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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다송, 다신전, 다부, 문화, 전통
    동다송,다신전,다부,문화,전통동다송은 초의선사가 차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정조대왕의 사위(정조의 딸 숙선옹주와 결혼) 홍현주(洪顯周)와 진도부사 변지화(卞持和)등 주변사람들이 차에 대한 가르침을 청하여 저술한 것인데, 동국에서 생산되는 차를 게송(偈頌)으로 지었다는 뜻이다. 차의 기원과 차나무의 생김새, 차의 효능과 제다법, 우리 나라 차의 우월성 등을 읊었다. 또한 각구마다 주를 달아 자세히 설명을 첨가하여 알기 쉽게 하였다. 초의선사의 동다송(東茶頌)은 원래 동다행(東多行)이었다. 행’과 ‘송’의 뜻은 차이가 없다.행(行)이란 한시(漢詩)의 한 종류로 음악에 맞춰 부를 수 있는 시가(詩歌)를 말한다.송(頌)은 쉽게 설명하면 불교의 게송(偈頌)을 뜻한다.‘동다’라는 뜻은 일반적으로 ‘동쪽의 차’ ‘동국(東國)의 차’로 풀이 하고 있다.좀 더 확대해보면 ‘동이족(東夷族)의 차’ ‘우리의 차’란 말이 된다.동다에 ‘행‘을 더하면 ‘우리차의 길’ ‘우리차의 갈길’이라고 할 수 있다.동다송 전편에 흐르는 생각은 대부분 중원(中原)즉, 중국의 차에 대한 옛일을 인용하고 있다. 저술시기는 1837년 여름 스님이 52세 때로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1762~1836)을 만난 지 28년이 지난 해이고, 만보전서(萬寶全書)를 등초한지 9년 뒤고, 1830년 전다박사(煎茶博士)라는 별명을 얻은 지 7년 후, 다산이 별세한지 2년 후다.동다송의 구성은 31개의 본문과 5개의 주석문(註釋文)으로 ,17송으로 해석하는 이들도 있고 전체를 하나의 서사시 처럼 해석하여야 한다는 이들도 있다. 인용문은 다산이 쓴 것으로 알려진 동다기(東茶器)와 걸명소(乞茗疎)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중원(中原)의 차에 대한 고전(古典)이다. 초의선사의 동다송 원본으로 공식 인정된 것이 현존하지 않다보니 필사본을 원본이라 하는 주장도 있고, 필사본도 오.탈자의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초의스님은 동다송의 그 모본(模本)을 만보전서(萬寶全書)로 하였다. 다시말하면 만보전서와 원본이라 주장하는 필사본들을 일일이 대조해보면 차이가 있고, 시.서.화(詩.書.畵)의 삼절인 선사의 학식에 비교하면 원본으로 볼 수 없다는 논리가 성립된다.하지만 원본이 없는 상태에서 그마나 필사본으로 통하여 스님의 차에 대한 생각과 철학을 볼 수 있음은 다행이라 할 것이다. 현존하는 동다송 필사본은 4가지로 요약된다.초의선사가 1828년(순조28)에 하동 칠불사 아자방에서 저술한 책이 ‘다신전’이다. 해남 대흥사 응송스님이 소장하고 있던 필사본이 현재 디아모레뮤지엄(구 태평양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다신전’에는 찻잎을 채취하여 차를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차를 다루는 전 과정을 총 22개 항목으로 구분해서 설명한다.고려대 생명자원연구소 오미정 선임연구원이 펴낸 ‘차생활 문화개론’에 실린 다신전의 주요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우선 발문이 인상 깊다. “무자년 우기에 스승을 따라 방장산(지리산 지칭) 칠불사 아원(아자방 지칭)에 갔다가 이 책을 등초하고 내려와 다시 정서하려 했지만 병으로 인하여 이루지 못하였었다…이 때문에 참선하는 여가에 힘겹게 붓을 들어 끝을 맺은 것이다…총림에 혹 조주풍이 있으나 모두 다도(茶道)를 모르는 까닭에 이를 초록하여 가외(後生)에게 보내는 바이다.”