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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대별 주요 동인지
    담당교수 :과 목 명 :학 과 :학 번 :제출일:목 차Ⅰ.1. 시대별 주요 동인지Ⅱ.1. 1910년대 ------------- 42. 1920년대------------- 63. 1930년대 ------------- 124. 1940년대 ------------- 15◆1910년대 잡지잡 ??지발행인연 ??대비 ?????? 고소년최남선1908-1911최초의 월간 종합지청춘최남선1914-1918신문화 계몽 월간 종합지학지광최팔용1914-1930동경 유학생들이 발간한 잡지태서문예신보장두철1918-1919순국문 최초의 문예 주간지◆1920년대 잡지동 인 지동 ???????????????인연 ????????대비 ??????????????고창조김동인, 전영택, 주요한, 김동환 등1919.2.1 - 1921.5.30최초의 순문예 동인지. 완전한 언문일치 확립개벽김억, 김소월, 이상화, 현진건 등1920.6.25 - 1926.8.1신경향파 문학과 밀접한 관련폐허황석우, 염상섭, 김억, 오상순 등1920.7.25 - 1921.1.20퇴폐적, 낭만적 경향장미촌박종화, 변영로, 박영희 등1921.5시동인지의 효시백조현진건, 나도향, 이상화, 홍사용, 박종화 등1922.1.9-1922.9.6순문예 동인지. 낭만주의적 경향금성양주동, 이장희 등1923시동인지. 낭만주의적 경향영대김소월, 주요한, 김억, 전영택 등1924순문예지. '창조'의 후신조선문단이광수, 김억, 김동인, 주요한 , 최학송 등1924.9경향파와 반대되는 입장을 대변함해외문학김진섭, 이하윤, 정인섭 등1927-1931외국 문학을 번역 소개한 잡지◆1930년대 잡지잡 ??지발 행 인연 도비 ???????????????????고시문학박용철1930언어의 조탁을 중시한 순수시 중심삼사문학신백수, 이시우1934의식의 흐름, 초현실주의 수법조선문학이무영, 지봉문1935프로문학 잔재 세력이 활동시원오일도1935시문학파가 중심이 된 시 전문지시인부락서정주1936생명파 중심의 시 전문지자오선서정주1937특정한 유파나 경향에 치우치지 0월에 창간된 최초의 본격적인 월간 종합지. 편집 겸 발 행인은 최창선이나 실질적으로 최남선이 주재하였고 신문관에서 간행하였다. 1∼6호까지 매월 16일에 발행되었으나 곧 일제에 의 해 국시위반이란 구실로 정간당하고 이어 허가가 취소되어 사실상 폐간되었다. 그 뒤 2년 만인 1917년 5월 16일 속간호가 발행되어 상당한 호응을 받았으나 이듬해 8월, 15호를 끝으로 폐간되었다. 일반교양을 목표로 펴낸 계몽적 대중지로 인문과학·사회과학·자연 과학 전반의 내용을 다뤘으나 문학 부문에 비중을 두어 준문학지 의 성격을 띠었다. 계몽적 논설 외에 세계문학개관란을 두어 해외 문학을 소개하는 한편, 《팔도가》 《수성지》 등의 국내 고전과 이광수의 《소년의 비애》 《어린 벗에게》 등 신문학도 많이 실었다. A5판.③학지광1914년 4월 창간된 일본 도쿄 조선유학생 학우회의 기관지. 연 2 회 발행되었다. 창간 당시 편집 겸 발행인은 최팔용, 그 뒤 신익 희· 최원순 등이 발행을 맡았다. 내용은 학우회의 소식을 비롯, 논 문· 시· 한시· 소설· 수필· 극· 기행 등 다양하였다. 신문화의 보급 과 학술연구 등 한국 학술계·사상계, 특히 한국 신문학사조의 도입 및 창작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30년 4월 통권 제29호인 갱신호를 끝으로 종간되었다. 제1·2호는 B5판, 제3~28호는 A5판.④태서문예신보한국 최초 주간문예지. 편집인 겸 주간 장두철. 1918년 9월 창간되어 다음 해 2월 통권 16호로 종간되었다. 발간 초에는 종합지의 성격을 띠었으나 곧 문예지 성격으로 전환하였다. 《소년》, 《청춘》 등 신문학 초기 잡지와 《창조》로 시작되는 본격 문예지의 중간 성격을 띤 잡지이다. 주로 시·소설·수필·시론·번역작품이 수록되었으며, 김억·이일·장두철 등이 중심이 되어 서구문예의 도입·소개에 주력하였다. 매호 책머리에는 사설을 싣고, 대부분 시문학 중심으로 편집되었는데, 음악·미술 관련 글도 다소 실려 있다. 그 가운데 김억의 번역시와 시론을 통한 상징주의 도입은 근대시 형서 『백조』로 이어주는 견인차의 역할을 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장미촌』에서의 대부분의 시는 고뇌와 고독을 전제로 하고 있어 ‘괴로움’, ‘고독’, ‘신음’ 등이 그 주조를 이루고 있으며 시로서는 별로 뛰어난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고 창간호로 끝나고 말았다. 한편, 1922년 1월에 창간된 『백조』는 순문예 동인지였지만 당대의 시대현실 속에서 ‘자유’를 구가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식민지적 현실의 암울함에서 오는 감상적 낭만성에 치우친 경향이 짙다가 점차 반성적 면모를 보이기도 했고 발표된 작품은 소설보다는 시에 더 비중이 주어진 특징을 보였다고 할 수 있다. 창간 당시 격월간을 표방했던 『백조』는 2호는 발행인 문제로, 3호는 발행비 문제 등 계획대로 발행되지 못하다가 2호 이후에 종간되고야 말았다. 홍사용 ? 박종화 ? 이상화 ? 나도향 ? 이광수 ? 현진건 ? 박영희 등이 중심이 되어 활약했으며 시 쪽에서는 낭만주의적 성향이 강한 반면 소설 쪽에서는 자연주의와 사실주의적 색채가 강했고 신경향파문학이 태동하게 된 모태가 되기도 한 복합적 성격을 띠었다.