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한국의 초등학생들의 도덕적 상황과초등도덕교육의 방향보통 사람들에게 요즘 초등학생들의 도덕의식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심각한 수준이라고 대답할 것이며, 이와 더불어 초등도덕교육이 바르게 행해지지 못하고 있다는 사람들도 꽤 나올 것이다. 실제로 한 조사에서는 초등학생들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지적능력은 발달하지만 도덕적 행동능력은 향상되지 않는다는 조사결가가 나오기도 했다. 또한 이는 현 초등도덕교육이 바르게 적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현재 초등학생들에 관한 뉴스들이 종종 뜨고 있다. 최근에는 급식문제가 불거지기도 했고, 의례적으로 일년에 한두 차례 나오는 우리 문화 배우기, 전수 수업 등이 보도되기도 한다. 하지만 점점 늘어나고 있는 기사 중에 하나가 바로 초등학생들의 잘못된 도덕의식에 대한 보도이다. 그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초등학생 홧김에 방화] 충북 청주흥덕경찰서는 20일 홧김에 남의 집에 불을 지른 모 초등학교 4년 S양(11)에 대해 방화 혐의로 조사를 벌인 뒤 귀가조치 시켰다. S양은 이날 오전 10시18분께 충북 청주시 사직동 이모군(16)의 집에 들어가 소지하고 있던 1회용 라이터로 옷에 불을 질러 240만원(소방서 추산)의 재산피해를 입힌 혐의다. 경찰 조사 결과 S양은 이군에게 수차례에 걸쳐 폭행당하자 이에 앙심을 품고 있던 중 이군의 집을 지나다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홧김에 이 같은 짓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자리다툼, 초등학생 옥상에서 투신] 친구들과 자리다툼을 벌이던 한 초등학생이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린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지난 19일 오후 12시 20분쯤 서울 양천구의 한 초등학교 건물 4층 옥상에서 이 학교에 다니는 6학년 A양이 건물 아래로 뛰어내려팔과 다리 등에 골절상을 입었다. 조사결과 A양은 친구들과 자리다툼을 벌이다 수업이 끝난 뒤 옥상으로 올라갔다가 사고를 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다행히 A양은 화단으로 떨어져 팔과 다리 등에 골절상을 입었을 뿐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초등학생, 왜 흉기로 친구를] 지금부터 전해드릴 소식 시청자 여러분께서도 함께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지난 금요일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 같은 반 친구에게 흉기를 휘두르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어쩌다가 다른 곳도 아닌 초등학교에서까지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사건은 1교시가 끝난 뒤 쉬는 시간, 복도 한가운데서 일어났는데요. 6학년 한 모군이 같은 반 친구인 이 모군을 향해 흉기를 꺼내들고 달려들었다는 겁니다. 눈 깜짝할 사이 벌어진 일이지만, 끔찍한 광경을 그 자리에 있던 많은 학생들이 그대로 목격할 수밖에 없었다는데요, 이 군은 팔과 옆구리 등 세 곳을 흉기에 찔렸고, 뒤늦게 달려온 담임교사에 의해 즉시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뒤늦게 진상조사에 착수한 학교 측에서는, 흉기를 휘두른 한 군의 입에서, 그동안 이군에게 괴롭힘을 당해왔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습니다.