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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 근대 이후(1945년~1986년)의 식생활의 변천과 특징
    근대 이후의 식생활의 변화 및 특징1945년 ~ 현대Ⅰ. 들어가며경제성장에 따른 산업화, 도시화 식생활에 대한 가치관 및 패턴 변화 가공화, 인스턴트화 외식산업의 성장1. 초기 성장기의 식생활(1945~66)일제의 수탈, 광복과 전란 미국의 밀가루, 분유 유입 혼/분식 장려운동 전쟁복구를 위한 국제교류로 서양음식 유입 가공산업의 시작2. 중기 성장기의 식생활 (1967~76)경제성장으로 인한 공업화 경제 구조로의 전환 농업인구의 감소로 부족식량의 수입 식품산업의 대규모 공업화 가공품의 공업화로 서구식 식품의 소비증가 밀가루와 보리의 공급/섭취 증가3. 후기 성장기의 식생활(1977~86)경제성장과 동시에 식량자급률 50% 격감 기호식품의 생산 증가 서구식습관의 가속화 동물성 식품의 소비 증가 → 과잉 섭취로 인한 각종 질병 유발4. 21세기 식생활식량자급률 저하 – 정보화 시대 도래로 초고속화 붐 ”패스트푸드” – 중공업발달 증대 VS 식량산업 정책 소홀4. 21세기 식생활유통시장의 확대와 가공식품의 소비증가 – 대규모 유통점 증가로 식품의 지역차 사라짐 – 국민의 식사양식 전환 획기적 계기 – 가공식품의 증가이유 “간편성, 편리성”4. 21세기 식생활생활양식의 변화 – 가족형태 변화로 인한 식생활 양상변화 – 가부장적 식사문화 탈피 개성 지향의 식생활 – 다양한 먹거리 가정의 전승이 사라지는 식사 – 함께하는 식사문화 퇴색5. 식생활 변화의 요인인구변화 – 한국전쟁 후 베이비 붐으로 인한 식량 부족 현상 – 혼식장려 및 쌀 품종개량 가족의 구성 및 형태의 변화 – 전통적 식사습관 탈피 – 핵가족화로 편리한 식단 생활수준의 향상 취업여성의 증가5. 식생활 변화의 요인식품산업의 발달 – 냉동 식품법, 분말 건조법 등장 – 국민소득의 증가로 품질고급화 및 다양한 제품에 대한 요구 증가 – 기호도 식품의 신선도 중시 외식산업의 발달Ⅲ. 마치며…경제발전과 함께 풍족한 식생활 영위 서구식 식습관으로 인한 영양불균형 세계도 인정한 우리전통 건강식감사합니다^^{nameOfApplication=Show}
    인문/어학| 2007.07.10| 12페이지| 3,000원| 조회(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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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변모하는 현대의 부모상과 양육 방식
    변모하는 오늘날의 부모학과 양육1.지난 수십 년간 우리 나라의 산업화, 도시화, 서구화 등의 영향은 급격한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변동을 불러 일으켰다. 그것은 결국 사회의 가장 원초적인 집단 가정도 이 변화의 물결에 휩싸이지 않을 수 없었다.확대 가족이라는 한국의 전통적인 가족 구조에서 급격한 사회 변동 과정으로 인하여 소가족화를 의미하는 가족규모의 축소와 확대가족에서 핵가족화로 이행되는 가족세대의 단순화, 그리고 편부 및 편모가족, 노인가족, 자발적 무자녀 가족 등의 비정형적인 가족형태로 변모하였으며 그 기능 또한 많이 변모하였다.특히 자발적 무자녀 가족이란 무자녀 가족 중 생리적 혹은 의학적 문제 때문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부부의 합의에 의해 자녀를 갖지 않기로 결정하고 자녀 없이 부부 두 사람만으로 구성되는 가족을 지칭한다고 한다.이러한 무자녀 가족에 대해 처음 접한 것은 초등학생 시절 사회 시간 때였다.DINK(double income no kids)족 이라는 신종어가 워낙에 낯이 설어서 그 뜻을 외우면서 접했기 때문이었다. 어린 그 시절 때에는 자녀 없이 부부가 자녀에게 투자할 비용과 시간, 노력을 자신들 개인의 자아실현과 인생을 위해 투자하며 자유로운 생활을 영위한다는 것에 대해서 굉장한 환상을 품었었다. 외길인생에서 배우자를 만나 두 배의 책임과 의무가 지어지는 결혼이라는 길에 들어서는 것은 행복과 동시에 굉장한 속박을 준다고 생각했다.자녀가 바로 그러한 속박의 한 이유라고 보았다. 그러기에 자녀가 없는 무자녀 가족은 그러한 결혼의 무게를 무자녀 가족이란 하나의 자신들의 가족화로 덜 수 있어 자유로워 질 수 있다는 생각에 DINK(double income no kids)족에 대해 그러한 생각을 품었고 나 또한 어른이 되어 결혼을 하면 그러한 생활을 해야 되겠다는 하나의 결심을 했었다.부부만의 삶을 위해 살아가는 인생은 자유롭고 여유로운 산뜻한 생활이다. 지금도 무자녀 가족이라 하면 그러한 생각이 먼저 떠오른다. 영화나 책에서 보면 상당히그 집이란 곳은 참 외로운 곳이었다. 