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 말, 대한 제국에게 또 다른 방안은 없었던 것인가.어렸을 때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아 세계사, 국사에 관련된 그림책과 동화책을 읽고 자랐던 나에게는, 초등학교에서 정리된 국사를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끊임없이 들었던 의문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 왜 우리나라는, 세계 여타 식민지 국가들과는 다르게(전쟁에 패배하여 속국이 되었던 사례 등) 이렇게나 ‘별탈없이’ 일본에 병합되고 만 것일까- 라는 것이었다. 물론 한일합방 전후로 빈번히 일어났던 대규모의 의병운동이나 반일 세력의 활동은 수없이 많았지만, 민간적 차원이 아닌 국가적 차원에서 볼 때 한-일 합방은 세계 그 어느 국가들간의 병합이나 식민지화의 과정보다는 이해할 수 없는 점이 많았다. 시간이 흐르고 근현대사를 좀 더 집중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서 한일합방은 1995년 참의원 본회의에서 일본의 무라야마 수상이 "일한 병합조약은 당시의 국제관계 등의 역사적 사정 가운데에서 국제법적으로 유효하게 체결되었다"라고 한 주장은 터무니없는 망발이며) 이 병합은 당시 조선의 국내적인 문제들과 국외적인 여건들이 결합되어 복합적으로 발생한 비극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국내적인 사항들은 일본의 간섭이나 열강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 존재했으며, 국외적인 사항들도 그저 ‘우리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었다’라고 하기엔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이에, 여기서는 구한 말 당시 대한제국이 반강제적인 한일합방을 체결하게 된 원인을 살펴보는 동시에 그 사항들의 극복방안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우선 첫째로, 당시의 국내적 정황들을 살펴보았을 때 군사력과 경제력의 열세, 그리고 사상적인 폐쇄성으로 인해 국가적 차원에서의 적극적 저항이 힘들었다는 것이다.‘일본 정부는 한국을 점령하는 정당성에 아무런 의문을 품지 않았다. 한국은 군사적 약체였고, 근대화에서는 동아시아중 가장 뒤쳐져 있었다.’)라는 문장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당시 조선의 군사력과 경제력은 일본의 강제적 요세에 의해 국가적 차원에서, 전쟁의 방식을 취한 저항은 거의 불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국제사회에서도 군사력과 경제력은 곧 국력을 뜻할 정도로 중요한 요소인데, 당시 국제사회는 1차 세계대전과 맞물려 군사력이 국력의 대부분을 차지한 시기였다. 그러나 1860년대, 서양 열강들과 일본이 조선의 개항을 요구할 때부터 한일 합방에 이르기까지 근 40여년의 시간동안 조선의 군사력은 이렇다 할 진전이 없었다. 1880년대, 조선정부는 신식 군인인 별기군을 창설하고 근대식 군사훈련을 실시했지만 그에 따라 구식 군인이 차별대우를 받게되어 군란이 발생하였을 뿐만 아니라(이는 일본군의 주둔을 최초로 허용하는 제물포조약의 체결로까지 이어지고 만다) 오히려 소수의 신식군인을 위해 전체적인 군인의 수를 감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거기다 1907년의 정미7조약으로 인해 그마저의 군대도 강제 해산되어 한일합방 당시 ‘국가를 지킬 수 있는’ 정비된 군사력은 거의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반대로 일본은 30여년의 치밀한 작전으로 군사력을 증강시켜 청일전쟁, 러일전쟁에서도 승리할만큼 엄청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고, 강제 해산 된 조선의 군인이 합류하여 전투력이 증강되었다고는 하나 산발적인 의병활동으로는 그에 대응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이러한 군사력의 취약점은 경제력에도 그 기반을 두는 것이었다. 당시 쇄국정책으로 개방이 지체되어 여타 국가들에 비해 경제구조가 취약했던 조선은 임오군란, 갑신정변 등으로 이미 일본에 많은 배상금을 지불한 상태였고 메가다의 화폐정리사업, 일본의 강제적인 차관도입 등으로 경제력을 거의 상실하고 말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선이 당시 새로운 무기를 구입하거나 군사력을 증강시킬 수 있는 여력은 남아있지 않았으며 이는 곧 일본에의 경제적인 예속과 군사적인 열세라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게다가 당시 조선 정부의 무분별한 국가 재정 낭비는 이러한 현상을 더욱 심화시켰다. 나쁜 재질로 돈을 주조해 3~4배에 이르는 이익을 챙겨 정부의 재정을 확대 빈번했고, 고종 또한 낭비벽이 심하여 국가 수입을 개혁에 쏟기보다 개인 유흥과 정치자금으로 흥청망청 써댔다.)국가 존립위기의 상황 속에서도 정치적 부패가 끊이지 않았다는 점 뿐만 아니라, 당시 조선사회의 사상적인 폐쇄성에서도 경제 성장이 원활하지 못했던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 실시와 그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냈던 유생들의 태도는 융통성이 결여된 조선사회의 보수적 사상을 그대로 나타낸다. 좋게말하면 ‘지조’라고도 표현되는 이 완고함은 국외 세력과의 교류를 ‘나라를 팔아넘기는’ 행위로 몰아감으로써 조선의 문호개방을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정도로까지 늦춰버렸으며 후에 조선의 자발적 의지가 아닌, 외국과의 반강제적 조약체결로 문호개방이 이루어짐으로써 그에 대한 반감만을 표출하는데 정신을 팔려 당시 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며 경제자체를 성장시키는 일에 집중하지 못했다. 1897년 대한제국이 수립되면서 상공업 진흥책을 실시하고 근대적 시설을 확충하는 등 근대적 경제발전을 이룩하려 했으나 이는 시기적으로 너무 늦은 것으로, ‘장사는 양반이 할 것이 못된다’ 는 보수적 성리학 사상 아래서 조선은 결국 경제력과 군사력을 발전시키지 못했다. 