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지도성의 개념(1) 스톡딜(Ralph M. Stogdill): 지도성이란 목표설정과 목표달성을 위해 조직화 된 집단의 활동에 영향을 주는 과정.(2) 히어시 & 브랜챠드(Paul Hersey & Kenneth H. Blanchard): 지도성이란 어떤 주어진 상황 속에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개인 또는 집단의 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으로, 지도자(l : leader), 구성원(f : follower), 상황변수들(sv : situation variables)의 함수관계 L=f(l.f.sv)로 제시.(3) 테리(G.R Terry): 집단의 목표 달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구성원에게 영향을 주게 하는 행동.⇒ 지도성이란 주어진 상황 속에서 조직의 목적을 효율적으로 달성하기 위하여 집단 성원으로 하여금 목적 수행에 자발적으로 공헌할 수 있도록 유도,조정하는 행동.Ⅱ. 지도성 연구의 접근방법1. 특성론적 접근 방법 (trait approach)▶ 지도자와 추종자로 구분될 수 있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어서 지도자는 추종자가 소유하고 있지 않은 특성을 지니고 있고 그러한 특성을 지닌 사람은 어느 집단이나 상황에서도 유능한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가정 하에 성공적인 지도자의 개인적 특질 또는 특성에서 찾아내려 하였다.1) 스톡딜 (Ralph M. Stogdill)- 124개 문헌 분석하여 리더십의 특성을 다음과 같은 6개의 특성 군으로 제시.① 능력(capacity) - 지능, 민첩성, 언어유창성, 독창성, 판단력.② 성취(achievement) - 학식, 지식, 운동기능.③ 책임(responsibility) - 신뢰성, 솔선수범, 인내, 적극성, 자신감, 우월감.④ 참여(participation) - 활동성, 사회성, 협동성, 적응성, 유머.⑤ 지위(status) - 사회 · 경제적 지위, 인기.⑥ 상황(situation) - 부하들의 지적수준, 지위, 기술요구와 관심,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2) 특성이론 비판- 성격, 특성의 개념 및 그 의미가 모호하다.- 제 특성을 정확하게 측정하기가 어렵다.- 상황을 무시한 채 특성만으로 목표 달성이 어렵다.- 여러 상황에 맞는 공통적인 지도자의 특성을 발견하기가 어렵다.- 성원(추종자)에 대한 고려가 없다.2. 상호작용 이론 접근방법 (interaction theory)▶ 조직의 효과성은 지도자가 집단에서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전제하에 지도자의 실제행동을 연구하는 것이 행동이론이다.1) 오하이오 주립대학의 2차원 모형 연구- 지도자 행동기술 설문지(LBDQ: Leader Behavior Description Questionnaire) 사용하여 여러 지도성 상황 하에서 지도성 효과를 측정.- 연구의 목적 : 지도자의 행동유형과 집단의 성과 그리고 구성원들의 만족감사이의 상호관계를 분석, 연구.- LBDQ : 지도자의 행동을 과업 중심차원과 인화중심차원으로 분류하여 측정하는 질문지.- 과업 중심 차원 : 조직의 목적 달성을 위한 지도성 행위- 인화 중심 차원 : 구성원들을 위한 지도성 행위- 과업중심차원과 인화중심차원은 지도자 행동의 기본을 이루는 두 차원- 지도자는 과업지향성을 강조하는데 비해 부하는 인화지향성에 더 많은 관심- 상황의 특성에 따라 요구되어지는 지도성 행동유형이 다름.2) 블레이크와 마우튼의 관리망 모형(경영격자도 : Managerial Grid)- 지도성의 유형을 생산 중심적 차원과 인간 중심적 차원으로 분류- 지도자가 이 두 가지 차원을 어떻게 결합하느냐에 따라서 그 지도자가 위계조직과 지도력 유형을 어떻게 사용하느냐를 결정- 다섯 가지 대표적인 유형의 기본적 가정과 특징(1.1형) 방임형- 인간과 생산에 대한 관심이 적은 지도자형. 단지 조직 구성원의 자격을 계속 유지 할 정도로 작업 수행 상 최소한의 노력.(1.9형) 권위형- 생산에 관해서는 관심을 보이나 인간에 대한 관심은 별로 없는 지도자 형. 인간적 요인보다는 작업 조건을 중요. 단기간에 고도의 생산성을 달성 할 수 있지만 하위 조직 구성원들에게 무관심하고 냉담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문제.(0.1형) 사교형- 인간에 대한 관심이 지대한 지도자 유형. 