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이해?공룡이 새가 된 이유공룡과 새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공룡은 몸집도 크고 무게도 많이 나가고 공룡의 피부는 비늘 같은 것으로 이루어져있다. 그러나 새는 몸집도 작고 무게도 적게 나가며 새는 깃털이 몸 전체를 둘러쌓고 있다. 또 공룡은 파충류에 속하고 새는 조류에 속한다. 이렇듯이 공룡과 새 둘만을 보면 둘은 전혀 다른 종류의 동물이다.그런데 공룡이라는 거대한 파충류가 새로 진화해가는 과정에는 시조새라는 공룡의 친족인 동물이 있었다. 시조새는 공룡과 새의 중간단계이다. 사실 시조새는 깃털이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육식공룡이나 다름없다. 이빨을 가진 부리. 긴 꼬리, 날카로운 발톱, 등 모든 해부학적 특징은 시조새가 전형적인 새보다는 공룡이 더 가깝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콤프쏘그나투스(compsognatbus)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공룡과 시조새는 거의 비슷해서 한때 시조새의 표본중 하나는 콤프쏘그나투스로 분류되기도 하였다. 이 동물은 화석을 살펴보았을 때 화석에 깃털 자국이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서 구분된다.1926년 하일만이라는 학자는 공룡의 차골로 진화할 수 있는 쇄골은 이미 퇴화했기 때문에 새로 진화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차골은 한 쌍의 쇄골이 V형으로 유합된 것으로 시조새를 포함해 새에게서만 나타나는 특징이다. 즉 새의 차골이 쇄골이 없는 공룡에게서 진화했다는 이론은 진화상 한번 없어진 형질은 같은 종에서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는 ‘돌로(Dollo)의 법칙’에 위배된다. 그는 새가 삼첩기에 악어와 공룡, 그리고 익룡의 공동조상인 원시 파충류에서 진화 했다고 주장한다.1964년 오스트롬 교수가 데이노니쿠스와 시조새가 앞발과 뒷발 구조 및 기능이 같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전에 간과했던 중요한 사실중 하나는 새가 진화된 두발 육식공룡처럼 발가락으로 걷는다는 것이다. 반대로 박쥐와 익룡은 네다리로 걷는 조상으로부터 날 수 있게 진화하여 발바닥으로 걷는다. 또 시조새의 앞발을 보면 지금의 새보다는 더 원시적이고 작고 민첩한 육식 공룡의 전형적인 앞발이다. 데이노니쿠스가 속한 마니랍토 그룹은 시조새와 전형전인 새에게서 나타나는 진화된 특징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다. 이러한 특징들은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쳐서 나타난 것이다. 새의 진화의 첫 단계는 뒷발로만 걷는 이족보행의 완성이다.이는 공룡에게도 나타나는 특징이다. 육식공룡은 이동하는데 전혀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앞발이 자유로워졌다. 이족보행은 오직 새와 공룡만 가능하다. 수각류 공룡은 머리뼈에 많은 구멍을 갖고 뼛속을 비게 함으로써 골격을 가볍게 하였다. 목은 길어지고, 등을 수평으로 유지하여 뛸 때 뒷다리를 중심으로 머리와 꼬리가 균형을 이룬다. 또한 긴 다리의 넓적다리뼈는 정강이뼈보다 짧아졌으며 종아리뼈는 퇴화하였다. 뒷발가락중 세 개만 사용하고 첫째 다섯째 발가락은 퇴화되어서 현재의 새의 발과 같이 되었다. 수각류가 테타누라와 마니랍토 그룹으로 더 진화하면서 앞발가락수는 3개로 줄고 짧은 앞발은 뒷발의 길이 만큼 길어진다. 특히 마니랍토 그룹은 두개의 손목뼈가 합쳐져 반달형 뼈로 변해 손목을 상하뿐 아니라 좌우로도 움직일 수 있다. 이는 손을 새처럼 접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날갯짓이 가능하게 되었다. 쇄골도 중앙에서 합쳐져 조류의 것처럼 폭도 넓어지고 부메랑 모양의 차골로 바뀐다. 치골도 앞을 향한 용반류의 골반 형태에서 점점 뒤로 향하게 된다.공룡에게 없는 깃털은 어디에서 나타난 것인가? 깃털은 비늘과 함께 조직적으로 발달한다. 새의 다리를 보면 전형적인 비늘에서 깃털로 변화한 것을 볼 수 있다. 이 두 조직은 결코 같은 장소에서 발달하지 않는다. 2001년 중국 랴오닝 지역에서 약1억 2500만 년 전 딘 전기 백악기 호수 퇴적층에서 깃털을 가진 다양한 공룡과 새 화석일 발견되어 깃털의 진화에 대한 새로운 사실이 확인 되었다. 196년 발견된 씨노싸우롭테릭스의 큰 특징은 머리에서 꼬리 끝까지 등의 중심부에 발달된 털 같은 구조이다. 