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 쉬운 한국 도자사’ 를 읽고고등학교 시절 국사 공부를 할 때 교과서에 나와 있는 사진 한 두장으로 한국의 도자기가 어떻게 시작하여 어떻게 발전하였고 또 어떤 형태와 특징을 지니고 있는가를 파악하기 난해했던 기억이 있다. 특히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도자기의 특질이 분명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서문의 몇 문장과 사진 몇 장으로 부박하게 도예 사를 이해하려고 하니 나처럼 공예에 무지하고 관심조차 없었던 학생에게는 답답하고 어려웠다.사실 대학생이 된 이 시점에도 도자기를 떠올렸을 때 공예왕국인 중국과 값비싼 유럽의 본차이나, 그리고 고려의 상감청자 정도밖에 모른다니 부끄러울 따름이다.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의 도자기가 얼마나 아름답고 위대한지 많은 작품으로 감상 할 수 있었고 책의 내용도 유홍준 작가의 경어문체가 잘 정리되어 있어서 이해하기 쉽고 역사 순차로 구성되어 있어서 좋았다.중국으로부터 시작된 자기의 문화가 한국으로 넘어오면서 우리 선조들은 중국의 자기 문화를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재구성하여 독자적인 한국 도자 문화를 발전시킨 노력과 우리 민족의 정신 속에 내면화되어 있는 철저한 장인 정신이 청자를 봄으로써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송나라의 태평노인의 ‘수중금’이라는 저서에서 고려 비색이 천하제일이라는 글을 보면 우리의 공예가 세계최고 수준이라고 말해도 한 점 잘못이 없겠다. 특히 중국 사람들과는 달리 문양뿐만 아니라 형태의 변화의 다양성을 적극적으로 구현하려고 했던 고려 사람들의 상감청자의 세련미는 지금에 와서도 복원 할 수 없을 정도로 섬세하고 아름다우며 매혹적이다. 상감청자가 청동은입사 기법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것은 이 책을 보고 알았는데 가장 유명한 운학무늬 매병이나 죽학무늬 매병 수금 무늬 도판 등의 작품을 보면서 사진만으로도 뭐라 말 할 수 없는 어떤 높은 미의 경지를 느낄 수 있었다.또 얼마 전에 아동문학강의 과제로 린다 수 박의 사금파리 한 조각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그 책에서 나왔던 것 것처럼 도자기 한 조각에서도 문양과 유약의 처리, 자연과 인간의 손길이 예술로 승화되는 위대함, 도예가의 끈질긴 인내심과 예술 혼이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고려 말 상감청자가 퇴화하면서 민요에서 제작된 분청사기는 각 지방에 따라 매우 다양한 양상을 띠게 되는데 서민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멋스럽다. 그리고 철화분청사기가 공주지방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니 공주지역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너무 무지했던 나 자신이 또 한번 부끄러워 졌다. 상감청자가 매끈하고 신비한 10대 후반의 여성이라면 분청사기는 질퍽한 느낌이 중년 여성의 녹록하고 시원스런 느낌을 주었다.분청사기를 거쳐 조선에 이르러서는 백자의 전성기가 시작된다. 중국의 청화백자와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면을 느낄 수 있는데 우리나라 백자는 좀 더 서정적이고 조선적인 세련미를 보여주는 것 같다. 더불어, 백의민족으로서 흰색을 사랑했던 우리 민족의 정서와 그 때깔은 소박하고 정중하면서도 우아한 모습을 여실히 엿볼 수 있다. 그러나 16세기이후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백자에는 청화 대신 철사로 그린 철화백자가 많이 제작되었는데 백자철화호랑이무늬 항아리와 백자청화 초화무늬 항아리는 이 책에서 처음 접해본 명품이었다. 앞에서 서술했듯이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 조선시대의 도자기는 대표적으로 백자밖에 나오지 않아서 조선 중 후반 도자기의 문화와 역사를 배우지 못했던 점이 아쉬웠는데 임진왜란 이후의 백자의 세련미 또한 조선미의 전형과 세련미는 극찬할 만 한 것 같다. 특히 백자철화 호랑이무늬항아리는 도자기에 위에 호랑이 민화를 그린 것 같고 이 전 시대보다 발색이 좋지 않은 저 품의 백자라는 느낌이 들었지만 고려시대의 청자와는 또 다른 여유롭고 서민의 질박함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미학은 가장 조선적이고 아름답다는 느낌을 받았다.이것은 미국 워싱턴의 프리어갤러리의 일화를 보면 알 수 있는데 중국자기의 권위적인 형태와 일본의 날렵하고 화려한 색과는 달리 한국도자기는 진력이 나지 않고 볼 때마다 느낌이 다른 것은 말하기 힘든 어떤 차원의 높은 미의 세계를 말해주고 있다.
