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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이 책을 처음 접했던 때는 첫 출간 당시인 2000년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에 나는 중학교 2학년이었고, 온 가족들이 이 책을 돌려 읽는 것을 보고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이 책을 손에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에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아, 이런 사람도 있구나’하는 감상이 끝이었다. 사실, 이 책을 다시 읽어보겠노라고 마음 먹었을 때에도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은 예일대, 하버드 대학원, 숭산대사, 불교, 만행 정도가 다였으니 이 책을 얼마나 아무런 감흥없이 읽었는지 알 만 하다.다시 읽게 된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이하 만행)’는 참으로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 전, 단순히 누군가의 인생이야기 정도로 생각해왔던 이 내용이 불교신자인 나에게 불교에 대한 새로운 의미로, 어떤 것을 목적으로 해야 하는 가에 대한 삶의 고민으로, 내 나라 한국에 대한 새로운 인식으로 변화되어 다가왔다.나는 현각과는 다르게 유년기에서부터 수많은 스님들을 접해왔다. 석왕사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에 다녔고, 집안의 종교는 불교이며, 할머니께서 선택하는 모든 집안의 일들은 불교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했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불교와의 밀접한 성장과정에서도 참된 진리를 찾겠다는 생각과, 그 진리가 불교에 있다는 생각을 특별히 가져본 적이 없다. 수행을 통해 진리를 찾고자 하는 귀의자들의 삶을 지켜봐왔고, 표면적으로 수행과 참선으로 드러나는 그 노력을 존경했지, 그 삶이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고민해 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파란 눈의 이 외국인은, 진작 불교를 알지 못했음에 통탄하고,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태어나지 못했음을 한탄하고 있었다. 새로운 느낌이다. 내가 당연하게 여겼던 수도자들의 삶과 그 목적을, 뒤늦게 접하고 추구하고자 한다. 진리의 길과 구도의 길에 들어서고자 한다. 똑같은 삶을 살아가는데, 전혀 다른 생각과 목적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이 이렇게 특별히 생소하게 다가오는 것은 처음이었다.이러한 상반되는 상황에서도, 무언가를 선택해야만 하는 시기에 있는 나에게 그의 고뇌와 미래에 대한 선택은 깊은 공감을 느끼게 했다. 누구나 어떤 상황에 처해있건간에 선택은 어려운 일이다. 더더욱 이 시대 최고의 엘리트 과정을 밟았던 현각에게 모든 것을 버리고 불교자로서 살아가는 일은 어떠한 선택보다도 어려운 것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선택에 대한 고민이, 조금만 더 나아가면 그가 누릴 수 있었던 엘리트로서의 보장된 삶과 지위만으로 고민한 것이 아니라는데 특별함이 보인다. 선택으로 고통받을 가족과 그의 연인에 대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망설임이었지, 지위와 가지는 것에 대한 고민이 아니었다는 것에서 존경심까지 느끼게 한다. 나는 그의 진리를 찾기 위한 행보가 어떤 일보다도 우여곡절이 많았다는데 공감한다. 학문적, 종교적 접근을 통해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진리로의 길이 풀이될 수 없는 막막한 벽에 부딪혔을 때 느끼는 막연함과 좌절감에 특히나 공감한다. 인생에 있어 무언가를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더더욱 그 추구에 대한 열망이 강할 수록 목적이 이끄는 삶은 큰 의미를 가진다. 현각은 진리의 추구라는 강한 열망이 삶을 불교자의 길로 이끌었고, 지금 그는 참진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진정한 만족과 참된 행복감을 느끼고 있음을 글로써 느낄 수 있었다.그렇다면 그가 찾는 그 진리라는 것은 무엇인가. 