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처음에는 이 책을 읽기 전에 별 기대 없이 그냥 이론적인 책이겠거니 하고 읽었는데, 공감 가는 부분도 많고, 세상엔 나보다 큰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고, 또 상처받지 않은 사람은 세상에는 아무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교수님께서 이번 과제를 주실 때 각자의 어린 시절과 함께 연관 지어서 생각해보라고 하셨는데 책을 읽어 나가면서 점차 나의 어린 시절 부터 지금 현재 까지 내가 어떻게 지내왔으며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 군대에 갔다 오고 복학을 해서 마지막 졸업을 앞두고 있는 이 시점에서 나의 삶 곳곳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가에 대한 옛 기억도 해보게 되고 지금 현재도 나의 내면에 있을 내면아이가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궁금증도 생기게 되었고 그래서 책을 읽는데 더욱 재미가 있었습니다. 먼저 내면아이 치유는 사람 안에 있는 '상처 받은 내면 아이'를 발견하고 가치체계의 핵심요소를 직접적으로 치유함으로써 가장 빠른 변화를 가져 오게 하는 매우 중요한 치료이다. 아직도 치료되지 않은 내면의 아이로 인하여 인간관계에 나타나는 수많은 문제들이 있다. 학대, 폭력, 중독의 문제도 여기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상처 받은 내면의 아이를 발견하고 치료 할 때 인간관계가 바뀌고 삶의 내용이 바뀌게 된다. 이는 나이나 그 사람의 지위와 역할 그리고 성별과 상관이 없이 나타난다. 이 치료를 하게 될 때에는 내면아이 치유 뿐 만 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치료, 가족치료, 중독치료 에도 도움이 된다. 이는 내면적 변화와 치료이기에 더욱 더 영향력이 크며 효과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이 책은 4부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제1부에서는 당신의 '놀라운 아이'가 어떻게 해서 그 경이로움을 잃어버리게 되었으며, 어린 시절의 상처가 지금도 계속해서 당신의 인생을 파멸시키는지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다. 당신안의 상처받은 내면아이가 당신의 삶을 어떻게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는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많은 부적응적인 모습을 가지고 성장한다. 그게 프로이트가 말한 정신역동적인 관점일수도 있고, 혹은 인지-행동적인 관점에서 보일수도 있다. 어린 시절에는 아무렇지 않게 넘기게 되고 심지어는 상처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는 과정에서 그냥 넘어 가게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나 자신도 나의 어린 시절 중에서 나 자신의 내면아이의 상처가 무엇이었는지 잘 기억을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다음 2부에서는 어린 시절의 각 성장단계들로 돌아가서, 당신이 건강하게 제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했었는지를 알려 주고 있으며. 각 각 장의 끝에서는 설문지를 통해서 당신의 내면아이가 각 단계에서 필요로 했던 것들을 충족했는지의 여부를 판단하도록 하면서 당신 자신 스스로가 각 각의 단계에서 아이였던 자신을 발견하고 그것이 무엇 이었는지를 알게 해줄 것입니다. 그리고 상처받은 내면아이를 치료하기 위해서 먼저 고통치료를 권하고 있다. 먼저 우리가 상처받은 내면아이로부터 우리의 삶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을 엉망으로 만드는 상처받은 내면아이와 직접적인 대면을 하여야 한다. 물론 상처받은 내면아이와 대면을 하기에는 많은 아픔과 고통이 따른다. 이러한 고통에 직면하여, 당당히 맞서 싸우는 자세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 자신이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겪었던 매 순간 순간의 아픔들이 바로 내안에 내면아이가 소리 없이 강하게 성장하게 만드는 원인이었으며, 이러한 원인으로 인하여 우리 안에 상처받은 내면아이로 하여금 엄청난 구속과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당당하게 이러한 아픔에 맞아 싸우며, 자신의 과거를 관철하고, 상처에 직면하고 그것을 회피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남은 삶 동안에 상처받은 내면아이로의 고착은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그리고 다음 3부에서는 아이가 성장하고 피어날 수 있도록 돕는 특정한 교정 연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책에서는 아픔으로부터 벗어나고, 건강한 자아를 확립하기 위하여 네 가지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첫 번째는 “당신의 성인자아를 새로운 잠재력의 새로운 자원으로 활용하라”이고, 두 번째는 “당신의 내면아이에게 새로운 허락을 해줘라”이다. 