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을 읽고최근 전 세계적으로 큰 관심과 주목을 끌고 있는 이슬람은 미국 9.11테러에서 시작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세계 초강대국 미국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바뀌었고, 세계 경제 중심부이자 미국 경제의 상징인 뉴욕이 하루아침에 공포의 도가니로 변한 뉴스를 보고 어찌나 놀랐었던지?......뉴스를 통해 나는 9.11테러가 일어난 것을 알게 되었다. 세계 최고의 강대국 미국의 뉴욕 무역센터와 워싱턴 미국 국방부가 항공기 납치를 통해 폭파되고 90여 개국 2800~3500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생명을 잃었다. 그때 난 이슬람을 처음 알았고 이슬람세계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언론에서 보도하는 내용만으로 이슬람과 미국, 그리고 9.11테러를 이해했다. 하지만 나의 궁금증을 풀기에는 정보가 부족했다. 대학에 입학 한 나는 교양과목 ‘제 3세계의 이해’라는 과목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수업을 듣게 되었다. 수업을 들으면서 내가 궁금해 했던 테러뿐이 아닌 이슬람 전체에 대한 것을 배우게 되었다. 이 책의 1장 ‘9.11테러와 이슬람 문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읽고 내가 알고 있었던 것은 매우 단편적인 것이었고, 서구적인 시각에서 보도된 내용이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9.11테러는 아무리 작고 힘없는 민족이나 국가라 할지라도 가장 힘이 센 절대강자에게 치명적 피해와 위협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9.11테러가 일어난 후에 ‘미국이 뿌린 대로 거둔다’는 식의 자업자득의 목소리가 인터넷 게시판에 많이 올라오는 것을 보았다. 9.11테러는 오만 불손한 미국의 일방주의와 패권주의에 대한 인류사회의 경고라는 의미를 담고 있음과 동시에 지구촌 전 세계를 균형 있는 시각으로 볼 기회를 가져왔다. 9.11테러 이후 언론의 관심은 이슬람으로 쏠렸다. 전 세계 인구의 1/4이 무슬람 일 정도로 이슬람의 영역이 세계에서 넓었지만 그에 대한 관심이 너무 적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9.11테러는 서양세계 중심으로 하는 생각도 든다.그리고 9.11테러를 미국은 정말 몰랐을까 하는 의문이 이 책을 다 읽는 내내 궁금증으로 남았다. 미국의 정보력으로 알 수 있었음에도 테러가 일어나도록 방치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나는 이집트가 이슬람 국가라는 사실을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그 고귀하고 세계적인 문명의 이집트문명이 이슬람 국가라는 것을 몰랐다니? 나의 이슬람에 대한 관심과 지식은 제로에 가까웠던 것이다. 터키에 관한 이야기도 매우 흥미롭게 읽었다. 대중목욕탕을 다닌 우리나라 사람은 전혀 상상 할 수 없는 터키탕 하맘의 이야기가 나의 관심을 끌었다. 따뜻한 물에 맨몸으로 들어가 몸을 불리는 우리의 대중목욕탕과는 다르게 대리석 바닥위에 앉아 땀을 흘리고, 남자들 간에도 치부를 가리는 예의를 지키는 터키탕은 공동체 친교의 장소라는 것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이집트 터키 외에도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에디나와 모로코, 페르시아는 꼭 한번 여행해 보고 싶다. 수업시간에 교수님께서 왜 젊은이들이 비싼 돈을 들여 유럽 배낭여행을 가는지 모르겠다고 하시면서 유럽은 나중에 취직하면 출장으로 갈 일이 많으니 젊었을 때 이슬람국가로 배낭여행 가는 것이 어떻겠냐면서 말씀하신 적이 있다. 그 때 그 이야기를 굉장히 흥미롭게 들었는데 그 순간 이슬람권으로 꼭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어린시절 내가 손에서 놓지 않고, 읽고 또 읽는 것을 반복했던 책 중의 하나가 바로 ‘아라비안나이트’이다. 이 아리비안나이트는 일요일 아침 만화동산에서 만화로 만들어져 방영을 했는데 어찌나 재밌었던지 졸린 눈을 비비며 일요일 아침마다 일찍 일어났던 생각이 난다. 양탄자를 타고 다니는 공주와 왕자의 이야기가 그 때 난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천 하룻밤의 이야기인 이 아리비안나이트가 외설적인 성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나는 이슬람사람들은 매우 보수적이며, 성에 대한 이야기는 금기시 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릴 적에 읽었던 아라비에서 가장 흥미 있게 읽었던 부분이 바로 이 책의 4, 5장인 이슬람 여성에 관한 이야기였다. 