과연 이 털같이 생긴 검은 물질은 무엇인가? 그것은 체온을 유지하거나 화려한 색을 표현하기 위해 진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실존주의 문학에 대해서실존주의란 원래 본질에 대한 현재존재라는 뜻이다. 현재존재는 물건의 경우에는 상대적이지만 인간존재의 경우에 있어서는 절대적이다. 물건이나 동물인 경우에는 서로 바꿀 수도 있고 얼마든지 대신 할 수 있지만 인간은 남과 대신 될 수가 없다. 나라는 인간, 나라는 개인은 남과 절대적으로 바꿀 수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이며, 그자체가 독립하여 존재하는 단독자이다. 실존주의 철학이란 인간이 자기 초월에 의해서 불안과 자기를 되찾으려는 자기회복의 철학이다. 사르트르에게서 실존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또 하나는 ‘실존은 주체성이다’이다. 니체. 하이데거. 사르트르 등의 무신론적 실존주의가 등장한 후 기독교의 창조론적 세계관이 의심받자 이들의 반격은 ‘인간이 신의 피조물이 아니라면 도대체 인간의 본질이 무엇이냐’였다. 이에 대한 대답은‘인간 존재 그 자체는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의식이 있는 존재(대자적 존재: 인간)와 의식이 없는 존재(즉자적 존재: 사물)로 나눌 수가 있다. 예를 들면 책상의 경우 미리 정해진 설계도에 따라 목수의 의도대로 만들어 지기 때문에 본질이 실존보다 앞선다. 그러나 인간의 경우는 그 행동이 순간순간 변화하게 되어 잠시 후에 어떤 행위를 할지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의 본질이 무엇이라고 규정할 수 없다. 따라서 인간의 경우 ‘실존이 본질보다 앞선다. 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로부터 인간의 본질을 미리 생각하고 규정해서 만들어낸 존재, 즉 신은 없다. 왜냐하면 신이 존재한다면 인간은 신의 의도를 따를 것인데 그렇지 않고 순간순간의 행동을 자신이 창조해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르트르는 인간을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 행동이 가능한 주체적 존재로서 파악하였다. 자유로운 선택과 결단에 의해서 자기 운명을 스스로 책임지며 살아가는 행동적 실존으로서 인간을 파악하였다. 즉‘실존은 주체성이다’라고 주장하였다,즉자는 그자체가 충만하기 때문에 그냥 그것 그대로 있지 무엇인가를 요청하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결핍을 모른 채 충만하다. 반면 대자는 언제나 무엇인가로 채워질 필요가 있는 존재이다. 인간은 언제든 어디든지 결코 충만한 상태에 놓이지 않는다. 즉자는 인과 관계에 의해서 미래를 예측하여 탄생된 것이지만 인간은 자신의 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미래를 함부로 예측할 수 없다. 인간의 자신의 의식을 가지고 어떤 일을 선택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에 불안감을 가지게 된다. 인간은 불안감에서 빠져 나오려 노력하지만 이것은 즉자로 전환될 때만 가능하다. 왜냐하면 즉자는 의식의 완전한 상실을 의미하게 되며 그러한 상황에서 어떠한 경험도 있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죽기 전까지 절대로 즉자가 될 수 없다. 사람들이 사이비종교에 빠지는 원인이 이런 것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이비종교는 교주가 알아서 결정하고 신도들은 따르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결정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모든 다른 것에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스스로 의미 없고 없어도 될 존재라 생각한다. 우리는 의미 없이 존재하면 삶의 고통을 겪으면서 아무런 궁극적 의미나 희망도 없이 살아간다. 인간의 고통은 자신이 쓸모없다는 것에서 빠져 나온다면 고통에서 얼마정도는 해방될 것이라 생각이 된다. 사르트르의 [구토]에서는 인간은 그들의 존재의 궁극적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면 구토를 느낀다고 한다. 