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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육사 황혼 분석 쪽글
    -세상을 향한 이육사의 사랑가이육사의 분석항일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저항시인의 이미지가 굳어져서인지, ‘이육사’라고 하면 강인한 남성적 목소리의 시가 떠오른다. 이란 시에서도 이육사 특유의 씩씩함이 묻어나온다. 그러면서도 세계에 대한 애정이 시 전체에 흐르면서 어둡다기보다는 희망적인 시라 할 수 있겠다.5월의 골방에서 화자는 정성된 마음으로 황혼을 맞아들이고 있다. 이 황혼은 화자가 처한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연결해주는 통로 역할을 한다. 1연에서는 넓고 광활하며 푸른 바다와 하찮고 작은 존재인 갈매기의 대조를 볼 수 있다. 바다와 갈매기를 비교하면서 갈매기의 외로움, 인간의 외로움을 극대화 시킨다. 인간은 늘 고독하다. 사회적인 동물임에도 불구하고 근원적으로 고독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인간의 외로움에 대한, 자신의 외로움에 대한 자각과 함께 골방을 점점 비춰오는 황혼을 맞이하는 화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2연에서 화자는 황혼에게 자신의 뜨거운 입술을 맞추겠다고 말한다. 황혼은 대자연이다. 황혼은 낮과 밤사이의 경계를 비춘다. 경계에 위치해 있는 황혼은 낮과 밤, 삼과 죽음, 기쁨과 슬픔을 모두 포용할 수 있다. 그리고 황혼은 골방에 있는 화자와는 달리, 하늘을 주황빛으로 물들여가며 세상 어느 곳에든지 도달할 수 있다. 화자는 황혼을 통해 자신도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다는 희망을 피력한다. 그리고 세상에 입 맞추고 싶어 한다. ‘네 품 안에 있는 모든 것에 나의 입술을 보내게 해다오’라는 구절은 세계에 대한 화자의 애정을 볼 수 있는 구절이다.3연에는 이름만 들어도 외롭고 쓸쓸한 존재임을 느끼게 할 수 있는 이들이 나온다. 바로 별들, 수녀들, 수인들이다. 화자는 이들에게도 자신의 입술을 보내고 싶다고 말한다. 의지할 곳 없는 그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위로가 나타난다. 4연에서도 그런 화자의 마음이 이어지고 있다. 고비사막과 아프리카는 화자가 있는 골방에서 꿈꿀 수 있는 가장 먼 지역일 것이다. 끝없이 펼쳐진 사막과 초원에서 살아가는 행상, 토인들에게까지 화자는 시야를 확장하고 있다. 이 시에서 황혼이 점점 세상을 물들여가는 것과 함께 화자의 공간도 확장되는 것을 볼 수 있다. 1연의 골방이라는 장소에서, 4연에 이르면 고비사막과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화자는 황혼의 품 안에 안겨 세상의 먼 곳까지 나아가고 있다.황혼이 사라질 무렵까지 하늘을 바라보던 화자는 황혼을 보내야 하는 아쉬움을 느낀다. 그래서 환혼을 암암히 사라지긴 시냇물 소리 같다고 말한다. 황혼이 여운을 남기며 사라지지만 오월의 골방에 내일도 찾아올 것임을 알기에 내일도 다시 커텐을 걷을 것이란 기대, 희망을 갖는다. 황혼이 비치는 시간은 화자가 기다리는 시간이다. 마지막 연에서는 붉은 황혼과 푸른 커텐을 대비하면서 내일 다시 돌아올 황혼을 기대하는 화자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다음날 다시 황혼이 도래하면 골방에서 화자는 다시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인문/어학| 2011.01.01| 1페이지| 1,000원| 조회(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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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곡, 연극 분석
    Ⅰ. 서론희곡 는 미국 작가 마샤 노먼의 작품이다. 그녀는 이 희곡으로 미국의 권위있는 문학상인 퓰리처상을 받았다고 한다. 는 작품성을 인정받아 세계 각국에서 공연되고 있다. 이번 2008년에 우리나라에서 나문희, 손숙 등의 연기력으로 잘 알려진 배우들이 배역을 맡으면서 이 공연은 사람들에게 또다시 관심을 모으게 되었다.여러 비극들은 주인공이 결국 자살이라는 파국을 맞게 된다. 그러나 이 희곡의 결말에서 느끼게 되는 감정은, 다른 연극에서 주인공이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될 때 독자들, 혹은 관객들이 느끼는 슬픔과는 사뭇 다르다. 주인공이 죽어서 마냥 슬프기 보다는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제씨에 대해 공감하게 되고, 생의 마지막 순간을 이해하게 된다.이 연극은 이인극으로서 다른 인물들이 등장하지 않고, 두 모녀의 대화로만 극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중간에 쉬는 시간도 없이 진행된다. 그러나 진행되는 내내 무대의 인물들에게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긴장감이 조성된다. 이것은 제씨가 자살을 하지 않길 바라는 델마를 비롯한 관객들의 마음과, 예정대로 자살을 하려는 제씨와의 심리적인 대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관객들은 1시간 30분 정도의 시간동안 제씨의 자살을 놓고, 두 모녀가 벌이는 심리전에 몰입하게 된다. 제씨가 왜 엄마를 혼자 놔두고 자살을 선택하여 생을 마감하려고 하는지, 그녀의 상처가 대사에서 드러나면서 점점 극에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연극열전2’에서 기획한 는 희곡을 충실히 번역하여 무대에 올렸다. 연출가의 독특한 분석은 행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희곡이 무대에 오르면서 배우들의 연기, 무대, 음악 등이 극적 효과를 더하였다. 연극 무대에 올랐을 때 희곡은 날개를 단다. 연극 무대에서 배우들의 연기를 보니 좀 더 현실감이 느껴졌고 이것이 제씨의 이야기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되었다. 지금부터 의 희곡과 공연을 분석하여 보도록 하겠다.Ⅱ. 델마와 제씨이 연극에 등장하는 인물은 단 두 명. 엄마 델마와 딸 제씨이다. 작가는 앞부분에서지만 그건 정작 내 문제 아냐, 엄마? 엄마가 아니라.”라고 소리치게 된다.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발작을 일으켰던 것을 이제야 알게 된 제씨는 엄마를 향해 소리 지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델마는 딸을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진정으로 이해하려하기보다는 자신의 소유로 여겼고, 제씨의 자살을 피상적으로만 막으려 하였다.이번 공연에서 델마 역은 3명의 배우가 캐스팅되어 교차출연하였다. 