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 E.F 슈마허는 이 책을 33년 전인 1973년에 출판했다.이렇게 오래된 책이 현재에도 읽혀지는 이유는 산업사회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을 대처하는 방안을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도서라기보다는 사상으로 우리는 작가와 대화를 해 볼 수 있다.낯익은 제목의 이 책을 뒤늦게나마 읽게 되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가볍게 읽기에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슈마허는 말한다. 근대의 사상, 과학, 기술에 의해 형성된 세계는 세 가지의 위기에 동시에 둘러 쌓여 있다고. 첫째, 인간의 본성은 비인간적인 기술과 조직 속에서 질식하고 쇠약해져 가고 있다. 둘째로, 인간의 생명을 지탱하는 생활환경이 파괴되어 절반쯤 붕괴의 징후를 보이고 있다. 셋째로, 인간 경제에 없이는 않되는, 재생이 불가능한 자원, 특히 화석원료 자원의 고갈이 눈앞에 보이고 있다. 이런 현상의 근원이 된 것은 물질 지상주의와 거대 기술 신앙, 그리고 탐욕과 질투심에 다름 아닌 풍요의 추구이다.자연과의 조화, 인간의 키에 맞춘 기술, 근검절약의 윤리관에 의해 지탱된 전(前)시대의 문명은 자연의 자율적인 조정에 의해 영속성을 보장받고 있었지만, 지금의 자연 지배와 능동적인 진보관, 독주적(獨奏的)인 기술 아래에서는 브레이크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끝없는 팽창주의는 자원, 환경의 양면에서 자연을 폭력적으로 파괴하고 오염시키는 한편, 산업인의 체질을 침식하고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 그리고 창조성을 억합하게 된다. 또 기업조직이나 도시 사회에서도 집중과 비대화를 낳고, 오히려 공동화(空洞化)와 인간소외를 진행시킨다.이러한 문제점들이 심각하게 대두되었기 때문에,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것을 해결해야 할 것이다. 기술과 조직의 틀을 바꾸어 새로운 생산과 소비와 생활 시스템을 만들고, 노동의 인간화를 꾀하며, 건강과 아름다움과 영속성을 지니는 경제의 모습을 만들 필요가 있고, 현재의 드러난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경제학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종래의 경제학은 시장 기능과 경제적 가지를 대상으로 하는 한정된 학문으로서, 인간이 사는 환경이나 비경제적인 가치는 주어진 것으로 보고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인간경제 시스템은 자연생태 시스템과 표리(表裏) 관계에 있다. 그런 의미의 인간사회의 연구와 자연생태의 연구 모두를 고려해가면서 경제학의 목표와 방법을 끌어내야 한다. 양보다는 질, 인간 활동과 함께 그 전제가 되는 자연과의 대사관계(代謝關係)를 중시하여 이를 고려한 경제학을 만들어 내야 한다.슈마허는 이런 경제학의 이슈를 불교에서 찾아내고 있다. 욕구 충족보다 인간의 순화를, 재화의 증식보다 해탈을 요구했다. 그래서 사회의 노동은 재능을 유용하게 발전시키고, 협력에 의해 이기심을 억제하면, 생존에 필요한 것을 창조하고자 했다. 그 가치는, 최소한의 수단으로 주어진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있고, 간소화와 비폭력, 살아 있는 것에 대한 경건한 태도, 생명계의 사이클의 유지도 중시될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지방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지방적인 자원에 의한 생산이야 말로 합리적인 생산양식이라 주장하고 있다.기술은 이에 봉사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이런 경제는 너무나 근대적인 성장관에 길들여진 우리의 그것과 거리가 멀다. 그러나 슈마허는 이것을 전통적인 정체(停滯)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그 안에서 양자의 중간인 ‘바른 생명’을 발견하고 있다.규모의 문제를 이야기 할 때, 모든 것들의 국가든 산업이든 거대화가 이롭다고, 이론의로써 거대신앙처럼‘규모의 경제‘란 용어를 쓴 적이 있었다. 그리고 우리의 발전 형태도 ’더 많이, 더 멀리, 더 빨리, 더 풍족하게‘를 외치면서 반성없는 개발과 경제적 성장을 이야기 하고, 경제학과 사회 발전을 논하고자 했다.우리가 개발을 생각함에 있어서, 주로 양(量)을 문제로 삼고 있다. 그의 ‘스몰’ 사상, 중간기술 평가는 동양사상이나 생활 양식과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그의 규모 문제와 관련하여 소규모 일변도는 아니다. 이에 대한 단일한 답은 없다. 다른 목적, 다른 구조에 적합한 목표가 있다. 문제로 삼아야 하는 것은 19세기의 유산인거대주의의 보편화 이다. 여기에서 해방되어 자연과 환경에 상응하여 활기판 자율적인 시스템을 만들고, 인간의 얼굴의 지닌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그가 노리는 것이다. 인간의 인간은 작은 범위의 그룹 속에서 우수하고 자신으로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최상의 자원이며, 경제발전의 기본적인 요소는 인간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기독교와 문화서문에 이야기를 보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인간이 만들어 놓은 우상을 그것이 하나님인 줄 착각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경제 성장과 물질적 풍요를, 그리고 또 어떤 이들은 민족주의를 섬기면서 그것들이 우상인 줄 모르고 있다.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도 이런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이 무수한 오늘날의 한국 교회와, 특히 자기만이 옳다고 떠들어 대는 무수한 우상 숭배자들 사이에서 한국의 젊은 신앙인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참으로 진취적이고 급진적인 태도가 어떤 것인가를 이 책은 보여주는 것을 목적으로 이 책은 쓰여졌다.