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걸 조로, 히틀러, 그리고 V이름도 거창한 쾌걸‘조로는 Z다. 장미를 떨어뜨리고 펜싱 칼을 휘두르며 상대의 배에 남기는 Z자는 그 내면의 의미가 어떻건 Z는 그 자체가 정의와 사랑! 영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유치하면 어때, Z 위에 검은 연미복의 제비꼬리를 휘날리며 두고 유유히 사라져가는 고독한 영웅의 모습이랄까.아, 영웅은 조로면 충분한데. 이제는 V까지 등장했으니 나중엔 X나 W가 나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시중에 W라는 매거진이 있으니 X가 가장 유력하지 않을까? 어감도 섹시한 것 같고.여튼, 처음엔 V가 Z의 팬덤에 지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V가 차이코프스키를 들으며 칼을 매만질 때는 가면의 생김새가 주는 묘한 불안감과 동시에 사실 히틀러를 연상했다. 바그너를 듣는 히틀러의 모습이 겹쳐지고 폭력을 위한 영웅의 이야기인가, 의심하기도 했다.아마도 영화의 배경이 세계 제 3차 대전 이후의 영국이며 언론통제, 국민통제의 상황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신수양캠프라는 목적 하에 동성애자, 반정부주의자 등 회색분자가 정신 수양 캠프라는 목적으로 싸그리 죽어가는 모습에서 아우슈비츠를 떠올리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누군가가 내게, 비오는 다음날 떼로 죽어간 지렁이 시체들을 도로 한 쪽으로 치워주고 흙을 덮어주고, 길 잃은 고양이의 털을 매만져준 것을 알고 있다며 착한 너의 소원을 세 개 나 들어주겠다고 말한다면 “로또 1등에 당첨되고 동시에 삼성 정도의 퀄리티의 대기업에 특채로 입사시켜주세요.”라는 소망은 나중 얘기다. 난 분명 “세계 평화요 PEACE!" 라고 말 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비관론자거나, 무정부주의자, 세계평화보다는 쇼핑을 원한다고 말하겠지만 난 정말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다!!!믿을 진 모르겠지만) 세계 평화를 울부짖는 개인적으로 히틀러나 아우슈비츠, 전쟁이란 단어만 들어도 허벅지 안쪽이 저려오는 사람이다.이제부터 Z와 V, 그리고 히틀러와의 차이가 드러나는 것이다. V는 제 2의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단 하나의 희망으로서 존재한다. 조로의 Z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 자세히는 모르겠다. 아마도 지그재그의 재그(zag)가 아닐까. V는 vestige(복수)를 뛰어넘는 vendetta(상호의 복수)이며 victim임 동시에 vision의 victory다. 마지막 장면의 V가 단체로 V의 불꽃을 맞는 장면에서 정부와 대법관에 의해 죽어간 발레리(레즈비언)와 그녀의 연인, 고든, 뉴스가 아니라 V를 신뢰하는 시민들의 얼굴에서 빅팀이었던 그들이 V에 의해 빅토리를 얻은 것처럼 보였다.Z와 V의 공통점은 바로 장미. 다시 돌아가 Z와 V의 장미를 말하자면, V가 두고 간 장미는 화성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남겨놓은 복숭아(시체의 질 속에 넣어둔 그것)같이 살인의 뻔뻔한 흔적이 아니라 사랑과 생명 따윈 죽고 없는 세상에 대한 희망의 징표라고 할 수 있겠다.좀 더 섹시한 쪽은 Z지만 매력은 V에게 있는 것 같다. 낮에는 책을 읽고 고전영화를 보며, 클래식을 듣고 밤에는 정의의 사도로 변신한다는 영웅의 뻔한 시나리오지만 이비에게 운명을 논하고,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보는 클래시컬한 매력이랄까. 영화를 보고 나서 OST를 검색 했더니 차이코프스키의 1812 서곡이었다. 클래식의 C보단 차라리 비틀즈의 B를 선택할 나로서는 음악을 들어도 감흥은 적지만, 적절한 클라이막스, 또 웅장하고 섬세함이 동시에 공존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은 받았다.