찻잎을 채취하는 채다(採茶)이론도 명쾌하게 정리돼 있다. “찻잎을 채취하는 데는 시기가 중요하니 너무 이르면 향이 온전하지 못하고 늦으면 신이 흩어지게 된다. 곡우 전 5일을 최고로 하며, 후 5일을 다음으로 삼으며, 다시 5일로 또 그 다음을 삼는다…밤새 구름 한 점 없이 이슬 머금은 잎을 채취하는 것이 상품이요, 한낮중에 채취한 것이 다음이요, 비가 내릴 때에는 마땅히 채취해서는 안된다….”차의 제조법(造茶)에 대한 상세한 설명도 실려 있다. “차나무에서 채엽한 찻잎은 늙은 잎이나 줄기, 부스러기 등을 잘 골라내고 직경 2척4촌(약 72cm)되는 가마솥에 차 1근반(액 560g)을 넣고 덖는다. 덖을 때는 솥이 극도로 열을 받아 뜨거울 때 찻잎을 넣어 빠르게 덖으며 불을 늦춰서는 안된다.”끓은 찻물을 식별하는 탕변(湯辨), 차를 내는데 쓰는 여린 차와 쇠어버린 차를 구별하는 탕용노눈(湯用老嫩), 물 끓이는 법인 포법(泡法), 다관에 차를 넣는 투다(投茶) 등의 차이론은 오늘날 숙지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상세한 설명이 수반돼 있다.차를 마시고 차의 향과 색에 대한 감각도 빼놓지 않았다. “차를 마시는 일은 객이 적은 것을 귀하게 삼는다. 객이 많으면 시끄러우니, 시끄러우면 고아한 정취가 떨어진다. 혼자서 마시는 것은 영묘함이요, 두 객은 고상한 경지요, 3~4명은 취미요. 5~6명은 평범함이요, 7~8명은 나누어 마시는 것이다.”차의 향에는 진향 난향 청향 순향이 있다. 속과 겉이 한결같으면 순향이요, 설지도 너무 익지도 않으면 청향이며, 불기운이 균일하게 갖추어지면 난향이며, 곡우 전의 신령스러움을 갖추고 있으면 진향이다. 언뜻 보면 모든 차의 색깔이 유사해 보이지만 ‘다신전’에는 차의 색을 구분해 놓았다. “차는 맑고 푸른 것을 최고로 하며, 포말은 하얀 빛이 도는 쪽빛을 아름답게 여긴다. 황.흑.홍.혼은 품위가 낮아서 모두 차의 품에 들지 못한다. 구름과 같이 포말이 상(上)이요, 푸른 포말은 중(中)이요, 황색포말은 하(下)이다. 신선한 샘물과 활활 타는 불은 차를 우려내는 현묘한 기술이요 좋은 차와 잘 저은 포말은 훌륭한 술에 못지 않은 절묘한 기술이다.” 우물물이 차에 적절하지 못하다는 경고는 ‘산의 물이 최고이고, 강의 물이 하등이며, 우물물은 최하품’이라는 ‘다경’ 속의 차이론과 동일하다.480자로 된 다부는 우리나라에 전하는 가장 오래된 다서인 다신전보다 350년 앞섰다. 저자인 한재 이목이 중국에서 직접 체험한 차 생활을 바탕으로 쓴 작품으로 차의 심오한 경지를 노래한 작품이다. “차를 일생동안 즐겨도 싫증나지 않는 것은 그 고유의 성품 때문이다.” 로 시작된 다부에는 ‘차 이름과 산지’ ‘차나무의 생육환경과 예찬’ ‘차 달여 마시기’ ‘일곱 잔의 차 효능’ ‘다섯 가지 공로’ ‘차의 여섯가지 공로’ 등을 열거한다.다부의 요약내용을 살펴보자.茶의 등급으로서 三品1. 상품- 몸을 가볍게 하는 것2. 중풍- 지병을 없애 주는 것3. 차품- 고민을 달래주는 것한 사발을 마시니 마른 창자가 깨끗이 씻어지고, 두 사발을 마시니 신선이 되는 듯 하고, 세 사발을 마시니 병골이 깨어나고 두풍이 낫고, 네 사발을 마시니 '근심'과 '울분'이 사라지고, 다섯 사발을 마시니 '색마'가 놀라 달아나고 '탐식하는 마음'이 사그라지며, 여섯 사발을 마시니 온 세상에 해와 달이 비치고, 만물이 제 모습대로 살아 있음을 알겠고, 일곱 사발을 마시니 맑은 바람이 울울이 옷깃에서 일어나며 봉래산의 울창한 숲이 아주 가까이 다다른 듯하다."