원만한 인간관계를 중심으로 조직을 유지해 나가려는 인환 중심 지도성. 생산에 있어서 문제가 야기 될 수 있고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음.(5.5형) 중도형(가장 전형적) - 생산과 인간에 관한 관심이 모두 적당한 정도로 유지되는 균형적인 지도자 유형. 지도자는 공정하지만 확고한 표준을 고수하며 절도 있는 유화 강경책을 써가며 하위자들의 능력을 신뢰. 최선의 해결책보다는 균형 잡힌 해결책을 시도하게 된다는 단점 존재.(9.9형) 팀형(가장 이상적) - 생산과 인간 모두에게 높은 관심을 함께 보이는 통합형 지도자 유형. 최선의 그리고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을 발견하려고 노력, 구성원들의 자아실현의 욕구를 만족시켜 주고 신뢰와 지원의 분위기를 이루어 높은 생산성 그리고 완전한 인간적 통합을 가져올 수 있다고 믿는 지도자의 유형.? 전형적 관리자 유형 : 중도형〉팀형〉사교형〉권위형〉방임형? 성공적 관리자 유형 : 팀형, 사교형3. 상황이론 (situational approach or contingency theory)▶ 특성이론이나 행동이론은 지도성을 조직의 성과나 조직구성원들의 만족도와 같은 효과차원과는 연결시키지 못 하여서 상황적 요인을 고려하여 그에 적합한 지도성 유형을 찾아보려고 시도한 것을 지도성 상황이론이라고 한다.지도성 효과는 조직구성원의 인성 특성, 과업 구조, 공식적인 권위 체제, 역할 기대, 성숙 수준 등의 여러 가지 복합적인 상황 변수가 지도자의 행동과 어떻게 적절하게 조합되느냐에 따라서 결정된다.1) 피들러(Fiedler)의 우연성 모형(Contingency model)- 지도성 유형은 지도자의 동기체제에 의하여 결정되며 또한 지도성의 효과는 지도자의 유형과 상황적 요인(지도자의 구성원 관계, 과업의 구조, 지도자의 직위권한)에 의해 결정되며 이 두 요인이 적절하게 관련될 때 효과가 높아진다.(1) 지도성 유형과 LPC- 지도성 유형(Leadership style) : 다양한 대인 관계의 상황에서 행동을 동기화 시키는 지도자의 기본적 욕구 구조인 인성특성- LPC(Least Preferred Co-worker): “가장 싫어하는 동료”라고 하는 16개 형용사로 구성된 의미변별척도점수는 지도자의 과업지향성 또는 관계지향성을 나타냄LPC 점수는 총 16개의 문항점수의 합계- 관계 지향적 지도자 (LPC 점수 ?) : 성공적인 대인관계에서 만족을 얻음.- 과업 지향적 지도자 (LPC 점수 ?) : 성공적인 과업 수행에 의하여 동기화 됨.(2) 지도자 효과성(Leader Effectiveness)-지도자가 조직구성원을 통제하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도지도자와 구성원간의 관계 (지도자가 부하로부터 얼마나 많은 신임과 충성을 받고 있느냐, 그의 지도를 얼마나 따르느냐)과업의 구조화 정도 (업무내용이나 방법이 상부의 지지를 어느 정도 받고 있느냐)직위에 부여된 권력 (지도자가 공적지위를 차지함으로써 생기는 권력)⇒ 세 가지 요인들이 어떻게 결합되느냐에 따라 상황은 지도자에게 보다 호의적일 수 있고 보다 비호의적 일 수 있다.(3) 지도성 유형과 상황의 조합(The match: style and situation)* 조직의 성취를 극대화하기 위한 가장 적절한 지도성 유형은 상황의 호의성에 좌우
교육사회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괭이부리말 아이들..관광통역학과200501000이 선 하이 과제에 대한 주위사람들의 반응은 괭이부리말아이들은 교육사회 과목에서 단골 과제라고 했다. 단순히 우리나라 한 편에서 일어나고 있을법한 이야기 뿐만 아니라 교육자가 될 학생들에게 많은 것을 암시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그래서 평소 같았음 그냥 읽고 지나갔을 내용들을 두 번, 세 번 읽으면서 내가 알고 있는 교육사회학에 대한 얕은 지식이나마 긁어모아 적용시켜보았다.먼저 이 책의 배경이 되는 괭이부리말 마을은 인천의 가장 오래된 빈민지역으로 경제적 수준이 아주 떨어지고 교육수준과 환경 역시 몹시 떨어지는 그야말로 흔히 알고 있는 달동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중심이 되는 등장인물들은 쌍둥이 자매인 숙자,숙희를 비롯하여 동수와 동준 형제, 동수의 친구 명환, 이들을 걷어주는 영호와 아이들의 담임선생님인 명희가 주축이 되어 이야기를 이룬다. 흔히 빈민가의 가정이라 하면 편부, 편모의 가정이 대부분이고 아버지는 술주정꾼에 어머니는 집을 나가시고 아이들은 나쁜 길로 빠지는 것이 당연시 되는 것처럼 생각한다. 