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경제의 신화,故 정주영 회장의 일대기 >>「나를 알고 세계를 알자」를 읽고…▶ 서 장1934년 작은 쌀가게(복흥상회) 배달원으로 처음 월급 생활을 시작한 故 정주영. 1971년 현대그룹 회장 자리에 취임하기까지 그의 업적은 실로 한국인을, 세계인을 놀라게 만들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주위의 한 사람 또는 가정에서부터 일가 친척, 동료, 나아가 사회에서 신뢰를 얻을 수 있어야 하겠으며, 그 신뢰를 바탕으로 끝까지 노력하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굳은 신념을 가져야겠다는 것이다.” 라는 말을 남긴 집념의 사나이 정주영.나는 그의 일생에 걸친 대업적을 미약하지만 “나를 알고 세계를 알자”라는 이 한 권의 책을 통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1 장1915년… 지금으로부터 87년 전 강원도 통천군의 작은 시골 마을인 아산리에서 故 정주영 회장은 태어났다. 그는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서, 먹고 생존하기 위해 도시로 떠났다.첫 가출... 그는 47전의 비상금을 가지고 철도 공사장에서 일을 하기 위해 떠났다. 그러나 정회장의 마을 이장 딸의 소문을 들은 아버지에 의해 고향으로 다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꿈은 버릴 수 없었다. 그는 굳은 다짐을 가지고 아버지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온다.두번째… 겨울 동안 나무를 해다 판 돈으로 노자를 마련한 정회장은 봄이 되자 다시 가출을 한다. 한 번의 사기를 당하며 다시 빈털터리 신세가 된 정회장은 작은 할아버지에 의해 다시 고향으로 압송되고 만다.세번째…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일화이다. 정회장은 아버지가 소 판 돈을 훔쳐 서울로 향한다. 부기 학원을 다니며 남보다 열심히 공부했지만, 이것 역시 아버지의 눈물로 실패하고 만다. 아버지와 함께 귀향 후 정회장은 농사에만 열중한다.마지막… 정회장 열아홉 때의 대흉년은 다시 그를 서울로 보낸다. 마지막 가출은 그의 인생, 한국과 세계의 경제 역사를 바꿔 놓은 계기가 된다. 신당동에 있는 쌀 도매상회(복흥상회)에서 그는 처음으로 월급쟁이가 된다. 18전… 4번의 가출 끝에 그의 소망이 이루어 진 것이다.복흥상회에서 그는 자전거로 배달 중 아이를 피하다 쌀가마니와 팥자루가 진탕 속에 처박힌 사건이 일어났다. 다행에 물에 담그는 떡쌀이어서 어려운 고비는 넘겼지만 그는 그날 밤새도록 쌀가마니를 싣고 가는 연습을 했다. 이것은 정회장이 주인 영감으로부터 호감을 사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가출할 때마다 나무라시던 아버지도 마침내 아들을 인정하기 시작했다.1938년… 복흥상회의 주인 아들이 돈을 물쓰듯 하며 난봉을 부려 주인 영감은 ‘복흥상회’라는 간판을 내리고 가게를 정회장에게 넘긴다. 그는 ‘경일상회’라는 상호와 함께 처음으로 독자적인 사업가로 발돋움 한다.일취월장하던 경일상회는 일제의 쌀 배급제 때문에 다시 간판을 내리고 말았다. 다시 그는 고민에 빠지지만 쌀가게 단골의 권유로 빚까지 얻어가며 자동차 수리공장을 인수한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일이었지만 그는 성실과 신용으로 잘 적응하며 강인한 인간으로 변해갔다. 그러던 중 공장에 화재가 일어나 그는 다시 모든 걸 잃었으며 빚 더미에 앉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듯 정회자에게는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그는 이 화재를 계기로 삼고 다시 일어났다. 신용을 담보로 5천원을 빌려 무허가 자동차 서비스 공장을 시작했다. 그의 근면, 성실 덕분에 회사는 날로 번창하였지만 그는 쉬지 않았다. 자동차의 기계 원리를 터득하며 꾸준히 일했다. 