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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스카와일드와 그의동화분석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동화와 그의 동화 같은 삶'오스카 와일드와 동화문학'에 대해Ⅰ. 서론오스카 와일드는 손으로 꼽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천재적 작가이다. 시, 소설, 평론, 희곡들을 많이 썼는데 어린이를 위해 두 권의 동화책도 펴냈다. 그는 '예술을 위한 예술'을 부르짖으며 아름다운 것을 따르는 탐미주의 작가가 되었다. 그래서 그를 예술지상주의의 대표자로 부른다. 시로 뉴디기트 상을 수상해 런던 사교계에서 인기와 비난을 동시에 차지하기 했다. 오스카 와일드는 운동을 싫어하고 고독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시와 그리스 고전읽기를 좋아한 그는 옥스퍼드 모들린 대학 장학생으로 입학해서는 괴상한 머리모양과 옷차림을 하고 '유미주의 사도'라고 자처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당시 사회로부터는 거부당한 천재였지만 그의 동화와 여러 작품들은 오늘날까지 전 세계 어린이들은 물론 어른들에게도 깊은 감동을 주고 있다.와 같은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를 쓰면서도 나, 의 마지막처럼 '세상은 동화처럼 늘 착한 결말로 끝나지는 않는다.' 는 식의 따끔한 교훈을 주기도 한 와일드. 그의 일생은 과연 어떠한 동화 같았을 지 알아보았다.Ⅱ 오스카와일드의 삶- 인생과 예술 그리고 동성애■ 세헤라자드의 축소판. 오스카 와일드.오스카 와일드는 당대의 가장 훌륭한 이야기꾼이었다. 그의 많은 친구들은 그가 말하는 이야기 속에 그만의 특별한 천재성이 가장 잘 표현되어있다고 믿었다. 와일드는 풍부한 이야기 자원을 가지고 있었다. 한 친구는 그가 아라비안나이트에서 왕의 아내였던 세헤라자드의 축소판을 몸속에 지니고 있는 것처럼 그가 컨트롤 하거나 예견할 수 없는 방법으로 이야기 후에 또 다른 이야기를 끊임없이 창조해냈다고 한다.그는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창조해내거나 이미 한 적 있는 이야기를 다시 다듬어 하기도 했다. 이야기를 마친 후 감탄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그의 청중들이 반응을 보이면, 그는 또 다른 이야기를 창조하곤 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적 있는 어떤 이가 말하길 보석이 금줄에 서청난 영향력청중에 대한 그의 이야기의 영향력은 실로 대단했다. 그의 청중들 대다수가 그가 이야기하는 도중 공공연하게 눈물을 닦아냈고, 그가 이야기하는 동안에 그에게서 광채가 나오기도 한다고 묘사하기까지 했다. 한 예로, 한 만찬에 참석한 손님은 자신이 그의 머리 주위에서 광채를 보았다며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이는 그 누구도 그가 던지는 매혹적인 '주문'을 물리칠 수 없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화라 할 수 있다.오스카 와일드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때로는 자극받고, 때로는 매혹되기도 했다. 아마 다른 누구보다도 더 많은 이야기를 들었을 알프레드 더글러스 경의 반응은 우리가 와일드의 능력과 청중을 향한 마법과도 같은 무언가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많은 이들이 그의 불가사의한 힘에 빠져들었다. 예를 들어, 시인이었던 Ernest Dowson은 와일드가 자신과 같은 공인된 비관론자에게조차 영향을 미치는 생명력과 환희를 발산한다고 했다. 프랭크 해리스는 와일드의 이야기가 고열에 시달리는 자신을 치료해주었다고 했으며, 끔찍한 치통에 시달리던 한 친구는 한 시간 넘게 와일드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어느 샌가 치통이 사라졌다고 회상했다.■ 이야기꾼일 수밖에 없었던 와일드.와일드의 민감성은 사람들이 그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밖에 없도록 한다. 이야기꾼으로서의 와일드의 가장 필수적 천재성으로 그의 청중에 대한 민감성을 꼽을 수 있다. 시인에게는 복잡한 철학적 우화로 이야기하고, 아이들에게는 같은 이야기를 흥미진진한 판타지 소설로 포장해 이야기 한다. 와일드는 하나의 내용을 이야기 할 때마다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로 재창조 하는 것이다.그렇기 때문에 그의 ‘한 가지’이야기는 ‘한 가지’가 아닌 다른 여러 모습으로 카멜레온처럼 변한다.그의 청중은 그러한 와일드의 모습에 빨려 들어가고 와일드 또한 이러한 행동으로 이야기를 꾸준히 창조하고 다듬을 수 있게 되었다.일화로 프랭크 해리스는 오찬을 자주 열었다. 그는 그 오찬에 주로 예술가, 귀족, 작가들을 초대하곤 몇몇 청중들은 와일드가 말할 때 그는 멍해 보이거나 반쯤 졸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고, 다른 이들은 그가 이야기를 하면서 동시에 주의 깊게 듣고 자신이 만들어낸 이야기에 경탄하는 것 같았다고 묘사했다.오스카 와일드는 음악적 발성이 이야기를 꾸미는 중요 요소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의 빨려 들어가는 듯 한 목소리와 리듬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니었다. 아일랜드를 떠나 영국으로 건너간 그는 그런 말투를 얻기 위해 근면히 노력했고 조금씩 그는 자신의 아일랜드 사투리 대신 명확한 영국식 느린 말투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의 말투는 따뜻하고 풍부하였으며 선율이 고우면서도 무기력했다.그의 한 친구는 와일드를 '멈추거나 주저하지 않고 침착하고 부드럽게 흐르는 말투'라고 했다.다른 사람은 와일드의 이러한 말투가 평범한 단어들을 기분을 북돋우는 와인처럼변형시키는 힘을 지녔다고 언급했다.와일드의 말투가 아름다운 멜로디와 같았다면 와일드 특유의 제스처는 멜로디를 더 아름답게 만드는 반주와도 같았다. 