이는 생리적인 구토가 아니라 내적인 고통과 혼란이다. 나의 시선으로 남을 보면 그는 자율성을 상실하여 즉자가 된다. 나 역시 남의 시선으로 보면 즉자이다. 사르트르는 ‘타인은 지옥이다’라 한다. 타인이 지옥이라면 타인과 접촉하지 않아야하는데 우리는 타인과 어울려 살아간다. 나의 자율적 주체로서 나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서 나는 타인이 의식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내가 자유적 존재임이 타인에 의해 인정 될 필요성을 나는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사르트르는 “나는 계속 존속하기 위해서 타인의 고통이 필요하다.”라고 말한다. 사람은 타인의 고통을 보면서 자신의 행복을 확인하기 때문에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카뮈의 경우 [이방인]을 통해서 부조리 성을 이야기하지만 카뮈 자신은 “나는 실존주의자가 아니다”라 말하고 있다. 카뮈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는 궁극적으로 무의미하다라 이야기한다. 세계와 인생에 궁극적 의미가 없다고 해도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의미가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해도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의미가 충분히 있을 수 있다는 실존주의적 신념이다. 실존주의는 어떤 사조보다 더 세상 속 문학에 대해서 가장 크게 고민하고 사회문제에 대해서 가장 많은 고민을 한 사조이다. 문학이 철학적 기능을 넘어서서 사회/정치적 기능을 할 수 있다. 주장한다. 실존주의는 사르트르나 카뮈가 철학자 이자 문학가인 만큼 철학적인 성향이 강한 사조이다.포스트 모더니즘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에 대한 반성과 비판이 일어나기 시작한 20세기 중반에 나타난 사조이다. 모더니즘은 일상적 도덕성을 위선, 전통을 거추장스런 구속으로 생각했다. 이에 따라, 역사적 단절을 통해 새로운 가치관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모더니즘은 전통에 대한 비판을 거의 모두 잃어버렸다. 20세기 중반 즉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예술가들은 모더니즘의 한계를 극복할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이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이 대안이자 이것을 수정한 모더니즘의 사촌정도라 볼 수 있다.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상호관계는 4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로 계승적 관계인데 이는 실존적 위기의식과 소외감이나 고립감 같은 주제에서 본다면 이 둘은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둘 다 세계대전 이루 나타났으며 그 당시 사람들의 극도의 위기감과 상실감은 같았을 것이다. 그 사조시기의 작가의 감성 역시 비슷했을 것이다.둘째 포스트모더니즘이 모더니즘의 발전한 관계라는 것이다. 문화적 급진주의라는 관점에서 보면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을 상당히 발전 시켰다. 누보로망, 서픽션등을 탄생시키며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 내고자 하였다. 모더니즘보다 더 새롭고 창의적 예술을 하고자 하였다.또 이 두사조는 대립적 관계라 볼 수 있다. 모더니스트들은 예술작품을 ‘잘 빚어진 항아리’, ‘언어적 성상’등으로 완전하고 통일된 것이라 생각하지만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은 ‘산산조각으로 깨어진 항아리’ ‘언어적 미로’라 표현하며 자신이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소재를 다시 활용할 뿐이라 생각한다.
