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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 5일제 실시 이후 한국 사회의 여가 양상 연구 - 여가의 단순화, 상업화, 양극화를 중심으로
    주 5일제 실시 이후 한국 사회의 여가 양상 연구여가의 단순화, 상업화, 양극화를 중심으로Ⅰ. 문제제기2004년 한국 사회에서는 기념비적인 제도인 ‘주 5일제 근무제’가 시행되었다. 이는 6개의 시행 단계를 거치는 것으로서 1단계인 공기업·금융업·보험업 및 1,000인 이상 사업장에는 2004년 7월부터, 2단계인 300인 이상 사업장은 2005년 7월부터, 3단계인 100인 이상 사업장은 2006년 7월부터, 4단계인 50인 이상 사업장은 2007년 7월부터, 5단계인 20인 이상 사업장은 2008년 7월부터 시행되었고 마지막 6단계인 20인 미만 사업장은 2011년을 기한으로 대통령령이 정하는 날부터 시행되었다.더불어 2012년 3월부터는 전국의 모든 초?중?고등학교에서 자율적으로 ‘주5일 수업제’ 시행되었다. 이는 1998년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해 법적 근거가 만들어진 것으로 2001∼2003년 연구학교 운영, 2004년 월1회 우선시행학교 운영을 거쳐 2006년부터 모든 초중고에서 월2회 시행되었던 것이 2012년부터 모든 초?중?고등학교에 전면적으로 도입된 것이다.이렇게 제도로서의 주5일제는 한국 사회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자유, 선택, 자율, 해방 등으로서의 여가는 한국 사회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흘러나온다. 한국 사회가 일 중심사회에서 여가사회로의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하지만 실제로 주5일제가 가져다주리라고 예상했던 여가 시간의 증가와 그에 대한 선용 그리고 그 결과로서의 개인의 삶의 질과 행복의 향상은 실제로 이루어졌는가. 이 글은 이런 의문점에서 시작하여 주5일 실시 이후 한국 사회의 여가의 양상은 어떻게 변화였는지를 여가의 단순화, 여가의 상업화, 여가의 양극화라는 유형화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한국 사회의 개인들은 주5일제로 늘어난 여가시간에 어떤 여가활동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 여가활동은 어떤 사회적맥락 하에 놓여있는지를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론와 아도르노에게 현대적 여가의 본질은 적나라한 이윤동기를 문화적 형태들로 이전하는 것을 목표로 대량복제를 통해 생산된 여가상품의 소비이다.여기서 개인은 소멸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문화산업 하의 개인이라는 관념은 개인과 전체의 완전한 동일성을 문제시 하지 않는 경우에만 용인되는 비현실적인 관념일 뿐이며 현대의 개인은 이미 경제적·사회적 장치의 산물인 까닭에 현대인의 여가는 사이비 개성의 표현에 머물게 되기 때문이다. 더불어 여가상품들은 대중의 욕구는 물론 그러한 욕구를 채우려는 충동의 해소방식까지도 미리 정해 놓고 있기 때문에 여가욕구의 근원적인 충족은 불가능하게 된다. 현대인들은 자신들의 욕망을 궁극적으로 해소할 수 없음을 인식하고 여가상품들이 제공하는 재미와 웃음에 자족하게 되며 따라서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라는 문화산업의 약속은 영원한 기만이며, 여가의 제공은 여가의 박탈과 동일한 것이 되는 것이다.결국 여가와 관련하여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문화산업론의 핵심은 자본주의적 생산과 소비라는 맥락에서의 여가의 불가능성이다. 여가는 대중기만이며 자유로운 선택은 자유롭지 않고, 자발성은 여가 조작자들의 이윤추구에 부응하기 위해 만들어지며, 자기결정성은 여가산업의 교묘한 계략인 것이다.크리스 로젝(2000)은 소비자본주의에서 문화산업이 중요한 이유는 문화산업이 그것을 소유하고 통제하는 사회적 이해관계의 요구에 맞추어 여가관계를 구조화하는 권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문화산업’의 개념은 여가관계 역시 권력관계라는 중요한 사회학적 사실을 강력하게 확증시켜준다고 말한다. 흔히 여가활동과 연관되는 자유, 자발성, 자기결정성 등의 경험은, 자본주의사회의 총체적인 권력이라는 맥락 속에 위치되어야만 비로소 완전히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2. 크리스 로젝과 현대 여가실천의 구조적 특징『자본주의와 여가이론』에서 크리스 로젝(2000)은 사회 없는 여가를 다루는 강단사회학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산업화 과정에서 대중들은 지금까지의 어떠한 시점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처분 과 개개인의 내적 필요의 충족은 주변화된다.호르크하이머·아도르노와 크리스 로젝은 공통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가란 자유와 해방이 아니라 사회·구조적 제약에 놓여있는 사회문화적, 정치경제적 구성물임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이제 지금까지의 이론적 논의를 바탕으로 이제 주5일제 실시 이후 한국 사회의 여가의 양상을 살펴보고자 한다.Ⅲ. 주 5일제 실시 이후 한국 사회의 여가의 양상1. 여가의 단순화2004년 주 5일 근무제의 실시 이후 통계조사 자료들에서 나타나는 주된 현상은 여가의 단순화이다. 이는 주5일 근무제로 인해 물리적인 여가시간은 늘어났을지라도 대다수의 국민들의 여가시간 활용양상은 단순하고 일차원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이 2006년 5월 18일부터 6월 5일까지 10세 이상 국민 3,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2006 국민여가조사」에 따르면 여가 시간에 가장 많이 하는 활동으로 사람들의 68.3%가 'TV시청과 라디오 청취'를 선택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2010년 11월에 발표된 문화관광체육부의 「2010 국민여가활동조사」, 2011년 통계청의 「2011년 사회조사 결과」, 문화체육관광부의 「2012 국민여가활동조사」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2010 국민여가활동조사」의 여가활동 유형별 참여비율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 것은 36.2%를 차지한 TV시청, 산책, 낮잠 등과 같은 휴식이었으며, 「2011년 사회조사 결과」에서도 주말이나 휴일의 여가활용 방법으로는 TV 및 비디오 시청이 63%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2012 국민여가활동조사」에서도 1년간 국민들이 가장 많이 참여한 상위 10순위 여가활동 중 1순위는 TV시청 및 라디오 청취로 나타났다. 취미 없는 사람 비율 조사* 자료 : 「“나가면 돈 든다”… 취미없는 사람 6년새 2배로」.동아일보 2013년 5월 10일자. 원자료 : 한국리서치더불어 한국리서치가 2013년 3월에 발표한 ‘취미 없는 사람 비율’ 조사 또한 한국인들의 여가활용양상의해지고 있지만 앞선 조사자료들에서 보았듯 한국 사회에서의 주된 여가활동은 여전히 집에서의 TV시청이나 비디오 시청과 라디오 청취에 머물고 있다. 이는 한국 사회의 여가 양상 중 하나로서 우리에게 여가의 다양화보다는 여가의 단순화에 더 초점을 맞추는 것이 설득력이 있음을 증명해주는 것이다.2. 여가의 상업화여가의 상업화는 여가의 상품화와 여가 시장의 산업화가 결합된 것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가의 상품화로 인해 여가는 향유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소비의 대상이 되었다. 전통 사회에서 여가는 대체로 공동체 놀이의 형태를 띠었는데 자본주의의 등장과 함께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가는 시장에서 판매되고 구매되는 상품이 되어버린 것이다. 