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
Bronze개인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7
검색어 입력폼
  • 백년동안의 고독 감상문
    스페인어권 명작의 이해-‘백년동안의 고독’을 읽고 -1. 모든 것이 거짓이면서도 진실이기도 한 세계이 소설의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는 동안 일관되게 관통하는 표현방식은 ‘마술적 사실주의’이다. 이 소설에는 매우 빈번하게 신비적이고 마술적인 사건들이 등장한다. 이를테면 죽은 자와 산 자의 대화, 미녀의 승천, 동네를 가로질러 아들의 죽음을 알리는 핏줄기, 죽음과 함께 쏟아진 노란 꽃송이들, 4년 11개월 동안이나 계속된 비 등 현실 세계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사건들이 작품 속에 계속해서 나타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이를 통해 드러난 이 소설의 서술과 표현상의 독특함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범연대기적인 작가의 시각을 지닌 서술자가 이 지독한 고독을 안고 살아가는 가계의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시종일관 너무나 침착하고 담담하다. 사실적인 것, 가공적인 것 할 것 없이 모든 시간과 사건을 서술해 감에 있어 아무런 차이 없이 태연함을 유지한다. 보통의 경우라면 멀쩡하게 잘 살던 사람이 갑자기 하늘로 날아가버리면 집안 식구들 모두가 기절초풍할 노릇일 것이다. 또한 4년 11개월동안 계속해서 비가 내리는 것 자체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여겨지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그것에 대해 별반 놀람의 기색없이 살아가는 마콘도의 사람들의 모습이다. 왜 작가는 이러한 ‘엄청나고 놀라운 일’들을 담담하게 서술한 것일까?첫 번째로 이 소설에 ‘진실성’을 부여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두 번째로 소설을 읽는 동안 마치 한 편의 서사시를 읽는 듯한 서정적이고 시적인 효과를 자아내기 위한 것이라고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모든 것은 결국 진실이기도 하고 또 거짓이기도 하다. 작가는 익살스런 과장과 함께 마술적인 요소를 일상적인 현실(우리가 평소에 너무도 당연하게 경험하는 모든 것들)과 교묘하게 결합시킴으로써 이러한 효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즉, 환상적인 것과 사실 사이의 구별을 모호하게 하면서 새로운 ‘문학 속 사실적 허구자, 선구자라고들 하는데 이는 이와 같은 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이와 같은 측면에서 마치 ‘마콘도’가 실존하는, 진실성이 있는 세계로 느껴진다.이제 3장에서 서술되는 불면증 에피소드에 대해 살펴보자. 이 소설에서 가장 황당한 부분 중 하나로 기억되는 이 에피소드는 흙과 석회를 파먹는 레베카가 부엔디아 가문에 도착한 후 얼마 되지 않아 사람들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기억 상실증까지도 얻게 될 뿐만 아니라 이러한 증상이 전염까지 되어가는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때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는 사물들의 이름을 잊지 않기 위해 모든 물건에다 이름을 써서 붙여 놓는 방법을 생각해 내는데, 이 대목을 영화 와 비교해서 생각해볼 수 있다. 메멘토에서 단기 기억 상실증에 걸린 주인공은 모든 것을 잊어버리는데(심지어 자신이 화장실에 와있는 이유조차) 이 때문에 모든 것을 자신의 몸에 문신으로 메모하는 일을 함으로써 기억을 유지시켜나가고자 한다. 영화는 현재 시점에서부터 그가 기억상실에 걸리기까지의 과거로 점차 돌아가는 구조를 택하는데 결국 그가 메모해 놓았던, ‘사실’이라고 믿었던 사람과 일들이 결국 자기 스스로 조작한 것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궁극적으로 영화는 ‘끝남’으로서 다시 ‘시작’된다.현재에서 과거로의 시간 역행의 흐름을 가진 상당히 독특한 구조를 가진 그 영화에서의 주인공의 기억 상실을 에서의 마콘도 사람들의 기억 상실과 연관시켜 생각해보자. 이 에피소드가 보여주는 ‘기억의 파괴’와 ‘기록을 통해 인간의 지식을 보존하려는 노력’은 작품 내에서의 모든 것이 정기적으로 반복적으로 재현되는 순환적 시간이란 것을 보여준다. 만약 그런 사회에서 더 이상 거슬러 올라 갈 수 없는(순환을 벗어난) 막다른 시간에 도달하면, 그 과거는 비로소 역사가 되고, 이것은 기억에 완전히 의존할 수 없으므로 글로 보존되어야만 한다. 하지만 그것은 그 당시의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왜곡될 수 있는 것이며, 때문에 우리는 그 역사를 절대적으로 신임할 수 없게 된다.켜보면서,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마치 원모양으로 도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이와 같은 순환성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말도 안 되는 허구적 환상에서 진실성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2. 죽음으로도 극복할 수 없는 고독한 남자를 죽임으로써 고향에서 도망치듯 떠나와 새로운 도시 마콘도를 건설한 부엔디아 가문의 6대에 걸친 처절한 고독과 죽음, 불완전한 사랑, 그리고 가문의 멸망을 이 소설을 통해 볼 수 있다. 여기서 부엔디아 가문은 후천적이라기보다 선천적으로 유전형질 속에 고독이라는 질기디 질긴 인자를 운명처럼 품고 살다 죽음에 이른다.자신만의 세상과 권력과 식탐과 성에 집착했던 그들 중 특히 고독했던 인물은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다. 아내의 죽음을 접하고, 독립전쟁을 거치면서 최고의 권력을 차지하나 완벽한 도덕적 타락을 경험한다. 