정회장은 “군림하는 사장이 아닌 돈 많은 노동자일 뿐”이라는 생각은 훗날 현대그룹을 이끌면서도 계속된 그의 경영 철학 중 하나가 되었다.하지만 일제의 태평양 전쟁으로 정주영은 다시 주저 앉는다. 그러나, 정회장은 가난뱅이가 아니었다. 트럭 30여대를 가지고 다시 일어설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2 장1946년… 이전의 자동차 공장의 경험을 살려 그는 “현대자동차공업사”를 설립했으며 날로 번창하여 1946년에는 “현대토건사”를 설립했다. 큰 일을 벌여야 큰 돈을 벌 수 있다고 확신 했기 때문이다. 천부적인 사업 수완으로 착실하게 기반을 굳혀 나가며 계약 신장을 거듭한 정회장은, 1950년 두 회사를 합쳐 “현대건설 주식회사”를 출범시킨다.현대건설은 공사 한 번 제대로 못한 채 6.25로 절박한 상황으로 치닫았지만, 정회장은 부산 피난 시절에도 미국 공병단의 공사를 도맡아 사업수완을 조금도 늦추지 않았다. “현다이 No.1”이란 별명까지 붙은 정회장은 무엇이든 한다면 해내는 인간으로 평가됐으며, 그에게 있어서도 전쟁과 평화, 즉 세계 정세가 얼마나 사업에 중요한 가를 깨달았다.전시 인플레와 회사의 재정 바닥 상태, 인부들의 파업 등 최악를 경험했지만 그는 낙동강 고령교, 한강 인도교 복구 공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며 도약의 무대를 마련했다. 이후 인천 제 1도크 복구 공사, 마포 아파트 신축 공사 등 많은 공사를 성공으로 이끌었다.1965년 정회장은 공사 수익이 적은 국내에만 집착할 수 없었다. 한국건설업체 중에서는 처음으로 해외로 진출하였다. ‘태국의 파타니 나라티왓 고속도로 공사!’ – 모두가 불가능한 일이라고 여겼지만 정회장은 강인한 추진력으로 성공시켰고(많은 적자는 발생하였지만) 해외시장 진출의 포문을 열었다.그 후에도 현대건설은 소양강 다목적댐, 우리나라 최초의 현수교인 남해대교, 현충사 성역 공사와 알레스카의 허리케인 교량 등을 성공적으로 끝낸다.“세계에서 가장 짧은 기간에 건설된 경부고속도로!” – 1970년 정회장은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2년 5개월 만에 전장 428Km의 한국 경제 발전의 초석을 다지는 경부고속도로를 완공하게 된다.이떄 정회장은 이 공사에 참여한 전직원의 사기 진작을 위하여 1계급씩 특진시켜 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 것을 통해 알 수 있듯 정회장은 현대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노동조합이 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또 하나의 기적을 이룬 일이 있었다. 1973년 – 조선소 건설과 동시에 배를 진수시킨 세계 최대의 현대 조선소를 창업하였다. 정회장이 조선업에 진출할 때 가장 큰 문제는 자금이었다. 하지만 정회장은 강인한 추진력으로 끈질긴 협상 끝에 영국과 스위스에서 1억 달러를 차관받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영국 금융권에서 수주 실적을 요구하자 정회장은 거북선이 새겨진 지폐와 울산 미포만의 백사장 사진만 들고 스위스의 리바노스 회장 별장에서 260만톤급 유조선 2척을 수주 받았다. 73년 3월, 예정대로 조선소의 일부가 완공되자 곧 이어 유조선 1, 2호 건조에 착수했다. 26만톤 급 유조선! 이 당시 제일 크다는 배는 1만 7천톤 짜리가 고작이었다. 그는 2년 3개월 만에 울산 조선소를 완공하였고, 그 완공식은 유조선 2척의 명명식(육여사에 의해 명명 : 어틀랜특 배런호, 어틀랜틱 배러니스호)과 함께 거행되어 조선소 건설과 동시에 배를 진수시킨, 세계 조산사에 전무후무한 일을 만들었다.1967년 2월 포드사와 손을 잡은 현대자동차는 1976년에 우리 고유 모델인 ‘포니’를 생산했다. 포니의 생산으로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16번째, 아시아에서는 일본에 이어 두번째로 자체 고유 모델을 생산하는 자동차 생산국이 되었으며 세계의 구석 구석을 누비고 달리기 시작한다. ‘포니’라는 이름은 정회장이 여직원들의 투표로 결정한 것이다.