나문희, 손숙, 예수정이 그들이다. 내가 본 공연은 예수정이 델마 역을 맡았다. 처음 조명이 무대를 비추었을 때 등장한 델마의 모습은 그야말로 평범한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헐렁헐렁한 티셔츠에 바지를 입고 쇼파에 앉아있는 모습은 영락없는 우리의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사실, 그녀는 50대 후반에서 60대로 설정된 델마의 나이에는 부합하지 않아 보였다. 예수정은 실제로도 50대 중반의 나이이기도 하다. 제씨 역할을 한 황정민과 나이 차이가 많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제씨와 친구처럼 농담을 주고받기도 하면서 극을 진행하는 데는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한다.델마가 제씨와 가장 다른 점은 델마는 삶에 대한 의지를 갖고 있으며, 죽음을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델마는 “대체적으로는 말이야. 사람은 누구나 죽기를 두려워하기 마련이거든.”, “그래, 난 여기가 좋아. 그리고 난 저승사자가 날 데려갈 때까지, 고래고래 비명을 지르고 악을 쓰는 날 강제로 질질 끌구가서 무덤 속에 처박을 때까지 악착같이 살거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반면 제씨는 어둡고 조용한 죽음이 바로 그녀가 원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공연에서는 소소한 일상에서 즐거움을 찾으려 하는 델마의 모습이 잘 드러난다. 사탕 같은 간식에 집착하기도 하고 델마의 취미가 뜨개질이기 때문에 탁자에는 실이 뭉쳐져 있다. 델마는 딸과는 반대로 죽음을 두려워하고 삶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다.사실 나는 희곡과 공연의 관계를 파악하기 위하여 희곡을 먼저 읽고 연극을 보았다. 희곡을 읽었을 때 델마가 딸보다 생각하는 것이 단순하고 어리다는 느낌을 받았다. 델마마의 집에서 엄마를 보살피면서 살고 있다. 그녀는 쎄실이란 사람과 결혼을 했으나 실패했고, 하나 뿐인 아들 릭키는 가출을 했다. 자살을 결심한 그녀는 엄마에게 권총이 어딨냐고 묻고, “엄마, 나 자살할 거야.”란 충격적인 발언을 한다. 제씨는 병 때문에 자신이 자살하려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병은 그녀가 자살을 시도하는 큰 이유 중 하나이다. 제씨의 삶을 망쳐놓은 많은 이유가 병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간질병에 걸려있던 그녀는, 남편 쎄실과 승마를 하던 도중 발작을 일으키게 된다. 여자로서 매우 치욕적인 순간이었을 것이다. 또한 발작 때문에 번듯한 직장을 가지지 못한다. 간질병은 그녀가 자신의 삶을 통제하지 못하게 한다.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없을 때 인간은 얼마나 비참한가?희곡의 지문에는 그녀가 평소에는 말이 없는 인물이나 자살을 시도하는 오늘밤에는 유별나게 수다스럽고 유쾌하다고 설명한다. 공연만 보았을 때에는, 제씨가 평소에는 별로 말이 없는 인물임을 실감하지 못하게 된다. 제씨는 어머니와 농담도 섞어가며 이야기를 잘 진행한다. 모녀의 재치와 유머감각은 공연에서 살아났다. 제씨가 다락바닥이 튼튼하지 않아 와르르 무너져 내릴 수 있다고 델마에게 말하자, 델마는 “그럴 염려는 전혀 없다! 너만 거기 올라가지 않는다면.”으로 답하는데 이 부분에서 많은 관객들이 웃었다.제씨의 역할은 배우 황정민이 맡았다. 너무 많이 눈물을 흘렸는지 처음 무대에 등장하면서부터 눈이 퉁퉁 부어있었던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역시나 편안해 보이는 옷차림은 극을 한층 더 사실적으로 만들었다. 배우는 씁쓸한 웃음을 지으면서 엄마에게 자신이 왜 자살을 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설명하는데, 울먹이며 자신의 상처를 말할 때보다 극적인 효과를 더 조성하고 있다. 인물은 지극히 냉소적으로 이야기 하지만 관객들은 그 내면의 아픔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죽는 게 용기 있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 용기란 말이 있다. 사실, 우리가 자유의지로 선택해서 태어난 것은 아니라고 해도 삶은 포기없어. 내 삶에 대해서. 달리 좋게 바꾸어 볼 수도 없구. 친해보려구 해도 도무지 되질 않아. 어떻게 해볼 수가 없어. 할 수 있는게 하나 있다면 끝내는 것 뿐이야. 막을 내리는 거지.” 앞서 말했듯이 제씨는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없다. 무너져버린 그녀의 삶을 다시 세우고 싶지만, 제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녀는 병원을 갈 때 빼고는 사람들 틈에 있어본 적도 없다. 쎄실에게는 이혼 당하였고, 아들 릭키는 가출을 하여 마약 중독에 빠졌다. 언제 발작할지 모르기 때문에 직업을 가질 수도 없다. 그녀는 자신의 삶이 진정 끝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제씨는 엄마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내가 정말루 좋아하는게 있었다면 어땠을까. 예를 들어 아침으로 먹는 라이스 푸딩이나 콘 플레이크라도 정말 좋아했더라면 어쩜 견딜만 하지 않았을까 하구.” 사실 희곡으로 읽었을 때 이 대사는 제씨의 마음을 알게 해주는 큰 단서였다. 델마는 사소한 것에서 삶의 즐거움을 찾는다. 스노우볼 컵케이크를 먹는 것을 좋아하고 뜨개질하는 것도 좋아한다. 그러나 제씨는 세상에 애정을 갖고 좋아하는 것이 없다. 삶의 작은 즐거움을 갖지 못한 것이다. 공연에서 볼 때에는 이 대사를 황정민이 특유의 미소를 지으면서 이 이야기를 한다. 지나가듯이 말 해서 관객들이 이 대사에 큰 의미를 두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제씨가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런 것들이 아닐까? 살아가야 할 이유를 자신 스스로 찾지 못한 것, 삶에 대한 애착이 이미 모두 사라져 버린 것이다.제씨는 많은 것, 혹은 모든 것을 억압받고 살아왔다. 유전적인 간질병은 그녀의 가족, 직업을 박탈당하게 했다. 그녀는 쎄실을 사랑했고, 좋은 아내가 되길 바라였다. 그러나 지금 쎄실은 제씨를 버리고 애그니스의 딸과 연애를 하고 있다. 그리고 릭키는 그녀에게 하나 뿐인 반지까지 훔쳐 가출하였다. 릭키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대사에 드러난다.모습이 “병치레도 모르구 외로움도 모르는 발그레한 볼이 아주 오동통한 다른 사람이었어.”라고 말한다. 그녀는 병치레도, 외로움도 모르는 아기 때로 돌아가고자 무던히 노력했지만 결국 그 모습을 찾지 못한다. “나를… 지금의 나를 어쩌면 달라지게 했을지도 모르는 그… 진짜 내 모습은 끝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단 말야.”