처음부터 그들이 자발적인 무자녀 가족이었고 이러한 현실에 만족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해도 자식들은 도대체 무얼 하길래 늙으신 부모님을 저리도 방치하는 걸까? 왜 자식과 함께 살지 않는 걸까? 하는 무조건적인 의문만이 든다. 늘...... 아직도 내 머릿속에는 부부는 나아가서는 부모라는 관념이 박혀있다는 증거인가 보다.젊은 무자녀 가족에게서는 자유로움, 여유로움 이것들을 느끼며 그들을 닮고 싶어했다. 하지만 외로움, 허전함이 감도는 노부부에게서는 왠지 모를 아쉬움이 남았다. 자녀들과 함께 라면 그 외로움과 허전함이 덜 할 텐데 라는 아쉬움 말이다.2 .자녀 없이 부부만으로 이루어진 무자녀 가족은 부부가 결혼 생활을 시작할 때 설정한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아기 갖는 것을 연기하다가 기간이 무한정 늘어지는 상황이 계속 유지되면서 무자녀 가족의 형태를 결심하는 단계로 발전한 것이다. 결국 부부 서로간의 합의하에 이루어진 결과 인 것이다.자녀의 출산과 양육이 절대적으로 큰 중요성을 차지하던 옛날과 비교하면 파격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부부가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간의 합의를 보았다면 이것은 여성의 입지가 그만큼 굳어지고 지위가 상승했음을 말한다.예전 같은 남편에게 무조건적으로 순종하는 수직적이고 일방적인 상관관계를 떠나서 이제는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으로 어느 영역에서나 그 능력을 발휘하고 인정받는 여성은 그 지위를 바탕으로 남성 즉 남편과의 민주적인 평행관계를 이루는 것이 현재의 부부 관계이다. `남편은 가계 부양자, 아내는 주부'라는 뚜렷한 남녀의 역할구분은 자연스럽게 사라질 수밖에 없으며 남편에게만 있던 가사 결정권은 부부 공동 결정권으로 변모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무자녀 가족이 다른 어떠한 가족형태 보다도 그러한 부부간의 성향이 강하다고 본다. 가사에 대한 의무는 부부공동책임이라는 의식과 남편에게 단독적인 생계부담을 강조하지 않고 그 짐을 나눠 가지는 의식 등 무자녀 가족을 결심한 그때부터 그들 부부는 이러무게 있게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 쪽으로의 책임과중은 결국 그 관계, 즉 부부관계에 있어서 수직적이고 일방적인 관계를 의미하므로 서로간의 민주적인 상호 관계를 기대하긴 힘들 것이다.이러한 특성과는 반대인 민주적인 상호 관계와 가사에 대한 공동 책임, 그리고 공동 생계 부담을 하고 있는 무자녀 가족은 그 특성상 확대 가족과 판이하게 다르다고 할 수 있다.이렇게 판이하게 다른 가족상 특성은 그 두 집안의 교류에 있어서 적잖게 영향을 끼친다고 본다. 집안의 대소사를 결정하거나 명절이나 기념일에 가지는 가족 모임에서 서로의 의사 결정 과정이나 수행 과정에서의 갈등과 마찰 등 확대 가족과 무자녀 가족은 그 교류에 있어서 다소 문제를 자아낼 것이라 본다.하지만 그러한 사소한 출동 속에서 각자 느끼는 바도 많을 것이라 본다.민주적이고 평등한 관계의 무자녀 가족의 이러한 특성은 수직적이고 일방적인 확대 가족의 가부장적인 분위기에 영향을 주기에 충분하고 많은 자녀를 둔 확대가족의 두터운 혈연관계는 둘만이 가족 구성원인 무자녀 가족에게 기존의 가족개념이라는 기본적인 모습으로서 영향을 주기에 충분하다고 본다.4 .결혼은 절대적인 것이 아닌 선택이라는 개념으로 기존의 가족 개념을 부수고 자녀마저 가지지 않는 체로 부부가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에의 몰두와 개인적?사회적?경제적으로 자녀 때문에 생기는 장애나 불이익을 원하지 않으며, 자신과 두 사람의 관계에만 충실하고 두 사람만을 위해 투자하겠다는 생각에서 자녀를 갖지 않는 형태, 무자녀 가족.그들의 이러한 삶은 서로의 직업과 직장 생활, 그리고 교우 관계에 있어서 자유로움을 선사하기에 충분하다. 자녀가 있는 맞벌이 부부의 경우 안심하고 몰두할 수 있는 직장 생활은 기대하기가 힘들다. 물론 다른 생활 또한 그러하다. 자녀의 양육 문제로 인해 직장과 가정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서는 것이 많은 맞벌이 부부들의 공통된 현상일 것이다.하지만 무자녀 가족의 경우 그러한 걱정이 당연히 없다. 자녀가 없기에 가능한 것이다.이러한 무자녀 가혼 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생각하듯이 부부간의 절대적인 신뢰와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기본적인 것에 충실해야 가장 행복하고 건실한 가정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요즘은 내가 생각하듯 부부간의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과 신뢰를 그리 생각하지는 않는 사람들 또한 꽤 되는 것으로 보인다.