연을 조물자가 순수질료에 이데아적 형상을 부여하여 만들어낸 것으로 보는데,이 이데아적 형상이 다름 아닌 수학적 형식이다. 플라톤에 의하면 자연은 특정한 기하하적 비율과 대칭의 원리를 만족시키는 원소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천체들을 구성하는 흙, 물 ,공기, 불과 에테르라 불리는 제 5원소가 이에 해당한다. 자연을 이처럼 일정한 원리에 따라 만들어진 완성품으로 보는 플라톤의 자연관은 르네상스를 지나면서 고대 원자론적 사고와 더불어 과학자 사회에서 기계론적 자연관으로 정착되었다. 이 자연관에서 자연은 동일한 법칙에 따라 영구히 움직이는 시계와 같이 완성된 영구기관, 즉 기계적 세계로 이해되었다.데카르트는 자연에서 일어나는 모든 운동은 기계적 운동이며, 이 운동은 수학적 법칙을 따른다고 보았다. 데카르트가 영혼과 물체사이의 실체적 구분을 증명하고자 한 것은, 중세적 자연관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들어서게 될 기계론적 자연관을 정당화하기 위해서였다. 이리하여 <나는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고 하는 근본원리가 확립되고 이 확실성으로부터 세계에 대한 모든 인식이 도출된다. 중세인이 자연적 사물의 운동 원리로서 그 안에 내재 한다고 생각하던 영혼은 이 실체론을 통해 비로서 자연으로부터 추방되었으며, 그렇게 추방된 영혼은 재정의 되기 위해 인간의 내면으로 모이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 신과 영혼을 세계에 포함시키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데, 데카르트가 제시한 정신-물질 이원론은 여기에서 연유한다. 이러한 데카르트의 이원론 이후 정신은 어떠한 물질성도 띠지 않는 순수한 물질이 되었다.라이프니츠는 자신의 모나드적 실체론에 근거하여 목적론 내지는 유기체적 자연관을 설명한다. 그의 실체론에 따르면 ,자연을 구성하는 실체는 자신의 내적 가능성에 근거하여 완성을 지향하면서 변화, 발전하는 존재자이다. 그렇다면 전체로서의 자연은 이들 실체와 그 실체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복잡다단한 관계의 총체가 된다. 그러므로 라이프니츠는 기계론자들과는 달리 자연을 원자적 물질과 기계적 법칙에 의해 맹목적으로 이합집산하여 이루어지는 기계적 조직체 이상으로 파악한다.
국어문법론 국어시제 설정국어문법론(큰 제목을 달아보아요)-국어에서 시간 표현체계를 어떻게 설정할 수 있을 것인가-1. 서론시제는 그 설정에 있어서 많은 이견이 있다. 그리하여 하나로 일반화 시키는 일이란 무리한 시도일 수 있다. 그러나 각각의 문제제기에 대한 구체적인 접근을 통하여 하나의 기준을 설정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이러한 목적을 바탕으로 본 고에서는 시제 요소에 대한 구체적인 접근을 통해 설정에 있어 소소한 결론을 찾고자 한다.그 방법으로 먼저 『표준국어문법론』을 기초로 하여 일반화 된 시제 설정을 굳힌 뒤, 책에서 모자라거나 생략된 논의를 물 위로 올려 그 논의가 있기까지를 일람한다. 마지막으로 각 논리를 비교하여 좀더 근접한 논리로 합의를 이끌어 자체적인 결론을 내고자 한다.2. 본론시제란 시간상의 특정 시점을 기준으로 하여 상황의 시간적 위치를 나타내는 문법범주를 말한다. 시제 범주는 일반적으로 ‘과거:현재:미래’의 삼분대립으로 이루어지거나 ‘과거:비과거’의 이분대립으로 이루어지는데 이때 기준이 되는 시점을‘기준시점’이라고 한다. 흔히 발화시점이 기준시점이 되는 경우가 많지만 발화시점이 아닌 다른 시점이 기준시점이 될 수도 있다. 전자를 ‘절대시제(absolute tense)',후자를‘상대시제(relative tense)'라고 부른다. 아울러 함께 언급 되는 상을 정리하면, 상이란‘상황의 내적 시간구성을 바라보는 방법’을 나타내는 문법범주로서 일반적으로‘완료상’과 ‘비완료상’의 대립관계로 이루어진다고 정의할 수 있다.)2.1 표준국어문법론2.1.1 현재시제현재시제는 사건시와 발화시가 일치되는 시간 표현으로 일반적 현재시제로 쓰일 시 동사에는 자음 어간아래와 감탄형에 ‘-는-’이 쓰이고 모음 어간 아래에는 ‘-ㄴ-’으로 교체 된다. 형용사와 서술격 조사(-이다)에는 현재시제를 표현하는 특수한 형태가 없이 어말어미‘-다’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또한 현재 표현은 발화시와 관련된 시간 부사와도 공존할 수 있다예) (1) 나는 내일 비행기로 간다 사람들로 북적였다.(2) 튼튼한 아이들이 힘을 겨루었다.(3) 교육자인 박 선생님이 항상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ㄱ)은 관형사형으로 사건시를 기준으로 하여 결정되는 상대적 시제이다. 어간 ‘사’와 직설의 선어말 어미 ‘느’, 관형사형 어미 ‘ㄴ’의 복합 관형사형이라고 할 수 있다. (ㄴ)은 형용사의 현재형으로 어간 ‘튼튼히’와 관형사형 어미 ‘ㄴ’이 결합된 모습이다. (ㄷ)은 서술격 조사의 현재형으로 어간 ‘이’와 관형사형 어미 ‘ㄴ’이 결합 된 모습이다.2.1.2과거시제과거 시제로서는‘-었-’과 ‘-더-’,‘-었었-’,등이 존재 한다. 이중에서 ‘-었-’이 가장 과거시제중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선어말 어미 었- 양서모음 ‘ㅏ, ㅗ’로 어간 뒤에서는 ‘았’ 이 되고 하-의 뒤에서는 “였”등으로 사용되며 시간 부사 ‘어제 , 그날 , 3년전’등과 함께 쓰여서 과거 시제를 뒷받침한다.① ‘었’1) 철수는 어제 책을 읽었다/ 읽는다(x)2)나는 그날 퍽 고단 하였다/ 한다(x)(1),(2)은 각각 발화시점 이전인 ‘어제’와 ‘그날’ 상황을 표현하고 있다.‘-었-’의 출현이 필수적인 것은 여기의 ‘-었-’이 과거 시제를 나타내는 기능을 가지고 있음을 말해 준다.* ‘었’이 현재의 결과 상태, 완료를 나타내는 경우1)그는 뒷자리에 않았다2)철수는 아버지를 닮았어요.