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1996), 홍상수1. 감독 소개홍상수는 1996년 로 평론가들의 만장일치의 찬사를 들으며 영화계에 데뷔하였다. 그는 이 영화를 시점으로 기존의 영화계에서 찍어왔던 영화와는 다른 시각으로 영화를 바라봄으로 영화에 모더니즘을 일으켰다. 그것은 바로 드라마틱한, 영화스러움에서 벗어난 리얼리즘, 일상성이다. 그의 일상성은 이 영화를 필두로 , , 에 이르기까지 홍상수, 그만의 일상성을 유기적으로 담아내고 있다.그는 영화를 통해서 일상의 모습들을 담아내려 했다. 기법적 트릭이 배제된 마치 다큐멘터리와 같이 일상을 담으려했다. 그 과정에서 구효서의 이라는 소설을 접하게 되고, 소설의 기본 틀을 완전히 깨고, 소설 안의 인물의 전체적인 이미지적 특징만을 영화 속에 끌어들였다. 영화은 구효서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홍상수 감독은 소설에서 몇 개의 모티브만을 가져와 영화 속에 삽입한다. 3억5천만원 들여 만든 저예산 영화 의 파장은 실로 컸다. “우연성과 즉흥성과 권태와 비극과 부조리가 한데 응축된” 서울에 관한 그의 디테일한 묘사는 “한국영화의 현대화를 선포했다”는 주장을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흥행은 서울관객 3만7103명에 그쳤지만, 해외에서의 반응은 뜨거웠다. 대종상 본선에도 오르지 못하고 찬밥 대접 받았던 영화는 도쿄영화제에 초청됐고, 이어 밴쿠버영화제 용호상과 로테르담영화제 타이거상을 수상하는 등 상복이 겹쳤다.주요작품 : 1996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8년 강원도의 힘2000년 오!수정2002년 생활의 발견2004년 여자는 남자의 미래2005년 극장전2. 등장인물 소개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 등장인물들에 대해 알아보자.효섭은 삼류소설가이다. 그는 세상에서 되는 일은 하나도 없고, 늘 수많은 벽에 부딪히지만 자부심만은 강하다. 사회가 그를 인정해 주지 않자 그는 좌절감을 느끼고, 그 불만은 주위사람을 향한 열등의식과 왜곡된 자의식의 분출로 나타난다. 자신의 삶을 바꾸고 싶어 하는 욕망은 그를 더욱 야비하고 위선적인 인간으로 만들어갈프레임 (거울) : 이씬은 언뜻보기에 방안에서 전화를 거는 보경을 뒤에서 포착한 것 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거울의 비친 그녀의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푸른 선은 인물과 침대 뒤에 놓인 , 화면에서는 볼 수 없는 가구의 두개의 거울들 사이에 난 선이다.카메라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정확히 이 선 맞은편에 고정한체 거울에 비친 인물을 촬영했다. 한마디로 이 씬의 이미지는 이차 프레임(즉 거울)에 속하는 이미지이자 동시에 일차 프레임(화면)에 속하는 이미지다. ex) 보경의 아파트 씬 ( 52분 42초)원래 거울씬은 실제상과 거울에 비친 상을 함께 보여주면서 인물의 현실적 자아와 내적 자아를 비교해 둘 사이의 갈능이나 차이등을 강조하기 위하여 쓰이는데 이장면에서는 거울에 비친 인물의 상만 남기고 실제 상은 화면에서 완전히 축출해버렸다.이는 이 씬이 위치한 서사적 단계에서 인물의 내적 자아가 현실적 자아를 압도하고 있음을 암시하려는 것일수도 있다. 또 두개로 분리된 거울의 이미지는 자신의 애인인 효섭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남기는 순간 조차에도 흔들리는 주인공의 내적 세계를 묘사하는 것일수 있다. 다시말해 거울의 이미지는 일상의 평안과 그것으로부터의 일탈 사이에서 갈등하는 그녀의 마음 상태를 암시한다.4. 영화 장면에 의미 부여하기4-1. 화분 안에 있는 벌레를 손으로 막아대며 쾌감을 느끼는 효섭의 모습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CD1 6분25초): 화분 안의 벌레는 효섭 자신의 모습이다. 효섭의 손가락에 의해 갈 길을 제대로 가지 못하고 이리저리 출구를 찾아 헤매는 벌레의 모습은 하루종일 벽에 부딪히며 절망하는 효섭 과 동일하다. 이는 또 우물에 빠져 나오고자 허덕이는 돼지와도 연결된다. 그런데 효섭은 자신과 동일시되는 벌레를 보며 즐긴다. 그런 그의 모습은 초라하며 열등의식에 싸인 효섭의 모습을 보면서 비웃으며 무시하던 그를 둘러싼 주위사람의 모습인 것이다. 즉 그의 왜곡된 자의식이 보인다.(선후배의 모임에서는 소외되며 웃음거리이고, 식당종업원에게서는 무시를 당한으로 복귀한다. 여기서 평범한 사람들과 홍상수 감독과의 차이가 드러난다. 돼지가 물속에 잠긴 뒤 사람들은 잔잔한 수면(즉 평범한 일상)만을 보게 되지만, 홍상수 감독은 그 수면 아래에 잠재해 있는 돼지와 그 돼지가 허우적거리던 순간을 잊지 않는다.이때 우물의 수면은 일상과 일탈의 경계를 의미하는 동시에,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의미한다. 보통의 사람들은 의식의 세계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스스로가 욕망으로 분열하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보지 못하나, 홍상수 감독은 무의식의 막을 통과하여 그 아래 쾌락원리 속에서 잠재하는 욕망의 모습을 투시한다.홍상수 감독이 투시하는 그 욕망은 의식의 수면 위를 지배하는 현실원리에 사로잡힌 평범한 대중들에게는 낯선 것이거나, 아니면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다. 