마지막 남은 생명의 쉼터‘과수원을 점령하라’를 읽고‘과수원을 점령하라......’ 책 표지를 보고 한 편의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귀여운 삽화와는 달리 ‘제목이 상당히 도전적이다’ 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도대체 과수원에 무엇이 있는 것일까?’ 라는 궁금증을 유발하였다.이 책의 배경은 과수원이다. 이 과수원은 농촌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개발된 도시 근처에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남아있다. 그 곳에는 할머니와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오리 가족과 함께 산다. 과수원에 사는 오리 가족뿐만 아니라 쥐한테 잡힌 고양이, 과수원을 점령하려는 계획을 세우는 쥐 무리, 250년 묵은 나무에 사는 나무귀신,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고향인 과수원 마을을 찾아온 찌르레기 부부 등이 이 책에 나오는 중요한 등장인물이다. 그리고 이 과수원식구들의 이야기가 총 6편으로 나뉘어져 있으면서 내용이 서로 쇠사슬처럼 연결되는 옴니버스 형식의 동화였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으면서 마치 퍼즐 조각을 맞춰가는 듯했다.각각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들의 시점에 따라 같은 사건이 서로 다르게 보여 지고 또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된다. 그러나 생명체들 모두가 자연 속에서 주인공으로 살아가고 있고 서로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신도시 개발로 인해 아파트 숲이 되어버린 배꽃마을. 운 좋게도 과수원은 바로 옆에 있는 방송국 수신탑 때문에 그대로 남게 되었다. 오갈 데 없이 전전하던 동물들에게 나무가 많고 흙도 살아있고, 먹을 것도 풍부한 과수원은 최고의 삶터가 아닐 수 없었다. 삭막한 도시와는 차원이 다른, 그들에게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자연 인 것이다.과수원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던 새끼오리들은 황소개구리를 잡으러 호수공원에 가는 아저씨를 따라나섰다가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뜬다. 그리고 황소개구리의 황홀한 맛을 보고 급기야는 몰래 호수나들이 길에 나서는 것이다. 그 거듭된 ‘오리 가족의 멋진 나들이’ 때문에 황소개구리의 수가 줄어들고 그 공적으로 구청장에게 상을 받기에 이른다.호수공원에 나들이 왔다가 주인을 잃은 애완용 고양이 호피도 우여곡절 끝에 과수원 식구가 된다. 너무 사람에게 길들여진 탓에 ‘쥐한테 잡힌 처량한 고양이’ 신세가 된 호피는 왕쥐에게 코를 물리고 먹이를 구해다 바치기까지 한다. 덩치가 커져도 여전히 바보 노릇을 하던 호피는 어느 날 왕버드나무의 나무귀신이 오리 등을 타고 이사 가는 것을 보고 놀라 도망치게 된다.다시 길을 잃은 호피는 멋진 신세계, 과수원을 발견하고 드디어 고양이의 위엄을 회복한 후 문지기로 놀라운 변신을 하게 된다.발바리라는 쥐는 게으르고 뚱뚱한 왕쥐의 부하이다. 그렇다고 발바리가 왕쥐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충성을 맹세하는 신하는 아니다. 항상 신경질적이고 먹이도 언제나 먼저 차지하는 왕쥐의 태도에 불만을 가지고, 음식을 찾아도 자기 배를 먼저 채우고 난 후 왕쥐에게 남은 먹이를 가져다주는 욕심 있고 머리가 좋은 쥐이다.