신분제가 갑오개혁으로 폐지되었다고는 하나 의병투쟁에서는 또 신분적인 사상의 폐쇄성으로 인해 양반 의병장이 평민 의병장의 목을 베는 사건도 일어났으니, 이 어찌 지탄해 마지않을 일이 아니겠는가. 즉, 전제군주제와 과거의 자재를 답습하고 성리학 유일체계라는 폐쇄적 구조를 유지하기보다는, 진작에 봉건적 악습을 타파하자는 주장을 받아들여 정부차원에서 상공업의 진흥을 고무하여 지주전호 중심제와 같은 경제발전의 장애물들을 해결해 나갔어야 했다. 또한, 근대화를 서양 세력에의 식민지화 과정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위태로운 나라를 되살리는 방안으로 생각하여, 총명한 학생들의 외국유학을 장려하고 새로운 사상과 선진문물의 도입에 앞장섰어야하며 왕실 또한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는데 급급할 것이 아니라 독립협회의 ‘만민공동회’와 같은 활동을 단순히 ‘상류 계급’의 권리이자 의무로 여겨졌던 것이 사실이나 이러한 고루한 관념을 타파하고 국민들과 함께 이를 해결해 나가고자하는 태도를 갖추었더라면 ‘한일합방’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즉, 민주적이고 근대적인 사상으로의 변화가 더욱 빨리 이루어졌더라면 조선의 근대화와 경제적 발전은 촉진되었을 것이며 그것은 곧 군사력의 정비와 증강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사항이었다. 다시 말해, 동학농민운동의 폐정 개혁안에서 주장한 신분제와 봉건적 악습이 타파, 갑신정변의 14개조 개혁요강의 지조법 개혁, 정부 체계의 효율적인 재편, 갑오개혁 홍범 14조의 문호개방에 대한 적극적인 태도와 광무개혁의 상공업 진흥책 등이 시기적으로 더욱 빨리 시행되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남는 것이다.당시의 국제적인 상황 또한 결코 조선에 유리한 것이 아니었다. 당시의 국제정치는 철저히 ‘현실주의’에 입각한 형태로써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자국의 이익만을 확보하기에 급급한 실정이었다. 겉으로는 민주주의와 국제법적 도덕성을 앞세우면서도 막상 자국의 이익과 상충되는 사항이 발생하면 그것이 아무리 불합리하더라도 묵인하는 것이 국제사회의 관례처럼 되어버렸던 것이다. 즉,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될 수도,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될 수도 있었던 상황에서 조선은 너무 청과 러시아에만 의존하고 있었고, 그 양국이 일본에 패망하자 일본과 이해관계를 가진 그 어떤 국가들에게도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기 힘들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 국제사회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의리를 강조하는 선비정신만을 믿어온 우리 민족은, 고종의 헤이그 밀사 파견에 헛된 기대를 걸다 그의 실패와 함께 좌절하고 말았고, 서구 열강에 온갖 이권은 다 내어준 뒤 결국 일본에 병합되고 만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국제적인 분위기는 우리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었던 것인가? 단순히 국제사회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한 우리의 외교적 기술에 문제가 있는 것인가?여기서 우리는 국제적인 상황과 국내적인 상황을 연관지어 생각할움에 새우 등 터지는’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거꾸로 말해서, 당시 조선이 국력을 증강시켜 서구 열강 등에 여러 이권을 제시하는, ‘give & take'의 관계를 성립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면 한일합방에 있어 이처럼 ’아무런 국가도 반대하지 않는, 오직 조선만이 반대하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즉, 우리는 단순히 다른 국가들의 태도만 원망할 것이 아니라 그들을 그렇게 하게끔 만든 우리의 당시 상황도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조선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나, 무조건적인 원조나 도움보다 give & take가 이루어질때 진정한 win-win 게임이 이뤄질 수 있는 것이고 이는 국제사회에 통용되는 일종의 원칙이기도 하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조선은 자력을 증강시키는, 소위 ’민족실력양성운동‘과 맥락을 같이하는 사회적 정책을 실시하여 민주주의적 정치요소와 자유주의적 경제요소를 도입하여 스스로를 발전시키는데 주력을 다해야 했으며 그에 대한 일본의 간섭에 무력투쟁-의병활동에의 지원- 등을 병행해 나갔어야했다. 특히 언론 사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여 국외적으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존재하는지도, 일본에 예속되는 지도 몰랐던 대부분의 세계인들에게 일본의 부당한 침략사실을 자세히 알려 국제적인 여론을 끄집어내는 것도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 국제 정치상으로 서구 열강들이 우리를 도울 수 없다는 조건 자체를 바꿀 수 없었다면, 그들의 침략을 받고 있는 동아시아 국가들과 연합하여 새로운 방안을 모색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식민지가 되었거나 식민지화가 시작된 동아시아의 약소 국가들이 단순히 자력으로 큰 싸움으로 이기려고 한다면 이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어차피 서구 열강들 또한 각자의 힘으로 국제적 비난을 잠재우고 이권을 탈취하는 것이 아닌만큼, 피해 당사국끼리의 연합적 저항은 하나의 피해국이 목소리를 내는 것보다 훨씬 힘을 발휘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은, 1940년대에 들어서야 의병투쟁에 있어 있다.