이야기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얼마나 잘 형상화 시켜서 보여주고 청중을 얼마나 빨아들이는가 이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담배를 불 속으로 던지거나 그의 팔을 들어 올려 손이 소매에서 나올 수 있게 하곤 했다. 말하는 동안에는 오른손을 이미지나 캐릭터를 불러내기라도 하듯 끊임없이 움직여대고 왼손으로는 자신의 창백한 얼굴을 쓰다듬거나 웃을 때 보일 수 있는 치아를 가리곤 했다. 게다가 손을 움직일 때마다 반짝거리는 에메랄드 반지는 그의 이야기에 중독이 되게 만들 정도였다고 한다. 다른 이들과 함께 있는 와일드를 상상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자신의 입술 위로 집게손가락을 대곤 했다. 그의 음악적 말투와 웃음소리, 그리고 열정적인 눈빛은 그의 외모가 매력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들 조차 그에게 빠지게 만들었다. 전염성을 가진 그의 웃음과 눈빛은 이야기 못지않게 흥미진진했으며 심지어는 그의 적들까지도 유혹하고 압도할 수 있었다.■천재성을 낭비한 와일드?천재성을 낭비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도일화가 있다. 언제나처럼 와일드는 여러 이야기를 해주고 있었고 그의 이야기에 심취해있던 패트리지가 하루는 그에게 그 이야기를 써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그걸 글로 쓰는 것은 '지겨운 일'이라며 거절했다고 한다.사실 그가 이야기 하는걸 들은 이들은 그의 작품을 읽었을 때 실망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책은 그의 제스처와 음악적 리듬을 가진 말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고 그의 청중들에게 있어 그 이야기들은 문자로 쓰이면서 그 생명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그가 엄청난 이야기꾼이었음을 알게 한다.하지만 1885년 캠브리지를 방문했을 때 와일드는 학부생들과 만찬을 즐겼고, 그들에게 '행복한 왕자'를 들려주었다. 역시 대다수의 학생들은 그의 이야기에 푹 빠져들었고 그러한 학생들을 보고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오면서 그 이야기를 글로 쓰기고 결심했다고 한다. 또한 후에는 희곡도 작성하는 등 여러 가지 글을 쓰기도 했다.■ 아버지 와일드오스카 와일드는 아이들을 위해 동화를 짓는 것이 모든 아빠들의 의무라고 말한 적 있다. 그는 모험이야기, 아일랜드 전설, 자신이 쓴 동화들을 두 아들에게 이야기해주곤 했다. 유명한 일화가 있다. 어느 날 밤 와일드가 '욕심쟁이 거인‘을 읽어 준 후 눈에 눈물이 맺히자 큰 아들인 시릴이 왜 우는지 물었다. 그러자 와일드는 정말로 아름다운 것들은 항상 자신을 눈물짓게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와일드의 막내 비비안은 후에 그와 그의 형에게 자신의 아버지가 많은 이야기를 들러주었다고 했다. 비비안은 아버지 와일드가 해줬던 그 이야기들을 모두 기억할 순 없을 것이다.하지만 그의 복잡하고 흥미진진했던 우화는아이들이 전부 이해하거나 기억할 순 없어도 매우 신기하고 매혹적인 기억으로 남는다.■ 18세부터 80세를 위하여와일드는 아이들에게 '유치한' 이야기를 말해주며 그들의 수준에 맞추려 들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시인이나 정치인들에게 얘기하는 것과 똑같은 우화나 성서 이야기를 해주었다. 사실, 그는 종종 어른들에애 혐의로 기소되어 재판 결과 유죄판결을 받고 2년 동안 레딩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영국 법은 처벌로 그를 내몰았고, 영국 사회는 추방과 배척으로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와일드가 감옥을 나온 후에는 글쓰기를 거의 중단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사회적 지위 상실, 적으로부터의 모욕, 친구들의 외면 등은 그가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자료들에서 말년의 오스카 와일드는 '방랑자'나 '비운의 사나이'. '떠돌이 개 취급을 받은 사람'등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토록 그의 말년은 비참했다.그의 부인은 그와 멀리 떨어진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했으며(중간에 이혼도 했고), 그는 그의 아들들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서로를 싫어했던 사람들과의 끔찍한 대결도 있었다. 또한 그가 도와왔던 사람들은 어느 샌가 그를 잊어버렸으며 모두 그를 외면했다.Ⅲ 주요동화와 줄거리- 행복한 왕자, 욕심쟁이 거인, 진정한 우정, 별에서 온 아이■ 행복한 왕자는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도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높은 기둥에 행복한 왕자의 동상이 서 있었다. 왕자는 도시의 어둡고 가려진 곳에 사는 가난하고 가엾은 사람들을 돕고 싶어 했다. 왕자는 우연히 그곳에 날아온 제비에게 자신의 몸에 붙어있는 금 조각과 보석들을 그 사람들에게 날라다 주게 한다. 제비가 날라다준 보석과 금박을 받은 가난한 이들은 잃었던 웃음을 되찾는다. 화려하고 늠름했던 행복한 왕자 동상이 흉측한 모습이 되자 사람들은 그를 용광로에 던져 녹여버리고 만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의 심장만은 녹지 않고 남는다.■ 욕심쟁이 거인은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 가운데 가장 단순한 구성으로 이루어진 작품이자, 그가 즐겨 다루었던 종교적인 상징이 처음으로 드러나는 작품이기도 한다. 욕심쟁이 거인은 7년 동안 비어있어 아이들의 놀이터가 된 정원의 주인이다. 어느 날 정원에 돌아온 거인은 담을 높이 쌓고 경고판을 붙인 뒤 아이들을 모두 쫓아내 버린다. 그곳에는 늘 추운바람만 부는 겨울이 지속된다. 향기로다.