현각은 많은 종교들이 제시했던 진리의 답을 납득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왜 사는지, 왜 태어났는지, 이 생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왜 사람은 죽어야 하는지, 왜 모든 것들은 사라지는지, 왜 죄 없는 어린 존재들이 죽어가야 하는지, 신이 있다면 응당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일들이 왜 일어나는지 그 근본적 질문들은 청년기에서부터 시작해 명확한 답으로 해결되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죽었고, 죄 없는 약자들이 죽어나갔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던 예수의 말씀은 인생관으로 깊게 남아 그를 경험주의자로 만들었다. 진리라는 미명아래에서도 종교의 파벌은 존재했고, 어떤 설명도 진리로 인해 왜 그래야만 했는지에 대한 의문에는 어떠한 근본적 답을 알 수 없었다. 교수님은 지식은 줄 수 있으나 근원적 고민은 해결해 줄 수 없음을 깨달았다. 진리로 가는 길이 불교에 있음을 직감적으로 느꼈을 때, 불교로 빠져들기 시작했다고 현각은 말한다. 나는 여기에서 그 진리가 무엇인가를 고민했다. 진리라는 것은 그야말로 도닦기에 불과한 것인가, 이 세상의 모든 원리와 이유에 대한 깨달음인가, 이도저도 아니라면 근원을 알 수 없는 끝없는 자비의 마음인가.현각이 찾는 진리는 분명 단순한 자비는 아니다. 그가 선택한 불교자의 길은, 누구를 더 깊이 사랑하기 위해서임이 아니고 깨닫기 위함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진리의 과정에 자비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구구절절 이야기했던 것들은 유일한 참된 가르침이라고 생각하는 불교에의 진리로 향하는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누구라도 단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의 진리에 대한 추구가 자비의 마음을 결여한 자신의 욕심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누구나 직접적 목표 때문에 종교로 들어서지는 않는다. 참된 진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나오는 그의 안정과 베품이 있다는데 의미가 있는 것이다.) 부처를 하나의 신이 아닌 길잡이로, 깨달음의 상징으로 여기고 부처에게 귀의하는 것, 하나의 도그마가 아니라 길인 그의 가르침, 즉 불법에 귀의하는 것이다. 아무도 그에게 종교를 강조하지 않았다. 개종(그는 개종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을 강요하지도 않았다. 여하튼 진리에 대한 목마름으로 고뇌했던 그에게 불교의 시작은 오직 진리를 찾기 위해서이지, 다른 잡념은 개입할 수 없었다. 여타 다른 목적을 미루어 놓더라도, 그가 목적으로 한 담백한 진리는 참된 앎이자 깨달음이 아닌가. 집착과 생각과 강요는 불교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듯이 말이다.그렇다면 여기에서 그가 찾는 진리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수 있다. 참된 앎이 아니던가. 어느 그럴듯한 말로도 해결되지 않았던 그의 질문들이 숭산대선사 앞에서 해결되었다. 문법에도 맞지 않는, 단순한 하지만 어느 달변가의 말보다도 힘있고, 참된 언어를 통해 책으로도 해결되지 않았던 질문이 눈 녹듯 해결되었다. 이 것이 그가 찾는 진리이다. 지식으로 해결되지 않는 참된 진리. 왜 사는지, 왜 죽는지에 대한 자연스러운 받아들임일 뿐만 아니라, 모든 깨달음에 대한 욕심을 버리는 것. 또한,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흘러가는 답. 이 것이 진리가 아니던가.이 맥락에서 숭선대사가 수행자에게 오직 모를 뿐(Only don't know)를 새기게 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어느 것에도 해답은 없다. 어느 유창한 말로도, 뛰어난 학문적 지식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것, 그러나 해결할 수 있는 것. 이 것이 진리이다. 오직 모를 뿐이라는 담담한 마음과 지식을 떠난 깨달음이 참된 진리를 가져온다. 현각이 추구했었던 지식을 통한 진리에의 이해와 말놀음은 진리에서 벗어나기 위한 지름길이지 진리로 가기 위한 지름길은 아니다.오직 모를 뿐은, 모든 해답에 대한 부정이 아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 났는가, 나는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하는 질문의 잡고 오직 모를 뿐이라는 마음을 가지고 수행을 한다면 모든 생각이 끊어지고, 모든 집착이 끊어짐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숭산대사의 가르침대로 오직 모를 뿐을 통해, 말과 행동이 하나되며, 이 것이 조화이고 평화인 것이다. 