바그너의 치밀하게 계산된 거대한 스케일의 음악에 히틀러가 열광했다는 것을 봐도 V는 차별화된 영웅이다. 좀 더 유치하지만 독일과 영국의 차이도 있겠지 싶다. 잉글랜드는 위대하다를 외치는 장면을 보자. 세계 3차대전이후의 영국이라는 배경과 동시에 영국 그 자체에서 나타나는 특징도 V를 보는 데 한 몫을 하지 않을까? 세계 대전의 승자이자 패자, 미국과 가장 밀접하게 동맹하고 또 줄다리기에 열심인‘유럽’국가. 그러나 자신들은 유러피안이 아닌 것 같다고 말하는 나라, 우울하고 우중충한 날씨, 그런 날씨가 만든 디오니소스적 감성이 낳은 비틀즈와 라디오헤드의 나라. V가 유난히 고독해 보이고 비련의 주인공 같다면 편견일까? 미국이 V를 그려냈다면 또 다른 시각일 것이다. 아마 V는 이비와 사랑에 빠지고 그녀를 납치한 대법원을 멋지게 죽이고 영화의 후속편을 암시하며 죽어가겠지? 그럴리는 없을 테지만 독일에서 영웅 영화가 만들어진다면? 상상이 안 된다.히틀러는 1등 국민이라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쳤지만 세계대전 이후 모든 것을 잃은 독일 국민들에게 나타난 카리스마적 인물이었다. 그래서 히틀러는 히틀러가 된 것이다. 내가 처음에 연상했던 V와 히틀러는 전혀 다른 인물이었다. 오히려 셔틀러 대법관이 히틀러일 것이다. 브라운관에만 등장하며 강력한 제스쳐와 설득적 언어로 국민의 무비판적 순종을 이끈 인물이기 때문이다.
하얀 가면의 제국,을 읽고산타클로스도 예수님도 미국 사람인 줄 알았던 어렸을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 성인이 되었다고 달라진 점은?할리우드 여배우들의 패션이 동양의 변방국가의 풋내기 여대생에게 전달되는 속도는? 중국인의 야만성과 죽어도 벗어날 수 없는 후진국 아이덴티티의 근거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정치관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되는지, 노벨상의 주인공들은 언제나 훌륭한가?‘하얀 가면의 제국’에서 말하는 하얀 가면은 우리네 모두의 백인우월주의에 근거한 잘못된 역사관을 뜻한다. 서구 중심의 세계는 우리에게 가면을 씌우고 ‘백색’을 중심으로 사고하게 만들었다. 나를 예로 들어보면 악의 본좌급이라고 생각했던 후세인(순전히 전쟁의 원인은 후세인인 줄만 알았던 순간들이 스쳐지나간다.), 이슬람인들은 모두 테러리스트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소련이란 실패한 기형의 나라라고 생각했던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한 순간도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였으며 그 생각을 토대로 역사관과 세계관이 체계를 잡아가고 있다.특히 러시아의 특이 부분들은 흥미로운 챕터다. 파시즘과 스킨헤드의 관계는 독일문화 시간에도 잠시 배운 적이 있었지만 러시아에도 스킨헤드가 존재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들이 극우 정치체계에 의도적으로 체계적으로 사용된다는 점은 참 놀라울 뿐이다. 살인기계 제조장 군대에 대한 설명은 우리나라에서도 빈번히 일어나는 ‘의문사’와 연관시켜 읽으니 그 내용이 살갗에 닿는 기분이다. 기존의 러시아 문화에 대한 기존의 의식이 뿌리부터 흔들리는 느낌이다. 서구 중심주의가 불러온 고급문화의 중심국, 러시아의 이미지 또한 한국인이 가지는 세계관/가치관을 보여준다.또한 서구 중심의 크리스트교와 불교의 재해석은 비종교인인 내 시선을 끌기 충분했다. 서양에서 선불교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 이유로, 서양의 자본주의 소비와 향락 지향의 주류사회에 대한 스스로의 반성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었으나 실제로 선불교 보편화의 배경은 그와 다르다고 책을 서술하고 있다. 그 이면에는 파시즘이 존재한다고 말하는데, ‘선(zen)'붐을 일으킨 장본인인 엘리아데와 스즈키는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학술자, 종교인이 아니라는 점이다. 