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의 노동사회정책(신자유주의적 통합에 대한 비판)Ⅰ. 서론 : 유럽통합의 정치?경제학적 배경Ⅱ. 본론1. 자본주의하에서 노동사회정책의 의의2. 노동사회정책과 경쟁정책3. 유럽공동체의 발전과 노동사회정책의 변화과정4. 유럽통합 하에서 노동사회정책의 의의와 국민적 노동사회정책의 의의5. EWC 지침의 내용과 의의6. 신자유주의적 유럽통합과 노동사회 정책에 대한 유럽노동조합과 좌파의 입장Ⅲ. 결론Ⅰ. 서론 : 유럽 통합의 정치?경제학적 배경유럽통합은 전후 유럽정치체제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사회민주주의 정치체제의 기반을 와해시키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시장통합의 요구에 의한 자본과 노동의 이동성 증가는 일국적 수준의 국가의 경제개입과 계급타협에 기초하고 있는 사회민주주의 체제의 유효성을 잠식시키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또한 유럽통합은 사회민주주의의 성과물이라 할 수 있는 복지국가와 노사 간의 세력균형에 기초한 민주적 노사관계를 위협하고 있다.유럽통합은 유럽의 자본주의체제가 1970년 후반 이후 직면한 내수지향적?케인즈주의적 발전모델의 위기에 대한 대안으로 세계시장 지향적 현대화를 추구하고자 하는 자본의 요구에 의한 통합이다. 이러한 자본의 주요 동기로는 서유럽경제의 상호의존성의 심화, 경제의 세계화 추세, 초국적 기업의 요구 증대, 노동 및 사회분야에서의 탈규제 필요성이 중복되어 나타난 것이다. 또한 유럽통합은 유럽의 기업들, 특히 다국적 자본의 이해가 반영된 것으로 한편으로는 유럽 수준에서의 기업 간 연합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역내시장을 단일화하고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도록 유럽의 시장통합과 자본과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을 요구한 것이다.이러한 유럽통합은 1980년대 이후 사민주의 정당의 정치적 영향력이 약화되고 신보수주의 정치세력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유럽의 정치지형의 변화 및 우경화 추세와도 관련된다. 영국의 대처주의와 콜의 보수주의는 국가의 경제개입을 축소하는 탈규제, 조직된 노조의 약화, 자본과 노동의 자유로장벽들을 제거하기 위해 경쟁정책을 추진해왔다. EU경쟁정책은 크게 (1) 반독점 및 카르텔 정책, (2) 기업결합의 통제정책, (3) 정부 보조의 금지정책의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노동사회정책은 기본적으로 시장통합의 이익을 기업과 자본에게 집중시킨 유럽통합과정에 있어서 경제위기의 지속과 유연적 생산체제로의 이행으로 인해 대중의 전반적인 생활수준이 하락하고 대량실업이 유럽대륙을 휩쓰는 가운데 대중의 불만이 야기되고, 이러한 전개는 유럽통합의 진전에 심각한 장애물이 된다는 위기의식 속에 발전되었다. EU의 사회보장정책은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의 차별에 대한 법률적 제제, 남녀평등의 실현, 고령화에 따른 노인 대책 등에 중점을 두어 추진되고 있다. 그리고 고용정책은 기업활동 활성화, 고용적합성 제고, 근로자의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력 향상, 평등한 기회 부여 등의 4대 기본 축을 바탕으로 인력개발, 근로조건의 개선, 산업보건과 안전, 근로자의 이동성 보장과 구직 정보의 원활한 제공 등에 대해서 구체적인 제도를 정비해 나가고 있다.이와 같이 EU는 단일화된 정책들을 통해 자유경쟁을 통한 성장, 노동사회정책을 통한 고용 안정과 불평등과 빈곤의 해결 등을 동시에 실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EU경쟁정책은 개별 국민국가 정책과의 상충, 순수한 경제적 목적이 아닌 정치적 목적에 의한 변질, 예외 규정에 의한 개념의 모호성 등의 문제점을 안고 있으며, 이러한 장치가 실현되고 있음에도 현실적으로 완전한 자유경쟁보다는 독과점에 의한 지배가 여전히 만연하고 있는 모순점을 보인다. 또한 노동사회정책이 암스테르담 조약 이후 중요성이 더욱 크게 부각되고는 있지만 여전히 불평등과 빈곤의 심화, 실업률의 증가가 계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잃고 있다. 그리고 노동사회정책을 통한 고용창출과 안정이 경쟁정책이 지향하는 시장경제적 논리와 서로 상반되는 목적을 가지기 때문에 발생하는 정책 간 상충문제는 또 다른 문제라고 할 수 있다.3. 유럽공동체의 발전과 노동사회정책의 변화 118조의 내용에 따라 근로조건 향상의 일방적 원칙을 만들어 나갔다.4) 노동자 참가정책산업민주주의의 한 형태로 불리우고 있는 노동자 참가는 EC가맹국 각자의 역사적, 사회적 배경의 차이로 인해 나라마다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져 왔다. 