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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의 국제금융센타로의 발전을 위한 제안
    I. 서론1II. 국제금융허브로의 과제21. 기존의 국제금융 중심지22. 서울이 해결해야 할 과제2가) 금융선진화와 국제화 2나) 외국인직접투자 유치3다) 인적자본의 국제화3라) 그 외 중점사항3III. 결론4참고문헌5??Ⅹ?Ⅸ. 서론우리나라는 휴전 당시 1인당 국민 소득이 18달러에 그치던 것이 오늘날에 와서는 2만 달러에 육박하게 되었다. 이것은 지속적인 새마을 운동과 경제개발 계획을 통하여 전 세계 모든 국가들이 부러워하는 한강의 기적을 이룩해 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수출주도형 산업발전에 노력을 기울여 왔다는 것이다.과거 50년은 완제품이거나 중간재 형태의 재화에 대한 무역으로 국부를 늘려왔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와 같은 고전적인 통상의 형태로는 GNP의 증가는 일정 수준에서 증가하지 않고 머무르거나 감소가 될 것이다. 그 이유는 현재의 국제시장은 크게 WTO체제 하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동시에 FTA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두 가지 모두 관세의 인하와 철폐 그리고 각종 무역장벽의 완화 내지는 제거에 목적을 두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세계시장은 더 이상 국경이 없는 무한의 경쟁시대로 돌입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이와 같은 무한경쟁 시장의 한복판에 놓여 있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아주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우리나라의 상황은 비용의 중국과 효율의 일본 사이에서 절체절명의 위기에 서있는 것이다. 혹자는 넛크래커(nut-cracker)위기 라고 해서 변하지 않으면 깨질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지적하였으며 이건희는 이를 샌드위치에 비교하기도 하였다. 게다가 삼성의 경우 현재의 그룹이 생겨날 수 있게 해준 주력 부서인 가전 사업부의 전망에 대하여 아주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음에도 주목 할 필요가 있다.역사 이래 지속되어오던 1차 산업은 산업혁명을 계기로 2차 산업으로 변모되어왔다. 이제는 제3의 물결인 정보화와 서비스의 3차 산업이 주를 이루는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우리에게 경쟁력이 소진된 부분은 과감히 정리를 하고 새로운 분야와 기회의 시장으로 진출을 모색해야 할 실정이다. 게다가 원-달러 환율이 900원이 무너지는 현실에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이러한 국제 여건 하에서 우리나라가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넘어서 3만 달러, 4만 달러가 되기 위해서는 산업구조에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제조 산업은 비용의 경쟁력이 중국과 개발도상국에 미치지 못하고 있음과 제품의 인지도는 일본이나 독일 등 선진국에는 뒤처지고 있음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정부도 이와 같은 현실을 직시해 우리나라를 IT 중심의 산업과 동북아시아의 물류중심지로 만들어 가려는 구상과 더불어 서울을 동북아시아의 새로운 금융시장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청사진을 제시한 바 있다.서울이 국제금융의 중심지가 되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 그리고 민간이 해야 할 일들이 많이 산재해 있다. 서울이 국제금융의 허브로 거듭나기 위해서 현재 갖고 있는 경쟁력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할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의 약점이 무엇인지는 강점보다 더욱 잘 알아야한다. 다음에서 기존의 국제금융허브의 상황에 대해 알아보고 서울이 국제금융의 중심지기 되기 위한 방향과 과제를 알아보겠다.Ⅰ. 국제금융허브로의 과제0. 기존의 국제금융 중심지흔히 국제금융의 중심지로 떠올리는 곳은 뉴욕과 런던이 대표적이다. 거기에 더불어 싱가포르, 홍콩, 도쿄, 두바이 등이 있다. 그 외에도 시간대(Time Zone)에 따라서 각각의 국제금융 시장이 발달해 있어서 국제금융 시장은 문을 닫지 않는 셈이다.기존의 국제금융시장은 대개 두 가지 형태로 발달해 왔다. 첫째로 대항해시대부터 발전을 거듭해온 지역들이다. 과거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기 전에는 무역선의 왕래가 잦은 지역에 교역시장이 형성되고 더불어서 국제금융도 발달하게 되는 역사를 갖고 있는 것으로 싱가포르와 홍콩이 이러한 예이다. 반면 배후에 큰 소비시장이나 공급시장이 있는 지역에 국제금융 중심지가 생겨나게 되는데 런던과 뉴욕의 국제금융 중심지가 좋은 보기 이며 두바이의 경우는 중동의 Oil Money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대부분의 국제금융 중심지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아주 단순하면서도 서로 많이 닮아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외국자본의 유입이 쉽다는 것이다. 이 한 문장으로 모든 것을 다 설명할 수 있다. FDI(Foreign Direct Investment)가 쉽다는 것은 자본의 출입이 쉽다는 것으로 각종 규제가 없거나 수원하다는 것이다. 이는 제도적 인프라를 말한다. 또 그 시장의 투명성이 확보되어 있다는 것을 말하며 인적·물적 인프라가 잘 준비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덧 붙여 배후시장이 있어서 외국자본의 유입을 촉진하게 되는 것이다. 지극히 상식적인 내용이지만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수한 노력을 필요로 한다. 