『금성』은 1923년 11월에 창간된 시 전문 동인지이다. 주로 해외문학의 번역?소개와 창작시 발표를 전문으로 했는데 양주동이 중심이었고 김동환이 추천시를 발표하였다. 순문학동인지로서 1924년 8월에 창간된 『영대』는 당시로서는 특이하게도 평양에서 편집을 한, 이 지역 중심의 문학동인지라 할 수 있다. 그 동인들은 『창조』에서 주축이 되었던 이들이 거의 속해 있었으므로 그 성격을 그대로 계승 반영했다.이상에서 이 시기 주요 동인지의 양상들로부터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공통점을 찾아낼 수 있다. 먼저, 간행 횟수가 대체로 단명했다는 사실이다. 이 점은 ‘동인지’로서 갖추어야할 기본적 속성인 사상적 경향이나 표방된 노선의 통일이 진지하게 모색될 수 없었다는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창간 당시의 의욕과는 달리 모호한 성격을 띠게 되었고 발표지면을 확보하기 위해 엇비슷한 동인지들을 다시 등장시 기휘로 압수되어, 부득이 사흘 후인 30일에 다시 임시호를 발행하 였다. 이와 같이 《개벽》지는 창간호에서부터 모진 시련을 겪었 으나, 독자들의 호응으로 1920년 8월 17일에는 임시호의 재판을 발행하는 성황을 이루었다. 《개벽》지는 발행기간 중 발매금지(압수) 34회, 정간 1회, 벌금 1회의 수난을 당하고, 1926년 8월 1일에 발행된 72호를 끝으로 강제 폐간되었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매일신보》 등이 폐간조치에 대한 항의기사를 연일 싣고, 천도교 청년당과 관서기자단을 비롯한 각종 단체가 일제의 언론탄압에 강경히 항의하였으나 끝내 소생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통권 72호를 온갖 시련과 고난 속에서 간행하는 동안 민중의 자주의식? 자유사상? 독립정신을 고취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또, 당시에 팽배하던 민족자결주의를 소개하였고, 민족대동단결? 국산장려운동 등을 제창하였다. 또한 민족문화창달을 위해 전 지면의 3분의 1 정도를 할애, 한국 문학사상 중요한 작품들이 이 잡지를 통하여 발표되었다. 신경향파 초기의 김기진 ?박영희의 평론을 비롯하여, 조포석? 현진건? 김동인? 이상화 ?염상섭 ?최서해? 김동환 ?나도향 ?박종화 등이 이 잡지를 통해 초기의 작품활동을 전개함으로써 오늘의 한국문학의 전통을 확립하였다.③폐허창간호의 편집 겸 발행인은 고경상이며, 발행사는 경성 폐허사였 고, 제2호의 발행인은 이병조이고, 발행사는 신반도사였다. 폐허라 는 제호는 독일의 시인 J.C.F.실러의 "옛 것은 멸하고 시대는 변한 다. 새 생명은 이 폐허에서 피어난다"라는 시구에서 따온 것이며 ' 부활? 갱생'을 의미한다. 동인으로 김억? 남궁벽? 오상순? 황석우? 변 영로? 염상섭? 이익상? 민태원 등이 참여하였다. 이들은 흔히 '폐허 파'로 불렸으며, 문학적 경향은 퇴폐적 낭만주의였다. 이들의 퇴폐 주의는 3?1운동의 좌절과 극도의 경제적 궁핍을 경험한 식민지 청 년 지식인들의 불안의식과 세기말 사상을 반영하고 있었다.수록된 작품으로 김억의 《스핑크스의 고뇌》, 남무 그늘> 등 야성적 혹 은 아늑한 감상을 노래한 것이 실렸다. 역시로는 양주동의 <근대 프랑스 시초> <타고르 시초> 등이 실려 있다. 주로 영국·미국·프랑스의 현대시가 많이 번역·소개되었으며, 뚜렷이 내세운 주장은 없으나 이상주의적·낭만주의적·상징주의적 경향이 그 주조였다. 문예작품도 현상 모집했는데, 이를 통하여 김동환의 <적성을 손가락질하며>가 당선되었다.⑦영대1924년 8월에 창간되어 1925년 1월 통권 5호로 종간된 《영 대》는 김소월 등을 제외한 대부분이 《창조》의 동인들로 구성되 어있어 《창조》의 성격을 그대로 계승?반영 하였으나 일정한 경향 을 갖지는 않았다. 곧, 문학을 하겠다는 순수한 창조적 의욕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후기 문학운동의 주조인 순문학적 요소가 그 특 징을 이룬다. 편집 겸 발행인은 임장화이고 발행사가 표지에는 경 성 영대사로 되어있고 내지에는 문우당으로 되어있는 것으로 봐 서, 실제 편집은 평양에서 하고 발행은 서울에서 한 것으로 보인 다. 창간 동인으로는 김관호? 김소월? 김동인? 김억? 김여제? 김찬영? 이광수? 오천석? 전영택? 주요한 등이었다. 수록된 작품으로는 논문에 임노월의 《예술지상주의의 신자연관》, 김유방의 《완성 예술의 설음》등, 시에 김억의 《여름저녁에 읊은 노래》, 김소월의 《꽃촉불 켜는 밤》등, 소설에 김동인의 《유서》, 임노월의 《악마의 사랑》, 전영택의 《바람 부는 날 저녁》등이 실려 있다.⑧조선문단순수문학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던 방인근이 아버지의 유산인 2 만원을 투자하여 창간한 순문예지이다. 제1~4호는 이광수가 주재 하였고, 제5~18호는 방인근이 직접 주재하였으며, 이후 재정난으 로 휴간했다가 1927년 1월 속간했다. 그러나 재정난으로 다시 휴 간했다가 1935년 2월 통권 21호를 속간 1호로 발간하여 26호까 지 펴내고 종간하였다. 이 잡지의 추천제에 의하여 작가가 된 사 람은 최학송?채만식?한병도?박화성?유도순?이은상?임영빈? 송순일 등이다. 이광수?방인근?염상섭?김억?주요한?김동인?