하지만 위의 예들은 각각 발화시점 이전에 앉는 행위와 닮아가는 과정이 이루어졌음을 간접적으로 뜻하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히 현재의 상태만을 뜻하는 표현과는 차이가 있다. 위에서처럼 동사가 서술어로 쓰인 문장이 현재의 결과상태를 뜻하게 되는 것은 그러한 행위나 과정이 발화시점 이전에 이미 이루어진 것으로 표현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었-’도 기본적으로 ‘과거’의 기능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었-’이 미래를 나타내는 경우1)(내일)넌 죽었다2)영희는 이번시험에 합격했다(시험 보기 이전)3)철수는 이제 장가 다 갔다위의 예는 발화시점 이후의 상황이지만 과거 시제를 사용하여 이미 이루어진 것으로이라고 할 수 있다.②‘-었었-’‘-었었-’은 대과거, 또는 과거 완료라고 일컬어져 왔다. 즉‘-었-’이 과거 시제인데 비해 그보다 더 앞선 과거의 일을 표시한다는 뜻으로 풀어 말할 수 있다.예외1)그는 1983년에 태어났다. 그래서 지금 나이가 23이다.2)그는 1983년에 태어났었다. 그래서 지금 나이가 23이다.여기에서 우리는 ‘-었었-’과 ‘-었-’이 같이 쓰일 수 없음을 볼 수 있다.‘-었었-’이 어떤 행위의 결과가 지속되어 있지 않고 단절된 상황을 표시하는 까닭에 ‘-었었-’이 쓰인 문장은 대개 그 뒤의 다른 상황이 개재되어 있음을 함의한다 할 수 있다.③‘-더-’예) (1)지난 밤에 비가 오더라(2)지난 밤에 비가 왔다1)2)모두 ‘비가 온’ 상황이 발화시점 이전에 일어났음을 뜻하고 있지만 1)은 2)와 달리 비가 오는 장면을 직접 보았을 때에만 가능한 표현이다. 이러한 사실에 근거하여 '-더-'는 ‘회상 과거’를 뜻한다고 간주 된다.예) (1)그것은 내가 쓰던 연필이다(2)노량에서 왜적을 무찔렀던 충무공은 끝내 전사하고야 말았다.관형사형에서의 ‘더’회상법은 종결형에서의 쓰임과 달리 주어가 제 일인칭일 때도 쓰이고, 직접 경헙하지 않은 사건에 대해서도 쓸 수 있다. 단독으로 나타나면 동작의 지속을 표시하고 ‘-었-’과 결합되면 동작의 완결을 표시한다.2.1.3 미래시제미래시제는 사건시가 발화시에 후행하는 시간 표현으로 선어말 어미로는 ‘겠’과 ‘으리’가 있다. 이 중 ‘-(으)리-’보다는 ‘-겠-’이 보편적이다. ‘-(으)리-’는 중세국어에서, ‘-겠-’은 18세기 말, 중세어의 예정상 형태 ‘-게 ?얏다’에서 유래한 것으로 본다.종결문ㄱ. 내일도 비가 오겠다. --------------------추측ㄴ. 제가 발표를 하겠습니다. -----------------의지ㄷ. 나 같아도 하겠다.----------------------가능성관형사형 미래시제는 보통 ‘-(으)ㄹ'에 의해 표시된다.ㄱ. 앞으로 사야할 책을 하나하나 적어 보았다.--------단소들과 대등하게 계열관계를 이루는지, 또 어간과 어미 사이에서 빠져도 독자적인 단위를 이루며 대부분의 어미와 자유로운 통합관계를 이루는 지에 따라 나뉜다.2.2 여러 가지 논의들)앞에서 논했던 시제들은 그 기능이 과거, 현재, 미래로 정확하게 구분되어 진 듯 정리 되었지만 구체적으로 연구해 보면 시제들의 의미와 자격에 대한 논의가 분분해지는 것을 알게 된다. 본고에서는 그 중에서도 앞에서 언급했던 시제들‘-더-’‘-느’-었었-’‘-겠-’‘-을’의 논란에 대해서 짚어 보고자 한다.2.2.1‘-더-’시제 설정의 문제점예) 기차는 한 시간 후에 출발하더라.이 경우 ‘-더-’는 발화시점 이전에 알았을 때 가능한 표현으로 상황의 시간적 위치를 나타내는 시제로서의 기능이 아니라 ‘알게 된 시점’, 즉 ‘인식시’가 기준시점이 될 수 있다.또한, ‘-더-’가 시제라면 ‘-었더-’와 같이 상이한 시제 간의 결합은 계열관계상 성립할 수 없다고 본다.예) 철수는 밥을 벌써 다 먹었더라.이러한 문제제기는 는 2.2.4에서 다시 한번 다루기로 한다.2.2.2 ‘-느-’시제 설정의 문제점‘-느-’를 현재진행으로 보는 견해는 다음의 예들을 설명할 수 없어 문제가 된다.예)(1)철수는 지금 공부해.(2)나는 내일 떠난다.(1)번 문장은 발화시점에서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뜻하고 있으나‘-느-’가 쓰일 수 없다.이 같은 경우를‘이적 나아감’으로 해석하고 ,형태소의 결여를 뜻하는‘0’(이하?로 표기함)을 설정하여 여기의?는 ‘-느-’의 변이형태라고 하였다. 그러나 ?를 ‘-느-’의 이형태로 간주한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2)번은 발화시점 이후의 상황을 표현한 예로서, 현재 진행의 의미로는 해석되지 않기 때문이다.또한 ‘-네,-습니다,-니’등의 ‘-느-’까지 모두 ‘-느-’의 이형태로 간주한다면 ,‘깨끗하네,작습니다,덥니’등에서 보듯이 형용사가 서술어인 문장에도‘-느-’가 쓰일 수 있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에 ‘-느-’가 ‘현재 진행’을 나타낸다고 할 수 없게 된다.2.2.3 ’을 대과거라 분류하기는 어렵다.2.2.4 ‘-겠-’시제 설정의 문제점‘-겠-’의 쓰임 중 다음의 예와 같이 문장이 미래가 아님에도‘-겠-’이 자연스럽게 쓰이고, ㄷ은 오히려 예정된 것을 말하는 상황임에도 어색하다.예) ㄱ. 개들은 지금 한창 신나게 놀고 있겠구나.ㄴ. 젊으셨을 때는 무척 예쁘셨겠습니다 (시+었+겠+습니다)ㄷ.*철수는 오는 9월에 미국으로 유학가겠다.이러한 현상은 ‘-겠-’의 기능이 미래를 나타내는 데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더-’에서의 경우와 같이 ‘-겠-’또한 ㄴ처럼 과거 시제 ‘-었-’과 ‘-겠-’이 동시에 출현하는 것을 보면 ‘-겠-’은 시제 요소가 아닌 추측, 의지를 나타내는 서법 요소라고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겠-’과‘-었-’이 같이 쓰이면 과거의 상황에 대한 추측을 뜻하며, ‘-겠-’만 쓰이면 현재 또는 미래의 상황에 대한 추측이 되므로,‘-겠-’이 출현한 형식도‘-었-’이 없을 때에 비로소 현재 또는 미래의 상황을 나타내게 된다.2.2.5. ‘-을-’시제 설정의 문제점예) (1 )ㄱ. 