착취와 폭력을 기반으로 하는 극우체제에 대한 옹호로 출발한 종교전파에 진정한 자비와 윤회가 존재하는가? 놀랍다. 서양에서의 선불교는 중산층 위주의 종교라는 점도 실로 놀랍다. 종교의 진정한 의미는 어디로 사라진 것이지?독일의 역사적 정체성을 닮은 한 성적소수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헤드윅’의 감독은 미국태생의 ‘미국인’이다. 스스로 말을 꺼내기 두려워하는 자국의 역사, 그 안의 비틀린 정체성을 안고 살아가는 독일인의 이야기를 한 미국인 게이가 다룰 수 있던 것도 제 3자가 바라본 타국의 상황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다룰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한국 작가가 쓴 대한민국에 대한 책보다 외국인이 말하는 한국에 대한 이야기가 훨씬 솔깃하다. 유길준의 정체성, 동학농민운동과 박정희의 매커니즘 등은 한국에서 21년을 살았고 6년이 넘는 국사 교육을 받아왔지만 어리둥절한 이야기들이다. 한국인이 모르는 한국의 역사를 객관적이고 진중한 태도로 서술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역사란, 한 사람의 가치체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미디어와 그 나라와, 나아가서는 세계의 범위로 발전한다.그리고 또 하나, 미디어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와 정치적 현실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기구인 미디어는 서구 중심의 편에서 말하고 있으며 어떠한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듯하다. 막대한 공신력을 자랑하는 CNN은 마치 백악관의 대변인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미국에서도 많은 선각자들이 자국의 근본적인 실수, 거대한 음모에 대해 파헤치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씁쓸하다. 미디어를 전공하고 있는 학생의 입장으로서 미디어의 방향은 점점 역주행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본다. 미국 상품 불매운동이라는 아랍/이슬람권의 저항적 움직임이 미디어의 주목을 끌지 못하는 것, 그 시간에 참전 병사들의 애국심으로 똘똘 뭉친 눈물의 수기를 듣고 있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헌법의 양지를 찾아서1학년 때 들었던 ‘정치학개론’시간에 교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법은 정치, 언어, 예술, 철학 등 모든 분야의 학문과 닿아있다.” 허나, 법률계가 갖는(혹은 가지고 있을 거라고 여겨지는) 특권의식과 아우라, 법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거리감은 자연스럽게 법학 관련 책과 멀어지도록 돕는다. 그런데 검사출신의 법학자가 쓴 별거 없어 보이는 이 책에는 일반 사람들이 법에 대해 가지는 선입견에 대해서 정면 맞대응해보겠다는 열정이 느껴졌다. 우선 법이 가지고 있는 특권의식을 억지로라도 벗어던진 태도가 맘에 들었다. 책을 읽은 친구들에게 물어도 한결같은 대답이다. “의외로 어렵지 않고 재밌었어.”법같이 체계적이고 복잡한 학문에 쉽게 접근하는 자세 자체가 법을 이해하는 기본적 소양이다. 특히 제 1장 ‘정답은 없다’편에서 내가 법에게 한결 같이 질문했던 물음, 즉 법에도 답이 있는가에 대해 속 시원히 긁어준다. 답과 식이 없는 반면 판사의 주관과, 가치관 또한 시대성이 있다. 사람의 주관, 변하는 사회에 대한 흐름처럼 공식이 없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법은 바로 ‘리갈 마인드’라는 주관적이며 모호하고 추상적인 개념으로 존재한다. 리갈 마인드를 관통하게 되면 법에 대해 첫 번째 오해는 푸는 것이다. 얼핏 보면 그럴듯한 기준이 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제대로 된 실체를 가지지 않는다. 