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위험한 아이들"을 보고루앤 존슨이라는 여교사와 학교에서 문제아 반으로 낙인찍힌 아이들과의 아름다운 이야기다. 루앤존슨은 미해병대 복무를 정리하고 정교사의 자격증을 얻기위해 켈리포니아 북부의 한 고등학교에서 교생실습을 받게 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루앤이 맞게 될 반은 문제아학급, 일명 아카데미 클래스였다. 그녀가 담임을 맞은 이 반의 학생들은 하나같이 어두운 환경에서 성장하여 접근하기 힘든 반항심리를 지니고 있지만 누구보다도 진심어린 애정과 관심을 가져다 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너무나도 어긋나 있는 아이들에게 루앤은 시를 가르치며 학생들에게 지금이 아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면서 알면 알수록 선택의 기회가 많아진다는 것을, 세상을 헤쳐나갈 힘이 생김을 가르쳐준다. 처음에는 꼼짝도 않던 아이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새롭게 변해 가는 모습이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루앤은 아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했으며, 자신감이 없던 아이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며 한 인격체로서 인정해 주고 친구가 되어준다. 그런데 유독 한 아이만은 루앤을 따라주질 않는다. 에밀리오라는 아이는 다른 친구들까지 루앤을 따르지 않도록 만든다. 에밀리오는 결손가정 출신에다 가난했다. 지금까지 아무도 사랑을 베풀어주지 않았기에 늘 반항하며 살아왔다. '선택하다'는 말을 가르치면서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자신이 선택하는 것임을 알게 한다. "죽음이 온다해도 스스로 죽지는 않는다"는 시귀절을 통해 에밀리오는 루앤을 선생님으로 인정하고 따르기 시작한다.그러나 자신의 여자친구를 빼앗았다고 생각한 한 아이에게 총살을 당하고 만다. 자신의 고민을 교장선생님께 말하려고 갔다가 노크를 하지 않고 들어왔다고 되돌려 보냈기 때문에 에밀리오는 죽고 만다. 여기서 나는 기성세대들을 잘못된 고정관념을 잘 읽을 수 있었다. 아이들의 입장에서보다는 자신의 잣대로 그들을 평가하고 잘못되었다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우리 어른들이 아닌가 반성해 본다. 자신을 찾아온 에밀리오를 좀더 따뜻하게 맞이해 주고 그의 고민을 들어 주었다면 에밀리오는 죽지 않았으리라. 에밀리오의 죽음으로 인해 반 아이들은 슬픔에 쌓이고 루앤은 학교를 떠날 결심을 한다.어렵게 자신이 학교를 떠난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알리지만 아이들은 루앤이 학교를 떠나지 말았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을 드러낸다. 모두들 루앤이 자신들의 빛이며 그 빛을 선택한다는 말로써 루앤의 마음을 돌려놓는다. 루앤이 자신들에게 보여주었던 사랑의 방법들을 동원해서 루앤을 다시 자신들과 함께 있게 만든다.열정적이고 도전적인 학생들과 미래에 대한 희망과 용기를 끊임없이 심어주는 여 교사의 아름답고도 감동적인 만남이 감동을 주었다.변화를 싫어하는 교육위원회의 그릇된 정책은 학교 발전을 위해 있기보다는 오히려 학생들의 지도에 큰 장애물이 되었고 미국 공립학교와 사립학교의 차별화도 큰 문제로 제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학생들의 잘못한 행위에는 반드시 처벌이 뒤따르고 학생들의 가정에서조차 교육에 대한 열의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꺾어 버리는 모습 등을 보면서 사회 전반에 걸쳐 많은 문제들이 악 순환을 거듭하고 있다.이와는 대조적으로 경험이 많지 않은 여교사는 물과 기름처럼 융합되지 않는 관계 속에서 고민하고 연구하기 시작한다. 그녀의 커리큘럼을 보면 교과목과는 먼 내용인 것 같은 주제의 내용을 가지고 접근을 시작하고 교육위원회의 옳지 못한 정책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를 공유한다. 우리 사회에서 보기 어려운 모습과 함께 성인으로서 학생들을 접촉하는 성숙한 태도를 볼 수 있다.학생들에게 늘 용기를 심어 주는 여교사는 빈말이 아닌 행동으로서 학생들에게 존재한다. 