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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칼 바르트 로마서 강해2판(1922)
    칼 바르트 로마서 강해2판(1922)
    도서명 : 『로마서 (제2판.1922)』 복있는 사람. 2021.지은이 : 칼 바르트 // 코르넬리스 판 더르 코이. 카드야 톨스타야 편집 // 손성현 옮김.(선입견)긴 연휴동안에 지리산을 갈까? 마음잡고 책을 읽을까 하다가 경험상 명절에도 명산은 사람이 많을 듯하여 다음에 가기로 하고 책읽기를 선택했다. 매일 5분 설교를 녹음하여 성도들과 그리고 여러 곳에 여러 사람들에게 보내는데 6년여 동안을 해 오다 보니 신약이 다 끝났다. 앞으로 설교를 준비하면서 좀 더 힘을 얻고 마음을 다지고자 칼 바르트의 『로마서 2판』을 읽기로 했다. 분량에서는 그렇게 부담이 되지 않았지만, 바르트의 방대한 신학의 스펙트럼과 내공을 잘 이해할 수 있을까?하는 염려와 선입견이 가장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이전에 바르트의 교의학 1-1과 1-2의 말씀에 관한 교의는 수박 겉핥기식으로 부분부분 보기는 했었고 단행본을 몇 권 읽기는 했지만 그래도 로마서 강해 2판은 20세기 고전의 반열이라는 명성을 얻는다하여 무겁게 다가왔다. 로마서 1판은 읽어 보지 못했고, 로마서 2판은 단권이라서 한번 치열하게 읽어 보려고 읽기를 시작했다. 독서 후를 쓰면서 내용의 요약이라든지 바르트 사상의 요약보다는 바르트와 로마서 2판을 읽으면서 가지고 있었던 생각들과 질문을 중심으로 정리해 보고자 한다. 개인적 관심을 가지고 집요하게 읽은 부분과 읽을 부분은 궁금증을 갖고 계속 공부하기를 다짐해 본다.(로마서 2판을 쓰게 된 배경)먼저 칼 바르트하면 아직도 자유주의 신학자라고 일컫는 분들이 종종 있음을 보게 된다. 아마 그런 분은 바르트의 책을 전혀 안 읽었던지, 바르트가 어떤 분이라는 것을 그저 20세기 초 자유주의 신학자들과 도매급으로 싸잡아 이야기하는 말씀들을 듣고 그렇게 표현하지 않았을까 싶다. 바르트가 처음에 자유주의 신학자 밑에서 공부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한때 종교 사회주의에 빠졌었던 것도 사실이다. 바르트는 하르낙, 헤르만, 리츨 같은 당대 최고의 걸출한 자유주의 신학자들 밑에서 제자로서 신는지 낙엽이 지고 계절이 바뀌는 것을 못 느낄 정도로 자유주의 신학에 심취하여 열정적으로 공부했던 바르트였다. 그런데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그의 스승인 하르낙과 헤르만이 빌헬름의 전쟁 정책에 동조하는 전쟁 옹호론자가 되자 바르트는 자유주의에 대한 절망감과 함께 스승들에 대한 실망감을 갖게 된다. 그러면서 바르트는 로마서와 함께 3년여 시간을 씨름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자신의 표현에 의하면 “한번도 읽어보지 못한 사람처럼 로마서를 읽고 읽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로마서 강해 1판이 1918년 12월에 2년여 걸쳐 완성되어 인쇄가 되었다. 그런 뒤에 고가르텐과의 만남을 통해서 초판에서의 영향과 오해등 들을 보완해야 할 필요성이 갖고 바르트로 하여금 근본적인 개정의 작업을 하게 되었다. 바르트는 다시 로마서를 쓰게 되는데, 1판은 뭔가 안개에 쌓여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면 다시 쓰게 되면 선명하게 드러난 새로운 것을 써야 겠다는 마음을 다지게 된다. 그리고 로마서 2판을 1921년 성탄절 직전에 약11개월 동안 쓰는데 투르나이젠에게 말하기를 “술취한 사람처럼” 원고를 써 내려갔다고 한다. 1922년에 인쇄를 하게 된다. 로마서 2판을 쓰는 중간중간 바르트는 투르나이젠과 내용에 대해서 아주 자주 서신을 교환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처음 1판이 나왔을 때도 당시의 1차대전에 대한 바르트의 지적이 옳았음이 독일 전역에서 반응이 나왔는데, 로마서 2판이 나왔을 때는 칼 아담(가톨릭 신학자)이 말한 것처럼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놀이터에 던져진 폭탄”이라는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고 바르트의 명성이 타오르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처음에 각인된 자유주의 사상이 한순간에 컴퓨터를 포맷하듯이 지워지는 것은 쉽지는 않았을 것인데 바르트는 그런 경험을 하게 된다. 