이처럼 금융관련규제를 간소화하고 세율을 인하하는 등 금융운용과 관련된 제도적 인프라를 유리하게 구축하는 한편 금융산업과 금융관련 서비스산업에서 기술진보가 꾸준히 이루어지는 것이 국제금융시장으로서의 이미지를 개선하고 경쟁력을 지켜나가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기존의 국제금융 중심지도 부단한 노력을 계속해온 결과 지금의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이다.1. 서울이 해결해야 할 과제) 금융선진화와 국제화외환위기 이후 적극적으로 추진한 금융구조조정은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 금융시장의 규모는 상당히 커졌으나, 금융산업의 국제경쟁력은 아직 선진국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금융시장의 제도와 관행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국제금융시장과의 통합을 촉진하려면 다음과 같은 통상과제를 적극 추진하여야 한다.첫째, 완전한 개방형 경제를 구축하여야 하며 외국자본에 대한 완전한 내국민대우원칙을 고수하여야 한다.둘째, 우리의 금융산업 발전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것은 규제와 정책에서 오는 일관성 부족의 해소이다.셋째, 역외금융시장 혹은 파생금융시장의 육성이다.넷째, 외국금융기관 유치는 금융산업의 선진화와 국제화에 필수적이다. 이를 위하여 금융특구를 설정하여 규제와 지원을 파격적으로 차별화할 필요가 있다.다섯째, 국제금융 환경의 변화에 맞추어 규제 및 감독의 선진화가 요구된다.가) 외국인직접투자 유치한국은 외국인투자의 과소성취국가이다. 즉, 한국경제의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실제 외국인직접투자 유치 실적은 기대에 크게 못 미치고 있는 실정이다. 외국인투자환경에 대한 외국인투자기업의 평가를 보면 향후 전망도 상당히 비관적이다. 외국인직접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국가적인 노력이 경주되어야 할 것이다.첫째, 외국인투자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둘째, 경제자유구역의 외국인 투자유치를 활성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셋째, 외국인투자 유치 전략의 패러다임이 변화되어야 한다.넷째, 외국인투자에 대하여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신보호주의 압력에 현명하게 대응하여야한다.다섯째, 외국인투자 유치와 관련된 행정조직, 인력, 정책수단을 개선하여야 한다.나) 인적자본의 국제화지식정보화시대의 도래로 인하여 창의력과 응용력이 개인과 국가의 경쟁력을 결정짓는 핵심요인이자 가치창출의 원천이 되고 있으며 국제금융의 중심지로 부상하기 위해서는 국제흐름에 뒤떨어 져서는 성골 할 수 없다. 따라서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고 활용하는 인적자원을 형성·축적·개발하는 교육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인적자원의 경쟁력 강화방안은 다음과 같다.첫째, 금융전문 인력의 양성을 위해서 전문 교육기관을 설립하여야 한다.둘째, 금융 전문 인력의 비중을 높여야 한다.셋째, 기존 금융 인력의 재교육을 위한 국비의 지원을 필요로 한다.넷째, 외국 고급인력 유치제도를 전면적으로 개편·확대 하여야 한다.다) 그 외 중점사항서울이 국제금융의 중심지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든든한 배후 시장을 필요로 하게 되는데 이는 동북아 물류허브와 IT산업의 발전으로 가능해 질 수 있다.Ⅱ. 결론우리는 제조업 분야에서 한계에 다다랐음을 알고 있다. 이를 해결하고 모든 국민이 윤택한 삶을 영위하기위해서는 국가 산업 시스템을 바꿔야할 시기가 온 것이다. 1차 산업과 2차 산업에서는 이미 비교열위에 놓여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무한한 잠재력과 우리에 경쟁력이 있는 3차 산업으로 탈바꿈을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내놓은 대안이 국제금융의 중심지로 부상하려고 계획해 왔다. 이에 더불어 동북아의 국제물류 중심지가 되기 위하는 것과 부가가치가 높은 IT산업의 강국으로 변모 하려고 있다.
    경영/경제| 2008.05.07| 6페이지| 1,000원| 조회(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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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업보조금
    1. 서론12. 보조금 이란1가. 전략적 정책으로서의 보조금1나. DDA 농업협상의 보조금 분류21) 앰버박스(Ambor Box)32) 그린박스(Green Box)33) 블루박스(Blue Box)33. 미국의 농업 보조금 현황3가. 의의 및 변천3나. 농업 보조금의 종류 및 주요내용41) Production flexibility contracts(생산자율계약)42) Commodity program(농산물 프로그램)43) Farm Loans(농가금융 프로그램)54) Conservation Programs(환경 보전형 프로그램)55) Disaster Programs(재해구호 프로그램)56) Counter cyclical payments(경기대응 소득보조)57) 향후 전망54. 한국의 농업 보조금 현황6가. 의의 및 변천6나. 농업 보조금의 종류 및 주요내용61) 쌀소득등보전직접지불제72) 경영이양직접지불제73) 친환경농업직불제74) 마케팅·유통75) 향후 전망75. 한·미 양국간 쌀 생산에 대한 보조금 내역8가. 보조금 현황8나. 쌀 보조금의 분석 및 비교91) 생산액 대비 보조수준92) 한국과의 보조 비율 비교93) 농가 호당 보조금96. 결론100. 서론‘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말이 있듯이 농사짓는 일을 하는 것은 천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큰 근본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농사를 장려하는 말이다. 우리 민족은 반만년의 유사 이래 농업을 국가의 근간으로 알고 살아 왔으며 각 왕조의 국왕들은 농업을 장려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였고 자신이 직접 땅을 일구어 모범을 보이기도 하였다. 