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 vs 칠수 와 만수시련시련에서 아서밀러는 당시의 정치시스템에 대한 실랄한 비판을 하기위해 매사추세츠주 세일럼에 있던 청교도 들의 마녀사냥을 소재로 을 만들었다.4막으로 극화한 작품으로서 맥카시즘(McCarthyism) 선풍과 관련된 밀러 자신의 경험을 엮은 극으로 맥카시즘의 횡포뿐만 아니라 양심을 헌 신짝처럼 내버리는 현대 미국인들의 모습에서 공포와 분노를 느꼈던 밀러는 전횡적인 정치세력이나 오도된 여론 혹은 일부 광신적인 종교집단이 나약한 소시민을 어떻게 전락시키는 가를 무대에 올려 보려했던 것이다.1950년부터 1954년까지 죠세프 맥카시(Joseph McCarthy) 상원의원의 반미활동을 벌인 자들을 색출하려는 활동은 정부관리, 정치인, 군인, 문화계 인사, 대학교수 등 지성인들에게 극심한 심리적 압력과 고통을 주었고 미국과 전 세계에 자유의 숭고한 가치와 민주적 질서를 위협하는 상징이 되었다. 밀러는 세일럼의 재판관들의 권위에 반대하는 자들을 재판의 위엄을 파괴하는 무리로 낙인찍어 교수형에 처한 똑같은 사회적 위기를 맥카시 의원에 반대하는 모든 인사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아치는 악랄한 횡포 속에서 재발견하여 사회적 불신의 공포와 그 파괴력을 이 『시련』의 주제로 삼아 과감하게 표현하였다. 『시련』이 세계적으로 절찬을 받으면서 현재까지 공연되고 있는 이유는 특정한 어떤 시대의 사회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사회에도 적용될 수 있는 초 시간성 때문이며 인간 악(惡)이라는 주제의 보편성과 영원성을 획득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밀러가 자신의 작품 중에서 가장 애착을 느낀다고 말한 바 있는 『시련』은 1950년대 초 극단적 반공 이데올로기라는 집단적 권력 앞에서 희생된 개인의 양심과 인권을 청교도 사회의 마녀사냥을 통해 고발하고 있다. '열에 의한 물체의 정화,' '혹독한 시련'이란 뜻의 제목을 가진 이 작품은 왜곡된 종교적 광기에서 출발하여 세일럼 주민 개인의 이해관계와 얽힌 사적 복수심의 광기로까지 발전한 마녀재판을 통해 현대 지성인의 무력함을 표현했다고도 할 수 있다. 밀러는 개인의 존엄성을 말살하려고 하는 자들의 죄과를 폭로하는 것이 『시련』의 목표였으며, 잘못된 가치관으로 죄를 짓고 그 대가로 죽어야 하는 운명을 묘사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그 죄를 깨닫고 죄를 밝혀내는 내용으로 승화시켰다. 아서밀러는 썩을대로 썩은 미국사회 혹은 인류에 대한 불신을 가슴에 품고 글을 써 내려갔음을 알 수있다. 왜곡된 진실 앞에 이미 내려놓은 결론을 적용하며 한 남자의 목숨을 가져가는 설정을 통해 아서밀러는 미국사회의 부조리함을 표현하였고, 그로인해 그는 아군과 적군을 뚜렷하게 구분하여 살았다 할 수있다. 바로 이것은 그를 사실주의 대표작가라 부르는 이유 이기도 하다.그의 많은 작품중 특이 이 은 연극을 하는 학생들이 꼭 한번쯤은 다루게 되는 아주 교과서적인 작품이다. 사실 이 작품은 마녀재판을 소재로 한 가벼운 연극이라고만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아서밀러는 당시 미국사회에 극도로 왜곡된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은유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마녀재판이라는 소재를 사용하였다. 어찌보면 특수한 시대현실로만 해석하기 보다 인류에게 지속적으로 범해진 집단적 이데올로기의 횡포, 그 횡포의 반복이라 말하는게 더욱 어울리는 표현일 것이다 . 우리나라에서 1970년대 말 유신정권이 을 상영을 금지 하였다고 한다 .이는 집단 이데올로기의 횡포는 우리나라에서도 적용되었음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렇듯 아서밀러는 썩어 문들어진 사회적, 정치적 시스템에 매스를 가하며 사실주의 대표적 극작가라는 자리를 유지하였다.그렇다면 이 연극의 좀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자. 