스승과 신학 논쟁을 거치면서 완전하고 철저하게 자유주의에서 돌이키고 새로운 길을 걷게 된다. 그가 걷는 새로운 길을 이른바 “신정통주의” 신학이라 일컫게 된다. 신정통주의 신학은 간단하게 변증법적 신학, 하나님 말씀의 신학, 하나님하나님 나라의 신학 등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로마서 2판을 읽으면서 질문을 던지면서 읽었다.1. 대체 당시의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사상이 어느 정도였기에 바르트의 로마서 강해 2판이 그들의 사상을 향한 “폭탄”이라는 표현을 썼을까?2. 로마서 2판을 한 단어, 한 단어 정말 꼼꼼하게 읽으면서 바르트에게서 자유주의적 신학의 사고(思考)를 하나도 발견할 수 없다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나의 한계에서) 어떻게 자유주의 신학에 사로잡혔던 한 사람이 불과 몇 년 만에 철저한 정통주의 사고를 가진 신학자로 이렇게 변할 수 있었을까? 은혜아니면 불가한 일이라 본다.3. 그의 스위스 친구이자 동역자인 투르나이젠과의 깊은 영적 관계와 그 속에서 나온 결과물이 로마서 2판인데 투르나이젠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로마서 2판은 투르나이젠과 수없이 주고받은 편지를 통해서 둘 사이는 서로의 일상의 생각, 성경에 대한 이해, 세계 정세에 대한 담론, 당대의 교회의 상황과 신학의 흐름에 대하여 서로를 세워주고 용기를 돋우어주는 백아절현(伯牙絶絃), 관포지교(管鮑之交)와 같은 관계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깊은 관계였다. 투르나이젠은 목사로서 목회상담쪽에 관심을 갖고 오랫동안 현직의 목사였고(독일말로 ‘목사는 성도들의 영혼을 돌보는 사람’이다). 바르트는 자펜빌에서 짧은 목회경력은 있었지만 신학에 깊이 매료된 그런 상황에서 둘의 관계는 서로가 서로를 보완해 주는 협력관계요, 동역관계요, 아주 절친한 신앙의 친구였다.(자펜빌에서의 목회경력이 바르트에게 로마서에서 고민하게 하는 큰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과 소리를 알아주는 지심지음(知心知音)의 관계였다. 연애편지를 주고 받듯이 글을 써서 투르나이젠에게 보내면 다시 교정하고 첨부하여 바르트에게 보내주고 바르트는 그대로 혹은 일부 첨부하여 수정하곤 했다. 살아가는 일에 아주 사소한 일에도 서로에게 힘이 되는 글들을 주고 받았다. 그래서 바르트는 로마서 2판이 나오는데 투르나이젠의 “헌신적인 노력은 숨겨진 기념인적으로 매해 반드시 설교하는 똑같은 본문이 있다. 로마서 8장의 말씀과 요한계시록 3장의 빌라델비아교회에 대한 말씀이다. 다이아몬드의 가장 빛나는 부분처럼 성경에서 가장 빛나는 말씀이 로마서 8장이라기에 성도들의 신앙이 더욱 빛나기를 소망하며 더욱 그러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루터는 로마서 8장의 말씀을 금빛 글씨로 적어야 마땅하다고까지 했다.(627) 빌라델비아교회처럼 책망이 없이 칭찬만 있는 그런 교회, 그런 성도들을 사모하며 내용은 해마다 다르지만 본문은 해마다 꼭 같은 본문으로 설교한다.첫째로 가진 관심은 칼 바르트는 로마서 8장을 어떻게 바라 보았을까?이다 바르트는 로마서 8장의 제목을 “영”이라고 명했다. 그리고 그 “영”을 “창조되지 않은 빛”으로 표현했다. 8장을 겉으로 읽어 보면 여느 강해서 보다도 더 평이한 내용처럼 보인다. 그러나 다시 읽다 보면 역시 명불허전(名不虛傳)이다. 바르트의 로마서 8장은 글자로만 한번 읽어서는 바르트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음미하면서 읽다 보면 그 깊이에 또한 구절구절에 흐르는 삼위 성령 하나님을 향한 바르트의 마음을 알 수 있을듯하다. 아마도 불룸하르트가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보면서(658) 바르트는 지금 여기서 말씀하시고 역사하시는 현존하시는 하나님의 영의 역사를 깊이 간직하고 경험하게 되었을듯 싶다. 하나님께서 실재하시고 살아계심에 관한 소식을 증언하는 계시의 흔적(영의 역사하심)이 날이 밝아오고 있다는 징표라고 말한다.(688) 택하신 자들에게 성령께서 실재하시어 밝아오는 여명의 역사를 밝히심을 말하는 것이다.