동남아시아 사회와 문화산티아고 요새, 호치민시, 족자그리고 아유타야필리핀의 산티아고 요새1571년 스페인의 총독 레가스피에 의해 세워진 산티아고 요세(Fort Santiago)는 인트라무로스 성내의 파시그(Pasig)강을 내려다보는 가장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이다. 처음에는 이슬람교도가 나무 울타리를 둘러쳐 요세로 축조하였으나, 스페인에 의해 석조 요새로 재건축되었다.필리핀 마닐라의 인트라무로스(Intramuros). 필리핀 지배의 상징물이었던 스페인의 성벽도시는 옛 모습 그대로 남아 당시 화려했던 스페인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이곳은 필리핀인들에게 식민역사의 아픔이 간직된 곳이다. 그리고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호세 리잘(Jose Rizal)'이라는 필리핀 영웅을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여행자들의 천국인 필리핀. 그러나 그들의 역사 속에는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미국과 일본의 통치를 받았고, 이보다 앞서 1571년부터 1898년까지 스페인의 지배 하에 있었다. 327년이라는 오랜 기간에 필리핀 문화는 완전히 파괴되었고 대신 스페인의 문화가 자리를 잡게 됐다. 현재의 '필리핀'이라는 이름도 16세기 스페인의 국왕이었던 필립 2세의 이름에서 연유하고 있다.마닐라 시가지의 중앙 도로인 로하스 거리를 따라가면 필리핀의 아픈 역사를 엿볼 수 있는 인트라무로스(Intramuros)에 닿게 된다. 인트라무로스의 북쪽에 자리한 산티아고 요새(Fort Santiago) 근처에 도착하자 하얀색 풍선을 단 마차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칼레사(Calesa)'라 불리는 마차로 인트라무로스 지역에서만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다.물이 고인 작은 해자(垓字)를 건너자 문양조각이 화려한 아치형 석조 입구가 이국적인 모습으로 다가온다. 요새로 들어가는 관문은 오랜 세월을 말해주듯 누런 바탕 곳곳에 까맣게 때가 절어 있고, 양 옆의 거대한 성벽은 완전한 검은색을 띠고 있다. 아치형 입구의 상층부에는 왕관을 쓴 사자와 성을 새겨놓은 방패가 양각되어 있다.요새 안으로 들어서 수면보다 낮아서 죄수들은 탈출을 꿈꿀 수도 없었다. 심지어 수로에 물을 집어넣어 죄수들을 수장시키고, 시체는 강으로 흘려보내기도 했다고 한다.1896년 호세 리잘도 이곳에 수감됐다. 그가 갇혀있던 감옥에서부터 광장으로 난 길바닥에는 사람의 발자국이 새겨져 있다. 사형선고를 받고 처형장으로 끌려간 그의 발걸음을 표시한것으로 리잘 공원까지 이어져 있다.요새를 빠져나와 칼레사에 올라탔다. 마차는 인트라무로스의 도로를 따각따각 경쾌한 소리를 내며 달린다.필리핀 사람들이 결혼하고 싶어하는 장소 1위로꼽히는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인 성 어거스틴 교회(San Augustin Church)를 지나 마차가 멈춘 곳은카사 마닐라 박물관(Casa Manila Museum)이다.이곳은 스페인 시대 부유층의 삶을 엿볼 수 있는장소다. 안으로 들어서자 스페인풍 분수대가 가운데 놓인 화려한 석조 정원이 나타났다. 내부에는 식탁, 장식장, 거울 등 당시 가구와 생활용품이 화려한 조명 아래 반짝이고 있다. 스페인 식민문화가 남겨놓은 유적들은 이제 마닐라의 가장 흥미로운 관광지가 되고 있다.베트남과 호치민호치민 박물관 Ho Chi Minh Museum (Bao Tang Ho Chi Minh)호치민 능묘 바로 뒤편, 못꼿 사원 옆으로 200m 거리에 있는 호치민 박물관. 소련의 도움을 받아 만든 건물로 호치민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990년 5월 19일에 개관했다. ?호치민의 생애와 베트남 혁명에 대한 다양한 자료를 전시한다. 특히나 해외에서 보냈던 호치민의 유년시절에 관한 전시물이 많은 편이며 호치민시의 호치민 박물관과 함께 호치민에 대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곳이다.하노이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건물. 베트남 건국의 아버지이자 민족의 영웅인 호치민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호치민은 생전에 그가 죽은 다음 그의 시신을 화장하고 어떤 우상화 작업도 하지 말아 줄 것을 부탁했으나 그의 소망과는 달리 현재 그는 레닌 Lenin, 마오쩌뚱과 더불어 박제된 채로 안치되어졌다. ?1969년 호에서 국학을 다녔고, 판티엣에서 교사로 잠시 근무했으나, 1911년 사이공에서 출발한 프랑스 선박 회사의 주방 보조로 일하며 오랜 해외 생활의 길에 오른다. (그가 배를 탔던 장소는 현재 호치민시 호치민 박물관으로 사용된다.) 