소니의 창조자- 나의 아버지 이부카 마사루.이 수업은 내가 처음으로 접해보는 경영학 관련 수업이었기 때문에 그저 ‘경영’에 관한 책은 이해하기 힘들 것 같아 경영인의 삶에 대한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 무작정 도서관을 찾았지만 경영학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는 내가 경영인을 알기 만무했다. 외부 초청강사가 와서 자신의 삶을 강연할 때 매우 인상 깊었던 내용이 많아 경영인의 삶을 더 많이, 깊게 알고 싶었지만 유명한 경영인의 이름조차 모르는 내가 답답하기만 했다. 기업의 이름이라도 떠올리려 이리저리 궁리하던 중에, 일본의 SONY사가 떠올랐다. 일본에 대해, 여러 전자제품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 나였지만, SONY사 만큼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세계 유명기업인 SONY를 경영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솟구치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나는 SONY의 창업자 이부카 마사루의 전기를 집어들었다.이 책은 제목에서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이부카 마사루의 아들(이부카 마코토)이 지은 책이다. 이부카 마사루가 죽고 나서 그의 일생을 기억하기 위해 정리한 글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책은 이부카 마사루의 ‘경영인다운 삶’보다는 ‘인간적인 삶’을 위주로 싣고 있다. 그의 인생관과 사상이 중심이 된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원하는 내용이 아닌 것 같아 아쉬워했지만 점점 생각이 바뀌었다. 이부카 마사로는 경영인이라기 보단 기술자였다. 그가 중점을 둔 것은 경영이라기 보단 기술적인 측면이었으므로 이 책이 그러한 방향으로 쓰인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다른 책을 다시 읽지 않고 이 책에 대한 독후감을 레포트로 써내는 것은 뭔가 어긋난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나 난 이 책을 읽고 많은 것을 느꼈고 스스로에 대한 여러 가지 결심을 할 수 있었으므로 이부카 마사로의 전기에 대한 감상문을 쓰기로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책이 나의 앞으로의 계획에, 미래에 미칠 영향이다. 어떻게 하면 올바른 대학생활을 할 수 있을까, 진정한 대학생은 무엇일까 하고 고민하던 내게 한 가지 방향을 제시해 준 이부카 마사로의 인생과 인생관은 매우 주목할 만 하다.우선 이부카 마사로의 삶은 내가 예상했던 삶과 완전히 달랐다. 일본 굴지의 기업 SONY의 창업자이며 명예회장을 역임한 그는 엄청난 재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재벌가’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나의 편견일지는 몰라도 재벌이란 엄청난 재산 중 극히 일부를 자선활동을 위해 쓰고 지나칠 정도로 으스대며, 어느 수준 이상의 명성을 얻거나 부를 축적한 후에는 여가활동을 하며 허영에 넘친 생활로 시간을 보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부카 마사로의 자선활동에서부터 다른 사람들과는 뭔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지진아들을 위한 시설인 ‘스기나 모임’을 소니의 아츠키 공장 근처에 만들었다. 그리고 그저 재정적인 지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모금활동을 하고, 전국적으로 강연을 펼치며 지진아에 대한 관심과 지원의 손길을 호소했다. 돈 만으로는 풀 수 없는 지진아에 대한 문제들- 사람들의 시선과 생각의 변화를 위해 직접 뛰어다녔던 이부카 마사로의 태도는 나를 놀라게 했고 감동시켰다. 그의 둘째 자녀인 다에코가 지진아였기 때문에 지진아에 대한 관심과 생각이 커졌겠지만 단지 그 이유로 보기만은 어렵다. 한창 SONY사를 창업하고 현재의 궤도에 올려놓기 위해 신제품 개발과 회사경영에 바빴던 그가 가정에 많은 시간을 쏟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불합리한 일은 고쳐져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명예회장이 된 후에도 유아개발협회 등 여러 가지 사회활동에 참여했다. 이것만보아도 그는 ‘개인을 위한 경영’ 이 아니라 ‘사회를 위한 경영’을 했음을 느낄 수 있다. 자신의 행복과 부에 만족하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능력을 사회에 환원한 그의 행동은 가히 본받을 만하다. 이 부분은 글쓴이인 이부카 마코토가 책의 1/3 정도를 할애하면서 쓴 적지 않은 부분이다. 물론 글쓴이도 아버지의 자선활동을 멋지게 그려내기 위해 쓴 것이 아니라 그의 신념과 사상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을 것이다. 나 또한 이부카 마사로의 신념에 굉장히 많은 것을 느끼고 내 삶과 생각을 반성하게 되었다.바쁘다는 핑계로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소외받는 사람들에 대한 문제들이 더 크게 다가왔다. 대학에 와서 많이 접할 수 있는 것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사회 문제들에 대해 문제점은 인식하면서도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내 모습이 부끄럽게만 느껴졌다. 비정규직 노동자, 장애인의 인권 문제, 최저 생계비조차 지원받지 못하는 생계유지 곤란자들. 마음만 먹는다면, 결심만 한다면 내가 조금의 도움이나마 줄 수 있었던 문제들인데도 나는 항상 바쁘다는 핑계로 이들을 외면해왔다. 그것보다 조금은 내가 실천하기 더 쉬운, 장애인 복지시설이나 고아원 등에의 봉사활동도 중고등학교 때 보다 더 하지 않는다. 지금은 바쁘니까. 