나는 이슬람이 일부다처제, 남아를 선호한다고 해서 여성들은 우리나라의 조선시대처럼 대우받지 못하고 낮은 지위로 살아간다고 생각했다. 특히, 일부다처제라는 제도는 흔히 남자의 욕망만을 채우기 위한 미개한 제도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이런 일부다처제가 이슬람권에서는 여성을 가장 잘 존중하고 보호할 수 있는 제도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슬람 초기 전투에서 많은 남성들이 사망하게 되자 과부들과 고아들이 생겨나는 고통을 막기 위한 제도라고 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보니 어쩌면 일부다처제가 당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지참금(마흐르)과 부양생계비(나파까)를 아내에 대한 남편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이슬람에서 여성의 지위와 권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명령된 것으로 어느 정도 존중받고 평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것 같아 보인다.이러한 이슬람 여성의 상속권 제도가 우리나라보다 1400여년이나 앞서 있다는 점은 매우 놀라웠다. 내가 지금까지 서구의 사고방식으로 이슬람의 여성들을 판단하고 있었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나는 이슬람 여성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히잡이다. 왜 더운데도 저렇게 눈만 내놓고 베일을 쓰고 다닐까 늘 궁금했었는데 그에 대한 해답을 이 책의 4장에서 얻을 수 있었다. 꾸란에서의 여성관, 즉 , 여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보호관과 현대 이슬람 국가의 전통적 페미니즘에서 이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여성보호의 측면으로 히잡을 착용했고 히잡은 여성 순결성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고 했다.아직 우리나라에는 여성대통령이 한번도 나온 적 없고 미국에도 중국에서도 아직 여성이 대통령을 한 것은 찾아볼 수 없다. 반면 이슬람에는 베나지르 부토가 여성수상이 되었고, 방글라데시에서도 베쿰 칼레다 지아가 여성수상이 되었고 인도네시아에서는 메가와티 수카르노 푸트리가 여성 대통령이 된 것을 보면 우리나라보다 여권신장이 더 빠르게 이루어졌고 여성의 지위가 높은 것을 보고 놀 취업률이 높다고 하는 데 이 점은 여성취업이 힘든 우리나라에 살아가는 취업을 앞 둔 여학생으로서 부러울 따름 이다. 또한, 여자가 정치를 하는 것을 보고 집에서 살림이나 하지하면서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여성 대통령이 나오기란 불가능 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도 빨리 여성의 지위가 높아져야 할 텐데 말이다.나는 돼지고기를 참 좋아하는 사람으로 돼지고기를 금기시 하는 이슬람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삼겹살, 목살, 뒷다리 살....... 먹을 부분도 많고 맛은 또 얼마나 좋은가? 하지만 이슬람에서는 하나님께서 꾸란을 통해 돼지고기를 먹는 것을 금지하셨기 때문에 돼지고기를 엄격히 금하고 있다고 했다. 이슬람에 대한 신앙이 정말 깊은 것을 보여주는 것이 이런 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꾸란에서 지시하는 대로 하는 것을 보면 그 신앙심은 높이 살만 하다.전 세계 사람들이 하루 두 세잔씩 즐겨 마시는 커피가 처음 이슬람에서 발견 됐다는 사실을 누가 알았을까? 난 커피가 브라질이나 유럽에서 처음 재배된 줄 알았다. 그런데 커피와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아라비아 반도 남서쪽의 항구 예맨에서 양치는 목동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는 나를 또 한번 놀라게 했고 내가 이슬람에 대해 너무 몰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나의 생각과 가치관이 서양세계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자세로 전 세계를 두루 볼 줄 아는 세계관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유교사상이 짙은 우리나라는, 농업사회로 인해 남아선호 사상이 깊게 뿌리박고 있다. 