파리에 거주하는 동안 응웬 아이꿕 Nguyen Ai Quoc(아이꿕은 한자 愛國)이란 이름을 사용했다. 이름에서 조차 얼마나 조국을 사랑했는지 알 수 있다. 프랑스에 거주하면서부터 식민지 해방운동에 활발한 활동을 펼치지 시작한다.그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제1차 세계대전 후 베르사유회의에 베트남대표로 출석해 ‘베트남 인민의 요구사항 8항목’을 제출하면서부터. 1920년에는 프랑스사회당의 코민테른 지지파에 가담하였고, 프랑스공산당 창립 멤버로 참여했다. 이듬해 공산당의 지원으로 프랑스식민지인민연맹을 결성하고, 기관지 “르 파리아”를 편집·발행하였다. 1923년에는 모스크바로 건너가 국제 공산당 교육을 이수한 후 중국으로 파견, 광쩌우에서 베트남 혁명 청년 동맹을 결성. 그러나 1930년에는 베트남 공산당을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벌이다 다음해에 홍콩에서 영국헌에게 체포되었다. 2년 후 석방되면서 소련과 중국에서 활동하다 1941년 베트남으로 돌아왔다. 베트남을 떠난 지 30년 만의 일이다.베트남으로 돌아와 그가 한 일은 민족주의자와 공산주의자를 규합하여 베트남독립동맹(Viet Minh)을 결성한 것. 42년 투쟁지원요청을 위해 중국에 갔다가 중국국민당에 체포되어 1년 간 수감되었는데, 이때부터 사용한 이름이 호치민(胡志明)이다. 중국에서 석방 된 후 베트남으로 돌아와 1945년에 8월 혁명을 이끌어 냈다. 바딘 광장에서 독립을 선포하고 베트남민주공화국의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그러나 1946년 프랑스와의 교섭이 결렬되고 프랑스가 베트남을 재지배하면서 인도차이나 전쟁을 치르게 된다. 그로부터 호치민은 베트남 독립을 위해 프랑스와 8년간의 전쟁, 미국과의 기나긴 전쟁을 치뤘다. 베트남의 독립에 온 몸을 희생했던 그는 베트남의 통일을 보지 못하고 전쟁있는 300종족 중에서 가장 큰 그룹의 종족인 자바족의 고향과 같은 곳으로 바른 예절과 화합도 중요시되기 때문에 직접화법보다는 간접적인 표현을 많이 하며 종족의 90% 이상이 이슬람을 믿고 있다. 이 도시는 조용하고 깨끗한 역사의 도시, 교육의 도시로 표현함이 좋을 듯 하다. 족자는 오랜 역사가 있는 도시이며 불교나 힌두교의 전성, 이슬람교 개종, 네덜란드의 의한 식민지 지배 등을 받았으며 발리섬에서 믿고 있는 힌두 문화의 뿌리도 자바섬에 있다 족자의 주변에는 불교 왕국 샤이렌드라'가 8세기 중반부터 9세기 중반까지 건립했다고 생각 되어지는 보로부두르, 힌두교 왕국 마따람'이 동시기에 건립했다고 생각되는 쁘람바난 사원 등 유적지가 많다. 이슬람 왕국의 궁전과 그 별궁이던 곳은 지금도 족자카르타와 솔로(옛-수마까르따)에 남아 있으며 네덜란드 식민지 시대의 콜로니얼 건축양식의 건물도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다.보로부두르 사원은 여전히 많은 의혹을 가지게 하는데 이름의 유래부터 불확실한 것이다 산스크리트'어(고대 인도 언어)로 '보로=승방' '부두르=높게 쌓아 올린 곳'이란 뜻에서 '언덕에 세워진 승방'으로 해석하는 설이 있는데 명확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고 한다. 건립된 시기는 8세기 중반 중부 자바에 번영한 샤일렌드라 왕조라고 생각되는데 그 연대는 정해져 있지 않고 공사에 어느 정도 시간이 걸렸는지도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이 보로부두르 사원이 천년동안 역사에서 소각되었다가 다시 발견되었는데 무슨 원인으로 이 정도의 건축물이 1814년 흙 속에서 발굴되기까지 사람들이 잊어 버리고 있었던 것일까요. 이 사원의 건축에 쓰여진 100만개의 안산암의 채석 장소도 머라삐 산의 돌이라는 설이 있는데 구체적으로 발견된 것은 없고 왕조의 쇠퇴, 전염병의 만연, 머라삐 산의 분화에 의한 매몰설 등이 있으며 보로부두르 사원의 토대에 사용된 흙과 사원을 덮고 있던 토사의 토질이 동일한 점에서 완성과 동시에 묻혀버렸을 가능성이 크다.쁘람바난 사원(Candi Prambanan)프람에 감탄할 것이고 고대 인도 서사시 라마야나의 이야기가 매우 약동적으로 새겨져 있다 회랑을 돌아 권선징악 이야기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고전의 세계를 감상할 수 있으며 계단 난간에도 사자나 반인반조(사람+새)의 신 등을 소개하는 볼 만한 석상이 새겨져 있으며 신전 안에 있는 각 측실에는 동쪽에 시바 신, 남쪽에 아가스띠아(시바의 아들=코끼리머리 신), 북쪽에 두르가(시바의 처)의 상이 있다. 