둘째로 가진 관심은 바르트는 로마서 9장-11장을 어떤 관점에서 풀어가고 있을까? 였다. 바르트는 로마서 ‘9장을 교회의 곤경’, ‘10장을 교회의 죄책’, ‘11장을 교회의 소망’으로 제목을 달고 있다. 나는 그동안 로마서 9-11장은 이스라엘의 구원을 향하신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라는 주제로 로마서를 해석하고 설교를 하곤 했다. 물론 바르트도 로마서 12-15장에 가신다. 그러나 그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를 언제나 악한 자들이 있는 곳으로 인도하신다. 그분은 이스라엘의 그리스도, 교회의 그리스도다~~ 이방인의 그리스도이시다”(1029)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스라엘을 교회로 “대체”했다거나 교회 시대 이후에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에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심의 무용론을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로마서 2판 전체에서 “대체”라는 단어는 딱 한번 나오는데(588, 세어 보았을 때 한번 밖에 발견하지 못함) 그 단어의 쓰임 역시 다른 의미이다. 신학에서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체했다는 대체신학이 언급되는데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이기에 관심을 갖고 읽었다.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체했다면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의 새 하늘과 새 땅의 새 예루살렘의 성전 동서남북에 이스라엘 열두지파 이름이 나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나님의 선택은 영원하심을 말한다. 그것이 또한 로마서 8장의 큰 사랑의 주제이기도 하다.로마서 9-11장을 교회 중심으로 해석하는 바르트의 관점이 아주 독특하게 다가왔다. 오늘날 교회들을 언급하면서 약속을 붙잡고 인내하는 야곱의 교회와는 달리 에서의 교회, 이세벨 교회, 바로 교회, 사울 교회들이 되어서 세상의 영광에 취하여 약속을 상실하고 세상 것을 잡으려는 어리석음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비록 고난도 있고, 요셉의 환란같은(암 6:6) 어려움도 있고, 그 보다 더한 십자가가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앞에서는 주어진 약속을 붙잡고 그것이 성취될때까지 인내하는 야곱의 교회가 진짜 교회라는 것이다. 야곱의 교회는 약속을 붙잡고 인내하며 끝까지 택함 받음의 확신을 빼앗기지 않는다는 것이다.(758,761,781...) 이 부분에 있어서는 “이스라엘의 그리스도”(1029)라는 바르트의 표현으로서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주권과 구원에 대한 언급이 빈약했음을 위로 삼고자 한다. 로마서 9-11장에서 바르트는 이중예정론을 언급한다. 이에 대해서는 독서 후에서 언급하자면 복잡할 듯하여 생략하고 개인적으로 후기 한다.
    독후감/창작| 2024.10.04| 3페이지| 3,000원| 조회(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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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서애 유성룡 징비록 서평
    서애 유성룡 징비록 서평
    당태종 이세민은 그의 아주 아주 가까운 신하 위징이 죽자 친히 영정앞에 가서 통곡으로 조문하며 그의 가족에게 식읍 900호를 하사했다. 그리고 신하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동으로써 거울을 삼으면 의관을 단정하게 할 수 있고, 옛날로써 거울을 삼으면 흥망성쇠의 갈림을 알 것이며, 사람으로써 거울을 삼으면 득실을 명확하게 아는 것이다. 짐은 이 세 개의 거울을 가지고 과실을 방비하였다. 지금 위징이 죽었으니 마침내 거울 하나를 잃은 것이다”라며 안타까워 했다.(정관정요, 오긍 제2장) 동과 역사와 사람이 과거를 직시하며 현실과 미래를 볼 수 있는 거울임을 교훈하고 있다.