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눈물이 났다. 이 장면에서 희곡의 지문에서는 ‘자기 연민의 감정은 없다’고 지시한다. 공연에서 배우도 이 대사를 무덤덤하게 내뱉었다. 무너져버린 자신의 모습에 어느 정도는 초월했다는 듯한 무덤덤한 말투는 관객을 더욱 슬프게 만들었다. 자기 연민의 감정 없이 말하는 것이 오히려 관객은 제씨에게 연민을 느끼게 했다. 우리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이 아닐 때, 너무나 초라해 보일 때 좌절하고 낙담한다. 옛날로 돌아가고 싶지만 결코 돌아갈 수 없을 때 우리는 자신(自身)을 다 잃었다는 생각을 한다. 제씨는 엄마의 말벗이 돼준다는 것 밖에는 세상에 머무를 이유가 없다. 그리고 제씨가 델마에게 훌륭한 말벗마저 되어 주고 있지 않다는 말에 델마도 동의한다.제씨는 자신의 모습을 찾고 싶었다. 자신의 허무한 삶을 돌려놓기를 바라였지만 결코 어릴 때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이것은 제씨가 겪은 많은 아픔보다도 자살의 가장 결정적인 이유가 되는 것 같다. 제씨는 남들처럼 온전한 가족을 이루지도 못하였고, 직업도 없다. 자신에게 매번 실망해야 할 뿐이다. 자살을 결심한 순간까지 그녀는 외로웠다. 담배만이 곁에 있어줄 뿐이다. 제씨가 담배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다. 쎄실은 제씨에게 담배와 자신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고, 제씨는 담배를 선택한다. 제씨는 그래서 쎄실이 자신을 떠난 것이라고 말한다. 그녀에게 담배는 물리적인 담배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손을 뻗으면 담배는 항상 있어준다는 것이다. 제씨의 삶에서 모든 것은 제씨가 할 수 있는 범위 밖에 있었다. 제씨가 손을 뻗을 때 그 자리에 있어준 것은 담배뿐이었다.보인다.
    인문/어학| 2010.09.15| 7페이지| 2,000원| 조회(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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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V문학관 , 박민규원작 와의 비교 분석
    1. 서론최근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영화가 많이 제작되고 있다. 드라마 , 영화 , 등은 시청자, 관람객을 끌어 모으며 흥행 성공을 거두었다. 원작의 탄탄한 이야기 구조를 기반으로 한 영상물들이 대중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것이다. 소설이 다른 장르로 각색되면서 또 하나의 문화를 창출해내고 있다.2007년 3월에 KBS TV 문학관에서 박민규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를 방영하였다. 장편소설집 《카스테라》에 실린 작품 중 , , , 등의 단편들과 새롭게 추가한 이야기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묶었다고 한다. 박민규는 기존에 소설에서 적용되었던 문법들을 깨뜨리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작가이다. 그의 문학적 상상력이 드라마로 각색되었을 때에는 어떻게 드러나는지 의문을 가지고 드라마를 접하였다.문자매체에서 영상매체로의 전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이야기 변형 양상에서 드러나는 특정한 경향은 한마디로 대중성의 강화라 할 수 있다.) 대중매체에서는 대중의 취향이나 기호에 맞게끔, 대중들의 관심이나 흥미를 자극하는 요소들을 첨가함으로써 이야기를 대중적인 성격으로 변모시켜놓는다. 이 단막극 는 영상과 문학과의 만남을 목표로 하는 ‘TV 문학관’에서 방영되어서인지 각색된 다른 작품에 비해서는 원작을 최대한 살리려고 한 것 같았다. 그러나 역시 각색되면서 많은 부분이 달라졌고, 대중의 취향도 반영되었다. 소설과 드라마는 전달하는 매체는 다르지만, ‘이야기’를 전달한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지금부터 박민규의 원작소설과 단막극 를 비교해보면서 각색된 단막극은 어떻게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는지, 소설의 구성요소들을 적용하여 살펴보도록 하겠다.2. 플롯박민규는 자신의 주제의식을 드러내기 위해 여러 이야기들을 도발적인 문체로 전달한다. 또한 특유의 상상력과 재치를 발휘하여 여러 이야기들을 만들어낸다. 그 속에는 소외된 인간의 삶도 있으며,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냉소적인 시각도 담겨있다. 드라마 는 박민규의 세 작품을 기본으로 각색하였다. 의 내용 중에서는 등장인물 중 한명이 좁은 고시원에자신도 너구리가 되겠다고 말한다.⑦ UFO를 보게 되고 떠난 자리에 너구리가 있는 것을 발견한다.⑧ 남색가 인사부장으로부터 밤에 나오라는 편지를 받는다. 술을 마시고 사우나에 가고, 인사부장에게 성적으로 괴롭힘을 당한다. 울고 있는 ‘나’의 등을 너구리가 밀어준다.드라마 는 이 두 작품을 중심으로 각색을 하였다. 소설 상에서는 다른 제목의 소설이었지만, 각색한 작품에서는 라는 제목으로 동시에 다루었다. 의 승일과 의 현우를 주인공으로 하여 드라마가 진행된다. 마지막에 승일이 현우의 회사에 인턴사원으로 들어옴으로써 두 주인공의 연관성을 획득한다. 여러 개의 단편소설들을 하나의 드라마로 만들었기 때문에 조금 어색한 부분도 없지 않다. 그러나 억지스럽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최대한 각 작품의 소재를 잘 살려서 연결하였다.드라마는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을 담는다. 보는 사람들은 흥미 있는 줄거리를 추적하면서 결국은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공감하게 되어야 한다. 때문에 드라마에서 현실성이란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또한 소설과는 달리 드라마는 영상언어를 사용하여 대상을 직접적으로 재현한다. 우리가 드라마를 보면서 드라마 내용과 현실과의 괴리를 느끼면, 있을 수 없는 이야기로 치부하고 비난한다. 박민규의 소설은 ‘무규칙 이종소설’이라고 불릴 만큼, 어쩌면 현실성 있는 소재를 다뤄야 하는 드라마에는 어울리지 않는 작품일 수 있다. 이런 박민규의 소설들을 원작으로 삼은 드라마 는 적당한 현실성을 살리면서, 각 작품들을 하나로 각색하였다. 드라마의 가장 큰 장점은 영상을 통하여 시청자들에게 구체적이고 현실감 있는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다. 드라마 는 어떻게 그 장점을 활용해서 원작을 각색하여 보여주고 있는가?드라마 는 총 83개의 씬으로 구성되었다. 