세속적 가치에 환멸을 느끼고 자신만의 세상, 황금 물고기를 만드는 일에 빠져드나 다시 한 번 열일곱 명의 아들이 암살당하는 것을 지켜보아야 한다. 그리고 결국 그의 아버지가 유령의 영혼마저 사라지도록 묶여있다 죽어간 밤나무 아래에서 죽음을 맞는다. 어머니 우르슬라는 대령을 임신했던 시절 그의 우는 소리를 듣고 결코 남을 사랑할 수 없는 운명이라 여겼었다.더 나아가 아우렐리아노란 이름을 물려받는 이들이 그토록 집착한 멜키아데스의 양피지가 결국 부엔디아 가문의 멸망사를 기록한 종이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도 허무한 결과이다. “가문 최초의 인간은 나무에 묶여 있고 최후의 인간은 개미밥이 되고 있다”는 구절을 해석하기 위해 아우렐리아노들은 백년동안 고독했던 것일까. 그리고 그러한 고독의 끝은 결국 허무함뿐이다. 이 소설은“고독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키에르케코르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한, 아니, 가문의 순환을 통해서 죽음으로도 넘을 수 없는 고독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고독의 일반적 의미가 홀로 있음으로 인한 외로움이라면 그 반대는 ‘관계’가 아닐까. 순환적 고독의 삶을 살고 있는(결국 그것을 벗어나지 못한 채 곳에서 죽음을 맞이한 이가 없다는 사실은 그들의 공간적 관계 측면에서 실패를 말해준다. 그리고 독자들로 하여금 ‘진실성’을 느끼게 하는 하나의 방법이었던 순환성은 시간적 관계의 실패를 말해준다. 그들은 인간적, 공간적, 시간적 측면에서 모두 실패를 맛보게 되며 이는 그들이 필연적으로 ‘고독’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의미한다는 방향으로 해석을 가능케 한다. 마치 운명이었던 것처럼... 그들은 왜 불가능한 것을 하고자 하였던 것일까(왜 고독을 극복해내고자 그렇게 무던히도 애를 썼단 말인가)고독은 ‘거리’의 개념으로도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삶과 죽음 사이의 거리, 사랑과 미움 사이의 거리, 희망과 절망 사이의 거리와 같이 수많은 상반되는 의미들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거리들, 뿐만 아니라 비슷하거나 유사한 의미들 사이의 거리, 전혀 무관해보이는 것들 사이의 거리들 모두가 고독과 관련된 것이라고 보면 단지 인간들은 그 수많은 것들간의 실타래처럼 엉켜있는 거리의 망에서 얼마나 줄을 잘 탈 수 있느냐를 놓고 매일같이 고민하는 것일 뿐이다. "함께 있으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는 칼릴 지브란의 말이 비단 사랑에만 적용되는 말은 아닌 듯하다. 삶의 모든 가치들에 적용되는 말이다. 고독은 극복해야할 대상도 체념해야할 대상도 아니다. 사랑, 죽음처럼 고독도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우리 삶의 일부분인 것이다.가늠할 수 없는 무한한 사랑과 자신의 불운한 운명 앞에서 갈등하고 두려움에 떨다가 결국에는 방안에 틀어박힌 채 평생을 수의를 짜다 처녀로 생을 마감하는 아마란타의 처절함, 비참함은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 그리고 나는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던져준다. 더 나아가 백년의 고독은 부엔디아 가문의 고독이자 인간 존재의 고독이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운명처럼 같이 가야만 하는 그런 고독인 것이다.3. 작품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상징체계와 의미이 작품에는 신화와 역사, 문학이 혼재되어 있고, 그것은 극도로 아이러니한 방식으로 희의 가족사는 당시의 시대사를 관통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시대사 및 가족사가 한국의 역사와도 너무도 유사한 측면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대표적으로 내전과 독재에 저항하는 민주주의 운동, 권력과 명예를 쫓는 사람들, 그리고 사랑과 같은 것들을 들 수 있다. 중남미 고유의 특이성을 담으면서도 그 전면에 흐르는 이러한 보편적 측면이 문학이 가진 힘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그리고 여기서 중남미 특유의 모습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신화적 세계관을 그 자양분으로 삼고 있다는 데에 있다. 집시들이 가져오는 과학과 마술의 세계. 그리고 윗 세대들로부터 내려오는 신화적 토양은, 이 가족의 태생적 비밀인 ‘기형’이라는 점에서부터 비롯된다.이 소설 내부에서 근친상간의 필연적 형벌로 여겨지고 있는 기형아는 첫 세대에서는 '돼지꼬리'로 형상화되고 있다. 근친상간 때문에 돼지꼬리가 달린 아이를 낳았다는 친척의 말에 노심초사하던 부인은 결국 그러한 아이를 낳게 되고 만다. 그리고 그 형벌은 그 가족이 멸하는 순간까지 계속되고 있다. 기형적으로 큰 성기를 가진 아들들이 나오고, 눈속임으로 서로 번갈아가며 한 여자의 욕망을 만족시켜주는 쌍둥이들, 너무 아름다워 그녀를 보려던 남자들이 다 죽고 마는, 그래서인지 말 그대로 승천하는 딸 등. 이러한 태생적인 결함은 궁극적으로 ‘돼지꼬리’로 형상화되는데, 이는 인간이 가진 돼지와 같은 끝없는 욕망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리고 가족들에게서 보여지는 그 짐승적 습성은 비단 그들만의 것이 아니다. 바로 우리들의 모습인 셈이다.그렇다고 해서 이 소설이 인간의 동물적 습성만을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작품의 한쪽 면에 면면히 흐르는 인간적인 속성은, 그들의 장교인 아들 등에 의해 빛을 발한다. 이들은 조국의 안녕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며, 약삭빠르고 권력에 아부하는 이들을 경멸할 줄 안다. 그럼에도 이들 가족이 멸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역시 이 가족이 부담해야 하는 근친상간이라는 금기 때문이다.금기 그리고는다.