    인문/어학| 2008.05.01| 15페이지| 2,000원| 조회(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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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에서 인지혁명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
    담당교수 :과 목 명 :학 과 :학 번 :제출일:교육에서 인지혁명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와우리나라의 교육개혁과학적인 사고가 크게 되면서 교육에 대한 관심도 인간 행위를 과학적으로 이해하는 바탕에서 큰 진전을 거듭해왔다. 인간행위를 설명하는 과학적 관점을 혁명적으로 바꾼 인지혁명을 바탕으로 오늘의 교육개혁이 나타났다. 인간의 본성을 새롭게 이해하게 되고, 또한 인간의 발달과정 특히 지적발달에 관한 지식이 새로워지면서 인간존재의 보다 과학적인 이해를 깊게 했고, New Look에서 시작된 인지혁명에서 인간행위를 설명하는데 크게 네 가지로 첫 번째는 인간인지가 중요하다는 인식, 두 번째는 세계와 인간에 대한 인간의 ‘앎’이 제한적이면서 여기에 지각경험이 중요하다는 것, 세 번째,인간인지의 능동성의 확인, 마지막으로 인지과정을 정보처리적으로 설명하는 효율성에 대한 신뢰 등과 같은 주요한 요인들이 오늘의 교육개혁을 일어나게 했다.오늘의 교육개혁, 교육혁명은 지난 반세기 동안 중요한 교육사상으로 세계의 교육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던 진보주의 교육의 본고장 미국에서 이 교육사상을 뒤엎고 먼저 일어났다. 이미 1950년경에 시작된 미국의 교육개혁은 그 후 여러 단계를 밟으며 교육개혁의 내용을 충실히 해 가고 있는데 근본적으로 교육적 사고는 인지혁명에 의한 새로운 삶, 새로운 인간본선의 이해, 그리고 새로운 교육관에 토대를 둔 것이다.미국의 심리학자 Bruner는 Dewey의 「나의 교육신조」를 오늘의 관점에서 요약하고 비판 하면서 심리학에서의 상대성 혁명이란 심리적 사상들이 고정되어 있다고 가정한 과거의 심리학적 사고에서, 오늘의 인지혁명을 일으키는 원초적인 일을 한 지각연구가 심리적 사상들이 상황적 조건에 따라, 이것이 변화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전환한 것을 의미하고 있다.인간의 인지가 매우 변동적이라는 심리학적 사고로의 전환이며, 곧 인지혁명의 중요한 내용의 하나이다. 행동주의는 고정적이라는 가정이기에 틀린 생각이 된다. 인간행위와 자극간의 관계가 고정적이 아니라는 것은 지각은 물론이고 퍼스내리티, 정서, 동기, 신념, 태도, 판단, 도덕적 행위, 사회적 행동 등 모두에서 나타난다.Bruner는 교육에 대해서 네 가지 논제를 언급하였다. 첫 번째 논제는 사회의 풍요로움만이 아니라, 개인의 풍요로움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적용하는 것이고, 두 번째 논제는 교육의 효모는 수월성의 인식으로 학교는 중심적 기능의 하나로 수월성의 심상을 육성하는 것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 논의는 교과에 관한 것으로 교육에서의 교과의 논의는 지식의 본질에 관한 우리들의 견해에 비추어질 때 비로소 해소될 수 있다고 하면서, 네 번째 논제에서 교육의 과정과 목표는 하나이며 같은 것이고 교육의 과정이 지적 부정직에서 자유롭게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이렇게 인지혁명을 일으킨 새로운 심리학적 사고와 Bruner의 영향에 의해 교육개혁에 대한 요청이 폭발적으로 나타났지만, 이것을 구체화하는데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은 학교를 개혁해야 한다고 미국인들이 요구했으며 오늘의 교육개혁을 실천적으로 급속히 추진하게 된 중요한 요인이다.학교개혁에 관한 미국인들의 요구는 크게 보아 두 가지 사실에 의해 나타났다. 하나는 미국인들이 받은 Sputnik Shock에서 나타난 것이며, 다른 하나는 삶의 질에 관련되어 일어난 미국의 민권운동에서의 영향이다.Sputnik Shock는 미국교육 전체가 지적생산을 하는데 비능률적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하면서, 이 원인이 미국의 교육을 지배하다시피 한 진보주의 교육이 범용을 추구하면서 생활적응 중심의 학교교육을 펼친 데에 있다는 비판과 ‘Back to Basics’, 인지적 관점의 교육논리를 펼친 교육개혁을 구체화하는데 박차를 가하게 된다.민권운동은 인간의 삶의 질을 추구한 운동으로 인간의 불평등에 대한 항의, 인간 존엄에 대한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 사회의 불평등에 대한 항의가 민권운동으로 폭발한 것이며, 이것은 인간존재의 재인식을 불가피하게 하게하고 인지혁명에 바탕을 둔 학교교육의 개혁을 강요하게 되었다. 이러한 민권운동은 학교교육에서 나타난 두 가지 잘못을 지적하였는데 진보주의와 실용주의노선이 진화론을 잘못 해석한 두 가지 사실이 학교교육에서 일으킨 문제이다.듀이는 사회목적 즉 유토피아를 위해서 개인을 가꾸어 가는 성장을 궁극적인 교육목표로 보았다. 만인에게 균등한 교육을 해야 한다는 민주주의 정신에서 우러나온, 보편교육의 개념이 가정배경과는 관계없이 교육적 기회를 제공해야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높은 재능을 나타낸 사람들은 더 높은 교육을 받도록 선택하게 된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고, SES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 이러한 생각은 다윈의 적자생존이라는 진화의 해석과 합치되는 것으로 학교교육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이해된 지능이 유전이나 생득적이라는 잘못된 믿음을 굳히는 잘못을 일으켰다.다른 하나는 사회진화론의 후기 단계에서 나타나는 잘못된 믿음으로 인간사회가 우에서 열로 이어지는 단일차원의 질서로 되어 있다는 생각이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학교교육이 모든 학생에게 공통적으로 교육적 환경을 제공하는 것으로 인간의 다양성이 무시된 획일적 교육환경이 된 것이다. 진보주의가 생각한 사회개혁의 표적은 기독교적 이상사회를 건설 하는 것이었다. 이것운 단일차원의 틀 속에서 목적하는 인간상을 형성하기 위한 최적의 교육적 조치를 하는 일이 되었다.민권운동은 균등한 학교교육의 수혜를 요구하는 것인데, 특히 미국의 하층계급인 흑인들의 교육적 불평등에 대한 항의였다. 이 항의는 인지의 중요성을 깨달은 논리적 주장이었다. 결과적으로 이들을 낮은 SES에서 맴도는 악순환을 세대를 이어가며 되풀이하게 해서, 불평등을 안겨주고 있다는 비판을 하게 된다.이와 같이 교육개혁이 실제적으로 촉진되는 데에는 Sputnik Shock와 민권운동이 직접적인 주변적 요인이 되어있었던 것이다. 인지혁명의 논리에 미국의 실제적 상활이 시기적으로 맞물리면서 나타난 교육개혁인 것이다.