그리고 그는 돼지가 격렬하게 발버둥 치던 순간보다는 그로 인해 일었던 물결들과 잠잠해진 순간들을 주로 반영하기에, 격렬한 액션이나 극적 반전 등으로 이루어지는 할리우드의 관습에 길들여진 일반 관객들은 대체로 지루해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인간의 삶이 시선과 응시의 분열, 또는 욕망의 어긋남으로 이루어짐을 인정한다면, 오히려 그의 영화를 보는 동안 헝클어진 일상의 실타래를 차분하게 풀어 가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6-1. 의 일상성홍상수 감독의 첫 영화인 은 분명, 관객들에게 새로운 것이다. 그 새로움은 그가 보여주는 내러티브 구조 즉 4명의 인물의 에피소드를 얼기설기 얽어놓은 채 시작과 끝이 불분명한 플롯에서 기인할 수 있고 인물의 내면은 드러나지 않은 채 표피적인 묘사로 일관함으로써 특정한 성격을 잡아내기 힘든 그의 영화 속 인물들에게서 기인하는 것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주는 가장 일차적인 새로움은 그가 응시하는 듯 집요한 시선으로, 때로는 무심한 시선으로 끊임없이 나열하고 있는 '일상'이라는 소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무의미해 보이고 반복적인 우리의 일상은 사실 매우 사소하고 쉽게 망각되어 버리는 것으로 인식되어왔을 뿐 우리의 의식을본 목격자가 된 사건일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내낸 상권이 후배와 나누는 실없는 농담들과 여행지에서의 외도, 질펀한 술자리 같은 것 들을 보여주면서 인물들의 움직임을 그저 따라가고 있다. 그리고 과 에 이르면 아예 이런 사건들마저 없어지고 일상적인 행위들 사이에 항상 존재하는 개인의 욕망이나 기억의 부정확함, 모방과 같은 문제들을 조합시키면서 점점 개인적이고 일상적인 사건들을 보여주는데 더욱 치중한다.홍상수가 일상의 묘사와 표피적인 관찰들을 통해 드러내고 있는 일상의 특징은 어떤 것이 있는지 더 자세히 알아 볼 필요가 있다.6-1-1. 일상적인 행위의 축적을 통해 드러나는 일상의 성격1) 일상을 지배하는 권력관계홍상수 영화의 인물들의 일상을 통하여 드러나는 특정한 일상의 성격 가운데 하나는 그들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는, 권력이 바탕이 된 인간관계의 모습이다.영화 속에서 그것은 돈, 자동차 등으로 대표되는 물질적 우위이거나 사회적인 지위이다. 이러한 관계들이 바탕이 된 사회에서 인정받을 만한 지위나 돈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영화 속에서 당연히 그 존재감을 무시 받을 수밖에 없다. 에서 문인들의 모임에 찾아간 효섭은 '김효식'이라고 소개를 받는다. 자신의 정체성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는 이름 자체가 무시되는 것이다. 소설가로서 변변한 이름을 얻지 못하고 잡문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효섭이 같은 문인들 사이에서도 불청객 취급을 받는 것은 결국 그가 인정받지 못하는 소설가라는 이유가 큰 것으로 드러난다.홍상수 감독의 영화에는 이처럼 재화의 소유라는 권력관계에 의해서 맺어지는 인간관계들로 가득 차 있다. 따라서 이들의 인간관계는 서로 진정한 소통, 교류를 하지 못한 채 소외될 수밖에 없다. 인물들 사이의 이러한 관계맺음으로 인해 그들은 그저 표피적인 관계에만 머무를 뿐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 그들은 서로 소통하지 못한 채 고립되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2) 진정한 소통을 가로막는 표피적인 인간관계그의 영화에 드러나는 일상의 두 번째 성격이다. 영화 속에서 드러나는 번다. 순수했던 그녀가 에로영화 더빙까지 해가면서 돈을 벌기위해 노력하지만 돌아오는건 효섭의 배신이었다. 효섭을 통해 그녀는 환상을 가지게 되었지만 결국 그녀는 효섭에게 있어서 욕망(desire)의 대상이었다.라캉에 의하면 욕망의 대상이란 욕구(need)의 대상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며 자기희생을 의미한다. 주체가 기표의 기능을 띠고 있는 한, 그는 결코 주체로서 정립될 수 없다.)그렇듯이 그녀도 효섭에게 있어서 주체로 정립될 수는 없는 것이다. 효섭은 그녀에게 “넌 내가 될 수 없어.” 라는 말을 던지고, 곰인형을 끌어안고 잔다고 순수한거냐고, 사실은 넌 정말 더러운 똥이라며 그녀를 비하시킨다.영화 속에서 민재를 짝사랑했던 약간의 정신병적인 측면을 가진 남자 민수는 민재에게 사랑을 원하나 결국 진정한 마음은 얻지 못하자 이에 분노해 민재와 효섭을 죽인다.대상을 향한 주체의 ‘시선’은 욕구의 충족은 물론 사랑에의 ‘요구’까지 원하나, 되돌아오는 대상의 ‘응시’는 ‘욕구’의 일시적 충족 밖에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욕망은 바로 이 시선과 응시 또는 요구와 욕구의 불일치 속에 잔재한다.그는 민재에게 욕구의 충족과 사랑에의 요구를 했지만 결국 욕구의 충족밖에 할 수 없었으며 욕망을 다스리지 못한 그는 그 두 가지를 모두 가진 남자, 효섭을 죽이고 민재 또한 죽이게 되는 것이다.6-2-3. 보경효섭의 정부로 나오는 보경은 남편과의 결혼생활이 순탄치 못하자 이에 회의를 느끼고 효섭과 정을 통하는 사이이다. 남편과의 사이에서 난 아기가 죽자 남편과의 성행위를 일체 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녀는 남편의 빈자리를 효섭에게서 메우려고 하고 또 그것이 가능했기에 살아갈 수 있었다. 그녀의 욕망은 항상 다른 주체, 즉 타자에게 의존하는데 그것은 그녀의 의지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남편의 박탈당한 남근의 기능을 효섭을 통해 충족하려는 것이다. 대상은 남근에 의해 환상 속에서의 역할을 부여받고, 환상을 근거로 욕망이 형성된다.)이 시도는 어느 정도 자리잡혀가는 듯 했지만 효섭의.