그리고 순간의 올바른 선택으로 미래를 바꿀 수 있도록 도와주는 모습 속에서 세상을 바꿔 나가는 사회복지사의 모습을 보게 된다.영화 “사랑의 기적”을 보고1990년에 제작된 영화인 ‘사랑의 기적’(Awakenings)은 ‘후기뇌염 기면성’으로 고통받고 있던 환자들이 한 정신과 의사의 헌신적인 치료와 사랑을 통하여 회복되는 것을 소재로 하고 있다. 후기뇌염 기면성 환자들은 정신의 활동이 멈추고 온몸의 근육이 마비되는 증세를 보인다. 영화 ‘사랑의 기적’은 1969년에 베인브리지 병원에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감독은 페니 마살(Penny Marshall)이며 주연은 로버트 드니로(Robert DeNiro)와 로빈 윌리엄스(Robin Williams)가 맡았다.레너드(로버트 드니로 役)는 어릴 때 앓았던 뇌염의 후유증으로 11살 때부터 손이 떨리기 시작하면서 근육이 점차 굳어져 갔다. 이후 레너드는 학교를 그만두고 병원에서 줄곧 성장하게 된다. 1969년 신경학 박사인 말콤 세이어(로빈 윌리엄스 役)가 베인브리지 병원에 부임하게된다. 그는 자신을 돌보지 않는 헌신적인 치료와 사랑으로 환자들을 대한다. 어느 날 우연히 세이어 박사는 환자들이 공을 받아내는 모습을 보고 그들의 내면에 의식이 살아있음을알게된다. 환자 한사람 한사람을 유심히 관찰하던 세이어 박사는 그들의 의식을 일깨우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들을 찾아낸다. 그리고 환자들 대부분이 과거에 뇌염을 앓았다는 사실도 밝혀낸다.
하늘사랑 주간보호센터를 다녀오며느낀 점과 사회복지사로서의 역할장애인 관련기관을 자원봉사를 자주 갔었지만 기관방문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첨엔 기관에 근무하는 분들이 바쁜데 설명을 잘해주실까 하는 의문점도 들었지만 상세히 설명을 들었다.우리 조가 방문한 하늘동산 주간보호센터는 사랑의 복지법인 사랑의 교회 사회복지재단의 주간보호센터로 2004년 1월에 정식으로 인가가 난 시설이다.시설은 규모가 그다지 크지는 않았지만 전국에서 사회복지 프로그램 만족도가 2위라는 데에서 깜짝 놀랐다. 무엇보다 기관에 근무하는 사회복지사분들의 자신감과 자신의 기관이 최고라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작년엔 일본에 갔었는데 국빈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총인원 30여명이 갔는데 30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도와 주었 다고 한다. 때 마침 한일 우호협력 40주년이라 일본 정부가 에산을 지원하고 만찬도 준비하였다고 한다.프로그램의 시설과 규모면에서 미국보다 훨씬 작지만 프로그램의 내실면에서 한국이 강하다고 말씀하였다.프로그램을 짤 때는 즐거움을 줄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서 무엇보다 사랑과 열의 열정이 중요하다고 또한 프로그램 간에 서비스를 제공할 때 자격증이 있는 전문가를 데려와서 교육을 한다고 하였다. 토요일 장기 프로그램을 신설중이라고도 하였다지역사회에서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기관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복지선생님의 생각중 하나가 새로운 사업을 하려고 할 시에 이미 기존의 다른 기관이 그에 대한 사업에 대한 구상하고 있거나 실시하고 있다면, 그 기관에 자원을 지원해주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고, 다른 기관이 시행하고 있지 않는 사업들을 시행하고, 지역사회에서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기관이였다. 그래서 타 기관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복지사업에 임하고 있으며, 네트워크 구축이 잘 되어 있어 클라이언트에게 신속하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나는 사실 사회복지사가 되면 사랑과 열의 열정이 중요한 것은 알았지만, 일의 고달픔과 힒듬 으로 인해서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지 알았다. 그러나 복지선생님은 나의 생각을 변하게 만들었다. 