    독후감/창작| 2023.09.12| 1페이지| 2,500원| 조회(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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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죽음의 신학
    죽음의 신학
    정교회에서 나온 출판물은 개신교 출판물보다 수에 있어서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그 수가 미미하다. 우리의 현실이 개신교 문화가 월등하기에 그런 이유도 있을 것이다. 몇 안되는 정교회 서적이지만 나름 깊다는 표현을 하고 싶다. 개신교의 일반적인 신앙의 모습에 비춰지는 신학의 의미도 가톨릭에 비하면 수용, 반수용으로 용납할만한 내용이다. 이 책의 표현 그대로 표기하며 일부 요약의 형태로 정교회의 “죽음”에 대한 인식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동서방이 나뉘이기 전에 동방에 가까운 오리게네스와 서방에 가까운 터툴리아누스의 생각도 특이하게 접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갑바도기아 교부등 다마스커스의 성요한에 대한 내용도 개신교에 익숙하지는 않지만 깊은 생각을 갖게 한다. 처음 듣는 초기 기독교 지도자들의 이름과 그들의 주장이 나올 때는 개신교 역사에 왜 저런 분들이 언급되지 않았을까 생각도 들었다. 동서방 교회가 나뉘이기 전까지 교회 지도자들은 어느 면에서 큰 틀에서는 신학의 한줄기를 타고 내려왔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각자의 신학이 있었지만, 교회적으로 크게 논쟁이 될만한 것은 이미 7차례의 초대교회 공의회들을 통하여 정리되고 그에 순응하고 그리스도의 영광과 교회의 영광을 향한 한 길로 걷다가 안타깝게 1054년에 양진영이 삼위일체의 논쟁으로 나뉘어서 오늘에 이르게 됨을 보게 된다. 저자 바실리아디스에 대한 소개는 “저명한 정교회 신학자”로만 표현된다. 저자는 책에서 6가지의 질문을 제시하며 교부들과 교회사의 영향력있는 인물들의 가르침을 통하여 정교회가 갖는 “죽음” 대한 생각을 하게 한다. 이 글에서는 6가지 주제중에서 종말론만 빼고 나머지 5가지 질문들을 중심으로 정교회의 죽음에 대한 신학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1. 죽음이 어떻게 세상에 유입되었는가?인간의 몸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가치와 복잡하고 조화로운 최고의 미를 가진 가장 완전한 물질적 창조물일 뿐만 아니라 영혼이 거주할 수 있는 적합한 거처이기도 하다.(34)
    독후감/창작| 2023.09.12| 5페이지| 3,500원| 조회(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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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세윤, 서평, 바른신앙을 위한 질문들
    ‘바른신앙을 위한 질문들’을 읽고(저자 김세윤)1. 내용 요약1-1. 한번 구원받은 사람이라도 그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나요?성경은 두 가지를 다 가르치고 있다. 하나는 신실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끝까지 지켜 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또한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에 등을 돌리고 계속 사단의 종노릇을 하면서 타락의 길, 곧 거짓과 불의 등 악을 행하는 길을 가면 되돌아올 수 없는 낭떠러지에 떨어질 수 있다고 엄중하게 경고하고 있다.1-2. 한국 그리스도인은 ‘복’을 매우 좋아합니다. 예수 믿으면 복을 받는다는 게 문제가 있나요?‘건강과 부의 복음’을 선포하는 자들의 논리대로 한다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죽음에 이르기까지 충성한 바울이 하나님의 복을 제일 많이 받아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더 오래 건강하고 풍요롭게 살았어야 할 것 아닌가?1-3. 맘몬주의 영성과 신앙의 미신화를 어떻게 경계해야 합니까?오늘날 교회에 만연한 ‘번영신학’과 ‘상급신학’이 바로 맘몬 우상숭배의 표현들이다. 복음이 맘몬의 복음으로 변질됐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진정으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 사람은,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 ‘아빠’의 은혜를 믿고, 자신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만 받되, 재물을 많이 쌓아 두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은사와 직업과 형편에 따라 이웃을 섬기고 도와야 한다.1-4. 몇몇 교회나 사역자들은 방언이나 초자연적이고 신비로운 체험을 강조합니다. 이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통치에 순종하며 살아가려면 성령의 도움을 구해야 한다. 진정한 성령 역사의 기준은 ‘예수가 주시다’는 고백을 드러내는 것, 즉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에 의지하고 순종하게 하여 의의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이 나타나는가, 아닌가에 있다.1-5. 