    교육학| 2008.05.01| 4페이지| 1,000원| 조회(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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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벨바그 Nouvelle Vague누벨바그의 탄생‘새로운 물결’이란 뜻의 누벨바그 Nouvelle Vague는 『까이에 뒤 시네마 Cahiers du Cinema』의 비평가들을 중심으로 해서 형성되었던 일군의 영화작가들의 작품에 대해 『렉스프레스 L'Express』지의 저널리스트인 ‘프랑소와 지로 Francois Giraud’가 평한데서 부터 유래한 명칭으로, 1950년대 중반에서 1960년대~70년대까지를 이끌어 간 프랑스의 새로운 영화 사조를 말한다. 이 용어는 거의 공통점이 없었던 여러 감독들을 포용하는 의미로써 사용되었다.스탠리 카우프만은 프랑스 누벨바그의 근원을 ‘파리’라는 장소에서 찾으려 했다. 예술가들의 새로운 예술에 대한 대담성의 전통을 150년간 지니고 있었고, 젊은 영화광들에게 과거의 명작들을 보여줌으로써 체계화된 영화사를 제공했던 ‘시네마테크 Cinematheque)’가 있었으며, 순수 영화적인 이론이나 미학적 기준을 형성하고 다듬고 고수했던 『까이에 뒤 시네마 Cahier du cinema』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프랑스 특유의 영화적 전통의 바탕위에 전후 새로운 세대의 새로운 인식이 첨가되면서 누벨바그가 탄생할 수 있었던 필연적 요소를 집약시킨 표현으로 이러한 환경을 통해 자라난 세대가 곧 전후 프랑스 영화 세대였다.장 뤽 고다르, 프랑수아 트뤼포, 끌로드 샤브롤, 알랭 레네, 에릭 로메르, 자끄 리베뜨 등으로 대표되는 이들은 모두 『까이에 뒤 시네마 Cahier du cinema』란 영화 전문 잡지의 평론가, 기자 출신들이며, 이미 10대 시절부터 ‘시네마테크 Cinematheque’에서 영화 스터디를 통해 영화적인 모든 이론과 실기를 마스터했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무기이자 재산은 영화에 대한 열정이었다. 누벨바그 운동은 지적인 흐름이면서 이러한 정열과 광기가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 누벨바그가 사람들의 주의를 끈 것은 그러한 그들의 학구적인 자세와 개인 영화가 상업적으로 충분히 성공할 수 있는 실례를 보여주었기 때문이 다소 상처입은 것 같은 배우들을 요구했던 반면 프랑스의 젊은 관객들은 '브리짓 바르도 Brigitte Bardot')를 요구했다. 로제 바딤의 (1956)에서 그녀는 괴로운 경험 속에서도 상처받지 않는 것처럼 보이고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프리 섹스의 개념을 실현했다.“누구나 영화 감독이 될 수 있다."고 한 프랑수아 트뤼포 Francois Truffaut의 선언은 굉장한 파급력이 있었다. 그것은 프랑스의 기존 영화제작 방식을 전면적으로 부정한다는 것을 뜻했다. 스튜디오 촬영방식을 버리고 거리와 집안에서 즉흥연출을 시도하면서 생략과 파격의 스타일로 전통적인 기승전결식 이야기체 영화의 틀을 부쉈다. 장뤽 고다르 Jean-Luc Godard의 (1960)는 거친 비약과 생략을 서슴지 않는 편집으로 의식의 무정부 상태에 있는 현대 젊은이들의 불연속적인 삶에 다가갔고, 여주인공의 기억을 매개로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알랭 레네 Alain Resnais의 (1959)은 플래시백)이라는 구태연한 수단을 거치지 않고 다른 시간과 공간에 걸쳐 있는 인간의 의식을 담았다. 모든 것이 이런 식이었다. 누벨바그 영화는 기존의 어떤 영화와도 닮지 않은 무정형의 틀을 추구하면서 영화를 재발명했다.누벨바그 출현의 직접적인 계기첫째, 프랑수아 트뤼포 Francois Truffaut의 「프랑스 영화의 어떤 경향」(1954)이라는 짧은 글이다. 누벨바그는 1920년대의 독일 표현주의나 세계 제 2차 대전 이후 네오리얼리즘처럼 응집력 있는 영화 운동으로 시작된 것은 아니었지만, 1954년 1월 『까이에 뒤 시네마 Cahier du cinema』지 31호에 프랑수아 트뤼포Francois Truffaut의 「프랑스 영화의 어떤 경향」이라는 글이 도화선이 되었다. 그는 먼저 당시의 프랑스 영화가 깐느나 베니스의 입상을 목적으로 한 ‘질의 전통 Tradition de la qualite’에 기대어 심하게 병들어 있음을 지적했다. ‘질의 전통’은 유행처럼 저명한 소설가의 작품들을 영화화하던 경향을 말 사상으로 퍼져나간 ‘실존주의 철학’도 누벨바그 영화들의 정신적인 배경이 된다. ‘부조리한 세상에 부조리한 방식으로 맞서는’ 현대인의 모습은 특히 장뤽 고다르의 영화들에 자주 등장하며, 가톨릭 문명보다 고대의 희랍 문면에서 사상적 근원을 찾으려 했던 실존주의 철학의 영향을 받아 고다르나 트뤼포는 그리스 로마 시대에 대한 다양한 암시들을 영화 곳곳에 숨겨 놓곤 했다.