사실 복지사가 급여도 작고 공무원보다 시간도 많이 근무해서 복지일은 배제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보다는 ct와의 관계에서나 ct에 대한 사랑 등에 의해서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평생 봉사의 면에서 다시금 복지사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2. 세계적으로 관심 있는 고장을 1곳 선택해서 그 특성에 대해서 조사해보시오.“이스라엘(예루살렘)”1. 서론 - 선정동기이스라엘 기독교 문화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곳 한 중학교 2학년 때 쯤 인가?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성경에 나오는 역사속의 이스라엘이 아닌 실제이스라엘에 대해서 차츰 알게 되었다. 이스라엘이란 나라를 두 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었다. 정말 대단한나라, 정말 나쁜 나라 이렇게 두 가지 의미였다. 대단한 나라로써의 이스라엘은 2차 세계대전이 끈나고 그 가나안땅을 다시 찾은 것이고 또한 그것을 전쟁을 통해서도 고수할 정도로 막강한 힘을 지녔다는 그 유대인 한사람 한사람이 세계에서 많은 영향력을 끼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으로 인하여 팔레스타인과의 분쟁이 끊임없고 그 땅을 차지하는 과정이 온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물론 역사는 항상 승자에게만 기를 들어주므로 어쩔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이스라엘에 대하여 나는 더더욱 궁금해졌다. 다빈치 코드라는 책을 통하여 시오니즘과 성배 예수그리스도에 대하여 한 번 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생각해보았으며 예배중의 설교시간이나 내 삶 속 에서 어찌 보면 가장 가까운 나라가 이스라엘이 아닌 가 생각 할 정도로 일본 중국과 같은 표면적인 나라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나라가 바로이스라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알면 알수록 점점 미궁 속에 빠져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며 너무나 많이 역사적인 사실들과 관련이 되어있어서 인지 그 개념에 대해서 우선 알고 들어가지 않으면 이스라엘의 특성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을 것 같아서 이 나라를 선정하여 좀더 깊이 알고 이 나라의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선택하였다.2. 본론이스라엘과 예루살렘, 시오니즘, 팔레스타인과의 관계 등에 대하여 우선적으로 나루고 예루살렘의 지역적 특수성에 대하여 알아본다.1) 배경이스라엘위치 : 지중해 동남방면적 : 2만 425㎢인구 : 647만 3000명(2003)인구밀도 : 316.9명/㎢(2003)수유태인(스파르딤)들은 사회구조의 저층을 형성하여 유태인사회안 에서도 갈등이 표출되고 있으나, 점차 이스라엘에서 태어나고 교육받은 새로운 세대(사브라)들이 사회의 주류로 성장하게 됨에 따라 이러한 갈등구조는 점차 해소되어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있으며 유태사회안에서의 전통주의자와 개혁주의자간의 갈등과 함께, 최근 구소련 붕괴 후 이 지역으로부터 대규모로 이주한 새로운 이주민들도 정치세력화에 성공하여 이익집단화 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이 요즘 정세다.종교적인 면에서는 종교의 자유를 추구한다. 이스라엘 건국선언문(1948)은 모두에게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각각의 종교 공동체는 안식일, 신앙생활, 내부 문제를 관리하는데 있어 자유롭다. 각 종교는 법에 의해 종교 의회와 법원을 가질 수 있도록 보장되어 있으며, 종교 법원은 결혼, 이혼과 같은 개인의 신상문제에 대해 관할권을 가지고있다. 종교 사원의 종류로는 유대인회당(전통적인 유태교 예배는 성인남자 열명이 모여야 가능함. 매일 세번의 기도를 드리며 남녀가 분리되어 앉음. 예배는 랍비, 선창자 또는 회중의 한사람에 의해 주도됨. 랍비는 신과의 중계자가 아니며 선생임. 회당의 중심음은 신성한 궤(Holy Ark)로 예루살렘의 성전산을 향하며 안에 토라 두루마리를 넣음. 