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ell3번씩이나 보았는데 굳이 한번 더 보게 된 데는 안타깝게도 그 세 번을 모두 visual로 보았고, 원래 영화 자체에 쓸데없는 생각을 끼워서 보는 걸 즐기지 않는 탓이랄까? 그래서 4번째로 다시 접해야겠다고 마음 먹었 을 때는 머리가 까마득해 졌지만, 앞의 3번과 다른 영화를 보는 새로운 기분이 들어 재미있었다. 같은 영화임에는 틀림없지만광활한 사막에서 말을 타고 등장하는 캐서린은 그곳이 현실세계가 아닌 것을 보여주듯이 하얀 드레스를 아름답게 차려입고 나오는 것도 모자라 말에서 내려 사막을 걸어 오르기 시작한다. 현실이었다면 무척이나 더웠을 장면이다. 그런 찜통에서의 하얀 드레스라는 의식은 자신이 침투한 세계를 가진 주인에 대한 예의로 보인다. 물론 영화 속에서는 자신의 의식 속에 갇혀버린 소년에게 믿음을 주기 위한 성스러운 여왕이 되기 위한 도구쯤으로 보이지만, 허락 받지 않고 남의 머릿속에 들어가는 일 자체가 성스럽거나 제대로 된 방법 같지는 않다.왜 The Cell과 도덕적 책임의 한계를 물어야 했는지는 솔직히 어렵다. 이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수없이 나에게 계속 물어야 했고, 아직도 그 답을 찾지는 못한 가운데 아마 이 글이 다 써지면 그 의도 위에 놓여있기를 바란다.스타트를 끊고 보니 처음부터 도덕이라는 단어가 끊임없이 따라다닐 줄 몰랐다. 작가나 감독이 의도한데로 어떤 형태로든 정신세계가 닫혀있는 그들(정신분열증으로 움직임조차 멈춰버린 자들)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기로 했을 때 그걸 봐서가 아니고 그걸 보기로 한 시점에서 그들은 허락 받지 않은(처음에 나온 소년은 부모님의 동의를 받았고, 주인공인 칼 루돌프 스타거는 그가 납치한 아가씨의 소재지를 알아내기 위해서) 범죄 행위를 실행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영화라는 가상의 세계이니 이 것이야 말로 어떤 도덕적 책임하나 물을 필요가 없지만 나에게는 어떤 것보다 강하게 현실처럼 느껴진다.) 침략을 당한 피해자는 그 의식세계에서 얼마나 강한 존재이길래 남을 나의 머리에 끌어들이고도 위험하지도 않으 수도 있다. 정신분열증이란 뇌의 기질적 이상은 없는 상태에서 사고, 정동, 지각, 행동, 등 인격의 여러 측면에 장애를 초래하는 뇌기능 장애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라고 한다. 그 중에서 웰런 분열증은 바이러스의 영향으로 뇌가 감염되며 영향의 범위가 크고 넓고, 정신적 쇼크에 강하게 반응한다고 나온다. (스타거가 잡히고서도 이것 때문에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게 된다. 또한 필요충분으로서 캐서린의 연구소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한다.) 그가 살인을 진행하는 과정을 따라가 보면 그의 정신상태를 잘 보여주고 있다. 남자와 재미있게 얘기하고 있는 아무런 문제도 없어 보이는 여자를 눈으로 쫓으며 몹시도 일그러지는 얼굴로 괴로워하는 건 마치 자신이 악행을 삼기 위해 결심한다기 보다는 어쩔 수 없어서 고통에 못 이겨서 누군가가 시켜서 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40시간동안 피해자를 익사시킬 수 있는 The Cell에 그녀들을 가두고 자신은 멀리 집에서 모니터로 보고 있으면서 죽음이 확실해 질 때쯤에 나타나 물을 배출한다. 죽은 여자를 하얗게 표백을 해서 인형으로 만들고 나면, 그녀를 눕혀놓고 그 위에 자신의 등에 있는 고리에 사슬을 연결시켜 무중력의 상태로 매달리게 된다. 그것은 자신의 살인에 연결된 하나의 단계로 어쩌면 그 한 순간을 위해서 살인을 했을지도 모를 스타거를 정신분열이라는 상태에서 위안을 주는 방법이다. 