그러한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내세우는 것은 조건, 즉 돈이라는 물질적인 것이라고 본다.아무리 서로에 대한 넘치는 사랑으로 결혼을 했어도 결국 남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가난이라는 현실이 될 수도 있어 서로에 대한 미움으로 파탄에 이르는 사람들은 그 선택에 있어서 어리석었다며 손가락질하며 그들은 조건, 조건하며 따지고 있다.하지만 사랑이라는 부부간의 기본적인 조건에서 부수적인 이유인 경제로 인해 깨어졌는데 돈이라는 물질적인 조건에서는 결국 기본적인 조건 사랑을 찾지 못해 이 또한 파탄에 이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물론 경제력을 부수적으로 따지기에는 오늘날 현대 사회는 너무나도 치열하다. 하지만 사회의 가장 근본이 되는 그곳 가정에서조차 치열한 사회의 물질적 상을 여과 없이 받아들여사랑 없는 부부간의 조건적인 조합으로 시작되는 가정을 과연 가정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싶다.점점 인간성과 정이 메말라 가는 사회의 이러한 모습은 단지 사회 그 자체에서 파생된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인간성과 정이 메말라 가는 사회가 그렇듯이 사랑이 메말라 가는 가정은 그러한 사회를 야기 시킨 것이 아닌가 한다.자녀는 부모의 사랑을 먹고 자란다고 생각한다. 부부간의 문제를 떠나서 장차 사회의 구성원이 될 그들에게 가정이란 어떤 곳인지를 올바르게 인식시켜주어야 한다. 그리고 물질적인 것은 결코 정신적인 것을 뛰어 넘을 수는 없으며 가족간의 사랑만이 완전한 가정을 완성할 수 있고 나아가 완전한 사회의 초석을 만들 수 있다는 것, 또한 인식시켜주어야 하다.부모의 그러한 노력은 장차 사회 구성원이 되어 사회 생활을 함에 있어서 많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믿는다.이러한 기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자녀에 대한 물질적인 부양은 단지 돈으로서 해결할 수 있으나 인성교육이라는 정신적인 부양은 가히 쉽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부모가 되는 것이 어렵고 힘든 말이 괜한 소리가 아닌 것이다.오늘날 인간의 정이라는 것이 메말라가고 점점 고도화로만 치닫고 있는 오늘날의 사회는 점점 가정이란 곳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개인과 사회의 중간에 위치하면서 사회에 대해서는 사회 기초단위 및 사회집단이고, 개인에 있어서는 개인의 발달과 성장에 필수부분인 환경이며 체계인 가정, 그 절대적인 필요성을 이제서야 자각하고 있는 것이다.사회의 이러한 요구는 그만큼 사회 구성원들의 피폐했음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올바른 가정 교육을 받지 못한 자녀들은 사회에 나아가서도 성인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더 이상의 나은 모습을 바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인간의 근본이라는 것은 가정에서 거의 완성이 돼서 사회에서 다듬어 지는 것이기에 그러하다고 본다. 그 근본에 문제가 있다면 사회에서조차 그 생활에 있어서 앞서 말한 피폐한 사회 구성원의 한 명이 될 수밖에 없다.그러하기에 인간의 근본은 완성하는 즉 나의 자녀의 근본을 교육하는 것, 인성 교육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부모로서의 역할이라 생각한다.7 .나는 현재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무자녀 가족화에 대해서 찬성하는 입장이다.앞서 말한 바, 노부부의 자녀 하나 없이 살아가는 그러한 모습에서 다소 아쉬움을 느꼈지만 그것보다 자녀 없이 누릴 수 있는 자유로움과 여유로움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하지만 그러한 이유에서만 무자녀 가족을 선호하는 것은 아니다. 다산이 미덕이었던 과거에는 자기 밥숟가락은 가지고 태어난다며 일단 낳고 보자는 의식이 팽배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자녀를 대신 봐줄 사람도 없거니와 치열한 교육열로 인해 학원비니 레슨비니 뭐니 해서 사교육비만 해도 만만치 않은 것이 요즘 무서운 교육 현실이다. 이러한 늘어나는 자녀 양육비는 부모의 경제난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할 뿐만 아니라 바 있다.
