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마산으로 이사 오기 전까지는 아주 시골에서 살았었다. 지금이야 인터넷이 있어서 아무리 시골이라도 어린아이들은 여느 도시 아이들처럼 놀거리와 볼거리를 많이 접하고 있지만 내가 초등학교 들어갈 즈음인 80년대는 인터넷이란 것이 있을 리가 만무했으며 장난감이란 것도 축구공 외에는 거의 없었다. 그 당시 나를 비롯한 우리 마을 아이들은 대부분은 TV보는 것보다 밖에서 뛰어노는 것이 더 좋아 했으며 장난감을 자연으로부터 얻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대나무는 박물지와 후한서의 고사에 나오는 죽마처럼 우리들에게는 사계절 내내 없어서는 안 될 그런 장난감이었다.우선 봄이 되면 어머니께서는 갓 땅을 뚫고 밖으로 나와서 봄을 알리는 죽순을 따서 반찬으로 종종 만들어 주곤 하셨는데 어린 마음에 노랗고 징그럽게 생긴 죽순이 얼마나 싫었던지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서 겨우 하나만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봄이 되면 대나무는 짙은 녹색을 띈 지난해의 대나무 이파리가 아닌 아주 밝은 연두색의 새 잎이 나오는데 그런 잎을 따다가 배를 만들기도 했었다. 초등학교 다니는 마을 형들에게 배운 것이었는데 그렇게 배를 접어다가 근처 시냇물에다 띄워놓고 떠가는 것을 보고 해가 질 때까지 물수제비를 하며 놀았었다.여름밤이 되면 친구네 집 마당에서 평상에 모기향을 피우고 동네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친구네 할머니의 옛날 얘기를 들으며 수박을 맛있게 먹었다. 그러다 할머니의 이야기가 점점 더 무르익고, 매캐한 모기향 냄새로 우리들의 코가 알싸하게 될 때면 대밭에 스치는 바람소리가 우리들의 귀를 간지럽게 하는데 이것은 내가 아직까지 잊지 못하는 최고의 여름밤의 정취이다. 대밭에 스치는 바람소리는 이야기의 분위기에 따라서 우리들에게 다르게 들리게 되는데, 무서운 이야기에서 우리들을 소스라치게 놀라게도 하고, 재미난 얘기를 할 때는 여름밤을 좀 더 시원하게도 만드는 그런 훌륭한 소도구였다.오곡백과가 무르익는 가을이 되면 시골마을의 산과 들에는 밤이며, 감이며 도토리가 지천으로 열리게 된다. 그러면 우리들은 자기 키 보다 더 훨씬 큰 대나무를 하나씩 들고는 산으로 나선다. 보통 밤나무 같은 경우는 산에 있는 것이라 해도 주인이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함부로 따지는 않고 주인이 없음직한 나무만을 골라서, 도토리나무는 꿀밤 나무라 해서 주인이 없으므로 닥치는 대로, 그렇게 나무에 열려있는 밤과 도토리를 대나무로 쳐서 땅으로 떨어지면 들고 간 포대 자루에, 주머니에 한 가득 담다보면 어느새 짧은 가을 해는 산을 넘어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는데, 그 노을을 따라서 우리들은 마을로 내려왔다. 밤을 깔 때, 도토리를 주울 때 밤 껍질에 박힌 가시나 소나무 가시에 찔려서 고사리 같은 손이 까맣게 변하고 따끔따끔 거리지만 가득 찬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며 마음만은 그렇게 가을처럼 풍성했다. 그리고 동네 어느 집을 가더라도 감나무가 있어서 감을 따는 재미도 쏠쏠했다. 감나무만큼 큰 대나무의 끝 마디를 반으로 가르고 줄로 묶어서 어느 정도 탄성이 생기게 만든다. 그렇게 해서 하루 종일 목이 아프게 감나무 끝을 바라보며 감이 달려있는 가지를 하나하나 꺾어서 감을 땄다. 감을 어머니와 할머니께 가져다주면 어머니는 감을 깎아서 주셨고, 할머니는 곶감을 만들기 위해서 대청에 앉아서 밤이 깊도록 감을 깎으셨다.겨울이 되면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재미가 있는데 마른 대나무 가지를 구해서 집 마당우물 앞에 있는 아궁이에 대나무를 장작으로 불을 붙이고 언 손과 몸을 녹인다. 그러다 대나무의 불씨가 서서히 죽어갈 때 각자가 집에서 가져온 감자며 고구마를 불 밑에 다 넣고 익기를 기다린다. 다 익어서 뜨거운 감자나 고구마를 꺼내어서 호호 불어가며 껍질을 벗겨내서 먹으면 그 맛은 정말 꿀맛이었다. 대나무가 다 타서 생긴, 감자와 고구마에 묻은 검댕 때문에 친구들과 내 얼굴이 새까맣게 된 모습을 보고 서로 웃기도 하고, 그 것을 대나무 꼬챙이에 묻혀서 벽에다 낙서도 했었다. ‘누가 누구를 좋아 한다’, ‘누가 어제 어떤 일을 했다’는 등, 잘 쓰지 못하는 글씨로 벽에다 낙서를 하며 즐거워도 하고, 지나가는 동네 어른들의 나무람에 혼쭐이 나서 동네 어귀까지 줄달음질 치다보면 어느새 한 겨울의 추위는 사라지고 몸에 땀이 나곤 했었다.이렇게 나는 어린 시절을 대나무와 함께 지내왔고 대나무를 통해서 장난감을 얻었으며, 대나무뿐만이 봄이 되면 진달래도 먹고, 여름에는 개울에 가서 송사리도 잡았다. 