세 번째는 “상처받은 내면아이를 보호하라”이고, 마지막 네 번째는 “교정훈련을 실행에 옮기기”이다. 예를 들면, 당신의 내면아이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다른 성인들을 만나는 올바른 방법을 배우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친밀감을 형성할 때, 당신의 내면아이를 보호할 경계를 만들어 놓는 것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런 경험들이 나 자신의 어린 시절에는 전혀 경험해 보지 못했었지만 이러한 방법으로 후에 나의 아이를 양육할 때 좋은 부모가 되는 법을 가르쳐 줄 것이다. 그리고 또한 이러한 것을 통해서 자기 자신 스스로를 어떻게 양육할 수 있는지도 배울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 안의 내면아이에게 좀 더 관대함을 베풀 수 있도록 조건을 열어주어야 한다. 좀 더 개방적이고 새로운 허락을 내면아이에게 허락을 해준다면, 건강한 성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전략들은 오랫동안 속박 되어있던 내면아이를 더욱 아프게, 그리고 분노하게 만들 수 도 있으므로, 우리는 충분한 노력을 통하여 내면아이를 보호해주어야 하며, 이러한 교정훈련을 착실히 실행에 옮김으로서 어린 시절에 고착된 내면아이로부터 자유롭게 해방되어 독립적이고 건강한 성인자아를 형성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4부에서는 당신의 내면아이가 치유됨에 따라서 어떻게 당신의 놀라운 아이가 자리잡게 되는지를 보여 줄 것이다. 우리는 다시 한 번 살아가게 되는 “재생”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그 ‘놀라운 아이’에게 다가갈 수 있는지를 배우게 되고, 또한 이 놀라운 아이가 당신이 지니고 있는 가장 창조적이고 변혁적인 힘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목 차Ⅰ. 이론배경과 발달과정 2Ⅱ. 주요개념 3Ⅲ. 치료기법 6Ⅳ. 보웬이론의 평가 8Ⅴ. 사 례 9Ⅰ. 이론배경과 발달과정보웬은 정신 역동적으로 적립된 접근 방법과 체계적 접근 방법의 가교적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가족치료에 남긴 업적은 높이 평가 받고 있다. 포괄적인 이론의 기초를 구축하려고 노력 하였고 이론 적립과 함께 치료개발의 중요성을 인식했으므로 임상적 판단이나 정신의학적 직관에서 벗어나 객관적이고 예측이 가능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보웬 가족치료의 목표는 가족성원을 자아 집합체로부터 분리시켜 독립하여 자율적으로 기능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보웬은 테네시에서 가족원간에 친밀성이 높은 농가의 장남으로 태어났고, 외과대학을 졸업한 후 5년 동안 군복무생활을 하면서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보웬이 모자간의 공생관계나 삼각관계에 대한 관심이 많고 주요 개념으로 소개하기까지는 보웬 자신의 경험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된다. 정신분열증 환자를 보면서 아이디어를 정리한 것이기도 하지만, 테네시의 농가에서 가족간의 친밀도가 강하고, 장남에 대한 기대도 컸으리라 생각해보면, 보웬 자신의 문제이기도 한 모자간의 공생관계나 삼각관계에 관심이 있을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1. Bowen이론 발달배경1) 보웬의 경험(5남매 4째인 여동생의 문제와 군에서의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의 경험)2) 메닝거연구소(1946-1954) - 모자공생관계 가설 설정모자 공생관계 가설 - 예) 정신 분열증 환자는 어머니에게 지나치게 정서적 애착.3) 국립정신보건원(NIMH)에서 이론의 기초 확립 - 분화의 개념과 삼각관계의 개념 형성모자 공생관계 - 불안정한 애착관계 형성(정서적 불안함에서 기인, 자신을 통제할 수 없는 단계), 미분화로 생기는 현상 - 다른 사람과 자신을 유지, 지탱하기위해 일정한 관계 형태 맺음 - 삼각관계4) 조지타운 대학 (1959-1990) - 이론의 완전한 형태를 확립, 30년에 걸쳐서 이론을 완성2. 건강 즉, 자아분화 수준이 낮고 긴장이 심할수록 그런 현상은 현저하다. 삼각관계의 일반적인 예로서 부부갈등이 심할수록 한 자녀를 부부의 불안한 정서관계에 끌어들여 긴장감완화의 역할을 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즉, 부부가 자신의 문제로 반목하는 대신에 그들의 대화와 관심을 자녀에게 쏟는다. 이는 부모 한 사람과 자녀사이의 강한 애착관계를 유발한다. 만약 삼각관계에 휘말리는 자녀가 상처받기 쉬운 성향을 가진 자녀라면 여러 가지 문제 증상을 보이게 될 것이다. 또한 이러한 중복된 삼각관계는 제3의 인물이 떠나고 네 번째 사람을 끌어들일 수도 있다. 가족안에서 더 이상 삼각관계를 만들 수 없는 경우에는 가족의 제3의 인물을 끌어들여 삼각관계를 이루기도 한다. 제3의 인물이 가족치료자가 될 수도 있는데 이 경우 가족치료자는 가족이 가진 문제를 직접 다루지 않고 바람직하지 않은 삼자관계의 과정을 지적해야한다.