드라마의 서사구조를 파악하기 위하여 서사구조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1.(#1~3) 미령과 정환의 사고 현장을 보여준다. 보험회사 인턴인 현우가 사고현장에 온다.2.(#4~5) 승일이 스쿠터를 타면서 나래이션이 흐. 그 후 풀려난다.12.(#35~37) 미령은 숙직 제공 월 300만원 보장이라는 찌라시를 보게된다. 절뚝거리는 정환에게 파스를 내민다.13.(#38) 엘리베이터에 탄 현우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팀장. 현우는 소리치며 뛰쳐나온다.14.(#39~40) 승일은 정환에게 아는 사람을 밀어본 적 있냐고 묻고, 정환은 미령 이야기, 대리운전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한다.15.(#41) 석현이 공장 지붕 꼭대기에 앉아있는 모습을 현우가 본다. 현우는 점점 석현을 이해하게 되는 듯 보인다.16.(#42~44) 승일이 1인실로 옮기라는 병원 직원과 다툰다. 병원비 이야기를 하는 아빠에게 승일은 현금카드를 쥐어준다.17(#45~48) 현우 회사의 송별회 술자리이다. 석현이 사라지고 현우가 찾으러 간다. 술집에서 일하는 미령도 보인다. 현우는 대리운전으로 술집 앞에 오고, 미령이 탄 웨이터의 차와 스쳐간다.18.(#49~51) 현우, 지하철에서 석현이 선로 위에 걸터앉아 있는 것을 보고 뛰어가 구한다. 그리고 석현이 너구리에 대해 현우에게 말해주고, 석현은 오바이트를 한다. 그리고 석현은 하늘 높이 떠서 사라진다. 깨어나 보니 노숙자가 보이고, 노숙자는 세상에는 스테이지 23을 넘을 수 있는 자와 그렇지 못할 자가 있다고 말해준다.19.(#52~53) 승일은 아버지를 지하철역에서 보게 된다. 아버지를 전철에 밀어넣는다.20.(#54~56) 현우는 석현이 회사를 그만둔 것을 알게 된다. 팀장과 현우가 술을 마신다. 팀장은 현우에게 ‘자네가 하는대로 힘을 써 주겠다.’고 말한다.21.(#57~65) 정환과 미령 각자 차에 타있다. 불꽃놀이가 시작되고 내년엔 꼭 볼것이란 다짐을 하지만, 정환이 마주오는 차에 미령이가 타있음을 알게되는 순간 두 차가 부딪혀 사고가 난다.22.(#66~69) 현우는 팀장과 함께 사우나에 간다. 사우나에서 팀장은 현우를 껴안는다. 팀장이 돌아가고, 현우가 비참하게 서있는데, 석현이 나타나 현우의 등을 씻어준다. 현우는 전화를 받고 사고 현장에 가서 정원작 소설을 각색하면서 새로운 인물을 첨가하기도 하였고, 인물을 삭제하기도 하였다. 소설과 드라마의 가장 큰 차이점은 소설은 문자로 표현되며, 드라마는 영상으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시청자들은 문자를 읽는 것이 아닌, 영상으로 표현된 이야기를 읽게 된다. 따라서 소설에서 추상적으로 표현한 부분이 있다면, 드라마에서는 구체화하여 시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동시간대의 시청자를 확보하기 위하여 감각을 자극하는 영상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이런 연유로 원작에서 없었던 부분이 추가, 삭제되는 것이다. 연출자는 극적인 효과를 염두에 두고 주제를 더 극명하게 전달하기 원한다. 따라서 연출가의 의도에 따라 원작의 사건을 삭제하기도 하고, 다른 사건을 첨부하기도 한다. 드라마 도 여러 사건의 변화를 보여준다. 이런 사건의 변화는 인물의 변화에서 비롯된다. 인물, 그에 따라 나타나는 사건의 변화를 살펴보도록 하겠다.드라마 에는 5명의 주요 인물이 등장한다. 승일, 정환, 미령, 석현, 현우가 그 인물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너구리 게임을 인용하자면, 이 인물들은 ‘스테이지 23’에서 항상 떨어지고 마는 사람들이다. 드라마 의 연출가도 “현대사회, 특히 오늘날 계급 혹은 계층 간의 소통이 단절된 한국사회에서 사는 소외된 인간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듯이 이 5명의 주인공들은 사회에서 소외된 인간들이다. 소설에 비해 인물의 중요성이 큰 드라마는 인물들의 삶을 보여주면서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어내며 드라마에 몰입되게 하고 있다.먼저 승일은 원작의 ‘나’이며, 원작에서는 이름이 한 번 등장한다. 드라마에서도 마지막 부분에 인턴사원이 된 승일을 팀장이 부르는 장면에서만 이름이 드러난다. 승일은 고등학교 3학년이며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한다. 정환의 제의를 받아 전철에서 푸시맨 아르바이트도 하게 된다. 승일의 집은 매우 가난하다. 승일은 아버지의 회사에 심부름을 갔다가 회사상사가 아버지에게 서류를 던지며 야단을 치는 모습을 본다. 그 후로 그는 조용한 성격이 된다.정환은에서는 실제 ‘너구리’가 등장하지 않고, 너구리를 상징하는 석현이 현우를 위로해주는 장면이 나온다. 작품을 현실적으로 그려야 하는 드라마의 제약이 이유일 것이다. 소설은 문자를 매개로 하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상상의 여지를 남겨둔다. 하지만 드라마는 직접적인 영상으로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독자들의 상상력을 가두어 버리는 측면이 있다.마지막으로 현우는 소설 의 주인공이다. 보험회사의 인턴사원이며 한 때는 록그룹 의 싱어였지만 지금은 회사에서 인턴사원들과의 경쟁에서 이겨 정직원이 되려 애쓰고 있다. 현우는 처음에 너구리 게임에만 매달려있는 과장(석현)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현우 또한 너구리가 되어가는 장면이 새롭게 삽입되었다. 차차 밝은 사회의 이면을 깨닫고, 자신도 너구리가 될 수밖에 없는 인물로 그려진다. 이 인물과 관련하여 소설에는 없었지만 드라마에서 새롭게 첨가된 부분이 있다. 현우가 팀장방으로 가면서 Jimi Hendrix로 오버랩되는 부분은 소설 속에 등장하지 않는다. 현우의 꿈은 락커이고, 항상 그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하여 Jimi Hendrix가 머리에 했던 헤어 밴드를 손목에 차고 다닌다. 그런 인물의 개성을 살리고,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하여 이 장면이 삽입되었다. Jimi Hendrix로 오버랩되면서 화려한 시각적인 효과를 준다. 무대, 화려한 조명을 통해 노래가 크게 들리면서 시청자들에게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고 있다.소설이나 영화는 독자, 관객이 개인적으로 작품을 선택하게 된다. 그러나 TV 드라마는 가족들이 같이 시청하기 때문에, 가정이라는 환경의 제약을 벗어날 수 없다. 따라서 드라마는 소설에 비하여 윤리성의 제약을 받게 된다. 의 ‘나’는 인사 부장으로부터 충격적인 성적 희롱을 당한다. 인사부장은 ‘나’를 사우나에 데리고 가는데, 소설에서는 “가만히 있어. 명령조로 말을 바꾼 부장의 입이 내 페니스를 빨기 시작했다.”라고 서술되고 있다. '나‘는 그 일을 겪은 후 “갑자기 외로워졌다”라고 표현하며 눈물을 흘린다. 드라마에서다.
