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페미니즘과 문학페미니즘은 19세기 중반에 시작된 여성 참정권 운동에서 비롯되어 그것을 설명하는 이론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페미니즘의 시초는 자유주의에 근원을 두고 있는데, 자유주의적 페미니즘에 의하면 여성의 사회진출과 성공을 가로막는 관습적, 법적 제한이 여성의 남성에 대한 종속의 원인이다. 따라서 여성에게도 남성과 동등한 교육기회와 시민권이 주어진다면 여성의 종속은 사라진다는 것이다.페미니즘의 목적은 여성에 대한 이러한 품위를 떨어뜨리는 의식을 전환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각 여성이 자신을 남성들과 동등한 특권과 권리를 소유하는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성은 자신 스스로를 정의 내려야 하며 정치, 교육, 예술, 그리고 사회의 다른 부분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학정전을 통해 발견된 여성의 판에 박힌 이미지를 폭로하고, 여성에 의해 쓰여 졌으나 남성에 의해 억압당한 작품들을 재발견하여 출간하며, 여성의 관점에서 남성작가들이 쓴 정전화된 작품을 다시 읽고 문학 이론의 토론에 관여함으로써, 여성은 남성우위의 개념에 도전하여 양성 사이의 평등을 창조해내는 방향으로 노력 하고 있다.페미니즘 문학이란 문학을 통해 여성의 권익을 주장하거나 남성 지배 이데올로기에 저항하여, 이른바 여성성을 옹호하는 문학을 통칭하는 말이라 할 수 있다. 여성학이니 하는 말들은 모두 페미니즘 문학으로 볼 수 있다.페미니즘 문학을 잘 보여준 작가로 샬롯 브론테(1816~1855), 제인 오스틴(1775~1817)이 있다.2. 샬롯 브론테와 제인 오스틴 비교샬롯 브론테와 제인 오스틴이 동시대 인물은 아니다.일단 샬롯 브론테와 제인 오스틴은 목사의 딸이라는 것과 둘 다 독신 이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있다.샬롯 브론테는 죽기 전 1년 동안은 결혼생활을 하지만 그 전까진 쭉 독신이었다.하지만 둘의 어린 시절은 다르다. 샬롯 브롯테는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에겐 목사로서의 수입 외에 다른 개인적 자산이 없는 터라, 자식들이 각기 자립할 기반을 만들어야 했다. 1824년 마리아부터 에밀리까지 네 명의 자매가 인근의 기숙학교로 보내졌다. 그러나 가난한 목사의 딸들을 위한 일종의 자선학교였던 이곳의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이듬해에는 마리아와 둘째인 엘리자베스가 세상을 떠났고, 샬롯과 에밀리는 집으로 돌아왔다.9살 난 샬롯이 마리아를 대신하여 어머니 노릇을 해야 했다. 한 살 위인 오빠 브랜웰과 두 살 터울인 두 동생의 뒷치닥거리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짧은 기간 동안 학교에서 배운 지식과 신문에서 읽은 것을 바탕으로 동생들을 가르쳤다.이에 반해 제인 오스틴의 어린시절은 결정적인 사건 없이 당시의 사회적·정치적 격변과도 떨어져 있었지만, 활기차고 애정이 넘치는 집안 분위기는 그녀의 창작을 자극했다. 더욱이 멀리 사는 친척이나 친구들과도 연락을 하고 지냈기 때문에 그녀의 경험은 스티븐턴 교구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이 마을과 이웃에 사는 소지주, 시골 목사, 가끔씩 하는 바스·런던 여행 등이 소설의 배경·등장인물·소재로 사용되었다.샬롯 브롯테와 제인 오스틴은 각 와 으로 오늘날 페미니즘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을 펴냈다.>>평가샬롯 브론테 - 시집은 거의 팔리지 않았지만, 그래도 다음 책을 펴낼 발판이 되어주었다. 1847년에는 커러 벨의 , 엘리스 벨의 , 액턴 벨의 등이 연이어 발표되었고, 는 크게 호평을 받았다. 이 익명의 저자들이 브론테 자매라는 사실도 알려졌으며, 의 성공으로 샬롯은 유명해지기 시작했다.그러나 그 해 후반기부터는 비극의 연속이었다. 알콜과 아편에 빠져 날로 황폐해져가던 브랜웰이 9월에 세상을 떠난 데 이어, 12월에는 에밀리가 독감으로 세상을 떠났으며, 겨우내 결핵으로 고생하던 앤마저 이듬해 봄에는 떠나고 말았다.샬롯은 눈 멀고 늙은 아버지와 단둘이 남게 되었다. 런던의 문단에서는 인기와 성공이 손짓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아버지 곁을 떠날 수 없었다. 황무지의 한복판, 잿빛 묘지에 둘러싸인 텅빈 목사관에서, 눈먼 아버지 곁을 지키며 그녀는 (1849), (1853) 등을 써나갔다.목사의 딸로 태어나 외진 곳에서 몇 달을 제외하고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다가 생을 마친 샬롯 브론테. 