그런데 공터의 사과 궤짝 안에서 살고 있는 발바리와 쥐 가족들은 머지않아 공터에 학교가 들어설 때를 대비해 자신들이 안전하게 살아가야할 또 다른 장소를 찾아야만 한다. 발바리는 도시 어딘가에 공터보다 넓고 먹을 게 많은 곳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곳을 찾으러 떠난다. 꽤 멀리까지 왔지만 과수원을 찾지 못하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시궁쥐들의 무리를 보고 뒤를 밟아 과수원을 찾게 된다. 그러나 시궁쥐들보다 소파 패거리가 먼저 와 있었고, 그들은 과수원을 점령하기 위해 당장이라도 싸울 듯이 서로 우르릉 거렸다. 그러나 그 때 오리들이 한꺼번에 소리를 질러댔고 개들까지 덩달아 짖어 댄다. 나중에는 들 고양이 몇 마리가 어슬렁거리면서 나타나기 시작한다. 쥐들이 철조망을 기어오르려 하지만 쉽지 않았고, 올라가다 떨어진 쥐들을 보고 들 고양이들이 달려들기 시작한다. 서로 과수원을 점령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모습을 보고 인간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체 역시 시선을 멀리 두고 살고 싶고, 초록의 자연 속에 놓이고 싶고, 자연의 소리에 있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았다. 아니 인간보다도 더 그들에게 자연은 절실한 것 같다.결국엔 새끼였을 때 같이 살았고, 이제는 과수원의 문지기가 된 호피의 도움으로 쥐들은 들판으로 신나게 달려가면서 글이 끝난다. 그리고 몸이 너무나 뚱뚱해서 뒤룩뒤룩 움직이는 왕쥐는 어떻게 되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여운을 남겼다 .아마 내 생각에 왕쥐는 들판으로 향하기 전에 숨이 차서 죽었을 것 같다. 아니면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자동차에 치여 저 세상으로 갔을지도 모르겠다. 왕쥐의 모습은 자신만 더 가져야한다고 생각하고, 밑에 사람들을 무시하고 착취하는 권위적인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런 행동 뒤에는 그 잘못에 대한 대가를 응당히 치러야만 한다는 보여주는 것 같다.
꿈꾸는 자 만이 그 꿈을 이룬다‘사금파리 한 조각’을 읽고고등학생 시절에 신문을 보다가 한국계 작가 최초로 존 뉴베리 상을 수상한 ‘사금파리 한 조각’ 이라는 책을 소개한 기사를 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 존 뉴베리 상이 뭔지도 몰랐고 그렇게 대단한 상인지도 몰랐다. 제목에 있는 ‘사금파리’라는 것도 악기이름인가? 라는 생각을 했다. 분명 사금파리 단어 뒤에 ‘조각’ 이라는 수량을 나타내는 명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금파리가 피리의 한 종류인 줄 알았다. 이번 과제를 기회로 책을 읽어보니 사금파리라는 것이 사기그릇의 깨어진 조각을 일컫는 순 우리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비로소 나의 무지함에 탄식하면서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이 책의 첫 느낌은 수묵으로 그려진 듯한 삽화에 작가 이름이 린다 수 박. ‘동양의 수묵화와 작가의 이름이 영어라니…….’ 참 아이러니하고 묘한 감정이 들었다. 1권의 표지는 10살 남짓한 사내 아이였고 2권의 표지는 도자기를 빚고 있는 나이 지긋한 도예가 이었다. 난 시대물보다는 보다는 현대소설이나 판타지를 좋아하는 편이기에 이 두 권의 표지를 보니 ‘아…….지루 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며칠 전에 ‘알기 쉬운 한국 도자사’ 라는 책을 읽었기에 내용은 이해가 쉬었던 것 같다.작가인 린다 수 박은 한국계 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쓰기 위해서 한국과 한국문화에 대해서 오랫동안 공부하고 노력했던 흔적이 보인다. 비록 번역가가 영어를 번역했기에 미국적인 말투가 다소 남아있는 것 같았지만, 내용안의 단어들이 내가 모르는 순 우리말이 많았고, 한국 도자 사에 대해서도 공부를 많이 한 것 같다.‘목이’는 죽은 나무나 쓰러진 나무의 썩은 낙엽 속에서 저절로 자라나는 목이버섯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한다. 