    독후감/창작| 2008.11.24| 7페이지| 1,500원| 조회(573)
    미리보기
  • 중국인을 말하다(이중톈) 가정편 서평
    한국경제론- 중국인을 말하다 中 ‘가정’을 읽고 -이중톈의 ‘중국인을 말하다’ 중 6장은 중국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인 ‘가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중국 사회는 ‘가정단위’를 기초로, ‘가정천하’를 모델로, ‘가정윤리’를 메커니즘으로 하고 있다. 이는 ‘개인’을 가장 기본적인 단위로 인식하는 서양과 상당히 다른 측면이라고 할 수 있는데 ‘개인’을 사회 구성의 기본 단위로 생각하는 것을 ‘개체본위’라고 하고 이것이 의식에 반영되면 ‘개인주의’라고 한다. 중국은 중국 내 존재하는 모든 사회 집단이 크고 작은 가정의 모습을 띄고 있는데 극단적인 예로 ‘국가’ 역시 ‘가정’의 메커니즘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임금을 만인의 ‘아버지’로 인식하고 존재하는 모든 개체들을 형제, 자매로 인식하는 바, ‘세상이 모두 형제다’라는 대전제 하에서 전 중국이 하나의 대가족화된다. 그리고 이를 ‘가정 천하’라고 한다.이와 같이 중국 사회의 기본 단위인 가정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은 ‘공사불분, 내외구별’이다. 이 중 ‘공사불분’은 말 그대로 공과 사의 구분이 불분명하다는 뜻인데 ‘공공재산의 사유화’나 ‘공의 이름으로 사복을 채우는 일’을 하는 데에 있어 합법적인 인식을 제공하고 있다. 부연하면 중국사회에서 어떤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좆아 행위하는 것은 크게 비판받는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이 속한 집단을 위해서 한 일이라면 당사자는 떳떳할 수 있으며 주위에서도 그의 행위에 대한 비난을 하는 경우가 드물고 때에 따라서는 동정도 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자신이 속한 단위를 위해 한 일은 곧 자신에게도 득이 되는 일일 것이므로 100% 순수하게 사심이 없는, 공공을 위한 행위라고만 볼 수는 없다. 이와 같이 공이냐 사냐를 분명히 구분짓기가 어렵기 때문에 ‘공사불분’의 사회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대신 중국 사회에는 자기가 속한 단위와 그렇지 않은 단위를 구분하는 ‘내외 구별’이 존재한다. 이는 곧 가깝고 먼 것을 정하기 위한 것으로 내부는 친해서 가까운 존재이므로 친절하거나 체면을 차릴 필요가 없는 반면 외부는 낯설어서 먼 존재이므로 친절해야 하고 듣기 좋은 말로 꾸며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 이러한 논리대로라면 내부의 잘못에 대해서는 혹독하고 신랄한 비판을 해야 하나 외부의 잘못은 돌려서 지적을 해야하는 것이다. 외부인에게는 내부의 추한 모습, 허물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의식이 전반에 잠재되어 있는 것이다.이러한 내외의 구별은 가족의 호칭에서도 드러난다. 아버지의 부모는 할아버지, 할머니임에 반해 어머니의 부모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이다. 즉, 부계는 내부, 모계는 외부인 것이다. 부부간에 남자를 ‘가’, 여자를 ‘실’이라고 하는 것은 ‘가’가 주소를 통칭하는 말이고, ‘실’이 집 안의 방과 내실을 이른다는 사실로 볼 때 남자는 바깥, 여자는 안임을 의미한다. 가정이라는 말도 내부를 뜻하는 ‘가’와 외부를 뜻하는 ‘정’을 통해 내외를 겸하였다. 이와 같은 내외의 구별은 ‘원근의 구별’이자 ‘친소의 구별’이기도 한데, 이와 관련된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오복’이다. ‘오복’은 장례시 죽은 사람과의 관계에 따라 개인별로 슬픔의 정도와 상복의 규격을 ‘참최’에서 ‘시마’에 이르는 5단계로 나누어놓은 것이다. 여기에서 눈여겨볼 것은 ‘남존여비’와 ‘장유유서’의 전통이 눈에 띈다는 것이다. 아들이 아버지를 위해 아내가 남편을 위해 가장 높은 ‘참최’를 입어야 하였으나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 남편이 아내를 위해 아래 단계인 ‘제최’를 입어야 했다는 사실을 통해 남존여비 사상을 알 수 있다.한편 장유의 서열화를 통해 귀천을 분명히 하였다. 아버지를 귀하게 아들을 천하게 여겼으며, 형을 귀하게 아우를 천하게 여겼다. 연장자를 높이고 연소자를 낮추는 것, 처와 첩을 차별하는 것, 적자와 서자를 차별하는 것 역시 귀천 구분의 대표적 예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와 같은 등급의 구분은 가정뿐만 아니라 중국 사회 전체적으로 보아 한족과 이민족의 관계, 관리와 백성의 관계에서도 드러난다.이와 같은 총체적 서열 척도를 통틀어 중요시되는 또 하나의 개념은 ‘혈통’이다. 혈통은 귀천을 구별하는 가장 중요하고 현실적인 기능을 가지는데 좋은 혈통의 요건은 고귀함, 우수함, 순종, 깨끗함이었다. 자신의 혈통에 아쉬움이 있을 경우 모색할 수 있는 방법은 혈통이 좋은 아내 혹은 남편을 얻는 ‘결연’이었는데 이와 같은 방법을 통해 가로 방향의 네트워크 형성이 이루어지고 이를 ‘혈연관계의 성립’이라고 한다. 결연은 인간들 사이의 친한 관계를 확대시키는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가정윤리는 ‘어디든 적용되는 원칙’으로써 가정 내부의 인간관계를 처리하는 윤리이자 도덕관념, 그리고 개인과 국가의 입신 및 입국의 근본이었다. 앞서 이야기했듯 국가는 가정을 모델로 하고 있으며 가정은 개인으로 분리되지 않기 때문에 중국 사회에서는 ‘국가윤리’, ‘개인윤리’가 아닌 오직 ‘가정윤리’만 존재한다. 가정은 개인들로 하여금 윤리도덕을 배양하는 기지이자 배운 후에는 그것을 실천하는 주된 장소였다. 이와 같이 가장 기본적인 윤리인 가정윤리는 가정을 둘러싼 모든 사회적 대상들 예를 들어 정치, 경제, 법률, 교육, 과학 등에 달하는 것들에까지 침투하게 되고 궁극적으로 중국을 지배하는 ‘범윤리’가 된다.
