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Bronze개인인증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391
검색어 입력폼
  • 한국복식의 변천사(국립민속박물관의 의복을 살펴보고)
    -국립민속박물관국립민속박물관은 옛 궁궐인 경복궁 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조선왕조의 문화와 전통민속 생활문화를 함께 접할 수 있는 서민문화가 생동하는 문화의 우물터로서, 민속문화의 연구?수집?보존과 문화교육 및 생활문화의 전시로 전통문화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통한 민족적 자긍심을 일깨 울 수 있는 사회교육 현장이며, 전통과 현대가 어우른 문화의 전당이다.불국사 청운교?백운교, 법주사 팔상전, 금산사 미륵전, 화엄사 각황전 등 우리나라의 전통 건축양식을 현대 건축에 응용하여 새롭게 재현한 박물관 건물은 1972년에 건립되어 국립중앙박물관 으로 사용되어 오다가 1993년 2월 17일 국립민속박물관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한민족 생활사를 전시하고 있는 제 1 전시관과 의식주와 생업?공예에 관한 것들을 전시하고 있는 제 2전시관을 중심으로 의복변천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다.-전시품을 통한 한국 복식의 변천사◎ 상고시대경남 창원 다호리 유적을 복원한 것 으로 철기시대 후기의 의복 형태를 띄고 있다. 청동기와 철로 만들어진 칼과 장신구 및 붓 벼루 등이 출토된다호리 1호분은 상당한 지위에 있는 권력층의 것으로 특히 붓과 벼루는 현재 출토된 유물중 가장 오래된 것 이라 한다.→복식의 형태삼한시대의 복식으로 후에 가야와 연관되는 변한 지역의 의복의 형태이다.관모의 형태는 변형모이며 상의는 직령교임식의 엉덩이선 길이정도 이고, 소매는넓고, 깃과 소매에 선이 대어져 있다. 하의는 위의 사진에서는 보이지 않아 알 수없다. 이 시대에는 잠상에 의한 겸포를 만들 줄 알았고, 광폭세포를 만들어냈다 하 니 직조 기술에 상당한 발전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구려시대일반 백성들의 복장이 아닌 왕복과 왕비복으로만 재현이 되어 있어 자세히 알아 볼 수 없었으나, 왕복 맞은편에 따로 전시되어 있던 고구려의 생활풍속 복원모형 을 기준으로 삼아 알아보고자 한다. 이 모형은 고구려 고분벽화에 남아있는 자료 를 토대로 하여 그 당시의 일상생활을 재현 한 것 으로 안학궁을 배경으로 한 행 렬이 연출되어 있다.→복식의 형태고구려 시대의 복식으로 관모는 책건 형태의 흑라관으로 보이며, 상의의 형태는 전개교임식의 엉덩이선 길이 정도이며, 허리에 띠를 둘렀으며 깃과 섶, 끝동에 선이 대어져 있다. 하의의 형태는 당의 유무가 상의에 가려져 보이지 않아 자세히는 알 수 없다. 신의 형태는 목이 긴 화를 착용한 것으로 보인다.→왕과 왕비의 복식왕복은 오채복으로 화려하며, 백라관을 썼다. 바지와 저고리 위에 자색포를 입었고, 허리에는 과대를 착용했으며, 황색의 가죽신을 신었다.왕비복은 치마 저고리에 포를 착용하였고, 소매가 크고 길다. 깃,도련,소매에 자색과 흑색의 선을 대었고 띠를 둘렀으며 황혜, 자피리를 신었다.◎ 백제시대백제시대는 진한?마한의 한 요소를 이루던 부여계인 고구려 유이민에 의하여 세 워진 나라로, 고구려 시조 주몽의 아들 온조가 남으로 내려와 하남 위례성에서 이 나라의 시조가 되었다. 사신도에 나타난 의복과 재현 되어있는 왕복, 왕비복을 기 준으로 이 시대의 복식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복식의 형태백제 사신도는 중국 양나라 무제의 일곱번째 아들인 소역이 그린 그림으로 원래의 이름은 ‘양대 직공도’ 이다.그림에서 보이는 단아한 모습의 백제 사신은 머리를 위로 걷어 올리고 천으로 만든듯한 관을 머리에 쓰고 있다.깃,도련,소매에 붉은색 선을 두른 포를 입었으며, 바지의 밑단에도 선을 둘렀다. 신발은 장화처럼 목이 긴 형태의 검은색의 신을 신고 있다.→왕과 왕비의 복식왕복은 소매가 넓은 자색포에 청색 비단바지를 입었고, 흰색 가죽대를 둘렀으며, 금동관?오라관을 썼으며, 신은 금동리?오피리를 착용했다.왕비복은 치마저고리에 포를 입은 형태로 깃,도련,소매에 자색선을 둘렀다.치마는 광폭이며 금관과 금장식을 사용했다. 과대와 귀걸이도 착용하고 있다.◎ 신라시대신라시대는 박혁거세를 임금으로 삼아 세워진 나라로, 진한12국의 하나인 ‘사로’ 라는 국가를 모체로 하여 인근의 여러 국가를 병합하여 세워진 나라이다. 제 30대 문무왕에 이르러서는 당의 힘을 빌려 삼국을 통일하였다.재현 되어있는 왕복, 왕비복을 기준으로 이 시대의 복식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 다.→왕과 왕비의 복식왕복은 바지, 저고리 위에 포를 착용한 형태이고, 자색포 바탕에 금직문양을 수 놓은 자주색 선이 대어져 있다. 