한 조사에 따르면 초, 중학생 중 최근 1년 간 학교 폭력을 당한 학생이 17%에 이르고, 이 가운데 77%가 초등학교 때 폭력을 접했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청소년 전문가들은, 점점 어린 층까지 확산되는 학교 폭력에 대해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물론 이와 같은 사건들이 기사화되고 화제가 되고 있으며, 사람들의 마음을 서늘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은 이러한 사건들이 아직 우리 사회의 일부에서만 일어나고 있으며 충분히 변화시킬 여지가 있다고 할 수 있다.요즘 초등학생들의 잘못된 도덕개념이 일어나는 부분은 바로 친구들과 같은 대인관계에서 자주 발생하고 있다. 과거 한 때도 크게 이슈가 되었던 왕따 문제는 좀처럼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으며, 초등학교 폭력문제도 날이 갈수록 그 수준이 심각해져 가고 있다. 타당하지 못한 이유로 친구들을 따돌리기도 하고, 정당하지 못한 이유로 다른 친구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초등학생들의 과반수이상이 따돌림과 폭력을 처음 경험한 때가 초등학교 때라고 하니 이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초등학생들의 도덕의식이 잘 드러나고 있는 부분은 또 있다. 요즘 초등학생들 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따로 생각할 수 없는 문화 중 하나가 인터넷 문화이다. 하지만 아직 도덕적인 개념이나 의식이 바로 잡히지 않은 초등학생들이 인터넷을 무분별하게 접하면서 그 사태의 시각성이 더해지고 있다. 인터넷 문화에서 초등학생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 존재 중 하나가 바로 어른들이다. 아이들은 어른들을 배우고 마치 자신도 어른인양 그 행동을 복사하곤 한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 도덕적인 개념이 확실하지 않은 아이들에게 예의바르고 온건한 그런 사람보다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사람이 더 어필되어 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이렇게 날로 심각해져 가고 있는 초등학생들의 도덕의식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도덕교육이 바로서야 할 것이다. 하지만 공자, 맹자를 읊어대며 초등학생들의 귀를 고문하는 것이 올바른 초등도덕교육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또한 온갖 착한 어린이들만을 교과서에 실어놓고 따라하라고, 본받으라고 강요하는 시기는 지났다. 따라서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특징을 파악해 봄으로써 현 초등학교 도덕교육의 방향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현 도덕교육의 문제점과 더불어 개선방향을 살펴보도록 하자. 아이들은 도덕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다. 도덕은 식상한 것, 뻔한 것이라는 공식이 아이들의 머리 속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수업 시간에 수업을 잘 듣지 않아도 시험 정도는 잘 치를 수 있으며, 도덕 수업은 있으나마나 한 시간이 되고 만다.또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가치관이 흔들리고 혼동되며,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도처에는 아이들이 쉽게 빠지기 쉬운 유혹들이 존재하고, 생각 없이 행동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아이들은 왜 이 같은 유혹들에 쉽게 빠지는가? 이는 아이들이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아직 가치관을 세울 기회를 갖지 못했고, 자신을 바로 잡아줄 가치관이 없기 때문에 이런 유혹에 휘청하고 저런 유혹에도 휘청하게 되는 것이다.