이슬람권 사회에서도 오아시스 유목사회가 갖는 환경적 특수성과 엄격한 남성 위주의 가부장적 사회가 갖는 남아선호 풍습이 매우 크게 나타난다고 한다. 여아를 출산한 산모는 즉시 가사로 복귀해야 하는데 반해, 남아를 출산한 산모는 3~6일간 침대에서 산후 조리를 하고, 그 뒤 40일간 휴식을 취하는 것을 보면 ‘남아가 곧 행복’이라는 이슬람의 속담이 이해가 간다. 딸만 둘을 낳아 우리엄마과의례도 매우 흥미 있게 읽었다. 희생, 할례, 성장, 결혼, 장례 그 중에서도 결혼에 대한 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자유연애 결혼은 전혀 상상 할 수 없지만 여자는 부모가 선택해 준 신랑후보를 거절 할 수 있다고 한다. 결혼에 대한 부분의 우리나라의 조선시대와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다. 사촌결혼의 성행을 빼면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재미있게 느꼈던 것 중의 하나가 신랑후보가 마음에 들면 차에 설탕을 타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소금을 넣는 다는 것이었다. 이 어찌나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방법인가?이슬람의 통과의례 중의 하나로 여성의 성기일부를 절단한다는 것과 첫날밤 여성의 순결성을 확인하는 일은 문화적 상대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로썬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되었다.나는 경제학부의 학생으로서 우리나라의 경제 뿐 아니라 세계 모든 곳의 경제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오르지 않는 임대료와 이자 없는 이슬람 은행은 경제학을 공부하는 나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들었다. 나는 이슬람이 석유생산으로 인해 많은 부를 축적했고, 상거래도 매우 활발하여 사유재산에 대한 개념과 경제체제는 어느 정도의 선진국과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오르지 않는 임대료와 이자 없는 은행은 너무 놀라웠고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슬람법에서는 고리대금과 이자를 금지하고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그럼 저금은 누가 하나 하는 의문이 생겼다. 이슬람 은행은 고정이윤을 보장하는 이윤은 금지되어있으나 은행이 이 돈을 운영하여 발생하는 이윤에 대한 배당금은 가능한 것이므로 이슬람 은행은 이자의 개념이 나닌 투자의 개념이라고 설명하였다. 은행이자가 적어 은행에 저축하는 것은 돈을 불리기에는 힘들다며 주식, 부동산 등에 투자하는 우리나라의 경우에서 비추어 볼 때 이자 없는 은행은 놀랄 만 하다. 이에 더불어 오르지 않는 임대료도 우리나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경제체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집값이 오르고 올라 부동산 잡는 데 정신이 없는 우리나라에 살아서 .
..PAGE:1젠더(성별불평등)..PAGE:2CONTENTS한국사회의 남과 여남녀차별 배경 및 사례이유개선방향..PAGE:3전통 가족제도, 농경사회에서 비롯되었던 남녀불평등 문제한국사회에서의 남과 여아들= 노동력→남성우월주의여성 가사일, 교육의 기회X..PAGE:4한국사회에서의 남과 여탄생에서부터 예고 된 불평등?!(여성비하속담)1. 딸 둔 죄인2. 여자가 너무 알면 팔자가 세다3. 여자와 북어는 사흘 걸러 때려야한다4. 여자 열 모이면 쇠도 녹인다..PAGE:5남녀차별 배경 및 사례◆남자 편◆1) 가장으로서의 부담감-연평균근로시간 2390시간 →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일하는 “파김치 아빠”-생계부양자로서의 부담& 회사 내 성공→이중 삼중 부담과 스트레스..PAGE:62) 국방의 의무= 군대-남성에게만 병역을 부과하는 현재의 병역법은 사실상 헌법에서 규정하는평등에 어긋난다-징병제로 인한 시간의소비남녀차별 배경 및 사례..PAGE:73) 법률상의 차별-남성은 강간죄의 피해자가 될 수 없다(형법 제297조는‘폭행 또는 협박으로 부녀를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면서 피해자를 ‘부녀’에 한정) →그러나, 교도소, 군대 내 성폭행 피해자가 전체 성폭력 피해자의 15.4%-신체장애등급(외모에 뚜렷한 흉터가 남은 여성은 장애 4급이지만 남성은 6급으로 낮게 규정)남녀차별 배경 및 사례..PAGE:84) 일상생활에서의 차별-데이트 비용에 대한부담→더치페이 제안시 “쪼잔한 남자”(니생일엔 명품 가방내생일엔 십자수냐)-180cm이하는 루저-무거운 짐은 남자가…남녀차별 배경 및 사례