머리에는 금제조익형관을 썼으며, 금장식의 과대 를 착용하고 금동식 리를 신었다.왕비복은 고구려 백제의 형태와 비슷하며, 치마 저고리 위에 포를 착용한 형태이 다. 소매는 광폭소매이며 길이가 길다. 머리에는 금관을 쓰고 금반지, 귀고리, 목걸 이, 팔찌 등을 착용하고 과대를 착용했으며 적피혜를 신었다.◎ 통일신라?발해시대통일신라시대와 발해시대에 관한 정확한 자료는 찾아 볼 수 없었으며 발해시대의 정효공주 묘 모형에 작게 설명되어 있었다.→복식의 형태관모의 형태는 뚜렷하게 보이지 않으나 오른쪽 사진으로 봤을때 상투를 튼 모습이라 생각된다. 옆이 트여 속에 입은 내의가 보이는 단령포를 입었으며 깃과 도련에는 선이 대어져 있다. 소매는 넓고 길며 표의는 직령이고, 내의는 둥근깃의 형태로 보이는 곡령을 착용하였다. 벽화에서는 장신구나, 신의 형태는 나타나있지 않다.◎ 고려시대고려의 지배체제는 군주를 위시해 귀족, 즉 양반층, 그리고 하급 이서층으로 되어 있었으며, 그 밑에 피 지배계급으로 서민층이 있었다. 복식은 왕복을 비롯해 백관복에 이르기까지 오대?송?원?명의 제도를 본떴다.*사진의 왼쪽부터 고려시대 관복?상복?귀부녀복→복식의 형태관복은 복두를 착용하고 깃이 둥근형태의 표의를 입었으며 목둘레와 소매에 선이 대어져 있다. 내의는 직령으로 보이며 목 가까이에 하얗게 보이는 것이 고려시대에 처음 등장하는 동정으로 보인다. 소매는 넓고 길며, 손에는 위가 꺾이고 아래는 모가 난 홀을 들고 있다.상복은 오사모를 착용하고 직령의 광폭소매 표의를 입었다. 내의의 형태는 표의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귀부녀복은 쪽진머리를 하고 깃,도련에 선이 대어져 있는 직령의 광폭소매 표의를 입었다. 길이가 다소 짧아져 속에 입은 치마가 겉으로 드러났다. 말과 혜도 착용했다고 전해지나 사진에서는 치마에 가려져있어 볼 수 없다.
    인문/어학| 2007.06.10| 7페이지| 2,000원| 조회(1,166)
    미리보기
  • 대한민국의 몸 소비문화를 위한 보고서
    [서론]1. 목적- 오늘날 우리 생활에서 몸은 그야말로 자아를 표현하는 대표적인 수단으로 부각 되고 있다. 모더니즘이 주를 이루던 과거에는 획일화, 정형화된 문화로 인해 다 양성과 개성 같은 것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따라서 사람이 몸을 위한 소비 는 단지 단순한 의식주를 위해서만 행해졌었다. 하지만 모더니즘에 반대되는 획일화를 파괴하고 다양성을 추구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이 나타나면서 획일화된 기준이 모호해지면서 자신을 나타내기 위한 것을 찾기 시작했는데, 그 중 자신 을 나타내기 위한 것으로 몸을 사용했다. 이제 몸은 자신을 나타내기 위한 기 호, 상징이 되어서 시간이 지날수록 몸에 관한 문화산업도 증가 되고 있는 추 세이다. 이렇게 몸을 위한 소비문화가 증가하면서 생기는 현상과 부작용을 알 아보고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을 재조명하는 동시에 내적인 아름다움 추구의 중요성을 알아보고자 한다.[본론]1. 광고를 통해 본 몸 소비문화- 우리나라 경제가 발전하기 시작하던 1960년대에서 80년대정도까지는 정부에서 소비를 억제하는 정책을 사용했다. 이는 저축 증진을 도모하여 자본을 축적하고, 그 자본을 기업에게 대출하여 기업이 투자를 할 수 있게 하려는 의도였다.그러나 1990년대 이후부터 국민생산의 측도에 소비도 포함되면서 정부에서는 소비 활성화 정책을 피기 시작했다.그러면서 여러측면의 소비문화가 발전되기 시작했는데 몸을 위한 소비도 그 중 하나이다.그러면서 이제는 몸이 사람들이 자신에게 얼마나 관심을 쏟는지 또는 무관심한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가 되었다.옛날 광고는 크게 광고 제품 자체의 특성을 주로 알리는 제품위주의 광고와 그 시대의 인기 있는 스타를 중심으로 하여 관심을 유도하고 제품의 이미지를 상승시키는 스타위주의 광고로 나뉘고, 현대의 광고처럼 그 유형이 다양하지는 않다.그렇기 때문에 과거에는 몸에 대한 소비를 유도하는 광고는 거의 없었다.하지만 현대사회에서 광고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여 우리가 TV를 볼 때마다 새로운 광고를 볼 수 있을 정도이다.그렇기 줄 수 있다고 믿는.. 그리고 그 아름다움이 곧 자신감이자 경쟁무기라고 여기는 10대들의 위험한 환상. 외모지상주의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우리 모습이다.외모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10대들. 인터넷과 각종 미디어들은 얼짱과 연예인들의 성형 전후 모습을 쏟아내며 10대들의 눈을 사로잡고 있다. 이제 아이들은 외모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성형을 선택한다.