★ 형식도야이론형식 → 내용을 의미함 / 도야 → 연마를 의미함교과〈형식 : 사고력, 기억력, 상상력, 추리력...내용 : 국어, 수학, 음악, 미술...수학은 왜 배우는가? → 사고력, 추리력, 기억력을 기르기 위해서 수학을 배운다.지금부터 ↑ 말을 바탕으로 형식도야이론에 대해 탐구해보자.형식도야이론은 능력심리학(faculty psychology)이 바탕이 되어있다. 능력심리학은 우리 마음속에서 수리력을 담당하는 부분, 언어력을 담당하는 부분, 사고력을 담당하는 부분 등의 심근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마치 소고기가 안심, 등심 있는 것처럼)그러니까이두근을 발달시키기 위해 덤벨을 들듯이,사고력을 발달시키기 위해 수학을 공부한다.라고 주장을 한다.★ 형식도야이론이 바탕이 되었던 시험 : 과거시험 - 시(詩) 작문하는 것을 본다.형식도야이론은 고대부터 인정되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형식도야 이론의 비판1. William James의 실험① 빅토르 위고의 시 158행을 외우는데 걸리는 시간 132분② 존 밀턴의 실낙원 1권 외우기 - 38일이 걸렸다. → 이것은 기억력 훈련에 해당한다.③ 다시 빅토르 위고의 시 나머지 158행을 외우는데 걸리는 시간을 재봄 → 151.5분만약 기억력 훈련이(②) 기억력을 향상시키는데 도움이 된다면, 시를 외우는 두 번째 시도에서는(③) 더 적은 시간이 걸렸어야 했다. 그러나 기억 훈련 뒤 시를 외우는데 걸린 시간은 더 늘어났다. 즉, 능력심리학에서 주장하는 일반적 전이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2. Edward Lee Thorndike8000여명의 학생들을 반으로 쪼개서 실험을 했다.A그룹7자유학과를 공부함(도야적 가치가 큰 것으로 인정되는 과목)B그룹7자유학과를 공부하지 않음(실용적 교과를 배움)1년후지능 ↓지능 ↑〈 7자유학과 : 3학(문법, 수사학, 논리학) + 4과(기하학, 대수, 음악, 천문학) 〉형식도야이론의 주장이 옳다면 1년 후 지능검사를 했을 때, 7자유학과를 공부한 학생들은 실용적 과목을 배운 학생들에 비하여 더 큰 차이를 나타냈을 것이다. 그러나 ‘자연적 증가’ (실험처치 이외의 영향에서 오는 증가)를 고려하면 큰 차이가 없었다.3. John Dewey몸과 마음이 이원화 될 수 없듯이(개념적 구분의 관계), 형식과 내용도 이원화 될 수 없다.(개념적 구분의 관계) 듀이의 주장은 쉽게 말해 ‘만약 형식과 내용이 이원화되어 있다면 추리력을 기르기 위해 어려운 수학을 가르치지 말고, 추리소설을 읽히면 된다.’ 라는 것이다.
키에르케고르의 간접전달키에르케고르의 교육방법에 관한 논의에서는, 전달내용과 전달방법은 진리를 스스로 대면하고 그것을 자신의 삶으로 복제하면서 동시에 학생과 실존적으로 교섭하는 교사의 존재와 별개로 분리시켜 논의할 수 없다는 점이 더욱 부각된다. 키에르케고르는 자신의 목적(기독교인의 형성)에 맞게 소크라테스의 교육방법을 정련시킴으로써 그 원리를 자신의 교육 방법으로 체계화 하였는데, 키에르케고르가 말하는 교육방법이라는 것은 키에르케고르 자신이 독창적으로 개발해 낸 교육방법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키에르케고르가 이해하고 있는, 또는 키에르케고르의 존재에 의해서 복제된 교사로서의 예수의 교육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양자의 교육방법에서 추출할 수 있는 핵심적 요소 3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곧 교사의 자세, 전달의 방법, 그리고 그것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학생의 심리상태이다.[소크라테스의 교육방법]‘아이로니’는 소크라테스의 삶의 자세를 한마디로 요약하는 개념으로 헤겔은 아이로니를 학생의 무지를 일깨우고 그에게 지식에 대한 열정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교육방법’으로 보았다. 쉽게 말하면 아이로니는 참다운 인식에 도달하기 위해 소크라테스가 쓴 문답법을 말한다. 이렇게 소크라테스의 아이로니는 무지에서 출발하여 무지로 끝나는데 이 경우 소크라테스의 무지는 사물의 이면에 들어 있는 근본적인 원리, 영원한 것, 신적인 것에 관한 지식의 결여를 뜻한다. 이것을 학생과의 관계 속에서의 교사의 자세로 파악해보면 소크라테스의 산파술로 설명될 수 있는데, 교사는 그 역할이 드러나지 않게 학생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와주는 조력자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소크라테스의 아이로니와 산파술은 이른바 ‘회상이론’과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있다. 