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시 교수 - 학습 계획대단원표 현단 원디자인 (문자 디자인)차시1/2장소실기실학 습목 표?문자 디자인의 조건을 이해하고 시각적인 내용이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창의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문자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그 조형성을 찾아낼 수 있다.학 습자 료교 사교과서, 지도안, 참고작품, 학습보충자료, 참고자료, 형성평가지학 생교과서, 필기도구, 모눈종이(4절 캔터지), 싸인펜, 색연필, 기타단 계(시량)분학 습 내 용학습형태교 수 ―학 습 활 동학습 자료및유의점교 사학 생도 입(7)시작단원제시학습목표 제시참고작품을 통한 동기유발전체학습?인사를 하고출결확인을 한다.?단원을 알려주고 학습할 내용에 대해 설명한다.?학습목표를 제시하여 학습 목표를 인지하도록 한다.?마음열기.?제시해주는 단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학습할 내용을 인지한다.?학습목표를 크게 따라 읽고 오늘 수업할 내용을 인지한다.?단원 및학습목표 판서?멀티자료학 습 목 표?문자 디자인의 조건을 이해하고 시각적인 내용이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창의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문자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그 조형성을 찾아낼 수 있다.?참고작품을 통하여 본시학습의 의의와 주제를 설명하고 토론 및 표현활동에 대하여 설명한다.?다양한 문자디자인의 참고 작품을 보여준다.?수업내용을 파악하고 참고 작품을 통하여 흥미를 가진다.?문자디자인의 다양함을 느낀다.단 계(시량)학습 내용학습형태학 습 활 동학습자료및유의점교 사학 생전개(33)문자디자인의 정의와 의미표현활동순회지도토론 학습모둠별 정리내용발표전체학습모둠학습?문자에 대한 정의와 문자 디자인의 의미를 설명하고 문자 디자인의 특성과 중요성을 알아본다.?시각적인 형태가 내용을 전달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고, 문자디자인의 활용한 부분이 어떤 곳이 있는지 질문한다.?낙서미술에 나타난 문자디자인을 알아보고 참고 작품을 제시한다.?기성제품을 조별로 조사하여 문자디자인의 상품성을 알도록 하고 참고작품을 보여주고 제작과정을 알려준다.?스크랩해온 자료를 모둠별로 토론하고 공유하게 한다.?모둠활동에서 정리된 내용을 발표 하도록 한다.?문자디자인을 이해하고 그 중요성과 특성을 이해한다.?주변에서 문자디자인의 활용된 부분을 찾아보고 그 의미를 생각해 본다.?낙서미술에 나타난 문자디자인을 참고작품을 통해 감상한다.?참고 작품을 감상하고 조별로 조사한 문자 상표를 오려 4절지에 붙이고 제목을 정해 붙인다.?종류별로 수집된 문자를 보고 모둠별로 특성과 공통점, 시각적 효과 등을 토론 한다.?모둠활동의 내용을 정리하고 발표한다.?멀타자료?기성제품의 문자의 특징과 상품성을 이해하게 한다.?다양한 작품 구상이 되도록 유도한다.?토론의 질서와 방법에 대한 유의점을 안내한다.단 계(시)학습 내용학습형태학 습 활 동학습자료및유의점교 사학 생정리및평가(5)형성평가차시예고및 정리
포스트모더니즘과 미술1. 포스트모더니즘의 등장포스트모더니즘은 다니엘 벨의 「이념의 종말」에서 최초로 나타낸 개념이며, 10년 후 찰스 젱크스가 이 말을 건축에 적용시키기 시작했다. 이후 1970년대 말에 이르러서야 미술평론가들이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용어를 흔하게 사용하기 시작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미국과 유럽에서 시작한 문학과 예술 사조로, 그 당시에도 포스트모더니즘의 정의가 매우 불분명하여 ‘모더니즘 이후’ 이상의 의미는 없었고 주로 ‘모더니즘에 반대하여’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정치사회 경제문화, 예술 등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서 전개되는데,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관계가 지속 또는 단절인지 구분하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다시 말하면 포스트와 모더니즘을 초월과 반대의 의미로써 단절의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보는가 아니면 포스트를 모더니즘의 연속으로써의 의미와 함께 단절과 지속의 중간적인 입장으로 보는가 하는데 있다.포스트모더니즘은 전통적 가치를 거부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으며 근본적으로 반지성적이고, 인간의 이성보다는 정열과 의지를 더 중요시 한다. 또한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보다는 개인으로의 인간을 더 강조하며 의식보다는 무의식을 강조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기본입장을 거의 그대로 받아들여 극단적인 형태로 발전시키면서도 모더니즘과 반대되는 입장을 보이기도 한다. 포스트모더니즘과 모더니즘의 공통적인 특징으로는 전통과의 단절, 전위적 실험성, 반리얼리즘, 부정확성, 파편화, 비역사성 등을 들 수 있다. 이처럼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기본 바탕위에서 발전한 사조이며 모더니즘의 특성에 대한 연속성을 가짐과 동시에 그에 대한 비판적 반작용을 가지고 있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문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서 나타나고 있다.2. 포스트모더니즘 탄생의 사회적인 배경과학문명의 발달은 새로운 이념과 함께 산업사회와 후기산업사회를 출현시켰다. 후기 산업사회는 산업 자본주의로부터 소비 자본주의로의 변화를 의미하며 문화에서도 와 광고의 기호가 사회구조의 기본이 되며 상품의 교환가치도 기호 가치로 바뀐다. 결국 소비사회에서의 대중은 모든 이미지를 구경거리로서 받아들이며 이러한 사회 속에서 인간의 삶은 더 이상 쾌락과 선한 것의 대립에 근거한 의무와 윤리가 아니라 재미의 윤리에 의해 좌우된다. 