20세기 전반기의 교육사상진보주의와 듀이과목명 : 교육 철학 및 교육사담당교수 :학과 :학번 :이름 :제출일자 :■목차 및 구성■Ⅰ. 서론20세기 전반기의 교육사상----------------------------------------------------Ⅱ. 본론1.진보주의 교육이란?2.진보주의 교육의 발전이론3.진보주의 교육사상의 비판4.존 듀이(John Dewey)의 교육사상과 방법1) 존 듀이의 생애와 사상적 배경2) 존 듀이의 교육사상3) 존 듀이의 교육방법4) 존 듀이의 실험학교----------------------------------------------------Ⅲ. 결론느낀 점 및 생각정리Ⅰ. 서론20세기 전반기의 교육사상교육철학은 교육의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한 계속적인 해답을 줄 수 있는 믿음을 제공함으로써 교육과정의 성격과 조직에 큰 영향을 미친다. 또한 교육목표의 선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교육내용의 선정 및 교수 방법의 선택을 좌우한다. 이러한 뜻에서 교육철학은 교육과정 구성의 중요한 기초가 되므로 교육철학을 아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그렇다면, 20세기 전반기 교육사조는 무엇인가. 바로 실용주의(pragmatism), 도구주의(instrumentalism) 및 실험주의(experimentalism)의 사상 위에 세워진 , 경험. 생활을 중시하는 교육인 ‘진보주의(progressivism)’이다. 이 세상에 불변의 지식이란 없기 때문에 오늘 가르치는 내용이 내일에는 타당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진보주의 철학자들은 변화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사회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방안을 계속적으로 시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진보주의의 교육은 교과에 중심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학습자인 아동에 초점을 두고 활동과 경험을 강조하고, 아동의 선천적인 잠재적 가능성을 중시, 경쟁적인 개인주의 수업보다 협동적인 집단학습을 권장한다.이 사조는 신교육운동에 의해 비롯된다. 1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공교육제도가 설립되었는데 그 에 필요한 사상과 인격의 자유로운 상호작용을 허용 하 고 촉진해야 한다.진보주의 교육의 발전이론아동의 창의성 존중, 지역사회학교, 주체적 학습, 활동적 방법 등의 진보주의 교육 이념에 입각해서 전개된 교육방법의 대표적인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1) 킬패트릭의 구안학습듀이가 실험학교에 도입한 문제해결학습(Problem Solving method)을 킬패트릭(W. H. Kilpatrick)이 발전시킨 것으로 보통 킬패트릭의 구안학습(Project method)이라 불린다. 듀이는 원래 학생의 활동이 어떤 계획(프로젝트)에 의해 진행되어야 할 것이라는 원리를 주장하고 이 원리에 입각해서 학생 각자가 자신의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을 중시했다.-학생에게 부과된 문제를 학생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해결하도록 하고, 더 나아가 구체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내도록 하는 방법이다- 아동의 4가지 창의적 활동 제시.① 구성? 창조력 프로젝트 : 보트 만들기, 편지쓰기, 연극 등(외적 형태로부터 어떤 이상이나 계획을 구체화하려는 목적)② 감상? 음미적 프로젝트 : 옛 이야기 듣기, 교향곡 감상, 그림감상 등(심미적 경험을 향유하려는 목적)③ 문제 해결적 프로젝트 : 왜 이슬이 가을에 내리는 가, 뉴욕은 왜 엄청나게커져서 필라델피아를 뛰쳐나오게 되었는가 등(문제의 원인에 대한 지적 탐구의 목적)④ 연습?특수훈련 프로젝트 : 글씨를 고르게 쓰기, 덧셈을 어느 수준까지 정확하고 능숙하 게 하는 일, 자전거 타기 등 (기술이나 지식을 획득하려는 목적).2) 올센의 지역사회학교올센(E.G.Olsen)은 지역사회학교운동을 제창했다. 