은 1692년 청교도들의 마을인 매사추세츠주 세일럼을 배경으로 한다. 1막은 세일럼의 새벽 숲 속에서 흑인노예 티튜바는 노래를 부르고 아비게일을 리더로한 소녀들은 춤을 추며 시작 되어진다. 연극의 시작과 동시에 문제점 역시 여기서 시작 된다고 할 수 있다. 패리스 목사에게 새벽숲속 그들만의 축제 광경이 발각되며 페리스 목사의 딸 베티는 의식을 잃고 쓰러진다. 바로 악마가 존재한다는 의심이 시작되는 것이다. 유럽에서 종교의 자유를 위해 건너온 청교도들은 1620년 대에 신대륙에 정착했으며 엄격한 사회 속에서 모든 쾌락은 죄라 생각했다. 춤추는 것, 술 마시는 것, 노래하는 것, 화려한 의상을 입는 것 등이 금지 되었지만 교회에 돈을 헌납해야 했기 때문에 부를 축적하는 행위는 정당화되었다. 이 시대에는 청교도 정신에 의해 믿을 수 없을 만큼의 강력한 신권정치가 행해졌다. 어쩌면 춤 추고 노래부르며 새벽의 숲에서 소녀들 끼리 웃고 떠들며 즐긴 사실을 사실대로 이야기 하지 못하는 청교도의 억압적인 분위기가 문제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분위기를 바탕으로 시작된 아비게일과 소녀들의 일관된 거짓말은 존재 하지 않는 악마를 만들어 내었다. 이는 정치적인 명목을 만들어 내기위한 수단으로 피상적 두려움을 만들어 냄과 일맥 상통한다. 아비게일의 입에서 만들어진 악마로인해 마녀사냥 전문가 헤일이 등장하고 그의 추궁으로 궁지에 몰린 티튜바는 악마 행위를 거짓 자백하고, 다른 사람들을 악마와 연관 시키며 또다른 고발을 한다. 희생의 시작이 된 것이다. 거짓은 희생을 만들어 내었다.이번에는 캐릭터의 성격과 토월극장 이라는 무대에서 배우의 표현에 대해 이야기 해보도록하자. 의 캐릭터는 다양하고 뚜렷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마치 내가 살아오며 만나온 사람들의 성격을 모두 담고 있다고 할 정도로 정말 섬세한 표현을 하였다. 없어선 안될 중요한 인물을 먼저 들춰보자.아비게일 윌리엄즈 그녀는 패리스 목사의 조카로서 존 프락터와 부정을 저지르고 프락터의 아내 엘리자베스에 의해 쫒겨나 마녀사냥을 통해 권력을 쥐게됨과 동시에 그녀를 경멸한 사람들에게 복수의 시퍼런 칼날을 앞세웠다. 그녀의 이런모습은 어찌보면 이 사회가 만들어낸 종양 덩어리라 할 수있다. 종양은 평범한 세포들을 종양으로 변화 시키어 가고 그 종양은 사회 구석구석 전이되어 결국 사회를 소리없이 죽음으로 몰아 넣게 되기 때문이다.존 프락터는 아주 강직한 성격을 갖은 세일럼의 농부로서 아비게일과의 부정을 갖고 있다는 핸디캡이 있다. 4막 죽음을 앞에두고 진실을 왜곡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정직해짐으로서 순교자의 길을 선택 하게된다. 마녀사냥의 주인공이 되어 삶과 죽음 앞에 갈등하는 평범한 농부의 모습에서 아서밀러는 분명 평범한 우리를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에서 댄 포스 부지사, 티튜바, 베티, 자일즈, 엘리자베스등 모두가 중요하겠지만 가장 눈여겨 봐야할 캐릭터는 존 헤일 목사이다.존헤일 목사는 초반 마녀사냥 전문가로 나올정도의 확고한 의지를 갖는다. 사람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논리를 전개해 나가지만 극이 진행되고 데이터가 하나하나 수집되자 극심한 심리적 변화를 갖는다. 결국 그는 마녀재판을 반대하는 편에 서게 되고 존프락터에게 거짓자백을 해서라도 살아야 한다며 그를 설득하기 까지 한다. 잘못된 것을 바꾸기엔 청교도의 체계는 견고할정도로 부패하였고, 그것을 바꾸려 하기에 존헤일 목사는 너무 나약하였다. 그리하여 그가 선택한 것은 존프락터를 설득하는 일이였다. 세상에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그의 모습 속에 길들여진 모습은 너무나도 안타까울 수 밖에 없었다.는 타살되었다. 사회에서 버림받은 두 사람은 20층 옥상에서 스스로 뛰어내린게 아닌 사회라는 거대한 녀석에 의해 떠밀려 죽었다. 하지만 그들은 웃는다. 시니컬하게 사회를 보면서 웃는다.곤돌라에 매달려 아슬아슬 한 삶을 살아가는 그들은 20대의 청춘의 한 단락을 보여주기에 충분한 직업을 갖고 있다. 