언젠가 시간이 생기면 꼭 할거야, 라고 다짐했었지만 실행에 옮길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이부카 마사로는 한결 같았다. ‘나는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신념을 잃지 않았으며 내가 하지 못한 행동에 대해 변명하지 않았다.’하고 나를 꾸짖는 것처럼 느껴졌다. 물론 대학에서의 전공 공부도, 많은 경험도 중요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아직 어리고 약한 존재일지 모르나 나도 사회의 더 많은 약자들에게 도움을 주기위한 노력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는 것을 그는 내게 일깨워주었다. 알면서도 피하려 했던 문제들을 직시하고 신념을 가지게 해준 그의 삶이 존경스럽고 고마웠다.또한 그는 사람을 위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 애썼다. 항상 사람을 중심으로 생각했고, ‘인간적인 발명품’을 만들고 싶어 했다. 그는 많이 팔기위한 기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유용하고 쓸모 있는 기계를 만들고 싶어 했던 것이다. 물질만능주의가 만연하는 요즘 사회에서 그는 항상 뉴패러다임을 외치며 현실의 풍조를 걱정하였다. 이부카 마사로의 발명품은 ‘이건 건 참 좋겠군. 생기면 좋겠어.’라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생각하고, 물건을 만들어갈 때의 기분은 항상 즐거운 것이라든가 가슴이 설렐 정도로 기대되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누워서 라디오를 듣거나 텔레비전을 볼 수 있다면 좋겠다던가, 채널을 앉아서도 바꿀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발상에서 리모콘을 만들었고, 워크맨도 어디서나 음악을 듣고 싶은 욕구와 주머니에 넣을 수 있으면 편리하겠다는 젊은이들의 마음을 헤아린 것이다.요즘은 정말로 ‘팔리기 위한’ 제품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것 같다. 들은 얘기지만 휴대 전화기는 몇백만 컬러까지 차례로 다 만들어놓은 후에 낮은 버전 순으로 출시한다고 한다. 소비자가 휴대 전화기를 어느 정도 이상 구매하면 다시 더 높은 버전의 휴대 전화기를 출시하여 업그레이드 한 휴대전화로 다시 사도록 만들고, 또 다시 더 높은 버전의 휴대 전화기를 출시하는 이런 전략들이 과연 사람들을 위한 것들일까? 단지 기업의 판매 전략에 좌지우지되는 것만 같아 사람이 중심이 아닌, 물질 중심의 사회를 더욱 뼈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다. 이렇게 사용자를 생각하지 않는 제품이 나타난 결과, 도구는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지 않게 되었다. 예를 들면 조리기구의 최첨단이라는 전자레인지가 그러하다. 카탈로그를 보면 이것은 만능이고, 모든 조리도구를 포괄하고 있다고 쓰여 있지만 고령자들은 손댈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젊은이들조차도 요리를 따뜻하게 데울 때와 냉동품을 해동시킬 경우에만 사용한다는 사람이 많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경영자인 이부카 마사로의 태도는 소비자, 사용자인 날 감동시킨다. 그는 마음이 들어있지 않은 물질만으로는 사람이 행복해질 수 없으며 사람은 따뜻한 마음이 있어야 비로소 알찬 인생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참으로 ‘인간적인’ 엔지니어적 경영자였다.그의 생각은 자신의 하는 일의 본질이 무엇인가, 목표가 무엇인가를 명확하게 해야 한다고 내게 충고하는 듯 했다. 지금껏 어떤 일에 대한 결정을 하거나 할 일을 정할 때 내가 가장 중점을 둔 곳은 바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하는 것이었다. 조금은 감정적이었을지 모르나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부카 마사로의 삶을 비추어봤을 때, 지금까지의 내 생각은 오직 나만을 위한, 이기적인 생각이었다. 물론 내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고는 할 수 없지만 다른 것은 고려하지 않고 내 감정만을 중시했던 많은 결정들은 이부카의 삶과 비교해봤을 때 매우 부끄러운 것이었다. 그도 하고 싶은 일을 했을 것이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그렇게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편하게 하고자 했던 그의 넓은 배려심이었다. 이것은 앞으로 ‘사회를 생각하고 많은 사람들을 위해 활동하는 깨어있는 삶’을 살라는 교훈을 내게 주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가지게 되면 좋든 싫든 내 삶은 많은 사람들과 연관을 맺게 된다. 그 수많은 관계를 나를 위해 이용할 것인지, 다수의 다른 사람들에게 쓸 것인지 하는 것은 내게 달렸다. 그의 책을 읽지 않았다면 내 선택은 전자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부카의 삶과 인생관을 알게 된 나는 망설이지 않고 후자를 택할 것이다.
Ⅰ. 서론‘현대기업경영’이라는 강의를 들으면서 경영학을 전공하지 않는 내가 이 수업에서 얻는 많은 이점을 나의 전공과 연관시켜 경영의 참된 의미를 되새기고 싶었다. 중어중문학을 전공하고 있는 나는 졸업 후 무역업이나 관광업에 종사하기위해 준비하고 있으며 나의 전공을 경영학과 결합시켜 앞으로 내가 나아갈 길에 대한 현재까지의 개척정도와 발전 가능성을 알아보기 위해 많은 심혈을 기울여 주제를 선정했다. 이것은 여러 강의 중 특히 인상 깊게 수강한 과목인 ‘현대기업경영’과 ‘관광의 역사와 문화’라는 강의를 종합한 에 관한 주제이다. 88올림픽, 아시안 게임, 월드컵 등 다양한 세계적인 행사를 유치하면서 우리나라의 관광산업은 급격히 발달하고 있으나 아직 우리나라의 관광산업은 외국에 비해 많이 발전하지 못한 상태이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하면, 그만큼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무한하다는 이야기다. 