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力’으로 거듭나는 아름다운 실버목 차Ⅰ서론.------------------------------------------------------------2Ⅱ본론.---------------------------------------------------------3~111. 이론적 배경-----------------------------------------------------3~41) 노인의 정의와 특성2) 노인문제 발생원인3) 노인취업의 의미와 관련 법률 검토2. 노인취업 현황----------------------------------------------------4~53. 노인취업 필요성--------------------------------------------------5~61) 노인의 경제적 빈곤 해결2) 건강유지3) 의미 있는 여가생활4. 인력으로써의 가능성-----------------------------------------------6~71) 유경험자2) 노인의 심성3) 저렴한 인건비5. 노인취업의 문제점-------------------------------------------------7~81) 노인복지 관련 법률의 문제2) 낮은 임금수준3) 부정적인 사회인식6. 노인취업 활성화방안----------------------------------------------8~111) 노인일자리 창출 사업 활성화2) 정년제도 개선3) 직업훈련과 노인적합직종 개발 ? 보급4) 사회적 인식 개선5) 노인 스스로의 노력Ⅲ 결론.----------------------------------------------------------11Ⅳ 참고문헌.-------------------------------------------------------12Ⅴ 첨부.-------------------------------------------------------12~13‘人力’으로 거듭나는 아름다운 실버Ⅰ서론.통계청DB;65세이상 인구구성비 추이(200 현황을 살펴본 후 노인취업의 필요성과 노인이 인력으로 어느 정도 가능성을 갖고 있으며 이로 인해 어떤 효과를 가질 수 있는지 알아본다. 노인취업과 관련된 정책, 법률, 인식 등의 문제점을 지적한 후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실제로 노인취업을 활성화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해 본다.1. 이론적 배경1) 노인의 정의와 특성노인이란, 예부터 ‘늙은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으나 그 개념을 엄밀히 규정하기는 힘들다. 나이를 기준으로 노인을 구분함은 의논의 여지가 있으나 일반적으로 노인은 생리적 ? 신체적 기능의 감퇴와 더불어 심리적 변화가 일어나 개인의 자기유지 기능과 사회적 기능이 약화되는 사람을 의미한다.(임춘식,2001) 1951년 7월 미국 세인트루이스시에서 열렸던 제2회 국제노인학회에서는 노인의 특성을 통해 다음과 같은 정의를 내렸다. 환경변화에 적절히 적응할 수 있는 자체조직에 결함이 있는 사람, 자신을 통합하려는 능력이 감퇴되어 가고 있는 시기에 있는 사람, 인체의 기관, 조직, 기능에 쇠퇴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시기에 있는 사람, 생활체의 적응성이 정신적으로 결손 돼 가고 있는 사람, 조직 및 기능저장의 소모로 적응 감퇴 현상에 있는 사람을 노인이라고 규정했다.)연구자간에도 정해진 정의가 없는 현실임으로 이 논문에서는 ‘65세 이상을 노인으로 규정’하는 노인복지법 정의를 기준으로 논하겠다.2) 노인문제 발생원인노인문제를 야기하는 원인은 매우 다양하다. 특히 저출산으로 인한 노인문제가 심각하다. 저출산으로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면서 노년부양비는 점차 높아지고 있다. 현재 생산가능인구 약8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고 있다면, 2020년경에는 생산가능인구 5명이 노인 1명을, 2030년경에는 생산가능인구 약2.5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할 것으로 예상한다.연도2*************1820242030노년부양비)10.113.215.919.727.537.3통계청DB;노년부양비(2000~2025)추이, 단위(%)평균수명이 연장되면서 노인인구가 급증하였고 이는 노인인구 수용 확대되고 노인 스스로 생계를 위해 구직활동을 폄으로써 참가율과 취업자는 증가했다. 