    인문/어학| 2010.01.20| 5페이지| 1,000원| 조회(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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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문화의 역사, 전래,삼국시대,고려,조선시대,일제강점기,근대와 현대의 차문화
    차문화의 역사1. 차의 우리나라 전래우리나라의 차문화는 2천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고조선(古朝鮮) 시대에 시작해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오랜 역사속에서 우리의 차문화는 생활속에 깊숙히 뿌리를 내려 각계 각층의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았으며, 다만 시대적 상황에 따라 흥망성쇠를 거듭해 왔다.우리선조들은 차(茶)를 신성하고 성스런 것으로 여겨 하늘에 제사를 지내거나, 산천이나, 조상님들 제전에는 꼭 올리는 제수로 삼았다. 그 의식이 성스러우면 더욱 차는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명절에 꼭 차례(茶禮)를 올리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차문화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천의식(祭天儀式)으로부터 비록되어, 산천을 거쳐 집안으로 들어와 차례상에 까지 올라온 것이다.2. 삼국시대의 차 문화를 통해 제 27대 선덕여왕 때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는 기록과 고구려 벽화를 통해 서도 삼국시기의 차생활을 엿볼 수 있다. 즉 고분에서 발굴된 전차(錢茶)를 통해 볼 때 무덤까지 넣은 점으로 미루어 고분의 주인공이 생전에 차를 몹시 좋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차를 부처에 공양한 점을 통해서도 이때 차를 널리 음용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삼국시대에 주로 차생활을 한 사람들은 모두가 귀족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왕과 왕족들 그리고 사대부의 귀족들과 사원의 고승들, 선랑 또는 화랑들이다.왕족들은 궁궐안으로 차를 끌어들여 차생활을 하였으며 속님 접대와 예물로 차를 사용하였다. 더욱이 고승들에게 예물을 보낼때는 차와 향을 보내었다.귀족들 역시 차생활을 즐겼으며 손님 접대에는 최고의 대접으로 차를 내 놓았다. 그리고 사원의 승려들은 부처님께 차 공양을 올리는 데 사용하였고, 여가에 즐겨 마시는 기호품으로 삼았다.선랑(仙郞) 또는 화랑(花郞)들은 심산유곡을 찾아 심신수련을 할 때 차를 마시며 하였다. 차는 이와같이 훌륭한 예물도 되고 심신 수행의 도반도 되며, 호연지기(浩然之氣)를 키우는 멋의 동반자이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의 차문화는 이미 삼국시대에 그 정신적 배경이 정립되어 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와 같은 차 문화는 고려시대로 이어지면서 더욱 성행하게 되었다. 잎차, 말차, 단차가 보편적이다.