이와 관련하여 EC 사회헌장에서는 노동자의 정보, 청문 및 협의권은 각국의 이에 대한 관행을 고려하면서 적절한 방식으로 지속적으로 발전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이러한 참가가 인정되는 경우로서 근로조건과 작업조직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신기술의 도입, 기업의 재편이나 합병, 대량해고 등을 들었다.이러한 방식의노동자 참가제도에 관한 EC 법상의 규율은 이미 1980년에 제출된 노동자의 정보, 청취권에 관한 입법지침 초안(Vredeling 초안)에서 시도된 바 있다. 이에 따라 EC 집행위원회는 1983년 7월에 수정안을 제출하였으나 일률적으로 규제하려는 것은 무리라는 비판과 반대가 자본가 단체들을 중심으로 널리 제기되었다. 특이 영국은 노동자 참가문제는 법률로 규율할 사항이 아니라며 처음부터 이에 반대하였다. 그러나 1994년 10월에 노동자 참가정책에 극심한 거부반응을 보여왔던 영국을 제외한 11개국의 노동사회장관 이사회에서 1000인 이상을 고용하고 있는 다국적기업에 대해 노동자 참가권을 주자는 EC 위원회의 입법지침안이 통과되었다.이러한 EC에서의 노동사회정책은 1992년 유럽통합조약이 조인되면서 변화가 있었다. 마스트리히트 조약은 경제통화동맹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일정과 실행계획이 제시된 반면, 정치?사회적 통합에 대해서는 원칙과 기조만이 언급되었을 뿐이다 즉 사회정책과 관련된 내용은 조약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부속적인 ‘협약’(Agreement)이라는 매우 축소된 형태로만 다루어져 있고, 여기에 영국은 서명하지 않았다.이 협약에서는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노동환경의 개선’, ‘근로조건 개선’, ‘노동자에게 정보 및 협의권 부여’, ‘취업기회와 대우에 있어서의 남녀평등대우, 노동시장으로부터 제외된 사람들의 통합로자의 권리9. 작업 중 건강보호 및 안전을 보장 받을 수 있는 권리10. 청소년에 대한 보호11. 노인에 대한 최저 생활수준 보장12. 장애자에 대한 사회 및 직업 참여 개선▶ 사회정책에 관한 의정서(Protocol on Social Policy, 1991)집행위원회는 1991년 12월 마스트리히트 회담에 앞서 사회노동입법에 대한 공동체의 권한을 확대시키는 한편 사회노동 분야의 공동체 입법에 관하여 가중다수결 원칙을 도입하는 제안을 상정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영국은 마스트리히트 회담 자체를 무산시키겠다고 위협하면서 사회적 문제에 대한 가중다수결 원칙을 확대하는 데에 강력히 반대 했다. 이에 영국을 제외한 11개국은 위원회가 제안한 사회정책 조항을 조약본문에서 분리시켜 부속문서의 형태로 채택하였다. 즉, 기본조약 상의 사회정책 조항은 그대로 존속시키는 한편, 가중다수결원리를 채택한 사회정책 조항은 영국을 제외한 11개 회원국 에 대하여 적용되는 사회정책에 관한 의정서(Protocol on Social Policy)와 사회정책협정(Agreement on Social Policy)이라는 형태로 타협되었다.▶ 암스테르담 의정서1997년 6월에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유럽이사회는 암스테르담 조약 초안에 대한 합의를 종결하면서 '고용에 관한 장'을 조약에 삽입시킴으로써 유럽연합의 사회정책 강구에 새로운 분기점을 마련해 준다. 사회정책 실시와 관련하여 1997년 암스테르담 유럽이사회 개최 이전까지 진행된 주요 사항들은 다음과 같다.- 유럽연합의 사회정책의 초점은, 당시 실업이 10%로 안밖에 달한 사정을 반영하여 주로 고용?실업문제에 맞추어 진다. 1993년 집행위원회가 발표한 '성장, 경쟁, 고용에 관한 백서'( White Paper on Growth, Competitiveness, and Employment)의 내용이 잘 입증해 주고 있다. 그런데 이 백서는 실업-고용대책으로서 교육훈련의 제공과 같은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 확대 및 '비임금노동 비용'의 감축을 제안하고 서 지원되는 유럽통합 과정에서 국가 간의 격차를 줄이는 것은 쉽지 않다. 오히려 자본과 노동의 이동이 빨라지면서 난민문제, 인종편견, 외국노동자, 국제범죄 등 새로운 사회문제가 심각성은 높아져 갈 것이다.1988년 9월 EC위원회는 EC 역내시장 통합의 사회적 차원에 관한 작업문서(이른바 ‘마린보고서’)를 채택하였는데 이 마린보고서에서 강조하는 유럽통합의 사회적 차원이 무엇인지 살펴보면 EC 역내시장 통합의 사회적 차원은 EC 통합계획의 기본적 요소의 하나이다. 왜냐하면 EC 역내시정 통합은 단지 경제성장을 촉진하고 유럽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꾀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EC 역내시장 통합으로부터 파생하는 모든 가능한 자원이 보다 효율적으로 완전한 활용 및 공정한 분배를 행하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이러한 입장은 결국 자본의 요구에 의한 즉 신자유주의 유럽통합에 있어 사후대책에 불과하며 이른바 ‘사회적 덤핑’의) 위험을 과소평가하고 있으며 사회적 권리에 관한 헌장 제안만으로는 불충분하다.