적어도 산파술(아기는 산모에게 있음 = 지식.진리는 학생이 가지고 있음)은 진리가 학생의 내면에 잠재적인 형태로 들어 있다는 공통된 가정에 입각해 있기에 교사가 산파의 위치에 머물러야 하는 근거가 된다. 즉, 회상이론이라는 것은 산파술의 이론적 기초요, 산파술은 회상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적 계기라고 말할 수 있다. 회상이론이 교육방법에 주는 시사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회상이론을 지식의 전달과정 또는 ‘지식의 내면화’라는 관점에서 새롭게 조명해볼 필요가 있는데 이 관점에서, 회상이론은 학생이 지식을 철저하게 이해하도록 이끌면서 교사 자신의 역할은 감추는, 고도로 정련된 교육방법을 함의하는 것으로 볼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볼 때 비로소 교사와 학생의 관계가 살아날 수 있는 것이다.어떠한 가능성이 자신의 이상적인 모습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될 때 학생은 그것을 실현하려는 강렬한 열정을 느끼게 되는데, 이처럼 진리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려는 강렬한 동기 또는 열정을 ‘에로스’(결핍에서 풍요로 나아가려는 존재. 양자 사이에 있는 상태를 뜻함.)라고 한다. 이러한 에로스는 교사의 아이로니적 자세에서 비롯되는데, 여기서 또한 교사는 학생들이 끊임없이 탐구하고 질문하여 스스로 해답을 찾아가게끔 도와주는 역할이 필요하다.[키에르케고르의 교육방법]소크라테스와 예수의 관계는 키에르케고르 사상 전체를 통하여 핵심적인 주제로 취급되고 있는데, ‘파라독스’는 교사로서의 예수, 즉 ‘신과 동일한 인간’으로서의 예수의 존재양상을 개념화한 것이다. 예수와 소크라테스의 관계는 교사의 자세라는 면에 초점을 두고 볼 때 잘 드러난다. 이 면에서 키에르케고르의 논의는 결국, 예수는 진리와 개인이 매개되는 ‘순간’ 그 자체를 창조할 수 있는 ‘진리의 제공자’인 데 비하여 소크라테스는 ‘학습의 우연적 계기’에 불과하다는 주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여기서 ‘순간’은 교사의 적극적, 필수적 역할을 나타내는 반면, ‘우연적 계기’는 단순히 학생 안에 있던 것을 드러내는 소극적, 부차적 역할을 나타낸다.‘간접전달’의 목적은 결국 자아의 발달, 구체적으로 말하면 기독교적 자아의 실현에 있다. 간접전달의 핵심 원리는 ‘이중반사’라는 개념으로 설명된다. 이중반사는 교사가 학생에게 전달하는 관념을 통해 자기 자신의 자아가 반사되는 1차 반사와, 1차 반사된 관념을 통해 현실성을 바라보고 그것을 학생의 실존(자아)에 다시 반사시키는 2차 반사의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교사의 파라독스적 자세는 이 ‘이중반사’의 원리를 구현하기 위한 것인데, 즉 교사는 교사와 진리와의 관계를 학생과 진리와의 관계로 복제시켜야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중반사는 교사의 파라독스적 자세에 대한 반응으로서 학생이 ‘가능성’을 선택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키에르케고르는 학생으로 하여금 새로운 존재에로의 변화를 견딜 수 있게 하면서 그를 절박한 선택의 상황으로 내모는 열정을 ‘상심의 가능성’이라는 용어로 규정하였다. 상심의 가능성은 간접전달의 필수적 조건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절대적으로 믿는 것은 신앙이 아니라는 것이다. 계속 하느님의 존재를 의심하면서 하느님의 존재를 믿어야만 자기 자신에게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 상심의 가능성은 교사로서의 신의 파라독스적 자세에 대한 학생의 심리적 반응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교사는 자신의 사랑에 대한 학생의 최종적 반응이 거부하려는 ‘상심’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자기화하려는 ‘신앙’이 되도록 이끌어 나가야 할 것이다.