가을에는 메뚜기를 잡으러 추수가 끝난 논밭을 뛰어다니고 겨울이 되면 동네에 있는 이름 모를 나무를 깎아서 자치기도 하며 그렇게 자연의 품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그렇게 10년이 훨씬 넘는 시간을 지나서 이번 학기 ‘한국의 전통사상과 민족문화’시간을 통해서 대나무에 대해서 과거의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책의 내용을 살펴보면 ‘변함없이 사랑받는 대나무’, ‘정신을 살찌우는 대나무’, ‘높은 절개 훤칠한 몸’, ‘차군’, ‘상강가의 얼룩진 대나무’등 대나무에 대한 선인들의 다양한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솔직히 현대인들이 본다면 고사와 시에 나타난 선인들의 생각이나 행동들이 허무맹랑하고 너무 과장된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현대인들의 관점에서 대나무를 ‘이 사람’, ‘이 친구’라고 부르는 것이 어디 될법한 말인가? 또한 엄동설한에 변하지 않는 대나무의모습과 높은 절개가 무슨 관련성이 있냐고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1. 필자는 민족을 어떻게 정의하는가?필자는 민족을 영어의 ethnicity 혹은 ethnic group에 상응하는 개념으로 ①특정한 문화(언어, 종교, 관습 등)를 공유하는 인간집단인데, ②흔히 이들은 특정한 지역에서 더불어 살아가면서 ③집단 구성원 사이에 동질적인 소속감, 즉 민족의식(ethnic consciousness)를 갖고 있다. 민족은 생물학적 개념이 아니라 문화적인 개념으로 파악해야 하지만 두 인간집단의 언어나 종교 모두가 동일하다고 할지라도 두 인간집단을 무조건 단일 민족에 속한다고 간주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민족의식은 민족 구분의 주관적 지표이고, 민족의 존재는 역사과정에서 불변적인 것이 아니고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단일 민족이라고 해서 과거에 한반도에 살았던 우리 조상들도 처음부터 단일 민족이었다고 이해해서는 안 되며, 한반도에 있었던 다수의 민족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하나의 민족으로 발전하였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단일 민족은 역사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지 태초부터 주어진 것이 아니다.2, 국민?인종은 각각 민족 개념과 어떻게 다른 개념인가?국민은 ‘국가(state)를 구성하고 있는 주민’의 개념으로 영어의 ‘nation’과 동일한 개념으로 규정한다. 우리는 국민과 민족을 혼동하고 있는데 국민은 정치?경제 공동체라는 점에서 문화 공동체인 민족과 상이한 개념이다. 하나의 국민이 단일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는 경우보다는 다수의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는 경우가 훨씬 많으며. 일반적으로 다민족 국가에서는 다수의 언어가 사용된다.인종은 인간의 체질적 상이성에 기초한 분류 개념으로서 영어의 'race'에 해당하는 개념이다. 흔히 지구상의 인종을 황인종, 흑인종, 백인종의 세 인종, 또는 오스트랄로이드, 아메리카 인디언을 포함한 다섯 인종으로 구분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단일 민족에 속할 뿐만 아니라 동일한 인종에 속하지만 사회과학의 용어로서 인종과 민족을 엄격하게 구분하여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인종은 혈연적?체질적 수 있고, 거란장등의 고증을 바탕으로 한반도가 혼란스러울 때에 북방에서 유목민들이 여려 차례에 걸쳐서 들어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농경사회에 동화되어 갔다고 본다. 이런 맥락에서, 백정은 북방에서 한반도로 들어온 유목민 집단의 후예임에 틀림없고, 오랜 역사과정에서 백정과 한반도 원주민들이 서로 동화되어 버렸기 때문에 백장도 우리 조상의 일부이며, 그러한 민족들이 혼혈과정과 동화과정을 거쳐서 오늘날의 한민족이 발전하였음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다.6. 브리튼 섬의 민족 통합 역사로부터 한국 국사학계가 배워야 할 점은?영국인들은 그들의 역사가 5천 년 단일 민족으로부터 출발했다고 전제하지 않고, 수많은 민족들이 영국에 들어와 오늘날의 영국 국민이 형성된 과정을 매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다양한 민족들이 브리튼 섬으로 유입하여 오늘날 영국 국민이 형성된 것을 영국사에서 명백히 밝히고 있다. 