    교육학| 2006.10.13| 6페이지| 3,000원| 조회(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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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외 무역 전문 기업VS. 국내 무역 기업 비교 및 분석, 해석
    무 역 실 무-국적선사/국외선사 사이트 비교분석-< www.namsung.co.kr& www.dongwoo.com>-목차-1. 도입2. < www.namsung.co.kr & www.dongwoo.com>비교 분석3. < www.namsung.co.kr & www.dongwoo.com >의비교 분석에 대한 결론1. 도입국적선사 : www.namsung.co.kr국외선사 : www.dongwoo.com기업명 : (주)가야 코스메틱수출물품 : 천연 화장품 관련 코스메틱 물품-남성해운(www.namsung.co.kr) 은 지난 1953년에 설립 된 최초의 민간 외항 선사로 현재 부산항을 통해 일본에 도쿄 등 22개 의 항구와, 중국의 상하이 등 6개 항에 정기선 출항을 통한 근해 항로에 특화된 정기선 영업을 하고 있는 중견 선사이다. 한일 항로, 한중 항로 및 중일 간 의 삼국 간 항로에서 컨테이너 정기 화물 운송 서비스와 벌크 정기 화물 운송 등의 다양하고 폭 넓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일본 정기선 영업에 있어서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또한 일본에 나비스 남성이라는 자회사와 함께 중국의 상하이와 칭다오 등에 지사를 두고 있으며 남성 해운 항공이라는 복합 운송 주선 업체를 자회사로 두고 있다.이 남성 해운 항공은 국제 특송 업체인 에어본 익스프레스의 한국 대리점을 맡고 있으며 항공 운송 부문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다.이와 같이 남성해운은 육상, 해상, 항공 물류의 모든 부문을 비록 규모는 작으나 통합적인 관리와 오랜 노하우를 통해 그 모두 섭렵하고 있다.-동우해운 (K-Line 대리점, www.dongwoo.com) 은1980년에 (주) 가와사키키센(K-LINE)의 한국 총 대리점으로서 『동우선박(주)』으로 출발하여 1990년 4월에는 선주인 가와사키키센(주) 과 한국 자본이 합자한 새로운 형태의 대리점사인 동우해운(주) 를 설립하여 보다 발전적이고 안정적인 사업 기반을 마련하였다.그리고 2002년 5월에는 상호를 『케이 라인 마리 타임 코리아』(“K”Line (Korea) Ltd.)로 변경하여 보다 업그레이드 된 해양 운송업, 해운, 해상, 자동차선 등 운송 서비스 제공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주) 가와사키키센 (K-LINE) 은 컨테이너선, 자동차선, 트람파선, 에너지 자원 수송선의 4개 사업부를 큰 축으로 하여 세계 각 지역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특히 한국에서의 『케이 라인 마리 타임 코리아』(“K”Line (Korea) Ltd.) 지점을 주축으로 한 사업은 컨테이너선과 자동차선에 대한 서비스가 주축이 되도 있다.컨테이너선 사업은 경쟁 업체에 앞서서 1970년대 초에 벌써 홍콩과 대만, 그리고 한국과 미국 서안을 직결하는 항로를 개척하여 한국의 하주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해 오고 있다.또, 자동차선 사업 부문에서도 경쟁 업체에 한발 앞서 1976년경부터 이미 「현대 포니」의 수출을 담당하고 있다. 급격하고도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룬 한국 시장에 있어서 『케이 라인 마리 타임 코리아』(“K”Line (Korea) Ltd.) (구 동우해운·구 동우선박)는 꾸준한 성장과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2.< www.namsung.com & www.dongwoo.com >비교분석1) 서비스 비교(1) 남성해운 (www.namsung.com)의 서비스 항목은 총14가지로 e-service plus와 스케쥴 조회, 환율 조회, 예약관리, S/R관리, B/L정보조회, arival notice, delicery order, 운임 견적 요청, 구간별 운임 traffic 조회, e-payment, cargo trace, e-service 문의, 고객 도움말이 서비스 항목으로 분료되어 있다.e-service plus 는 고객의 회원 정보 관리와 예약 정보 관리, S/R 정보 관리. A/N덩보 관리. D/O 발급 정보 관리와 Q/A로 구성되었고 S/R관리와 예약관리는 그 긍록과 조회 및 수정이 가능하다. 그리고 delicery order는 surrender & way bill 확인과 original B/L & LG 접수 확인과 D/O 발급 확인이 가능하다.e-payment는 거래 명세서 현황과 세금 계산서 현황과 입금표 현황을 보여주며 cargo trace는 container trace와 수입 통관 관련 정보을 얻을 수 있다.