    독후감/창작| 2009.03.15| 3페이지| 1,000원| 조회(503)
    미리보기
  • 화폐전쟁을 읽고
    한국경제론 보고서화폐전쟁 中 ‘선전포고 없는 화폐전쟁’을 읽고국제 금융재벌들은 1970년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누구에게나 필요한 일종의 상품인 ‘화폐’를 독점함으로써 무한정으로 높은 이윤을 내려고 해왔다. 이들은 세계의 화폐발행권이라는 금융 전략의 고지 선점을 위해 개발도상국의 경제를 망치고, 잠재적 경쟁자를 무너뜨리기 위해 상상도 하기 힘든 정도의 무시무시한 방법을 사용했는데 그것이 바로 ‘화폐전쟁’이다.국제 금융재벌에 의해 무차별 공격을 당한 사례는 1970년대 개발도상국들, 1980년대에서 1990년대에 이르는 기간동안 일본, 동유럽권 국가들, 독일과 프랑스를 위시한 유럽의 맹주들 그리고 동남아와 한국에 이르기까지 전세계적이다.이들의 전략의 기본틀은 달러의 강세를 지속시키면서 경쟁상대를 ‘통제하면서 해체시키는 것’이다. 1973년 국제 금융재벌들은 국제 유가를 무려 400%나 치솟게 함으로써 달러 수요의 폭증을 통해 약세를 해결하였다. 또한 IBRD의 저금리 차관에 완전히 의존하여 공업화를 한창 진행중이던 개발도상국들은 석유 가격의 폭등으로 인해 거액의 채무에 대한 원금과 이자에 짓눌리게 되었고 IMF의 함정(국가 핵심 자산의 사유화, 자본시장의 자유화, 기본 생활 요소의 시장화, 자유무역의 국제화)에 빠지게 되었다. 1980년에서 86년에 이르는 기간 수많은 채무국들이 국제 금융재벌에게 지급한 금액은 6.580억 달러에 달하였지만 1987년 현재 그들이 갖고 있는 것은 여전히 너무나도 많은 1조 3,000억 달러의 빚이었다. 개발도상국들은 파산 신청을 하였고 IMF는 이를 받아들여 채무국들의 수많은 핵심자산들, 이를 테면 수도, 전기, 천연가스, 철도, 전화, 석유, 은행 등을 집어 삼켰다.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들은 ‘아이언 마운틴 보고서’라는 것을 만드는데 이 비밀스런 보고서는 ‘환경오염’이라는 아이디어를 통해 세계의 영구적 평화단계로 인해 미국이 직면할 도전에 대한 대응 전략을 세우게 된다. 이 아이디어는 첫째, 경제적으로 반드시 낭비적이어야 하고, 둘째, 반드시 전쟁의 위험과 유사하고, 대규모이고, 믿을만한 중대한 위협이어야 하며, 셋째, 국민이 정부에 협력하도록 강제적이고 합리적인 이유를 제공해야 한다는 조건 하에서 나온 것이었으며 결국 1987년 9월 덴버선언을 통해 ‘세계환경보호은행’이라는 은행 모델을 발표하게 된다. 그들은 이 기금을 통해 개발도상국을 채무의 늪에서 구하고 생태 환경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지만 그들이 진정 노린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1987년의 채무국들의 빚인 1조 3,000억 달러를 세계 환경보호은행에 이관하고 채무국으로 하여금 생태위기에 직면한 토지를 담보로 세계환경보호은행에 채무 유예를 신청하고 새로운 소프트론을 얻게 함으로써 불량채권을 우량자산으로 둔갑시키고 국제 금융재벌들은 비옥한 토지를 손에 넣고자 한 것이다. 이 토지의 총 면적은 지구 육지 면적의 30%에 해당하는 5,000만 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것이었다. 결국 1991년, 이름만 바꿔 ‘지구환경기금’이 설립된다. 이것은 IBRD에 의해 관리되고 있는데 IBRD의 최대 주주가 미국 재무부라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시 말해 국제 금융재벌들은 이러한 치밀하면서도 무서운 방법으로 자신들의 계획을 실천에 옮겨 나간 것이다.하지만 1980년대의 고금리 정책은 영?미를 중심으로 한 국제 금융질서에 또 다른 불안을 불러왔으니 바로 ‘일본’이라는 존재였다. 일본의 경제성장의 질, 제품의 수출경쟁력, 부 축적의 규모와 속도는 국제 금융재벌들로 하여금 긴장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이에 더불어 자동차 산업과 전자 공업에서의 미국의 참패, 고금리 정책으로 인한 미국의 공업 능력 저하로 인해 일본 제품의 미국 시장 잠식은 결국 국제 금융재벌의 심기를 건드렸다.1985년 플라자 합의를 통해 엔화의 평가절상이 이루어진다. 1987년 뉴욕 증시의 붕괴 이후 미국은 일본은행에 압력을 행사 금리를 계속 인하하도록 함으로써 대규모의 염가 자본이 증시와 부동산으로 몰려들어 도쿄 증시와 부동산에는 거대한 금융 거품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엄청나게 강한 일본의 금융 세력을 인지하고 있던 국제 금융재벌들은 이전의 방법과는 조금 다르게 ‘주식선물지수’라는 새로운 금융 핵폭탄을 통해 보이지 않게 서서히 일본 금융 시스템을 공격한다. 주식과 부동산 등 금융의 호황에 눈이 멀어 자신들의 추락은 생각지도 못했던 일본은 ‘주가지수 풋옵션’이라는 ‘금융 바이러스’를 마구 사들이는데 1989년 12월 29일 일본 증시가 정점에 다다랐을 때 골드만삭스에서 내놓은 NPWs라는 새로운 금융상품의 출현으로 인해 일본 증시는 힘을 잃게 되고 붕괴된다. 이후 10년이 넘는 긴 불경기의 터널을 지나면서 주식은 70% 하락하고 부동산 역시 14년째 하락세를 면치 못하게 된다.소로스는 ‘통제하면서 해체하기’를 촉진해 궁극적으로 런던과 월가를 주축으로 하는 ‘세계정부’와 ‘세계화폐’의 준비 작업을 완성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국제 금융재벌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가였다. 그는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가 해체되는 과정에서 엄청나게 큰 역할을 했다. 그는 동유럽 국가들로 하여금 통화 공급량의 긴축과 산업 구조조정을 동시에 진행시키게끔 유도함으로써 생산을 쇠퇴시키고 국민 생활 수준을 떨어뜨렸으며 기업의 줄도산과 실업의 증대 등 총체적 경제의 해체를 주도하였다. 또한 독일과 프랑스가 영미 금융 세력과 경쟁을 하고자 유로화를 탄생시키려고 하자 마르크화를 꺾고 유로화의 구상을 방해하여 새로운 독일의 성공을 막고자 하였는데 1990년도 영국 정부가 ERM에 가입하고 독일 통일이 이루어진 후 인플레이션에 허덕이고 있었다. 여기에 영국과 이탈리아가 적자에 시달리고 통화환율이 뚜렷한 상승세를 보이자 소로스를 위시한 투기상들은 1992년 9월 16일 100억 달러에 상당한 파운드화를 쏟아붓는 총공세를 감행하여 영국으로부터 항복을 받아낸다. 비록 프랑과 마르크화를 무너뜨리지는 못했지만 파운드화와 리라화를 ERM에서 일거에 축출해버린 것이다.