한때 봉은사에서 땅밟기를 하던 청년들 이야기로 시끄러웠습니다. 기독인의 땅 밟기, 어떻게 봐야 하나요? 진정한 의미의 영적 전쟁에 대해서도 알고 싶습니다.한국에서 ‘영적전쟁’이라는 이름으로 ‘땅밟기 선교’를 행하는데, 그것은 진정한 율법을 무시하며 그리스도인들의 근본적 자유를 선포한다. 음주문제는 이중사랑계명에 비추어 판단해야 한다.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을 해칠 위험이 많은 과도한 음주는 해서는 안되지만, 건강에 해가 되지 않고 도리어 도움이 되는 정도의 소량의 음주는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속한 것이다.1-9. 십일조를 꼭 출석하는 교회에 해야 하나요? 어려운 사람이나 어려운 다른 교회를 도와주면 안 되나요? 성경적인 십일조를 무엇인가요?구약의 십일조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중 땅을 배분받지 못하고 성전에서 섬기는 일을 담당하게 된 레위 지파를 위해, 그들의 성전 섬김과 그들의 생계를 위해, 땅을 배분받은 나머지 11자파가 자신들의 소출의 10분의 1을 바치는 한 법이다. 성전 섬김이 없는 신약시대에는 그 제도가 불필요하게 되었다. 십일조도 이중사랑계명에 비추어 이해하고 행해야 한다. 내가 출석하는 교회가 넉넉하면, 십일조의 일부를 아직 재정적 어려움을 겪는 하나님의 다른 교회에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1-10. 동성애자에 대한 성경적 시각은 무엇이며,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나요?성경은 동성애를 타락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창조 질서가 왜곡된 하나의 현상이라고 설명하며, 죄로 규정한다. 성경적 관점을 존중하는 교회는 그들을 왜곡된 창조질서의 희생자들로 보고 안쓰럽게 생각해야지 차별하거나 적대해서는 안 된다. 한편, 동성애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성경이 명백히 동성애적 행위를 죄로 규정하며 금하니, 그런 성향과 충동을 억제하고 그 행위는 삼가야 한다. 이 문제도 이중사랑계명의 관점에서 판단해야 한다.1-11.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처럼 주님을 몰랐지만 착하고 선한 일을 많이 하고 모범적으로 산 불신자도 죽어서 지옥에 가나요?이순신 장군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의 구원 문제는 원칙적으로 일반계시, 일반은총의 범주 안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런 분들이 각자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자연과 역사의 과정을 통해서 주시는 계시에, 자신의 양심에 새겨 주시는 참됨, 습니다. 바울의 ‘정치신학’을 통해 바라본 기독교인의 정치 참여, 현실 참여를 평해 주시겠습니까?바울의 정치신학은 아주 변증법적이다. 바울은 로마제국이 사단이 통치의 매체가 되어 민족들을 무력으로 정복하고 경제적으로 수탈하고 압제하는 사악함, 문화적인 타락, 황제숭배 등을 조장함에 대해선 분명 비판적이었다. 바울이 로마제국에 대해 변증법적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과 더불어, 사단의 죄와 죽음의 통치를 보다 근본적인 문제로 보았으며, 그의 종말론 그리고 당시 교회가 정치적 관점에서 볼 때 무의미할 정도로 미미한 새싹에 불과했다는 사실 등을 꼽을 수 있겠다.2-4. 기독교는 현재 세계적으로 종교다원주의라는 이슈에 직면하고 있는데요, 이에 대해 어떻게 보아야 하나요?성경적 관점에서 보면 이교도에도 한 하나님, 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일반계시와 일반은총에 힘입어 그런 요소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런데 성경은 초월하여 무한하시기에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가 실제로 그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이루어졌다는 ‘복음’을 선포하고 있다. 예수의 가르침을 제대로 받은 그리스도인들이라면 타 종교인들을 존중하고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적 관점에서 다른 종교들 안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일반계시와 일반은총의 반영을 선의로 존중하면서 동시에 인간의 자기주장하려는 의지에 의해 그것이 왜곡되는 현상들도 직시하고, 자신들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비슷하게 왜곡하지 않도록 노력하여야 한다.2-5. 〈유다복음서〉에 대한 기사와 〈다빈치코드〉 출판으로 역사적 예수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역사적 예수의 진실과 거짓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예수에 대한 왜곡은 항상 일어난다. 〈유다복음서〉의 경우 후대에 그런 문서를 만들어 낸 이단분파도 존재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즉 교회사적 지식을 조금 넓혀 주는 의미만 있을뿐이지 역사적 예수에 대한 이해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빈치코드〉는 무슨 역사적 진실을 전달하려는못하고, 그들의 삶에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들을 드러내지 못하며,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의 의와 화평을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보편적인 문제이다,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 하나님을 모욕하게 하는 슬픈 현실을 우리 교회가 맞고 있는 것이다.3-3. 