후기 산업사회의 문화적인 징후로 나타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근본적인 특성과 변화의 양상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사회 전반적인 변화를 우선적으로 파악할 필요성이 있다. 국외적으로 이 시기는 탈 이데올로기적이란 특징을 가졌고 해체주의 탈 모던이라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조류가 팽배하였다.3. 포스트모더니즘의 전반적인 특성포스트모더니즘은 근대개념에 대한 반발로 형식주의에 대한 반 형식주의, 반미적인 미술, 독창성의 거부로 인한 기계적 복제, 근대 예술의 자율성에 대한 상품화된 세계와 광고, 고급예술과 저급 예술 간의 구분을 없애 버린 대중주의의 성격을 띄고 있다. 또한 예술의 순수성 부인, 현대산업사회의 문화의 논리와 이데올로기에 다중 적이고 복합적인 의미의 포함, 미적 관조의 감상을 고수한 근대 미학과 달리 쾌락, 즉흥적 효과의 중시 등의 개념을 포함한다.4.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의 특징1) 포스트모더니즘에서 나타난 새로운 요소포스트모더니즘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현상 중 하나는 전통적인 분류방식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전통적인 형이상학의 이분법( 정신과 물질, 몸과 마음, 이성과 감성, 사유와 감각 작용, 본질과 현상 등) 을 거부하고 있다. 모더니즘 사회에서 이성은 오랫동안 감성에 대해 우위를 차지해 왔으며, 계몽주의 전통은 인간의 특성을 이성적인 것으로 보고 이분법적 질서를 당연시해 왔다.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상은 이러한 전통을 이성에 의한 폭력으로 규정하고 모든 것이 하나의 이성이고 ?이론적 체계에 의해 규정하여 설명하려는 시도를 거부한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 사상가들의 기존의 이분법적 질서를 파괴하는 것 자체를 찬양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또 다른 억압의 질서를 형성하기 때문이 질서이다.이러한 전통적 이분법의 거부는 예술에서도 예술과 일상생활, 순수 예술과 기술 또는 응용예술, 고급문화와 대중문화 사이의 이분법적 구분을 없애는데 기여하였다. 서양에서 순수 예술의 개념이 출현했던 것은 18세기의 일인데, 목적 없는 목적성의 개념이나 무관심성의 개념은 예술이 자율적 영역을 확보하게 되었다는 예술 자체의 발전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예술을 삶으로부터 분리시킨 것이었다. 이러한 삶으로부터의 분리는 예술을 신비화?신격화시키고 예술에서 엘리트주의와 서구 모더니즘 전통 예술의 귀족주의를 초래하였다. 이러한 모더니즘의 경향은 교양인을 위한 예술과 그렇지 못한 계층을 위한 저속한 작품이라는 구분을 생기게 했으며, 이는 고급문화/ 대중문화, 순수 예술/응용 예술 또는 기성 제품의 구분을 짓게 만들었다.소위 후기 산업 사회라 불리는 오늘날의 사회는 대중이 사회 구성의 주류를 이루고 중간 계층의 증가로 계급 사회의 성격을 많이 벗어나게 되었다. 이에 따라 교양 있는 계층을 위한 고급문화와 저속한 것으로 간주되었던 대중문화와의 구분이 어려워졌다. 이러한 사회적 현실에 부응하여 포스트모더니즘의 화가들은 모더니즘의 화가들(큐비즘이나 추상 표현주의)이 상업적 성공을 거두면서 개인의 고유한 스타일을 하나의 상표(brand)로 만들면서도 예술과 삶의 분리를 바탕으로 순수 예술의 이상을 고집하던 위선을 비판하였다. 이것이 팝 아트와 네오-다다(Neo-Dada)의 형식으로 출현하게 되었다.2) 미술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의 전개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은 이전까지 미술의 양식에서 보이고 있는 추상성과 모더니즘의 획일성, 관념적 매너리즘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반 모더니즘의 성격을 띠고 있다. 미술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은 집약된 미학적 개념이나 구체적 조형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요소들 속에서 시작되었다.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적인 미술은 서구에서조차 개념에 대한 이론이 정립되고 있지 않으며 단지 모더니즘미술로부터의 단절이나 모더니즘의 절충적인 의미로써 논의되모더니즘에 반대되어 나타나는 것이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이다. 모더니즘의 순수성(선, 색채, 색료의 평면성)에 대한 획일적인 지겨움이 점차 공격을 받기 시작하면서 나타난 혼란은 모더니즘 미술문화를 쇠퇴시켰고 이후 다원주의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어서 나타난 반 모더니즘의 미학에 기반을 둔 신형상 등과 함께 나타난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을 통해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서로 다른 양상들이 뒤섞이면서 예술과 문화의 개념이 무한하게 확장되어갔다.미술 문화에서도 창조적 자율성을 바탕으로 해 역동적인 선과 발랄한 색채를 구사하며 이전 미술 문화에 대한 탈구조와 해체 등을 표현한 탈 모던의 양식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모더니즘에 다른 미술 표현의 특성을 첨가하여 화면의 이중, 삼중분리, 나열 배치 등의 양식혼재, 꾸미기(장식적 서술적)등의 다양한 형식을 첨가한 포스트모더니즘적인 미술이 그것이다. 이후 뉴페인팅 테코레이티브 패턴 페인팅 그리고 신표현주의 같은 반 모더니즘 미학의 자세를 취하는 여러 가지 경향들과 탈 모더니즘에 기반을 둔 조각 사진 비디오 퍼포먼스 등 새로운 영역의 시작으로 인해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이 구축되었다. 