    경영/경제| 2009.03.15| 3페이지| 1,000원| 조회(720)
    미리보기
  • 2세기 앞을 내다 본 경제성장학자 박제가의 재조명
    2세기 앞을 내다 본 경제성장학자박제가(朴齊家)의 재조명1. 서 론18세기 조선은 내?외적으로 많은 변화를 경험한다. 대외적으로는 중원의 주인이 명나라에서 청나라로 바뀌게 되고 눈부신 발전을 지속하는 한편 대내적으로는 두 차례에 걸친 왜란과 호란의 상처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었으며 영조와 정조라는 역사에 남을 군왕이 등장하여 조선의 중흥기를 연다. 하지만 백성들의 삶은 여전히 어려움에 처해있는 것으로 보인다. 백성들을 한없이 짓누르는 세금은 늘어가고 광작에 의해 계층이 분화되면서 잉여인력들은 민영 수공업 혹은 상업 분야로 상당수 이동해 간다. 그리고 이 와중에 많은 이들은 경제적 낙오자가 되기도 한다. 전반적으로 경제의 규모는 성장하고 있었으나 사회적 불안은 상존하고 있었으며 빈부의 격차 측면에서는 오히려 악화되는 모습을 보인다.이러한 시대적 변화 속에서 새롭게 등장한 학풍이 실학이다. 실학은 이익을 중심으로 경세치용을 중시하는 학자들과 박지원을 중심으로 한 이용후생을 중시하는 학자들로 크게 나뉜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학문의 실효성을 중시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이용후생을 중시하는 학자들은 청나라를 배워야 한다는 주장을 하였기 때문에 ‘북학파’라고도 일컬어진다. 필자가 이 글을 통해 중점적으로 다뤄보고자 하는 학자는 북학파 중의 한 사람인 ‘박제가(朴齊家 1750~1805)이다.박제가는 가장 급진적인 성향을 가진 실학자로 인식된다. 그의 사상과 개혁안은 대표적인 저서 『북학의』에 나타나 있는데 특히 경제적인 측면에서의 발전의 필요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그 방안으로 상업의 발달, 사농공상에 대한 반발 등 당시의 사회통념으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개혁안을 내놓는다. 그리고 이는 기존의 성리학자들은 물론 실학자들과도 상당히 다르거나 과격한 내용이었다. 그렇다면 그는 도대체 무엇을 보았고 주장하는 것인가? 그리고 그 근거는 무엇인가? 궁극적으로 그의 주장이 실현되었을 때 그의 생애 이후 조선은 어떠한 모습으로 변화해 나갔을 것인가? 필자는 이에 대해 지금부터 생각해보또한 이러한 해로무역을 통해 검소함을 미덕으로 삼는 당시의 풍조가 사라질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검약(儉約)의 삶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시각을 보였는데 그 이유는 소비가 줄어듦으로 해서 소비 시장이 위축되고 이는 생산의 위축을 불러와 궁극적으로 문명과 기술의 퇴보를 불러온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로무역을 통해 발전된 문물을 많이 접하고 소비욕구가 상승하면 생산 역시 증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즉, 그는 소비의 중요성을 역설하였고 그것을 위해서는 해로무역의 육성이 해결책이라고 보았다. 이와 관련된 박제가의 말을 살펴보자.“지금 나라 안에는 구슬을 캐는 집이 없고, 저자에는 산호의 값이 없다. 또 금과 은을 가지고 가게에 들어가도 떡을 살 수 없다. 어찌 그 습속이 참으로 검소함을 좋아해서 그러하겠는가. 아니다. 이것은 오직 물건을 이용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이용할 줄 모르니 생산할 줄 모르고, 생산할 줄 모르니 백성이 날로 궁핍해지는 것이다. 대저 재물은 비유하자면 우물과 같아서, 퍼내면 채워지고 이용하지 않으면 말라버린다. 비단을 입지 않기 때문에 나라 안에 비단을 짜는 사람이 없다. 따라서 길쌈과 바느질이 쇠하여졌다. 그릇이 비뚤어지는 것을 개의하지 않으므로 교묘함을 일삼지 않아 나라에 공장과 질그릇 굽는 곳, 대장간이 없고 기예도 없어졌다. 그 뿐만 아니라 농사하는 방법도 몰라서 흉년이 자주 들고 장사는 물건을 팔 줄 몰라서 이익이 박하다. 그러니 사민(四民)이 모두 곤궁하여져서 서로 도울 길이 없다.”)그의 해로무역 육성은 곧 기술과 문물의 습득과 직결된다. 당시 일반 주자 성리학자들은 명나라를 몰아내고 중국 대륙을 차지한 청나라를 ‘오랑캐’로 간주하였으며 그들의 문물에 대해 무시하여 배우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박제가는 4차례의 연행을 통해 청나라가 ‘오랑캐’가 아닌 조선보다 훨씬 더 발전된 문물을 가진 대국(大國)이라고 인식하게 되었다. 때문에 그들의 기술과 문물을 받아들이는 것이 조선이 부국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며 가능한 억제하고자 하는 대상이었다. 이와 같이 폐쇄적인 사농공상제는 양반의 경제적 동기 함양과 피지배층인 상민의 자본 축적을 제약함으로써 근대적 전환에 불리하게 작용하였다. 때문에 박제가는 제도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는 과거, 문벌, 붕당이 아니면 위로는 벼슬에 오르지 못하고 아래로 상공업에 종사하지 않으려 하는 양반들의 행태에 대해 비난하며 놀고먹는 양반을 줄이기 위해 수륙으로 무역하는 일을 양반에게 허가하고 밑천을 마련해주어 장사를 하게 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좋은 성과를 올리는 자에게는 높은 벼슬에 발탁하는 것을 권장하였다. 이는 곧 뛰어난 상공인이 여느 사대부와 다를 바 없다는 그의 인식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아직까지 살펴본 박제가의 개혁안을 정리하면 아래의 도표와 같다. 해상무역의 육성을 통해 상업이 발달하고 기술이 발전할 수 있으며 제도와 의식의 개혁이 모두 가능해진다. 해상무역을 통해 새로운 문물과 기술이 유입된다. 사람들의 소비가 증진되고 이는 보다 발전된 기술에 의한 새로운 상품의 출현을 불러오게 된다. 