伽倻文化- 衣?食?住를 중심으로목차Ⅰ. 들어가기Ⅱ. 가야문화1. 가야문화의 전반적인 성격2. 가야인의 의복문화3. 가야인의 음식문화4. 가야인의 주거문화Ⅲ. 나오기Ⅳ. 참고문헌Ⅰ. 들어가기가야(伽耶)는 삼한 중 변한(弁韓)이 모태가 되어 성립된 세력 집단을 일컫는데 고대국가로 성장하지 못하고 소국들의 연맹 형태로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가야 연맹체, 또는 연맹왕국가야로 파악되고 있다. 이런 가야의 문화를 알아보기에 앞서 가야라는 명칭과 변천사에 대해 알아야한다.현재 많이 사용하고 있는 ‘가야’는 12세기의 문헌자료에서 사용하고 있는 가야 호칭을 받아들인 것이다. 원래 ‘가야’는 ‘임나’, ‘가야’, ‘가라’, ‘가락국’ 등 이름이 단일 하지 않다. 실제로 문헌기록상으로 나타나는 가야의 표기를 찾아보면 구야(狗耶), 가라(加羅), 가야(伽倻), 가량(加良), 가락(伽落) 등으로 꼽을 수 있고, 한자표기까지 달리 표기된 것을 감안하면 약 15종류의 가야호칭이 있다. 그뿐 아니라, 가야의 개별소국의 명칭까지 포함하면 그 종류는 더욱 많고 시기별로 달리 불렸다.가야는 많은 소국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중 큰 세력을 가진 국가는 5~6개 정도가 있다. 소국들은 소규모의 독립국가로 이들 5~6개 국가 주위에 인접해 있었으며 큰 국가를 중심으로 몇 개의 세력권을 형성하여 유지되었다. 이때 형성된 세력권은 김해나 웅천 중심의 본가야권, 고령과 대구 중심의 대가야권, 함안?진해?창원?칠원 중심의 아라(안라)권, 충무?고성(古城)?거제 중심의 소가야권 등이 있었다. 가야는 스스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하여 군사제도를 갖추고 있었다. 본가야는 특히 농업이 발달하였고, 금관가야, 소가야, 안라가야 등의 위치한 남해안에는 대륙붕의 발달로 바다의 수많은 자원을 이용하면서 발전하였다. 뿐만 아니라 가야지역은 철산자원이 풍부하여 철제기술도 발달하였다. 이러한 가야의 변천사를 간략히 살펴보면 가야의 태동기는 B.C. 3세기경에서 B.C. 1세기경으로 부족국가시대이고 성립기는 A.D 1세기에서 A이르는 말. 의식주를 비롯하여 언어, 풍습, 종교, 학문, 예술, 제도 따위를 모두 포함한다. 여기서는 가야문화의 전체적인 성격과 더불어 삶의 토대이며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없어서는 안 될, 의?식?주를 중심으로 가야문화를 살펴보겠다.Ⅱ. 가야문화1. 가야문화의 전반적인 성격가야문화의 전반적인 성격은 첫째, 문화의 토착성이다. 가야지역은 이전의 선사시대부터 수렵?어로?농경?문화를 지속적으로 계승한 위에 이루어진다.둘째, 지역별로 그 특성이 다양하게 표출된다는 점이다. 지역마다 독특한 토기양식이 성립되는 것은 물론이고, 토우나 투창으로 의식구조를 상징적으로 표현해 냈다. 뱀 모양 토우가 붙은 대가야의 통형기대와 아라가야의 화염형 투창이 뚫린 토기, 뚜껑의 손잡이 모양이 독특한 창연의 고배 등을 대표적인 것으로 들 수 있다.셋째, 가야문화의 다양성은 지형적인 조건에 규제를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야의 제국들은 낙동강의 본류, 혹은 지류 상에 분지를 중심으로 일정한 폐쇄성을 가지며 지역마다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다.넷째, 가야문화는 폐쇄성과 동시에 외래문화에 대한 개방성을 동시에 갖고 있다. 전기와 중기가야의 중심지인 김해는 일찍부터 교역과 교류를 통해 발전하면서 많은 외래문화가 유입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삼국지 왜인전의 기사에도 보이며 회현리 패총, 대성동고분군 등의 유물 상에도 확인되고 있다.다섯째, 가야문화는 독자적인 창의성을 보이고 있다. 토기의 경우 여성적인 유연한 곡선과 다양한 문양장식과 투창, 독특한 표현양식은 가야만이 가진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묘제에서는 아라가야의 감실구조처럼 가야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양식으로 발전시키고 있다.2. 가야인의 의복문화의복은 인간생활에 필요한 3가지 요소 중 하나이다. 의복으로써 추위와 바람 등 거친 환경으로부터 몸을 보호할 수 있고, 의복을 통해 신분과 부를 표현하기도 한다.가야인이 입었던 의복 모습과 관련되는 것으로서 먼저, 『일본서기』 계체기 23년조(529)에 나오는 기록이 주목된다. 것이다.요컨대, 법흥왕대의 공복제정을 기점으로 신라와 가야의 의복 모양에 차이가 생겼으며, 그 차이는 공복 즉 관에 속한 사람들의 옷으로 한정되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법흥왕대 이전, 그리고 일반 서민의 경우에는 신라?가야의 의복에 특별한 차이가 없었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6세기 이전의 신라 의복을 통해 가야 옷 모양을 추정할 수 있을 것이며, 4~5세기로 편 년도는 신라토우는 옷 모양을 알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신라의 부부토우. 남성은 고깔을 쓴 모습이다.토우의 남성들이 입은 옷은 바지와 저고리를 기본적인 차림으로 하는데, 바지는 폭이 넓고 저고리는 허리띠로 여미며, 여기에 고깔처럼 생긴 모자를 더해 하나의 세트를 이루고 있다. 또 『삼국지』에 겉옷을 입는다고 묘사하고 있으므로, 가야의 남성은 저고리와 바지를 기본으로 하고 거기에다 겉옷을 입는 것이 예를 갖춘 정장차람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여성의 경우에는 주름이 표현된 차마와 비교적 긴 기장의 저고리를 입었고, 저고리 위에는 허리띠를 둘렀으며, 두루마기 같은 겉옷을 착용하였다. 따라서 여성 의복은 남성과 마찬가지로 투피스를 기본형으로 하고, 겉옷을 덧입는 것이 정장이었다고 할 수 있겠으며, 이런 모습은 신라토우에 표현된 의상에서 알 수 있다.