이렇듯 유럽 공동체에 있어 노동사회정책은 자본의 요구에 의한 경제통합에 명분을 주기 위함이며 통합을 통해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국민(국가)적 노동사회정책이 해체되는 현상을 더욱 가속화시킬 것이다.5. EWC 지침의 내용과 의의유럽직장평의회(European Works Councils : EWC)란 다국적기업의 경영 정책 및 그 결정들에 관한 정보들을 제공받고, 기업이 의사결정에 있어 협의를 거쳐야 하는 공동결정 기구를 의미한다. EWC 지침은 다국적 기업마다 각각의 EWC를 설립함으로써 역내 다국적기업의 초국적 활동에 대한 초국가적 규제를 본격적으로 시도한 조치이며, 세계화시대에 상대적으로 약화된 노동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지침은 EWC를 수립하는 방식으로 3가지의 길을 제시한다.먼저 13조에 의한 EWC 수립방법은 EWC지침이 회원국에서 시행되기 전(1996년 9월22일)에 다국적기업이 자발적으로 EWC나 이에 준하는 절차를 종업원대표와 협의다.
“고리오 영감을 읽고”‘사회’ 라는 공간은 ‘계급’ 혹은 ‘신분’ 이라는 하위개념을 반드시 포함하고 있는 듯하다. 그것이 현대 자본주의 사회이거나 중세 봉건주의 사회이거나 상관없이 말이다.이 책은 19세기 초 프랑스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 발자크는 상류사회의 부정부패가 극심했던 당시 사회의 부조리를 적나라하게 폭로하는 한편 ‘고리오 영감’ 이라는 인물의 과거와 현재를 통해 몰락해가는 한 인간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또한 최상층으로부터 최하층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유형을 대표하는 인물들을 통해 각기 다른 사회상을 보여주고 있다.책을 읽으면서 비록 2백년전에 쓰여진 소설이긴 하지만 오늘날의 사회 모습과 너무도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라스티냐크를 통해 볼 수 있는 상류사회의 허영심과 부패, 고리오 영감을 통해 볼 수 있는 무너진 가족상, 그 외 사람들을 통해 볼 수 있는 삭막하고 이기적인 모습들.. 산업혁명 후 급격히 자본주의화 된 사회의 모습은 지금과 별 다를 것이 없는 것 같다.사회의 상류층들은 평범한 시민들과는 너무도 다른 생활과 다른 생각과 다른 행동을 하고 있다. 뭇 남성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온 노력을 기울이는 여자들과 또한 자신의 맘에 드는 여자를 사로잡고 손쉬운 방법으로 성공하기 위해 허황된 꿈만 꾸는 남자들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호화로운 저택과 사치스러운 가구와 식기와 의상과 장신구와 개인 소유의 마차와 거창한 식사를 위해 어마어마한 돈을 투자하고 남들에게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귀족 부인들의 행태는 불쾌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에 비해 이른바 ‘고급’ 하숙집이라는 곳에서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 모습은 상류층의 그것과는 너무도 대비된다.또한 이 당시는 아직 왕정시대로 봉건제적 계급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이름뿐인 계급보다는 재산의 규모에 의해 사람이 평가되는 것이 역시나 자본주의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 이름 하나로 권력을 갖는 봉건시대는 지나고 시민들의 힘이 강해진 시대이지만 이제는 ‘돈’ 이라는 새로운 계급을 통해 여전히 사람들은 등급이 정해진다. 오늘날 사회는 더욱 그러하다. 돈이 있으면 어디를 가도 VIP라는 호칭과 함께 대접을 받을 수 있고 주변에는 항상 사람들이 따라붙기 마련이다. 대학생인 나 역시도 아직 사회에 발을 들여놓지는 않았지만 동창회에 나가면 일단 명문대와 한신대학교 학생사이의 계급이 정해진다. 아직까지는 희미한 계급장이다. 그러나 머지 않아 10년 후의 동창회 모임에서는 아직도 학생인 친구와 좋은 직장을 다니는 친구와 그저그런 직장을 다니는 친구, 자기 장사를 하는 친구와 의사나 변호사 등의 성공했다하는 직업을 가진 친구 등으로 좀 더 세분화 될 것이다. 20년 후의 동창회 모임에서는 친구들 모두가 거의 완벽한 계급장을 달고 나타날 것이고 그 자리가 부끄러운 친구들은 아예 나오지 않을 것이다. 또 자신 있게 자기 차를 끌고 나타나는 친구가 있는 반면 차를 멀리 대거나 없어서 못 가져오는 친구도 있을 것이고, 좀 더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멋지게 술값을 모두 계산하는 친구가 있는 반면 회비 내기도 껄끄러운 친구도 있을 것이다. 동창회에서나 가정에서나 어떤 자리에서도 멋있고 당당한 사람이 될 수 있을지 나 자신도 두려운 것은 사실이다. 어찌보면 태어날 때부터 계급이 정해진 사회보다 더 무서운 것이 오늘날의 암묵적인 계급 사회인 것 같다. 그러나 그 두려움으로 인해 노력하는 과정 속에서 그 사회가 계속 발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이 책에서 표현되는 또 하나의 주제는 고리오 영감과 빅토린을 통해 보여지는 무너진 가족상이다. 