그리고 서비스 portmap 관리로 서비스 지역에 대한 정보 제공과 선박과 컨테이너에 대한 정보 및 사진 등의 제공, 업무 흐름도에 대한 상세한 그림 설명으로 수출 업무와 수입 업무에 대한 절차를 자세히 설명해 주어 고객의 업무 이해도를 높이고 신뢰성을 높여주며 어려운 무역 용어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부가되어 이 또한 고객 신뢰성을 높이고 있다.(2) 동우해운 (K-Line 대리점, www.dongwoo.com) 은 6가지 고객 서비스 항목이 있는데 컨테이너선과 자동차선으로 선박을 분류한 후 그 선박의 지역별 서비스 현황 정보를 주는 서비스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리고 인트라넷 항목은 cargo trace 기능을 container spec. 은 컨테이너선과 자동차선의 각종 정보에대해 보여주며 service map은 동우해운의 서비스 지역과 그 서비스 항로에 대해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약도와 스케쥴 관리 기능이 있다.(3) 홈페이지 서비스 면에서는 동우 해운 (K-Line 대리점, www.dongwoo.com) 에 비해 남성 해운 (www.namsung.com) 이 더 혜택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동우해운(K-Line 대리점, www.dongwoo.com) 은 K-Line 대리점 이라서 그런지 사이트 관리 면에서 K-Line을 보완해 주는 rink 하지 않으면 그 기능에 한계를 보이는 단점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남성 해운 (www.namsung.com) 은 각종 무역 용어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커뮤니티 구축과 게시판 운영으로 제대로 된 고객 인터페이스를 하고 있다. 하지만 동우해운은 앞서 언급했듯이 자사인 K-Line 의 홈페이지에 기대어 자체 홈페이지 내의 고개 인터페이스를 위한 콘텐츠 부재로 K-Line 의 홈페이지를 거쳐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2)선사 선택화장품을 수출하는 조그만 기업의 조건 상, 전 세계 지역으로의 수출은 그 재량에 한계가 있다. 기업의 자본금이나 수출 추진력 면에서 아직은 수출 사업 또한 그 규모에 한계를 두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조건 아래에서 선사를 선택한 다면 남성 해운 (www.namsung.com
    경영/경제| 2006.10.13| 4페이지| 3,000원| 조회(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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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의 영화 문화 일대기
    중국의 영화 문화목 차서론1. 연구 목적본론2. 중국 영화의 파란만장한 일대기1)초창기(1)서양 그림자극(2) 영화 made by 중국 의 첫걸음(3)두번째 걸음, 유성영화의 등장2) 역사의 산물, 중국 영화(1)좌익영화(2)항전영화(3)정치영화(4)모범극영화3)중국 영화의 새로운 기운, 3~5세대 감독들4)전환결론3. 맺음말4. 참고문헌1. 연구 목적중국은 지리적으로 우리나라의 국경과 바로 맞대고 있는 이웃나라이다. 수천 년에 이르는 기나긴 세월 동안 중국은 우리의 전통적인 문화와 가치관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나라이다. 중국 문화는 그 중국 국민들의 국민성, 가정생활, 오락 및 여가 생활, 교통, 직장생활, 결혼, 음식, 의복 등 수많은 인간활동으로 표현되며 그 속에 녹아있다. 그 중 영화는 그 문화의 모든 것을 함축적인 시각언어로 보여주므로 빠른 시간에 중국을 보고 이해하고 느끼게 해주는 최고의 매개체이기에 중국의 영화 문화를 연구, 발표함에 따라 중국 문화에 대해 한 걸음더 다가가 본다.2. 중국 영화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대체로 중국영화사에서 나타나는 계승이나 단절은 정치사회적 발전과정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중국영화사가 시작된 이래 중국에서는 영화를 정치적이거나 이데올로기적으로 이용해 왔다. 그래서 영화제작자가 예술적인 독립영화나 고유한 세계관이 담긴 영화를 만든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이 때문에중국영화는 역사의 산물인 동시에 역사를 만들어 가는 능동적 주체임을 스스로 보여준다.1)초창기(1)서양 그림자극파리에서 탄생한 영화는 이듬해 1896년 유구한 역사와 전통의 나라 중국에 처음 소개되었다. 이때는 아편전잰 이후 외국 제국주의의 통치를 받는 시기로 여러 서방국가의 문화를 겪을 수 있었던 시기였고 대중의 서방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던 때였다. 