즉, 그들의 역사를 기술하는데 민족과 국민을 결코 혼동하지 않는다.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이해하는 방법은 영국인들이 그들의 역사를 이해하는 방법과 극단적으로 대립되는데, 우리는 수많은 민족들이 한반도에 들어온 사실을 주목하지 않을뿐더러 외부에서 한반도로 유입한 민족들이 오랜 과정을 걸쳐 오늘날의 한민족으로 형성된 과정을 잘 인정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민족들이 통일왕국을 이루어 하나의 민족으로 발전하는 과정은 영국에서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일어난 과정인데, 이런 점에서 영국사는 한국사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 다만, 한반도는 브리튼 섬보다 1천 년 전에 통일왕국으로 출발하였기 때문에 오늘날 한반도의 한국인들이 브리튼 섬의 영국인보다 문화적으로 훨씬 더 많이 동질적이라는 점이 서로 다를 뿐이라는 점을 우리는 인식해야 한다.7. “단군조선을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라고 보지 않는다.”라는 주장의 근거는?첫째, 단군조선은 고려시대 후기의 시대적 필요성에서 등장한 것이다. 고려시대 후기 이전의 사료와 중국의 문헌 사료에서도 단군조선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으며, 위만이 고조선의 지배자로 군림하였던 것 자체는 부정할 수 없다.이러한 이유로 위씨조선을 건국한 위만은 중국인도, 한국인도 아니다.10. 고등학교 국사교과서에 나타난 ‘고조선의 세력범위’의 문제점은?현재 중?고등학교 국사교과서는 고조선의 세력 범위를 나타내는 지도를 싣고 있다. 이 지도를 살펴보면, 고조선이 만주 남부와 한반도 북부에 광대한 영토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이 지도는 정확한 사료에 근거하여 만든 지도가 결코 아니다. 만약 고조선의 영역에 관한 문헌 기록이 부족하기 때문에 고고학적 자료를 가지고 고조선의 영역을 설정하는 것이라면 여기에는 많은 위험성이 있다. 왜냐하면 정치권은 문화권과 항상 일치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영역 안에는 고조선과 비슷한 성격을 가진, 현재로서는 그 이름을 알 수 없는 여타 정치 집단이 존재하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11. 한반도 북부와 만주 지방에 한사군이 언제 설치되었고 언제 제거되었는가?한제국은 위씨조선을 정복한 BC 108년 그 해에 낙랑군, 진번군, 임둔군을 설치하였고, 다음해(BC 107년)에 현도군을 두어 소위 한사군을 설치하였다. 한사군의 위치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제기되고 있는데, 다수의 국사학자들은 낙랑군은 대동강 유역 위씨조선 지방에, 진번군은 자비령 이남 한강 이북의 옛 진번 지방에, 임둔군은 함남의 옛 임둔 지방에, 현도군은 압록강 중류 동가강 유역의 옛 예 지방에 설치된 것으로 본다.한사군은 각기 그 지방으로부터의 저항에 직면하여 약 25년 만에 진번군과 임둔군이 폐지되고, 그 관할 하의 여러 현이 각기 낙랑군과 현도군에 귀속되었다(BC 82년). 다시 7년 만에 현도군은 예의 땅으로부터 만주의 흥경 방면으로 이동하였다(BC 75년). 후한 말에 들어서, 요동 지방에서 독자적 세력을 펴고 있던 공손씨는 낙랑군의 남부에 위치한 옛 진번 땅에 대방군을 설치하게 되었다(AD 204년). 마침내 AD 313년에 고구려에 의하여 낙랑군이, 이어 백제에 의하여 대방마한?진한?변진?왜를 들고 있는데, 읍루와 왜조차도 동이에 포함된다는 사실로부터 동이가 결코 우리 한민족과 동일한 범주의 인간집단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는 동이를 고대의 한민족으로 오래하는 사람들이 대단히 많다. 특히 중?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는 ‘동이족의 분포 지역’과 ‘고조선의 세력 범위’를 함께 보여주는 지도를 게재함으로서 이러한 오해를 부추기는데 일조를 하고 있다.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동이의 분포와, 확실히 밝혀지지도 않은 고조선의 세력범위를 나타내는 지도를 왜 국사 교과서에 싣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이러한 사실만 보아도, 국사 교육이 뭔가 잘못되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15. 한반도의 언어적 동화과정에서 말하는 부여어군과 한어군은?역사비교언어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삼국시대 이전의 한반도에는 북방의 부여어군과 남방의 한어군이 있었고, 부여어군에는 고구려어?