그녀는 자신처럼 가난한 중산층 여성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작품들을 통해 영국 사회의 모습과 여성이 처한 위치를 정확하게 그려냈다. 여성들의 삶에 가해지는 속박에 뜨겁게 항변하기도 했던 그녀의 작품은 선구적인 페미니스트 작품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오늘날까지도 많은 독자들에게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제인오스틴 - 그녀가 생애에 이룩한 업적에 걸맞는 평가를 내린 사람은 월터 스콧 경뿐이었다. 그는 1816년 3월 〈쿼털리 리뷰〉에 실은 〈엠마〉의 평론에서, 이 '이름없는 작자'가 새로운 사실주의 전통을 여는 '현대적 소설'의 대표자가 되었다고 극찬했다. 그녀가 죽은 뒤에도 한동안 중요한 평론이라고는 리처드 훼이틀리가 1821년 1월 〈쿼털리 리뷰〉에 쓴 〈노생거 수도원〉과 〈설득〉에 대한 평론 1편뿐이었는데, 훼이틀리는 신학자·논리학자·정치경제학자로서 나중에 더블린 대주교가 되었다. 스콧과 훼이틀리의 평론은 제인 오스틴에 대한 진지한 비평의 기초가 되었다. 19세기 비평가들은 두 사람의 통찰력을 수용했으며, 현대 비평가들은 오스틴의 소설이 지닌 빈틈없는 짜임새에 매료되고, 겉보기에는 평범하고 제한된 사건과 배경을 가진 이야기를 통해 존재의 희비극을 드러낼 수 있게 한 기법상의 성취에 높은 평가를 한다.3. 제인 에어와 오만과 편견 분석제인 에어(Jane Eyre) - 1847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발표 당시에는 ‘커러 벨(Currer Bell)’이라는 남성 필명으로 출간되었다.(이 해프닝 자체가 작품의 메시지와 잘 맞아떨어진다.) 번영을 구가하는 빅토리아 조 시기 대영제국, 그러나 오늘날의 기준으로 볼 때 여성의 인권은 열악하기 그지없던 19세기 중엽의 가부장적인 사회 속에서 강인하고 당찬 여성 제인 에어가 자신의 의지로 사랑을 선택하는 삶을 그린 작품이다.
호문쿨루스를 읽고...과제 덕분에 만화책 이라는 걸 아주 오랜만에 보게 되었다. 평소 만화책을 고르는데 좀 까다로운 편이라 중학생 때 이후로는 마음에 드는 몇 종류 외엔 거의 안 봤기 때문이다.만화책을 고를 때 그림체와 스토리를 보고 결정하는데, 나는 반전이 심하거나 흥미진진해서 몰입할 수 있는 종류의 만화책을 좋아한다. 그런데 책방에서 호문쿨루스를 집어 들고 스르륵 넘겨보니까 스토리도 생소하고 그림도 컷을 잘게 나누지 않아, 그만큼 그림도 큼지막해서 눈에 아주 잘 들어 오는게 마음에 들었다. 약간 설레기도 하고 기대감도 있었는데 일단 주인공 나코시의 이마에 구멍을 뚫어준 의대생 이토가 3권부터 등장하는 여고생에게 “너는 누구지?” 하고 물어보는 장면에서 레테르 라고 하는 사회적인 신분과 연령, 성별 등을 벗겨낸 자신을 ‘그냥 나’ 일 뿐이라고 어렵게 대답한다. 보는 순간 글쓰기수업 시간에 했던 자기소개서 쓰기가 딱 떠올랐다. 그래서 나는 그 시간엔 제대로 이해를 못했던, 레테르를 벗겨낸 나를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도저히 떠올릴 수가 없었다.그냥 굳어져 버린 생각인 것 같다. 이름, 나이, 성별, 학교 그리고 사회적 지위가 나를 말 해 주므로 굳이 답 하자면 나의 대답 또한 “인간” 또는 “그냥 나” 일 것이다.그런데 1권부터 6권을 읽어 보고 나서는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아 몇 번을 다시 읽어 봤지만 3권 뒤로는... 역시 내 이해력으로는 좀 어려운 내용이었고 뒤편으로 갈수록 이 만화책은 19세 미만 구독 불가로 만드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17세 정도?앞에 1~2권 까지는 호문쿨루스에 대해 궁금하기도 하고 이런 저런 상상을 하면서 봤다. 내가 육감을 가지게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하고.. 어떻게 생각 해 보면 무서울 것 같기도 하다.육감과 호문쿨루스 라는 소재는 흥미로웠지만 역시 뒤로 갈수록 깊게 생각해 보려고 해도 너무 어려웠다. 그리고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에 대한 물음표 투성이다.주인공 나코시가 보는 호문쿨루스가 자기 자신 이라면, 세상 사람 중의 50:50 정도의 비율로 보인다는 호문쿨루스 모두 자기 자신 이라는 말인지, 그렇다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가진 각기 다른 뒤틀림들을 나코시가 모두 갖고 있고, 또 그 모든 사람들의 트라우마를 꺼내준다는 말일까 ?그리고 가장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왜 그 여고생은 자기의 발목을 칼로 그어서 그 피를 먹는걸까 하는 거다. 또 나코시는 왜 자위를 해서 자기 정액을 먹는 건지. 나중에 이유가 밝혀질 수도 있고 안 밝혀 질 수도 있겠지만 역시 일본만화 답게 아주 특이하고 쇼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