모르는 마음(Don't know mind)은 무관심이 아니나 관심도 아니다. 생각할 때 생각할 뿐, 들을 때 들을 뿐, 볼 때 볼 뿐, 먹을 때 먹을 뿐이다. 생각하는 시간이 아니면 생각하지 않으면되는 거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생각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누가 만든 것인지 하는 것이다. 그 것을이해하지 못하면 오직 모르는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다. 모르는 마음을 간직하면, 이 세상 어느 지식보다 온전하게 진정한 길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볼 수도 있고, 들을 수 있으며 이 모든 것이 참다운 자성이다.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인 것이고, 참진리는 바로 이와 같은 것이다.현각이 이 책을 통해 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비단 진리 뿐만이 아니다. 숭산대사의 가르침을 통해 자신이 어떻게 불교에 귀의하게 됐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나, 결국 이 책을 읽고 있는 나에게 한국불교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하게 만든다. 에필로그를 통해 밝혔듯, 미국사회를 교과서 마냥 쫓아가려고 하는 마당에 한국인들에게 바깥이 아닌 바로 자신들 안에 위대한 보물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다고 말한다. 나는 가끔, 정말로 수행자인 그가 이 책을 왜 썼을까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기도 했다. 단순히 살아온 여정을 이야기위해서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의문을 가졌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책을 완독하고 나서 그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당신 개인의 이야기 뿐만 아니라, 현재의 한국불교가 가지고 있는 위치, 역량, 그 의미, 또한 나아가야할 방향과 미래에 대한 좌표 정도의 조언이 주된 목적이자 내용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현각의 이야기를 통해, 나는 한국불교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내가 필요할 때 찾았던 부처와 단순한 과거의 국교적 개념의 이미지만이 그 의미를 대변했던 것은 아닌가. 파란눈의 외국인이 진리를 찾고자 마침내 선택한 방법이 한국불교였다. 티벳불교도 중국불교도 일본불교도 아닌, 우리의 한국불교 말이다.
    독후감/창작| 2006.10.15| 4페이지| 3,000원| 조회(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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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고]칸느 라이온스 수상작 감상 후기
    칸느 라이온스 수상작 감상 후기광고의 효과는 대상하는 자에게 어떻게 인식되느냐가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광고는 그 목적이 대상물의 홍보이기 때문에, 좋은 광고라고 하는 것은 소비자에게, 대상을 분명히 인식시키고, 긍정적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광고를 통한 효과는 수업시간에 광고를 접한 나에게서도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분명 수업시간을 통해 수없이 많은 광고를 보았다. 이 광고들은 모두 칸느 라이온스 수상작임에도 불구하고 내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은 그 전부가 아니다. 나는 그 좋은 광고라고 불리는 수상작들 중에서도 인상적이었던, 다시 말해 그 목적이 실현된 몇 개의 광고만을 기록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그 인상 깊었던 수상작들을 몇 가지 기준으로 나누어보고 그에 대한 감상과 함께 우리 광고에 대해 짧은 소견을 밝히고자 한다.1. 제품의 기능과 특징을 강조하라기능에 있어 강한 기억을 남긴 광고는 청소기 claro 광고이다. 윗 층에서 청소기를 돌리자 아래층에 사는 사람이 천장에 달라붙는다. 청소기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흡입력에 과장을 더 해 강조하는 광고이다. 