그들은 성형수술을 시작함과 동시에 한번의 수술로는 만족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성형수술을 위한 비용을 마련하고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경우도 대다수이다.여러 차례의 성형수술 후유증으로 자살을 기도하고, 수술한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성형 부작용을 겪으며 예전보다 더 큰 콤플렉스를 안고 사는 사람들. 자신의 콤플렉스와 성형의 부작용을 치유하기 위해 그들이 택해야 했던 유일한 방법은 ‘성형’ 뿐이였을까?(2) ‘성형수술’이 유행하게 된 사회적 배경1) 자의식의 부족- 근본적인 것은 역시 자의식의 부족이다.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든 상관없이 스 스로 떳떳하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그래서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타인이 원 하는 쪽으로 자신을 맞추어 가게 되고, 외모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는 여성들만의 문제로 치부하기엔 온당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그렇게 될 수밖에 없도록 만든 사회 전체의 책임이다. 하지만 올바른 자의식을 갖는 것은 사회의 영향을 받고 여부를 떠나서 한 개인이 독립된 주체로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면서 개인의 책임이 가장 큰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내가 나인 것으로 떳떳하지 않을 바에 나의 삶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을 것인가? 하지만 우리 사회를 살아가면서 확고한 자의식을 갖기에는 너무나 힘든 사회문화적 그리고 교육적인 배경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우리사회는 한명의 여자에게 너무나 많은 명찰을 달리 운다. 여기 서 어떤 한 평범한 30대 주부의 경우를 살펴볼 수 있다. 우리는 그녀에게 아이의 엄마로, 남자의 아내로, 집안의 며느리로써 빈틈이 없기를 원한다. 여기에 한 가 지라도 신, 한창 성장기에 쌍꺼풀 수술 과 다이어트 등으로 외모 만들기에 주력할 수 밖에 없다. 아무리 전교 1등을 해도 작은 키에 섭섭하게 생 긴 얼굴로는 취직이 어렵지만, 수업 시간에 거울만 보던 예쁘장한 친구들은 쉽게 합격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우리나라가 유독 유행에 민감한 것도 이러한 의식 이 저변에 깔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유행을 발맞추지 못할 경우, 남들에 비해 뒤 쳐지고 열등한 것처럼 보이기 싫어서라고들 한다. 마르크 데깡은 "유행은 사회적 으로 불완전이 미화된 형식"이라며 "그것은 뿌리와 전통을 잃은 사회에서 꽃핀다" 고 단언한다. 성형수술의 유행이 열병처럼 퍼지고 있는 지금의 우리사회가 되돌 아볼 지적이다.4) 소비 지향적인 사회와 매스미디어- 여성의 상품화를 부추기는 우리사회의 소비지향성과 더불어 강력한 파급력을 지닌 매스미디어에 힘입은 바가 크다. 현대 사회는 소비 중심의 사회이다. 소비를 유도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광고가 사람들의 눈을 현혹한다. 여기서 이미지는 가 장 강력한 힘이다. 보다 강한 시각적 자극, 즉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한 다. 상기한 것처럼 현대사회에서 남성을 자극하고 남성의 욕구를 충족시키려 한 다. 여기서 빠질 수 않는 것이 여성이다. 여성은 하나의 이미지로 재생산되고 만 들어진다. 여성의 아름다운 외모야 말로 시쳇말로 가장 잘 나가는 최고의 상품이 될 수 있다. 이것은 매스미디어의 전파력을 통해 더욱 강력하게 전달된다. 티비 속에 나오는 아름다운 여인들은 멋진 이미지이자 상품이요 여성들에게 있어선 선 망의 대상이다. 그들을 너무나도 닮고 싶어 하는, 그러나 그렇지 못해 실의에 빠 져 있는 평범한 여성들에게 성형수술이란 하나의 희망이자 구원인 셈이다. 게다 가 요즘은 텔레비전이 아예 성형외과의 영업사원 역할을 하며 수술 권하는 사회 를 만든다. 오락프로는 물론 주부 정보프로그램에서도 성형수술의 모든 것 , 성형 외과 가이드 등을 충실히 전달해준다. 또 미모가 아니거나 조금만 얼굴이 큰 연 예인이 등장하면 「대갈장군」반의 미모의 젊은 여성들을 공략하여 이들에게 씻을 수 없는 엄청난 상처를 안겨주었다.