여기서 여가의 상품화가 지칭하는 것은 단지 사물만이 아니라 서비스와 활동, 경험 등을 포괄하는 것인데 여가의 소비자는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말한 것처럼 여가 상품의 소비에 있어서 자율성을 가지고 있다기 보다는 여가 상품 공급자의 제한 적인 상품 공급물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에 불과하기에 수동적인 존재에 머무른다. 더불어 자본주의가 진전됨에 따라 여가상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기업에 의해 여가산업은 새로운 이윤창출의 장으로서 출현하게 되고 이는 거의 모든 오락·서비스산업을 포괄하며 성장한다. 비노동시간을 조직하려는 자본가의 이윤추구 동기에 의해 등장한 여가산업은 여가를 독자적인 사업영역으로 이윤추구의 장으로 인식하고 여가영역에 진출하게 된 것인데 한국 사회에서도 TV시청이 아닌 여가활동을 즐기려는 한국인들이 마주하게 되는 것은 바로 여가상품과 여가산업이다. 관광상품에서부터 영화관람, 쇼핑, 스포츠관람, 테마파크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의 여가는 여가산업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것이다. 여가 산업은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여 일반 대중의 여가활동을 조직화하고 여가상품과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소비자들을 창출, 재창출하며 따라서 여가활동은 자본의 논리에 따라 끊임없이 조장된다.조광익은 “현대 사회에서의 여가의 의미에 대한 문화산업론적 고찰”( 큰 역할을 했고 동시에 여가산업을 발전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1년 10월 19일 ‘1박 2일’의 나영석 프로듀서는 건강한 산림휴양과 여가문화를 보급했다는 공로를 인정받아 국무총리 표창을 수여받은 적이 있으며, 2012년 9월 25일 ‘1박 2일’팀은 또한 비슷한 이유로 대통령 표창을 받은 적이 있다.한국에서 야외체험활동과 캠핑활동을 즐기기 위해서는 고어텍스, 하이벤트 등 특수 기능을 갖춘 소재로 만든 아웃도어 의류가 굳이 필요하지는 않음에도 불구하고 아웃도어 업체들은 예능프로그램에 대한 협찬이나 유명 스타를 기용한 광고나 마케팅을 통해 야외에서 즐기는 여가에는 고가의 아웃도어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주입시켰고 그 결과 아웃도어 시장은 가파른 성장세를 기록하게 되었다. 삼성패션연구소에 의하면 2003년 6000억원대였던 아웃도어 시장의 규모는 2011년에는 3조 6000억원대로 성장하였으며,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평균 성장률은 20%을 웃돌았고, 각 업체의 자료에 따르면 2011년 노스페이스와, 코오롱스포츠, K2의 매출은 각각 6150억, 5200억, 4100억이었는데(《매경이코노미》, 2012.10.15) 이는 야외 여가활동의 필수품으로서 아웃도어 의류시장이 급성장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한편 캠핑용품 시장의 발달로 인해 국내 캠핑시장규모는 2011년 1100억 여 원 이었던 것이 2012년에는 2000여억 원으로 증가하였고 2013년에는 3000여억 원 선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되고 있다(문화체육관광부·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12).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2013년 1~4월 SUV의 국내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30.5% 증가한 8만3895대로 이는 2005년부터 2011년까지 단 한 번도 1위 자리를 내주지 않았던 중형세단의 위상이 오토캠핑 열풍에 무너진 것으로 볼 수 있다(《메트로서울》, 2013.06.03.). 이러한 캠핑용 시장 역시 아웃도어 시장과 마찬가지로 과소비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데 4인 가족을 기준으문이다.
    사회과학| 2013.06.21| 9페이지| 2,000원| 조회(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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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제대로 이해하기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제대로 이해하기이범렬1. 왜 베버인가2. 베버와 맑스3. 『정신』의 형성사4. 『정신』의 연구틀 : 『정신』에서 베버 연구의 제한적 성격5. 『정신』에서 베버의 진정한 인식관심 : 경제, 종교가 아닌 인간6. 『정신』의 내용근대 자본주의의 발흥을 이해하기 위한 출발점에서 우리는 위대한 동시에 논쟁적인 저작인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과 마주하게 된다. 여기서 베버는 자본주의의 구성요소 중 하나인 직업윤리에 기초하는 근대적 자본주의 정신 즉, 그대 서구 시민계층의 합리적인 인격유형과 행위유형 및 생활양식의 형성·발전이 금욕적 프로테스탄티즘이라는 종교적 이념 체계에 의해 어떻게 영향을 받았는가를 문화사적으로 추적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그는 탁월한 역사적·사회학적 상상력을 발휘해 일견 관련되어 보이지 않는 두 정신체계를 연결시키고 있는데 이것이 『정신』의 독창성을 이룬다.1. 왜 베버인가이 시대의 마지막 보편천재 베버는 1864년 4월 21일 독일 튀링겐 주의 주도 에르푸르트에서 태어났다. 그는 하이델베르크, 슈트라스부르크, 베를린, 괴팅겐 대학에서 수학하며 전공인 법학과 더불어 철학, 역사학을 공부하고 동시에 문화과학 영역에서 훌륭한 교수가 강의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들었다. 더불어 그는 사촌 오토 바움가르텐과 신학, 철학에 관해 토론했는데, 이런 학제 간 교육을 통해 문화과학과 사회과학 전반을 아우르는 베버라는 거대한 지적 산맥이 탄생했다.) 김덕영은 다양한 문화과학과 사회과학 영역을 자유자재로 넘나들고 있었던 그의 통합과학적 사유에 논의에 초점을 맞추며 그의 지적 세계가 보여주는 다차원성을 베버패러다임의 매력이라고 말한다.) 한편 최장집은 베버 이론의 비밀은 무척이나 복합적이고 포착하기 어려운 그 풍부함에 있기에 베버의 텍스트들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긴장을 주고, 양극적인 해석을 가능하게 하며, 종종 그 의미가 모호해 보이지만 그로부터 무한한 지적 자원을 발견하게 되는 마술과 같은 힘을 갖는다고 말한다. 그는 자본』 은 상호 배척적인 관계가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이루고 있으며, 오직 이런 한에서만 베버는 『정신』을 근대 경제에 대한 유심론 또는 이상주의로 보았다고 이야기한다. 오히려 그는 베버는 맑스의 위대한 과학적 업적을 폄훼하거나 부정하고자 하는 망령, 자신의 연구를 맑스와 맑스의 유산을 극복하고 청산하려는 시도로 보고자 하는 명령, 유물론을 엄격한 사회과학적 연구 방법이 아니라 형이상학적 세계관 그리고 예언의 수단으로 만들고자하는 망령과 싸웠다고 지적하고 있다.3. 『정신』의 형성사베버의 방법론 ― 『정신』 ― 세계 종교 비교 연구『정신』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것의 형성사를 이해함으로써 그것이 베버의 지적 세계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위상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사회과학 및 사회정책 저널」의 편집인으로서 베버는 「사회과학 및 사회정책 인식의 객관성」이라는 글을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문화과학과 사회과학의 논리와 방법론을 구축했다. 