그러나 한 가지 간과한 점이 있다. 위의 통계에는 시골에 거주하며 농림 ? 어업을 하는 노인까지 포함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농림 ? 어업을 제외하고 사무직, 공무원 등으로 일하는 노인은 드물다. 그럼으로 경제활동참가율이 곧 노인취업의 지표가 되기는 어렵다.3. 노인취업 필요성노인인력활용과 관련해 선진국에서 수행하고 있는 정책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유를 근거로 한다. 하나는 국가의 노령연금재정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 다른 하나는 저출산으로 인한 연소인구의 감소로 제기되고 있는 인력부족을 타개하기 위한 대안이다. 일할 능력이 있는 노인들에게 가급적 계속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노인취업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보도록 한다.1) 노인의 경제적 빈곤 해결잡코리아가 2004년 서울강남노인인력지원기관과 한국노인인력지원기관협회 등의 60세 이상 회원 중 취업에 성공한 고령자 210명을 대상으로 ‘실버취업 실태’에 대해 조사한 결과, 현재 취업에 성공한 노인 9명 중 4명이 생계비 조달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직장에서 물러나면 자연스럽게 경제적 타격을 받게 된다. 특히 요즘은 자녀들의 부양의식이 많이 퇴색되어 노인들은 더욱 생계유지에 곤란을 느끼고 있다. 더구나 노인의 경제적 자립을 도와주는 연금제도를 비롯한 사회보장제도도 미흡한 실정이다. 그럼으로 취업을 통해 스스로 생계비를 벌도록 하는 것은 노인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매우 도움이 된다.2) 건강유지나이가 들면서 가장 관심을 많이 가지는 부분이 건강이다. 노인은 각종 질병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 건강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운동과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한다. 노인들이 취업을 하면 특별히 시간을 내 운동하지 않더라도 일을 위해 몸을 움직이면서 자연스럽게 운동효과를 볼 수 있다. 또한 규칙적으로 출근하고 때에 맞게 식사를 챙기면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그어지면서 청년실업이 발생하게 된다. 물론, 청년실업에는 더 많은 원인이 존재한다.기업은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며 이를 위해서는 생산비를 감소해야 한다. 생산비를 줄이는 가장 쉬운 방법이 해고와 채용보류이다. 높은 소득을 원하는 젊은이와 달리 노인은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일정수준의 소득만 얻으면 만족하고 일하는 경향이 있다. 노인들도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젊은이보다 인건비가 싼 노인을 채용하는 것이 기업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너무 적은 수입은 노인의 노동착취와 연결될 수 있음으로 적당한 수준의 임금 지급이 필요하다.5. 노인취업의 문제점1) 노인복지 관련 법률의 문제고령자고용촉진법과 노인복지법은 노인복지를 위한 법률임에도 노인 연령 기준이 각기 달라 상당한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고령자고용촉진법에서는 고령자의 연령하한선을 55세로 규정하는데 반해 노인복지법에서는 노인의 연령을 65세 이상자로 규정하고 있다.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직업훈련 ? 직업능력개발 프로그램의 경우, 노인의 적성에 맞춰 설계한 정책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대상자는 거의 50대 미만이다. 이는 노인의 연령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발생한 문제이다. 또한 노동시장에서는 당연히 65세 이상의 노인보다 조금 더 젊은 50대를 선호할 것이다. 그럼으로 두 법률 모두 노인을 위한 정책인 만큼 65세 이상으로 연령기준을 명확하게 개정해야 한다.