    인문/어학| 2006.11.30| 10페이지| 1,000원| 조회(7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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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술관보고서 - 믿거나말거나박물관
    BELIEVE IT OR NOT일민 미술관 ‘믿거나 말거나 박물관’전 을 다녀와서+ 전시기간 : 2006년 09월 01일 ~ 10월 15일+ 주최 : 일민미술관+ 구분 : 단체,기업전시회+ 담당자 : 일민미술관+ 장소 : 일민미술관 1, 2, 3 전시실+ URL : http://www.ilmin.org/+연출 : 최정화“대중이라는 이름의 당신은 주인공이 되어 백화점의 미로를 걷듯이어떠한 지식이나 두려움 없이 미술관 안팎을 그저 걸으며 즐기면 된다.눈에 들어오는 것이 누구의 작품 인지, 어느 나라 공장의 제조품 인지애써 알려고 할 필요가 없다.어느 폐교에서 퍼온 동상인지, 어느 가게의 마네킹인지,그리고 그 동상과 마네킹이 인체비례에 맞게 제작되었는지도 살필 필요가 없다.형형색색의 바구니 벽이 단지 벽인지 작품인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그 모든 게 바로 당신의 눈앞에 펼쳐져 있고 당신은 보는 재미를 느끼면 되니까.그리고, 믿거나 말거나, 세상은 울트라 박물관이니까.”미술관. 부담스럽다. 왠지 청바지를 입고는 갈 수 없을 것 같고 그림을 보면 무언가 아는 척이라도 해야 될 것 같은데 생소한 표정을 짓고 있자니 어지간히 어색한 일이 될 것이다.미술관이 전혀 어색한 나는 아니지만 어렸을 때야 아무것도 모르고 엄마 아빠 손잡고 놀러 다닌 것이 이었으니……. 또한 그때는 아무것도 몰라도 부끄러울 나이는 아녔지 않는가. 하지만 이제 와서 가는 미술관은 일단 의상부터 고려해야 될 것 같은 느낌이다.하지만 일민미술관에서 개최한 ‘믿거나 말거나 박물관’. 일단 청바지를 입고 가도 될 것 같아 마음에 들었던 전시회이다. 정확한 뜻은 모르지만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키치? 그래, 키치 미술 냄새가 폴폴 났던 미술관.입구에서부터 눈에 띈 독특한 화환이 나에게 첫 웃음을 자아내게 하였다. 도곡동 유여사가 보냈다는 고무장갑 화환. 입구에서부터 모든 사람들의 눈에 띄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유리로 마감된 미술관 한쪽 벽면 1층에는 말린 나뭇잎이, 2, 3층에는 알록달록한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온갖 종류의 나뭇잎을 코팅해 붙여놓은 유리벽은 그냥 벽이 아니었다. 코팅된 나뭇잎만으로 예술이 되어버린 유리벽. 그다지 어려운 작업도 아닌 것 같은데 왜 난 생각해 내지 못했을까. 아마도 이것이 예술가와 일반인의 차이일 것이다. 내가 만들면 나뭇잎이 덕지덕지 붙은 지저분한 벽이 되고 미술가가 하면 예술이 되는 것이겠지.최정화가 말했다.“현대미술은 정답이 없다. 저마다 작품을 보고 느끼는 게 있다면 그게 바로 정답이다.”작가 최정화는 박물관 또는 미술관에 대한 대중의 경계심을 깸으로써 예술에 대한 부담을 덜어내고자 했다고 한다. 다소 과격한 말들이 이어졌다. 자신에게는 애초에 예술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자신이 하는 것은 예술이 아니며, 예술이길 바란 적조차 없으며, 그 결과물은 작품이 아닌 상품일 뿐이라고. 이미 그는 예술이라는 잣대를 놓고 봤을 때 절대적으로 수긍하기 어려운 작업들을 선보여 왔다.그래, 예술이란 좀 도도해야 한다. 귀족 부인과 같으면서도 여우같고 알듯 하면서도 모르겠는 신비성도 좀 있어야 한다.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 앞에서도 말했지만 청바지를 입고는 관람하면 안 될 것만 같은 - 숭고미를 갖고 있는 것이 예술이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예술가가 아니라고 했다. 