현대그룹의 존망을 건 초대형 공사인 ‘주베일 산업항 공사’ 20세기 최대의 대역사로 불리는 사우디 주베일 산업항. 9억 3천만 달러라는 공사 금액은 그 해 우리나라 예산의 절반에 해당되는 큰 금액이었다. 또한, 사우디 공사 발주 사상 선수금 수령 기간 7일이라는 최단 기록을 세우는가 하면, 인류 사상 최고 액면인 일금 7억 리알짜리 현금 수표를 받는데 성공한다. 노동자들의 난동으로 공든 탑이 무너질 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으나 정회장은 사건을 일단락시키고 고충처리 상담실을 활성화 시켜 기능공들의 환호까지 받았다. 주변에서는 현대가 객기를 부리다 사우디 앞바다에 침몰할 거시라고 했지만 정회장은… 끝내 해냈다.정회장의 기적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좁은 농토에 애착이 많았던 그는 1980년대 초 바다를 메워 옥토를 만드는 대규모 간척 사업을 착수했다. 엄청난 규모의 바다를 막아 농토로 전환하는 작업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으며, 그 중 최종 물막이 공사는 가장 어려운 문제였다. 1984년 그는 노후화된 대형 유조선을 이용해 엄청난 압력의 물을 막아 둑을 완성하는 ‘유조선 공법(일명 정주영 공법)’이라는 기상천외한 발상으로 여의도의 48배에 해당되는 서해안을 간척했다. 그는 한국의 서쪽 해안의 지도마저도 바꾸었던 것이다.“대북 사업”. 그의 일생중 마지막 기적으로 기억된다. 정주영은 필생의 사업을 ‘금강산 관광 사업’이라고 여겼다. 84세의 고령의 나이에도 그는 98년 11월 18일 분단 반세기 만에 남측 국민들이 금강산을 방문할 수 있는 역사적인 금강산 관광 사업을 시작했다. 남북간 대규모 물적, 인적 교류의 밑거름이 된 이 사업 이후에 그는 남북 교환 통일 농구 대회, 북측의 교예 공연 등으로 남북 경협 차원을 뛰어 넘어 남북 체육ㆍ문화교류에까지 확대, 발전시켰다.▶ 3 장2001년 3월21일… 서울 중앙 병원에서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 회장은 숙환으로 사망했다. 98년 전세계에 중계된 '소떼 방북' 장면은 아직까지 한 편의 드라마로 전 세계인의 가슴에 진한 감동으로 남아있으며 고인이 그토록 갈망하며 최후 도전을 시도했던 조국통일은 이제 유업으로 남았다. 이제는 우리가그의 소원을 이루어 주어야 할 때라고 생각 한다.이 글을 통해 우리는 그가 인력을 얼마나 존중했으며 중요시 했는지 알 수 있으며 위에서 군림하는 경영자가 아닌 현장에서 같이 뛰는 경영자, ‘현장사나이 정주영’의 일면을 엿 볼 수 있다. 또한, 모든 경영자들이 국내에만 움츠리고 있을 때 정회장은 세계로 눈을 돌렸으며, 모든 사람들의 고정 관념을 깨고 불가능을 가능케 했으며 성실과 신용을 밑천으로 새로운 기적을 창출해 냈다.우리는 그를 ‘한국 경제의 신화’라고 부른다.
“유교문화,그 권리와 위선에 대한600년만의 자유 선언”「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를 읽고…◁◁ 서 론 ▷▷조선 500년 근대화100년, 우리는 유교문화에서 얼마만큼 자유로운가?현란한 수식어에도 불구하고, 공자의 도덕은 ‘사람’을 위한 도덕이 아닌 ‘정치’를 위한 도덕이었고, ‘남성'을 위한 도덕이었고, ‘어른’을 위한 도덕이었고, ‘기득권자’를 위한 도덕이었고, 심지어 ‘주검’을 위한 도덕이었다.그리고 그것은 사농공상으로 대표되는 신분 사회, 토론 부재를 낳은 가부장 의식, 위선을 부추기는 군자의 논리, 끼리끼리의 혈연적 폐쇄성과 그로 인한 분열, 여성 차별을 부른 남성 우월 의식, 스승의 권위 강조로 인한 창의성 말살 교육의 문제점들을 오늘날까지 지속시키고 있다. 이것들은 오늘날 진정한 우리들이 살아가는 삶의 공간에 필요한 투명성과 평등, 번득이는 창의력, 맑은 생명들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것들 이라고 생각된다.유교의 유효기간은 이제 끝났다.유교라는 것이 무엇인가? 유교의 특징은 크게 인문의식, 온고지신, 그리고 조상숭배이다. 이미 우리의 일상 생활과 의식 전반에 걸쳐 유교적 사상이 뿌리 깊이 박혀있는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그것을 항상 일상적이고, 반듯하며, 반드시 지켜져야만 하는 규칙과 도덕으로 자리매김 시켜버린지 오래다.