다섯째, 이탈리아의 네오리얼리즘 운동의 영향이 있다. 1940년대 초반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네오리얼리즘의 영화들은 세트를 거부하고 거리로 직접 나가 영화를 찍고자 했다. 특수효과를 배제하고 직업 배우와 비직업 배우를 고루 기용했으며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견지했다는 점에서 누벨바그 영화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작가주의이론‘작가주의 Auteurism'라는 용어는, 누벨바그의 대표적 감독이기도 한 프랑수아 트뤼포 Francois Truffaut가 비평가 시절인 1954년 영화 잡지 『까이에 뒤 시네마 Cahier du cinema』에 기고한의 「프랑스 영화의 어떤 경향」이라는 글에서부터 비롯된다. 이 글의 주된 내용은 전 세대 프랑스의 품질 영화 및 미국의 헐리우드 영화에 대한 비판이었는데, 촬영대본보다는 문학 작품의 의미를, 오리지널 시나리오보다는 각색을, 현장 로케보다는 스튜디오-세트 제작을, 그리고 한 사람의 작가-감독보다는 전문가들의 팀을 선호하는 당대의 경향을 맹렬히 공격했다. 그런데 프랑수아 트뤼포 Francois Truffaut는 이 비판의 말미에서, 영화 전체의 제작과정을 지휘하고 책임질 수 있는 한 사람의 작가 auteur가 필요하며 작가에 의한 작가영화만이 진정한 예술로서의 영화를 가능케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작가의 역할은 다름 아닌 감독이 맡아야 한다고 강조한다.그후, 작가주의 영화 이론가 앙드레 바쟁 Andre bazin에 의해 '작가의 정치학'(1957)이라는 용어로 다듬어지면서 하나의 영화 비평 용어로 자리 잡는다. 작가주의 이론을 바탕으간 구성을 가능케 한다.이들은 배우들의 즉흥 연기를 장려하고 야외 촬영의 이점을 이용하고 스튜디오 안에서의 작업에 따르는 제약조건으로부터 자유로운 작업을 위해 새롭고 가벼운 장비를 사용했다. 미학적으로 누벨바그는 영상의 새로운 형식, 매우 유연한 영화 문법인 몽타주), 촬영기의 움직임, 새로운 연기 지도 등을 만들어 냈다. 일반적으로 누벨바그의 전형적인 빠른 몽타쥬는 이야기를 빠르게 전개시키고 전통적인 영화에서의 평행적이거나 대위법적인 몽타쥬보다는 훨씬 큰 진실성을 지향하고 있다. 또한 줌 zoom, 스톱 모션), 달리), 긴 패닝, 시간적인 화면 재구성 등은 당시 획기적이고 새로운 영화 문법이었다.누벨바그 영화인들에게 있어서 영화는 현실처럼 리얼하지는 않지만 재미있는 훌륭한 어떤 것이라는 명제에 충실하다. 누벨바그 영화 속에 나타나는 것처럼 영화는 인생을 모방하는 예술이라기보다는 예술 자체를 모방하는 예술이었다.파스칼 보니체는 이렇게 쓰고 있다. “누벨바그는 민첩한 촬영기의 이용에 의해 영화를 거리로 나가게 한 면과 프랑스 영화 제작소의 낡은 미학과 이데올로기에 대한 어떤 반항이라는 면에 있어 긍정적인 기여를 했다.”그러나 이 반항은 영화의 혁명에 이르지 못했으며 진보적 프랑스 영화에 토대를 제공하지도 못했다. 주제에 있어서도 기존의 영화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아니었고 당대의 절박한 사회적 문제들을 회피하고 있었던 한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누벨바그는 조직화된, 그리고 폭발적인 운동으로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젊고 새로운 감독들은 기대했던 것만큼의 재주가 없어 보였으며 그들의 작품 역시 기존의 시각에서는 볼품 없거나 기본적 문법 체계도 지키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 영화들을 만들어 냈다. 작가주의적인 속성을 지닌 감독을 찬양하는 비평체계를 구축한 『까이에 뒤 시네마 Cahier du cinema』 출신의 젊은 비평가들은 스스로 비평계를 떠나 실제로 작업에 참여하는 감독들이 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사실, 그들은 처음부터 영화의 비평적 접근만을 원했던 것이 아둔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연출가와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들의 감정적인 측면의 지시에 따라 구성된 시간과 공간이라 말 할 수 있는 것이다.누벨바그의 영화인들에게 있어서 영화는 캄캄하고 제한된 극장 밖의 세계에 대한 주석이라기보다는 그들 자체의 권리로써 심사숙고하여 창조된 대상물인 것이다 이제 누벨바그는 1930년대 프랑스 영화들에서 두드러지던 어디서나 존재하는 숙명의 매카니즘을 자의성이 대신하게 되었으며 관객들은 극장을 떠난 후에도 이것을 종합해 보아야했다. 