미술에서의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은 계승과 극복의 차원에서의 논란이 지속되고 있지만 주로 극복의 측면에서 사용되고 있다. 그러한 극복의 양상으로 볼 때 미술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은 새로운 형상주의나 신 표현주의라는 의미로 사용된다고 할 수 있다.5. 1980년대 이후 한국의 포스트모더니즘의 사회적, 미술적 배경 및 전개1) 사회적인 배경80년대 이후 미술흐름을 파악하는데 있어서 사회사를 이해하는 것은 미술운동의 흐름과 성과, 한계를 올바르게 포착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80년대 한국사회는 반독재, 투쟁. 통일운동, 민주화 운동의 지속으로 인해 민주의식이 급격하게 성장하였다. 또한 중산층이 폭넓게 형성되고 계급모순과 민족모순이 제기되어 제국주의적 지배의 본질에 대한 논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2) 미술사적 배경대중문화에서도 되었다. 첫 번째로는 서구 모더니즘의 논리를 바탕으로 시장한 앙포르멜과 두 번째로는 70년대 단색조 회화의 주류인 미니멀의 특성을 가지고 있는 추상미술이다. 80년대 이후의 미술은 70년대의 모더니즘 계열인 표면상 논리성과 객체성을 표현한 한국적 모더니즘과, 동양적이고 한국적인 감각을 서구적 모더니즘에 절충을 시도한 미학이라고 불렸던 단색조 미니멀의 획일적 지배양식에 대한 반발로 포스트모더니즘이 부각되기 시작하였다.3) 한국 미술에서의 수용한국에서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양식이 대두된 것은 80년대이다. 80년대 중반에는 서구의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비평이 시작되었고 후반에는 일반화되었지만 80년대 중반에 일어난 민중미술의 영향을 부정할 수 없다. 80년대 중반의 민중미술은 사회, 정치적 형식의 반영을 통해 모더니즘에 대한 도전을 시도했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문제의 해결점을 미국과 유럽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에서 찾으려고 했다.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이 모더니즘 미술을 변증법적으로 부정했기 때문에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논쟁은 더욱 격화되어 갔다. 이러한 와중에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이 모더니즘 미술 계열에서 받아들여지면서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은 70년대 모더니즘 미술을 검증하고 80년대 이후 새로운 미술문화를 만들어 내는 양식을 띄었다.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의 수용을 통해 미국과 유럽의 뉴 이미지 페인팅, 데크레이티브 패턴 페인팅, 자유 형상들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특히 외국에서 공부한 작가들이 국내에서 개인전을 활발히 하면서 후기모던 이라는 이름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이 시작되었다.4) 한국미술에서의 전개80년대 중반에 들어 본격적인 쟁점이 되기 시작하였던 포스트모더니즘은 80년대 후반에 더욱 활발해졌고 이러한 경향은 모더니즘 미술을 새롭게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져 전개되기 시작하였다. 초기에는 미술과 사회, 미술과 인간의 관계를 획일성을 벗어나 강렬한 색채와 자유로운 이미지의 분출을 통한 새로운 형식으로써 70년대 미술을 극복하려였다.
태극기의 아름다움- 들어가며 -태극기의 대중화태극기의 민족적 성격태극기의 생활화- 맺음말 -들어가며태극기는 한때 국가에 충성 맹세를 바치는 애국심과 권위의 대상이었다. 어릴 적 태극기 하면 유관순 누나를 떠올리고 조례 시간에 국기에 대한 맹세를 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지나치게 권위를 강조하다 보니 국기로서의 친근함을 잃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국가의 중대사 앞에서는 언제나 태극기가 선두에 섰다.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과 2006년 월드베이스볼 대회에서의 충만한 열정의 상징물로 태극기는 대중화 되었고, 실생활에 친근하게 다가오고 있다. 그럼 태극기의 대중적인 성격과 민족적인 성격을 알아보고 마지막으로 실생활에서의 아름다움을 알아보도록 하겠다.태극기의 대중화태극기를 얘기할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아마 2002년 월드컵에서의 대형 태극기일 것이다. ‘꿈은 이루어진다’ 라는 문구와 함께 관중들 위로 펼쳐지는 태극기는 우리나라 사람이였다면 찡한 무엇인가를 느꼈을 것이다. 그것이 애국심에서 오는 것이든 크기에서 오는 것이든 우리나라가 자랑스러웠을 것이다. 사실 크기에 의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매우 효과적이다. 예컨대 미국의 팝아트 작가인 올덴버그는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보는 사물들을 조각으로 형상화했다. 초기의 클레스 올덴버그(Claes Oldenburg)는 아이스크림 콘, 햄버거처럼 미국인들이 흔히 즐겨 먹는 음식을 거대하게 제작하곤 했다, 올덴버그는 1962년 9월의 전시회에서는 대형조각물을 방불케하는 거대한 햄버거와 아이스크림콘, 케잌 등을 전시했다. 사람들이 평소에 아무 생각도 없이 먹던 음식물들이 그들을 압도할 정도의 크기로 제시되자, 그 평범한 음식들이 평소와는 달리 보일 수 밖 에 없었던 것이다.붉은 악마 고문인 신동민씨는 2002년 월드컵을 치르는 동안 태극기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고 한다. 특별한 날 게양하거나 경건한 마음으로 경례를 하던 대상이 아닌 응원의 소품으로 활용하기 시작했고, 깃대에 꽂아 흔들기도 번거로워 아예 태극기를 망토처럼 어깨에 걸치거나 두건처럼 머리에 두르거나, 때로는 치마로 활용하기도 했다. 태극 문양을 얼굴과 몸에 그려 넣은 채 응원하는 사람도 많았다.