이 소설도 이 패턴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지만 결국 마지막에 와서는 비록 힘겹게 살아가고 있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각자의 할 일을 찾아 새로운 발걸음을 옮기게 된다. 이 소설에서 크게 기능론적 관점과 갈등론적 관점을 찾아 볼 수 있었다.대표적인 기능론적 패러다임은 가진 인물은 김명희 선생님 이였다. 명희는 어릴 때 괭이부리말에서 자랐고 항상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여 벗어나기 위해 공부를 통해 노력했다.그녀와 그녀의 가족들은 괭이부리말에서 사는 것은 잠시 머무르는 것으로 생각하고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간 오빠를 성공했다고 명희는 말한다. 즉, 명희는 고학력을 얻는 것이 높은 지위 획득의 수단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것을 성취하므로 이것은 괭이부리말 사람들은 실패자로 보게 만들었다. 여기서 교육의 업적 주의적 측면과 저항이론의 면모를 찾을 수 있었다. 기능론적 관점에서 학교 교육은 아주 중요하게 인식된다. 비록 가진 것 없는 빈민가의 자식들이지만 부모들은 어떻게든 학교를 가야한다고 생각하고 학교 교육을 통해 한 단계 높은 지위상승을 꿈꾸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영호가 기술을 배우겠다는 동수에게 졸업장이 있어야 취직을 할 수 있고 이것은 사회가 요구하는 것이라고 하는 대화에서 잘 드러난다.학교 다닐 나이에 학교를 가지 않는 것은 불량배이며 학교 제도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를 나쁜 아이, 또는 가능성이 없다고 표현하는 숙자어머니와 명희에게도 자연스럽게 인식되어진 기능론적 관점을 보여준다. 하지만 소설은 개인의 능력에 의해 성공과 실패가 좌우되는 기능론적 관점을 보여주기 이전에 제시된 배경에 의해 갈등론적 관점을 찾을 수 있다.아이들 개개인의 능력보다는 그들에게 주어진 가난이라는 사회적 배경이 있는 한 결코 모두가 평등하지는 않다. 사회를 갈등과 경쟁의 연속으로 인식하며 교육이 사회전반의 지배계층의 가치와 밀접하게 관련 있다고 주장하는 이 관점에서 괭이부리말은 빈민촌이란 열악한 환경이며 이것은 대물림 되어진다. 괭이부리말 교회에서 다른 마을의 아이와 어울리지 않으려 하고 주눅이 들어 교회에 갈 용기조차 내지 못하는 괭이부리말 사람들은 자신들보다 나은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을 지배계층으로 인식하고 거기에서 비롯된 계급의식에서 열등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또한 명희와 영호가 어릴 적에 말썽부리고 퇴학 맞는 아이들은 다 괭이부리말 출신이었고 동수가 간 구치소내의 절반이 괭이부리말 아이들이였다는 점에서 유난히 비뚤어지고 비행을 일삼는 아이들의 행동은 빈곤한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들의 삶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한 방법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이들은 학교를 부정하게 되고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결국 경제적, 문화적 재생산의 산물이며 애초부터 괭이부리말의 아이들은 그러한 면에서 소외된 계급이었던 것을 알 수 있었다.하지만 이 소설은 사회에 대해 비판적이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명희는 영호와 그와 함께 지내는 동수와 명환을 알게 되면서 해석학적 관점으로 아이들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명희는 아이들과의 대화에서 스스로가 변해 가는데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숙자에게 보이던 관심을 억지로 시작된 일이지만 동수에게도 관심을 갖게 되면서 아이들이 받는 상처를 보게 되고 오히려 마음의 문을 닫아걸고 있었던 것은 바로 자기 자신 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제 목 : 교육의 개념을 읽고..▶ 과 목 :교육학 개론▶ 학 과 :관광통역학과▶ 학 번 :200501000▶ 이 름 :이 선 하▶ 담당교수 :문 미 희 교수님▶ 제 출 일 :06. 06. 02. (금)어렵사리 구한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의 느낌은 그야말로 막막했었다. 