이러한 가야에서도 백성들은 지배계층과는 차별화된 의생활을 영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부와 권력으로 인한 차별이었을 뿐, 옷차림에 대한 제도적인 규제를 받은 흔적은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로 보아 가야에서는 6세기까지도 ‘삼한의 하호’들처럼 일반 백성일지라도 부를 축적할 경우 비단옷을 입고 금은주옥으로 장식할 수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그럴 수 있는 기회가 상하계층에 균등하게 주어지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가야사회가 계층적으로 덜 규제된 의복문화를 구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점은 가야가 고대율령국가로 발전해 나간 신라와 구별되는 다른 점이라 할 수 있겠다.3. 가야인의 음식문화식생활은 인간생활에 필수요소 중 다른 채취?채집을 통한 음식물 획득도 여전히 지속되었다. 김해 부원동이나 창원 다호리에서 출토된 머루와 같은 야생과일과 도토리, 밤, 호두 등의 견과류를 채집식물들로 꼽히는 것이고, 패총 등을 통해 조개류와 해조류 등을 채취하였음을 알 수 있다. 어패류는 해안지역의 일반민들이 농사일을 하면서 어로와 채취활동을 겸했다. 많은 고분에서 어망추가 발견되고 있다는 사실은 어로활동이 일상적인 생계수단의 하나였다는 사실을 말한다. 이와 같이 가야인들은 농업을 비롯하여 수렵, 가축사육, 어로와 채취 등 다양한 생업활동을 통해서 먹을 것을 얻었다.시기에 따른 기종비율의 차이는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하는 것이다.신라 지역의 고배 크기 변화즉 4세기 이후 고배의 수가 증가하는 것은 식생활의 변화상을 반영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음식문화의 발전과 음식물의 세분화, 주?부식의 분리 등을 추정해 볼 수 있다. 또한 음식물의 상위계층으로의 집중과 식생활에 있어서의 계층분화를 볼 수 있고, 음식의례를 통해서 정치권력의 과시 및 통치의 한 수단으로도 이용하였음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그리고 뚜껑 있는 토기가 많이 등장하는 것은 농업생산력의 발전과 교통의 발달로 인한 식품재료의 증가로 조리법과 저장법, 가공법의 발달로 인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이러한 가야인들의 식생활 변화배경에는 철제농기구의 발전이 뒷받침되었다. 고배비율이 증가하는 4세기 말 5세기 초에는 철제농기구의 종류가 많아지고 수량도 증기하는 시기이다. 따라서 농사일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비단 가야지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신라의 중심지에도 고배 비율이 증가된 것이 확인된다. 가야와 마찬가지로 신라에서도 식생활의 계층분화가 현저해짐을 알 수 있는 것이다.4. 가야인의 주거문화주거생활은 인간생활에 필요한 3가지 요소 중 마지막 한가지이다. 가야인의 주거문화는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정착생활의 실현이면서, 우리 환경에 적합한 고유의 전통주거문화를 확립해 나가는 한 궤도선상에 있었다.「가락국기」에는 수로왕터다. 주거지뿐 아니라 무덤 역시 이동하는데, 3세기까지만 해도 취락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던 무덤이 3~5세기 이후 취락과 분리되어 구릉지 사면으로 올라갔다. 이러한 생활반경의 평면적 확대가 주거문화에도 변화를 가져오게 했다.비스듬한 경사면에 자리 잡은 수혈거주지. 원형 안의 중앙의 복잡한 그림은 화덕이 있었던 자리이고 둘레에 기둥이 넷이 있었던 흔적이 있어 취사공간을 구분한 것을 알 수 있다.김해 부원동 유적, 가야전기발굴된 수혈주거지의 편명 형태도면.큰 원은 가옥 전체의 형태이며 안쪽과 둘레에 점점이 표시된 작은 원형은 기둥구멍이다. 왼쪽 상단부의 튀어나온 부분은 화덕자리이다.진해 용원동 유적의 주거지. 가야후기현재 가야시대의 주거지는 김해, 합천, 진해, 창원, 진주, 산청, 사천 등 여러 지역에서 발굴되어 소개되고 있다. 이들 유적에서 발굴된 주거지는 수혈가옥과 지상가옥으로 나뉜다.수혈가옥은 땅에 구덩이를 일정한 깊이로 파고, 바닥을 편편하고 단단하게 다진 다음 둘레에 기둥을 세워서 지붕을 덮은 집을 말하는데 움집이라고도 한다. 신석기시대 이래 가야시대까지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주거 형태로 오랜 시기 동안 가장 보편적인 가옥 형태였다고 할 수 있겠다.여섯 개의 기둥구멍이 고상식 건물이 들어서 있던 자리였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윗부분의 장방형은 수혈주거지.김해부원동지상가옥의 경우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오늘날의 가옥과 같은 지상가옥, 다른 하나는 고상가옥이며 고상가옥에는 완전한 고상가옥과 반고상가옥이 있다. 김해 부원동, 진해 용원동, 창원 가읍정도, 창원 반계동에 그 유적들이남아 있는데 출토된 자료는 지상가옥보다 고상가옥이 많다. 고상가옥은 아래에 기둥으로 된 하부구조를 가진 것으로, 상부구조는 벽체시설과 지붕 등 일반 가옥의 형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오늘날 한옥의 대청마루나 원두막에 고상가옥의 원래 모습이 남아 있다. 고상가옥은 나무 위에 지은 수상가옥에서 발전한 것으로 습기와 뱀 등의 피해를 막기 위한 전형적인 남방식주택이 있다.