당시 이런 현상은 태극기 디자인이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비쳐졌다거나 그 내적인 의미가 새로 정립되었기 때문은 아닌 것 같다. 2002년 월드컵 기간 동안 태극전사가 보여준 짜릿한 경기 덕에 우리나라와 그들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기게 된 덕분이라고 본다. ‘태극기’라는 우리나라의 마크에 자랑스럽고 대견하다는 감정이입을 하게 된 것이다(실제로 2002년 월드컵 기간 동안 한국이 자랑스럽다는 응답 비율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조사 결과도 발표되었다). 그간 태극기 앞에서 습관적으로 경례를 해야 했기에 태극기는 아무런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그러나 월드컵 이후에는 태극기를 보면 연상되는 드라마가 있다. 긴장감 속에 경기를 관람했던 기억, 목소리를 한데 모아 열렬히 응원하던 순간, 믿기지 않는 역전골이 터졌을 때의 짜릿함….태극기의 감동이 절정에 다다른 순간은 초대형 태극기가 관중석을 꽉 채우며 펼쳐졌을 때다. 당시 상대편 미국 선수들과 응원단조차 넋을 놓게 만들기도 했다. 일반 가정용 태극기의 4444배 크기에 무게는 1.5톤. 6천 명의 관중이 자리를 채우지 않으면 펼칠 수도 없었다. 이 거대한 태극기가 관중석에서 사람들의 머리 위로 물결치듯 나부꼈을 때, 태극전사들은 ‘소름이 쫙 돋았다’고 회고한다. 광화문에 모인 군중도 함성을 내질렀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규모의 태극기 한 장은 시각적으로 엄청난 파급 효과를 보인 퍼포먼스였다. 그 후 WBC 대회에서도 피겨 선수권대회에서도 태극기 세레모니로 승리를 자축했었다.태극기의 민족적 성격태극기는 우리나라의 국기이며, 민족적인 성격을 가장 짖게 가지고 있다 할 수 있겠다. 지난달 26일 문화관광부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100대 민족문화 상징'을 선정해 발표했다. 그중 태극기가 우리 민족문화 최고의 브랜드라는 것이다. 우리 민족이 예부터 지금까지 이뤄온 다양한 문화 요소들 가운데 대표할 만한 것을 말하며, 문화관광부는 지난 1년 반 동안 우리 민족의 '문화 유전자(DNA)'를 확인하기 위해 민족문화의 상징이 될 만한 것들을 추린 뒤 인터넷 설문과 여론조사를 거쳐 선정 작업을 진행했다. 우리 민족의 문화적 원형으로서 상징성을 지닌 것 가운데 상품화가 가능하며, 우리 문화의 세계화에 기여도가 높은 것들을 발굴하는 데 초점을 뒀다. 또 평양과 고구려 고분벽화 등 통일문화를 형성하는 차원에서 남북에 공통적으로 중요한 상징도 포함했고, 독도와 동해처럼 국제 분쟁이 있는 상징물도 더했다.그럼 어떤 민족문화가 뽑혔는지 살펴보면 민족문화 상징은 민족, 강역?자연, 역사, 사회?생활, 신앙?사고, 언어?예술 상징 등 6개 분야로 나눠 선정했다. 자체로 문화적 상징성이 높은 태극기가 가장 높은 지지를 받았고, 한글(훈민정음)과 불고기 등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문화적 상징이 많이 포함됐다. 게다가 황토나 갯벌 등 지형적 특성과 풍수. 굿처럼 신앙 관련 상징까지 다양한 분야가 들어가 민족문화 지형을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한국적 문화 원형의 하나로 신성(神性)과 일상의 구역을 구분해 금지하는 의미를 지닌 금줄, 마을 공동체 문화의 대표적 상징인 정자나무, 토속적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소리인 다듬이질 등도 뽑혔다. 지금은 우리 생활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이지만, 민족의 생활문화를 잘 나타내는 것들이다.분야별 민족문화 상징은 다음과 같다.▶무궁화=무궁화는 나라꽃으로 상징성이 크다. 예부터 우리나라는 무궁화가 많아'근역(槿域.무궁화가 많은 땅)'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었다.▶천상분야열차지도=15세기 석판에 새겨 만든 천상분야열차지도(국보 제228호)는 동양에서 둘째로 오래된별자리 지도다. 한국인의 우주관이 잘 드러나 있다.▶오일장=오일장은 조선시대 사회.경제사의 상징이자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풍속이다.▶선(禪)=한국 불교의 대표적 수행법인 선은 번뇌를 잊고 정신의 몰입을 강조하는 동양적 명상문화다. 종주국으로서 세계화가 부진해 홍보와 육성이 필요하다.▶직지심체요절=고려시대(1377년)에 간행된 불경인 직지심체요절은 활자 문화의 상징이다.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로 공인돼 세계기록문화유산에도 올랐다.▶길거리 응원=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새로이 자리잡은 역동적인 응원 문화다.'조용한 아침의 나라'라는 소극적 이미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태극기의 생활화태극기의 아름다움은 국기 계양대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생활 속에서 밀접하게 연관되어 진다면 그 진가를 발휘할 것이다. ㈜디자인하우스가 광복 60주년을 기념하여 15일까지 개최하는 ‘맛있는 태극기, 멋있는 태극기’ 전(서울 종로타워 반디앤루니스 이벤트홀)은 ‘생활 속 태극기의 재발견’이 주제다.태극기 패션, 케이크 데커레이션, 테이블 장식, 파티 소품 등 실생활 속에서 응용할 수 있는 디자인으로서의 다채로운 모습을 선보인다. 특히 관람객들의 유쾌한 웃음을 자아내는 태극기는 화가 강영민이 선보인 ‘태극 하트’. 동그란 태극 문양 대신 하트 문양으로 둔갑한 태극 하트는 밝고 깜찍하기까지 하다. 공간설치가 김치호가 태극의 ‘사괘’를 흉내 내어 기둥 위에 설치한 태극기는 멋진 사진 배경으로 아이들에게 인기다. 이밖에도 화분에 태극기를 꽂아 “태극기가 꽃보다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주거나 초콜릿을 활용해서 태극문양을 케이크 위에 수놓은 핸드메이드 케이크가 태극기의 세련된 아름다움을 일깨우고 태극기에 대한 친숙함과 자부심을 고취시켜 준다.