특히 시바 상은 연꽃 위에 서 있어 불교와의 관련성이 흥미롭고 관능적인 두르가 상은 전설의 로로 종그랑 처녀가 저주받은 모습으로서 유명하다.끄라똔(Kraton)인도네시아는 거대한 군도로 되어 있고 5개의 주요 큰 섬(수마트라, 자바, 칼리만탄, 술라웨시, 이리안자야)과 사람이 살고 있는 약 6,000 여개의 섬을 포함해서 약 13,700 개의 섬이 있고 조수(潮水) 차이에 의해 썰물 때는 더욱 많은 섬이 나타나 18.000 개의 섬이 된다. 국토의 범위는 서쪽 수마트라 "사방"에서 동쪽 이리안자야 "메라우께"까지 5.100KM이며남북으로는 1.900KM의 아주 광활한 지역이며 실감나게 얘기하면 동서의 길이 5.100KM는 인도네시아에서 우리 나라까지의 거리가 된다(빠른 여객기로 6시간 거리) 호주와 아시아 대륙 사이의 적도에 동서(東西)로 위치하며, 북위 6도 남위 11도 까지이며 경도는 동경 95도에서 141도까지 태평양과 인도양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믄듯 사원(Mendut)족자카르타 시내에서 차를 타고 보로부두르 사원으로 가다보면 보로부두르 사원 도착하기 3km 전에 오른쪽으로 차를 타고 가면서도 보이는 사원인데 화려하고 장엄한 보로부두르 사원과 대조적으로 삼존상 등 부드럽고 우아한 분위기를 지녀 방문하는 사람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하다. 넓은 경내 한가운데 서 있는 불교 사원으로 보로부두루 사원의 반원구형에 비하면 직선을 주조로 한 네모'에 우선 시선이 갈 것이다 직사각형 형태의 기단 부분은 대지에 묵직하게 뿌리를 내린 듯이 자리잡고 있으며 사원의 서남쪽에 만들어진 조각.
깨달음을 얻은 호랑이가 남긴 것....이 책은 호랑이 라자와 스승을 통해서 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지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 생각해 보게 한다. 과연 난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는 중이였으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에 대한 해답이 보였다.깨달음을 얻은 호랑이는 말구니 산속에 사는 호랑이 라자의 이야기로 노년을 동물원에서 보내는 라자는 자신의 인생을 회상하면서 스승의 이야기를 한다. 라자는 산속에서 동물들과 살면서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산속의 모든 동물이 자신보다 아래라고 생각한다, 늘 자신을 숨어서 보고 자신에게 복종하지 않는 표범부부를 싫어한다. 숲 속에서 자만하고 살던 어느 날 암 호랑이를 만나서 자신의 가정을 꾸리지만 행복도 잠시 암호랑이와 네 마리 새끼는 사냥꾼에게 잡혀서 이별을 하게 된다. 라자는 산속과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살다가 마을 사람들이 신고로 대장이라 불리는 서커스 단장에게 잡힌다. 라자는 서커스에서 공연하는 호랑이로 조련 받게 된다. 서커스 생활을 하면서 자신이 의도 하지 않은 자유를 잃어버린 생활을 하게 되고 대장에게 핍박을 받게 된다. 라자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대장을 해치고 거리로 뛰쳐나오게 된다. 여기서부터 이 책의 주제가 나온다. 라자는 여기서 스승을 만나게 된다. 스승은 라자를 산속에 데려간다. 그곳에서 스승은 라자를 한 마리의 동물이 아닌 영혼을 가진 자신과 같은 한 개체로 대한다. 라자 역시 스승을 만나기 이전에는 자만하고 난폭한 모습을 버리고 스스로 영혼을 정화 하기위해서 금식도 하고 스승과 같이 명상도 하게 되면서 한 마리의 호랑이가 아닌 사람과 같이 영혼을 지닌 개체가 되어 같다, 자신이 살생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여서 살생을 한 후 스승 옆에 가지 못한다.라자는 스승 곁에 살면서 세속적인 것을 버리고 수행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라자가 서커스단에서 공연하는 것이 왜 내적변화와 깨달음을 여는 명상소설인지 궁금해 하면서 혹시 내가 책을 잘 고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라자가 스승을 만난 후 스승이 라자에게 해주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것은 라자에게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하는 것이라 느끼게 되었다.스승과 라자의 첫 대면에서 스승은 “모든 생물은 태어나면서부터 무의식적으로 파괴적인 본능을 가지고 있어. ~이제 너는 성인이란다. 