물론 정말 건강에 해가 끼쳐서 다이어트가 필요로 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렇게 우리 사회는 건강을 위한 것보다 대중매체와 기성세대들에 의해 조장된 다이어트 열풍의 실태를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다이어트 열풍이 제대로 이루어졌으면 그나마 낫겠지만 그렇지도 않아 다이어트의 폐해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5. 헤어, 네일아트 등을 이용한 몸을 위한 소비문화의 실태(1) 네일아트 실태- 손톱도 패션인 시대. 이제 네일아트는 당당히 패션아이템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옷이나 자신의 이미지에 맞춰서 네일아트를 하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고, 손톱을 예쁘게 가꾸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일부 부유층이나 연예인들이 즐겼을 법한 네일케어가 20~30대 젊은 여성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게다가 요즈음엔 40~50대 주부, 남성들에게도 인기라고 한다.패션의 완성은 손톱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손톱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가고 있다.우리나라는 급격한 경제발전과 문명의 발달로 여러가지 다양한 직업 중 서비스업이 어느 직종보다 많은 발전을 이뤄왔다.미용 분야 중 네일은 개개인의 독특한 개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와 더불어 괄목할만한 성장을 가져왔다.97년 말 10여명의 네일관련 종사자들이 모여 작은 단체 활동에 들어갈 무렵 IMF라는 경제적 위기가 불어 닥침으로 해서 국내 미용분야에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혔으며, 동시에 이러한 미용분야의 불황을 타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 네일이 미용의 3대 분야(헤어·메이크업·네일)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됐다.창조적이며 단기간에 기술을 습득할 수 있다는 점, 앉아서 시술을 하며 고소득이라는 매력으로 인해 네일케어는 우리나라 미용업에도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며 미용인들의 높은 관심 속에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이제는 거리에도 네일숍을 많이 찾아볼 수 있고 화장품코너·백화점·미용실?사우나?카페 등 여성들의 발길이 닿는 곳에는 네일 살롱이 거식증에 시달리게 되었고, 그 이후 정신적 치료를 받아야 했지만 그 치료를 ‘거부’ 하 였다. 그 결과, 헤스통은 모델 일 거리가 떨어지고 나이트클럽 전단지를 돌리는 처지에 이르렀다. 10월 22일 그는 복부에 심한 고통을 호소했고, 아름답던 긴 갈색머리가 뭉텅이째 빠져버린 그는 사흘 뒤 병원에 입원했고 그후 일어나지 못 했다. 이때 헤스통의 몸무게는 겨우 40kg 이었다.(네이버뉴스 발췌)이외도 모델계에서는 잇따른 거식증으로 인한 모델의 죽음이 있었다.이러한 사건이 비번하게 발생한는 것에 대해 모델전문 한 정신과 의사는 “모델 산업이 요구하는 기준을 아주 조금만 넘어도, 마치 병적으로 살이 찐 것처럼 대 우받는다”며 “살을 빼려고 기생충약을 먹는 모델도 봤다”고 말했다. 그는 “어린 모델들이 이곳저곳을 옮겨다니고 갑자기 많은 변화를 겪으면서, 현실을 감당하지 못한다”며 “패션산업과 음식섭취 거부 등은 분명한 관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더러, 저소득 가정에서는 자녀들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 취급을 받으 면서, 더 자신을 몰아붙인다고 덧붙였다. (네이버 뉴스 발췌 )2) 잘못된 약 부작용 실태- 항우울제는 울증을 조증으로 바꾸는 정신과 치료제다. 그러나 우울증 치료와 함께 식욕을 감퇴시키는 일로 인해 많은 비만클리닉에서 살을 빼는 약품으로 사 용한다고 한다. 하지만 비만 처방전에 항우울제가 있다는 사실, 그 항우울제가 자살 충동과 폭력행위까지 야기할 정도로 심각한 부작용이 있다는 걸 아는 여성 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 사례 : 비만 클리닉 약 처방 부작용지난 7월, 경기도의 한 중소도시에서 20대 여성이 ‘의문의’ 자살을 시도 했 다. 비가 많이 내리던 7월 28일 오후 2시경, 박모 양(23)은 4층 거실 베란다를 통해 아파트 밖으로 뛰어내렸다. 외출했다 방금 전 집으로 돌아온 어머니를 향 해 “됐어, 내가 죽어버리면 되잖아!”라는 말을 내뱉은채.“집안 청소도 해두지 않고 누워있었어요. 잔소리를 좀 했을 뿐인데 말릴 틈도 없이 갑자기 거실 베란다 문을 열고는다.