관광경영학을 발달시켜 적극적으로 관광업계에 도입한다면 무궁무진한 발전을 충분히 이룰 수 있는 것이다. 관광산업은 경제적 효과와 사회적 효과가 상당하기 때문에 관광산업이 발전하게 되면 국가 경제에 기여하는 바는 무척이나 커지게 된다.이러한 관광산업은 생태관광, 녹색관광 등 다양한 방면으로의 발전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관광업은 전 세계적으로 자원의 고갈이 없는 중요한 사업으로 주목을 받고 있으며 특히 최근 들어 노동시간의 감축으로 인해 여가시간이 확대되고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관광의 수요는 더욱 늘어나고 있는 형편이다. 관광사업의 분류체계 중 법률적 분류에 의거하여 여행업에 Focus를 맞추어 국내 유명 여행사를 관광경영의 성공사례로 삼을 것이며 여행업은 적은 고정자본으로 상담, 안내 등의 인적자원에 의존하는 사업으로 마케팅의 개념이 강조된다는 것을 미리 밝혀둔다.아직 관광경영학은 호텔경영학과 연관시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서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유명 여행사인 ‘세중여행’이라는 기업과 그 곳의 CEO 이재찬 대표이사 사장의 관광사업 성공 내력과 이유, 앞으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여행사업계와 관광경영학을 연관시켜 생각해보도록 하겠다.Ⅱ. 본론여행업은 여행자와 여행소재 공급업자 사이에서 여행자를 대상으로 예약, 알선 등을 제공하고 공급자로부터 일정액의 수수료를 받아 사업을 운영하는 사업이다. 단지 여행상품을 판매, 알선하는데 그치지 않고 여행자의 여행상품 구매 욕구를 유발하고 각종 편익을 제공하는 것으로 마케팅의 개념이 상당히 강조되는 서비스업이다. 패키지, 골프여행, 허니문 여행, 배낭여행 등 다양한 여행상품으로 고객의 선택 폭과 만족감을 높이고 국내 뿐 아니라 국제적인 협력·교류를 통해 우리나라의 경제뿐 아니라 세계 경제에 기여하는 정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이러한 관광·여행업의 분야에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여행사로 자리 잡은 곳이 바로 ‘세중여행’이다.? 세중여행이 우리나라 여행업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1982년 자본금 1억원의 중앙통운해운(주)으로 사업을 시작한지 20년이 넘는 세중여행은 20년에 걸쳐 외국인 관광객 유치로 외화획득에 기여한 공적을 인정받아 대통령이 수여하는 관광진흥장려탑을 수상하고, 항공권 판매에서도 전국 1,2위를 16년간 고수하면서 삼성그룹,포항제철, 중소기업진흥 공단 등의 크고 작은 50여개의 기업과 여행객에게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호평을 받고 있는 여행사이다.2002년에는 문화관광부 지정 우수여행상품 인증을 획득하고, 메세나 대상 중소기업부문에서 수상했으며 일간스포츠가 제정한 골든 브랜드 대상을 받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윤리적이고 모범적인 기업경영으로 2003년 재경부 장관으로부터 모범 납세업체로 표창을 수상받기도 했다.이러한 세중여행도 90년대 중반 저가 패키지여행업체의 등장과 IMF사태 등으로 인해 해외여행 업무를 축소하고 패키지여행시장에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였다. 그러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고 보다 효과적인 관리 프로그램의 도입, 영업에 필요한 업무를 도맡아 처리하는 전략부서를 신설하는 등 조직개편을 실시하고 새로운 변화를 수용하기 선도주자로 나섰다.2004년에는 대표이사 이재찬 사장이 취임하면서 여행업의 발전분야를 다각도로 모색하여 전사적자원관리(NSIS SYSTEM)을 재구축하고 CI/BI 변경을 시도했다. 또한 해외여행의 중요성과 수요를 인식하고 국내여행에 주안점을 두었던 사업의 방향을 전환하여 해외여행 사업부를 확대 이전하는 등 변화하는 고객의 입맛에 맞춰 발 빠르게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CEO 경영상을 수상한 세중여행의 이재찬 사장“기존 비즈니스 시장의 안정적인 매출기반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 운 수익모델 창출을 위해 일반 패키지여행 사업을 확대하는 등 공격적인 경영을 펼치겠습니다.”지난 23년여간 비즈니스 여행업계의 리더 자리를 지켜온 세중여행 의 이재찬 사장이 밝히는 올해 경영전략이다. 이 사장은 영업력 확 대는 물론 흩어져 있는 지점들을 하나로 합치는 등 기업 내실화에 도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급변하는 여행시장에서 다양한 수익 아이템의 발굴과 영업력 강화를 위해 2005년 말까지 최대 50개까지 대리점을 확충할 계획이다. 특히 주5일 근무제 확산 등으로 여행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올해를 제2의 도약을 위한 원년으로 삼고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간단한 여행지 소개나 단순한 정보전달 기능에 한정돼 있던 홈페이지를 전면 개편해 질 높은 콘텐츠와 다양한 여행 아이템을 제공하는 등 온라인 비즈니스에도 사업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세중여행 온라인 홈페이지(www.happytour.com)여행상품의 종류와 행선지, 날짜와 원하는 가격대를 입력하면 바로 조건에 맞는 여행상품이 검색될 수 있도록 온라인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오프라인에서 뿐만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것은 아직 온라인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다른 여행사들과 비교했을 때 차별화의 방법으로 훨씬 경쟁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요건이 되는 것이다.