6. 지식의 형식1) 보는 지식과 하는 지식교육 내용에는 두 유형이 있다. ‘보는 지식’과 ‘하는 지식’이다. 예를 들어서,보는 지식하는 지식“빛은 직진한다.”“퓨즈를 잘 갈아 끼운다.”실천하는 것이 아니다.혜택의 범위는 자기 자신 뿐.실천하는 것이다.(실용적이다)혜택의 범위가 넓다.문제(Question)발견의 개념이다.목적은 내적안목의 변화에 있다.문제(problem)해결의 개념이다.목적은 외적사태의 변화에 있다.지식의 측면기술적 측면몇 사람만 배워도 많은 사람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내용과 당사자 자신이 배우지 않으면 안 되는 내용, 즉 누구나 배울 필요가 없는 내용과 누구나 배워야하는 내용- 이 두 가지 중 우리는 어느 것을 가르쳐야 할까? 를 생각해보기.교육방법에도 두 유형이 있다. ‘이해를 위한 교육’과 ‘설득을 위한 교육’이다.이해를 위한 교육(보는 지식)설득을 위한 교육(하는 지식)교사는 학생 자신의 능력과 판단을 존중하는 것 중시교사가 학생으로 하여금 그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 그 자체가 목적학생 마음속에 일어나는 변화에 관심외부적으로 나타나는 학생의 반응 그 자체에 관심교사는 ‘목적적 인간관’을 가짐교사는 ‘수단적 인간관’을 가짐‘수업’‘교화’그런데 왜 교사들은 교화를 할까?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까?→우리 삶의 현실에서는 교화(설득을 위한 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사태가 끊임없이 대두된다는 것이다. 설득을 위한 교육은 우리 삶에 엄연히 존재하는 삶의 한 측면이다. 즉 보는 지식과 이해를 위한 교육, 하는 지식과 설득을 위한 교육이라는 것은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위한 수단이 되는 그런 관계가 아니라 삶의 두 가지 대등한 측면이다.2) 교과로서의 ‘지식의 형식’피터즈의 「윤리학과 교육」에서 그는 교과를 실용적 가치로 설명하려고 하는 현대에 와서 점점 강해지는 경향을 비판하고 그것에 대한 대안으로 교과의 ‘내재적 가치’를 주장하였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내재적 가치’와 그 가치를 설명하는 방식인 ‘선험적 정당화 논의’이다.①내재적 가치 : 수단적 가치가 ‘어떤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가치’로 규정되는 데에 비하여 내재적 가치는 ‘그 자체로서의 가치’라는 용어로 규정된다. 교과의 내재적 정당화는 우리의 관심을 교과 그 자체에 돌림으로써 그것이 가진 원래 의미가 살아나도록 한다.②교과의 선험적 정당화 : 피터즈는 ‘지식의 형식’과 동일한 의미를 나타내는 것으로 여러 가지 표현을 사용하는데 ‘공적 언어에 담겨있는 공적 전통’ ‘공적 유산’ ‘분화된 개념구조’등이 그것이다. 교과로서 ‘지식의 형식’ 또는 ‘학문’을 배울 때 우리는 인간의 그 공적 전통에 입문하여 거기에 참여하는 것이다. 선험적 정당화의 내용은 개인이 심리적으로 그것을 납득하든지 않든지 간에 논리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스스로 모순, 자가당착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지식의 형식이 왜 가치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한다고 하자. 그는 이미 이 맥락 속에 들어와 있는 사람으로서, 그런 사람의 입장에서 그 질문을 하는 것이다. 그것을 바로 우리 삶의 맥락, 즉 지식의 형식을 가치 있는 것으로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우리 삶의 맥락이다. 그 질문은 지식의 형식이 가치 있다는 논리적 가정에 입각해서만 의미 있게 성립한다.