또한 농업은 인간이 살아가는 기본 요소인 의·식·주 중에서 식량을 공급해 주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국민의 생활과 직접적인 연관으로 인하여 국가의 존립에 막대한 영향을 주게 되어 식량은 안보와도 직결되는 문제이다. 동서양 고금을 막론하고 저마다 차이는 조금씩 있겠지만 식량과 연관된 농업은 모두가 민감하게 여기는 부분이다.산업혁명 이후 전 세계는 놀라운 속도로 발전을 거듭해 왔다. 일부 보조금의 경우 특정산업이나 기업 경쟁력을 인위적으로 변화시켜 상당한 정도의 수출촉진이나 수입억제 등 무역왜곡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보조금은 양면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는데, 한 국가의 경제를 중장기적 계획에 따라 디자인하는 정책이라는 차원에서 경제 정책적 주권이라는 측면이 있다. 반면, 수출품에 대한 보조금 지급이 기업 간의 공정한 경쟁을 저해할 가능성이 높아 무역의 왜곡 기능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이러한 양면성에도 불구하고, 실제 경제정책측면에서는 국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전략적 무역정책(strategic trade policy))으로서 보조금 정책을 시행하는 경우가 많다. 국제무역이론에서는 한 국가의 보조금 지급이 외국기업의 이윤을 국내기업으로 이전하는 효과(이윤이전, profit shifting)가 이론적으로 증명되었다(Brander and Spencer 1985). 즉 보조금 지급은 국내기업의 행위를 더욱 공격적으로 변화시켜 외국 경쟁기업의 생산(Cournot경쟁의 경우)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 따라서 보조금의 지급은 기업 간의 전략적 관계(strategic relations)를 변화시켜 과점경쟁이론에서 발생하던 선행위자의 우위(first-mover advantage)가 보조금 지급으로 인해서도 발생할 수 있음이 증명되었다.이러한 전략적 관계의 변화에 대한 유인(incentives)은 결국 교역조건(terms of trade)의 변화에 대한 유인으로 해석될 수 있는데, 개별 정부는 교역조건을 국내기업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변화시킬 유인을 지니고 있어(Bagwell and Staiger 2002) 적극적인 전략적 무역정책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다자ㆍ지역ㆍ양자 간 무역협정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개별정부는 일방주의적인 무역정책(unilateral trade policy)을 취할 수 있다면, 보조금을 지급할 유인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가. DDA 농업협상의 보조금 분류국내보조 분야에서는 농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나 보조되는 것이다. 이처럼 보조금을 예외 없이 다 줄이는 것이 아니라 성격에 따라 허용될 뿐만 아니라 계속 확대할 수 있는 보조금도 있다. 실제로 농림부의 예산을 보면 앰버박스보다 그린박스가 세배 이상 크다. 그러니 우리가 줄여나가야 하는 보조금은 작은 부분에 불과한 것이며 많은 국가들이 그린박스 정책들을 새로 개발하고 늘려가고 있다.2) 블루박스(Blue Box)블루박스는 앰버박스와 그린박스의 중간에 해당하는 보조금으로 ‘무역을 왜곡’하는 효과가 있는데 ‘앰버박스’에 비해서는 적고 그린박스에 비해서는 많은 그런 보조금이다. 실제로 블루박스는 사용하는 국가들이 아주 적다. 미국과 유럽연합(EU)가 대표적으로 많이 쓰고 그 외에 한 두 나라가 쓰고 있다. 본래 UR에서 농업협상의 골격이 만들어질 때는 앰버박스와 그린박스만 있었는데 마지막 단계에서 미국과 EU가 자국에서 쓰기 위해서 만든 것이 블루박스이다. 대표적인 블루박스 정책은 EU가 하고 있는 생산제한직접지불정책이다. 일부 면적을 휴경하는 조건으로 생산자들에게 직접지불을 주는 경우로 직접지불은 생산과 관련 없이 지급되어야 그린박스가 될 수 있는데 이 경우에는 생산과 어느 정도 연계되어 있다. 블루박스 정책도 무역왜곡효과가 있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줄여가야 한다.2. 미국의 농업 보조금 현황. 의의 및 변천)1930년대는 경제대공황 이후 가격지지(Price Support)를 중심으로 농가 소득안정 정책을 전개하였다. 1950년대에는 농업구조개선 정책을 주로 하여 농업의 효율성 증대와 경쟁력 강화를 추구하였고 1980년대에 와서는 농산물의 과잉생산과 환경 보호 측면에서 환경농업(Conservation)과 소득보조정책을 병행하여 실시하였다. 1990년대 가격지지 정책이 상대적으로 축소되고 직접소득보조정책 (Direct Income Payment)이 주로 전개되다가 1994년 미국 농무부 재편 시 Agricultural Stabilization and Conser-vation Service, Federal Crop Insodity program(농산물 프로그램)농가소득의 안정, 농산물 수급의 균형, 수확기 농가의 금융지원을 목적으로 한 프로그램으로 주요 대상작물은 밀, 벼, 호밀, 수수, 보리, 귀리, 유채, 담배, 땅콩 등 이다. 희망농가는 농산물을 담보로 금융지원을 받게 된다.2) Farm Loans(농가금융 프로그램)상업적인 성격의 대부를 일시적으로 받을 수 없는 농가에게 낮은 이자로 금융을 지원하고 그들로 하여금 재정적인 곤란에서 탈피하여 자립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취지에서 마련 되었다. 보장성 금융제도(a guaranteed loan)에서는 상업적인 채권자가 농가에 금융을 지원하고 FSA가 재정손실을 보증하는 제도이다.3) Conservation Programs(환경 보전형 프로그램)보전유보정책(Conservation Reserve Program), 농업보전정책 (Agricultural Conservation Program), 습지보전정책(Wetland Reserve Program), 토양 및 수자원보전 정책(Soil and Water Conservation)등 환경 보전형 농업정책을 목표로 하게 된다. 