너무나 극단적인 부성애를 보여주는 아버지와, 자기 자식을 완벽히 거부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대조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처음에는 고리오 영감이 보여주는 숭고한 자식사랑이 감동으로 다가왔지만 갈수록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현실적으로 이런 경우는 거의 드물겠지만.. 어쨌든 이러한 고리오 영감의 지나친 자식사랑이 결국은 두 딸을 모두 불행으로 이끄는 결과를 낳는다. 여기서 보여지는 또 하나는 가족이라는 작은 단위에서 조차 부자인 아버지는 환영받고 존경받는 반면 가난하고 힘없는 아버지는 무시당하고 거부당하는 모습이다. 돈의 논리는 가장 작은 단위의 사회에서 조차 통한다. 그리고 수백만 프랑의 재산을 가지고 있는 빅토린의 아버지는 무슨 이유에선지는 모르지만 빅토린을 자신의 딸로 인정하지 않고 홀대한다. 결국에는 빅토린이 아버지의 재산 상속받게 하기위해 음모가 진행되고 이 역시 돈이 이유가 된다.
현대 사회의 이해 REPORT - 분석적 영화감상문영화를 보는 동안 흥미롭다는 느낌은 있었다. 올드보이를 처음 극장에서 보고 나올 때의 느낌은 찝찝함과 동시에 불쾌감이었다. 단순히 이 두 가지 느낌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분석적으로) 다시 보게 된 올드보이는 처음의 느낌과는 많이 다른 듯 했다. 일단 다른 모든 점들을 배제하고 아무래도 우리나라의 정서에 있어 근친상간 을 다루었다는게 불쾌감과 함께 당황스러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누구라도 처음 이 영화를 보는데 있어서 보라색 상자 안에 있던 앨범에 미도의 성장과정이 들어있음을 보았을 때 깜짝 놀람과 동시에 욕을 해야할지 말아야할지 모르는 미묘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자신이 사랑한 여자가 자신의 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오대수의 절규하는 모습과 혀를 자르는 섬뜩한 광경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오대수의 그 절박한 심정에 몰입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최민식의 신기의 가까운 연기력이 물론 뒷받침 되었겠지만 영화 전체적으로 오대수 라는 사람의 입장을 나도 모르게 이해하게 되는 역설..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상황을 인식함에 있어 그것의 본질보다는 쉽게 보여지는 겉모습만 보고 판단을 내린다. 올드보이에 대해 혹평을 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의 이유는 소재가 반인륜적이라는 것이다. 나도 비극적인 복수극을 표현함에 있어 소재가 꼭 그것이어야 했나하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것이었기 때문에 이 영화가 표현하려는 본질이 더욱 클라이막스가 되어 우리의 가슴속에 여운을 남기지 않았나 생각한다. 또한 이 영화의 폭력성을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을텐데 폭력성을 논한다면 프랑스 영화 돌이킬 수 없는 을 보고 논해야 할 것이다. 여자친구를 강간한 남자를 찾아 복수하는 내용의 이 영화에서 강간범을 잡아 죽이는 과정에서의 잔인성을 보자면 올드보이의 폭력성이란 어린애 장난이라는 느낌이 들 것이다. 굳이 외국에서 찾지 않아도 우리나라 영화도 얼마든지 이보다 심한 폭력성을 표현한 영화들이 얼마든지 있다. 어쨌든 근친상간 이라는 소재는 우리나라 정서에 너무나 심하게 역행하는 소재였기 때문에 사회적인 논란도 많았지만 문화선진국으로 발전해 나가는데 있어 소재의 자율성은 충분히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소재가 영화로 표현될 만큼 우리나라도 예전보다는 많이 의식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든다.올드보이가 본질적으로 표현하려고 했던 점은 무엇이고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무엇일까? 영화평론가도 아니고 무슨 학자도 아닌 나의 주관적인 관점으로 볼 때 일단 감독이 표현하려고 했던 것은 인간의 정신세계의 극한의 고통이 무엇인지를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단순하게 말하면 학창시절 미술책에서 자주 보았던 뭉크의 절규 와 같은 그림처럼 인간의 무수한 감정들 중 하나를 영화로 표현한 것이다. 이 사회의 문제점을 영화를 통해 암시했다기 보다는 순수한 인간의 감정 그 자체를 표현한 것 뿐이라는게 나의 생각이다. 따라서 올드보이를 예술 이라고 하고 싶다. 단지 영화이기 때문에 이래저래 논란도 많겠지만 예술 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표현하는 방식이 미술, 영화, 음악 등으로 갈래가 다를 뿐이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같을 수가 있는 것이다. 박찬욱 감독이 화가였다면 오대수의 입장을 모든 원인과 배경 등을 제거하고 뭉크의 그림처럼 절규하는 모습 한 장으로 표현했을 것이고, 작곡가였다면 그것을 음악으로 표현했을 것이다. 