자신의 결과물은 작품이 아닌 상품이라고 했다.예술이면서 예술이 아닌 모호하고 아찔한 선에 그가 서있었다.그렇다면 최정화는…….현대미술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작가는 “현대미술은 나의 취미”라고 간단히 대답한다. 생활이 곧 미술인 그에게는 생산하고 소비하는 현대사회의 시스템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최정화는 생산의 주체마저 사회에 맡겨버린다. 결코 숭고하게 여겨지지 못했던 많은 공산품들을 재료로써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믿으며, 이를 자신의 안목으로 조합하고 구성하는 일이 그의 취미인 것이다. 이 안목이 예술과 쓰레기 더미를 구분하며 우울한 일이지만 작가와 나의 차이를 만들었다. 하찮은 물건과 그렇지 않은 요긴한 물건을 고르는 일이 그의 취미라니 역시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다.‘비니루’가 소파가 되었다.분명 공사판이나 포장마차에서나 볼 수 있던 비니루가(이 때 이건 절대 ‘비닐’이 아닌 ‘비니루’여야 한다)몇 백만 원 짜리 이름표를 달고 상품이, 예술 작품이 되었다.수많은 쟁반들.쟁반을 저렇게 놓고 보니 참 색다르다.‘어떻게 전시하느냐’에 따라 물건들이 얼마까지 다르게 보일까.조명을 내리쬔 쟁반그림자 역시 하나의 작품이 되었다.미술관 내부에는 시장과 거리에서 수집해온 오만가지 잡동사니와 미술품이 뒤엉켜 있고 전시실 벽면은 형광분홍, 진보라 등 원색으로 도색돼 있다. 이게 정말 예술이가 싶을 만큼 황당했던 소주잔에서부터 명품 루이비통 소파까지. 사실 소파에 가격이 붙어 있는 것에도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부분 미술관에서 가격을 묻는 다는 것은 부끄러운 행동이며 이건 기본 교양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예술품에 아예 가격이 붙어있다니. 이건 그 어떤 예술품보다도 파격적이다. 어쨌든 1층은 온갖 인형들과 석고상들. 식상하지만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현이 가장 적당했다. 알 수없는 온갖 장르의 물건들을 굳이 종합해 말하자면 현대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사물들이랄까. 빽빽하게 배치되어 있는 물건들이 압박감까지 주었던 1층이었다.카메라만 가지고 왔다고 해도 최소한 입장료 3000원은 아깝지 않을 듯한 2층은 온갖 재료로 덧씌운 의자와 탁자, 옷과 쌈지마켓에서 파는 작품들이 즐비하다. 또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부터 눈에 띄었던 바구니는 전시실 까지 둘러싸고 있었다. 유리 벽면에 설치한 플라스틱 바구니만 해도 만개는 넘어 보이는데 전시장 안에 있는 바구니는 그에 배는 될 듯 했다.전시장에는 현대미술품 컬렉터라면 침흘릴만한 댄 플레빈의 수억 원짜리 형광등작품이 아무런 제목 없이 매달려있는가 하면 태국서 쓰는 소쿠리 3만여 개가 곳곳에 무대기로 쌓여있기도 했다. 또한 쌈지아트마켓에서 가져온 '낸시 랭 밀크'판화와 강영민의 '웃는 태극기'액자들이 줄줄이 걸려 있었다.태국, 독일, 중국, 한국 등에서 제조되었다는 갖가지 공산품으로 가득한 2층은'예술과 비예술품인 공산품이 짬뽕된 도떼기시장' 같았다.3층에는 마음대로 던지며 노는 자석덩어리가 마련돼 있다. 무언가 신난다. 미술관의 전시물들은 대개 ‘만지지 마시오.’ 라는 글귀가 있기 마련인데 여기엔 이것은 자석이니 자신의 핸드폰과 mp3 등을 조심하란다. 집에 있었으면 만지지도 않았을 자석인데 아이들은 모두 괜히 만지고 던지고 신나보였다. 모름지기 이런 데에서는 이런 것들 한번쯤은 꼭 만져봐야 되는 법이다. 나도 몇 번 조몰락거리며 만지며 던져봤는데 은근히 재미가 쏠쏠하다.