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관계를 의미하는 치료적인 삼각관계는 가족의 관계를 개선할 수 있다. 이런 치료 과정을 통해 보웬은 가족치료 목표를 탈삼각관계로 삼았다.3. 핵가족의 정서적 체제 (Nuclear Family Emotional Process)이 개념은 한 세대의 가족 내에서 보이는 정서적 기능을 설명한 것이다. 보웬은 가족집합체라는 용어를 사용하므로 가족 내 정서적 융해를 설명하였다 원가족과 분화가 이루어지지 못한 부모는 자신의 부모와 정서적 단절이 생기면, 현재의 가족생활에서 융해를 이루어 안정을 찾으려 한다. 즉, 자아분화가 낮은 사람의 결합일수록 두 사람의 자아가 융해되어 공동자아를 형성 한다 .문제는 새롭게 형성된 이와 같은 융해는 불안정하며, 때로는 융해가 반대로 부부간의 정서적 거리감을 증가시켜 자녀에게 투사하는 등의 여러 가지 부적응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Bowen은 가족성원들 사이의 기본적인 정서적 기능의 형태는 과거 세대의 반복되는 과정을 통하여 전달된 것이고, 다음 세대에 관하여 어느 정도는 예측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리고 Bowen은 사람들은 비슷한 성격을 가진다는 사실을 발견 하였다.이는 한 개인이 가족체계 내에서 기능적 위치를 추론 할 수 있게 하였다. 이런 토만의 생물학적 출생순위에 보웬은 기능적인 출생순위까지 확대하여 개념을 적용 했다.이 개념은 특정한 자녀가 어떻게 가족 투사과정에서 대상으로 선택되느냐 하는 것을 이해하기 위한 새로운 차원을 제공하고, 개인이 결혼생활에 어떻게 적응하며 가족치료를 할 경우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를 예측할 수 있는 자료가 된다. 예로서 장남이나 장녀가 막내와 같이 변한다면 그것은 삼각관계에 속한 자녀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만일 장남이나 장녀가 지배적이라면 손상된 가족의 기능을 조절한 증거이다.7. 정서적 단절 (Emotional Cutoff)정서적 단절은 한 개인과 자신의 원 가족 간의 미분화와 그것과 관련된 정서적 긴장을 설명한 것으로 극심한 정서적 분리의 양상을 의미한다. 정서적 단절은 세대간 의 잠재된 융해의 문제를 반영하는 것이다. 세대간 의 정서적 융해가 심할수록 정서적 단절의 가능성 또한 높고 융해가 심한 사람은 가족과의 정서적 접촉을 회피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그러나 고립된 소외에서 오는 불안으로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면 또다른 융해를 초래한다. 그 예로 충동적으로 결혼한 사람을 들 수가 있다. 이 사람은 결혼을 해도 새로운 가족과 다시 융해하여 원가족의 문제를 재연시키기 때문이다.8. 사회적 정서과정 (Societal Emotional Process)가족에 대한 기본이론을 보다 큰 사회의 정서적 기능영역으로 확장한 것이다. 개인에게 거짓 연대감을 갖게 하는 사회의 작용으로 이 작용은 융해를 조장하며 자기분화를 저해한다. 사회 내의 정서적 과정은 가족 내의 정서적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개념이다. 사회적 퇴행은 불안에 의해 사회적 문제해결능력을 위태롭게 하는 정서적 과정이다. 가족과 마찬가지로 사회도 비분화 하려는 것과 분화하려는 상반되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인구성장과 천연자원의 고갈과 같은 만성적인 스트레스와 정서적 충동에 의한 반응의 유형구조 : 서로 맞물린 삼각관계의 유형3) 치료 목표 - 불안을 경감시키고 자아분화를 촉진하는 것4) 가족 내에서의 가장 중요한 삼각관계를 수정 - 부부가 들어가 있음5) 치료자가 가족 중의 두 사람과 새로운 삼각관계를 형성해야한다고 봄(2) 가계도가계도는 가족체계이론에서 발달한 것이다. Bowen은 가계도에 포함시키는 내용으로서 정서적인 체계를 지배하는 원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하였다. 가계도는 여러 세대를 거쳐 온 정서과정의 강점과 약점을 반영하는 것이다. 다세대의 유형과 영향은 핵가족 기능에 대한 중요한 결정요소이며 최소한 3세대에 걸쳐 확대가족을 도식화함으로써 현재 나타난 문제의 기원을 조사하여 가계도작성 방법을 개발하였다. 가계도는 치료자와 가족구성원들이 다세대간의 맥락에서 가족의 정서적 과정이 약해지고 강해지는 것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유용한 도구이다.가계도를 통하여 많은 가설들을 만들 수 있다. 원가족의 융합과 분화의 문제, 핵가족의 정서체계, 부모와의 정서적 단절, 형제자매 위치 등 이러한 것들은 증상과 관련하여 볼 수 있다. 그리고 평가면접 자료를 가족가계도 작성에 포함시킬 때 치료자와 가족은 세대에 연결된 정서적 과정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다.완성된 가계도를 해석하는 것은 “가족진단”의 형태로 다음 10개영역을 사정하고 진단한다. ①증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 ②형제들의 지위, ③핵가족의 정서과정, ④스트레스를 주는 사람/사건, ⑤정서적인 반응, ⑥핵가족의 적응, ⑦확대가족의 안정성과 평안함, ⑧정서적인 단절, ⑨치료적인 초점, ⑩예측① 가계도 작성법1. 가족구조를 도식화 한다.2. 가족 성원에 관한 정보를 기록한다.3. 가족 관계를 표현한다.