거기에 웃음까지 보너스로 따라온다.Jeep 또한 자동차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기능을 강조한다. 기암절벽의 꼭대기에 선 사람들이 원반을 던진다. 한 남자가 떨어뜨린 원반이 절벽 아래로 사라진다. 사람들은 제각기 차를 탄다. 그들에게는 험난한 산에서도 자신 있게 달릴 수 있는 자동차가 있기 때문이다. Jeep는 자신들의 자동차로 절벽의 꼭대기에 올라있는 사람들의 모습에, 소비자가 기능과 특징을 단 번에 알아챌 수 있도록 했다. Jeep의 안정성, 성능, 강인한 이미지의 삼박자가 맞아떨어지며 어떤 광고보다도 제품의 이미지를 향상시키는 것이다.그에 뒤지지 않는 광고가 있다. 하지만 접근 방식은 다르다. 자전거를 타고 가던 한 여성이 자전거의 삐걱거리는 소리를 듣고, 자신의 핸드크림을 자전거 체인에 바른다. 효과가 있는 듯 만족한 여성이 자전거를 타자, 불행하게도 자전거는 다시 삐걱거린다. 여성이 삐걱거리는 자전거를 타고 저 멀리로 사라지며, 우리 핸드크림에는 유분이 전혀 없다는 문구가 등장한다. 유분 없는 100% 수분 핸드크림이라는 특징과 기능을 소비자에게 인식시킨다. ‘유분이 없는 핸드크림이예요’하고 수 천 번 외치는 광고보다도 훨씬 효과적이다.무엇보다도 제품의 특징을 강조한 광고는 타바스코일 것이다. 타바스소 핫 소스를 잔뜩 뿌린 피자를 먹고 있는 남자의 다리를 공격하는 모기, 남자는 모기를 잡지 않는다. 잠시 후 그 모기는 타바스코 핫 소스의 매운 맛에 터져 버리고 만다. 남자는 미소를 짓는다. 참으로 기발한 아이디어이다. 적절한 유머와 제품의 특징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순간이었다. 이 타바스코의 광고는 라이온스 수상작 가운데 가장 뚜렷하게 기억되어 단 한 번 본 광고임에도 불구하고, 피자에 타바스코 핫 소스를 곁들어 먹는 순간 이 광고의 전 장면을 생생하게 떠올리게 만들었다. 강렬하게 기억되고, 오랫동안 유지되는 광고 효과의 진수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다.2. 제품의 매력과 가치를 강조하라무엇보다도 제품의 가치를 강하게 어필한 광고는 벨기에의 Stela 맥주 광고이다. 어머니의 낡은 구두를 본 아들, 어머니가 마음에 담아 둔 구두를 사기 위해 몇 일간을 돈을 모은다. 아들은 마침내 그 구두를 손에 넣는다. 그러나 어머니를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Stela 맥주를 보고 그만 그 맥주 한 잔과 구두를 바꾸고 만다. Stela 맥주는 어머니의 구두와도 바꾸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누구나 원할 만한 맥주라고 이야기하고 있다.여기 또 다른 맥주 광고가 있다. 이 맥주 광고는 ‘맥주가 없다면’ 이라는 상황을 가정하여 제품의 매력과 가치를 소비자에게 인식시킨다. 이는 맥주의 장점을 반복 강조하는 것보다 외려 좋은 효과를 거둔다. 내리쬐는 태양 아래 열심히 일을 하는 두 남자, 일을 마치고 석양이 내리는 가운데, 이 두 남자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구마를 들어 건배한다. 이 밖에도 맥주가 있어야 할 순간에 생선과 각종 야채가 등장한다. 위의 stela 광고에서는 맥주가 필요했다면, 아래의 광고는 맥주가 없다면 이라는 전혀 다른 주제로 맥주를 광고하고 있다.3. 우리 제품이 필요하지 않나요?광고는 제품이 필요한 순간을 소비자에게 알린다. 혹은 제품이 꼭 맞아떨어질, 제품을 필요로 하는 소비자에게 강하게 어필해 구매를 촉진시킨다. 하인즈 케첩의 광고가 그 대표격이다. 농부가 하인즈 케첩을 내밀자 당황한 젖소가 달아난다. 하인즈 케첩은 소고기와 가장 잘 어울린다는 문구가 단번에 웃음을 유도한다. 무려 85%의 쇠고기가 케첩과 함께 섭취된다는 강한 수치와 함께 말이다. 단순히 토마토의 함량이나 맛을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이 광고는 소고기를 먹는 순간 자연스럽게 하인즈 케첩을 떠올리게 만들 것이다.듀라셀 배터리는 ‘우리 배터리를 썼더라면…’ 하는 아쉬운 상황을 보여준다. 목숨이 다해 가는 노인이 유언을 녹화하던 중 다 닳은 배터리 때문에 정작 말하고자 했던 것을 말하지 못하고 만다. 오래가는 배터리의 이미지를 어필하고자 하는 듀라셀은, 배터리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놓치지 말라는 메시지를 남긴다. 제품이 필요한, 필요했던 순간에 대해 인식시키고 다시는 실수를 하지 말라는 듯한 인상을 남긴다.비행기 안에서 옆 좌석에 앉아 잠을 자고 있는 사람의 머리카락을 슬쩍 자신의 대머리에 얹어보는 남자가 있다. 이 장면은 우리에게 웃음을 자아냈지만, 아마 실제 대머리인 사람들이 본다면 공감하게 될 만한 이야기일 것이다. 발모제라는 제품의 특성에 따라, 특정인들에게서 사용된다는 점을 인식하고, 그 대상에게 어필하고자 한 것이 아닐까 싶다. 가장 먼저 그들의 공감을 얻어내고 판매를 유도하는 것이 이 광고의 포인트가 아니겠는가. 