    예체능| 2006.11.30| 7페이지| 1,000원| 조회(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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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후감]행복한왕자-동화분석 평가A좋아요
    행복한 왕자처럼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의 편에서그들을 위해 힘이 되어 주려는 따뜻한 마음과제비처럼 헌신적이고 아름다운 우정을 가질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오스카 와일드의 를 읽고가정아동복지학부 김초롱우리는 오랜 세월동안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교훈을 선물해 준 문학 작품에 ‘명작’이란 훈장을 붙여준다. 사람들은 수십 년 전에도 명작을 읽으며 꿈을 키웠고 자신을 반성하며, 사랑하는 마음을 키웠다. 명작은 깊은 울림을 담아 우리들의 삶을 행복하게 변화시켜준다. 지금은 물론 백년이 지나도 그 빛을 잃지 않는 보석 같은 이야기. 지난 수십 년 동안 거의 모든 세상 사람들이 한 번씩 읽고 감동에 젖었던 걸작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 그중에서도 가장 알려진 ‘행복한 왕자’에 대해 쓰려고 한다.행복한 왕자는 도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높은 기둥에 서 있는 동상이다. 그 시의 의원이 행복한 왕자님 동상은 수탉 모양의 풍향계만큼이나 멋지다고 말했을 만큼 순금과 사파이어, 루비 등 보석으로 만들어진 동상의 화려하고 늠름한 모습을 보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탄성을 올린다.“만약 즐거운 것을 행복이라고 한다면 난 참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어.나는 그렇게 행복하게 살다가 행복하게 죽었지. 그런데 내가 죽자 사람들은 나를 높은 곳에다 동상으로 만들어 세워 놓았어. 이도시의 온갖 추한 것과 비참한 것이 다 보이는 이곳에 말이야.비록 내 심장이 납으로 만들어 졌지만 이렇게 하염없이 눈물이 나는구나.”살아서 인간의 심장을 갖고 있었을 때는 보지 못했던 도시의 추함과 비참함을 다 본 왕자는 마음이 아파 눈물을 흘리며 도시의 어둡고 가려진 곳에 사는 가난하고 가엾은 사람들을 돕고 싶어 한다. 그리고는 어느 날 우연히 만난 제비에게 자신의 몸에 붙어 있는 금조각과 보석들을 그들에게 날라다 주게 한다. 삯바느질을 하는 가난한 여인에게, 다락방에 사는 희곡을 쓰는 젊은이에게, 성냥을 몽땅 하수구에 빠트려 곤경에 처한 성냥팔이 소녀에게, 그렇게 추위에 떠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몸에 있는 보석과 금들을 나누어 주었다.결국 동상이 흉측한 모습으로 변하였다. 이제 사람들은 행복한 왕자를 보고 흉측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름다움을 잃었으니 더 이상 쓸모가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행복한 왕자를 용광로에 던져 녹여 버리기로 했다. 그러나 용광로에서 동상을 녹이던 주물공장 공장장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렇게 말했다.“참으로 이상한 일이야. 이 깨어진 납 심장은 용광로 속에서도 녹질 않아.”이상하게도 녹지 않았던 그의 심장은 제비가 버려진 쓰레기통에 같이 버려졌다.세상 곳곳을 날아다니며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하다가 혼자 뒤처진 제비는 하룻밤을 쉬어 가려고 행복한 왕자의 동상에 내려앉는다. 처음엔 황금빛 두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고 가슴이 아파 왕자의 부탁을 들어주고 곧 친구 제비들을 따라가려고 한다.“이상해요. 날씨는 추운데……. 아주 따뜻한 느낌이에요.”“그건 네가 착한 일을 했기 때문이란다.”처음에는 어쩔 수 없이 겨우겨우 왕자의 부탁을 들어주던 제비였다. 그러나 어느새 따스한 마음을 갖게 된 제비는 왕자와 정이 들어 초라해지고 눈도 보이지 않게 된 왕자만 놔두고 떠날 수가 없어 결국 추운 겨울을 왕자와 함께 보낸다. 그렇게 왕자의 발이 되고 눈이 되어 주었던 제비는 결국 왕자 곁에서 얼어 죽고 만다.“사랑하는 왕자님, 안녕히 계세요.”아일랜드에서 태어난 오스카 와일드는 시인이자 극작가, 그리고 소설가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가 지은 2권의 동화집도 오랜 세월 동안,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에게까지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집은 지금까지 수없이 팔렸을 뿐만 아니라, 텔레비전 드라마, 영화, 만화, 오페라 등으로 꾸며져 인기가 높았다.오스카 와일드는 타고난 이야기꾼이었다고 한다. 그는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을 글 쓰는 일보다 더 즐겼다는데, 이야기를 할 때는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했다고 한다. 도 원래는 케임브리지 대학을 찾은 그가 친구들에게 들려준 이야기에서 시작되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친구들이 모두 감동받자 나중에 글로 옮겼다고 했다.를 다시 읽으면서 동화가 단순히 아이들만 염두에 두고 쓴 글은 아니라는 생각을 다시 했다. 어린이와, 어린이처럼 세상을 순수하게 볼 수 있는 어른들까지 짧은 이야기 속에서 삶의 아름다움과 단순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진리를 찾을 수 있는 모두의 이야기 일 것이다. ‘동화’란 독자들의 공통된 생각이 가장 쉬운 문장 안에 담겨 있는 장르다. 자아가 형성되기 전의 어린이들은 달이 날쳐다보고 여우가 말하며 새들이 노래한다고 생각하고 동화속의 세계와 현실을 함께 보며 같이 느낄 것이다. 하지만 어른들에게 있어 동화를 다시 읽고, 또한 몰입이 된다는 것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닐까. 동화는 - 상상하기 나름인 - ‘마술 펜으로 신비로운 세계를 상징적인 언어로 쓴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른만이 그 상징적인 언어 속에 담겨있는 작가의 ‘진짜’ 이야기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19세기는 갑자기 사람들이 돈보다 못한 존재가 되기 시작했던 물질만능의 시대, 남의 나라 남의 땅을 빼앗고 권위주의적 정치적 분위기가 만연한 시대였다. 그러기에 오스카 와일드는 더욱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지 않았을까.아름다운 입으로 아름다운 이야기만 할 줄 알았던 오스카 와일드는당시 누구보다도 잘못된 가치관을 바로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한 작가였다.사람으로 살았을 때 왕자의 화려했던 생활은 불행한 사람들에게 무관심하고 무지한 빅토리아 시대의 부자들을 떠올리게 한다. 죽은 뒤에 아름다운 예술 작품으로 다시 태어난 왕자는 자기희생을 치르는 순교자가 된다. 사실 말고도 이나, 등에서도 모두 비슷한 교훈을 준다. 이러한 동화 속에서 오스카 와일드는, 한결같이 사랑하는 삶, 더불어 나누는 삶이야말로 가장 아름답고 풍요로운 모습이라고 말하고 있다. 비인간적이고 잔인하고 냉정하기 짝이 없는 그 시대, 아니 현재의 우리에게까지 말하고 싶었던 그만의 대안이었을 것이다.