보다 편리하고 질이 좋은 상품을 접하고 생산하게 되면서 경제적 이윤의 추구와 이용은 사회의 중심적인 가치로 자리잡아가게 된다. 이 상태까지 이르면 상업의 발달과 기술의 발전, 제도 및 의식의 개혁이 선순환을 반복하게 되는 단계에 온 것이며 이것이 박제가가 말하는 경제의 성장이었던 것이다.상업의 발달1) 국내상업, 2) 해외무역해상무역의육성←기술의 발전제도와 의식의 개혁3. 박제가의 경제사상 분석이 부분에서는 현대 경제학에서 말하는 장?단기의 경제성장이론과 박제가의 경제사상을 비교하여 그의 사상이 어떠한 의의가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1) 다양한 경제주체들이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완전경쟁시장현대 경제학에서 가장 효율적인 자원배분의 상태는 이른바 ‘완전경쟁시장’에서 이루어진다. 완전경쟁시장이 이루어지기 위한 네 가지 가정은 다음과 같다.첫째, 다수의 소비자와 생산자가 존재한다. 그러므로 개별 생산자, 소비자는 가1930년대 세계적 대공황이 발생하였을 때 불세출의 경제학자 케인즈는 유효수요가 부족을 대공황의 원인으로 지목하였다. 그가 말하는 세계적 불황의 메커니즘은 다음과 같다.저축의 증가 → 소비의 감소 → 투자와 생산의 위축 → 기업의 인원 감축 → 실업자 수 증가 → 소비의 감소 → 투자와 생산의 위축 →....이와 같은 악순환의 반복이 대공황의 실체이며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소비의 감소’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주장이 처음 나왔을 때 많은 기존의 경제학자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기존의 경제학자들은 시장이 알아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절해 줄 것이기 때문에 가만히 놔두면 정상화될 것으로 생각해왔는데 이와 같은 메커니즘에 의하면 악순환의 반복만이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당시 케인즈의 처방에 따라 정부에서는 지출을 늘리고 투자를 활성화시키는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해 민간 소비수요를 증진시키는데 총력을 다했고 기나긴 불황도 극복하게 되었다.이로부터 약 백 오십여 년 전 박제가가 ‘소비’를 강조한 지점은 어떠한가? 박제가의 주장은 케인즈의 그것과 비교하여 저축의 증가라는 개념이 없었고 불황기의 상황에 대해 언급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저소비에서 저소득으로 이르는 악순환의 메커니즘을 밝혀냈으며 수출 등을 통한 해결방안을 제시하였다. 박제가 사상의 선진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3) 분업의 효용성을 깨닫다.“그런데 이제 나라 안에는 벽돌이 없는데 내가 혼자 만들려고 하면 굽는 가마도 내가 만들어야 하고, 때우는 회도 내가 마련해야 한다. 물건을 실어 나르는 수레도 내가 주선해야 되고 온갓 공장의 일도 역시 내가 해야 할 것이다.”)위의 글을 통해 박제가가 분업을 주장하고 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분업의 효용성이 처음 언급된 것은 1776년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에서이다. 그 책에서는 핀 공장의 이야기가 나와 있는데 분업이 그렇지 않을 때에 비해 20배의 효율성을 나타낸다고 설명한다. 비슷한 시기 동양의 조선이라는 나라에서도 비록 ‘분업’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이와 같이 현대 경제학의 기본적인 이론들과 비교해봤을 때 박제가의 경제사상은 놀라울 정도로 맞아떨어지는 모습을 보인다. 물론 경제이론은커녕 경제학이라는 개념조차 없었던 당시의 조선에서 박제가가 ‘경제성장’이라는 어휘를 써가면서, 또는 이와 같은 요인들을 예로 들어가며 주장을 했을 가능성은 없다. 하지만 그의 치밀한 현실 분석 능력 및 노력, 배움에의 개방적인 자세, 그리고 논리적이고 치밀한 사고는 그의 주장이 200여년이 지난 지금의 현대 경제이론에 부합가능한 세기를 초월한 의의를 가지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4. 18세기 당시의 조선 및 각국의 사회상은 어떠했는가?그렇다면 당시 조선의 사회상은 어떠했을까? 우선 농업에서의 변화부터 살펴보지 않을 수 없는데 ‘이앙법’과 ‘견종법’이 보급되면서 수확량이 늘어나고 노동력이 절감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이러한 생산력의 증대는 개인의 경영 및 경작 능력의 분화를 심화시키고 결국 ‘경영형 부농’을 탄생시킨다. 이는 농촌 사회에 유휴노동력을 발생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며 그에 따라 임금이 하락하고 농촌 사회의 계층 분화가 심화된다. 이들은 수공업이나 상업 분야로 상당수 편입되는 모습을 보인다.수공업 분야에서도 기존의 관영 수공업으로부터 민영 수공업의 형태로 전환되어 가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였는데 상품의 질과 가격 측면에서 관영 수공업에서 생산되는 제품보다 우수하였기 때문에 그 비중이 높아지고 있었으며 후에는 상인들의 경제력과 장인들이 결합되는 선대제 형태가 출현하기도 한다. 상업 측면에서는 난전이 발달하면서 기존의 시전 상인들을 위협할 수준에 이르게 되고 궁극적으로 금난전권이 폐지되면서 시장과 유통이 촉진되는 양상을 띠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상품-화폐 경제가 조선 후기에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살펴본 바와 같이 조선 후기 사회도 생산력이 증가하면서 잉여생산물이 발생하고 시장과 유통이 발달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계층의 분화가 촉진되고 그에 따라 부의 분배 측면에된다.