이름처럼 목이는 부모 없이도 스스로 큰다. 끼니를 챙기기도 힘들지만 목이 옆에는 항상 따뜻한 두루미 아저씨가 있다. 그들의 관계는 다리 밑에서 함께 살고 있는 가족이자, 다리가 불편한 두루미 아저씨와 미성숙하고 불안정한 목이는 서로 부족함을 채워주고 챙겨주는 관계이다. 또 문제가 생기면 항상 목이는 두루미 아저씨와 대화를 통해서 해결한다.그러던 어느 날 목이는 그 마을 최고의 도공인 민 영감이 만든 도자기를 보게 된다. 그러다 실수로 도자기를 깨뜨리게 되고 며칠 동안 일을 하는 것으로 빚을 갚기로 약속한다. 평소 목이는 민 영감의 모습을 지켜보고 도공의 꿈을 키우고 있었는데 그가 민 영감의 심부름꾼이 되면서 그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늙고 쇠약한 민 영감에는 목이가 쓸만한 심부름꾼이면서도 한편으론 귀찮고 불편한 존재이다. 하지만 목이는 ‘나도 언젠가는 물레를 돌리겠지’ 라는 꿈을 가지면서 열성을 다해 민 영감의 도자기 만드는 과정을 돕는다. 11살짜리 소년이 손에 물집이 생기고 피가 나도 그 아픔을 인내하면서 자기 책임을 다하기 위해 나무를 해오는 목이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목적을 성취하려는 굳은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이러한 모습은 요즘 자라나는 나약한 아이들과 심지어는 우리에게도 좋은 본보기가 될 것 같다.또한 목이는 일을 시작한 첫 날 이후에 민 영감 부인이 주는 점심을 반만 먹고 나머지를 두루미 아저씨의 저녁을 위해서 챙겨 놓는다. 이 대목을 보고서 목이가 자신을 길러준 두루미 아저씨에 대해 상당한 부정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며, 내가 당장 배고플 때 과연 부모님을 위해서 내 밥의 일정량을 과연 남길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 선뜻 ‘당연하다’라고 대답할 수 없는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어느 날 조정에서 새로운 도공을 선출하라는 임무를 받은 왕실 감도관이 줄포에 도착하였다. 퉁명스런 민 영감에게도 평생소원이 있었는데, 그것은 왕실 도자기를 주문 받는 것이다.처음에 감도관이 와서 강 영감의 새로운 기법에 흥미를 보이나 결국에는 민 영감의 깊이 있는 솜씨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기를 두어 다시 올 때까지 새로운 작품을 더 만들기를 바란다. 하지만 민 영감은 유약 조절의 실패로 인하여 감도관의 최종 결정에서 고배를 마시게 된다. 하지만 감도관은 민 영감의 실력을 잊지 못하고 송도에 작품을 가지고 다시 찾아올 것을 제안한다. 결국 민영감은 다시 도전 할 의지를 가지게 되고 이러한 민 영감을 옆에서 지켜본 목이는 자처해서 왕실이 있는 송도로 도자기 운반 일을 맡는다. 내가 만약 고아로 자랐고 평생 줄포를 떠나 본 적이 없는 목이라면 그런 책임이 막중한 일을 맡겠다고 선뜻 나설 용기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목이는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더 대단하고 강인한 아이인 것 같았다.두루미 아저씨는 목이가 송도까지 도자기를 나르기 위한 가마니를 제작한다. 그리고 목이는 자신이 송도를 갈 경우 두루미 아저씨의 생계를 걱정하는 부분을 읽으면서 나이는 어리지만 속이 깊고 두루미 아저씨를 사랑하는 마음이 크고 따듯한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혼자 남게 될 두루미 아저씨를 위해 그 동안 민 영감이 하는 것을 지켜본 일련의 과정을 거쳐 원숭이를 진흙으로 빚어 가마에 넣고 구운 후 유약을 바르는 등의 작업을 통해 완성된 작품을 선물로 주었다. 또 여행을 가기 전에 두루미 아저씨는 목이에게 이런 얘기를 하는 장면이 있다.“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여행 중에 온갖 어려움을 다 겪게 될 텐데,가장 위험한 대상은 사람일 거야. 동시에 네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순간에 기댈 수 있는 대상도 사람이고 말이야.목이야, 이 점을 꼭 명심해…….”