내일 올 사람들은 손을 드세요. (발화 이후)ㄴ. 지금 신나게 놀고 있을 아이들이 부럽군요 (발화 중)(2) 이제는 다 자랐을 손자 놈이 보고 싶다. (발화 이전)‘-을-’은 전통적으로 미래의 의미를 갖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었+을’과 같은 표현이 가능하기에 시제로 설정할 수 없다.‘-을-’은 비과거, ‘-었을-’은 과거로 정리된다. 하지만 ( 1)ㄱ처럼) 실제로 미래의 상황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점을 고려하면 ‘-을-’이 시제 요소는 아니지만 ‘-을-’에 기대어 미래시제가 표현된다고 조건을 두어 말할 수 있을 것이다.2.2.6 ‘느,더,리,거’계열과 문장 구성소)문장 형성소란 문장 형성에 직접적으로 역할을 미치는 것으로 ‘-었-’과 ‘-겠-’을 들 수 있다. 이들은 형성소로 사용될 때 가장 제약이 적고 구성소로 사용되면 제약이 심하여 후행하는 어미와 한 단위가 된다. 상대적으로‘느, 더, 리, 거’는 선?후행하는 어미와 먼저 결합되어 보인다.
목 차서론본론I. 맥루언 소개1.맥루언은 누구인가?2.왜 맥루언인가?3.매체가 무엇이 문제인가?II. 인간의 확장 in 미디어의 이해1.매체가 메시지다.(1) 매체가 우리의 삶-인식이든 실천이든 간의 환경을 형성시킨다는 점이다.(2) 매체의 사용에서 초래되는 감각기관의 확장이 인간의 지각을 변형시켜 경험의 총체적 변화를 야기하게 된다는 것이다.2.매체의 영향(1)지각마비의 원리(2) 감각 비율의 변동(3) HOT VS COOL 미디어결론서론어릴때 항상 아빠랑 싸웠던 기억이 난다. 아빠는 만화와 코미디는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고 뉴스와 다큐멘터리로만 채널권을 제한했기 때문이다.정말 코미디와 만화를 보면 바보가 되고 뉴스를 보면 사회성을 키우면 똑똑해 질 수 있을까? 뉴스와 코미디는 똑같은 매체 텔레비전을 통해서 방송되는데 동시에 약과 독이 될 수있을까? 내용의 중요성도 있지만 그 수단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현 노무현 대통령을 시대를 잘 타고 나서 대통령이 되었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노무현은 텔레비전이랑 적합한 사람이었다. 친숙한 얼굴과 이슈를 만들며 언론을 집중하게 만드는 그는 텔레비전 덕을 보았다. 과연 라디오였으면 어땠을까? 아니면 DMB나 UCC 같은 매체였으면 어땠을까? 이런 관심과 고민을 맥루언을 통해서 이야기 해보겠다.본론I. 맥루언 소개1. 맥루언은 누구인가?마셜 맥루언(Marshall McLuchan)은 커뮤니케이션 이론가이자 문화 비평가이다. 1991년 캐나다 앨버타 주 에드먼턴에서 태어났다. 1934년에 마니토바 대학에서 영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1943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46년에는 토론토 대학의 세인트 미카엘 칼리지 영문학과 교수가 되었다. 세인트미카엘 칼리지의 문화 기술 센터 소장을 재직하던 1963년에서 1979년 사이에는 대중문화를 강의하면서 커뮤니케이션 이론을 발전 시켰다. 1964년 여름에는「미디어의 이해」를 출간해전 세계의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고, 이새대의 예언자라는 찬양을 으로 생각하고 있는가. 과는 다르다. 많은 사람들이 매체가 절단하는 내용이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상식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컨테츠를 담는 용기로서의 매체 자체가 메시지를 갖는다고 주장한다.우리의 상식을 거부하고, 콘텐츠를 담는 요기로서의 매체 자체가 메시지를 갖는다고 주장한다.맥루언은 ‘매체’라는 용어로 우리가 주면에서 접하는 거의 모든 것을 지칭한다. 말과 글에서 시작하여 신문, 라디오, TV 등 대중매체들은 기본이고, 숫자, 돈, 옷, 집, 철도, 자동차, 비행기, 자동화 시스템까지 인간이 만들어 사용하는 인공물이든 대부분이 맥루언식 매체에 속한다.매체의 범위가 이렇게 확대되면서 그는 그 속에서 인간을 이해한다.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인간 우월의 해석이 아니다. 매체 혹은 기술은 인간 주체의 단순한 발명품이며, 중립적인 도구라고 여기는 것이다. ‘도구 주의적 기술관’이라고 불리는 이 견해는 , 인간과 세계를 매개하는 방식으로서의 기술이 인간과 세계의 관계 방식의 변형을 통해서 인간과 세계자체의 이미지를 다시 변형시키게 되는 , 이른바 ‘기술의 소외 현상’ 을 반영하지 못한다. 기술은 단순히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인간에게 종속된 수단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기술에 인간이 의존하면 할수록 인간이 도리어 그것에 얽매이고 구속된다. 따라서 이러한 전도현상은 도구 주의적 기술관을 논박한다. 매체에 국한시켜서 말하면, 앞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사람들이 흔히 콘텐츠를 메시지라고 여기는 것도 바로 이러한 도구 주의적 기술이해 때문이다. 타인을 포함하여 외부대상들과 더 많이 상호 작용하기 위해서 그리고 보다 효율적으로 그렇게 하기 위해서, 즉 상호작용의 힘과 속도를 증대시키기 위해 인간이 사용하는 기술은 그렇게 단순하지도 중립적이지도 않다. 직접 맥루언의 얘기를 들어보자.(1) 매체가 우리의 삶-인식이든 실천이든 간의 환경을 형성시킨다는 점이다.