더 이상 클 것도 없어. 나이가 들면 기력이 쇠해서 온순해지지. 너도 영원히 사나울 수만은 없는 거야. 이젠 변해야 돼!”이런 이야기를 한다. 이것을 읽으면서 이제 성인이 된 나 자신을 위한 이야기인 것처럼 느껴졌다. 성인이 되기 전인 청소년기에는 고슴도치처럼 온몸에 가시를 세우고 다른 사람이 나에게 해를 입히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또 나를 방어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게 되었다. ‘이제 성인이 되고 나이가 들면서 점차 온순해지고 사회에 맞춰가야 한다,’고 이야기 하는 것 같았다. 또 ‘넌 너무 사나워~다른 사람을 공격하려 하지 말고 그 사람을 이해하려고 생각해봐’라 이야기 하는 것 같았다. 어쩜 난 호랑이 라자처럼 세상을 알지도 못하면서 두려워하고 나 자신을 방어하기위해서 공격적인 성향으로 살아갔을지도 모른다.라자가 학교에서 나와서 스승과 산속으로 들어갈 때 사람들은 라자의 겉모습만 보고 두려워한다. 하지만 라자는 그 사람들을 공격할 생각이 없다. 사람들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했던 것이다. 또 그동안 호랑이에 대한 편견을 통해서 라자를 봤던 것이다. 여기 나온 사람들이 바로 나의 모습이라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볼 때 겉모습이나 그 사람에 대한 소문이나 편견을 가지고 바라 봤던 것이다. 그 사람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남들이 나쁘게 얘기하니깐 또 그 사람의 인상이 안 좋으니깐 나쁜 사람이라 생각한 적도 발생했었다. 그런 것이 어린 석은 줄 알지만 여기 나오는 사람들과 같이 실체를 파악하려 하지 않고 두려워한다. 라자와 같이 호랑이를 만난다면 그가 나를 해치지 않는 다고해도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두려워할 것이다. 다가가서 정말 순한 호랑이인지, 사람을 해치지 않는지, 나아가서 그가 호랑이인지 , 고양이인지를 확인할 생각하지 않고 호랑이는 원래 난폭하고 사람을 잡아먹거나 해친다고 했으니깐 호랑이가 나타나면 무조건 피해야지 생각할 것이다. 스승은 그런 사람들을 꾸짖고 있다. 스승은 외형적인 모습보다는 내면적인 모습이나 생각을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다. 한때 자신도 성공을 하였지만 어느 날 속세의 무질 없을 을 깨닫고 산속에 들어와서 명상하면서 깨달음을 얻어 나아가는 사람이다. 라자의 스승 보면서 나도 사람을 볼 때 외면적인 것보다는 내면적인 것을 봤을 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사람들이 나를 볼 때 역시 나의 외면적인 것 보다는 내면적인 마음을 봤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꾸미고 포장된 외면보다는 그 사람의 타고난 모습인 내면을 봐야 진실하게 그 사람을 알고 서로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친구를 얻을 때 뿐 아니라 앞으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편견과 두려움을 가지고 사람을 대한다면 절대로 서로 간의 인연을 만들기 힘들 것이다.“얻을 수 없는 것을 열망하지 말거라. 네가 그것을 깨달았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모든 일에는 쓰이는 법이다. 우리는 신의 의도를 알 수 없다.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것도 단계마다 다 알맞은 때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부족한 점 보다 더 나아진 면을 생각해보거나 그러면 더 행복해 질것이다.” 우리는 얻을 수 없는 것을 더 열망한다. 그것을 얻지 못하거나 힘들 것을 알면서도 가지려고 집착한다. 하지만 자신이 그것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는다면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나 역시 고집에 얻을 수 없는 것을 더 가지고 싶어 한다.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는 말이 있듯이 가질 수 없는 것에 더욱 욕심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가진다고 해서 과연 행복할까? 라는 생각이 든다. 