환경 친화적 농업을 육성하기 위해 휴경 실시, 토양침탈 방지 및 지력증진용 녹비작물 재배 등 환경농업정책에 참여한 농가의 소득을 보조한다.4) Disaster Programs(재해구호 프로그램)기상재해로 인한 농가손실을 보전하기 위한 목적으로 Emergency Conservation Program(ECP), Noninsured Crop Disaster Assistance Program(NAP), Emergency Loan Assistance(EM) 등의 프로그램을 운용한다. ECP는 홍수, 태풍 등의 풍수해 및 기타 자연재해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입은 농토를 복구하기 위해 농가에 지급되는 비상재원(emergency funding) 프로그램이다. 또한 NAP는 자연재해로 인해 피해를 입은 농가에 적절한 재정적 지원을 위한 프로그램으로써 비보험대상의 작물의 손실 보지변 등 기상재해에 대한 복구 등의 임무를 담당하는데 지속되는 농가부채의 증가와 경쟁력 확보의 어려움이 큰 관건이다.가. 농업 보조금의 종류 및 주요내용)보조금 유형을 방역·방제, 복리·후생, 농업생산, 직접지불, 생산시설, 생산장비 등 6가지로 구분하여 살펴보면, 총 보조금 가운데 생산시설이 차지하는 비중이 81.0%로 가장 높고, 다음이 농업생산 7.8%, 직접지불 6.6%, 생산장비 2.3%, 복리?후생 1.3%, 방역·방제 1.0% 등의 순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보조금 수혜가 대부분 생산기반 조성과 관련되어 있어 상대적으로 복리?·생 등은 미흡한 것으로 나타난다. 유형별 보조금 수혜 현황유형별 융자금 수혜 현황을 살펴보면, 농업생산(영농자금) 명목이 50.5%, 생산시설 30.8%, 생산장비 8.9%로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학자금이나 주택개량사업 명목의 복리?후생이 9.8%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유형별 융자금 수혜 현황0) 쌀소득등보전직접지불제목표가격을 설정하고, 목표가격과 당해연도 수확기 산지 전국 평균쌀값과의 차이의 85%를 직접지불로 보전함으로써 농가소득 안정을 도모한다. 쌀소득보전직접지불금을 고정직불금과 변동직불금으로 구분하여 지급하는 것이다.1) 경영이양직접지불제농업경영을 이양하는 고령은퇴농가의 소득안정을 도모하고 쌀전업농의 영농규모 확대를 촉진함으로써 쌀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만들어 졌다.2) 친환경농업직불제친환경농업 실천 농업인에게 초기 소득 감소분 및 생산비 차이를 지원하여 친환경농업 조기정착을 도모하고, 고품질안전농산물 생산 장려 및 환경보전 등 농업의 공익적 기능 제고를 위하여 제정되었다.3) 마케팅·유통고품질쌀브랜드 육성사업, 농산물물류표준화, 농산물유통전문교육, 농산물직거래지원, 농산물해외시장개척, 농업경영체정보시스템구축, 농축산물판매촉진사업, 우수농산물관리제도(GAP)운영, 우수농산물지원사업 등이 있다.4) 향후 전망95년 UR 이후 AMS(농업 보조금)는 해마다 감축했으며 95년 2조 1천억 원에서 200
    경영/경제| 2008.05.07| 11페이지| 1,500원| 조회(1,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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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식코(sicko) 감상문 평가B괜찮아요
    평등이란 조건이 같은 상황에서는 똑같이 대우해주고 조건이 다른 상황에서는 다르게 대우해 주는 것이다.지난 대선에서 나온 특정후보의 공약 중에 국민건강보험의 민영화라는 내용이 있었다. 주요 골자는 갈수록 고갈되는 국민건강보험 재정의 내실화를 위한다는 명분을 갖고 있었다. 과정은 중요하지 않지만 건강보험의 민영화를 주장하던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건강보험 민영화가 국민의 복지증진에 얼마나 기여할 것인가를 알아봐야 할 시점인 것이다.소위 엘리트라고 불리우는 행정부의 정책입안자들의 정책내용을 살펴보면 재미있는 내용이 많다. 정책의 대부분이 외국의 사례를 우리나라에 접목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가장 큰 이유로 선진국에서 성공적으로 실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의료보험 민영화의 내용도 미국의 선례를 따라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러던 즈음 의료보험 민영화의 본고장인 미국에서 의미심장한 영화가 개봉되었다. 마이클 무어(Michael Moore) 감독의 식코(Sicko)라는 영화인데 미국 건강보험 민영화의 병폐를 신날하게 비판하고 있다. 민영 건강보험에 들지 못한 시민은 질병을 얻거나 사고를 당하게 되면 엄청난 의료비용을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 가령 어렵게 건강보험에 가입이 되었다 하더라도 거대한 보험사를 상대로 목숨을 담보로 해서 기약 없는 싸움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캐나다, 영국, 프랑스의 경우에는 국민건강보험이 전 국민에게 공통으로 적용되며 의료비용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쿠바에서도 돈 없는 자에게 동등한 의료혜택이 주어지고 있었다.우리의 역사에는 사대주의라는 단어가 있다. 그 내용은 우리보다 큰 국가를 맹목적으로 따라고 그들이 옳다고 생각하며 대국의 비위를 맞추려고 한다는 것이다. 사대주의가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비판적인 사고를 필요로 하고 좋은 것 이라면 우리 실정에 맞게 다듬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중국을 사대했지만 지금은 미국을 사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분명 우리보다 큰 힘을 지난 선진국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미국이 무조건 옳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행정부의 고위 관료들은 국가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들이다. 그러한 내용은 마땅히 국민 모두를 포함하여야 하는 것이다. 입법부의 국회의원들은 법을 제정할 때 국민을 위할 수 있는 것을 제정해야 한다. 사법부는 법을 엄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의 상황을 보면 국민의 생각과는 다르게 되어가고 있다. 국민을 위한 정책은 사대하는 국가의 정책을 맹목적으로 답습하고, 국민을 위한 입법이 아닌 일부 기득권을 위한 입법을 하고 있으며 사법도 철저하게 자본주의에 의하여 움직여지고 있다.