발모제를 바르고 난 후의 모습을 확실히 보여줌으로써, 제품의 기능을 강조하면서도 제품이 필요한 대상에게 이를 강하게 어필하고 있다.4. 가격을 강조하라타일랜드 위스키 광고는 다른 어떤 수상작보다 가격을 강조한다. 추측하기에, 한 남자가 부하로부터, 자신들에게 빚이 있는 남자가 위스키를 마시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는, 위스키를 먹고 있으니 돈을 갚을 능력이 되겠다 생각하고 자신의 부하들을 이끌고 그에게 찾아간다. 하지만 빚이 있는 남자는 엄청난 무술 실력으로 그들을 제압하고 이 위스키는 매우 싸다며 어이없어 하는 표정을 짓는다. 무엇보다도 가격이 강조되는 광고이다.또 하나, 수상작 중 가격을 강조한 광고는 폭스바겐 광고이다. 신문을 읽으면서 딸꾹질을 하는 여성이 있다. 물을 마셨지만 소용이 없는 상황에서 신문을 넘긴다. 온통 무채색이었던 광고에서 신문 속 폭스바겐 광고만이 선명한 컬러로 비추어진다. 그는 그 광고를 보고도 아무렇지 않게 계속 신문을 넘기는데, 갑자기 딸꾹질을 멈춘다. 좀 전에 그녀가 본 광고는 폭스바겐의 세일, 놀라운 가격에 판매하고 있는 폭스바겐을 보는 순간 그녀의 딸국질도 멈추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 또한 가격이 강조되는 광고라고 할 수 있겠다.
    독후감/창작| 2006.07.11| 3페이지| 2,000원| 조회(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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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인류학]서구중심주의
    Ⅰ. 서론우리의 일상에는 서구의 문화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런데 이 서구 문화라는 것이 단순히 우리의 생활에 복합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중심이 되어버렸다. 우리 고유의 전통은 서구문화의 등장으로 그 설자리를 잃었고 우리의 가치관, 시공간적 개념, 학문적 영역에까지 깊숙이 들어와 있다. 이제 서구중심주의가 우리 생활과 얼마나 밀접한 관계에 있는지 살펴보고 그 극복방법에 대해 고민해보도록 하자.Ⅱ. 본론1. 서구는 우리와 얼마나 밀접한 관계에 있는가우리의 일상에는 서구의 문화가 너무나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물질적 영역에서부터 정신적 영역에까지 그 영향은 넓게 미치고 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는 은밀하고 공공연한 비밀로 우리는 변방이고 서구는 중심이라는 변방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다. 월드컵의 승승장구를 통해 어느정도 변방 콤플렉스를 벗어던졌다고 생각하며 자랑스럽게 “오랜 세계사에서 늘 변방에 있던 우리는 이제 중심에 우뚝 설 수 있는 힘을 각인시켰다” 혹은 “이제 축구만이 아닌 모든 분야에서 주변국이 아닌 중심국으로 세계 속에 당당한 대한민국이 되어야만 합니다”와 같은 기사를 내보냈다. 이러한 순간에 우리는 우리 내면에 깊게 깔려 있는 변방 콤플렉스를 한순간에 부끄럼 없이 폭로하고 있었던 것이다.또한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모든 시공간적 개념은 서구 문명에 의해 조형되었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연도, 시간, 위치는 모두 유럽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경도 설정과 표준시로부터 시작해,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를 기준으로 하여 서울이 동경 약 127.5도에 있고 한국의 시간대는 표준시인 영구보다 9시간 빠르게 계산한다. 따라서 영국이 자정이면 한국은 아침 9시라고 정해지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영국을 중심으로 아시아는 근동, 중동, 극동 지역으로 분류되고, 오랫동안 한중일 삼국은 극동 지역에 속했다. 연도를 인식하는 방법 또한 다름없이 서구에 의해서 조형된 것이다. 서구 문명의 핵심 종교인 기독교의 창시자인 예수의 탄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는 서구 중심적인 세계관에 따르면, 서구 문명은 항구적으로 세계의l 중심에 존재하고, 여타 세계는 서구의 불완전한 반영이자 잔여물로서 세계의 주변에 존재한다. 이렇게 서구인들은 자신들의 이미지에 따라 근대와 세계를 창조하면서 시공간적 개념의 중심에 선 것이다.