개인적으로 한문을 아주 싫어했던 나로서는 정말 이 책을 과연 다 읽을 수가 있을런지도 의문이었다. 전자수첩과 중문과 동생을 동원해서 기어이 찾아가며 읽은 내용들을 요약하고자 한다.먼저 저자는 키에르케고르의 한 이야기를 제시하면서 자연스럽게 ‘교육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접근하였다. 여기에 대답으로 많은 사람들은 지적호기심 때문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야말로 무엇인가를 알고 싶은 욕망이 생겼을 때에 가질 수 있는 물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근본적인 대답은 될 수가 없다. 이 외에 대답으로는 교육에 무엇인가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될 때 제기되는 물음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물음과 대답들이 교육이라는 단어 자체에 정의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어떻게 교육하는 올바르게 교육하는 것인가를 묻는 질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이 책에는 세 명의 학자들이 교육의 개념을 정의하고 있다. 우선 정범모 교수의 정의를 요약하자면 우선 정범모 교수는 공학적 개념과 조작적 정의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공학적 개념에서 ‘공학’이라는 것은 좁은 의미에서의 공학만 아니라 농학, 의학 등을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것이며, 이들 여러 분야에 걸쳐서 구안, 시행되는 ‘기술’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구안하고, 시행하는 데에 관련되는 ‘사고방식’을 가리킨다. 이 개념에서 교육을 ‘인간행동의 계획적 변화’라고 정의한다. 이 정의에 따르면 하나의 활동이 교육인가 아닌가 하는 것은 그 활동이 의도하는 인간행동의 변화가 실제로 관찰되는가 아닌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교육에는 공학과 공통된 요소가 있다. 공학이 가장 중요한 특징 또는 임무가 우리가 바라는 변화를 일으키는 데 있으므로 공학의 핵심개념은 ‘의도적 변화’라고 말할 수 있다. 교육도 이와 마찬가지로 교육이 행해지는 곳에는 반드시 어떤 종류의 것이든 결과를 이루기 위한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단 교육을 공학적 개념으로 파악할 경우에는 그 다른 공학들이 가지고 있는 공학의 일반적 특징이 교육을 보는 데에도 그래도 적용된다고 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한 공학의 일반적 특징으로서 특히 중요한 것은 공학은 목적이 이미 주어진 상태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공학의 경우에는, 공학적인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그 목적이 주어져 있다는 것은 그 목적과 활동이 개념상 별개의 것임을 의미한다. ‘개념상 별개의 것’이라고 할 때의 ‘개념상’이라는 말은 특별히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목적과 활동이 개념상 별개의 것이라는 말은 목적과 활동사이에 하등의 관계도 없다는 뜻이 아니라 무슨 활동으로 그 목적을 달성할까나 결정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도 목적을 결정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활동이 목적에 대하여 중립적이라고 하는 말도 마찬가지 의미를 나타낸다. 흔히 수단과 목적의 관계라는 말을 하지만, 이 말은, 엄밀한 의미에서는 수단과 목적이라는 용어로 지칭되는 두 개의 사항이 개념상 별개의 경우에만 적용된다. 그러므로 공학은 이런 엄밀한 의미에서의 수단과 목적의 관계에 비추어 파악되는 활동이다. 공학에 있어서는 목적과 활동이 별개의 것이라든지, 활동이 목적에 대하여 중립적이라든지, 수단 목적의 관계가 의미 있게 적용된다든지 하는 여러 가지 표현은 결국, 공학에 있어서는 동일한 목적이 다양한 사둔에 의하여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그 수단은 어김없이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어야 하며, 이 점에서 강력하고 효율적인 것이어야 하지만 어떤 수단을 동원하는가 하는 최종적으로 달성되는 목적에 달려 있으며, 그 목적이 어떤 것인가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고 이것이 공학의 일반적 특징이다. 