독후감을 쓰는데 특별히 이 책을 택한 이유는 지금 내가 몸담고 있는 고향의 교회에서 비롯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보이는 교회의 모습들과 내가 생각하는 교인들의 자세에 대해서 한번쯤 깊게 생각했는데, 책의 서문을 읽는 순간 이 책은 내가 생각하던 그런 복잡한 문제에 대해서 제대로 어느 부분을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 책을 꼭 읽어야 하겠다고 마음먹었다.책은 총 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1장은 진보가 가져온 그늘 이란 주제로 이야기 하고 있다.“우리는 광적인 세계에 살고 있으면 그 사실을 경험하고 있다.”지난 50년 동안 발전과 더불어 수많은 미해결 난제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인간의 지식과 생산 능력이 급증하였지만, 이제 비례하여 우리 시대의 병폐 역시 점차 만성적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치유책은 고도의 생산성이나 보다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에 있지 않다고 한다.2장은 이데올로기와 우상 숭배에 관한 내용이다.이데올로기는 프랑스 혁명이 발발하기 직전 계몽주의 시대에 지어진 말이다. 혁명이론가들은 자기들 사상이 가지고 있는 혁명적 세계상을 묘사하는 용어로서 이데올로기라는 말을 사용하였다.현대의 이데올로기는 주요한 네 가지 주요 목표를 한다.1. 보다 나은 사회 건설을 위한 모든 착취와 억압 세력에 대한 저항2. 자기 만족이나 국가의 생존, 국가의 자유 혹은 문화적 주체성의 보존3. 지신의 부 또는 번영의 보존, 그리고 지속적인 물질적 진보의 기회4. 안전보장: 외부의 모든 공격에 대한 자신과 그 가정과 동료의 보호.목표가 정당하기 때문에 이데올로기가 우리들의 마음속에 자리를 잡을 수 있고, 정당한 목표들이 곧 이데올리기화 될 수 있는 것이다.현대의 지배적인 목표들이 실제로 이데올로기화 하였음을 보게 될 것이다. 혁명 이데올로기, 민족주의 이데올로기, 물질적 번영의 이데올로기, 안보 이데올로기 등, 우리는 이데올뢰기에 둘러쌓여 있다. 정도는 다르지만 그리스도인들은 과거에도 이들에 협조해왔으면 오늘날에도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이에 기여하고 있다.이데올로기가 우상숭배의 온상이 되는 것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게 되는 순간 발생한다. 이러한 식의 전면적이 정당화는 수단에 권력을 부여하게 되며, 이렇게 부여받은 권력을 통해 수단이 우상화된다. 목표에 집착하는 망상, 곧 이데올로기는 수단을 정당화한다. 이데올로기는 우상 숭배가 숨통을 트고 활동할 수 있도록 해주는 통로이자 발판이자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리하여 수단들이 스스로를 통제하는 권력이 되어 자기들이 사용하는 인간들위에 군림하여 주인 노릇을 하게 되는 것이다. 창조의 선물들이 자율적인 권력자들로 변모하였듯이 이들 수단들은 현대의 은폐된 우상들이다.이데올로기를 냉혹하게 비판하는 까닭은 완전히 성장한 이데올로기에 거짓 기독교(참된기독교를 밀어내고 자기가 기독교인체하는)를 목도하였기 때문이다. 성숙한 이데올로기는 거짓된 창조, 타락, 구속의 계시이다. 어떤 이의에서 그것은 인간성과 세계를 재창조한다. 이데올로기는 나름대로 죄가 흘러나오게 된 근원을 규정하고 자기 나름대로 선과 악의 대립상태를 설정한다. 그리고 이데올로기는 생명의 구속을 약속한다. 또 고통과 희생, 때로는 피의 희생이 필수적이라고 언명한다. 이러한 고통과 희생은 정해진 목표라는 허울하에 정당화된다. 그러므로 어떤 면에서 이데올로기는 메시아의 수난과 죽음을 흉내내고 있는 것이다.이데올로기, 우상 숭배와 같은 말들은 소름이 끼치고 위협적인 말이 긴 하지만 우리와 우리세계에서 동떨어진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우리는 그 속에 살고 있고, 공기와 함께 호흡하기 때문에 쉽사리 느끼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속에 빠져서 생각의 잘 못됨을 항상 경계해야 할 것이다.4장은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민족주의 이데올로기는 한 민족의 주체성을 보존한다는 목적을 핵심으로 하는 이데올로기의 일례이다.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는 종교적 요소가 부패될 때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한다. 파시즘의 고유한 표식의 하나는 민족과 종교가 밀착되어 있다는 점이 이를 예로 들 수 있다.이는 사랑에 대한 견해에서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가지는 특징을 그대로 나타내주고 있다. 예수께서 가지라고 우리에게 가르치신 아가페적 사랑, 곧 민족과 계급의 국경을 초월한 무조건적인 사랑과는 엄청나게 거리가 먼 견해가 아닐 수 없다. ‘누가 이웃이니까?’ 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바로 복음에 있다. 사마리아인 이 사랑하고 돌보아준 강도 만나 자와 같이 우리의 도움을 구하는 사람은 누구나 우리의 이웃이다. 하지만 현재의 우리의 모습을 뒤돌아 보면 그렇지 못함이 극명하게 드러난다.5장은 물질적 번영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내용이다.돈과 재물의 소유에 대한 경쟁이 인류 사회에 깊숙이 뿌리박혀 있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진보는 우리에 실망을 주고 있고 우리 사회는 탈출구를 찾아야 했다. 물질적인 번영의 목표는 번영을 위한 수단인 지속적인 경제 성장에 우리의 행동을 맞추어 나갈 것을 요구하고 있다. 처음에는 비교적 순전한 도구였지만 점차적으로 우리를 대적하는 권력이 되어 버렸다. 도구였던 경제 성장이, 이제는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 해야 할 일을 우리에게 강요하고 계시하는 주체가 되어 버린 것이다.번영적 이데올로기의 차원에서 우리 사회는 중차대한 위기에 이르렀다. 