오늘나 서구 문명의 영향력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공간적 개념을 조형한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아름다움을 판단하는 기준에서부터 선하고 약한 것을 나누는 가치 판단, 중심과 주변을 가르는 기준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방면에 걸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 고유의 미적 기준에서 벗어나 서구인들의 늘씬한 다리와 잘록한 허리, 풍만한 가슴, 오뚝한 콧날, 시원스러운 눈매를 미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서구적인 것은 보편적이고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한국적인 것 동아시아적인 것은 특수하고 국지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또한 서구는 세계로 인식하고 우리는 지방으로 인식한다. 여기에 야구와 바둑을 대조해 보는 것도 매우 흥미롭다. 이창호나 조훈현등 한국 프로기사가 세계 바둑 대회를 제패해도 박세리나 박찬호가 미국 프로 대회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을 때만큼 온 국민이 열광하지 않는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는 세계의 중심에 있고 한국이나 동아시아는 아직까지 변방에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구인들이 잘하는 분야에서의 우수한 결과는 세계적 사건으로, 한국인이나 동아시아인들이 원래 잘하는 분야에서의 우수한 결과는 세계인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지역적이고 국지적인 것이라고 받아들여지는 것이다.서구적인 것은 단순히 보편적인 것에만 그치지 않고 우리 일상생활에서 진실한 것, 선한 것, 아름다운 것들의 기초는 모두 서구에서 온다. 가치관 뿐만이 아니다. 우리의 학문체계에도 서구 중심주의적 인식은 깊게 뿌리박혀있다. 철학과 미술사, 음악, 의학, 정치 이 모든 것에서 우리는 서구를 찾아볼 수 있다. 철학이라는 보편적 명사로 불리는 서양철학이고, 동양철학이라는 별도의 특수명사로서도 탈근대주의, 탈구조주의, 탈식민주의, 탈마르크스주의 사조의 영향과 이슬람 원리주의 그리고 아시아적 가치의 출현과 함께 서구주의에 대한 도전이 전 세계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동아시아 공동체, 동아시아 문화등의 명칭이 다양한 분야의 학술모임을 장식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더 넓은 의미에서 학문의 서구중심주의를 극복하려는 시도가 시간적 차이는 있지만 인문사회과학 전반에 걸쳐 폭넓게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서구중심주의에 대한 문제의식마저도 체계적으로 형성되지는 못한 실정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체계적인 전략이나 대안에 대한 연구는 훨씬 미흡한 편이다.2. 서구중심주의의 극복이 가능한 조건과 지식인들이 수행해야 할 과제먼저 서구중심주의의 극복을 가능케 할 객관적 조건으로 지구화와 관련한 지구주의와 지구적 의식의 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구적 의식의 출현은 절차적 차원과 실체적 차원을 지니고 있다.먼저 절차적 차원에서 지구적 의식의 출현은 상호 중첩적이고 보완적으로 연관된 과정인 지구적 시민사회의 활성화, 지구적 시민의식, 그리고 지구적 시민문화의 창출을 통해 추진되는 아래로부터의 지구화에 의해 비로소 가능하며 그것은 지구적 차원의 민주화와 직결되어 있다. 예컨대 지구적 시민사회에 기반한 초국적 사회운동은 지구적 시민문화를 창출하고 지구적 시민의식을 형성하며, 이렇게 형성된 지구적 시민문화와 시민의식은 다시 지구적 시민사회와 초국적 사회운동을 숙성시키고 강화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지구적 의식의 출현과 민주화에 기여할 것이다.실체적 차원에서 지구적 의식을 형성할 수 있는 것으로서는 생태계에 대한 지구적 차원의 책임윤리, 인권의 국제적 보장에 대한 관심, 세계의 빈곤한 인민들의 사회, 경제적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초국가적 노력을 들 수 있다.또한 지구적 공동적의 항목으로 상호 연계성의 심화에 따른 지구적 차원의 경제적 생존가능성도 추가할 수 있다. 여기서 지구 온난화, 오존층 파괴등 생태학적 위기는 그 효과가 중심과 주변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참으로 전있다. 그러나 그러한 단계에 도달할 때까지는 비서구사회는 서구중심적인 게임의 규칙에 따라 자신의 생존을 도모해야 한다. 