그 시대가 직면한 실천적인 문화 문제에서 출발하는 문화과학과 사회과학은 필연적으로 현실과학이 될 수밖에 없으므로 이것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삶의 현실을 그 특성 속에서 이해하고자 한다 즉, 한편으로는 이 현실의 현재 모습을 구성하고 있는 개별 현상들 사이의 연관 관계와 그것이 지니는 문화의의를 이해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 현실이 역사적으로 다른 모습이 아닌 바로 현재와 같은 모습을 띠게 된 근거를 이해하고자 하는 것으로 이는 문화과학적 사회과학적 인식의 대상에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인간의 문화적 삶은 그 자체로는 인식하는 주체에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이질적 연속체이므로 그것은 진정한 문화과학의 인식 대상이 될 수 없기에 인식의 대상에 더해 인식의 주체 즉 문화과학자와 사회과학자의 인식 행위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문화과학 및 사회과학의 논리와 방법론이 제대로 모습을 갖추게 된다. 이질적 연속체는 문화과학자나 사회과학자가 인식 주체로서 거기에 부여하는 가치에 의해 비로소 의미를 지니게 되므로 이 역사적 개체가 문화과학과 사성, 세계 지배의 합리주의는 세계 문화종교에 대한 종교사회학적 연구의 준거점이 되며 이를 중심으로 기획된 세계문화종교 연구는 프로테스탄티즘에 대한 연구를 그 고립적인 성격에서 탈피시켜 문화 발전 전체와 연관시킴으로써 서구에서만 독특하게 발생했으며 보편적 의의와 타당성을 획득한 문화현상인 근대 서구 합리주의의 역사적·구조적 독특성을 더욱 뚜렷하게 부각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4. 『정신』의 연구틀 : 『정신』에서 베버 연구의 제한적 성격인간학적 측면등등자본주의 정신자본주의 체계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경제적 조건근대 자본주의상호작용베버에 대한 가장 전형적인 비판, 즉 칼뱅주의가 자본주의를 창출했다는 잘못된 테제를 내세웠다는 비판, 다른 지역에는 칼뱅주의가 없었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발생하지 못했다는 비판은 『정신』에서의 베버의 연구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오류이다. 베버는 실제로 서구 근대 자본주의 정신의 형성과 발달은 다양한 기제와 요소가 다양한 방법으로 작용을 하고 영향을 끼친 결과임을 알고 있었으며 그는 역사적 개체가 외연적으로나 내포적으로 얼마나 복잡한지 또한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더불어 김덕영은 베버는 정신으로서의 자본주의와 체계로서의 자본주의를 구분했다고 지적한다. 자본주의 정신과 자본주의체계라는 두 범주는 각각 자본주의를 구성하는 주관적·내적 차원과 객관적·외적 차원으로서, 서로 다른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서로 다른 인과적 요소에 의해 그리고 서로 다른 역사적 발전 과정을 통해 형성·발전 했기에 양자는 기계적으로 법칙적으로 결합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 간에 영향을 주고 받는 관계에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베버는 『정신』에서 자본주의 체계가 자본주의 정신의 발전에 대해 지니는 인과적 의미를 논하지 않았다. 더불어 그는 자본주의 정신의 발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종교 뿐만 아니라 경제적 조건, 인간학적 요소 등등 다양한 것들이 작용할 수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의 연구는 어디까지나 근대 자본주의 정신에 관한 것이지 연구에서 추구한 진정한 인식관심은 경제적 체계로서의 자본주의도 종교적 이념체계로서의 프로테스탄티즘도 아닌 바로 서구 근대 시민계층이라고 말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들은 프로테스탄티즘이라는 신앙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근대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특정한 종류의 실천적 합리적 생활양식을 창출하고 이를 공유하며 이에 근거해 행위하는 서구 근대 시민 계층이라는 사회집단이라는 것이다.)지금까지 『정신』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한 예비지식들을 습득했으니 이 조망도를 가지고 『정신』의 본문으로 파고들 차례이다.6. 『정신』의 내용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제1장 문제1. 신앙고백과 사회계층2. 자본주의 ‘정신’3. 루터의 직업 개념 : 연구과제제2장 금욕적 프로테스탄티즘의 직업윤리1. 세속적 금욕주의의 종교적 토대2. 금욕주의와 자본주의 정신『정신』은 그의 다종다양한 관심사 중 근대 자본주의의 정신과 내적인 친화성을 지닌 특정 서구 종교의 교리에 관심을 두는 굉장히 전략적인 또 목적합리적인 연구가 시행된 책이다.『종교사회학논총』 서문)에서 그는 자신의 관심을 어떠한 상황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연결되어 작용한 결과로 하필 서구의 터전에서 그리고 유독 여기서만 보편적 의의와 타당성을 지니는 방향으로 문화 현상들이 출현했는가에 두는데 이는 구체적으로 그 종류와 형태 및 발전 방향에서 다른 곳에서 결코 존재한 적이 없는 자본주의의 발생을 탐구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그의 가장 핵심적인 관심은 지구상의 다른 그 어느 곳에서도 발전하지 못한 전혀 다른 종류의 자본주의인 서구의 근대 자본주의의 기원을 탐구하는 것이며 이와 관련해서 후에 분석되는 세계 종교들은 특정한 종교적 신앙의 내용이 어떠한 경제적 신념의 발생 또는 어떠한 경제형태를 지배하는 에토스를 조건 짓는가를 구명함에 있어 서구적 발전과의 비교점을 찾는데 할애되고 있다. 오직 그래야만 서구 종교의 경제윤리를 다른 종교의 경제윤리와 대립시키는 특유한 요소들의 어느 정도 명백한 인과적 귀속을 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카톨릭 교도들은 두드러진 경제적 발전을 이룩하지 못했고 오히려 프로테스탄트들만이 지배계층으로서든 피지배계층으로서든, 다수로서든 소수로서든 경제적 합리주의에 특별한 경향을 보인 이러한 현상에 대해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이의 철저한 대립이 철저하게 내적인 친화성으로 전환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으며 와 의 가장 강력한 발전의 결합관계를 프로테스탄티즘의 지속적인 내적 특성, 즉 그것이 세속적 실천에 영향을 준 교리를 분석함으로써 파헤치기 시작한다.그는 지속적으로 과 을 구분하고 또 강조하고 있다. 자본주의 정신은 영리욕, 이윤추구, 돈을 벌려는 욕구가 아니라 오히려 윤리이고 의무 이행이자 금욕적 생활영식이고 욕구의 합리적 조절이자 억제라는 것이다. 베버가 프랭클린의 글에서 찾아내는 것 역시 단순히 영리적인 사업술이 아니라 자본증식을 개인의 의무로 여기는 독특한 직업윤리이자 하나의 에토스이며 윤리적으로 채색된 생활양식의 준칙이다. 자본주의는 중국, 인도, 바빌로니아 그리고 고대와 중세에도 존재했으나 이들 자본주의에는 근대 자본주의에 독특한 에토스가 결여되어 있었던 것이다.모든 행복주의적 관점, 쾌락주의적 관점에서는 완전히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것, 즉 인간이 자신의 삶의 목적인 돈벌이에 지배되는 것이 자본주의의 명백하고도 절대적인 기조이며, 이는 윤리의 옷을 입고 등장하며 규범에 구속된 특정한 생활양식이라는 의미에서 자본주의 정신이 일차적으로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적수인 전통주의와의 비교를 통해 더 명백해진다. 인간은 본성상 더욱 많은 돈을 벌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살기를 그리하여 그에 필요한 만큼만 벌기를 원했고 또 적게 일하는 것을 더 매력적인 것으로 삼았는데 이는 전통주의라고 불리는 태도의 일례이다. 전통주의에서 돈벌이의 소명에 대한 헌신과 의무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생활양식으로의 일종의 혁명적인 정신사적 대 전환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베버는 직업노동에 대한 자기헌신을 낳은 합리적 사고와 삶의 구체적인 형태는 과연다.