* 연령, 결혼한 날짜, 사망, 지리적 위치 표시* 남자는 사각형, 여자는 원 그 속에 나이 기재* 수평성- 부부관계, 수직선-부모 자녀관계* 비스듬히 그은 두 사설(//) - 두 사람의 이혼 표시* 세 줄 - 아주 친밀한 또는 융합된 일상 생활상의 갈등은 없다고 보고 어머니에게 일차적인 초점을 두고 개입하기로 했다. 월 1회의 만남에서 가계도를 작성해 나가면서 가족력에 대한 정보를 축적했고 이를 지속적인 가족평가의 기초로 삼았다. 이 과정에서 내담자(어머니)와 정회원을 포함하는 일련의 삼각관계 형성 및 변화과정이 관찰되었고 관계상에서 인정과 지지의 결핍이 두드러지는 테마로 나타났다.이에 따라, 본 치료자는 내담자의 정회원에 대한 인정과 지지 기술의 향상에 일차적인 목표를 두고 내담자로 하여금 정회원에게 그의 재활 성과를 인정하고 지지하는 내용의 메모를 전달하는 과제를 부여했다. 이 과제는 내담자와 정회원간의 불안 수준을 감소시킴으로써 내담자가 다른 가족성원, 치료팀 또는 치료자를 영입하여 삼각관계를 구성하고자 하는 욕구를 감소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이 사례는 현재 진행 중이며, 경우에 따라 정회원의 부분적 참여가 시도될 것이다.3. 정** 회원 병력39세 남성, 10년 전 정신분열병으로 진단받은 이래 두 차례의 입원치료를 거쳐 약 1년 전 두번째 퇴원 직후 본 센터의 주간재활 프로그램에 의뢰된 이래 정규회원으로써 참여해 오고 있다. 정회원의 첫 발병은 29세 때로 당시 해외유학 중 “스트레스가 심하여” 중도 귀국한 후, 환청?환시를 경험하고 전문정신병원에 내원, 정신분열병으로 진단받고, 6개월 입원치료를 했다. 퇴원 후, 전자회사에 취직하여 3년간 직장생활을 하다가 IMF직후 “직무에 태만하다”는 상사의 평가로 사퇴했다. 그 후, 번역일을 하면서 “한국에서는 적응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남미로 이민하기 위해 스페인어 공부를 시작했다. 약 2년 전, 이민 사전작업을 위해 남미를 방문 중, 증세가 재발하여 한 가족원이 직접 찾아가 동반 귀국하여 입원시켰다. 동 정신병원에서 1개월 동안 입원 치료하다가 퇴원과 함께 본 센터에 의뢰되었다. 퇴원시 정회원은 부모와의 갈등적인 관계를 이유로 귀가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센터에서 운영하는 주거시설에 입소하여서 약 8개월간 지냈다. 본 사례가 의뢰될 무렵,은?
1. 칭다오의 역사중국 산둥 성 동부에 있는 항구도시.지구급 시이다. 중국 북부에서 제일 가는 천연항 가운데 하나로, 산둥 반도 남쪽 해안에 있으며 자오저우 만 동쪽 어귀에 있다. 이 만은 혹독하게 추운 겨울에 때로 얼어붙기도 하지만, 대형 선박은 언제나 드나들 수 있다. 칭다오는 본래 즉묵현에 속한 보잘것없는 어촌이었으나, 청대(1644~1911)에 칭다오커우 라는 세관이 세워지면서 대규모 정크 무역이 발전했다. 1880년대 북양함대를 창설하면서 중국 정부는 칭다오의 전략적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곳에 소규모 해군 보급기지와 요새를 설치했다. 1897년 이 지역에 눈독을 들여온 독일정부는 자국 선교사 피살사건을 구실로 군대를 급파해 칭다오를 점령했다. 1898년에는 중국 정부에게 배상금을 지불하도록 요구했고, 산둥의 철도경영권과 광산채굴권을 포함해 자오저우 만과 그 주변지역을 99년 동안 조차해주도록 압력을 넣었다. 이에 따라 칭다오는 1899년 자유항으로 선포되었고, 근대식 항구시설도 들어섰다. 또한 지난 까지 이어지는 철도도 놓였다. 칭다오는 유럽풍의 근대적 도시로 설계되었으며, 여러 공장들도 들어섰다. 멀리 남쪽으로 장쑤 성에 있는 새 항구 롄윈 항 까지의 해안무역을 관장하기 위해 제국해관 지부가 칭다오에 세워졌다. 1914년 일본이 독일을 상대로 선전포고한 것도 무엇보다 칭다오를 확보하려는 것이 목적이었다. 1914년 11월 일본은 이 항구를 봉쇄한 뒤 손에 넣는 데 성공했다. 1922년 워싱턴 회의의 결과에 따라 중국에 반환할 때까지 이곳은 일본에 점령되어 있었다. 그러나 일본은 이 기간 동안 칭다오뿐만 아니라 산둥 성 내지에도 강력한 거점을 구축해두었다. 1929년 칭다오는 난징 국민정부의 효과적인 통제하에 들어갔으며, 이어 특별시가 되었다. 항구로서 계속 발전한 칭다오는 1930년 무렵에는 교역량에서 경쟁 항구인 톈진을 압도했다. 그후에도 톈진을 누르고 계속 성장했다. 1938년 일본이 다시 칭다오를 점령하여 1945년까지 점령하고 있었는데, 이 습하고, 강우량이 많지만, 무덥지는 않다. 가을은 천고마비의 계절로서 서늘하고, 강우량이 적다. 겨울은 기온이 낮고, 바람이 세나, 엄동설한은 없다.3. 칭다오의 개관? 면적 : 156,700㎢(중국 전체의 1.6%)남한의 1.5배 크기? 인구 : 9,082만명(중국 총인구의 약 7.2%, 하남성에 이어 2위, 인구밀도 578명/㎢ : 직할시 제외 전국 1위, 청도시 인구 : 715.6만명,)? 행정구역 : 17개 시? 성도 : 제남? 주요도시 : 청도, 연대, 위해, 유방, 제녕, 임기, 덕주, 치박, 일조? 주요민족 : 한족? 주요언어 : 한어(중국어)? 종교 : 불교, 도교, 기독교, 천주교, 이슬람교 등(1982년 헌법개정으로 신앙 자유 공인)? 정체 : 사회주의? 국경일(정권 수립일) : 1949.10.1? 주요정당 : 중국 공산당, 국민당, 민진당, 구삼학사 등4. 칭다오의 약사? -1949 중화인민공화국 설립- 1958 대약진 운동- 1966 문화대혁명 개시- 1971 UN 가입- 1977 등소평 복권, 문화혁명 종결 선언- 1989 천안문사태 발생- 1990 등소평 국가중앙군사위 주석직 사임- 1992 한·중 국교 수립- 1994.9.12 주칭다오 대한민국 총영사관 개관5. 