성서를 일주일분으로 쪼개서 매일 읽어나가 일년이면 성서 전체를 일게됨), 이슬람교 사원(이슬람교 예배인들은 하루에 다섯번 예배를 봄. 남자와 여자가 분리돼 예배를 보고 신발을 벗어야 하고 의식적 세정식이 거행됨. 무슬림들은 사우디 아라비아 메카를 향해 기도하는데 메카의 방향은 사원벽면에 '미라브'라는 틈새로 표시됨. 예배는 이맘이라는 무슬림 예배 지도자에 의해 거행됨. 금요일은 전통적 무슬림 안식일로 대중설교가 있음), 교회(기독교 예배의 형식과 횟수는 종파에 따라 다름. 모두 일요일을 안식일로 특별한 의식을 가짐. 예배는 신부나 목사에 의해 거행되고 남녀가 함께 예배를 봄. 남자는 대개 머리 위에 쓴 것을 벗어야 하나 여자는 머리를 덮음. 예배는 의 정규군이 팔레스타인으로 진격하면서 벌어진 전쟁을 통해 이스라엘은 갈릴리 지방, 연안지역, 이집트 점령 가자지구 일부, 네게브 사막, 예루살렘 북서부지역을 포함해서 UN의 원래 분할안보다 50% 정도가 더 많은 영토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약 72만 명의 팔레스타인 아랍인이 이스라엘을 떠나 주변 아랍 국가들에서 난민생활을 하게 되었다. 1950년 요르단 왕국이 UN의 계획대로라면 이 지역에 세워질 아랍국의 영토에 포함된 요르단 강 서안을 공식적으로 합병했으나 국제적으로 인정받지는 못했다. 후에 웨스트뱅크로 알려진 이 요르단 점령지역은 1967년 가자지구, 시나이반도, 골란고원, 동 예루살렘과 함께 이스라엘에 점령되었다. 1979년 캠프데이비드협정이 조인되면서 규정에 따라 이스라엘은 1979~1982년에 시나이반도를 이집트에 되돌려주었으나 웨스트뱅크, 가자지구, 골란고원, 동 예루살렘은 계속 점령하고 있다. 아랍연맹은 1974년 10월 모로코의 라바트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를 팔레스타인 아랍인의 유일한 대표기구로 인정하였다.PLO는 1969년 헌장에서 분명하게 밝힌 것처럼 오랫동안 이스라엘을 제거하고 팔레스타인 위임통치 지역 안에 이슬람교도, 그리스도교도, 유대교도 각각의 독립 국가를 건설할 것을 천명하였다. 그러나 1988년에는 이를 약간 수정하여 팔레스타인문제 해결을 위한 2개 국가 수립 안, 즉 이스라엘과 공존하게 될 팔레스타인 국가를 세우는 안에 대해서 처음으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1993년 9월에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간의 평화협정이 맺어져 가자와 웨스트뱅크 지역에 팔레스타인 자치기구의 설립이 확정되었다.3) 유대인과 유대인의 문제유대인은 보통 헤브라이인·이스라엘인이라고 불린다. BC 10세기경 이스라엘왕국이 북쪽 이스라엘왕국과 남쪽 유다왕국으로 갈리고, 바빌론유수기를 거쳐 고향으로 돌아온 이스라엘인을 모두 유대인이라 불렀고, 스스로 이스라엘인이라고 부르기를 좋아하였다. 디아스포라(離散)로 자손은 세계 각지로 유랑 연설 및 안내책자, 여러 언어로 발행되는 신문들을 통해서 적극적인 선전활동을 전개하였다. 1905년 러시아혁명이 실패하고 유대인에 대한 학살과 억압이 뒤따르자 러시아의 젊은 유대인들은 선구적인 이주자들로서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1914년에는 팔레스타인에 9만 명에 달하는 유대인들이 있었고, 이 가운데 1만 3000명에 이르는 이주자들은 43개의 유대인 정착촌에서 생활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정치적인 시오니즘이 재주창되었고, 그 주도 역할은 영국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이 맡게 되었다. 이러한 시온주의자들로서 C.A.바이츠만과 N.소콜로는 1917년 11월 2일, 영국으로부터 팔레스타인 내의 유대 민족국가 건설에 대한 영국의 지지를 약속하는 밸푸어선언을 얻어내는 데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뒤이어 시온주의자들은 팔레스타인의 도시 및 농촌에서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하여 유대인 자치조직을 완성하였고, 그들의 문화생활과 헤브라이어 교육을 강화하였다. 1925년 3월 당시 팔레스타인 내의 유대인 수는 공식적으로 10만 8000명에 달하였고, 1933년에는 23만 8000명으로 증가하였다.아랍인들은 팔레스타인이 결국 유대인 국가가 되는 것을 우려하였고, 따라서 시오니즘과 이를 지원하는 영국의 정책에 강력하게 반발하였다. 특히 1929년과 1936~1939년에는 아랍인들이 반란을 일으켜 영국은 아랍의 요구와 시온주의자들의 요구를 조정하기 위한 계획을 마련하게 되었다. 