교회가 특히 목회자가 성경의 원칙을 상기하고 가르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면, 적용은 모든 성도가 삶의 현장에서 씨름하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질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목회자가 설교를 통해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것은 좀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요?한 교회를 맡은 목사가 설교에서 현실 정치에 대해 세세하게 평론하고 교인들에게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주입시키려 하거나, 아예 목회하면서 동시에 정치가로 정치 현장에 뛰어드는 것은 옳지 않다. 목회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하나님의 말씀의 관점에서 위정자가 복음에 합당하게 정치하면 그 길로 가도록 뒷받침하고, 거기에 위배되는 정치를 하면 “당신은 지금 하나님의 통치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에 어긋나는 정치를 하고 있다”라고 지적할수 있어야 한다. 목사들에게는 최소한 자신들의 교회 교인들이 복음에 합당하게 생각하고 정치에 참여하도록, 그리고 장로들이나 집사들이 불의한 정치가, 고관, 판검사가 아니라, 의로운 정치가, 고관, 판검사가 되도록 설교하고 가르칠 책임이 있다.3-4. 오늘날 많은 목회자들이 구약의 제사장과 목회자 직분이 동일하다고 이야기 하는데요, 구약시대의 제사장과 신약시대의 목사의 관계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나는 이것을 우리 한국에서 나타나는 ‘개신교의 중세 가톨릭교회로의 회귀 현상들’중의 하나라고 본다. 목사들이 구약의 제사장직으로부터 자기 이해를 도출하는 것은 신학적으로 옳지 않다. 목사들은 바울의 언어로 얘기하자면 그리스도가 완성한 제사와 열매인 화해의 복음의 증거자다. 그렇기에 베드로전서 2장 9절은 그리스도의 교회가 온 세상에 하나님의 은혜의 전달자임을 염두에 두고 출애굽기 19장 5절을 인용하여 교회 공동번영을 함께 누리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둘째는 신약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용하는 여러 어휘들이 로마 황제 숭배의 어휘들과 겹친다는 것이다. 바울은 로마제국에 대해 변증법적인 태도를 취한다. 동시에 바울은 로마제국의 상대적 장점들을 인정한다.3-7. 한국 교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가게에 흐르는 저주를 끊으라’는 식의 축귀와 병 고치는 치유사역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가계저주론’은 명백히 반성경적, 반복음적인 자기 책임회피의 신학이라고 볼 수 있는 이단이다. 사실 예수께서 가장 역점을 두고 하신 치유는 죄인들을 회복시키는 것, 즉 그들을 죄와 죽음으로 통치하는 사단의 나라에서 불러내어 의와 생명으로 통치하는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 창조주 하나님의 생명을 얻게 하는 일이었다. 20세기 초 오순절 성령 은사 운동이 비성경적으로 불건전하게 전개되자, 프린스턴신학교의 탁월한 신학자 벤저민 워필드는 (가짜이적들)이라는 책을 써서 축귀와 육신의 병고 제거 같은 치유 은사들은 사도시대로 끝났다고 주장하였다. 교회는 오직 하나님 말씀 선포로만 성장하고 선교하게 하셨다는 것이다.4-1. 그리스도인으로서 고난과 신앙의 관계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성경이 말하는 고난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성경 전체에 나타나고 특히 사도 바울이 잘 밝힌 성경적 가르침에 의하면, 인간의 고난은 그 기원이 아담과 연대해 있는 우리 인류의 죄로 말미암은 것이다. 고난이란 결국은 인간이 하나님과 분리되어 자신의 한계성 속에 갇혀 존재하기 때문에, 즉 그 한계성에서 오는 결핍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결국 모든 고난, 즉 개인적인 고난이든 인간관계 속에서의 고난이든 자연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고난이든 모든 고난은 궁극적으로 죄로 인해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가 고난의 ‘교육적 의미’와 ‘구속적 의미’를 깨달을 때 우리는 우리의 고난을 좀 더 잘 견디며, 고난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원망하기보다는 도리어 더 굳게 믿고 종말의 구원의 않다.
    독후감/창작| 2020.06.07| 7페이지| 3,500원| 조회(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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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행정 독서감상문 평가A+최고예요