    사회과학| 2013.03.22| 8페이지| 2,500원| 조회(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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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인적 자살의 사회성을 밝히다 - 에밀 뒤르케임 『자살론』
    개인적 자살의 사회성을 밝히다에밀 뒤르케임 『자살론』이범렬뒤르케임의 사회학자살에 대한 뒤르케임의 이 실증적 고찰은 하나의 학문으로서 세상에 등장했지만 아직 그 세계에서 확고하게 자리 잡지 못한 사회학을 자신만의 연구대상을 가지는 독자적 학문으로 자리매김하게 만들기 위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사회적 테마를 형이상학적으로 고찰하는 것을 넘어 명확하게 규정된 사실들을 연구 대상으로 삼음에 있어서, 사실들이 분명히 정의되고 그 한계 또한 명확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요구인데, 여기서 뒤르케임은 사회적 사실을 개인의 외부에 존재하는 실체로서 연구해야 한다는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사회학 연구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사회학은 다른 과학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 실체를 파악해야 하며 개인의 의식 외부에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사회학은 그 자체의 연구대상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자살론』의 전제들이런 전제 하에서 뒤르케임은 우선 ‘자살’에 대한 정의를 시도한다. 일상용어를 그대로 쓴다면, 같이 묶어야 할 것을 나눠 놓거나 구분해야 할 것을 하나로 묶어버리는 실수를 하게 되어 사물들 사이의 참된 연관관계 더 나아가서는 사물들의 본질을 잘못 파악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내린 첫 번째 정의는, 자살은 희생자 자신의 적극적 또는 소극적 행위의 직접적 또는 간접적 결과로 인한 모든 죽음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형태의 자살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성은 이 결정적인 행위를 알면서 행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이 정의는 자신이 원하지 않은 죽음이나 무의식적인 행동에 의한 죽음과 자살을 구별하지 못하기에 불완전하다. 따라서 동기가 어떻든 간에 자살자는 자살 행위의 순간에 자신이 하는 행위의 결과를 알고 있었다는 점을 말하며 그는 자살을 자살자 자신이 그 치명적 결과를 알고 행하는 적극적 또는 소극적 행위의 직접적 또는 간접적 결과로 인한 모든 죽음의 경우로 정의한다.다음으로 뒤르케임은 자살은 개인적인 요인에 의한 것이기에 심리학의 연구 대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것을 다표현이었기에 뒤르케임은 편집광이 있을 수 없다면 자살편집광도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즉, 결론적으로 자살은 정신병의 한 형태가 아니라는 것이다.그러나 자살이 정신이상의 특정한 한 형태가 아니라, 모든 형태의 정신이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 정신이상의 일시적이지만 자주 일어나는 증상일 가능성이 남아있다. 이에 뒤르케임은 정신이상자들이 저지른 자살을 본질적인 특성에 따라 분류하여 정신이상 자살의 기본 유형들을 만들고, 모든 자살이 이 유형에 포함될 수 있는지를 알아보는 방법론적 절차를 따른다. 자살이 정신이상자에게만 일어나는 행위인지를 알려면 를 확정하여 과연 그러한 형태에서만 자살이 발생하는가를 알아내야한다는 것이다. 그가 분류한 정신이상자의 자살에는 환각이나 착란에서 기인하며 극단적인 변동성을 가지는 조병자살, 극단적인 우울과 과도한 슬픔과 관련되어 만성적인 특성을 가지며 자살이라는 목적을 추구함에 있어서 집요하며 일관된 정신적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우울증 자살, 그 어떤 동기도 없이 일어나며 뚜렷한 이유 없이 환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죽음의 관념이 굳어지면서 일어나는 강박증자살, 자동적으로 자살 성향이 나타나고 실행되며 지적 사고가 개입되지 않는 충동적 혹은 자동적 자살이 있다. 정신병 환자의 자살이 동기가 전혀 없거나 순전히 상상 속의 동기로 결행되는 반면 자살자 대다수는 동기가 있으며 그 동기가 비현실적인 것도 아니라는 점에서 뒤르케임은 모든 자살을 정신이상으로 볼 수 없다고 말한다. 은 존재하며 그 수도 많은데 그것은 의도적이라는 점에서, 완전히 환상은 아닌 상상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통해 식별할 수 있다. 여기서 뒤르케임은 정신병이 야기하는 자살은 소수이며 대다수는 정신병과 무관한 자살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따라서 정신이상에 해당하는 정신질환 상태는 일반적인 자살의 공통적 경향을 설명하는 데 별 단서를 주지 못한다고 이야기한다. 개인적으로 이것이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오해와 편견을 불식시키는 정말 중요한 사실이라고 생각하는데 이와 관는데 여기서는 모두 가장 높은 연령층이나 두 번째 높은 연령층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으며, 연령에 따른 자살률의 증가도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다. 이 표를 통해 그는 성년에 이르러서야 나타나며 그 이후부터 연령이 증가함에 따라 계속해서 증가하는 현상을 어떻게 유전으로 돌릴 수 있는지, 그리고 유년기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거나 극히 드물다가 나이를 먹음에 따라 계속 증가하고 노년층 사이에 가장 많이 잃어나는 선천적인 질병이 가능한가라고 물으며 정의 그대로 즉시 발생하는 유전이 아닌 다른 요인이 자살의 진정한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자살과 기후와 계절별 온도와의 관계에 있어서, 자살은 어떤 기후에서나 빈번하게 발생하며 온도에 있어서는 하늘이 가장 어둡고, 기온이 가장 낮고, 습도가 가장 높은 때가 아닌 자연이 가장 아름답고 기온이 가장 온화한 멋진 계절에 자살률이 가장 높다는 것은 우리의 편견을 흔들어 놓는 사실이다. 실제 유럽의 모든 나라에서 자살은 1월부터 6월경까지 매월 규칙적으로 증가하고 그 후부터 연말까지 규칙적으로 감소하는 법칙을 따르며 특히 낮의 길이와 자살자 수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존재하며, 어느 계절이나 자살은 대부분 낮에 발생한다. 그는 낮이 이러한 영향을 일으키는 원인을 고찰함에 있어, 낮이 가장 활동적인 시간이기 때문에, 즉 인간관계가 가장 빈번하고, 사회생활이 가장 집중되는 시간이기 때문에 자살이 가장 고조된다고 이야기한다. 