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경험은 주체로서의 인간과 객체로서의 대상들과의 순수한 만남이 아디나. 인간과 세계로써 인간의 지각구조의 변동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지각구조의 변동은 궁극적으로 세계에 대한 인간의 경험방식과 경험내용의 총체적 변화를 수반하게 될 것이다.인간 신체 혹은 감각의 확장으로서 매체가 야기하는 인간의 지각구조 변화, 그리고 더 나아가서 사고 및 행동 양식의 변화 바로 이것이 ‘메시지’다. 매체가 ‘인간의 신체적 혹은 감각적 기능을 확장시키는 모든 수단’으로 정의된다면, 그것이 갖는 일차적인 메시지는 그러한 확장에 의해 야기되는 ‘인간의 지각구조의 변화’이며, 이는 다시 사회적 차원에서의 변동을 함축하게 된다. 맥루언은 그래서 ‘메시지’를 “인간사에 초래하는 규모, 속도 혹은 유형의 변화”, 혹은 더 간단히 “매체의 심리적, 사회적 효과”로 정의 하였다.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메시지가 콘텐츠(혹은 그것의 해석적 의미)와는 별개로 말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커뮤니케이션의 상황에서 콘텐츠를 매체의 의해 멀리 떨어져 존재하는 수용자에게 전달된다. 이를 위해서는 그것이 일정한 형식적 틀, 즉 매체에 담겨 져야한다. 매체가 없이는 콘텐츠도, 그리고 사용자의 의한 그것의 해석도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매체는 단순히 콘텐츠를 전달하는 중립적 도구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콘텐츠를 유의미한 정보이게 만드는, 토대적 역할을 수행한다. 즉, 매체는 콘텐츠의 논리적으로 선행하는, 일종의 선험적(?) 역할을 담당한다. 맥루언에 있어서는 매체 독립적인 콘텐츠나 정보, 의미 같은 것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그렇다면 매체를 통한 신체적 기능의 확장이 어떻게 그 매체의 사용자 개인의 의식에 그리고 더 나아가 사회에 영향을 미치며, 그 실질적 내용은 또한 무엇인가?2.매체의 영향(1)지각마비의 원리‘지각 마비의 원리(principle of numbness)'는 매체의 의한 지각구조의 변화를 함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거기서 매체에 의한 지각 마비 현상은 물 위에 비친 자기 모습을 다른 사람으로 여겨 결국 자기 자신에게 매혼되어 버린다는 내용의 나르. 우리의 눈은 이미 현미경에 의해 확장되어 엄청나게 커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 가지 가정, 즉 실제와는 달리 우리의 누에서 현미경을 떼어내는 일이 불가능 하다는 가정을 추가해 보다. 그럴 경우 현미경을 들이 댄 상태의 지각 상황은 훨씬 첨예해진다. 이제 우리의 눈은 현미경의 렌즈와 합쳐진 ‘기술 눈’이다. 그리고 이 눈을 통해서 보이는 것만이 대상이며, 세계다. 이 대상은 ‘현미경을 통해 본 대상’이 아니라 실제의 대상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모든 상황, 즉 현미경이란 기술의 사용과 함께 형성돼버린 지각환경을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지각 마비다. 자신의 눈이 확장되었음을 자각하지 못하는 상황이 마비이며, 또 그 결과로 기술 눈에 보이는 것만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기술을 통해 우리의 눈이 과도하게 확장된 나머지 그 눈에 보인 대상만을 바라 볼 뿐이다.사실 기술 눈에 보이는 대상은 기술을 통해 형성된 이미지에 불과하다. 그러나 현재의 조건에서 지각할 수 있는 것은 그 이미지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 이미지에 투영된 기술과 확장된 자기 자신은 망각되고 만다. 이는 자신을 ‘외화’ 또는 ‘타자와’하는 것이다. 그 이미지 속에 투영된 자신의 일부를 망각하고 타자화하는 것이야말로 자기 자신과의 단절인 셈이다. 맥루언은 나르시스 신화에의 비유에서 거울에 비친 나르시스의 이미지가 그 자신의 확장이며 단 줄이라고 말한 바 있다. 여기서 확장이 곧 단절인 이유는, 거울 속의 이미지 또한 나르시스 자신(확장된 나르시스) 이지만 그 자신으로부터 시각적으로 분리되어 타자화되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의 신체적 확장을 진정으로 저 밖에 존재하며 우리 자신과 무관하다고 여기는 나르시스적 태도’ 야말로 지각 마비의 전형적 결과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현미경을 통해 형성된 그 대상의 이미지에 함몰되는 것은 기술을 통해 우리 자신이 확장되고 동시에 단절된 결과, 즉 마비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지각 마비에 관한 이상과 같은 설명이 받아들여 질 수 있다면, 이제 그것이 생리가 그러하듯이 우리의 의식이 유기체적, 공감각적 지각 구조를 지니고 있다면, 지각 마비는 특정 감각의 내부에서만 고립적으로 발생할 수 없다. 맥루언의 ‘유기적 혹은 장(field)' 감각론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원래 인간의 지각구조는 5개의 감각이 일정한 비율로 섞여 조화를 이루고 있는 하나의 균형상태다. 그런데 매체는 콘텐츠를 나르는 그 자체의 물리적 과정과 방식으로 인해 사용자들의 특정한 감각을 확대 혹은 축소시키게 된다. 이는 기존의 균형상태의 감각비율(sense ratio)의 변동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감각비율이 달라진다는 것은 곧 지각구조의 변화를 뜻한다. 