그러나, 저자 김경일 교수는 이러한 일반적이고 일상적인 옳은(?) 의식에 반기를 들고나섰다. 그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에 대한 비판과 반성도 없이 옛부터 내려온 우리 민족들의 혼의 정신으로 받아 온 것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급변하는 현대에서는 절대 그 자리가 우위에 설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유교사상의 정신을 정(正)으로 받아들여 평가하고 있는 우리 사회는 유교에 의해 무너질 수 있다는 경고를 한다. 수 백년의 역사 속에서도 유교는 인문의식을, 옛 것을, 조상을 고집해 왔다. 그러나, 21세기는 국경을 넘나드는 새로운 세계이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외국인을 경계하지 않는다. 이제 세계는 그 국경의 선을 지우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현대는 전혀 다른 세상일 지도 모른다.◁◁ 본 론 ▷▷한국사회 문제의 뿌리는 유교에 있다1997년 말 뜻하지 않게 찾아온 IMF 태풍은 사상 유례 없는 대량 감원과 실직, 중소기업의 연쇄 부도라는 충격을 우리에게 안겨주었다. 언론과 식자층은 일제히 국가의 존망이 달린 위기 운운하며 한국 사회의 구조적 병폐를 한 목소리로 질타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문제에 대한 철저한 진단과 자기 반성, 구체적인 해법은 미처 궁리해보지도 못한 채 언제 그랬냐는 듯 이내 잠잠해졌다. 그렇게 위기는 또 한 번 잊혀져 갔고 "역경을 극복하는 위대한 민족", "하면 되는 민족" 운운하는 또 하나의 헛된 구호와 자화자찬만을 남기고 말았다.이 책은 감히 그 위기의 본질에 대해 말하려 한다. 이 책의 요지는 간단하다. 한국 사회 문제의 핵심에는 공자로 대표되는 유교 이데올로기가 있다는 것이다. 왜 하필 공자인가, 지금 어느 누가 공자를 받들고 이야기 하는가, 그것은 소수의 한학자나 청학동 주민들에게나 유효한, 그야말로 시대 착오적인 주장이 아닌가 하고 혹자는 반문할지 모른다. 그러나 공자를 전혀 알지 못하고 관심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그가 한국에서 태어나 자란 이상 그는 골수까지 철저히 유교 이데올로기에 세뇌되어 있다. 한번 주위를 둘러보라 한국사회의 심각한 문세들의 배후에는 예외 없이 공자와 유교의 그림자가 깔려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실용적 학문과 경제적 활동을 천시하다가 근대화에 뒤쳐진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엘리트주의, 그리고 그 기득권층의 보수대 결집 배후에는 유교의 사농공상적 신분질서 관념이 있으며, 논리보다는 힘을 우선하는 토론 부재의 사회 분위기는 유교의 가부장 의식과 군사독재의 권위주의가 짬뽕된 결과이다. 혈연, 학연, 지연에 대한 맹목적 충성과 그로 인한 끼리끼리의 협잡과 폐쇄성, 분파수의는 조상 숭배와 족보 자랑이라는 유교적 전통에서 유래한 것이며, 지배층의 도덕적 위선과 무능력, 부패를 가려주고 말끝마다 "도덕성 회복"이니 "민심이 천심"이니 하며 국민을 속이는 데는 있지도 않은 군자와 성인의 입김이 한몫하기 때문이다. 또 뿌리깊은 차별대우에 시달리는 여성과 획일적 교육으로 자유와 창의성을 박탈당하는 아이들은 남성과 성인 중심 유교문화의 최대 피해자들이다.우리의 지도층 인사들이 공자와 유교에 애착을 느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것은 논리를 따지지 않으며 절대적 권위에 복종케 하는 수직 윤리이기 때문이다. 충이든 효든, 말이 되든 안 되든 일단 받아들이도록 만들기만 하면 만사 편안한 지배 이데올로기인 것이다. 공자의 도덕은 ‘사람’을 위한 도덕이 아닌 ‘정치’를 위한 도덕, ‘남성’을 위한 도덕, ‘어른’을 위한 도덕, ‘기득권자’를 위한 도덕, 심지어 ‘주검’을 위한 도덕이었다. 