장르적 시각을 통해 분석 한 『홍길동전』1. 들어가기『홍길동전』은 중?고등학교 때부터 익숙히 알고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이 작품을 어떠한 방법으로도 분석한 적은 없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홍길동전』을 소설이라고 배웠기 때문에 ‘이것이 소설이구나.’라고만 생각했지 왜 소설인지, 소설이 정확히 어떤 것 인지도 몰랐으며 이러한 점에 대해 생각해 보려 한 적도 없다. 그래서 지금부터 가장 먼저 소설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보겠다. 그리고 『홍길동전』이 왜 소설인지를 인식한 후, 장르적 시각으로서 『홍길동전』을 분석하고 이 작품이 어떤 성격과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자한다. 또한 이를 통해 문학작품을 분석하는 시각을 기르도록 하겠다.2. 장르적 시각을 통해 분석 한 『홍길동전』『홍길동전』을 누구나 소설이라 한다. 그렇다면 소설이란 무엇일까? 소설이란, 작품 밖의 세계가 작품 안에 개입한다는 전제하에 작품 밖의 자아가 작품 안에 개입하고 작품 안의 자아와 세계가 상호 우위에 입각한 심각한 대결 양상으로 대립하는 것이다. 여기서 자아란 행위 주체의 의식과 행동이고, 세계란 행위 주체의 의식과 행동을 제외한 모든 것이다. 그리고 자아와 세계의 대결은 사건으로 구현되고, 상호대상화의 주체는 인물이다. 이것이 바탕이 되어야 『홍길동전』이 왜 소설인지를 알 수 있다.1. 실존적 작가1. 문예적 작가3.문예적작품2. 문예적 배경2. 실존적 배경그리고 장르적 시각에서 『홍길동전』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문학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문학은, 작가가 그 시대와 소통 속에서 얻어지는 결과를 문학이라는 언어로 표현한 고도의 정식적 결과물이다. 즉, 작가와 배경, 작품이 문학을 이루는 기본적인 요소이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분석하기 위함의 체계화를 밴다이어 그램으로 나타내보자.실존적 작가와 배경은 현실에 존재하는 것이고, 문예적 작가와 배경은 창작 동기로서의 작가와 배경을 말한다. 여기서 실존적 작가와 배경은 실제로 작품에 들어가는지 안 들어가는 지 알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작품 내외의 요소, 즉 문예적 작가와 배경이 작품과 어떠한 관련이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이러한 관계를 통해 문학작품의 장르적 성격을 구분하여 보자.장르류서정교술희곡서사개입여부 (작품내외개입+)-+-+관계양상 (대립+/대상화-)--++『홍길동전』의 경우 소설이기 때문에 작품 밖의 자아가 작품 안에 개입하고 작품 안의 자아와 세계가 상호 우위에 입각한 심각한 대결 양상으로 대립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홍길동전』소설이 서사장르에 속하고 소설은 서사장르의 하위개념인 장르종임을 알 수 있다.당대현실-조선전기허균-잘못된 사회 현실을작품-대결구도바로 잡고자 하는 생각신분사회/적서차별 당연함그렇다면 지금부터『홍길동전』을 장르적 시각을 통해 분석 해 보자.『홍길동전』은 당대 현실을 문예적으로 형상화하여 만들었으며 작품 밖의 자아와 세계가 개입되어 작품 안의 자아와 세계가 심각한 대결 양상을 보여준다. 이것을 장르적 시각으로 접근하여 분석을 하기 위해서는 첫째, 작품 내적 자아 둘째, 작품 내적 세계 셋째, 심각한 대결 구도을 찾아야한다.여기서 대결 구도를 찾으면 자연스레 자아와 세계를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자아와 세계의 심각한 대결은 사건으로 구현되고 그 상호대상화의 주체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사건으로 구현되는 심각한 대결은 『홍길동전』의 경우, 사건이 발단단계-홍길동이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초란은 그를 죽이려하고, 호부호형하지 못하는 신분차별 및 적서차별의 현실을 보여줌-에서 나타나며 여기서 자아와 세계를 찾을 수 있다. 사건에서 찾아 낸 작품 내적 자아인 홍길동의 주체 의식과 행동을 보면 천비 소생이라 사람들에게 천대받고 입신양명에 제한을 받는 신분 제도와 호부호형을 하지 못하는 적서차별을 거부한다. 이것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아버지에 대한 거부일 수도 있고 사회 제도의 본연적 거부 일 수도 있다. 그리고 활빈당을 조직하여 탐관오리를 응징함으로서 지배층의 부정부패 타파하려한다. 작품 내적 세계는 행위 주체의 의식과 행동을 제외한 모든 것으로서 홍길동이 적서차별의 거부와 정의사회 구현의 노력을 인정하지 않았던 모든 것이다. 이에는 홍길동을 죽이려했던 초란과 활빈당 활동을 하는 홍길동을 잡으려는 국가, 홍길동의 마음을 당시 사회의 의식을 거부할 수 없기에 엄격히 꾸짖었던 아버지가 대표적이다.이러한 쟁점들을 통해 주제 또한 쉽게 찾을 수 있다. 작가는 작품 내적 자아와 세계의 대결을 통해서 작가적 진실을 담아내려 한다. 『홍길동전』의 주제가 적서차별을 거부하고 인간존재를 인정하자 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작품의 결말을 보면 홍길동이 병조 판서를 제수 받은 후 해외로 나가 율도국이라는 이상국을 건설하고 그 곳의 왕이 되어 나라를 다스리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는 당대 사회의 모순을 척결하고 새로운 이상 사회를 세우고자 하는 작가 의식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사회 개혁에 대한 작가의 좌절을 이상향으로서 도피시킨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것이 작가가 당대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말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작품 내적 자아와 세계의 대결을 통해 사건으로 구현되고 그 주체는 인물로 표현한다. 다시 말해 홍길동 홍판서 초란 춘섬들의 인물들을 통해 작품 내적 자아(홍길동)와 작품 내적 세계(홍길동외 나머지)의 대결로서 사건이 구현되고 이러한 인물들을 통해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하는 것이다.