아울러 이재찬 사장은 체계적인 업무혁신 시스템을 도입해 직원들의 자질 및 영업능력 향상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이러한했다. 이재찬 사장은 지금의 위치에 안주하지 않고 더욱 변화를 추구하는 기업으로 성장할 것임을 강조했다.? 세중여행의 마케팅 전략 1 - ‘새로운 CI 도입’앞서 말했듯 관광업은 마케팅이 매우 강조되는 사업이다. 이에 따라 다른 관광기업체들이 단순히 ‘관광 상품에의 마케팅’에만 전력을 다하는 것이 현실이나 세중여행은 단순히 여행사는 ‘여행상품만을 진열하는 가게’라는 사람들의 인식에 초점을 맞추어 기업의 이미지 제고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새로운 방안을 강구해냈다.세중여행은 차별화된 서비스와 직원 능력 함양을 위한 직원 교육은 물론 신규사업추진 가속화와 본격적인 소비자 마케팅을 위해 새 CI & BI를 도입했다. 특히, 지난 2004년부터 새로운 CI(Cooperate Identity)의 메인 로고는 세중의 영문명과 입가의 미소를 형상화하여 고객에게 기쁨을 주는 이미지를 형상화해 글로벌 브랜드의 이미지와 업계 1위의 자신감을 표현했다.여러 가지 컬러를 이용하여 아기자기한 느낌까지 주는 이 디자인은 여행사라기보다는 캐릭터 산업계나 여타의 디자인업계를 연상시킬 정도로 ‘예쁜’ 것이다. 세중과 해피투어의 블루는 품위와 신뢰를 표현하며 보조색은 고객의 미소와 행복을 의미한다. 칼라를 통해 고객에게 행복 가득한 미소를 드리는 세중의 기업철학을 담고 있는 것이다.색상을 심벌마크의 색상으로부터 각종 응용아이템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사용하여 기업의 이미지를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로 사용하는 세중여행의 세심한 마케팅은 기존 여행사와의 차별화를 불러일으켜 기업의 이미지를 제고하는데 성공했다.? 세중여행사의 마케팅 전략 2 - 고객을 아름다운 환상의 ‘주인공’으로.세중여행사의 온라인 홈페이지(http://www.happytour.co.kr/)에 가보면 다양한 여행상품들이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다른 여행사에서 기본적으로 문화유적 관광에 집중한 패키지 상품과 달리 골프 여행 패키지는 물론이거니와 유명 드라마의 촬영장소를 행선지로 삼는 ‘드라마 스페셜 패키지’, 휴양한 여행상품을 준비함으로써 까다로운 고객의 입 맛에 맞추어 언제든지 원하는 상품의 종류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다양성’은 세중여행의 마케팅 전략이자 현재 관광업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확고히 해주는 일등 공신이라 할 수 있다.실제로 여행사를 찾는 사람들 대부분은 여가를 즐기기 위해 여행을 하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삶의 질이 높아졌다고는 하나 특히 해외여행의 경우엔 아직까지 여행비용이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광객의 숫자가 급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항상 시간에 쫓기며 복잡하고 어지러운 현실에서 벗어나 여유로움을 만끽하고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느낌을 가질 수 있기 위한 일종의 ‘환상적 도피처’의 역할을 하는 것이 관광이다. 낯선 나라에서, 도시에서 그들은 환상세계의 주인공이 된다. 일상에서의 일탈을 꿈꾸는 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올바른 방향으로의 ‘일탈’이 바로 관광인 것이다.그러나 요즘 여행사를 통해서, 특히 패키지로 여행을 갈 때 문제가 되는 것은 이익만을 추구하는 여행사의 태도이다. 무조건 많은 고객을 끌어모으기에만 바빠서 짧은 일정에 엄청난 스케쥴을 짜놓고 관광객들이 여유를 즐길 틈도 없이 이리저리 끌고 다닌다. 패키지 여행을 경험한 사람들 대부분이 ‘정신 없었다.’ 거나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다.’라는 말을 하곤 하는데 이것은 고객을 배려하지 않고 사리사욕만 추구하는 여행사의 잘못된 태도에서 비롯된 안타까운 일들이다.세중여행사는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고객 스스로가 자신을 더욱 ‘주인공’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새로운 여행상품의 개발에 주목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바로 ‘드라마 촬영지’. 사람들은 누구나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이 되고 싶어한다. 그 점을 이용하여 고객의 욕구를 충족시켜 더 많은 수요를 창출하고 기업의 이득도 훨씬 증가시킨 것이다. 또한 여유롭게 관광을 즐길 수 있게 넉넉한 일정을 짠 여행 상품을 구분해서 준비하는 한편, 시간에 쫓기는 직장인들을 위한 ‘주말 패키지’와 같은 상품도 마련함으로써 고객다.
내가 갈 수 없는 세계. 아토스 반도.이 세상에는 내가 절대로 갈 수 없는 곳이 한 군데 있다. 그 곳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는 다른 세계이면서, 아무리 높은 사회적 명예와 부를 지니게 될 지라도 나는 결코, 죽어서도 갈 수 없는 세계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우천염천’이라는 기행문에서 나타나는 신비한 장소는 바로 그리스의 아토스 반도이다.왜 나는 아토스 반도에 갈 수 없는가? 이유는 하나이다. 내가 여성이기 때문이다. ‘女性’이라는 이유만으로 나는 아토스 반도에 단 한 발자국도 들어서지 못한다. 그리스 정부에 의해 제제를 받게 되는 것이다. 어째서? 아토스 반도는 이 곳과는 전혀 다른 원칙에 따라 움직이기 세계이기 때문이다.아토스는 그리스정교의 성지이며 사람들은 신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이곳을 방문한다. 때문에 이 땅은 그리스 국내이기는 하지만 정부로부터 종교적 성지로서 완전한 자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쯤 말하면 눈치 챘겠지만 ‘수도승’의 수행에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아토스에 여성이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동물조차도 암컷은 들어오지 못하게 되어있으며 수컷들은 모두 거세당한다. 