일정한 감각비율에서 특정한 감각이 확장됨으로 인해 감각비율의 변동이 생겨나고, 다시 균형을 이뤄내는 과정에서 인간의 지각구조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지각구조의 변동이 궁극적으로 세계에 대한 인간의 경험방식과 경험내용의 총체적 변화를 수반하게 된다. 맥루언은 이를 일반화해서 “모든 발명이나 기술은 우리 육체의 확장 또는 자기 단절이며, 이는 다시 신체의 여러 기관과 확장된 신체에 대하여 새로운 비율관계와 새로운 균형을 요구한다.감각적 삶을 확장하고 촉진하는 모든 미디어는 감각의 모든 영역에 대해 곧 영향을 미친다. 고 말한다.감각 비율의 변동은 이제 매체가 야기하는 지각구조의 변화 메커니즘의 실체적 내용을 이루게 된다. 맥루언은 자신의 첫 번째 주저 ‘구텐베르크 은하계(The Gutenberg Galaxy)’에서 풍부한 예술적, 화학적, 사회적 사례들을 제시함으로써 매체와 인간 지각구조가 맺는 인과적 상관관계에 관한 자신의 통찰을 보여주고자 했다. 거기서 그 설명적 고리의 역할은 담당하는 것이 바로 ‘감각비율’이다. 인간의 지각구조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던 매체로서 맥루언은 단연 표음 알파벳과 인쇄를 꼽는다. 그에 따르면, 시각의 확장을 낳는 표음 알파벳은 “여러 (감각들의) 공간의 복합적이고 유기적인 작용을 하나의 단일한 공간, 즉 시각-공간으로 번역 혹은 환원시.
동서양 건축 철학의 비교:파르테논 신전과 종묘의 비교I. 들어가며건축물은 특정 공간에 인간이 생활하기 위해서 만든 구조물을 뜻한다.) 문명이 발생한 이후 인간의 거의 언제나 건축물과 함께 생활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자연히 건축물에는 당시의 시대상과 철학이 담겨져 있게 된다. 흔히 동서양의 가장 큰 차이는 자연에 대한 관점의 차이라고 한다. 서양인은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보고 동양인은 자연을 자신과 하나 되는 합일의 공간으로 본다. 이런 인식의 차이는 건축물에도 드러나서 서양은 건축물을 절대적인 공간형태로 본 것에 반해 동양은 건축물을 인간과 자연간의 중재환경으로 보아 인간-주거환경-자연을 하나의 통일체로 이루어내고자 했다.이런 차이는 상이한 주거방식으로 나타난다. 로마인은 귀족의 경우 산등성이에 집을 짓고 평민은 평지에 집을 짓는다. 신분이 높을수록 신전 밑 산 정상에 가깝게 집을 짓는 것이다. 반면 조선시대 양반은 평지에 집을 짓고 공동체에서 벗어난 화전민이나 하층계급은 산등성이에 집을 짓는다. 서양과는 정반대이다. )그림 아테네의 전경그림 옛 한양의 전경이런 차이는 종교 건축물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본 논문에서는 서양 건축물의 상징이라 볼 수 있는 파르테논 신전과 한국의 대표적 건축물인 종묘를 시대적, 철학적 관점에서 비교하고 실제 건축 기술에 적용되어 있는 철학적인 면을 살펴서 동서양 건축 철학을 비교해 보겠다.II. 서양과 동양의 건축물 비교1. 파르테논 신전의 소개파르테논 신전은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언덕에 있는 아테나 여신의 주(主) 신전이다. BC 5세기 중엽에 세워졌으며 일반적으로 그리스 건축의 3가지 오더 중 가장 단순한 도리아식 오더가 최고로 발전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파르테논이라는 이름은 이 신전과 관련이 있는 여신인 아테나가 연애나 결혼을 하지 않아서 불리어진 아테나 파르테노스라는 이름에서 비롯되었다.)그림 파르테논 신전아테네의 정치가 페리클레스의 지시를 받아 조각가 페이디아스의 감독을 받아 건축가 익티노스와 칼리크라테스가 지었다. 아테나를 위해 처녀들이 짠 페플로스(신의 옷)를 바치는 의식이다. 띠 모양으로 이루어진 높이 약 1m의 공간에는 신관, 공희관(히에로포이오스), 장로 등의 행정관과 장교, 악사, 공납물을 든 처녀, 물병 등의 공물을 든 남자들, 말을 탄 젊은이, 경기 우승자, 그리고 제물로 바칠 동물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행렬의 거대한 흐름은 남서쪽 모퉁이에서 둘로 갈라져 출발해, 신전 입구 위쪽으로 향했었다.???? 그림 고대 신들의 부조상2. 당시의 시대적 상황아테네는 BC 5세기초에 페르시아의 침략을 여러 차례 받았는데, BC 490년의 침공 때에는 아테네군이 혼자 힘으로 마라톤에서 싸워 이를 물리칠 수 있었다. 또 BC 480년의 침공 때에는 스파르타도 잘 싸웠으나, 승패의 결정점이 된 살라미스해전에서 BC 482년부터 급조(急造)된 아테네의 해군이 주력이 되어 싸웠다. 이 두 차례의 승리로 아테네는 자국의 민주정치에 자신을 가지게 되었으며, 또 살라미스해전에서 활약한 일반대중의 정치적 발언권이 커진 끝에 그들에게까지 참정권이 확대되어 민주정치가 철저해졌다.)살라미스해전 후에 아테네는 그리스의 여러 폴리스를 설득하여 '델로스동맹'을 체결하고 그 맹주(盟主)가 되었다. 델로스동맹의 체결(BC 478)부터 펠로폰네소스전쟁의 개시(BC 431)까지가 아테네의 황금시대였으며, 민주정치가 철저해지고 경제적 번영은 절정에 이르렀다. 문화가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그리스의 학문·예술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여러나라로부터 학자와 예술가들이 모여들었다. 아테네인 중에서도 소크라테스·플라톤 등의 학자와 아이스킬로스·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아리스토파네스 등의 극시인(劇詩人)이 배출되었다. 또 파르테논·에레크테이온 등의 신전 건조가 성행하고 조각·회화 등의 미술도 꽃을 피워 페이디아스 등의 예술가가 등장하였다. 