    독후감/창작| 2008.05.07| 1페이지| 1,000원| 조회(1,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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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개발 5개년계획
    - 차 례 -1. 서론12. 경제개발계획의 시작2가. 제3공화국과 경제개발계획2나. 경제개발5개년계획31)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1962년∼1966년)32) 제2차 경제개발5개년계획(1967년∼1971년)43) 제3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1972∼1976)64) 제4차 경재개발 5개년계획(1977∼1981)65) 제5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계획(1982∼1986)63. 경제개발계획의 결과와 문제점7표 1. 대외원조총괄1표 2. 경제개발계획에 의한 경제실적추이4표 3. 산업구조 변화추이4표 4. 1960년대 이전의 경제모습5표 5. 경제개발5개년계획의 추진6그림 1. 대외원조금액2그림 2. 경제성장률30. 서론1945년 8월 15일 감격의 해방. 곧이어 미군(美軍)의 진주. 그리고 우리나라는 주한미군의 군정(軍政) 시대로 들어갔다. 미국(美國)이 우리나라 국민의 의식주를 해결해야 하는 책임을 지게 된 것이다. 미국의 막대한 원조가 시작됐다. 그런데 원조 액수가 클뿐더러 개선될 가망이 전연 없자 부담을 느낀 미국은 1949년 6월 주한미군을 철수했다. 미국은 한국을 필요한 나라로 판단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골치 아픈 존재로 생각했던 것이다. 1950년 1월에는 소위 「애치슨 라인」, 즉 한국과 대만은 미국방위선 내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발표를 했다. 그러자 불과 5개월 후인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은 남한을 침공했다. 한국전쟁의 발발이다. 북한은 세계의 공산화를 위해 전쟁을 일으켰고, 우리나라는 이에 맞서 자유수호를 위해 싸웠다. 한국전쟁은 동서(東西) 양진영 간의 총력전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3년간의 사투에도 불구하고 승부가 나지 않자 1953년 7월 27일 휴전으로 마무리했다. 결국 그 피해는 우리나라 국민이 분담하게 된 것이다.전쟁 중 우리나라 국민의 의식주 문제와 국가 재정은 전적으로 미국이 원조해주었다. 해방 후 휴전까지 미국이 원조해준 총액은 당시 금액으로 10억 4,664만 달러라는 막대한 금액에 이른다. 이러한 미국원조가 없었더라면 굶471.001960$245,393.00$225,236.00$19,913.00$224.001961$199,245.00$154,319.00$44,926.00계$2,088,343.00$1,736,049.00$202,648.00$59,233.00$90,393.00출처: 한국은행 DB그러나 우리의 생명이던 국제원조는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1957년에는 원조자금 액수가 3억 8천만 달러까지 됐으나 1959년부터는 2억 달러 수준으로 떨어졌고, 1961년에는 2억 달러를 밑돌게 됐다. 더 어려운 사실은 전후사정으로 인하여 생산 시설이 없었고 마땅히 수출을 할 수 는 자원이 넉넉한 것도 아니었다. 수입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인간의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결과 우리나라 경제는 곤경에 처하게 됐고 국민생활은 더욱 비참해지기 시작했다.1. 경제개발계획의 시작. 제3공화국과 경제개발계획1961년 5·16혁명 이후에 출범한 제3공화국은 조국근대화의 기치를 내걸고 경제개발계획을 수립하여 이를 강력히 추진해 나갔다. 그리하여 한국경제는 제l차(1962∼1966년) 및 제2차(1967∼1971년) 경제개발5개년계획기간에 연 평균 8.8%라는 놀라운 성장률을 이룩하였고, 1970년대로 이어지는 제3차(1972년∼1976년) 및 제4차(1977년∼1981년)경제개발5개년 계획기간에도 성장의 속도는 멈추지 않았다. 이와 같은 고도성장의 시대에 전기통신사업도 경제개발5개년계획의 부문계획으로 추진되었던 통신사업5개년계획의 실시 과정에서 급속한 성장을 이룩하였다.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경제개발5개년계획이 시행된 것은 1962년 이후였지만, 처음으로 종합적인 경제개발계획이 수립된 것은 1953년 3월의 네이산보고서로 알려진 한국경제재건5개년계획이었고 다음은 그 해 7월 미국의 대한경제원조의 지침으로 한국 정부에 건의된 타스카3개년대한원조계획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 정부의 독자적인 경제개발계획은 아니었으며, 미국이 대한 원조정책의 일환으로 원조의 배분과 관련하여 한국의 경제재건 및 타스카의 부흥계획 등은 그 후의 정치적, 사회적 변동으로 시행되지 못하였는데, 5.16 혁명 이후 정부의 적극적 노력으로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세우고 실천에 옮겨졌던 것이다.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은 기본 목표를 모든 사회·경제적인 악순환을 시정하고 자립경제 달성을 위한 기반의 구축에 두었다. 계획 수행의 방침으로는 혼합경제체제하에서 자유시장경제원칙에 입각한 민간기업의 창의적 노력을 고취하는 한편, 정부가 재정·금융·외환면에서 적극 지원하고 민간기업이 참여할 수 없는 기간산업 및 기타 주요 부문에 대하여 정부가 직접 간접으로 참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여 전략부문의 중점적 개발에 촛점을 두었다. 