때문에 공자의 도덕을 받아 들인 유교문화는 정치적 기만과 위선, 남성 우월 의식과 여성 착취, 젊음과 창의성의 말살, 그리고 주검 숭배가 낳은 우울함이 가득할 수밖에 없다. 이것들은 사람이 살아 숨쉬는 삶의 공간에 꼭 필요한 투명성과 평등, 창의력, 생명력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가치이다.아직도 우리는 이미 유통기한이 지난, 진작에 폐기 처분해 버렸어야 할 봉건제적 망령과 함께 숨쉬고 있다. 지금 그 망령을 완전히 제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언제고 또다시 주권을 잃고 동족 상잔을 겪고, 경제 파탄에 이르고 말 것이다. 아니 꼭 생존의 논리에서가 아니라 인간적 삶을 위해서라도 이제 공자로 대표되는 유교문화는 마땅히 지양해야 한다.◁◁ 결 론 ▷▷600여 년이 넘게 우리 사회, 나아가 동아시아 각국에 하나의 큰 사상으로 그 자리를 지켜온 유교. 유교 사상은 우리나라에 적지않은 영향을 주었다. 삼국 시대에는 정치적으로 중국의 형태를 본뜨면서 자연스럽게 유교 사상이 유입되었고 고려시대에는 과거제도를 통해 유교가 그 역할을 했다. 그리고 유교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시대, 바로 500여년간을 하나의 왕조로 지탱해온 조선 시대이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우리나라를 지배해 온 유교 사상은 그 오랜 시간 우리의 의식 속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조금씩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이 우리 삶과 생활 속에 은연중에 녹아 들어갔다.예부터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 이라는 말로 널리 알려졌다. 군주에게는 충성을 다하고, 부모에게는 효를 다하고, 그리고 스승을 존중할 줄 알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것들로 인해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 동안 우리는 이런 것들이 마치 절대적인 법칙 인양 인정해오고 또 사회적으로 거의 강압적으로 권장해왔다. 물론 이런 것들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러한 것들로 인해 우리가 잃은 것이 많고 또 잘못 습관되어온 것이 많기 때문이다. 사실 유교사상을 빼놓고 우리나라의(가령 고려시대나 조선시대...) 문화를 얘기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유네스코에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록된 '종묘와 사직'은 유교 사상이 없다면 있을 수 없는 정말 중요한 문화 유산이다.그러나 이런 문화유산을 제외한 일상 생활 속에서 유교사상은 우리에게 너무나 잘못된 것을 강요해 왔고 거기에 따르도록 교육해 왔다. 가령, 자기 출신의 대학에 교수가 된다면 그 사람은 자기 나름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자기 이론을 주장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바로 그 학교가 자기 출신이고 그러다 보니 같은 교수의 위치일지라도 자기의 스승이 있기 때문에 그 스승에 반박 하는 주장은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 사회에서 당연히 학문적인 발전을 기대할 수는 없다.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당연시 여겨오던 유교사상의 편린들. 혈연, 지연, 학연. 물론 어느 사회에서나 그러한 것들이 존재한다. 아일랜드 출신의 클린턴이 대통령이 되고서 제일 먼저 바꾼 게 자기 밑의 고위 공직자들이니까(자기 출신의 사람들로)...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 정도가 너무 심하기에 유교 사상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매번 선거 때만 되면 슬그머니 고개를 들이미는 지연주의, 하다못해 교통 법규를 위반하고도 내가 경찰서의 누구누구 친척인데 한번만 봐달라는 태도. 