단지 영화감독이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소재 중에서 근친상간 을 택하여 고통의 레벨을 더 높이려고 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부가적으로 사회학적 관점(?) 으로 보았을 때 우리 사회에 주는 시사점이 있다면 동성애자나 트레스젠더 등 사회에서 소외되고 배려받지 못하는 소수의 계층들에 대한 이해라고도 해석하고 싶다. (물론 직접적으로 이런 사람들의 생활을 표현한 영화도 있다) 어디서도 자신이 이런 사람이다 라고 말하지 못하고 음지에서 자신들만의 좁은 공간에서 활동하는 이들 또한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자신만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우진이 자신의 누나를 사랑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그렇게 처절한 복수심을 갖게 된 이유를 나중에서야 오대수도 이해할 수 있었듯이..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의 이해를 필요로 하고 있을 것이다. 절대로 사람은 겉만가지고 단지 평준화된 논리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판단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나 또한 나의 상황을 모르고 겉만가지고 판단한 어떤 사람에게 있어서는 상대하기 싫은 사람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관계를 이어나감에 있어 그 사람의 깊은 속을 알기 전까지는 쉽게 판단하지 말아야겠다는, 누구나 알고있지만 쉽게 실천하지는 못하는 그 교훈을 새삼 이 영화를 돌아보면서 다시 깨닫게 되었다. 아직까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유교사상의 영향이 큰 우리나라의 정서로 볼 때 아직 동성애나 성전환에 대한 인식은 좋지 않다를 넘어서 혐오감의 수준으로도 표현할 수 있다. 나 자신도 이 사람들에 대해 왠지모를 거부감이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해할 수는 있을 것 같다.
릴리스 콤플렉스란 책을 읽으면서 깜짝 놀라기도 하고 저의 경우에 빗대어보기도 하면서 참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특히나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아직까지는 상당히 보수적인 우리나라 사람들의 전형적인 고정관념에 빗대어 볼 때 어머니라면 당연히 그래야 되는거 아냐? 라고 여겨지던 모성애에 대한 새로운 시각의 해석은 한편으로는 흥미롭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충격이었습니다. 지금까지는 모성애란 항상 위대하고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으로만 여겨지면서 가끔 뉴스에 친모의 아동학대 같은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친엄마로서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는가? 라고 말세라는둥의 생각이 들던 저로서도 어느 한편으로는 수긍이 가는 부분들이 많았습니다. 모성애뿐만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수많은 감정과 생각 중에는 항상 선과 악,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기 마련인 것 같습니다. 다만 사회적인 분위기와 오랜 관습 등에 영향을 받아 대체로 빛만이 인정받고 그림자는 억압되어 그 존재가치 조차도 없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는데 릴리스 콤플렉스라는 이런 그림자에 대한 자세한 해석은 (저는 비록 심리학에는 거의 문외한이지만) 학계는 물론 이 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에게 꽤나 큰 파장이 일지 않았을까.. 아무튼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문득 저 자신에게 적용시켜 보는 일이 많았습니다. 혹시나 우리 엄마가 이래서 내가 지금 이러는 걸까?? 하는 생각도 자주 들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건 저의 성격과 이따금씩 맞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들 때마다 이런 콤플렉스 등에 견주어 깊이 생각이 들어가려고 하다가도 아니야, 우리 엄마는 그랬을리 없어 단지 우연히 형성된 것일 뿐이야.. 라는 생각이 가로막게 되는 걸 느꼈습니다. 마치 모성애 중독이나 모성애 결핍에 시달렸던 사람이 그것을 은폐하기 위해 남을 돕는 것을 즐기거나 또는 그와는 반대로 각종 범죄나 악행을 저지르는 행동을 하듯이.. 