그는 학교는 지역사회의 중심이며, 지역사회의 자료를 충분히 활용해야 하고, 교육과정에는 지역사회의 문화와 문제를 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지역사회의 여러 활동에 참여하면서 그의 발전에 기여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학교를 실사회, 지역사회와 연결시키는 데는 '열 개의 다리'가 필요하다고 주장→ 지역사회 문서, 시청각 교구, 전문가 초빙, 면담, 현장 견학받았으며, 그의 실험학교도 그러한 목적들을 성취하는 연습장으로 여겨졌다.듀이는 1904년 뉴욕의 컬럼비아 대학의 철학교수로 임명받아 1930년 71세로 은퇴할 때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 그 후 그는 19년이 넘도록 저작 활동을 했다. 그는 다작의 저자로 교육학, 미학, 윤리학, 심리학, 역사학, 정치학, 철학의 모든 영역에 걸쳐 있다.주요 저서로는 나의 교육신조, 학교와 사회, 민주주의와 교육, 경험과 교육이 있다.ⓛ 『나의 교육신조』: 듀이의 교육사상을 처음 발표한 책이다. 제 1조 교육이라는 것, 제 2조 학교라는 곳, 제 3조, 교육의 내용, 제 4조 교육방법의 성격, 제 5조 학교와 사회진보에 대해 살펴 볼 수 있다. 이 책은 나는 이것을 믿는다라는 말로 시작하여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다. 즉, 모든 교육은 개인이 종족의 의식에 참여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이 과정은 거의 출생 시부터 무의식적으로 시작하여, 그 후 계속적으로 개인의 힘을 가다듬고 의식을 채우며 습관을 형성하고 아이디어를 훈련하며 감정과 정서를 일깨워 준다. 이 무의식적 교육을 통하여 개인은 인간이 애써 모아 놓은 지적, 도덕적 자원을 점차로 공유하게 된다. 그는 문명이라는 합자유사의 상속자가 된다. 이 세상의 가장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교육이라 하더라도 이 일반적인 과정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 제도화된 교육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그 과정을 특정한 방향으로 조직하고 세분하는 것뿐이다. 단 하나의 참된 교육은, 아동이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사회적 상황의 요구에 의하여 그의 힘을 자극하는 데서 나온다. 이 요구를 통하여 아동은 한 단위체의 구성원으로서 행동하도록, 원래 자기가 가지고 있던 좁은 행위와 정서에서 벗어나서 그가 속하고 있는 집단의 복지라는 관점에서 자신을 파악하도록 자극을 받는다. 자기 자신의 활동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통하여 그는 이 다른 사람들의 존재를 사회적인 관점에서 파악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는 아동을 거쳐 다시 그들에게로 반사되어 들어간다. 비중에 따라 ‘시행착오적 경험’과 ‘반성적 경험’이 구분된다. 시행착오적 경험에 내재되어 있던 사고가 능동과 수동 사이의 세밀한 관계를 파악하는 수준에 이르게 될 때, 그 경험은 반성적 이라는 새로운 질의 경험으로 발전한다.경험은 인간 유기체와 환경 사이의 상호작용이다. 왜냐하면 환경이 변화하면서 이전의 상호작용방식으로는 안정을 유지할 수 없는 난관과 문제사태를 야기하기 때문에 경험은 이전의 경험을 확대함으로써 환경과의 괴리를 극복하고 새로운 평행상태를 획득하고자 노력한다. 경험은 문제사태와 더불어 시작되며, 이러한 문제사태는 경험 주체에 의해 자각될 때 존재하게 된다. 따라서 유기체와 환경은 연속성을 띠고 있다.듀이는 전통적인 개념인 ‘이성’을 ‘지력’이라는 개념으로 대치한다. 지력은 경험에 내재하며, 경험 속에서 작용한다. 경험은 한 개인의 기존 경험으로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사태에 직면했을 때 시작된다. 경험의 과정에서 충동이나 욕망은 지력에 의해 인도되면서 ‘가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의지를 드러내 보인다. 지력과 의지, 충동 등이 결합되어 주어진 문제사태를 통일된 의미로 파악하게 되면(문제사태 해결) 경험은 종결 단계에 이르게 된다. 이처럼 주체가 경험의 종결 상태에 이르게 되었을 때를 가리켜 주체가 ‘하나의 경험’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하나의 경험은 또 다른 경험의 토대가 되면서 경험에서 경험으로 이르는 계속적인 성장을 가능하게 한다. 경험의 이러한 특징으로 인하여 교육은 계속적인 경험의 성장으로 규정할 수 있다.(2) 교육철학의 배경듀이는 “헤겔(Hegel)과의 만남이 나의 사유에 영원한 침전물로 남아있다.”고 할 정도로 헤겔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는 존 홉킨스 대학원 시절 헤겔 연구가인 모리스(G.S. Morris)교수의 감화를 받아 헤겔 철학에 매혹되었다. 