그들을 세상은 거들떠 보지도 않다가 그들의 오줌을 맞고 떨어진 페인트 통을 보고서야 그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물어본다. 너희들은 누구니, 너의 식구는 어떤일을 하고있니,너는 왜 거기에 있는거니, 20층이란 높이는 세상의 사람들로부터 그들을 격리 시켜놓았다. 보호의 목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격리하였다. 성실하게 일하는 그들은 대접은 커녕 단 한번의 관심도 받지못하고 비극적으로 살아간다.희망을 뺏어가는 비 인간적 사회현실. 현실이 갖고있는 무자비한 폭력에 대한 고발이다. 형의 합의금을 준비하는 만수, 자신을 때린 아버지의 폭력을 오히려 불쌍하게 생각하며 복싱선수를 꿈꾸는 칠수, 다방에서 몸을파는 미란, 구조하러 와서 신세한탄하며 소주에 오징어를 먹고있는 구조요원,모두가 사회라는 거대한 상대를 만나 힘겨운 삶을 살고있다. 이 연극은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잘못된 사회구조와 그 구조의 폭력성이라고 이야기한다. 누구 하나 행복한 사람이 없다 행복한 순간이 있다면 그들이 꿈을 꾸는 동안일것이다. 칠수는 k1챔피언이 되는 상상속에서 행복하다. 만수역시 연봉7000은 아니더라도 2000만원의 합의금을 갚고 오붓하게 형과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것이다. 이 연극은 80년대 작품과는 조금 다르다. 반정부적 메시지가 거의 없어졌고 이념에 대한 언급이 많이 줄어들었으며 자유분 방함이 가미 되었다. 갖은것 없고 배운것 없고 기댈것 없는 젊은 영혼들의 이야기이다.[시련]에서의 배우들의 연기는 조금 실망 이였다. 패리스 목사를 맏은 정동환은 연극 초반 목소리가 잠겨 있어 대사전달이 잘 되지 않았으며 원작을 먼저 읽어보고 가지 않은 사람이라면 각각 배역의 성격이나 내용에 집중하는게 힘들었을 거라 생각된다. 많은 준비를 하였다고 보여질 정도로 좋은 발성으로 좋은 연기를 선보인 존프락터 김명수가 등장하게 되며 정동환의 준비되지 못한 모습은 두드러지게 되었고 1막이 넘어가서야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영상매체를 통해 자주 접해서 그런지 정동환 뿐만 아니라 자일즈 역을 맡은 권성덕, 댄포스 부지사를 맡은 김진태연기 역시 신선도가 떨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연기를 오래동안 해 오며 만들어진 기술로 연기를 하는듯한 인상이 강했다. 그들은 텔레비전 안에서 슬플때 그렇게 웃었고 기쁠땐 그렇게 웃었다. 그들의 연기는 노련함에서 오는 답습된 연기였다 .
편견이라는 만행을 경계하는이 책의 목적반유대주의에 관한 연구는 우리에게는 낯설지만 유럽 권에서는 활발하게 진행되어 왔다.반유대주의에 관한 거시적인 학문적 접근법은 미시적인 연구법으로 변화되었다. 어둠 속에 묻혀 있던 나치 시대의 일상이 다양한 연구를 통해 차츰 드러나기 시작하며 국가, 당, 이데올로기, 계급 이전의 독일 나치시대의 미시적 세계들이 역사학자들의 조명을 받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일상적 반유대주의를 다룬 이 책의 저자, 볼프강 벤츠는 이러한 연구 경향의 변화와 맥을 같이 한다. 이 책의 주제는 극우주의나 인종주의에서 흔히 발견되기 마련인, 공적인 반유대주의가 아니다. ‘일상적 반유대주의연구’라는 원제에서 알 수 있듯이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겉으로 쉽게 드러나지 않는 잠재적 반유대주의의 다양한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덤으로, 그러나 결코 책의 본 주제 못지않게 중요한 내면의 메시지를 전한다.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서구의 이미지는 대체로 근대 이후 생성된 것으로 긍정적인 내용으로 채워진 고정관념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성, 합리성, 자유, 해방, 평등, 인권 등등 서구적인 것은 항상 새롭고 진보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보면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유럽의 이미지는 점차 퇴색한다. 