장뤽 고다르는 어떤 회견자로부터 “영화는 시작과 중간, 끝이 있어야 하지 않는가”라는 마땅찮은 질문을 받았을 때 잠깐 생각하고는 “그렇다. 그러나 항상 그런 순서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는 대답을 하였다. 엄격한 서술적 제한으로부터의 자유로움은 시간적 순서의 필요성에서라기보다는 오히려 감정(감독이나 출연자)의 지시에 따른 시간과 공간의 구성을 가능하게 하였다. 기억 속에 복잡하게 얽힌 사건들은 알랭 레네의 작품에서 그러한 방식을 통해 다루어졌다. (1960)와 함께 그전까지의 영화를 고정 영화, 이후의 영화를 현대 영화로 구분하게 만드는 하나의 이정표 같은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1960)는 누벨바그의 특징인 작가주의 정신과 장르변형 기법을 훌륭히 실현해 보였을 뿐 아니라, ‘소격 효과’)라는 새로운 영화 양식을 제시했다. 브레히트의 서사극 이론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이 양식은 영화의 줄거리나 등장인물에 대한 관객의 몰입과 동일화를 차단하려는 것으로, 미국의 고전 영화들에서 주로 나타나는 영화를 통한 이데올로기의 주입 현상을 거부하고자 하는 의도를 내포한다. 점프 컷, 카메라를 정면으로 보고 말하기, 평면적 몽타주 등이 영화 에 사용되었던 소격 효과의 예들이다. 그 후, 장뤽 고다르는 (1961), (1962), (1963), (1967) 등을 만들면서 가장 치열하게 누벨바그의 정신을 실천으로 옮긴다.이 외에도, 누벨바그에 속하는 감독들로 에릭 로메르와 자크 리베트가 거론된다. 1960년 을 내놓은 후 한
    인문/어학| 2008.05.01| 13페이지| 2,000원| 조회(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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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프랑스 누벨바그
    2007. 12. 24누벨바그 , 지금 만나러 갑니다.Presentation by“”*CONTENTSThe Road1.누벨바그의 탄생2.누벨바그의 경향3.누벨바그의 특징누벨바그의 주요 작품들5.4.누벨바그의 주요 감독들영화사적 의의6.영화의 이해*누벨바그, 무엇인가?영화의 이해새로운 물결 이라는 뜻 즉 프랑스 영화의 새로운 흐름 1950년대 중반에서 1960∼70년대 중반까지 프랑스를 중심으로 대단히 활발했던 영화 운동7누벨바그의 탄생시네마테크 프랑세즈『까이에 뒤 시네마』「프랑스 영화의 어떤 경향」실존주의 철학네오리얼리즘 운동누벨바그 출현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영화의 이해5프랑수아 트뤼포 François Truffaut의 「프랑스 영화의 어떤 경향」(1954) → 프랑스의 품질 영화 및 미국의 헐리우드 영화에 대한 비판 영화 전체의 제작과정을 지휘하고 책임질 수 있는 한 사람의 작가 auteur가 필요 → 그 작가의 역할은 다름 아닌 감독이 맡아야 한다고 강조작가주의 이론영화의 이해8누벨바그의 경향예술자체를 모방하는 예술무계획성, 자의성영상의 새로운 형식영화의 혁명에 이르지 못함영화의 이해당시 사회 문제를 회피하는 한계점을 지님9누벨바그의 특징의식적인 것은 아니나, 공통된 특징이 존재카뮈의 이방인 – 주인공의 원형이야기 구조의 느슨함과 개방성클라이막스가 없음매체에서의 안정감훨씬 더 재미있는 어떤 것영화의 이해6프랑수아 트뤼포 François Truffau장뤽 고다르 Jean-Luc Godard에릭 로메르자크 리베트클로드 샤브롤 Claude Chabrol누벨바그를 이끌어간 주요감독들누벨바그의 주요 감독들영화의 이해5좌안파 rive gauche → 알랭 레네 Alain Resnais 아네스 바르다 Agnès Varda 장 루슈 Jean Rouch 전통적인 영화제작 시스템을 계승 + 다양한 시도 → 루이 말 Rouis Malle 자크 드미 Jacques Demi누벨바그 밖의 시네아스트들영화의 이해5히로시마 내 사랑 Hiroshima mon amour (1959) 감독 : 알랭 레네 Alain Resnais 시나리오 : 마르그리트 뒤라스 Marguerite Duras 출연 : 엠마뉘엘 리바 Emmanuelle Riva 에지 오카다 Eiji Okada누벨바그의 영화대표작영화의 이해5400번의 구타 Les 400 Coups (1959)) 감독 : 프랑수아 트뤼포 François Truffau 시나리오 : 프랑수아 트뤼포 François Truffau 마르셀 무시 Marcel Moussy 출연 : 장피에르 레오 Jean-Pierre Léaud 클라레 모리에 Claire Maurier누벨바그의 영화대표작영화의 이해5네 멋대로 해라 About de souffle (1960) 감독 : 장뤽 고다르 Jean-Luc Godard 원작 : 프랑수아 트뤼포 François Truffau 출연 : 장폴 벨몽도 Jean-Paul belmondo 진 세버그 Jean Seberg누벨바그의 영화대표작영화의 이해5관객들이 현실적 판단력과 현실에 대한 주체 구성으로써 영화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메시지나 교훈을 주입식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삶과 놓여진 현실과 일상을 대비시켜 각성과 성찰의 계기를 주었다. 