    사회과학| 2007.09.03| 24페이지| 3,500원| 조회(828)
    미리보기
  • 나는 여성의 몸으로 붓다가 되리라를 읽고
    < 책을 읽기 전 >나는 여성의 몸으로 붓다가 되리라 라는 책을 찾았다. 책의 첫 느낌은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크기도 작고, 많이 낡았고, 종이 냄새로도 책이 오래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책은 표지보다는 내용물이 건실해야 한다는 생각을 굳게 되새기고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대충 책의 기본적 내용을 보면서 주인공에 관한 사진자료도 있고, 스토리 형식의 내용 구성, 간결해 보이는 단원들의 제목들에 읽기 쉽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갑자기 큰 흥미의 감정이 돌기 시작했다.중고등학교 윤리나 국사시간에 배운 불교 내용을 제외하고, 내가 불교에 관련 된 것을 접한것은 강수연 주연의 영화 ‘아제아제바라아제’가 유일한데, 이 영화와 이 ‘나는 여성의 몸으로 붓다가 되리라’ 라는 책이 여성으로서 스님이 된다는데 공통점을 갖는다는 것을 발견하고 갑자기 흥미가 들기 시작했다. ‘아레아제바라아제’를 나와는 다른 종교의 영화라는 선입관을 버리고 영화 자체로만 봤을 때는 많은 감동을 느낀 영화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책의 주인공은 직접 인도로 가서 불교도가 되는 수행을 했고, 게다가 예상외로 동양인이 아닌서양인 이었다. ‘아제아제바라아제’ 와는 비슷하지만 독특한 점들이 많은 스토리이기에 과제 라는 생각보다는 꼼꼼히 읽어서 무언가 감동을 받고, 불교 관련 도서에 관심을 가지는계기를 만들고 싶었다. 큰 기대를 품고,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줄거리 >- ‘다이안 페리’로서의 삶 -이 책의 주인공 텐진빠모의 원래 이름은 ‘다이안 페리’ 였다. 그녀는 전쟁으로 세계가 혼란할 1943년 영국 런던에서 출생했다. 그녀는 태어나자마자 아버지를 여위었고, 유년시절 그녀의 하루하루는 고생의 고생을 거듭했다. 가족이 심각한 경제적 압박을 받았으며, 그녀는뇌막염과 불균형한 척추구조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심각한 건강상태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런 것에 삶을 굴복하지 않았다. 항상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으며, 자신의 스트레스와 고민을 학업을 통해 해소했다. 동양 문화에 호기심을 가졌는데, 특히 불교관련 도서와 사상에 심취하게 되었다. 사성제, 팔정도, 참선 등 동양인도 배우기 힘들어 할불교 지식을 배우고 그것에 매력을 느끼게 된다. 그러한 불교에 대한 계속 매진 하던 그녀는 무언가에 홀린 듯 불교의 길을 걷기로 마음 먹게 되는데, 훌륭한 스승을 찾고 더욱 불교에 매진하기 위해 인도로 가기로 결심했다. 주변 사람들의 반대가 많았지만, 그녀는 개의치않았다. 얼마간의 도서관 사서 일로 돈을 모으고, 공부도 틈틈이 했다. 준비가 되었고, 떠나기로 했다. 그녀는 희망을 안은 채, 인도로 가는 배에 오르게 되었다.- 첫 스승 ‘캄트룰린포체’ -인도로 가는 배 안에서 그녀에게 진정으로 고백하는 일본 남자의 구애를 뿌리치고, 오랜항해 끝에 그녀는 인도에 도착하게 되었다. 도착으로써 그녀의 고생길은 시작이 된 것 이었다. 그녀가 생활을 할 수도원 환경은 춥고 비까지 새고, 징그러운 쥐와 거미가 밤에 나타나잠자는 것을 괴롭히는,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끔찍한 곳 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한고통을 견디며 잘 적응해 나갔다. 게다가, 라마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개인 업무도 맡았다.그러던 중, ‘캄트룰린포체’라는 그녀의 불교인생 중에서 운명 같은 사람을 만난다. 수도원을 방문한 그의 명성과 불교적인 깊이에 대해 감동한 텐진빠모는 그의 제자가 되고, 출가하여 더 높은 불교적 높이에 다다르기로 마음을 먹게 된다. 서양인이면서 여자인 신비스러운그녀의 불교에 대한 관심에 그는 출가를 승낙하게 되었다. 텐진빠모는 수도원을 떠나 캄트룰린포체의 비서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편견의 장벽 -세상 어디에서나 차별은 존재한다. 인종차별, 직업차별, 신분차별 등 여러 차별이 있지만인류 공통적인 차별 중 가장 심각한 차별 중 하나는 남녀차별이다. 신성하다는 종교에서도남녀차별은 일어나지만, 텐진빠모 역시 불교적 수행자에 있어서 생기는 여성에 대한 차별과편견을 피해 갈 순 없었다. 남자 수도승들은 수행을 위해서는 여성을 항상 경계해야 한다고배워왔고, 여성의 몸은 수행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몸이라고 믿어왔기 때문에 그녀 역시 그경계와 편견의 대상에서 예외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한 편견들을 극복하고,자신은 여자의 몸으로 반드시 깨달음에 도달해서 그러한 편견이 잘못된 것 이었다는 걸 보여주리라 맹새 하고 수행에 매진했다.더 깊이 있는 수행을 하길 원한 텐진빠모는, 캄트룰린포체의 추천으로 ‘라홀’이라는 곳으로 수행지를 옮기게 되었다. 