아테네는 그리스 제1의 해군국으로서 델로스동맹 도시들 사이에 정치적·경제적·군사적으로 강력히 군림하였기 때문에 이 시대를 '아테네제국시대'라고도 부른다. 또 이때에 아테스가 추구했던 보편적인 것이란 인간의 감각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피타고라스학파가 사물을 '수의 모방'이라고 했던 것처럼, 감각적인 것은 그 본질과 떨어져 있는 것이라고 보았다. 사람이 정신적인 눈을 떠서 볼 수 있는 것만이 참된 존재라고 보고, 그는 이것을 '이데아(idea)'라고 하였다.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에게 20년 간 철학을 배웠는데, 나중에 독자적인 체계를 세웠다. 그는 이오니아의 흐름을 받아 경험의 세계를 중요시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그의 철학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이데아론(論)에 대하여 그는 같은 종류의 여러 사물 속에는 하나의 공통개념(이데아)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공통개념을 사물에서 독립시킬 수는 없다는 것이다.아리스토텔레스는 사물을 떠난 본질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이데아[形相]와 감각적 재질[質料]의 결합을 강조하여 '질료·형상설'을 내세웠다. 플라톤의 경우, 인간은 모름지기 이상적인 이데아의 세계를 갈망하여 감각의 세계를 떠나 위로 향하여 올라가는 충동, 즉 에로스(eros:사랑)를 목표로 하는 데 대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행복을 이성에 의한 영혼의 활동으로 규정짓고, 위로 향하여 올라가는 사랑이 아닌 시민의 상호협조로서의 필리아(philia:우정)를 강조하였다.4. 종묘의 소개종묘는 조선 시대 역대 왕과 왕비, 그리고 추존왕과 왕비의 신주(神主)가 있는 곳으로 종묘 대제를 지내는 곳이다. 종묘 대제는 조선시대는 물론 고려시대 그리고 더 거슬러 올라가 삼국시대에도 나라에서 가장 중요시한 국가적인 제사였다. )종묘 대제는 역대 임금의 신위를 모시고 돌아가신 임금께 올리는 제사였으므로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제사로 이보다 더 높은 격식을 갖는 제사는 왕조 시대에는 있을 수 없었다. 종묘의 제사가 그처럼 최고의 격식을 갖는 것이었던 만큼 종묘 자체도 나라 안에서 으뜸 가는 중요한 시설로 꼽히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그림 종묘 대제종묘는 조선시대의 전통건물로서 일반건축이 아닌 신전건축임에도 불구하고 건축의 보편적 가치를 지 바로 창덕궁 뒤의 응봉을 말한다. 곧 종묘는 응봉을 주맥으로 하여 그 아래로 지맥을 타고 내려온 자리에 세워졌으며 이렇게 지맥을 잇다 보니 종묘의 위치는 경복궁으로 보아서는 동쪽에 치우친 곳에 자리 잡는 결과가 되었다.정전의 신실은 서쪽을 상(上)으로 해 제1실에 태조의 신주가 봉안되어 있다. 영녕전은 주나라의 제도를 본받아 정중(正中)에 추존조사왕(追尊祖四王)을 모시고 서쪽과 동쪽으로 구분, 서쪽을 상으로 차례대로 모시고 있다. 이것을 소목 제도(昭穆制度 : 신주를 모시는 차례로, 왼편을 昭, 오른편을 穆이라 하며, 天子는 1세를 가운데 모시고 2·4·6세를 소에, 3·5·7세를 목에 모시는 제도)라 한다.궁장(宮墻)으로 둘러싸인 넓은 대지의 남쪽 끝에 자리한 정문을 들어서면 정전에 이르는 주 도로가 왼쪽인 서쪽으로 나고, 오른쪽인 동쪽으로 굽어진 길 옆에 향관청(享官廳)이 자리잡고 있다. 향관청을 지나면 재실이 있는데, 이곳은 정문에서 정전에 이르는 주 도로에서 꺾어 들게 되어 있다.재실의 서측에 종묘 정전이 자리잡고, 그 서측으로 영녕전이, 정전 서남쪽으로 악공청(樂工廳)이 있다. 정전이 자리한 곳은 장방형으로 담장을 둘러쌓았는데, 남측 담장 중앙에 정전 대문을 달고 양 쪽 동서 담장에 측문을 달았다. 정문을 들어서면 넓은 월대(月臺 : 정전 앞에 있는 섬돌)가 있고 정문 중심과 이 월대의 중앙을 잇는 어도(御道)가 정전의 기단(基壇) 중앙 계단까지 연결되어 있다.그림 정전정전은 현재 정면 19칸, 측면 3칸이고, 좌우 익실(翼室) 각 3칸이지만, 본래에는 태실(太室) 7칸, 좌우 익실 각 2칸이었던 것을 여러 번 증축하였다. 장대석으로 쌓은 넓은 월대를 앞에 두었는데, 그 상면은 박석(薄石)을 깔았고, 어도는 전(塼)을 깔았으며, 곳곳에 차일(遮日)고리가 박혀 있다. 특히 정전은 건평이 1270 제곱미터로 동시대의 단일 목조 건축물로는 세계 최대 규모로 추정된다. 특히 왕에게 제사지내는 최고의 격식과 장엄함을 건축물로 구현한 조선시대의 걸작품으로 이 게 하였다.조선을 창건한 태조는 송경(松京 : 松都)에서 한양으로 천도한 뒤 현재의 종묘와 사직을 세웠다.삼국시대에 중국의 예제가 어떻게 수용되었는지는 잘 알 수 없지만 고려시대에는 중앙 집권적인 통치 체제를 만들어 낸 성종대에 나라의 여러 제도를 주욱식으로 개편하면서 5례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는 사실을 '고려사'를 통하여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고려시대 후반에 일시 혼란이 있었던 여러 제도를 다시 정비하면서 5례에 대해서도 다시 상세한 내용 규정을 하였는데 세동 때 크게 틀을 잡고 성종 때 '국조오례의'를 편찬함으로써 거의 완성을 보았다.예(禮)를 중시하는 유교를 통치기반으로 하여 건국한 조선왕조는 그것을 국가의 주도적인 이데올로기로 삼았다. 종묘가 들어설 땅은 유교 경전(經典)에 도성(都城)기반시설 배치원칙으로 제시되어 있다. 그 중에서, 『주례(周禮)』[춘관(春官) 종백(宗伯)]에는 임금이 궁궐을 중심하여 남쪽을 향하였을 때 “오른쪽에 사직, 왼쪽에 종묘(右社稷 左宗廟)”를 둔다 하였고, [동관(冬官) 고공기(考工記)에도 같은 내용이 있다. 예로부터 임금이 남쪽을 향해 앉아서 정치하는 것은 모두 정(正)을 근본으로 한 것이다. 사직은 농업을 근간으로 하는 농경사회에서 중시한 토지의 신(神) ‘국사(國社)’와 곡식의 신 ‘국직(國稷)’에게 국태민안(國泰民安)과 풍년을 빌며 제사하는 장소다. 유교사회에서 종묘와 사직, 즉 종사(宗社)는 곧 국가의 기틀을 지칭하였으며, 국가의 흥망(興亡)은 곧 종묘·사직의 존망(存亡)이란 말로 표현되었다. 따라서 종묘와 사직의 존재는 정치이념상 국가 기틀의 완성과 왕조의 뿌리를 상징한다.)종묘건설은 궁궐 및 성곽건설과 함께 조선왕조 건국후 시행한 국가 차원의 첫 대역사(大役事)였다. 태조는 1394년 10월 개경에서 한양으로 천도하고 유교이념에 따라 궁궐인 경복궁을 중심으로 오른쪽인 동쪽에 종묘, 왼쪽인 서쪽에 사직을 그 다음해에 세웠다. 창건 당시 종묘는 신주를 모시는 신실(神室), 죽 감실(龕室) 5칸과 좌우.