(1) 고구려고구려 무덤의 부장품으로 전차(錢茶)가 발견된 점이나 에 고구려의 지방명으로 구다국(句茶國)을 사용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차가 널리 애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5세기경의 무덤으로 알려진 각저총의 벽화에는 일상생활 속에서 차를 마시는 풍경이 그려져 있고, 비슷한 시기의 무용총에서도 벽화에 찻잔으로 추정되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2) 백제백제의 차생활은 일본 문헌을 통해 전해지는데, 에는 메이천황13년 백제의 성왕이 담혜화상 등 16명의 스님에게 불구와 차를 일본에 보내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에도 백제의 귀화승인 행기가 차나무를 심었다는 기록되어 있다.(3) 신라제 27대 선덕 여왕 때 차가 도입되어 이로부터 200년 후인 제 42대 흥덕왕때 지리산 자락에서 재배하였다. 신라시대에는 왕과 귀족, 승려와 화랑도, 학자들을 중심으로 차생활이 이루어졌다. 특히 승려와 화랑간에 차를 마시는 풍습이 성행했으며, 승려들의 차생활은 미륵신앙과 연관되어 행해진 기록이 전해진다. 차는 정신을 맑게 하고 잠을 쫓아 주기에 참선을 행하는 승려들에게 도움을 주고 나아가 불전에 공양하게 이른 것이다. 또한 '삼국유사'에는 말차(沫茶:가루차)를 신라인들이 널리 애음하여 '차를 밥먹듯'한다하여 '다반사 (茶飯事)'라는 말까지 생겼을 정도이다.3. 고려의 차 문화역사상 차 문화가 가장 융성했던 시기이다. 주요 국가행사때나 사원의 제식,수도용에 널리 애음되었다. 고구려 무덤의 부장품으로 전차(錢茶)가 발견된 점이나 에 고구려의 지방명으로 구다국(句茶國)을 사용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차가 널리 애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5세기경의 무덤으로 알려진 각저총의 벽화에는 일상생활 속에서 차를 마시는 풍경이 그려져 있고, 비슷한 시기의 무용총에서도 벽화에 찻잔으로 추정되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특히 이때 청자가 크게 발전했던 이유중 하나는 차 문화가 급격히 확산되면서 다구의 수요도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라 한다.4. 조선시대의 차 문화고려시대와 마찬가지로 상류 사회 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다례가 널리 확산되었다. 조선의 차문화는 전기는 고려의 다풍을 이어가고 있었으나 중기에 임진왜란(壬辰倭亂)과 병자호란(丙子胡亂)을 겪으면서 쇠퇴하기 시작하여 2백년간 공백기를 거치게 된다. 그 후 한국의 다성(茶聖) 초의선사(艸衣禪師)와 다산(茶山) 정약용, 추사(秋史) 김정희가 중심이 되어 일으킨 차문화 중흥이 계기가 되어 후기에는 다시 차문화가 일어나게 된다. 그러나 일제의 침략으로 또다시 우리의 차문화는 빚을 잃게 되었다. 그러나 차문화는 쇠퇴를 했지만 명맥이 끊어지지는 않았다. 궁중에는 궁중의 법도에 맞는 다례의식이 있었다. 이것을 궁중다례라고 한다. 그 의식은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일반 사대부들은 관혼상제를 모두 사례편람(四禮便覽)에 의거하여 다례를 지냈으며, 사원에서는 서산대사(西山大師)의 운수단(雲水壇)과 백파선사(白坡禪師)의 구감(龜鑑)에 근거하여 다례를 지내었다. 이처럼 의식만 남고 문화는 쇠퇴한 상태로 계승되었다.조선후기에 이르러 초의선사는 동다송(東茶頌)을 저술하고 다신전(茶神傳)을 펴냈으며, 다산은 다신계(茶信契)를 조직하여 다신계절목(茶信契節目)을 만들어 차문화 중흥을 도모하였다. 추사는 다시(茶詩)를 지어 당시에 옛 풍류를 진작 시켰다. 이 때부터 다시(茶詩)를 지어 당시에 옛 풍류를 진작 시켰다. 이 때부터 다시(茶詩)가 많이 창작되기 시작하였다.