즉, 편견이 수정된다는 것이다. 내면의 메시지란 바로 이 책을 통해 지극히 이성적으로 보이며 실제로 매우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유럽인들이 다른 한편에서는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근거 없는 편견에 사로잡혀 가해를 일삼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이 책의 순서대로 내용을 살펴보면 그러한 근거는 충분히 발견된다.반유대적인 이미지들고리대금업자, 세계 지배 음모자, 수전노, 매부리코와 안짱다리, 이교도 등은 유럽 사회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는 유대인의 모습이다.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수전노, 기독교 세계에 확산되어 있던 조롱하는 이미지, 유대인 암퇘지 등 유대인에 대한 조롱과 증오를 불러일으키는 이미지들은 유럽사회에서 사회의 위기를 유대인에게 떠넘기는 목적으로 종종 사용되어 왔다.물론 그동안 유대인에 대한 인식에 진보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경멸하기 위해 만들어낸 이미지를 비난하는 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유대인 혐오와 이를 표현하는 다양한 이미지의 생성 원인, 의식, 결과 등에 대한 지속적이고 차분한 계몽 노력만이 반유대주의라는 편견 자체를 소멸시킬 수 있다.권력 있고 부유한 유대인의 이미지셰익스피어의 작품, 에 등장하는 샤일록의 이야기처럼 부유한 유대인의 이미지는 예전부터 있어 왔다. 안식일과 식사법 등을 철저하게 지키는 유대인의 율법은 일상생활에서의 부조화를 일으키며 일반 사회와 융화되지 못하는 그들만의 사회를 만들게 했다. 농업이나 수공업 등 당시 생산사회에 속할 수 없게 된 그들이 택한 생존수단은 대금업이었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약자였던 그들의 보호책으로 자신의 이익을 보호할 방안으로 왕과 제후, 성직자등 권력을 가진 이들에게 막대한 뇌물을 제공했다. 이러한 객관적 사실들 뿐 아니라 채무 변제 가능성이 희박해 돈을 빌릴 수 없었던 사람들은 높은 이자를 지불하고 유대인에게 돈을 빌렸다. 그래서 대금업자라는 유대인의 이미지는 ‘고리’대금업자라는 나쁜 이미지가 덧씌워졌다. 일반 농민들은 육체적 노동을 하고 있을 때, 앉아서 이자로 막대한 수입을 올리는 그들을 달가워했을 리 없다. 하지만 그러한 이면에는 종교적 양심에 따르자니 선택의 여지가 없는 유대인만의 생존방법이 녹아있던 것이었다.연극이나, 소설, 영화 등 스토리가 있는 많은 예술작품에서 유대인들은 공통적으로 권력 있고 부유한 이미지로 등장한다. 그러나 그러한 인물들의 이면에는 도박과 육욕에 빠져있는 모습이 보조적으로 등장하곤 한다. 또, 육체적인 노동을 통해 돈을 벌지 않는 유대인의 이미지를 이렇게 평하기도 한다. “유대인들은 일은 하려 하지 않고 장사로 폭리를 취하려 한다. 다른 직업을 선택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장사를 한다는 것은 변명일 뿐이다. 사실은 정반대이다. 유대인이 장사를 하는 이유는 그것이 그들의 성격과 재능에 부합하기 때문이다.”그러면서 유대인들을 ‘기생 민족’으로 규정하며 심지어 각종 질병을 퍼뜨리는 ‘쥐’에 비유하기도 한다.유대인 세계 지배 음모‘시온주의’는 유대 인들의 민족 국가 건설을 위한 민족주의 운동으로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던 유대 인들이 그들 조상의 땅인 팔레스타인에 국가를 건설하려는 운동이다. 이 운동은 1948년에 이스라엘이 독립함으로써 실현되었다. 이스라엘이 건국되기 전에 유럽인들인 자신들의 국가를 꿈꾸는 유대인들을 몹시 경계했다. 저자가 확실하지 않은 19세기 말에 유럽사회에서 널리 퍼진 ‘시온 산 현인들의 의정서‘라는 문서는 반유대주의자가 유대인을 핍박하는 가장 악랄한 무기였다. 그 문서의 핵심 내용은 일종의 지하정부 형태를 띤 유대인 비밀결사가 기존의 체계를 무너뜨리고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힘을 빌려 세계를 지배하려 한다는 것이다. 