그리하여 총체적인 경제성장률을 미리 상정하고 이에 따라 생산, 투자, 고용, 수출입을 배분한 경제총량의 기본모형을 마련하고 개별적 사업계획의 선정과 부문별 생산목표 및 투자를 계획하였다.제1차 5개년계획에서 국민총생산의 연 평균 목표 성장률은 7.1% 였으나 실제에 있어서 8.5%의 성장률을 나타내었다. 이것은 계획 실시 이전의 5년 간의 연 평균 성장률 5.4%에 비하여 3.1%가 높은 것이었다. 계획 기간 중 1인당 국민총생산은 1960년대의 82.60달러에서 1966년에는 126달러로 증가하여 연 평균 5.6%의 증가율을 나타내었다. 그리고 산업구조는 기준연도인 1960년에 1차 산업이 35.2%, 2차 산업이 19.2%, 3차 산업이 45.6% 였던 것이 1966년에는 1차 산업이 31.7%, 2차 산업이 25.7%, 3차 산업이 42.6%로 바뀌었다. 즉 1차 산업과 3차 산업의 비중이 감소된 반면에 2차 산업의 비중이 커졌던 것이다. 이것은 광공업 등 2차 산업의 성장이 제1차 5개년계획의 높은 성장률을 주도하였음을 뜻하는 것이다. 이것은 광공업 등 2차 산업의 성장이 제1차 5개년계획의 높은 성장률을 주도하였음을 뜻하는 것이다. 한편 수출의존도는 계획보다 낮은 26.4 %로 떨어져 경제기반이 보다 탄탄해졌다. 그러나 물가는 예상보다 높은 3.3 %-151.9-19.0181.6-469.5물가상승률(%)16.37.819.719.31.02.63.7출처: 한국은행 국민계정1) 제2차 경제개발5개년계획(1967년∼1971년)제2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은 제1차 5개년계획의 경험을 토대로 국내외의 경제여건과 시장 기구를 다각적으로 반영한 장기전망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서 그 규모는 제1차 5개년계획의 수준을 훨씬 능가하였다. 제1차 5개년계획이 공업여건의 조성에 중점을 둔 것이라면, 제2차 5개년계획은 공업화 기반의 강화에 중점을 둔 것이었다.제2차 5개년계획의 기본 목표는 산업구조를 근대화하고 자립경제의 확립을 더욱 촉진시키는데 두었으나, 이 계획은 제2차 연도인 1960년의 국민총생산이 원래의 계획인 7%에서 10%로 그 성장률이 수정되는 등 몇 가지 기본목표가 조정 보완되었다. 이 기간에 우리나라의 공업화는 급진전되었는데, 1966년에 전혀 생산되지 않았던 화학섬유·소모사 등이 생산되기 시작하였으며 합판, 정유, 자동차, 기계 등의 제조공업이 눈부시게 발전하였다.표 3산업구조 변화추이제1차제2차제3차제4차제5차제6차신경제산업구조농림수산업34.927.023.717.211.58.05.7관공업20.522.328.630.032.628.625.9SOC 및 기타44.650.747.752.855.963.468.4공업구조경공업65.960.753.247.140.431.722.8중공업34.139.346.852.959.668.377.2출처: 한국은행 1997 국민계정1967년의 2차 산업의 성장률은 20.2%였고, 목표연도인 1971년에는 17.3%였다. 즉, 계획 기간 중 연 평균 19.9%의 높은 성장률을 이룩하였던 것이다. 3차 산업은 1967년에 14.6%에서 1971년에는 9.8%로 되었고, 연 평균 12.7%의 성장률을 나타냈으며, l차 산업은 연 평균 1.6%의 성장률을 나타냈음에 비하여, 2차 산업은 거의 20%에 가까운 성장률을 기록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전체의 성장률은 1967년의 6.6%에서 1971년에는 9.신장하였던 것이다.표 41960년대 이전의 경제모습구분*************961평균 또는 합경제성장률(%)5.55.41.94.84.4인구증가율(%)2.882.882.883.252.931인당GNP(달러)70668183국내저축률(%)6.44.91.43.93.7투자율(%)11.611.910.913.112.0산업구조농림어업(%)40.344.836.840.241.3광공업(%)12.412.215.715.213.8기타(%)47.343.047.544.644.9도매물가상승률(%)28.081.910.713.222.2수출(백만달러)24183341200수입(백만달러)2433413443162,754외국원조(백만달러)*************,088자료: 경제기획원 「개발연대의 경제정책」 1982 p.34.이와 같이 수출주도의 공업화는 산업구조면에 있어서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국민총생산에 대한 광공업의 비중은 1967년의 15.1%에서 1971년에는 20.9%로 커졌다. 1차 산업은 같은 기간에 있어 37.5%에서 28.8%로 축소되었음에 비하여 2차 산업은 5% 이상 커졌던 것이다. 공업화의 결과 산업구조가 달라지고 수출품 중에서 공산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고도성장을 위한 투자수요를 초래하였다. 즉, 국민경제의 수입의존율이 l차 계획 기간보다 2차 계획 기간에 더욱 높아졌고, 무역 수지상의 적자폭도 크게 확대되었다. 제2차 5개년계획에서 추진된 높은 수출 신장은 고도성장과 공업화에 크게 기여하였으나 투자재의 수입 의존도의 증대로 무역구조면에서는 만성적인 불균형을 초래하였다. 즉, 무역수지는 1966년의 4억 6,960만 달러로 적자 규모가 커졌으며, 수입의존율은 16.7%에서 26.3%로 늘어났다. 이와 같이 수출 증대는 경제 성장에 크게 기여하였으나 수입을 크게 유발하였던 것이다.2) 제3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1972∼1976)제3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목표는 중화학공업화를 추진하여 안정적 균형을 이룩하는 데 두었다. 이 기간에는 착수 직전인 197.