이때 입성한 영화는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 힘입어 전파될 수 있었고 처음 영화가 상영된 상하이는 중국 초기 영화 발전의 근거지로 발돋움하게 되었다.상하이에서 처음 영화를 상영 할 당시 중국인들은 영화를 서양 그림자극 이라고 불렀다. 큰 호응 속에 영화는 차츰 인기 있는 서양 오락물로 정착해갔다. 그러나 베이징에서는 서태후의 70세 생일 기념으로 영화를 상영하던 도중 화재가 나는 바람에 미신과 전통에 길들여졌던 청조 황실에게는 이일은 불길한 징조로 받아져 자금성 내 영화 상영은 금지되었다. 이로 인해 영화는 베이징에서는 실패를 맛보고 남쪽으로 그 무대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2) 영화 made by 중국 의 첫걸음중국 내에서 영화 제작이 시작된 것은 영화가 탄생한 지 겨우 10년이 지난 1905년으로 베이징의 펑타이 사진관에서 제작한 무성영화 이 그 신호탄이 되었다. 이 영화는 극영화 형식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몇 가지 연기 장면을 필름에 기록한 간단한 시도에 불과했지만 이라는 중국 고유의 정통예술 형식에 영화를 접목시켜 자민족의 독특함을 담아내려고 했다는 점에서 중국 영화사에서 의미가 크다. 이처럼 어설프게 출발한 중국 영화는 1913년 중국 초기 영화의 개척자라 불리는 정정추와 장스촨이 제작한 에서 비로소 대본과 감독이 있는 온전한 형태의 영화로 거듭났다. 이 영화는 봉건 혼인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내용으로 특이한 점은 배우들이 모두 남자로 여자역 또한 남자 배우가 분장까지 해가면서 연기했다는 사실이다. 이후 쉼없는 노력롸 시도로 50편 이상의 단편 영화가 잇달아 제작되는 단계적인 노력의 성과로 최초의 장편영화 과 , 그리고 등의 세편의 기록할 만한 영화가 탄생했다.(3)두 번째 걸음, 유성영화의 등장20년 대 후반, 중국영화는 새로운 시도를 감행했다. 기존의 흔하고 식상해져 버린 사랑, 여성, 결혼이라는 주제 대신 신선과 요괴라는 소재로 다소 황당한 이야기를 그린 무협영화, 시대극 영화를 중심으로 영화 제작 붐이 일었다. 이는 미국 상업 영화와의 대립을 감안하고 상업적인 흥행을 노렸던 결과이기도 한데 결국 이러한 붐도 잠시잠깐 상업영화의 물결도 가라앉기 시작했다. 이러한 국내 정세 속에 최초의 유성영화 장스촨의 이 제작되었다. 아직은 미흡한 단계였지만 벙어리 그림자극에 지나지 않았던 중국 영화가 중국인의 손을 통해 소리를 얻게 되었다는 이유만으로도 큰 의미를 가졌다.2) 역사의 산물, 중국 영화(1)좌익영화무성영화를 거쳐 유성 영화 시대로 오기까지 무수한 역사를 가진 중국 영화는 1930년대 황금기를 이루었다. 그리고 1932년 전후는 일본의 제국주의의 침략으로 기존의 관객들의 관심을 무협영화나 괴기영화에서 애국주의 열정을 고조시키면서 민족의식을 자각하는 소재로 돌려놓았다. 중국 좌익작가연맹이 성립된 후 공산당은 본격적으로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았고 혁명투쟁을 위해 영화를 이용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중국 영화의 역사적인 전환을 재촉해 좌익영화라는 새로운 장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 그 대표작으로 1933년의 , , , 등이 있다.(2)항전영화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은 결국 1937년 중국 전역의 항일 전쟁을 야기 시켰고 전쟁 발발은 결국 중국 영화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이러한 정국 속에서도 영화 제작의 일손을 놓지 않고 이러한 사회 현실에 대향하는 영향력 있는 항전 영화들을 쉬지 않고 만들었다.그 대표작으로는 , , 등이 있다. 이 들 작품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시기 중국 영화는 관객들의 의기를 북돋을 수 있는 항일 구국을 주제로 한 작품이나 시대정신이 충만한 항일 전쟁 영화가 주를 이루었다.(3)정치영화이 후, 8년간의 전쟁이 종지부를 찍고 흩여졌던 영화 제작사 들은 다시 뭉쳤고. 1949년, 중국에는 새로운 정권인 중화 인민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이러한 사회주의 체제 아래 제작된 대표작으로는 , , 등의 작품으로 주로 혁명사상이나 민족의식을 바탕으로 하며 혁명영웅의 명예를 얻었거나 사회주의 정신이 충만한 인물들을 부각시키고 있었다. 이는 마치 3,40년대에 정의에 대항하는 투쟁에 영화를 이용했던 것처럼 신정권 수립 후에도 여전히 영화는 대중의 심리를 지배하기 쉽게 하는 촉매제 역할의 도구로 사용되었던 것이다.(4)모범극 영화영화인들은 이렇게 몇 번의 기현적인 발전과 퇴보를 경험하면서 마침내 망국의 위기였던 문화대혁명을 맞이하게 된다. 