이번 전시에는 패션 디자이너 장광효, 공간설치가 김치호를 비롯하여 헤어 디자이너 이상일, 파티셰 박병근, 스타일리스트 신경옥, 화가 강영민, 이탈리아 요리 셰프 최미경, 그래픽 아티스트 JNJCrew 등 지명도 있는 예술가 8인이 참여했다.이영혜 ㈜디자인하우스 대표이사는 “광복 60주년을 맞아 기획된 이번 전시회를 계기로 우리 태극기가 한국문화를 대표하는 생활 속 아이콘으로 자리잡게 되길 바란다”고 기획의도를 밝히며 “여름방학을 맞이한 아이들에게 우리 태극기의 아름다움과 광복의 의미를 전달해줄 수 있는 유익한 교육의 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점잖고 엄숙하고 경건한 줄만 알았던 태극기를 생활 속으로 들여놓으니 웬만한 팝아트 저리 가라 할 만큼 경쾌한 멋을 발휘한다. 금빛 나는 액자 속에 박제되는 줄만 알았던 태극기가 팔색조보다 더한 변신을 했다.모던 청년, 여피yuppie의 감각애국지사라서가 아니다. 머나먼 타국에서 고국을 그리워하는 것도, 자랑스러운 한국인임을 잊지 말자며 어깨에 힘주고 다니기 위함도 물론 아니다. 시크한 감각을 지닌 이에게 태극기는 색감과 디자인만으로도 쿨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 적격인 아이템. 가로 3m, 세로 2m의 대형 태극기는 실내에 걸어두면 아트 월로 훌륭하다. 주조색이 화이트인 공간에 블루와 레드 컬러 소품으로 포인트를 준다면 금상첨화.파티 패브릭 활용 아이디어태극기를 생활에 활용할 때 가장 쉽게 접근하는 방법은 컬러풀한 한 장의 패브릭이라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의외로 다양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태극기는 우표 크기부터 2×3m 정도의 빅 사이즈까지 다양한 크기를 구입할 수 있고, 원하는 크기만큼 제작도 가능하다. 40×60cm 크기의 태극기를 의자 슬립 커버로 활용했다. 대부분의 태극기에는 아래위 꼭지점에 깃대에 매달 수 있는 매듭이 있는데 이것을 의자 뒤에 묶어 장식한 것이다. 외국인 손님을 초대한 야외 파티에서 사용하면 좋을 듯.
고교 평준화Ⅰ. 서론Ⅱ. 본론1. 고교 평준화제도란?2. 고교 평준화제도의 실시 배경3. 고교 평준화제도 반대의 입장A. 근거B. 사례4. 고교 평준화제도 찬성의 입장A. 근거B. 사례5. 고교평준화제도의 보완A. 사례Ⅲ. 결론Ⅰ. 서론고교평준화 정책이 수립된지 30여년이 흐르는 동안 고교평준화제도는 교육계는 물론 사회전반적인 영역에 있어서 끊임없이 논란거리가 되어 왔으며, 현재에도 3불정책과 관련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며, 앞으로 있을 대선에서 교육 정책은 중요한 쟁점이면서도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되었다.1969년 중학교와 1974년 고등학교의 평준화 조치가 도입되면서 당시 정부가 내건 이유들은 과열 진학경쟁 해소를 통한 학교 교육과정 정상화, 사교육비 감소, 학생의 심신 발달, 학교 간 격차의 해소 등이었다. 평준화 제도가 갖는 정치적 의미는 국가가 교육 기회라는 가치의 배분 과정에 직접 개입하였다는 사실에 있다. 국가의 공공선의 추구를 명분으로 분배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할 대상으로 규정한 것이다. 평준화제도의 도입은 비록 60, 70년대에 적극적으로 실현되었던 국가개입주의(state interventionism)에 힘입은 바 있으나, 후기 중등교육의 성격을 법정 의무 교육으로 되어 있지는 않으면서도 보편 교육으로 확정하였다는 교육사적의미를 갖는다.-고교평준화(최대권,정인섭편)-먼저 고교 평준화 제도의 정의와 실시배경에 대해서 알아보고 찬성의 입장과 반대의 입장에 대한 근거와 사례들을 살펴보도록 하겠다.Ⅱ. 본론1. 고교 평준화제도란?고등학교 평준화 제도는 지역별로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치러 추첨을 통해 해당 지역에 있는 일반계 고등학교에 학생들을 나누어 배정하는 교육제도로 1973년 “입시제도 연구 위원회”의 제안으로 서울과 부산에서 1974년 시작된 이래 올해로 34년째를 맞이하고 있다.이 연구 위원회에서 제시한 보고서에서는 인문 고등학교의 경우 “고등학교 학군을 설정하고, 연합고사에 의하여, 입학 자격자를 선발한 후, 추첨으로 학생을 학교에의 권위가 실추 되고, 과중한 과외비 부담과 명문 고등학교들이 대도시에 밀집해 있어 인구의 도시집중을 불러 일으켰다. 고교평준화 이후 중학교 교육의 정상화를 이루어내었다는 긍정적평가도 있지만 대학입시를 치러야 하는 고등학생들에게 이러한 문제점들이 상존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3. 고교 평준화제도 반대의 입장고교 평준화 제도는 정부의 획일적 통제를 통하여 학생들에게 균등한 교육을 고등학교 단계까지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획일적인 통제는 개별학교의 자율성, 투명성, 책무성을 크게 손상시킴으로써 학교 교육의 다양성과 질적 수준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 하였으며, 이는 결국 공교육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또한 이러한 획일적인 국가에 의한 통제는 교육의 기본권을 침해함으로서 개인의 자유를 구속하는 일임과 동시에 사회 전체적인 기본질서를 흔드는 일이라는 것이 이 제도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이다. 고교 평준화 제도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학습 능력 수준에 따라 교육을 받을 자유와 권리를 중시 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 자유주의적인 관점에 가깝다고 볼 수 있으며, 계층별로는 대체로 중산층이하 에서는 현행제도의 존속을 바라고, 중산층이상에서는 현행제도는 해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경제적 능력과 교육의 질적 관계와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A. 근거①. 학력저하 시비(하향 평준화) - 학업 성취 수준이 다른 학생들로 구성된 이질학급에서는 수업의 수준과 진도를 중하위 수준에 맞출 수밖에 없게 되므로 학력이 하향되고 있다. 평준화는 공부 잘 하는 학생이 더 잘하려는 것을 가로막는 제도라는 주장이다. (교육의 경쟁력, 국가 경쟁력의 약화)②. 