동옥저어?예어 등의 언어들이 속하였으며, 한어군에는 마한어?진한어?변한어 등의 언어들이 속하였다고 본다.물론 우리 민족이 과거에 다른 언어들을 사용하였다는 주장을 민족 분열 책동이라고 간주하는 북한의 언어학자들이나, 남한의 일부 언어학자 중에도 삼국의 언어가 방언 차이 정도로만 달랐던 것으로 믿는 학자들처럼 삼국시대의 언어가 상이하였다는 것을 부정하는 학설도 있다.하지만 『주석』에 나오는 백제의 왕을 부르는 대목에서 백제의 지배 민족과 피지배 민족의 언어가 서로 달랐음을 암시한다. 백제의 지배 민족은 부여어군에 속하는 언어를 사용하였고 피지배 민족은 한어군에 속하는 언어를 사용함으로서 지배 민족과 피지배 민족의 언어가 서로 달랐다. 지명을 표기할 때도, 삼국의 언어적 차이가 방언 이상의 차이가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삼국의 언어적 차이는 오늘날의 평안도 말과 경상도 말 사이에 나타나는 방언적 차이를 휠씬 넘는 것이었다. 오늘날까지 전해 오는 자료가 빈약하여 삼국시대와 그 이전의 언어를 연구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것이 사실이나, 문헌 자료를 분석한 연구 결과에 따라서 고구려를 우리 한민족이 세운 국가라고 할 수 없으며, 우리 한민족이 고구려를 계승하였다고 할 수도 없다.셋째, 우리 한민족은 삼국시대 초기부터 형성되어 있던 민족이 아니었다. 삼국시대 초기에는 한민족이 형성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한민족이 세운 국가가 있을 수 있겠는가? 민족의 기원을 논의하는 것과 민족 자체를 논의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우리 한민족의 기원에 관련된 민족이라고 해서 그들을 모두 한민족이라고 부를 수는 없는 것이다.19. 왕건이 북방의 여진족을 회유하기 위해 앞세운 이데올로기는 무엇인가?황해도 호족들을 기반으로 하는 왕건은 북방의 여진족을 통합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가 필요하였을 것이다. 그 이데올로기가 바로 ‘너(평양의 여진족)’와 ‘내(개성의 왕건 세력)’가 다함께 고구려의 후예라는 이데올로기인 것이다. 왕건은 이 이데올로기를 앞세움으로써 여진족과 회유하여 평양과 그 일대를 차지할 수 있었다. 또한 왕건은 실질적으로 북방의 여진족으로부터 군사적인 도움을 많이 받은 셈이었다. 다시 말해서, 왕권이 후삼국을 통일하여 고려를 건국하는데 여진족들은 군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존재였다. 고려 건국의 주역들은 북방의 여진족을 통합시켜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다함께 고구려의 후예이다.‘라는 이데올로기를 조장하여 이를 적절히 이용하였다. 이런 이데올로기를 조장하고 정당화시키기 위해, 왕건은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의미에서 국명조차도 고려라고 칭하였던 것이다.20. 만리장성은 정치적은 경계인가? 아니면 문화적인 경계인가?만주와 중원 사이에 축조된 만리장성은 단순히 군사적인 경계선이 아니었고 문화적인 경계선이었다. 고고학적으로 볼 때, 만리장성 북쪽의 만주와 한반도에는 지석묘와 비파형 동검문화로 대표되는 독자적인 문화가 존재하였고, 이 문화는 만리장성 남쪽의 청동기 문화와 확연히 구분되었다. 언어학적으로 볼 때, 만리장성 북쪽의 민족들은 우랄알타이어족의 언어들을 사용하였고, 남쪽의 민족들은 중국-티베트어족의 언어들을 사용하였다. 이와 같이 만리장성을 .
기독교의 인간이해와 도덕1. 기독교의 인간이해기독교의 인간이해와 종교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아주 어려운 문제이다. 종교가 없는 나로서는 기독교를 비롯해서 다른 종교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그리고 인간이해의 방법과 종교를 연관 짓는 것은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참고서적을 위주로 공부해 나간다는 느낌으로 이런 문제에 대해서 말하려 한다.내가 누구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괴로운 물음은 인간이면 누구나 풀고 싶은 수수께끼이다. 미국의 저명한 현대신학자요, 사상가인 '라인홀드 니버' 교수는 그의 저서 「인간의 본성과 운명」이라는 책 첫 구절에서 "인간이란 무엇이냐 하는 문제는 언제나 인간 자신을 가장 괴롭혀 온 것이다. 즉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가 하는 물음은 나는 어떻게 살 것이냐의 결단을 찾는 첫 걸음 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기존재의 근원과 행방, 목적과 이상에 대해서 궁극적인 질문을 갖고 있다.