    독후감/창작| 2006.11.30| 5페이지| 1,000원| 조회(1,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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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감상문]시간
    돌아오지만 돌아오지못한 시간툭, (쨍그랑)“어머! 죄송합니다. 제가 다시틀에 끼워 드릴께요. 이 자리에서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시작과 끝장면이 같았다. 아마 김기덕 감독이 우리에게 주는 '느낌'일 것이며 집에 돌아가는 길에도 계속 생각해보게 할 '과제'일 것이다. '시간'역시 김기덕 풍의 모더니즘 냄새가 물씬 느껴지는 영화.누워있는 조각상을 안고 있는 성현아의 포스터. 시간과 사랑의 절묘하고도 아찔한 조화가 어쩌면 코드가 성형이 될 수 있었을 법하면서도 그렇지 못했던 이유가 아닐까싶다. 세희는 시간을 잡고 싶었던 걸까. 지우를 잡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지우를 잡기위해 시간을 잡아야했던 걸까.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바뀌는 것은 모두가아는 진리. 사랑도 예외일수 없다. 그러한 시간과 사랑을 두려워하는 ‘세희’ 아니 ‘우리 모두’의 이야기.‘세희’ 가 깬 액자가 ‘새희’였고 그 ‘세희’가 다시 ‘새희’가 되어 액자를 깨는 절묘한 조화. 그누구도 붙잡을수 없는 시간이라지만 서로가 사라졌던 두 번의 6개월의 반복 후 다시 돌아오는 시간. 하지만 우리가 같은장면 같은 대사를 보고도 영화가 시작했을 때와 끝났을 때가 다르다고 느껴진 이유는 무엇일까. 같으면서도 다르고 가는듯 돌아오는 것은 어쩌면 이영화의 매력일지도 모르겠다.사람이라면 누구나 시간을 두려워하기 마련이다. 나또한 예외일수 없고 지나간 시간에 대한 후회나 그리움이 많은 편이라 계획을 짤때도 항상 시간을 쪼개어 쓰는 이러한 나의 습관은 이를 증명해준다. 아마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보다 더하리라. 멈추지 않는 시간 앞에서 연인들은 얼마나 초조해질까. 그러한 걱정과 염려는 세희처럼 때론 집착과 욕심으로 바뀌기도 할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시간이 더욱 무서웠다.자신의 모든 모습을 지우고 새로 바꿔야 될 결심을 할 만큼... 희생적이면서도 미련한 그녀의 욕심일지몰라도 그녀는 절실했다. 그러나 그녀의 무모한 결심에 따르는 비극은 검은 눈물뿐이였다.