히틀러주의가 대두되고 그에 의한 유대인 학살이 자행되자 유대인들도 도피처로서 팔레스타인과 그 밖의 지역, 특히 시오니즘을 옹호하는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아랍인들과 시온주의자들 간의 긴장이 고조됨에 따라 영국은 팔레스타인 문제를 처음에는 미국과 협의하였으나, 후에는 국제연합에 일임하였다. 1947년 10월 27일 국제연합은 팔레스타인을 아랍 국가 및 유대 국가로 각각 분할할 것과 예루살렘을 국제화할 것을 제안하였다.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국가가 정식으로 성립하자 1948있다. 유대교 역사상 종말론이 실제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것은 페르시아 사상의 영향을 크게 받은 후 BC 2세기 이후이지만, 이스라엘적 종말사상의 맹아(萌芽)는 이미 바빌론 유수 이전의 예언자들에 의하여 싹텄다. 그리스도교는 바로 이 종말론적 정신풍토 속에서 태어났다. 그리스도교는 처음에 유대인 일부에게 받아들여져 팔레스티나와 외지(外地) 거류민의 유대교 회당을 포교의 장(場)으로 활용하면서 전파되었으나, 할례(割禮) 문제를 계기로 하여 유대인의 범주를 넘어섰다. 유대교측은 예수가 일반 민중을 상대로 한 종교적 인격자라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그리스도교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하느님의 아들, 즉 메시아로는 인정하지 않으며, 유대교에서의 메시아 대망(待望)은 현재까지도 존속하고 있다. 실제로 메시아라고 호칭되거나, 자칭하여 다수의 추종자를 끌어들인 인물이 근세에 이르기까지 때때로 나타나고 있다. 현재의 이스라엘을 성립시킨 시오니즘 운동의 배후에도 성지(聖地)귀환 촉진의 한 요인으로서의 현대적인 메시아 사상이 깔려 있음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유대교 본래의 특색은 율법(律法)에 있다. 율법의 기초는 계약의 개념으로서, 이것은 원래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경제적·사회적 통념이었는데, 그것을 신(神) 대 인간의 관계 속에 끌어들인 점에 유대교의 특성이 있다. 이스라엘 민족의 신은 그들의 조상을 선택하여 자기 백성으로 삼았고, 그 자손들에게 약속한 땅을 주어 그들을 지키고 축복한다는 것이 선민사상의 개념이다. 한편 그들은 신앙의 조상 아브라함같이 조상 대대로 믿어온 신에게만 오직 정성을 다하고, 자신들을 신의 백성으로 선택한 야훼신 이외의 신을 섬기지는 않는다. 이 계약이행의 내용은 신의 편에서는 '헤세드(은혜)'이고, 백성 쪽에서는 신이 부여한 율법의 준수이다.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것은 계약위반이므로 신의 분노를 초래한다. 특정집단에서만 숭배되는 일신(一神)이 과연 종교사에서 말하는 일신교의 신(神)관념과 합치하는지의 여부는 또 다른 문제이다. 보편(普遍)종교에 비하.
유럽의 신지역주의[카탈루냐]1) 내용정리카탙루냐 :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포함하고 있는 주.면적 31.392(6.3%), 인구 620 만 명(15.6%), 총생산 1050억 달러 (19.1%)1인당 GDP 17223달러, 주도 바르셀로나反目접고 경제적 實利선택카탈루냐는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포함하고 있는 북동부지역의 주이다. 이곳에서는 주민대다수가 스페인보다 지방언어 카탈루냐어나 영어를 더 선호하는데다 스페인 사람이라기보다 카탈루냐 인으로 불리길 원한다. 이러한 사실은 자동차 번호판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이는 유럽연합이 자동차번호판체계를 통일한 후 모든 번호판에 국가약어를 붙이고 있는데 자존심이 강한 카탈루냐 사람들은 스페인 사람이기 이전에 카탈루냐 사람임을 강조하려 스페인의 약어인 ‘E'대신 지역의 약어인 CAT가 새겨진 스티커를 번호판에 붙이는 것이다. 이처럼 카탈루냐는 아주 독립적이며 중앙정부로부터의 분리주의적 경향이 강하다.학교에서는 카탈루냐어를 국어로 가르치고 스페인어와 영어는 외국어 취급을 한다. 자치정부가 발행하는 도로표지판 상점 간판 등도 대부분 카탈루냐어다. 그렇다고 해서 카탈루냐 사람이 스페인에 분리 독립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가우디 대학의 후안 바세 고다 교수는 “주민대다수는 문화적 독창성과 경제적 자치, 더 많은 혜택을 원하고 있고 분리 독립을 원하는 사람은 일부일 뿐이다.”