저 또한도 이 책에 나와 있는 대로 릴리스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어머니를 통해 모성애 장애를 겪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제가 내린 결론은 이론적으로 정말 그럴 수 있다하더라도 지금까지 어머니에게서 제가 느낀 것은 진심으로 저를 아끼고 위해주시는 무한한 사랑 밖에 없었고 그러한 사랑에 의해 저 자신이 지금까지 성장해 왔으며, 당연히 그런 어머니의 기대에 부응하고 실망시켜 드리지 않기 위해 (책에서 나오는 것처럼 죄책감이나 부담 때문이 아닌) 저 스스로가 최고의 아들이 되기 위해 노력해 왔다는 것입니다. 진부하고 고지식한 얘기일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아, 정말 그런가보네. 나중에 결혼하고 아기 낳으면 나도 이 책 다시 한 번 읽고 내 아내에게도 읽게 해서 이 책에 어긋나지 않게 아이를 키워야겠다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나중에 드는 생각은 이론의 틀에 사로잡혀 진심이 아닌 말 그대로 의무처럼 형식적으로 행해지는 사랑이 더 아이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였습니다. 국제경제학도로서 경제학 이론을 많이 배우지만 완벽한 이론은 없고 실제 현실에 부딪히면 괴리되는 부분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특히나 사람과 사람사이의 감정, 특히나 가장 원초적인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과 감정을 한 권의 이론으로 해석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너무 삭막하고 메마르다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여전히 저희 어머니는 지금도 제가 가끔 술을 많이 먹고 늦게 오거나 맘에 안드는 행동을 하면 잔소리를 많이 하시고 그 때마다 죄책감도 느끼고 부담도 느낍니다. 그리고 형편이 많이 어려워서 힘들어 하시는 부모님을 보면서 공부 열심히 해서 꼭 장학금타서 그 고생 덜어드려야겠다 라는 생각에 가끔 가슴이 아프기도 하고 책에서 말하는 의무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나 책에서 말하는 죄책감, 부담, 의무감과 제가 느끼는 (저 뿐만 아니라 거의 많은 자식들이 공통적으로 느끼겠지만) 이것들과는 전혀 틀리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나이 24.. 어떻게 보면 무척 어린나이 이지만 군대도 갔다 오고 이제는 저의 미래를 위해서 많은 것들을 생각할 나이가 되면서 사랑과 결혼에 대한 생각도 많이 합니다. 앞으로의 저의 사랑과 또 아이를 낳아 키우게 될 때 이 릴리스 콤플렉스 라는 책이 좋은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이 저에게 준 가장 큰 교훈은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 가장 좋은 것은 진심으로 대하는 것이며 어긋남이나 오해가 생겼을 경우에는 솔직하고 진솔한 대화로서 서로의 상황과 마음을 이해하고 존중하고 양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라는 것입니다. 어찌보면 책의 내용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결론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제가 보는 세상은 아직까지는 정과 양심이 있고 살만하며, 제가 보는 우리의 어머니들은 진심으로 헌신적이고 사랑으로 가득 차 있으며 그에 대해 보답하고자 하는 우리 자식들의 마음도 효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습니다. ^^
Ⅰ. 서론오늘날 세계 자본주의는 ‘세계화’라는 담론으로 설명된다. 세계화는 특히 ‘신자유주의’를 선봉장으로 내세운다. 즉, 우리가 매일같이 말하고 듣는 세계화라는 것은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의미한다.세계화는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현상이며, 세계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약간 조롱이 담긴 다음과 같은 말을 들어야만 한다.“당신은 어느 별나라에서 오셨나요? 당신은 세계화에 참여하는 것이 자기가 선택할 수 있는 일처럼 말하지만 세계화는 선택이 아닌 현실입니다. 내가 시작한 일도, 내가 멈출 수 있는 일도 아니며 물론 당신도 마찬가지입니다.”이러한 절대적인 명제는 마치 기독교에서 오직 예수만을 믿고 따르면 천국에서 영원히 행복할 것이라고 하는 무조건적 논리와 같이, 오직 “시장”만을 믿고 따르면 행복이 가득한 풍요의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장밋빛 희망을 신앙으로 삼는 그들의 영역으로 전도하고 있다.이러한 달콤한 유혹은 적어도 2~3년전 까지는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어 보였다. (적어도 세계화의 교리를 만들고 전파시킨 그들에게 있어서는..)그러나 작년부터 시작되어 최근들어 전세계를 공포에 떨게한 금융위기는 시장에 대한 맹목적인 신앙이 가진 모순과 그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계속되는 이 글에서는 신자유주의에 대한(특히 금융을 중심으로) 정의와 태동, 전개과정을 살펴보고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가진 모순과 그로 인한 한계에 대해 본인이 느끼는 점을 중심으로 서술하고자 한다.