    인문/어학| 2010.09.15| 9페이지| 2,000원| 조회(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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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인 문정희와 에코페미니즘
    -목차-Ⅰ. 서론Ⅱ. 억압된 여성의 몸Ⅲ. 원시적 자연성의 희구Ⅳ. 자연과 여성의 동일화Ⅴ. 결론Ⅰ. 서론처음 이화여자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여성 인권운동, 페미니즘’ 등의 단어를 처음 접하면서 적잖이 놀랐던 것이 생각난다. 그동안 인식하지 못했던 사회에서의 여성 차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고, 그 후 여성학 등의 강의를 접하면서 사회에서 여성이 발휘할 수 있는 힘을 새롭게 조명해 보게 되었다. 모성은 무엇보다 강하다는 말이 있다. 여성의 부드러우면서 강한 힘은 세상을 새롭게 변화시킬 수 있다.에코페미니즘이란 1970년대 등장한 생태여성론을 의미한다. 생명, 자연생태계라는 넓은 삶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며 동시에 고른 사람의 삶을 살리는 평등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사상이 에코페미니즘이다. 가부장 사회에서 여성은 주변인으로 기능하였고 남성의 조력자일 뿐이었다. 그러나 세상을 지배한 남성중심, 서구중심, 그리고 이성중심의 가치는 세계, 환경, 인간의 정신을 황폐하게 하였다. 에코페미니즘은 여성의 부드러운 힘으로 병든 세상을 살리고자 하는 실천 지침이다.문정희 시인의 시에는 이러한 에코페미니즘의 가치가 잘 구현되어 있다. 그녀의 시에는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 사이의 친화를 이루고자하는 세계관이 드러난다. 자연과 여성이 근원적으로 신성한 존재이며, 원시적으로 충만한 힘을 가진 존재로 그려진다. 에코페미니즘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평화, 조화이다.) 인간과 자연, 남성과 여성을 이분법적으로 인식하지 않고 그 조화를 모색하는 문정희의 시를 에코페미니즘의 관점으로 분석해보도록 하겠다.Ⅱ. 억압된 여성의 몸윗옷 모두 벗기운 채맨살로 차가운 기계를 끌어안는다찌그러지는 유두 속으로공포가 독한 에테르 냄새로 파고든다패잔병처럼 두 팔 들고맑은 달 속의 흑점을 찾아유방암 사진을 찍는다사춘기 때부터 레이스 헝겊 속에꼭꼭 싸매놓은 유방누구에게나 있지만 항상여자의 것만 문제가 되어마치 수치스러운 과일이 달린 듯깊이 숨겨왔던 유방우리의 어머니가 이를 통해지혜와 사랑을 입에 넣어주셨 몸은 한 번도 여성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이 시의 화자는 병원에서 유방암 사진을 찍고 있다. ‘차가운 기계’는 맑은 달 속의 ‘흑점’을 찾기 위해 화자의 몸을 촬영하고 있다. 화자는 첨단 과학 기술 앞에서 자신을 ‘패잔병’으로 비유하는데 근대 가부장 사회에서 여성의 주변인, 억압받은 자로서의 이미지를 환기시킨다. 화자는 유방을 검사하는 첨단 기계를 ‘차가운’이라는 형용사로 수식하고 있다. 화자가 첨단 기계를 부정적인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대의 기계문명은 화자와 교감하는 대상이 아니라 화자를 대상화시켜 촬영의 대상물로만 인식한다. 여성과 인간의 몸을 통제하는 현대 기계 문명 앞에서 화자는 ‘패잔병’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첨단 기술은 화자가 몸을 비로소 자신의 것으로 인식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차가운 기계를 통하여, 한 번도 자신의 것이라고 느끼지 못했던 여성의 몸이 비로소 화자의 것으로 인식되게 된다. 그러나 그 몸은 아름답고 건강한 몸이 아니다. 화자의 몸, 유방은 가부장적 사회 아래에서의 억압과 병(病)으로 인하여 ‘축 늘어진 슬픈 유방’이다.여성의 유방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항상 감춰져야만 했던 대상이었다. 가부장적인 이데올로기 속에서 남성의 몸에 비해 여성의 몸은 역사적으로 더 속되게 인식된다. 그래서 여성의 유방은 ‘사춘기 때부터 레이스 헝겊 속에 꼭꼭 싸놓’아야만 했다. 유방으로 대표되는 여성의 몸은 수치스럽다고 느껴지도록 강요받았기 때문에 항상 억압받았고 자유롭게 드러낼 수 없었다. 여성 운동가들이 여성의 날에 브래지어를 태우는 행사를 하는 것은 단순히 불편한 브래지어에 대한 반감 때문이 아니다. 여성을 속박하는 사회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간절한 열망 때문이다. 이 시에서도 아름다운 유방을 꼭꼭 숨겨놓아야 하는 여성에 대한 사회의 속박을 표현하고 있다.억압받는 여성의 몸은 사실 자연성, 생명력을 간직한 공간이다. 시에서 유방은 ‘세상의 아이들을 키운 비옥한 대자연의 구릉’으로 비유된다. 것은 여성이 자신을 온전히 소유하지 못하고 타인에게 예속되어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성은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자신을 박탈당하게 되는 것이다.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화자는 차가운 기계 앞에서 비로소 자신의 몸이 오로지 자신의 것임을 인식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기쁜 깨달음이 아니다. 