이러한 수단과 목적 관계가 우리가 생각하는 거의 모든 활동에 적용되는 만큼, 교육을 활동으로 보고 적용할 수 있다. 그렇지만 다른 관점으로 보면 교육의 경우에는 교육을 하기 전에 목적이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교육 활동 그 자체가 교육의 목적을 정립해 나가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수정해야할 미비점이 아니라 개선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정범모 교수는 앞에서 말했듯이 교육을 ‘인간행동의 계획적인 변화’라고 정의하고 이 정의를 조작적 견지, 즉 실제에 포함되는 요인과 활동의 견지에서의 정의, 간단히 조작적 정의하고 말한다. 이 조작적 정의에는 세 개의 요소로 인간행동, 변화, 계획적이라는 중핵 개념으로 이루어져 있다. 행동이라는 용어는 교육이 대상으로 하는 인간의 의미, 다시 말하면 교육이 기르고자 하는 인간의 측면을 구체적으로 지적하는 데에 유용하다. ‘교육은 인간을 기른다’ 라는 말에서 인간은 사실은 인간의 행동을 가리키는 것이다. 즉 교육은 그런 사회적 기능에 직접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능을 수행하는 인간을 만드는 일에 관심을 둔다.그리고 여기서 행동은 지식뿐만 아니라 내면적인 행동들도 포함한다. 또한 교육은 인간 행동의 변화를 일으키는 데에 관심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 행동이 의도적인 노력에 의하여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가정한다. 이것은 교육이라는 활동과 교육학이라는 학문의 성립 기반임과 동시에 그 존재 이유가 되고 마찬가지로, 교육이 참으로 교육으로서 의미를 가지려고 하면, 인간행동의 변화를 실지로 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인간행동의 변화는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하여 일어날 수 있지만, 그것이 교육의 경우에 속하기 위해서는 그 변화가 ‘계획에 의한’것이어야 한다. ‘계획’은 인간행동, 변화, 계획이라는 세 가지 요소 중에 가장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인간행동의 계획적 변화라는 조작적 정의는 또한 그 정의에 의하여 확인되는 개념(교육)에 관한 법칙을 발견하고 이론을 정립하는 기초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기압의 조작적 정의가 기압에 관한 법칙을 발견하고 이론을 정립하는 기초가 되는 것과 완전히 동일하다. 이렇게 하여 발견되고 정립된 법칙과 이론은 다시 계획적인 교육프로그램(조작)을 마련하는 기초가 된다.두 번째로 제시된 개념은 R.S. 피터즈의 성년식 개념이다. 공학적 개념에서 설명되어졌듯이 교육에서의 활동은 그 자체가 목적을 정립한다고 말할 수 있으며 이 점에서 활동과 목적은 개념상으로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공학적 개념과 성년식 개념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교육에서의 목적의 의미 또는 위치에 있다. 앞서서, 정범모가 정의한 인간행동의 계획적 변화라는 개념정의에서 교육이 목적에서 중립적이라는 말을 하였다. 교육내용과 교육방법의 두 가지 유형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하지만 교육 내용이든 방법이든 우리는 그것을 뚜렷이 차별하지 못한다. 그것은 오직 인간행동의 계획적 변화라는 정의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며 이는 공학적 개념에 근본적인 애매성이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게 된다는 것이다. 피터즈에 따르면 교육은 가치 있는 활동들 또는 사고와 행동의 양식으로 사람을 입문시키는 것이 성년식이라 하며 또한 그 입문의 과정에는 교육이 개념에 논리적으로 포함되어 있는 ‘세 가지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이 세 가지는 가치, 지적 안목을 길러주는 일, 발전성을 뜻한다. 