    경영/경제| 2009.03.15| 9페이지| 2,000원| 조회(381)
    미리보기
  • 들라크루아의 작품으로 본 낭만주의 회화
    들라크루아의 작품으로 본낭만주의 회화들어가며낭만주의는 18세기 후반부터 약 100여 년간 영국, 프랑스, 독일을 중심으로 전유럽에 걸쳐 전파된 예술 양식을 말한다. 단순히 예술사적 의미로서만이 아닌 사회적, 정치적 변혁기와 맞물려 급속히 확대되어간 예술 사조로서 낭만주의는 그 자체로 분석의 의의가 있다. 이 글에서는 회화의 측면에서 낭만주의의 성립배경과 개념을 알아보고 그 절정을 이룬 ‘들라크루아(Ferdinand Victor Eugene Delacroix)’의 사상과 작품 분석을 통해 낭만주의 회화에서 표출된 특징을 파악해 보려 한다. 그리고 대혁명, 계몽사상 등 낭만주의 회화가 발전하기 위한 사회적 ? 정치적 변혁이 주로 발생한 프랑스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감을 미리 밝혀둔다.낭만주의의 형성과 의미인간의 지성 혹은 이성의 힘을 빌어 자연과 인간 관계, 사회와 정치 문제를 낙관적으로 관찰하고 이해하려는 시대적 정신으로써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권을 강조하는 계몽주의와 이후 나타난 봉건적 특권계급을 폐지시킨 프랑스 혁명이라는 사상적 배경은 예술 ? 문화적으로 창작 및 개인의 자유의식, 그리고 인간 활동의 모든 면에서 커다란 전환을 가져왔다. 그러나 혁명으로 인해 피폐해진 국민적 정서, 기존 체계의 몰락 속에서의 무질서, 모순적 상황들이 발생하게 되고 이에 대한 원망의 표현으로써 낭만주의 운동이 전개된다. 이런 사회 ? 정치적 배경 하에서 기존의 가치 기준인 ‘신고전주의’에 반하는 예술창작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이와 같은 형성 배경으로 인해 낭만주의는 ‘신고전주의’와 모든 면에서 대립적인 모습을 보인다. 때문에 낭만주의의 특성은 신고전주의와의 비교를 통해서 살펴보면 이해하기가 쉽다. 절대적, 보편적인 미를 추구했던 고전주의와 달리 낭만주의는 개성에 바탕을 둔 감성을 중요시한다. 그리스 ? 로마 신화를 주제로 하기를 즐겼던 고전주의와 달리 낭만주의는 주위에서 발생하는 모든 것들이 그 대상이 될 수 있었으며 추한 것으로부터도 미를 추구할 수 있게 되었다. 주제의 선정 보다는 표현하는 방법을 중요시하였으며 분방한 색채, 유동적 필치, 동적인 리듬을 통해 인간 내면의 감정을 표출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그리고 선이나 데생을 중요시하였던 신고전주의와 달리 낭만주의에서는 채색을 중요시하였다. 다시 말해 개성을 구가하고 자아의 해방을 주장하며 상상과 무한적인 것을 동경하는 주관적, 감정적 태도가 두드러진 것이 바로 낭만주의 예술이다.낭만주의는 인간의 감성과 상상력을 확장시킴으로써 개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표현하려는 움직임이었으며 ‘평범한 것에 고상한 의미를 일상적인 것에 신비스러운 모습을 친근한 것에 미지의 존엄을 부여한 것이다.)내용적으로 낭만주의 회화는 현실 참여적인 동시에 도피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다. 계몽사상의 확산과 프랑스 혁명의 성공으로 인해 시민들은 새 시대에의 많은 기대감과 자긍심을 갖게 되었지만 열강에 의해 다시 옹립된 군주 루이 18세의 폭정은 그들로 하여금 반발감을 갖게 하고 이에 시민들은 1830년 7월 혁명을 통해 자유와 인권을 위한 개혁 운동에 참여하게 된다. 낭만주의 회화 역시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당대 사회상에 대한 불만을 적극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즉, 이 시기의 작품들은 ‘신화적인 주제에서 세속적인 주제로의 변화와 왕과 귀족의 세계에 대한 평민의 침투, 도시와 시골의 일상적 묘사, 종교적 주제의 세속화, 예술의 주제로서 일하는 인간의 발견 등 주로 사회적 주제들의 일관이었다.’)동시에 이 시기에는 비현실적 현실 도피의 경향도 나타났다. A. 하우저는 ‘혁명 후의 상실감, 고독감에 의존하는 세계관이 과거로의 도피라는 시도를 불러왔으며 유토피아와 동화, 무의식적인 것과 상상적인 것, 무시무시한 것과 신비스러운 것, 유년시절의 자연, 꿈과 광기에로의 도피 등이 나타났다. 그리고 이는 일체의 책임과 고뇌에서 벗어나려는 동경의 위장되고 다소 승화된 형식인 것’)이라고 보았다.들라크루아 작품 세계의 특징들라크루아는 낭만주의 회화의 정점답게 자신의 작품들을 통해 개성의 해방과 창조적 상상력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 그러한 그의 예술 세계에 대해 거의 예찬적이다시피한 어조를 가진 보들레르는 진정한 화가란 직접 보고 느낀 자연을 그려내는 ‘시인’이라고 보았으며 독자로 하여금 상상력을 열어주는 들라크루아야말로 ‘창조자로써 진정한 예술가’라고 보았다.들라크루아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또 하나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우수’다. 그것은 작품의 색채와 스타일, 등장인물의 얼굴 표정과 행동 등에 의해 표현되었다. 그 중 우수가 잘 나타나 있는 작품은 「묘지의 고아」와 「키오스 섬의 약탈」이라고 할 수 있는데 특히 「묘지의 고아」에서는 아무 목표도 없이 풀려있는 커다란 눈망울과 입을 반쯤 힘없이 벌린 상태로 정돈되지 않은 옷차림을 하고 주저앉아있는 어린 소녀의 얼굴에서 인간 내면으로부터의 깊은 우수를 발견할 수 있다.