그러나 그 상태에서 스타거의 찢어지는 비명은 단순히 즐기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무중력의 위안은 무엇을 느끼게 한 것일까? 질책(자신의 행위에 대한), 고통, 애정(받아보지 못함에 대한), sex(성폭행으로 생각한다면). 그걸 알 수는 없다. 단지 나라면 이런 이런 감정들을 느꼈을 것이라고 추측해본 것뿐이니까. 어쨌든 그의 살인은 빠르게 진행되어 한사람이 죽었고, 그녀의 시신과 근처의 모니터엔 다음 주자가 The Cell에 갇혀 있다.도덕이 신경 쓰이게 되니 모든 것이 다 눈에 띄었다. 스타거를 잡기 위해 집으로 FBI가 침투하는 장면은 무장한 살인범을 잡기 위해 그들도 범죄행위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을까? 그나마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은 목숨을 걸고 침투하는 캐서린이다. 그녀가 사실이라고 믿어버리면 현실이 될 수도 있는 위험한 곳에서 미친 자의 생각대로 움직여버리고, 길을 잃고, 그래도 피해자의 소재지를 찾기 위해 계속 해서 헤매다 만약에 죽어버린다면, 그 죽음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하나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하나의 목숨을 바치라면, 어느 것이 가치 있기 때문에 그래야 한다는 것인가? 하지만 그건 관객들 모두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피해자나 일반인들은 보호받고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겨운 이기주의다. 그런 욕심들을 가진 사람들이 영화를 보기 때문에 하나의 지켜줘야 할 생명 앞에 하나의 생명은 기꺼이 희생을 하고 만다. 물론 이야기상 죽지는 않았지만, 그것과 틀릴 것은 또 뭐 있겠는가. 그들은 그만큼의 가치에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게 사실인데, 그들은 또 누가 지켜주는 것도 아닌데. (계속해서 꼬리는 물려있다. 장르가 심리, 스릴러이다 보니 살인이 등장해도 당연하고, 잔인한 것도 당연하다. 그걸 애써 도덕이나 윤리까지 들먹이며 늘어놓고 있는 내가 한심하기도 하다. 하지만 독특한 시점은 재미있다.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스릴러를 보며 소리 지르기를 생각하지. 저 살인의 죄값은 어떻게 치러질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보는 걸 말이다.) Visual은 한 술 더 떠서 캐서린의 머리 속에 스타거를 불러들여 하얀 눈의 나라의 여왕이 스타거에게 죽음을 주는 장면은 대단하다. 천사 같은 그녀는 전투의 신으로 변신해 스타거의 손에 활을 박아 고정시키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그의 가슴에 칼을 박고 뒤흔들어도 된다고 보여준다. 분명히 그들의 입버릇대로 그곳은-It's Not Real- 현실이 아니지만, 그곳을 현실로 믿고서 스타거는 죽었다. 그것도 캐서린이 잔인하게 칼로 찔러서 말이다. 그것은 범죄가 아닌가? 분명히 현실에서도 자살에 동조를 할 수 없다. 그 예로 병원에서 고통에 힘들어하는 환자에게 죽음 이해하려면 미쳤다라고 보고 말을 하면 된다. 미쳐서 The Cell을 만들어 말로 할 수 없을 고통을 주며 살인을 하는 것은 어쩌면 천재적이기까지 하다. The Cell 안에서 느끼는 고통을 말로 할 수 있을까? 마지막 피해자는 다행히도 미치지 않고 탈출에 성공하여 FBI의 품에 위로를 느꼈지만, 그게 가능한가? 8시간 모자란 만 이틀의 시간동안 자신의 목을 죄어오는 물줄기를 맞으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곳에서 투명한 상자에 갇혀져, 자신이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갖다놓은 음식이 넘어가고, 볼일을 제대로 볼 수나 있을까? 