첫째, 교육은 가치 있는 것을 전달함으로써 그것에 헌신하는 사람을 만든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규범적 기준, 둘째, 교육은 지식과 이해, 그리고 모종의 지적 목적을 길러 주는 일이며 이런 것들이 무기력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인지적 기준이며 마지막 세 번째는 교육은 교육받은 사람의 지식과 자발성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 있어 몇 가지 전달과정은 교육의 과정으로 용납될 수 없다는 과정적 기준이다. 우선 규범적 기준이라는 것은 단순히 교육이 가치 있는 것을 전달한다는 것을 말할 뿐, 그 가치가 무엇이며 그것이 어째서 가치 있는 것인가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교육의 개념적 기준 중에서 규범적 기준은 단순히 교육이 가치를 가져야 한다는 점을 말하는 것 이상으로, 그 가치가 내재적 가치여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이점을 고려하여 피터즈의 교육의 정의를 내리자면 교육은 내재적으로 가치 있는 내용을 도덕적으로 온당한 방법으로 전달하는 과정 또는 전달 받은 상태를 가리킨다. 인지적 기준에서는 교육의 일환으로 교육활동이 수행될 때 어떤 가치를 가진 것으로 그 성격이 변화되는 가에 대한 대답으로 그 것은 규범적 기준이 상세화 된 것이고 교육의 내용 면에서 윤리적 논의를 제시한다고 볼 수 있다. 과정적 기준은 인지적 기준이 교육의 내용면에서 윤리적 논의를 예시한다면 윤리학적 논의를 내용뿐 아니라 방법 면에 적용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개념적 기준이 요청되는데 이러한 기준이 바로 과정적 기준이며 교육의 내재적 가치가 방법 면에서 상세화 된 것이다.피터즈의 이론을 좀 더 명확하게 하는데에 내재적 정당화가 많은 역할을 한다. 왜냐하면 교육의 규범적 기준이라는 것은 다름 아니라 교육의 내용과 방법이 내재적으로 정당화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교육의 내용과 방법이 내재적으로 정당화된다는 것을 밝히는 것을 밝히는 것은 곧 규범적 기준 이외의 나머지 두 기준인 인지적 기준과 과정적 기준을 설명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내재적 가치 또는 그것에 의한 정당한 방식으로서의 내재적 정당화는 외재적 가치 또는 외재적 정당화과 대조되는 개념이다. 피터즈의 이론에 따르면 교육이라는 말에는 무엇인가 가치 있는 것을 전달한다는 뜻이 이미 그 속에 포함되어 있으며, 그로써 목적 또한 정의 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교육이 왜 가치로운 것인 가하는 당위적인 해설임과 동시에, 그 자체의 질문을 쓸모없게 만드는 것이다.
극락전을 감상할 동안에 나의 귀에 들리던 소리의 주인공이였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따라 맑은 소리를 내던 풍경은 팔작 지붕끝에 위치하고 있었다. 풍경을 보면서 푸른 하늘을 한 번 더 쳐다볼수 있었던 여유가 좋았다.문득 극락전 현판을 보다가 눈에 띈 말라있는 잡초 한 포기이다. 무거운 기와들 사이에서도 꿋꿋이 자라난 잡초가 왜 그리도 인상에 남던지.. 숫한 고통과 핍박 속에서도 굴하지 않았을 옛 조상들의 잡초 근성을 지금은 어디에서 찾을수 있을까?이것이 바로 극락전 내부의 모습이다. 겉보기와는 틀린 시원하게 뚫린 통층의 모습은 기억이 가물가물한 화엄사 각황전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떠올릴 수 있게 해줬다.가지런하다 못해 단조롭기까지한 처마 밑의 모습과 단층의 색을 새로 입히지 않은 자연스러운 모습이 이 건물의 운치를 더했다.또한 세월의 풍파속에서 비록 색은 바래져 갔지만 변함없는 화려한 모습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저 밑의 다리만 건너면 다시 속세로 나가게 되는 것이다. 바쁜 일상으로 돌아가서도 무량사에서 가졌던 여유를 또 다시 느낄수 있을까? 그렇게 무량사는 나로 하여금 한번 더 뒤돌아 보게끔 만드는 곳이였다.부소산성 안에 자리잡고 있는 반월루에서 내려다본 백마강의 모습이다. 백제시대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흘려가는 백마강처럼 또한 끊임없이 흐르고 있는 것이 역사가 아닐까 싶다.이 백마강이 백제 사람들의 삶의 줄기였던 것 처럼…이것 또한 반월루에서 내려다본 부여군의 모습이다. 