경제 성장이 점점하락되고 있고,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들을 포함하여 이전에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던많는 권리들이 이제는 그 토대가 흔들리고 있다.7장 이데올로기의 대동맹혁명, 민족, 물질 번영, 안보의 이데올로기들은 많은 면에서 서로 다르다. 이데올로기들은 활동하고 있는 정도만이 다른 것이 아니라 이데올로기들이 사용하고 있는 수단에 있어서또한 다르다. 이러한 이데올로기들은 끊임없이 부딪치는 불협화음을 낸다. 이데올로기 사이의 반목에도 불구하고 그것 때문에 그들간에 서로 제휴하기도 한다. 이들은 서로간에 길을 마련해주었다. 민족이데올로기는 혁명 이데올로기를 불러들였으며, 번영의 이데올로기는 안보 이데올로기를 불러드렸다. 그들간에 악순환이 계속 반복되는 것이다. 이런 악순환의 종말은 그들을 혼돈과 분열과 멸망의 구렁텅이로 밀어넣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런 이데올로기들에 의해 미혹당해 출구없는 깊은 구렁으로 빠지게 되는 것이다.8장 참 소망은 그 어디에어떤 권세도 이데올로기의 원진과 함정을 척결할 수 없을 것이다. 프로테스탄트와 로마 카톨릭으로 양분된 기독교와 공포로 가득찬 이 세상은 그 목표에 사로잡힌 광기를 십자가에 못박아 버림으로써 십자가에 못박히신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한다. 오직 그런 경우만 부활과 해방은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성경이 제시하고 있는 소망의 이미지는 새벽별이다. 새벽별은 흑암이 완전히 뒤덥혔을 때, 떠오른다. 메시야적 소망을 갖고 산다는 것은 수동적으로 기다리고 있는 것과는 다르다. 그러한 삶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방벽들을 박차고 나올 것을, 우리의 미래와 번영 및 필요하다면 우리의 전 생명까지도 진리와 정의를 위하여 위험 속에 던져 넣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가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은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 자신이 오늘날의 마귀적인 악순환과 신격화된 권세들을 어느 정도 파괴시켜 버릴 수 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강력한 이데올로기들의 도가니안에서 실천되는 우리의 왜곡되지 않은 정의와 빗나가지 않는 사랑의 행동이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하여금 그의 구원적 행동을 우리의 행동에 결속시키시도록 만드는 신호가 될 수 있음을 토라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다.기독교적 소망은 각 시대 시대의 상황으로부터 우리를 단절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당연한 현실과 우리를 연결시켜 준다.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우상들과 우리를 속이는 이데올로기들을 포기하라는 호소가 우리 모두에게 당도해 있기는 하지만, 첫 발걸음의 성격과 난관은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상황에 따라 다를 것이다. 우리 속에서 약동하는 소망에 호응하는 유일한 길은 위험을 무릅쓰고 제 일보를 내딛는 길이다.변화에 첫발을 내딛는 길은 단순히 정신적인 변화에만 호소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란 그들의 정신만이 아닌 그들의 마음이 변화할 때에야, 또 그들이 기꺼이 그들의 우상신들을 배격하고 그 수단들을 변경할 때에야 진정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그 마음을 향한 이러한 영적인 전추가 바로 이 책의 주제였다.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이데올로기의 영향으로 살아간다. 일반 사람들만 아니라, 기독교인들 스스로도 그런 것 같다.김광호 교수님께서는 수업시간 중에 교회와 목사님들의 자세에 대해서 언제가 이야기 하신적이 있다. 부자교회 부자목사, 그들만을 위한 신앙에 대해서, 열변을 토하신 적이 있는데, 그 날이 문득 떠오른다. 흔히들 무신론자들 중에서 교회에 대해서 비판할 때, 자신의 신앙에 대한 표현으로 헌금을 내고, 교회는 그 헌금으로 가난한 자를 돕는 것이 아니라 성전을 늘리고, 교회 물품을 최신식에 좋은 것으로 바꾸는데 쓴다. 지금 어느 교회에 가든지 있는 빔프로젝터로 목사님 예배하는 모습을 비춰주는 스크린, 그리고 그 모습이 TV화면에 비춰지는 젖먹이 어린아이를 둔 부모를 위한 예배실, 등의 호화로운 교회의 모습들이 아마도 그럴 것이다. 필요에 의해서 그런 시설들을 두지만, 그런 것들이 교회의 부를 나타내고 교회간에 경쟁적으로 그런 시설들로 인해서 비교의 대상으로 우위를 점치는 모습들이 많다.
중동 정치의 이해2-아라비아반도와 이란지역의 정치발전과 이슬람-보편적으로 제3세계에서 정치지도자들과 대중들의 傳統的인 시각, 신념 및 가치는 政治발전의 중요한 장애요소였다. 그러나 중동?이슬람 문명권으로 시각을 돌리면, 政治발전에 대한 대부분 政治지도자들의 신념과 가치를 접목한 이른바 국가 이슬람에 基礎를 하고 있다. 국가이슬람은 중동-이슬람 국가들의 政治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이에 대한 배경으로 중동?이슬람 문명권이 政治, 경제, 문학, 어학, 종교, 역사 등의 총체적인 분야에서 세계화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그리고 이 문명권이 세계화 과정에서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가를 살펴 봄으로서 이 지역의 미래발전 전망을 예측하는 것이 이 책의 궁국적이 목적인 것 같다.책은 총 7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 사우디아라비아, 예맨, 오만, UAE, 카타르, 쿠웨이트, 이란의 政治발전과 이슬람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내용요약제1장 사우디아라비아 政治발전과 이슬람사우디아라비아는 20세기에 急擊한 사회, 政治, 경제적 변화를 경험한 국가들 중 하나이다. 