그곳에는 훌륭한 도서관과 수많은 불자들이 있었고, 그녀는 한층발전된 개인생활공간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러한 좋은 환경을 원치 않았고, 다른 수행 장소를 찾았고, 남자들도 해내기 힘들다던 동굴수행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수행으로 시련을 극복 -여러 반대와 편견을 무릅쓰고, 텐진빠모는 히말라야의 한 동굴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녀에게는 강도 높은 동굴수행이 오히려 깨달음을 위한 지름길 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외롭고, 무섭고, 춥고, 먹을 것도 적당치 않은 최악의 조건의 동굴수행 이었지만, 그녀는 잘 적응해 나갔다.그러던 중 큰 시련이 연속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 때문에 수행을중단하고 런던으로 향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얼마 가지 않아 세상과 작별했다. 슬픔을 잊을틈도 없이, 인도로 돌아와서는 그의 스승 캄트룰린포체도 죽음도 맞이하게 된다. 여타의 사람 같았다면 소중한 두 사람을 하늘나라로 보냈을 때, 방황을 하거나, 눈물로 얼마간을 보낼 것이다. 하지만, 텐진빠모는 극복의 방법으로 수행을 선택했고, 다시 동굴에 들어가 수행에 매진하였다.- 세상 밖으로 -계속 된 동굴 명상 중, 불법비자소지 경찰 조사를 위해, 3년 동안의 텐진빠모의 은거수행은 중단 되었다. 수행 중 사람에게 노출되고 말을 했다는 건 수행의 암묵적 규정을 어기고만 격이 된 것이다. 즉, 3년 동안의 수행은 처음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지나침을 지양하고, 사람들과 소통할 기회를 가지자는 의미로 받아드렸다.그녀는 바깥세상에서의 수행과 경험을 위해 이탈리아의 아시시로 떠나게 되었다. 그 곳에서 금욕생활을 잠시 잊고 파스타를 먹거나 카푸치노도 마시고, 영화도 보며 스스로에게 자유를 허용하기 시작했다. 또한, 그곳에서 유명 대성당도 돌아보고, 타 종교 단체 간의 교류도 하였는데, 자신이 불교를 선택하고 수행했던 일화와 동굴에서 무엇을 어떻게 수행해 나갔는지 이야기 등으로 타 종교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그녀는 이런 180도달라진 생활을 하면서도 하루도 빼놓지 않고 몇 시간씩 명상수행을 하였다.- 큰 꿈 -텐진빠모는 여성의 깨달음과 수행을 위해 수도원을 설립하려는 큰 결정을 하게 된다. 티벳에서 오랫동안 이어져온 개인적 후원에 의존하는 방식을 지양하고, 경제적 자립을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국제적 기금조성자라는 역할을 맡아, 강연에 초청되어 붓다의 가르침을 강의하고, 사람들이 보시함에 부탁함으로써 자금을 만들게 되었다.몇 년간 그녀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수도원을 세우기 위한. 땅을 사고 기초를 쌓을 만큼 충분한 돈이 준비가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운명과 삶은 붓다에게 전가 하고, 이제는 중생을돕기 위해 몸을 바치기로 생각을 했지만, 그녀는 아직 자신의 깨달음을 위한 수행을 해야한다고 고백했다. 깨달음을 얻는 다는 것은 누구에게도 불가능한 일이기에 자신의 삶은 죽을 때 까지 수행과 함께 할 것이며, 수도원 건립 일이 마무리 되면 다시 동굴이나 다른 수도원으로 들어가서 깨달음을 위해 노력하기로 결심했다. 수행하는 곳이 어디든, 그녀의 불교에 대한 마음이 한결 같다면 그것은 그녀가 여성의 몸으로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라고 지금 오늘도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느낀점 >- 여성은 연약하지 않다는 느낌을 주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주인공 텐진빠모가 동굴수행을 들어간다고 할 때, 그리고 그 동굴수행을 견뎠다고 할 때, 과연 이 책이 실제 있었던 일인지, 소설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남자인 내가 당사자 였다면, 아마도 처음 수도원에서 쥐와 거미가 우글대는 환경에서 하루도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니, 남자가 아닌 어떤 강하고 힘이 센 사람이라도, 편안한 집에 살고 따뜻한 밥을 먹고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텐진빠모의 의지는 따라올 사람이 몇 안 된다고 생각한다.나는 내 자신이 여성과 남자는 평등하다고 생각하지만, 아마도 위에 ‘남자인 내가 당사자 였다면‘ 이라는 대목에서부터 난 여성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 모른다. 여성은 연약해서 남자인 내가 보호해줘야 하고, 텐진빠모가 한 수행처럼 그런 힘든 일은 견딜 수 없다고... 하지만, 나는 텐진빠모를 보고 느꼈다. ’남자인 내가 오히려 더 약하구나‘ 하고.. 여성도 마음만 먹고, 의지만 있고, 지향점이 확고하다면 어떠한 시련이든 견딜 수 있다고...이 책을 읽고, 다시 한 번 나의 편견이 어리석다는 걸 꺠달을 수 있었다.- 회의감을 불식 시키다 -책의 내용 중 수행을 하면서 느끼는 회의감에 대해서 언급한 부분이 있다. 나 역시 그렇다. 공부를 하다가 보면, “내가 이걸 왜 해야 하는 거지?” “내가 이것을 해서 얻는 게 과연 뭐지?” 하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든다. 솔직히, 기독교 신자인 나에게 지금 이 불교와 인간 강의를 듣고, 또 이러한 레포트를 쓰는 것에도 여러 번 회의가 든 것은 사실이다. 난 살아가면서 기독교만 믿을 것이고, 불교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으로 살 텐데, 과연 이걸 배워서 나에게 득이 되는 게 무엇일지.. 자꾸 회의가 들었다.