문화대혁명이란 1966년부터 1976년까지 10년간 중국의 최고지도자 마오쩌둥에 의해 주도된 극좌사회운동으로 사회주의에서 계급투쟁을 강조하는 대중운동을 일으키고, 그 힘을 빌어 중국공산당내부의 반대파들을 제거한 일종의 권력투쟁이다. 이 운동으로 인해 새 정권이 들어선 이해 17년 간 제작되어온 대부분의 영화들은 불과 볓 편의 전쟁영화를 제외하고는 이유 없이 공개적인 비판과 상영 금지 처분을 받아야 했다. 또한 대부분의 영화 제작사든은 폐쇄되었으며, 감독, 배우 등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노동에 동원되어 정치적인 재교육이라는 미명 아래 시골로 보내졌다. 그리고 마오쩌둥의 부인인 장칭은 그때까지 진행 돼오던 영화를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그녀를 위한 정치적인 수단과 도구로 사용했다. 이때 허용된 영화류는 일종의 무대 예술극으로 현대 경극에 발레극이 결합된 형태의 모범극 이었다. 이러한 극단적인 정치적 수단으로서의 대표작으로는 이 있는데 장칭의 요구에 따라 매번 제작 방법을 달리하느라 2년이라는 제작기간이 걸렸다.? (천안문 사태의 한 장면-1989년 5월 중국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며 대규모 군중 시위를 벌이고 있다. 시위 도중 한 시위대가 진압 탱크 앞을 가로막고 서있다.)3)중국 영화의 새로운 기운, 3~5세대 감독들이러한 중국영화의 암흑기를 끝낸 것은 마오쩌둥의 사망 후 정권을 잡은 덩샤오핑의 개혁 개방 정책이었다. 개혁 개방 정책으로 그 숨통이 트인 중국 영화의 신시기 영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차츰 표현의 권리를 회복해 새로운 시도의 결과로 , , 등의 생활에 대한 개개인의 이해와 감독의 추구하는 이상을 표현해내는 예술로서의 진정한 표현작이 있다.문혁이후 신시기에 들어서서, 셰진을 대표로 하는 제3세대를 비홋한 제4세대, 5세대 감독들의 대서 출현은 중국 영화사의 경이로운 문화 현상이 아닐 수 없었다. 중국 영화의 개척자로서 2,30년대 무성영화 시대에 활약이 두드러졌던 정정추나 장스촨을 제1세대라 하고, 3,40년대 유성영화 시대를 이끌어갔던 차이추성, 쑨위, 우융강, 페이무 등의 감독들을 제2세대로 한다. 그리고 5,60년대에 작품 활동을 해오던 셰진, 수이화 등의 감독들이 제3세대에 속하며 그들의 후배인 제4세대인 우이궁과 우텐밍, 제5세대인 장이모와 첸카이거가 뒤를 잇는다. 중국의 각 세대와 스승과 제자 또는 선후배 관계로 연결되어 있다. 문혁의 영향으로 제3~5세대들은 동일한 출발선상에 있었으며 거의 동시에 활기를 띠었다. 그러나 비록 그들이 함께 작품 활동을 시작했지만 각 세대마다 처한 환경과 성장해온 시대적 배경 등 모두 달랐으므로 작품을 통해 각자가 추구하는 빛깔을 달리하면서 다양한 작품들을 관객에게 선보였다.
    인문/어학| 2006.10.13| 8페이지| 3,000원| 조회(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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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링의 권리를 위한 투쟁
    권리를 위한 투쟁을 읽고...권리를 위한 투쟁, 즉 권리는 싸워서 얻는 것이라는 다소 공격적인 사상을 담은 대단한 내용의 책이다. 작자 예링은 인간의 기본권이 권력과 금력에 의해 유린당하는 오늘날, 법은 단지 학문이라는 인식을 떠나 법감정과 권리를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용감하게 쟁취하는 태도를 이 책을 통해 촉진시키고자 하고 있다.공동체 속에서 공동의식을 교육받고 그것이 최우선이라는 무의식 속에 깔린 그 믿음에 따라 법 또한 공동체를 우선할 것이라는 의식에 알게 모르게 길들여 진 나에게 지극히 개인주의적 이익에 기초한 예링의 책속의 목적법학은 생소했으며 한편으로는 나 자신을 위한 법이라는 의미로 다가오기에 내 이익 추구가 공동체 생활에서 뻔뻔한 짓이 아니라 당연한 내 권리 추구일 수도 있다라는 사실에 약간의 희열을 느꼈다.그렇다면 내가 이렇게 까지 생소했지만 희열을 느낀 예링의 책의 내용을 살펴보자면 첫째, 법의 목적은 평화며 그것을 위한 수단은 투쟁이다. 평화를 위한 투쟁? 어휘상으로 보면 다소 앞뒤가 안맞다. 마치 선악의 공존을 뜻하는 것처럼 평화를 추구함에 왜 다툼과 폭력을 연상시키는 투쟁을 필요로 한가 싶다. 하지만 그 어떤 행복이나 아름다움, 성공, 부귀영화 등 눈부신 것들을 이룩하기 위해선 희생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 것이다. 또한 지키기 위해서도 희생은 필요하다. 만약 내 이 행복에 대한 권리를 침해하려는 자가 있다면 싸워서 이겨 이를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이처럼 세상에는 수많은 지켜야 할것들이 있고 이에 따르는 투쟁또한 수도 없다. 이러한 투쟁 끝에 자신의 권리에 상충하는 법을 쟁취할 수 있고 그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게된다. 