이 기간 동안 변화와 동시에 政治와 영토, 그리고 사회분야에서 급격한 국가형성을 이루어갔으며 그 중요 동력은 부족주의와 종교이념이 와하비즘이였다. 20세기초까지는 부족집단단위로 분열되어 있었으나 이와 같은 부족체제를 기능을 발전적으로 나아가 국가형성으로 연결되었다. 사회, 政治, 경제 분야 발전에서 나타난 사우디의 주요 특징 중 하나는 전통적인 이슬람 사회체제와 政治體制를 유지하면서도 상당한 수준의 현대 경제구조와 관료구조를 만들어 내었다는 점이다. 경제적으로는 70년대 오일달러에 급속한 경제계발을 추진하였다. 하지만 80년대에 들어서면서 복지정책이 후퇴하였고 사회적 경제적 대립이 시작되는 시기였다. 걸프전을 계기로 사우디왕정에 대한 비판과 개혁방향에 대한 논쟁이 시작되었다. 먼저 미군의 주둔으로 인해, 개혁주의자와 이슬람주의자 모두에게 비판을 받게된다.아랍세계의 정치발전상 이슬람세계의 特性으로 지적되는 정치와 宗敎의 미분화 이븐 사우드는 건국과정에서 2가지 요소를 사용하였다. 첫 번째가 이름람, 즉 와하비즘과 결합을 통해 정통성을 확보하려 하였다. 둘째, 領土 확장과정에서 부족주의를 이용했다.세계화와 국제관계사우디아리비아의 영향력은 두 가지 요소, 原油의 주요 생산과 매장량을 갖는 국가라는 점과 이슬람성지 국가라는 점에서 행사된다. 오일달러는 국가주도의 산업발전경제, 도시와 노동자, 군인, 관료와 전문인들이 중심이 된 중산층 출현을 조장하는 지대경제와 국가를 등장케 했다.사우디아리비아는 3가지로 국가특징을 설명할 수 있다. 첫째, 국가발전과 형성은 이슬람과 공생관계를 유지하였다. 둘째, 풍부한 석유장원이 사우디 경재와 국가를 지대경제체제로 발전시켰다. 셋째, 강제적 토지개혁 대상이 되는 지주세력들을 만들지 않았다.과거 부족주의와 지역주의에 의해서 分列되었던 사우디 사회는 이제 보다 많은 자유와 개방을 원하는 개혁집단과 엄격한 와하브 이슬람으로 돌아가자는 보수집단으로 양극화되고 있다. 왕정의 부패, 급속한 서구화에 의한 이슬람의 훼손, 그리고 정치참여 확대에 의한 실패에 대한 비판에 효과적으로 대응(對應)하지 않는다면 사우드왕가의 전통적 윤리기반은 그 정치적 정통성을 잃게 될 것이다.제2장 예맨의 정치발전과 이슬람예맨의 政治발전과정은 세계대전 후 이맘이 통치하는 군주체제에서 군사혁명과 공화체제로 전환하는 민주화과정으로 볼 수 있다. 북예멘의 이맘 政治체제와 남예맨의 영국보호령 식민지 경험은 독립 후 양 지역이 다른 政治제도 하에서 이질성을 가지게 만들었다.현재, 예멘 政治인들은 이슬람정신에 벗어나지 않는 실용적 예멘식 민주주의 제도를 실현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과거의 역사는 예멘으로 하여금 국제政治사회에서 보다 중립적인 태도를 갖게 만들었다.예멘의 국가발전은 이슬람, 부족주의, 석유라는 큰 틀에서 찾아야 한다. 현재 예멘은 민주주의선거를 통하여 체제의 정통성과 중앙 집권환경을 만들고 있으며 부족장의 권력을 제한 시키고 있다. 다당제의 政堂活動은 새로운 예멘의 시민의식을 만들고 부한 地下資源을 가지고 있고, 아덴 항은 두바이와 쌍벽을 이루는 아라비아반도의 경제축이라는 지리적인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즉 전세계의 급유항이라는 의미이며 이집트와 같이 국제사회에 개방적인 국가가 될 것을 의미한다. 이제 예맨에 대한 발품팔이식 시장개척에서 벗어나서 정부차원의 정책적 시장개척이 필요하다. 한국은 예멘이 경제 이익지역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가질 때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이 번장을 끝 맺고 있다.제3장 오만의 政治발전과 이슬람 : 은둔의 왕국에서 근대국가로오만은 국제사회에 늦게 등장하였지만 전략적으로 페르시아만 입구라는 위치에 자리잡고 있었고 역사적으로 페르시아, 포루투갈에 이어 네델란드, 프랑스 및 영국의 영향력을 지배적으로 받아왔다. 석유탐사권을 놓고 미국과 영국의 代立이 있었고, 국경문제로 주변국, 사우디, UAE 및 예멘과 갈등이 있어 왔다. 내적으로도 역동적이며 가장 먼저 이슬람을 받아들인 국가중하나이다. 또한 초기 이슬람분파중 하나인 키와리즈파의 이바디사상이 현재에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국가이다. 술탄 콰부스의 등장이후 오만은 장기간의 영국지배와 그의 선친 통치기간의 암흑시대를 벗어나 근대국가로 재도약을 하고 있다. 오만의 政治발전 연구는 전체구의 국가에서 민주주의 국가로 변모하는 과정의 실험장이 될 수 있고, 특히 걸프지역 국가들의 政治발전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오만의 국가형성과정은 부족 사회의 단합과 분열, 이맘의 통치스타일, 그리고 해안지역의 통치권 쟁탈을 위한 오만인과 외국인의 鬪爭 등 3대 이슈가 주를 이룬다. 오만은 아직 헌법이 없는 절대군주가 통치하는 술탄국가(Sultanate)이다. 그라나 1970년대 콰부스의 등장이후 오만은 은둔의 국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국내외적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국내적으로 아직 초보적이긴 하나 국민의 여론을 수렴하기 위한 政治기구들을 점차 구성해가고 있다. 진행방향도 매우 점진적이고 조심스럽게 진행되고 있다. 1996년까지 GCC국가중 여성에게 피선거권을 인정하는 국가.오만의 국가재정이 절대적으로 원유와 천연가스 수출에 의존하고 있고 이러한 자원이 2020년 고갈된다는 전망에 따라 1996년 ‘오만경제의 비전: 오만 2020’계획을 수립하고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중이다.오만은 서남아시아의 부르나이와 함께 통치자를 술탄이라고 부르는 독특한 국가이다. 오만의 이바디교도들은 그들의 政治, 종교지도자를 예언자 모하메드의 혈연과 관계없이 가장 훌륭한 조건을 갖춘 사람을 지도자, 즉 이맘으로 선출하는 傳統을 이슬람 초기부터 가지고 있었으므로 지도자를 술탄이라고 칭하는 것에 거부 反應을 가지고 있었으나 영국의 강요에 의해 19세기부터 이를 수용하게 되었다. 오만은 이슬람 초기 3대분파가 공존하고 있는 국가이다. 종파를 벗어나 이슬람을 활용하여 국민통합을 이루고자 노력하고 있다. 국가는 직접적인 종교의 통제보다는 간접적으로 각 부족, 마을, 공동체의 지도자를 통한 종교통제를 택하고 있고 국가가 가장 염려하는 것은 과격한 이슬람원리주의의 전파를 사전에 방지하는 것이다.