1. 개요요즘 현대인에게 음양오행이란 단지 명리학 등과 관련하여 점을 보는 사람들이나 관심을 가질만한, 비과학적이며 미신적인 고대의 풍습에 하나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음양오행설이 지난 수십 세기 간 중국 철학사나 유학이나 의학에 끼친 영향정도를 살펴볼 때 그 의미를 단순한 신앙적 미신의 하나로 간주하기는 어렵다. 음양오행설은 동양의 세계관이며 우주관이다. 이것은 서양과학의 논리적 특성과는 다른 유기체적 상관관계의 파악이며 자연의 순환 논리이다. 이것은 서양적 논리에 의한 분석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자연을 바라본 직관에서 나온 것이다. 지구의 모든 생활을 음양 오행의 원리 속에 넣어 이해하고 설명하였다. 물론 과거에 신비적 요소의 첨가나 내용의 왜곡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오랜 세월 동안 동양 사회의 사상적 기초로서 기능한 점은 무시 할 수 없다. 우리 나라의 경우도 생활 전반에 음양 오행의 원리가 박혀 있다. 대표적인 예로서 오른쪽 손을 사용하는 것이 왼손을 사용하는 것보다 강조하는 것은 음양의 원리에서 비롯 된것이다.아래에서는 음양오행설의 개념과 내용을 살펴보고 음양과 오행의 관계를 언급하겠다. 글의 마지막에는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있어서의 음양오행이 갖는 의미를 생각해 보겠다.2. 음양오행론의 개념과 기원음양 오행론이란 인간의 모든 현상을 음·양 두 원리의 소장으로 설명하는 음양설과, 이 영향을 받아 만물의 생성소멸을 목·화·토·금·수의 변전으로 설명하는 오행설을 함께 묶어 이르는 말. 음양설과 오행설은 발생을 달리하는 다른 사상이었으나, 전국시대 말기 이후 융합되어 음양오행설이 되었고, 특히 한나라 때 사상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음양설은 음양이기의 소장에 의해 만물의 생성과 변화를 설명하는 사상으로, 이것을 역학에서 받아들여 그 기본원리로 하였는데, 음양은 본래 산의 음지와 양지를 가리켰다. 역학은 본래 강과 유의 원리로 생성변화를 설명했으나, 후에 강유 대신에 음양을 받아들였고 여기에 순환사상이 추가되었다. 이것은 천체의 운행과 사계의 추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오히려 특정사상이라고 하기 힘들 정도로 인간의 사고가 미치는 모든 영역에 있어 적용되어 사유의 기반으로써 역할을 하였다 하겠다.(1) 음양의 개념모든 현상사물은 대립과 동시에 통일성의 양면이 있다. 음양학설에서 이를 음양이라 표현하며, 이 음양의 대립 및 상호작용과 그 부단한 운동은 우주만물이 끊임없이 생성 변화하는 원동력이라 인식한다. 소문 음양응상대론에 "음양은 자연계의 대립과 통일의 기본원칙으로서 모든 사물은 이 법칙에 따라 조금도 위배되지 않으며, 모든 사물의 변화는 모두 이 법칙에 의하여 발생하고, 일체의 생성소멸은 모두 이 법칙에서 비롯되며, 이것은 자연의 일체의 신비가 존재하는 곳이기 때문에 사람도 또한 자연계의 생물의 하나이므로 치병에는 반드시 그 근본원칙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였다. 이로서 음양학설은 자연계의 규율과 인체의 생리, 병리 및 치병의 본질과 치료기술을 총괄하는 사고방법임을 알 수 있다.음과 양은 밤과 낮이 쉼 없이 바뀌고 있는 자연의 실상이자 기본 원리이다. 따라서 음양의 이치를 겸허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때 자연은 비로소 참모습을 드러냄으로, 경직된 고정 관념을 버리고 자연의 참 모습을 보아야 할 것이다. 음과 양을 극으로써 서로가 공존할 수 없는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사실은 별개이면서도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즉, 양이 있기에 음이 있고 음(陰)이 있기에 양이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와 같은 이치를 깨닫는다면, 이 세상에서 자기 혼자만이 존재할 수도 없고 또한 만능일 수도 없다는 것을 자연 알게 될 것이다. 음양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을 서로 대조, 비교하여 그 특성을 시각적으로 인식하는 방법이 오행은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사물의 변화원리와 변화를 일으키는 힘의 작용기전을 다섯단계로 구분하여 사물의 역동성을 설명한다(2) 음양의 속성○ 외양내음(外陽內陰), 외음내양(外陰內陽)겉이 양이면 속은 음이고, 속이 양이면 겉은 음이 된다는 것이다. 여름에는 지상은 더운데 지하로는 서늘하게 되어 있음이 바로 자연의 이치다.○ 양봉음생(陽逢陰生), 음봉양생(陰逢陽生)양은 음을 만나야 살수 있고 음은 양을 만나야 살수 있다는 말이니 즉, 양과 음은 상극관계에 있으면서도 공존의 법칙에 의하여 서로를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다. 