갖기 힘든 물건을 가졌을 때 기쁨은 잠깐이다. 시간이 지나면 그것 보다 더 좋은 것이 나올 것이다. 그럼 또 다시 얻을 수 없거나 얻기 힘든 물건에 집착하여서 자신의 인생을 챙기지 못하고 불행해 지는 것이다. 반면 얻을 수 없거나 얻기 힘든 것에 대한 열망과 집착을 버리게 되면 정신적으로 성숙해지는 것 뿐 아니라 자신의 삶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행복을 찾아 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자신의 원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은 어쩌면 삶의 목표를 잃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라자는 자신의 본능인 육식을 하는 것을 자제하고 명상을 통해서 영혼을 살찌어 나갔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라자는 전생에 수도자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본능을 억제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것이다. 만일 라자가 사람이었다면 라자는 분명히 종교에 귀의 했을 것이라 생각이 된다. 요즘 같이 머릿속이 복잡할 때는 이 책에 나오는 스승의 말대로 자연 속에서 명상을 하면서 살아가고 싶어진다. 책을 펼치기 전에는 명상소설이라서 내가 이해하기 힘든 내용은 아닐까? 내용이 너무 철학적이 않을까? 걱정했었다, 하지만 라자의 인생이 나온 전반부 내용은 어느 소설에서 나 볼 수 있는 구성과 수준 이였고 스승과 만나면서 변화된 라자가 나오는 후반부는 약간은 철학적이지만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나 자신의 행동과 말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해주었다.
사토야마의 ‘물의 정원’사토야마의 ‘물의 정원’은 비와 호를 터전으로 생활하는 어부 상고로를 통해서 비와 호의 4계절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이다. 봄이 되면 비와 호에는 새로운 생명이 깨어난다. 상고로는 보트를 저어가서 생선을 잡는다. 생선 중 붕어를 가지고 집으로 와서 초밥을 만든다. 이 초밥은 거의 1년을 발효시켜서 먹을 수 있는데 이것이 대표적인 일본의 슬로우 푸드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원하는 삶, 웰빙 음식인 것이다. 자연 그대로를 느끼고 음미하는…….상고로의 부엌은 시냇가 같다. 부엌은 싱크대 역할을 하는 이곳은 중앙수로로 이어지는 개천 같은 것으로 물은 집의 부엌을 거쳐서 다시 나간다. 이 부엌에는 잉어가 살고 있다. 잉어는 관상용도 식용도 아니다. 잉어는 설거지 할 때 나오는 음식물 찌꺼기를 먹어 치운다. 잉어가 음식을 찌꺼기를 먹어치우면서 물은 정화되는 것이다. 상고로의 부엌에서 나온 물은 마을의 수로로 모여진다, 마을 수로에는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자리 잡고 살아간다. 어떤 물고기는 하류에서 알을 낳기도 하고 어떤 물고기는 알을 낳으러 상류로 올라가기도 한다.새끼 물고기들은 모험을 하듯이 상류로 헤엄쳐나가지만 큰물고기나 뱀에게 잡아먹히기도 한다. 뱀을 피해 달아나던 새끼 물고기 한 마리가 상고로의 부엌으로 들어왔다. 상고로는 이것을 발견하고 무언가 이야기하는 듯하다. 이 장면을 보면서 상고로와 물고기는 같은 언어를 쓰지는 않지만 마음으로써 통한다는 것이 느껴졌다.비와 호 근처 마을 사람들은 상고로와 같이 집안에 수로를 두고 이것을 이용해서 물과 친화된 삶을 살고 있다. 수로에서 물을 기르고 이 물을 이용해서 음식을 만들고 또 음식물을 차갑게 보관하고 씻는다. 비와 호 마을 사람들은 물을 공동으로 이용하고 공동으로 관리한다. 장마철이 되면 중앙 수로로 가는 길이 수초를 제거하고 밑바닥을 흙을 뒤집어서 홍수를 예방한다. 이 마을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의무감으로 하는 귀찮은 일이 아니라 스스로 즐기며하는 축제 같은 것이다. 비와 호 사람들은 갈대로 발을 엮어서 더운 여름을 조금이라도 더 시원하게 지낸다. 이 갈대는 겨울에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말린 것으로 자연 그대로의 것이다. 자연을 해치지 않고 공존하면서 또 이용하는 비와 호 사람들... 자연은 그들의 친구이자 그들이다. 자연은 그들이 소유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