들라크루아와 관련하여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은 채색을 중시했다는 점이다. 색채를 통해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고 인간의 내면세계를 담아내고자 했던 들라크루아는 당시에도 채색을 잘 하는 화가로 평가받고 있었다. 특히 ‘보색 대비’의 방법이 많이 이야기 되는데 이 방법을 통해 신비감, 강렬함, 한층 더 명쾌해진 선명도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회화의 구성에 있어 색채보다 먼저 존재하는 데생이 아닌 두 색채가 섞이면서 생기는 자연스럽고 희미한 경계로서의, 굽이치고 유동적이며 구불구불한 ‘가벼운’ 선을 회화에 적합한 선으로 보았다. 이를 통해 생동하는 자연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고 주장하였으며 작위적인 선으로 표출된 형태는 자연스러움을 해치고 그림 전체에 피해를 입힌다고 하였다. 그는 “색은 눈으로 듣는 음악이며 음부와 같이 배합되어 그 조화는 음악 이상으로 감동을 자아낼 수도 있다.”라고 하여 색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역설하였다.)더 나아가 색의 섞임을 통한 유동성을 강조한 들라크루아의 작품은 감상자와 일정 정도 거리를 전제해야 색채 간의 상호 영향의 효과를 느낄 수 있다. 이는 들라크루아의 또 다른 특징인 세부의 생략과도 연결이 되는 것으로 그림을 구성하는 요소 각각의 느낌보다 전체에 걸친 화가의 의도 파악에 중점을 둬야 한다는 것이다.들라크루아의 작품 감상 및 분석그림 . 키오스 섬의 학살그림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들라크루아는 20대 중반 때 「키오스 섬의 학살」을 발표하면서 세간의 이목을 끌게 된다. 가운데 앉아 있는 여인으로부터 이미 초점을 잃어버린 눈과 학살이 행해지는 가운데 체념한 듯 하늘을 향한 고개를 발견할 수 있다. 오른쪽 아래에는 이미 세상을 떠난 어미의 젖을 물고 있는 아기가 있고 바로 뒤에 여인을 약탈하는 그리스 기마병의 모습이 보인다. 저 뒤쪽 배경으로는 불타고 있는 마을을 볼 수 있다. 들라크루아는 이 그림에 대해 “죽어가는 사람의 마지막 미소, 모정의 눈길, 절망의 포옹... 등, 나는 정열로 제작하였다.”고 하였다.) 또 한편으로는 당시의 폭정 등 사회적 분위기에 반발하여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분노를 꺼내 놓은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다음 그림은 그의 대작 중 하나인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다. 이는 1830년 7월에 있었던 혁명 장면을 기록한 것으로써 그림 뒤쪽으로 보이는 짙은 안개를 배경으로 여신으로 묘사된 주인공이 들고 있는 적 ? 백 ? 청색의 깃발이 유난히 두드러지게 나타내어졌다. 여인의 노출에서는 관능미가 아닌 힘찬 건강미와 굳은 의지가 느껴지며 여인의 오른편의 어린 소년이 권총을 들고 전진하는 모습에서는 역동성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쓰러져있는 많은 사망자들의 모습은 이와 달리 비극적인 면모를 보이는데, 이는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갈구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표현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 ? 사회적으로 민중을 설득하고자 하는 의지로 느껴진다. 이는 앞에서 언급한 낭만주의 작품의 현실 참여적 특성이라고 볼 수 있다.그림 사르다나팔르왕의 죽음그림 녹색 조끼를 입은 자화상「사르다나팔르왕의 죽음」에서는 강렬한 들라크루아 특유의 강렬한 색채를 엿볼수 있다. 여인의 아름다운 몸매에서 느껴지는 관능미와 동시에 죽음의 순간 몸을 비틀게 되는 공포감, 그리고 그것을 무덤덤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왕의 얼굴과 자세는 엄청난 시각적 충격을 선사한다. 여인의 몸매의 굴곡, 좌측 하단의 말의 움직임 등 역동적인 모습이 한층 강조되었다.자신의 모습을 그린 이 자화상에서는 붉은 색 계통의 배경에 녹색 조끼를 보이게 함으로써 색채의 대비를 잘 나타내었다. 또 하나 특징적인 것은 들라크루아의 붓터치가 상당히 대담하다는 것인데 밑의 앵그르의 자화상과 비교해보면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신고전주의의 완성자로 불리는 앵그르의 자화상이 배경은 물론 마치 한 장의 사진처럼 섬세하게 표현한 맛이 있다면 들라크루아의 그것은 붓터치 하나하나가 다 보일 정도로 대담하고 힘이 느껴진다고 할 수 있다.그림 5 앵그르의 자화상화폭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의 역동성이 잘 느껴지는 작품으로는 「호랑이 사냥」, 「사자 사냥」이 있다. 호랑이의 야생성이 잘 느껴지는 「호랑이 사냥」은 힘이 넘치는 빠르고 대담한 붓터치가 느껴지며 붉은 망토와 녹색 숲의 색채 대비가 잘 나타난다. 인간과 호랑이가 뒤엉켜 싸우는 이색적인 소재라는 점이 특징이며 역동적인 움직임이 인상적이라고 할 수 있다.
    예체능| 2008.10.11| 7페이지| 1,500원| 조회(1,118)
    미리보기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5월 22일 금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7:16 오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