여기서의 두루미 아저씨의 말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나는 목이의 여행길이 앞으로 험난하고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또 대화 내용 안에 사람에 대한 경각심을 나타냄으로써 복선의 효과를 주었다. 마치 내가 두루미 아저씨가 된 것 마냥 목이가 한없이 불쌍하게 보이고 측은지심이 느껴졌다.송도로 가는 길이 어린 목이로서는 힘든 여정이었지만 하루에 한 고개씩 차례차례 넘어간다. 그러나 목이는 송도에 가는 중간에 여우를 만난다. 1권에서 두루미 아저씨가 절에 들어가는 도중 여우를 만나 두려워해서 결국 거지가 되었다는 내용이 있었다. 하지만 두루미 아저씨와는 달리 목이는 여기서 여우에 맞서 싸워 승리한다. 두려움을 떨쳐낸 것이다.두루미 아저씨가 말씀하셨던 부여 낙화 암에 이르러서는 경치와 우리 역사를 음미하였다. 그러나 그곳에서 강도를 만나게 되고, 결국 도자기는 깨어지고 만다. 그러나 목이는 포기하지 않고 깨진 도자기 한 조각을 손에 불끈 쥐고 송도를 향하는 힘겨운 여정을 이어나간다. 나 같으면 그 깨어진 사금파리 한 조각을 들고 왕실 감도관을 만날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송도로 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을까? 라는 의문이 든다. 생각해보니 난 항상 뭐든지 포기가 쉬웠던 것 같다. 20여년을 살아오면서 평화로운 가정에서 태어나 인생의 큰 역경 없이 편하게 살아왔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어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꾸준히 일에 매진하기 보다는 좀 더 쉬운 길을 찾길 바라고 어렵다면 과감히 포기하면서 나중에 후회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목이는 원래의 목적을 위해서 당당하게 송도로 향한다.마침내 궁궐에 도착한 목이는 어렵게 왕실 감도관을 만나게 되었다. 비록 완성품이 아닌 사금파리 한 조각이지만 목이에게는 스승 작품에 대한 당당한 자부심과 함께 자신의 꿈의 성취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깨어진 도자기 한 조각이지만 그것을 받아본 감독관 또한 민 영감의 상감 기법 실력을 충분히 볼 수 있는 안목이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목이는 왕실 도자기 주문을 얻어낸다.벅찬 가슴으로 줄포에 돌아온 목이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고아인 자신에게 아버지이자 어머니였던 두루미 아저씨의 죽음이었다. 그리고 두루미 아저씨의 희생의 대가인 듯 목이는 꿈에 그리던 도자기를 빚을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 예로부터 도자기를 빚는 것은 부자지간 밖에 못한다는 도공 전통이 있었는데 그 전통을 깨고 목이는 자신의 노력으로 꿈을 펼치게 된 것이다. 또한 민 영감의 부인으로부터 ‘형필’이라는 이름을 부여받게 된다. 민 영감의 죽은 아들 이름이 형규였기에 ‘형’ 과 같은 돌림자를 사용했다는 것은 곧 목이가 민 영감내의 양자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네 뜻하는 바를 행하라-‘끝없는 이야기’를 읽고-이 책을 처음 보는 순간 한 숨부터 나왔다. 우선 어마어마한 책의 두께와 다른 책과는 달리 단번에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삽화도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정말 책 제목처럼 끝이 없는 이야기가 펼쳐지면 어떡하나…….다른 과제도 많은데 이 책을 언제 다 읽고 독후감까지 써야하나…….’ 사실은 조금의 불만과 함께 걱정부터 앞섰다. 그렇지만 ‘이왕 책을 읽게 된 거 열심히 해보자!’ 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며 힘을 내보기로 했다.작가 미하엘 엔데는 작년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소개되면서 유명세를 탄 ‘모모’라는 책을 쓴 사람이었다. 아직 ‘모모’를 읽지 않았지만 워낙에 호평을 받았던 작품이었기에, 이 책 역시도 ‘무언가 있지 않을까’ 라는 기대감에 나의 궁금증이 증폭되었다.