피곤이 짓눌려와도 쉽사리 잠을 청할 수조차 없을 듯 한데. 초점은 The Cell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그 안에 피해자의 기분 따위 세심하게 다루어 주지 않은 점은 서운하다. 작가는 스타거를 미치게 만들기 위해 소년기에 그를 물에 잠기게 하는 의식도 치러주었는데 말이다. 살인이 성립되기 전까지의 스타거는 한 여자를 납치해서 자신만큼이나 미치도록 만든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스타거가 한 행동임에 틀림없지만, 그런 스타거를 미치게 만든 것은 그의 아버지이다. 하지만 아버지에게서 그를 지켜낼 수 없었기에 이후의 그런 살인이 실행될 수 있었다. 미쳤든 그게 아니든 스타거는 살인자로 인격조차 무시당하고 의지조차 무시당한다. 그를 심판할 수 있는가? 나도 한번 미쳐본적이 있다. 분명히 내 의지와 상관없이 지껄이고 나오는 데로 내뱉고 있었다. 웃기게도 ‘이러면 안 되는데’라고 머리로 생각까지 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그렇게 참을 수 없어서, 또다른 행동이 나오기 전에 병원을 찾았다. 약간의 상담과 약을 받았고, 난 조금이나마 위안을 받았다. 그리고 꾸준히 의식해서 후에 다시는 그러지 않았다. 하지만 사라진 건 아니다. 분명히 내 안에 지금도 살아서 꿈틀거리고 있을 것이다. (후에 어떤 사람에게 들은 것인데 정신병의 경우 약물치료와 상담치료를 같이 하는데, 약물치료의 효과는 10%도 안 된다고 하는 것이었다. 나머지가 상담과 본인의 의지 등이 병을 낫게 없었다며 자신이 FBI가 된 이야기를 곁들인다. 살인을 저질렀어도 정신병이라고 판명되면 정신병을 치료한다는 핑계로 어딘가 에서 요양이나 하며 편하게 웃고있을 수 있다. 그래서 그 책임을 물을 수가 없다. 실제로 미쳤든 아니든. 정신병이란 병을 만들어낸 순간부터 사회는 그 병에 있어서 만큼은 무식하게 관대해지고, 용서가 되는 길을 들여 버렸다. 그렇지 않은가? 과거에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살인자가 미쳤다고, 그에게 어떤 형벌도 내리지 않게 된 것은 분명히 정신병이라는 의학용어가 생기고부터 일 것이다. 그러니 책임을 물을 수 없을뿐더러 정신병을 만든 사회가 그 책임을 물고 가야 한다. 가해자는 없다. 단지 미친 자가 있을 뿐. 도덕이 어디에 있는가? 책임지지도 못하는 도덕 따위는 존재가 희미해진다. 도덕은 The Cell속에 차 오르는 물처럼 수위가 높아지기도 하지만, 그 도덕은 밖에서 보고 있다가 물을 빼던 스타거처럼 교묘히 이용되기도 한다. 그 울타리밖에 있기 때문에 우리들은 스타거를 쉽게 심판할 수 없다. 그리고 이용당한다. 설사 이용당하더라도 눈치를 챌 수 없는 건 그 울타리를 만든 게 우리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든 도덕에서는 정신병자를 벌 할 수 없다. 병을 낫게 한 후 벌을 주면 되지만, 살인을 할 정도까지 미쳤는데, 치료가 쉽게 될 리 만무하다. 모든 죄는 심판 받아야 한다고 정의 하지만, 어떻게 벌할 것인가? 이미 쥐구멍을 만들어 놓고, 자신들도 언젠가는 이용하게 될 지도 모른다. 이건 사실이다. 영화에서 스타거의 죽음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한 연쇄살인을 해 놓고도 끝에 가서 정신병원에 갇히게 된다면, 뜻하지 않은 반향을 불러올게 뻔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복선으로 깔아놓았듯이, 범행을 저지르면서도 자신이 잡히길 원한다는 식으로 전개 시켰고, 스타거의 정신 속에서 그때는 순수했을 소년 스타거도 등장시켜 자신의 죄값을 죽음으로 치르게 하고 있다. 그렇게 끝났기 때문에 도덕적 책임에 대해선 별 탈없이 넘어간 것이 아닐까? 사형을 선고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