또한 이 수많은 투쟁은 법의 소멸과 생성이 반복을 야기한다.둘째, 권리 추구자의 권리주장은 그 자신의 인격 주장이다. 권리에 대한 위협은 곧 투쟁을 야기시킨다. 즉, 자신의 권리를 옹호하려는 자와 이를 경시하려는 자와의 대립을 의미한다.이런한 투쟁은 전쟁이나 폭동, 결투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오늘날 결투의 형태로 그 잔재가 남아있다. 그 예로 사법상의 투쟁인 소송이 있다. 사적인 재산권 문제로 인한 권리 투쟁에서는 단지 상대방에게 승소함으로써 손해배상을 청구하여 일종의 복수를 하려는 욕망의식만이 존재 할뿐 권리와 평화의 기로에서 저울질하는 계산문제와는 거리가 멀다. 즉, 소송비가 없어 권리를 포기하고 현실에 타협하는 권리를 평화에 희생하고 부유한 자는 소송비 걱정없이 당당히 소송을 걸어 자신의 권리를 쟁치하여 평화를 권리에 희생시키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예를 들어 민족간의 국토분쟁에서 본다면 이는 얘기가 달라진다. 비록 작은 크기의 땅이라도 한 민족의 미래가 달린 일이라면 즉, 작은 영토에서 시작해 후에도 영토를 뺐길 여지를 남길일을 없에기 위해 그들은 전쟁을 불사하고 투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농민의 경우라면 어떠하겠는가? 예링은 농민의 경우라도 아무리 큰 희생과 고통을 감수해서라도 그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고 쟁취해야 한다고 말한다. 권리보다 평화를 중시하는 것은 법의 파멸을 도래하기에 법이 존속을 위해서라도 용감한 저항은 필요하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농민 한사람의 입장에서 본다면 작은 토지 하나에 시간과 노력, 거액의 소송비를 날릴 그만큼의 이득이 없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본다면 이 농민 한 사람 뿐만이 아니라 모든 농민이 이런 태도를 가진다면 법은 더 이상 정의 실현의 도구가 아닌 이름 그대로 악법이 될것이다. 그러므로 올바른 법의 존속과 실현을 위해서라도 저항과 투쟁은 당연한 것이다.셋째, 권리를 위한 투쟁은 자기자신에 대한 권리자의 의무이다. 또한 권리란 인격의 정신적인 존재 조건이며 권리 주장은 인격자체의 정신적인 자기보존이며 권리자의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이다. 이러한 권리에 대한 투쟁은 자신의 권리를 즉, 인격을 침해 받았을 경우, 정신적인 자기 보존의 의무에 대한 경고로서 정신적인 고통을 유발하고 이는 이런한 고통에서 탈출해야만 하도록 강요받음으로써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정신적인 고통은 개인마다 조직마다 국가마다 그 고통의 해당 영역을 달리한다. 즉, 권리위협에 대한 반응(법감정의 반응)은 각 주체가 중요시 하는 정신적 존재조건(특수한 생존조건)에 침해되는냐 안되는냐의 여부에 따라 그 반응은 격렬하게 일어나기도 경미하기도 하다. 그도 그럴것이 상인에게 있어 신용은 생명인데 게으르다는 말은 그 인격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지만 그의 명예심을 걸고 넘어진다면 이는 상인에게 있어 인격침해까지는 아니다. 반면 명예로 죽고 사는 사관에게 그의 명예을 더럽힌다면 이는 인격침해를 의미하나 신용이 없다는 말은 이에 해당하지 않을 것이다.넷째, 권리 주장은 사회공동체에 대한 의무다. 예링은 앞서 언급한 원칙들을 전제로 이를 주장하였다. 즉, 공법/사법의 법적 실현은 국가권력기관에 의해 보장되고 사법의 실현은 개인의 권리에 의해 실현되는데 만약 개인 어떤 이유에서 든지 이를 중단한다면 사범은 사실상 무가치해져 버린다. 즉, 사법의 원칙 실현은 구체적 주장이 이루어질때 가능하며 구체적 주장은 이를 받쳐주는 법규가 존재해야 가능하기에 법과 권리는 서로 연결된 유기체이다. 그런데 한 개인의 권리 포기는 그렇다면 그 개인의 주장과 연결되어 법규의 무가치를 야기해 결국은 그 개인에게 피해를 준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개인 한명의 피해로 끝날 일에 왜 공동체가 관련이 있는가 싶지만 사실 한 개인의 권리와 연결되 그 법규는 다른 이들에게도 해당되는 그들의 이익에도 일조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또한 수많은 이들의 피해를 부를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한 개인의 권리 주장은 나 개인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유기체처럼 사회공동체에게도 영향을 주기에 권리주장이라는 의무를 다해야 한다.
    독후감/창작| 2006.10.13| 3페이지| 3,000원| 조회(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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