책을 대충 훑어보니 붉은색 글씨와 푸른색 글씨의 두 가지 색깔의 글씨가 있었다. ‘왜 붉은색 글씨와 푸른색 글씨로 나눠 쓰여 있는 것일까?’ ‘붉은색 글씨는 무엇을 나타내고 푸른색 글씨는 무엇을 나타낼까?’ 라는 의문을 가지며 두꺼운 책의 첫 장을 넘겼다.솔직히 말해서 처음에는 지루했다. 무슨 내용인지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뒤로 갈수록 내용에 나 자신이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조금만 읽어야지’ 했던 나의 다짐과는 달리 중반부를 넘어가면서 멈추지 못하고 계속 읽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마치 내가 이 세상속의 인물이 아닌 주인공과의 영혼이 일치되었다고 느낄 정도였다. 책을 읽으면서 이런 느낌은 정말 처음이었다.못생기고, 공부도 못하고, 친구들한테도 인기가 없는 바스티안 발타자르 북스는 자신의 모습에 절망을 하고 학교를 어쩔 수 없이 다녀야만 하는 ‘지옥’으로 여겼다.그러던 어느 날 바스티안은 학교 수업에 빠지게 되고, ‘칼 콘라드 코리안더’ 라는 노인이 운영하는 낡고 오래된 서점에 들어가 책을 한권 훔치고 학교 창고에서 이 책을 읽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책 속에 펼쳐지는 세계인 환상계의 중심인 어린 왕녀의 병을 고칠 방법과 환상계를 무(無)로 만드는 존재를 막을 방도를 찾기 위해 책 속의 소년 아트레유가 기나긴 모험을 하고 돌아오는 것이 전반부라면, 책 바깥의 세계, 즉 현실의 소년 바스티안이 책 속으로 들어가서 겪는 이야기가 후반부를 이루고 있다.주인공이 책이나 거울 등을 통해서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것은 동화뿐만 아니라 만화나 영화에서도 자주 쓰이는 구성이다. 그러나 이 흔한 구성을 탄탄히 붙들어 주는 것은 책과 바스티안의 관계이다. 바스티안은 평소에도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걸 즐기고 자신이 머물러 있는 시간과 장소를 잊을 정도로 책에 빠지는 아이다. 그런 그에게 책은 단순한 매개물이 아니라 만남과 동시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물건인 것이다. 우연히 만나게 된 책에 그냥 빠지는 것이 아니다.또한 이 내용의 특징이 있다면 이 환상계 이야기가 제목 그대로 반복된다는 것이다. 즉, 현실의 누군가가 환상계를 구하지 않으면 그 이야기가 끊임없이 계속되는 것을 의미하며 이런 부분은 기존의 판타지 소설에서는 다루지 못했던 것 같다.바스티안이 처음 환상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순수하게 어린 왕녀와 '무'(無)로 인해 사라질 위기에 처한 환상계를 구하고자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러나 자신이 원하는 것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환상계에서 바스티안은 한 가지 소망을 이루면 또 다른 것을 소망하게 되고 아름다움이나 강함, 용기를 모두 얻고 난 후에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감탄 받는 존재가 되고 싶어 한다. 이것을 위해 그는 뒤따라 올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다른 이를 돕거나 새로운 존재를 만들어 내기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기 위한 이야기를 지어내기도 한다.자신의 소원대로 뭐든지 이룰 수 있게 된 바스티안은 현실 속의 자신을 부정하며, 스스로를 점점 더 멋지고 강하게 만들어 나간다. 그러나 환상계에서 하나의 소망을 이룰 때마다 바스티안은 현실세계에 대한 기억을 하나씩 잃는다. 결국 자기 자신의 자아마저 잃어버리게 만들고, 자신이 누구인지 잊어버린다.바스티안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충고를 해 주는 친구 아트레유를 버리고 점차 거만해지고, 끝내는 환상계의 황제가 되어 모든 것을 손안에 두고 싶어 한다.이러한 바스티안의 모습은 끝없는 상승 욕망에 시달리다가 끝내는 목적과 수단이 뒤집히곤 하는 우리의 평범하고 어리석은 모습 그대로이다. 