특히, 듀이는 헤겔로부터 전통적인 철학의 이원론을 극복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자신이 고뇌하던 많은 철학적 문제를 유기적이고 통합된 접근으로 시도할 수 있게 되었다. 듀이는 은 비형식적인 교육과 형식적인 교육, 우연적인 것과 의도적인 교육 사이에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다. 만약 여기서 정식적 교육이 사회적 성향에 미치지 못할 때 학교교육은 실패하고 말 것이다.(2) 사회적 기능으로서의 교육우리는 교육을 조형, 형성, 주형활동이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교육은 사람을 사회활동의 표준적인 형식으로 만들어 넣는다는 뜻이다. 교육은 이루고자 하는 모든 것들을 물리적으로 이동 운반하는 것과 같이 육체적 형성에 있는 것은 아니며 나이 어린 사람들이 나이 많은 사람들의 관점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방법, 또는 나이 많은 사람들이 나이 어린 사람들을 그들과 같은 마음가짐으로 인도하는 방법을 찾는데 있다. 교육이 하나의 사회적 기능으로서 미숙자로 하여금 그가 소속되어 있는 집단생활에 참여케 하고 그를 지도하고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하는 말은, 결국 현재 실시하고 있는 교육이 그 집단생활의 질 여하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듀이가 생각할 때 학교는 문학적 변화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교육의 방법과 교육과정에 따른 변화는 사회적 환경의 변화에서 유발된다고 그는 생각하였다. 사회적 환경은 한 개인의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활동 전체를 뜻하며 이 사람들의 활동은 그 개인이 활동하는 것과 불가분의 관계로 연결되어있다.환경의 교육적 효과는 한 개인이 공동의 활동에 어느 정도로 참여 하는가에 달려있다. 결국, 성인이 미성숙한 사람들의 교육을 통제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의 행동과 사고와 감정이 일어나는 장으로서의 환경을 통제 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결코 직접적으로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교육한다는 것이다.듀이는 학교가 일상생활이 제공하는 공동생활에 비하여 독특하다고 볼 수 있는 세 가지 기능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첫째, 복잡한 문명은 그 전체를 일시에 동화시킬 수 없다. 둘째, 학교는 가능한 한 기존 환경의 무가치한 특성들을 제거하여 그것이 마음의 습관에 영향을 주지 못 하도록 하는
실학주의와 교육로크■목차 및 구성■Ⅰ. 서론실학주의의 등장배경----------------------------------------------------Ⅱ. 본론1.실학주의란?2.실학주의 교육3.실학주의 학자 “로크”1) 사상적 시대적 배경2) 로크의 생애3) 로크의 교육목적론4) 로크의 교육내용론5) 로크의 교육방법론6) 로크의 저서7) 로크의 교육사적 의의 및 평가----------------------------------------------------Ⅲ. 결론나의 생각 및 느낀 점참고문헌Ⅰ. 서론1. 실학주의의 등장 배경[시대적 배경]이 시기는 유럽 근대사회 성립의 초기단계로 절대왕권을 중심으로 근대국가의 체제를 갖추게 된다. 즉, 종교개혁 이후에 “신학->과학, 초자연->자연, 교권(교리)->자유”로 전환하는 시기를 말한다. 자연세계와 물질에 대한 인간의 지배력 강화와 인간생활의 진보를 위한 자연과학이 발달하였다. 또한 실학주의는 과학적 탐구와 실제적인 생활에 대한 새로운 관심의 사상이었고 인문주의와 종교 개혁가들의 편협성에 대한 반항이기도 하였다. 베이컨을 선구자로 경험론, 귀납적 학문연구가 제시되었으며, 독일의 데카르트 중심으로 합리주의, 방법적 회의, 연역적 연구방법이 제시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교육의 방법과 내용은 언어주의, 암기주의, 서적주의, 형식주의를 탈피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17세기에 들어서면서 자연과학과 철학의 발전에 힘입어 새로운 교육내용과 방법을 도입하였다. 즉, 사물 그 자체를 알고, 사물 그 자체를 탐구하여야 하며, 사물의 본성으로부터 배운다는 실학주의가 대두하게 된 것이다.[사회 문화적 배경]중세의 영주를 중심으로 한 지방분권적, 봉건적 정치형태로부터 근대의 민족적, 시민적 국가로 이행하는 과도기에 출현한 절대군주를 정점으로 한 중앙집권적 정치형태인 절대주의 국가가 발달하였다. 