    경영/경제| 2008.05.07| 8페이지| 1,500원| 조회(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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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본주의이행논쟁
    1. 서론한국 경제는 FTA라는 물결 속에서 개방과 보호라는 갈림길에 봉착하게 되었다. 이러한 갈림길에서 한국 경제가 맛보고 있는 것은 제 2차 자본주의 이행기를 겪고 있는 것이다. 이 갈림길에서 한국 경제는 미국이라는 강대국과의 교섭에서 많은 문제점을 안고 개방의 길을 선택했다. 이러한 자본주의 이행시기에 닥쳐오는 새로운 물결을 받아들이려면 과거의 자본주의 이행기를 당연히 알아봐야할 것이다. 역사는 과거와 미래의 대화이기 때문이다.시대구분에 있어서 이행기는 역사를 파악하는데 있어서 중점을 두어야 할 부분이다. 그 이유는 한 사회가 변화하는 커다란 모형을 보여주며 생산양식이라고 하는 기본 사회구성의 요소가 다른 새로운 생산양식으로 발전하는 모습을 이행기에서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봉건적인 생산양식에서 자본주의적인 생산양식으로 발전하는 자본주의 이행기는 바로 현대 사회의 기본적 요소들이 등장하는 시기로 그 중요성이 더욱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자본주의 이행에 관한 논쟁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자본주의 성립의 배경을 살펴보면 경제적, 계급적, 문화적인 배경의 세 가치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다. 경제적인 배경으로는 생산력의 비약적인 발전을 들 수 있다. 생산력의 발전에 따라 경제적 수준이 상승하여 잉여노동이 증가하고 사회가 분화되는 현상이 나타나 16세기부터 매뉴팩처의 형태가 발생하는 생산의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계급적 배경으로는 봉건사회 내에서 나타나는 농민계급의 계급투쟁으로 이러한 양상은 봉건적 생산관계를 타파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하였다. 이러한 배경과 동시에 문화적 배경으로는 르네상스를 통해 사상적 기반이 인간생활로 옮겨지고 자연과학이 다시 발달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이 된 것이다. 이러한 과학의 발달은 인식세계의 확장을 통해 사회가 경제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데카르트의 경우 철학과 과학에서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최초의 근대인이라는 칭호까지 얻을 수 있었다.다음의 소주제에서 우리는 자본주의민계급(부르주아)을 이루게 되는데, 이들은 영국의 국제적 우위에 기초한 식민지 착취 및 국내적 보호정책(소위 중산주의 정책)의 원조 아래 발전하여 18세기 후반부터 공장제 공업으로 약진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자본주의적 생산의 기초가 마련되고, 이제 축적이 시작되는 것이다. 자본주의적 생산이 발달한 과정은 2차 엔클로저 운동의 시기와 궤를 같이한다.땅에서 분리된 노동력은 자본에 고용된 임노동력으로 전환할 준비를 마쳤다. 그러나 자신의 생산수단으로 자유롭게 노동하던 이들이 하루아침에 남녀노소가 함께 지옥 같은 노동을 하는 공장생활이 익숙해질 리가 없었다.이런 노동력을 공장의 임노동력으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강제’가 필요했다. 그래서 소위 구빈법(poor law)라는 것이 만들어졌다. 말은 가난한 자를 구제한다는 명분이었으나, 이 법으로 길거리에서 구걸을 하다가 잡힌 사람을 본보기로 사형을 시키거나, 귀를 자르거나 고문을 하고, 낙인을 찍었으며, 강제 수용소에 들여보냈다. 강제 수용소와 감옥이야말로 농민들을 노동자로 훈련시키는 좋은 곳이었는데, 그 곳에서는 일정한 시간에 맞춰 일을 하게하고, 규율에 길들여지도록 만드는 혹독한 과정을 배치했다.이런 과정을 거쳐 자유롭게 노동하던 봉건 농민들은 ‘근대적 노동자계급’으로 전환했던 것이다. 맑스는 “자본주의는 그 탄생에서부터 모든 구멍에서 피를 뚝뚝 흘리면서 태어났다.”고 말했다. 자본주의는 그만큼 비참함을 동반하면서 만들어져왔던 것이다.땅을 수탈당하고, 가혹하게 훈련된 임노동자들, 그리고 그들의 피 위에서 착취의 준비를 마친 새로운 계급인 부르주아는 이제 새로운 역사의 주체로 무대에 오른다.② 절대왕정(16세기 - 18세기)의 형성과 시민혁명- 부르주아가 진정하게 역사의 주인이 되려면 정치권력을 잡아야 한다. 자본주의를 유지?온존시키는 정치권력이 없다면 결코 그들이 지배는 계속될 수 없기 때문이다. 봉건제의 지배계급인 봉건영주들은 자신의 권력을 놓치지 않으려 하고, 그래서 그런 봉건영주와 부르주아간에 정치권력을 둘러싼 19세기 중엽에 걸쳐 진행된 농업혁명에 대해서도 살펴보기로 하자.산업혁명이 본격화하면서 영국은 증대하는 공업인구를 먹이기 위해 곡물수입을 늘렸다. 이에 즈음하여 농업의 기술적 개량과 보급에 전력을 다했고 노우포크 농업이라 불리는 새로운 농업기술체계가 실현되었다. 이 노우포크 농법은 비료의 대량 사용, 합리적인 사륜작 체계, 마차의 사용, 가축 축사와 사육의 유기적 결합을 특징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전의 삼포제도에 근거한 경지의 공동 이용 및 공동 방목을 특징으로 하는 경지제도와는 모순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삼포제의 폐기가 요구되고, 이 방법을 실현하고자 대농이나 차지농이 주체가 되어 대규모 엔클로저 운동을 진행한다(2차 엔클로저 운동). 이 운동은 의회의 청원과 그 허가에 기초해서 국가권력의 도움을 얻어 행해졌다. 농업기술의 발전을 기반으로 했던 2차 엔클로저 운동은 농업에서 자본제적 요소를 탄생시켰다. 실시 과정에서 거액의 비용을 지불해야 했던 대부분의 농민은 몰락하고 농업경영과 토지소유가 분리되어 지주 - 자본가적 차지농 - 농업노동자라는 근대적 소유관계가 확립된다.