그리고 두 법률은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연장하도록 하는 조항을 갖고 있는데 이는 노력의무조항으로써 실질적인 효력이 없다. 우리나라는 현재 정년을 정한 기업들의 평균 정년이 56.8세에 머무르고 있다.) 또한 평균적으로 근로자들은 40대 후반에 퇴직하게 되는데, 이들은 자영업자로 나서지 않을 경우 대개 비정규직으로 전락한다. 그럼으로 정년연장이 불가피하다.고용자고용촉진법 시행령 제3조, 제4조에는 ‘300인 이상의 근로자를 고용하는 사업장의 사업주는 해당 사업장의 상근 근로자 중 3%를 고령자로 고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쓰여 있다. 기업 등 일자리관련 기관과의 유기적인 협조체제가 구축되어야 한다. 대한노인회 취업지원센터 사업은 그동안 ‘노인취업알선센터’라 하여 전국에 70여개 소가 있고 취업하려는 노인을 대상으로 경비직, 미화원, 단순 노무직 등에 취업알선 업무를 추진한다. 시니어클럽 사업은 2001년도 시범사업을 시작으로 법인이나 단체 등에 위탁된 시니어클럽(2005년 기준 31개소)에 국고와 지방비를 지원해 노인일자리를 창출하려는 사업이다.)우리나라 노인취업을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 중 하나는 노인인력을 통합 관리할 수 있는 전담기구의 설립이다. 노동부와 보건복지부, 지자체에서 이루어지는 노인취업 서비스를 일원화하고 그 관리방안에 대한 협력이 유기적으로 이루어 질 수 있는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김대빈,이금룡,2005)2) 정년제도 개선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또는 정부투자기관 종사자의 평균 정년연령은 58세 전후이며 민간기업체의 경우 50세 전후해서 퇴직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우리나라는 55세 정년퇴직이 일반화되어 있다. 그리하여 55세 이상의 고령자, 더욱이 65세 이상의 노인이 취업을 하는데 있어 어려움이 뒤따르는 것이 현실이다.사업체들로써는 나이가 드는 사람들을 계속 고용하고 있는 것이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최근 우리나라의 평균수명이 급격히 연장되면서 노인복지와 삶의 질 측면에서 정년 연장을 위한 정책적인 노력은 불가피하다. 정년연장과 더불어 이를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KARP(대한은퇴자협회)가 2006년 3월부터 약 3개월 간 50세 이상 수도권 거주자 307명을 대상으로 ‘정년에 대한 50대 이상 인식’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42%가 ‘전직 또는 재취업이 어려운 이유’로 ‘나이’를 꼽았고, 응답자의 84%가 정년으로 가장 합리적인 연령은 ‘65세 이상’이라고 답했다. 정년연령으로 ‘70세 이상’이 적당하다는 응답도 23%에 달했다.)정부는 6월 7일 직장 내 연령차별 금지 법제화와 일정 연령까지 직장을 보장하는 정년의무제 도입을 중심으로 한 ‘제1차 저출산 한다.
‘홀로 벼슬하며 그대를 생각하노라’는 미암 유희춘의 개인일기인 ‘미암일기’를 바탕으로 16세기 조선시대 생활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본래 인식하고 있던 조선시대와는 다른 모습의 생활상을 보여줌으로써 재미를 더한다. 관직생활, 살림살이, 나들이, 재산증식, 부부갈등, 노후생활의 6부분으로 나눠 16세기 양반가정의 일상을 보여주고 있다.당시 사회는 가족공동체를 중심으로 노비를 포함한 대가족을 이루고 있었다. 또한 여성의 권위가 높아 대등한 부부관계를 맺었으며 여성의 취미활동도 활발했다. 전체적으로 개방적인 사회분위기는 특히 노비들도 일한만큼 대가를 얻을 수 있었던 데서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양반은 위엄을 가진 동시에 평범한 인간임을 보여주었다.‘미암일기’를 쓴 미암 유희춘(이하?미암)은 1513년 12월 4일 전라도 해남현 해리의 외가에서 태어났으며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고, 26세에 과거 급제했다. 그러나 ‘양재역 벽서사건’에 연루되어 20여 년간 귀향살이를 했다. 그 후 선조임금에게 높은 학문을 인정받아 정5품 홍문관 교리로 다시 오게 되어 임금께 글을 가르치기도 한다. 그의 부인은 뛰어난 감각을 지닌 문인 송덕봉으로 당시 여성의 모습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 16세기 조선사회의 소비2장 ‘봄철 녹봉을 받던 날에’에는 당시 양반집안의 수입과 지출이 자세히 나타나 있다. 