자살이 1월에서 7월까지 증가한다면 이는 열이 신체에 손상을 입히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생활의 강도가 커지기 때문이다. 자연환경은 자살을 직접 자극하지 않고 자살의 진전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여 이는 사회적 조건에 의존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자살의 사회적 원인을 탐구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뒤르케임은 모방이라는 순수하게 심리적 현상을 탐구한다. 모방은 집단적 영향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표현능력에서 나오므로 만일 모방이 자살률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밝혀진다면, 자살률은 전적으로 또는 부분적으로 개인적 원인에을 두지 않는다. 개인적인 동기와 생각은 무시하고, 자살 발생의 차이라는 측면에서 종교적 신앙, 가족, 정치 집단, 직업군 등 다양한 사회적 환경 상태를 직접 조사하고 난 후에 개인적인 문제로 돌아가서, 보편적 원인들이 어떻게 개인화되고 어떻게 자살을 일으키는지를 연구하는 것이 자살의 사회적 원인을 밝히기 위한 그의 계획이다.이기적 자살을 고찰함에 있어서 그는 종교사회, 가족사회, 정치사회를 차례로 살펴보며 자살은 각 사회의 통합 정도에 반비례 한다는 것을 밝힌다. 개신교가 높은 자살률을 보이는 것은 개신교가 공통의 신앙과 의식을 적게 가지고 있으므로 그 통합력이 가톨릭 교회보다 약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영국은 일반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가장 우선시하는 나라로 간주되지만 영국의 개신교가 유럽 대륙에서와 같은 높은 자살률을 낳지 않는 이유는 영국의 종교 사회가 가톨릭 교회와 비슷할 정도로 강하게 조직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편, 자살과 가족 수·가족의 빌도는 반비례 관계를 보이는데, 가족 수가 자살 경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가족의 기능이 그 밀도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밀도가 충분한 사회는 사회단위들이 언제나 접촉 할 수 있으므로 의견 교류가 끊이지 않으며 집단의 통합은 강하나 밀도가 낮은 사회는 사회단위들 간의 관계가 간헐적이며, 공동생활이 중단될 수 있는 바 소규모 가족에서는 식구들을 하나로 묶는 강한 전통이 생겨날 수 없고 다음 세대로 전해질 수도 없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은 대규모 정치적 봉기가 자살을 증가시킨다고 생각하지만 사회적 사건이나 국민적인 전쟁은 집단 감정을 일으키며, 당파심과 애국심, 사회 및 국가적 신념을 자극하고 단일한 목적을 향해 모든 활동을 집중시킴으로 적어도 일시적으로 사회의 통합을 더욱 강화시킨다. 프랑스에서 19세기에 일어났던 모든 혁명은 그 혁명이 일어날 당시에는 자살의 수를 감소시켰던 것이다.뒤르케임은 개인이 사회생활에서 벗어나서 개인적 목적을 공동체의 목적보다 우위에 둠으로써 개인의 자아가 사회적 자아보다 강력하고 사회적 자 못해서 일어나고, 이타적 자살은 존재의 근거가 삶의 외부에 존재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반면 아노미성 자살은 인간의 활동이 충분히 규제되지 못해서 생기는 고통에서 나온다. 여기서 아노미성 자살과 이기적 자살은 둘 다 개인에게 사회가 불충분한 존재인 까닭에 생겨난다는 유사점을 지니지만 개인에게 사회가 부재한 영역이 각각 다르다. 이기적 자살은 진정한 집단 활동의 결핍으로 인해 개인이 목적과 의미를 상실하는 경우이고 아노미성 자살은 개인에 열망에 미치는 사회의 영향이 결핍됨으로써 개인을 제동 없이 방치함으로써 일어나기 때문이다.자살의 사회적 원인을 다루는 2부의 마지막에서 뒤르케임은 여러 자살 유형의 개인적 형태를 살핀다. 자살의 이기적, 이타적, 아노미적 특성들은 실제 체험에서 흔히 서로 뒤섞여 복합적 유형을 보이는데 그 이유는 상이한 사회적 원인들이 한 개인에게 동시에 영향을 미쳐 복합적인 결과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특히 이기주의와 아노미라는 두 자살 요인은 같은 사회적 상태의 서로 다른 두 측면이라는 점에서 서로 친밀성을 가지고 있고 아노미는 이타주의와 관련 될 수 있으며 서로 반대되는 성격이지만 이기주의와 이타주의도 그 영향이 결합될 수 있다. 뒤르케임은 자살자가 선택하는 죽음의 형태와 자살의 성격은 서로 밀접히 관련된 듯하지만 실재로는 무관하며, 자살의 일반적 특성은 사회적 원인의 직접적 결과라고 결론짓는다. 이는 특정한 사례들마다 개별화되어 자살자의 개인적 기질이나 그가 처한 특수한 상황에 따른 여러 가지 차이 때문에 복잡해지나 그런 복잡한 밑바닥에도 언제나 그 기본적 형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기본성격개별적 형태2차 변화기본적 유형이기적 자살무관심자기만족의 나태한 우울증, 회의적 환멸과 냉정이타적 자살열정과 의지력평온한 의무감, 신비한 열정, 평화로운 용기혼합 유형아노미성 자살흥분분노평범한 생활에 대한 심한 비난, 특정한 개인에 대한 비난(타살-자살)이기적 - 아노미성 자살아노미성 - 이타적 자살이기적 ? 이타적 자살선동과 무관
    사회과학| 2013.01.24| 15페이지| 3,000원| 조회(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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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여정부 시기 파워엘리트와 노무현 정권의 실패
    참여정부 시기 파워엘리트와 노무현 정권의 실패2012021393 이범렬목차1. 문제제기2. 밀스의 파워엘리트1) 상류사회2) 회사부호3) 군부4) 정치간부회의5) 파워엘리트3. 밀스의 파워엘리트와 한국 사회의 파워 엘리트 비교4. 파워엘리트와 노무현 정권의 실패1) 재벌2) 행정관료3) 언론5. 차기 민주정권의 과제6. 결론7. 참고문헌1. 문제제기지난 12월 19일 수요일, 산업화 25년, 민주화 25년을 넘어 새로운 시대로 한국 사회를 이끌 대통령으로 51%의 지지를 받은 박근혜가 당선되었다. 2012년 초의 들뜬 분위기와는 다른 상반된 결과에 야권과 그 지지자들은 큰 충격을 받고 실의에 빠졌다. 새누리당의 승리와 민주당의 패배를 두고 그 원인으로 20대와 50대의 세대 갈등, 새누리당의 기민한 개혁의제 선점과 네거티브 정책, 나꼼수의 인기·서울시장 선거와 무상급식에서의 패배 등 보수결집을 이끈 사건들 등 다양한 요인들이 지목되고 있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한 원인이었던 것은 바로 ‘노무현 정권의 실패와 그에 따라 반드시 필요했던 민주당의 개혁의 부재’였다. 민주당의 뼈를 깎는 자기 성찰과 개혁이 부재한 상황에서 선거전은 ‘성공한 박정희의 딸’ 대 ‘실패한 노무현의 비서실장’의 구도로 재편되었고 결국 성공한 과거는 실패한 과거를 이기게 되었던 것이다.이런 상황에서 과거를 되돌아보았을 때 노무현 대통령이 정권을 잡았던 시기는 한국 역사에서 그 어떤 때보다도 중요한 시기였음을 알 수 있게 된다.