    독후감/창작| 2007.09.03| 5페이지| 1,500원| 조회(496)
    미리보기
  • 민족운동의 시발지 탑골공원 답사기 평가A좋아요
    3.1 운동의 시발지 - 탑골공원을 다녀와서화창한 봄날 오후의 탑골공원은 다양한 문화재를 보듬고 있는 살아있는 유적지였다.사실 ‘탑골공원’하면 노인분과 비둘기 떼의 쉼터 정도로 밖에 생각되지 않았지만, 직접 방문 해 본 탑골공원은 성역화 사업으로 생각보다 깨끗하고 잘 정돈되어 있었다.조선시대 원각사 터에 세운 서울 최초의 근대식 공원인 탑골공원(파고다 공원)은 1919년 3월 1일 처음으로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독립만세를 외친 3?1운동의 발생지로서, 우리 민족의 독립 정신이 살아 숨 쉬는 유서 깊은 곳이다. 서울특별시에서는 1979년 3?1운동 60주년을 맞이하여 공원을 넓혀 정비하였고, 1991년 10월 25일 이 공원을 사적 제354호로 지정하였다. 이후 겨레의 정신적 귀의처이며, 민족정기의 산 교육장으로서의 의미를 살려 ‘3ㆍ1운동 성지’로 조성하고자 2001년 3월 1일부터 재정비사업을 추진하여 2002년 3월 1일 개원하였다.종로의 대로를 향해 나 있는 탑골공원의 정문은 '삼일문'이란 현판을 달고 있다. 이 현판은 독립운동, 더구나 3.1운동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을 뿐 아니라 만주군관학교와 일본육사를 졸업하고 만주관동군에 근무하며 독립군 토벌에 앞장섰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것이기 많은 논란이 있다. 탑골공원의 성역화 사업을 하면서 만해 한용운과 같이 3.1 독립운동과 직접 관련 있는 선열의 글에서 글자를 발췌하거나 생존 애국지사의 글을 받아 현판을 교체했으면 탑골공원의 의의를 더욱 깊이 되새길 수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삼일문을 지나면 바로 오른편에 3·1독립선언서가 새겨져 있다. 3.1독립선언서에는 애국지사들의 독립에 대한 강한 의지가 고스란히 녹아있다.삼일문 정면에는 의암 손병희 선생의 동상이 탑골공원을 지키고 있다. 손병희 선생은 동학의 3대교주로서 동학을 천도교로 개명하고 발전의 기반을 닦았다. 교주를 그만둔 후 그는 수도에 전념하였으나 사실상 천도교의 정신적인 지도자로서 보성중학교(나중에 보성고보)를 인수하여 교육 사업에 힘썼다. 그래서인지 보성 출신들이 3·1운동의 계획 과정에서 많은 역할을 하게 된다. 도쿄 2·8독립선언의 소식을 국내에 처음 전한 송계백이 보성 출신이었다. 그는 선배인 현상윤과 함께 당시의 보성 교장이던 최린을 만나 의논하고, 결국은 손병희의 천도교가 다른 종교계를 움직여 3·1운동의 계획하게 된다. 3·1독립선언서도 보성고보 안에 있던 천도교의 인쇄소인 보성사에서 인쇄하였다. 이처럼 보성학교와 천도교계가 3·1운동의 계획 과정에서 한 역할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현재 보성중고등학교 교정에는 3·1운동 기념의 보성종과 3·1운동 부조 등을 만들어 이를 기념하고 있다. 이렇게 손병희 선생의 천도교계가 중심이 되어 여러 종교계 인사들로 민족 대표 33인을 구성했다. 이들이 중심이 되어 독립선언서를 기초하고, 독립선언 날짜를 정하는 준비 작업을 추진했다. 즉 3·1운동의 계획은 이들 민족 대표 33인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막상 3월 1일이 되자 이들은 사태가 커질 것을 우려했다. 결국 음식점인 태화관에 모여 자신들끼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일제 경찰에 자수하고 말았다. 이들의 선구적인 역할은 아쉽게도 여기에서 막을 내리고 만 것이다. 예전과는 달리 33인의 역할에 대해 일정하게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이런 점 때문이다. 이런 나약함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으나 이들 중 일부는 친일파로 전락하는 안타까움을 보여주었다.1919년 3월 1일, 아침부터 4000~5000명의 학생들은 탑골공원 팔각정 앞에서 33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이들이 잡혀갔다는 소식만이 전해졌다. 결국 정오를 알리는 오포 소리가 울리자 정재용이 팔각정에 올라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만세를 부르는 것으로 시위를 시작하였다. 이에 학생들은 태극기를 꺼내 흔들며 일제히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공원을 나설 때는 수만의 군중이 호응하며 함께 시위행진을 감행하여 대한문으로 향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시위는 약 3개월여에 걸쳐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심지어는 만주, 연해주, 하와이에서까지 시위가 전개되었다. 