이처럼 산업혁명은 자본의 형성, 임노동자의 형성, 부르주아의 정치권력의 장악 과정과 맞물려 ‘자본주의생산양식’을 사회의 주도적인 생산약식으로 만들어놓았다.앞에서 자본주의는 ‘진보’의 역사로서 우리 앞에 놓여져 있다고 했다.정말로 자본주의는 진보한 체제이다. 비록 그것이 형식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맑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이 진보를 이끈 부르주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찬사’를 보냈다.한마디로 해서 부르주아는 자신의 모습을 닮은 세계를 창조한다.부르주아는 농촌을 도회지의 주도권 하에 종속시켰다. 그는 거대한 도시들을 창출하였으며 농촌에 비해 도시인구의 수를 엄청나게 증가시켰으며 그리하여 우매한 농촌생활로부터 상당수의 인구를 구출하였다. 그는 농촌이 도회지에 의존하도록 마들었으며 마찬가지로 야만국가나 반야만국가가 문명국가에, 농민이 부르주아지에, 그리고 동양이 서양에 의존하도록 만들었다 농촌에 남아있는 사람들에게도 도시는 도망의 은신처로서의 영향을 주었다. 교환 경제의 승리에 따른 봉건제 해체의 일반적 경향에 역행하는 재판 농노제는 일시적 반전에 불과할 뿐이다. 이리하여 스위지는 재판 농노제는 교환 경제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농민들이 도망갈 곳이 없는 곳에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③ 브레너의 견해스위지의 비판으로 촉발된 논쟁에는 이후 세계의 많은 경제학자와 역사학자들이 참여했다.) 그러나 봉건제 해체와 자본제로의 이행에 대해 총괄적이고 체계적인 견해를 제시한 학자는 브레너였다. 브레너에 의해 촉발된 이 논쟁을 브레너 논쟁 또는 신자본주의 이행 논쟁이라 한다.브레너는 스위지류의 방법론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 도시와 농촌간의 분업이 장원의 생산을 비효율적으로 만들어 봉건제의 해체를 가져왔다는 스위지의 견해를 정면으로 비판한다. 브레너에 의하면 중세의 시장에 나온 상품은 본질적으로 잉여(surplus)였다. 즉 생산수단과 생존 수단은 기본적으로 자급하기 때문에 재생산이 시장의 교환에 의해 행해지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에서처럼 시장에서 이윤을 남길 수 있느냐가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지는 못한다. 오히려 영주가 확보할 수 있는 잉여의 양은 농노에 대한 지배력에 좌우되었다. 그러한 점에서 영주가 일차적으로 관심을 갖는 것은 생산 방법의 개선이라기보다 농노에 대한 지배력의 확대였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상업이 발달하면 효율성의 향상을 위해 바로 노동형태와 생산 방법을 바꾼다고 생각하기는 곤란하다.상업의 발달이 자연적으로 봉건제의 해체를 가져왔다는 견해를 비판하는 브레너는 도시 역할에 대해서도 비판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도시가 성장하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기껏 전체 인구의 10%에 불과했다. 이정도의 규모로는 농촌의 봉건제 변화에 결정적 영향을 줄 수는 없다. 우선, 농촌으로부터 도시로 도망하는 농노들을 도시는 충분히 흡수하지 못한다. 게다가 도시는 길드적 질서에 의해 운영되었는데 외부에 대해 폐쇄적이고 배타적이었다. 수공업자들도집권적 소유와 통제를 바탕으로 한 전통적인 피라미드식 조직이 아니라 독립된 기업과 기업으로 형성되는 기업망(enterprise web)으로 변신하였다. 오늘날의 선진국의 거대기업들은 어떤 나라에 소재하고 있는 물적·지적 자원을 그 나라의 투자가나 경영자보다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보다 큰 이윤을 획득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아무런 주저 없이 그 나라에 진출하는 지구적 기업망을 구축한다. global sourcing, global pricing, global costing 등.◇ 초국적 거대기업의 지배력- 초국적 거대기업의 외국 자회사들은 1997년에 9조5천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하였고, 그들의 부가가치는 세계GDP의 7%에 달한다(1980년대 중반에는 5%). 그들이 세계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980년 후반의 1/4에서 1995년에는 1/3로 증대하였다. 미국에 근거를 둔 초국적 기업은 미국 GDP의 약 1/4 이상(7억4천만 달러 가운데서 2조 달러)을 책임지고 있다. 초국적 거대기업들은 인수합병을 통해서 점점 더 거대해지고 있다. 1990년과 1997년 사이에 한 해 동안의 M&A 수가 11,300 개에서 24,600개로 두 배 이상 증가하였다. 1997년 한해 국경을 초월한 M&A는 2천360억 달러에 달한다.③ 미국의 정치적 헤게모니- 세계화의 과정은 미국(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의 정치적 지배와 일치한다. 미국의 이러한 정치적 헤게모니의 확립은 공산주의의 붕괴와 자본주의의 승리에 의해 더욱 강화되었다. 정치적 국면이 세계화의 개념을 우리 시대의 가상 이데올로기(virtual ideology)로 전화시켰다.④ 자유주의적 세계화 이데올로기의 확산- 신자유주의는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가 말하는 문화적 헤게모니(사람의 머리를 지배하면, 그들의 가슴과 손발을 지배할 수 있다)의 장악을 통해서 오늘날 강력한 이데올로기로 성장하였다. 우익들은 신자유주의의 확산을 위해 수많은 뛰어난 학자들을 동원하고 수억 달러의 돈을 아낌다.
    경영/경제| 2007.05.06| 22페이지| 3,000원| 조회(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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