즉, 르네상스와 지리상의 발견, 종교개혁으로 극대의 동이 튼 유럽은 16세기부터 18세기에 걸쳐 절대왕정시대를 맞게 되었다. 이 시기는 유럽근대사 실학주의의 주된 목적은 귀족계습을 대상으로 신사를 양성하는 것이었다. 서적에 의한 교육보다는 사회생활을 통한 교육을 강조하여 현실사회와의 직접적 접촉을 중시하였다. 대표적 사회적 실학자인 몽테뉴와 로크는 인간 및 세계와 직접 관계하고 세계를 경험함으로써 세상경험이 풍부한 사람을 길러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고전을 연구하는 교육보다 사회생활의 경험을 주요 교육내용으로 하여 신사로서의 준비를 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인문적 교양만으로는 신사양성에 불충분하므로 실생활과의 접촉을 통해 유능한 사회인 또는 세상일에 밝은 인간을 양성하고자 하였다. 대표적인 학자로는 몽테뉴, 로크 등을 들 수 있다.3) 감각적 실학주의감각적 직관을 교육의 기초로 삼아야 함을 기본원리로 하여, 실체, 표본, 그림 등 구체적 사물을 교재로 삼아 교육하려는 사조이다. 교육내용으로는 고전 대신에 모국어, 자연과학, 사회과학 등이 실제적인 내용을 중시하였다. 오늘날의 시청각 교육, 직관교육의 모체가 되었고, 감각적 실학주의에 의해서 실학주의가 완성되고 절정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즉, 교육에 있어 실학주의 사상이 완성, 절정에 이른 것은 감각적 실학주의에 이르러서이다. 감각적 실학주의는 인간의 감각적 직관을 기초로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려고 하였으며 자연과학적지식과 실생활의 결합을 도모하였으며, 교수의 모든 원리를 자연에서 찾고자 하였다. 당시의 학교교육은 자연과학의 지식을 존중, 감각에 의해서 사물의 관찰을 중시하는 직관적 방법을 활용함으로써 오늘날 교육방법의 원리인 직관교육 또는 시청각 교육의 모체를 이루게 된 것이다. 대표적인 학자로는 라트케, 코메니우스를 들 수 있다.2. 실학주의 교육[실학주의 교육사상의 특징]실학주의 교육사상은 형식주의 교육을 배제하고 현실성을 존중한 교육내용과 교육방법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경험적 사물을 중시하고 자국어를 존중하였으며 근대외국어교육을 하였다. 또한 실용성과 실천성을 강조하며 이해와 경험의 중시하고 시청각교육방법을 강조하였다. 특것이다.2) 실학주의종교개혁이후에 관심의 영역은 신학에서 과학으로, 초자연에서 자연으로 변화하였다. 그러나 교육의 내용과 방법은 여전히 언어주의, 기억주의, 서적주의의 형식주의적인 교육이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17세기에 실학주의자들은 인문주의와 종교개혁자들이 저지른 한계성을 극복하고 그들의 관심을 새로운 현실의 객관적 관찰로 돌렸다. 형식주의에 빠져서 라틴어에 매달리는 무의미한 어구연습의 되풀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교육을 인간 생활의 실재적 필요에 접근시키려는 노력이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뉴턴을 비롯한 자연과학자들은 과학적 탐구방법과 합리적 이성으로 근대적 과학 방법론을 제시함으로써 17세기 유럽 지식인들의 사고방법이나 세계관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이러한 교육상의 변혁이 실학주의이다. 구체적으로 실학주의의 뜻은 교육상의 실학주의를 철학이나 예술 ? 문예평론에서의 실재론 또는 사실주의와 대비할 수 있다. 그것은 구체적인 지식 및 직업적인 기술, 문학적인 사용보다 상업이나 외교를 위하여 언어를 학습하며, 역사 정치 법학 과학의 학습을 의미한다. 실학주의는 소극적인 면에서보다 “문예부흥의 문학적 및 예술적인 것과 고전에 대한 반동”이다. 실학주의의 표어는 ‘언어 이전에 사물’ 또는 '모든 지식은 감각으로부터'이다. 이는 교육의 실재이며 궁극적인 목표로 실생활이나 사물을 통하여 우리에게 필요한 지식을 얻게 함으로써 생활에 유용한 인물을 양성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 있어서 실학주의는 철학의 실재론이나 문학 ? 예술의 사실주의와도 대비할 수 있다. 교육에 있어서 실학주의라는 개념은 교육이 실생활과 직결된 것이어야 한다는 견해로 과거의 문화적 취미나 상류계층의 장식의 교육이 아닌 실용성 있는 구체적인 지식과 실제적인 직업기술로서 상업 ? 외교를 위한 실무 본위의 언어교육에서 역사 ? 정치 ? 법률 ? 자연과학 등을 중요시하는 방향으로 바뀌어 나갔다.[시대적 배경]17C 유럽은 역사상 대 전환기로서 근대사회의 실질적인 출발점이라 시절의 편협한 경건주의와 웨스터민스터 시절의 왕권주의의 분위기에서 벗어나서 종교적 관용을 강렬하게 외치는 분위기를 만나게 된다. 