    제목 : 『박영철 저 - 유기적 교회행정』을 1,4,7,8,부록을 읽고(본문 요약)제1장 교회행정의 의미교인들의 영적, 물리적 힘을 교회의 목적과 목표달성을 위해 집중시키는 것이 교회행정의 중요한 과제이다. 이러한 일을 효과적으로 감당할 수 있게 하는 교회가 건강한 몸으로서의 교회이다. 넓은 의미에서 볼 때 교회행정이란 이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취하는 모든 조처를 말한다. 성서가 말하는 교회는 창세 전부터 하나님께서 그 마음속에 품고 계획하신 절대적 걸작품이라는 점에서 교회는 반드시 그 본질과 중요성의 좌표가 바르게 찍혀야 한다.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는 일은 전적으로 주님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건강한 교회 속에 자신이 거하시기 위해, 그 몸의 머리로서 하나의 인격체로 세우기 위해 성령을 보내셨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행정을 은사로 주셨다.교회행정이란 교회를 섬기는 것, 즉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을 섬기는 것으로 정의될 수 있으며 이는 주님께서 말씀하신바 “섬기는 종” 개념과도 맥을 같이 한다(막 10:44-45). 린그랜(Alvin J. Lindgren)에 의하면 교회행정이란 “교회의 목적과 목표를 발견하고 그것들을 명확하게 하며 성취하기 위하여 응집력 있고 포괄적인 방법으로 교회를 인도해 나가는 과업이다”라고 목회자의 리더쉽 이해를 중심으로 정의했다. 어떤 학자들은 행정을 영향력으로 정의하기도 한다. 교회행정에 대한 포괄적 정의는 교회의 본질을 이루어 교회의 사명과 목적을 성취할 수 있도록 취하는 모든 조치 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말로 바꾸면, 교회를 교회답게 만드는 조치들, 건강한 교회를 만들기 위해 취하는 모든 조치들로 정의할 수 있다.제4장 침례교 행정원리침례교는 전통적으로 회중정체에 입각한 침례교회 행정원리에 따라 교회를 운영해왔다. 회중민주주의를 그 정체로 표방하는 침례교회는 회중을 구성하고 있는 성도들을 사역자로 성숙시키기 위해 독특한 행정조직을 구성하고 전신자제사장직의 원리를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행정방식을 추구한다. 이를 가능하게 하기위해 침례교회는 온 회중이 참여하여 함께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 모이는 사무처리회, 교회의 사역 방향과 제반 사역활동을 기획과, 감독, 평가 등을 주도하는 교회협의회, 그리고 교회협의회의 요청에 의해 사무처리회에 상정할 구체적이고도 실제적인 실행 방안을 연구, 개발, 제시하는 교회위원회등이 침례교 행정의 특성을 드러내는 기본 조직 및 모임이다.침례교의 정치체제는 회중정체 체제인데, 이 목적은 회중이 그리스도의 주재권과 성령님의 인도하심 하에 스스로 통치하는 것에 있다. 회중정체 체제는 회중의 자치를 인정하고 회중에게 궁극적 결정권을 부여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모든 교인들로 하여금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케 하고 회중이 함께 의사를 결정짓게 하는 성서적 민주적 의사결정 방법을 소중히 여긴다. 전신자제사장직 교리를 강조할 때 회중중심 체제를 고수하게 된다.제7장 조직교회의 조직은 회중으로 하여금 제자를 삼을 수 있도록 하며, 회원들의 성장을 돕고, 그들의 삶에서 영적 능력을 개발할 수 있도록 의도된 구조라 할 수 있다. 교회의 본질과 사명으로부터 그 기초가 된다. 신약성서적 교회의 다섯 가지 특징적 기능은 교회의 5대 기능으로 불리는 예배, 선포, 교육, 사역, 교제이다. 그리고 여기에 전체를 이끌어가는 행정적 지도력을 덧붙일 수 있다. 복음적인 교회들의 일반적인 공통목적은 제자 삼는 일, 교인들의 성장과 성숙, 그리고 신자들의 삶 속에 영적 인식과 능력을 개발하는 것이다. 교회의 조직은 이러한 기본적인 목적을 성취하기에 가장 효율적이고 적합한 것이 되어야 한다.교회를 조직할 때는 언제든지 성서적인 근본적 원리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아무리 탁월한 조직이론이나 원리라 할지라도 그것이 성서적으로나 신학적으로 정당성을 결여한다면 결코 바람직한 교회의 조직을 만들 수 없다. 성서적 교회조직의 원리를 아래와 같이 말할 수 있다. 첫째, 교회는 그리스도의 지도력하에 있는 독립적 영적 몸이다. 둘째, 교회의 모든 회원은 동등한 권리와 특권을 가진다. 셋째, 각 교인들은 교회 사역에 의미있게 참여해야 한다. 넷째, 교회의 필요는 지속적이고 변한다. 다섯째, 교회의 사명은 개인과 전체의 관심사 모두를 포괄한다.신약성서적 교회를 추구하는 침례교회는 전통적으로 위에서 말한 성서적 원리에 근거하여 침례교의 독특한 사역을 위한 조직을 제시하고 그 조직을 통한 교회 사역에 집중해 왔다.제8장 교회임원과 사무처리회침례교회의 회중정체는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일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이를 위해 모든 교인들이 함께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도록 교회회원권의 규정, 교회협의회, 교회위원회 등의 조직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그것들 중 첫째는 교회회원권의 분명한 규정과 그에 따른 교회회원권 부여이다. 둘째, 교회의 사역이 다양화 되어 감에 따라 각 사역 영역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기획, 조정, 평가하는 통제기관의 필요성에 직면하게 된다. 셋째, 필요한 다양한 교회위원회들을 구성하는 일이다. 전신자제사장직을 주장하는 침례교회가 보다 많은 교인들의 적극적 참여로 교회를 운영해나가기 위해서는 사역을 필요로 하는 분야들에 있어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나 전문가들로 구성된 교회위원회들이 조직되어야 한다. 