옛날과는 천차만별인 모습이지만 부여를 삶의 기점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은 같을거라 생각한다. 또한 한참 발굴중에 있는 백제 왕궁터의 모습에서 옛 부여의 모습을 떠올릴 때도 머지않았다.백마강가 절벽에 자리잡고 있는 고란사는 낙화암에서 떨어져 죽은 백제 여인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건립되었다고 한다.기둥을 지지하는 돌에도 이렇듯 연꽃을 새겨 넣는 옛 선조들의 개성어린 예술정신에 놀랄따름이였다.고란사 뒤편 바위 틈에서 솟아나는 고란약수이다. 이 약수를 마시면 젊어진다하여 한 할아버지가 너무 많이 마셔 아기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또한 인간의 본능이라 할수 있는 장수의 효과가 있을뿐만 아니라 물 맛도 일품이였다.이 배가 고란사 선착장에서 백마강을 유람시켜 주는 유람선이다.편도로 2500원으로 배 모습에 비하면 비싸다고 생각되지만 나름대로의 운치와 낭만을 지닌 부여 2호이다.{nameOfApplication=Show}
1. 개요주제 : 혈의 누를 보고 난 후서론 : 혈의 누를 보기전의 기대감본론 :1 . 혈의 누의 좋았던 점2 . 혈의 누의 아쉬웠던 점3 . 기억에 남는 장면4 . 배우들에 대한 평가결론 : 혈의 누를 보고난 후 전체적인 느낌(분위기)교훈2. 서론혈의 누가 처음 개봉을 앞두고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을 기대하게 했던 것은 새로운 장르인 사극 스릴러라는 것과 이름만 듣고도 관객을 끌어들이는 배우들 , 그리고 개봉 전부터 예고편이나 인터넷, 포스터 등으로 홍보되었던 조선시대 참형의 사실적인 재현 때문이었다. 혈의 누가 좀처럼 찾기 어려웠던 사극 스릴러이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게 했는데 지금 현대식 스릴러와는 다른 느낌의 사극이라는 점과 조선시대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과학적인 수사방법의 재현이라는 점은 관객들을 기대시키기에 충분하다. 또 그 동안 얼굴 잘생긴 코믹배우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던 차승원이 코믹이 아닌 장르로 연기변신을 했다는 것과 운이 없는 배우라는 박용우, 매번 반듯한 모범생이나 황태자의 역할만 맡아왔던 지성의 연기변신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목하게 했던 것은 잔인한 조선시대 5가지 참형방법이다. 그 방법에 대해 말만 들어도 소름이 끼치는데 실제로 재현했다고 하니 영화 팬들에게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소재였다.3. 줄거리 개요(요점식)19세기, 조선시대 말엽, 제지업을 기반으로 성장한 외딴 섬 마을에 조정에 바쳐야 할 제지가 수송선과 함께 불타는 사고가 벌어진다. 그리고 사건 해결을 위해 수사관 원규 일행이 동화도로 파견된다. 화재사건의 해결을 서두르던 원규 일행 앞에 참혹한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범인을 알 수 없는 살인 사건 속에 7년 전, 온 가족이 참형을 당한 강객주의 원혼이 일으킨 저주라 여기며 마을 사람들은 동요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5일동안 5가지의 잔인한 방법으로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난다.4. 특징(설명, 묘사, 서사)(1) 혈의 누의 좋았던 점이 영화를 보면서 인간의 욕심과 이기심이 어느 정도일까를 생각했다. 섬을 지킨다는 명분아래 , 그리고 사대부라는 자존심을 빙자한 자신들의 뱃속을 채우려는 음모로 인해 저질러진 만행의 결과는 끔찍했다.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멀쩡하게 일상생활을 계속하고 부를 축적하는 그들에게 정말 분노를 느꼈다. 너무 잔인하고 선혈낭자한 장면들이 많았지만 혈의 누를 볼 때는 역겨움보다는 무시무시한 공포와 스릴을 느꼈다. 긴장감 넘치는 내용전개와 배경음악 , 탄탄한 스토리 등 화면가득한 피가 오히려 이 영화의 완성도를 높였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일부러 더욱 잔인하고 역겨운 장면을 만들어 영화의 질을 떨어뜨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는 그 한계를 뛰어 넘어 잔혹하고 역겨운 장면들을 오히려 지독한 원한의 장치들로 씀으로써 보는 내내 스릴과 공포를 마음껏 느낄 수 있었다. 