Ⅱ. 본론1. 신자유주의 세계화란 무엇인가(1) 세계화의 의미‘세계화’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경제적인 단일 시장지향성뿐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 환경 등 모든 면에서 전세계를 국민국가화 하는 이상적인 통합현상을 말한다.세계화의 과정은 역사적인 흐름 속에서 어떤 형태로든 진행되어 왔다. 강대국들은 끊임없이 주변으로의 영토확장을 추구해 왔고 특히 17세기와 18세기의 중상주의 시대에는 식민지 정벌과 그들에 대한 경제적 착취를 목적으로 세계화가 진행되었다.그리고 산업혁명 이후 영국헤을 중시하고 국가의 간섭을 최소화하고자 하는 논리로서, 신자유주의 하에서 국가는 오로지 사적소유권 보장, 자유시장, 자유무역,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 등의 “시장의 논리”를 극대화하기위한 탈규제, 민영화, 사회복지영역에서의 후퇴, 노동통제 등의 활동성을 부여받는다.즉, 시장을 통제하고 개입하는 정책은 최소화하되 시장의 활동성을 보장하기 위한 시장방어적 목적의 정책은 최대화하여 시장원리와 자유경쟁을 실현시키고자 한다.2. 신자유주의의 태동자본의 이윤율 상승 및 경제성장은 기본적으로는 실물경제의 성장을 필요로 한다. 대표적으로 18세기 영국에서 발생한 산업혁명은 혁신적인 생산량의 증가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유효수요의 충족이 얼마만큼 이윤율을 상승시킬 수 있는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그러나 실물경제를 통한 이윤율의 상승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고, 주기적으로 자본주의는 이윤율 저하에 따른 구조위기를 겪게 된다.이러한 구조위기가 가장 크게 발생한 것은 1929년에 발생한 대공황이 대표적이다. 대공황을 겪으면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수요와 공급이 조절될 것이라는 믿음에 배신감을 느낀 각국의 정책당국은 케인즈주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적극적인 유효수요 창출정책을 펼침으로서 다시금 자본주의의 호황기를 구가하였다.정부의 시장 개입이 가져다준 호황기를 지나자 또다시 1970년대에 경제침체현상이 나타났는데, 이번에는 석유파동이 함께 겹치면서 물가상승을 동반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을 경험하게 된다. 따라서 케인즈주의는 후퇴하게 되고 다시금 시장의 논리를 지향하는 신자유주의가 대안으로 등장하게 되었다.3. 신자유주의의 전개과정(1) 개요케인즈주의에 의한 정부의 유효수요정책마저 한계점에 도달하자, 자본은 ‘금융화’를 선택하였다. 전세계 어디든 수익성이 있는 투자처를 찾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면 굳이 국내의 실물경제에서 유효수요를 창출하려는 고민도 필요없게 될 것이다.이러한 금융화로의 전환은 이미 영국헤게모니가 위기를 겪던 19세기 중?후반에 영국에서 시도되었다. 영국은 그 당시 이미서 이 시기의 금융화는 전세계적 현상이 아닌 영국 내부의 제한적인 현상일 뿐이었다.그러나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이 대부분 산업화를 완료했던 1970년대 들어서 경제위기는 금융화의 발빠른 확산을 야기시키기에 충분한 동기가 되었다.(2) 1970년대의 신자유주의1970년대에는 다시금 자본주의의 구조위기가 발생하고 자본과 노동간의 대립이 극심해졌으며, 그동안 세계자본주의 체제를 이끌었던 “브레튼우즈체제”(미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하는 금환본위제도와 조정가능한 고정환율제를 주 내용으로 하는 국제적 통화협정으로서, 2차대전 종전직전인 1944년 각국 대표의 합의로서 탄생하였다)가 붕괴하면서 변동환율제로 전환하는 등 극심한 변화의 국면에 접어들었다.이에 따라 자본은 새로운 축적방식을 모색하였는데 우선 M&A의 전개와 노동통제를 통해 생산성향상과 이윤율 회복을 꾀하였다. 또한 대규모 해고를 단행하고 비용절감을 위해 각종 노동조건을 악화시키고 노동시장 유연화를 위해 대규모 비정규직을 양산하면서 노동조직의 세력을 약화시켰다.또한 과잉설비와 경쟁에 직면한 자본의 새로운 전략은 세계적인 자본집중 즉, 수익성이 있고 유망하며 노동의 활용이 용이한 나라로의 진출이었다. 이로써 생산시설의 해외이전이 활발하게 진행되었고 이러한 자본의 초국적화는 이에 대항하는 노동을 분열시키는 효과를 가져와 더욱 자신들의 활동을 제약받지 않을 수 있었다. (물론, 이러한 자본의 움직임에는 격렬한 노조의 저항도 계속되었으나 70년대 말 이후로는 서서히 자본의 우위로 정리되었다.)마지막으로 국민경제를 자본의 단기적 투기로부터 격리시키는 역할을 했던 고정환율제가 붕괴되었다는 사실은, 마치 굶주린 늑대들로부터 양떼들을 지켜주던 울타리가 붕괴된 것과 같은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이로써 금융자본의 전세계 시장에 대한 단기적투기 운동이 더욱 활발히 진행되었으며 화폐자본과 생산자본의 분리 또한 가속화 되었다.