그것이 가장 큰 법의 장점이며 단점이라고 생각한다. 사람과(사람에 의해) 사회에 따라 유한한 유동성을 지닐 수 있지만, 사람이 기계가 아닌지라 늘 완벽하게 옳은 판단을 할 수 없고 사회가 옳은 방향으로 흘러가지도 않기 때문이다. 이래서 법이 어렵다고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판검사, 변호사, 검찰, 그리고 경찰까지 법과 관련한 많은 사람들이 100% 국민들 만을 위해서 봉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때마다 터지는 법률계 비리, 인권과 평등의 버팀목인 헌법을 팔아 특권계급으로 으르렁 거리는 판검사와 변호사들의 태도, 검찰과 경찰의 공권력 남용, 시민을 향한 폭행 사건들은 일반 국민들이 법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하도록 만든다. 심지어 군에서까지 특권계급으로 행사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군법무관이라면 찍소리도 하지 못하고 그들의 말을 다 들어주는 대한민국 군대가 더 놀랍고.시민들이 지켜낸 헌법의 순결함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법률은 시민을 통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국가를 통제함으로써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했다. 그러나 국가는? 국가는 일종의 괴물이 되어 시민들을 짓이기기도 했으며 오히려 시민을 통제하려고 했다. 국가가 만든 법을 시민이 따라가는 게 당연한 과정처럼 여겨지고 시민들은 나몰라라하고 그저 따르고만 있다. 진술거부권이라는 것이 명백히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수사에 방해가 되니 시민들에게 언급하지 않는 것은 기본이요, 대충 자백하고 집행유예나 받으라는 태도로 일관한다고 하니 할 말이 없다. 법에 대해 무지한 시민들의 잘못도 있다. 하지만 시민은 법에 의해 도움 받고 보호되는 존재지 법 위에서 법을 지휘하는 능력이 없다. 그것은 법률가의 직업이다.
다가오는 테크 아이템을 위한 엣지있고 엘레간트한 애티튜드?볼륨감 넘치는 바이크 재킷과 시가렛 팬츠를 매치하고 엠파이어 빌딩처럼 높은 청키힐을 신자?무슨 말을 하는거야…..패션지의 영어남용에 대한 문제적 고찰극단적인 보브 스타일처럼 그것은 … (중략) 자기 표현적인 꾸뛰르 룩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헤어 컷도 똑같지 않지만 그 것이 시그니처 스타일의 포인트다. (바자BAZAAR 8월호 기사 중)윈도 페인 체크 수트와 헐렁한 재킷, 쇼트 램프 셰이트 스커트를 매치하거나 벨 커브 모양의 오페라 코트를 자신 있게 소화하는 것 역시 게스키에르 식 스타일링. (중략) 꾸뛰르적 감성이 가미된 실루엣들은 오히려 모던 한 옷에 새로운 엣지를 첨가시키기 위함이다. (보그VOGUE 10월호 기사 중 )정확한 재단이 결합한 리틀 드레스뿐 아니라 헤어핀, 주얼리를 빼곡 히 박아 넣은 벨트와 주얼리로 만든 단추….쇼 후반부에 등장한 강렬한 레드 컬러의 더치 칼라 코트는 이루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멋졌고… 부담스러운 브로케이드가 아니었고, 모델의 볼드한 뮬도 멋졌다. (보그 VOGUE 기사 중)혹은 아주 스키니한 팬츠에 벌키한 니트를 걸친 다음 컬러풀한 오드리 슈즈를 신어도 좋겠다. 참, 오드리 슈즈를 신을 땐 산뜻하고 가벼운 워 킹을 기억할 것! (바자BAZAAR 기사 중)그들은 왜 이런 말을 쓰는 걸까?알 수 없는 용어들과 지나친 영어 사용1. 라이선스(License) 패션지의 특성기사를 그대로 번역하여 지면에 싣거나 일정부분을 차용 -별도의 번역과정을 거치지 않음전문지식이 없으면 이해하기 힘든 난해한 패션용어들을 설명 없이 진행2. 패션 종사자들의 직업 언어 사용이해시키려고 하지 않고 일반 독자가 알고 있다는 전제하에 계속됨3. 의도적인 괴리감 유발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언어 스타일'을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무심한 듯 시크하게, 모스키노의 인형같은 애티튜드' 특별한 패션 용어는 없지만 … 왠지 모를 부담감?… 잘난 척 하는 건가?독자에게 위화감이나 괴리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패션지의 목적은 아니다. 그렇다면?멋진 직업인 것은 인정! 패션만큼 멋진 언어 사용은?1. 난해한 패션용어의 해석 – 각주 달기 부가설명 2. 과도한 영어 사용 자제 3. 언어적 똘레랑스 가지기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nameOfApplication=Show}