자신의 억압되고 훼손된 몸을 마주대하였을 때 화자는 자신의 몸을 ‘슬프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또한 에코페미니즘적 관점에서 본다면 ‘축 늘어진 슬픈 유방’은 마치 자연을 잃은 인간 전체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이 고안해 낸 현대 문물들은 자연을 파괴하여 본래의 자연성을 잃게 되었다. 차가운 기계를 안고 패잔병처럼 축 늘어진 채 있을 수밖에 없는 여성의 유방처럼 인간 전체는 광활한 자연을 잃은 패잔병인 것이다.Ⅲ. 원시적 자연성의 희구풍성한 다산의 여자들이초록의 밀림 속에서 죄 없이 천년의 대지가 되는뽀뽈라로 가서야자잎에 돌을 얹어 둥지 하나 틀고나도 밤마다 쑥쑥 아이를 배고해마다 쑥쑥 아이를 낳아야지검은 하수구를 타고콘돔과 감별당한 태아들과들어내 버린 자궁들이 떼지어 떠내려 가는뒤숭숭한 도시저마다 불길한 무기를 숨기고 흔들리는이 거대한 노예선을 떠나가을이 오기 전뽀뽈라로 갈까맨 먼저 말구유에 빗물을 받아오래오래 머리를 감고젖은 머리 그대로천년 푸르른 자연이 될까-「머리 감는 여자」)문정희 시인의 시에는 ‘다산성’의 욕구가 자주 드러난다. 「감자」라는 시에는 여자가 천년동안 줄줄이 감자를 낳았다는 시구가 있다. 천년동안 줄줄이 감자를 낳는 여자처럼 「머리 감는 여자」에서는 ‘밤마다 쑥쑥 아이를 배고 해마다 쑥쑥 아이를 낳아야지’ 한다. 무한한 생명을 탄생시키는 것에 대한 시인의 긍정이 나타나는 부분이다.1연에 나타나는 시적공간인 뽀뽈라는 근대화되지 않는 원시적인 자연의 공간, 푸르른 숲이 우거진 열대림이다. 이곳에서는 인위적인 힘으로 자연의 원리를 조정하지 않는다. 자연과 일체되어 자연의 섭리에 따라 무한한 생명을 잉태하는 원시적인 공간이다. 뽀뽈라의 ‘풍성한은 하수구를 타고/ 콘돔과 감별당한 태아들과/ 들어내 버린 자궁들이 떼지어 떠내려 가는’ 이란 표현은 자연성이 거세된 현대 사회를 수식한다. ‘콘돔’은 1연에서 시인이 긍정하고 있는 ‘다산성’과는 반대되는 자리에 위치한다. 자연성을 막는, 인위적인 산물이 ‘콘돔’이다. ‘감별당한 태아들’에서는 남아 선호사상으로 인해 낙태가 자행되는 도시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며 ‘들어내 버린 자궁들’은 남성에 의한 여성 생식기의 수난을 의미하고 있다. 시인은 이런 공간에서 뽀뽈라의 여인들처럼 자연이 시키는 대로, 아이를 쑥쑥 낳으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자연성이 거세된 공간에서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는 것이다.신화에 등장하는 ‘지모신’은 만물의 영원한 번식의 원천이다. 만물이 그녀에게서 나고, 그녀에게로 돌아간다. 해마다 새 농작물을 길러내는 대지가 인간의 대를 이어주는 여성으로 비유된 것이다. 시인은 열대 원시림의 ‘풍성한 다산의 여자들’이 ‘천년의 대지’가 된다고 표현하고 있다. 만물이 소생하는 대지는 여성과 동일시된다. 현대에 ‘다산’은 어리석음을 의미하며 그야말로 죄가 된다. 그러나 원시 자연에서의 ‘다산’은 끝없는 생명력의 원천이라는 의미에서 여성이 ‘죄없이’ 천년의 대지가 되게 만든다.문정희 시인은 이 시를 통해, 현대 황폐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 고유의 자연성 회복을 지향한다. 여성의 자연성이 훼손되고 핍박받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의 원시적이고 싱그러운 자연성을 갈구하면서 건강한 생명을 낳고, 건강한 생명이 살아갈 수 있는 생태적 삶의 조건을 희구하는 것이다. 여성을 원시적이고 자연적인 힘이 충만한 존재로 형상화하면서 시인은 거세되고 위축되었던 자연성이 되살아나길 기대하는 에코페미니즘의 가치를 구현하고 있다.Ⅳ. 자연과 여성의 동일화딸아, 아무 데나 서서 오줌을 누지 말아라푸른 나무 아래 앉아서 가만가만 누어라아름다운 네 몸 속의 강물이 따스한 리듬을 타고흙 속에 스미는 소리에 귀 기울여 보아라그 소리에 세상의 풀들이 무성히 자라고네’고 말하며 여성의 몸, 여성의 몸에서 나오는 ‘오줌’의 신성함을 강조하고 있다.‘오줌’은 몸의 수분량을 조절해 주는 역할을 한다. 오줌은 인간의 몸을 건강하게 해주면서도 또한 밖으로 배출되었을 때에는 비료의 역할을 한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오줌을 함부로 버리지 않고 생명을 키워내는 거름으로 사용하였다. 인간이 오줌을 배출하고, 자연은 인간의 오줌으로 인해 비옥해지며, 인간은 다시 그 자연이 주는 이로움으로 살아간다. 이 시는 그 오줌이 갖는 생명성을 긍정하면서 마지막에는 여성과 자연이 하나되는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이 시의 ‘오줌’이라는 것은 ‘물’로 환원될 수 있다. 3행에서 오줌은 ‘아름다운 네 몸 속의 강물’로 비유되고 있다. 오줌, 즉 물은 생명을 만들어내는 생명수이기에 아름답다고 표현한다. 물은 원형적으로 여성, 정화, 재생, 생명 등을 상징한다. 이 시에서도 여성이 만들어내는 물은 생명의 근원으로 기능하고 있으며 여성과 자연이 하나 되는 경지에 이르게 한다. 여성의 물은 남성의 물과는 변별되는 중요성을 갖는다. 여성의 몸에서 물은 생명을 잉태하게 한다. 여성의 뱃속에서 양수는 열 달이라는 긴 시간동안 태아를 양육해내는 또 다른 생명체의 기능을 한다. 여성의 물은 생명을 잉태하는 물이며, 이것은 세상의 풀들이 무성히 자라게 하는 대지의 이미지와도 동격으로 연결된다. 여성의 물이 흙 속에 스미면, 그 흙에서는 풀들이 무성하게 자랄 수 있게 된다. 이 시에서는 생명성의 순환, 역동적인 생명력을 엿볼 수 있다.2연에서 화자는 딸로 설정된 청자에게 ‘때때로 편견처럼 완강한 바위에다 오줌을 갈겨주고 싶을 때도 있겠지만 그럴 때일수록 제의를 치르듯 조용히 치마를 걷어 올리’라고 말하고 있다. 화자가 여성의 ‘오줌’을 신성하게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완강한 바위’는 ‘대지’와 대조되는 시어이다. 대지가 부드러움, 생명성을 가진 자연을 상징한다면, ‘완강한 바위’는 딱딱함, 생명력이 발휘되지 않는 불모지를 상징한다. ‘완강한 바위’는 ‘편견’에.