정말 그러한 것들이 유교 사상으로부터 왔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릴 정도로 우리 생활에 너무 깊게 들어와 있다.유교 사상이 지금 시대에 와서 이제 그 역할을 다했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다만 이젠 지난 날을 좀더 깊이 반성해보고 그 동안 잘못된 유교사상은 과감히 뿌리 뽑고 이 시대에 그 정신을 다시 새겨볼 수 있는 것들은 지금의 시대에 맞게 잘 계승해야 할 것이다. 앞뒤 가리지 않고 맹목적으로 ‘이건 옛날부터 이러 이러했으니 당연히 따라야 한다.’하는 식이 아닌, 그 시대에 맞게 그 정신을 계승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유교라고 생각한다.이 책을 통해 우리는 현대 사회에 맞는 유교란 과연 어떤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PAGE 1
◁◁ 서 론 ▷▷Ⅰ. 정 의Ⅱ. 역사(등장 배경) 및 발전 과정◁◁ 본 론 ▷▷Ⅰ. 계 획Ⅱ. 조직 및 기능Ⅲ. 특 징◁◁ 결 론 ▷▷Ⅰ. 정보화의 성공 사례Ⅱ. 성공 원인 및 전략Ⅲ. 맺음말◁◁ 서 론 ▷▷Ⅰ. 정 의▶ MIS (Management Information System)○ 경영정보시스템이란 관리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며, 조직내의 운용과 경영 및관리자의 의사 결정 기능을 지원하는 종합적인 "사용자 - 기계 시스템(man-machine system) "으로 정의된다.○ MIS는 컴퓨터의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수작업 절차, 분석 및 계획모형,통제와 의사 결정 및 데이터 베이스, 모델, 정보 통신 등을 활용함으로써그 기능을 수행한다.○ 경영정보 시스템의 개념을 세분화하면 다음과 같다.① 사용자-기계시스템(Man-Machine System). 경영정보시스템은 컴퓨터 등의정보기술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적자원도 포함하는 개념으로 특정과업은 인간에 의해서, 다른 과업은 컴퓨터에 의해 수행되며, 특히 이들을결합하여 운용하는데 그 특징이 있다.② 정보 이용에 관한 성과적 측면뿐만 아니라 자원의 낭비를 방지하기 위한종합적 정보시스템 계획을 중심으로 한 종합시스템의 성격을 갖는다.③ 위에서 언급한 경영정보시스템이 종합 시스템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위해서는 자료의 종합 관리 및 처리를 가능케 하는 데이터 베이스가요구된다.④ 경영정보시스템은 데이터 베이스의 자료를 기초로 하여 경영의사결정모형을이용하여 의사결정 업무를 수행하며, 경영자에게 대체안을 제시한다.⑤ 경영정보시스템은 포괄적 의미에서 조직의 기능과 경영과정을 광범위하게지원하는 것으로서 자료 처리 시스템을 포함한다.▶ ERP (Enterprise Resource Planning)○ 전사적 자원 관리라고 불리며 기업 전체 자원의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시스템이다. 말 그대로 기업활동을 위해 쓰여지고 있는 기업내의 모든 인적,물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여 궁극적으로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시켜 주는역할을 하는 통합나, 자료처리가 보다 신속하고 용이해지면서 다른 활동의 자료나 정보를 관리하는 업무까지도컴퓨터화 되기에 이르렀다.- 이들 새로운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TPS부서는 경영자들에게 표준화된보고서를 제공할 필요성이 발생하게 되었으며, 그것이 계기가 되어 마침내MIS가 등장하게 되었다.