칭다오의 경제와 발전청도는 20여년의 개혁ㆍ개방과 산업구조의 부단한 개선을 통해 전자통신, 정보가전 , 화공ㆍ고무, 식 품, 음료, 자동차ㆍ선박, 의류 등 6대 주력산업 기틀을 마련하였다. 2005년 청도시의 국민 총생산 (GDP)이 2695.5 억원으로 16.9% 증가하였고, 이는 1994년 이래 최고의 증가수치이다. 그중 제1차 산 업은 174.64억원, 제2차산업은 1399.75억원, 제3차 산업은 1121.11억원으로 각각 16.9%, 0.4%,20% 증가하였다. 3대 산업의 비율관계는 6.5:51.9:41.6이다. 종합 실질 경제력은 전국 도시 중 10 위를 차지하였고, 15개 부성급 도시에서 4위를 차지하였다. 2005년 청도시의 지방재정의 일반 예산수입은 1762005년 말까지 청도시에서 금융업에 종사하는 자는 3.5 만명 이상이 다. 청도는 25개 해양 과학연구, 교육 및 관리기구가 있고, 전국 중점 종합 해양대학인 중국해양대학 이 소재하고 있다. 청도에는 중국의 과반수 이상 해양과학기술 인재가 있다.가. 국가급 중점 발전지역1) 청도경제기술개발구청도경제기술개발구는 국무원에서 첫 번째 인가한 국가급 경제기술개발구의 하나로서, 황해 의 해변, 교주만서해안에 위치하고 있고, 환발해경제권에 자리하고 있어 "대청도" 전략 핵 심지역이자, 발전 잠재력이 무한한 투자지역이다. 청도경제기술개발구는 국제관례에 따른 개발구이자, 과학적인 계획개발구이고, 높은 기준에 입각하여 건설한 개발구로서 총 300억 원을 투자하여 구축한 완벽한 인프라 시설을 갖추고 있다. 청도경제기술개발구에 위치한 억 톤에 달하는 물량을 소화할 수 있는 세계적인 항구인 전만신항은 현재 중국에서 규모가 가 장 크고, 현대화된 컨테이너 부두를 가지고 있으며, 100여개의 원양항선이 세계 각 지를 연결하고 있다. 청도경제기술개발구는 현대인의 업무와 생활에 편리한 자연환경을 조 성 하기 위하여, 현재 청도경제기술개발구의 녹화율은 44%이고, 1인당 공공녹지는 32㎡에 달한다. 청도경제기술개발구는“중국인 거주환경상”을 수상한 바 있고, 2004년에는 ISO 14000 국가시범지역으로, 2005년에는 국가 생태시범지역이 되었다. 청도경제기술개발구의 우수한 투자환경은 국내외 투자자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금까지 50여개 국가와 지역 및 20 여개 도시의 투자자가 총 미화 90억 달러 정도를 투자한 바 있다. 또한 세계 500대 기업에포함되는 30여개 기업이 청도경제기술개발구에서50여개 프로젝트에 투자하였다. 청도경제기 술개발구는 청도의 신 공업화 중심지역 산업발전계획에 발 맞추어, 1차적으로 가전전자, 석 유화학, 기계제조, 신재료, 물류창고, 첨단기술 등 "6대 산업군"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이 에 청도의 주요 경제지표는 연속 몇 년간 약 30%의 속도로 증가세를 보였위치 하고 있다. 2005년 청도보세구는 보세구와 항만의 연계성을 강화하는 "구항연동"의 비준을 계기로, 보세구와 보세구의 연계성을 강화하는 “구구연동”의 새로운 시스템을 실시하여, 국제 거래시장의 고무, 광산권, 광산, 면화, 펄프, 건축자재 등 종합시장 산업체계를 통한 경제의 부대적인 효과 및 대외개방의 전면적이고 모범적인 추진역할을 하였다.3) 청도 첨단기술 산업개발구청도 첨단기술 산업개발구는 1992년5월에 설립되어, 동년 11월에 국무원의 비준을 거쳐 국 가급 첨단기술구로 지정되었다. 2000년 청도 첨단기술 산업개발구는 첫번째 인가한 국가 첨 단기술 제품 수출기지들 중 하나로서, 2001년에는 선진 국가 첨단기술 산업개발구로 인정 받았고, 2002년에는 국가대학 과학기술원과 국가횃불계획소프트웨어 산업기지로 인정 받았 으며, 2003년에는 국가과학기술부의 “횃불계획 실시 15주년 선진 국가 첨단기술 산업개발 구”와 “국가 선진 횃불계획 소프트웨어 산업기지”라는 영예를 받았다. 청도 첨단기술 산 업개발구의 창업서비스센터는 국가급 창업서비스센터의 인정을 받았고, 39개 대기업의 연구 개발(R&D)센터가 있다. 이처럼 청도 첨단기술 산업개발구는 청도시에서 과학기술자원이 집 중되어 있고, 자주적인 창조력과 창업 환경이 우수한 지역이다. 청도 첨단기술 산업개발구는 우세한 지리적 위치로 인해, 한편으로는 대외 개방이 활발하여, 미국, 일본, 한국 등 국 가, 지역과 우호적인 합작관계를 형성하고있다.4) 청도수출가공구청도수출가공구는 청도시대외개방의 선봉에 선 성양구에 자리하고 있다. 청도수출가공구는2003년 국무원의 비준을 거쳐 설립되었고, 동년 12월에 세관총서 등 8개 부서와 위원회의 연합검사에 통과된 바 있다. 핵심지역의 면적은 2.8㎢에 달하고, 정밀기계, 정보전자, 신형 재료, 정밀화공 등 "대, 고, 외" 항목을 중점으로 발전시킨다. 청도수출가공구는 "경내관외 "의 특별정책을 실시하고, "일차신보, 일차사검, 일차방행" 통관업무 서비스를 구현하여 화 물인들의 시선은 차가웠다. 그 시절 중국인들에게 청도맥주는 침 략자들이 생산해 낸 황색의 물에 지나지 않았으며, 심지어 '말의 오줌' 이라는 핀잔으로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청도 맥주는 그 품질이 뛰어나, 1906년 처음 출전한 독일 뮌헨 맥주 박람회에서 금메달을 차기 하게 된다. 후에 청도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함과 동시에 청도 맥주의 운명도 뒤바뀌게 되었다. 일보은 당시 형식적인 금액인 50만 은전에 청 도맥주를 사들여 '대일본맥주주식회사청도공장' 이란 이름으로 개명한 다. 이런 극심한 변화 속에서도 그나마 다행스러웠던 것은, 일본인들이 당시 청도맥주의 설비와 양조 기술을 그대로 유지했다는 점이라 할 수 있다. 이후 1916년 12월, 맥주공장이 다시 가동되기 시작하는데, 이 시 기의 청도 맥주는 상표를 찰황,태양,복수,기린 등으로 바꾸어 달게 되었다. 