미암은 ‘미암일기’에 꼼꼼히 기록할 만큼 수입과 지출 내역을 철저히 관리하였다. 일기에 적힌 미암의 수입은 주로 녹봉, 증여, 선물 등이었다. 그 중에서도 지방관의 증여에 의해 많은 음식과 물품을 충당하였다. 지출에는 노비월급이 가장 많았다. 이밖에도 주식?부식비, 집값, 책값, 증여를 받은 경우 보답하기 위한 선물 등으로 소비가 이루어졌다.- 여성의 역할 중요7장, 10장 등 곳곳에 여성의 모습이 드러난다. 특히 당시 여성을 대표하는 미암의 부인 송덕봉의 모습을 보면, 양반가정의 안주인으로서 권위를 가지고 있었고 이에 따른 역할도 중요했음을 알 수 있다. 덕봉은 가족들의 일상생활을 책임지고 제사를 지내며 손님을 접대하는 등 집안일을 거의 주관하였다. 또한 집을 짓는 등 각종 살림을 장만하고 집안의 경제적 책임을 맡기도 했다. 마을의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역할도 안주인으로서의 큰 역할이었다.남성이 바깥일을 한다면 여성은 안팎을 두루 관리하였고, 남성도 이러한 여성의 역할을 인정해주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이는, 현재 우리사회가 본받아야 할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개방적인 사회분위기16세기까지는 ‘신분 상승이 가능하고 유교, 불교, 도교가 공존하였으며, 무엇보다도 여성은 남성과 동등하게 대우받은 비교적 개방적인 사회’였다고 한다. 조선시대는 유교의식으로 인해 가부장적 사회였을 것이라는 생각을 바꿔주었다.10장 ‘여인의 손으로 이루어진 서책정리’에 따르면, 덕봉은 미암의 책을 손수 정리하고 읽음으로써 미암이 모르는 것을 알려주는 지식도 갖게 되었다. 즉, 남성은 여성이 집안일에 대한 책임뿐만 아니라 여성스스로의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왔다. 송덕봉이 뛰어난 문인으로 활동하는 등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도 남녀 평등한 개방적 사회분위기 속에서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당시에 신사임당, 허난설헌, 황진이 등 여성들의 활약이 두드러질 수 있었다. 또한 당시에는 자유로운 애정표현이 가능했고, 자유롭게 애정시를 쓸 수도 있었다. 이는, 조선시대임에도 16세기까지는 비교적 자유가 보장된 사회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16세기는 처가살이가 보편화된 시대였다. 친족관계에서 내손과 외손을 구별하지 않았기 때문에 혼인 후 남자가 여자의 집으로 가서 사는 경우가 많았다. 상속에 있어선 아들, 딸 구분 없이 공평하게 나누어주었으며, 아들과 딸이 서로 돌아가며 제사를 모셨다. 미암은 덕봉과 함께 지내게 된 이 후에는 함께 제사를 준비하고 관장하였다. 덕봉 어머니의 제삿날 미암은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며 정성을 다했는데, 부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제사음식은 가정형편에 맞게 차려졌고, 제사 후 음식은 여러 사람들과 나누어 먹었다. 노비에게도 제사음식을 나누어 주는 등 제사는 경건하면서도 훈훈하게 이루어졌다.당시는 지금과 달리 가족 개념이 폭넓었다고 한다. 부계뿐만 아니라 모계, 처계까지 포함하고 그들이 거느리고 있는 노비까지 가족공동체로 인정했다. 노비에게 적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는 등 노비들의 생계를 책임진 데서 또한 16세기 사회의 개방성을 찾을 수 있다.17세기 이후 유교적 관습에 의해 남성중심이 되면서 여성들의 권위가 약해진 것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로 인해 현재는 처가살이도 드물고 엄연한 남녀 불평등도 존재하고 있다. 제도?정책으로써 여성차별을 막고, 남녀 평등한 사회분위기를 조성해야한다. 여성의 부드러움과 섬세함이 빛을 발할 때 그 사회는 안정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양반들의 재산17, 18장에는 토지를 가진 중소지주의 재산 규모와 재산 축적방법을 잘 보여주고 있다. 16세기에는 대토지를 소유한 양반들이 농장을 경영하여 자신들의 경제적 기반으로 삼았다. 미암과 덕봉도 상속, 매득(買得), 개간(開墾) 등으로 농장을 소유하였다. 