이처럼 3.1운동의 초기 조직 단계와 시위운동 단계에서의 주체가 명백히 다르며,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시위가 비로소 3·1운동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만약 33인이 학생, 시민들과 함께 시위에 참여했다면 그들에 대한 평가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인문/어학| 2007.08.30| 2페이지| 1,000원| 조회(838)
    미리보기
  • 영화 투모로우 감상문
    1. 줄거리영화 전반부에 긴장을 고조시키던 자연재해의 조짐은 때를 맞춰 그 실체를 드러내고 마침 뉴욕으로 퀴즈대회에 참가하러 간 아들을 구하기 위한기상학자 아버지의 대자연과 숨막히는 결투가 시작된다. 아들은 갑자기 변하는 이상 기후를 기이하게 여겨 지대가 높은 도서관으로 피신하고, 아버지께 사력을 다해 전화를 건다. 아버지는 아들을 구하기 위해 채비를 하지만 백악관의 브리핑으로 인해 발목을 잡히고, 결국 세계지도의 반을 금으로 그어놓고 그 위의 사람들을 모두 아래로 대피시키라는 말을 남겨놓고 떠난다. 거들떠 보자면 주인공인 잭 홀 박사는 일에 푹 빠져 가족들과는 만날 사이도 없이 지구를 걱정하는 정의로운 사람이다. 하지만 정의도 정의나름, 가족들의 행사는 번번히 빼먹거나 빠지기 일쑤니 아내에겐 가정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존재이자 아이들에겐 정말이지 한심한 아버지이다. 잭 홀 박사의 모습에서 이 시대 힘없고 지친 아빠들의 쳐진 어깨가 고스란히 보이는 듯 하다. 무엇이든 해보려 애쓰는데 잘 풀리지 않아 괴로워하는 모습이 안쓰럽다. 기상이변은 현실로 다가오고, 제발 도서관을 떠나지 말아달라는 아들 샘의 요청을 무시하고 사람들은 눈보라가 멎었을 때 떠나야 한다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태풍의 눈에 들어가게 된 뉴욕시내. 샘과 함께 남은 사람 몇몇은 미친 듯이 수레로 책을 실어날라 벽난로를 피움으로써 온기를 유지해나가고 구조대를 기다린다. 그 와중에 책을 다 태워버려야 한다는 여자와 구텐베르크로 인쇄된 초판본 성서는 지켜야 한다는 남자의 갈등도 귀엽다. 한 편 샘의 여자친구는 다리의 부상으로 고열에 시달려 목숨을 잃을 위기에까지 처해 상황은 한층 더 나빠지고, 결국 샘의 요청을 듣지않고 나간 모든 사람은 추위로 얼어죽는다. 결국 아버지는 아들을 구해내고 아들은 여자친구를 구해낸다.2. 투모로우속의 인상 깊었던 장면-> 헐리우드와 시내가 망가지는 모습을 담고 있다. 이 장면을 통해 사람들의 무자비한 개발과 자연훼손에 뒤따르는 자연의 보복이 연상되었다. 자연의 보복은 상상을 초월했고 인간들이 자연의 힘 앞에서 얼마나 무기력한지 알게 되었으며 다시한번 자연보존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아버지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던 장면이라 기억에 난다. 아버지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써 직장과 가정 사이를 오가면서 힘들게 사는 까닭에 자식과의 사이가 소원해지기 마련이다. 이 영화에서 그런 점을 잘 잡아내서, 결국 아버지가 아들을 구하러 죽을지도 모르는 사지로 뛰어는 장면은 역시 부성애라는 오랜 모티프를 통해 사랑을 보여준다. 또한 생존 여부에 대한 확신 없이 두 사람간의 신뢰감만으로 재회에 이르는 이 장면이 특히 인상깊었다.3. 전체적인 감상평재난에 관한 인간의 역사는 오래 전부터 있었다. 인간은 여러 번에 걸친 재난에서 살아남았었다. 그러한 재앙을 여러 번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인간은 자연의 소중함을 알지 못한채 훼손된 것에 대한 보존은 커녕 과거에 비해 보다 더 개발을 하는 등 자연훼손을 일삼고 있다.
    독후감/창작| 2007.08.30| 4페이지| 1,000원| 조회(1,040)
    미리보기
전체보기
받은후기 99
99개 리뷰 평점
  • A+최고예요
    32
  • A좋아요
    32
  • B괜찮아요
    22
  • C아쉬워요
    7
  • D별로예요
    6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5월 03일 일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6:07 오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