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이며 우리는 무엇을 믿고 살 것인가? 나의 생의 좌표를 어떻게 정하고 생의 방향을 어디에 둘 것인가? 여기서 제기되는 문제는 '신은 존재하는가?'이다. 만일에 신이 존재한다면 나와는 무슨 관계가 있으며, 또 어떠한 관계를 가져야 할 것인가? 우리는 인간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려고 할 때에 절대자에 대해서 이런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그러면, 인간이란 무엇인가? 고대 희랍에서는 인간을 이성적인 동물이라고 정의했다. 즉 생각하는 인간상을 제시했다. 기독교는 신앙하는 인간, 즉 종교적인 인간상을 제시했다. 그리고 근대인은 기술인, 즉 제작하는 인간으로 정의했다. 서양사람들은 위에서 말한 세 가지 인간상을 제시했다. 그것은 이성인, 신앙인, 기술인이다. 오늘의 서구문명은 이 세 개의 인간상에서 나왔다. 즉 아테네에서 탄생한 이성인이 희랍 문명을 만들었고, 예루살렘에서 태어난 신앙인이 기독교 문명을 낳았고, 이태리 프로텐스에서 태어난 기술인이 근대의 과학기술 문명을 만들었다. 하나는 생각하는 인간을 낳았고, 하나는 신앙하는 인간을 형성하였다. 그리고 또 하나는 제작하는 인간을 창조하였다. 이 셋 중 기독교의 인간상은 어떻게 어떤 요소로 구성되었는가를 창조의 원리에서 설명할 수 있다.⑴ 창조원리에서 본 기독교의 인간이해기독교는 먼저 창조자와 피조자의 관계에서 이해하는 것이 기본이다. 기독교의 인간이해는 먼저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데서 시작된다. 신앙은 아는 것이 아니요 믿는 것이다. 지의 질서와 신앙의 질서, 이성의 차원과 신앙의 차원은 동일한 영역이 아니다. 알 수 없는 것을 믿는 것이요, 알 수 없기 때문에 믿는 것이 신앙이다.합리주의의 입장에서 본다면 기독교 신앙은 역설이요, 모순이요, 부조리이다. 그렇다고 기독교가 강조하는 신앙이 이성의 질서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질서와 신앙의 질서를 둘 다 인정하고, 이성에 대한 신앙의 우위를 강조하는 것이 신앙인의 기본자세다. 파스칼은 신앙은 정신의 고차원적 도박이라고 말했다. 무슨 수가 나올지 아무도 모른다. 도박은 불가지한 것에 나를 내던지는 결단적 행위이다.그러면 왜 신앙을 도박이라 했을까? 그것은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편에 내 인생을 걸고 살아가느냐? 아니면 하나님이 없다는 편에 내 인생을 맡기고 살 것인가? 이 두 가지 인생의 태도 중 어느 하나를 주체적으로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로 신앙은 진지하고도 성실한 도박이다. 산다는 것은 자유요, 자유는 선택하는 것이며, 선택한다는 것은 어떤 가능성에 나를 내어던지는 것이다. 고로 신앙은 인생의 결단이요, 선택이요, 도박이다. 기독교의 인생관은 이런 모험에서 출발한다.그러면 기독교적 신앙인은 무엇을 믿느냐 하는 문제다. 기독교는 창조자와 피조자의 대화의 종교다. 태초에 여호와 하나님이 계셨고, 그 하나님은 유일하시며, 우주를 창조하시고, 인간을 지으시고, 역사를 주관하시어 모든 것이 그의 지배 밑에 있다고 믿는다. 고로 이 하나님은 만물의 근원이요 우주의 주관자이시다. 이 사실을 성경은 다음과 같이 증명한다. "나 여호와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시 44:6), "나는 알파요,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장차 올 자요, 전능자라"(계 1:8). 그는 알파와 오메가이기 때문에 여호와를 아는 것이 최고의 지혜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최고의 덕이다.하나님은 전능하신 창조자요, 인간은 유한한 피조자이다. 하나님과 인간은 언제나 창조자와 피조자의 관계에 서 있다. 그러므로 피조자인 인간이 자기를 절대화하거나 주인이 되려고 할 때 그런 행위는 창조자에 대한 반역이요, 범죄요, 교만이요, 우상숭배이다. 창조자 신앙과 피조자 의식은 기독교적 인간상의 첫째 요소다.창조자는 전능하시고 영원하시며, 피조자는 유한하고 부족하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인간은 절대적으로 단절된 차원에 속한다. 그것은 비연속(非連續discontinuity)의 세계다. 인간으로부터 하나님에게로 가는 길은 없다. 다만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 오시고 그 부르심에 인간이 응답함으로 창조자와 피조자의 인격적 관계는 성립된다.