일본인들은 이후 청도맥주의 제조방법을 변화시키고 각종 설비를 증축함으로써 맥주 생산능력을 연간 2,000톤에서 4,000톤으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일본인이 경영하던 30년 가까운 이 시기가, 청도 맥주 역사상 생산관리가 제일 혼란했던 시기로 전해진다.1945년 10월, 제2차 세계대전에 패한 일본인들이 청도에서 물러가고 국 민당정부가 들어서며 청도맥주는 또 다시 '청도맥주공사'로 이름을 바 꿔 달게 된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청도맥주는 정식으로 '국영청 도맥주공장'으로 이름을 바꾸고 재생간 체제에 돌입한다. 그러나, 당시 수립된 중국정부의 경제봉쇄정책으로 인해 맥주의 원료인 홉의수입이 어려워지자, 이를 자급하기 위해 이듬해인 1950년, 이촌에 홉 생산기지 를 만들고 시험가동하게 된다. 결국, 1952년부터 이촌에 설립한 홉 생 산기지에서 만들어진 홉으로 청도맥주는 정상적으로 맥주를 생산할 수 있게 된다. 여러 갖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77년 여를 지나온 1979년에서 야 청도맥주는 중국정부로부터 정식으로 상표인증을 받게 된다. 1983 년, 중화인민공화국 상표법이 공포되면서 상표 이름에 도시의
환율 과 경제1. 환율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경제적 요인외화자금업무는 기능적인 측면에서 두 가지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외화자금을 효율적으로 차입하고 운용함으로써 외화여신업무의 이윤을 극대화하도록 지원하는 소극적인 기능이 있다. 당사의 다른 업무와는 관련 없이 자체적인 외화지금 거래를 통하여 스스로 이익을 창출해 내는 적극적인 기능이 있다. 즉, 고객과의 외환거래를 유치하여 반대거래로부터 매매차익을 확보하거나 독자적인 투기거래를 통하여 자본차익을 실현하는 것이다.INFLATION: 구매력 평가설에 의하면 상대적으로 높은 인플레율은 그 나라 통화를 약세화 시키는 요인이 됨.국제수지: 국제수지 흑자가 커지면 나라 통화는 강세를 보임경제성장률: 경제성장률이 높아지면 그 나라 통화는 강세를 보임석유가: 산유국의 통화는 강세인 반면 비산유국의 통화는 약세를 보임중앙은행의 정책환율의 급등한 변동으로부터 자국화를 보호하기 위함중앙은행이 시장에 직접 개입하거나 금융통제 수단으로 지준율, 할인율 등의 정책을 사용은행의 시장 개입시 단기적으로 강력한 힘 발휘2. 환율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환율이 경제활동에 미치는 영향환율은 경제활동, 특히 외국과의 거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환율이 1달러에 1,000원일 때 우리나라 기업이 외국에 1만 달러 어치를 수출하여 우리 돈으로 바꾸면 1,000만 원이 된다. 그러나 환율이 1달러에 1,200원으로 올랐을 때 1만 달러 어치를 수출하면 1,200만 원을 받는다. 같은 양의 상품을 수출해도 200만 원을 더 버는 셈이 되므로 기업은 수출에 더 힘을 쓰게 된다. 그러나 외국 상품을 수입할 때는 반대의 현상이 나타난다. 환율이 오르면 같은 수량의 상품을 수입하더라도 우리나라 돈을 더 많이 주어야 하므로 가격이 오른 셈이 되고 따라서 수입이 줄어들게 된다. 결국 환율이 오르면 수출이 늘어나고 수입이 줄어들어 무역수지가 개선된다. 물론 이에 따른 부작용도 있다. 우리나라는 원자재의 대부분을 수입하고 있기 때문에 환율이 오르면 물가가 올라갈 위험이 있다.또한 환율은 국내외의 금리나 주가와도 서로 영향을 미친다. 우리나라의 금리가 다른 나라보다 높을 때에는 외국의 돈이 몰려오게 된다. 우리가 돈이 있을 때 이왕이면 이자율이 높은 은행에 돈을 맡기듯, 외국의 자본도 금리차에 따른 수익을 얻기 위해서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달러가 많이 들어오면 원화의 환율은 떨어지게 된다. 또한 주식시장에 있던 돈도 이자가 높은 금융시장으로 흘러 들어오게 되므로 주가가 떨어지는 경우가 생긴다.환율은 시장의 원리에 따라 움직이므로 환율의 변동으로 경제환경이 크게 변하고 그만큼 경제활동에 위험이 따른다. 돈의 가치도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정부의 정책에 따른 효과가 여러 가지 방향으로 나타나게 된다. 결국 정부가 정책을 계획하고 수립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것이다.환율과 국제수지 관계일반적으로 환율이 상승하면 수출이 증가하고 수입이 감소함에 따라 경상수지가 개선된다. 왜냐하면 환율이 상승하면 수출업자는 수출의 대가를 같은 금액의 외국돈으로 받더라도 원화로는 더 많은 금액을 받게 되므로 수출품을 보다 싼 가격에 팔 수 있게 되어 수출량을 늘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수입업자는 환율이 상승하면 수입품을 사는 데 더 많은 원화를 지급하여야 하므로 수입을 줄일 것이기 때문이다.그러나 환율 상승에 따른 경상수지 개선효과는 수출입 가격변동과 가격변동에 따른 수출입 물량변동에 상당한 기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보통 그 효과가 곧바로 나타나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나타나게 된다.예를 들어 보자.