《劉忠烈傳》)의 유형과 특성목차Ⅰ. 들어가기Ⅱ. 《劉忠烈傳》의 유형과 특성1. 《劉忠烈傳》의 줄거리 파악2. ‘영웅의 일생’ 모형과 《劉忠烈傳》의 서사구조 파악3. 《홍길동전》과 비교하여 살펴보는《劉忠烈傳》의 특성Ⅲ. 나오기Ⅰ. 들어가기어렸을 적부터 위인전이나 영웅소설)을 좋아했다. 사람은 누구나 성장하는 과정에 있어서 시련과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고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에 있어서 자신의 능력은 물론, 부모님이나 친구 등 조력자들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나 또한 그런 과정을 살고 있으며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대단히 뛰어난 능력이나 신비스러운 탄생은 아니라 하더라도 살아가는 과정은 영웅의 일대기와 비슷한 점이 있지 않는가하는 생각이 든다.그래서 여기서는 영웅소설 중에서도 우리나라 대표적인 영웅소설,《劉忠烈傳》이 왜 영웅소설의 유형에 속하는지, 특성은 무엇인지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劉忠烈傳》은 판각본?필사본?활자본이 모두 있으며 자료 상호간에는 내용상의 차이가 거의 없다. 이 작품은 작자와 창작 시기를 알 수 없는 국문소설이며, 영웅소설 또는 군담소설 유형의 전형적인 작품이다. 작자와 창작 시기가 분명하지 않지만 《劉忠烈傳》의 작자는 작품의 주제 및 문체가 상하층 모두에 수용될 수 있다는 점, 특히 문체에 있어서 평민적인 문체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한문어구 등을 남용한 흔적이 있다는 점을 들어 작자가 과거에 양반이었다가 서민화한 落班이거나 中人으로서 전문작가 급에 속했던 인물일 것이라는 견해가 제시된 바 있다. 창작 시기에 대해서는 17세기 말 내지 18세기 초로 추정한 견해가 있는가 하면 19세기 이후로 잡은 경우도 있다.)그렇다면 지금부터 《劉忠烈傳》이 왜 영웅소설의 유형에 속하는지, 작품의 특성은 무엇인지 알아보자. 그러기 위해 제일 먼저 줄거리를 파악한 후, ‘英雄의 一生’ 모형과 《劉忠烈傳》의 서사구조를 비교분석하여 영웅소설임을 밝히고, 《홍길동전》과 비교하여 《劉忠烈傳》만의 특성을 살펴보겠다.Ⅱ. 《劉忠烈傳》의 유형과 특성일반적으로 《劉忠烈傳》의 유형을 작품의 순차적 구조가 ‘영웅의 일생’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영웅소설, 작품 내용에서 군담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니 군담소설이라 한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작품의 성격을 포괄적으로 담기위해 영웅소설이라는 유형에 치중하여 살펴보겠다. 어떤 소설의 유형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처음에 줄거리와 서사구조를 알아야 한다. 따라서 차례대로 《劉忠烈傳》의 줄거리와 서사구조를 파악해보자.1. 《劉忠烈傳》의 줄거리 파악명나라 영종 때에 정언주부의 벼슬을 하고 있던 '유심'은 늦도록 자식이 없어 한탄하다가 남악 형산에 치성을 드리고 신이한 태몽을 꾼 뒤 아들을 낳아 이름을 충렬이라 짓고 키운다. 이때 조정의 신하들 중에 역심을 품은 정한담?최일귀 등이 가달의 침입에 대한 유심의 유화적 입장을 문제 삼아 정적인 유심을 모함하여 귀양 보내고, 유심의 집에 불을 질러 충렬 모자마저 살해하려 한다. 그러나 충렬은 천우신조로 정한담의 마수에서 벗어나 많은 고난을 겪다가 은퇴한 재상 강희주를 만나 사위가 된다. 강희주는 유심을 구하려고 상소를 올렸으나 정한담의 공격을 받아 귀양을 가게 되고, 강희주의 가족은 난을 피하여 모두 흩어진다. 충렬은 강 소저와 이별하고 백용사의 노승을 만나 무예를 배우며 때를 기다린다. 이 때 남적과 북적이 반기를 들고 명나라에 쳐들어오자 정한담은 자원 출전하여 남적에게 항복하고, 남적의 선봉장이 되어 천자를 공격한다. 정한담에게 여러 번 패한 천자가 항복하려 할 즈음, 충렬이 등장하여 남적의 선봉 정문걸을 죽이고 천자를 구출한다. 충렬은 단신으로 반란군을 쳐부수고 정한담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호왕에게 잡혀간 황후·태후·태자를 구출하며, 유배지에서 고생하던 아버지 유심과 장인 강희주를 구한다. 또한 이별하였던 어머니와 아내를 찾고, 정한담 일파를 물리친 뒤 높은 벼슬에 올라서 부귀영화를 누린다.이를 통해 《劉忠烈傳》은 충신과 간신의 대결을 기본적인 갈등 구조로 삼으면서 충신의 궁극적인 승리와 그 승리를 통한 부귀공명의 실현을 구가하고 있는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즉 전반부는 충신의 실세와 간신의 득세 그리고 충신 일가의 고난과 시련을 그리고 있다. 후반부는 간신의 반역과 충신의 입고, 이것을 계기로 간신에 대한 보복과 충신의 영달을 형상화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는 이 줄거리를 토대로 서사구조를 파악해보자.2. ‘英雄의 一生’ 모형)과 《劉忠烈傳》의 서사구조 파악‘英雄의 一生’ 모형을 통해 《劉忠烈傳》이 영웅소설의 유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英雄의 一生’ 모형은 한국의 고대서사문학과 고전소설을 자료로 하여 추출해 낸 모형이다. 