② MIS (Management Information System : 경영 정보 시스템)- TPS의 성장은 곧 경영자들로 하여금 그들 조직의 정보시스템을 보다합리적으로 계획하도록 촉구하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그것은 곧 컴퓨터기반의 정보시스템(CBIS) 혹은 단순히 새로운 MIS개념을 등장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즉 TPS가 단순히 다량의 표준화된 자료를 상규적으로 처리 하는 그 이상으로 기능을 확대시키게 되면서 그것은 곧 MIS라는 새로운 명칭을 갖게되었다.③ DSS (Decision Support System : 의사 결정 지원 시스템)- 최근 컴퓨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고도로 발달함에 따라 경영자들까지자료베이스에 접할 수가 있게 되었다. 마이크로 컴퓨터가 보편화되면서경영자가 스스로의 자료 베이스를 만들어 놓고, 필요한 정보를 그때그때사용 할 수 있는 정보시스템을 소위 DSS시스템이라고 부른다.- 이는 처음에는 항공기의 예약 업무와 같은 분야에만 도입되었나 요즘에는은행, 증권회사, 호텔에서는 물론이고 제조회사의 각 활동에도 광범위하게적용되고 있다.- 물론 MIS가 아직도 통상적인 업무의 통제에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DSS는 특히 구조화된 자료베이스의 이용까지도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한 단계 더 발전된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④ ES (Expert System : 전문가 시스템)- 이것은 문제를 진단하고, 그러한 문제를 극복, 해결하기 위한 전략을 추천하며, 또 그러한 추천 타당성을 제시함은 물론 심지어는 갖가지 경험이나상황을 "학습"까지 시키는 등 소위 인공지능(AI)을 이용한 "새로운시대"의 정보시스템을 일컫는다.- 물론 오늘날 제 5세대 컴퓨터라고까지 불리고 있는 이러한 시스템리, 경영혁신④ 확장 ERP (2000년대 : SCM, CRM)- 주요기능 : 기업간 최적화, Win-Win-Win◁◁ 본 론 ▷▷Ⅰ. 계 획▶ M I S○ 정보시스템 계획이란 조직의 정보처리 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한 조직자원 동원계획이다. 최근 들어 급격한 기술변화에 따른 호환성의 중요도 급증, 정보시스템 전문가의 부족, 제한된 조직자원, 신제품 개발 및 자금조달계획 등과같은 새로운 전략 실행시 정보시스템의 의존도가 커짐에 따라 정보시스템 계획과정이 중시되고 있다.○ McLean & Soden에 의한 정보시스템 계획단계를 보면 다음과 같다.1) 전략적 정보시스템 계획 : 정보시스템의 목적 결정- 주로 최고경영층에 의해 담당되며 정보시스템 목적을 결정하는 단계① 정보시스템 목적의 명확화② 기업의 환경요인 평가③ 정보시스템 역할 수립④ 정보시스템 전략개발⑤ 정보시스템 정책정의⑥ 정보시스템 절차화⑦ 계획실행과 실적감독(monitoring)2) 장기 정보시스템 계획 : 미래의 정보수요 및 시스템 결정- 사용자의 요구와 이에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 단계.- 조직의 정보시스템 위원회나 상급 임원진① 배경정보의 수집② 전반적 요구사항 파악③ 장기계획서 작성3) 중기 정보시스템 계획 : 관리문제 결정- 장기 계획서에서 수립된 광범위하고 개념적인 사항을 세부적으로 전환.- 기본 계획(master plan), 프로젝트 포트폴리오,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확보 계획, 예산 및 인원 충원 계획① 프로젝트 포트폴리오 개발② 프로젝트에 대한 서열과 우선순위 부여③ 프로젝트 계획수립④ 기본계획서 작성4) 단기 정보시스템 계획 : 서브시스템의 개별적 운영문제 결정- 단기적 성과, 목표치, 특정과업, 일정, 예산 등의 연관계획을 감독하고갱신하는 단계① 정보시스템 기능의 목적과 개관② 응용개발 및 유지보수 계획③ 운영 계획④ 기술자원 계획⑤ 스탭과 조직 계획⑥ 교육훈련 계획⑦ 재무 계획▶ E R P○ MIS 계획 과정과 비슷하지만 각 단계에서 수행 할 일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1) 분석(An이스 관리시스템의 관리하에 있는 공통 소프트웨어와 데이터베이스 관리시스템에 의하여 관리되는 공통 데이터 베이스를 주축으로기능별 하위 시스템의 연합체를 의미한다.