    인문/어학| 2010.01.20| 4페이지| 1,500원| 조회(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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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에 관한 시 , 감상평
    차에 관한 시 3편1) 한 잔의 차에 - 함허득통일완다출일편심 一椀茶出一片心 한 잔의 차에 한 조각 마음이 나오니일편심재일완다 一片心在一椀茶 한 조각 마음이 차 한자에 담겼네.당용일완다일상 當用一椀茶一嘗 자, 이 차 한 잔 마셔보시게일상응생무량락 一嘗應生無量樂 한 번 맛보면 근심 걱정 모두 사라진다네.예로부터 우리 불가(佛家)에서 차를 애용해 왔다. 특히 선가(禪家)에서는 일상생활에 차는 필수적으로 쓰이는 그야말로 다반사(茶飯事)의 하나였다. 지금도 선방에는 차 마시는 시간이 있다. 다선일미(茶禪一味)라는 말이 이래서 생겼다. 차를 마시는 것 자체가 선의 경지에 든 것이라는 의미다.이 시는 함허득통(涵虛得通1376~1433)선사의 시이다. 조선조초의 스님으로 일찍이 성균관에 들어가 유학을 공부하다 21살 때 친구의 갑작스런 죽음을 보고 인생무상을 느껴 출가하였다고 한다. 제방을 다니며 수행정진 하다가 황해도 평산 자모산 연봉사에서 작은 방을 얻어 함허당이라 이름하고 3년간 정진한 이후 함허당으로 알려졌다. 세종대왕의 청에 의해 개성 대자사(大慈寺)에 머물면서 선비대비(先?大妃)의 명복을 빌고 왕과 신하들을 위해 법을 설하기도 했다. , , , 등 저서를 남겼으며 이 전해진다.출처 : 지안큰스님 글. 월간반야 2007년 8월 제81호(http://banyaam.com/bbs/view.php?id=05&no=99)2) 초의에게 차를 받고 사례한 시 - 김명희늙은 사내 평소에 차를 좋아하지 않았기에하늘이 그 어리석음 미워해 학질에 걸리게 했도다.더워 죽는 것은 걱정없으나 목말라 죽는 것은 근심이라급히 풍로에 찻잎을 끓여 마셨노라북경에서 들여온 차는 가짜가 많은데향편이니 주란이니 하며 비단으로 쌌도다내가 듣기로는 좋은 차는 예쁜 여인과 같다는데하녀와 같은 차 추하기 더욱더 심하구나초의가 홀연 우전차를 보내왔기에대껍질로 싼 새매 발톱 같은 좋은 차 손수 개봉했네울울함과 번뇌 씻어주는 공효 더할 나위 없고그 효과 빠르고 산뜻하기 어찌 이리 크리오노스님은 차가리기를 마치 부처님 고르듯 하였으니일창일기 만을 엄격히 지켜 땄네더욱이나 찻잎 덖기를 정성들여 원통함을 얻으니향기와 맛 따라 바라밀 경지에 이르게 하였다.3) 햇 차 - 초의선사, 《동다송》제16송
    독후감/창작| 2010.01.20| 2페이지| 1,000원| 조회(2,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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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차와 오룡차의 정의,유래,종류,효능