유물론자 '포이에르바하'는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하나님을 창조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렇게 피조자와 인간을 절대화하고 주인화하는 유물론적인 사상을 기독교는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다. 창조적 원리에서 본 기독교의 인간이해는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자기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기독교 인간이해의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다. 인간만은 다른 동물과는 달리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는 말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깊은 관계를 표시하는 종교적 의미가 들어 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존엄성을 인간에게 부여한 이유는 인간이 이성을 소유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님과 인간은 서로 대화하고, 서로 응답하는 관계 속에 있음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인류의 아버지요 인간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말한다.피조자인 인간은 창조자 하나님 앞에서 언제나 두 가지 기본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 하나는 무엇 무엇에 의하여(by)라는 관계요, 또 하나는 무엇 무엇을 위하여(for)라는 관계다. 이 말은 피조자인 인간은 창조자인 하나님에 의하여 만들어졌고, 또 하나님을 위하여 존재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을 위하여 존재하며, 모든 것은 그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라는 뜻이다. 고로 창조의 원리에서 본 기독교의 인간관은 사람이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이 중심이다. 인간들이 창조한 문화, 예술, 인간이 경영하는 정치와 경제 등 지상에서의 인간의 모든 활동은 창조자의 이름을 높이고, 그의 영광을 나타내는 데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는 말이다. 문화는 종교에 봉사하는 한에 있어서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현대 신학자 폴 틸리히 교수는 "종교는 문화의 내용이요, 문화는 종교의 형태"라고 말했다. 고로 기독교는 문화의 자율적 원리를 인정하지 않는다.2. 기독교의 도덕기독교 윤리학은 기독교인들이 처한 다양한 삶의 문제에 답을 주어야 하기 때문에 윤리는 기독교와 세계의 경계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현실 속에서 기독교의 윤리관과 충돌하는 다양한 문제점들은 일면 도덕적 위기라고 할 수 있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도덕적 가능성과 활력을 얻을 수 있는 상황이라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기독교사회 윤리는 현대의 다원적인 가치 속에서 삶의 방향을 통전적으로 제시하고 비도덕적 행위를 제어하며 선을 성취하는 능력을 배양하는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 현대의 기독교사회윤리학은 이런 맥락에서 ‘경계선의 윤리’라고 할 수 있다. 세계와의 경계선에서 세속화에 물들지 않고 그렇다고 초세(超世)적인 상아탑의 사색으로 전락하지 않으며 오히려 정의와 진리에 대한 열정으로 이해관계를 초월한 정신을 강조하고 있다. 아울러 부패를 비난하고, 약자를 옹호하며, 불완전하고 억압적인 권위에 도전하는 구체적인 책임과 도덕을 주장하는 ‘책임윤리’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이와 같은 맥락에서 현대 기독교 윤리의 흐름은 무엇보다도 ‘인권’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 인권은 개인적 사안이 아니라 인간이 속하여 있는 모든 공동체가 함께 연대하는 ‘생태적 인권문화’를 구성하는 것이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더 많이 서로에 대하여 느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냉철한 이성을 중시하고 직관에서 추론한 도덕적 정당성에 집착하기 보다는 개인의 감정을 배려하는 ‘도덕적 성품’의 중요성에 대하여 윤리학은 주목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윤리는 개인과 공동체의 ‘도덕적 성숙’을 요구한다. 