    독후감/창작| 2006.11.30| 2페이지| 1,000원| 조회(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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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인복지
    현재 우리나라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사회복지분야- 필요이유, 분야 실시 방법서론우리 사회는 지금 평균수명의 연장으로 노인인구가 증가하고, 출산율이 낮아지면서 아동의 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인구의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세계 유래 없이 고령화가 급속히 진전됨에 따라서 한국은 다양한 노인문제를 겪고 있고 노인복지 서비스를 필요로 한다.조사결과 실제 우리나라 노인은 소득의 감소와 빈곤, 노화와 질병, 가족보호의 취약 등으로 인해 많은 소외를 겪고 있었다. 또한 복지서비스도 일부 대도시에 집중되어 있고 주요 도시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지역에서는 노인들에게 제대로 서비스가 이루어 지지 않고 있음을 발견했다. 실제 나의 친조모께서도 서울에 사실 때에는 노인대학에 다니시며 장구와 같은 많은 취미생활도 하시고 많은 친구 분들과 어울리기도 하며 즐겁게 시간을 보내셨지만 서울 외곽으로 이사를 가고나니 제대로 된 복지 시스템이 없다고 불만을 말씀해 주셨다. 노인복지회관이나 노인대학과 같은 시스템이 발달되어 있지 않아 교회 구역모임이나 동네 분들하고만 연락하시며 지낸다고. 사실 이러한 문제들은 어느 나라 노인이나 공통으로 겪고 있지만, 한국은 반세기만에 농업과 농민이 중심이 된 사회에서 도시의 상공업과 임금노동자가 중심이 된 사회로 바뀌면서 더 큰 충격을 안고 있다.또한 현세대 우리나라 노인들은 우리나라가 정치적으로 혼란하고 경제적으로 궁핍했던 시기를 살아온 분들이다. 이들의 대부분은 일제의 식민지 시대에 태어나 나라를 빼앗긴 국민으로 온갖 탄압과 빈곤 속에서 성장기를 보냈다.이들은 제2차 대전과 해방, 남·북이 갈라지는 민족상잔의 동란과 그 이후의 군사 정권 하에서의 남·북 대립의 긴장과 불안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일을 하고 가정을 지키신 분이다. 사실상 거의 희생에 가까운 삶은 사신 분들이지만 정작 자신의 삶과 노후의 대책은 세우지 못하셨다. 설상가상으로 이들은 자신이 늙었을 때 자녀들에게 의지하며 살겠다는 생각과 기대로 살아왔지만 (그 시대에는 당연한 생각이었지만) 현 주거나 보충하여 주며, 사회적 적응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노인복지에 관련되는 활동은 공공과 민간차원의 모든 활동을 포함하며, 계획에 의하여 조직적으로 이루어지는 활동이어야 하겠다.Ⅱ 노인문제의 개념과 노인문제의 발생원인1. 노인문제 [老人問題]: 급속한 사회변동으로 일어난 사회문제 중 노인에 관련된 문제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노인문제를 빈곤(貧困), 병고(病苦), 고독(孤獨), 무위(無爲) 등의 4고(四苦)로 표현하고, 때로는 빈곤, 병고, 고독의 3악(三惡)으로 말하기도 한다. 노인이 퇴직 후 소득감소에서 오는 생계비 문제, 노후에 자주 경험하는 만성질환과 심신쇠약으로 인한 건강문제, 은퇴 후 가정과 사회에서의 역할상실 및 지위의 저하, 그리고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고독감, 소외감 등은 현대노인들이 당면하고 있는 공통적인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노인문제를 기능별로 분류하여 보면 경제적 빈곤문제, 신체적 건강문제, 사회참여 문제, 심리적 고독감 등으로 나눌 수도 있다. 대체로 후진국에서의 노인문제는 빈곤문제와 건강문제가 급선무로 되어있으나, 복지 선진국에서는 노인들의 빈곤문제나 건강문제는 사회보장제도와 의료보호제도로 해결해 나가고 있으며, 여가활동이나 사회참여 그리고 고독감 등의 사회?심리적 문제들을 노인복지의 중요한 과제로 다루고 있다.2. 노인문제 원인1) 경제적인 문제(빈곤의 문제)현재 우리나라 노인들의 대다수는 가난하다. 노후생계를 위한 준비가 없었기 때문이다. 경제성장에 따른 생활개선과 의료기술의 발달로 수명이 연장되고 고령인구가 증가하고 있으나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노후대책을 세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노인들은 정작 자신들은 자녀양육비의 과다지출로 인해 자신의 노후준비는 뒷전이었지만 현재사회는 핵가족화와 소가족화 등의 현상으로 인해 가족의 부양기능이 저하되어 노인들에게는 경제적으로 설상가상의 상황이 되어버렸다.노인복지에 대한 자료를 조사하던 중 대한노인회에서 추진 중인 ‘노인 4대 권익 찾기 운동’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 조료보호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재 노인을 위한 저렴한 가격의 의료시설은 아주 부족하다. 극히 소수의 요양원에서 생활보호노인이나 저소득층 노인을 대상으로 무료 또는 실비요양보호를 제공하고 있을 뿐이다. 앞으로는 노인전문병원이나 유료요양시설이 많이 개설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 이용료 부담은 막중하리라고 본다. 이에 대비한 개인적인 준비와 아울러 의료보험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며 장기요양보험이나 일본의 개호 보험 같은 장기적인 준비도 요구된다.3) 역할상실 문제 (여가선용 문제)‘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전국 노래자랑’ 과 같은 우리 모두가 아는 텔레비전 시청이 대부분 노인들의 일과이다. 현세대 노인들은 정년퇴직 이후 가정에서나 사회에서의 역할을 상실하고 노후생활에 알맞은 새로운 역할을 찾지 못하고 있다. 