라고 말하고 있다.스페인의 주정부와 다른 지역과 긴장관계였지만 이 같은 긴장과 경쟁의식이 분열과 파탄이 아닌 더 많은 자치와 발전을 불러오는 밑거름이 되었다.카탈루냐의 지역정당인 CIU는 96년 총선 당시 1당이면서 과반수를 얻지 못한 인민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면서 폭넓은 자치와 재정적 여유를 확보하게 되었다. 또 중앙정부로부터 카탈루냐 언어정책을 위해 1백억 퍼세타(약 7백억원) 을 지원받게 되었다. 이러한 CIU는 79년부터 20년째 지지율 40%이상 확보하며 장기집권하고 있다.카탈루냐의 일부단체는 분리 독립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일반시민들의 반응은 시큰둥한 편이다. 주민들이 카탈루냐의 전통과 문화에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지역의 경제적 발전을 위해서는 스페인의 다른 지역과 공존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며 지역의 분리 독립은 필요성이 없다고 말한다. 카탈루냐의 사람들은 중앙정부나 다른 지역과의 극한대립보다 자신들의 정체성을 인정받고 경제적 실리를 챙기는 현실노선을 택했다. 이로써 스페인에서 가장 부유한 지방으로 번영을 유지할 수 있었다.지역독자성 인정해야 모두 발전카탈루냐 자치정부의 호셈 캄프스 평가 조사국장은 “지역간 충돌이 격화되면 누구도 승자는 없다며 지역별 독자성을 인정하고 경쟁과 보완을 통해 전체의 발전을 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카탈루냐가 스페인의 일부라고 인정하지 않는 경향과 풍습이 다른 것은 중세이후 오랜 기간 독립왕국을 이루고 살았고 언어와 문화 전통 민족적 기질이 다른 지역과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하였고 CIU의 장기집권이 스페인에서 독립하자는 주민들의 열망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유럽 통합되면서 국가의미가 상실되고 있는데 구지 독립은 의미가 없으며 스페인에서 카탈루냐의 지위가 확실히 보장받기를 원하는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카탈루냐 사람들이 분리주의적이고 중앙에 저항적이라는 인상을 가질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분리주의 운동이 거세진 것은 프랑코 총통의 군부독재 시절 강권 통치에 대한 반발 때문이라고 하였다. 조사국장은 중아정부와의 관계에서 가장 큰 마찰요인은 재정적인 면이며 카탈루냐는 스페인 4개 지역의 17개 자치주 가운데 가장 많은 세금을 내고 있지만 정작주정부로 돌아오는 돈은 별로 많지 않다. 이 때문에 주민들이 불만이라고 말하였다. 또한 EU는 국가들의 연합체가 아니고 지역 연합체이다. 여러 분야에서 협력하고 있으며 스페인 중앙정부와 통하지 않고 직접 관계를 맺고 있다. 스페인 정부는 싫어하지만 중앙이 특색 있는 지역의 사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 지방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라고 하였다.2) 참신한 생각 , 3) 우리사회의 적용두 기사를 읽으면서 우리나라의 제주도, 독도, 울릉도를 즉시 떠올렸다. 우리나라의 지역사회에서 이같이 힘 있는 카탈루냐 같은 지역사회를 꿈꾸기는 어렵다. 수업시간에도 말했듯이 우리는 중앙집권체제가 너무 일찍 틀을 잡았고 꾸준한 서울 중심의 서울공화국으로 인해서 지역사회의 힘이 생긴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지방자치법이 전면 개정 된지 20년이 체 안 된 지금 지역사회의 힘을 바탕으로 카탈루냐처럼 독자적인 발전을 위한 것은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제주도 울릉도, 독도 와 같이 섬 지방에서 독자적인 방언이나 문화적인 영화 간판 등을 사투리로 변화시키는 것도 하나의 지방특색을 나타낼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지방 어 과목을 개설해서 그 지역대학의 꼭 필요한 특기전형으로 넣어서 지역적 특색이 없어지지 않게 하는 것 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