교육 불평등과 사교육 확대 - 교육 투자의 부족 문제③. 학부모와 학생의 학교 선택권 제약④. 사학의 학생 선발권 침해⑤. 선발 집중의 병목화 - 진학 경쟁 과열의 원인으로 주장. (초, 중, 고교까지 경쟁 없이 진학하다가 대학 단계에 이르러 경쟁 선발이 부과되는 병목현상이 발생하기 때문)B. 사례. 《서울신문 [이리 안으로 불러들일 수 있다.개천에서 용이 날아오르지 않는 사회는 발전을 기약할 수 없다. 가난한 집 수재가 마음 놓고 공부하는 사회가 되게끔 우리사회는 뒤틀린 교육 정책을 하루빨리 버려야 한다.. 《손병두 서강대 총장이 "사교육비 등 교육문제 해결과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중ㆍ고교 평준화 정책부터 깨야 한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이재용기자 jylee@sed.co.kr손 총장은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창립 25주년을 맞아 6일 여의도 렉싱턴호텔에서 개최한 '대학 경쟁력 제고' 특별좌담회에서 "우리 고등교육에 대한 평가가 나쁜 이유는 바로 평준화 정책 때문"이라며 이같이 말했다.손 총장은 "평준화 정책으로 대학 진학률은 높아졌지만 여기에 들어가는 사교육비가 엄청나며 다른 나라들처럼 대학진학률은 낮아도 교육의 질을 높이는 게 낫다"고 말했다. 그는 "근본적으로 평준화 정책을 완전히 깨야만 국제경쟁력도 높아지고 우수인재가 나온다"며 "3불 정책 등 각종 정부규제도 다 털어내야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손 총장은 "교육부가 (각종 규제로) 묶어놓고 그 안에서 우리나라 대학이 못한다고 하면 어떻게 하느냐"며 "외국 대학처럼 같은 조건 속에서 뛰게 해보고 못하면 그때 가서 야단치라"고 덧붙였다.한편 이날 토론회에 함께 토론자로 참여한 이경숙 숙명여대 총장은 “경쟁력을 갖추려면 대학이 할 수 있는 것을 마음껏 발산 하도록 여건을 마련해줘야 한다”며 “그런데도 가끔 보면 발산하는 게 죄악인 것처럼 규제하는 것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 총장은 "하버드대학만 해도 학교 자산이 26조나 될 정도로 엄청나지만 우리는 적립금만 조금 있어도 격려는 못할망정 죄악시하는 여론이 있다"며 "우리 대학들의 열악한 여건은 보지 않고 결과만 가지고 세계 100대 대학 순위에 못 들어간다며 매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경기] 김문수 “교육 쇄국 빗장 열라”국가경쟁력 우수인재 확보 위해 ‘교육개방’ 필수평준화 반대…철폐되면 자사고·특목고도 불필요》발췌김 지사는 이날 발 2001년 국가 교육성취도 검사를 받은 고1 학생들이 2·3학년이 된 뒤 치른 수능 모의고사 성적을 3년간 추적, 분석했다◆ ‘평준화로 학력 저하’ 주장 근거 없다일반계 고교생 858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평준화 지역 학생들의 점수가 비평준화 지역 학생들보다 높았다. 평준화 지역 학생이 언어 영역의 경우 4.72점, 외국어 4.37점 더 높게 나왔다. 수리 영역에서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문과가 10.28점, 이과 7.91점 더 높았다. 평준화 학교와 비평준화 학교가 함께 있는 중소도시 지역만을 따로 비교한 연구에서도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또 2001년 국가교육성취도 검사를 받은 전국 175개교 고1 학년 7337명의 성적을 3년간 추적 조사한 결과 역시 평준화 지역 학생들이 비평준화 지역보다 학업성취도가 낫거나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평준화가 사교육 주범’ 주장은 오해월평균 사교육비의 경우 평준화 지역은 37만3000원으로 나타난 반면 비평준화 지역은 28만9000원으로 조사됐다. 평준화 지역의 시교육비 지출 규모가 더 크게 나타났다. 하지만 유의할 사항은 사교육에 대한 구매력이 높은 서울과 6대 광역시가 모두 평준화 지역이라는 점. 보고서 역시 학교 소재지의 경제적 여건이 더 크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했다. 이는 사교육비 지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부모의 경제력과 학력 수준, 지역 등의 변수를 빼고 분석한 결과에서 고스란히 확인된다. 평준화 지역의 학부모들이 비평준화 지역보다 사교육비를 월평균 8000원 가량 덜 지출하는 것으로 조사됐기 때문이다. 결국 평준화 정책 자체를 사교육을 조장하는 요인으로 볼 근거는 없다는 결론이다.모자라는 것을 채워 높여주는 것이 ‘평준화’평준화정책 30년의 성과는 명확하다. 중등교육의 기회를 확대하고 고교 입시경쟁 완화에 크게 기여한 것이 사실이다. 사회적 위화감 해소에도 큰 몫을 담당한 셈이다. 특히 교육환경을 정비하고 교육시설을 확충함으로써 교육여건의 전반적 향상을 꾀한 점은 새삼 평가받아야 할 대목이다.(71.1%), ‘반대한다.’(22.2%)와 유사한 결과여서, 광명시민들은 변함없이 고교평준화를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고교평준화 찬성 71%, 반대 21% ... 2003년도 결과도 유사평준화 시민연대는 지난 10월 8일 광명시민 1,280명이 응답한 설문결과를 분석하여, 이와 같은 결론을 얻었다. 한편 고교평준화에 반대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21.8%로 나왔다. 고교평준화에 찬성이유에 대해서는 찬성이라고 답한 시민들 중에서 ‘고교서열화로 학생·학부모들 간의 위화감·우월감·열등감 등의 해소’(28%)를 최우선 순위로 들었다. 이어서 ‘중학생 학부모의 사교육비 절감’(23%), 중학교 입시위주 교육해소와 전인교육 실시’(20%), ‘고등학교 측의 우수학생 유치를 위한 과열경쟁 해소’(17%) 순으로 응답했다.고교평준화 찬성이유로 ‘학교 서열화로 야기되는 위화감 등’을 최우선을 꼽았다. .한편 평준화 시민연대는 이러한 결과를 가지고서, 경기도 교육청이 실시하기로 약속했던 고교평준화 타당서 조사에 대해서 계속 요구를 하고, 광명시민들의 여론을 전달할 계획이다.. 