사실상, 미국에는 곳곳에서 중등학교 교육과정을 재구성하는 작업이 일어나고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스푸트니크 충격으로 인해 우즈호울 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의 종합보고서인 브루너의 ‘교육과정’에 소개된 개념이 ‘지식의 구조’이다.‘지식의 구조’라는 말에 담겨 있는 교과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과 대비되는, 그것이 극복하고자 한 생활적응교육의 교과관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생활적응교육’은 사회가 발전해 가면서 공부와 일, 즉 교육사태와 생활사태가 구분되었고, 왜 일에 필요한 지식들을 직접적으로 배우지 않는가라는 의문에서 시작한다. 즉, 형식도야이론에서는 교육사태를 생활사태에 연결시키려고 한 데 비해, 그것보다는 더 직접적으로 교육사태로 대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실천된 것이 생활적응교육이다. 하지만 두 가지 폐단이 나타나는데, 그 하나는 학생의 ‘흥미’와 ‘필요’를 교육내용 선정의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에 교육적 가치를 상실하였다는 것, 또 다른 하나는 교과목 사이의 구분이 그 의미를 상실한다는 것이다지식의 구조는 이런 생활적응교육에서 방치되었던 교과의 의미를 밝히기 위해 대두된 개념이다. 브루너는 ‘겉으로 보기에만 교과인 것’은 ‘교과의 중간언어’라고 불렀다. ‘중간언어’라는 것은 학자들의 언어 그 자체가 아니라, 학자들의 언어를 학생들에게 전달해 주기 위하여 사용되는 언어를 뜻한다. 이와 대비하여 생겨난 용어인 ‘지식의 구조’라는 것은 교과로서의 수학의 구조, 물리학의 구조 등등 개별적인 교과의 구조를 일괄적으로 지칭한다. 브루너는 “구조를 학습한다는 것은 사물이나 현상이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가를 학습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를 보면, 지식의 구조라는 것은 교과에 들어 있는 일반적 개념과 원리를 가리키는 것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두 가지 어려움이 있다. 첫째로, 만약 지식의 구조가 곧 일반적 개념과 원리라면 지식의 구조가 교육의 내용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로, 일반적 개념과 원리를 나타내는 용어로는 단순히 ‘지식’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에 ‘구조’라는 말이 특별한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따라서 지식의 구조라는 용어는 지식의 ‘구조적 성격’을 드러내는 데에 그 원래의 취지가 있다. 지식의 구조라는 것은 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에게 학자들이 하는 활동으로서의 학문과 동일한 상태로 가르쳐지는 교과이며 학문답게 가르쳐지는 교과를 말한다.구조라는 것은 반드시 여러 개의 요소와 요소들이 서로 특이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을 말한다. 지식의 구조에 기반한 교과는 지식도 그러한 구조의 기본성격에 의하여 그 학문을 이루는 요소로서의 일반적 개념과 원리는 그 하나하나가 그 학문의 구조적 특징을 반영하여야 한다. 또한 지식의 구조로서 가르친다는 것은 물리학의 개념과 원리가 물리학의 구조적 특징을 반영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을 의미한다.이런 지식의 구조가 교육내용의 조직형태와 교육방법으로 표현된 것이 각각 나선형 교육과정과 탐구학습이다. 나선형 교육과정이라는 것은 동일한 교과가 점점 깊이와 폭을 더해 가면서 심화되어 나가도록 조직된 교육과정을 말한다. 나선형 교육과정에는 두 가지 고려사항이 있는데, 하나는 교과가 학년수준에 관계없이 동일하다는 것이요(연속성), 또 하나는 해당학년의 수준에 맞게 상이한 형태로 번역되어야 한다는 것이다.(차이) 나선형 교육과정의 성패는 이 두 가지 고려사항 사이의 미묘한 균형을 얼마나 잘 유지하는가에 달려 있다. 지식의 구조를 가르치는 방법상의 원리로서 탐구학습은 학생들로 하여금 그 문제에 대한 대답을 능동적으로, 자발적인 노력에 의하여 알아내도록 하는 특징이 있다. 이러 특징은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지식의 구조를 학생 자신의 것으로 ‘내면화’하는 데 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