자의식과 주관성, 판단성, 자기 결정성을 심어주었다. 영화 미학의 새로운 관객성이 누벨바그를 통해 나타나고, 그 계기를 누벨바그 감독들이 제공하였다.누벨바그의 영화사적 의의영화의 이해Thank you.Thank you.{nameOfApplication=Sh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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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석보상절 11권
    엇던 因緣으로 如來? 나??시니?고 부톄 니?샤?→ 어떤 인연으로 여래를 낳으셨습니까? 부처님이 말씀하시되→ 나??시니잇고 : 낳+?=>낟?. 의문사가 있으면 니잇고, 의문사가 없으면 니잇가. 시는 주체높임선어말어미→ 부톄 : 부텨(평성평성)+이(거성)=>부톄(상성)→ ?: 석보상절에는 ?+이=>디, ?+?=>?, ?+?=>?디나건 오란 劫에 毗婆尸 如來ㅅ 像法 後에 나라히 이쇼? 일후미 波羅?러라 城아니 머리 뫼히 이쇼? 일후미 聖所遊居ㅣ러니→ 지난 오랜 겁에 비바시여래의 상법 후에 한 나라가 있었는데, 이름이 바라내였다. 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산이 있었는데, 이름이 성소유거였다.→ 디나건 : 지난→ 나라히 : 나라가→ 아니 머리 : 멀지 않은→ 뫼히 : 산이→ ㅣ러니 : -이더니→ 이쇼? : 이시+오+?. ‘이시다’라는 동사에 관형사형에 나타나는 선어말어미 -오-가 옴. 있으되→ 일후미 : 일후+미=>일훔>(비원순화현상)일흠>이름聖所遊居는 聖人 노녀 사?시? ?라혼 마리니 百千 ?지불이 이 뫼해 이시며 無 量 五通 神 仙이 ? 이실? 일후믈 지흐니라→ 성소유거는 성인이 노니고 사시는 곳이란 말이니, 백천의 많은 벽지불이 이 산에 있으며, 무량오통의 신선들이 또 있으므로 이름을 이렇게 붙였다.→ 혼 마리니: 하는 말이니→ 노녀 : 놀다+녀다(가다)=>놀+녀다(ㄹ이ㄴ앞에서 탈락)=>노+녀다=>노녀=>노니(동작동사-동작상 계속진행)=>노니+어(부사파생접미사)→ 뫼해 : 처소격조사. 산에→ 이시며 : 있으며→ 이실? : 있으므로→ 지흐니라: 짛다- 지허~지흐니, 짓다(作)- 지?~지?니~짓다 근데에 짓다로 합류됨. 붙였다.그 뫼해 ? 仙人 ? 남녁 堀 잇고 ? 仙人? 북녁 堀애 잇거든 두 山 ??예 ? ?미 잇고 그 ??? 平? 돌히 잇더라→ 그 산에 한 선인은 남쪽 굴에 있고, 또 한 선인은 북쪽 굴에 있었는데, 두 산 사이에 한 샘물이 있고, 그 물가에 평평한 돌이 있었다.→ 녁>녘 : 형식의존명사 방향→ ??예 : 山ㅅ ??. 사이에→ ??? : 물 가에 ㆆ는 고유어 용언 뒤에 관형사형 어미(뒷소리를 된소리로 발음하거나 끊어 읽음) 믈>물(원순모음화)→ 돌히: ?(상성-긴소리) 돌히, 돌흔, 돌?. ‘독’이라고 발음그 ? 南 녁 堀앳 仙人이 이 돌 우희 이셔 읏 ?며 발 싯고 니거늘 ? 암사?미 와 ?론 므를 먹고 모? 도?? 오좀 누는 ?? 할?니 그 사?미 삿기 ?여 ? ?거늘 그 돌 우희 도라와 슬피 울오 ? 겨지블 나??니라→ 그 때 남쪽 굴의 선인이 이 돌 위에서 옷을 빨고, 발을 씻고 가니, 한 마리 암 사슴이 와서 옷을 빤 물을 마시고 목을 돌려 오줌 눈 땅을 핥으니, 그 사슴이 새끼를 배어 달이 차서 그 돌 위에 돌아와 슬피 울고 한 여아를 낳았다.→ 그 ? : 장면전환부사→ 앳 : 애ㅅ 처격+ 소격. -에 있는, ~의→ 우희 : 우는 특이처격. 위에 웋>위→ 이셔 : 이시어→ 니거늘 : 닐어늘 아~거. 녀(용언어간)+거늘=>니(계속진행)거늘. 가거늘→ 도?? : 돌이켜. ?>켜→ 할?니 : 할?다. 핥으니→ 삿기 : 새끼→ ?여 : ?+다(영파생)→ 울오>울고. 연음되지 않았다. 자음적 성격을 지닌다.→ 나??니라: 객체존대(겸양법)그 ? 南堀앳 仙人이 사?? 우룸 쏘리 듣고 여엿비 녀겨 가보니 암사?미 ? ?니? 나하두고 할타가 仙人? 보고 나??니라→ 그 때 남쪽 굴의 선인이 선인이 사슴의 울음소리를 듣고 가엾게 여거서 가 보니, 아사슴이 한 따님을 낳아 두고 핥다가 선인을 보고 내달았다.→ 우룸 쏘리 : 우름ㅅ소리→ 어엿비 : 어엿브+()이. ㅡ 탈락.→ 할타가 : 할?다가의 줄임말그 ? 仙人이 그 ?니? 어엿비 너겨 草依로 슷봇고→ 그 때 선인이 그 따님을 가엾게 여겨 초의를 씻어→ 슷봇고 : 씻고 벗고뫼??