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의 삶은 행복했나?(“안토니아스 라인”에 나타난 여성 5대 삶에 대해서)언론 매체나 드라마 등에서 가끔 여성비하 표현이나 여성이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존재라는 식의 표현을 접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그것이 문제가 돼서 논란거리가 되곤 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여자로써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과연 행복한 것일까? 불행한 것일까? 솔직히 누군가 나에게 그런 질문을 던진다면 확실한 대답을 할 수는 없겠지만 “안토니아스 라인”에 나타난 그녀들의 삶은 행복했는가? 라고 묻는 다면 나는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지금부터 “안토니아스 라인‘에 나타난 여성의 삶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겠다. 안토니아는 어머니 일레곤다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딸 다니엘과 함께 고향에 돌아오면서부터 시작된다.일레곤다는 영화 첫 장면에 다소 희극적인 장면으로 등장하는데 남편의 바람에 대한 분노만을 간직한 채로 임종을 맞이한다. 사실 레포트 주제가 “안토니아스 여성 5대의 삶”이라고 했지만 이 영화에서는 일레곤다에 관한 이야기는 그다지 많이 나오지 않은 관계로 어떤 추측을 하기는 불가능하지만 개인적인 상상력을 덫 붙이자면 임종 할 때까지 남편에 대한 분노로 가득차 있던 일레곤다의 모습이라면 그녀의 딸 안토니아스가 성장하는 기간에 그녀의 사고에 어떤 식으로라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고 그것이 그녀의 가치관을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것이다.남편에 대한 분노로 생을 마감한 일레곤다의 딸 안토니아스는 2000년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내가 보았던 그 어떤 여자보다도 당당한 여자임은 확실하다. 여자 혼자 살기에는 외롭기도 할 것이고 남자와 여자가 조화로이 사는 삶이 그리울 법도 한데 안토니아는 당당하게 여자 혼자 사는 삶을 택한다. 안토니아의 생각은 남자란 여자보다도 우월 할 것도 없고 잘난 것도 없는 존재. 안토니아의 말을 빌리자면 “아들 따윈 필요 없고, 남편이란 존재는 여자하기 힘든 일이나 하는 존재이고 남자는 성적욕구 충족의 상대”라고만 표현할 뿐이다. 이는 안토니아가 자신의 삶에 대한 확신과 당당함이 있음을 나타내주는 동시에 남자라는 존재에 대해 무색하게 만든다. 이런 그녀의 가치관과 삶은 그것을 그대로 보아온 그녀의 딸 다니엘 에게도 바로 전승이 된다.다니엘은 그녀의 엄마 안토니아와 마찬가지로 당당함과 동시에 남자에대해서 주눅듬 없는 삶을 살아간다. 다니엘이 안토니아와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다니엘은 미술이라는 어떤 특정 한 분야를 선택해 자기 개발을 한다는 점이다. 다니엘이 자기 개발을하며 살아가는 삶은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시대의 여성의 모습이라 하겠다. 반면에 다니엘에게 21c의 여성들과는 다른 모습을 꼽아보자면, 어떻게 보면 더 진보적이라고 볼 수도 있고 또한 개방적이라고 볼 수도 있는 반면에 우리시대의 할아버지들이 본다면 손가락 질을 할 수도 있는 모습일 것이다. 그것은 다니엘이 “아기를 갖고 싶지만 남편은 필요 없다”는 부분에서 찾을 수 있다. 또한 아이 아버지를 찾기 위해 즉, 씨를 찾기 위해 도시로 가서 남자와의 하룻밤을 적극 수용하는 모습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 부분은 솔직히 여자인 나도 공감하기 힘든 부분이다. 내가 결혼이라는 제도나 가족이라는 제도에 묶여서 허우적 대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고 예로부터 내려온 관습에 젖어들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아버지 없는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그 자신감과 당당함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것은 아마도 다니엘 같은 삶은 사는 여성들에 대해서 편향된 시각을 가진 대한민국이 만들어 낸 시각 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그것을 비판하기 보다는 당연하거나 혹은 큰일이 아니라고 포장한다. 때문에 그 부분에서는 다니엘을 공감하기 보다는(내가 할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대단하다라는 찬사만을 자아냈다.아이를 갖기 위해 도시에서 씨를 얻어서 난 다니엘의 딸 테레사의 삶을 보자. 그녀는 그녀의 할머니나 어머니의 모습보다도 더 진보된 모습. 즉. 공부하는 여성의 모습 그 속에서 그녀는 당당함을 잃지 않고 절대 주눅듬 없이 자신의 신념, 생각, 가치관을 논리 정연하게 말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그녀 또한 결혼을 하지 않고 임신을 해서 사라를 출산한다. 이 과정에서도 여자가 홀로 임신을 했다는 점을 비판하거나 냉대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는 점점 안토니아가 이 마을에 정착했을 때보다도 좀 더 마을이 진보되고 사고의 틀이 깨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마지막으로 테레사의 딸 사라의 삶을 보자. 그녀의 삶에 대해서 영화가 말하는 바는 극히 적지만 잠깐 비춰진 사라의 모습으로 추측해 볼 때, 그녀의 삶 역시 그녀 어머니, 할머니, 증조할머니처럼 당당하고 똑똑했을 것이다.지금까지 간단하게 “안토니아스 라인에 나타난 여성 5대의 삶”을 살펴보았다. 사실 이 영화의 초점은 안토니아스, 다니엘, 테레사 이들 3대에 집약적으로 여성의 삶을 풀어 놓은 것 같다. 그리고 거기서 나는 그녀들의 삶이 당당하고 어떤 굴레나 구속에 전혀 연연해 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부러움과 동시에 괴리감을 느꼈다. 부러움과 괴리감을 동시에 느꼈다는게 상당히 모순적일 수 있겠지만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을 당당히 행한 모습에서 이런 상반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결혼이라는 것이 반드시 행해져야만 하는 필수적인 요소가 아니라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선택할 수 있는 어떤 한 요소라는 것을 느끼면서 나도 결혼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또한 공동체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장애인이고 비장애인이고 어떠한 결함을 가지고 있든 완벽하든 사람을 보고 평가할때는 겉모습이 아니라 그 사람의 진실 됨 혹은 내면적 가치를 봐야 한다는 점과, 공동체라는 것은 그 안에서 구속감, 밀폐감, 답답함을 느끼는 것 이아니라 그 안에서 안정감, 평화, 행복을 느낄 수 있을 때가 진정한 공동체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