음모론은 유대인 비밀결사가 유대인 전체를 대표한다고 전제하며 모든 개별 유대인이 위험한 음모에 가담한 것으로 비난받았다. 이러한 오해는 독일 뿐 아니라, 프랑스, 러시아 등 당시 강대국에 전반적으로 퍼져 있었다.독일인과 유대인의 공생론에 대한 비판1812년, 독일에서의 유대인은 법적으로 프로이센 국민임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곧바로 예외조항들이 생겨났고, 독일인과 유대인의 통합에 대한 환상은 1933년 히틀러의 집권으로 완전히 깨졌다. 소수의 공생 불가론자들의 만행이 자행 될 동안 공생 찬성론자(친유대주의자)의 목소리는 너무도 작았다. 다수의 독일인들은 1970년대 말에야 미국의 TV드라마 를 통해 감정적인 충격을 경험하며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진지하게 과거를 성찰했다. 영화, 역시 유사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역사적으로 유대인 배제는 유대인 해방 및 통합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짧은 기간에 이루어졌다. 해방 및 통합은 족히 120년이 걸렸지만 배제와 물리적인 절멸은 불과 10년 만에 이루어졌다.시대정신으로서의 유대인 혐오독일의 많은 유명 인사들의 유대인 혐오는 그들이 단순히 반유대인이라서 그런 것인지,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그런 것인지는 쉽게 결론내리기 어렵다. 유명한 음악가인 바그너나 영화감독이자 연극연출가인 파스빈더, 유명작가인 뷔그너, 그림형제, 빌헬름 하우프, 클레멘스 브렌타노, 빌헬름 라베, 테오도르 폰타네 등의 작품에서 유대인의 이미지가 반유대적인 감정을 광범위하게 전파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작가와 작품에 있어서 반유대적인 성향은 세 가지로 구분되는데 작품 자체가 반유대적인 입장을 분명하게 나타내는 경우, 작품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편지나 일기나 그 밖의 사적인 글에서 반유대적 성향이 나타나는 경우, 초기의 부정적인 모습이 드러나 확고히 고정된 작가의 긍정적인 이미지까지 흐려지는 경우가 그것이다.유대인은 수치스러운 인종이다1890년에 태어나 1935년에 망명지인 스웨덴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 독일의 유대인 작가 쿠르트 투홀스키는 유대인들을 향해 독일의 갖은 모욕과 핍박에도 불구하고 대항할 생각을 않고 그들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파렴치한 순응주의자들이라고 비난했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투홀스키의 반유대적인 표현은 공격자와 동일시를 통한 자기방어라고 볼 수 있다.안네 프랭크의 신화홀로코스트 시대를 소재로 한 글 중 안네 프랭크의 일기처럼 세계적으로 광범위한 독자를 갖고 있는 작품은 없다. 그러나 안네 프랭크의 일기가 유대인 학살에 관한 사실을 과연 올바르게 전달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한다면 결코 그렇다고 얘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안네 프랭크의 일기는 실제의 유대인 학살처럼 비인간적이지도, 경멸스럽지도 않다. 가끔 슬픔이 묻어나오는 대목이 있지만 대부분이 어린 소녀의 감수성을 보여주는 글들로 채워져 있다. 이것은 시장경제주의가 대량 학살이라는 본질을 단지 소재주의로 상품화 한 것일 수도 있다. 즉, 독자에게 잔인무도하고 결코 재발되어서는 안 될 사건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감상적으로 쉽게 흘려듣고 말게 되는 말랑말랑한 이야기로 변조되었다는 것이다. 당시의 비극을 그야말로 있는 그대로 표현한 소년, 소녀의 글들도 많다. 그러한 글들은 전혀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