현재 오만은 술탄 콰부스가 취임한 1970년과는 격세지감을 느낄 만큼 많은 변화를 이루어왔다. 사회, 경제적발전에도 불구하고 아직 헌법이 없는 絶代군주가 통치하고 있으며 국법을제정하는 진정한 의미의 의회도 구성하고 있지 못하는 실정이다. 경제발전과 비교하여 政治발전은 아직 초기화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민요구가 전반적으로 미약하지만 治安재정능력이 양호하기 때문에 국가주도 政治, 경제발전과 분배정책으로 합법성을 증진 시키는 국가주도 재환원 정책을 펼칠 때 오만의 政治 발전이 이루어 질 것이다.제4장 UAE(United Arab Emirtes) 政治발전과 이슬람공식 명칭은 아랍에미리트연방(United Arab Emirates)이다. 동쪽으로 오만, 남서쪽으로 사우디아라비아, 북서쪽으로 카타르와 접하고 북쪽으로는 페르시아만(灣)에 면한다. 서쪽으로부터 차례로 아부다비(Abu Dhabi), 두바이(Dubai), 샤르자(Sharjah), 아지만(Ajman), 움알카의 축소화 현상이 일어난다. 공공의 권리가 축소되고 개인의 권리가 신장되면서 이를 制度的으로 규정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부족적 또는 국가적 권위주의가 약화되었다.UAE는 서구식으로 政治발전을 하고 있음은 자명하다. 하지만 政治적 자유와 인권에 있어서는 低발전국가이다. 또 여성에 대한 차별이 아직도 존재하지만 서구식 민주주의 도입과 본격화에 따라 여성단체를 비롯한 NGO가 활성화되기 시작 하면서 政治성과 종교성에 관련되는 시민사회가 부상하고 있다.개인적으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장이다.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그들의 의식을 분석하고 있는데 너무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중동 경제의 핵은 두바이를 필두로 한 주변국가들의 개발움직임이라고 생각한다. 석유자원이후의 국가발전모델을 채택하고 위한 준비이다. 그에 따라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기업들이 그곳에 振出하고 있고, 그러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현실인다. 그래서 그에 관한 내용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책에는 다루고 있지 않아서 아쉽다.제5장 카타르의 政治발전과 이슬람 /정상률카타르는 아라비아반도에 위치해 있는 작은 반도 국가이다. 석유가 발견, 생산되면서 카타르는 국가로서의 지위를 갖게 되었고 현재 매우 부유한 국가가 되었다. 카타르는 이슬람 봉건제적 지대국가라고 할 수 있다. 몇 차례의 政治변동을 겪었으나 국가 성격, 政治체제 수준에서의 변동은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즉 카타르에서의 政治변동은 政治 제도의 약간의 변동, 政治엘리트(리더쉽)의 변동이었다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낮은 수준의 政治변동을 통해 政治발전을 해왔다. 이슬람政治文化와 政治이슬람 세력을 포함한 이슬람단체가 政治발전을 지체시킨다는 어떠한 證據도 없다. 그러나 카타르에서의 政治발전은 아직 미미하며, 이슬람 사회의 전통, 즉 가부장제, 가계 중심의 부족주의, 사회부문의 미발달 등에 그 원인이 있다고 판단된다. 현 하마드 국왕은 궁정 쿠데타르 통해 권력을 잡았으나 이전의 어느 국왕보다도 더 민주적 리더쉽을 가지고 있으며, 민 있다.
정보화와 사회변화아는만큼 보인다는 말, 파놉티콘을 읽고 모던타임즈를 감상하면서, 다시 한번 공감하게 되었다.영화를 보기 전 파놉티콘을 한번 읽었다. 쉬운 책이라고는 했지만, 문자로써 머리에 읽혀지는 것을 넘어서는 의미는 없었다.모던타임즈는 몇 번이나 보려고 노력을 했지만, 엔딩을 본 적은 없었다. 흑백영화의 답답함과, 중요장면이 tv에서 접해서 식상했다. 우리가 늘 봤었던 톱니바퀴속에서 돌아가는 찰리 채플린과, 같은 작업을 계속 반복하는 모습들이 파놉티콘이라는 책을 읽음으로서, 새로운 의미가 되어서 나에게 영화감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쉽게 이해하게 해주었다..그리고 영화를 감상하고 책을 다시 읽음으로써 책속에서 처음 읽었을 때는 무심코 지나쳤던 내용들을 의미를 가지고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파놉티콘 첫 부분은‘어느새 연구실의 쥐새끼가 되어버린 죄수가 되어버린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그런 것이 아닐까?‘라는 황석영의 을 인용함으로서 이 글을 다 읽고 난 후에는 답을 할 수 있길 바라고, 현대를 살아가는 나는 어떠한가에 대한 고찰을 하게 한다.첫 장에서 작가는 시각(vision)이 가지는 의미를 먼저 분석한다.서양에서 시각은 빛이고 이는 계몽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는 ‘진리가 곧 빛’ 으로 간주되고 시각이 특권적인 인식론적 지위를 차지한 것과 관계되었다. 대상을 명백하게 볼 수 있는 시각의 특성은 주체와 객체의 거리를 강조했던 서양 근대 철학과 과학의 핵심적인 특징에 부합했다. 이러한 이유로 서구의 근대 과학자와 철학자들은 시각을 지성과 이해의 모델이나 메타포로 즐겨 사용하게 된다.시각은 시선이라는 말로 바꿔 말할 수 있고, 시선은 어떠한 의미에서 감시하는 행위의 한 부분 일 수 있다. 푸코는 근대 사회의 권력이, 무력과 법을 통해 강제로 사람들을 옥죄는 전통적인 군주권력보다 간접적이면서 훨씬 은밀한 방식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새로운 권력유형을 ‘규율 권력’과 ‘생물적 권력’으로 분류 짓고 경제학과 통계학은 이러한 새로운 권력과 함께 등장해 ‘지식과 권력’의 그물망을 형성한 대표적인 과학 분야라고 말했다.근대의 권력은 한 사람이 만인을 감시하는 형태로 ‘스텍타클사회’에서 ‘감시사회’로 변화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처벌의 방식이 신체에 대한 처벌에서, 죄수를 감옥에 감금하는 형식으로 바뀌면서 영혼에 대한 규율로 바뀌었다고 분석했다.푸코는 이러한 변화를 추동한 것이 제레미 벤담이 1791년 주장한 원형감옥 파놉티콘이라고 보았다. 이는 그리스어로 ‘다 본다’ (Pan : all + Opticon : seeing 또는 vision)이라는 의미를 가진다.