교회의 전반적인 행정을 원활하게 돌아가게 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임원들을 세운다. 교회는 교회임원으로 사무처리 회장, 서기, 재무, 회계, 이사 등을 둔다. 교회가 법적인 존재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방법을 취할 수 있다. 하나는 소속된 교단의 종교법인체인 유지재단에 가입교회가 되는 방식이며, 다른 하나는 교회 자체가 관할 세무서에 종교단체로 등록함으로써 비영리단체 사업자 납세 등록증을 발부받는 방식이다.회중민주주의 정체를 근간으로 하는 교회들의 경우 온 교회가 함께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확정짓는 일을 사무처리회를 통해 이룬다. 그런 점에서 사무처리회를 일컬어 “회중민주주의의 꽃”이라고들 말한다. 사무처리회 소집공고는 최소한 소집일로부터 한달 이상의 시간차가 있어야 한다. 사무처리회는 교회가 다루는 안건을 그 회의장에서 갑론을박하면서 완성시켜 결의하는 자리가 아니다. 사무처리회의를 얼마나 자주 가져야 하는가는 교회가 정하는데 달려 있다. 사무처리회에서 의결할 때 의장은 교인들의 생각을 묻는 것이 아니라 기도한 결과로 성령께서 주신 확신을 물어야 한다.부록 2. 침례교 교회협의회의 구성과 운영회중주의의 자가통치 개념은 방종이나 무질서함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교회에서 요구되는 점은 “모든 것을 품위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고전 14:40)는 바울의 권면에 순종하는 것이다. 회중정체는 그런 점에서 회중이 중심이 된 통치형태가 최대한 보장된 조직과 구조를 필요로 한다. 혹자는 회중정체의 꽃을 사무처리회라고 말들 한다. 그 꽃을 피우기 위해 누군가가 물을 주고 손질을 하고 가꾸는 것이 필요한데 이러한 기초적인 작업을 하는 조직이 교회협의회인 것이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한국의 침례교회들이 통치기구로서의 교회협의회라는 조직을 교회내에 두고 있지 않거나 또는 이에 상응하는 타교단의 유사 조직을 여과 없이 교회에 받아들여 활용하고 있는 현실이다.침례교회의 교회협의회에 해당하거나 상응하는 타 교단 교회들의 조직들로는 장로교회의 당회와 제직회, 침례교회들 속에서 종종 발견할수 있는 운영위원회, 그리고 영어권 침례교회들을 비롯한 일부 교회들이 활용하는 협의기구 등이 있다.교회협의회의 존재 목적 자체가 교회를 전반적인 관점에서 조정하고 통치하기 때문에 우선 구성원은 담임목사를 위시한 목회자들을 중심으로 교회의 각 교육기관과 각 위원회, 그리고 집사들을 총 망라한 것이어야 한다. 교회협의회의 경우 담임목사가 회장직을 맡는 것이 통상적이며 각 기관별 협의회의 경우 해당 기관의 담당 목회자가 회장이 되거나 또는 자문역할을 할 수 있다. 교회협의회는 교회 전체 사역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대하고도 결정적인 역할을 감당한다. 이러한 점에서 교회협의회는 교회에서 가장 비중있는 책임을 지니는 조직이다. 한국침례교회는 신약성서적 교회를 이루는 회중정체를 실현시켜 나갈 것인지 분명한 결단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역동적이고 영적인 사무처리회를 만들기 위해 교회협의회를 통해 사전에 회의를 위한 철저한 준비를 해야 한다.부록 3. 침례교 교회위원회의 조직과 운영침례교회는 모든 회중들이 교회의 중요사안을 직접 참여하여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머리의 뜻을 분변하며 함께 결정하는 회중주의를 그 행정의 기본원칙으로 삼고 교회생활을 해 나간다. 따라서 침례교회가 침례교회다워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신정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 회중정체를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침례교회가 일반적으로 그리고 전통적으로 가지는 조직은 교회협의회와 교회위원회이다. 교회협의회는 목회자를 비롯하여 교회의 각 기관장들과 집사장으로 구성되며 그 기능은 교회의 주요사업들을 기획, 평가, 조정하는 것이다. 교회위원회는 특정 사안이나 사업에 대하여 전문가들로 구성된 일종의 연구조직으로서의 성격을 지닌다. 침례교회의 회중민주주의를 가능케 해주는 교회 조직 중의 하나가 교회위원회이다. 교회위원회의 원활한 활동과 운영은 회중민주주의를 실현시키는데 있어서 결정적 역할을 한다. 교회위원회의 일차적 목적은 그 자체가 무언가를 실행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무엇인가를 결정하고 행할 수 있도록 실제적인 방법들을 연구하고 제시하는데 있음을 분명하게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교회위원회의 적절한 기능수행은 그것을 통해 건강한 교회로 성장하는 결정적 기초를 다지며 건강한 목회사역의 필수적 조직이 아닐 수 없다. 교회위원회의 근본 존재 목적은 목회 사역에 있어서 교회를 대표하여 어떤 일을 수행하기보다는 회중을 돕고 보조하고 섬기는 일을 위함이다. 각 교회위원회의 구성은 교회가 성장해가면서 특정 분야의 위원회 설치 필요가 생겨남에 따라 점차적으로 구성해 가는 것이 바람직하며 위원회의 숫자나 그 구성원의 숫자 역시 점차적으로 필요한 만큼 늘려가는 것이 순리이다.
    독후감/창작| 2019.12.15| 4페이지| 3,000원| 조회(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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