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보수세력이 아닌 민주화운동 세력으로서 정권을 잡게 된 김대중 정권은 IMF의 개혁패키지를 수동적으로 실행함으로써 한국 사회를 구조적으로 변화시키지 못했기에 그를 이어받은 386세대로 대표되는 또 다른 민주화운동 세력이었던 노무현 정권은 반드시 보수와 기득권 중심의 불평등한 한국사회의 구조를 민주적으로 재편해야 하는 시대적 과제를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러나 대통령 본인의 진심과 의지와는 무관하게 결과적으로 노무현 정권은 실패했고 이는 한국 사회의 시민는 이익의 축적을 향유하게 되므로 이미 중대한 위험을 또 다시 무릅쓸 필요가 없게 된다는 것이다.그러나 대부호가 단순히 지위체계의 정점에 홀로 서서 군림하고 있는 것은 아니며 그들은 회사의 최고 간부라는 대리인들에 의해 보강되고 있는데, 이에 밀스는 대부호는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미국경제의 상층부를 구성하고 있는 커다란 주요 부분이긴 하지만 재산계급이 경영자적인 계급으로 재편성됨으로써 마침내 회사부호라는 하나의 통합적인 사회계층을 형성시키고 있다고 말한다. 옛날의 부호는 단순한 재산계급으로서 가문의 재산에 그 기반을 두고 지역사회에서 활동하고 있었지만 오늘날의 회사부호는 옛날 부호를 포함할 뿐 아니라 상층의 경영자들까지 포함하고 있으므로 회사부호라고 할 때 여기에는 대도시 상류사회의 부호 즉 전체 미국적인 규모의 거대한 재산을 가지고 있는 대부호와 주요회사의 최고간부들까지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이들은 재산에 따르는 제도적 권력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경제적 세력이 돈을 매개로 정당에 대한 발언권으로 표현됨을 의미한다. 회사조직의 세계와 정치적 세계와의 연관이 복잡해짐에 따라 정치가와 재계 인사들과의 구별은 점차로 사라져가고 있으며, 정치와 경제의 최고정점에는 회사부호의 대표자가 자리 잡고 있음을 쉽사리 발견할 수 있다고 밀스는 이야기한다.그러나 그는 여기서 정치기구가 회사조직의 단순한 연장에 지나지 않는다든가 그것이 회사부호의 대표자들에 의해서 점령당하고 있다는 맑스식의 생각은 전적으로 잘못됐음을 지적하며 미국정부를 여러위원회의 상호교호적인 구조라고 이야기한다. 회사부호 이외의 다른 위계질서에서 온 사람들 중에는 직업적 정치가들이 있으며 무엇보다 당시 새로운 얼굴이었던 것은 군부고관이나 워싱턴의 군부장성들이었다.3) 군부19세기 후반 미군은 문관에 의해 지배를 받았으며 군부의 구성원들은 실업가나 정치가로 이루어진 미국 엘리트의 중요한 부분에 끼지 못했었지만, 양차대전과 냉전은 국제적 상황의 중요성을 증가시켰고 이에 미군부들은 항시적인 전쟁가능성을 통해 자신들의하게 하였고 따라서 관료제도의 발달을 억제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박정희 시대의 군사주의는 권위주의적 관료체제를 강화했고 이를 통해 실현되었는데,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관료 기구의 강력한 힘은 박정희 대통령이 그의 야심적인 근대화 계획을 추진하기 위해 발전시킨 관료 체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렇게 비대해진 관료 조직은 1980년대 후반 민주화로의 전환이 요구될 때 거대한 하나의 이익집단으로 변모해 민주개혁을 지지하지 않는 저항세력으로 성장했다. 더불어 현재 거대한 언론 자본으로서 사회위에 군림하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한국 언론의 비대화 과정 또한 그 자체로 역사성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 국가 권력으로부터 비교적 자율적이었던 언론의 역할은 유신체제와 전두환 정권의 군부 권위주의 체제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겪게 되었다. 이 두 정권은 체제의 정당성 결여를 보전하기 위해 그 이전 시기보다도 더 언론 매체를 통한 정당화의 기능을 필요했고 이에 언론을 적극적으로 동원하기 시작한 것이다. 언론이 권위주의 정부의 홍보 기구로 전락했던 유신체제로부터 1987년의 민주적 개방에 이르는 시기의 초기에 언론은 강권력의 위협에 의한 권력의 수동적 대행자였지만 후기 언론은 스스로의 목적과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권위주의 체제 유지 기능을 자발적으로 수행하게 되었다. 언론 기업은 이런 기능을 수임 받는 대가로 국가의 지원 하에 거대 언론 자본으로 성장했고, 기자직은 사회의 어느 직종보다 높은 보수, 다양한 물질적 보상과 함께 많은 권력 자원에 접근할 수 있는 특수한 지식인 집단으로 부상하게 되었던 것이다(최장집, 2010).밀스는 『파워엘리트』 11장에서 미국사회를 풍미하고 있는 사회과학의 중요이론인 균형이라는 것이 얼마나 오류에 찬 논리인가를 정면으로 공박하고 있다. 균형이론이란 한 사회 내의 복수적인 여러 단체나 집단들이 서로 독립을 유지함으로써 이들 집단 사이에서 자동적인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견지에 서서 모든 정치·사회적 성격을 인식하려는 관점을 말한다. 그는 권력기우 의원 등으로 이루어졌는데 이 심포지엄에서 의원들은 삼성경제연구소 정책 보고서에 맞춰 “신성장 전략을 통해 마의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 변곡점을 신속히 통과해야”하며 “주요 지역별 거점형 FTA 우선 체결, 의료-교육-법률 시장 조기 개방”을 주장했다. 이 심포지엄 직후 이광재, 서갑원, 김태년, 한병도 의원 등은 정책 자료집을 발표하면서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미국 등 거대 선진 경제권과의 FTA를 신속하게 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미 FTA 정책 추진은 이처럼 삼성 경제연구소와 노무현 정부 핵심 그룹 사이에서 일찍부터 논의되었던 것이다(박상훈, 2007).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삼성은 5대 재벌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뒤 민주 정부에서 특히 노무현 정부에서 삼성의 성장은 놀라웠다. 2005년 기준으로 삼성은 5대 재벌 일반 자산의 50.8%, 자본 총액의 45.9%, 매출액의 39.5%, 당기순이익의 46.2%를 차지하는 ‘재벌 중의 재벌’로 성장한 것이다. 주식의 시가 총액으로 보면 현대, LG, SK 그룹의 시가 총액을 모두 합한 것보다 많으며 이는 5대 재벌이니 30대 재벌이니 하는 용어로는 부족한 그야말로 ‘슈퍼재벌’의 등장으로 이해될 수 있다(최장집, 2010).지금까지와 같이 일방적인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불가피했다거나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이미 수 많은 연구 결과들이 실증하고 있듯이, 전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 이념과 논리가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해 왔지만 나라마다 수용되는 형태와 내용은 다르고 한 나라 안에서도 어떤 성격의 정당이 집권하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즉, 신자유주의적 경제 정책 노선의 틀 안에서도 사회 해체적 효과를 통제할 수 있는 정책적 보완을 할 수 있으며 우리 사회의 정치적 역량을 어떻게 조직하고 발전시키느냐에 따라 신자유적 경제 독트린으로 요약되는 외적 제약에서도 이를 한국식으로 변형시키고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이에 노무현 정권은 구성현황 (정상호, 2007)※ ( ) 수치는 장관-처장-청와대 수석비서관의 순서임(2007. 