파놉티콘에 수용된 죄수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감시하고 있는 간수의 시선 때문에 규율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못하다가 이 규율 권력을 ‘내면화’하여 스스로 자신을 감시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벤담은 시선의 비대칭성을 통해, 죄수들이 누군가 나를 끊임없이 감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함으로써 죄수 스스로 규율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만들고, 점차 규율을 ‘내면화’하여 스스로를 감시하게 된다고 한 것이다.모던타임즈는 산업시대의 파놉티콘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간수는 철강회사의 사장이고, 죄수는 노동자로 대변된다. 사장은 모니터를 통해서 노동자의 모습을 볼 수있지만, 노동자는 그렇지 못하고 어디서 무엇을 하든 감시의 눈길이 자신을 바로보고 있음을 불안해하고, 해고를 두려워하면서, 규칙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잃어간다. 그리고 결국 공장이라는 환경 속에 자율적인 인간의 모습보다는 기계부속품처럼 변해간다. 컨베이어 벨트에서 매번 반복되는 일만 하고, 화장실 갈 때마져 감시당하면서, 왜 라는 의문을 가질 수 없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이를 찰리 채플린은 톱니바퀴 속에서 돌아가는 모습과 컨베이어벨트를 떠나서도 나사를 조이는 작업을 반복하는 행위를 보여주며 감시의 시선 속에 규율화되고 기계화된 인간의 행동을 보여준다. 벤담의 파놉티콘과 공장은 둘 다 인간의 개입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작동하는 메카니즘이었다. 산업혁명 직전에 사람을 기계로 간주하는 사상이 유행했는데, 이러한 경향 아래에서는 스스로 작동하는 파놉티콘과 공장이라는 거대한 자동기계 속에서 죄수와 노동자는 부속 기계나 다름없었다. 영화가 만들어진지 벌써 50여년의 시간이 지나서 무감각해졌지만, 당시 상황을 보자면 사회의 일면을 꼬집는 날카로운 영화였을 것이다.공장과 감옥의 연관에 주목한 푸코는 파놉티콘에서 감시와 노동을 통한 규율은, 개인에 대한 권력의 통제가 육체적인 형벌에서 산업 자본주의의 인간형에 적합한 영혼에 대한 규율로 바뀌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고 해석했다. 인간의 몸과 마음은 시키는 대로 묵묵히 일하는 기계가 되었고, 공장과 학교의 파놉티콘화는 자본주의 생산과 규율학습이라는, 현대 사회의 권력구조를 지탱하는 두 기둥을 세웠다.모던타임즈에서 보듯이 파놉티콘이라는 건물에 구현된 감시의 원리는 사회 전반에 스며들면서 규율 사회의 기본원리인 파놉티시즘으로 탈바꿈했다. 이전에도 파놉티콘에 대한 연구는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파놉티콘으로 상징되는 규율 권력이 ‘모세관과 같은 권력’처럼 사회 곳곳에서 스며들어 통제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푸코의 해석이 방향을 불러 일으켰던 것은 파놉티콘을 통한 감시가 정보 혁명을 결과로 나타난 ‘전자감시’와 흡사하다는 인식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1970년대로 접어들면서 컴퓨터 데이터베이스, 폐쇄 카메라, 전자 결제를 통한 정보 수집 형태로 사용되었고, 사람들은 정부나 기업이 개인의 신상 정보를 수집하거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일에 민감해졌다. 사람들은 정보사회가 ‘정보감옥 information prison'을 낳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어느 장소에 무엇을 하고 있건 감시당한다는 조지오웰의 의 이미지와 동일시되었다. 정보감옥은 바로 ’ 정보 파놉티콘‘ 또는’전자 파놉티콘‘ 이었다. 사람들은 ’전자파놉티콘에 갇혀버리는 신세가 되었다‘고 느끼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푸코의 저작은 이러한 상황에서 빅 브라더가 지배하는 현대 감시 사회에 대한 암울한 예견서가 되었던 것이다.산업혁명이후 경영 기법의 발전은 노동자에 대한 일상에 대한 간섭은 컴퓨터와 기계 공장 과정이 도입되기 이전까지 규율과 통제는 ‘눈으로 보이는 감시’에서 정보관리를 바탕으로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방법으로 바뀌어갔다. 이는 ‘정보파놉티콘’이 변화해 간 것이다.컴퓨터나 전자기기를 통해 얻은 정보가 간수의 시선을 대신하지만, 파놉티콘에 갇힌 죄수가 자신이 감시를 당하는지 아닌지 모르듯이, 전자파놉티곤의 정보망에 노출된 사람들 자신또한 자신의 행동이 노출될지 모른다.그래서 전자파놉티콘에는 ‘중앙’이 뚜렷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간수가‘중앙’탑의 권력을 가지고 있던 것과는 달리‘중앙’이 네트워크의 그물망으로 분산되면서 뚜렷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감옥뿐만이 아니라 일상 속 우리 주변에 만연해 있는 CCTV나 사이버 공간에서의 감시와 역감시 현상이 바로 그것인 것인데, 우리는 감시와 역감시 모두의 주체가 될 수 있다.다시 말해 역파놉티곤은 가능하지만, 자동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음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시민운동과 다양한 NGO들에 의한 행정 및 사법 권력에 대한 감시, 대기업의 횡포와 통신, 인터넷 기업의 개인 정보 유출에 대한 감시, 의정과 언론에 대한 감시, 시민운동의 또 다른 권력화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과 자기 감시, 인터넷과 같은 새로운 미디어의 통제에 대한 반대운동, 정보의 수집을 제한하는 강력한 프라이버시법의 입법화, 그리고 역감시를 위한 정보 공개권의 확보 등이 결합 할 때에 역파놉티곤이 제 기능을 발휘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마지막장은 프라이버시의 의미에 대해서 언급한다. 