이 모형은 행복을 의미하는 단락에서 시작되어, 행복을 의미하는 단락과 고난을 의미하는 단락이 반복적으로 교체되다가 최후에 행복이 크게 강조되면서 끝난다. 이것은 《劉忠烈傳》에서도 나타난다. 먼저 ‘英雄의 一生’ 모형을 살펴보자.①고귀한 血統을 지니고 태어났다. [출생]②비정상적으로 孕胎되었거나 출생했다. [신비한 태생]③범인과는 다른 탁원한 能力을 타고났다. [능력자]④어려서 棄兒가 되어 죽을 고비에 이르렀다. [위기1]⑤救出?養育者를 만나 죽을 고비에서 벗어났다. [극복1]⑥자라서 다시 危機에 부딪혔다. [위기2]⑦위기를 투쟁으로 극복해서 승리자가 되었다. [극복2]다음으로《劉忠烈傳》의 서사구조를 살펴보자.①유심부부가 늦도록 자식이 없어 근심하다가, 남악 형산 산신에게 빌어 충렬을 갖는다.[출생]②충렬은 천상, 선관의 하강이며 비범한 기상을 지니고 태어났다. [신비한 태생]③아버지는 간신 정한담을 규탄하다가 귀양 가고, 간신의 박해를 피해 도망치다가 도적 을 만나 충렬은 물에 던져지고 어머니는 도적에게 잡혀가게 되었다. [위기1-가족 이산]④물에 빠진 충렬은 남경 장수들에게 구출되고 강승상의 집에서 화를 피하고 강승상의 딸 강소저와 혼인한다. [극복1-구출자의 도움]⑤강승상도 정한담을 규탄하다가 귀양 가고 충렬은 강소저와 이별한다.[위기2-아내와 결연]⑥광덕산 백룡사에서 화를 피하고, 도승을 만나 무술을 익히고 무기를 얻고, 정한담과 외적이 일으킨 난 때문에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한다. [극복2-자신의 능력 발휘]⑦부모와 강소저를 다시 만나고 고귀한 지위에 올라 강소저와 함께 부귀를 누렸다.[헤어진 사람들과의 재회/부귀영화]《劉忠烈傳》의 서사구조는 ①주인공 충렬은 명나라 때의 벼슬을 하는 유심의 아들의 인물로 설정하여, ②신이한 태몽을 꾼 후 충렬을 가졌으며, ③유심의 失勢와 가족과의 헤어지며, ④충렬은 시련의 상황에서 구출자와 양육자를 통해 살고, 강소저와 혼인한다. ⑤또 다시 위기를 맞고 강소저와 이별한 후, ⑥도승을 만나 무술을 배우고 위기의 나라를 구한다. 마지막으로 ⑦이별했던 사람들을 모두 만나고 부귀를 누리는 것으로 끝난다.이러한 서사구조는 ‘英雄의 一生’과 견주어 볼 때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劉忠烈傳》이 영웅소설의 유형에 속함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구조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작품마다 다 다르다. 그렇다면 《劉忠烈傳》은 어떤 식으로 형상화 됐는지, 《홍길동전》과 비교하여 그 만의 특성을 살펴보자.3. 《홍길동전》과 비교하여 살펴보는《劉忠烈傳》의 특성허균이 지은 《홍길동전》 또한 많이 알려진 영웅소설 중의 한 작품이다. 《홍길동전》의 서사구조를 파악한 후, 《劉忠烈傳》과의 다른 점을 통해 특성을 살펴보겠다.《홍길동전》의 서사구조를 보자.①홍길동은 조선조 세종 때 서울에 사는 홍 판서의 시비 춘섬의 소생이다. [출생]②홍판서가 용꿈을 꾸어 길몽이기에 본부인을 가까이하려 하였으나 응하지 않아서 춘섬과 관계를 하여 길동을 낳았다. [신비한 태생]③홍길동은 어렸을 적부터 비범한 능력을 타고 났다. [능력자]④초란은 비범한 홍길동을 싫어하여 죽이려고 하여 집을 나간다. [위기1]⑤도적의 무리 활빈당의 두목이 되어 빈민을 구제한다. [극복1]⑥나라에서 홍길동을 도적이라 하여 잡으려고 하니 홍길동이 율도국으로 떠난다. [위기2]⑦율도국에서 이상국을 세우고 정치를 행한다. [극복2]여기서 《홍길동전》과 《劉忠烈傳》이 두드러지게 다른 점은 처음과 마지막, 즉 출생부분과 시련극복 이후의 모습이다. 첫 부분인 주인공의 탄생은 《홍길동전》의 경우 홍길동은 전임 판서 홍모가 용꿈을 꾸고 얻은 아들이나 천비의 몸에서 난 서자지만 《劉忠烈傳》에서는 이와 대조적으로 고귀한 혈통으로 충렬을 낳았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충렬이 성취한 위대한 과업은 영웅적 투쟁과 출세를 통해 이룩한 가문의 부흥과 왕권의 수호로 그려진다.시련극복 이후에 《홍길동전》의 작가는 현실보다는 이상세계를 택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조선의 땅이 아니라 율도국이라는 이상국이었으며 이것은 현실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다. 반면 《劉忠烈傳》의 경우 충렬은 단신으로 반란군을 쳐부수고 정한담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호왕에게 잡혀간 황후·태후·태자를 구출하며, 유배지에서 고생하던 아버지 유심과 장인 강희주를 구한다. 또한 이별하였던 어머니와 아내를 찾고, 정한담 일파를 물리친 뒤 높은 벼슬에 올라서 부귀영화를 누린다. 이를 통해 작가는 이상이 아닌 현실에서의 행복을 강조했음을 느낄 수 있다.또 다른 점은 사회적 통념에 따른 선?악의 대립이다. 작품에서 선?악의 개념은 작가가 긍정하는 것이 선이고 작가가 부정하는 것이 악으로 그려지는데 사회적 통념과 일치하는 경우와 상반되는 경우가 있다. 《홍길동전》의 경우 작자는 주인공의 반사회적 행위를 선으로 규정하고 이를 억압하는 중세적 질서를 악으로 규정하기에 사회적 통념과 상반된다. 반면 《劉忠烈傳》의 경우는 선과 악이 사회적 통념과 일치 한다. 따라서 충렬의 영웅적 투쟁과 출세를 통해 이룩한 가문의 부흥과 왕권의 수호는 충효라는 윤리적 주제로 이어진다.