6. 30 기준)위의 표가 보여주는 것처럼 한국사회에서 민간정부들이 개혁적 국민 요구에 힘입어 정치 엘리트의 압도적 우위에서 집권을 시작하지만 집권 후기에 이르러 과거 권위주의 정부보다 더 관료에 포획되는 포획 국가의 순환적 사이클이 반복되었다.재정경제부건설교통부기획예산처김진표(2003.02-2004.02)최종찬(2003.02-2003.12)박봉흠(2003.02-2004.01)이헌재(2004.02-2005.03)강동석(2003.12-2005.03)김병일(2004.01-2005.01)한덕수(2005.03-2006.07)추병직(2005.04-2006.11)변양균(2005.01-2006.07)권오규(2006.07-2008.02)이용섭(2006.11-2008.02)장병완(2006.07-2008.02)경제부처 장관직의 관료 독점 현상 (정상호, 2007)행정관료에 의한 노무현 정권의 포획 현상 중 무엇보다 심각했던 것은 경제관료들에 의한 것이었다. 이들은 대한민국 최고의 이익집단이라고 할 정도로 스스로 강력한 이해관계를 지닌 사람들이며, 여전히 박정희식 개발독제 모델의 연속선상에서 부국강병의 중상적 이해관계에 사로잡혀있는 사람들이었다. 다만 21세기 세계화의 시대에 부국강병을 위한 정책을 ‘규제완화’와 ‘개방’이라는 점에서 도출할 뿐이기에 그들은 ‘중상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착종’이라는 특성을 보였다(김상조, 2007).노무현 정권은 출범 초창기부터, 김진표 장관을 임명하고 그 다음에 이헌재 장관을 임명하고 그 다음에는 권오규 장관을 임명했는데 이들은 김영삼 정권와 김대중 정권에서 경제정책의 핵심 역할을 맡았던 박재윤, 강경식, 홍재형, 강봉균, 진념과 큰 차이가 없는 사람들이었다(홍종학, 2007). 특히 노무현 정권의 부동산 정책의 실패 또한 경제관료들과 깊은 관련이 있는데 2003년부터 경제 관료들은 부동산 가격이 낮아지면 주택담보대출 때문에 금융기관이 부실화할 우려가 있었다.
    사회과학| 2013.01.02| 21페이지| 3,000원| 조회(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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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집단의 윤리와 시민도덕』 서평 - 뒤르케임 도덕사회학의 재발견 : 뒤르케임의 정치사회학, 경제사회학을 중심으로
    『직업집단의 윤리와 시민도덕』 서평뒤르케임 도덕사회학의 재발견뒤르케임의 정치사회학, 경제사회학을 중심으로2012021393 이범렬【 목 차 】1. 들어가는 글 - 다시 보게 된 뒤르케임2. 1789년 이후의 프랑스 사회3. 뒤르케임의 정치사회학4. 뒤르케임의 경제사회학5. 『직업집단의 윤리와 시민도덕』과 한국 사회6. 서평을 마치며7. 참고문헌1. 들어가는 글 - 다시 보게 된 뒤르케임이 서평의 주 제목으로 ‘뒤르케임 도덕사회학의 재발견’이라는 문장을 적게 된 이유는 이 책의 학문사적 위치와는 무관하게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에서였다. 그동안 읽어왔던 『사회분업론』, 『자살론』 그리고 유명한 개론서인 기든스의 『자본주의와 현대사회이론』, 캘리니코스의 『사회이론의 역사』에서의 뒤르케임에 대한 텍스트들을 읽으며 나는 뒤르케임을 현실 사회 문제에는 큰 관심이 없는 주로 사회의 거시적인 측면을 다루는 학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직업집단의 윤리와 시민도덕』(이하 『시민도덕』)라는 책을 통해 신선한 충격을 받고 내 생각이 잘못됐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시민도덕』은 뒤르케임이 ‘도덕과 권리의 본성’이라는 제목으로 1890~1900년에 보르도에서 그리고 1904년과 1912년에 소르본느에서 행한 강의 원고를 책으로 펴낸 것으로, 도덕적 사실에 대한 연구를 주요한 주제로 삼는 하나의 자율적 분과를 창출하려는 그의 오랜 시도의 연장선상에서 읽힐 수 있는 책이다. 하지만 그 연장선상에서도 이 책이 나름의 개성과 의의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기든스가 이야기하듯 여기서 그가 일반적 의미에서의 질서가 아니라 특별히 현대 산업 국가에 적합한 형태의 권위질서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이렇게 진보되고 분화되고 복잡한 높은 수준의 사회적 분화가 존재하는 탈기독교 사회에서의 사회 통합을 위한 도덕적 문제를 탐구하는 뒤르케임의 노력 속에서 나는 그간 고공비행을 하던 비행사가 아니라 현실의 땅에 착륙한 지질학자로서의 그의 새로운 면모를 보았다. 특히 현재 한국 사회의 맥락에서도 음에는 이 글의 가장 전제로서 뒤르케임이 살았던 당시의 프랑스 사회가 어떤 상태였는지를 알아보고자 한다.2. 1789년 이후의 프랑스 사회1789년의 프랑스 혁명 이후 프랑스 사회는 격동과 혼란 속에 빠져들었다. 프랑스 혁명은 자유, 평등, 박애라는 가치를 프랑스 사회에 도입했지만 그와 동시에 앙시앙레짐의 파괴는 공포 정치로 귀결되었고, 유럽 전역에서 귀족제와 군주제의 과도한 청산에 대한 보수적 반동을 낳았다. 1815년의 제 2차 왕정복고, 1821년의 나폴레옹의 죽음, 1848년 혁명 사이의 시기에는 입헌군주제 하에서 안정된 정부를 세우려 했던, 성공하지 못한 다양한 시도들이 이루어졌으나 1848년 혁명이 특히 프랑스와 독일에서 실패함으로써 보수적 사회세력은 자신의 전통적인 정치 역할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다.1870년 보불전쟁에서의 군사적 패배로 프랑스 사회에서는 가톨릭 보수주의, 민족주의, 반유대주의와 자유주의적·세속적·부르주아적 집단 사이에 사회적 갈등이 증가해갔고 이 갈등은 결국 1871년 파리 코뮨이라는 피의 대결로 전화되었지만 노동자들의 열망은 이는 코뮨에 대한 유혈 진압으로 좌절되어버렸다.제3공화국을 신성화한 1875년 헌법은 이 깊은 외상의 시대에서 출현했지만, 프랑스에서 전통적인 가톨릭 정치 세력과 급진적인 세속적 사회주의 사이의 정치적 분열에 해결책을 주지는 못했다. 이런 의미에서 프랑스의 19세기 정치는 프랑스 대혁명의 유산과 화해하려는 시도이자, 군주제, 공화제, 보나파르티즘 사이의 투쟁을 효과적인 헌법적 틀 내로 정착시키려는 시도였다.당시 뒤르케임이 속해 있었던 공화주의자들은 왕정복고로 혁명을 끝내자는 입장과 노동자들의 계급혁명으로 혁명을 지속하자는 보수주의자들과 급진주의자들 중간에서, 프랑스 전 지역의 사회생활을 현대화함으로써 사회체제의 경제적·도덕적 아노미를 제거하는 방안을 모색했다.) 이들은 합리적으로 계획된 그리고 사회과학적 연구의 뒷받침을 받는 사회개혁만이 프랑스 대혁명의 가치를 완성하고 당시의 위기와 혼란을 해소할 수 있제를 수행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국가는 개인들로 하여금 자신의 천부적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창조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권리의 현실을 창조하고 조직하고 만드는 역할을 맡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는 자신을 구성하는 조직들을 감시 하에 둠으로써 그들이 개인에 대해 억압적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개인의 인격을 해방시킨다. 