작가는 보편화된 데이터 감시나 전자감시를 언급하며 프라이버시의 종말을 이야기한다.그러면서 프라이버시를 꼭 지켜야할 권리라고 말하고 내 프라이버시를 지킬 권리와 함께 다른 사람이나 권력에 대해 알 권리도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그에 대한 대한으로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서 개인, 시민단체, 정부가 협력관계를 유지해야한다고 말했다. 정보사회에 정보감옥 같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프라이버시는 적극적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새롭게 부활시켜야할 기본권이라고 이야기하면서 글을 마무리한다.이 책을 읽음으로 해서 일상에 만연해 있는 프라이버시의 침해에 대해 너무 무감각해있던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었고 파놉티콘에 대해 더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 언제 어디서 우리를 감시하고 있을지 모르는 폐쇄회로와 내용조차 확인하지 않고 삭제해왔던 핸드폰으로 전송되어 오는 문자 등이 이제는 무감각하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벤담이 고안한 파놉티콘에는 양면성이 존재했던 것 같다. 그것은 죄수를 교화시키기 위한 규율과 그것 때문에 빼앗길 수밖에 없었던 프라이버시라는 것이다. 프라이버시를 보장하자면 죄수를 교화시키기 위한 규율의 측면이 양보되어야만 한다. 하지만 교도소의 죄수 교화라는 근본적인 목적이 프라이버시의 침해를 정당화시킨다. 그리고 공리주의의 기본사상인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의 논리에 따라 당연시되고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중국대중문화의 이해저자 고광석씨는 한국무역협회에 재직하면서 1980년대 말부터 지금까지 중국 전역을 다녀보며 책을 집필해서, 지은이의 실제 식도락 경험에 비추어 써서 훨씬 이해가 쉬웠다.이 책은 크게 1부 중국의 음식문화 2장. 중국 역사 속의 음식 이야기, 3부 차림표와 암호풀이로 나눠진다.1부 중국의 음식문화에서는 중국인의 삶속에서 음식문화가 의미하는 바에 대해 설명한다.중국을 간단히 정의하기에는 땅은 크고 물자는 풍부하며 사람도 많다. 덩샤오핑의 일화를 통해서 보듯이 중국인에게 먹는 것이 우선이다. 삶의 세 가지 요소를 이야기 할 때 한국에서 “의식주”라 하고 중국은 “식의주”라 말한다. 먹는 것이 우선시 되는 중국인의 삶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우리가 입는데 비중을 둔다면, 그네들은 먹는 다는 실속에 비중을 둔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중국 역사상 명군으로 이름난 청나라 강희제만 하더라도 미식가로 유명하고 학자나 정치가 중에서도 식도락가가 즐비하다. 이러한 문화적 분위기 뜸을 들이며 발달한 것이 세계인이 사랑하는 중국요리를 낳은 원동력이 된다.덩샤오핑의 일화를 통해서 보듯이 중국인에게 먹는 것이 우선이다. 우리가 입는데 비중을 둔다면, 그네들은 먹는 다는 실속에 비중을 둔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중국 역사상 명군으로 이름난 청나라 강희제만 하더라도 미식가로 유명하고 학자나 정치가 중에서도 식도락가가 즐비하다. 이러한 문화적 분위기 뜸을 들이며 발달한 것이 세계인이 사랑하는 중국요리를 낳은 원동력이 된다.중국에서는 예로부터 “의식동원 음화식덕“이라고 생각했다. 의약과 먹는 것은, 마시고 먹는 일은 덕이라는 뜻이다. 정치의 여덟 가지 요소 중 으뜸음 먹는 것이라 했다. 백성을 굶주리게 하지마라는 가르침으로 전한다. 공산당 정권이 들어설 때만 보더라도 당시의 국민당 정권은 위 아래가 썩었기 때문에 스스로 무너졌다고 할 수도 잇지만, 근본적으로 헐벗고 굶주린 백성들에게 가진 자들의 것을 빼앗아 나눠준다는 공산당의 약속이 보다 적극적인 원인이었다. 지금 중국 지만 불의 조화라 할 수 있다. 기술이 셋이라면 불 다루기가 일곱이라는 것으로, 불이란 음식을 익힌다는 일차적 기능 외에도 색, 향, 맛을 결정짓는 요소이다.칼질에 대한 표현법만으로도 백가지가 넘는 것이 있다. 칼질은 기술이 아니라 도이다.중국의 음식문화 체계는 어느 누가 혼자서 개발한 것이 아니고,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지방별로 독특하게 발전했다. 먹거리를 불로 익히는 것이 첫 번째 혁명이고, 씨뿌리기와 가축기르기가 두 번째 혁명이다. 그릇의 개발로 음식을 끓이거나 국물을 만들어 먹는 것을 세 번째 혁명이라 할 수 있다.중국 역사에 있어 하, 상, 주 세 왕조의 시기를 거치며 조리기구가 발전하였고, 음식을 익혀먹는 방법들이 발전했다. 시경에 보면 다양한 먹거리가 등장하고 조미료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음식문화도 지나지면 말썽이 되는데 주에 이르러 지나침을 일컬는 말로 "주지육림"이라는 일화가 생겨난다. 춘추전국시대는 맹상군과 식객의 시대로 맛의 가지를 알기 시작했다. 진이 혼란기가 끝나고 수를 거쳐 당에 이르면 음식문화에 대한 기록이 풍부해지면서 조리기법이 크게 발달하여 간석이 등장한다. 그리고 전에는 좁쌀이나 수수를 주식으로 먹었으나 당나라 때부터는 쌀밥을 먹고, 밀가루 음식이 유행하게 된다. 서양과의 활발한 교류로 국수만드는 기술을 전하게 되고 다양하게 발전하여 파스타요리로 세계의 사랑을 받고 있다. 청대에 이르면 중화문명을 최대한 수용하고 피지배자인 다수의 한족을 활용하여 국가의 기틀을 확고히 다졌다. 이들의 국가 경영의 지혜를 잔칫상에서도 발휘되었다. 왕실연회에서 만주식과 한족식 요리를 모두 망라한 "만한취엔시" 라는 중화 모듬요리체계를 내놓게되어 모듬중화요리의 탄생으로 평가받는다.장제스 정권이 밀려나면서, 부유한 자본가들이 해외로, 홍콩으로 떠나고 그에 봉사하던 유명오리사도 대륙을 떠났고 식도락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으로 대륙의 식탁은 점점 무미건조해졌다. 