만약 1달러에 1,200원이던 환율이 1,250원으로 상승하였다면 수출업자는 외국에 물품을 팔아 종전과 같이 1개당 1달러를 받더라도 이를 원화로 바꾸면 1,200원이던 수익이 1,250원으로 늘어나므로 수출을 더 늘리려고 할 것이다. 또한 수출품의 가격을 내릴 수 있는 여유가 생겨 가격을 1달러 이하로 내릴 수 있게 되며 가격을 내릴 경우 더 많이 수출할 수 있을 것이다.이와 반대로 환율이 하락하면 수출업자의 원화 수익이 감소함에 따라 수출품의 가격을 올리게 될 것이며 이렇게 될 경우 수출량이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또한 수입의 경우에는 환율이 하락하여 원화가치가 높아지면 외국상품을 사는데 그만큼 적은 원화를 지급하여도 되므로 수입이 늘어나게 된다.그리고 환율이 상승하면 물가가 올라, 원자재, 부품 등을 수입하는 데 더 많은 원화를 지급하여야 하므로 국내 물가수준을 높이게 되며 반대로 환율이 내리면 수입품의 가격이 싸져 국내 물가를 낮추게 된다.
한국 경제의 현실1. 경기 장기하강 국면 지속지난해 하반기 이후 완만한 회복세를 보이던 동행지수 순환변동치와 경기선행지수 전년동월비 등 국내 주요 경기관련지표는 올 4월 이후 최근 6개월동안 하락세를 지속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경기가 일시적인 침체 국면이 아닌 구조적 장기불황국면으로 빠져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국내 경기는 최근 공식 경기 정점(peak)인 2000년 8월 이후 올 9월까지 4년 이상 추세적인 하락국면을 지속하고 있는데, 50개월 가까운 이러한 경기하락 국면의 장기추세는 통계청이 지난 1970년대 우리나라 경기종합지수를 편재한 이래 초유의 현상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2000년 8월 이후에도 두 차례의 경기상승 시도가 있었으나 그 강도나 지속성 측면에서 회복다운 회복 양상을 보여주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두 차례의 경기 등락 국면에 나타난 소순환상의 정점과 저점이 위치한 수준(level) 자체가 계속 낮아지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에서 국내경기는 2000년 8월 이후 장기 하강국면을 지속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아울러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 8월과 9월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직전 저점인 2003년 8월 보다 더 낮은 수준으로 추락한 상태이다. 내수경기의 극심한 위축이 통상적인 경기부진 차원을 넘어 금리인하, 재정지출 확대, 감세 등과 같은 단기적인 부양책으로 치유되기 어려운 구조적 현상으로 고착되는 양상을 보임에 따라, 극단적으로 과거 1990년대 초반부터 최근까지 10년 여 동안 일본경제가 경험한 장기불황과 유사한 ‘한국형’ 장기불황이 현재화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더 심각한 문제는 내수부진에 의한 이러한 장기불황 조짐과 더불어 우리 경제의 미래 성장추세를 가늠할 성장잠재력이 가속적인 둔화 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는 인구의 고령화와 미래 노동력 부족, 자본투자 증가세의 감속, 그리고 경제사회 전반의 낙후한 시스템과 이로 인한 경제효율성 및 생산성 향상 지연 등으로 인해 향후 2010년까지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4%대로 크게 후퇴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한국경제의 성장활력이 이처럼 기조적으로 약화되는 가운데, 만약 현재와 같은 저투자, 저소비 현상이 조기에 차단되지 않고 장기추세로 고착될 경우 우리 경제는 3%대, 또는 그 이하의 저성장 국면이 지속되는 장기불황 국면을 피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1997년 말의 외환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것으로 자평해 온 한국경제의 성장체제가 다시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2. 불확실성의 증대경기침체의 골이 깊어지면서 우리 경제의 앞날에 대한 전망이 크게 불투명해 지고 있다. 지난 2002년 하반기 이후 민간소비와 기업투자 등 내수경기의 부진으로 인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경제는 그 동안 성장견인차 역할을 맡아 온 수출마저 최근 세계경제의 둔화 조짐과 IT부문의 공급과잉 등으로 증가세가 빠르게 하락하고 있어 그나마 미약했던 성장엔진이 가속적으로 식어가는 추세이다. 금리인하와 특소세 폐지 등 내수부양을 위한 정책당국의 다각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내수경기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동안 내수위축에 따른 한국경제의 총수요 부족 문제를 상쇄해 왔던 수출의 빠른 둔화추세는 우리 경제의 앞날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울 수 밖에 없는 형편인 것이다. 