(3) 1980년대의 신자유주의브레튼우즈체제하에서 탄생된 세계 경제기구들은 신자유주의의 확산에 따라 본래의 그들의 임무적으로 IBRD(세계은행)이 설립되었다.그러나 이들 세계기구들은 제3세계 국가들에 대한 경제적 강제와 초국적자본의 제3세계 진입을 원활하게 하는데 선봉장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는데, 특히 1980년대 남미의 외채위기 해결과정에서 이들의 변화된 역할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1982년 멕시코가 자국의 채무지불 유예를 선언함으로서 외채위기가 급속도로 심화되자 IMF와 세계은행은 모든 책임을 남미 국가들에게 전가하고 그러한 외채위기의 원인이 경제시스템에 있다는 명분아래 그들에게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강제하였다. 이들이 남미국가에게 주입한 구조조정은①수입쿼터의 관세로의 전환, 관세 및 수출보조금 감소를 통한 무역자유화 추진②외환거래나 과실송금에 대한 통제와 같은 외부자금 흐름에 대한 장벽제거③국내 금융시장의 규제완화 및 해제 ④노동시장 유연화와 경영의사 결정의 규제완화⑤세금 합리화 ⑥공기업 민영화 등을 강제함으로서 이루어졌다.(4) 1990년대의 신자유주의신자유주의의 확산은 1990년대 들어 훨씬 빠르고 광범위하게 전개되었다. 1990년대 들어서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의 붕괴는 자본주의체제의 승리를 의미했으며, 특히 자본주의가운데에서도 북유럽의 복지국가 모델과의 경쟁에서도 앞서나가면서 영미식의 신자유주의 노선은 새로이 자본주의체제로 전환하는 구사회주의 국가들에게 당연한 듯이 주입되었다.(특히 이러한 구조조정은 역시 IMF와 IBRD에 의해 적극적으로 추진되었다.)또한 1990년대 IT업종의 성장을 바탕으로 유래없는 호황기를 다시금 구가하던 미국식 경제체제는 다른 국가들이 본받아야 할 본보기처럼 보여졌다. 이에 반해 80년대 남미를 복종시킨 외환위기는 1997년에는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를 강타하면서 이들 국가에도 신자유주의를 주입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IMF와 IBRD가 후진국 경제의 구조조정과정에서 신자유주의적 개입을 했다면, WTO는 브레튼우즈체제의 붕괴로 인해 발생한 자유무역 지향성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신자유주의적 무역질서를 확립하는데 앞장섰다. 자본의 의 내용도 선진국과 그들의 초국적 자본의 이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4.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모순과 한계결국 지금까지의 신자유주의의 태동원인과 전개과정들을 살펴보면 신자유주의는 선진 자본의 이해관계에 따라 형성되고 전파되는 ‘금융세계화’를 주목적으로 한다고 볼 수 있다.그러나 결국 그들이 추구하는 이윤율의 상승은 그것이 산업화 단계였던지 현재의 금융화를 통한 것이던지 계속적인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대한 착취를 기반으로 할 수밖에 없다는 자본주의 본연의 모순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로 인한 한계는 반드시 다시 나타날 수밖에 없다.자본주의는 점점 더 비인간적이고 자본지향적인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현재 신자유주의 지배하의 세계에서는 극소수의 대형 자본들과 그에 연관된 부분들만이 자본의 혜택들을 계속적으로 자신들의 것으로 가져가고 있다. 한정된 이윤(혹은 계속 증식될 수도 줄어들수도 있는 이윤)은 점점 더 많은 비율로 소수의 가진 자들에게만 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농업, 서비스 등등 모든 산업분야에서의 대기업화는 소상인들과 소농들을 몰락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금융세계화라는 이름하에 선진국 내에서는 갈 곳이 없었던 막대한 유동성들은 노동착취를 통해 높은 이윤율을 실현하고 있는 초국적 기업들과 대형 은행, 외환시장, 석유시장, 원자재시장 등등 수익성이 있는 모든 부문에 개인이나 기관의 이름으로 유입되고 있다. 이들 자본은 해당 국가를 발전시키는 긍정적인 측면은 조금 있다고는 할 수 있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 이들 자본은 장기적인 안목을 통해 그 나라와 그 나라의 기업들이 건전하고 튼실하게 발전하여 그에 따른 수익을 받겠다는 것이 아니라 당장 주가가 떨어지는 듯 싶으면 금세 회수하여 다른 곳으로 다시 투자하는 단기적인 성격이 짙다는 것이 문제이다. 이렇게 단기 수익성만을 노리고 손쉽게 이동할 수 있는 투기성 자본의 성격은 점점 더 자본주의 사회를 불안정하게 만든다.우리나라의 경우를 보면 외환위기 이후 급속한 자본시장 개방으로 막대한 외국자본이 들어와 많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