모든 것을 잃고 자신의 이름마저 잃어버리는 바스티안의 이 모습 또한 헛된 망상에 빠져서 현실을 잃어버리는 우리네 모습을 풍자하는 내용일 것이다.바스티안과 대비되는 모습으로 용감하고 영리한 존재로 그려지는 아트레유는 사실 바스티안의 또 다른 모습이다. 자기 내부의 참 본질을 보게 된다는 마술 거울 속에서 아트레유는 바스티안의 모습을 본다. 바스티안이 그릇된 길을 갈 때 그와 맞서게 되는 아트레유의 모습은 바로 바스티안 속에서 갈등하는 마음이다. 현실의 바스티안과 환상계의 아트레유가 결국은 한 사람의 다른 이면인 것처럼 환상계도 현실세계의 또 다른 면이다. 중요한 것은 어느 쪽의 이야기 속에 있느냐가 아니라 그 안에서 ‘얼마나 자기 자신 스스로를 들여다보며 사랑하느냐’ 인 것 같다.결국에 자신의 욕망 때문에 현실의 기억을 잃어버리게 되고,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바스티안은 마침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다시 현실로 돌아가려고 한다. 이 때 바스티안이 정체성을 잃기도 했고, 많은 시련도 있었지만 이 부분은 정말 감동이었다. 사람들의 꿈을 기반으로 한 광산에서 캐어 낸 꿈과 자신에 대한 재탐색, 그리고 친구들의 도움으로 환상 세계에서 퍼올 린 생명의 물, 즉 사랑을 가지고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결국, 용과 거인, 괴물, 위험하면서도 흥미진진한 온갖 모험들로 가득 찬 환상 세계에서의 여행은 자신의 잃어버린 자아를 찾아 떠나는 것이다. 특히 바스티안이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 갈 때 영상의 광산에서 일했던 부분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또한, 어린 왕녀가 바스티안에게 건네준 표식에 쓰여 있는네 뜻하는 바를 행하라젊은이여 그대는 스스로의 참된 소망을 아는가?모든 소망이 현실로 이뤄진다 할 때그대는 과연 그대의 자유를 찬란히 누릴 수 있을 것인가?이 구절은 자유를 가장한 방종을 뜻하는 게 아니며, 네 뜻은 바로 참된 의지이며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가장 깊은 비밀인 것이다. 이것을 알기 위해 환상계에서 자신의 모든 기억을 잃었다가 다시 태어난(정신적으로) 바스티안은 이미 이전의 바스티안이 아니다. 내면적으로 한 계단 훌쩍 뛰어오른 것이고, 스스로를 사랑하고 싶다는 마지막 의지를 행함으로 현실 세계로 돌아와서는 아버지와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된다.
신명나게 부르다 보면 눈물이 나요‘아리랑’을 읽고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태백산맥’으로 유명한 작가 조정래의 동명소설인 ‘아리랑’과는 무엇이 다를까, ‘아리랑’에 대한 작가의 해석이 어떠할까? 내용은 어떨까? 하는 궁금증과 기대감이 들었다. 또 현재 학교에서 미술교육 강의시간에 수묵담채화를 배우고 있어서인지 책 겉표지와 이 책 중간 중간의 수묵담채화는 책을 읽고 싶은 유혹을 더해 주었다. 그리고 책의 표지가 린다 수 박의 '사금파리 한 조각' 1권의 목이 모습과 비슷해서 이 책의 주인공인 '리랑' 이와 '목이‘의 성격을 비교하면서 읽으니 더욱 재미있었다.이 책의 저자는 아리랑을 통해 한 몸으로 일어서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유래를 알 수 없고, 의미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아리랑은 우리네의 서글프고 간절한 마음이 이 책의 내용에서 묻어난 것 같다.아동문학의 작품들은 대부분 밝고 희망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은 이러한 경향과는 달리 오히려 무거고 암울한 느낌이 들었다. 특히 김 좌수-종(리랑, 성부, 천 서방 등)의 관계는 있는 자와 없는 자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었다. 아동문학 작품 중에서 최근의 사회적 문제를 다루고 비판적 시각을 보여주는 책들이 나온다고는 하지만, 우리 전통 사회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제기하는 시도가 다소 파격적인 것 같고, 새롭고 놀라웠다. 