또한 그 시대를 살고 있게끔 착각할 정도의 생생한 무대장치와 신문물이 들어오고 있다는 것을 알게한 망원경과 안경 또한 기존 사극물에서 보지 못했던 것이다. 너무 실감나다 못해 비판의 대상까지 될 정도의 실감난 형벌 장면과 닭 잡는 모습들도 새로운 시도로 보았다.(2) 혈의 누의 아쉬웠던 점그러나 좀 더 반전의 신경을 썼다면 더 좋았을 것을 극적인 긴장감과 스릴은 가득했지만 잔인한 장면에 더 신경을 썼는지 정작 중요한 범인을 밝혀내는 두뇌게임은 뭐가 한참 부족했다. 억지투성이에 왜 그 사람이 범인인지 범인으로 밝혀지는 중대한 사실이 원규가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도 안 나오고 다짜고짜 이것 때문에 그 사람이 범인이다 라고 추리하는 단계가 너무 엉성하고 어물쩡 넘어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복수극을 펼치게 된 계기도 평소 쉽게 접할수 있었던 내용이란 참신함이 떨어졌고 후반부에 들어서는 복수극은 와전되고 결국 인간의 본능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일종의 심리극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3) 기억에 남는 장면이 영화는 무엇보다 생생한 묘사가 인상적이였고 너무 생생해서 도중에 눈을 감다보니내용 연결이 안되서 같이 본 사람의 말을 참고로 하였다.먼저 조선 시대의 가장 가혹한 5대 형벌을 재연했다. 첫 번째로 효시라는 형벌은목을 벤 시신을 나무에 매달아 마을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처형 방식으로 영화에서도 이미 독살된 장학수의 시신이 나무에 죽창으로 꽂아 사람들이 발견하게 되고 주검은 온통 피로 물들어 있다.두 번째는 육장으로 죄인을 펄펄끓는 가마솥에 넣어 삶아죽이는 처형방식이고 장호방이란 사람이 제지공장으로 기절된 채 납치되어 거꾸로 매달린 상태에서 정신을 차리게 되지만 눈 아래에는 펄펄 끊고 있는 가마솥만이 있을 뿐이였고 도르래는 돌아가고 결국 가마솥 안으로 잠기게 되고 그대로 삶겨 죽은채로 발견된다.세 번째 도모지는 죄인을 묶어놓고 물을 묻힌 종이를 얼굴에 발라 물이 서서히 말라감에 따라 질식시켜 죽이는 처형방식으로 장학수를 독살하여 죽인 죄로 감옥에 갇혀있던 독기가 이상한 소리로 인해 나무창 사이로 고개를 빼는 순간 창으로 머리가 들어올려지면서 얼굴에 닥종이가 발려지고 그대로 질식사한다.네 번 째인 석형 죄인의 목뒤로 동아줄을 묶어 끌어당겨 돌담에 머리가 깨어져 죽이는 처형방식이며 4번째 발고자가 차승원에게 마지막 발고자의 이름을 말하려 할때, 변장한 박용우의 의해 동아줄이 연결된 독화살을 맞고 그대로 끌려가 석등같은 것에 부딪쳐 머리가 깨져 죽게된다.마지막으로 가장 잔인한 거열은 손과 다리의 사지에 4방향으로 줄을묶어 말이나 소로 다른방향으로 당김으로써 사지가 찢겨져 죽는형벌로 영화 초반부 강객주가 누명을 쓰고 이 형벌로 죽게 되면서 저주를 내리게 되고 후반부에 와서는 5번째 발고자인 지성이 자신이 죽을 차례가 되어 박용우를 먼저 죽이려 하지만 실패하고 결국 제지공장에서 사지를 묶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마을의 모든 우마를 차승원이 한 곳에 모으는 바람에 제지공장의 도르래를 연결하여 사지를 묶고 형벌을 시행하지만 여기까지 추리하게 된 차승원에 의하여 지성은 거열은 당하지 않지만 마을 사람들에게 잔인하게 죽음을 당한다.(4) 배우들에 대한 평가이 영화는 박용우의 재발견과 지성의 데뷔작이라는 점에서 많은 성공을 거두고 있다. 물론 차승원의 코믹연기 탈피 또한 깃들어 있긴 하지만 등의 수많은 영화 에서의 그의 코믹연기를 지우긴 어려웠던 것 같다.역시나 차승원이란 배우는 외모적 무게감으로 인해 약간의 코믹도 과하게 표현되는 장점을 지난 배우란 생각이 다시한번 들었다.정말 잘생긴 배우이고 연기또한 능청스럽다. 하지만 그가 이 작품의 주인공인 이유를 설명하기는 힘들다. 어느 배우가 가장 잘어울리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의 지금까지 이미지가 너무 큰 탓안지 이번 극에서는 언제쯤 코믹을 보여줄까라는 기대감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분명 사극이기에 그런 장면은 없을줄 알았지만 그래도 라는 기대감이 있었기에 약간의 캐스팅 미스라는 점을 생각해본다.반면 박용우에 대해서는 언제나 운이 정말 없는 배우이다.무언가 부족한 외모에서 왠지 모를 불안감이 많은 배우이다.지금까지의 실패가 그를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