    인문/어학| 2010.09.15| 8페이지| 1,500원| 조회(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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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지하 타는 목마름으로 시집평
    Ⅰ. 서론김지하는 대중에게 매우 잘 알려진 시인 중 한 사람이다. 그는 혼란스러웠던 시대 상황 속에서 민주주의를 당당히 외쳤던 불굴의 시인이었다. 그의 정신적인 모든 것들을 시에 담았기 때문에 1970년대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꼽힌다. 그의 시들이 정치적으로 논란이 되어 금서가 되었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1970년 『황토』는 간행 이후 12년간이나 불온서적으로 간주되어 국내에서는 간행될 수 없었다. 금지가 풀려 그의 시가 하나 둘씩 세상에 나올 수 있게 되면서 더욱 더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었고 하나의 ‘김지하 현상’으로까지 나타났다. 그래서 여전히 우리와 함께 세상을 살고 있는 살아있는 시인임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그의 시에 대한 연구는 활발히 진행되어 왔다.김지하는 1970년대를 대표하는 시인이면서 동시에 우리나라 민중들을 정서를 대표하는 시인이라 평가하고 싶다. 과제를 준비하며 많은 현대 시인들의 시집들을 접했다. 그 중 『타는 목마름으로』를 읽을 때 가장 힘이 들었다. 나는 그 시대를 경험한 사람이 아닐 뿐더러 그처럼 타오르는 열정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그보다 나는 편안히 세상을 살아가기 원하는 안일주의자이다. 그의 시는 남성적이면서 건조하다. 눈으로 훑기에는 그의 열정적인 마음을 담은 시들의 아우성을 외면하는 것 같아 죄책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의 시는 눈으로, 머리로, 마음으로 읽어야 한다. 『타는 목마름으로』는 시대를 치열하게 살았던 시대의 대표자로서의 시대에 대한 고뇌와 시에 대한 사랑을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시들을 엮은 시집이다. 쉽게 읽혀지지 않는 ‘피곤한’ 시인이 지금 이 시대에도 주목받을 수 있는 이유, 그리고 그의 시가 과장되게는 너무 정치적이라 평가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에 대해 그의 시세계와 시집『타는 목마름으로』를 분석해 보면서 알아보도록 하겠다.Ⅱ. 김지하의 시세계5.16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1972년 10월 26일에는 비상조치를 발표하면서 유신체제 구축에 들어간다. 유신체제는 결국 한 몸과 시로 실천한 시인이었다.문학은 비정치적이어야 한다고 믿어 온 사람들에게 김지하는 문학이야말로 가장 정치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유신체제로 대변되는 70년대의 한국정치상황 속에서 그의 문학은 특유의 정직성과 대담성으로 인해 정치적 사건에 결부되었고 그로 인하여 체포되고 사형선고를 받기도 하였다. 문학은 다른 목적을 가져서는 안 되며 그 자체로 순순해야 한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그 믿음을 엎는 시인이 바로 김지하이다. 그렇다고 그의 시가 우리에게 저항운동을 함께 하자고 권고하고 있지는 않다. 그의 신념을 가장 정직하게 드러내고 그의 신념을 시로써 실천한 것이다. 그의 민중적인 저항운동과 뜨거운 피가 끓는 시들은 그가 어떻게 삶과 문학의 간극을 해소해왔는지 보여준다. 간극을 해소한 것을 실천으로 본다면, 그는 우리시대 최고의, 최선의 실천시인이라 말할 수 있다. 초기시에서 그는 이런 저항적이며 실천적인 모습을 보여준다.시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담은 시를 통하여 현실에 대한 저항의식을 보여주었던 그의 전기의 시세계는 변모하여 후기에는 생명에 대한 추구를 보인다. 이런 변모가 갑자기 일어난 것은 아니다. 전기 시들도 생명에 대한 노래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새라면 좋겠네물이라면 혹시는 바람이라면여윈 알몸을 가둔 옷푸른 빛이여 바다라면바다의 한때나마 꿈일 수나마 있다면(중략)캄캄한 밤에 그토록새벽이 오길 애가 타도록기다리던 눈들에 흘러넘치는 맑은 눈물들에영롱한 나팔꽃 한번이나마 어릴 수 있다면햇살이 빛날 수만 있다면꿈마다 먹구름 뚫고 열리든 새푸른 하늘쏟아지는 햇살 아래 잠시나마 서 있을 수만 있다면좋겠네 푸른 옷에 갇힌 채 죽더라도 좋겠네-「푸른 옷」 중‘푸른 옷’이란 감옥에서 입는 수의를 의미한다. 이 시는 1970년대 시집 『황토』에 처음 실린 시로써 푸른 옷에 갇혀진 화자의 현실 부정인식을 볼 수 있는 동시에 푸른 색이 하늘, 바다의 색과 연결되면서 평화로운 자연을 갈망하는 시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이처럼 전기시에서 드러나 우리도 시인들이 시대를 내려다보는 통찰력을 가지길 기대한다. 김지하는 시대를 사유한 시인의 대표자라 할 수 있겠다. 단지 그의 시가 저항시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시를 읽으면 그가 자신의 삶에 대해 나아가 사회에 대해 얼마나 진지한 고민을 했는지를 느낄 수 있다. 그의 모든 시는 현실에 대한 부정인식에서 출발한다. 그의 현실에 대한 비판과 저항이 어떻게 시에서 드러나고 있는지 시를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이 빠진 기아에 손가락을 끼우고기아만을 빠르게 온종일을 미쳐 미쳐 돌아간다피 터지듯이사지에 소리없이 통곡이 터져흘러내린다나리꽃아아 눈부신 저 노을 속의 나리꽃기계에 감겨숨져가는 나의 육신이 육신의 저 밑바닥까지기계에 감겨회전하며 울부짖으며 기계가 되어가는 지옥의저 밑바닥에서보아라나의 눈에 보이는 피투성이의내 죽음과 죽음 위에 피어난 흰 나리꽃사이의 아득한 저혼수의 밑바닥까지-「지옥 3」중1960년대에 대두된 ‘개발이데올로기’는 생명가치의 상실과 공동체적인 가치의 파괴를 야기하였다. 