이 도덕적 성숙성은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이웃의 상호 관련성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기독교인의 완전함이며, 이러한 상호관련성은 유기적 전체에 속해 있는 각각의 개별적인 지체로 하여금 ‘전체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게 하는 것이다.그러나 기독교사회윤리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보편적 ‘인권’의 문제에 국한하지 않고 더 나아가 ‘사랑’에 근거한 구체적인 ‘생명존중’에 귀 기울인다. 생명을 위협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죽임’이다. ‘차이’의 문제가 폭력적인 ‘차별과 죽임’으로 변질되는 현대 사회에서 ‘죽임’의 인간 본성에 맞서는 ‘살림’은 도덕적 판단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살림의 윤리적 행위’를 요구한다.
나에게 100억이 생긴다면 어떻게 가치 있게 쓸 것인가?솔직히 사회생활도 해보지 않은 저에게 100억이란 돈이 얼마의 가치가 있는지 가늠하기조차 어렵기에 어떻게 가치 있게 써야 하는지라는 질문에 대해 답을 구하는 것이 정말 어려웠습니다. 100억이란 돈은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엄청나게 큰 액수의 돈인 것은 확실합니다. 이 돈을 사회와 주위의 사람들을 돕기 위해 쓰거나 기부 등의 방법으로 가치 있게만 쓸 사람이 과연 몇 이나 될까요? 보통의 사람들은 생각만으로는 그렇게 할 지 몰라도 실제 자기에게 그런 일이 생긴다면 대부분은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급급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저도 보통 사람인지라 막상 저에게 그런 거짓말 같은 일이 생긴다면 ‘난 그 돈을 정말 가치 있고, 타인을 돕기 위해 썼노라‘라고 떳떳하게 말할 자신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숙제의 의미가 없을뿐더러 저는 아주 속물적인 사람으로 보일 것 같습니다. 100억이란 돈을 저 자신의 욕구도 충족시키면서 타인도 도우는 방법을 며칠 동안을 궁리하고 심사숙고한 후 제가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우선 100억이란 돈을 10개의 통장에 나누어 은행에 예치시킵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100억이란 돈을 한 번에 잃어버릴 위험 부담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뒤에 전국 방방곳곳을 돌아다니며 여행도 하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있는 곳에 가서 그들을 돕는 자원봉사도 하는 것입니다. 저는 원래 여행을 아주 좋아하며 제 미래의 최종 목표도 여행이라 할 수 있지만, 현재는 현실적인 문제-돈, 시간, 학교 공부-에 부딪혀 그러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제가 가게 될 곳들이 여행지로 유명한 곳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만 어느 지방에 가더라도 그 지방만의 자랑할 만한 볼거리나 유적, 경치는 있다고 생각하기에 충분히 여행지로의 가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육체적인 봉사는 물론이고 저에게는 100억이란 돈이 있으니 경제적인 지원도 할 것입니다. 단 한 곳에 너무 많은 돈을 지원하게 되면 다른 지역에 지원할 기회를 잃게 되니 적당히 나누어야 하겠습니다. 물론 기간도 적당히 조정해야만 보다 많은 곳을 돌며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여행도 하고 여행에 있어서 남을 도우며 보람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다음은 유니세프나 그린피스에 가입해서 활동하겠습니다. 