    백차와 오룡차1) 정의 :녹차와 홍차의 중간적인 성질을 가진 반발효차.2) 유래 및 종류 :반발효차인 우룽차는 오룡차의 중국식 발음으로 중국 푸젠성에서 생산되는 무이암차(武夷岩茶)가 원조이다. 푸젠성 숭안현 남쪽에 있는 무이산은 차 재배에 최적의 조건을 가진 곳으로 유명하다. 무이암차에는 육계, 수선, 오룡, 철라한, 대홍포,백계관, 수긍귀, 기란, 매점 등의 차가 있고, 이 중 4대 명차로 알려진 것이 대홍포, 철라한, 백계관, 수긍귀이다.무이암차는 봄과 여름 두철에 걸쳐서 찻잎을 채취하는데, 너무 일찍 찻잎을 따면 무이암차의 독특한 향기와 맛을 낼 수 없기 때문에 무이암차는 녹차와 달리 펼쳐진 찻잎을 딴다. 이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옛날 중국 푸젠성 사현 지방 차밭에서 검은 뱀이 자주 나타나 사람들이 놀래 도망가곤 하였는데, 한 노인이 “이것은 뱀이 아니라 소룡(小龍)으로 사람을 해치러 온 것이 아니라 차밭을 보호해 주기 위해 온 것"이라고 말해 그 때부터 이곳의 차를 검을 흑(黑)에 뱀 사(蛇)를 써서 흑사차(黑蛇茶)라고 부르기 시작하였고 훗날 차 맛에 비해 이름이 너무 볼품이 없다고 하여 흑(黑)과 동음 글자인 오(烏)를 사용해 오룡차라 불렀다는 설이 있다.또 다른 오룡차의 유래로 명나라 말 푸젠성 안계현에 살던 용이라는 사람은 얼굴이 검어서 오룡(烏龍)이라고 불렀는데 하루는 피곤한 탓에 찻잎을 따서 방치해 둔채 잠이 들고 말았는데 다음날 일어나 보니 전날 따둔 찻잎이 변색되어 발효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에 서둘러 차를 만들어 마셨는데, 그 맛과 향이 오히려 생잎으로 만든 것보다 훨씬 좋아 그 때부터 반발효차를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대만은 중국의 푸젠성과 더불어 오룡차의 명산지로 유명하다.차의 종류에 따라 찻잎의 채취 시기는 다르나, 봄과 여름 두철에 걸쳐서 찻잎을 채취하며 처음에 햇볕을 쬐어서 시들게 한 후 실내로 옮겨서 때때로 휘저어 섞어서 수분을 제거하며, 그 사이에 약간 발효하게 한 후 솥에다 볶아서 효소작용을 멈추게 한다. 이것을 잘 비벼서 건조시킨 후 제품을 만든다.3) 마시는 방법 :우룽차는 다관에 찻잎을 반 정도 넣은 뒤 90도 이상의 뜨거운 물을 부어 바로 우려내어 먹는데, 뜨겁게 마실수록 우룽차의 제 맛이 난다. 우룽차는 적갈색 잎을 둥글게 말린 구슬 모양이며 황색이나 홍색을 띠는 차액은 배나 사과의 향과 같은 특유의 향기를 가지고 있다. 또한 떫은 맛 성분인 카테킨의 양이 녹차에 비해 절반 이하인 데다 높은 온도에서도 잘 용해되지 않기 때문에 물의 온도를 높게 하여 우려내는 것이 좋다.4) 효능 :우룽차는 산화효소의 작용에 의해 제조과정 중 카테킨의 함량이 녹차에 비해 30-40% 정도 감소하게 되고, 카테킨이 발효과정을 거치는 동안 테아플라빈 및 기타 물질로 변한다. 최근에는 우룽차가 우리 몸의 지방대사기능을 활성화시켜 비만을 억제하는 효과가 매우 우수하며, 우룽차를 하루에 세 컵씩 이상 마실 경우 아토피성 피부염을 완화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 등이 보고되고 있다.1) 정의 :백차(白茶)는 솜털이 덮인 차의 어린 싹을 닦거나 비비지 않고, 그대로 건조시켜 만든 차다. 이렇게 시든 차를 약간 발효시켜서 제조한다. 어린 싹은 백색의 솜털이 덮여 있어서 차에서 은색의 광택이 나며, 향기가 맑고, 맛이 산뜻하다. 백차는 중국의 차 전문가들도 가장 부드럽고 섬세한 맛을 지녔다고 감정한다. 중국의 전통으로 최고금의 백차는 한 해에 단 이틀만 수확하고 처음 싹튼 새순만을 채취해서 만든다.