《교사·학부모·학생 대다수 고교평준화 찬성》고교평준화 도입을 둘러싸고 강원도내 교육계의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교사와 학부모, 학생들의 76.1%는 고교 평준화제도 도입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21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강원지부와 강원교육연구소에 따르면 지난 8월 춘천, 강릉, 원주지역 교사와 학부모, 학생 등 1천83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고교평준화 도입에 대해 응답자의 46.8%가 '적극 찬성', 29.3%가 '다소 찬성' 입장을 밝혔다.고교 평준화 찬성 응답비율은 학생이 85.4%(적극 찬성 50.4%, 다소 찬성 35.%)로 가장 높았으며 교사 83.1%, 학부모 59.6% 순이었다.평준화 찬성 이유로 교사와 학부모는 '입시 위주 공부 탈피'와 `학교교육 정상화'를 각각 36.4%와 34%로 가장 많이 꼽았고 학생들은 '고등학교 서열화 해소'(29%)를 가장 큰 이유라고 답했
Ⅰ 서론정보화 사회가 가속화 되면서 세계의 나라들은 가까워지고 그들과의 교류로 인해 여러 분야에서 변화와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다. 교육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나라의 교육은 주변 나라들과 강대국들에 많은 영향을 받으면서 변화를 거듭해 왔다. 독일의 비교교육학자 F.슈나이더(Friedlich Schneider)는 교육제도의 성격을 결정하는 제요인으로 국민성, 지리적 특수성, 경제적 성격, 문화, 과학, 사회조직 및 정치, 종교, 역사, 외국의 영향 그리고 교육학의 내적 발전을 열거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한나라의 교육제도는 복합적인 그 나라의 내적, 외적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내적 요인보다는 외적 요인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는데 그것은 근대교육이 형성될 즈음 일제 강점기와 주변 강국들의 간섭에 의한 국가의 불안요소들로 인하여 처음부터 우리나라의 주체적인 교육과정이 형성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로부터 해방이후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은 나라는 미국일 것이다. 교육도 또한 사상이나 제도의 영향을 받았으며, 7차 교육과정까지의 변화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7차 교육과정까지 변화해 온 이 시점에서 미국 교육과정과의 비교는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이 든다. 선진국인 미국의 교육과정을 살펴봄으로써 우리의 교육과정에 대해 반성하고 개선하여 좀 더 나은 수업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여진다. 먼저 우리나라 교육과정의 변천 과정을 알아보고 우리나라의 교육과정과 미국의 교육과정을 비교 분석 하도록 하겠다.Ⅱ 본론1. 한국의 교육과정1) 개화기와 일제 식민지 시대의 교육과정우리나라의 근대적 학교교육은 19세기 말 대한제국에 들어 정립 되었으며, 갑오개혁을 중심으로 그 이전에는 근대학교의 선구적 형태로서 소수의 관립학교와 기독교계의 사립학교가 등장하였고, 국가적 차원에서 근대 학교의 법령이 정비되고 관립학교가 세워진 것은 갑오개혁 이후의 일이다. 갑오경장 이후 대한제국은 국가적 수준에서 근대적 학교제 참여관으로 히데하라 다이라를 취임시킴으로써 한국에 대한 일본의 식민지 교육체제가 구축되었다. 이에 더하여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고 통감부가 설치되어 내정권이 박탈되면서 학교교육에 관한 종래의 사범학교관제, 중학교 관제, 외국어학교 관제, 소학교령이 모두 폐지되고 1906년 8월 27일에 칙령 제41, 42, 43, 44호로 사범학교령, 고등학교령, 외국어학교령, 보통학교령이 반포 되었다. 일본이 강점하여 시행한 친일교육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보통학교에서 일어가 국어와 같은 수준으로 매주 6시간씩 부과되었으며, 관?공립 보통학교에는 일본인 교사가 배치되어 실질적으로 학교 운영을 책임졌으며, 학부가 국정교과서를 편찬하고 교과용 도서의 검인정 제도를 설치했다는 점이다. 1911년 이후부터 해방될 때까지 조선교육령에 의한 식민지교육이 이루어졌으며, 더욱 더 철저하게 황국신민의 양성과 식민지 우민화교육에 맞추어 이루어진 것이 특징이다.우리나라의 근대교육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국권 침탈로 인하여 진정한 근대 국가의 수립에 기여하지 못하고 일제의 식민 도구로 전락하는 크나큰 불행 속에서 정립되었다. 이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한국 교육과정도 일제의 잔재인 민족적?민주적 자율성의 부정과 국가에 의한 획일주의적 통제라는 틀 속에 갇히게 되었다. 일제 식민지 교육이 우리에게 남긴 폐해 가운데 교육과정 분야에 대한 것으로는 교육과정의 획일화, 교육과정의 관료화, 굴종적?도구적 인간형의 양성을 들 수 있다.2) 해방이후의 교육과정① 교수 요목기(1945년~1954년)1946년 2월 21일 ‘교수요목 제정 위원회’를 조직하고 초등학교와 중등학교 교과목 편제와 시간 배당표를 제정 발표하고 교과서를 편찬하였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1949년 12월 31일 교육법이 제정, 공포 되었다. 공포된 교육법은 홍익인간을 교육이념으로 정하고, 일반 교육목표를 설정하였으며,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걸치는 6-3-3-4 학제를 확정하였다. 교육과정과 관련 하여서치는 동안의 교수요목의 시기 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법령형태의 교육과정은 1954년 4월 20일 문교부령 제 119호로 개정된 ‘교육 과정령’이 공포되기까지를 지적인 체계를 존중하는 교과중심 교육과정 강조의 시기로 본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및 사범학교 교육과정이 1955년 8월 1일에 각각 교육부령 제 44,45,46호로 공포되고 1956년도부터 시행되었다. 