하지만 지금의 개혁개방으로 인해 중국경제를 천지개벽시켰고, 음식문화까지도 제자리로 되돌려 섭취 목적은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탐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과 장수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러한 특성은 의식동원(醫食同源)이라는 용어로 설명할 수 있는데 즉, 약으로 보신하는 것보다 음식으로 보신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현대에 와서는 요리사와 의사는 완전히 구별되는 직업이지만 고대 중국에서는 의(醫)와 식(食)은 같은 원류에서 시작되었으며 약물의 발견과 사용은 바로 식품에서 출발하였으며 곰, 자라, 고양이, 쥐, 벌레에 이르기까지 독특한 재료를 사용하는 중국요리는 불로장생의 사상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발전해왔다. 오늘날에도 중국은 식이요법이 발달해있다.중국은 요리의 체계가 완성된 청나라의 기록에 의하면 그들은 중화요리를 3개의 파로 나누었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일반적으로 네 지역으로 나눈 구별법으로 널리 인정되고 있다. 즉 노계로 대표되는 산동 및 북경요리, 월계로 대표되는 광동 요리, 소계, 호계로 대표되는 상해요리, 그리고 천계로 대표되는 사천요리가 그것이다. 이 4가지 요리의 특징적인 차이점은 무엇일까? 간단히 풀이하면 남쪽요리는 담백하고, 북쪽 요리는 짜며, 동쪽 요리는 달콤새콤하고, 서쪽 요리는 맵다는 것이다. 이 다양한 특징을 가진 중국의 4대 요리지역에 다른 특징에 대해 알아보았다.먼저 남부 연안지방에 위치한 광동지역은 예로부터 '먹는 것은 광동 에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요리가 발달한 곳이다. 광동요리는 이 지방이 서방에 제일 먼저 개방된 이래, 줄곧 경제문화 교류의 창구로 외국 선교사와 상인들의 왕래가 빈번한 곳이었던 이유로 서양요리 문화가 도입 흡수되어 기존의 전통적 요리법과 결합된 독특함을 지니고 있다. 광주 요리의 특징은 자연의 맛을 살리는 담백함이, 서유럽 요리의 영향을 받아 쇠고기, 서양채소, 토마토케첩, 우스터소스 등 서양 요리 재료와 조미료를 받아들인 요리도 있다. 간을 싱겁게 하고 기름도 적게 써 가장 대중적인 요리로 꼽힌다. 탕수육 팔보채도 사실은 광동 요리이며 중국 요리의 보석으로 꼽히는 딤섬 역시 광동 요리다. 또 살아으뜸으로 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서부 대 분지에 위치한 사천이라는 곳은 옛날 터 중국의 곡창지대로 유명한 사천분지는 해산물을 제외한 사계절 산물이 모두 풍성해, 야생동식물이나 채소류, 민물고기를 주재료로 한 요리가 많으며 산악지대이기 때문에 악천후를 이겨내기 위한 향신료가 발달했다. 따라서 각종 향신료와 마늘, 고추를 사용한 매운 맛이 특징이어서 한국 사람들의 식성에 가장 잘 맞는 음식이다. 또한 이 지방은 여름에 덥고 겨울에는 몹시 추우며 낮과 밤의 기온차가 많은 악천후의 영향으로 이런 날씨에 견디는데 좋다는 강한 양념을 섞어 요리한다. 지리적 여건 때문에 해산물을 이용한 요리는 없지만 각종야채, 육류, 민물고기 등을 이용한 요리가 많으며, 생선 같은 것은 거리가 멀기 때문에 저장식품인 소금절이 생선을 많이 쓰는 것 도 이곳 음식의 특징이다. 조리방법에는 살짝 볶거나 부치고, 단술로 맛을 내면서 그 국물이 없어질 때까지 약한 불로 조리하는 것이 특징이다. 사천요리의 요리방법은 초, 견, 간소, 작, 순, 포, 둔, 문, 회, 잔, 폭등38여 가지가있다. 이 요리는 특별히 색, 향기, 맛, 형태를 강구하는데 남북의장을 겸유하고 있고 맛의 많고 넓고, 두터운 것으로 이름이 있으며 역대로부터"7미"와 (달고 시큼하고, 고소하고 맵고, 뜨겁고, 향하고, 짠)"8지" (간소, 시큼하고, 맵고, 어향, 간변, 괴니, 로마, 홍유)라는 말이 있다. 그의 주요 명 요리로는 야채요리 - 마부두부, "장차요이", "샤브샤브", "어향육사" 등 300여 종이 있다.이 지역의 대표적인 것은 매운 것을 좋아하고 혁명가가 많다는 점이다. 호남성 출신의 마오쩌둥은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 “매운 것을 먹지 않는 사람은 혁명을 말할 수 없다”이 말이 사실인지는 모르겠으나 중국의 건국 원로 중에 사천과 호남 출신들이 별나게 많은 것을 보면 더욱 그럴듯하게 느껴진다.상해요리는 강소, 절강, 안휘성 등을 포괄하며 이들 지방은 장강(長江 양자강)에서 나는 풍부한 수산물 특히 생선류를 소재로 한하며 공업이 발달되고 상업이 번영하여 상행의 요리도 그에 따라 신속한 발전을 가져왔고 점진적으로 자기의 특색을 띄게 되었다. 상해 요리의 발전은 현지의 요리로부터 시작하였다. 상해요리는 여러가지 독특 한 점이 있는데 우선 원료선택에서 신선함이다. 상해요리는 사계절의 야요리, 물고기, 새우 등을 절강에 서 난 것을 위주로 산 것을 상으로 일년 사계절을 모두 산 것으로 요리한다. 두 번째로는 요리의 품종이 많으며 사계절에 따라 틀리다. 세 번째로는 요리법의 부단한 개진을 요구한다. 상해요리는 원래의 소, 증, 구움, 와, 소를 중심으로 하던 것으로부터 점차적으로 소, 굴림, 증으로 위주로 변하였는데 주요하게는 생편, 굴림이 제일 많으며 특히 사계절의 강의 생물을 원료로 많이 한다. 네 번째로는 입맛도 많은 변화가 있다. 이러한 독특한 방식에 의하여 상해의 돼지고기에 진간장을 써서 만드는 홍사오러우(紅燒肉)가 유명하고 한 마리의 생선을 가지고 부위별로 조리법과 양념을 다르게 하여 맛을 낸 생선 요리도 일품이다. 특히 9월말부터 1월 중순에 맛 볼 수 있는 상해의 게 요리는 전 세계 식도락가들이 최고로 뽑는 진미이다.북경은 고대에 오주로 불리었고 전국시기에 연도, 요 시대에는 배도, 후에는 금, 원, 명, 청의 중심도시로 약 8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북경요리는 이미 1000여년 이상의 역사를 갖고 있다. 동시에 북경은 역사적으로 여러 국가의 중심도시로 있었기 때문에 전국의 정치, 경제, 문화중심으로 궁청옥주(궁청의 황제 밥을 짓는 주방), 황가 주방이 비교적 효율적이었고 요리 기술이 발달되었으며 전국의 요리문화가 집중되어 요리 기술이 상대적으로 발전되었는데 이는 북경요리 체계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북경요리의 특징은 한랭한 기후로 인해 추위에 견디기 위한 고칼로리의 음식이 발달되어 있는데, 강한 화력을 이용한 튀김과 볶음요리가 일품이다. 요리는 대부분 기름기가 많고 맵고 짠 요리가 많다. 간장을 별로 사용하지 않으므로 색은 연한 편이고, 흔히 사용되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