    농/수산학| 2010.01.20| 3페이지| 1,000원| 조회(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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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차(오룡차)의 유래 및 종류
    청차1) 정의 :청차는 우롱차라고도 한다. 우롱차(烏龍茶)는 중국 남부의 푸젠 성과 광둥 성, 그리고 대만에서만 생산되고 있는 중국 고유의 차이다. 녹차와 홍차의 중간으로 발효 정도가 20~65% 사이의 차를 말하며 반발효차로 분류된다. 색깔에 따라서 청차라고도 불린다. 녹차와 홍차의 장점을 지닌 청차는 제조과정 후 찻잎의 색깔이 청갈색을 띤다하여 청차(靑茶)라고 불리기도 하고, 까마귀 같이 검고 용처럼 구부러져 있다고 하여 오룡차(烏龍茶) 또는 중국 발음상 우롱차(Wulong-Cha)라고 부른다. 발효정도가 녹차와 홍차의 중간 정도인 15~70%로 반발효차로 분류된다. 원래 오룡차는 50~70%가량 발효정도가 높은 차를 일컫지만 지금은 발효정도가 낮은 포종차류와 철관음차, 수선 그리고 비교적 많이 발효된 무이암차 등을 포함해서 모두 청차의 범주에 넣는다.2) 청차(오룡차의 유래) :오룡차란 이름은 11세기 북송(北宋)시대의 기록 중에 있으며, 이때에는 지금과 같은 제다방법을 거친 오룡차가 생산되지 않았기 때문에 산지의 명칭 또는 품종에서 이름 지어졌다고 알려져 있으나, 현재는 송 대에 제조된 용무늬가 새겨진 단차(龍鳳團茶)의 이름에서 비롯하여 차의 외형이 검고 용처럼 생겼다하여 오룡차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청차와 오룡차가 지금은 같은 의미로 쓰지만, 원래 오룡차는 청차의 많은 품종 중에 하나였으며, 오룡차의 품종으로 만든 차가 유명해지면서 오룡차 품종이 개발되고 다른 지역으로 품종이 전해지면서 청차의 다른 이름으로 자연스럽게 자리 잡게 되면서 현재는 청차보다 오룡차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린다. 자세히 구분 지으면 오룡차는 청차의 하위 범주에 속한다. 오룡차는 명나라 말기에 시작되어 70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차의 품종과 가공방법은 계속 발전되어 복건의 오룡차는 대만으로 전해졌다.3) 오룡차의 제조 방법 :반발효를 시켜야하는 오룡차의 찻잎은 중엽종의 잎이 적당하다. 찻잎의 가공방법에 따라 다양한 차가 만들어진다. 일반적으로 찻잎을 위조시켜 필요한 만큼 시들인 후 대나무로 만든 넓은 대바구니에 담아 흔들기를 반복하면 발효가 유도하여 적당한 정도가 되면 고온의 솥에서 덖어준 후 유념하여 건조시켜 완성한다.일광위조(쇄청)☞ 실내위조(양청)☞ 발효(주청)☞ 덖음(살청)☞ 비비기(유념)☞ 건조4) 오룡차의 특징 :오룡차는 녹차의 산뜻하고 신선한 향을 지니고 있고 홍차의 풍미와 입안에 가득한 부드러운 단맛의 여운을 준다. 오룡차는 발효 정도의 폭이 넓어 향과 맛이 매우 다양하며, 맛을 함축하여 표현 할 수 없다. 덜 발효된 철관음류는 탕색도 맑고 푸르거나 연한 황색을 띠고 꽃향기가 높이 나는 것이 특징이고, 비교적 많이 발효된 무이암차류는 탕색도 붉고 어두우며 향기는 꽃향기에서 과일 향과 꿀 향까지 아주 다양하다. 반 이상 발효된 오룡차는 평이하고 따뜻한 성질을 지녀 녹차의 단점을 보안하여 준다.
    농/수산학| 2010.01.20| 2페이지| 1,000원| 조회(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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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