이시기의 교육과정은 미국의 영향을 받아 ‘새 교육운동’이라 불리는 사조가 교육계에 팽배했으며, 생활교육을 교과서 편찬에 반영시키기 위한 노력도 있었다. 또한 해방직후의 사회 혼란과 6?25전쟁으로 인한 도덕적 타락으로 말미암아 도덕을 교과로 독립하여 도의교육을 강화하게 되었고 학교생활의 전면에 걸쳐서 도덕교육을 강조하였다.③ 제 2차 교육과정 시기(1963년~1973년)1963년 2월 15일에 문교부령 제 119호, 120호 121호로 개정된 교육과정에서 특히 생활 교육을 강조한 때부터 1973년 2월 14일 문교부령 제 310호로 개정된 초등학교 교육과정에서 학문중심 교육과정을 강조하기까지의 기간을 경험중심 교육과정 또는 생활중심 교육과정 강조의 시기라고 본다. 교과 교유과정에 있어서는 교육과정이란 문서화 되어 있는 것을 말하나 생활교육 과정에 있어서는 경험 자체를 교육과정이라 보고 있다.④ 제 3차 교육과정 시기(1973년~1981년)1973년 2월 14일 문교부령 제 310호로 초등학교 교육과정, 1973년 8월 31일 문교부령 제 325호로 중학교 교육과정, 1974년 12월 31일 문교부령 제 350호로 고등학교의 교육과정이 개정되었다. 제3차 교육과정 개정의 방향은 종래의 생활 교육과정을 지양하고 학문중심 교육과정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1973년 이후 1981년 까지를 학문중심 교육과정 강조의 시기로 부른다. 1973년에 개정된 제 3차 교육과정은 1968년 국민교육헌장의 공포, 1960년대 후반부터 연이은 고도 경제성장, 그리고 대내외적으로 정치적 격동과 1977년 단행된 하던 종래의 교육과정 개정과는 달리 한국교육개발원에 연구개발을 위탁하여 개발하도록 한 연구?개발 형 교육과정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교육과정 개정안 개발 위촉을 연구 기관에 위촉했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서 문교부장관이 저하도록 되어 있는 교육과정이기는 하지만 정부 독주의 가능성을 배제하고 연구기관의 참여로 교육과정 개발의 전문화를 꾀했다고 볼 수 있다.⑥ 제 5차 교육과정 시기(1988년~1992년)제 5차 교육과정은 1987년~1988년 문교부 고시 제 87-9호, 88-9호, 87-7호, 88-7호로 공포된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의 교육과정을 말한다. 급변하는 사회에 대응하는 미래지향적 교육과정에 역점을 두었고 교육과정 및 교과용 도서 중에서 개선이 필요한 부분만을 개정한다는 것을 기본원칙으로 삼았다.⑦ 제 6차 교육과정 시기(1992년~1997년)제 6차 교육과정은 시대적, 학문적, 개인적 요구의 변화에 따라 교육부 고시 제 1992-16, 1992-11, 1992-19호로 1992년 재정?공포된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의 교육과정을 말한다. 제 6차 교육과정의 시행 시점은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는 1995~1997년, 고등학교는 1996~1998년이다. 제 6차 교육과정에서 가장 특기할 사항은 지역별 수준의 교육과정 개념이 도입이었다. 국가수준, 지역수준, 학교수준 교육과정을 명백히 구별하고, 교육부↔시?도 교육청↔학교로 이어지는 교육과정 편성 운영체제를 강조하였다.⑧ 제 7차 교육과정 시기(1997년~이후)제 7차 교육과정은 교육부 고시 제 1997-15호로 1997년 12월 30일 교육부가 확정?고시한 교육과정을 말한다. 제 7차 교육과정은 제 6차 교육과정 구상기반의 연장선상에서 제 6차 개정의 기본 정신을 승계하되, 21세기 세계화?정보화 시대의 사회적 문명사적 변화의 의미를 학교 교육과정 구성에 살리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초?중등학교 교육과정 개정의 대원칙을 “교육수요자 중심 교육과정 중심 구현”으로 않았으며, 1990년대부터 직접?간접적인 관여를 확대하고 있는 추세에 있다. 연방정부 단위에서는 국가 수준에서의 기준을 제시하는 것 이외에는 각 주의 교육과정 개발이나 운영에 직접적으로 관여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연방 정부에서 주도하는 각종 교육연구나 교육정책이 주 단위의 교육과정 개발이나 운영에 적절히 반영 되고 있기 때문에 주 단위의 교육과정 개발 및 운영이 연방 정부의 정책에 대립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미국에는 연방 정부 수준의 교육과정 문서라고 할 수 있는 국가 기준이 존재하며, 일반적으로 주 수준의 교육과정 문서의 하나인 주 기준이 따로 존재한다. 또한 주에 따라 주 기준 외에도 교육과정 체제를 개발하여 사용하는 주가 있는가 하면 교육과정 지침서를 개발하여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미국의 교육과정을 좀 더 상세히 보자면 유치원에서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는 완전 무상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초등학교 유치원과정이 포함되는 것이 우리나라 학제와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k-6-3-3-4제가 대세를 이룬다. 초등하교의 수업형태는 능력별 소그룹활동 중심으로 중?고등학교에서는 과목별로 능력별 반 편성을 하여 수업을 하며, 우수한 학생은 조기 졸업도 가능하다. 미국의 대학 입학은 우라와 같이 치열하지는 않다. 일류대학의 주요입학 사정자료는 9학년부터 11학년(고2)까지의 내신 성적, SAT성적, 클럽 및 봉사활동 실적, 추천서, 그리고 자신이 직접 쓴 Essay와 학교지원서이다. 이들 서류를 1월 1일까지 우송하면 대학은 접수된 서류를 심사하여 4월 1일 까지 회신하여 합격여부를 학생에게 통보해준다. 대체적으로 초?중등 학교에서는 1년을 2학기로 구분하는 Smester제를 도입하는데, 1학기는 9월 초~1월 말이며 2학기는 2월 중순~6월 초순까지이다. 대학에서는 1년을 4학기로하는 Quater제나, 3학기로 하는 Trimester제를 도입하고 있는 학교도 많다. 미국의 보통 학교는 18세기까지 교회부설학교나 사립학교가 주종을 이루었다. 이때부터 학부모와 지역사회가 공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