▶ E R P(1) 기능적 특성① 다국적, 다통화, 다언어 (GLOBAL 대응): 다수의 ERP는 다국적, 다통화, 다언어에 대응하며 각 나라의 법률과대표적인 상거래 습관, 생산 방식이 먼저 시스템에 입력되어 있어서사용자는 이 가운데서 선택하고 설정할 수 있다.② 비지니스 프로세스 모델에 위한 리엔지니어링(BPR)의 지원: 자사의 업무 프로세스의 최적 비지니스 실행용의 전환은 비즈니스프로세스 리엔지니어링(BPR : Business Process Re-engineering)을 실현한다.③ 통합 업무 시스템: ERP시스템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는 영업, 생산, 구매, 재고, 회계,인사 등 회사내의 모든 단위업무가 상호 긴밀한 관계를 가지면서 실시간(Real Time)에 통합적으로 처리된다는 것이다.이러한 업무통합을 통하여 기존 MIS에서의 부분 최적에서 전체 최적화가가능하게 되었고, Task중심적인 업무처리 방식이 고객 지향적인프로세스 중심적으로 전환되어 진다.또한 모든 시스템이 통합되어 있기 때문에 어떠한 정보라도 두번, 세번중복적으로 처리할 필요 없이 거의 한번의 입력으로 처리가 끝나게 되는One Fact - One Place가 가능하게 된다.④ 세계적인 표준 업무 프로세스: ERP시스템은 첨단 경영기법을 연구하고 세계 초일류 기업의 선진프로세스를 벤치 마킹하여 프로세스를 구성하였기 때문에 기업체들은별도의 투자 없이 자동적으로 BPR을 하게 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⑤ 그룹웨어와 연동 가능: 그룹웨어는 다수의 사람이 서로 협력하면서 공동으로 진행하는 지적인작업을 지원하기 위한 소프트웨어이다. G/W 기능과 기간 업무 시스템과의연동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ERP의 경우 패키지 자체내에서 이러한 그룹웨어 기능들을 내장하고 있고자체내에 G/W 시스템이 없는 경우에도 외부 G/W 시스템과의 연계를 통해SE Tool이라는 것인데, 이는 소프트웨어를 만드는소프트웨어라고 할 수 있다.③ 관계형 데이터 베이스 (RDBMS : Relational Data Base Management System): 거의 모든 ERP시스템은 원장형 데이터베이스 구조를 채택하고 있다.ERP와 같은 고기능성 산업용 소프트 웨어에는 상용 RDBMS를 채택해야만한다. 현재 ERP시스템에서 돌아가고 있는 DB는 Oracle, Informix,Sybase, SQL 등인데 DB의 채택은 주로 운영 환경(OS)과 하드 웨어(H/W)등 전체의 플랫폼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④ 객체지향기술 (OOT : Object Oriented Technology): ERP 패키지내의 각 모듈(프로세스)은 제각각 독립된 개체(Object)로서의역할을 하게 된다.ERP시스템은 수많은 모듈들의 집합체이다. 각 모듈들과의 인터페이스를통해 전체적으로 시스템의 효율성을 향상시킨다. 시스템이 업그레이드되거나 기능이 추가 또는 삭제되는 경우에 전체를 건드릴 필요 없이 해당모듈에 대한 교체만으로 시스템의 변경이 가능하다.영업, 생산, 구매, 자재, 재고, 회계, 인사 등 각 모듈을 서로 짜맞추는식으로 전체를 최적화시켜 나가면 되고, ERP시스템이 구축된 이후에도언제나 단위 모듈의 변경이 가능하다.◁◁ 결 론 ▷▷Ⅰ. 정보화의 성공 사례▶ M I S< 현대건설 >현대건설의 전국 4백80여개 건설현장은 요즘 본사와 모든 업무를 실시간으로 처리. 지난 7월부터 네트워크를 활용한 ERP시스템을 도입. 원가 계산과 회계 처리가 동시에 이뤄지고 자재, 경리, 하도급 관계도 본사에서 실시간 집계. 따라서 경영진이 즉시 파악할 수 있게 됐으며 각종 자료를 모아 데이터 베이스로 구축, 경영관리에 활용. 이 시스템 활용으로 구매 비용만 연간 4백억∼5백억원이나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 현대건설은 ERP 2단계 프로젝트에 착수. 70여개의 해외 지사를 하나로 묶고 견적과 공정 관리시스템 등을 연계시켜 모든 공사를 공정별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