하지만 국가는 전제적이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차적 집단에 의한 구속이라는 역균형을 필요로 하며 뒤르케임은 이러한 사회적 세력들 사이의 에서 부터 개인의 자유는 탄생할 수 있다고 본다.통치하는 사람들의 수에 따라 민주주의를 구분하는 몽테스큐의 논의를 비판하며 뒤르케임은 국가가 나머지 시민과 소통하는 방식을 통해 민주주의를 구분하고자 한다. 국가가 시민과 소통함에 있어서 통치 의식이 협소하게 국지화되어 있느냐 아니면 통치 의식이 확대됨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이 밀접한 소통을 하게되고, 자신을 의식하며 반성하게 되며 그를 통해 얻은 명증한 사회적 의식을 통해 끊임없는 변화를 이끌어 내느냐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에서 국가를 제거하는 것은 옳지 않다. 국가는 사회적 사고의 기관으로서 시민들의 모호한 감정에 명확함을 부여하여 그들을 더 명확히 더 많이 추론된 생각에 종속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는 국가가 시민들에게 예속되고 시민들의 의지를 단순히 반향하는 것은, 인민 대중의 비반성적 사고를 표현하고 요약하는 것으로서 사회가 가장 일반적인 조류를 갖는 것으로 여겨지는 감정이 지배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기에 가장 민주주의와 상반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국가는 무엇이 합당한지를 아는 데 있어서 군중보다 좋은 자리에 있기에 그 나름의 방식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그런데 국가가 시민들의 의사를 있는 그대로 반영해서는 안된다는 뒤르케임의 말을 처음에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한국에서는 시민들의 의사가 국가에 제대로 반영된 적이 없기에 정치의 책임성을 높이기 위한 통로를 뚫기 위해 대표적으로 정이 양자가 직접적인 관계에 있을 때면 언제나 민주주의의 변형이 정상적인 형태를 대체하리라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고 이야기하며, 개인과 국가 사이에 끼여 있는 이차적 골간들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그가 보기에 국가를 개인으로부터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집단으로서는 두 가지가 있는데, 지역집단은 지역적 지구가 예전과 동일한 중요성을 갖고 있지 않으며 더 이상 동일한 필수적 역할을 하지도 않기 때문에 이차적 집단의 실재가 될 수 없다. 따라서 그는 오직 영구적이며, 개인이 자신의 전생애를 바치고, 개인이 강한 애착을 갖는 직업집단이 우리 미래 사회 구조의 기초가 되도록 요청 받을 수 있다고 이야기하며 자신의 정치사회학과 직업집단이론을 연관시킨다.4. 뒤르케임의 경제사회학『직업집단의 윤리와 시민도덕』에서 부분은 지금까지 읽은 뒤르케임의 그 어떤 논의들보다도 가장 현실적으로 피부에 와 닿았기에 정말 흥미롭게 읽었다. 학부 때 읽었던 2차 서적들에는 잘 다뤄지지 않았던 그리고 뒤르케임의 다른 저작에서 볼 수 없었던 그가 경제를 바라보는 관점 그리고 무절제하고 이기적인 성향을 가진 경제생활이 야기하는 문제에 대한 그만의 독특한 처방을 접하고 나서, 현실 문제의 원인을 진단하고 그에 대한 처방책을 제시하는 현실 참여적인 학자로서의 뒤르케임의 새로운 면모를 알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앞서 이야기했듯 사실 그동안 나는 뒤르케임이 현실의 문제에는 큰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고 주로 도덕에만 관심을 가진 뜬구름 잡는 학자라고 생각했는데 이 를 읽고 마음을 바꿔먹게 되었던 것이다.『시민도덕』에서 서술된 직업집단에 대한 논의들은 거의 동일하게 1902년 추가된 『사회분업론』의 2판 서문 「직업집단에 대한 몇 가지 고찰」에 서술되어 있는데, 보통 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여겨지는 서문에 30여 페이지의 분량을 할애하여 추가적인 서문을 썼다는 것은 뒤르케임이 당시 프랑스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바로 이 직업집단이론을 핵심으로 보았다는 것을 의미한다.현대 사회가 대규모 산업 사산을 방해하고 노동자들의 자유를 속박하는 규칙과 특수 지위만 봄으로써 그것을 다른 유형의 직업집단으로 대체하지 못하고 파괴했기 때문이다.) 혁명가들이 본 길드의 규칙과 특수 지위는 역사의 일정 순간의 특정한 길드에 해당한 것으로써 뒤르케임에게 이 결함은 결코 모든 길드 조직에 고유한 것이 아니었다.길드가 필요한 이유를 논의했기에 이제 뒤르케임은 길드가 현재의 집합적 실존이라는 조건 속에서 자기 역할을 하기 위해 어떤 형태를 취해야 하는지를 고찰한다. 조합체 또는 수공업 길드는 자유도시를 구성하는 기초였지만 자유도시와 철저히 무관한 대규모 산업이 들어서면서 그것은 영향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대규모 산업의 출현을 이끈 국가의 통일은 시야의 확대를 가져왔고 따라서 새로운 사고는 물론 새로운 요구에 대한 인간 의식의 각성을 일으켰는데 길드는 여전히 지역에 메여있었으므로 그 요청에 응답할 수 없었기에 위험에 처하고 말았다. 그러나 전국적 조합체라면 그 범위와 복합성으로 인해 새로운 재배열을 끊임없이 준비하고 실행함으로써 관성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뒤르케임의 분석이다. 즉, 산업이 지방과 자치체 차원의 일이 아니라 국가 차원의 일이 되었다면 길드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변화하여 자치체의 제도로 남아있는 대신 공적 제도가 되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는 개인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경제생활이 너무나 광범위하고 너무나 복잡하고 너무나 많은 가지를 쳐 나가서 국가가 경제생활의 작동을 효과적으로 감독·규제할 수 없기에 길드는 포괄적이고 전국적이며 복합적 구조로 재편됨으로써 국가와 시민 사이에서 소통과 다양성을 보장하는 기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당대의 큰 문제였던 무절제하며 이기적인 경제생활에 대한 처방이다.직업집단이론과 더불어 뒤르케임의 경제사회학의 또 하나의 중요한 특징은 바로 상속제도에 대한 그의 통렬한 비판에 있다. 이는 뒤르케임에게 붙여진 보수주의자라는 딱지를 일거에 벗겨낼 수 있을 만큼의 파괴력을 지닌 그의 주장이다. 한국 사회에서 이런 이도이다.
    독후감/창작| 2013.01.02| 7페이지| 2,000원| 조회(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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