게다가 이 땅은 그리스정교도를 위한 곳이므로 외국인 이교도가 이곳에 들어가려면 그리스 외무성으로부터 특별 비자를 받아야한다. 그것도 단 3박 4일의 체재기한을 원칙으로 하며 그 이상을 허가받기란 상당히 어렵다.무라카미 하루키는 바로 이 곳, 그리스의 아토스 반도를 여행하고 나서 ‘우천염천 - 거센 비 내리고, 뜨거운 해 뜨고’라는 책을 냈다. 이 책은 겉으로만 봐서는 전혀 ‘기행문답지’않다. 글의 종류는 내용에 따라 결정되는 것인데 겉으로만 봐서 무엇을 어떻게 판단하느냐란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은 정말로 그렇다. 기행문을 읽어보기 위해 서점을 찾은 사람들에게 이 책은 쉽게 선택받지 못할 것이다. 우선, 이 기행문은 사진이 전혀 실려 있지 않다. 대개 책으로 출판된 기행문은 질려버릴 정도로 사진이 많으며 그에 따른 설명도 나름대로 재밌게 써놓고 있다. 표지부터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화려한 사진을 내세운 기행문도 상당수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짙은 파랑의 표지에 책 제목 4글자만 덩그러니 쓰여 있을 뿐이며 맨 앞장에 그리스의 지도를 한 쪽 가량 할애하여 작게 나타낸 것 말고는 아무런 그림도, 사진도 없다. 저자의 머리말과 꼬리말조차 없어 여행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다느니, 여행이 끝나고 느낀 점이 무엇이며 독자들은 어떻게 생각했으면 좋겠다느니 하는 말은 찾을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이 정말 ‘아토스의 기행문’답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사진하나 없음에도 지금껏 읽었던 여느 다른 기행문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행은 더욱 머릿속에 선명히 그려진다.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쳐 좀 더 신비스럽고 멋진 곳으로 꾸며나가는 것이다. 서문과 독자를 향한 말이 생략되면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가 겪은 여행에 좀 더 신비감을 심어주고, 여운을 만들어내면서 여행이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이라는 상상의 가능성을 남겨둔다. ‘이 장소는 이러한 모습이다.’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사진이 없는 것도 한층 더 그 곳에 대한 기대감, 신비감, 궁금증 등을 증가시켜주어 독자들의 머릿속에 아토스는 좀 더 색다르고 특별한 장소였다고 기억시켜준다. 그만큼 특별하고 비밀스러운 곳을 다녀온 기행문이기 때문에 이런 방법들이 그의 기행문을 훨씬 부각시켜주는 것이다.내가 여성인 이상 절대 갈 수 없는 아토스반도. 그러나 다른 여느 장소에 대해 쓴 기행문보다 내 머릿속에 훨씬 더 생생히 기억되어 있는, 마치 내가 아토스 반도를 여행하고 온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기행문은, “우선 우라노폴리스에서 배를 탄다.”라는 말로 글이 시작된다. 어떻게 짐을 꾸렸는지, 일본의 집을 떠나올 때 여행의 시작에서 느끼는 설레임은 어땠는지, 그리스의 다른 지방은 어떤지에 대한 설명은 찾아볼 수 없다. 아토스 반도를 향하는 순례여행은 모두 우라노폴리스에서 시작되고 끝나기 때문에 언급되는 것이다. 작가는 이렇게 부수적인 설명을 과감히 지워버림으로써 ‘아토스’여행에 더욱더 주안점을 둔다. 아토스 이외의 다른 것은 쓸모없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필체는 독자들의 머릿 속에 ‘아토스’ 단 하나만을 분명히 각인시킨다.무라카미 하루키는 카메라를 담당하는 마츠무라씨, 그리고 편집자 한명(‘O씨‘라고 표현된다.)과 함께 우라노폴리스에서 배를 타고 아토스 반도를 향해 출발한다. 배를 타며 감상한 바다의 아름다움을 온갖 비유를 써서 두 쪽에 달하도록 표현하는데 이를 통해 현실세계에서 신성한 세계-아토스 반도로의 전환이 일어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스는 여름날의 수목이 빈약하나 아토스는 자연녹지가 풍부한 곳이라 뭔가 ‘다른 세계’라는 인상을 더 강하게 심어주기도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그 일행은 아토스 반도의 20여 남짓한 수도원 중 5개의 수도원과 3곳의 출장소(수도원보다 작은, 약식 수도원)에 머무른다. 3박 4일의 빡빡한 일정 속에서 모든 수도원을 둘러보기 힘들었음은 물론이고, 들렀던 수도원과 스키테에서조차 다 짐을 푼 것은 아니었다. 돌아가는 배편을 놓쳐버려 부득이하게 4박 5일을 보내게 되었지만 잠을 잔 곳은 이빌론 수도원과 카라칼르 수도원, 라브라 수도원, 캅소카리비아의 스키테 뿐이다. 너무 급하게 수도원과 스키테만을 전전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여정이 3박 4일로 제한되어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다르다’는 것에서 오는 신비감을 지닌 아토스 반도. 수식어에 걸맞게 그 곳의 수도원들은 정말로 ‘다른 세계’에 존재했다. 이빌론 수도원을 제외한 나머지 수도원들은 모두 비잔틴 타임에 맞춰 생활하는 것이 이러한 이야기를 뒷받침해 준다. 아토스의 사람들은 우리와는 다른 시간성을 가지고 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비잔틴 타임에서 하루는 밤 12시가 아니라 일몰 시각에 시작되므로 우리의 한밤중은 아토스의 오전 4시가 된다. 이 때문에 무라카미 일행은 둘째날 묵게 된 카라칼르 수도원에서 밤 12시에 아침기도를 해야만 했다. 아침 기도를 한밤중에 올리다니, 정말 ‘특별한’ 장소의 ‘특이한’ 관습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토스를 특별한 장소로 만드는 데 언급되는 관습이 하나 더 있다. 