신문은 얼마만큼의 진실을 말하고 있는가2차원의 점과 선, 면뿐인 종이 몇 장. 그 안에 삶과 그 안의 진실과 어조와 철학적 성찰이 담기면 신문이 된다. 그런데 그 안에 다시 권력이나 제국주의, 편 가르기 담론 따위, 거기에 가족 중심의 족벌경영이 합해져서 신문은 더 이상 평면이 아니라 입체가 된다.10자 내외정도의 제목일 뿐인데도 그 안에 엄청난 이해관계나 고정관념이 숨어있다는 사실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알고 있을까. 신문 지면이 말하고 있는 수많은 것들이 편집이라는 정교한 작업에 의해 축소되었거나 확대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우주만큼 큰 이야깃거리가 먼지처럼 작은 현실이 되고 옆집 아저씨 런닝 셔츠처럼 사소한 것이 한없이 부풀려져 있다는 것을!어떤 편집이 옳고 그르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신문이 분명하게 다른 세계를 보여준다는 점을 책은 충분히 설명하고 있다. 난 크게 고무되었다. 미?독?토 시간에 신문의 목소리를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가에 대해 토론 한 기억이 난다. 토론자였던 선희는 신문이 자신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어야 더 건강한 여론이 만들어지지 않을까란 의견으로 홀로 고군분투했었는데, 당시 나는 선희의 의견에 동의했다. 신문의 태도에 답은 어디 있겠으며 답만 제시하면 신문의 제 기능을 잃는 것은 아닐까 싶었기 때문인데, 틀린 말은 아니지만 아주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문이 독자의 현실인식에 지속적이고 강력하게 영향을 끼쳐 세뇌 당할 수 있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현재의 신문들은 거의 종합편집 시스템을 선택하고 있지만 아직 온전한 것 같진 않다. 어떤 기사가 사회면이나 경제면에 실렸다고 해서 그 기사가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은 올바른 신문독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표제의 특수성을 살펴보면 진기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언론을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아니면 적어도 건강한 신문독법에 대해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조선일보와 한겨례의 캡션 정도는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군 장갑차 사건에 대한 3대 신문사와 그 밖의 신문지면의 표제를 예상보고 맞춰보는 작업은 흥미로웠다. 편집국장의 머리위에 있는 기분이랄까?건강한 신문독법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우주같이 큰 현실과 런닝 셔츠를 구분해 낼 수 있을까. 각 신문사의 캡션과 지면 분할을 예상해보고 비교할 수 있는 정도의 능력은 기본 소양을 가지고 있고, 여러 신문의 색을 구분하여 판단할 수 있으며 자신만의 독자적인 식견을 가질 수 있다면 완벽하지 않을까? 조선일보가 우익이라고 해서, 그것을 비판해야 할 당위성은 없다. 그들의 시각에 동의하면 그만이고, 우익의 시각을 조선일보를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