박찬욱 감독의 1. 작품선정 이유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로 손꼽을 수 있는 영화이다. 고3 때, 친구들과 학원에서 처음 이 영화를 봤는데 19세 미만은 볼 수 없는 영화여서 그런가. 굉장히 잔인하고 선정적어서 그 당시 꽤 큰 충격을 받았다. 영화를 본 후 친구에게 “앞으로 말조심해야한다.” 라고 말했었던 기억이, 그리고 수능을 치고 학교에서 반 친구들과 봤는데 애들이 짓궂게 첫 장면을 따라 하고 했었는데 아직까지도 그 때가 생생하다. 처음 이 영화를 볼 때부터 나에게 잊지 못할 영화로 자리매김 하였다.또, 얼마 전 영상예술철학 수업에서 에 대해 기법적인 측면을 공부하였다. 늘 내용적인 측면이나 장면 장면을 보고 그 순간을 느끼는 것이 주된 영화보기라고 생각했던 것을 다른 차원으로도 볼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이 과제를 통해서를 조금 더 자세하게 분석함으로써 이 영화를 조금 더 깊게 알고자 한다. 특히 비평론 수업을 하면서 역사주의 비평에서도 전기비평, 원전비평에 대해 관심을 더 갖게 되었다. 작가의 전기가 작품에 영향을 주는 것, 그리고 창조는 모방에서 나타난다는 말에 대해 공감하는데 어느 작품이 어디에 영향을 받고 어디에 영향을 받았는지를 아는 것은 굉장히 흥미로웠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를 역사주의 비평을 위주로 심리주의 비평으로도 분석해 보겠다.2. 방법론 소개역사주의 비평은 문학이 역사의 산물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하여 19세기 자연과학에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뵈브와 테느에 이르러 본격화 되었으며 역사주의 비평의 종류에는 ①전기비평, ②언어비평(주석비평), ③장르비평, ④원전비평, ⑤원본비평이 있다.①전기비평은 작품과 연관된 작가의 전기(역사)를 비평한다. 작가의 전기는 내용과의 연관성과 형식과의 연관성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작품을 만든 작가의 전기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뵈브와 테느는 문학이 ‘그 나무에 그 열매’, ‘화석이 된 조개껍질 뒤에는 생물이 있고, 문서의 뒤에는 인간이 있다.’고 했다.②언어비평(주석비평)은 작품에 사용된 언어의 참뜻을 정확하게 밝히려는 비평이다. 왜냐면 같은 낱말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사용되는 시대?지역에 따라 그 의미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③장르비평은 문학 작품이 어떠한 문학 장르에 속하는가를 밝히는데 주력하는 비평이다.④원전비평은 다른 작품과의 영향 관계를 비교 즉, 문학작품의 기원과 발상을 캐고 앞뒤의 영향 관계를 밝혀내는 비평이다.⑤원본비평은 문학 비평가들이나 문학 연구자들이 믿고 쓸 수 있는 ‘올바른 텍스트가 어떤 것인가?’를 밝혀내는 비평이다. 왜냐하면 원작의 필사과정이나 출판과정 등에서 오류 혹은 의도적인 개작 등의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①, ③, ④, ⑤를 적용하여 분석하고자 한다.심리주의 비평은 심리학의 원칙과 이론을 작품에 적용한 비평이다. 특히 이 비평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 심리주의 비평의 종류에는 ㄱ. 작가심리, ㄴ. 작품심리, ㄷ. 독자심리 등이 있다.ㄱ. 작가심리에서 문학작품이란 그것을 만들어낸 창조자의 정신을 반영하거나 투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전제아래 작품을 연구 한다. 작가의 삶을 연구한다는 점에서 역사주의 비평의 한 갈래인 전기비평과 비슷한 데가 있다. 그러나 작가의 삶에 관심을 가지되 심리주의 비평가들은 역사적 맥락보다는 오히려 심리적인 맥락에 더 큰 주의를 기울인다는 점에서 역사주의 비평의 전기비평과 다르다.ㄴ. 작품심리에서 문학작품 그 자체를 연구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작품에 나타난 작중인물들의 성격을 분석하고 그 성격에 따라서 그들을 유형별로 나눈다.ㄷ. 독자심리는 독자가 어떻게 작품에 반응을 보이는가에 깊은 관심을 갖는다.)여기서는 를 ㄱ. ㄴ. ㄷ에 적용하여 분석하겠다.3. 작품 분석3-1. 역사주의 비평의 방법으로 분석3-1-1의 감독 박찬욱의 전기비평박찬욱 감독이 평소 가지고 있는 세계관을 살펴보면 비교적 부유한 집안에서 순탄하게 자랐지만 본인은 늘 투덜거리는 불평분자로 살아왔기 때문에 어떤 사안을 봐도 건전한 시각으로는 잘 보지 않는 버릇이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민노당 당원으로 빈부격차나 계급갈등에 대한관심이 높고 미군 장갑차에 치여 사망한 여중생 사건의 미군 무죄평결에 항의해 삭발을 하기도 했을 정도로 자신의 정치적 의식을 표출하기도 하였다. 그는 사회가 정해놓은 관습이나 질서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으며, 이 사회가 금기시하는 것들로부터 억압당하기를 거부하는 자유로움을 추구하고 있다. 그는 92년 데뷔했지만 실패한 이후 영화평론가로 활동했다. 그는 영화평을 쓰는 동안 블록버스터에서 홍콩영화, B급영화, 장르영화, 컬트영화 등 수업이 많은 영화를 보면서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 영화를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었다. 그는 진정한 영화광은 영하를 많이 봐서 어떤 장면이든 가능하다는 생각을 갖고 틀에 박힌 것에서 자유로워지려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많은 영화를 보면서 그의 생각은 자유로워졌고 금기시하는 소재에 대해서도 자유로워진 것이다. )박찬욱 감독은 작가영화, 장르영화, B급영화), 컬트영화) 등 다양한 장르에 또는 어떤 장르에도 구애 받지 않으려고 하는 감독이다. 1963년 8월 서울에서 태어나 천주교 집안에서 성장하고, 영화를 좋아하는 어머니의 손길을 받으며 자랐다. 그는 82년 서강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한 뒤 '서강대 커뮤니티 센터'를 통해 영화에 대한 지식을 쌓았다. 처음으로 직접 시나리오를 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