수도원들은 일몰과 동시에 문을 닫아버려 아침이 되어야 문을 열어준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이유는 나타나있지 않지만 만약 시간 내에 수도원에 도착하지 못하면 꼼짝없이 늑대와 함께 밖에서 한뎃잠을 자야할 상황에 처하기 때문에 무라카미 일행은 항상 시간에 쫓기며 수도원을 찾았다. 따로 숙박시설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아토스 반도에서 유일하게 숙박이 가능한 곳은 수도원뿐이기 때문이다. 아토스의 규칙에 따르지 않는 사람들에겐 어떠한 일도 책임지지 않고 책임지우지 않는, 아토스만의 특성이 반영되었다고나 할까.모든 수도원에는 순례자들의 숙박을 담당하는 ‘아르혼다이’라는 부서가 있다. 수도원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들러야 하는 곳이다. 아르혼다이를 담당하는 수도승들은 방문자에게 그리스 커피와 루크미, 우조를 대접하는데 무라카미 일행은 이것들을 ‘아토스 삼총사’라 불렀다. 그리스 커피는 설탕을 듬뿍 넣어 지독히 달게 만든 것이며 루크미는 젤리과자인데 이 또한 너무 달아서 ‘이가 빠지고 턱이 근질근질해질 정도다.’라고 작가는 표현한다. 우조는 그리스의 소주 같은 것으로 알코올 도수가 굉장히 높고 냄새는 코를 찌르듯이 강렬하여 보통 물에 희석시켜 먹는다. 이 세 가지 음식은 알코올과 당분으로 여행자들의 피로를 풀어주는 것이 목적이라고 한다. 나는 술과 단 것을 잘 먹지 못하지만 아토스에서는 충분히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수도원 간의 거리가 굉장히 멀고 포장된 도로가 거의 없어 산을 넘어 다녀야하므로 엄청난 피로를 느낀다고 한다. 그럴 때면 빨리 수도원에 도착해서 루크미를 먹고싶을 정도라고 하는 무라카미의 말을 보면서 느낀 이야기다.
사회계약론의 대표 사상가인 존 로크의 정치이론은 다른 사상가들의 이론과 비교해 보았을 때 매우 ‘혁명적’이며 ‘참신’하다고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시민정부론 2권의 2장(자연상태에 관하여), 5장(재산;소유권에 관하여), 6장(부권에 관하여), 7장(정치사회 또는 시민사회에 관하여), 8장(정치사회의 기원에 관하여)의 내용은 로크 사상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2장에서는 자연상태에 대한 이론전개에 있어 다른 사상가들과의 차별성이 드러나고, 5장에서는 사람은 자신의 신체에 대한 소유권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신체를 이용하여 노동을 가한 것은 곧 개인의 소유가 되는데, 암묵적 동의를 통한 화폐의 사용으로 인해 소유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개인의 소유권이 법률 등의 계약과 합의에 의해서 규정되게 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6장에서는 자유란 인간의 이성에 근거를 두고 있는데 이것이 잘갖추어지기 이전의, 즉 미성년 시대의 개인의 연약함과 불완전한 것을 보충해주기 위해 아버지는 그 자식들에 대한 지배력을 발휘하나 이것은 단지 일시적이고 그 자식들의 생명과 소유권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님을 분명히 하면서 부권(父權)에 관해 설명한다. 7장은 시민사회와 자연상태의 차이점과 입법권을, 8장에서는 다수파의 동의에 의한 사회의 존속을 설명한다. 각 장에서 설명하는 모든 내용들은 어느 하나 주목을 끌지 않는 것이 없으나, 가장 로크의 사상이 명확히 드러난 부분은 자연상태에 관한 이론이 쓰여진 2장이라는 것이 나의 견해이다. 물론 이 chapter를 중심대목으로 지정함에 있어, 고등학교 때부터 줄곧 배워왔던 로크의 사상은 ‘자연상태’를 설정하고 여기에서 모든 것이 출발한다는 협소한 지식이 영향을 끼쳐 다른 chapter에 비해 2장이 가장 본인에게 와닿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참신한 주제들의 다른 chapter보다도 2장을 선택한 것은 로크 사상의 핵심은 바로 자연상태에 대한 명확한 정의와 조건 등에 의해서 전개되는 것이기 때문이며, 다른 chapter들은 2장을 전제로 설명이 가능한, 어찌보면 부수적인 존재의 것들로 인식되었다. 즉, 가장 기본적으로 로크의 사상의 근간을 이루는 내용이 제 2장에 들어있기에 나는 망설임없이 2장을 로크 사상의 핵심점으로 선택했으며 이를 이해해야만이 5-8장의 내용을 명확히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데에 의심의 여지를 두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7장의 시민사회와 자연상태에 대한 비교를 통해 시민사회의 조건을 도출하는 것에서 자연상태에 대한 언급은 필수적인 것이며, 이는 2장에서도 다루어졌던 내용을 심화, 발전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로크는 홉스, 루소와 더불어 사회계약론을 주장한 대표적인 학자인데 자연상태를 설정함으로써 시민사회, 정치사회로의 이행이 가능하게끔 만들고 그 사이에 인간과 사회는 계약을 체결한다는 중심사상이 2장의 마지막 부분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하지만, 자연상태를 설정함에 있어서도 홉스 등과는 다른 정의와 조건을 내세우며(자유와 평등, 자연상태의 모습에 대해) 차별성을 드러내는 것 또한 2장의 내용에 속한다. 2장에서는, 자연상태란 스스로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대로, 자신의 행동을 규율하며, 또한 그 소유물과 신체를 처리할 수 있는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라고 말하지만 홉스와 같은 ‘방종의 상태’는 아니며 자연법(;타인의 생명, 자유, 재산을 침해해서는 안된다)에 의해 모든 사람들이 구속되어 있는 상태임을 강조한다. 또한 자연상태에서 개개인은 모두 평등하나 무조건적인 평등을 뜻하는 것은 아니며, 덕행이나 재능, 공적 등에 따라 어떤 개인은 타인보다 좀 더 높은 지위에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즉, 여기서 말하는 평등이란 자신의 자연적인 자유(자기가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갖게 되는 자유)에 대해서 가지는 평등의 권리를 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