다가 果實 ? 머겨 기르??니 나히 열네히어시? 그 아비 ?랑?야→ 모셔다가 과실을 따 먹여서 기르니 나이 열넷이거늘, 그 아비가 생각하여→ 뫼??다가 : 뫼시+?+다가→ 열네히어시? : 열네살이시거늘→ 나히 : 낳+이. 나히, 나? 나?→ ?랑?야 : 思量이 우리식 발음으로 변함. ?각草依? 프?귀 오시라→ 초의는 푸성귀 옷이다.그 아비? 仙人? 니르니라→ 그 아비는 선인을 이르는 것이다.샹녜 블 부??비? 시기??더니 ?? 조심 아니 ?샤 브를 ?긔 ?야시? 그 아비 그 ?니? 구짓고 北녁 堀애 브리?? 블 가져오라 ?야? 그 ?니미 아?라 드르샤 北堀로 가시니 거름마다 발 드르신 ?해 다 蓮花ㅣ 나니 자최? 조차 느러니 次例로 길 ?더니→ 늘 불을 붙일 차비를 시켰었는데, 하루는 조심하지 아니하셔 불을 꺼뜨리게 되셔서, 그 아비가 그 따님을 꾸짖고, 북쪽 굴에 보내서 불을 가져오라고 하니, 그 따님이 아비의 말을 들으시고 북쪽 굴로 가시는데, 발걸음 옮길 때마다 발을 들어올리신 땅에서 다 연꽃이 생겨나니 발자취를 따라서 나란히 차례로 놓여 마치 길 같더니,→ 샹녜 : 늘→ 블>(원순모음화)불→ 부??비? : 불 지키는 사람→ ?긔 ?샤 : -게 하다. 사동 시기>시키→ 구짓 : 구짖다>?→ 브리?? : 브리다. 브리+?→ 드르신 : 듣다. 떨어지는, 걷는北堀애 가 블 빌이쇼셔 ?야시 그 仙人이 이 ?니믈 福德이 자최마다 蓮花ㅣ 나논 고?보고 닐오?→ 북쪽 굴에 가서 불을 빌려주소서 하시니까, 그 선인이 이 따님의 복덕 자취마다 연꽃이 나는 것을 보고 말하기를,→ 이쇼셔 : 이시오+시어=>이쇼셔. 아주높임블옷 얻고져 ?거든 네 올? 녀그로 내 堀? 닐굽 번 ?돌라→ 불을 얻고자 하거든 네가 오른편으로 내 굴을 일곱 번 감돌아라 하였다.→ 블옷 : 블을 옷은 다짐을 나타내는 보조사→ 올?: 올?>(울림소리 사이에서 ㅎ탈락)올?>(ㆍ의 1단계변화)오른→ 녀그로 : 녁>녁. 쪽, 방향→ ?돌라 : 감돌아라. 순수 국어에서 울림소리 사이의 사잇소리로그 ?니미 닐은 야?로 ?고 니거시? 이?고 波羅婆왕이 한 ?? 더블오 그 뫼해 山行 가샤 北堀애 仙人 잇? ? 가 보시니 蓮花ㅣ 堀? 들어 느러니 냇거늘 大王이 과?샤 稱讚?샤?→ 그 따님이 선인이 이른 모양으로 하고 불을 얻어서 돌아갔는데, 이윽고 바라내왕이 많은 사람을 더불고 그 산에 사냥을 가셔서 북쪽 굴의 선인 있는 데 가보시니, 연꽃이 굴을 빙 둘러 나란히 나 있기에, 대왕이 칭찬하시기를,→ 야?로 : 양. 모양으로→ 이?고>이윽고 ㅅ>ㅿ>?→ 더블오 : 더블+오 더블다>(원순모음화)더불다→ 냇거늘 : 났거늘→ 과?샤 : 칭찬하셔됴?쎠 됴?쎠 大德 大山이 福德이 노?샤 이러?샷다 하야시?→ 좋구나! 좋구나! 대덕 대선이 복덕이 높으셔서 이러하도다고 하시니→ 됴?쎠 : 둏다.(好)>죻다>좋다→ 노?샤 : 높+?+시어仙人이 王? ??? 大王하 아?쇼셔 이 蓮花? 내? 어디로미 아니니?다→ 선인이 왕께 아뢰되, 대왕이시여, 아소서, 이 연꽃은 나의 어질음이 아닙니다.→ 아라쇼셔 : 아소서. 아주높임→ ? : 여격의 존칭은 사람+(?/의)→ 어디로미 : 어질음이王이 니?샤? 大師 ?샨 일 아니면 뉘 혼거시?고→ 왕이 말씀하시기를 대사가 하신 일이 아니면 누가 한 것입니까?→ 니?샤 : 이르시어→ 뉘 혼: 누가 한→ 거시?고 : 것입니까? 의문사가 있으면 니잇고大師? 큰 스스이니 그 仙人? 니르시니라→ 대사는 큰 스승이니, 그 선인을 이르시는 것이다.仙人이 ??? 大王하 이 南堀ㅅ 仙人이 ? ?? 길어 내니 양? 端正하고 世間애 쉽디 몯?니 그 ? ?? 時節에 자최마다 蓮花ㅣ 나?니?다→ 선인이 아뢰되, 대왕이시여, 이 남쪽 굴의 선인이 한 따님을 길러내니, 모습이 단정하고, 세간에 만나기 쉽지 못하니, 그 딸이 움직일 때에 발자취마다 연꽃이 나는 것입니다.→ 길어>길러→ ?? : 움직일→ 나?니?다 : 나는 생기는 것입니다.왕이 드르시고 즉자히 南堀애 가샤 뎌 仙人? 보샤 禮數 ?시고 니?샤? ?? 두겨시다 듣고 婚姻? 求?노이다→ 왕이 들으시고 곧, 남쪽 굴에 가셔서 저 선인을 만나보셔 예배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딸을 두고 계신다는 말을 듣고 혼인을 구합니다.→ 즉자히 : 즉시仙人이 ??? 내 ? ?? 뒤쇼? 져머 어리고 아? ?브텨 深山애 이셔 사?? 이리 설우르고 플옷 닙고 나못 여름 먹?니 王이 므슴호려 져주시?니 잇고 ? 이 ?? 畜生? 나혼거시이다 ?고 根源을 다 ???→ 선인이 아뢰기를, 내가 한 딸을 두었으되, 어려서 어리석고 아이때부터 깊은 산ㄴ에 있어서 사람의 일은 설고, 풀옷을 입고 나무 열매를 먹으니, 왕은 무엇하려고 물으십니까? 또 이 딸은 축생이 낳은 것입니다. 하고, 근원을 다 아뢰니까
    인문/어학| 2008.01.23| 6페이지| 1,500원| 조회(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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