지금의 이 상황은 지배관계에서 불리한 지위에 놓인 비서구사회가 서구사회가 정해놓은 게임의 규칙에 따라서 게임에 참가할 것을 강제당하고 그 규칙에 따라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도록 요구받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이 이 게임의 와중에도 비서구사회는 서구중심적 시각에 매몰되지 않을 채 독자적인 세계관과 주체성을 보존하고 키워야 한다. 이를 위해서 비서구사회는 서구문명자체의 다양한 시각 그리고 우리의 전통문화적 시각에서 동아시아 문명과 서구문명의 장점은 물론 그 결함을 교차 평가하는 작업을 수행함으로써 두 문명의 장점을 창조적으로 수렴, 융합해야 하는 것이다.이러한 혼융적 전략은 단순히 비서구문명이 서구중심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채택해야 하는 전략일 뿐만 아니라 서구문명이 자기 문명을 깊이 있고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서도 취해야 하는 전략이다. 각각의 문화가 본질적으로 인간 존재의 총체성을 제한된 범위에서 실현하는 데 불과하기 때문에 문화의 보존과 확충을 위해 문화간의 대화는 필수적으로 요구되는바, 이는 각 문화가 타자를 평등한 대화의 상대방으로 받아들일 때 가능해진다. 따라서 개별 문화가 자기 내부의 다양한 전통들에 대해 갖는 관계는 외부의 다른 문화에 대해 갖는 관계를 조형하고, 또 역으로 그것에 의해 형성된다. 곧 주어진 문화의 내외부적 다원성과 포용성은 서로를 전제하고 보강한다. 다시 말해 어떤 문화가 자신의 내부에서 다원성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외부의 타자가 신봉하는 가치를 존중할 수 없으며, 그 타자의 가치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내부의 다원성을 존중할 수 없다는 것이다.이처럼 다문화주의적 관점은 삶과 사고의 모든 양식이 본질적으로 고유한 한계를 가지고 있으며, 인간 존재의 풍성함, 복잡함, 위대함의 모든 범역을 구현할 수 없다는 전제 위에 서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문화주의적 관점은 주어진 문화를 동질화시키려는 시도 또는 문화를 그 근본 본격적으로 전개된 동아시아 경제의 역동적 성장과 아시아의 자기발견은 21세기 세계정치에 새로운 변화를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앞에서 서구중심주의의 극복을 위한 담론 전략으로 혼융적 전략이 언급되었는데, 유교자본주의, 유교민주주의, 유교 페미니즘 등 동아시아 담론은 혼융적 담론이자, 다문화주의적 이론구성의 성격을 지닌다. 또 동아시아 문명과 서구문명, 전통과 현대간의 대화의 성격을 갖는 이 같은 다문화주의적 이론작업은, 오늘날의 용어로는 전통의 현대화, 전통 유가적인 언어로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구체적인 연구성과를 떠나서 이러한 이론화 작업은 지난 130여 년 동안의 근대화 과정을 특징짓는, 이른바 현대한국사상의 빈곤을 극복할 수 있는 긍정적 계기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라고 판단된다.한국판 다문화주의적 이론구성이라고 할 수 있는 전통의 현대화 작업은 서구중심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추구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학문적 대안이라고 볼 수 있다. 서구에서는 과거 전통으로부터 물려받은 사상적 자원에 대한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재해석 및 재전유 과정을 통해, 근대사상이든 현대사상이든, 그 뿌리를 풍성하게 보존하고 확충해 온 데 반해, 한국에서는 서구중심주의의 압도적인 영향을 받아 진행된 서구사상의 무분별한 수용 그리고 끊임없는 전통의 파괴 및 단절 과정을 통해 근, 현대 사상마저도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부유해 왔다.현대 한국의 지식인들은, 특히 진보적인 경우, 과거의 고전이나 전통에 의존하여 진보적인 사상을 추출하는 대신, 주로 서구문명의 진보적인 사상을 완제품으로 수입하여 사용하거나 아니면 다소 가공하여 활용함으로써 사상적 혁신을 도모하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장기적이고 고통스러운 지적 투쟁을 필요로 하는 사상의 혁신 과정이 한국사회에서는 상대적으로 용이한 작업이 된 것이다. 단시 서구의 진보적인 사상을 우선적으로 수입하여 활용하느라 한국사회가 물려받은 전통적인 사상적 자원을 소홀히 할 경우, 이런 자원들이 창조적이고 적극적인 재해석을.
    인문/어학| 2006.02.21| 7페이지| 2,000원| 조회(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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