남자는 여자를 만나야 살수 있으며 여자는 남자를 만나야 살수 있는 것이고, 상이 없으면 하는 존재 할 수 없으며 하가 없는 상은 있을 수도 없는 것이다.○ 다자병(多者病), 쇠자병(衰者病)무엇이든 너무 많으면 병이 되고 그렇다고 너무 적고 쇠약해도 병이 된다는 것이니 다시 말하여 양이 많으면 음이 죽고 음이 많으면 양이 죽는다는 말과도 같은 것이니, 무조건 많은 것은 병이 되며 또한 상대가 죽어 간다는 것이다.○음생음(陰生陰), 양생양(陽生陽)음은 음을 生하고 양은 양을 生 한다는 말이니 이것이 곧,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옛 말과 같다. 그러기에 선은 선을 낳고 악은 악을 낳으니 선이 있는 곳에 선은 모이게 되고 악이 있는 곳에 악이 모이게 마련인 것이다. 가정에서도 현부가 있으면 현처가 있고 현처가 있는 곳에 현부가 있게 마련이며 좋은 부모님 밑에 좋은 자손이 있듯이 사회, 정치, 경제, 문화 할 것 없이 모두 다 같으니 이를 두고 유유상종이라 하는 것이다.○ 양극 도달즉음시생(陽極 到達卽陰始生), 음극 도달즉양시생(陰極 到達卽陽始生)양이 극에 도달하면 음이 생 한다는 말이다. 이는 양인 부자도 극에 도달하면 음인 빈곤함이 생하고 있는 것이요, 양인 행복도 극에 도달하면 음인 불행이 시작되고 있는 것과 같다. 빈한함이 극에 도달하면 부는 이미 시작되고 있는 것이며, 불행이 극에 이르면 행복은 이미 찾아오고 있는 것이니 지금 빈천하고 불행하다고 하여 좌절하거나 실망도 하지 말 것이다.○ 중화지도(中和之道)중화지도라 함은 음에도 양에도 치우치지 말고 균형을 취하라는 말이다. 어느 한곳으로 편중되는 것은 금물이고 편견또한 안되며 상,하 좌,우, 종,횡 동서남북 할 것 없이 모두가 중화를 이룰 때, 비로소 태양아래 화기 속에서 성장하여 적절한 성장이 되었으면 이제 과다한 화기를 식혀야 하는데 화기는 땅(土)을 보면 자연스럽게 열기를 식힌다. 가을철의 전답은 수확을 끝낸 다음에는, 흙이 굳어지며 그런 흙이 굳어서 금기가 되고, 곧 이어 만물을 완전히 수렴하는 겨울철 기수로 변한다. 겨울이 지나서 봄에 다시 나무(木)가 힘을 얻고 동일한 순환과정을 반복한다.(4) 오행의 속성오행이라는 용어는 서경에 처음 등장한다. 목 화 토 금 수의 5가지의 기운을 말하며, 이것들의 배합이 조화를 이루었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따라서 운세의 길흉을 따지게 된다. 따라서, 오행론은 각기 다른 5가지의 기운. 즉, 목. 화. 토. 금. 수의 상생이 타서 불을 태우고, 불이 타고 꺼지고 나면 흙이 된다. 그리고, 흙이 굳어서 쇠가 되고, 쇠가 녹아서 물이 되며, 물은 수분을 공급하여 나무를 키운다는 원리이다. 이때의 木→火→土→金→水의 순서를 상생관계라고 한다. 이것을 우리의 4계절에 그대로 적용 할 수 있다. 봄에는 나무가 새로 싹을 내고, 그것이 여름의 뜨거운 태양아래 화기 속에서 성장하여 적절한 성장이 되었으면 이제 과다한 화기를 식혀야 하는데 화기는 땅을 보면 자연스럽게 열기를 식힌다. 가을철의 전답은 수확을 끝낸 다음에는, 흙이 굳어지며 그런 흙이 굳어서 금기가 되고, 곧 이어 만물을 완전히 수렴하는 겨울철 기수로 변한다. 겨울이 지나서 봄에 다시 나무가 힘을 얻고 동일한 순환과정을 반복한다.1) 각 行의 속성(1) 水의 性理수의 내부가 명칭하고 형자가 빛이며 유동하는 것은 수중일양의 양성이다. 즉 내명외암이니 이것을 음중유양이라 한다. 엄동한절에 빙설은 음의 고착성이요, 수면에 빙판이 되는 것은 수증일양이 있어서 수면만 음한으로 고착하고 수중은 양성으로 유동한다. 미와 색=미는 내성이요 색은 외기다. 일수는 일장이 재중이므로 일양이 미요 외수가 색이다.고로 수의 염미는 일양성으로 연하고 생하고, 색은 음수성으로 음암하고 흑이니 음성이 폐한한 내리의 그늘이다. 일절만유의 염미는한까닭으로 금을 화중에 입하면 기화하여 화로 환원한다. 미와 색=미는 내성이요 색은 외기다. 사금은 이화가 재중이므로 이화가 미요 외금이 색이다. 고로 금의 辛味는 이화양의 발산성이요 색은 사금의 수험기인 백이다. 일절의 신미와 백색은 금성이다. 음이 승발하여 출하면 청홍의 기색이 외현하나니 청은 발생의 색이요 홍은 개발의 색이며, 음이 수험하여 입하면 기색이 내입하나니 백은 무색의 경색이요 흑은 개입의 사장색이다.(5) 土의 性理지구는 오행의 단합물이 까닭으로 오행으로 생긴 물건은 모두 지상에서 의토생존하고 모든 오행소속물은 지구의 단합력으로 하여 모두 흡인하여 들인다.오양이 중에 재하므로 지중에 열화가 있다. 이것을 음중유양이라 한다. 토가 있으므로 하여 이 천지가 있는 것이니 우주만유가 오행의 진실을 득하여 생을 보존한다. 미와 색=미는 내성이요 색은 외기다. 오토는 오양이 재중이므로 오양이 미요 외토가 색이다.고로 토의 감미는 오양의 평화한 보기성이요 색은 음토의 중화색인 황이다.일절만유의 甘味와 황색은 토성이다. 음중유양하고 양중유양하여 음양이 호근하고 상배하고 상대하나니 음양은 상대배합이 된 연후에 생물이 되고 성사가 되는 까닭읻.이와같이 음양은 단합이 본성이니 이 단합의 일기는 즉 오토의 진실이다. 오토는 성이 진이요 동이성이요 신이요 중이요 균이요 완이요 전이요 환이요 구요 영부리라, 고로 생물이 종이 없다.2)상생(相生)과 상극(相克)음양오행설에서는 오행의 목화토금수를 유기적인 상생과 상극의 관계로 파악하고 있으며 그 상호관련 변화양상을 기초로 사물의 변화를 관찰, 해석한다. 오행간에는 상호자생 상호조장의 관계가 있으며 이를 상생이라 말한다. 오행상생의 순서는 木生火, 화생토, 토생금, 금생수, 수생목이다. 각 행은 생을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는 양면이 있는데 이를 모자의 관계라 표현한다. "克"에는 제약,조지(阻止)의 의미가 있다. 오행간에는 상호제약 상호조지의 관계가 있으며 이를 오행상극이라 말한다. 오행상극의 순서는 목극토, 토극수, 수극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