김지하는 그에 대한 상심, 비탄, 울분의 심정을 노래하고 있다. 그가 인지한 현실은 지옥이었다. 산업화, 공업화는 기계의 자동화를 통하여 산업의 큰 발전을 이루게 하였다. 하지만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삶의 현실은 발전된 사회의 혜택을 받지 못하였다. 이 시는 그런 시대상황을 담고 있다. 기계의 빠진 기아에 손가락을 대신 넣어 기계를 돌리며 소리 없이 울부짖고 있는 노동자의 모습이 그려진다. 김지하의 시세계에서 도시는 인간의 정체성을 파괴시키는 가혹한 횡포의 지대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온종일 기계를 돌리면서 노동자는 결국 ‘육신의 저 밑바닥까지’ 기계에 감기고 만다. 기계란 것으로 대표되는 산업화의 산물이 결국 육신을 파괴시키고, 정신까지 파괴시키기에 이른다. 그래서 그는 기계에 감겨 환영을 보게 된다. 환영에서 보는 ‘나리꽃’은 노동자가 꿈꾸는 따뜻한 고향, 또는 지향적인 세계이다. 겉으로 보기엔 화려하지만 내면적으로는 폐허가 된 현실과 육신의 고단함 속에서 그는 운을 드러나게 하는 추동력이 된다. 반란의 기운을 드러내며 김지하의 시대에 대한 예리한 인식을 볼 수 있는 시로는 대표작 「황톳길」과 「타는 목마름으로」를 들 수 있겠다.황톳길에 선연한핏자국 핏자국 따라나는 간다 애비야네가 죽었고지금은 검고 해만 타는 곳두 손엔 철삿줄뜨거운 해가땀과 눈물과 메밀밭을 태우는총부리 칼날 아래 더위 속으로나는 간다 애비야네가 죽은 곳부줏머리 갯가에 숭어가 뛸 때가마니 속에서 네가 죽은 곳-「황톳길」중신새벽 뒷골목에네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오직 한가닥 있어타는 가슴속 목마름의 기억이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타는 목마름으로」중「황톳길」에서는 ‘애비’가 간 길을 따라 가고 있는 화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길은 핏자국이 선연하고 ‘검고 해만 타는 곳’이므로 매우 척박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길은 험난하기도 하다. ‘총부리 칼날 아래’로 상징되는 억압의 시대 상황 아래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그 길을 따라가며 ‘나’는 ‘애비’와 하나 될 수 있다. 황톳길은 ‘애비’의 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의 수난과 고통의 아픈 역사의 길이다. 아버지가 걸어온 고통으로 점철되어 ‘핏자국’이 선연한 길을 따라 ‘나’도 걸어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에서 ‘애비’는 앞서서 혁명의 길을 걸어온 투사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투사들이 죽었던 길을 따라 가며 역사적인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자신도 뜨거운 의지를 갖고 그들이 걸은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는 시집 『황토』의 후기에서 자신의 시가 ‘악몽의 시’가 되기 원한다고 말했다. 현실인식과 역사인식을 예리하게 파악하여 우리에게 보여주는 ‘악몽의 시’가 「황톳길」이다.「타는 목마름으로」에서 가장 중요하게 인지되는 시어는 ‘민주주의’일 것이다. 앞서 말한 바 있듯이 1970년대는 유신정권으로 대표되는 암울한 시기였다. 민주화 운동은 유신체제에 항거하는 운동이었다. 화자는 ‘끌려가는 벗들의 피묻은 얼굴’을 생각하면서적인 눈으로 시대를 바라보는 것은 깨어있는 시인으로서의 중요한 과제이다. 하지만 그저 ‘인식’으로만 끝났다면 그의 시가 지금까지도 가치 있게 읽혀지지 않았을 것이다. 불행한 외부 조건은 인간을 끊임없이 좌절하게 하고 무너지게 한다. 하지만 김지하는 그대로 그 불행을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모습을 취하지 않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그는 시대에 대한 사유를 바탕으로 그의 신념을 시로써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김지하는 「풍자냐 자살이냐」에서 ‘한의 탄탄한 도약대의 미는 힘은 시인으로 하여금 시적 폭력에로 떠 밀어 올리는 강력한 배력이자 공고한 저력으로 작용한다’고 말한 바 있다. 김지하의 ‘시적 폭력’은 수동적인 상태로 있는 감각 생활을 거부하고 더 넓은 인식 작용과 행동을 통해서 시인이 원하는 삶의 상태로 바꾸어 놓으려고 하는 정신적 혁명을 가리키는 개념이 될 수 있다.) 시인의 정신적 혁명의 실천의 모습이 김지하의 시에서 ‘피’와 ‘불’의 이미지로 많이 나타나는데 ‘피’와 ‘불’의 이미지는 시대에 대한 격정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다.만납시다당신의 붉은 피(중략)가슴찍는 서러움총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뒤따르던 발자국소리 가슴 찍는 가슴 찍는매질에도 만나요솔내나는 새뿕은 당신의 피-「당신의 피」 중아아피투성이 된 피투성이 된묶인 나와 마주서라고마주서 밤새워 몸부림치라고미쳐 죽도록 피 끓이라고저렇게 한없이 취침나팔은 울리고밤하늘은 탄식처럼 푸르러만 가고 깊어만 가고-「나팔소리」 중「당신의 피」에서의 ‘피’는 ‘총소리와’ ‘문 두드리는 소리’, ‘발자국소리’ 로 대표되는 사람을 인간으로서 대우해주지 않는 억압적인 사회에 대한 반항을 의미한다. 그런 시대상황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피로써 대항하겠다는 시인의 혁명적인 의지를 확인하게 한다. 또한 「나팔소리」에서의 ‘피’는 시인의 고통으로 인한 절규를 보여준다. 압제당하는 현실 속에서 자신이 가난한 벗에게 한 약속조차 지키지 못하고 민중들의 ‘목쉰 생활의 소리’를 들어야 하는 시인의 고통의 몸부림이 ‘피’로불덩이로
    인문/어학| 2010.09.15| 7페이지| 1,500원| 조회(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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