대토지 경영과 집안 살림을 위해서 미암과 덕봉은 100여명의 노비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노비들은 다양한 형태로 주인을 위해 일했고, 일한만큼의 대가를 받았다. 농장 경영은 주로 지주가 직접 하기도 하지만, 안주인이 노비를 부려 농사짓게 하는 등 농장을 관리하기도 했다.먹을 것이 밥 밖에 없는 시대에 주식은 쌀이었고, 이로 인해 쌀 소비가 가장 많았다. 중소지주라도 친척과 노비부양, 선물, 접대 등을 하면 남는 것이 많지 않았다. 그럼으로 개인 스스로가 자본을 축적하기 힘들어 부족한 경우 지역 관아에 특별한 물건 등을 부탁하여 충당하였다. 미암 또한 담양부사에게 부탁해 물건을 받은 일이 있다. 관리는 관아에 군사를 요청할 수도 있었다. 이러한 군사들은 농사를 위한 관개시설을 만드는데 동원되기도 했다.
평소 관심을 갖고 있는 광고를 역사적으로 풀어쓴 책으로 광고를 통해 시대상황과 소비사회를 바라보고 있었다. 특히 우리나라 최초의 광고부터 인기 있었던 광고까지 예를 들어 설명하며 이해를 도왔다.광고는 소비사회에서 빠질 수 없는 ‘소비를 위한 수단’이자 당시 상황을 가장 현실적으로 반영하는 매체이다. 즉, 광고는 상품을 알려 소비를 유도하는데 가장 큰 목적이 있지만, 이밖에도 시대 경제, 무역, 사회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광고는 그 시대의 산업구조뿐만 아니라, 사회 ? 문화 ? 유행 등을 반영함으로 광고의 탄생과 수용은 한국의 사회, 문화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1부 1886~1945년 근대의 새벽산업사회의 문화와 풍속은 소비와, 소비를 대표하는 광고에 여실히 드러난다. 즉, 광고의 역사는 자본주의의 역사이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생산혁명을 낳았다. 또한 대량의 소비재는 광고로 인해 대량 소비되는데, 이를 소비사회라고 부른다. 그럼으로 소비사회의 등장이 근대 광고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1, 2, 3장은 식민지배와 동시에 근대를 받아들이게 되는 시기에서의 광고를 보여준다. 우리나라 광고는 외세에 대한 저항과 근대화라는 두 과제를 동시에 추구해야 했던 수난의 시대에 등장했다. 열강의 각축, 식민지배 등 어려운 사회상황에서 광고는 당시 사람들에게 필요한 상품을 홍보할 뿐만 아니라, 민족계몽에도 큰 역할을 했다. 또한 광고로 인해 신문명에 영향을 받은 모던보이, 모던걸이 등장하게 되었다.1장. 밀려오는 열강과 개화(1. 최초의 ‘고백’, 서양 문물의 프러포즈, 2. 생명을 살리는 물, 개명의 약재3. 문명의 기호, 모자와 권련, 4. 근대적 시간의 상징, 철도와 우편마차)근대사회로 접어드는 길목에서 우리는 열강에 의해 강제로 문호를 개방해야 했고, 외세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해 일제 강점기를 맞았다. 당시 광고는 현실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광고의 등장우리나라 최초의 신문인 ‘한성순보’가 ‘한성주보’로 바뀐 후, 1886년에 실린 ‘덕상세창양행고백’이 우리 역사상 최초의 광고라고 한다. 광고의 개념은 현재와 마찬가지로 여러 상품의 구매와 판매를 촉구하는 것이었다. 당시는 강화도 조약(1876) 등 서구 열강과 맺은 조약으로 서구 문물이 쏟아져 들어오게 되었다. 이는 경제, 문화면에서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서구의 신기한 물품은 우리의 쌀, 콩, 가죽, 금, 은 따위와 교환되었다. 세창양행 또한 서구 물품을 들여와 파는 독일 무역상으로 당시 큰 규모의 광고주였다.문호개방 전 조선사회는 자율적인 산업혁명을 전망할 만한 단계가 아니었다. 그러나 문호개방은 시대적 흐름이었음으로 거스를 수 없었다. 그 결과 국내 산업발달의 기초인 원자재가 무제한 유출되었고, 밀물처럼 밀려오는 외국상품 앞에서 국내의 수공업 생산은 무너져 갔다.현대의 광고는 ‘광고주가 설득의 목적으로 불특정다수에게 대중매체를 통해 전달하는 메시지’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에는 ‘광고’라는 말이 등장하기 전이었음으로 ‘고백’으로 쓰였으며 이는 ‘아룀’을 뜻한다.- 시대상황, 교역상황을 보여주는 광고개화기 초 광고에 나타나는 물품은 당시 시대상황과 교역상황을 잘 보여준다. 특히 최대의 광고 업종이었던 약품광고를 통해 당시 질병문제가 심각했으며, 신약과 양약이 도입되었음을 알 수 있다.세창양행의 금계랍 광고는 독립신문에 600여회 이상 실렸다. 