또한 논리학, 문법, 수사학, 기하학, 그리스어와 도덕 철학, 더 나아가 역사와 히브리어까지 폭넓게 공부했을 뿐만 아니라 티렐과 같이 평생을 함께할 좋은 친구들도 사귀었고 많은 여인들에게 열렬한 관심을 쏟아 붓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곧 스콜라철학이 지배하던 옥스퍼드에서의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성직자보다 의사가 되고자 노력하게 된다. 로크가 특히 의학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하게 된 동기는 당시 사회적으로 당면한 문제 때문이었다. 당시 런던은 그의 말대로 표현한다면 병든 거리였다. 인구의 증가로 인해 매연과 오물 쓰레기처리문제가 생겼지만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매우 불결했으며, 1655년에는 페스트가 온 나라에 전염되기도 했다. 이렇게 전염병으로 많은 인명이 희생되는 것을 본 로크는 인간생활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건강임을 확인하고 건강한 생활을 위한 의학지식의 필요성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그는 저명한 의사인 씨드넘 등과 교분을 맺고 의학공부에 매진했으며, 경험론 철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보일이나 후크와 같은 저명한 과학자들과도 정기적으로 만나 토론을 하기도 했다.1658년, 그가 26세 되던 해에 옥스퍼드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후 계속 학교에 남아 학문연구를 하고자 선임연구원으로 선출된다. 그리고 왕정복고가 있었던 1660년 그는 옥스퍼드의 크라이스트 처치에서 강사가 되지만 대학에서의 교직활동은 오래가지 못한다. 이때의 로크는 훗날 관용과 저항권과 같은 자유주의 사상으로 이름을 남기게 되는 것과는 달리, 국가의 권위를 우선하는 권위주의자였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명예혁명 이후에는 가난한 사람들의 도덕성을 비난하는 보수주의자의 기질을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재산 관리를 꼼꼼히 하는 편이었고 그의 임대인들에게는 결코 관대한 편이 아니었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그는 기본적으로 보수주의의 기질을 지닌 듯 했다. 그런 그가 자유주의을 충분히 식별하여 적절히 지도하는 일은 곤란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학교에서 어린이들은 교사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나쁜 장난, 교활한 짓을 서로하며, 결코 선량한 신사로서의 자격을 갖추기 곤란하기 때문에 아버지 곁에서 여러 손님이 올 때마다 면접시키고 그들의 거동이나 언동에서 감화를 받게 하고 훌륭한 가정교사 밑에서 좋은 교육을 받으면 유덕하고 교양 있는 인물로 키울 수 있다고 하여 학교교육보다 가정교육을 중시하였다.그는 신사를 양성하기 위한 기본요소는 그의 교육에 대한 고찰의 순서에 따라 신체적, 도덕적, 지적인 측면의 조화로움을 강조하였다. 즉, 로크의 교육이란 훈련을 통한 습관의 형성으로 체육, 덕육, 지육을 통해 건전한 인격을 갖춘 신사(gentleman)를 길러 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다시 말해 신사의 양성을 통한 사회 질서의 안정이 목표인 것이다. 로크는 신사의 양성을 통해 혼탁한 사회를 바로 잡는 데 궁극적인 관심이 있었다. 신사계급은 사회를 유지하는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 자녀를 가장 신사답게 기를 경우 사회 질서는 저절로 안정이 되고, 나아가 국가의 번영과 복지가 기약되는 것이라고 보았다.1) 신체교육론로크의 ‘교육에 관한 고찰’에서의 중심사상이 바로 신체 교육의 중요성이다. 그의 신체 교육적 영역은 교육에 있어서 지식의 전달이나 개인의 인격을 위한 기능을 배양하기 위해서는 늘 정신과 신체가 함께 따라 다녀야 한다는 교육적 의미를 지닌다. 로크의 신체에 대한 교육관은 전통적인 교육에서 근대적인 교육으로 전환시키는 계기와 함께 출발하였다. 정신과 육체는 원칙적으로 동등한 가치를 지닌 것이라 할 수 있어서 이제까지 경원시 되어왔던 신체 교육을 중시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 둘의 매개가 인간에게는 큰 차이를 초래하는 것으로써 매개는 근본적으로 교육적이며 누구냐를 막론하고 교육을 받음으로써 혜택을 누릴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자연과 신체교육으로 로크는 당시의 교육이 아동에게는 비자연적이고 주입식 교육이었음을 반대하여 교육에