국내에만 머무르지 않고 세계 곳곳의 오지나 유명한 지역에서 여행도 하게 되고 전 세계에서 고통 받는 어린이들을 돕거나 자연환경을 유해한 것들로부터 지키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일에 있어서 중도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기에 여행이 주가 되어 여행에 너무 치우치지도, 반대로 봉사 활동에만 너무 치우치지 않게 적절히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 제가 더 이상 위에서 말한 활동들을 하지 못할 그런 나이가 되었을 때 이 100억이란 돈이 남아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만일 100억중에서 남아 있는 돈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 돈으로는 저는 우리나라, 더 나아가서 세계의 여행에서 겪은 일들과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 위한 저의 활동들을 바탕으로 자서전이나 기행문 형식의 책을 펴내고 싶습니다. 모든 일에는 마무리가 중요하듯이 제가 인생을 살면서 해 왔던 일들을 하나하나 되짚어보고 반성도 하면서 그렇게 인생의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습니다. 물론 제가 한 일들이 결코 자랑할 만한 업적은 아니라 할지도 말입니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저 보다 더 좋은 의견이 있을 수도 있지만 저는 저의 꿈, 또는 욕구를 배재하고서는 생각할 수는 없기에 이렇게 여행과 봉사활동을 같이 할 수 있는 이 방법을 택했습니다.
▲차례표(INDEX)1. 데이터베이스의 테이블들2. 프로그램의 전반적인 아이디어/logic3. 구문에 따른 가상적인 코드 및 주석▲데이터베이스 테이블들△강사 테이블(T)강사ID학과과목연구실전화번호E-mail강사A경영정보학과전필1, 전선124-31751-1234abc@abc강사B경영정보학과전필2, 전선224-31751-5678xyz@xyz△강의실 테이블(R)강의실No수용인원24-20470△수업시간 테이블(C)가용수업요일가용수업교시월-금1교시-9교시▲프로그램의 전반적인 아이디어/logic1. 데이터베이스에 데이터를 저장하고, 검색하는 것은 자유롭게 가능하다.2. 강사들이 신청하는 수업시간표는 뷰어창에서 실시간으로 업데이트가 된 다.뷰어창(V)월요일화요일수요일목요일금요일1교시(오전9시)2교시(오전10시)3교시(오전11시)4교시(오후12시)5교시(오후1시)6교시(오후2시)7교시(오후3시)8교시(오후4시)9교시(오후5시)뷰어창(V.1)당신의 이번학기 스케줄을 확인하세요!!!뷰어창(V.2)수업신청이 끝났습니다!!3. 강사들이 수업시간표를 짤 때 강사들에게 제시되는 구문은 class로 나누 어서 사용한다.4. 데이터베이스 테이블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강사A, B는 전필1과 전선1, 전필2와 전선2를 가르친다. 가용 강의실은 24-204 하나이며, 가용 수업 시간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그리고 1교시부터 9교시까지이다. 각각 의 강사는 2시간은 연강이 가능하지만, 3시간은 연강이 불가능하다.▲구문에 따른 가상적인 코드 및 주석△class1if (강사=수업신청) then [(보여준다=T R C) and (보여준다=V) and(간다=class2)]//강사가 수업신청을 한다면 T, R, C테이블과 뷰어창V를 보여주고 class2로 간다.△class2if (강사=수업신청) then [(신청한다=C and V) and {간다=(class2.1 or class3)}]//강사가 수업신청을 하려면 C테이블과 뷰어창V에 수업신청을 하고 데이터베이스와 뷰어창이 업데이트 된다. 그리고 2.1에서 오류가 없으면 class3으로, 오류가 있으면 다시 class2로간다.△class2.1if [강사A(B)=수업신청시간] then [not{강사B(A)=수업신청} and (간다=class2)]//강사 A 또는 B가 신청한 수업 시간에 강사 B또는 A는 수업신청을 할 수 없다. 그리고 다시 class2로 돌아가서 수업신청을 한다.△class3if [(강사A and B)수업신청시간=3] then [not{(강사A and B)=수업신청} and {간다=(class2 or class4)}]//강사A와 B의 수업신청시간이 3시간 연강이라면 강사 A와 B는 수업신청을 할 수 없다. 오류가 있다면 class2로 돌아가고 오류가 없다면 class4로 간다.△class4if [not{(강사A and B)수업신청요일=월요일~금요일}] then [not{(강사A and B)=수업신청} and {간다=(class2 or class5)}]//강사 A와 B의 수업신청요일이 월요일부터 금요일이 아니라면 강사 A와 B는 수업신청을 할 수 없다. 오류가 있다면 class2로 돌아가고 오류가 없다면 class5로 간다.△class5if [not{(강사A and B)수업신청교시=1교시~9교시}] then [not{(강사A and B)=수업신청} and {간다=(class2 or class6)}]//강사 A와 B의 수업신청교시가 1교시부터 9교시가 아니라면 강사 A와 B는 수업신청을 할 수 없다. 오류가 있다면 class2로 돌아가고 오류가 없다면 class6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