성공적인 노후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길어진 노령기를 재미있고 보람 있게 즐길 수 있는 여가활동의 개발이 필요하다.(1) 조기퇴직으로 인한 역할상실직장활동을 통한 생산적인 역할에서 은퇴한 후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역할을 찾아야 소외감이나 무력감을 극복할 수 있다. 재취업이나 지역사회 봉사활동, 또는 재미있고 의미 있는 여가활동을 통하여 노후생활에 바람직한 역할을 정립하는 자세와 노력이 필요하다. 노년기는 비록 신체적으로는 허약해지고 있지만 지적, 정서적, 인격적, 영적 성장은 계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2) 여가활동 기술 및 시설 부족현세대 노인들은 여가활동에 대한 지식이나 기술이 부족하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평소 즐기는 여가활동은 주로 텔레비전 시청이나 친구?친족 방문이다. 보다 만족스럽고 보람 있는 노후생활을 갖기 위해서는 젊어서부터 다양한 취미와 봉사활동을 습관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노인의 여가활동을 증진하기 위해서는 여가시설의 확충과 프로그램 개발이 필요하다. 현재 전국에 개설되어 있는 40,000여 개 소의 경로당들은 대부분 그 장소가 협소하고 시설 및 서비스 프로그램이 부족하다. 대부분의 노인은 그곳에서 다른 노인을 만나고 이야기하는 것에 이상100.052.410.41.88.637.452.237.414.847.6남 자100.072.411.61.89.839.249.236.612.627.6여 자100.039.39.01.97.135.155.938.417.660.7자료 : 통계청, 「사회통계조사보고서」각년도 통계자료 ☞ 109쪽Ⅳ 우리나라의 노인복지 현황1. 자료를 통한 노인복지 현황1) 노인의 소득원 유무: 가장 보편적인 노인들의 소득원은 「친인척 보조금(76.9%)」이었다.가장 많은 노인들이 소득을 얻고 있는 소득원은 「교통수당(89.7%)」이고, 다음은 「친인척 보조금(76.9%)」이었다. 노후에도 경제활동을 통하여 「근로 및 사업?부업소득」을 얻고 있는 노인인구 비율은 27.8%이었고, 「자산소득」을 얻고 있는 경우는 12.5%로 나타났다. 한편, 노인의 대부분이「공적이전소득」을 받고 있었으나, 교통수당을 제외하면 혜택을 받는 수급률은 매우 낮았고, 「사적이전소득」을 갖고 있는 경우는 78.6%로 그 중 「친인척보조금(76.9%)」이 가장 많았다. 성별로 살펴보면, 「근로 및 사업?부업소득」의 경우 남자가 43.7%, 여자는 17.7%로 남자가 26.0%p 높게 나타났고, 「공적연금」도 남자가 26.3%로 여자 6.2%보다 20.1%p 높았다. 반면, 「경로연금」, 「국민기초생활보장급여」, 「친인척보조금」등에서는 여자의 수급률이 높았다.< 노인의 소득원 유무(복수응답) >(단위 : %)전체자산소득사적이전소득소계재산소득금융소득개인연금소계친인척보조금사회단체보조금기타소득전 체99.712.58.94.50.478.676.91.05.4남 자99.721.415.18.60.572.770.10.810.7여 자99.56.85.01.90.382.381.11.12.065~69세99.014.210.25.00.875.673.40.56.470~74세100.011.88.64.00.178.777.21.85.075세 이상100.010.77.34.20.182.581.30.94.4근로 및 사업, 부업소득공적이전소득소계근로소득사업,, 경제적, 사회적인 이유로 인하여 자립 생활이 힘든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각종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지역사회 내에서 건전하고 안정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는다. 대상은 고양시 일산동·서구에 거주하는 65세 이상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서 재가복지서비스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어르신이다. 단계는 클라이언트 ? 판정회의 ? 계획수립 ? 개입 ? 점검 및 평가 ? 종결 순이며 가정봉사자나 자원봉사자의 수는 30명 정도 된다고 본다. 이는 객관적인 수혜자 선정으로 효율적인 서비스 실시와 재가수혜어르신들의 삶의 질 향상 도모한다는데 의의가 있으며 소외된 어르신들에게 지역 사회 내 관심 유도할 수도 있다는데 좋은 시스템이었다.이 외에도 취업알선, 주간보호센터, 호수 문화대학 등 다양하고 체계적인 시스템이 있었다. 특히 인상에 깊었던 점은 상담센터였는데 복지관을 이용하고자 하는 어르신들이 보다 편안하게 복지관을 이용하실 수 있도록 도움을 드리는 곳이었다. 어르신들의 여러 문제 및 고민거리를 들어 드리고 이 문제를 전문 인력(전문상담원)을 활용한 상담을 통해 해결, 도움을 드리는 전문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으로 어르신들이 일상생활에서 필요로 하는 다양한 정보를 제공받으실 수 있다고 했다.복지관 이용 관련 정보의 체계적인 전달을 통한 이용자 편의를 도모하고 전문적인 상담을 통한 노인문제 해결 및 예방에 기여하며 어르신들이 필요로 하는 다양한 정보 제공할 수 있다는데 의의가 있었다.Ⅴ 현재 우리나라의 노인복지 정책1 노후 생활안정 기반조성(1) 특례노령연금 및 경로연금 지급노후의 생활안정을 위해서는 연금제도의 정착이 중요하다. 지난 1999년 4월 1일부터 전 국민 연금제도를 실시함으로써 장기적으로는 노후 생활안정을 위한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였으며, 당시 60세에서 65세 미만의 자에 대해서는 5년 가입으로 연금혜택을 받을 수 있는 특례노령연금제도를 시행하였다. 또한 1995년부터 실시한 농어촌노인특례노령연금제도에 가입한 노인들은 약 548천명이 연금수혜를 받고 있다. 한편
    사회과학| 2006.11.26| 20페이지| 1,500원| 조회(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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