이러한 분위기는 아이들에 따라 다른 느낌과 반응을 가져올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역사책 속에서 이처럼 생생한 이야기를 만나기 어렵다는 점, 그리고 쉽게 접하기 어려운 주제라는 점에서, 나이를 불문하고 이 책을 읽음으로써 역사의식과 비판적 사고력을 형성해나갈 수 있을 것 같다.이 책 주인공 리랑이는 고아 소년이자 김 좌수의 머슴이다. 아리랑의 어원엔 ‘고운임’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상사병(임을 향한 그리움)’이라는 유래가 있다고 한다. 여기서 리랑이라는 이름은 부모님을 향한 그리움과 고단한 삶에서 벗어나 모두가 하나로 이웃하여 살 수 있는 곳에서 ‘아리랑’을 흥겹게 부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 같다.리랑이의 아버지는 약도 한 첩 쓰지 못하고 죽는 날까지 들일, 논일을 하다 죽은 가난한 머슴이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리랑이가 아홉 살이 되었을?때 아버지처럼 병들어 죽고 말았다. 그에게 남겨진 것은 족쇄와 같은 머슴이라는 신분뿐이었다.아홉 살 똥 머슴짐승보다 못한 똥 머슴옷을 벗어도 똥 냄새몸을 씻어도 똥 냄새밥을 먹어도 똥 냄새아, 똥이 밥이구나.이 대목에서 느낄 수 있듯이 아홉 살에 외양간 머슴이 된 리랑이는 이렇듯 가장 고되고도 힘든 노역을 하였고, 그에게 사람다움의 생활은 없었다.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아가는 머슴의 생활과 이에 대비되는 김 좌수의 끝없는 탐욕은 너무도 생생하게 다가왔다.리랑이는 비슷한 처지의 반빗간에서 일하던 성부라는 처녀를 만나면서 서로의 비슷한 처지를 위로하고, 애틋한 감정과 연민이 싹트지만 서로의 상황에서는 그러한 감정조차 마음대로 표현하지 못 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이 또한 이 시대만이 갖고 있었던 아픔이 아닐까 싶다.농민과 노비를 억압과 착취하여 부를 이룬 악덕지주 김 좌수는 가뭄으로 흉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해서든 도조를 받으려는 억압과 탐욕이 커져만 간다. 그에 반해 백성들의 살림은 날로 궁핍해져만 가는데, 소작농의 종곡까지 걷어가려는 김 좌수의 악행을 보고 리랑이는 두려움을 무릅쓰고 올바른 직언을 했다가 결국엔 멍석말이를 당하고 무참히 짓밟히고 만다. 이 부분에서 난 부당함에 맞서는 리랑이의 모습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그 당시의 리랑이라면 권력자에게 대항할 수 있었을까? 난 그런 용기가 있었을까? 그 시대의 나라면 무엇이 잘 못되었는지도 모르고, 어쩌면 관심도 없이 살아가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내가 머슴이라면 운명을 받아들이고 살아가야만 할 것 같고, 운이 좋게 양반이 되었더라면 오히려 내가 머슴을 더욱 핍박하는 악덕 지주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부당한 것에 대해 맞서고 그것을 고치고자 하는 리랑이의 용기는 본받아야 할 것 같다.김 좌수의 만행에 결국 참다못한 소작농들은 봉기하여 쳐들어간다. 그리고 관군을 피해 수락산에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기로 한다. 폭동이 일어난 직후 김 좌수의 또 다른 머슴인 도꼭지가 김 좌수게 이 사실을 알린다. 그리고 머슴을 면천시켜주고 상답 스무 마지기를 준다는 김 좌수의 말을 듣고 김 좌수의 피신을 돕는 그의 모습을 통해서 탐욕스럽고 어떻게 해서든 권력자에게 아첨하고 잘 보여서 혼자만 잘 살려고 하는 그의 모습이 추접해보였다. 이 부분은 현 시대의 부정부패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 같다.마지막에 관군을 피해 백성들은 수락산을 넘어가면서 함께 아리랑을 부른다. 이 때 ‘아리랑’은 슬프고 한이 서려있으며, 서로를 끈끈하게 이어주는 단결된 힘과 모두가 하나가 되는 응집력을 지니는 노래가 된다. 그래서 아리랑을 부르면서 지쳐 못 넘을 것 같은 고갯길을 희망을 안고 넘어갈 수 있게 된다. 또한 여기서의 아리랑은 정든 자신들의 고향을 두고 떠나는 그들의 슬픔과 자신만의 세상을 꿈꾸며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떠나는 희망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