당초 5%대 중반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예측되던 올해 우리 경제의 성장률은 최근 5%, 또는 그 이하에 머물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를 이루고 있으며, 각 연구기관의 내년 성장률 전망치도 4% 안팎으로 올해 보다 크게 낮아지고 있는 모습이다. 투자와 소비가 얼어붙은 상태에서 수출까지 흔들리면 한국 경제의 회복력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KDI가 엊그제 ‘수도이전 위헌 결정이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가늠하기 어렵다’며 3분기 경제보고서의 발표를 포기한 것도 예사롭지 않다. 한마디로 경제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시계(視界) 제로’ 상태로 들어섰다는 얘기다.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기업의 투자는 위축되고 소비자의 주머니는 더 닫히고 있다. 불안심리와 실물경기가 서로 맞물린 전형적인 악순환 양상이다. 동시 다발적으로 불거지는 대외적 악재를 상대하기에도 벅찬 경제 주체들은 극한대결을 벌이며 불확실성을 부채질하는 경제외적 ‘정치 변수’에 절망하고 있다.한국 경제의 현실 극복을 위한 방안1. 단기적으로 강력한 경기확장 정책소득 2만달러 달성과 선진복지사회의 구축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최근 약화 일로에 있는 우리 경제의 활력 회복이 긴요하다. 민간소비와 기업투자 활성화를 위한 장단기 정책 대응과 더불어 우리 경제전반의 시스템 개혁과 효율성 제고 등 총요소생산성(TFP) 향상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한국형 장기불황의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고 경제전반의 활력을 조속히 회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작금의 내수경기 침체에 대한 정부의 단기 대응능력을 시급히 확충해야 할 것이다. 현재와 같은 내수부진 상태가 지속될 경우 한국경제의 불확실성과 경제주체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더욱 심화되고, 이러한 불확실성과 불안감이 다시 내수침체를 가속시키는 소위 ‘자기실현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이러한 점에서 향후 정부의 경기대응기조는 금융 및 재정정책 측면에서 강력한 확장기조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금융정책과 관련해 현재 우리나라의 실질금리 수준은 이미 마이너스 상태이지만, 내수진작을 위해 실질금리의 마이너스 폭을 더욱 확대하는 것도 고려할 만 하다. 아울러 재정측면에서는 장기불황 국면으로의 진입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인 만큼, 단기적으로 재정균형을 희생하더라도 국토균형발전과 SOC의 현대화를 위한 대형 국책사업, 과학기술 및 교육 경쟁력 강화, 사회취약계층을 위한 소득재분배 등 재정지출에 보다 과감한 접근 자세를 보일 필요가 있다. 더불어 한국경제의 유일한 성장동력인 수출부문의 대외경쟁력 유지 측면에서 최근의 원화환율의 급격한 절상추세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되며, 최대한 안정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물론 가계와 기업 등 경제주체들의 과도한 심리적 불안을 막기 위한 노력도 긴요하다. 경제주체들이 정부의 리더십이나 이념정체성, 그리고 정책방향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와 이로 인한 불안감에서 벗어나 우리 경제의 미래성장에 대한 낙관적 기대와 전망을 잃지 않도록 하는 데 전력을 경주해야 한다는 것이다.2. 장기적 저투자 현상 극복최근의 심각한 내수부진과 우리 경제의 기조적인 활력 저하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단기대응 노력만으로는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무엇보다 최근 수년간 지속되고 있는 민간소비와 기업투자 부진은 외환위기 이후의 급격한 경제사회 변화가 야기한 구조적인 현상이라는 측면에서 보다 종합적이고 근본적인 대응이 요구되기 때문이다.기업 설비투자는 한 나라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과 미래 경쟁력 제고를 위한 물적 토대를 형성하며, 관련 부문의 투자 및 생산증가, 질좋은 일자리 창출 등 다각적인 연쇄효과를 유발함으로써 경제주체들의 소득증대와 복지향상에 기여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설비투자 증가율은 90년대(1991~2000) 평균 6%대를 기록했으나 2000년대 들어 최근 3년동안은 평균 0% 수준으로 후퇴했다. 이러한 투자 부진, 또는 정체의 이면에는 치열한 세계경쟁과 산업기술의 빠른 진보추세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한국기업들의 수익모델 발굴 실패, 외환위기 이후 확산된 기업대출 기피 현상 등 금융시장의 기능 및 역할 변화, 그리고 부채비율 규제, 출자총액제한 등으로 집약되는 투자억제적 정부정책 기조 등이 자리잡고 있으며, 기업투자 환경의 근본적인 변화가 없는 한 우리 경제의 저투자 현상은 장기추세로 굳어질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