즉, 이 제품이 당시 제일 인기 있는 상품이었다는 것이고, 이것이 의약품이었다는 점은 그 시기 질병의 역사를 돌아볼 수 있게 한다. 금계랍 광고의 성과로 인해 제약회사 광고가 활발해지게 되었다.‘매일신문’에 종종 등장한 ‘학질에 유명이 신효한’ 보화단 광고는 당시 학질이나 콜레라 등이 만연했음을 말해준다. 약제에 대한 광고가 많을수록 허위과장의 강도도 높았다. 이는 약제의 효과에 대한 기대와 신약에 대한 선망이 그만큼 컸던 것을 알 수 있다.“파리를 죽이고 애기를 살구자”라는 광고 문구는 당시 청결상태를 말해준다. 이는 전염병을 옮기는 파리를 소탕하기 위한 광고이다. ‘한성주보’에 1886년 실린 ‘동수관’이라는 약국의 광고 또한 콜레라로 인해 사람들이 병에 걸린 것을 보고 낸 광고였다.전염병이 창궐하는 시대 등장한 서양의학은 조선에 상업적 매약 시대를 열었다. 개화기 국내 의약품계는 이응선의 화평당약방과 이경봉의 남대문 제생당약방이 최대 광고주였다. 또한 동화약방이 ‘활명수’라는 약품을 광고했다. ‘목숨을 살리는 신통한 물’이라는 뜻의 활명수는 현재 ‘부채표 활명수’로도 낯익다. 활명수는 실제 효능이 검증한 약이 아닌, 보신 ? 보양강장제였다. 즉, 신약의 효능은 구체적으로 증명된 효능보다는 개인과 국가, 신체와 정신을 연결시키는 ‘개명’이라는 일종의 기호이자 상징으로 동원되었다.당시에는 임질이나 매독 등 감염 가능성이 있는 성병이 많았다. 이러한 질병은 치료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환자의 고생이 심했다. 약에 대한 대중소비시대가 열리면서 성병 치료제에 대한 광고가 폭발적으로 확산되었다.- 사회분위기를 반영한 광고한편 약의 효능이 아닌 변화하고 있는 사회분위기에 편승하는 광고도 등장했다. 상품의 주요구매자로 떠오른 여성을 표적으로 삼는 광고가 나타난 것이 그 예이다. 이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상승에 대한 욕구를 이용한 광고라고 할 수 있다.광고의 형식 또는 방법도 변화를 거듭했다. 1930년대 이근택의 백보환 광고가 풍미했는데, 사회유명인이 물품을 추천, 증언하는 방법을 사용한 것이 인기의 주원인이었다.- 유행을 창조하는 광고단발령은 개화기 시대흐름에 따라 시행되었음으로 거스를 수 없는 제도였다. 그러나 유교윤리가 남아있어 백성들의 반대가 심했다. 상투의 위력은 최익현이 “내 목을 자르면 잘랐지 상투는 못 자른다”는 말에서 짐작 할 수 있다. 그러나 단발은 시대적 흐름이었음으로 모자상점과 이발소가 성가를 올렸다. 모자는 단발령의 시행에 따라 상투를 자른 머리에 필요한 소품이었기 때문이다.단발이라는 새로운 유행을 부담 없이 받아들인 개화기 멋쟁이들의 외관은 모자, 안경, 시계 등으로 장식되었다. 이에 따라 ‘대한민보’의 모자광고는 다양한 모자 형태와 해당 가격, 계절용 모자, 젊은이들의 활동적인 분위기를 위한 모자 등을 소개했다.이와 같이 모자광고의 등장은 단발이 변혁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1920, 30년대에 이르면 광고상품 유형이 다양해지고 그 안에 담긴 사회가치도 점점 더 세분화되어 감을 알 수 있다.- 근대를 대표하는 철도와 우편마차1899년 국내 최초의 철도 경인선 개통에 이어 1905년 5월에는 서울-부산간의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었다. 1914년 서울-원산 간의 경원선과 대전-목포 간의 호남선이 개통되면서 바야흐로 도시와 상권이 철로의 혈맥에 따라 재편되기 시작했다. 기차는 작은 마을들을 단일한 경제권으로 묶어냈다. 철도가 끝난 곳에 바다가 열려 있었는데, 바다의 항구가 국가와 국가를 이어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2장에서 소개되는 자전거 또한 근대를 대표하는 탈것이었다. 말과 달리 지치지 않고 먹이도 필요 없는 자전거를 이용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풍속의 변화가 생기기도 했다.대중의 시간감각을 근대화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근대적 교통통신 수단 즉, 우편마차였다. 당시 신문에는 우체시간표를 제시했다. 이는 당시 사람들의 생활에 시간개념은 필수적이었음을 보여준다.2장. 민족 자강과 계몽의 열정(1. 근대적 지식의 열정, 출판 2. 백의민족을 위한 염색제와 표백제3. 유쾌한 교통수단, 자전거)갑오개혁이후 새로운 지식의 보급과 국민계몽이라는 문화 사업으로써 출판과 서점은 중요한 수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